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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셸 호화휴가 구설…스페인 고급빌라 60개 빌려

    미셸 호화휴가 구설…스페인 고급빌라 60개 빌려

    ‘서민 퍼스트레이디’를 표방해온 미셸 오바마 여사가 스페인에서 호화판 휴가를 보낸 것을 두고 구설에 올랐다. 뉴욕 데일리뉴스 인터넷판은 6일(현지시간) 미셸 여사를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막내딸 사샤(9)와 가까운 친구 40여명을 대동하고 ‘사적인 휴가’를 떠난 미셸 여사는 스페인 유명 휴양지 마르베야에 있는 최고급 빌라 객실을 한꺼번에 60개나 빌렸다. 백악관은 이번 스페인 여행이 사적인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셸 여사가 탄 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투’의 운항 비용은 물론 70여명에 달하는 비밀경호국 요원 수송·숙박비는 고스란히 미국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꼬집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DJ 파란만장 삶·정치역정 담은 자서전 출간

    DJ 파란만장 삶·정치역정 담은 자서전 출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정치역정을 담은 ‘김대중 자서전’이 29일 출간됐다. 자서전은 ‘출생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를 엮은 1권과 ‘대통령 취임부터 서거 직전까지’를 기록한 2권으로 나뉘었다. 2004년부터 김 전 대통령이 41회에 걸쳐 구술한 녹취와 일기 등을 바탕으로 쓰였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어머니 명예 지켜드리려 출생에 관해 침묵 나는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감춘다 해서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화해하셨을 것이다(친모인 고(故) 장수금 여사가 본처가 아니었고, 자신이 ‘서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나를 죽이려 했던 박정희, 나를 찾아온 박근혜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2004년 8월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박 대표를 맞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 아버지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야권 후보 단일화,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선거가 끝나자 국민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많은 민주 인사들의 희생과 6·10항쟁으로 어렵게 얻은 선거에서, 그것도 오랜 독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치른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졌다.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지난 일이지만 너무도 후회스럽다. #“김 위원장, 일 처리 좀 시원하게 합시다” 김 위원장이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과거 7·4공동성명도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과 김영주, 이런 식으로 한 예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김정일 국방위원장)를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 “그때는 이후락씨가 왔지만 지금은 대통령인 내가 직접 와서 정상회담을 한 것입니다. 일 처리를 좀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임동원 원장이 거들었다. “선언문의 서두에는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했다.’는 표현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김 위원장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선장군 좀 시켜 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비로소 김 위원장이 웃었다. 정상회담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저녁 7시였다. 합의문은 ‘남북 공동 선언’으로 하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 운영이 걱정됐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봐도 토건업식 밀어붙이기 기운이 농후했다. 통일부, 과기부, 정통부, 여성부 등이 폐지 및 축소되는 부처로 거론됐다. 내가 보기로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먹여 살릴 부처였다. 대통령 후보로 나를 찾아왔을 때는 햇볕정책에 공감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았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 왔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정·부통령제였다. 지금도 정·부통령제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대통령제하에서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 후로도 독재자나 그 아류들이 출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5년 단임제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비로소 그의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 노 대통령은 고향 앞산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검찰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노 대통령의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을 마치 소탕 작전을 하듯 조사했다. 노 대통령 장례위원회 측에서 내게 조사(弔辭)를 부탁했다. 나는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반대한다고 다시 알려 왔다. 내가 준비한 조사는 결국 읽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그의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 기념관/박대출 논설위원

