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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청산과 미래 개척(대한민국 50년:21·끝)

    ◎이데올로기·개발독재 넘어 통일로/反民특위 “실종”… 건국 최초 과거청산 실패/‘제주 4·3’ ‘거창사건’ 아직도 어둠 속에/지역할거 정경유착 파당정치 악습 깨고 군사정권 시대 숱한 의문사도 밝혀내야 1948년 8월15일 신생정부 출범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약소국이었다.한반도 면적 22만1,487㎢ 가운데 3·8선 이남인 9만9,221㎢만 확보했고 인구도 2,002만명(48년 미군정청 추정치)에 불과했다.또 국민 가운데 80%가량이 농업 등 1차산업에 종사했고,그해 수출액이 2,230만달러에 그칠만큼 경제력도 볼품없었다. 정부수립 50돌을 눈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어떠한가.97년 말 현재 인구는 4,666만명,수출액은 1,361억6,430만달러,1인당 GNP는 9,511달러에 이른다. ○‘삶의 질’ 향상되지 않아 지난 50년동안 인구는 2.3배,수출규모는 6,106배로 급증했다.1인당 GNP는,가장 이른 통계치인 53년의 67달러에 비교해도 142배나 늘었다.가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양적 팽창이었다.그러면 이같은 성장이 우리 사회의 내적(內的) 발전이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그대로 동반한 것일까.여기서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각을 잠깐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펴낸 책자 ‘South Korea’(92년 간)는 한국의 기본사항을 소개한 데 이어 ‘재벌 중심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독재정권 시대에 고착된 퇴행적인 정치질서에,통제받는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덧붙였다.또 65만의 군대와 한해 100억달러(89년 기준)에 이르는 군사비도 주요항목으로 들었다.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한국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 의회도서관 책자의 표현이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우리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대한민국 성장의 뒤안길에는 필히 청산해야 할 역사적 잔재가 누적돼 있기 때문이다.이는 정치·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특정사건의 진상을 은폐·왜곡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의 청산대상은 분단체제에서 파생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악용과 개발독재 논리이다.해방이후 정치의 흐름을 살펴보자.3년동안의 극심한 좌우대립 끝에 남과 북에는 상호 배타적인 정부가 들어선다.2년이 채 못돼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져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진다.이후 한국에서는 李承晩 정부가 장기집권하고 그에 따른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4·19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곧바로 5·16쿠데타로 무너진다.朴正熙 정권은 개발논리를 앞세워 독재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른다.군사정권은 全斗煥­盧泰愚 시대까지 이어졌지만 80년의 5·18광주민중항쟁,87년의 6월항쟁 등 국민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93년에 문민정부가,그리고 50주년이 되는 올해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다. 대한민국 50년 정치사를 일별하면,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이에 맞서 민주사회를 추구한 국민의 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억압적 정권이 양손에 든 무기가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개발 논리였다. ○가치관 대혼란 초래 남북이 체제의 존립을 걸고 대립하는데다 6·25라는 비극을 겪은 마당에 반공이데올로기는 필연적인 역사의 부산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문제는 권력이 이를 정치적 대항세력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악용한 점에 있다. 멀게는 한국전쟁 전의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에서 가깝게는 지난 대선의 ‘吳益濟 월북 및 편지사건’‘흑금성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늘 ‘용공조작’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시도했고 대부분 목적을 달성했다. 朴正熙 정권이 들어서서는 경제성장을 내세운 개발독재 논리가 못잖게 위력을 발휘했다.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살려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추상적 가치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쉽게 먹혀들어갔다.시민의식이 어느정도 성숙하기 전까지 ‘중단없는 전진’과 ‘잘 살아 보세’는 국민적 합의처럼 보였다. 이같은 정치적 적폐(積弊)는 지금도 파당정치·지역할거주의·정경유착 등 여러 유형의 악습으로 고착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의식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전통을 잇는 문화와 사상은 ‘전근대적’이거나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외면받는 대신 출세지상주의·이기주의가 넘쳐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재벌의 소유 집중,극심한 빈부격차 등 경제 분야의 해묵은 과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정치사의 굴절이 가져온 또다른 폐해는 역사적 진실의 은폐·왜곡이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과거청산 실패’사례로는 48∼49년에 걸친 ‘반민특위 사건’이 꼽힌다.일제강점기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자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한 제헌국회는 곧이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 305명을 검거하지만 참다운 활동을 벌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만다.친일파에 권력기반을 둔 李承晩 행정부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는 길이 남게 마련인가.해방정국에서 수차례 벌어진 정치지도자 암살사건,6·25를 전후해 빚어진 ‘제주 4·3’이나 거창사건을 비롯한 양민학살,군사정권에서 발생한 민주인사·학생들의 숱한 의문사와 실종들이 아직껏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어둠에 묻혀 있다. 사건 발생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예컨대 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에서 일어난 국군의 양민학살 건이다.미국 국립공문서 보존관리청(NARA)에서 최근 발굴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나타난 실상은 이렇다. 육군 25연대 7중대 병력이 석달이라는 산간벽지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을 모은 다음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무차별 살해한다.보고서는 “(주민들이) 도발하지도 않았는데 카빈 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으로 공격해 성인 86명,학생 9명,어린이 3명이 숨졌다.또 집 27채 가운데 23채를 불태웠다”고 밝혔다.이 사건이 세상에는 빨치산의 만행으로 알려졌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민족의 성지’국립묘지에도 존재한다.문민정부 출범 초기인 93년 7월 국가보훈처가 金性洙·李甲成·尹致暎·李殷相·徐椿·李鍾郁·尹益善·全協 등 8명에 대한 친일행각을 조사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은 모두 독립유공자로서 각종 훈·포장을 받았고 사회의 지도층인사로 행세했다.이 조사 역시 결말없이 끝났고 뒤이은 문민정부의 ‘역사바로 세우기’도 정치적인 의도라는 오해만 샀을 뿐 결실을 맺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특별한 책무 한민족이 빛나는 21세기를 향해 전진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이뤄져야 한다.하나는 물론 통일이요,또 하나는 역사에 덕지덕지 낀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이다.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와 더불어 장기간에 해결해야 할 민족의 숙원이지만 잔재 청산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국민의 정부는 우리 현대사를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특별한 책무를 안고 있다.
  • 공직기강 바로 세워야(사설)

