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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총재·시민단체 어색한 만남

    8일 여의도 한나라당에서는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시민단체와 李會昌총재 사이에 ‘설전(舌戰)’이 오갔다.이전부터 예정된 만남이었지만,전날 徐相穆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터라 왠지 어색해 보였다. 당사를 찾은 정치개혁시민연대 대표 8명은 단도직입적으로 “정치개혁 논의기구에 민간단체 대표들을 참여시켜달라”고 요구했다.李총재는 즉답을 회피한 뒤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정치권이 불신을 받고,정치개혁을 위한 제안을 받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운(韻)을 뗐다. 정개련 孫鳳淑대표는 “현 정치권에서는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새정부 출범 후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 같다”면서 “일반 국민들은 정치개혁을바라고 있으나 미흡하며,그 내용을 보면 3당(黨) 3색(色)”이라고 지적했다. 또 “여·야 대표 뿐아니라 민간대표를 참여시켜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야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徐京錫집행위원장도 “3·30 재·보선의 불법·부정선거에 대해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그는 정치개혁의 선결조건으로 지역주의 타파,정당민주화,생산적인국회,돈안쓰는 선거를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李총재는 “정치개혁의 요체,핵심을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여든 야든 공명선거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야 정치개혁이 가능하다”고 화답(和答)했다.그러면서 “시민단체의 참여를 위한 여러가지 지원문제를 고려하겠다”고 약속하고 “하지만 시민·사회단체가 양비론(兩非論)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13)분출하는 욕구(上) /사형수 편지

    ‘혁명은 독한 술과 같다’던가. 4월혁명 후 한국사회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다.李承晩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시민은 제각각 품고 있던 기대와 욕구를 마음껏 뿜어냈다.남자나 여자,노인과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시위에 나서 목청을 높였다.그것은 어쩌면스스로 자유를 쟁취한 자의 권리행사였다.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고들 말한 張勉정부 8개월여.그때일어난 데모 중에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교사전근 반대’를 내세워,또 ‘어른들은 이제 데모를 그만 하라’고 요구하며 각각 데모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은 국회의원이 경찰관의따귀를 때렸다고 시위를 벌였다.군인도 예외는 아니었다.논산훈련소에서는정훈부 사병들이 “宋모중령이 우리를 머슴처럼 부려먹는다”고 항의데모를벌이려고 해 장교들이 가까스로 저지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데모가 모두 무절제하고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많은 부분은 자유당 독재정권의 유산을 청산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6·25 때의 양민학살사건 진상을 밝혀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예다. 1960년 5월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는 주민 70여명이 朴모씨를 불태워죽이는 처참한 사건이 일어났다.51년 이 지역에서 양민학살이 있었는데 당시 면장이던 朴씨가 주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유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사건발생 후 경찰이 출동했지만 오히려 주민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곳곳에서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요구가빗발쳤고 이에 따라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직접 조사에 나섰다.그결과 신원면에서는 51년 봄 3개 부락 주민 600여명이 빨갱이로 몰려 金宗元이 지휘하는 화랑부대에게 학살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 국회조사반이 파악한 6·25 당시의 양민 피살자는 경남 2,892명,경북2,200명,전남 524명,전북 1,028명,제주 1,878명 등이었다. 張勉정부 하에서의 가장 충격적인 시위사태는 60년 10월11일 발생했다.‘4월혁명유족회’회원을 비롯한 시민·학생 수천명이 민의원에 난입한 것이다. 그 원인은 4·19 때의 발포자,3·15 부정선거 관련자,정치깡패 등 4월혁명을 불러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는 피고인들에게 1심 형량을 선고했다.발포건과관련해서는 柳忠烈 당시 서울시경국장에게만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언도했을 뿐 역시 사형이 구형된 洪璡基내무장관에게는 징역 9월이,郭永周 대통령경호관에게는 징역 3년이 각각 떨어졌다.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무죄 또는 징역 8월∼5년이 언도됐다. 민심은 크게 격앙했다.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데모가 잇따르다가 급기야는 10월11일 내각책임제 권력의심장부인 민의원을 강타한 것이다. 국회 난입에는 환자복에 목발을 짚은 4·19 부상자 50여명이 앞장섰다.이들은 본회의장으로 몰려가 의사진행을 중단시켰다.그들은 “하루빨리 혁명입법을 완성하라”고 요구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신·구파가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고 강요했다.이에 구파의 金度演과 신파의 林文碩,구파의 徐範錫과 신파의 李哲承이 억지로 악수를 나누는해프닝이 벌어졌다. 그 상황을 郭尙勳 민의원의장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부상학생의 위세가 당당하여 마치 부상학생들의 천하와 같은 감이들었고 아무도 감히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정권을 우리가 주었는데’하는 생각은 ‘부상학생 천하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국회에 경호권을발동하여 한번 크게 호령을 해줄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그들의 항의방법이너무도 졸렬하여 그만 자신을 잃어버렸다”거듭되는 데모로 사회는 불안정하고 정부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진 듯한 이같은 상태,훗날 ‘무능하다’는 비판의 근거로 제시된 이 상황을 張勉정부는어떻게 판단하고 있었을까. 張勉의 뜻은 “국민이 열망하던 자유를 한번 주어보자”는 데 있었다(회고록에서 인용).그는 “오랫동안 자유당정권 하에서 억눌렸던 국민이 자유가허락된 이때에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한번은 마음껏 발산시키고 나서야 가라앉을 것은 어쩔 수 없는 뻔한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작용했음도 물론이다.張勉은 “귀와 입으로배운 자유를 몸으로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이는 “이론과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었다.결국 張勉은 “자유가 베푼 혼란과 부작용에 스스로혐오를 느낄 때 비로소 진실한 자유를 얻는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었다. 張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李泓烈(77)은 4·19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한사건 직후 비서관들이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건의했다고 기억했다.자신을 비롯해 宋元英공보비서관,정보담당인 해군尹대령 등이 시국을 걱정하다 張총리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별도기구를 직속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에 자신이 비서진을 대표해 말했더니 張총리가 “泓烈군,무슨 소리야.민주적인 행정을 하자고 투쟁을 해서 총리가 된 것 아닌가.비상수단을 꼭 써야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거야”라고 안색을 바꾸며 꾸짖더라는 것. 張勉과 그의 정부가 믿은 것은 시간이었다.세월이 지나 혁명의 흥분이 가라앉으면국민은 무절제한 자유가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가를 깨닫겠지,그리고그 자각(自覺) 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꽃필 것이라고 기대했다.실제로 1961년에 접어들자 데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5·16의 총성이 울려퍼지기전까지 張勉정부의 교과서적인 민주주의는 꽃망울을 맺어가고 있었다. - 張勉 저격 共謀 사형수 편지 첫 공개 張勉의 인품과 인간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편지 2통이 8일 공개됐다.그의맏아들인 張震 서강대 명예교수 부부가 최근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편지들은 한때 그의 목숨을 노린 崔勳이 1965∼66년에 걸쳐 보낸 것이다. 崔勳은 1956년 9월28일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張勉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3명 가운데 하나이다.현장에서 張勉에게 직접 권총을 쏜 金相鵬과,金에게 권총을 마련해준 李德信(당시 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사이를 연결해준 것이 崔勳이었다. 65년 7월27일자 소인이 찍힌 첫 편지에서 崔는 張勉에의 존경심과 고마움을 절절히 토해냈다.그는 “진작 편지를 올릴 마음 간절하였으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박사님의 쓰라린 상처를 위로해드리는 일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은혜를 못잊어 조석으로 박사님을위해 기원하는 한 생명이 이 땅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점만은 알려드리고싶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는 張勉총리가 60년 10월1일 감형을 해줘 사형을 면한 일,그해 12월에는 직접 교도소를 방문해 털내의를 건네준 덕에 따뜻하게 겨울을 난 일들을 기억했다. 崔는 “박사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상을 시범하신 사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박사님이 ‘그대의 죄를 전부 사해주노라’라는 말씀을 친히 들려주실 날이 오기를 간망(懇望)한다”고 기원했다. 張勉은 崔勳에게 바로 답장해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여러차례 오갔고,그 편지에서 張勉은 가톨릭에 귀의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현재 남아 있는 두번째 편지(66년 1월9일자 소인)에 이를 알려주는 구절들이 나온다. 새해인사를 겸해보낸 이 서신에서 崔勳은 “박사님의 편지를 받은 후 반년 이상이나 신중히 생각한 결과로 근방의 주임신부님을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톨릭에 입문할 결심임을 알렸다.이어 “영세를 받기까지는 자주 편지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오해 마시기 바라며 그러는 것이 박사님의 심경에 위로를 드리는 것이라는 졸렬한 생각에서”라고 밝혔다. 張勉과 崔勳 사이에 오간 편지는 이 두 통밖에 남아 있지 않다.둘 다 우편봉함엽서이며,‘대구시 삼덕동 82의 1’에 사는 崔勳이 서울 명륜동 張勉의자택으로 보낸 것이다. 崔勳이 편지를 보낸 시점은 張勉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탈취당한 지 4년이 지난 때였다.張勉이 정계에서 완전 은퇴해 자택에서 가톨릭 서적을 번역하는 데 몰두한 시절이다.따라서 崔勳의 편지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존경심과 그리움을 담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국무총리로서 국정의 최고책임을 맡았던 정치가,한때 그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사형이 확정됐던 사형수.역사의 현장에서 벗어나 둘만이 나눈 대화는 張勉을 가까이서‘모신’ 어느 누구의 증언보다도 張勉의 인간적인 면모를 진솔하게 들려준다.그 귀한 ‘증언’이 가족도 모르게 30여년을 숨어지내다 올해 ‘張勉 탄신 100주년’을 맞아 세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張勉에게 총을 쏜 金相鵬은 복역을 마치고 나와 목사가 되었다.金목사는 지난 87년 張勉의 셋째아들인 張益주교(춘천교구장)를 만나 ‘위대한 인격자 張勉’을 함께 회고했다. 李容遠
  • YS, 지역정서 노골적 자극

