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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잇단 악재에 평정심 상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잇따르는 정치적 악재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며 감정의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뉴욕 데일리뉴스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 장기화와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리크게이트’ 연루,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응으로 촉발된 무능한 정부 논란, 해리엇 마이어스 대법관 지명자를 둘러싼 자격 논쟁 등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하루가 다른 지지율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데일리뉴스는 특히 이번주 안에 이라크에서의 미군 사망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서고, 로브 부실장이 기소될 경우 닥칠 최악의 정치적 위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의 한 측근은 “부시는 지금 겨울철의 사자와 같다.”면서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최근들어 측근들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하고, 하급 직원들 앞에서도 격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백악관 소식에 밝은 관계자는 “맥도널드 매장의 매니저도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인데 (격노함을 보이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백악관 소식통들은 “대통령이 단지 기분이 좋지 않으며 모든 것에 대해 비난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가장 신뢰해온 정치적 동지인 딕 체니 부통령에 대해서도 “이라크전 준비단계에서 정보 문제에 지나치게 관여했다.”며 측근들에게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소식통들은 그러나 부시가 최근의 악재 때문에 내년 의원 선거와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이 피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재임 중의 주요 결정은 역사가 정당함을 입증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데일리뉴스는 전했다.dawn@seoul.co.kr
  • 부시 레임덕으로 이어지나

    부시 레임덕으로 이어지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유출한 이른바 ‘리크게이트’ 사건의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수사 책임자인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오는 28일까지 유출 혐의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2기 정부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년 동안 비공개 수사를 해온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최근 인터넷에 수사 관련 사이트를 개설한 점을 들어 백악관 핵심관리들에 대한 기소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브와 리비 기소 가능성 유출 책임자로 지목된 칼 로브 대통령 부비서실장과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은 기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과거 수사 경력으로 볼 때 법을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번에도 정보기관 비밀요원의 신분 노출과 관련한 법규들을 엄격하게 적용하리란 관측이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로브와 리비의 유출 목적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로브의 경우 발레리 플레임의 남편 조지프 윌슨이 뉴욕타임스에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하는 기고를 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으로 유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리비의 경우는 윌슨의 기고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으려는 CIA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보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비밀요원의 신분을 유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체니 부통령의 연루설까지 흘러 나오지만, 기소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작다. AP통신은 거물급 인사 대신 실무진이 기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부통령실의 공보 담당인 존 한나와 데이비드 움서가 ‘상부’의 요청에 따라 플레임의 신분을 기자들에게 유출했을 가능성도 조사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개편설도 대두 로브 부실장의 기소 가능성이 커져가면서 백악관 개편설도 나오고 있다.USA투데이는 로브가 기소돼 백악관을 떠나게 되면 부시 대통령은 또다시 텍사스 출신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이너 서클’ 안에서 대안을 찾을 것으로 분석했다. 로브 부실장 후임으로는 텍사스 주지사선거 시절부터 부시 대통령을 보좌해온 캐런 휴스 국무부 홍보외교 담당 차관과 켄 멜먼 공화당전국위원회 의장, 에드 질레스피 전 공화당전국위 의장, 댄 바틀렛 백악관 고문 등이 거론된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들과 함께 조슈아 볼턴 예산관리국장과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클레이 존슨 예산관리국 부국장 등도 참모진 보강 차원에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꼬리를 잘라라” 공화당 지도부는 로브 부실장과 리비 실장이 기소될 경우의 반박논리를 개발하고,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외 홍보전략 마련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텍사스 출신의 케이 허치슨 상원의원은 이날 NBC방송에 출연,“특별검사가 지난 2년간 예산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기소하려 해서는 안된다.”면서 “특히 기소를 하려면 범죄행위에 대한 것으로 해야지 예컨대 ‘기술적인 위증’ 등을 걸면 안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dawn@seoul.co.kr
  • 말문터진 개헌… 여도야도 “2007년께”

    말문터진 개헌… 여도야도 “2007년께”