    공직사회의 기강이 너무 해이해져서 지금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전체 국가기강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수 없다.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나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보신주의,개혁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시인하고 6·4 지방선거후대대적인 사정작업이 있을 것임을 시사할 정도다.金실장은 공직자들의 기강해이는 장관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각 부처 장관들의 유·무능을 가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청와대측은 金실장의 이 발언이 곧바로 개각으로 확대 해석되자 서둘러 해명에 나서 개혁동참을 촉구하는 바람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청와대측의 해명과 관계없이 우리는 공직사회의 기강해이와 무사안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관련자들의 즉각적인 처벌을 촉구한다.지방선거운동이 한창인 지금만 하더라도 현직 장관들이 연고지에 내려가 자기당 후보 지지운동을 벌인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불상사가 일어났다.지방공무원들은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 눈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공무는 팽개친채 불법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돼 중앙선관위가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에게 이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이번 선거를 유사이래 가장 깨끗하게 치르겠다는 다짐은 다 어디가고 장관과 공무원이 앞다퉈 자당의 이익과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선거 분위기 자체를흐리고 있단 말인가.우리 선거 역사에서 가장 큰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는 관권선거를 스스로 자행한 이들을 그냥 둔채 이번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고 본다. 직분을 망각한 공직자들의 행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얼마전 서울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 직원들이 인수인계까지 하며 유흥업소에서 뇌물을 받아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있다.복지부동,무사안일 역시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여기에다 최근에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작업에 대한 냉소주의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지역편중인사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민간기업 종사자들이 정리해고 등의 가혹한 구조조정을 감수하며 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마당에 공직자들의 이런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개혁의 주체로서 앞장서 뛰어야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면당장 척결돼야 할 것이다.물론 그 대상은 일부일 것이다.공직사회의 일대 혁신없이는 나라의 장래도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며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한다.
  • 다음은 마하티르 총리인가

    ◎말聯 통치 17년… 수하르토 하야이후 관심고조 수하르토의 사임으로 동남아 최장수 통치자가 된 모하마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의 정치적 장래에 국제사회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마하티르는 81년 이후 17년째 장기집권중이다.더욱이 95년 총선에서 5년 임기의 4번째 연임에 성공,20년 장기집권을 보장받은 상태다. 마하티르 총리는 수하르토와는 장기집권과 자국이 최근 외환위기를 맞고 있다는 두가지 최대공약수를 갖고 있다.때문에 그가 수하르토에 이어 ‘도미노게임’식 장기집권체제 몰락의 다음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낳고있는 셈이다.말레이시아 야당과 정치 전문가들은 수하르토가 물러남으로써 수하르토와 마하티르의 유사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독재적 통치방식과 부정부패,족벌체제 및 연고주의 등이 공통분모라는 얘기이다.말레이시아 민주행동당 당수 림 킷 시앵은 “인도네시아가 한국과 태국이 밟고 있는 정치개혁의 길에 동참함으로써 말레이시아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정치개혁을 거부하는 국가로 남았다”고 지적했다.그러나 마하티르가 수하르토의 전철을 밟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의견도 많다.무엇보다 그는 수하르토와 달리 문민통치와 의회민주주의에 익숙한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됐기 때문이다.93년부터는 이브라힘 재무장관을 후계자로 임명,나름대로 안전한 ‘퇴로’도 강구하고 있다.
  • 金 대통령 印尼사태 평가

    ◎수하르토 독재정권의 붕괴/‘아시아적 가치’의 참담한 실체/“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병행 발전” 강조/“인니 민주화 새출발 전화위복 계기 될것” 수하르토의 하야로 막을 내린 인도네시아 사태를 보는 金大中 대통령의 시각은 어떤 것일까.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운영철학으로 삼은 金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이 다시 한번 세계사적 흐름에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金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밝힌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金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소위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는 정치의 참담한 실체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수상 등의 주창으로 아시아지도자들이 통치철학의 기초로 삼은 ‘아시아적 가치’의 붕괴로 바라본 것이다. 金대통령은 지난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도 아시아국가들의 금융위기를 예로 들며 새정부의 국정철학이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 판정승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金대통령은우리의 수평적 여야간 정권교체도 그런 연장에서 이해했다.“이런 교훈은 이미 한국에서도 얻은 바 있다”고 강조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金대통령은 관치금융과 정경유착,부정부패로 일군 경제발전이 IMF(국제통화기금)의 관리체제로 전락한 이유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희생에서 찾았다.“우리는 인도네시아가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투명한 시장경제 방향으로 새출발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는 충고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金대통령의 이러한 가치체계는 다음달 초 방미를 통해 더욱 국제적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도 “金대통령은 오는 6월 방미를 계기로 한국의 대변인이 아니라 그동안 리콴유 전 싱가포르수상이 맡았던 아시아의 대변인이 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퇴직 교육공무원 ‘부패 일기장’ 출간