    金泳三전대통령의 지난해 대통령 퇴임 이후 첫 ‘고향방문’은 정치 재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金전대통령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간의언행으로 볼 때 정치활동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金전대통령은 8일에도 이해하기 힘든,정치색이 짙은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텃밭’으로 2박3일간의 나들이 중 마지막 행선지인 부산에서“삼성,LG 등 부산·경남 재벌들을 하나 하나 거둬가고 있다”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 金전대통령은 이 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 10명 등이 참석한 조찬모임에서“빅딜은 자기들끼리 하는 것이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비난했다.이어 “정부의 중요 직책은 (PK 출신이) 다 쫓겨나고 특정지역 사람이 갔다”면서 “나는 대통령 시절 의식적으로 국무총리,대법원장 등 중요 직책에 호남사람을 기용했다”고 주장,현 정부의 인사정책을 성토했다. 金전대통령은 “金大中대통령이 보복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또 “나마저 독재정부에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현 정부가 반성하기를 바라지만 이미 현 정권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고,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독설(毒說)을 퍼부었다. 金전대통령은 이날도 金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몰아붙이면서 한·일어업협정,언론탄압,부정선거 등을 들먹였다. 조찬모임에는 이 지역 출신인 한나라당 朴寬用 辛相佑 金鎭載 金道彦 金炯旿 金武星 鄭義和 鄭文和 朴鍾雄의원과 무소속 韓利憲의원 등 10명이 참석했다. 金전대통령은 고향방문 첫 날인 지난 6일 통영시 만찬에서 金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규정하며 칼을 뽑은 뒤 일반의 부정적 여론을 무시하면서 현 정권을 연이어 신랄하게 비판했다.이는 계산된 행동이라고 분석되고 있다.부산·경남 출신을 중심으로 야당 내에서 지분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의도로 비친다.상도동 복귀 후 金전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 제출 7개월만인 7일 본회의에서 여야 표결에 붙여 졌으나 부결됐다. 여야 의원 292명 가운데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 156명이 참여한 이날 표결에서 가(可)표는 과반수에 못미치는 136표에 그쳐 공동여당 내에서 최소한 20명 이상이 반란표를 던졌으며 자민련측이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와 관련,공조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으나 내각제 연내 개헌문제 등을 놓고 향후 공동여당 운영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특히 국회가 ‘세풍(稅風)’이라는 위법 사건 처리를 정치적으로 막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며 정치개혁의 차질 가능성도 지적된다. 국민회의 韓和甲총무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등 공동여당 지도체제 개편여부가 주목된다. 朴相千법무부장관 해임건의안,金泰政검찰총장 탄핵소추안 등 2건도 부결됐으며 ‘IMF 환란원인 규명과 경제위기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결과보고서채택의 건’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퇴장속에 통과됐다. 한편 한나라당은 ‘3·30 재·보선’과 관련,부정선거조사특위 1차 회의를갖고 장외집회 개최 등 향후 투쟁방향을 논의하는 등 대여공세를 강화할 움직임이어서 여야 경색정국이 심화될 조짐이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오는 9일부터 단독소집한 제203회 임시국회에서 실업대책 및 어민지원을 위한 2조6,5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과 민생법안 심의에는 응하기로 해 국회가 부분적으로는 정상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 3·30선거 공방 정책은 뒷전 국회 현안 질문

    여야 의원들은 6일 열린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문을 통해 ‘3·30 재보선’,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처리 문제 등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책보다는 재보선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 데 반해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은 야당의 부정선거 시비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실업 및 정부조직개편 문제 등을 짚었다.이날 질문에서도 ‘3당 3색’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재·보선 최근 불거진 국민회의의 ‘특위구성’ 등을 놓고 첨예하게 맞붙었다.한나라당 安澤秀의원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재·보선의 총체적,구조적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에 위장 선출된 두 사람을 즉각 사퇴시킬 것”을 요구했다.같은 당 李佑宰의원은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돈과 향응제공,공무원들의 공공연한 선거운동 개입,선관위와 경찰의 부정선거 단속의지 희박 등이 정치와 선거를 타락시키고 국민의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선관위의 편파성은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스럽게 한다”고 개탄했다. 국민회의 朴光泰의원은 “한나라당이 우리당의 정당하고 바람직한 특위활동마저 부정선거라고 시비를 걸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반하장이요,천인공노할 억지 생트집”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 薛勳의원은 “한나라당이 재보선을 ‘조직·관권·금권선거’라고주장하는 것은 근거없다”고 부인하고 “오히려 소나기처럼 돈을 퍼붓고 안기부·국세청 등 공공기관을 동원했던 불법·타락선거행태는 한나라당이 과거정권 시절 저질렀던 비리이지,이번 재·보선과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자민련 金七煥의원은 “3·30 재보선이 중앙당의 과도한 직접 개입과 고비용으로 인해 과열·혼탁선거 시비를 자초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재보선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중앙당의 직접 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동시에,선거법도 고쳐 국가적 낭비와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공방 실업 및 정부조직 개편에 초점이 모아졌다.국민회의 薛勳의원은“야당이 이번 정부 조직개편을 ‘후퇴’라고 폄하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아니라 방만한 국가운영으로 IMF를 초래한 책임세력으로서 과거 국가운영에 대한 반성없는 태도”라고 꼬집었다.薛의원은 또 “정부는 이 과정에서 조직개편의 목표 및 방향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해 오해만 불러일으켰고,부처간 밥그릇 싸움을 일삼는 것처럼 비쳐졌다”고 호되게 나무랐다. 그러나 한나라당 鄭文和의원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든다고 날린 46억원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따졌다.그러면서 “정부조직 개편안의 가장큰 실책은 공무원의 참여배제에 있다”고 지적,“경영마인드의 무리한 적용으로 개혁의 주체인 공무원들은 소외되어 버렸고 결국 정부가 복지부동,복지안동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자민련 姜宗熙의원은 “실업대책이 근시안적이고 임기응변식으로 실업대책 예산을 확정,수립한 지 수 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큰 규모의 추가예산을 투입하려 하고 있다”면서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의 실업대책이 필요하며,특히 중소기업 육성에 역점을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한나라당 安澤秀의원도 “한·일어업협정 개정으로 피해를 입은 어민대책 예산 1,0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므로 5,000억원 정도로 늘릴 것”을 촉구했다. 徐相穆의원 문제 국민회의 朴光泰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徐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물타기 작전’으로 재보선에 대한 시비와 생트집 작전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朴의원은 이어 “또 다시 한나라당의 방탄(防彈)국회로국회가 무력해지고 경제회생의 걸림돌이 되면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安澤秀의원은 “국민회의는 지난해 9월 이 문제를 처리할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질질 끌어 야당을 골탕먹이고 있다”면서 “국회 회기초에는 가만히 있다가 정국이 어렵게 꼬이면 꼭 회기말에 와서 徐의원 체포동의안을 들고 나오는 것은 정략적 발상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여당을 몰아붙였다.
  • “재보선 부정시비 철저 수사”金대통령 지시

