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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5) ‘삼성가 장손’ CJ그룹 이재현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5) ‘삼성가 장손’ CJ그룹 이재현 회장

    삼성그룹에서 분리 뒤 22년만에 CJ 20배 괄목성장선진적 기업문화로 취준생 ‘입사하고 싶은 기업1위’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58) 회장은 설탕과 밀가루 제조기업에 불과한 제일제당을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다각화에 나서 오늘날 CJ그룹으로 일군 ‘제2의 창업자’로 평가받는다. 분리 당시 1조 73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 약 35조원을 기록하는 등 22년만에 CJ그룹을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을 아우르는 종합생활문화그룹으로 키웠다. 이 회장은 어릴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이 회장은 김만조 전 연세대 교수의 딸 김희재(58)씨와 결혼한 후에도 독립하지 않고 할머니 박두을씨가 2001년 1월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복남(85) 고문을 모시고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 ‘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장손인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1985년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기획관리부장,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 제일제당 부사장, 부회장을 거쳐 2002년 마침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남들이 제조업과 수출에만 매달려 있던 20여년 전에 이미 문화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에 나섰다. 단기 적자에 연연하지 않고 큰 그림의 사업방향을 제시하며 그룹의 도약을 이끌었다. 1995년 미국 신생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약 3000억원) 투자를 결정하고,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영화사업에서 철수할 때 문화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부쳤다. 이 회장이 CJ그룹을 키운 데에는 시련도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만성신부전증과 삼성가의 유전병으로 알려진 CMT(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는 등 몸이 편치 않다. 2013년에는 배임·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그룹이 총수 부재의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2017년 5월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그레이트 CJ’와 ‘월드베스트 CJ’를 경영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레이트 CJ는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을 실현하겠다는 것이고, 월드베스트 CJ는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해 그룹 지배구조를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으로 단순화했다. 인수합병과 매각 등을 통해 주요 계열사들을 정비하고 있다.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이후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브라질 셀렉타, 러시아 라비올리, 베트남 민닷푸드 등을 인수했다. CJCGV는 러시아에 진출한 데 이어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 4D플렉스 상영관을 열었다. CJ대한통운도 2017년 아랍에미레이트 이브라콤, 인도 다슬로지스틱스를 사들인 데 이어 베트남 제마뎁과 지분 인수 계약을 맺었다. 올 들어 대대적인 내부 사업 재편에도 나서 지난 7월 CJ 오쇼핑과 CJ E&M의 합병 법인 ‘CJ ENM’을 출범시켜 국내 최초의 융복합 콘텐츠 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기업문화도 선진적으로 바꿨다. 2000년부터 말단직원에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직급에 관계없이 이름 석자에 ‘님’자만 붙여 부르는 호칭파괴와 복장자율화, 플렉서블 출퇴근제 등을 단행했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달 동안 ‘자녀입학 돌봄휴가’를 낼 수 있다. ‘긴급 자녀 돌봄 근로시간 단축’도 신설해 일시적으로 긴급하게 자녀를 돌봐야 할 상황이 생기면 하루에 2시간 단축 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남성의 출산휴가(배우자 출산)를 2주 유급으로 늘리는 등 임신과 출산 지원 역시 법정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이뤄진다. 이런 기업문화로 잡코리아에 따르면 CJ그룹은 2018년 취업준비생들이 상반기에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로 꼽혔다. 2016년부터 3년 내리 취업준비생들이 꼽은 ‘직원 복지문화’가 제일 좋은 기업이기도 하다.이 회장은 부인 김희재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이경후(33) 상무는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2011년 7월 CJ주식회사 사업팀 대리로 입사했다. 지난해 11월 CJ 미국지역본부 상무로 승진한 뒤 지난 7월부터 CJ ENM의 브랜드전략담당으로 근무중이다. 남편 정종환(39) 상무는 CJ미국지역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미국 사업을 관할하고 있다. 아들 이선호(28)씨는 미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을 전공한뒤 2013년 CJ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에서 대리점 영업, 마케팅 등 현장경험을 쌓은 뒤 제일제당 BIO사업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다.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79) 회장은 1995년 제일제당 회장에 취임한 이후 20년 넘게 이재현 회장과 함께 CJ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경기도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가 부친이다. 이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 고문이 친누이다. 손 회장은 경기고 2학년 재학 중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한 수재다. 안국화재 사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치며 삼성그룹에서의 분리독립 등 위기때마다 이 회장을 도왔다. 손 회장은 대한상의회장을 거쳐 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는등 경제계를 대표하는 원로 경영인이다.이 회장의 누이인 이미경(60) CJ그룹 부회장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푸단(復旦)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CJ 그룹이 글로벌 문화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동생인 이재현 회장을 도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해왔다. 지난해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신규회원으로 위촉됐다. 진보적인 영화를 제작·지원한다는 이유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영일선 퇴진을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년간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둘째 남동생은 이재환(56) CJ파워캐스트 대표다. 이 대표는 최근 요트를 개인 용도로 구입해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있는 중이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외아들 잃고 임신한 67살 여성 병원 진료거부 당해

