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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부 공산당조직 해체령/옐친 “공화국 독자군대 보유 검토”

    【모스크바 외신 종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22일 러시아공화국이 자체의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고 말하고 소련군내의 공산당 세포조직에 대해 해체명령을 내렸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공화국 의사당 건물주변에 모여 환호하는 10만명 이상의 군중들에게 이같이 말하고 민중의 힘이 승리했다고 선언했다.그는 군중들 앞에서 군내 공산당 세포조직의 해체를 명령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그는 또 알렉산데르 루츠코이 부통령에게 공화국의 자체 군대보유문제를 검토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 “쿠데타 관련 전원 철저수사”/고르바초프 기자회견 일문일답

    ◎“KGB군인 권력이양문서 서명 강요/당시상황 담은 테이프·서류 갖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2일 하오(현지시간) 쿠데타발생후 처음으로 외무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연금된 경위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지난 6년간의 개혁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이번과 같은 불법적인 쿠데타가 다시는 있어선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회견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72시간동안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해달라. ▲나는 지난 6년동안 다른지도자들과 함께 소련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그러나 이번 쿠데타는 소련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비극이다.우리는 가장 어려운 경험을 했다.이번 쿠데타는 본인의 신뢰를 받았던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일어났다.쿠데타는 페레스트로이카·민주화·헌정질서및 소련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다.나는 8월18일 4시경 KGB의 일부 군인들로부터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당시는 상황판단이 불가능했다.그러나 나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즉시 친척·동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아내와 가족들에게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말했다.나는 또 어떤 압력과 위협도 나의 신념과 결정을 바꿀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대통령권한을 부통령에게 넘기라며 나를 맨처음 찾아온 군인들의 요구에 나는 『배후가 누구냐.당신들이 내 입장이라면 권한을 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소련국민들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직감한 나는 『그같은 일이 일어나면 소련시민들이 지도부를 믿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소련국민들의 생활과 민주 자유를 염려한 나는 또 『소련문제는 단지 한두명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관련된 것』이라고 밝히고 『군지도부의 이같은 행위는 전국민에 대한 배반행위』라고 말해주었다.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가능했는가. ▲나는 불법적인 쿠데타 세력에 대해서 매우 분개했으며 지난72시간동안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었다.나는 매일 아침·저녁 외부와의 접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나는 전화로 외부와의 접촉을 여러번 시도했으나 전화선은 불통이었다.그러나 나는 영국의 BBC방송을 통해 외부상황을알수 있었으며 미국의 소리방송과도 접촉이 가능했다.나는 소련시민과 다른 국가들에게 그들의 결연한 쿠데타 저지에 감사드린다.특히 러시아공화국과 옐친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낸다. ­쿠데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쿠데타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번사건으로 우리가 외국지도자들과 대화를 통해서 소련국민의 입장이 자명해졌다.소련국민과 군부가 지난10년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다.나는 지금까지 12명의 각국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쿠데타를 통해 나와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수 있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는 원시적이며 토속적인 것이었다. 나는 여기에 쿠데타가 진행됐던 상황을 담은 테이프를 갖고 있다.또 그들이 나의 사임을 강요한 문서도 갖고 있다. 나는 20일 문서에 서명했으나 나의 요구를 계속 내세웠었다. 현재 가장 중요한건 나에게 주어진 권한안에서 쿠데타와 관련됐던 장관과 군부인사들을 해임시키고 수사와 그에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오늘이미 일부조치가 취해졌으며 이에대한 것은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 그리고 내일 15개 공화국지도부와 대화를 갖는등 예정된 계획에 따라 현안사항을 처리해 나가겠다. ­공산당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공산당은 완전히 개편돼야 한다. 지도부는 여러가지 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면이 있다. 나는 공산당에서 반동세력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산당은 활성화될 것이며 공산당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지지세력으로 변해야 한다.
  • 반역 8인의 운명은…/당 제명→공직박탈→징역형 수순 유력

