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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스트로 형제 “재스민혁명이 뭔데”

    카스트로 형제 “재스민혁명이 뭔데”

    쿠바 공산당이 14년 만에 열린 제6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고 고강도 경제개혁안을 승인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피델 카스트로(왼쪽) 전 국가평의회 의장에 이어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오른쪽) 의장이 공산당 제1서기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유례없는 형제 세습을 이루게 됐다. 당대회에서는 공산당 제1서기직과 제2서기직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다. AP통신은 현지 관영언론이 보도한 당대회장 내부 사진에서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중앙위원회 위원을 선발하는 투표함에 표를 넣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AFP는 19일 당대회 폐막 직후 투표 결과 라울 카스트로가 제1서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현재 라울 카스트로가 맡고 있던 제2서기직은 제1부통령인 후안 마차도 벤투라(80)가 이어받았다. 제2대통령인 라미로 발데스(78)는 제3서기가 됐다. 당 중앙위원회와 비서국, 정치국 위원 등 129명이나 되는 당 주요 인사가 새 얼굴로 바뀌면서 라울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를 이끌 차세대 지도부가 전면에 부상했다. 특히 카스트로 형제와 많은 고위 인사들이 70~80대의 고령인 상황에서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그동안 국가 생존을 위한 결단을 강조해 왔다. AP통신은 새로운 지도부가 신구 인물들이 섞여 있으며 많은 여성과 아프리카계 후손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대회에서는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제안한 고강도 경제개혁안 300여건도 무더기로 통과됐다. 경제개혁안은 몇 해 안에 공공부문 100만명 이상을 감축하고 식량배급제를 폐지하는 것을 비롯해 국영회사 자율성을 높이고 재정지출을 줄이며 주택 매매를 허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은 당대회 폐막 직전 깜짝 모습을 드러내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이날 관영지인 그란마에 실은 칼럼을 통해 당대회 논의과정을 들었고 인상적이었다며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칼럼에서 “새 시대는 고쳐야 하고 바꿔야 할 것들을 주저 없이 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주의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오바마 2012 美 재선도전 3대 관전포인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출마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2012년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은 51%(반대 46%)로 나타났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암초는 지지부진 경제회복·재정적자 걸림돌 4일 오후 백악관 후문 앞 광장. 한 시민이 ‘전쟁에 돈 쓰지 말고 일자리나 만들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곳으로부터 150여 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상공회의소 건물 벽에는 큼지막하게 ‘JOBS’(일자리) 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유권자들이 2008년에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은 동기는 극심한 경기침체였다. 역으로 재선에서 오바마가 패한다면 그것도 경제 때문일 공산이 크다. 이미 유권자들은 지지부진한 경기회복에 대한 불만을 2010년 중간선거에서 드러낸 바 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 승리의 영예에도 불구하고 재선에서 패한 이유도 경제난 때문이었다. 당시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부시를 녹다운시켰다. 오바마가 리비아 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넉달 사이 실업률이 1%포인트 하락하는 등 개선되고 있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린 편이고 주택압류 사태도 답답하다. 그나마 주가와 수출 등은 양호한 편이다. 공화당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문제를 들먹이면서 오바마의 ‘치적’인 건강보험 예산을 흔드는 전략을 구사할 전망이다. ●참모는 ‘좌장’ 메시나 ‘오바마 입’ 기브스 핵심 오바마는 재선 캠프를 2008년 대선의 공신들로 구성했다. 좌장은 짐 메시나 전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이 맡았다. 2008년에 후보 비서실장으로 맹활약했던 메시나는 연초 백악관에서 물러나 캠프 일에 전념해왔다. 선거의 귀재인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과 ‘오바마의 입’인 로버트 기브스 전 백악관 대변인도 캠프의 핵심이다. 줄리아나 스무트 전 백악관 사회담당 비서관은 정치자금 모금을 책임진다. 오바마 캠프는 역대 대선 사상 처음으로 모금액이 1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제니퍼 오말리 딜론 전 민주당 전국위(DNC) 사무국장은 바닥 조직 재건에 나선다. ‘오바마의 재사’인 데이비드 플러프 백악관 선임고문과 ‘오바마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발레리 자렛 백악관 수석보좌관은 오바마 곁에서 코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는 인물가뭄 속 롬니·페일린 등 10명 후보군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적은 공화당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걸출한 인물이 없다는 얘기다. 10명 안팎이 거론된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후보 중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모은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가 선두권에 있다. 침례교 목사 출신에 극우 보수주의자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와 2008년에 부통령 후보로 뛴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유력 후보다. 서민 출신인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와 1990년대에 이름을 날린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다크호스로 분류된다. 미 하원 티파티 코커스의 창립자인 미셸 바흐만 하원의원, 존 헌츠먼 전 주중대사,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공화당 주지사 연합회 의장인 할리 바버 미시시피 주지사, 론 폴 하원의원, 피자회사 사장 출신에 티파티 대변인이었던 허먼 케인 등도 후보군에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서 특급대우 이재오

    지난 28일부터 3박 4일간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 길에 오른 이재오 특임장관이 ‘웬만해서는 잘 만나 주지 않는’ 미 정계의 고위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특급 예우를 받은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 행정부의 ‘넘버 2’인 조 바이든 부통령이 29일 이 장관을 관저 만찬에 초청한 게 이례적이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부통령은 이 장관에게 올여름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 장관은 상·하원의 거물 의원들도 두루 만났다. 28일 조지프 리버맨 상원 국토위원장을 면담했고, 29일에는 로버트 리빙스턴 전 하원의장 등과 만났다. 30일에는 공화당의 저니 아이작슨(조지아주) 상원의원, 톰 코번(오클라호마) 상원의원, 프랭크 울프(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등과 회동했다. 이 장관은 29일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원과 미 대통령·의회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행사에서 기조 연설을 하기도 했다. 미 대통령·의회 연구소는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아버지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 4명의 전직 대통령이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국의 정치인을 초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기도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떨어진 뒤 미국에 머물 때 쌓아 뒀던 인맥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는 관측이다. 이 장관 측 인사는 “이 장관이 어려운 시절 워싱턴에서 1년 가까이 머물면서 쌓아 뒀던 인맥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28일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08년 미국에 (야인으로) 왔을 때는 먹는 것을 잘 신경 쓰지 못해 나중에 건강진단을 받아 보니 영양실조라는 판정이 나왔다.”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고하기도 했다. 한편 이 장관은 이번 방미 기간 중 보통 정부부처 과장급 이하 실무자들이 이용하는 워싱턴DC의 ‘별 하나’짜리 호텔에 묵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국내에서도 지하철 출퇴근을 고집하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부고] 美 첫 女부통령 후보 제럴딘 페라로

