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부통령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양의지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장시호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셔틀콕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소아과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840
  • [정병석의 경제산책] 지식정보 독점의 폐해

    [정병석의 경제산책] 지식정보 독점의 폐해

    인쇄술은 지식을 보급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서 종교개혁, 과학혁명, 산업혁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피지에 필사해 책을 만들던 사회에서 책은 값비싼 귀중품이었으며 부피도 커서 웬만한 사람은 소장하기가 불가능했다. 비싼 양피지 책을 소유할 수 있는 지배계층이 자연스럽게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데 금속활자로 종이에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다는 것은 책값을 낮추고 누구나 책을 구매해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의 독점이 깨지고 대중화가 시작된 혁명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서 고려에서 발명됐다. 고려에서는 금속활자를 주조해 ‘상정예문’(1232~1241)을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133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며 이를 유네스코가 2001년에 이미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5’에서 한국의 정보기술(IT) 발전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당시 교황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한 뒤 얻어온 기술’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알게 된 것이라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연구할 때 교황의 사절단을 만났는데 조선을 방문하고 여러 가지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친구가 있어 배웠다고 전했다. 이렇게 앞섰던 고려와 조선의 인쇄술이 왜 빛을 못 보고 1000년간 최고의 기술혁신, 최고의 발명가라는 명예를 독일의 구텐베르크와 그의 금속활자에 빼앗겼을까? 조선의 인쇄술은 애초부터 대량 인쇄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금속활자 하면 대량 인쇄를 생각하기 쉬운데 조선에서는 대량 인쇄가 아니라 다양한 책을 소량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금속활자는 하나의 인쇄판으로 대개 30~40장을 인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리활자를 고정시키는 밀랍으로 만드는 활판이 고정되지 못하고 움직이게 돼 몇십 장 인쇄 후에는 판을 새로 짜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종 임금은 “‘좌전’은 학자들이 마땅히 읽어야 할 서적이다. 금속활자로 인쇄한다면 널리 반포되지 못할 것이니 목판에 새겨 간행하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조선시대의 책값은 매우 비싸 유학자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대학이나 중용의 책값이 논 2~3마지기의 소출에 해당했다고 한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고 지배 관료층이나 지주들만이 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책값이 비싼 이유는 주된 원료인 종이값이 매우 비싸고 활자제조, 인쇄에 소요되는 비용이 매우 큰 데다 대량 인쇄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종이가 그렇게 비쌌던 이유는 종이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이다. 관영 조지서라는 기관에서 중앙정부 소요를 충당했으나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크게 부족해 민간에서 종이를 공물로 차출해야 했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의 공급도 현저히 제한돼 있었다. 조선에서는 민간의 서적 유통을 위한 서점을 개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조정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의하고도 200년이 넘도록 공식적으로는 허가하지 못했다. 베이징에 가는 사신들이 서적 구입을 위해 필수적으로 찾는 곳이 서점 여러 곳이 몰려 있는 ‘유리창 거리’라는 것인데 조선에 이런 서점을 개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존 체제를 수호하려는 지식 독점적인 관료들이 집요하게 반대해 끝까지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사학자는 지배 관료층이 서점 설립을 끝까지 반대했던 이유를 ‘지식을 독점하려던 지배층이 책이 널리 보급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식의 독점은 이렇게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 [단독] [커버스토리] ‘문고리 권력’ 해외에선