    ◎고르비 대응·옐친 입김이 처벌강도 좌우 소련 뿐아니라 전세계를 뒤흔든 쿠데타가 21일 「3일 천하」로 막을 내림에 따라 쿠데타의 주동인물에 대한 향후 처리문제가 주목되고 있다.불발 쿠데타의 주역인 야조프국방,크류치코프KGB의장,파블로프총리,푸고내무,야나예프부통령,티자코프국가산업교통위원장,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위원장,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위원장등 8인 국가비상위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련연방최고회의는 21일 쿠데타세력이 와해된 직후 비상위원들에 대한 사법조사와 헌법위반에 따른 사법처리 문제를 결정할 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의했다.최고회의는 또 야조프와 크류치코프를 해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연방검찰총장은 국사범죄에 대한 성격을 띠고있는 쿠데타주동세력의 행위를 조사할 팀을 구성,개인별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쿠데타실패를 감지한 주동세력중 거사당시 고르바초프의 크림반도 별장에 있었던 야조프·크류치코프·바클라노프·티자노프 등은 「사죄」를 위해 고르바초프를 방문하는 제2의해프닝을 연출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들은 「사죄」에도 불구,22일 상오 다른 위원들과 함께 체포돼 대부분 러시아공 내무부로 이송되어 조사와 처벌을 기다리고 있으며 푸고 내무장관은 자살했다. 한편 공산당 중앙위원회도 고르바초프의 주재로 긴급회의를 개최,쿠데타주동세력의 행동에 대해 토의할 예정으로 있으며 개개인에 대한 쿠데타당시 역할을 조사할 위원회를 설치했다. 코베츠러시아공국방장관은 『8인위원들을 총살해야 한다』고 밝혔지만,고르바초프의 이미지등을 고려,현실적으로 8인위원들은 고르바초프시대이전에 이루어졌던 처형이나 강제수용소 수용과 같은 벌을 받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당에서 제명 ▲공직은퇴 ▲징역형등으로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또한 이들에 대한 처벌은 비상위에서의 역할,비중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8인위원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와 형태는 결국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의해 좌우되겠지만,고르바초프는 「은혜」를 입은 옐친등 급진개혁파의입김과 보수파가 전멸될 경우의 정치적인 영향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것으로 분석된다. 세확장을 꾀했던 보수파가 쿠데타의 실패로 와해됨에 따라 쿠데타주동세력에 대한 응징과 함께 향후 소련 정계의 개편이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비상위」 강경파 3인 권력전면에/크렘린 실세는 누구인가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푸고 내무/권력중추장악… 「파워트리오」 부상/「대행」야나예프는 「얼굴마담」 인듯 소련 개혁의 기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몰아내고 최고권력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8인 가운데 누가 실세일까. 고르바초프 실각 이후 서방세계는 잠정적으로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사태위원회」의 실체 파악에 분주하다. 지난 19일 쿠데타 직후 비상사태위원회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54)이 헌법에따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고 밝혀 일단 야나예프가 소련의 얼굴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나예프는 급진개혁주의자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등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주장하는 개혁지향세력들의 반발과 분리독립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공화국들의 움직임을 제어,「비상위」가 지키고자 하는 연방체제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러시아태생인 그는 법률·역사학자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고르바초프에 의해 부통령직에 임명되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당시 그를 부통령으로 승인했던 인민대표회의는 1차투표에서는 과반수이상이 그를 거부하기도 했을만큼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야나예프가 명목상이지만 대통령직무를 수행하게 된것은 이번 쿠데타의 대외적 모양새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주도세력들이 온건적인 야나예프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이러한 점은 「비상위」가 쿠데타 직후 밝힌 성명에도 드러난다.「비상위」는 성명에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고르바초프의 무리한 개혁정책으로 인해 피폐화된 경제회복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공화국들로 인해 무너지는 연방체제 고수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성명의 내용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군부등 보수강경파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이번 쿠데타의 실세가 누구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크류치코프 KGB의장(67),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67),보리스 푸고 내무장관(54)등 이른바 「보안 트리오」가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앞으로 소련의 대서방정책과 국내경제정책등을 추진하게 될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87년 서독의 루스트군이 소련방공망을 뚫고 모스크바 광장까지 경비행기 세스나기를 몰고와 인책경질된 스콜로프에 이어 국방장관에 오른 드미트리 야조프는 중앙아시아군관 사령관과 극동사령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내무장관직에 오른 푸고는 공산당내 강경파의 선두주자로 지난달 미·소양국의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체결과 때를 맞춰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비대원 7명을 사살한 사건의 배후에 내무부가 개입됐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과격파로 알려져있다.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지가 CIA정보를 인용,소련 권력서열 2인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한 인물로 지난 67년 이래 줄곧 KGB에 몸담아 왔다. 이들 「보안트리오」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53)를 들 수 있다. 재정통으로 보수강경파인 그는 G­7회담에 참석,서방원조를 요구했던 고르바초프를 비난해 서방기업인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보안트리오」외에 이번 쿠데타의 핵심배후세력으로 올레크 바클라노프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거론되기도 한다. 바클라노프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지난 83∼89년 동안에는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미사일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 책임자 역할을 하기도 했던 군·산복합체의 대표격인 인물. 일본 외무성은 그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군·산복합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쿠데타의 실세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밖에 바실리 스타로드브체프 농민동맹위원장(59)과 국영기업및 산업시설협회장 티자코프는 농민들과 광공업 종사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이번 「비상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보안트리오」등 보수강경파가 주도세력인 이번 쿠데타세력은 군·경찰등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않아 속수무책인 옐친을 비롯한 개혁주창세력을 누르고 당분간은 계속 소련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제정책에 따라 나타난 경제난을 빌미로 쿠데타를 벌인 만큼 「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쿠데타의 성공여부는 판가름될 것이다.
  • 야나예프,그는 비판적 고르비 지지자였다

    ◎본사 김영만기자의 “120분 만남” 소련대통령직을 승계한 겐나디야나예프에게 활동적이라거나 명석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노블한 신사」라는 편이 더 적합하다. 기자가 모스크바의 봄햇살속에 크렘린궁 정원을 가로 질러 당시 부통령집무실에 도착한것은 5월14일 하오5시였다.고르바초프대통령의 집무실건물 옆건물3층에 자리잡은 야나예프 부통령의 집무실은 어림잡아 60∼70평쯤 되어 보였다.첫 한국기자의 방문을 받은 그는 기자가 집무실 문을 들어서는 것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정확하게 사무실 중간쯤에서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즈드라스부이체』(안녕하십니까).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노태우대통령이나 부시미대통령을 영접할 때의 야나예프 얼굴은 무섭도록 굳어있다.때때로 TV를 통해 야나예프를 본 사람들은 대체 이사람이 웃을줄 아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지만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1시간20분동안 진행된 기자와의 회견내내 야나예프는 부드럽고 격식있는 태도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해나갔다. 기자가 던진 첫 질문은 『외신사진에서 봤을때 당신은 항상 안경과 함께 있었다.오늘 그 안경은 어디갔는가』였다.이 질문에 야나예프는 어린아이처럼 재미있어 했다.그는 『저쪽 책상위에 있다.편한 마음으로 기자를 만나기위해 안경을 쓰지 않았다.지금 옆에 앉은 통역은 노대통령의 방소때 통역을 맡았던 대통령실 소속 통역원이다.내가 가짜일까 생각하는 모양인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소리내어 웃어보였다. 크렘린궁과 약속했던 질문은 다섯개였다.다섯개질문을 하고 답변을 다들었을 때도 시간은 40분밖에 흐르지 않았다.기자는 조심스럽게 『약속했던 질문다섯개는 모두 끝났다.만약 양해해주신다면 몇개의 추가질문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야나예프는 안경이야기때처럼 또한번 즐거워 했다.그는 『나는 처음부터 기자와의 약속은 믿지 않는 편이다.어느 기자가 모처럼만에 크림렌궁의 사람과 마주 앉았는데 질문 다섯개만하고 제발로 걸어나가려고 하겠는가』라고 웃음과 함께 되물었다. 인터뷰당시 그는 권력서열 2인자였다. 그러나 실제권력서열은 그보다 낮았던 편이다. 어디서나 대체로 2인자는 친절하다. 물론 1인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절하다는 것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유머와 격조는 외신이 전하는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공산당 엘리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영민함과 독선,화려한 말의 수사대신 그는 2인자의 친절과 전통적인 러시아민족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에 그는 정치적 성향이 보수임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그는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의 경제개혁정책에 이른바 비판적 지지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자본이나 지원이 소련경제를 호전시킬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물론 외국의 지원이 우리의 과업수행을 보다 용이하게는 하겠지만 주요한 것은 자력으로 일어서는 것이다.자기자원·자기자본·자기노력으로 시장경제를 창조할때만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유의 답변은 당시 보수파들의 「자력갱생」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그 5월에 야나예프는 내년 1·4분기까지는 위기수습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내년 2·4분기부터는 대대적인 시장경제 메커니즘도입을 위한 개혁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당시에 그가 내년 1·4분기까지를 위기수습단계로 설정한 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었다.그러나 「월요일의 쿠데타」가 감행된 지금,그의 말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뒤 그와 헤어지면서 오래전 귀족의 허무주의 같은 냄새,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원칙적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낭만적 전통주의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쿠데타가 만들어낸 수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회를 갖게된다.그는 어떤 역할을 할것인가.
  • 반고르비 쿠데타를 보고/한승조 고려대교수·정박(특별기고)