    미국 역사상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부통령 후보였던 제럴딘 페라로 전 하원의원이 26일(현지시간) 보스턴에서 7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녀는 12년간 혈액암과 싸워 왔다. 뉴욕의 3선 의원이었던 페라로는 1984년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 메이트로 전격 지목되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고, 먼데일을 능가하는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화제는 화제로 그쳤을 뿐 선거 결과에서는 공화당 후보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조지 부시 부통령에게 참패했다. 페라로는 하지만 “나의 후보 출마는 차별이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 여성들은 다시는 이등 시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 승복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녀는 2차례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서 떨어졌고, CNN 방송의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했다. 이어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합류해 선거자금 모금책으로 일하던 중 버락 오바마 당시 후보가 백인이었다면 현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인종 폄하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빚고 사퇴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모로코 언론·AU “다국적군 목적은 석유… 공습 중단하라”

    모로코 언론·AU “다국적군 목적은 석유… 공습 중단하라”

    리비아에 대한 연합군의 공습이 만시지탄이라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오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공습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아프리카 53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한 아프리카연합(AU)은 20일(현지시간)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아프리카연합은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에서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무력 개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프리카연합은 리비아 정부에도 인도적 지원 보장과 아프리카인을 비롯한 리비아 거주 외국인의 신변 보호를 요구했으며 현재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연합의 이런 태도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아프리카연합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하고 회원국들에 금전적으로 지원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민주당 내 진보성향 의원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의 사전승인은 물론 충분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군사개입을 결정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부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20일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지난 19일 전화로 의원총회를 열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문제를 집중 논의했고, 상당수 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취한 조치가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문제를 제기한 의원은 제럴드 네이들러(뉴욕), 다나 에드워즈(메릴랜드), 마이크 카푸아노(매사추세츠), 데니스 쿠치니치(오하이오), 맥신 워터스(캘리포니아), 로브 앤드루스(뉴저지), 세일라 잭슨 리(텍사스), 바버라 리(워싱턴DC) 등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던 쿠치니치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의 재가 없이 리비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이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리비아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전쟁에 따른 정치적 이득은커녕 역풍을 맞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은 이날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 17%를 득표하는 데 그쳐 25%의 지지를 얻은 사회당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을 누르긴 했지만 차이가 불과 2% 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 내년 대선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임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랍권 언론도 비판적 보도를 하고 있다. 아랍연맹(AL)이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유엔에 촉구한 것과 달리 아랍 언론 사이에서는 서방이 8년 전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중동 석유를 장악하고자 리비아를 공습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모로코의 ‘아사바’ 신문은 20일 다국적군의 공습 동기는 물질적 이익, 즉 석유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동 대중권력 시대 좋긴 한데”… 친미 깃발 유지 고심

    “중동 대중권력 시대 좋긴 한데”… 친미 깃발 유지 고심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가 반정부 시위로 들끓으면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도 대전환의 갈림길에 섰다. 친미국가와 반미국가 가릴 것 없이 시민혁명의 불길에 휩싸인 아랍권이 지금 미국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중동의 지각변동 앞에서 미국은 허둥대고 있다. 튀니지 벤 알리 정권의 붕괴를 지켜보면서도 미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친미 독재정권 붕괴가 반미 이슬람 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1차 목표만 확고할 뿐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각론에 대해서는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동의 안정이라는 전략적 이해와 중동의 민주화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맹을 재구축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까닭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민주화 바람과 독재자에 의해 지탱돼 왔던 안정이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 끼여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고민은 ‘맞춤형 대응’에서 일단이 드러난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 따라 차별화된 대응을 펴고 있는 양상이다. 당장 동맹국인 바레인 정부에 대해 미국은 이집트 시위 초기의 대응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시위대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면서도 바레인 정부의 퇴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인구 70만명의 소국이지만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란 이슬람 시아파 정권의 영향력을 최일선에서 차단해 온 바레인 수니파 정부의 퇴진과 이후의 정국 혼란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반면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인터넷과 언론의 자유를 촉구하며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원거리 지원사격을 펴고 있다. 중동 친미 정부들과의 협력 태세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이 붕괴된 뒤로 미 행정부는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모두 나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 셰이크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왕세자 등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친미 전선 수호에 부심하고 있다. 이 같은 미 행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환점을 맞은 중동의 향후 지형이 미국에 유리한 구도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설령 다각도의 노력으로 반미 성향의 이슬람 정권 탄생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시민혁명에 의해 탄생된 새 정권들이 일방적인 친미 노선을 견지해 나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권력의 추가 독재권력에서 일반 시민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극소수의 절대권력자에게 의존해 왔던 미국의 중동 전략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 마르완 무아셰르는 “수십년간 미국은 (이 지역에서) 석유와 이스라엘 때문에 민주주의보다 안정을 우선시했으나 이 같은 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절대권력이 아닌 대중권력을 향해 중동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가고 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무슬림형제단 “창당”… 중동 정세 변수로