    외아들 잃고 임신한 67살 여성 병원 진료거부 당해

    외동자식을 잃고 50~60대의 늦은 나이에 시험관 아기를 임신한 여성들이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중국 사회의 냉대에 시달리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6일 베이징의 장헝(67)이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임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병원 진료를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병원은 그녀의 출산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며 여론은 흰머리가 난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는 것을 비난했다. 4년 전 외아들을 잃은 장은 입양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결국 지난 6월 대만에서 시도한 시험관 시술이 성공했다. 그러나 고혈압을 앓고 있는 장에게 베이징의 대형병원은 임신을 중단할 것을 권유했다. 게다가 보건 당국은 만약 그녀가 치료를 받으려 한다면 그 병원은 당국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장은 정기적인 병원 진료를 포기해야만 했다. 장은 “나는 사랑하는 아이를 잃었고 또 다른 자식을 원했을 뿐이데 내가 만약 죄가 있다면 무엇을 잘못했는가?”라고 항변했다.  리칭(가명·65)도 20년 전 외동딸을 잃고 다시 딸을 출산했다. 그녀는 “다른 아이를 갖는 것은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8~2014년 한 자녀 정책을 편 중국의 외동 숫자는 1억 5000만명으로 추산된다. 100만 가구 이상이 질병이나 사고로 외동자녀를 잃었다.  ‘시두(失獨) 가정’이라 불리는 외동자녀를 잃은 부부는 종종 많은 나이에도 새로운 임신과 출산을 시도한다. 40~60대의 여성들은 임신도 어려울 뿐 아니라 양육도 힘들고 경제적인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교통사고로 5년 전 외아들을 잃은 추이(60)는 정부가 장을 도와야 한다며 “이미 임신한 장을 거부하는 것은 그녀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웨이하이에서 3살 난 쌍둥이를 키우는 추이는 “남편은 고향인 우한에서 96살 난 부친을 돌보고 있어 매달 며칠씩 아이를 보러 온다”며 “웨이하이는 비싼 유치원 학비가 무료라 여기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이미 은퇴한 이들 부부는 따로 수입이 없어 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추이가 우한에서 55살의 나이로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을 때 병원에서는 49살 이상은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없다며 그녀를 거절했다. 결국 사설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시험관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어렵게 아이를 키우는 ‘시두 가정’은 새로운 아이를 포기한 또 다른 시두 가정의 비난도 감수해야만 한다. 추이는 시두 가정이 모이는 온라인 그룹에서 임신을 시도하자 쫓겨나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56살에 쌍둥이를 출산한 추이는 결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매일 세상을 뜬 아들과만 대화했다”며 “만약 우리가 쌍둥이를 낳지 않았다면 남편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상하이에서 읽는 동아시아

    [홍석경의 문화읽기] 상하이에서 읽는 동아시아

    사람마다 꿈꾸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는 상하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았기에 올 8월에야 처음 방문하게 된 상하이. 물론 국제학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왔지만, 도시 전체가 텍스트인 이곳, 하루 정도 ‘발로 하는 독서’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조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서구와 동아시아 간 순간이동 터널 역할을 했다. 상하이를 통로로 서구가 동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왔고, 동아시아인은 상하이에서 멀고 먼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의 일부를 만났다.서구에도 상하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손 웰스의 1947년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는 상하이에서 보낸 몇 년의 과거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팜파탈의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유명한 거울 신 속에서 죽는데, 이 장면이 중국을 다시 글로벌한 동서 간 문화교류 속으로 끌어들인 이소룡에 의해 ‘용쟁호투’(1973)에서 패러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대한민국에게 상하이는 문자 그대로 동아시아에 열린 서구의 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젊은 장군 드골이 대서양을 건너가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무려 20년 전 근대국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3·1운동으로 깨어나 이곳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웅지를 틀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당시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조선인의 힘든 삶을 실감할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대륙 침탈을 준비하는 일본의 기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내걸어 민족의 정당하고 자주적인 미래를 도모한다는 결의와 실행은 얼마나 큰 결심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했을까.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드골의 런던 행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대접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한국 내 이견이 부끄러웠다.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 속에서 주인공들이 거사 전날 모여 샹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임시정부의 상하이 커넥션이 강하게 암시된다. 1930년대 상하이와 조선의 커넥션은 영화 속에서 임시정부를 넘어선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진린은 한국인이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상하이의 위상을 고려할 때,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다는 이 한국인 남자 배우의 의미는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 이름 김염,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이고 고모부가 무려 김규식이니, 아무리 험난한 세월 속 인척 간 교류와 교육의 영향이 크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상하이, 중국을 잇는 노드(node)다. 동아시아의 초국적 인기인의 전형과도 같은 노래하는 배우 장국영과 그 뒤를 잇는 한류 스타들이 있기에 앞서서 1930년대 글로벌 상하이에 한국인 배우 김염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니 팔월에 크리스마스같이 치장한 불야성의 상하이가 펼쳐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이처럼 극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이라니. 하늘을 향해 다투어 치솟는 푸둥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파사드를 마주 보는 와이탄의 강변로에는 프랑스 니스 해변의 콜로니얼 건축을 닮은 건물들이 육중하게 늘어서 있다. 와이탄 지역은 명·청대의 상점과 정원을 배경으로, 70년대 재개발 서민촌을 닮은 거리를 감추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 고담시티를 연상시키는 상하이타워가 구름 속으로 치솟는다. 중국의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처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훙구공원에 해가 뉘엿뉘엿하자 노인들이 배 두드리며 나와 바람을 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서구 문호들의 동상 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새로 세워진 중·일 청년들의 우의를 다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내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리지만 한국 사드가 지나간 중국 어느 곳에도 한류의 자취는 없고, 일본식 바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 벽에 붙은 한류 스타를 똑 닮은 중국 배우의 모습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동아시아의 굴기 속 중국의 욕망을 느끼게 해 준다.
  • [부고]