    ◎“볼셰비키노선 회귀는 시대착오”/소 국민은 이미 자유·개방맛을 아는데… 타스통신은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고 대통령의 권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했다고 지난 19일 제1보를 내보냈다.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권력승계가 아니라 하나의 정변이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다. 앞으로 8인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국정을 담당한다는데 그 면면을 보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인하여 신변의 위협을 느껴온 구세대 공산당보수파가 군부,그리고 비밀경찰의 도움을 받아 쓸데없이 일으킨 작난인 것처럼 보인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전념해온 고르비정권의 중도하차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었다.러시아혁명이 난지 74년,그동안에 저질렀던 이념적 오류와 정책적 과오,그리고 공산당독재의 적폐가 단시일내에 한사람의 지도자 힘으로 개혁될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고르비의 개혁노선은 공산당의 정치노선과 정반대되며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소련체제의 민주화,자본주의경제제도의 도입,대서방화해와 협력증진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70여년동안 안간힘을 다해 실시해오던 노선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개혁노선이므로 순탄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도리어 서두르면 서둘수록 개혁노력에 대한 반동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정권은 그동안 주요세력으로부터 정반대의 압력을 받아 왔다.첫째 소련공산당이 추구해왔던 이념이나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개혁을 보다 근본적으로,그리고 하루바삐 추진하려는 개혁세력의 압력이다.그런데 오늘의 공산당조직은 개혁을 방해해온 직업관료층,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으므로 그 조직을 가지고 개혁노선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그러므로 공산당을 탈퇴하여 개혁적인 민주정당을 만든다음 선거를 통하여 집권해야겠다고 주장해 왔다.둘째는 소련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이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었지만 오늘에 와서 약간의 조정과 조완적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그러나 소련체제의 붕괴나 변질을 초래하는 개혁은 용납할 수 없다는 보수파세력들의 반대압력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초기에는 개혁주의세력과 손을 잡고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실시하는 개혁마다 기대했던 성과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혼란과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고르비의 개혁의욕은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생필품부족·물가앙등·생산부진·실업의 증가로서 국민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데다가 연방공화국의 독립운동으로 소련의 체제와괴의 위협에 직면하였기 때문이다.또 무엇보다도 정권수호는 하고 볼 일이니 보수세력의 반발을 무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그러다 보니 고르비는 개혁세력을 실망케하고 또 그들의 반발을 일으켜 양면협공의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르비개혁정책의 최고 두뇌이자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공산당으로부터 출당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이것은 고르바초프가 발길질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야코블레프는 8월16일 공산당지도부내의 스탈린공산주의자들이 모두 개혁파대표들을 당에서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11월에 열릴 제26차 당대회에서는 고르바초프대통령까지 당에서 밀어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이것도 보수파들의 거사를 앞당기게 한 요인일 것이다. 현재 수백대의 탱크가 크렘린궁 근처에 집결해 있고 수천명의 군중이 항의시위를 하고있다.옐친은 보수파들의 비상사태선포를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총파업및 시민불복종운동을 촉구하였다.소련의 군부와 비밀경찰의 힘만으로도 쿠테타는 얼마든지 일으킬 수가 있다.그러나 그들이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1964년 소련의 보수적인 당관료와 군부·비밀경찰이 흐루시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다음 20년동안 브레즈네프를 정점으로 하는 노멘클라투라의 지배체제도 묶어둘 수가 있었다.그러나 이런일이 오늘날 소련에서 되풀이될 것같지가 않다.그 이유는 개방사회와 자유의 맛을 본 소련시민이 60년대나 70년대의 권위순종적이며 무지몽매한 정치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오늘날 소련의 최대문제는 첫째 경제난이고 둘째 연방해체의 경향이고 세째 민주화의 과제이다.그런데 보수파가 집권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업이 하나도 없다. 첫째 소련의 경제난은 외국의 원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소련의 군부정권이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둘째 보수세력이 신연방조약을 없앤 다음에는 공화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무한정 국력을 마모하게 된다.셋째 소련을 가장 효과적으로 침체·멸망으로 몰고가는 요인이 공산당독재이다.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면서 누가 소련의 민주화를 인정해 주겠는가.또 소련이 다시 냉전정책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지금 지구상에서 소련을 무서워할 나라가 있을까.이런 부질없는 짓을 보수세력이 최후발악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이번 반고르비 쿠테타는 결국 소련의 민주·개혁세력을 내실있게 다져주고 반볼셰비키노선과 새 역사창조를 위한 대장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나는 보고있다.
  • 고르비 실각의 충격(사설)