    ◎난방연료 구입 속여 비자금 만들어 상납 【광주=金守煥 기자】 퇴직한 교육공무원이 교육계의 부정부패 실상을 고발한 책을 출간했다. 광주 B초등학교에서 행정실장을 지내고 올 4월 퇴직한 鄭京範씨(54·당시 지방교육행정주사 6급·광주시 서구 치평동)는 31년 동안 자신이 직접 체험한 교육계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나의 31년 공직생활,부끄러운 부정부패 일기장’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 책에는 일선학교의 인사부조리에서 부터 각종 공사와 학교급식을 둘러싼 비리,학교비자금 조성방법 등 교육현장의 갖가지 부조리가 대화형식으로 서술돼 있다. 鄭씨는 이 책에서 일선학교 근무 23년 동안 해마다 명절 때면 난방연료·학습재료 구입 등의 명목으로 가짜서류를 작성,1백만∼3백만원의 비자금을 마련해 교장이나 상급기관 등에 인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교육청의 종합감사를 받으면 감사직원에게 교통비나 접대비로 1백만원가량의 학교공금이 지불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밖에 수학여행 업자선정 비리,초·중·고교장의 실상 등 교육계 전반에 만연된 부정부패 실상과 함께 교육계의 조직 개선방안 등도 제시하고 있다.
  • 수하르토 사임­영욕의 32년/‘개발의 아버지’서 몰락한 독재자로

    ◎쿠데타후 장기집권… 경제 급성장 견인/족벌정치 부패 만연… 피플파워에 굴복 지난 32년간 인도네시아의 독재자로 군림해온 수하르토는 65년 반공 쿠데타로 첫 권력을 장악한 뒤 68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초대대통령인 수카르노에 이어 정식으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지지기반인 군부세력을 등에 업고 그동안 7선을 역임해온 수하르토는 지난해 통화위기가 촉발되기 전까지는 연평균 7%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해오며 인도네시아 ‘개발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장기집권 속에서 빚어진 그의 지나친 족벌정치와 그에 따른 부패상은 대학생들에게는 정치개혁을,일반국민들에게는 경제개혁을 요구하는 빌미를 주게 됐다. 실제로 그의 자녀들 6명은 자동차와 석유화학,은행 등 국가의 기간산업을 모두 장악한 재벌들로 급성장한데다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려 해 끊임없는 부정·부패 시비를 일으켜왔다. 그리고 이같은 부정부패는 결국 지난해 7월 루피아화의 폭락과 그로 인한 물가폭등으로 이어졌으며 IMF로부터 긴급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사태까지 초래하고야 말았다. 더욱이 구제금융의 대가로 IMF와 약속한 경제개혁이 그의 보호 아래 온갖 부를 축적해온 자녀들과 친족·친지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제대로 착수조차 못하게 되자 마침내 학생들과 재야세력들이 일제히 그의 하야를 요구하게 되었다. 수하르토의 주요연보는 다음과 같다. △1921년 6월8일=자바섬 족자카르타 근처 케무수 아르고물료 마을에서 출생. △1940년 6월1일=초등교육 마친 후 군 입대.1949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공식인정했을 때 중령까지 진급. △1965년 10월1일=쿠데타를 진압하고 수카르노 대통령의 ‘교조 민주주의’정치체계를 해체. △1968년 3월27일=최고입법기구인 국민협의회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 △1973년=대통령 재선후 1998년 3월10일까지 모두 7선까지 거침. △1998년 5월21일=대통령직 사퇴 발표.
  • 수하르토의 사임(사설)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이 마침내 물러났다.그의 사임이 그동안 최악의 혼란상태가 계속돼왔던 인도네시아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적절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하며 그의 사임을 계기로 인도네시아가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기대한다.또한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1인 장기독재체제를 무너뜨린 인도네시아 피플 파워의 위대한 승리를 높이 평가한다. 500여명의 희생자를 내며 폭동상황까지 이르렀던 이번 인도네시아 사태가 외환위기로 인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지원과 물가폭등 등으로 촉발되긴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32년에 걸친 수하르토의 장기독재와 대통령 일족의 부정부패,지나친 권력과 부(富)의 편중 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따라서 수하르토의 사임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경제회복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앞날이 순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걱정스러운 것은 수하르토의 장기독재로그 이후의 인도네시아를 끌고 갈 이렇다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다.헌법에 따라 하비비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막강한 세력인 군부를 비롯한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혼돈의 인도네시아를 잘 이끌어 갈지 의문시되고 있다.앞으로 총선을 치르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으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 기간동안 또 다시 혼란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는 요인들도 많아 우려를 자아낸다. 정국안정이 불투명한 상태에서는 당면한 경제난국의 타결도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IMF를 비롯한 국제적인 지원이 계속된다하더라도 강력한 지도세력이 없이 정치 경제 사회개혁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지 걱정된다.수하르토 족벌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경제계를 어떻게 개혁할 지가 가장 큰 난제일 것이다.수하르토가 경고했듯이 최악의 경우 내란사태까지 초래할 위험마저 없지않다.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이러한 어려운 과제들에도 불구하고 수하르토의 사임은 인도네시아의 장래는 물론 아시아 및 세계 전체를 위해 정말 다행한 일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주고있다.특히 우리 경제와 관련,인도네시아 사태는 환율이나 외자(外資)유치에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등 직간접의 파장을 안겨주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수하르토의 사임이 인도네시아의 경제난 극복과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모두 협조와 지원을 해야 한다.
  • 사회단체 대표 청와대 오찬 이모저모