    57년 동안 이집트에서 불법 단체로 규정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창당을 선언했다. 최대 야권 단체가 창당 의사를 밝힘에 따라 향후 이집트는 물론 중동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은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정당 조직의 자유를 믿는다.”며 개헌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식 정당으로 등록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헌법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 조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재 이 헌법은 효력이 중지된 상태다. 무슬림형제단은 올해 대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위 간부인 에삼 엘에리안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통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합법화 과정을 원활하게 밟고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이집트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 1954년 불법 단체로 규정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하지만 민주화 시위 당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마련한 야권과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합법화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또 개헌위원회에 포함되면서 개헌 작업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를 두고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이집트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젊은이 중심의 온건파이지만 조직의 지도부는 반서구적 시각을 지닌 강경 보수파로 꼽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인들의 혁명 열기가 뜨겁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집트는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의 독재정권마저 무너뜨린 아랍 민주화의 물결은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와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의 긴급 지상대담을 통해 코샤리 혁명 이후의 이집트와 중동의 앞날을 짚어 본다. ●무바라크 퇴진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뭔가. 서정민 교수 가장 먼저 짚어 봐야 할 대목은 이집트인들이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이집트가 아랍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한다면 아랍 현대사를 다시 쓰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10일 밤 무바라크가 퇴진을 거부하고 나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봐야 한다.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채택했지만 그것이 민주화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군부가 얼마나 개혁조치를 취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은 이제 민주화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다. 황병하 교수 이집트 헌법은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국회의장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태에서는 군 최고위원회가 권한을 이어받았다. 군부는 나세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쿠데타 당시부터 이집트 정치에서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군부 출신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군부는 지금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52년 나세르 혁명도 군부 고위장교들이 왕정을 지지하며 기득권에 안주할 때 자유장교단을 중심으로 한 하위직 청년 장교들이 나세르 혁명을 이끌었다. 이번 시위에 일부 청년 장교들이 가담했던 점을 감안하면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군부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과 함께 무바라크를 옹호하는 쿠데타와 그를 축출하려는 쿠데타 모두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였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군부가 오랜 이집트 통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세습시키려 했지만 술레이만 당시 정보국장과 탄타위 국방장관이 끝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다. 군부는 앞으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퇴진시키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이집트 정국을 전망한다면. 서 교수 한국이 1987년 경험했던 6월항쟁과 비슷한 경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가 국민들 요구를 수렴하는 선에서 양보하되 권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델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그게 사실 미국 등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로운 총선과 대선은 보장할 것이다. 다만 당초 계획대로 오는 9월에 대선을 치를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1년 이상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 일정에 따라 이집트 정세가 안정으로 갈지 혼란으로 갈지 판가름 날 것이다. 무바라크 측근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요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정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은 무슬림형제단이다. 가장 큰 득표력을 갖고 있다. 이번 혁명은 민족적·세속적 성격이 강했고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의회에서 굉장히 약진할 것이다. 2005년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도 전체 의석의 20%를 차지한 경험이 있다. 향후 총선에선 최소한 3분의1의 의석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캐스팅보트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황 교수 무바라크가 퇴임한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기존의 공동목표를 달성한 이상 이제부터는 각자 소속 정파와 조직 목표에 따라 다양한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다. 현재 야권세력은 외형상으로는 크게 4·6청년운동, 변화를 위한 이집트운동(키파야), 무슬림형제단으로 나눌 수 있다. 4·6 청년운동과 키파야 등은 암르 마무드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지지한다. 변화를 위한 민족연합(NAC)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과 파루크 아흐마드 술탄 대법원장을 지지한다.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의회에서 의석을 최대한 확보해서 이집트 민주화와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전체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경제문제는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빈곤구제 등 사회활동에서 보여준 오랜 경험과 열정으로 서민들의 신뢰를 쌓아 왔다. 앞으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보여줄 것이다. ●중동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황 교수 튀니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열기가 이집트로 옮겨 왔지만 이집트와 튀니지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튀니지는 서구나 다름없는 국가지만 이집트는 관광산업을 빼고는 그동안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집트는 말 그대로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혁명이 곧바로 중동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이집트에서 이슬람 정당을 허용했다면 지금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진 않았을 것이란 말도 있지만 요르단만 해도 이슬람 정당을 인정하고 정부에 참여시킴으로써 완충작용을 한다. 예멘이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4개 유력부족 대표가 대통령과 협의하면서 운영하는 이 나라에서 이집트식 혁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페르시아만 인근 산유국들도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흡수할 충분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 개혁은 가능하겠지만 이집트식 혁명은 힘들다. 서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고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수니파의 대표주자였던 이집트가 격랑에 싸였다. 그동안 이란과 국교까지 단절했던 이집트에서 발생한 정치변화는 이란에 대한 단일전선을 흔들게 되고 이는 중동 전체 정치 역학에서 이란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동안 이집트는 중동에서 가장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였다. ●이번 혁명이 ‘쇠퇴하는 미국 헤게모니’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서 교수 미국은 중동에 대한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입만 열면 중동 민주화와 인권을 외쳤지만 사실 지역 안정을 가장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에서 발생한 혁명 국면에서 상황을 주도하지 못했다. 겉보기엔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냈으니까 외교적 승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무바라크가 사임을 거부했다가 번복하는 약 24시간 동안 미국이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무력으로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국내 정치에 미치는 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무바라크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대표적인 친미 인사라는 점도 미국엔 부담이다. 무바라크에 대한 역풍 때문에 이집트가 과거처럼 친미정책을 펼 여지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황 교수 군부가 지켜주는 한 무바라크가 이집트를 떠날 가능성은 낮다. 무바라크가 머물고 있는 샤름 엘셰이크는 이집트 국내에서 무바라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다. 독재자 단죄에 있어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통적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시아파는 지도자가 잘못하면 법적인 책임을 포함해 끝까지 책임을 묻지만 수니파는 역사적으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비록 각종 부정부패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임한 이상 무바라크 쪽에서 볼 때 수니파 정부가 무리한 요구까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거기다 군부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마냥 내칠 수 없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軍 1인자 탄타위 vs 차기후보 1위 무사 ‘스포트라이트’