    1963년 11월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미국인들은 애통에 빠졌다. 한 달 뒤 뉴욕국제공항(New York International Airport) 당국은 공항 이름을 바꿨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후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의 관문은 JFK로 불려지고 있다. 암살 현장인 남부 도시 댈러스엔 추모 기념관이 곳곳에 들어섰다. 존 F 케네디 메모리얼광장엔 케네디 기념비가, 저격 장소엔 식스 플로어 박물관이 세워졌다. 미국의 워싱턴 D C엔 대통령 저택인 백악관이 있다. 일대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적인 관광코스다. 국회의사당, 대법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국립미술관 등이 즐비하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역대 대통령 4명을 기리는 시설도 자리잡고 있다. 미국 국부(國父)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 기념탑,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케네디 센터 등이다. 우리는 어떤가. 1950년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재임시 우상화는 정도를 더해갔다. 지폐와 동전에는 얼굴을 새겼다. 생일 때 가정에선 태극기를 달았다. 1955년 3월26일. 80회 생일 땐 정점에 달했다. 서울운동장 기념식에는 부통령과 외국 사절, 한·미 장성 등이 참석했다. 세종로에서는 3군 사열이 진행됐다. 5년 뒤 4·19혁명을 자초했다. 시민들은 서울 탑골공원과 남산으로 달려갔다.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새끼줄로 끌어내렸다. 독재권력 응징은 헌정사의 단절로 이어졌다. 50년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은 9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을 기리는 시설은 빈약하다. 이 전 대통령은 별장이던 제주도 화락관과 강원도 화진포 기념관, 사저이던 이화장(梨花莊)이 전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북 구미 생가만 보존돼 있다. 그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전시관과 서울 김대중 도서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등이 고작이다. 그러다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계획이 의결됐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8년 만에 재개될 계기를 찾았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은 민간 주도다. 정부는 사업비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그래서 뒤편에 머물기 쉽다. 미래 전향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헌정사엔 영광과 오욕이 공존한다. 5년짜리 정권의 자의적인 잣대로 들이댈 일이 아니다. 단절의 역사를 끊고 화해와 통합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러자면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곳에 잘한 기록도, 못한 기록도 남기면 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美, 2014년까지 아프간에 치안권 이양

    美, 2014년까지 아프간에 치안권 이양

    미군 등 연합군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치안권이 2014년까지 아프간 정부에 완전히 이양된다. 올해 말부터 각 지역별로 치안권을 이양하기 시작해 아프간 정부에 치안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AP통신은 20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는 아프간 공여국 회의가 열려 이 같은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전쟁의 실질적인 주체인 미국을 비롯한 40개국 외무장관과 70명의 국제기구 대표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아프간 주둔 연합군의 철군 등 ‘아프간 출구 전략’이 논의됐다. 이번 회의 공동성명 초안에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4년 말까지 점진적으로 안보 권한을 아프간 정부에 이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초안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치안권의 이양에 앞서 아프간 34개주별로 안보 및 치안 상황을 점검하고, 지역별 치안권 이양 시점을 결정하게 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엔 치안권 이양 진행시기에 유지될 연합군 규모 등이 언급되지 않았다. 이양 기간 동안은 물론 2014년 이후에도 상당 규모의 연합군이 계속 주둔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이와 관련,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기고문에서 “무장세력들은 우리의 철수를 기다리겠지만 우리는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아프간에 머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의 출구 전략이 바뀐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치안권 이양 마무리 시점인 2014년 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철군 시작시점 2011년 7월에서 3년이나 지난 뒤이기 때문이다. 미군의 철수가 늦춰지거나 혹은 철군이 부분적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조지프 바이든 미 부통령은 지난 18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여름 아프간을 떠나는 미군 병력은 수천명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아프간 출구 전략의 변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열어 놓은 셈이다. 한편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이 출구전략 일환으로 제3자를 통해 탈레반 수뇌부와의 비밀협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19일 백악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과의 협상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변함이 없지만 물밑에서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앞세워 탈레반과의 대화를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이 관리는 “워싱턴의 기류 변화가 있다. 군사적인 해결책은 없고 이는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그것은 바로 탈레반 지도부와의 대화”라고 지적했다. 미국, 아프간, 터키에서 이뤄지고 있는 논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미국 정부가 이미 탈레반에 의견을 타진해 오고 있다고 말한다. 협상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통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부고]노벨평화상 수상 美 기후학자 스티븐 슈나이더

    [부고]노벨평화상 수상 美 기후학자 스티븐 슈나이더

    지구온난화에 관한 국제연구단 소속으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2007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미국 기후학자 스티븐 슈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가 19일(현지시간) 타계했다. 65세.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슈나이더 교수는 희귀암을 앓고 있었지만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그는 스웨덴 스톡홀름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숨을 거뒀다. 슈나이더 교수는 37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기후변화가 미국의 야생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정치 및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수많은 책을 썼으며, 농업분야와 보험산업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정책 결정을 돕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고어 전 부통령은 그가 “많은 성과를 낸 연구자이자 작가였고 학술지 ‘기후변화’의 공동설립자이자 훌륭한 소통가였다.”면서 “그가 기후학 발전에 기여한 바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한국 그린기업과 美경제 살릴 것”