    ◎“지방선거후 정계개편 시기올것” 金 대통령/金炯旭 실종·각종 의문사 사건 진상규명/적재적소 인재등용·장애인 고용 등 촉구 金大中 대통령은 14일 낮 청와대에서 가진 시민단체와 사회단체 대표 39명과의 오찬에서 이전과는 달리 말을 극도로 아꼈다.국정현황과 국정운영 철학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참석한 단체장들로부터 허심탄회한 질문을 듣고 핵심만 답하는 ‘간소함’을 즐겼다. ○현안 폭넓게 질문·건의 단체장들의 질문은 무척 광범위했다.인사문제에서부터,대통령의 ‘고군분투’모습,유(柔)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국정운영,장애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전반적인 현안들이었다.그러나 金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애정은 짙게 깔려있었다. 다음은 단체 대표와의 대화록. ▲權快福 광복회=국난때마다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 슬기롭게 극복했듯이 다함께 극복해 나가자. ▲徐英勳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회=임기중 민족의 운명이 번영의 길로 나가도록 대통령을 밀어 국난을 헤쳐 나가자. ▲姜汶奎 녹색연합=기업구조조정은 부진하고 노동계만 불평등하게 고통이 분담되고 있는 것 같다.‘작은 정부’ 실천에도 국민의 이해가 부족하다. ▲明魯根 한국YMCA연맹=유하게 정국을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기업은 개혁돼야 할것 ▲金대통령=기업은 개혁돼야 할 것이다.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을 것이다.노사정 2기 활동기간중 고치자는 것이다.대통령만 고군분투하는 건 아니다.나는 외환위기 극복에 주력하고 있고,정부도 함께 노력하고 있다.유하다고 하는데,강하게 하는 것은 내 전문이다(웃음).그러나 국민과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宋寶炅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개혁성과 전문성을 고려,적재적소에 인재를 써야 할 것이다. ▲배다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회=통일부을 개방,수시로 협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민주화운동의 희생자도 보훈법 대상이 되어야 하고,의문사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金대통령=개혁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지적은 매우 옳다.전국연합이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고 통일부에 얘기해 주겠다(웃음).의문사 진상규명과 관련,金炯旭씨 실종사건 등은 당사자가 민주화투사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진상은 규명돼야 한다. ▲金성재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고용 약속이 외환위기로 지켜지지않고 있다. ▲徐敬錫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회=인도적 관점에서 탈북자를 처리하고,현정계개편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金庸來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시민단체지원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 ▲金대통령=장애인에 대한 국민인식이 달라져야 한다.지방선거 끝나고 정계개편 시기가 오지 않나 생각한다.
  • 65년 쿠데타로 권력 장악뒤 30여년 집권/수하르토 누구인가

    【방콕 연합】 수하르토 대통령은 30여년간의 장기집권으로 인도네시아를 이끌어온 인물.지난 3월10일 국민협의회(PCA) 대회에서 7선 대통령으로 선출돼 경제난의 풍랑에 허우적거리는 ‘인도네시아호(號)’를 조타해왔다.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재집권했으나,취임을 전후해 계속돼온 소요와 폭동으로 곤욕을 겪어 왔다. 오는 6월로 77세가 되는 그는 65년 반공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그후 석유와 가스산업의 수익을 이용해 지난해 통화위기가 촉발되기 전까지만해도 연평균 7%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해왔다.이런 경제실적 덕분에 ‘개발의 아버지’로 국민들의 추앙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6명의 자녀들이 자동차와 석유화학,은행 등 국가의 기간산업을 장악한 재벌로 급성장한데다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려 해 끊임없는 부정·부패 시비를 일으켜 왔다. 이같은 부정부패는 결국 지난해 7월 루피아화 폭락과 그로 인한 물가폭등으로 이어졌으며,IMF로부터 긴급수혈을 받아야 하는 사태를 초래하고야 말았다.경제가 엉망이 되자 폭동과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학생과 재야세력들은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게 됐다.
  • 印尼 사태의 파장(사설)

    인도네시아 시위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정치·사회적인 불안과 경제난으로 오랫동안 혼란사태를 겪어왔던 인도네시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해왔던 카르텔 해체,외국인 투자제한 철폐 등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IMF로부터 4백3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지난 달 합의한 이후 한동안 진정세를 보였었다. 그러나 IMF와의 합의에 따라 식료품과 연료 등 생활필수품에 지급해왔던 정부보조금이 지난 4일부터 철폐되고 생필품값이 폭등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점점 격화됐다.시위 일주일만에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첫 희생자를 낸데 이어 12일에는 진압경찰의 발포로 시위대학생 6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를 빚고 있다.시위에는 시민들과 일부 공무원은 물론 교수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인도네시아 사태는 33년간 계속돼온 수하르토 대통령의 1인 독재와 대통령 일가족의 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며 광범위한 개혁이 없이는 수습이 어렵다는 것이 국제사회의일반적인 인식이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사태에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인도네시아 사태가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이미 동남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흔들리고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그동안 갖은 노력으로 겨우 안정세를 되찾아가고 있던 우리나라의 금융시장도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1천300원대에서 안정돼가던 대(對)달러 환율이 다시 들먹거리고 주가도 바닥을 모른채 곤두박질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태가 아시아 외환위기를 다시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외국투자가들은 긴장하고 있고 제2의 환란(換亂)까지 걱정되고 있다.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우리 건설업체들은 공사가 중단되거나 공사대금을 제때에 받지 못해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2만여명에 이르는 현지 교민들의 안위도 걱정스럽다. 인도네시아 사태는 이제 더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제2의 환란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인도네시아 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외교적인 노력도 기울여야 할 때다.
  • 金 대통령 국민과의 TV대화­일문일답