    軍 1인자 탄타위 vs 차기후보 1위 무사 ‘스포트라이트’

    이집트에도 혁명의 꽃은 피었다. 이제는 그 꽃이 맺을 열매라 할 ‘포스트 무바라크’의 주인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군부의 수장인 무함마드 탄타위(76) 국방장관과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암르 마무드 무사(75) 아랍연맹 사무총장에게로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무바라크의 측근 오마르 술레이만(75) 부통령과 시위 정국에서 존재감을 새롭게 드러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69)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빚어낼 변주곡이 관심을 더하고 있다.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 1956년 보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20년간 국방장관직을 지켜온 탄타위는 무바라크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군 최고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차기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사실상 이집트 내 1인자이다. 술레이만과 함께 무바라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인물이다. 국민들로부터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술레이만 이상의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8년 미 외교전문에 따르면 군 중간 간부들은 그를 ‘무바라크의 푸들’로 부르는 등 불만을 갖고 있다. 또 카이로 주재 미 대사관은 탄타위를 “개혁에 저항하는 인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파트너다. 시위 발생 이후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다섯 차례나 전화 통화를 했고, 게이츠 장관은 지난 10일 이집트 군부에 대해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를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금까지는 건강이 좋지 않고 정치적인 야망이 없는 인물로 알려진 데다 이집트 군부도 12일(현지시간)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힌 점 등에 비춰 당장 그가 대권을 이어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역대 대통령이 군부 출신이었고, 군이 늘 막후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것을 감안할 때 ‘킹 메이커’로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은 남아 있다. 물론 상황 변화에 따라 직접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암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의 수장인 무사 총장은 군이 아닌 외교관 출신이다. 이집트의 최고 명문 카이로 대학 법학과를 졸업, 1958년 외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무바라크 정권에서 10년간 외무장관을 지내 ‘뉴 페이스’와는 거리가 멀지만 무바라크 정권의 관리로는 드물게 높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중동 정책에 있어서는 친이스라엘적인 무바라크와 달리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 해제를 촉구하기 위해 아랍연맹 관리로는 처음으로 가자지구를 찾기도 했다. 그는 혁명 이전부터 오는 9월 대선 후보로 자주 거론돼 왔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고 결국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지난 2001년 아랍연맹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바라크 퇴진 운동이 전개되면서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고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1위에 올랐다. 그동안은 사실상 무소속 후보의 입후보를 차단해온 헌법 때문에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아랍연맹 사무총장직을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도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아들 가말이 후계자 후보에서 지워진 뒤 권력을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부통령에 임명된 이후 무바라크와는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다 미국, 이스라엘 등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 특히 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군부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무바라크가 지난 10일 연설에서 퇴진을 거부한 채 술레이만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국민들에게는 ‘무바라크=술레이만’의 등식이 더욱 강하게 각인됐다. 무바라크가 하야를 발표했던 11일 시위대는 술레이만을 향해 “무바라크와 함께 떠나라.”고 촉구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은 시위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급거 귀국, 야권의 대표 주자로 지목돼 왔다. 2005년 IAEA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무바라크 대통령과 달리 부패에 물들지 않고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외국 언론들의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오랜 외국 생활로 인한 괴리감 등으로 정작 이집트 국민들로부터는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국내 정세에 어둡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럼에도 본인의 대선 출마 의지는 강하다. 2009년 IAEA 총장에서 물러난 뒤 비상계엄법의 폐지와 대통령의 3선 연임 제한 등 개헌을 촉구하는 등 개혁에 앞장서 왔다. 한때 불출마 보도가 나오자 “국민들이 이집트에 변화를 지속시키길 원한다면 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하야 전 24시간 무슨 일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 이집트 군부로부터 강력한 ‘최후통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바라크가 막판까지 사임을 거부한 배경에는 가족과 최측근의 만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12일(현지시간) “무바라크가 조기 사퇴 거부 연설을 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이집트 군부가 무바라크에게 ‘자발적으로 퇴진하지 않으면 강제로 내쫓길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무바라크가 카이로를 비우고 도망치듯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로 떠난 것도 이 같은 군부의 압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군부는 계속되는 시위, 노동조합의 파업, 경제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해 지난주 중반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권력 이양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관련 계획을 세웠다. 이후 미 중앙정보국(CIA) 등은 이집트군의 계획이 ‘협의에 의한 퇴진’과 ‘소프트 쿠데타’ 중간쯤에 해당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이 지난 10일 하원 청문회에 출석, 무바라크가 당일 중 사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힌 것이나 “전 세계가 이집트에서 펼쳐지고 있는 역사와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도 이런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집트 군부의 시나리오는 10일 오후 실행에 옮겨졌다. 군부는 타흐리르 광장에 나가 시민들에게 “여러분의 요구는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한 뒤 곧바로 대통령이 아닌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 주재로 군 최고위원회를 열어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군이 원하는 연설을 하기로 했던 무바라크는 가족과 최측근들이 “소요사태를 잘 넘길 수 있다.”며 설득하자 방송 몇분 전 마음을 바꿔 조기 사퇴를 거부했다. 특히 후계자였던 아들 가말은 아버지를 설득한 뒤 자신이 직접 성명문을 수정하는 등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백악관과 이집트 군부는 발칵 뒤집혔다. 분노가 극에 달한 군부는 몇 시간 뒤인 11일 새벽 “자진 사퇴와 강제 퇴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무바라크에게 최후통첩을 보냈고 두 번째 군 최고위원회를 소집했다. 무바라크의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조차도 하야 발표 전날인 10일 밤부터 군부의 입장에 동조했다고 미 정부 관리는 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도망자 신세 된 독재자… 700억달러 어디로 빼돌렸나