    그동안 간헐적으로만 언급됐던 개헌론이 급물살을 탔다.24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선 여야 국회의원들은 당론과 관계없이 다양한 개헌론을 제안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국민 중심의’,‘통일’,‘복지’ 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한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에 ‘임기 내 개헌 추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점을 상기시키며 ‘개헌논의 2단계 로드맵’을 제안했다. 1단계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향후 개헌논의 일정을 마련하고 내년 1월에 정치권과 헌법기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헌법개정 범국민협의회’를 구성하는 것이다.2단계로는 내년 지자체 선거 이후 9월 정기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고 민 의원은 제안했다. 그러면서 “개헌안은 내년 정기국회나 2007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3월쯤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필우 의원은 구체적으로 “당장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로 개헌논의를 시작하자.”면서 “내년 지자체 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안을 내놨다. 윤호중 의원 역시 “17대 국회가 임기를 마치는 2008년은 제헌국회가 60주년을 맞는 해”라면서 “우리 임기 내에 분단극복을 위한 통일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한나라당도 맞장구를 쳤다. 권철현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헌법·정치학자 등으로 구성된 ‘헌법연구회’를 설치해 연구하도록 한 뒤 내년 정기국회에서는 이 결과를 토대로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정치권이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어 “2007년 2월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고,3월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면서 “17대 대통령과 18대 국회의원 임기가 2008년 1월1일부터 시작하도록 해 노무현 대통령과 현재 국회의원의 임기는 조금씩 단축되어야 한다.”는 파격 제안도 내놓았다. 같은 당 정의화 의원은 “4년 중임제의 정·부통령제와 양원제 도입도 논의해야 한다.”며 “당장 국회에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특위’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개헌논의는 내년 지자체 선거가 끝난 뒤 해도 늦지 않다.”면서 “정 필요하다면 국회 안에 연구모임을 만들면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해찬 국무총리는 “대체로 2007년 대선,2008년 총선과 관련해 2007년에 가서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이 총리는 그러나 “내년 경제가 상당히 회복될 것 같은 상황에서 너무 일찍 개헌이 공론화돼 소모적인 논쟁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기 개헌 논의에는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박찬구 박지연기자 ckpark@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부시는 무례한 카우보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낸 래리 윌커슨 예비역 대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카우보이식’ 무례한 외교를 설명하면서 지난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일어난 일을 사례로 든 것으로 확인됐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뉴아메리카재단’ 초청으로 학자와 언론인을 상대로 강연하면서“미국이 마치 뒷골목 악당처럼 모든 것을 이기려 할 필요가 없는 데도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품위를 잃어버렸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김 전대통령에게 대했던 태도를 문제삼았다. 그는 “만일 당신이 발걸이 의자에 발을 올려놓고 노벨상을 수상한, 당시 한국 대통령인 사람을 쳐다보면서, 그가 북한과 화해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당신이 매우 무례한 방법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 그것은 카우보이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정부의 외교를 장악,“밀실 결정으로 미국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윌커슨은 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극도로 약하다.”면서 “현재 국무부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스 장관이 “대통령과의 친교를 위해 ‘정직한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버렸다.”고 주장했다. 윌커슨은 또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되는 더글러스 페이스 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에 대해 “그보다 더 멍청한 사람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고 극언을 서슴치 않았다. 31년간 해병대에서 봉직했던 윌커슨은 파월 전 장관과는 군과 민간에서 16년간 함께 일해 왔다.dawn@seoul.co.kr
  • 공화 잇단 악재 민주당 ‘휘파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와 공화당이 올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연이은 실책을 저지르며 ‘자멸’하는 기류를 보이자 야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진보파 내에서는 2006년 의회 선거와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승리, 보수파에게 내준 미국 사회의 주도권을 되찾아오자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공화당은 최근 들어 톰 딜레이 하원 원내대표와 빌 프리스트 상원 원내대표가 나란히 금전과 관련한 비리 의혹으로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딕 체니 부통령의 핵심측근인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이른바 ‘리크게이트’로 기소 위기에 처해 있다. 나아가 체니 부통령의 연루 가능성까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리크게이트관련 부시 피소 전망 이와 함께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누설한 리크게이트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발레리 플레임 요원과 그녀의 남편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는 부시 대통령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블룸버그가 17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또한번 얼굴을 구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변지 격인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은 “가장 유능한 보수주의자들이 정치자금이나 기밀누설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수파의 하강 국면에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민주 대선후보 거론 힐러리 `인기´ 반면 민주당측의 분위기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주)은 지난주말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운동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큰 성과를 거뒀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배출해 내겠다는 희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기부 대열에 흔쾌히 참여했으며, 캘리포니아주가 민주당의 전통적 아성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고 전했다. 