    ■미국, 오바마 1기→2기 측근 대폭 물갈이… 권력 남용·구설수 거의 없어 최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마크 리퍼트(41)가 유명세를 타는 것은 그가 버락 오마바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최연소 주한대사이지만 역대 어느 대사보다 힘이 세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그가 오바마 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참모를 맡아 오바마 대통령과 ‘핫라인’이 가능하다는 데 기인한다. 미국에서는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참모들의 상당수가 백악관을 비롯해 국무부·국방부 등 정부 부처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대선 캠프·보좌관 출신 등 측근이나 대선 자금을 지원한 거물급 후원자들에게 주요국 대사·총영사 자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거나 구설에 오르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측근으로서 고유의 역할이 있는 데다 일반적으로 연임을 하는 미 대통령 시스템상 정권 1기에서 2기로 넘어갈 때 측근의 상당수가 바뀌면서 권력의 균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2011년 4월 30일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행사에 특별 연사로 나온 코미디언 세스 마이어스는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을 비롯해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물러난 사실을 들어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들이 다 떠나서 이제는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만 남아 백악관 사무실 복사기 토너를 갈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액설로드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 3인방으로 불리는 피트 라우스와 밸러리 재럿은 백악관 선임고문으로서 여전히 오바마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어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평가받는다. 재럿 고문은 ‘오바마의 누나’ 등으로 불리며 가족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각에서는 재럿 고문이 인사 등에 관여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들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 1기 정권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존 포데스타 백악관 선임고문도 싱크탱크를 운영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문을 하고 있지만 권력을 휘두른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언론인 출신으로 백악관 대변인을 역임했던 제이 카니는 현재 CNN 평론가 등으로 활동 중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은 비서실장, 고문 등 일부에 국한되며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는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파트너를 통해 ‘권력 지도’를 가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수행비서나 친구 등이기 때문에 문고리 권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일본, 여당 내 거대 파벌 총리 막후서 조종 일삼아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한국과 정치 시스템이 달라 총리에게 대통령만큼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비선이나 측근들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다만 일본의 경우 총리 막후에서 여당 거대 파벌이 조종을 하거나 거물 정치인의 비서관이 비리에 연루돼 문제가 된 사례는 간혹 있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총리를 지낸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는 자민당 내 기반이 약해 거대 파벌인 ‘다케시타파’에 휘둘리다 좌절한 케이스다. 1980~1990년대 자민당 최대 파벌인 다케시타파의 ‘곤치쿠쇼’(우두머리인 가네마루 신, 다케시타 노보루, 오자와 이치로의 앞글자를 딴 것)가 가이후 총리를 ‘허수아비’로 앞세우고 배후에서 주요 정책의 방향을 조정했다. 이시하라 노부오 전 관방부(副)장관은 회고록에서 “가이후 총리는 중대한 법안 등을 결정할 때 가네마루, 다케시타 두 사람의 판단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첫 여성 관방장관 임명 등 개혁색을 띠었던 가이후 총리는 정치 개혁 관련 법 통과를 두고 총리의 권리 중 하나인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으나 자민당 내 파벌 영수들의 반대로 궁지에 몰려 결국 스스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이후 곤치쿠쇼는 분열을 거듭하다 일본 3대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로 손꼽히는 1992년 ‘사가와큐빈 사건’에 모두 연루되는 등 일본 정치계에 큰 파장을 미쳤다. 유력 정치인의 최측근이 ‘주군’의 이름값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2009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오자와 이치로의 비서관인 오쿠보 다카노리는 국내외에서 거액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던 니시마쓰건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당했다. 오자와 대표는 이 사건 때문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02년에는 참의원 의장을 지내기도 했던 이노우에 유타카 의원의 정책 비서인 한다 요시오가 지바현 가마가야시의 레크리에이션 시설 공사 수주를 중재해 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노우에 의원이 사퇴했다. 같은 해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가토 고이치의 ‘금고지기’ 역할을 하던 비서 사토 사부로가 공공사업 수주 알선 등 각종 이권에 개입,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가토 전 간사장이 야인으로 돌아간 사건도 있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대북 강경파’ 카터… 한·미 동맹 힘 받고 ‘북핵 압박’ 힘 실린다

    ‘대북 강경파’ 카터… 한·미 동맹 힘 받고 ‘북핵 압박’ 힘 실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새 국방장관에 애슈턴 카터(60) 전 국방부 부장관을 지명했다. 카터 지명자는 상원 인준을 거쳐 최근 사퇴 의사를 밝힌 척 헤이글 국방장관 후임으로 일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카터 신임 국방장관 지명자를 발표했다.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국방부 ‘2인자’로 활동했던 카터 지명자는 1981년 미사일·핵 전문 분석가로 국방부에 들어간 뒤 30여년간 근무한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예일대에서 중세역사·물리학을 공부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 경험은 없지만 국방부에서 차관보·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예산 및 무기조달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그가 상원 인준을 거쳐 국방수장에 오르면 베트남전쟁 후 세대에서 탄생하는 첫 국방장관이자 1994년 이후 국방부 부장관에서 장관으로 승진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내부 승진에 세대교체 등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라크·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 격퇴, 우크라이나 사태,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헤이글 장관과 갈등을 빚었던 백악관과의 조율은 어떻게 할지 등은 그의 앞에 놓인 과제다. 카터 지명자가 장관이 되더라도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한국 관련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3월 방한했을 때 미국의 국방비 삭감에도 한·미 동맹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북 정책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는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 국방부 차관보로 대북 협상에 참여했으며 1999년과 2007년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한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선제·조준타격론을 주장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밝혀 왔다. 포린폴리시는 지난 4월 북한의 도발 위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를 딕 체니 전 부통령,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과 함께 대북 정책의 매파로 분류한 바 있다. 그는 부장관으로 지명된 2011년 9월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WMD)는 동맹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일 뿐 아니라 미국 본토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북 강경론을 천명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부처별 인재 모아 계급장 떼고 토론…한국판 ‘유능한 정부만들기’ 시동을”