    도망자 신세 된 독재자… 700억달러 어디로 빼돌렸나

    ‘현대판 파라오’를 무너뜨린 것은 차량폭탄·총격 등 10차례의 암살 시도도, 중병도 아닌 그의 국민들이었다. 29년 120일간 지속됐던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숨통을 민주화 시위가 18일 만에 끊어 놓은 것이다. 명예퇴진을 고집하던 무바라크는 이제 구원의 손길 없이 남은 세월을 가족과 함께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1973년 이스라엘과 맞붙은 제4차 중동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1975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으로부터 부통령으로 발탁된 그는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4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가말 압둘라 나세르와 사다트 같은 전임 대통령들이 군사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려 국민들 사이에 정통성을 획득한 것과 비교하면 처음부터 취약한 기반에서 출발한 그는 철저한 권위주의 정부를 고수했다. 30년간 국가를 옥죄어 온 비상계엄법과 이집트 최대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 탄압, 정당·대선 후보 조건 강화로 반대파의 정계 진입 봉쇄 등이 대표적 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정적들을 낳았다. 알지하드, 카마 이슬라미야, 탈레알파타 등 숱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암살 시도에도 여러 차례 직면했다. 하지만 외교적 수완은 남달랐다. 미국·이스라엘 등과 탄탄한 동맹을 유지, 중동평화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매년 15억 달러의 원조를 얻어내 이집트 경제에 수혈했다. 무바라크의 가장 큰 실책은 차남 가말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을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가말은 결국 지난 5일 집권 국민민주당 ‘넘버 3’인 정책위 의장에서 사퇴, 세습의 꿈을 버려야 했다. 700억 달러(약 78조 8900억원)로 알려진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에도 세계의 눈이 쏠려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리들은 무바라크 가족들의 재산을 20억~3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으며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 은행에 은닉돼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무바라크가 시위기간 중 재산을 추적 불가능한 해외 계좌로 빼돌렸다고 전했다. 스위스 당국이 지난 11일 스위스 은행의 무바라크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무바라크는 자산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빼돌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 일가는 미국 뉴욕과 베벌리힐스를 비롯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국영기업 민영화와 외국 기업의 이집트 진출 과정 등에서 이권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가말은 이집트 최대 투자은행인 EFG-헤르메스와 함께 석유, 철강, 시멘트 등의 사업에서 영향력을 행사, 부를 형성한 혐의가 짙다. 유럽연합(EU) 관계자는 14~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등에서 무바라크의 자산 동결 여부가 긴급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일가의 부정부패로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면서 그가 이미 독일로 출국했거나 UAE,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는 설도 나온다. 허핑턴포스트는 “무바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면 튀니지 혁명으로 축출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과 함께 ‘독재자 클럽’을 만들 것이고 이 클럽의 회원 수는 더 많아질 것”이라는 뼈 있는 농담으로 30년 독재자의 말로를 정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민주 터키식 vs 軍政 파키스탄식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역사의 새 장을 맞은 이집트가 또 한번 갈림길에 섰다. ‘무바라크 퇴진’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앞날은 대단히 유동적이다. 당장 권력을 접수한 군부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 그들의 움직임에 무슬림형제단 등 야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이집트의 향후 정세를 결정할 변수로 꼽힌다. ●軍, 정권 쉽게 내줄까 이집트 군은 일단 권력의 민간이양을 공언했다. 모흐센 엘판가리 군 최고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국영 TV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고 (이스라엘 등) 국제사회와 맺은 모든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군부는 내각을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952년 나세르혁명 이후 권력을 독점해온 군부가 쉽게 정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1980년 한국의 제5공화국 등장처럼 또 다른 군사정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과정에서 정권과 거리를 두며 군부의 양 축이 된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과 사미 에난 군 합동참모총장이 세력 다툼을 이끌 공산이 크다. 미국 LA타임스는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는 군부가 계속 강력한 권한을 틀어쥔 가운데서도 민주적 개혁작업을 꽃 피운 터키 및 인도네시아 모델로 가거나, 아니면 군부와 정보기관이 권력을 틀어쥔 파키스탄 모델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슬림형제단 움직임도 주목 선거가 원활하게 치러질지도 불투명하다. 대선이 오는 9월 예정대로 진행되려면 그전까지 후보가 결정돼야 하고 정당도 만들어져야 한다. 투표 방법 또한 정해지지 않았고 반정부 시위 때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불법단체의 꼬리표가 붙은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참여 허용 여부도 변수로 남았다. 조슈아 무라브치크 존스홉킨스스쿨 연구원은 “독재정권을 거쳐온 이집트로서는 (민주적 선거과정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야 잠룡들이 뭍으로 대거 얼굴을 드러내면서 국론이 갈린다면 이집트 사회는 상당한 분열과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개헌 논의도 이집트 정국을 어지럽힐 요소다. 당장 군이 무바라크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것은 현행 이집트 헌법에 위반된다. 1971년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 퇴진 때 부통령이 통치권을 물려받거나 의회 의장이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그 역할을 대신 맡게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을 둘러싸고 정통성 논란이 벌어질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월드이슈] 힐러리 美 국무장관 24시