힐러리 진영은 지금까지 1380만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는 내년 상원선거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예비조사 결과 공화당에서 어떤 후보가 나오더라도 낙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또 여성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TV드라마 ‘총사령관’이 방영되는 등 힐러리의 대선 출마에도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공화당에서는 아직 유력한 후보군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 8∼10일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기를 희망한다는 미국민의 의견은 39%에 머무른 반면, 민주당이 다수이기를 원하는 의견은 48%에 이르렀다.dawn@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대통령 정권의 핵심부에 칼끝을 들이대는 패트릭 피츠제럴드(44) 특별검사는 누구인가. 피츠제럴드 특별검사는 2003년 12월부터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누설한 ‘리크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피츠제럴드 검사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대부분 직접 조사했으며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를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피츠제럴드 검사는 또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한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를 법정구속하는 등 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기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체니 부통령의 연루 여부도 집중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백악관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피츠제럴드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고교시절 성적이 좋았고, 앰허스트 대학도 우등 졸업해 하버드 법대에 진학했다. 1993년 뉴욕에서의 초임검사 시절 조직범죄 소탕에 나서 유명한 마피아 두목 존 감비노를 감옥으로 보냈다. 또 같은 해 세계무역센터 폭발 및 1998년의 해외 미국 대사관 연쇄 폭파 사건을 수사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 그의 조직원들을 구속하기도 했다.2001년 이후 시카고 근무 시절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시 직원을 채용한 리처드 댈리 시장과, 향응을 받고 관급공사를 낙찰받게 한 조지 라이언 일리노이 주지사를 고발했다. 피츠제럴드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일벌레로 평가하고 있다. 피츠제럴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평생 검사 말고는 해본 일이 없어서 세상을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단순화시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밀러 기자의 구속에서도 나타나듯이 법을 매우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해석한다고 꼬집었다. dawn@seoul.co.kr
  • 로브 없는 부시 ‘삼면초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인 칼 로브(사진 오른쪽)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정치고문이 이른바 ‘리크 게이트’에 연루돼 기소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해지면서 그가 사임한 이후 백악관과 정치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관측이 무성하다. 로브 부실장은 그동안 네 차례 대배심에 출두,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발레리 플레임의 이름을 누가 언론에 흘렸는지에 대한 증언을 했으며,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 역시 증언을 마친 상태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타임은 16일(현지시간) 로브 부실장과 리비 실장이 기소될 경우 즉각 사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로브 부실장의 경우 지난 25년 동안 두 번의 텍사스 주지사 선거와 두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부시 대통령을 보좌해온 인물이어서 과연 부시 대통령이 ‘로브 없는 백악관’에 적응해낼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정가에서는 로브가 백악관을 떠나면 부시 대통령에게 적어도 세 가지 문제점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 부시 대통령과 미 보수층의 연계 고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최근 부시 대통령이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을 대법관으로 지명한 뒤 공화당 상원의원을 비롯한 보수층의 반발이 이 정도에 그친 것도 로브의 역할 덕분으로 평가하고 있다. 둘째, 내년 중간선거 전략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공화당은 백악관은 물론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지만 지난 8∼10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48%가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것이 낫다고 답변,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39%)을 훨씬 앞섰다.이 상태로 가면 내년 선거로 여소야대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그러나 로브는 15일로 예정됐던 제리 킬고어 버지니아 주지사 후보 지원 연설을 취소하는 등 이미 정치 행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셋째,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부시 대통령이 마음 놓고 대화하거나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졌다는 점이다.이라크전 장기화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응, 마이어스 대법관 지명 이후의 혼란스러운 대처 등은 모두 로브의 장악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공화당 일각의 진단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현재 로브 부실장은 정무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 분야의 우선 순위 조정까지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로브 부실장이 떠나면 백악관이 ‘블랙홀’ 상태가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있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로브가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기소되더라도 사임 대신 장기 휴가를 갔다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dawn@seoul.co.kr