    ◎“내년 IMF 졸업­2001년 선진국 진입”/재벌개혁 5개항 내임기중 안하고는 못배길것/노동자 억울함 덜게 부당노동행위 엄중 대처/수출증대·외자유치 성공해야 외환위기 극복 金大中 대통령은 10일 하오 ‘국민과의 TV대화’를 갖고 외환위기 해소방안 및 실업대책,재벌개혁 등 경제문제와 정계개편 등 정국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金대통령은 외환위기는 수출증대와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면서 강도높은 경제개혁과 국민의 고통분담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올 400억불 흑자예상 ▷기업의 인수 합병◁ ­정부는 기업의 적대적 인수 합병을 허용했다.그러나 이 경우 특정산업 분야가 외국기업에 독점당할 우려가 있고,그 위험때문에 규제를 하면 그 규제가 외국인 투자를 방해하는 진퇴양난에 봉착할 수 있는데. ▲외국자본은 들어와야 하는데 문호를 제대로 열지 않으면 안들어오고,너무 열면 우리가 손해보는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발족 이후 경제도 국경이 없어졌다.민족경제,국민경제 시대는 끝났다.우리나라 자본도 외국에 진출하고 있다.인수합병을 하건 무엇을 하건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마련해주고 세금감면,저리융자도 해준다.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대우받는다.우리도 외국자본을 대우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외국자본도 우리나라에 와 있으면 우리기업이고,우리기업도 외국에 가 있으면 외국기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외국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영국은 외국자본이 투자해서 생산한 국내총생산(GDP)이 전체 GDP의 28.6%에 달하고 있고,말레이시아는 41.6%,중국은 18%,미국은 8%가 외국자본이 생산한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는 2.3%밖에 안된다.이대로 가면 안된다.외국자본이 들어와야 기업을 살릴 수 있다.우리는 1천5백억달러의 빚을 지고있는 빚쟁이다.수출도 해야지만 외국자본도 들어와야 한다.외국자본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근로자 1,2할이 해고된다.그러나 이것으로 기업이 움직이면 주변 경제가 일어난다.근로자들이 번 돈으로 라면,담배를 사면 그사업도 된다.이렇게 경제가 발전돼 가는 것이다.다만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업의 인수 합병은 허용할 수 없다. ○앞으로 1년도 어려울것 ▷경기회복 전망과 대책◁ ­언제쯤 우리의 경제가 좋아지고 경기가 회복될 수 있는가. ▲금년은 어렵다.앞으로 1년도 어렵다.내년도 각오를 해야 한다.영국같은 나라도 외환위기에서 고생하다가 극복했다.멕시코도 처음에는 고생안하려고 하다 10년이나 걸렸다.실업과 물가고,불경기,기업도산을 피할 수가 없다.도리가 없다.사실대로 말해야 한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금융개혁과 기업개혁을 해 이들을 경쟁력있게 만드는 것이다.관치금융과 정경유착으로 권력과 결탁해 부자가 되는 일 때문에 망친 것이다.이제 자기 힘으로 해야 한다.기업들도 이제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이런 방향으로 나갔을 때 개혁의 출발점은 먼저 금융기관과 대기업을 개혁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갖추고 공기업이 안일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이달말까지 도태시킬 기업은 도태시키고 살릴 기업은 살려야한다.개혁을 이렇게 뼈를 깎는 심정,금단현상을 견디는 심정으로 해내면 IMF체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내년에 IMF를 극복하고 2000년에는 다시 도약하고 2001년에는 선진국으로 재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 관계◁ ­고통분담을 위해 노동계는 근로자 파견제,정리해고제 등에 동의했다.그런데 기업이나 정치권의 개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정리해고는 법 지켜야 ▲노동계의 억울한 심정을 충분히 인정한다.그러나 아무 것도 되지 않은건 아니다.제1기 노사정위 합의사항이 90개인데 그 중 정부가 취할 사항 71개 가운데 36개는 이미 했다.35개 사항은 제2기 노사정위에서 함께 할 것들이다.기업도 처음엔 구조조정을 약속만 했으나 5개 항목을 입법화했다.기업의 투명성,상호지급보증 금지,재정의 건전화 그리고 수십개 업종중 핵심업종 선정,기업의 소유자나 중역들의 법적 책임 명시 등을 법으로 만들었다.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안하고는 안된다.재벌이 실천하고 있는 것은 사외이사의무화,통합재무제표 의무화 조치 등이 있다.또 신규 상호채무보증을 금지하고 있다.99년까지 부채비율을 2백%로 줄인다.현재 5백% 이상이어서 다들 못한다고 했지만 엊그제 이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노동자를 위해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확대하고,실업자 급여조건을 개선했다.생활안정기금 대부와 공공근로 사업도 시작하고 있다.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을 5인 이상으로 확대했다.노동자 정치활동도 허용해 이번 지자제 선거에도 나간다.공기업과 정부도 제2차로 구조조정을 해나갈 작정이다.노동자가 약자기 때문에 고통이 더 많은것을 이해한다.제2기 노사정위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평화를 해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기업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부당노동행위를 한 기업주 4명이 구속됐고,203명이 입건됐다.또 노동부가 6백여개소를 점검중이다.신고가 있으면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대처할 것이다.관계전문기관에 신고해달라.재벌들은 현대가 124명을 신고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리해고를 신고한 적이없다.정리해고를 최대한 억제하겠지만 불가피한 것은 수용해야 한다.기업이다 죽으면 1∼2할에 그칠 것을 전부를 하게 된다.최대한 노력하겠지만 불가피할 때에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지난번 1차 노사정 합의다. ○농어민 기술교육 강화 ▷농촌 문제◁ ­취임전 농촌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공약을 했다.IMF로 인해 농촌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농어가 부채,수매량 확대,직거래 유통체제 구축 등 농촌의 현안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현재 29%에 불과하다.식량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매가를 5.5%나 올렸다.중요한 것은 농민들이 농축산물에 대해 제값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도시와 농촌간의 직거래 체제도 그 전보다는 나아졌다.아직도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농·수·축협에 대해 이 문제에 열중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농어민 기술교육과 경영지도를 강화시켜 나가겠다.농민도 이제 농수산물을 수출해 돈을 벌어야 한다.농가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IMF로 여력이 없지만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금년을 넘기고 여유가 생기면 농가부채 상환을 연장해주고 정 부채를 못갚는 분에 대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 ▷세입자 대책◁ ­요즘 세입자들이 법원에 전세금 반환청구를 많이 하는데 일부 집주인들은 정부가 전세금 융자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융자이자가 16%나 된다는 것이다. ▲약자인 전세자가 나가려는데 대해 전세금도 안주면서 은행돈을 얻어 보충도 해주지 않으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마땅히 전세를 준 사람은 세입자가 나갈때는 돈을 줄 의무가 있다.반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준다는데도 반대하는 것은 심한 일이다. ○국가 신인도 높아져 ▷취임후 달라진 것◁ ­취임후 무엇이 달라졌는지,향후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말해달라. ▲집권해서 두달 남짓한 동안에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그러나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무엇보다 우리나라 철학이 바뀌었다.처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하게 됐다.과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를 해도 괜찮다는 철학과는 달라진 것이다.과거 독재시절 정경유착과 관치금융,부정부패,이로 인한 국제경쟁력 상실 등이 있었다.건국이래 처음 바른 진로를 잡았다.외환위기는 작년말 국제적 파산위기를 막아내고,2월초에는 2백18억원에 달하는 단기외채를 중장기채로 전환했다.4월에는 40억달러 외국환 평형채권을 성공적으로 팔았다.이제 금리도 환율도 안정됐다.가용 외환보유고도 작년말 39억4천만달러였으나 3백11억달러가 됐고,금년말까지 4백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명년까지 잘가면 외환위기는 넘길 수가 있다.국제신인도도 높아졌다.수출도 4월 현재 1백45억달러 흑자를 기록,연말까지 2백50억달러 흑자가 예상된다.노사정 합의도 입법되고,개혁이 착착 진행중이다.민주주의도 비로소 실현되었다.여러가지 비판이 있지만 인사가 전국적으로 균형있게 됐다.능력본위로 채용하고 출신을 기준으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이것을 굳게 약속한다.대북한 입장은 분명해졌고,안기부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이 정치개입하는 일은 없고,지방선거 관권개입이나 표적수사도 정치보복도 없다.그동안 수많은 변화가 있었고,앞으로 진짜 변화가 있어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될 것이다. ○입원 아내 거의 매일 문병 ▷아내 사랑◁­최근 李姬鎬여사가 입원했을때 매일 문병을 간 것으로 알고 있다.결혼한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매일 병문안을 갈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는가. ▲지금 집사람이 이 방송을 보고 있다.매일 찾아간 것은 아니고 하루는 대구를 방문하느라 빼먹었다.사람은 일생에 두번 결혼을 한다.한번은 젊었을때 하는 결혼이고,또 한번은 자식들이 다 결혼을 한뒤 새롭게 신혼생활을 하는 것이다.부부간의 애정이라는 것도 서로 노력을 해야 한다.아내의 장점,고마운 점,남의 아내가 갖지 못한 점을 보면 애정과 고마운 마음이 들게 된다.나의 아내는 나 때문에 무진 고생을 했다.지금 관절염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교도소에 있을 때 매일 면회를 와 서있다 생긴 것이다. ▷건강관리◁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이를 먹었지만 건강은 좋다.의사가 의무적으로 매일 체크하는데 아주 좋다.그래서 일도 많이 한다.하루에 10건 이상 회의를 하는데도 지장이 없다.ASEM에서도 동분서주했지만 동행한 기자와 수행원들이 쩔쩔맸을 정도로 건강하다.비결은 잠을 잘자는 것인데 특히 낮에는 토막잠을 잔다.과거에 대통령이 아닐때는 한강변을 돌면서 잠을 잤는데 지금은 관저에서 (토막)잠을 잔다.그리고 무엇이든 잘 먹는다.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스스로 타이르는 것이다.‘너는 나라의 운명을 맡고 있다.병에 걸릴 권리가 없다.그러니 제발 건강을 지켜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밖에 다닐 때도 계단에서도 조심하고 있다.국사를 해나가는데 건강은 아무 지장이 없다.
  • 金 대통령 공무원 특강 요지