    金大中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3·30 재·보선 부정선거시비에 언급,“불행하게도 일부 부정에 대한 시비가 있어 朴柱宣 청와대법무비서관을 통해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전하고 “국민은 여당이이기면 적당히 넘어간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나 이번에 이를 깨뜨리고,잘못된 것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민의 정부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많은반성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부정선거는 대통령의 의지도,여당의 의도도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 뒤 정치개혁입법을 서둘러 줄 것을 당부했다. 이와 관련,대검 공안부(秦炯九검사장)는 재·보선 과정에 부정·불법이 있었는지 여부를 해당 지검에서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도록 지시했다.검찰은 중앙선관위가 고발한 사건을 포함,각 당 및 후보진영간의 고소·고발사건과 부정선거 시비를 야기한 각종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 서상목 체포동의안 7일 국회 표결처리

    국회는 7일 본회의를 열고 7개월 가량 끌어오던 한나라당 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과 朴相千법무장관 해임건의안,金泰政검찰총장의 탄핵소추안을 표결처리할 방침이다. 국회는 6일 본회의 긴급현안질문에 앞서 한나라당이 제출한 朴장관 해임건의안과 金총장 탄핵 소추안을 상정했다. 이와 관련,한나라당은 徐의원의 요청에 따라 체포동의안 처리절차에 정상적으로 응하기로 입장을 바꿨으며 9일부터 시작하는 203회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단독으로 제출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徐의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회가 민생과 유리되고 정치불신과 혐오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徐의원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겠다”며 표결처리 강행 방침을 확인했다. 당사자인 徐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체포동의안을 7일 본회의에서국회법이 정한 처리 절차에 따라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이 사건으로 한나라당에 더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며 최근 다시 경색되고 있는정국을 푸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표결처리에 대비,와병중인 의원 등을 제외한 156명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徐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당분간 경색정국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金鍾泌국무총리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3·30 재·보선 부정선거 의혹 등 정치현안에 대한 긴급현안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정부는 고발된 불법선거 사례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수사,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金총리는 이어 “그동안 참여했던 수많은 선거에 비해볼 때 지난번 선거는 잘못된 점이 있지만 지난날에 비하면 개선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질문에는 국민회의 朴光泰 薛勳의원,자민련 金七煥 姜宗熙의원,한나라당 安澤秀 鄭文和 李佑宰 李思哲의원등 여야 의원 8명이 차례로 나서 재·보궐선거의 불법선거 의혹과 정부조직개편안 등 정치현안을 놓고 공방전을 벌였다. 국회는 이에 앞서 99년도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한 예산결산특위를 구성했다.
  • ‘서상목 먹구름’ 너머 햇살정국 오나…표결 이후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이 7일 국회에서 표결처리될 전망이어서 정국향배와관련,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회의는 98년 9월부터 7번이나 계속돼 온 한나당의 ‘방탄국회’에 총력 대응한다는 방침아래 ‘체포동의안의 강행처리’쪽으로 가닥을 잡았다.이날 총재단은 한나라당이 물리력으로 표결처리를 저지할 경우,국회 경위권 발동 등 다각도의 대책을 이미 추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같은 여권 기류와 비난여론을 의식,한나라당이 정상적 표결처리에 응하기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여권측은 보고 있다. 여야가 7일중 국회법테두리에서 徐의원을 표결처리할 경우,그의 체포동의안은 처리될 것이 확실시 된다.공동여당의 결속은 3·30 재보선이후 어느때보다 강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徐의원이후 정국’이 순탄하게 전개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여권은 徐의원문제가 매듭되면 2조6,000여억원에 달하는 추경예산안등 민생현안과 정부조직법,각종 규제개혁입법안,정치개혁안을 일사천리로 강행처리할 움직임이다.반면 한나라당은 3·30 재·보선에 대한 부정선거 공세를 최우선으로 택할 전망이어서 정국이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적지않다.추경예산안처리는 한나라당도 반대하지는 않지만 정략적으로 발목잡힐 공산이 여전히 있다.그러나 여권은 어민·실업대책을 담은 추경안은 민생문제여서 하루도 지체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더욱이 지난해 말부터 미뤄지고 있는 각종 규제개혁법안이나 정치개혁관련 입법은 당위의 문제로 미룰 명분도 여유도 없다는 입장이다. 여권은 한나라당의 선거부정 이슈화가 정국의 큰 변수는 되지못할 거라는판단이다.3·30 재·보선 자체가 한나라당의 원인제공으로 실시되는 선거였다.더욱이 이번 선거를 선거부정 문제로 귀착시키는 것은 선거패배에 따른인책론을 모면하고 徐의원 표결처리에 따른 부담감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徐의원 이후 정국은 한나라당의 장외공세등 대응수위가 최대변수가될 전망이다.여야 총재회담 이후 기대됐던 대화 분위기의 유지가 쉽지않을것 같다. - 표결 어떻게 될까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이 7일 표결처리될 경우 그 결과는 어떻게될까.朴相千법무장관 해임건의안과 金泰政검찰총장 탄핵소추안 등 중요한 안건은 재적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가결되지만 의원 체포동의안은 일반안건이라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6일 현재 재적의원은 296명이지만 중앙선관위는 7일 鄭相千해양부장관의 의원직 사퇴에 따라 예비후보 1순위인 자민련 宋業敎씨의 의원직 승계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재적의원은 297명으로 늘어난다.의원정족수는 299명이지만 국민회의 李基文 전의원과 한나라당 洪準杓 전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2명이 공석이다.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의원은 모두 159명.국민회의 徐廷華의원,자민련 金復東의원은 와병(臥病)중이다. 국민회의 朴定洙의원은 7일 유럽출장을 갈 예정이라 동원가능한 의원은 모두 156명이다.이들이 모두 참석,찬성표를 던지면 동의안은 가결된다. 한나라당 의원은 134명이다.이중 崔炯佑의원은 와병으로 출석할 수 없다.鄭在文의원도 몸이 썩 좋지 않아 출석이 불투명하다.무소속의원은 鄭夢準 韓利憲 姜慶植 洪思德의원 등 4명. 한나라당이 불참하면 徐의원 체포동의안은 쉽게 가결된다.공동여당의 동원가능한 의원 156명의 과반수인 89명의 찬성이 있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출석하면 문제는 다소 복잡해진다.공동여당 156명,한나라당 132명,무소속 3명(鄭夢準의원 제외)이 모두 출석할 경우(출석의원 291명)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려면 146명의 찬성을 얻어야 된다. 한나라당과 무소속의원 135명이 모두 반대한다면 공동여당에서 10표의 이탈표가 있으면 부결될 수 있다. - 한나라 입장선회 배경 한나라당이 ‘徐相穆국회’의 꼬리를 떼고 여당의 ‘3·30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는데 당력을 기울이기로 했다.徐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와 부정선거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徐의원 문제를 둘러싼 따가운 여론의 시선도 의식한 듯 싶다. 부정선거 의혹을 도마에 올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판 승부를 불사(不辭)하겠다는 전략이다.이날 徐의원이 A4용지 4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에서 “여권이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꼬집은 것도 대여(對與)총공세에 나서는 당의 속내를 뒷받침하고 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면 오는 5월 송파갑등 2곳의 재선거는 물론 내년 총선도 “하나마나 한 선거가 될 것”이며 “야당의 생존권 차원에서 강력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다.徐의원이 회견에서 “당에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체포동의안 처리를 요청한 것도 당운(黨運)을 건 부정선거 공세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李會昌총재도 오전 총재단회의에서 “徐의원 문제는 아무런 정치적인 고려없이 대응할 것”이라며 정면 돌파의 뜻을 밝혔다. 여권의 ‘3·30 부정선거’ 의혹으로 호기를 맞은 마당에 ‘徐의원 건(件)’에 발목을 잡힐 수 없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특히 여권이 한나라당의 부정선거 공세를 ‘徐의원 처리 문제를 회피하려는 전략’이라고 몰아붙이자 당지도부가 지난 이틀동안 徐의원과 함께 모종의 결단을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여당의 재보선 특위활동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문책,대통령의 사과 등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총공세를 펼칠 예정이다.지역별 장외투쟁도 갖는다.여당 후보 당선지역인 구로을과 시흥의 선거무효소송도 제출하고 당내 부정선거진상조사특위를 발족,부정선거백서도 발간한다.여권이 부정선거 의혹을 엄중 처리하지 않으면 5월 재선거를 보이콧하는방안도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
  • “民意 나몰라라” 또 방탄국회