  • 미국 민주주의 국가 맞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성적으로 풍자하는 셔츠를 입고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이 중간 기착지에서 ‘퇴장’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 4일 워싱턴주에서 오리건주로 향하는 항공기를 탑승한 로리 히즐리(32)와 남편을 중간 기착지인 네바다주 공항에 ‘떨어뜨렸다.’고 CNN이 보도했다. 히즐리는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사진과 함께 ‘Meet the Fockers’라는 글귀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이 글귀는 영화 제목으로 ‘Focker’는 성적으로 저속한 욕설과 발음이 같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처음에는 히즐리에게 셔츠 위에 스웨터를 덧입어 그림과 글귀를 가려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히즐리가 잠자다 스웨터가 흘러내리자 “셔츠의 안팎을 바꿔 입거나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통첩했다는 것이다. 히즐리 부부는 셔츠를 돌려 입는 대신 기꺼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을 택했다. 당시 시간은 자정에 가까웠다고 한다.히즐리는 “이라크를 해방시키겠다고 군대를 보내는 나라에서 셔츠 때문에 비행기에서 쫓아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히즐리는 사우스웨스트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dawn@seoul.co.kr
  • ‘필리핀판 로버트김’ 美정가 발칵

    ‘필리핀판 로버트 김 사건’으로 미국과 필리핀이 발칵 뒤집혔다.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전 백악관 부통령 비서실 직원이 백악관에서 3년 동안 기밀정보를 빼돌린 사실이 적발돼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미 ABC방송이 5일 보도했다. 방송은 미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지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앨 고어 전 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비서실에서 일하던 레안드로 아라곤실로(46)가 1급 비밀 취급인가를 악용해 백악관 컴퓨터에서 비밀정보를 빼냈다고 전했다. 이들은 아라곤실로가 빼낸 정보 가운데에는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는 정보들이 포함돼 있으며 그가 이를 필리핀에서 쿠데타를 계획하는 야당 정치인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FBI는 아라곤실로가 2004년 7월 이후 FBI 컴퓨터에서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체포됐으며 백악관 근무 당시에도 정보를 유출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FBI가 수사 중이며 현재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라곤실로는 지난 2004년 7월 21년간 복무했던 해병대에서 제대한 뒤 FBI에서 정보분석관으로 일해왔다.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대법관까지 부시 사람 앉히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대법관으로 지명한 해리엇 마이어스(60) 백악관 법률고문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됐다.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이번 논쟁에서 찬성과 비판이 혼재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 언론과 야당인 민주당의 기본적인 문제제기는 마이어스가 ▲판사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오랫동안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법률 자문가로 일해 왔다는 데서 시작된다. 부시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뇌부인 대법관마저 ‘충성도’를 기준으로 인선, 사법부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측에서는 ‘정실인사’라는 평가가 돌았다. 민주당 한편에서는 마이어스 지명자가 중요 쟁점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여왔는지 아직 모른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다. 민주당측은 마이어스가 백악관 법률고문으로서 어떤 자문에 응했는지 관련 자료를 보내 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했다. 반면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층에서도 마이어스 지명자가 “확실한 보수가 아닐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중요 쟁점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지 않은 인사를 지명했다며 비난하고 있다.더욱이 1980년대 당시 테네시주 상원의원이었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을 비롯, 상당수 민주당 후보들에게 소액이긴 하나 선거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나 보수층에게 적잖은 혼란을 주고 있다. 이른바 신보수주의자(네오콘)의 기관지격인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은 마이어스 대법관 지명에 대해 “실망했다. 우울하다. 힘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부시 대통령이 헌법철학에 대한 싸움에서 꽁무니를 뺐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 인사들은 부시 대통령이 지지율이 떨어진 데다 이라크 전쟁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의 악재 때문에 민주당과 한판 싸우겠다는 의지를 상실한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텍사스 출신의 존 코닌(공화)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대립에 겁먹은 것 같지는 않지만 “기꺼이 한판 싸우겠다는 결의도 없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미국을 위한 전진’ 등 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이번 지명을 환영하면서 마이어스를 계속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마이어스는 최근 퇴임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됐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측의 시각을 반영한 중도파였기 때문에 그의 후임으로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대법원 전체의 이념적 색채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dawn@seoul.co.kr
  • [국제플러스] NYT 밀러기자, 증언 동의 석방

    취재원을 공개하는 대신 스스로 감옥행을 선택, 언론 자유의 상징으로 떠오른 뉴욕타임스 주디스 밀러(57) 기자가 지난 29일 석방돼 다음날 이 사건과 관련한 대배심 증언대에 섰다. 밀러 기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노출 사건인 ‘리크게이트’에 대한 취재원 공개를 거부해 3개월간 수감됐으나 사건과 관련한 증언을 하기로 동의하고 감옥에서 나왔다. 법조계 소식통들은 밀러가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교도소에서 이날 오후 출소했으며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와 석방조건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밀러 기자는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로부터 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과 관련해 나눈 대화 내용을 증언해도 된다는 보장을 받은 후 증언을 결심했다고 30일 대배심에서 밝혔다.