    “부처별 인재 모아 계급장 떼고 토론…한국판 ‘유능한 정부만들기’ 시동을”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미국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각 정부 부처에서 유능한 인력들을 1~2명씩 한자리에 주기적으로 모아 난상토론을 시켰다. 정부에 만연한 각종 비효율, 시간만 낭비하는 관행을 도마 위에 올렸다. 쏟아진 따끔한 지적을 바탕으로 대안을 만들고 개혁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 모든 과정을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직접 지휘했다. 다음달 5일 취임하는 권기헌(54·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신임 한국정책학회 회장은 25일 “지금 한국 정부에 필요한 게 바로 그런 작업이라고 본다”며 “행정자치부에 한국판 ‘유능한 정부 만들기 프로젝트’를 공개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3.0을 맡는 부처이기 때문에 주도해서 정부 인재를 모은 뒤 ‘계급장 떼고’ 토론을 시켜 그 결과를 행정개혁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에게 낯선 정부3.0은 정부 중심이었던 정부1.0, 국민 전체를 중심으로 한 정부2.0에서 나아가 국민 개개인을 겨냥한 정책을 가리킨다.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하고 부처 칸막이를 없애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국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궁극의 목표다. 모바일 시대에 따른 새 패러다임을 꾀한다. 권 회장은 정부 혁신 가운데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 정책평가 방식을 꼽았다. “공직 성과관리가 양적 점검과 산출물 중심으로만 가다 보니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하급직 공무원들이 평가에선 손해를 보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행자부에서 우수 공무원을 발굴하고 그들의 사기를 높이도록 의식적으로 애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무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바탕을 다지고 정부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며 “공무원을 일방적으로 관피아라고 매도하는 이른바 ‘관피아 담론’에서 벗어나 일을 잘하는 정부, 공공이익에 복무하는 공무원을 만드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행자부에 주문했다. 권 회장은 평소 “정책학의 존재 의의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있다”는 지론을 펴 유명하다. 수강생들이 학기를 마친 뒤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존엄성만큼은 생생하다”고 되돌아볼 정도다. 권 회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상공부에서 일하다 1995년 학계에 뛰어든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정책학회는 1992년 회원 450명으로 첫발을 뗀 뒤 이제 2000여명을 바라볼 정도로 학계를 대표하는 학술단체다. 회장으로서 각오를 묻자 “재난 안전, 국정 평가, 정부 신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학술행사를 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절반을 넘기는 내년 하계대회 때는 국정을 중간 점검하고 남은 임기에 초점을 둬야 할 전략 과제에 대해 집중 토론할 예정”이라며 “중요한 테마는 역시 정부 신뢰와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노력하는 학회”라고 끝맺었다. 글 사진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헤이글 美 국방장관 사임 ‘오바마 대통령과의 마지막 포옹’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각료 가운데 유일하게 공화당 출신인 척 헤이글(68) 국방장관이 24일(현지시간) 사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이 11·4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패하고 나서 처음으로 단행한 내각 교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과 헤이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이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척은 모범적인 국방장관으로서 진솔한 조언과 충고를 해줬으며 항상 나에게 직언했다”며 “지난달 헤이글 장관이 내게 국방장관으로서의 직무를 마무리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국가안보와 미군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고 치하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으로 네브래스카 주를 대표하는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헤이글 장관은 지난해 초 오바마 2기 내각에 국방 수장으로 합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헤이글 장관의 후임이 지명돼 상원의 인준을 받을 때까지 일단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이글 장관은 “국방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이룬 성취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안정과 안보가 제 궤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2년 남짓한 재임 기간 국방예산 감축에 따른 미군 재편, 이라크·시리아 내 이슬람 수니파 급진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 전략,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 아프가니스탄 철군, 서아프리카 에볼라 퇴치 지원 등을 총지휘했다. 그러나 IS를 상대로 한 공습 작전이나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하는 에볼라에 대한 대책 등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 및 백악관 국가안보팀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對) 시리아 전략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는,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보낸 2쪽짜리 내부 메모가 공개되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행정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헤이글 장관을 사실상 경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상원의원은 이날 “백악관은 ‘헤이글 장관이 그 직책에 맞지 않았다’고 이미 누설했지만, 그는 제대로 직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고위 관리는 “이번 사임 결정 배경에 외교·안보 정책 변경이 있는 게 아니며 헤이글 장관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항명 차원에서 사직하거나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해고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헤이글 장관의 후임으로는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잭 리드(민주·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 애슈턴 카터 전 국방부 부장관 등이 거론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크라 간 美 바이든 “러, 휴전협정 준수해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친구이며 우크라이나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러시아는 명심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CNN에 따르면 바이든 부통령은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최근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불법 점유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 3월 이후 43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우크라이나 지역의 긴장 해소를 위해 러시아는 지난 9월 맺은 휴전협정을 준수해야 한다”며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우크라이나를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삼성그룹] 시진핑·앨 고어 등과도 친교…글로벌 CEO형 후계자 수업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삼성그룹] 시진핑·앨 고어 등과도 친교…글로벌 CEO형 후계자 수업