    [월드이슈] 힐러리 美 국무장관 24시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악화될 때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때도, 아니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열을 뿜을 때도 꼭 등장하는 기관이 있다. 미국 국무부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 사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라는 입장 표명으로 혼돈의 이집트 정국의 큰 가닥을 잡아 나갔다. 여느 국가의 외교부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그야말로 세계 경찰국가의 외교사령탑이다. 그 핵심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앉아 있다. 말 그대로 국제 외교안보질서 전반을 주무르는 인물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국제질서의 흐름을 좌우한다. 지구촌 구석구석에 뻗쳐 있는 각 공관은 물론 국내외 정보기관들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정보보고를 분석하고, 정세를 판단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각국을 돌며 크고 작은 협상과 담판도 벌여야 한다. 숨 쉴 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초를 쪼개 쓰는 힐러리의 24시간을 들여다본다. 이집트 시위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10일(현지시간) 오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워싱턴 자신의 집무실에서 CNN 방송을 켜놓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지켜봤다. 미 정보당국의 예상과 달리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자 힐러리 국무장관실은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지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향후 변수들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곧이어 긴급 소집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주재 안보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백악관으로 향했다. 하루 전인 9일도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지휘하는 힐러리 국무장관의 일정은 마찬가지로 쉴 틈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고 바쁜 국무장관,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국무장관이라는 자리가 무게를 더한다. 힐러리 장관의 하루는 보통 오전 모든 공식일정에 앞서 자신의 집무실 내 사적인 공간에서 비서실장 등 최측근 6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안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9일 오전 9시 30분 국무부 회의실에서 15명의 국무부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주재하고 국별 현안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현안 점검에 나섰다. 이어 오후 3시 45분에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집트 사태를 비롯한 국제적인 현안들에 대해 보고를 겸한 자리를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난 뒤 힐러리 장관은 백악관에서 안보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역시 최대 현안은 이집트 사태였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과연 권력이양 등의 결단을 내릴지, 야권과 시위대의 반응, 향후 중동 정세에 미칠 여향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1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를 마친 뒤 힐러리 장관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별도로 다시 만나 이집트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향후 대책을 추가로 조율했다. 이날 일정은 미국을 방문한 외국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오전이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보통 2~3건의 외국 외무장관이나 부통령 등의 면담이 포함돼 있다. 상·하원 의원 등 정치인들의 면담도 끊이질 않는다. 힐러리 장관에게는 이집트 시위 사태에서 북한 핵 문제, 중국과 미얀마의 인권 문제,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아프리카 각국의 여성 인권 문제 등 매일 다뤄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일정은 10분 단위로 쪼개 관리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짬이 날 때마다 미국 언론들과 인터뷰를 한다. 외국의 외무장관들과의 양자회담이 끝난 뒤에는 대부분 어김없이 5분이라도 언론들과 만나 짤막한 기자회견을 갖는다. 최근 이집트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아랍어권 언론, 특히 중동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알자지라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힐러리 장관은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거취에 대한 중대 연설을 앞둔 10일 오전 11시 20분 국무부에서 알아라비아·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점진적인 권력 이양과 이집트 국민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아랍권 언론매체를 통해 이집트와 중동 국가 국민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한 대민전략의 일환이다. 힐러리 장관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오바마의 외교안보팀 내에서 뛰어난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게이츠 국방장관과는 호흡이 척척 맞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인답게 종종 거침없는 언사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지만 큰 그림을 꿰고 있는 자신감의 표출이라도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이집트 사태처럼 미 정부의 입장을 놓고 백악관과의 사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때는 당혹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담당 부처별로 약간씩 입장 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백악관에서 미국의 이집트 정책에 대한 입장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낸다. 힐러리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의 스마트 외교, 소프트웨어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다. 미국식의 소통정치를 외국 순방에서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접 학생이나 여성들과 타운미팅식의 만남을 갖고 현지 일반인들의 여론을 청취하고 미국의 입장을 알린다. 그러다 보니 역대 국무장관들보다 해외 출장도 빈번하다. 힐러리 장관은 지난 2년간 총 40회에 걸쳐 해외를 방문, 역대 국무장관 가운데 재임 첫 2년간 가장 많은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힐러리 장관이 지난 2009년 1월 취임한 이래 해외를 방문한 횟수는 40번이며, 이에 소요된 출장일수는 165일이었다. 바지정장이 트레이드마크인 힐러리 장관. 활동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성격이 반영돼 있고, 힐러리 장관의 외교의 색깔이기도 하다. 워싱턴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마침내 해냈다!” 이집트 전역 시민들 환호 물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시위 18일째인 11일 사퇴 선언을 하자 이집트 전역은 환호로 뒤덮였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저녁 6시쯤(현지시각) 국영 방송을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군에 권력을 이양키로 했다.”고 발표하자,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은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당초 중요한 성명이 나올 것이라는 소식에 기대는 했지만 막상 하야 발표가 이뤄지자 시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야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이집트 전역은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로 가득했다. 전날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겠다고 발표하면서 기대를 걸었던 군부가 이날 오전 두번째 최고지휘관 회의를 가진 뒤 금요 예배가 시작되는 정오를 단 몇 분 남겨 놓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계획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적법한 요구를 지지한다고 발표한 지 18시간 만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듯한 군에 대해 시민들은 “우리의 모든 희망이 군에 달려 있었는데, 실망이다.”라고 소리쳤다. 시위 구호도 “떠나라”에서 “무바라크를 법정에 세우자”로 바뀌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나이 반도의 휴양 도시 샤름 엘셰이크로 떠난 것이 확인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시위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헬리콥터 2대가 대통령궁에서 출발하자 “떠나라.”고 외치는 등 기대감을 키웠다. 여기에 국영TV가 대통령궁에서 중대 성명이 발표될 것이라고 알리자 시위대는 조금 더 들떴다. 하지만 이미 전날 하야를 기대하다가 실망, 분노를 경험했던 시위대로서는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하야 발표 후 국민들은 그간의 울분을 다 토해내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타흐리르 광장에 있던 기기 이브라힘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해냈다.”면서 “믿을 수가 없다. 무바라크, 그 독재자가 가고 이집트 국민들이 영원히 자유다.”라며 감격했다. 이날 예배가 끝나자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더 이상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AFP통신은 이날 수도 카이로에서 100만명, 제2도시 알렉산드리아에 50만명이 시위에 참여하는 등 150만명 이상이 거리로 나왔다고 전했다. 대통령궁, 정부 청사 주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날은 최소 2000명의 시위대가 국영 방송국을 둘러싸고 “정부의 거짓말을 전하고 국민들을 배신했다.”고 항의했다.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 엘아리시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총격으로 1명이 숨지기도 했지만 시위대들은 최대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요구사항을 얘기했다. 시민들은 일제히 신발을 벗어 공중에 흔들어대며 현 정부에 대한 경멸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 유머 있는 시위문구도 등장했다. 타흐리르 광장 바닥에 당나귀 그림을 그린 한 시위 참석자는 그 안에 “우리는 당신의 메시지를 받고 당신이 당나귀(겁쟁이라는 뜻)라는 걸 알았다.”고 써 넣었다. 수에즈 운하 근로자들로부터 시작된 노동조합의 시위 합류도 계속됐다. 대중교통시설은 물론 병원, 우체국, 통신회사 등의 노조도 일제히 거리로 나섰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하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하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11일 대통령직 사퇴를 선언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수도 카이로를 떠나 홍해 연안 휴양도시인 샤름 엘셰이크로 거처를 옮긴 뒤 대통령직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CNN등 외신들이 12일 새벽 긴급 보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퇴 선언 소식이 전해지자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무바라크의 퇴진을 외치던 100만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이집트 자유’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로써 지난달 25일부터 본격화한 이집트 반정부 시위는 18일만에 무바라크의 퇴진으로 한 매듭을 짓게 됐다. 1981년부터 시작된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정치도 이날로 막을 내리게 됐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11일 저녁(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저녁 권력을 군에게 넘겨주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9월 대통령 선거 때까지 퇴진하지 않겠다며 시민들의 퇴진 요구를 강력히 거부하던 무바라크가 전격적으로 사퇴한 데는 이집트 군부의 압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헬기편으로 샤름 엘셰이크의 대통령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와 관련, 알아라비야 방송은 정치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가 시작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알아라바야 방송은 “군부가 무바라크를 물러앉힌 뒤 새로운 권력 창출 작업에 나섰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미 내각도 임명해 놓은 상태”라는 한 정치분석가의 말을 보도했다. 