    개혁진통의 소련에서 세계가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겐나디 야나예프 소련부통령은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직무를 수행할수 없게 되었으며 자신이 대통령직을 인수하고 자신과 KGB의장·총리·국방장관등 강경보수파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구성되고 일부지역에 6개월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발표했다. 고르바초프 없는 소련의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이제부터 소련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과거로 돌아가는 것인가.내란의 혼돈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개혁과 개방은 어떻게 되고 탈냉전의 세계질서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우리의 북방외교와 통일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초미의 관심사가 한둘이 아니다.그러나 어떤 문제든 당장은 어떻게도 말할수가 없는 문제들이다. 고르바초프의 신상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이며,그리고 그 변화를 일으킨 주체는 누구이며,목적은 무엇이냐에 따라 상황은 여러가지로 달라질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다만 최근의 상황전개로 미루어 그가 공산당 보·혁갈등의 희생자가 된것으로보인다.그것은 오래 전부터 우려되어왔던 시나리오이기도 한것이다.공산당의 강경보수파와 군부강경파의 제휴에 의한 일종의 쿠데타로 해석된다.최근 가장 주목된 것은 군부의 동향이었다. 바레니코프국방차관보를 포함하는 12명의 보수강경파는 지난달 23일 공산당중앙위총회에 앞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를 외국보호자들의 노예신세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고르바초프를 비난하고 『군부만이 소련을 혼란상태로부터 보호할수 있다』고 성명을 발표,불길한 조짐을 보였었다.소련군이 16일 군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지에 발표한 호소문은 『국가의 생존에 매우 중대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경고하고 『군이 국가방위와 안정을 위해 일치단결해 저항할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소공산당 보수파와 군부를 자극한 직접적인 계기는 옐친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당선,고르바초프와의 제휴및 국가기관과 군으로부터의 공산당 축출령,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를 담은 공산당의 새강령안 마련등이라 할수 있다.연이은 공산당 탈당사태와 신당창당움직임 등은 보수파와 군부보수세력으로 하여금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지나치게 앞선 개혁파의 급진적 공격이 보수파의 강경한 대응을 부른 결과일 수도 있다. 문제는 보수파의 손으로 넘어간 소련의 개혁과 대외정책이다.야나예프부통령이 유엔등에 보낸 성명문은 『소련의 모든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대한 개혁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현존하는 협정과 조약에 의해 소련에 지워진 어떠한 의무에도 영향이 없을뿐 아니라 소련은 범세계적으로 인정된 원칙인 우호,평등과 상호이익및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들과의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나갈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우리를 포함하는 세계는 우선은 소련 새집권자들의 이러한 다짐을 믿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국가비상사태위의 첫 조치가 20일 조인예정이던 신연방조약의 유보인 사실이 보여주듯 소련개혁에 상당한 제동이 예상되며 그것이 경제파탄과 대립·갈등의 소련현실에 어떤 사태를 몰아올지 현재로선 예측키어렵다.고르바초프의 제거가 소련이 안고있는 문제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보수파에 고르바초프를 대신할 대안이 있는 상황도 아니다.우리는 소련의 안정과 질서있는 개혁의 꾸준한 진전을 변함없이 바라는 입장이다.
  • “소 새 권력의 핵” 8인비상위

    ◎전원 공산당 강경파… 초헌법적 권한행사 비상사태가 선포된 고르초프이후 시대 소련의 전권을 장악,새 소련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일단 6개월간의 비상사태선포기간중에만 활동하게될 「한시적인」 기구로 돼있다. 이 위원회는 소련내의 모든 권력을 장악,새 연방조약 체결을 둘러싼 각 공화국들간의 대립과 같은 민족분규문제와 파탄에 빠진 소련경제의 회생을 위한 경제개혁의 계속적인 추진등 소련의 당면현안들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초헌법적」 기구로서 소련내의 새 질서형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치설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위원회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게될지는 한마디로 예측할 수 없지만 8명의 구성멤버 대부분이 공산당내의 강경보수주의자들이란 점은 앞으로 이 위원회가 떠맡을 기능을 점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크류치코프KGB의장,파블로프총리,야조프국방장관,푸고내무장관등 보수파 지도자의 이름이 들어있으며 이 위원회가 보수노선 회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기본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관계자도 3명이 끼어있다.이것은 이 위원회의 정치적 기반이 넓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주목되고 있다. 야조프국방장관,크류치코프KGB의장,푸고내무장관은 국내 치안세력을 대표하는 「세마리의 까마귀」로 불린다. 지난 1월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수도 빌니우스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 대한 무력제압작전도 이들 3명의 합동 작품이었다고. 이와는 달리 주목되는 3명은 바클라노프국방회의부의장,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의장,티자코프소련국영기업협회의장이다. 바클라노프는 군·산복합체의 대표이며 스타로드브체프는 국영농장및 집단농장의 이익을 대표한다. 이들은 모두 구체질해체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3명을 비상사태위원회의 멤버에 가담시킨 이유로는 ▲권력기구 내부에서의 권력탈취,즉 「궁정쿠데타」라고 보여지는 것을 피하고▲신정권의 기반이 산업 농업 서비스업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는등의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보여진다. □국가비상위 위원명단 ▲올레크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의장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 ▲보리스 카를로비치 푸고 내무장관 ▲VA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위원장 ▲AI 티자코프 국영기업협회장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
  • 러시아공 태생 법률·역사학자/대통령직대 야나예프

    미하일 고르바초프로부터 소련연방 대통령직을 승계한 겐나디 야나예프(53)는 지난해 12월의 권력구조 개편때 고르바초프에 의해 「뜻밖에」부통령으로 지명된 인물. 그는 당시 공산당에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공산당내 관료조직내에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온 변호사출신의 정치국원이었다. 러시아공화국 출신의 야나예프는 1959년 고리키농업대학을 졸업하고 1967년 전연방사법연구원에서 법률학위를 받았었다.역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 소련과학원의 역사학 후보위원에 오르기도 했는데 최고회의에서는 외무위원회에 속했었다. 공산당청년기구인 콤소몰의 중앙위원회위원,소련친선협회 부의장 등의 경력이 있을 뿐 권력의 중앙무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대통령과 권한을 공유하는 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고르바초프의 들러리역이 되지 않겠느냐는 예상과 함께 부통령 직무에 임했었다.야나예프는 90년초 당·정분리책으로 당정치국원들이 대통령위원회로 옮기거나 은퇴한 공백을 틈타 정치국원에 기용됐는데 정치성향은 온건보수로 분류됐었다.
  • 고르바초프 실각/소 쿠데타… 강경보수파 전권장악