    올해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 5월 아버지(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입원 이후 경영 전면에서 연매출 390조원(지난해 기준)의 삼성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등 국가주석급 인사들과 잇달아 만나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삼성의 3세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한국 현대사의 모진 풍파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앞선 두 세대와는 달리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이 재계 1위로 우뚝 선 안정적인 환경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자라났다. 재계에서는 그가 27세인 1995년 이미 후계 절차가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당시 아버지 이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60억 8000만원을 이용해 계열사를 사고파는 과정을 거쳐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25.1%)가 됐다. 형들(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과 십수년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로 낙점된 아버지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 부회장은 서울 경기초(1981년), 청운중(1984년), 경복고(1987년)를 졸업했다. 삼성그룹 오너 아들인지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고교 땐 3년 내내 반장을 맡았다. 진로를 정할 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로 진학할 땐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이 컸다. 대학 전공을 놓고 고민하자 이 선대회장은 “경영자가 되려면 경영이론도 중요하지만 우선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야 한다. 학부 과정에서는 사학, 문학 같은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외국 유학을 가서 배우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대학 3~4학년 때는 승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이 부회장이 처음 승마를 배운 것은 1982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심하게 다쳤다가 승마로 완치된 이 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1989년엔 국내 10개 대회 중 8개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이 부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배운 골프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름난 골프광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07년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가 중 골프 맞수로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이 부회장을 손꼽았다. 1995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2001년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가 미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유학했던 것 역시 아버지의 조언 때문이다. “미국을 먼저 보고 나서 일본을 나중에 보면 일본 사회의 특성, 일본 문화의 섬세함과 일본인의 인내성을 알지 못한다. 유학을 가려면 일본에 먼저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뛰어든 건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재입사하면서부터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잠시 입사했으나 근무하지 않고 곧바로 유학길을 떠났다. 재입사 후 이 부회장은 한 해 100일 이상 해외 법인을 둘러보고 각국 주요 거래처와 접촉했다.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로 승진하면서 비교적 천천히 직급을 밟아 승진했다. 범(汎)현대가 3세로 두 살 아래인 정의선(44)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1999년에 상무를, 2002년에 전무를 다는 등 고속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경복고 후배로 이 부회장과 친하게 지내며 사석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형이라고 부른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 역시 36세이던 1978년 이미 부회장(삼성물산)에 올랐다. 이런 더딘 승진은 확실한 기초를 만들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2007년 1월 언제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부회장이) 자격을 갖춰야 할 것 아니냐. 기초는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냐”면서 “고객과 실무 기술자, 연구소 등을 더 깊이 알도록 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고객책임자(CCO) 등의 직함으로 해외를 돌며 이 부회장은 애플, IBM, AT&T, 소니, 닌텐도 등의 전자·통신업계 최고경영진은 물론 시 주석,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등 해외 유력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이 부회장이 처음 경영에 뛰어들었을 땐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시각이 많았다. 재입사 직전 이 부회장이 개인 자금을 투자(2000년 5월)한 ‘e삼성’이라는 벤처투자회사가 8개월 만에 2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내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후 제일기획 등의 계열사가 이 부회장 지분을 넘겨받으면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삼성과 소니의 합작사인 S-LCD(액정표시장치)의 등기이사를 맡아 삼성이 LCD부문 세계 정상급 기술·생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은 이 부회장의 공로 중 하나로 꼽힌다. 2006년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소니를 꺾고 9년째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는 기틀도 이때 마련됐다. 2009년 최고운영책임자(COO·부사장)로 승진했을 때부터 삼성전자는 사실상 이재용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이 회장은 2008년 삼성특검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갤럭시 신화로 스마트폰이 세계 1위로 자리 잡는 데 이 부회장의 기여가 컸다”면서 “2012년 2년 만에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때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건희에게 반도체가 있지만 이재용은 무엇을 보여줬나’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이 부회장이 중국 사업, 2차 전지 사업, 의료기기 사업 등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아직은 주주와 사회가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美 8년만에 여소야대] 의회와 갈등 심화… 업적쌓기 ‘정책 빅딜’ 가능성