    한나라당이 9일부터 임시국회를 또다시 단독 소집할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5일 3·30 재·보궐선거에서 국민회의의 ‘불법선거’를 따지기 위해 오는 8일로 회기 만료되는 202회 임시국회에 이어 203회 임시국회를 9일부터 소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임시국회 소집이유는 명분일 뿐 속내는 徐相穆의원의 구속을 피하기 위한 당리당략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는 물론,시민단체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국회를 더이상 특정인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 국회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겉으로는 부정선거 조사를 명목으로 내걸었지만 이는 국민의 눈을 속이는 일일 뿐 그 실체는 徐의원 방탄국회 재소집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치개혁 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더이상 국회 파행을 가져오는 방탄국회를 청산하기 위해 徐의원의 체포동의안을 국회의 절차에 입각해 조속히처리하라”고 주장했다. ‘방탄국회’에 대한 한나라당 내의 불만도 만만찮다.한나라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李會昌 총재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공법’을 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임시국회 전망/시민단체·학계·검찰반응

    여야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정면대결쪽으로 치닫는 양상이다.그래서 8일 폐회되는 제202회 임시국회의 막판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정국긴장도 높아지고 있다.한나라당 李富榮총무가 5일 “9일부터 203회 임시국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히자,국민회의 韓和甲총무는 “7일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야는 지난 주말 총무단 접촉을 통해 한나라당이 ‘방탄국회’를 더이상소집하지 않으면 徐의원을 국회가 아닌 검찰에서 처리하는 문제를 협의했지만 완전한 타협에 이르지는 못했다. 한나라당 李총무는 “부정선거를 규명하는 임시국회를 당연히 소집해야 한다”며 “徐의원 방탄국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여권의 생각은다르다.국민회의 鄭東泳대변인은 “겉으로는 부정선거 조사명목을 내걸었지만 실제는 徐의원 방탄국회 재소집”이라고 맞받아쳤다.일반의 여론도 ‘세풍(稅風)’사건에 연루된 徐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임시국회를 이어가는 야권의 행태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7일 徐의원 체포동의안을 표결처리할 경우 실력행사에 들어갈생각이다.그러나 한나라당이 표결처리를 실력으로 막을 명분은 약하다.차라리 표대결에 참여하는 게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徐의원 처리건은 일반안건이라 재적의원(현재 297명)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다.한나라당측이 출석하지 않으면 여권 의원 157명만으로 쉽게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한나라당 의원들이 출석하면 일부 여권 의원의 반란표가 합쳐질 경우 의외의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7일 徐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여부와 맞물려 이번 임시국회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2조6,500억원의 추경안과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여야 합의통과는 힘든 분위기다.徐의원 문제라는 암초가 워낙 커 여야관계 전반이 당분간 냉랭할 가능성이 높다.한나라당은 徐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와 ‘재보선 부정선거’를 이유로 장외(場外)로 나가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9월부터 徐의원 보호를 위한 방탄국회를 열었지만 여권의 대응도 효율적이지는 못했다.여러차례 표결처리를 외쳤지만 실천은 못했다.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 비(非)주류측의 움직임.徐의원건이 당의 장래와정국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지만 아직은 드러내놓고 비판하지못하고 있다. 더이상 여야가 徐의원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담합하지 말고 깨끗한 승부를 할 때가 됐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뜻인 것 같다. - 시민단체·학계 반응‘徐相穆 방탄국회’를 바라보는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의 인내력이 한계에 달한 느낌이다.이들은 한나라당 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를둘러싸고 6개월 동안 파행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데 대해 ‘절차에 입각한 조속 처리’를 주문했다.徐의원 문제를 절차대로 마무리,국회를 정상 가동해야 한다는 논지다. 정치개혁시민연대 金石洙사무처장은 “야당은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국회의원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여당 역시 이를 정치적 흥정거리로 이용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면서 “이 문제는 정치적 타협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당리당략을 떠나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개혁국민연합 權己赫조직부장은 “지위 고하를 떠나 부정이 있으면 공정하게 사법처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면서 “徐의원 문제를 하루빨리매듭짓고 산적한 민생·개혁법안 등을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사회 공동선운동연합 具英珠간사는 “여야가 양비론(兩非論)을 제기하기에 앞서 문제의 원인 제공자인 야당이 먼저 ‘버티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학계에서도 ‘방탄국회’를 끝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성균관대 任鏞淳교수는 “徐의원 문제는 국회운영과 별개로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한 개인의 문제로 국회가 파행운영되어서는 안된다”며 당리당략에 따른 방탄국회를 비난했다.이어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사법기관이알아서 할 문제로 국회는 절차대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라고 당리당략에 따른 방탄국회를 비난했다. - 검찰의 입장 여권이 오는 7일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강행하겠다고 거듭 공언하자 검찰은 ‘정치권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지난해 정치인 사건 때문에 ‘정치검찰’ ‘표적사정’ 등 각종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검찰로서는 徐의원 사건을 가장 부담스러운 정치인 관련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金泰政 검찰총장도 徐의원 사건이 정치쟁점화될 때마다“정치권 문제만 담당하는 검찰총장을 별도로 뒀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을 정도다.그만큼 徐의원 문제는 지난해 8월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검찰에게는감당하기 어려운 멍에로 작용했다. 현행법상 회기 중에는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지 않는 한 현역의원을 구속할 수 없다.그럼에도 검찰은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빚어진 모든 비난까지도 감수해야 했다.검찰권 행사와 관련한 공정성 시비의 틈새를 헤집고정치권이 비난의 화살을 검찰로 돌렸다는 게 검찰관계자들의 항변이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외에 더이상 제재수단이 없다”면서 “8개월 이상 되풀이된 소환→소환 불응→방탄국회 소집이라는 지루한 공방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검찰은국회가 표결처리를 통해가결이든 부결이든 결론만 내려준다면 한결 부담을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가결되면 법원이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발부할 것이고,부결되면 정치권의 의사를 존중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 ‘재·보선 特委활동’ 與野 공방