    ●김필안씨 별세 구자익 구자형(JCN울산중앙방송 대표) 구자일(중앙미디어네트워크 대표) 구정화(울산중구종합사회복지관 관장)씨 모친상 홍창수(홍한의원 원장) 김채규(법무법인 늘푸른 변호사)씨 장모상 15일 울산중앙병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7시 010-3598-9112 ●이연덕(전 천도교 울산교구장)씨 별세 지붕(포스코 과장) 지근(전 울산매일 편집국장)씨 부친상 신현우(전 풍산금속) 김영일(전 한주 상무이사)씨 장인상 15일 울산시티병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7시 010-6563-7113 ●조병희씨 별세 박용신 상신(대림산업 대표이사)씨 모친상 1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6시 30분 (02)2227-7550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제 암흑기·근대 새벽의 경성…구보씨의 고독한 하루를 걷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일제 암흑기·근대 새벽의 경성…구보씨의 고독한 하루를 걷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4회 서울의 문학1(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편이 지난 14일 진행됐다. 여름 야행 세 번째 행사가 치러진 이날 여름의 마지막 몸부림이 느껴졌으나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예약하지 않고 현장으로 직접 오거나 현장에서 일행을 따라나선 이들도 있어 준비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과 쿨 스카프가 동났다.이날 투어는 집결 장소인 청계광장의 소음을 피해 한국관광공사 2층 관광안내센터 ‘K-STAR 존’으로 이동,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쾌적하게 시작했다. 서울 중구 다동 10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는 구보의 옛 집터(다옥정 7번지)이다. 청계천을 따라 광교까지 나간 뒤 화신백화점(종로타워)을 보고, 나석주 열사의 동상이 서 있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하나은행 본점)~조선은행(한국은행 화폐박물관)~소공로 낙랑파라(더플라자호텔)~숭례문~경성역(서울로7017) 구간을 걸었다. 해설을 맡은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구보의 동선을 안내하면서 소설 속의 적절한 장면을 낭독했다. 참가자들은 문학 향기를 음미하면서 몰입했다. 1930년대 경성과 박태원이라는 소설가, 주인공 구보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구보가 배회했던 1930년대의 서울, 식민지의 수도 경성은 어떤 도시였을까. 일제강점기의 암흑과 근대의 새벽이 공존하는 이 시기는 식민 잔재라는 이름으로 혹은 근대유산이란 이름으로 서울 도시 공간 곳곳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도시는 자연환경의 개조이고, 근대성의 임상실험이다. 이 시기 식민지 도시문화와 도시계획이 만들어 낸 지층이 우리가 사는 21세기 서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식민통치기 경성의 외관과 도시민의 내면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주입하는 일본식 전통과 일본이 도입한 서구 문물이 혼재돼 있었다. 중국식 전통이나 중국을 경유한 서구 문물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서구 문물에 눈을 뜨고, 귀가 열린 게 바로 1930년대 경성의 본질이다. 한국적 근대의 비밀은 한국인이 서구에서 직접 가져오거나, 서구에서 전해진 게 아니라 일본을 거쳐서 받았다는 데 있다. 소설 속 식민지 지식인 구보가 걸었던 소공로와 남대문로의 이국적 풍경과 우울한 독백 또한 여기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다.구보가 소설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경성은 사실상 새로운 도시였다. 현대 서울의 기원은 조선의 수도 한성이 아니라 경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부터 30년 동안 경성시구개수 계획과 경성시가지 계획에 따라 경성의 간선도로망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전통적 도심 공간의 구조를 재편했다. 