    [美 8년만에 여소야대] 의회와 갈등 심화… 업적쌓기 ‘정책 빅딜’ 가능성

    4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2기 남은 2년 동안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향후 2년간 민주당 소속 대통령과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한 공화당 간 갈등으로 정국 대치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셈법이 복잡한 만큼 ‘상생과 타협’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날 CNN 등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7일 중간선거로 새롭게 구성된 여야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첫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장악하게 된) 의회와 어떤 문제라도 협의할 준비가 됐다”며 “첫 회의에서 백악관과 정부, 의회의 협력 강화를 당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자 임금, 환경, 이민 문제 등 각종 정책 관련 행정명령을 잇따라 발동하면서 공화당과 대치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 상원까지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한 소식통은 “공화당은 상원에서 승리하면 현 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고 지금까지처럼 대통령의 발목을 잡으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간 이해관계에 따른 ‘밀월관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선거 관련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앞으로 2년간 성과를 남기기 위한 업적 쌓기에 치중할 것이고 이를 위해 공화당과 타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며 “키스톤 파이프라인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 등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빅딜을 통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제이 카니 전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CNN에 출연, “세제개혁과 이민개혁법, 인프라·에너지 관련 정책, 예산 정책 등 중요한 정책 추진에 있어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이 어느 정도 협력하게 될 것”이라며 “조 바이든 부통령도 최근 인터뷰에서 이미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의회와의 협력 강화 의지를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의료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과 이민개혁법은 첨예한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해 왔으며 이민개혁법도 보수적 입장을 고수하며 민주당과 협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앨런 리히트먼 아메리칸대 교수는 이날 외신기자센터 브리핑에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이 다수당 대표가 되면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인데 매코널 의원은 티파티를 비판하는 합리적 보수이기 때문에 오바마케어, 이민개혁법에 대해서도 주고받기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타협 가능성의 배경에는 2016년 대선과 의회 선거가 작용하고 있다. 공화당은 티파티 등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연방정부 폐쇄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은 만큼 타협하지 않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쇄신하려고 한다. 게다가 2016년 상원 선거에서는 공화당 소속 23석이 바뀌기 때문에 민주당으로 다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양 당은 차기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타협도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에볼라, 오바마의 ‘카트리나’ 되나

    “에볼라, 오바마의 카트리나가 될 것인가.” 18일(현지시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미국 본토에서 에볼라 전염환자가 잇달아 발생한 사태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를 분석한 기사를 내놨다. 재난 대응에 있어 단적으로 비교되는 것은 조지 W 부시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다. 2005년 미국 남동부를 휩쓸어 1833명의 사망자를 낸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는 당시 대통령이던 부시에게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혔다. 정부 대응의 무능함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고 이 사건 이후 부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어졌다. 반대로 1976년 돼지플루가 번지면서 성인 3명이 사망하자 당시 대통령이던 포드는 전국 모든 사람들에게 예방주사를 맞도록 했다. 그러나 이것도 실패였다. 정치분석가 크레이그 크로퍼드는 “스스로는 단호하다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무능하게 허둥댄다는 이미지만 강화한 크나큰 정치적 패착으로 결론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에볼라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은 이제까지 부시 쪽에 가깝게 보였다. 칼 질슨 서던메소드대 교수는 CSM과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은 여전히 정부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쇠약해졌고 최근 들어서는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길 기대조차 않는 것 같다”면서 “어찌 보면 에볼라뿐 아니라 그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기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CSM은 “위기에 대한 느린 대처는 오바마 행정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비꼬았다. 그럼에도 11월 초 중간선거를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 방식에 변화가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워싱턴에 머물면서 대응책을 찾고 있다. 제임스 폴리가 이슬람국가(IS)에 참수됐을 때 공식성명을 낸 뒤 바로 골프를 쳐서 비난을 자초한 것과 대조적이다. 두 번째로 에볼라대응팀장으로 론 클레인을 발탁했다. 그는 조 바이든 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의학과는 관련 없는 정치 전략가다. 뒤집어 말하면 대응팀은 의학적 문제만 다루는 게 아니라 국민 여론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할도 맡는다는 뜻이다. 또한 에볼라 감염 공포 속에서도 대통령 스스로가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처신을 성공적으로 잘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볼라가 오바마의 카트리나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무성發 개헌론… 권력다툼 불댕겼다

    김무성發 개헌론… 권력다툼 불댕겼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개헌 논의와 관련해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면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권력 집중의 폐해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개헌 추진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개헌에 대해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거듭 밝힌 이후 열흘 만에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의 의견과는 반대로 개헌 논의의 불가피성을 거론한 것이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개헌론은 여당 내 대권 경쟁을 조기에 과열시킬 수 있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권력투쟁으로 번질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 내 개헌 세력과 얽히면 정계 개편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개헌 발언에 대해 “올해 안에 국회 차원의 개헌특별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며 “내년 상반기 중 개헌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적극 화답했다. 김 대표는 “개헌론이 시작되면 경제활성화가 방해받는다는 지적은 맞는 것”이라면서도 “다음 대선에 가까이 가면 (개헌은) 안 되는 것”이라고 친박(친박근혜)계의 ‘시기상조’론을 반박했다. 그는 특히 국민이 뽑는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국회에서 뽑힌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최근 의원들의 선호도가 정부통령제에서 이원집정부제로 바뀌고 있다. 나도 내각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정부통령제를 선호했었는데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길다”며 듣기에 따라선 현 정권을 겨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미묘한 발언을 덧붙였다.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선 “중대선거구제냐 석패율제로 가느냐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홍문종 전 사무총장을 비롯한 친박 측에서 당무감사를 두고 ‘친박 죽이기’라고 반발하는 데 대해 “당무감사와 조직강화특위는 매년 있어 왔다”며 “불안해하지 말고 자신의 지역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대권 도전 여부와 관련해 “나만 돼야 한다는 생각은 없고 우리 중 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하이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서울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김무성 개헌론 파장] “대선 가까워질수록 개헌 곤란… 의원들 이원집정부제 선호”