    ◎「8인 비상위」구성… 비상선포/고르비 연금… 야나예프가 대행/“추진중인 개혁정책 계속실행”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개방과 개혁의 기치아래 소련과 동구에 민주화의 새시대를 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19일 실각했다. 6년5개월만에 고르바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세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과 드미트리 야조프국방장관,올레크 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의장등 현정부내 보수파들이며 이들은 이날 8명으로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전권을 장악했다. 대통령직무대행겸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야나예프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새지도부는 지난 85년이래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의해 추진돼온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야나예프는 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고르바초프가 현재 크림반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고 『그가 건강을 회복한뒤 직무에 복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군부대의 수백대의 탱크및 장갑차들이 진주한 모스크바 시내에는 보수파의 정권장악에 분노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크렘린광장과 러시아공 의사당주변에 몰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탱크에 올라타 운전병을 끌어내리는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문제로 대통령직무를 더이상 수행할수 없게됨에 따라 야나예프부통령이 대통령직무를 인수했으며 19일 상오4시(현지시간)를 기해 소련내 일부지역에 6개월간의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보도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관저에 연금상태에 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대변인인 파벨 보슈차노프가 전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야나예프대통령직무대행은 비상사태의 선포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로의 권력이전을 통보하는 전문을 유엔사무총장과 세계각국의 정부수반들에게 보냈다. 이 전문은 『이번 조치는 일시적으로 취해진 것이며 소련의 모든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대한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설명하고 『소련경제를 페허에서 구하고…소련국민들과 전체국제사회를 위해 예측불허의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대규모 분쟁위협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검열·시위금지 【모스크바=로이터 연합】 소련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19일 언론을 검열하고 시위를 금지하며 저항이 있는 지역에서는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 발표 이후 이위원회가 최초로 발표한 포고령은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내무부가 이같은 지시를 수행하고 소련의 「동족상잔과 내전」을 막기 위한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고 말했다.
  • “공산주의 되살리려는 「반개혁 쿠데타」”

    ◎6년5개월 권좌 왜 무너졌나/「바깥에 굽실…」 고르비행태에 보수 반발/민족문제·군축협상등 강경선회 할듯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던 19일 새벽(현지시간) 갑자기 실각당한 배경에는 소련군부와 비밀경찰 KGB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이날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발표한 야나예프연방부통령,파블로프연방총리,바클라노프연방방위위원회 제1부의장 등이 모두 군부의 지원을 받는 보수파라는 점,그리고 이날 구성된 국가비상위원회에 크류치코프 KGB의장과 야조프국방장관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설득력이 있다. 소련군부와 KGB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운 84년 무렵부터 그 위치가 흔들려 왔지만 지난 7월말 소련 공산당이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포함하는 새 강령을 채택한 데 이어 20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되면 군과 KGB의 활동영역이 크게 축소되는 등 지금까지 누려온 정치적 위치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소련 군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 이후 ▲소련군의 동유럽으로부터의 잇다른 철군▲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조인된 CFE(유럽재래식무기) 감축협정에 따른 병력감축▲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민족분규에 따른 국내 치안불안 등에 불만을 품어 왔다. 더욱이 새 공산당 강령안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될 것이 확실시되던 올해 들어서 소련 군부는 노골적으로 반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들은 이러한 불만을 간헐적으로 터뜨려 왔는데 지난달 23일에는 현역 국방차관등 12명이 보수적 신문인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지에 게재된 공동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바깥에 굽실거리는」 지도자를 축출하기 위해 단결하자고 호소,최악의 경우 쿠데타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시사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실패로 끝난 보수파인 파블로프총리의 비상대권 요구도 군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고 검은 대령으로 알려진 알크스니스대령 등도 인민회의 등을 통해 군부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해 왔다. KGB도 개혁 이후 최대의 피해자라고 불릴 만큼 몰락의 기로에 서 왔으며 외국인 감시와 종교탄압 반체제인사 감시를 일삼아오던 일부 기구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지금까지 소련 역사를 통해 지도자가 실각하는 경우­말렌코프,흐루시초프등­ 공산당 정치국을 통해 이루어졌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날 군부의 움직임은 공산권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또 야나예프의 이름으로 발표된 포고령은 이번 정변이 헌법 127조 7항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고는 하지만 전례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비상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이는 공산당이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KGB와 군의 직접적 개입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음을 보여준다. 1917년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와 함께 병영 소비에트를 조직,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 후에는 서방의 간섭과 반혁명세력의 준동을 무력으로 제압해 공산 소련의 기초를 다져온 소련군부는 혁명수호 최후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흔들린 적이 없다. 소련 군부와 KGB는 이처럼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무력의 전위에 서 오면서도 무력을 통한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자제해왔는데고르바초프의 개혁이 미국에 대한 굴욕적 외교와 공산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데 이른 것으로 여겨지자 공산주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최후의 선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KGB와 소련 군부는 개혁파의 도전과 정책 수행의 직접적 책임에 노출되면서 개혁과 민족문제,그리고 미국과의 군축협상에서 공산주의 원칙을 반영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소련지도자 재임연표 ▲레닌=1917.10∼1922.3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수립. ▲스탈린=1922.3∼1953.3 5차례의 5개년계획추진.대규모 숙청등 전체주의 체제 구축. ▲흐루시초프=1953.3∼1964.10 초기 말렌코프 등과 집단지도체제 구축.56년 스탈린 비판.58년 1인집권 확립했으나 64년 보수파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됨. ▲브레즈네프=1964.10∼1982.11 체코 「프라하의 봄」을 무력진압하는 한편 미국과는 데탕트 추구. ▲안드로포프=1982.11∼1984.2 KGB의장출신으로 처음 권력장악.군부의 지지 업고 부패추방과 경제개혁을추구했으나 실효 못거두고 사망. ▲체르넨코=1984.2∼1985.3 소련 역사상 최단명 지도자.대내정책과 미국에 대한 정책에서 강경노선 취함. ▲고르바초프=1985.3∼1991.8 혁명2세대로 처음 최고권력 장악.실용적 개혁정책을 추구했으나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권좌에서 축출됨.
  • “모스크바 사태 파악하라” 긴급훈령