청계천 이북 종로 중심 도시구조를 청계천 이남 경성부청(시청) 중심의 격자형 도시로 뜯어고쳤다.광화문 네거리 정동 쪽을 막고 있던 황토마루(황토현) 고개를 밀고 광화문~남대문에 이르는 남북 간 축선도로 태평로(세종대로)를 뚫었다. 종묘관통선(율곡로)을 만들고, 식민통치 기구와 일본인 거주지가 밀집한 본정통(충무로)과 황금정통(을지로) 중심의 방사상 도로망을 구축했다. 본정통과 남대문의 교차점인 조선은행(한국은행) 앞에 광장을 조성하고, 경성부청과 조선은행 앞 광장을 잇는 장곡천정통(소공로)을 뚫어 연결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하나은행 본점) 등 일제의 경제 수탈기구와 금융기관, 백화점이 명치정(명동)·본정통(충무로)과 이어졌다. 소설의 주인공 구보는 월북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분신이다. 박태원은 이념을 배제하고 도회적인 풍물과 도시성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도시를 무대화하면서 전통의 몰락, 가족의 생성과 해체, 물질주의와 환락의 변주, 반복되는 일상을 묘사했다. 도시를 배경으로 개인의 일상을 그려 내면서 내면의식의 추이를 서술하는 모더니즘소설의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도시 문학의 전형이다. 소설 속 구보는 집을 나서 경성 최고의 백화점을 둘러보고, 전차를 타고, 당대 대표적 건축물인 조선은행을 지나 경성역을 오간다. 낙랑파라로 대표되는 경성의 다방과 술집에서 오가는 대화와 친구와의 만남은 욕망과 소비문화의 분출을 나타낸다. 박태원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설이 구구했으나 2016년 구보의 장남 박일영이 펴낸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문학과 지성사)이 믿을 만하다. 조부 때부터 약방을 운영했고 부친이 약종상으로 공애당약방을 운영했으며 숙부가 양의로서 공애의원을 개업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개화한 중인가문 출신이라고 알려졌으나 밀양 박씨 양반 가문임을 족보를 통해 밝혔다. 구보의 첫 부인 김정애는 한약국집 무남독녀로 숙명여학교(숙명여고)를 수석졸업하고 경성사범학교(서울사대) 연수과를 수료한 뒤 진천에서 보통학교 교사를 지낸 신여성이었다. 슬하에 2남 3녀를 뒀다. 영화 ‘괴물’, ‘설국열차’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외손자이다.구보는 7살 때부터 소설책에 관심을 보여, 9살까지 춘향전과 심청전 등 집에서 구할 수 있었던 시중의 이야기책 50~60권을 독파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 재학 중이던 17살 때 본명으로 시 ‘할미꽃’을 발표했고, 18살 때 춘원 이광수에게 사사했으며 스승의 글을 평한 ‘묵상록을 읽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걸 천재에게 정규교육은 불필요하다”면서 휴학, 집에 틀어박혔던 시절도 공개됐다.이상한 머리 모양과 친구 이상과의 우정, 월북 후 ‘갑오농민전쟁’ 출간 스토리가 대표적 이야깃거리다. 23세에 도쿄 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구보는 빨간 넥타이에 지팡이를 짚고, 바가지 머리 모양으로 다니면서 장안의 화제 인물이 됐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오갑빠머리’에 대해 구보는 ‘나는 내 머리를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다.… 내 머리터럭은 그저 제멋대로 위로 뻗쳤다. 나는 수없이 빗과 기름을 가지고 이것들을 다스리러 들었다.… 이마 위에 간즈런히 추려가지고 한일자로 짜르는 방법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상과 구보에 대해 ‘자신만큼 아는 사람도 흔치 않다’고 장담한 언론인이자 작가 조용만은 저서 ‘구인회 만들 무렵’에서 ‘이상과 구보는 짝패였다. 이상의 더벅머리와 수염에 대해서 구보의 ‘오갑빠머리’가 한 쌍이었고, 언변에 있어 두 사람이 주고받는 결말을 들으면 포복절도할 만담가의 흥행을 보는 것 같았고…둘이 다 한가한 몸이므로 밤낮 붙어 다니며 노닥거렸다’고 기록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여름야행 4=성수동(서울숲 밤마실) ●일시:8월 18(토) 오후 6~8시 ●집결장소: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 3번 출구 역 구내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2018년 상하이에서 감상해 본 1930년대 동아시아