  • 노대통령 中美 ‘세일즈외교’

    노대통령 中美 ‘세일즈외교’

    |산호세(코스타리카) 박정현특파원|코스타리카를 국빈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중미지역의 경제통합 등을 도모하는 중미통합체제(SICA)의 8개 회원국 정상들과 회의를 갖고 경제협력방안을 협의했다. 아울러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당부했다. 앞서 11일(한국시간 12일 새벽) 과테말라·니카라과·파나마·엘살바도르 정상들과 연쇄 개별 회담을 갖고 ‘세일즈 외교´ 활동을 벌였다. ●중미국가들과 ‘1+8’ 정상회의 노 대통령은 한·SICA 정상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개혁과 관련한 국제적 합의 형성에 중미국가들의 동참을 요청했다. 중미국가들과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우리의 첨단기술분야 진출강화와 문화교류 확대 방안을 협의했다. SICA는 93년 역내 경협강화와 상호 불가침조약 체결, 중미 신속대응군 창설 등을 추구하기 위해 발족한 기구다. 지난 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과테말라 방문 때 5개국 정상과 회동했으며, 이번에 우리나라는 9년만에 두번째로 참석한 것이다. 이밖의 회원국은 온두라스·벨리즈·도미니카공화국 등이다. ●“한국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 노 대통령은 오스카르 베르헤르 과테말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전력발전소 건설사업 입찰에 한국기업이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발전소 건설·운영·배전에서 한국은 최고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 한국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2500만달러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엔리케 볼라뇨스 니카라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우리 중소기업들은 빈 손으로 성장을 일군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교류를 통해 니카라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카라과 상수도 건설사업에 1220만달러의 EDCF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마르틴 토리호스 파나마 대통령은 50억∼90억달러의 운하확장 사업계획에 한국기업의 투자를 요청했으며, 노 대통령은 “그동안 건설업체들이 수주에 치중했으나 앞으로는 기획에도 참여해서 투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스코바르(여) 엘살바도르 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우리나라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에 적극 지지해달라고 당부했다. 에스코바르 부통령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지사 설치를 희망했다. jhpark@seoul.co.kr
  • [미 남부 카트리나 대재앙] 부시 “Oh my god”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예고된 인재(人災)에 무심했던 데다 사후 대처나 민심 수습도 모두 낙제점을 받고 있어서다.9·11테러가 재집권에 ‘약’이었다면 카트리나는 임기 내내 ‘독’이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부시 대통령이 뉴올리언스 제방 붕괴를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한 지난 1일의 발언이 거짓말로 탄로나 곤경에 빠졌다. 뉴스위크는 12일자 최신호에서 민주당 소속이지만 부시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는 존 브룩스 전 상원의원이 지난해 대통령을 만나 둑 붕괴 가능성에 대해 말해줬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지난 4년간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또 연방 비상관리청이 지난 2001년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내습을 3대 재앙으로 보고했었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이 지나간 지 이틀 만에 에어포스원을 탄 채 형식적으로 둘러본 뒤 나흘 뒤에야 현장을 방문했는데 아버지 부시는 지난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가 플로리다를 강타할 당시 불과 수시간 만에 방문해 대조적이라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이날자 최신호에서 부시 대통령이 휴가를 줄이고 워싱턴으로 돌아올 때 수행한 이(?)는 애견 바니밖에 없었다고 꼬집었다. 부시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긴급 상황에 있는 대통령을 보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딕 체니 부통령과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이 모두 휴가 중이었고 특히 체니 부통령은 부시 주재 비상대책회의에도 화상 참여했다. 부시 대통령의 언론담당 수석보좌관 마크 매키논은 동료 결혼식 참석차 그리스에 있었다. 타임은 “백악관은 때로 매우 느리다.”는 한 전직 관리의 말을 인용해 관료체제를 비판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흑인이라 당했다” 갈등폭발 초읽기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몰고 온 혼란상이 적전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연방 정부는 4만여 병력을 투입하는 등 수습에 뒤늦게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책임 공방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빈부와 흑백 차별 논쟁까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고 있다.●“부시가 `치욕의 합중국´ 만들었다” 흑인의원협회장인 엘리자 커밍스 하원의원(민주)은 3일(현지시간) “생존과 죽음을 가른 것은 가난과 나이, 피부색 차이뿐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도 “부시 행정부의 무능으로 흑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W S 라일리 뉴올리언스 경찰청 차장은 “투입된 주방위군이 카드 게임을 즐겼다.”고 비난했다. 정치권은 6일 청문회를 열어 쟁점화할 태세다. 민주당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은 “무관심이 대량살상무기”라고 비아냥댔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부시 정부가 미국을 ‘치욕의 합중국’으로 만들었다.”고 썼다. 그러나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장관은 “원폭이 투하된 것과 비슷한 최악의 참사였지만 정부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했다. 수해지역을 돌아볼 때 부시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도 구설수에 올랐다. 처음에는 “구호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가 “구조에 나선 사람을 모욕할 뜻은 없었다.”