    [김무성 개헌론 파장] “대선 가까워질수록 개헌 곤란… 의원들 이원집정부제 선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박 4일간의 중국 방문 마지막 날인 16일 상하이의 훙차오(紅橋) 영빈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개헌 추진에 대해 강한 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개헌은 계속 추진할 생각인가. -그렇다. 정기국회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다.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 논의가 이르다는 입장이다. 2016년 총선 이후에 하자는 의견도 있다. -다음(2017년)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더 어려워진다. →의원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정부통령제로 개헌하자는 건가. -전에 어떤 조사에서는 4년 중임제 선호가 3분의2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선호가 많아진 것 같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를 맡고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것을 국민이 찬성할까. -내각제는 계파정치다. 세계에서 가장 썩은 정치가 일본이다. 계보는 용돈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도 내각제로 가면 망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그게 기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아주 빠르게 맑아지고 있다. 유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길다. 의회가 뽑은 사람이 잘하면 된다. →유력 대선 주자로서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나. -우리 사회는 철저한 진영 논리에 빠져 지금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식 권력 쟁취전이 됐다. 권력을 분점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중립지대를 허용하는 수준이 됐다고 본다. 예전 정치에서는 타협하면 다 사쿠라로 몰렸다. 이제는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으로 가면 사회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 선진국은 다 연정이다. 미국만 빼고. →연정은 내각제적 성격으로 정부통령제와는 다른데. -나도 내각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정부통령제를 선호했는데, 점점 진영 대립이 심해지는 만큼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바로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인가. -여야 합의가 돼야 한다. 개헌을 원하는 의원 숫자가 얼마나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중대선거구제도 도입할 의향이 있나. -중대선거구로 가느냐, 석패율제로 가느냐는 생각해 볼 부분이다. →오픈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는 여야가 같이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야당 상황을 보면 어렵지 않겠나. -사실 세월호 협상이 안 될 때 야당 중진들과 많은 물밑 대화를 했다. 그때 보니 그들 모두가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자는 입장이더라. 야당도 사실 그 부분(공천)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돌파구로 오픈프라이머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계보정치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계보를 안 만드니까. 내가 남기고 싶은 족적은 완전한 정당 민주주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 나이가 63세인데 70세 전에는 다 마무리해야 된다. →천하의 영웅호걸을 영입하겠다고 했는데 인재의 기준은 무엇인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최고 중의 최고)를 찍는 것이 인선이다. 세컨드는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문수가 1등이라고 해서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과거 중국에 왔던 여당 대표는 모두 대선에 출마했는데. -이번에는 대권 행보가 아니다. 대권 행보라면 내가 (대권 주자인) 김문수 위원장을 데리고 왔겠나. →여론조사에서 김 대표가 선두를 달리는 비결은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나. -당 대표로서 언론 노출 빈도가 높으니까 그런 것일 뿐이다. 나는 사심 없다. ‘나만 돼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중에 누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나보다 나은 놈이 있으면 돼야 한다. 딴죽이나 걸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돼서는 안 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인상은. -시 주석의 얼굴에 심적 고통이 심해 보이더라. 3년 안에 부패를 뿌리 뽑지 않으면 자신도, 공산당도 망한다고 하더라. 상하이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2014 국정감사] 與 “경제 힘든데 신중을”… 野 “증인 필요땐 수백명도”

    국정감사 이틀째인 8일 증인 신청을 둘러싼 여야 간 신경전이 지도부로까지 확전됐다. 전날 대기업 총수 증인 채택을 놓고 파행을 빚은 환경노동위원회의 여야 싸움이 장외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전날 환노위 사태를 거론하며 “경제가 대단히 어려워 기업인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든가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든가 정부정책과 상충될 경우엔 당연히 증인, 참고인으로 채택해야겠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채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원회의에서 “여당이 필요한 증인 채택에 반대하기 때문에 환노위 국감이 파행되고 있다”면서 “필요한 증인, 참고인이라면 숫자가 무슨 관계인가. 수십, 수백명이라도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9·11테러 진상조사위는 1200명의 증인을 채택했고 대통령, 부통령도 포함됐다”고 외국 사례를 들었다. 김영록 원내대표 직무대행도 “새누리당은 더는 전경련의 하수인을 자처해선 안 된다”고 가세했다. 이날 환노위의 고용노동부 국감 역시 전날 환경부 국감에 이어 증인 채택으로 여야 공방전이 이어지다 오후에 가까스로 재개됐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일단 국감은 진행하지만 증인 채택은 당 지도부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불씨를 남겼다. 야당은 ‘현대차의 직접고용 회피 사유’, ‘삼성전자서비스의 다단계 하도급 인력 운영’,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 과정의 산업재해’ 등을 묻겠다며 정몽구 현대차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빅 3’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저녁 가까스로 KB 금융지주 사태와 관련해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등 6명을 국정감사 일반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들은 15일과 16일 열리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국정감사에 이틀 연속 출석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꺾이지 않는 IS, 네 번째 인질 참수