    2018년 상하이에서 감상해 본 1930년대 동아시아

    사람마다 꿈꾸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는 상하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았기에 올 8월에야 처음 방문하게 된 상하이. 국제학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왔지만, 도시 전체가 텍스트인 이곳, 하루 정도 ‘발로 하는 독서’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조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서구와 동아시아 간 순간이동 터널 역할을 했다. 상하이를 통로로 서구가 동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왔고, 동아시아인은 상하이에서 멀고 먼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의 일부를 만났다.서구에도 상하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손 웰스의 1947년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는 상하이에서 보낸 몇 년의 과거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팜파탈의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유명한 거울 신 속에서 죽는데, 이 장면이 중국을 다시 글로벌한 동서 간 문화교류 속으로 끌어들인 이소룡에 의해 ‘용쟁호투’(1973)에서 패러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대한민국에게 상하이는 문자 그대로 동아시아에 열린 서구의 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젊은 장군 드골이 대서양을 건너가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무려 20년 전 근대국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3·1운동으로 깨어나 이곳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웅지를 틀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당시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조선인의 힘든 삶을 실감할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대륙 침탈을 준비하는 일본의 기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내걸어 민족의 정당하고 자주적인 미래를 도모한다는 결의와 실행은 얼마나 큰 결심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했을까.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드골의 런던 행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대접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한국 내 이견이 부끄러웠다.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 속에서 주인공들이 거사 전날 모여 샹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임시정부의 상하이 커넥션이 강하게 암시된다.1930년대 상하이와 조선의 커넥션은 영화 속에서 임시정부를 넘어선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진린은 한국인이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상하이의 위상을 고려할 때,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다는 이 한국인 남자 배우의 의미는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 이름 김염,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이고 고모부가 무려 김규식이니, 아무리 험난한 세월 속 인척 간 교류와 교육의 영향이 크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상하이, 중국을 잇는 노드(node)다. 동아시아의 초국적 인기인의 전형과도 같은 노래하는 배우 장국영과 그 뒤를 잇는 한류 스타들이 있기에 앞서서 1930년대 글로벌 상하이에 한국인 배우 김염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니 팔월에 크리스마스같이 치장한 불야성의 상하이가 펼쳐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이처럼 극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이라니. 하늘을 향해 다투어 치솟는 푸둥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파사드를 마주 보는 와이탄의 강변로에는 프랑스 니스 해변의 콜로니얼 건축을 닮은 건물들이 육중하게 늘어서 있다. 와이탄 지역은 명·청대의 상점과 정원을 배경으로, 70년대 재개발 서민촌을 닮은 거리를 감추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 고담시티를 연상시키는 상하이타워가 구름 속으로 치솟는다. 중국의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처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훙구공원에 해가 뉘엿뉘엿하자 노인들이 배 두드리며 나와 바람을 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서구 문호들의 동상 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새로 세워진 중·일 청년들의 우의를 다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내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리지만 한국 사드가 지나간 중국 어느 곳에도 한류의 자취는 없고, 일본식 바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 벽에 붙은 한류 스타를 똑 닮은 중국 배우의 모습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동아시아의 굴기 속 중국의 욕망을 느끼게 해 준다. 글·사진: 홍석경 서울대 언론학과 교수
  • [서울광장] 한국판 ‘유스퀘이크’는 꿈인가/김성곤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국판 ‘유스퀘이크’는 꿈인가/김성곤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옥스퍼드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유스퀘이크’(Youthquake)를 선정했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이 등장해 지진을 일으키듯 변화를 이끌어 내면서 옥스퍼드가 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이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41)과 같은 해 6월 아일랜드 총리가 된 리오 버라드커(40), 30대 초반에 오스트리아 총리가 된 제바스티안 쿠르츠(32) 등이 주인공이다.8개월여가 지난 2018년 여름 우리는 유스퀘이크가 아닌 ‘올드퀘이크’(Oldquake)를 목도하고 있다. 묘하게도 여야 주요 정당의 지도부 개편 시점이 8월을 전후해 몰려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표 임기가 다 됐고, 야당은 사상 유례없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6·13 지방선거’로 인해 지도부가 와해됐기 때문이다. 더 묘한 것은 대부분 새로운 얼굴은 안 보이고 ‘올드맨’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민주당부터 보자. 친노 좌장으로 불린 지 15년쯤 된 이해찬 전 총리가 출사표를 던졌다. ‘친노’(친노무현)와 ‘친문’(친문재인)을 관통하는 인물이다. 마음은 청춘이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는 자신만 한 적임자가 없다”고 하지만, 곳곳에서 “언제적 이해찬이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맞상대인 김진표(71) 후보도 노무현 정부 때 부총리를 지냈다. 송영길(55) 후보가 상대적으로 젊다며 세대교체를 외치는 판이다. 민주평화당은 2007년 17대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정동영(65) 의원이 당대표가 됐다. 바른미래당은 손학규(71) 후보가 출마했다. 손 후보는 이미 2010년 정동영·정세균과 겨뤄 거대 민주당 당대표까지 역임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은 노무현 정부 때 부총리를 역임한 김병준(64) 전 국민대 명예교수를 영입했다. 당분간 이들이 우리 정치를 이끌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시계를 10년 전쯤으로 되돌린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3김 시대’가 저물고, 우리 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퇴색하고, 붉은악마에서 시작된 새로운 거리문화는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촛불로 이어지고, 온라인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빠’들이 생겨났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표적이다. 이 촛불은 국정농단 사태 때 다시 살아나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다. 금세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남북은 1년에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하는 세상이 됐다. 여야 영수회담보다 오히려 쉬워 보인다. 직선제를 얻어 낸 ‘87체제’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무수히 많은 운동권 출신이 정치판에 수혈됐다. ‘386’(1990년대 기준 30대이면서 80년대 학번으로 60년대생), ‘486’(1990년대 기준 40대이면서 80년대 학번으로 60년대생)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금 정치판의 주류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올드맨들의 귀환을 보고 있다. 386, 486은 다 어디로 갔는가. 386, 486은 많은데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들의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인가. 혹자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전임 대통령의 추천이나 탄핵 등 정치 격변기에 쉽게 정치에 입문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혹평한다. 여성 문제 등 모럴해저드를 탓하는 이들도 있다.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 여야 불문하고 줄 잘 서서 국회의원 배지 단 의원이 한둘인가. 그러나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47) 총리도 부친이 총리만 17년을 역임한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그것 때문에 총리가 된 것은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도 정치 명문 그랑제콜을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프랑스 국민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그의 담대함과 파격 등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정치 신인의 진입이 어려운 공직선거법 등 제도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선거 관련 법은 현역에게 유리하게 고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문제는 도전 정신이다. 나라마다 현실은 다르지만 뉴리더들은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누구를 따라하기보다는 자기 목소리를 냈다. 누가 친문인지를 따지고, 친박·비박을 가리는 틀 안에 머물러 있으면 국회의원을 한 번쯤 더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미래는 없다. 지금 올드맨으로 지칭되는 사람들도 한때는 권력을 향해 반기를 들었고, 맞아 죽을 각오하고 바른 소리를 했던 사람들이다. “가신이 사라지니 줄서는 똘마니만 남았다”는 원로 정치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sunggone@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독립운동가 11명 배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상룡…독립군 양성 ‘신흥무관학교’ 등 수백억 기부한 이회영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독립운동가 11명 배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상룡…독립군 양성 ‘신흥무관학교’ 등 수백억 기부한 이회영