실제로 이날 무바라크의 엘셰이크 행에는 사미 하페즈 에난 합참의장이 동행, 군부 쿠데타 가능성을 내비쳤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전격 사퇴함에 따라 이집트 정국은 앞으로 이집트 군부의 주도 아래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 지도부간의 정치개혁 협상을 통해 과도정부 구성작업이 추진될 전망이다. CNN은 이집트 군 최고위원회가 무바라크의 권력을 승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바라크의 퇴진 소식이 전해지자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있던 100만명의 시민들은 저마다 이집트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한 시민은 “시민의 힘으로 무바라크의 장기 독재를 끝냈다.”면서 “오늘은 이집트 시민 혁명의 날”이라고 기뻐했다. 강국진·나길회기자 betulo@seoul.co.kr
  •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무바라크 권력공백… ‘포스트 무바라크’ 안갯속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시위대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정국의 키를 쥐었던 군부가 권력을 물려받게 됐다. 군부가 11일과 12일(현지시간) 무바라크와 시위대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벌이다 결국 시민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30년간 집권한 독재자의 퇴진을 바라는 민심을 거스르지 않고 혼란을 막는 방향으로 군의 최종 입장이 정해지면서 18일간 계속된 반정부 시위는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집트 군부는 12일 오전까지만 해도 무바라크 대통령의 편에 서는 듯했다. 군은 11일 ‘코뮈니케 2’로 이름 붙여진 성명을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반기에 치러질 대선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약속하겠다는 뜻도 제시했다. 10일 밤 무바라크 대통령이 TV 연설을 통해 밝힌 정치개혁 일정을 뒷받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모양새였다. 이로써 군이 갖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던 ‘시위대와의 조속한 공조를 통한 무바라크 퇴진 압박’이라는 카드를 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군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굳건한 버팀목으로 계속 남아 있을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집트 군부는 ‘코뮈니케 2’ 성명 발표에 앞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을 앞두고 내놓은 ‘코뮈니케 1’ 성명에서는 “군은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었다.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이 군통수권자인 무바라크 대통령을 배제한 채 군 최고회의를 소집하고 내놓은 성명인 만큼 일정부분 무바라크 대통령과도 거리를 둬 나갈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됐다. 결국 군은 11일 재개된 반정부 시위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지자 무바라크를 밀어내고 정권을 교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이집트 전문가인 마이클 루빈은 “군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시민을 지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 출신이 아닌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하면서 군부를 압박해 반감을 샀기 때문이다. 군에 중요한 것은 ‘무바라크 정권의 수호’가 아니라 ‘군사 우위 체제의 유지’이기 때문에 굳이 대세를 거스를 이유는 없다는 분석이다. 또 이집트군이 징병제를 택하고 있어 젊은 군인들이 거리에 나선 친구와 이웃을 향해 발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군부가 무바라크 대통령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을 배제한 채 군 최고회의를 연 것을 두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군사 쿠데타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로즈마리 홀리스 런던시립대 교수는 “군 내부가 아미 둘로 쪼개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무바라크 대통령과 친밀한 군 고위부와 시위대를 지지하는 소장파 간 사이가 벌어졌거나 계급과 관계없이 강경파와 온건파 간 분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1일 반정부 시위에는 대위에서 중령에 이르는 중간급 간부 상당수가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시위대 “100만 항의” vs 정부 “軍 강경진압”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및 중산층이 대거 총파업에 가담하며 거리 시위에 속속 합류하는 데다 버스 운전사, 운하 근로자 등 노동자들의 총파업 및 시위 참여도 확산돼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다시 급류를 타고 있다. 시위대가 11일 금요 예배 후 ‘100만명 항의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예고하자 정부는 군 개입을 경고하는 등 양측의 양보 없는 대치가 점점 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와 정부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집트 외교부가 10일 미국의 계엄령 즉각 해제 요구를 비판하면서 미국과 이집트 관계도 삐걱대는 등 그동안 유혈 충돌을 막아왔던 안전판들이 흔들리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10일 “수천여명의 의사들이 이날 파업에 참여해 수도 카이로 중심부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방송은 “변호사 3000여명도 변호사 회관에서부터 타흐리르 광장까지 시위를 벌였으며 상당수가 시위대에 합류했다.”고 전했다. AP는 노동조합들의 총파업 호소가 있은 지 이틀째인 이날 전국에서 6만여명의 운전사 등이 파업에 참가했으며 수만명의 공장 노동자도 이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그동안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무바라크 퇴진 운동은 시위 16일째인 9일(현지시간) 광장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카이로의 시위대는 의회와 정부 건물 주변에서 의회 해산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지역 곳곳에서도 수백명에서 수천명 단위의 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수에즈 운하 근로자 6000명이 파업하는 등 그동안 관망하던 노동조합까지 동참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 대표들 간 대화 이후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던 시위 분위기가 11일로 예정된 100만명 항의 시위를 앞두고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정부는 군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시위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날 술레이만 부통령이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퇴진은 군 쿠데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발언한 데 이어 이날엔 아메드 아불게이트 외무장관이 미 공영 PBS와의 인터뷰에서 군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뒤 “군이 들어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금요 시위 때는 군이 “시위대에 발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최악의 사태를 면했지만, 이번 시위는 ‘피의 금요일’로 얼룩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개헌위원회는 대통령 출마 자격 요건을 극도로 제한한 76조와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두지 않은 78조를 삭제하는 등 헌법 조항 6곳을 손질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인권단체와 미국이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긴급조치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시위대와 정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미국이 이집트 정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자 이집트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야권 인사와의 대화를 포함한 미국의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하자 게이트 외무장관은 “미국의 뜻을 강요하지 말라.”며 ‘발끈’했다. 이에 백악관은 게이트 장관 발언 직후 “이집트 정부는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집트 정부의 자제와 개혁 수준이 (원조 문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원조 삭감 카드’를 다시 꺼내들기도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퇴진 임박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시위가 17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흐메드 샤피크 이집트 총리가 10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곧 모든 상황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BBC는 무바라크의 퇴진 발표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군 고위 간부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국민들의 요구를 모두 다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집권 여당인 국민민주당의 호삼 바드라위 사무총장은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밤 아마도 대국민 연설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군 관계자들은 11일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AP 통신도 이날 이집트군과 집권당 간부들의 말을 인용,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내용의 발표를 곧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집트군은 또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적법한 요구를 지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음을 AFP 통신은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자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에 머물지 독일 등 제3국으로 망명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권력을 인계받고 헌법 개정 및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이날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및 중산층이 대거 총파업에 가담하며 거리 시위에 속속 합류하는 데다 버스 운전사, 운하 근로자 등 노동자들의 총파업 및 시위 참여가 확산됐다. 시위대는 또 11일 금요 예배 후 ‘100만명 항의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압박했다. 또 당초 정부는 군 개입을 경고했으며 이집트 외교부도 미국의 계엄령 즉각 해제 요구를 비판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개헌委 구성” 무바라크, 개혁요구 처음 실행

