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광장] 행정에는 마침표가 없다
오늘은 민선 8기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한 사람의 임기는 끝나도 도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도 주민들은 같은 길로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며, 어르신들은 경로당과 시장을 찾을 것이다. 이렇듯 주민의 하루는 어제에서 오늘로, 다시 내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임기 마지막 날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성과가 아니라 ‘연속성’이다.
구청장으로 일하며 거듭 확인한 것이 있다. 행정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주민의 하루를 조금 덜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막혀 있던 길을 조금 더 걷기 좋게 만들고, 위험한 곳을 한 번 더 살피며, 혼자 사는 이웃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하나하나는 작아 보여도 주민의 삶에서는 절대 작지 않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마련하고, 주민 의견을 듣고, 현장을 조정하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정책이 제 모습을 갖춘다. 어떤 사업은 첫 삽이 오래 걸리고, 어떤 정책은 주민의 신뢰를 얻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행정의 연속성은 누군가의 성과 보존이 아니라 주민의 삶에 공백을 만들지 않는 일이다.
정책은 특정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다. 주민에게 필요하고 도시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주민의 자산이다. 누가 시작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주민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지다. 행정의 이름은 바뀔 수 있지만 주민의 필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안전, 보행, 돌봄, 교육, 일자리, 지역경제는 어느 때에도 멈출 수 없는 공공의 과제다.
지방자치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정부는 중앙의 큰 정책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 주민의 발길을 붙잡는 보도블록,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골목, 안부가 필요한 1인가구, 하루 매출을 걱정하는 시장 상인,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곳이 구청이다. 그렇기에 지방행정은 정치의 시간이 아니라 생활의 시간으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행정의 연속성이라고 해서 변화를 멈추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변화는 그동안 쌓아 온 토대 위에서 더 단단해질 때 힘을 얻는다. 이미 시작된 정책도 주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고쳐야 하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과감히 바꿔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주민에게 이로운가, 도시의 지속 가능한 미래에 필요한가, 현장의 불편을 줄이는가 등이다.
지난 시간 동안 구 곳곳에서 많은 주민을 만났다. 시장 골목에서, 학교 현장에서, 경로당과 공원에서, 민원실과 공사 현장에서 들은 말들이 구정의 방향을 붙잡아 주었다. 때로는 격려보다 질책이 더 큰 힘이 됐다. 주민의 불편한 한마디가 행정을 움직였고, 현장의 작은 제안이 정책의 방향을 바꾸었다. 임기 중 가장 감사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이다.
다음 구정도 주민의 하루를 가장 앞에 두길 바라며 이미 시작된 변화는 더 세심하게 다듬어지고, 부족했던 부분은 더 나은 방식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임기는 끝나도 주민의 하루는 계속된다. 그렇기에 행정에는 마침표가 없다. 오늘의 동대문이 내일의 동대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주민은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것이 행정의 가장 큰 책무다. 앞으로도 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도시가 더 따뜻하고 더 단단하게 걸어가기를 응원하겠다.
이필형 서울 동대문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