    ◎“통제·지도방식 벗어나 서비스 자세로 공무원 생산성 향상 기업 못지않아야” 여러분은 국운을 양어깨에 지고 국민의 정부와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의무가 있습니다.여러분은 국민의 정부 공무원임과 동시에 21세기를 맞이할 공무원입니다.20세기가 끝나면서 세계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정리됐습니다.그 과정에서 국민경제가 변질,소멸해 가면서 세계경제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우리 금융위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동안 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가 맞지 않고 시기상조라는 말이 많았습니다.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를 중심으로 미국 등 세계 경제학자들이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우면서 아시아의 경제 발전에는 권위주의 통치가 필요하며 한국이 그 모델이라는 얘기를 해왔습니다.아시아에도 오래전부터 민주주의 전통과 뿌리가 있었습니다.다만 대의제도 투표제도가 서구사회에서 먼저 발전되었을 뿐입니다.제도란 것은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더구나 지금은 정보화 시대입니다.언제 어디서 누구나 정보를 얻고 이용하려면 민주주의만 가능합니다.정경유착과 관치금융 거대한 부패가 없었다면,공무원이 부당한 압력을 받아 해서는 안될 일을 안했다면,한국의 기업이 자기 힘으로 세계 경쟁에서 이겨내는 훈련을 해왔다면,오늘날 엄청난 적자와 빚더미에 허덕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금년도 행정의 지표로서 전면적인 개혁을 위해 다섯가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첫째,국민적 주인의식의 함양입니다.둘째,경제의 전면적인 구조개혁입니다.셋째,노동의 유연성과 권익보장입니다.넷째,정부 산하 전공기업의 고효율 운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다섯째,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공무원들에게 말합니다.21세기 공무원은 통제와 지도 방식에서 벗어나 서비스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며,기업인이나 공무원 사회 모두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 못지않아야 합니다.공무원의 자세가 결정합니다.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여러분의 협력이 있어야 합니다.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협력해 주십시오.정경유착,부정부패,관치금융,지역편중을 몰아내고 오직 나라를어떻게 이끌 것인가,어떻게 보람있는 공무원 생활을 할 것인가를 생각합시다.실패는 용납되지 않습니다.서로 협력해 꼭 성공해야 합니다.
  • 강력한 직무감찰 전개