    독립운동 명문가는 대표적으로 ‘5대 항일 가문’을 꼽는다. 안중근 의사, 석주 이상룡 선생, 우당 이회영 선생,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 등이다.안중근 의사 가문은 직계, 방계를 포함해 총 15명이 건국훈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삼촌인 안태순 선생을 비롯해 안 의사와 동생 정근·공근, 사촌동생 명근·경근·홍근, 조카 원생·낙생·춘생·봉생·우생 등이다.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와 여동생 성녀, 조카 미생, 조카며느리 조순옥·오항선 등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지금의 대통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가문은 고성 이씨 종손 집안으로 경북 안동의 99칸 종택 ‘임청각’으로 상징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집안”이라고 언급한 가문이다. 3000석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했다. 이 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배출되자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아예 임청각을 없애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문중과 안동 시민들이 반발하자 집 일부를 허물고 마당 한가운데 철길을 내버렸다. 직계 및 방계를 포함해 총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석주 선생의 당숙 이승화 선생을 비롯해 상동·봉희 형제, 아들 주형, 손자 병화, 조카 형국·운형·광민, 매부 박경종, 처남 김대락, 처제 김락 등이다.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은 1910년 한일병합 후 일가족이 만주로 망명했다. 전 재산 40만원(1969년 물가 기준 600억원대)을 처분해 독립군 양성을 위한 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짓는 등 항일투쟁 전선에 바쳤다.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등 6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김대중 정부 때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손자들이다.●대법원장 지낸 의병대장 왕산 허위 선생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은 왕산 4형제들(허훈·허신·허겸·허위)과 직계 후손들, 왕산의 사촌인 허형 선생의 형제들과 후손들, 항일 시인 이육사 선생의 집안까지 아울러 10여명이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낸 허위 선생은 1908년 1월엔 전국 13도 연합 의병부대 군사장으로서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하며 일본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허위 선생은 같은 해 6월 일제에 체포돼 경성감옥(서대문 형무소) 제1호 사형수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시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청량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도로를 ‘왕산로’라고 명명했다. 연해주에 살던 허위 선생의 후손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옮겨졌다. 선생의 6대손이자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인 한 대니스(8)군이 지난 13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만주벌의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 역시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일송 선생을 비롯해 숙부뻘인 김대락 선생, 아우 동만, 형 장식, 사돈 이원일 등 총 5명이 독립유공 서훈을 받았다. ●하와이 청년 운동가 강영각 등 속속 공개 새로운 명문가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하와이 한인 사회의 청년 운동가였던 강영각(1896~1946) 애국지사 가문도 독립유공자를 6명이나 배출했다. 강영각 지사의 부친인 강명화 지사와 손위 형들인 영대·영소·영문·영상 지사도 모두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명화 지사 부자(父子) 6명은 모두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포상을 받았다. 강영각 지사의 누나인 강영실의 남편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장을 지낸 양우조 지사다. 두 집안이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강영각 지사의 딸인 수잔 강 여사는 지난 13일 1920~30년대 강영각 지사와 하와이 한인 청년 단체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첩 2권과 그가 발행한 영자 신문인 ‘더 영 코리안’(The Young Korean), ‘디 아메리칸 코리안’(The American Korean) 등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며 부친의 미국에서의 항일 운동을 공개했다. jrlee@seoul.co.kr
  • [부고]

    ●김순자씨 별세 이시영씨 부인상 이민규(CJ헬로 아이리빙사업 담당) 양희(전 YTN 기자) 씨 모친상 이홍갑(SBS 보도국 국제부 차장)씨 장모상 14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7시 (02)2258-5940 ●이영해씨 별세 이원재(전 대구시의회 전문위원) 용재(해운산업 대표) 조이 숙자 해인씨 부친상 14일 창녕요양병원 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7시 30분 (055)532-5858 ●한창분씨 별세 유홍준씨 부인상 유수현 상근씨 모친상 한용수(메트로신문 차장)씨 장모상 14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8시 30분 (032)517-0710 ●조항의씨 별세 조환기(하나생명 본부장) 송기(삼성SDS 상무) 혜정씨 부친상 안상민(AM전자 대표)씨 장인상 14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17일 (02)3410-3151
  • [부고]

    ●권도만씨 별세 영빈(변호사·전 세월호 선체조사위 상임위원) 영기 영애 영란씨 부친상 12일 경기 일산 명지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7시 30분 (031)810-5479 ●김순달씨 별세 강일선(스포테인 대표이사)일효(전 서울신문 기자)일수(전 KBS PD)씨 모친상 이정선(드라마 작가)씨 시모상12일 삼천포 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9시 (055)835-9944 ●고현자씨 별세 안병수(경동엔지니어링 전무이사)병학(한국자산관리공사 공유개발부 팀장)씨 모친상 최창수(교육부 방과후돌봄정책과 교육연구관)씨 장모상 13일 서울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8시 30분(02)2030-7903
  • ‘천재소년’ 송유근, 박사논문 불합격…12월 현역으로 입대