    ◎고르비 실각 하던 날… 궁·정가 움직임/하오에 급전 받고 긴급회의로 부산/대소관계·북방정책 파급영향 분석/외신보도에 촉각… 공식논평은 유보 ▷총리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대통령직 실각설」에 접한 총리실은 외신으로 들어온 「건강상의 이유」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외무부 등 관계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리는 한편 고르바초프의 사임이 북방정책및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놓고 나름대로 분석에 열중하는 모습. 특히 오는 27일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앞둔 때여서 남북관계에 보다 신경을 쓰는 눈치. 총리실의 한 고위당국자는 『현재로선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며 각종 외교채널을 통해 진상을 확인중』이라면서 『고르바초프의 사임으로 세계질서는 물론 우리의 북방정책에도 영향을 미칠게 분명하다』고 전망. 그는 이어 『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해 북한의 태도변화가 예상되긴 하나 우리가 먼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현재로선 대북정책을 포함,모든 북방정책을 예정대로 밀고나간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 ▷기획원◁ 경제기획원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전해진 19일 하오 김인호 대외경제조정실장 주재로 긴급관계관 모임을 갖는등 사태파악에 부심. 그러나 소련의 정정소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다 아직까지는 정부의 공식대응이 시기상조라고 보고 공식회의는 자제하는 듯한 분위기.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사태의 실상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가 공식입장을 밝히기 어려운게 아니냐』며 좀더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언급. ▷외무부◁ 19일 하오1시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외무부는 공로명 주소대사에게 긴급훈령을 내려 정확한 경위및 국내 정정을 파악,보고토록 지시하는 한편 이상옥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대응책마련에 착수하는 등 긴박한 모습. 이장관은 이날 시내 모음식점에서 점심식사도중 외신보고를 받고 곧바로 외무부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소집,고르바초프대통령 사임이 몰고올 한소관계변화 가능성,동북아를 비롯한 세계정세 변화,우리의 북방외교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논의. 유종하차관·장만순제1차관보·권령민구주국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의 발표 문안을 놓고 분석작업을 벌였는데 내용 가운데 「추진중인 개혁정책 계속」「기존의 국제관계 유지」등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일단 한소간 기본관계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론. ○통화량 평소의 4배 ▷체신부◁ 소련 현지소식을 알아보려는 기업체들의 호출로 한소간 직통회선 10회선을 포함한 국제전화망은 통화량이 평소의 4배 이상 증가하는 폭주상태를 빚고 있다. 19일 하오 현재 자동전화는 송·수신 모두 정상 소통이 되고 있으나 수동통화는 현지 연결이 안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 ◎한반도 영향·대응책 논의/노 대통령,보고 받아 노태우대통령은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등 소련사태와 관련,이날 낮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으로부터 1차보고를 받은데 이어 하오3시 대사 16명의 신임장을 수여한 자리에 배석한 이상옥외무부장관으로부터 종합보고를 받았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소련사태에 대한 일체의 공식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뒤 사견임을 전제,『이번 사태로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의 속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나 기본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제질서 파장과 크렘린의 진로/긴급대담