    金大中 대통령은 22일 “감사원은 앞으로 국가경제를 좌우할 대형 사업이나 공공기관 등 힘있는 곳에 감사의 칼날을 대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감사원을 방문,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과거 감사원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 권력의 횡포에는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뒤 이같이 지시했다. 이에앞서 韓원장서리는 “금품수수 등 비리와 관련된 감사원의 고발,징계,,문책이 5공,6공,문민정부를 거치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면서 “공직사회의 지능화되고 고질화된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법령,제도,관행의 개선과 더불어 엄정하게 적발하고 문책을 병행하겠다”고 보고했다.
  • 국군의 발자취(대한민국 50년:15)

    ◎軍 정치적 중립 5·16구데타로 무너져/65년 월남 파병 계기로 환골탈태/軍장비 현대화­전투력 강화 한몫/6·25 직전 10만서 69만 大軍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대한민국 국군의 총병력은 10만5천여명이었다.이 가운데 지상군이 9만6천여명,해군 7천여명,공군 2천명가량이다.참고로 북한 인민군은 총 19만8천명 규모였다. 국군은 6·25를 거치면서 미국의 원조와 지원 아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다.전쟁중에는 최고 80만에 이르기도 했지만 종전 무렵에는 60만 대군으로 자리잡았다.게다가 사회 각 부문의 성장이 더딘 상태에서 군은 미국식 교육·관리제도를 도입,운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조직이 되었다. ○李承晩의 정치이용 거부 그러나 덩치가 커지긴 했어도 군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했다.제1공화국 시절 李承晩 대통령은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하고 집권을 연장하는 도구로 군을 이용하려 했다.이에 따라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하고 부정선거를 강요했으며,정치자금 조달을 요구하기도 했다. 갓 독립한신생국가에서,4억달러쯤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국가예산의 40%가량을 이용하는 군만큼 재정능력이 풍부한 집단은 없었다.따라서 정치권으로서는 군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유당 정부 때의 군이 일방적으로 정치에 끌려다닌 것만은 아니다.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 정치파동’ 당시 이종찬 장군은 육군훈령을 내려 군의 정치개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60년 4·19가 일어났을때도 군은 질서유지에만 나섰을뿐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던 군의 자세는 5·16군사쿠데타가 터지면서 일시에 무너진다.인사문제를 비롯한 군 내부의 부정부패가 누적되고 정치불안이 야기한 사회혼란이 이어지자 이를 빌미삼아 朴正熙 소장과 일부 영관급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5·16은 朴正熙 집권 18년에 이어 全斗煥·盧泰愚로 연장되는 군사정권 시대의 출발점이 됐다.이 기간 군출신 정치세력은 특유의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일정부분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민주주의 발전은 억압됐고 인권탄압이 공공연히 자행됐다.국민의 군대여야 할 군은 국민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경원의 대상이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특히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은 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한편 대한민국 국군은 월남파병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환골탈태한다.1965년 1월8일 朴正熙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월남에 국군 2천명을 파견하기로 결의했다.다음달 24일 비둘기부대장병 583명이 첫 전투부대로 파병됐다.이에앞서 64년 9월11일에는 의료진과 태권도 사범 164명이 부산항을 떠나 열하룻만에 월남 사이공(현 호지명시)에 도착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은 1961년 11월 朴正熙 당시 최고회의 의장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 처음 논의됐다.파병의 명분은 ▲한미 양국은 자유우방으로서 아시아의 집단안보에 공동책임이 있고 ▲월남의 안전은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며 ▲한국으로서는 6·25때 우방 16개국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제 빚을 되갚아야 한다는것 등이었다. ○8년간 31만2천명 파병 하지만 파병이 쉽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우리 정부로서는 파병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얻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한미간의 줄다리기는 월남전 내내 계속됐고,이같은 상황은 65년 5월17일 미국에서 열린 朴正熙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후의 사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하튼 65년 6월14일 월남공화국 수상이 우리 정부에 1개 전투사단 지원을 공식요청한 것을 계기로 국군의 월남 참전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그해 10월16일 첫 전투사단인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났고 이어 백마부대·백구부대·청룡부대가 속속 파병대열에 합류했다. 1973년 3월23일 마지막 부대가 귀국하기까지 8년동안 대한민국 국군은 모두 31만2천여명을 월남에 파견했다.그땅에서 국군은 대대급 이상 작전만 1천100회를 실행했고,민간지원 사업으로는 3천500여채의 건물을 지어주고 1천700㎞의 길을 닦아주는 노력을 기울였다. 월남파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종적으로 내리긴 아직 이르지만 국군장비 현대화와 전투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만 따질 때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아울러 국군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한몫을 했다. 최근 국군은 UN평화유지활동(PKO)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93년 7월 소말리아에 공병대대를 파견한 것을 시발로 그동안 앙골라,서부사하라,인도·파키스탄,그루지아 등지의 분쟁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을 벌였으며 이에 따른 국제사회는 그 증거라 할 만하다. 6공화국에서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했다.이어 문민정부는 하나회 조직을 정비하는 등 군의 정치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군도 국방백서를 발간,군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군내 민주화를 이루고자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는 등 국민의 군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지상군 56만,해군 6만7천,공군 6만3천 등 총 69만병력에 이른다.이에 견줘 북한군 규모는 1백14만7천명이다. ◎朴正熙­존슨 대통령 65년 월남 파병 담판/“전투병력 추가 파병 안하면 주한美軍월남으로 빼겠다”/“對韓 경제원조 확대 한국 군장비 현대화 해달라” 65년 5월 미국에서 만난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확인한 뒤 동아시아 안보에 관해 깊이있는 논의를 나누었다.그러나 실질적인 초점은 단연 한국군의 월남 증파 건에 맞춰졌다. 존슨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한국군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이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미상호방위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역설했다.이때는 한국이 전투부대로 비둘기부대 2천명을 파견한 정도였기 때문에 존슨의 치하처럼 월남에서 큰몫을 담당하지 못한 상태였다.존슨의 언사는 결국 한미상호방위에 더욱 관심을 가질테니 한국도 월남에 병력을 더 많이 보내라는 정치적 요구에 다름아니었다.이 자리에서 존슨은,한국이 병력 파견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월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암시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이 만남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한국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군사원조를 늘이기로 합의했다.또 주월한국군 유지비용의 인상과 주한미군 유지 약속 등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음해 3월7일 브라운 주한 미대사는 국군의 월남 추가파병에 따른 미국측 보상조치를 약속한 14항목의 문서를 한국정부에 전달했다.주요 내용은 ▲추가파병 비용은 미국이 부담 ▲한국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 현대화 ▲월남 재건 및 구호사업에 한국업체 참가 ▲미국의 차관·군사원조 계속 및 신규차관 제공 등이다. 이 각서이후 곧바로 국군은 2만여명을 월남으로 보냈고,월남전이 끝날 때까지의 병력 31만여명은 월남전 참전국 가운데 미군에 이은 두번째 규모 였다.또 민간업체의 월남에 대한 수출액 할당도 연 6천만달러로 늘어났으며 건설사업 등에의 참여도 활발해져 우리 사회는 ‘월남특수’를 노렸다.그러나 월남에서 숱한 한국청년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하였다든지,참전용사와 그 자녀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일따위는 월남파병에 따른 손실이기도 하다.
  • “검찰 엄정중립 지켜야” 金 대통령