    한나라당 지도부가 식목일인 5일 아침 예정에 없던 주요당직자 간담회를 긴급 소집했다.‘국민회의가 3·30 재보선을 앞두고 해당 지역에 당 특위위원을 대거 위촉,편법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놓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徐相穆의원 방탄국회’라는 비난 때문에 오는 9일 임시국회 재소집이 부담스러웠던 당 지도부로서는 ‘떡본 김에 제사 지내듯’ 이번 사안을 임시국회 재소집의 빌미로 삼을 태세다.특히 여당의 ‘徐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강행’ 시나리오에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던 당 지도부는 내심 “대여(對與)협상의 여지가 생긴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간담회에서 당 지도부가 “자유당 시절 완장부대를 연상케 하는 불법선거운동을 해놓고도 정치개혁 운운할 수 있느냐”고 몰아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나아가 한나라당은 金大中대통령에게 구로을 韓光玉,시흥 金義在당선자의 사퇴와 선관위·행자부 등 관계자 엄중 문책을 촉구했다.아울러 당내와 국회내 부정선거조사특위를 구성,진상 규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辛卿植사무총장은 “장외집회나 당원 농성 등 모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강경투쟁 방침을 밝혔다.‘강하게 밀어붙여야 막바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특위활동은 선거 전부터 통상적으로 해온 합법적인 정당활동으로 법률적인 문제가 없다”며 “한나라당이선거 패배를 호도하고 徐의원 체포 동의안 처리 국면을 바꿔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나라당 주장이 “일방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재·보선 부정”공세 한나라 속셈 뭘까

    한나라당이 3·30 재보선 이후 연사흘째 여당의 불법·부정선거 의혹을 집중 거론했다.2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구로을과 시흥 선거의 무효소송을 검토키로 결정했다. 安澤秀대변인은 주요당직자회의 직후 “부정선거를 뿌리뽑지 않으면 오는 5월 송파갑 등 두 곳의 재선거와 내년 총선 등에서 야당이 설 자리가 없다는절박한 생존권 차원에서 강력 대응키로 했다”고 밝혔다.李會昌총재도 “지난달 17일 총재회담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재보선의 부정 타락 시비를 분명히 가리고 여권이 이를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시지부는 이날 오전 서울지역 지구당위원장 회의를 열어 부정선거 백서를 발간하는 등 총력 투쟁키로 방침을 정했다.전날 당내 민주수호투쟁위에서는 장외집회도 불사하는 정치적 투쟁방향도 논의됐다.재보선 이후 당지도부가 일제히 대여(對與)투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대여 강경노선은 당 안팎의 미묘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당 일각에서는 ‘당내용(黨內用)’이라는 시각도 있다.구로을과 시흥 선거의 패배에 따른 수도권의 위기의식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것이다.‘구로을과 시흥선거의 패인(敗因)은 여권의 불법·부정선거’라는 논리를 부각시킴으로써 당내 동요와 잡음을 차단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오는 5월 재선거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의도도 깔렸다.安대변인이 “야당이 부정선거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당내 문제와 정국상황을 감안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 양태는 매우 곤란한 일”이라고 서둘러 ‘울타리’를 친 대목은 지도부의 속내를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한나라 지도부 ‘가시방석’

    재보선 하루 뒤인 31일 한나라당에는 선거결과를 둘러싸고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비주류쪽은 오히려 잠잠했다.金潤煥 李漢東전부총재,李世基 姜三載徐淸源의원 등 일부 비주류 중진이 이런저런 이유로 당무회의,의원총회 등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李會昌총재의 ‘비판적 지지’그룹인 金文洙 安商守의원 등 수도권 초선들이 의원총회에서 선거패배에 따른 지도부의 ‘자책론(自責論)’을 강력제기했다.급기야 李총재가 특유의 결기어린 목소리로 ‘패배주의’를 거세게 질책하는 썰렁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金의원은 “시흥 보선의 패인(敗因)은 단순히 후보의 잘못이 아니라 고(故)諸廷坵의원의 조직을 조기에 흡수하지 못한 李총재와 지도부의 책임”이라며 “중앙당이 ‘토박이론’ 말고는 무대책으로 선거에 임한 점은 통탄할 일”이라고 몰아쳤다.金의원은 “호남과 충청의 지역연합에 이길 토박이는 수도권에 한 군데도 없다”며 “구태의연한 당 운영방식과 선거대책으로는 당에희망이 없다”고 내년 총선을 앞둔 수도권지역의 위기감을대변했다.金의원은 “특단의 대책이나 지원이 없이는 내년 총선 완패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이에 李총재는 “金의원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며 “비관과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李총재의 목소리에는 근래없이‘핏대’가 잔뜩 올라 있었다.李총재의 발언 도중에도 일부 중진의원은 “갑자기 왜 흥분하느냐”“수도권은 불안하다”며 수군댔다.여권의 부정선거를규탄하는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지만 ‘김’이 빠질대로 빠진 다음이었다.
  • 재보선문제점

    과거 혼탁선거의 재판이라는 평가 속에서 재보선이 막을 내렸다.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불법·타락 양상이 심화되자 여야는 앞다투어 ‘공명선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급기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재보선무용론’까지 등장했다.여야는 선거가 끝난 뒤 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실현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흑색선전 선거가 달아오르면서 후보들은 ‘IMF사태를 초래한 장본인’ ‘무능공직자’ ‘호화판 주택을 소유한 철새’ 등을 운운하며 상대후보 비방에 열을 올렸다. 지난 25일 모 후보쪽은 상대후보의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면서 “강박신경증이라는 정신병 때문에 전역했다”고 주장했고 상대후보는 “부인이 서울강남지역에 호화음식점을 차릴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앞서 24일에는 시흥보선에 출하만 모 후보가 “상대후보는 서울부시장 시절 부정행정으로 해임촉구결의를 받았다”면서 “전직 무능공직자”라고원색적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특히 모 정당 연설회에서 한 의원이“우리후보가 시시하게 여자와 싸울 만한 분이냐”며 여성후보 비하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중앙당 개입 이번 선거기간동안 여야는 총재를 비롯,주요 당직자와 소속의원들을 총동원했다.여야는 합의하에 이 기간동안 상임위활동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의원들의 ‘선거전’ 투입으로 상임위는 전혀 열리지 못했다.어렵게 마련된 임시국회는 ‘개점휴업’상태가 됐고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초래해후유증을 앓고 있다. 선거운동기간동안 李會昌총재를 비롯,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은 선거지역을 10여차례 가까이 공식방문했다.부총재와 당 3역에게 담당 선거구를 할당하는 등 의정활동을 전혀 할 수 없도록 했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朴泰俊총재 등 공동여권 지도부도거의 매일 선거구를 찾았다.선거구 각 동별로 담당 의원을 정하기도 했다. ▒고소고발 난무 선거가 치열해지면서 후보사이에 고소,맞고소의 악순환이되풀이됐다.여야가 검찰에 직접 고발한 건수는 국민회의 8건,한나라당 6건. 이외에 여야가 주장하는 상대후보 부정선거 사례는 수십건에 이른다.또 선관위가 자체 적발한 선거법위반도 수십건에 이르고 있고 이중 공식발표된 것만도 14건이다. 지난 27일 구로을 재선에서 한 후보가 ‘스카프 배포’ 혐의로 상대후보를검찰에 고발하자 이 후보는 사실무근이라며 맞고발하기도 했다. ▒관권·금권시비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2만∼5만원 단위의 자금을 살포하며 음성적 두더지식 사조직을 중심으로 불법선거를 자행했다”면서 금권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했다.이에 한나라당은 “서울시가 각 구청별로 시흥거주공무원주소록을 작성하는 등 관권선거의혹이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맞섰다.
  • [독자의 소리]정규·비정규 학력 구분은 차별