    ‘천재소년’ 송유근, 박사논문 불합격…12월 현역으로 입대

    아이큐 187의 ‘천재소년’으로 유명했던 송유근(21)이 박사 학위 논문 심사에서 불합격, 군 입대를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13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측의 입장을 빌려 송씨가 지난 6월 졸업을 위한 박사 학위 논문 최종 심사에서 불합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UST 관계자는 “송씨가 블랙홀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 발표에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못해 심사에서 불합격 처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씨의 부친은 저명한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는데도 불구하고 불합격 처리가 된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송유근은 만 8살때인 2005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2008년 돌연 학생 신분을 포기했다. 이후 2009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한국천문연구원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했다. 졸업 연한인 8년 안에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지만 이번 박사학위 논문 최종심사에서 탈락함으로써 송유근은 ‘졸업’이 아닌 ‘수료’로 남게 됐다. 오는 12월 현역병으로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앞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면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다른 대학의 학위 과정에 입학해야 한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홍준표 또 페이스북 글 “저들은 가식, 우리는 진실”

    홍준표 또 페이스북 글 “저들은 가식, 우리는 진실”

    ‘페이스북 정치’를 끊겠다던 선언이 이미 오래 전 무색해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또 다시 글을 올려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홍준표 전 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저들은 정치를 퍼포먼스로 하는데 우리는 리얼리티로 정치를 했다”면서 “진실은 가식을 이기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그러나 가식은 본질이 곧 드러나게 된다. 영원히 숨겨지는 가식은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홍준표 전 대표는 6·13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페이스북 정치는 끝낸다”고 선언한 바 있다. 같은 달 27일에도 페이스북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이날까지 모두 5차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문재인 정부와 여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이어왔다. 특히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별세한 직후인 지난달 29일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면서 노 의원의 죽음과 그에 대한 애도를 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9월 중순쯤 부친 제사를 포함한 신변 문제 등으로 잠시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마린온 사고 유족, 해병대에 5000만원 기부

    “안전하고 강한 항공단 창설 초석 되길”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 사고로 숨진 장병의 유족들이 합동 영결식 때 모인 시민들의 공동 조의금 5000만원을 해병대에 기부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해병대 관계자는 “마린온 사고 유족들이 ‘해병대 장병을 위해 써 달라’며 합동 영결식에서 조문객들이 전달한 공동 조의금 전액을 지난달 30일 기부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열린 합동 영결식에는 순직 장병과 인연이 없는 일반 시민의 조문이 이어지며 공동 조의금 5000만원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 조의금을 해병대에 전달한 유족 대표는 “고인들의 희생이 더 안전한 해병대 항공기 확보와 강한 항공단 창설에 초석이 되길 바란다”며 “진상이 규명되고 고인들의 희생이 값진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고 해병대 측이 전했다. 해병대는 유족이 기부한 5000만원을 해병대 1사단 항공대 장병을 위한 복지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번 사고로 숨진 노동환 중령의 부친 노승헌씨는 “해병대 사령관과 1사단장 등 해병대 장병이 유가족과 매일 밤낮을 함께 하며 장례 절차를 직접 챙기고 유가족을 살피는 모습을 보며 해병대의 가족 같은 단결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순직한 한 간부의 부인은 “이 사고로 해병대 항공단 창설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남편의 소원이었던 항공단 창설을 꼭 이뤄 남편과 순직한 분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해병대 측은 전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유족 지원 태스크포스(TF)를 편성해 유족 급여 및 사망 보상금 신청 등 행정 절차를 비롯한 유가족 지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예정이며 순직 장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령탑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아베, 부친 묘소서 총재 3연임 승리 맹세

    아베, 부친 묘소서 총재 3연임 승리 맹세

    “6년 전 도전때와 뜻 조금도 변함없다”다음달 20일 치러질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향한 후보들의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아베 신조(64)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해 총리직을 3년 더 이어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아 보이는 가운데 이시바 시게루(61) 전 자민당 간사장이 얼마나 많은 표를 확보할지가 관심사다. 아베 총리는 주말과 휴일을 맞아 자신의 본거지인 야마구치현를 방문해 사실상 총재선거 출마 의지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12일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소를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6년 전 (총재에) 도전했을 때의 뜻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민당이 야당이던 2012년 총재 선거에서 이겼고 이어진 총선에서도 승리, 그해 12월 총리에 취임했다. 2015년 9월 총재 연임 도전 때에는 단독으로 출마해 무투표 당선됐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이번 여름에 다시 3년 임기를 견딜 기력과 체력이 있는지를 생각하며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1993년 중의원 선거에 처음 당선됐던 사실을 거론하며 “나의 첫 출전은 이 묘소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승리의 맹세로부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자민당의 지역조직 모임에서도 “드디어 헌법 개정에 힘써야 할 때를 맞았다”며 “교과서에 자위대가 헌법 위반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큰 책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시바 전 간사장도 지난 10일 출마회견을 갖고 “정직하고 공정하며 겸허하면서도 공손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405명과 지역당원 405명 등 총 810표로 총재를 결정한다. 당내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의 지지를 기반으로 아베 총리가 80%에 가까운 표를 얻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마린온’ 헬기 사고 유가족, 해병대에 5000만원 기부