    꺾이지 않는 IS, 네 번째 인질 참수

    미국과 아랍 동맹들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네 번째 인질 참수에도 시리아와 터키 국경 인근 코바니 IS 기지에 공습을 감행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군이 전날 밤 시리아와 이라크에 공습 작전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IS도 쿠르드 거주 지역인 코바니로 진입하기 위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IS는 “수일 내로 코바니를 점령해 무슬림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 기도를 올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끊임 없는 공습에도 시리아 국경 마을 대부분은 IS가 장악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습은 IS가 3일 영국인 인질 앨런 헤닝(47)의 참수 동영상을 공개한 이후 이뤄졌다. IS가 인터넷에 공개한 참수 희생자는 이번이 4명째다. IS는 다음에는 미국 특수부대 출신 구호활동가인 피터 캐시그(26)를 살해하겠다고 밝혔다. 캐시그는 2012년부터 시리아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벌여 왔으며 1년 전 IS에 납치됐다. 캐시그의 부모는 아들의 석방을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IS를 격퇴하는 군사 작전에 동참하겠다고 밝힌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랜 친구인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얼굴을 붉혔다. 바이든 부통령이 2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에서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IS를 지원했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4일 이스탄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요구했다. IS를 지원하는 당사국으로 지목받은 UAE도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바이든 부통령은 4일 사과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실은 성명에서 “바이든 부통령이 터키와 다른 중동 동맹국이 의도적으로 IS를 지원했다는 언급에 대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헌법 9조’ 지지 日단체, 노벨평화상 후보 급부상

    올해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는 국민’이 급부상했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보도했다. 신문은 노벨평화상 수상 예측을 발표하는 민간연구기관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PRIO)가 지난 3일 갱신한 웹사이트 예측 리스트에 그동안 ‘권외’에 머물렀던 ‘헌법 9조’가 프란치스코 교황,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 등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전쟁 포기, 전력 보유,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한 ‘헌법 9조’는 가나가와현에 거주하는 주부 다카스 나오미(37)의 제창으로 노벨상 수여 시민운동이 시작돼 40여만명의 지지 서명을 얻어내 지난 4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크리스티안 베르그 하르프비켄 PRIO 소장은 인터뷰에서 “중립과 불가침, 평화주의 원칙을 내건 일본 헌법 9조는 군사적인 분쟁 해결이 남발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 비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면서 “영토 문제 등 아시아가 안고 있는 장래 분쟁의 우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PRIO의 수상 예측은 노벨위원회와는 아무 연결고리가 없지만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수상을 맞추는 등 적중한 사례가 다수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노벨평화상은 오는 10일 발표된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美 대북 고위급 특사 다시 보내지 않을 것”

    “美 대북 고위급 특사 다시 보내지 않을 것”

    “미국은 북한에 전직 대통령 등 고위급 특사를 다시 보내지 않을 겁니다. 북한의 ‘인질외교’에 응하는 셈이 되니까요.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했을 때도 미국 내 여론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엘 고어 전 미 부통령이 세운 방송사 커런트TV 소속 여기자 2명이 북한에 억류된 지 5개월 만인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방북 길에 올랐다. 방북단에 포함돼 클린턴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국무부 한국과장 출신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한국학 부소장은 1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케네스 배 등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 문제와 관련, “북한은 지금 미 측에 직접 누구를 특사로 보내달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인질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라우브 부소장은 “북한이 최근 허용한 CNN 인터뷰에서 억류자들은 조지 W 부시나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달라고 언급했는데 최근 북·미 관계와 북한의 인질외교 전략을 고려할 때 미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설득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부시나 클린턴도 갈 마음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케네스 배 등을 데려올 방법은 없는 것일까. 스트라우브 부소장은 “북한이 핵을 계속 보유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미 정부가 공화당 등을 의식해 고위급을 보내는 것은 부담이 크다”며 “북한이 특사의 급을 낮추는 선에서 타협하게 하거나, 지쳐서 이들을 풀어주게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정의화 국회의장 3일부터 멕시코·우루과이 순방