    ●구회장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다가와 서툰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시에서 열린 LG화학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아주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백명이 일할 수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했고, 구 회장은 “뜻깊은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16일 LG화학에 따르면 오후 1시15분쯤 오바마 대통령이 도착하자 행사장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지역 주민들을 포함해 400여명이 초대돼 행사장은 축제의 분위기로 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축사에서 “이곳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공장건설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서 “이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현장으로, 미국 경제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또 “배터리 제조기술의 발전은 향후 수년 동안 비용을 70%가량 떨어뜨릴 것”이라면서 “이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을 줄이게 해 결국 미국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LG화학의 배터리가 장착된 포드의 전기차 ‘포커스’를 직접 시승하고 행사장을 돌면서 깊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친환경 경제 패러다임 본격 시동 전기차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강조해 왔던 친환경 정책과 맞닿아 있다. 즉 자신이 강조해 온 친환경 기술을 통해 위기에 빠진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부흥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미국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정책 기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정책이 순항 중이라는 것을 알리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인 셈이다. LG화학이 GM에 이어 최근 포드와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마쳤다는 점도 대통령의 기공식 참석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미시간주 미들랜드시에서 열린 한·미 합자사인 ‘다우코캄’의 2차전지 공장 기공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참석했다. 따라서 공장 규모나 투자액이 더 작은 LG화학 공장 기공식에 도리어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LG화학으로선 높은 기술력과 사업 능력을 전 세계에 인정받은 셈이다. 오마바 대통령의 기공식 참석 소식을 듣고 현지로 날아간 구본무 회장은 최근 글로벌 전자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피곤한 심신을 한순간에 날려보낼 수 있었다. 이날 그의 입가에선 미소와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LG화학, GM·포드와 공급계약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3억달러(약 3600억원)에 이르는 총투자액의 절반인 1억 5000만달러를 미국 연방정부가 추진 중인 전기차 개발·양산정책에 따라 현금으로 지원받았다.”고 밝혔다. LG화학은 또 1억 3000만달러는 미시간주에서 세금 감면을 받아 공장 건설에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었다. LG화학은 50만㎡ 부지에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3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전기차 6만대(하이브리드카 기준 20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를 생산하게 된다. 이로써 LG화학은 2015년까지 매출 2조원, 세계 시장점유율 20%를 달성할 계획이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우리 다시 약혼했어요”

    “우리 다시 약혼했어요”

    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비혼모 딸이 파혼한 옛 남자친구이자 아이 아버지와 결혼하기로 했다. 미국 연예전문 주간 US는 14일(현지시간) 페일린의 딸 브리스톨(19)이 18개월 된 아들 트립의 아버지인 레비 존스턴(20)과 재결합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두 사람이 양육 문제를 논의하다가 재결합, 2주 전에 다시 약혼했다면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표지에 담았다. 브리스톨은 “부모의 허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것(약혼)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페일린 부부는 성명을 통해 “19세가 된 브리스톨은 이제 젊은 성인”이라면서 “우리는 당연히 자녀들에게 최선인 것들을 원한다.”고 전했다. 고교 동창생이었던 브리스톨과 존스턴은 2008년 아들을 낳고 약혼했지만 지난해 파혼했다. 이후 양육권을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존스턴은 “페일린이 알래스카 주지사직에 대해 불만을 말하곤 했다.”고 말하는 등 페일린 가족에 대한 험담을 해왔다. 이에 대해 존스턴은 자신이 한 얘기는 거짓말이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체니 전 美부통령 인공심장 이식수술

    딕 체니(69) 전 미국 부통령이 최근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1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체니 전 부통령 측은 이날 성명을 통해 “수술은 매우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며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수술은 지난주 교외의 한 병원에서 이뤄졌으며 체니는 현재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37세부터 심장질환을 앓기 시작해 지금까지 5차례나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그는 이번에 이식한 좌심실 보조장치(보조 인공심장) 덕분에 활동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체니에게 이식된 좌심실 보조장치는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원활한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한 보조방치로 보통 심장 이식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임시로 부착하는 장치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美 “스파이 교환 승자는 우리”