    ◎모스크바 정변… 동북아엔 새 변수로/계획된 시나리오… 개혁은 지속전망/세계질서에 또 「불확실성시대」우려/국제무대 영향력행사 한계에 봉착/세계여론 무시 못해 서방과 경협은 계속될듯/군부집권땐 북한과 관계강화 예상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갑작스런 실각은 「신데탕트」로 함축되는 신국제질서의 대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는 충격속에서 모스크바의 긴박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한 남북한교류확대및 통일전망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연구소 김남식연구위원과 외교안보연구원 서병철교수와의 긴급좌담을 통해 이번 사태가 세계질서와 동북아역학구조및 남북한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김남식위원=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한 소련내 보수세력의 제동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소련은 85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6년여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이전까지의 기본노선을 전환해야 할 정도였습니다.사회주의와 상반되는 요소들이 강화되면서 연방국가가 지탱키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그러나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가 원했던 개혁·개방노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련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소련내부에서는 고르비의 개혁이 애당초 국민적 합의도출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소련사람들에게 불리한 상태로 간다는데 대해 불만이 팽패해 왔습니다.특히 소련정권이 수립된 이후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고르비는 개방과 개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시피 추진해왔습니다.갈등속에서라도 합의과정을 거쳤더라면 괜찮았겠지요. ▲서병철교수=보도가 사실이라면 현 국제질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태라고 하겠습니다.우리가 가장 두려워했고 기피하려 했던 사태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동서긴장완화와 신데탕트의 산파역으로 전인류의 평화정착에 기여했습니다.그의 정책이 완전한 결실을 보기전에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세계질서를 또다시 「불확실의 상태」에 빠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고르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개혁·개방정책은 그 이전까지의 강경한 공산주의 이념과는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그만큼 저항세력도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특히 군부와 KGB는 강력한 억압정치를 통해 소련을 사실상의 초강대국으로 유지시켜 왔으나 그같은 위치마저 흔들리게 된 현실에 직면해서는 보이지 않는 반발을 보여왔습니다.그같은 반발이 이번에 표면화됐다고 하겠습니다.어쨌든 국제질서 뿐 아니라 동북아나 한반도에 대해서도 역학관계의 변화를 점치게 하는 큰 사건입니다. ▲김위원=그러나 보수세력이 주도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하더라도,또 누군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소련의 대외정책이 근본적인 궤도수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집니다.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에 맞물려 일어난 동구사태등 탈냉전을 통한 평화질서의 큰 흐름은 거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이제까지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은대서방 특히 미국과의 관계와 뒤엉켜 추진돼 왔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갑자기 변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소연방의 존속에 대한 위기감과 불투명한 경제·사회발전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태를 주도한 보수세력도 연방내의 정치적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또 어떻게 하면 소연방을 지켜나가겠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이점에서 고르바초프를 중심으로한 개혁파가 추진해 온 계획에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동감입니다.소련의 개혁정책은 근본적으로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근본목적이 있었습니다.보수강경파가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가능성이 없습니다.따라서 고르바초프가 추진해 온 신사고에 의한 대서방협력및 경제개혁정책등은 설사 속도는 늦어질망정 그대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국민들도 강경보수세력에 의한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위원=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전까지 모든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이를 합리화시키는 이론제시를 선행했습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군부등 극우 보수세력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충분한 설득을 하지 못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불만세력들은 무언중 조직화될 수 있었습니다.이번 사태가 신연방헌법 조인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세력들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시나리오에 의해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권력을 승계한 야나예프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헌법상 절차에 따라 직책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보수세력들 특히 8인연방위원회는 당분간 내부혼란 극복에 주력할 것입니다.이 점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도 손을 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군부에 의한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현재 소련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련이 군비강화쪽에 주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소련은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바르샤바조약기구마저 해체된 현상황에서 소련은 과거 브레즈네프독트린과 같은 방식으로 동구권국가들에 대해서도 간섭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만한 힘도 없습니다.앞으로 소련은 국제정치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깊은 딜레머에 빠질 것입니다. ▲김위원=이번 사태를 맞고보니 남북한 유엔가입문제가 고르바초프 집권시에 실현된 것만은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서교수=그렇습니다.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인 점이라든지 소련과의 국교수립도 마찬가지입니다.아직도 소련내에서는 독일통일에 대해 불만여론이 많다지 않습니까. ▲김위원=동서냉전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소련사태가 지금까지의 국제적 흐름을 근본적으로 역류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다만 국제적 추세에 비해 평화정세로 바뀌는 상황이 굼뜬 캄보디아·한반도등 아시아지역에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크게 주목됩니다. 우선 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소련측 입장이 고르바초프시대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브레즈네프시대에 마련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자체의 상황변화가 없는한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관계,특히 안보적 차원의 협력관계는 과거보다 깊숙이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같은 맥락에서 소련내 보수세력과 북한과의 관계는 일단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따라서 만약 소련내에 군부가 주도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혹은 군부가 배후조종하는 정권으로 바뀐다면 소련은 한국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할 것이므로 남북관계나 아시아안보환경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리라 봅니다. ▲서교수=소련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경우 과거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일단은 노력할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대다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이미 공산당 유일체제를 버렸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형태의 소련과의 주종관계는 재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특히 동유럽에서의 대소관계는 고르바초프시대에 방향전환한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될 전망입니다. 한반도문제로 국한해 본다면 북한은 그동안 소련의 신정치의 영향을 받아 총리회담 등을 통해 화해 제스처를 써온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계기로 북한은 지금보다 더 보수·강경입장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위원=대소수교를 비롯해 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한소관계의 발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터져나왔습니다.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은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이라는 소련측의 요구와 일치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치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면 한반도 정책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교수=소련내에서는 지금까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갖고 있는 군부를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이 엄존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소련이 제2·3류의 낙후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 북한,이례적 신속 보도

    【내외】 북한은 19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소식을 이날 하오7시 비정규 뉴스를 통해 이례적으로 신속 보도했다. 북한방송들은 이날 타스통신 보도를 인용,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소련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으며 야나예프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집행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고르바초프대통령 실각에 대한 이같은 신속한 보도는 지금까지 보도관행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이며 이는 고르바초프대통령 실각에 대한 북한의 지대한 관심과 함께 앞으로의 이해득실관계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태도로 보여지고 있다.
  • 신데탕트·페레스트로이카 “위기”(크렘린 대지진:1)

    ◎“개혁혼란·경제난 타개”구실,보수파 반격/동서화해 조류 역류 위기… 세계가 긴장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조류가 역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후 세계사를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실각하고,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화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소련은 최대의 정치적위기를 맞았으며 국제정치무대의 주인공 중의 하나였던 고르바초프의 퇴장은 국제정치 기류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최근 절정에 이른 소련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소련 공산당은 지난15일 고르바초프의 핵심 측근이며 개혁정책 입안자인 야코블레프를 축출,개혁파에 대한 대반격을 본격화했다. 소련군부도 군기관지 적성을 통해 『군내의 모든 공산당원들은 일치단결하여 당과 군을 방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 침묵을 깨고 자기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은 지난 16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공장의 공산당 활동금지조치를 적용하자 더 이상 개혁파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돼 있던 신연방조약체결 하루전날 고르바초프를 축출했다. 강경파 지도자들은 소련의 새로운 「탄생」을 저지한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은 새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의장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맡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상징인 군부와 KGB가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위원회에는 또 발렌틴 파블로프 연방총리,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등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어 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파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동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서방세계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소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점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해 왔다. 정통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로는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르바초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면도 없지않다. 소련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때도 있었고 고질적인 식량난은 더욱 악화돼왔다. 더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연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공화국을 비롯,6개공화국이 신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국가해체과정」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혀,발트해 3개공화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련내의 분리·독립움직임을 힘으로라도 저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소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발트해 3개공화국들의 독립의지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이들의 저항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소련인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 깃발아래 개혁을 서두르는 러시아공화국 국민들도 개혁이 후퇴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물론 비상사태선포가 소련 각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나 방법에 대해 보수파들이 큰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소련의 개혁속도는 늦추어지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강경보수파들도 개혁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의 개혁이든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사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도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개막시켰다. 고르바초프의「대변혁 드라마」는 유럽의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으며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하나 하나 해결시켰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로 남았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한국은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었으며 북한도 지금까지의 철저한 고립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이 세계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주연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의 「정치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도 전에 또다른 힘에 의해 중단됐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강경보수파에 의해 중단된 것이다. 소련의 보수화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서방세계를 긴장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믿을만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하는 등 미소밀월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미소의 밀월시대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소련도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는 미국의 대소대응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들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성격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대의 화해의 새국제질서가 정착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환한 웃음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국제정치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 중국,대소 군협 강화