    ‘마린온’ 헬기 사고 유가족, 해병대에 5000만원 기부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해병대 장병들의 유가족이 시민 조의금 5000만원을 해병대에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해병대사령부 등에 따르면 유족들이 기부한 조의금은 지난달 23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열린 합동 영결식에서 조문객들이 모아 유족 측에 전달한 것이다. 유족들은 사고 장병들과 직접 인연이 없는 일반 시민들도 낸 조의금의 사용 방식을 논의한 끝에 해병대에 전액 기부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지난달 30일 공동 조의금을 해병대에 전달했다고 해병대사령부는 밝혔다. 특히 이번 사고로 숨진 고 노동환 중령의 부친 노승헌씨는 별도 서신에서 통해 “고인들의 희생이 더 안전한 해병대 항공기 확보와 항공단 창설에 초석이 되길 바란다”며 “진상이 규명되고 고인들의 희생이 값진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해병대는 이 기부금은 사고 부대인 해병대 1사단 항공대 장병들을 위한 복지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도로 해병대는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위로금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윤진이 ‘하나뿐인 내편’으로 안방 컴백 “존경하는 분들과 호흡 영광”

    윤진이 ‘하나뿐인 내편’으로 안방 컴백 “존경하는 분들과 호흡 영광”

    배우 윤진이가 ‘하나뿐인 내편’에 합류한다. 10일 소속사 킹콩 by 스타쉽은 “윤진이가 KBS 2TV 새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극본 김사경, 연출 홍석구)에 출연을 확정 지었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하나뿐인 내편’은 28년 만에 나타난 친부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한 여자와 정체를 숨겨야만 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 단 하나뿐인 내편’을 만나며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드라마다. 이 가운데 윤진이는 플로리스트 ‘장다야’ 역을 맡았다. 장다야는 부유한 집안 환경 덕분에 모자람 없이 자랐지만, 어릴 적 돌아가신 부친의 부재로 인해 가슴 속 상처를 지닌 인물. 일련의 사건을 빌미로 유이(김도란 역)와 대립각을 형성하며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것을 예고한다. 윤진이는 “존경하는 작가님과 감독님, 선배님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 시청자 분들이 재미있게 드라마를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촬영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진이는 SBS ‘신사의 품격’에서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 풋풋하면서도 당찬 매력으로 안방극장을 매료시켰다. 이후 KBS 2TV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연애의 발견’, MBC ‘가화만사성’ 등에 출연한 바 있다. 한편 윤진이를 비롯해 최수종, 유이, 이장우 등이 출연을 확정 지은 KBS2 새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같이 살래요’의 후속으로, 오는 9월 15일 첫 방송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강호동 부친상 비보, ‘신서유기5’ 측 “출연진·제작진 귀국 중”

    강호동 부친상 비보, ‘신서유기5’ 측 “출연진·제작진 귀국 중”

    ‘신서유기 시즌5’ 측이 강호동의 부친상으로 예정보다 빠르게 촬영을 종료했다. 10일 tvN 측은 “강호동이 일본에서 진행 중이던 tvN ‘신서유기 시즌5’ 촬영 중 오늘 오전 부친상 비보를 접하게 됐다”고 밝혔다. tvN 측은 “강호동 부친상 비보를 접하고 ‘신서유기 시즌5’ 출연진 및 제작진도 일정을 앞당겨 현재 귀국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10일 오전 6시 30분 강호동의 아버지가 숙환(오래 앓아 온 지병)으로 별세했다. 소속사 측은 “장례는 가족, 친지 분들과 조용하게 치르려고 한다. 가족들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배려 부탁 드린다”고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강호동 오늘(10일) 부친상 “숙환으로 별세...장례 조용히 치르기로”

    강호동 오늘(10일) 부친상 “숙환으로 별세...장례 조용히 치르기로”

    강호동이 부친상을 당했다. 10일 오전 6시 30분 강호동 아버지가 숙환(오래 앓아온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날 강호동 소속사 SM C&C 측은 “강호동 씨 부친께서 금일 새벽 6시 30분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장례는 가족, 친지 분들과 조용하게 치르려고 한다. 가족들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배려 부탁 드린다”고 덧붙였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강호동에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하 SM C&C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SM C&C 입니다. 강호동씨의 부친께서 금일 새벽 6시 30분 별세하셨습니다. 장례는 가족, 친지분들과 조용하게 치르려고 합니다. 가족들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배려 부탁 드립니다. 삼가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부고]

    ●서병기(전 해기사협회장·동지상선 회장)씨 별세 유정(신우 이사)씨 부친상 정윤택(전 서울 광진구 부구청장)씨 장인상 9일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01호, 발인 11일 오전 8시 30분 010-7749-5050 ●우송환씨 별세 원균(원우시스템즈 대표) 부영(미국 샌디에고 공무원) 상균(엑스포츠뉴스 대표)씨 부친상 김의중(미국 퀄컴 연구원)씨 장인상 최이선·배영진씨 시부상 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30분 (02)2258-5940 ●권영희씨 별세 오웅·미정씨 부친상 박찬식(경향신문사 독자서비스국 부장)씨 장인상 8일 대구기독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30분 (053)627-4447
  • [부고]

    ●김고산씨 별세 경주(현대삼호중공업 대조립부 팀장) 경일(자영업)씨 부친상 강명승(대신증권 강남선릉센터 영업이사)씨 장인상 7일 전남 목포 효사랑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9시 (061)242-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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