    미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맞교환 승자는 누구? 오스트리아 빈에서 9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이뤄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스파이 맞교환에 대해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진영에서 자신들이 ‘승자’라는 자평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말을 아끼고 있다. 양적으로 따지면 승자는 러시아다. 미국이 넘겨준 러시아 스파이는 10명이고, 러시아가 넘겨준 서방측 정보요원은 4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서방 진영이 넘겨받는 스파이는 수가 적은 대신 훨씬 더 비중 있는 인사들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정보기관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맞교환의 승자는 미국과 영국이라고 규정했다. 이번에 러시아가 석방한 스파이 중에는 유럽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스파이들의 신원을 영국 정보기관에 넘겨준 러시아 육군 대령 세르게이 스크리팔, 핵잠수함 기술 등 군사기밀을 미국으로 빼돌린 이고르 수티아긴 등이 포함돼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도 이날 제이 레노가 진행하는 NBC방송 ‘투나이트쇼’에 나가 “우리가 돌려받은 4명은 대단한 사람들이고, 추방한 10명은 오래 활동했지만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10일자 가디언은 이번 교환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이 신속하게 이뤄진 것은 미·러 양측의 이 같은 ‘대치’가 냉전 때와 달리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이번 스파이 맞교환에서 “분명한 승자는 없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양측이 냉전 이후 최대 스파이 맞교환 작업을 효율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협력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스파이 교환 이후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러시아 3대 뉴스 통신 등 주요 언론들도 지난 2주 동안 첩보영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사실상 이번 사건에 대해 보도통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는 10명의 러시아 스파이들을 체포하기 2주 전에 이미 스파이 교환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BBC가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여권 쇄신 오바마 설득 방식서 배워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개혁 행보가 부럽다. 100년 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의료개혁을 성공시켰다. 월가의 저항을 물리치고 금융개혁도 했다. 최근 이민개혁안과 교원평가를 통한 교육개혁에도 나섰다. 미국은 쉼없이 ‘개혁 프로그램’을 전진시키고 있다. 반면 우리는 내세울 개혁 프로젝트가 많지 않은데도 그나마 야권 등의 저항에 부딪혀 있다. 정치 환경 등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4대강 문제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 등으로 사회가 떠들썩해도 여권은 속시원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여권의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의 정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권은 첫째,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소통과 설득’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는 의료개혁 추진시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했다. 반대파 의원을 설득하고자 전용기를 이용하고 외국 순방도 연기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의원이 100여명에 이른다니 대단하다. 이쯤 되면 친이, 친박 타령이나 하는 한나라당이 부끄러워진다. 여당 내에서조차 소통이 없는 현실에서 국회의 세종시 수정안 부결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어제 청와대 개편에서 시민사회 및 대국민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사회통합수석실이 신설된 것은 소통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해서일 것이다. 둘째, 조직적인 ‘개혁팀’ 의 가동이 필요하다. 민간인 사찰의 배후로 지목된 ‘영포회’ ‘선진국민연대’와 같은 비선조직이 아닌 공조직을 움직여야 사단이 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매뉴얼 비서실장과 액설로드 선임보좌관과 같은 정치적 이상과 실행력을 함께 갖춘 이들을 뛰게 했다. 보고받고,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소통하는 실용적이자 개혁적인 팀들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는 필요하다. 셋째, 국회는 국정의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낸시 펠로 민주당 하원의장 등을 의료개혁 주역으로 뛰게 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의회에 가서 노상 점심 식사를 한 것도 의료 개혁을 위해서다. 어려운 국정 과제일수록 소통과 설득이라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韓-SICA “한국기업 中美진출 확대”

    韓-SICA “한국기업 中美진출 확대”