고 해명하더니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장에겐 ‘브라우니’란 애칭까지 쓰며 격려했다. 또 경호상 문제를 내세워 가장 많은 사람이 대피해 있던 뉴올리언스 슈퍼돔과 공항에 차려진 임시병원 등은 찾지 않았다. 휴가지에서 돌아오지 않은 딕 체니 부통령과 뉴욕에서 쇼핑과 뮤지컬을 즐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블로거들의 도마에 올랐다.●구호 손길 아직도 못 미치는 곳 많아 부시 대통령은 정규군 7000명과 주방위군 1만명을 추가 투입키로 했다. 또 절대로 병력을 빼내지 않겠다던 이라크 파견 공군 병력 300명을 수해지역에 배치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은 5일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를 다시 찾을 계획이다. 뉴올리언스 생존자 4만 2000명이 텍사스주 등으로 대피하고 구호품도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아직 도시 곳곳에 5만여명이 고립돼 치안은 여전히 불안하다. 시신 수습작업이 겨우 시작됐지만 질병과 자살로 하루에 10여명씩 계속 숨지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드러지리포트는 한 생존자가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을 전했고, 나이트리더는 TV카메라가 비치지 않는 곳에는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화당 데이비드 비터 상원의원은 “사망자가 루이지애나주에서만 1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 솔루션은 약 100조원의 경제 피해를 추산한 데 이어 영국 일요신문 옵서버는 보험금 청구액만 4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 손길도 쇄도하고 있다. 미국과 껄끄러운 베네수엘라가 석유 100만배럴, 쿠바가 의료진 1100명 파견을 제의하는 등 40개국이 구호의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대형 허리케인이 남부를 엄습할지 모른다는 예보가 미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콜로라도주립대 윌리엄 그레이 교수팀은 “허리케인 시즌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시속 177㎞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대형 허리케인이 이달 안에 또 덮칠 가능성이 43%”라고 예상했다.박정경기자 외신 olive@seoul.co.kr
  •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막은 리처드 워커 글라이스틴의 후임자인 워커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아시아 전공 학자였다. 남부 출신인 그에게는 ‘딕시’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미국에서는 남부 주들을 ‘딕시 랜드’라고 부른다.) 워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화당 중진인 서몬드 스트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선거 공신인 스트롬 의원은 출신지역의 인물을 주요 포스트에 앉히고 싶어 친구인 워커에게 “어느 자리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워커는 “한국 대사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워커 대사 재임기간인 1983년 미얀마 양곤을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 정권의 아웅산 테러가 발생했다. 워커는 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를 만났다. 당시 전 대통령이 아웅산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을 폭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워커 대사는 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은 동북아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전 대통령은 “이미 보복 공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6월 항쟁 때 군 출동 경고한 제임스 릴리 릴리 대사는 중앙정보부(CIA) 출신이었다. 릴리는 글라이스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선교사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릴리 대사의 재임 중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요구했다. 당시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려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군이 나서면 파국에 이를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전 대통령에게 “진압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표현은 매우 정중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전 대통령을 만난 릴리 대사는 편지 내용보다 훨씬 강력한 어조로 전 대통령에게 경고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릴리 대사는 미군 지도부도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전 대통령은 군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 직후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나왔고,87년 대선에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결국 노태우가 당선됐다. ●한반도 비핵화 추진한 도널드 그레그 그레그 대사도 CIA출신이다. 그는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시절 CIA한국지부장을 지내며 김대중 납치 사건 때 김대중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설명했다. 중국 및 러시아 전문가인 그레그는 1980년대 조지 H W 부시가 부통령일 때 그의 안보보좌관을 지내며 부시와 매우 가까웠다고 한다. 그레그 대사의 주요 임무는 한국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레그 대사 본인이 한국에서의 핵 철수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다는 것이다. 오버도퍼 교수는 그것이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협상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 바탕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며, 미국은 작은 도우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진단했다. 