    현행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 제64조와 250조는 각종 선거 입후보자가허위 및 교육법이 인정하지 않는 학력을 게재할 경우 징역 5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공권력의 과잉행사로서 헌법 및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있는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다.또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망국적인 학력 우월주의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법조항이며 교육법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정당한 교육과정을 마친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기회를 박탈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각 대학에서 인정하는 고위 정책과정의 예를 든다면 이러한 과정 역시 대학당국이 인정하는 정교수가 강의를하고 대학이 엄격한 학사관리를 하고 있다.그런데도 정규 학력과 비정규 학력을 구분하는 것은 중대한 차별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때문에 이러한 법조항은 개정되어야 마땅하며 청와대와 여야 정당,선관위의 관심을 촉구한다. 오병선[여수시민협의회 실행위원·전남 여수시 선원동]
  • [제2공화국과 張勉](10)신구파 대립과 分黨(中)

    1960년 민주당은 좌절 속에서 출발한다.대통령후보인 趙炳玉이 신병치료차미국에 갔다가 2월 15일 현지에서 별세한 것이다.선거법상 후보를 교체할 수 없었으므로 민주당은 4년 전 申翼熙의 서거에 이어 또다시 대통령후보 없는 선거를 치르게 됐다. 홀로 남은 張勉부통령후보는 ‘3·15 부정선거’에서 자유당 李起鵬후보에게 패한다.득표 결과가 ‘李起鵬 833만표,張勉 184만표’라는,자유당 사람들 스스로도 너무 심했다고 인정한 부정선거였다. 분노한 국민은 ‘3·15 마산시위-4·11 제2차 마산시위-4·19 전국시위-4·25 대학교수단시위’로 이어진 4월혁명을 이룩해냈다.4월 27일 李承晩이 국회에 낸 대통령직 사임서가 수리돼 許政 외무장관을 수반으로 한 과도정부가 들어선다. 이 무렵 민주당 신·구파는 또다시 미묘한 갈등에 부딪친다.내각책임제로의 개헌문제였다.내각책임제는 원래 민주당이 창당때부터 내세운 주요 목표였다.그런데도 이를 채택하는 일이 새삼 논란이 된 까닭은 정파간 이해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사실 내각책임제 개헌은 59년 초한 차례 추진된 적이 있었다.추진세력은자유당 내 온건파와 민주당 구파였다.59년 2월 자유당 온건파를 대표하는 李在鶴국회부의장이 柳珍山민주당원내총무를 방문해 내각책임제 개헌을 제의한다.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여야의 격심한 대립을 그냥둔 채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치르다가는 끝내 국민이 피를 흘리는 사태를 초래할 것 같아서”였다. 柳珍山은 물론 흔쾌히 받아들였다.이후 李在鶴과 柳珍山은 李起鵬·趙炳玉의 승인을 얻어 극비리에 개헌을 추진한다.그러다가 趙淳(자유당)·金義澤(민주당)·梁一東(무소속) 세 사람이 4월 6일 수안보에서 만나 개헌을 논의한 사실이 보도되는 바람에 만천하에 공개된다. 추진 사실을 몰랐던 민주당 신파는 큰 충격을 받고 반발한다.신파는 자유당과 구파가 손잡은 개헌 논의를 ‘張勉부통령의 대통령 승계권을 박탈하려는음모’로 보았다.개헌 추진은 자유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해 흐지부지된다. 그러나 1년 후인 60년 4월의 내각제 개헌은 전혀 양상이 달랐다.먼저 4월혁명을 이룩한 국민의 여론이 독재를 방지하려면 내각책임제를 해야 한다는 데로 모아졌다.민주당 구파와 자유당도 개헌을 당연하게 여겼다. 문제는 민주당 신파에 있었다.일각에서 “4월혁명의 원인이 3·15 부정선거에 있는 만큼 정·부통령선거를 먼저 하고 개헌은 그 다음에 해야 한다”는주장을 들고 나왔다.이른바 ‘선(先)선거 후(後)개헌’론이었다.정·부통령선거를 다시 하면 張勉이 대통령에 당선되리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파 쪽의 이같은 주장은 곧 무너진다.李承晩의 하야 성명이 나온 4월 26일 국회는 ‘내각책임제 개헌-국회 해산-즉시 총선거’라는 일정을 담은 시국수습결의안을 채택한다.내각책임제 개헌안은 6월 15일 국회 투표에서 찬성 208표,반대 3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된다. 신·구파 대립은 뒤이은 7·29 총선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됐다.내각책임제로 개헌한 이상 정권은 민의원을 많이 낸 쪽으로 가게 돼 있었다.총선일이 확정되자 신파는 중앙당에,구파는 삼각동 전업회관에 지휘본부를 차려 치열한경쟁에 들어간다.공식적인 당 후보는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지만 사실은 신파 따로,구파 따로 공천했다. 심지어 張勉이 출마한 용산갑구,尹潽善의 종로갑구,金度演의 서대문갑구에도 자파 후보를 내세웠다.이들이 다른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서지 못하도록발목을 잡으려는 의도였다. 이와 함께 분당론(分黨論)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구파의 중진인 蘇宣奎가 전주에서 “우리는 보수양당제를 실현하기 위해 총선거 후 분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柳珍山·徐範錫 등 구파 중진들의 지지발언이 이어졌다.총선 결과 민주당은 민의원 219석(재선거 대상 제외)가운데 17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신·구파는 소속의원의 수를 계산하며 각각 자파가 승리했다고 공언했다. 구파는 실제로 신파를 앞섰다고 자신한 듯하다.지난해 작고한 高興門은 회고록에서 “대충 표계산을 끝내니 구파 우세가 분명해 보였다.진산 등의 계산으론 구파의 3∼4표 우세였다”고 기술했다. 8월 3일 민의원 부의장 선출을 놓고 신·구파는 처음으로 표대결을 벌인다. 신·구파는 민의원 의장에 신파의 郭尙勳,부의장 한 석에 구파의 李榮俊을추대했다.무소속 몫으로 남긴 부의장 한 자리가 표대결의 대상이었다.투표결과 구파가 지지한 徐珉濠(무소속)가 신파에서 민 李載灐(무소속)을 114 대 99의 15표차로 눌렀다.구파의 우세가 숫자상으로 확인된 셈이다. 이에 고무된 구파는 8월 4일 신파와의 결별을 선언했다.이어 6일에는 비슷한 시각에 신·구파가 당선자대회를 따로 가졌다.신파 모임에 민의원 75명,구파 모임에 83명이 참석했다. 尹潽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구파는 내친 김에 총리까지 독점할 양으로 金度演을 지명하지만 실패한다.총리 자리는 여론의 지지와 무소속 일부의 동조에 힘입은 張勉에게 돌아갔다.張勉이 총리 인준을 받은 다음날 구파는 민·참의원 총회를 열어 국회에 별도의 교섭단체로 등록할 것을 결의한다. 한편 張勉총리는 8월 21일 청와대에서 4자회담을 갖고 신·구파를 아우르는 조각(組閣)을 논의한다.이 자리에는 張총리와 尹潽善대통령,郭尙勳민의원의장,柳珍山이 모여 신파에서 5명,구파에서 5명,무소속 2명으로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한다.구파는 이튿날 총회를 열고 7시간의 격론 끝에 張勉내각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신·구파 연립내각은 끝내 성립되지 않았다.구파 모임을 마친 金度演과 柳珍山이 자정 가까운 시각에 구파 각료 명단을 들고 張총리를 찾았을때 張총리의 입장은 그새 바뀌어 있었다.“구파가 별도의 교섭단체를 포기해야 받아들이겠다”는 새로운 조건을 내건 것이다. 신·구파 연립내각 구상은 깨졌다.張총리는 8월 23일 신파 10명,구파 1명(鄭憲柱교통),무소속 2명(朴濟煥농림,吳天錫문교)으로 구성된 각료 명단을 발표한다.조각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신·구파는 더이상 화합할 수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 ‘分黨' 세력은 역사의 죄인 10대 국회 부의장으로서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지낸 閔寬植씨(81)는 1954년12월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뛰쳐나온 ‘자유당 탈당파’ 12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무소속으로 남아 58년 5월 선거에서 재선 의원이 된 그는 그해 9월 1일 민주당에 들어가 趙炳玉의 참모로 구파에서 맹활약했다.그런데도 구파가총리로 金度演을 지명했을 때와 분당(分黨)을 추진할 때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끝까지 반대했다. “내가 상산(金度演의 아호) 총리 지명을 반대하자 상산이 창신동 집으로세 차례나 찾아왔습니다.‘유석(趙炳玉의 아호) 생전에는 열심이더니 왜 그러느냐’면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閔전의장은 그때마다 金度演을 오히려 설득했다고 한다.민주당에는 엄연히신·구파가 있으니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하나씩 나눠가져야 할 것 아니냐,그런데 구파가 힘이 약해 대통령을 맡았으면 총리는 당연히 신파에게 넘겨야 한다고 했다는 것.閔씨는 “하지만 상산의 귀에는 내 얘기가 전혀 들리지않는 모양이었다”고 회고했다. 張勉이 총리가 되고 나서 농림장관으로 입각하라는 교섭을 받지만 거절한다.“개인적으로 나이 50이 되기 전에는 당에서건,행정부에서건 큰 감투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데다,어쨌든 구파의 결정을 무시하고 개인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張勉내각 명단이 발표되니까 제외된 사람들이 일제히 ‘도각(倒閣)운운’하며 공격에 나서더라”면서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말 가능한가’라는 회의가 들어 서글펐다”고 말했다.구파에서 분당 움직임이 확연해지자 閔전의장은 뜻을 같이하는 동료의원들을 이끌고 분당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선다.‘합작파’라고 불린 이들은 한때 그 숫자가 30명쯤에 이를 정도로 세를 모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閔전의장은 “분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합작파가 張총리에게서 공작금을타다 쓴다느니,장관 자리를 약속받았다느니 온갖 중상모략을 해댔다”면서“신파는 신파대로 합작파를 냉대했다”고 술회했다. 합작파 의원 가운데 20여명이 민주당 교섭단체에 가입하고 일부는 구파의신민당에 들어가 사실상 해체된 뒤 그는 61년 2월 신민당에 합세한다.“유석(趙炳玉)선생을 따르던 대부분의 동지들이 이미 신민당에 들어가 있어 다수에 복종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제2공화국이 내각책임제였다고는 하지만 몇달 가지 못했고 게다가 신·구파 싸움으로 제대로 운영해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閔전의장은 “지금 국민이 내각책임제에 관해 좋다,싫다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리고는 “신·구파가 힘을 합쳐 내각책임제를 잘 운영해 민주주의를 멋지게 꽃피우고 경제건설도 완성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아쉬워하면서 “분당에 앞장선 정치인들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단정했다.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閔전의장은 “제2공화국이 무너지는 데 두 분 다 책임이 크다”고 운을 뗀 뒤 “더이상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싶지않다”고 말문을 닫았다.
  • 한밤까지 부동표잡기 재보선 마지막 표몰이