    이명박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제3차 한·중미통합체제(SICA) 정상회의에 참석, 한국 기업의 중미 진출 확대를 적극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13개항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SICA는 1993년 파나마·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 등 중미 8개국이 지역경제 통합을 총괄 조정하기 위해 발족한 기구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SICA 사이에 있는 태평양은 더 이상 양측 간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면서 “SICA 회의가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에서 열리기를 기대하며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280여개의 한국 기업이 중미 지역에서 현지인 10만명을 고용, 화력 및 수력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한·SICA 교역규모는 2006년 40억달러에서 지난해 67억달러로 급증했다. 이 대통령은 중미 5개국 정상과는 따로 연쇄 양자회담을 가졌다. 라파엘 알부르케르케 도미니카 부통령을 시작으로 알바로 콜롬 과테말라 대통령, 라우라 친치야 코스타리카 대통령, 마우리시오 푸네스 엘살바도르 대통령, 포르피리오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을 차례로 만났다. 이 대통령과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태권도’가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로보 대통령은 지난 3월 주한 온두라스 대사로 내정됐다가 이중국적 문제로 아그레망이 철회됐던 한국계 강영신(57)씨의 남편 고(故) 송봉경씨로부터 태권도를 배운 국기원 공인 2단의 유단자다. 로보 대통령은 “이른 시일 안에 한국에 가서 빨리 3단을 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영신씨의 온두라스 대사 임명 철회에 대해서는 “사범님의 부인을 임명하려 했는데, 국내법 때문에 되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대신 (강씨의) 사위를 보냈다. 한국에 대한 나의 호감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온두라스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20대 여성 한지수씨와 관련, “한국 젊은 여성이 현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각별히 관심을 갖고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로보 대통령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으며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시내 한 호텔에서 파나마 동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대통령은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두 나라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영 파나마 한인회장은 “대통령의 파나마 방문으로 한인들은 물론 한국 제품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파나마시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CEO출신 두 정상 “FTA 조속 체결”

    이명박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두 번째 순방국가인 파나마를 공식 방문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파나마를 방문한 것은 1962년 양국 수교 이후 48년 만에 처음이다. 파나마 현지 언론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텔레메트로· 테베에네(TVN)등 파나마 주요 방송은 이 대통령의 도쿠멘 공항도착 뉴스부터 현장 생중계로 방송했다. 최대 일간지 ‘라 프렌사’는 이 대통령과의 회견 내용을 28일자 1면 기사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유력 일간지 ‘파나마 아메리카’는 ‘고학소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라는 제목으로 이 대통령의 성공 신화와 인생 역정을 소개했다. 다른 주요 신문들도 이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한국 관련 대규모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이 대통령과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베로칼 파나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두 사람 모두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형식파괴에 이어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회의로 진행됐다. 지난해 7월 취임한 마르티넬리 대통령은 파나마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슈퍼99’등 많은 기업을 소유한 사업가 출신이다. 예정에 없던 단독회담이 즉석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고, 확대회담이 30분간 이어졌다. 13개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과 파나마공화국의 우호관계 발전을 위한 공동선언문’도 채택했다. 두 정상은 한·파나마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체결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대통령이 현재 3개월인 파나마 진출 한국기업인의 체류기간을 1년 이상으로 연장해줄 것을 요청하자 마르티넬리 대통령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두 나라 교역량은 55억달러로 파나마는 한국의 제3위 중남미 교역국이다. 마르티넬리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 북한의 무력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46명의 희생자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도 전했다. 이 대통령은 29일 한·중미통합체제(SICA)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과테말라·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온두라스 정상과 회담을 갖는 데 이어 도미니카 부통령도 만난다. 파나마시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美 지재권 불량 블랙리스트 작성

    미국 정부가 22일(현지시간) 범정부 차원의 지적재산권 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의약품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 대책을 발표하면서 특히 중국을 겨냥해 ‘해적행위’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프 바이든 미 부통령은 이날 정부 각 기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61쪽에 달하는 지재권 보호방안을 발표하면서 “해적행위는 말 그대로 절도 행위이며, 절도 행위는 어디에서든 예외 없이 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정부 각 부처가 마련한 지재권보호방안(초안)은 영화나 음악을 불법으로 내려받는 웹사이트들을 단속하고 불법 복사 소프트웨어나 제품의 국내 사용을 제한하며, 불법 복사행위 등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정부들을 명시하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 지재권특별대책반의 빅토리아 에스피넬 조정관은 그동안 소프트웨어나 음악, 기타 제품의 불법 복제·유통을 용인해 온 것으로 알려진 중국이 지재권과 특허 보호 차원에서 면밀한 감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스피넬 조정관은 이어 미국 업체들이 해외 시장에서 지재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존의 노력을 포괄적으로 재검토하게 될 것이며 특히 중국에 주안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정부의 지재권 보호방안은 국토안보부와 법무·상무·농무·보건복지부 및 백악관과 무역대표부 등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하극상’ 美 아프간사령관 사의표명