    궁지에 몰린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당근과 채찍’을 함께 빼들며 정국 수습에 나섰다. 개헌위원회를 구성하며 시민들의 개혁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동시에 “시위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나 간다.”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8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검토할 위원회와 정치 개혁 과정을 검토할 독립위원회 등 2개의 기관 구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두 위원회의 설치는 지난 6일 정부와 야권이 합의한 사안으로 무바라크 정권이 정치개혁 약속을 실행에 옮긴 것은 처음이다. 개헌위원회는 상소법원장을 위원장으로 10명의 수석 판사 및 헌법 전문가들로 구성할 예정이다. 또 오는 9월 치러질 대통령선거의 입후보 자격 완화와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의 신설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무원 임금인상 등 유화책을 잇달아 내놓은 정부가 실질적인 개혁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며 민심 달래기에 속도를 붙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일째 반정부 시위의 열기가 사그라지지 않자 정부는 그동안 참아 왔던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시위대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이집트 민·관영 언론사 책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타흐리르 광장에서 연일 계속되는 시위를 참고 견디기가 어렵다.”면서 “시위가 조속히 끝나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술레이만 부통령이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 가며 시위대를 압박한 것을 두고 AP통신은 정부의 조바심이 반영된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간담회에서 민주화 세력과의 대화 의지를 재차 강조한 술레이만 부통령은 “(시민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면서 “(쿠데타는) 계산되지 않은 경솔한 단계이며 많은 부조리를 낳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언론사 대표들이 발언 취지에 대해 묻자 군사 쿠데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집권 준비가 되지 않은 세력이 국가 기관을 전복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현재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시위대와 몇몇 위성방송들이 이집트를 모욕하고 비하해 시민들이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불쾌해하면서 “시민 불복종 행위는 사회를 매우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참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체제의 종말은 없을 것이며 무바라크 대통령이 즉각 떠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이집트의 영웅’ 그호님, “죽을 준비 돼 있다”

    “이집트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이집트 반 정부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난 후 민주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구글 임원 와엘 그호님은 8일(현지시간)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내 위치에서 난 잃을 게 많다.”면서 “그러나 그 누구도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호님은 “난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가장 멋진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다.”면서 “꿈을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하야와 퇴진을 거부하고 있는 현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극도로 강력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으로 화제가 옮겨지자 “나와 내 동료를 모두 납치하고 감옥에 가둬라. 우릴 죽이고 원하는대로 해보라.”고 일갈한 뒤 “당신들은 30년간 이 나라를 망쳐놨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시위기간 사망한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호님은 최근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반정부 시위대의 충돌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범죄’라고 규정했다. 또 협상으로 사태를 종결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색엔진 구글의 중동·북아프리카 담당임원인 그호님은 무바라크 퇴진 시위 발생 초기인 지난달 28일 경찰에 연행됐지만 지난 7일 풀려나면서 시위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특히 그가 경찰에 의해 폭행당해 사망한 인권활동가 칼레드 사이드를 추모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 모두 칼레드 사이드’의 운영자로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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