    여야는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29일 당 지도부가 총출동,정당연설회와 거리유세에 나서 이날 밤 자정까지 막판 부동표 공략에 총력을 경주했다.이날 현재 국민회의·자민련은 구로을,시흥에서 우세를 점치고 있는 반면,한나라당은안양시장 선거에서 ‘백중우세’를 주장해 선거결과가 주목된다. ▒서울 구로을 국민회의 韓光玉후보는 이날 구로,신도림,대림역등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출·퇴근 시민들을 상대로 막바지 득표활동을 벌였다.韓후보는이어 지역내 10개동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투표에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하는캠페인을 전개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韓후보는 “구로의 발전과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달라”는 식으로 막판 선거운동을 마감했다. 한나라당 趙恩姬후보는 오전 대림역등지에서 출근길 유세를 벌인데 이어 각 동별로 주요 전략지역을 돌며 표단속에 나섰다.趙후보는 특히 李會昌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아파트단지 구로시장등을 집중 공략하며 바닥표 훑기에 나서는 모습이었다.趙후보는 “‘철새정치인’이 아닌 지역일꾼을 뽑아 구로지역의 명예를 지키자”며 지지를 호소했다. ▒경기 시흥 자민련 金義在·한나라당 張慶宇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끝나는 이날 자정까지 시흥 전지역을 돌며 한표를 호소했다.두 후보쪽은 특히 자체 부정선거감시반을 투입,상대의 탈·불법선거 사례를 집중 감시했다. 金후보쪽은 “승기(勝機)를 잡았다”며 ‘판세 굳히기’에 나섰다.그는 이날 새벽 대야동 오거리에서 출근길 시민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한데 이어 유세차량을 이용,은행 매화 군자 신천동 등지를 돌았다.중앙당에서도 金龍煥수석부총재 등 당직자 20여명이 지원 유세에 참여,‘지역발전론’으로 표몰이를 강행했다. 張후보쪽은 “역전이 가능하다”며 ‘뒤집기’를 위해 막판 추격전을 벌였다.각 지역을 순방하며 ‘지역 토박이론’을 내세웠다.여당의 관권선거 의혹도 제기했다.張후보는 특히 신천 정왕동 등 아파트단지 주변의 부동표를 집중 공략했다.李會昌총재 등 주요당직자도 張후보와 함께 전략지역을 돌며 “여당을 견제하고 건전야당을 키우기 위해 張후보를 찍어 달라”고 주장했다.▒경기 안양 국민회의 李俊炯후보측과 한나라당 愼重大후보측은 지지표 다지기와 취약지역 공략으로 막판 표몰이에 나섰다. 李후보는 만안구 안양 3동,7동,8동 등 우세지역을 주로 돌며 표단속에 나섰다.오후 5시 뉴코아백화점 앞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그는 “지역발전을위해 공동여당의 후보를 꼭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정당연설회에는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朴泰俊총재 등 공동여당의 핵심 당직자와의원 20여명이 참석했다. 趙대행의 부인을 비롯한 의원부인단 10여명도 선거운동에 나서 봉고차를 타고 봉제공장과 시장,열세지역인 평촌 아파트단지를 누비며 지지를 부탁했다. 愼후보는 오전에는 안양경찰서와 동아제약,안양 2동 아파트단지를 순회하며‘악수 공세’를 펼쳤다.오후에는 현대아파트 시장앞,2001 아울렛,호계신사거리에서 3차례 정당연설회를 갖고 한 표를 호소했다.李會昌총재와 당지도부는 愼후보의 다소 취약지역인 만안구 구(舊) 주택지를 돌며 지원했다. 李후보는 만안구와 구 주택가에서,愼후보는 동안구와 아파트촌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 30일 3곳 재·보선 여야 막판 총력전

    ‘3·30 재보선’을 이틀 남겨 놓은 28일 여야는 정당연설회 등을 통해 휴일 총력전을 펼친 가운데 관권선거 개입공방을 벌였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鄭均桓사무총장 등은 서울 구로을재선과 안양시장보선 정당연설회에 참석했으며 자민련 朴泰俊총재와 金龍煥수석부총재등은 시흥보선 정당연설회에서 막판 득표전을 계속했다. 한나라당은 李會昌총재와 辛卿植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안양및 시흥 정당연설회를 연이어 갖고 지원활동을 벌였다. 선관위가 투표참여 가정통신문을 발송한 데 대해 한나라당 李총재는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여당이 온갖 부정·탈법선거 운동을 계속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국민회의 趙대행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장 견학등을 통해 가족적인관심을 갖도록 권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또 한나라당 시흥시 선거대책본부 부정선거감시단장인 金文洙의원은 張慶宇후보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시흥 거주 공무원들의 주소록을 작성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권선거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민련 시흥선대본부 沈良燮대변인은 “金義在후보와 함께 서울시에 근무해왔고 동향인 김상배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후보를 돕기 위해 주소록을 만든 것으로 서울시나 金후보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 3·30 재보선 부동표가 승패좌우