    【모스크바 AFP 연합】 지호전 중국군 참모총장과 겐나디 야나예프 소련부통령이 7일 회담을 갖고 중­소군사협력문제등 다양한 사안에 관해 견해를 교환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중국군 참모총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한 지장군은 미하일 모이세예프 소련군참모총장의 초청으로 지난 5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지장군은 앞서 6일에는 모이셰예프 소련군 참모총장 및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세계의 군사·정치적 상황과 군사노선을 포함한 양국간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타스통신은 보도했다.
  • 그레그 주한 미 대사/콘트라 관련 조사대상

    【워싱턴AP연합】레이건 행정부시절 조지 부시 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도널드 그레그 현 주한미대사에게 그가 이란­콘트라 형사사건과 관련해 「피조사대상」이 되어있다는 점이 통보됐다고 한 비정부 소식통이 29일 말했다.
  • 모스크바 미·소 정상회담 이모저모

    ◎“미­소 평화동반시대 열렸다”/부시 ○…부시대통령은 30일 모스크바의 국제관계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은 새로운 시작을 표시하는 것이다.우리가 오랜 적대의 시기를 종식하고 양국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새로운 동반관계와 항구적인 평화를 조성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1차회담에 앞서 열린 기념식에서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환영사에 화답하는 가운데 『새로운 약속의 시대가 밝았다』며 『전세계가 더이상 초강대국들의 대결을 위한 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세계정치의 상당부분은 앞으로도 소련과 미국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에 달려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안보와 내부안정,양국 각자의 역동적인 발전이 양국 모두에 혜택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30일 부시미대통령을 위한 환영식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번 1차 정상회담에서 가장 뜻밖의 일이라고 라디오 로시야가 보도. 이같은 옐친의 불참행위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에의 무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고르바초프는 이날 부시대통령과의 오찬을 마친뒤 『미소정상회담이 좋은 출발을 했다』고 선언,옐친의 불참을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오찬을 끝낸 뒤 부시대통령과 함께 크렘린궁을 산책하면서 『정상회담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양국 정상들이 정상회담의 진척을 놓고한 최초의 발언이다. ○… 부시 미국대통령은 30일 소련에 경제적 선물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소련이 냉전 시대가 낳은 장애물들을 제거함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는데 이바지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 부시 대통령은 소련은 경제개혁을 추진해 나가면서 평화적인 정치변화에 대한 『확실하고 제한없는 다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냉전시대가 낳은 평화의 장애물의 한 예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스토니아등 발트해 연안 공화국들의 독립을 둘러싼 분규를지적하면서 이들과의 성의있는 협상만이 『자유를 바라는 주민들의 열망을 들어줄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국은 쿠바에 위협을 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따라서 소련은 쿠바에 대한 군사원조로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소련과 일본간에 오랫동안 분쟁대상이 되고 있는 쿠릴열도 4개 도서(북방 도서)문제도 아울러 거론하면서『이런 분쟁은 소련이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것을 저해할수 있으며 우리는 양측이 이를 해결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련군부가 평화시편제로 이행하고 군비를 축소할 것을 촉구하면서 소련경제의 비군사화가 경제변화의 열쇠이다.이는 여러분이 보다 많은 자원을 경제성장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며 상점의 진열대를 채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미대통령은 부통령때 모스크바를 3번 방문한적은 있으나 89년 대통령 취임후 국빈자격방문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은 6번째가 되는 부시대통령은 지난 29일 모스크바로 오는 기상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자』고 미소양국의 국방비 축소를 강력히 주장하는등 동서간의 군비경쟁을 경제적 경쟁으로 돌릴것을 희망.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전략무기감축협정이 가장 중요하며 그밖에도 민간항공협정,기술협력협정등 광범위한 부문에 관한 협정이 조인될 것이라고. ○…31일 크렘린궁에서 열릴 양국 대통령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조인식에는 폐기된 핵미사일로 만든 펜을 사용할 것이라고. 소련 인터팍스 통신은 양국 정상이 협정서명에 사용할 펜이 지난 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력(INF)감축협정에 따라 폐기된 중거리 핵미사일에서 떼어낸 금속으로 만든 펜이라고 29일 보도. ○…부시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숙소 스파소 하우스는 차르시대 형성된 모스크바 구도중심가에 위치해 있는데 크렘린과는 겨우 1·6㎞ 남짓한 거리. 스파소 하우스란 이름은 지난 1711년 건설된 그리스도 정교회의 교회 스파스 나 페스카크(사막위에 세워진 구세주의 교회)에서 따온것. 러시아 제정시대의 스타일로 지어진 고풍의 저택은 미국과 소련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된 지난33년 이래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 관저로 사용돼 왔다. 스파소 하우스는 지금까지 수많은 미국 고위정치인들을 맞았는데 그중에는 대통령 1명,부통령 2명 그리고 3명의 국무장관이 포함돼 있다. 지난 53년 부통령 그리고 3명의 국무장관이 포함돼 있다. 부시 대통령이 스파소 하우스를 숙소로 정한 것은 레이건 전대통령의 전례를 따른 것이라고.
  • 북한 핵안전협정 준수/소,영향력행사 시사

    ◎소 부통령,방소 김 민자총장에 밝혀 【모스크바 연합】 소련을 방문중인 민자당의 김윤환사무총장은 22일 상오(현지시간) 크렘린궁으로 야나예프 소련부통령을 예방,1시간동안 한소정상회담이후의 양국 관계발전과 한소의회간 교류·협력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야나예프 부통령은 이자리에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에 이어 나타날 북한의 다음 움직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는 것과 IAEA의 비핵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은 미국과,소련은 북한과 의논해서 그같은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소련이 북한의 IAEA가입과 핵안전협정 준수에 영향력을 행사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소련연방최고회의 의원이기도 한 야나예프 부통령은 한소의원친선협회 한국측회장인 김총장의 양국 의원친선협회 조기구성 요청에 『한소 양국발전에 관심이 있는 소련최고회의 의원을 중심으로 친선협회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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