    ‘하극상’ 美 아프간사령관 사의표명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자질을 비난하는 ‘하극상’ 발언을 한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백악관이 발언을 문제 삼아 매크리스털 사령관을 전격 소환함에 따라 경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이미 구두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23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찾아 본인의 발언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사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이와 관련, 파문에도 불구하고 경질되지 않길 희망한다고 밝혔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시 지휘공백을 우려하며 “기사는 기사일 뿐”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오바마의 전쟁’으로까지 일컬어지는 ‘테러와의 전쟁’을 총괄하고 있는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13개월 만에 경질될 경우 아프간 전쟁에 대한 전면적인 전략 수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인터뷰한 잡지 ‘롤링 스톤’의 내용에 대해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와 직접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만 답변했다. 앞서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매우 화를 냈다.”고 전하며, “경질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혀 경질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게이츠 국방장관도 성명에서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심각한 실수를 했으며, 이번 사안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면서 “인터뷰에서 거론된 인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칼 레빈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매크리스털 사령관의 발언이 정책 불일치를 의미한다면 경질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인터넷판을 통해 먼저 공개된 롤링 스톤의 ‘통제불능의 장군’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는 측근의 말을 인용,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처음 만난 뒤“현안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본국의 달갑지 않은 방침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매크리스털을 측면 지원해야 할 위치에 있는 아이켄베리 주아프간 대사도 매크리스털 사령관에게는 미더운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기사에서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4성 장군 출신인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 담당특사 등을 거명, 직·간접적으로 폄하했다.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파문이 커지자 서둘러 성명을 내고 “오바마 대통령과 안보분야 참모진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보도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명과 함께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역부족이었다.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경질 위기에 놓이면서 탈레반 소탕의 분수령이 될 미군과 NATO군의 칸다하르 대공세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편 미 공화당은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오바마 대통령의 ‘나약함’을 부각할 태세를 갖춤에 따라 아프간 전쟁 수행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될 것 같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오바마, 원유유출 사태때 웬 라운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역사상 최악의 환경 오염사태인 걸프만 원유유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일(현지시간) 골프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맹비난을 받고 있다. 앞서 백악관은 이번 사고의 책임자인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토니 헤이워드 최고 경영자(CEO)가 휴가를 내고 이날 요트 경기를 관전한 것을 비난했지만, 정작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2일에도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 등과 골프를 해 구설에 올랐고, 일주일만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미 정치전문매체인 ‘더 힐’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 골프장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 마빈 니콜슨 백악관 출장담당 국장, 데이비드 카츠 에너지부 홍보담당국장과 함께 5시간 동안 골프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사실이 알려지자 “백악관이 BP 헤이워드의 요트 경기 관람을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공화당은 대통령의 골프 회동에 대해 비난광고를 내보낸 데 이어 다각도의 파상공세에 나설 태세다.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에도 항공기 추락사고로 숨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항공 대란으로 불참, 일정이 취소되면서 생긴 시간에 골프를 치러 가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한편 20일 공개된 BP의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악의 경우 하루 원유 유출량이 5만 5000~1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미 지질조사국(USGS)이 추정한 하루 최대 유출량인 4만배럴보다 최대 2.5배 늘어난 양이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에드워드 케네디도 평생 암살협박”

    “에드워드 케네디도 평생 암살협박”