    “뜬표를 잡아라.” 3·30 재·보선의 유세전이 가열되면서 후보간 부동표공략이 치열하다.특히 여야는 유권자의 정치 불신 심리로 부동층의 기권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주부와 신세대 유권자를 중심으로 ‘숨은 표’를집중 공략하고 있다. 재보선 3개 지역의 부동층은 각당 주장이 조금씩 다르지만,대체로 30∼40%선이라는 분석이다.문제는 여야 모두 부동층의 투표 참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때문에 각 후보는 부동표를 최대한 ‘우군(友軍)’으로 확보,투표 참여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아울러 여야가 서로 ‘부정선거감시단’을띄워 상대 후보의 불법적인 부동표 공략을 감시,견제하고 있다. 국민회의의 구로을 韓光玉·안양 李俊炯후보는 저녁마다 아파트 단지,시장등을 돌며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주부와 서민층의 지지세를 확산시키고있다.여당의 프리미엄인 ‘지역발전론’을 앞세워 기존의 조직표에 ‘플러스 α(알파)’를 노리고 있다. 李후보는 개그맨 등을 동원,정치성향이 옅은 신세대에게 ‘부담없이’ 접근하고 있다.국민회의쪽은이번 재보선의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막판까지 ‘확실한 지지층’을 늘려간다는 복안이다.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시흥 金義在후보도 중앙당의 측면지원으로 마련한 ‘시흥발전 5대방안’을 제시하며 ‘힘있는 여당후보론’을 부각시키고 있다.20일 朴泰俊총재가 현지에서 주재한 당무회의에서도 시화공단 발전과 시화호환경보전 등 지역현안과 관련,중앙당의 전폭적 지지를 약속했다. 한나라당은 여성과 노인 유권자에게 인기가 높은 李會昌총재 부인 韓仁玉여사와 朴槿惠부총재 등이 3개 재보선지역을 돌면서 ‘야당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구로을 趙恩姬·안양 愼重大후보 쪽은 “지지층이 비교적 탄탄해 부동표 공략에 성공하면 선거결과가 좋을 것”이라며 시장 방문,노인정 순회 등각종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시흥의 張慶宇후보는 “발로 뛴다”는 전략으로 동선(動線)을 넓히고 있다. “부동표가 예상 밖으로 많다”는 자체 분석을 토대로 종친회와 지역 연고조직,종교계 등을 파고들고 있다.
  • 「3·30 재·보선」합동연설회 이모저모

    3·30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여야는 21일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서울 구로을 등 3개지역 재·보선 현장에서 합동연설회를 갖고 첫 유세전을 펼쳤다.이날 유세전은 쌀쌀한 날씨에도 선거지역별로 수천명씩 청중들이 모여들어 유세현장을 달궜다.이날 현재 여권은 3개지역 모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한나라당은 초반 열세에서 벗어나 최소한 경기 안양시장선거 등 1개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서울 구로을 재선 구로을의 선거전은 국민회의 韓光玉후보와 한나라당 趙恩姬후보의 2파전으로 좁혀진 상태다.韓후보측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격차를 보여 일찌감치 승세를 굳히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지난 대선과6·4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가 각각 50%와 64%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여여공조에 기대를 걸고 있다.李信行전의원의 부정선거로 재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을 부각,압승을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 趙후보측은 출발이 늦었고 인지도가 낮아 열세를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선거운동이본격화되면서조금씩 추격,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趙후보의 남편인 李전의원에 대한 ‘표적수사’와 국민연금 파동,한·일어업협정 졸속체결 등 여권의 국정운영 난맥상을 강조,趙후보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구로중학교에서 2,500여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첫 합동연설회장에서 韓후보와 趙후보는 ‘부정선거’와 ‘명예회복’을 쟁점으로 설전을 벌였다.趙후보의 연설회때는 두 후보측 지지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등 한때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민회의 韓후보는 “이번 재선거는 3년전에 잘못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를바로잡는 선거이며 부정과 비리의 부패정치를 심판하는 선거”라며 목청을높였다.이어 등단한 趙후보는 “정부의 표적사정과 국민연금 시행과정,한·일어협정 등 국정 난맥상을 심판하는 선거”라며 “표적사정의 희생양이 된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두 후보의 연설에 이어청년진보당의 崔赫후보와 曺平烈후보의 유세는 유권자들이 자리를 떠 썰렁한 가운데 진행돼 대조를 이뤘다. ▒경기 시흥 보선 각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자민련 金義在후보측은 2배 이상 한나라당 張慶宇후보를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한나라당 張후보측은 두자리수 격차를 한자리수로 좁혀 여권의 金후보를 맹반격중이라고 주장한다. 자민련 金후보측은 55%에 이르는 충청·호남권 출신 유권자들에게 기대를걸고 있으나 내심 투표율을 걱정하고 있는 눈치다.충청·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40%에 이르면 당선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 張후보도 고정표가 상당수 있다며 승리를 장담한다.후보캠프는 張후보가 승세굳히기에 들어갔다고 주장하지만 당 자체분석은 ‘격차를 좁혀맹추격중’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張후보측의 주 타깃은 중년주부층.張후보 진영 관계자는 “여권단일후보가 당연히 당선될 것으로 생각하고 투표에 불참하는 유권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시흥시 시흥초등학교에서 열린 첫 합동연설회에는 자민련측에서 朴泰俊총재·金龍煥수석부총재를 비롯한 20여명의 소속의원들이,한나라당에서는李會昌총재,李基澤전총재대행,朴寬用·姜昌成·崔秉烈부총재 등 당 지도부와소속의원 20여명이 대거 투입됐다. 金후보는 “경제와 정국이 안정되려면 정부여당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정국안정과 정책전문가담임론을,張후보는 국민연금 등 현 정권의 정책혼선과 ‘시흥토박이론’을 들어 유권자를 공략했다.張후보측은 연설도중 諸廷坵전의원에 대한 묵념을 제안,‘諸廷坵정서’에 호소하기도 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1,000여명의 시민들이 둘러본 연설회장에서는 선관위 직원들이 공명선거 서명을 하는 주부들에게 장바구니를 나눠주거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청각장애자들을 위해 수화로 연설내용을 알려주는 등 ‘선진 선거기법’도 동원됐다. ▒경기 안양 시장보선 국민회의 李俊炯후보와 한나라당 愼重大후보가 각각‘지역개발론’과 ‘행정경험론’을 내세우며 접전을 벌이고 있다. 李후보측의 張信奎대변인은 이날 “지난 19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수뇌부들이 안양의 3개지구당 합동개편대회를 가진 뒤 여권의 공조가 본격화되고있다”며 “李후보와 愼후보의 격차가 더벌어지고 있다”고 승리를 장담했다.국민회의는 개혁층과 젊은층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유권자중 충청 출신이 33%,호남 출신이 26%라는 점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愼重大후보측은 역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愼후보의 安基榮대변인은 “愼후보의 인지도와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면서 “확실한 지지층인 여성표와 40∼50대를 집중 공략해 승리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안양초등학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2,500여명의 유권자와 양당 선거운동원이 운동장을 가득 메워 유세열기를 돋웠다.한나라당 愼후보는 “행정경험이 많은 시장만이 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행정전문가론을,국민회의 李후보는 “지역발전을 위해 공동여당 후보를 지지해달라”며 정치안정론에 호소했다. 국민회의는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해 鄭大哲부총재,鄭均桓총장,韓和甲총무,李允洙 崔喜準 尹鐵相 李錫玄의원 등이 대거 합동연설회장을 찾았다.무소속의 洪思德의원도 李후보를 지지하려고 참석했다.한나라당의 李會昌총재와 辛卿植총장,李富榮총무,李相得정책위의장 등은 오전 11시 안양 중앙성당에서 미사를 한 뒤 중앙시장을 돌며 愼후보 지지를 호소했다.李총재 등은 합동연설회장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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