    정의화 국회의장 3일부터 멕시코·우루과이 순방

    정의화 국회의장이 7박 11일간의 일정으로 멕시코와 우루과이 등 중남미 2개국을 방문하기 위해 3일 저녁 출국한다. 이번 순방은 의회 정상외교의 외연을 확대하고 중남미 주요국 정부 및 의회 지도자와 외교적·경제적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국회사무처는 밝혔다. 정 의장은 첫 방문국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호세 무히카 대통령, 다닐로 아스토리 부통령 겸 상원의장, 아니발 페레이라 하원의장 등과 잇따라 면담하고 양국 간 교류 확대 방안을 논의한다. 또한 7일 열리는 양국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최근 우리 기업들의 우루과이 인프라 건설사업 진출 등 경제협력 분야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정 의장은 이어 중남미의 핵심 우방인 멕시코를 방문해 미겔 바르보사 상원의장과 실바노 아우레올레스 하원의장을 면담하고 직접 상원 연설에 나선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오바마-모디 정상회담’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하고 각종 안보·경제 현안과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공고하게 할 방안을 논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의가 끝나고 나서 빈곤 구제에서 직업 훈련에 이르기까지 경제 이슈를 의제로 얘기를 나눴으며 무역, 우주, 에볼라, 기후변화,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시리아·이라크 내 ‘이슬람 국가’(IS) 문제 등을 광범위하게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모디 총리가 지난 5월 취임한 이후로 인도가 직면한 도전과 기회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열정과 결단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치켜세우고 “양국의 파트너십과 우정을 심화·확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와 미국이 최근 나란히 화성에 탐사선을 보낸 것을 거론하면서 “양국이 화성에서 정상회의하고 나서 지구에서 또 만나고 있다. 이 우연의 일치가 양국 관계를 대변한다”며 “양국은 이미 강한 파트너십의 토대를 갖고 있고 이제 그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모디 총리는 미국과 이견을 보이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원활화협정(TFA) 채택과 관련해서도 오바마 대통령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인도는 지난 7월 말 저소득층에 대한 식품 보조금 지급 재량을 요구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WTO TFA 채택을 거부한 바 있다. 당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페니 프리츠커 상무장관이 함께 인도로 건너가 채택을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는 무역 활성화를 지지하며 우리의 식량 안보 우려를 해소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조만간 타결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모디 총리가 백악관 근처 내셔널 몰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관을 방문할 때도 동행했다. 인권 운동가로 1968년 암살당한 킹은 생전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모디 총리는 이어 국무부 청사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공식 방문한 모디 총리와 전날 백악관 블루룸에서 비공개 만찬을 한 것을 비롯해 모두 세 차례 회동하거나 동행하는 등 외국 정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환대했다. 두 정상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공동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심 외교 정책인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실현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면 최근 몇 년간 껄끄러웠던 인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 모디 총리가 구자라트 주총리로 있을 때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유혈 충돌을 방관했다며 미국 입국비자를 거절한 바 있다. 양국은 또 미국 주재 인도 여성 외교관이 가사 도우미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미국 당국에 지난해 체포된 일과 미 국가안보국(NSA)이 모디 총리의 소속 정당인 인도국민당(BJP)을 감시했다는 보도로 갈등을 겪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브라질 대처 VS 아마존 여전사 초박빙

    브라질 대처 VS 아마존 여전사 초박빙

    열흘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대선(10월 5일)에서 재선을 노리는 ‘브라질의 대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돌풍을 일으킨 ‘아마존 여전사’ 마리나 시우바 후보가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블룸버그는 24일(현지시간) 시우바 후보에 밀렸던 호세프 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보이며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발표된 복스 포풀리 여론조사에 따르면 결선 투표 예상 득표율은 호세프가 46%, 시우바가 39%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호세프가 41%로 시우바(42%)에 뒤졌다. 호세프의 상승세는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23일 발표된 이보페 여론조사에서 시우바와 호세프는 각각 41%를 얻었다. 앞서 16일에는 시우바가 43%, 호세프가 40%였다. 여론조사 기관 MDA에 따르면 9일에는 호세프 42.7%, 시우바 45.5%로 시우바가 앞섰으나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호세프 42%, 시우바 41%로 뒤바뀌었다. 또 다른 후보인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의 아에시우 네비스는 1차 투표에서 17∼19%를 기록해 2차 투표에 진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6일 결선투표를 해야 한다. 블룸버그는 호세프의 상승세 뒤에 네거티브 전략이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자당의 호세프는 시우바가 속한 브라질사회당(PSB)의 친기업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호세프는 “시우바가 집권하면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를 민영화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감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빈곤퇴치정책을 펼친 노동자당은 저소득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AP통신은 호세프 대통령의 저소득층 지지율이 51%로, 시우바(38%)를 압도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플라이셔 브라질리아대 정치학 교수는 “시우바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이 먹혀들면서 시우바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반면 호세프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래 부통령 후보였던 시우바는 지난달 중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에두아르두 캄푸스를 대신해 대선 후보로 결정됐다. 상원의원과 환경장관을 지냈으며, 아마존 밀림 보호에 적극 앞장선 덕에 ‘아마존 여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