북한과 화해하고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노무현 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비슷한 점이 있지만 ▲시기와 주변 상황이 다르고 ▲지금은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점이 다르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물론 그레그 대사 시절에도 북한의 핵 문제는 잠재해 있었지만 실제로 표면화된 것은 93,94년이다. ●워싱턴 고위당국자들의 책상을 내려친 제임스 레이니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레이니 대사는 외교관이 아니라 대학교수였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 대학에서 강의하던 그는 같은 주 출신인 카터 전 대통령과 아주 가까웠다. 젊은 시절 주한미군에서 근무했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한국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레이니 대사 시절 북핵 문제가 터졌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에서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레이니 대사는 미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만나 북핵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안임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니는 당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인식이 기대에 못 미치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심각성을 설파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94년 들어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미군이 한반도로 향했다. 북한이 유엔 제재에 반발, 군사적 도발을 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였다고 한다. 레이니는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 한국내 모든 미국인을 피신시키려 했다. 일단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매우 위험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카터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왔다. 카터가 대통령 재임시 김일성, 박정희와 비무장지대(DMZ) 3자회담을 추진하는 등 북한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 등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레이건과 H W 부시 정부는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서 카터의 평양행을 원하지 않았다. 북핵 위기의 한복판에서 카터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레이니 대사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목소리 낮았던 스티븐 보스워스 보스워스 대사는 외교관이면서 경제 전문가였다. 주한 미국대사 가운데 실질적으로 경제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인물은 보스워스가 처음일 것이라고 오버도퍼 교수는 평가했다. 경제 전문가인 보스워스 대사 시절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상황에 들어간 것은 흥미롭다. 보스워스 대사는 외부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로 키’를 유지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임 당시 누구보다 한국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워스 재임기간인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보스워스를 비롯한 미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에서의 평가와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막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그는 전했다. 보스워스 대사는 미국이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부시 정부로 넘어가면서 대북 정책이 바뀌는 과정도 겪었다. ●부시가 지명한 3명의 주한대사 외교관 출신인 토머스 허버드 대사는 북한과 많은 협상을 벌여온 북한 전문가였다. 허버드는 제네바 협상 당시 미국 대표단에 포함돼 있었고,95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후속 경수로 협상에선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다. 이후 다른 협상으로 평양을 자주 방문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남북관계 전문가인 허버드를 자신의 첫 주한대사로 지명한 것은 논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평양 당국과의 협상이 주요한 한반도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허버드 대사를 포함, 최소한 3명의 주한대사를 지명하는 대통령이 됐다. 오버도퍼 교수는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알렉산더 버슈보 대사 내정자의 인선은 허버드 대사와 달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힐과 버슈보 모두 유럽 전문가들이다. 힐은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폴란드와 발칸반도 등 유럽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버슈보는 라이스처럼 소비에트 전문가로 나토와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오버도퍼 교수는 힐 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짧은 기간 대사로 일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한국에서 힐 차관보의 인기가 높은 것과 관련,“힐 대사의 인기는 대북 협상이 성공적일 경우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힐 차관보는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보다 정부 내에서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버슈보 같은 거물을 차기 주한대사에 지명하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버슈보가 유능한 외교관이며 그의 역할은 한·미 정부간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17년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국제관계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70년대 이래 모든 주한 미국대사와 한국 대통령·외교부 장관·주미 한국대사를 인터뷰한 경험을 갖고 있다. 포병장교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1993년 기자를 그만둔 뒤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미 정부 한국 담당 관료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황당한 美전도사… 당황한 美정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미국의 보수파 전도사가 반미주의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 파문이 일고 있다. 