    미국 케네디 가문의 3남으로 지난해 뇌종양으로 타계한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이 두 형들과 마찬가지로 생전에 수많은 암살 협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14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352쪽 분량의 케네디 전 의원 관련 자료에 따르면 케네디 전 의원은 피격으로 숨진 두 형들처럼 자신도 암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1980년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하는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폈다. 암살 협박은 익명의 개인뿐만 아니라 백인 우월단체인 KKK, 민병대 조직 등 다양한 경로로 이뤄졌으며, 일부는 케네디 전 의원의 북아일랜드 정책에 관한 입장에 대한 불만으로 살해 위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박은 주로 편지로 전달됐으며 “대통령이나 부통령에 출마하지 마라. 출마한다면 너 역시 죽게 될 것이다. 우리는 케네디 집안을 증오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협박 편지는 둘째 형 로버트 케네디 전 의원의 미망인 에설에게도 보내졌고, 케네디 형제의 아버지인 조지프 케네디에게도 “당신의 고통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테드(케네디 전 의원의 애칭)가 다음 차례”라는 내용의 편지가 배달되기도 했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살해 위협 외에도 케네디 형제들이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 등과 함께 뉴욕 캐롤린 호텔에서 ‘문란한 파티’를 벌였다는 메모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이 ‘자유함대 습격’ 국제조사 거부

    이 ‘자유함대 습격’ 국제조사 거부

    이스라엘군이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해안에서 잠수복 차림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탄 선박을 공격해 최소 4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문제해결을 위해 중재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스라엘은 6일 국제 구호선 ‘자유함대’ 습격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유엔의 국제조사위원회 구성 제의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따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 구호선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해 미국과 터키, 이스라엘 등이 참여하는 국제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해사법 전문가인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를 위원장에 추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의 고위 소식통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구호선 공격 사건의 진상 규명에는 찬성하지만 이스라엘 병사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지구 해안에서 잠수복 차림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탄 선박을 공격, 최소 4명이 숨지고 1명 이상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이 이스라엘로 침투해 테러를 감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번 습격 사건으로 9명의 자국민이 숨진 터키는 이날 이스라엘의 공격을 국가가 자행한 테러로 규정,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중동 지역에서 자행된 국가 테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스라엘에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외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터키 정부의 요구는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면서 사과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이란은 이스라엘군이 ‘자유함대’ 습격에 이어 지난 5일 아일랜드 국적의 1200t급 구호선 ‘레이철 코리’호마저 나포하자 혁명수비대를 보내 가자행 구호선을 호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대변인 알리 시라지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구호선을 에스코트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만일 최고지도자가 호위 명령을 내린다면 혁명수비대는 구호선의 안전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군의 경고에 이어 이란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는 7일 이번 주 안에 2척의 구호선을 가자지구로 보낼 계획임을 밝혀 양측 간 무력 충돌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이날 이집트 홍해 연안의 한 리조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후 “미국과 이집트가 가자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은 “인도주의적, 경제적, 안보적 문제를 고려해 가능한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앨 고어 전 美부통령 부부 40년 결혼생활 마침표

    앨 고어 전 美부통령 부부 40년 결혼생활 마침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그의 아내 티퍼 고어가 40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고어 전 부통령은 1일(현지시간) 친지들에게 메일을 보내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사생활을 존중해주기 바란다. 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8년간 부통령을 지낼 때만 해도 고어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이미지가 강했고 이는 르윈스키 스캔들 등으로 위기를 겪던 클린턴 대통령 부부와 뚜렷한 비교 대상이 됐다. 2000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뜨거운 키스를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AP통신은 측근인사들의 말을 인용해 고어 전 부통령이 워싱턴 정가에서 한 발 물러난 뒤에도 지구온난화방지 운동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전개하는 동안 티퍼와 따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전한 뒤 두 사람이 헤어지기로 한 데에는 혼외정사나 불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앨고어 美 전 부통령 40년만에 이혼 왜?

    앨고어 美 전 부통령 40년만에 이혼 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부부가 40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연예주간지 US매거진은 지난 1일(현지 시간) 엘 고어 부부가 결혼생활 40년만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앨 고어 전 부통령(62)과 아내 티퍼 고어 여사(61)는 이혼 소식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알렸으며 “오랜 기간 신중하게 고려한 끝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8년 간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정계 은퇴 이후에도 환경문제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해온 그는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의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에 출연해 2007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또 자신이 설립한 커런트 TV 소속 미국인 여기자들이 최근 중국 국경지대에서 북한군에 체포되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기자들의 극적인 석방을 도왔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4명의 자녀가 있다. 200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 지명 수락 연설 당시 두 사람이 나눈 열정적인 키스 장면이 전 세계로 보도되면서 잉꼬부부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서울신문 NTN 뉴스팀 기자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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