개신교 복음주의 전도사인 팻 로버트슨은 22일 ‘700클럽’이라는 TV 생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에 “가공할 위험”이라며 “우리는 그를 제거할 능력이 있으며 그런 능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하나의 강력한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2000억달러짜리 전쟁(이라크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며 “몇몇 비밀 요원들이 그런 일을 하도록 하는 게 훨씬 쉽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2002년 4월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때 차베스 정권의 전복을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차베스가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를 망치고 나라를 공산주의자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소굴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올해 75세인 로버트슨 전도사는 미국기독교연합(CCA)의 창설자로 그가 매일 진행하는 크리스천방송네트워크(CBN)의 생방송 프로그램 시청자는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로버트슨은 1988년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미군 해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로버트슨은 지난 2월에는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받는 나라이며, 북한 주민의 탈북을 부추겨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로버트슨 발언의 파문이 확산되자 미국 정부는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로버트슨의 발언이 부적절한 것이라며 “우리는 그와 견해를 같이하지 않으며 이는 미국 정부의 정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호세 비센테 랑헬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23일 기자회견에서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미국에서 이같은 테러리스트적인 발언이 횡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위선”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골적인 반미 노선을 걷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은 이전부터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이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daw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엄마의 분노 美대륙 움직이다

    한 어머니의 분노와 슬픔이 미국을 움직였다. 지난해 4월 이라크전에서 스물네살의 아들 케이시 육군 상병을 잃은 어머니 반전운동가 신디 시핸(48)의 시위를 지지하기 위한 촛불시위가 17일(현지시간) 뉴욕과 필라델피아·버밍엄·밀워키·포틀랜드·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전역 1500여곳에서 열렸다. 시핸은 지난 6일부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텍사스 크로퍼드목장 근처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왔으며,100여명의 지지자가 합류해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와 부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천막촌에는 미국은 물론 오스트리아·독일·터키 등 해외에서 온 방문객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16일에는 존 에드워즈 전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부인 엘리자베스가 에드워즈의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시핸을 지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고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전했다. 시핸은 로이터통신에 “내가 여기 올 때는 화가 나 있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화가 나서 여기 왔지만, 이제 희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가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이제 갖게 됐다.”고 말했다.장택동기자 외신 taecks@seoul.co.kr
  • ‘한통속’ 美軍-방위산업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군과 방위산업은 사실상 통합된 체제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워싱턴포스트는 8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차기 해군장관에 방위산업체인 노스롭 그루먼의 도널드 윈터를 내정했다고 보도했다. 윈터 해군장관 내정자는 이 회사의 미사일 및 지휘·통제·정보프로그램 부문 책임자로 경영자이자 테크노크라트이다. 군의 최고위직에 방산업체 간부를 임명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미국에서는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럼즈펠드 장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 1기 정부 때도 역시 노스롭 그루먼의 간부인 제임스 로시를 공군장관으로 발탁한 바 있다. 워싱턴의 군사 소식통은 “미국의 경우 군과 방산업체는 함께 가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10여년간 미국의 방산업체가 통·폐합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공군에 납품할 전투기를 놓고 한때 보잉과 맥도넬 더글러스가 경합했지만 결국 보잉으로 통합됐고, 헬기의 경우 스콜스키가 거의 전담하는 등 대부분 중요한 무기 체계마다 하나의 회사가 독점해서 생산하는 체제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노스롭의 경우는 레이더 등 항공기 등에 부착되는 전자 장치가 전문이다. 이같은 상황 변화에 따라 아예 “장비 성능보장 위주의 군수 지원(Performance-based logistics)”이라는 개념이 미군 내에 정착됐다. 방산업체가 책임지고 무기체계와 군 장비를 개발하는 데 참여하고, 사후 관리도 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이 아예 장비뿐만 아니라 군 전체를 관리하는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딕 체니 부통령이 국방장관을 지낸 후 군수업체 할리버튼의 경영자로 일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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