    【梁承賢 기자】 金大中 대통령은 13일 “국민이 신뢰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정의를 밝히는 검찰일 때 나라가 바로 선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검찰은 법의 엄정 중립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날 낮 청와대에서 朴相千 법무장관,金泰政 검찰총장을 비롯,전국 검사장들과 가진 오찬에서 “미국과 일본은 권력자나 부호,심지어 대통령과 총리에도 예외가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金대통령은 “검찰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철저히 척결했다면 IMF위기를 구했을 것”이라면서 “이제 검찰은 정경유착이나 부정이 없도록 경제계와 권력을 감시해서 투명한 시장경제를 실현,경쟁력있는 기업만 성공하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심기 불편한 감사원/李度運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요즘 감사원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새 정부 들어 내놓은 주요감사의 결과에 대한 반응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감사결과에 대해서는 ‘계속 추진’이라는 정부측의 즉각적인 반격이 뒤따랐고,개인휴대통신(PCS) 특감은 李錫采 전 정통부장관만을 겨냥한 ‘표적 감사’라는 비판을 가져왔다. 사정(司正)기관이라는 특성 때문일까.감사원은 유독 비판에 예민하다.지난주말 발표한 외환위기 특감 결과에 대한 여론의 반응에는 실망감까지 표시한다.감사원은 외환위기의 장·단기 원인과 정부의 대응과정을 면밀히 진단,개선책까지 제시하는 종합적인 정책감사를 일궈냈다고 자부한다.그런데도 여론의 관심은 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金仁浩 전 경제수석에 대한 수사의뢰가 타당한지,몇 명의 공무원이 고발되거나 징계당했는지 하는 ‘부수적’인 사안에만 쏠려있다는 것이 그들의 불만이다. 특히 金泳三 전 대통령이나 여권의 도지사후보인 林昌烈 전 경제부총리의 책임 부분을 애써 눈감고 넘어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감사의 성격을 잘 몰라서…”라고 억울해 한다.감사원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법적,정치적 ‘한계’도 인정해달라는 호소인 것 같다. 꼭 5년전 이맘때 실시된 율곡사업 특감은 지금도 감사원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그러나 당시 李會昌 원장이 특감결과를 발표한 직후에는 權寧海 국방장관의 동생이 무기중개상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된 비판을 받았다.단기적 비판과 장기적 평가는 이처럼 다른 것이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와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감사원에 거는 기대가 결코 줄어들 수 없다.감사결과에 대한 비판은 그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는 ‘우정어린 채찍’인 것이다. 새 정부 출범후 지금까지의 감사는 전 정권의 실정(失政)을 설거지한 측면이 강하다.이제부터는 감사원이 천명한대로 정부의 경제회생 정책을 뒷받침하는 감사를 본격화할 시기가 왔다.감사원이 우정의 채찍을 어떻게 수용해갈 것인가.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 檢察 바로 서야 한다(社說)

    金大中 대통령이 9일 법무부 업무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과거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검찰이 정말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한 당부는 가슴에 와닿는다.金대통령은 자신이 오랜기간 동안 야당 지도자로 살아오면서 검찰로부터 받았던 피해사례를 열거하며 새로운 검찰상 수립을 촉구했던 것이다.대통령의 날카로운 질문과 지적,그리고 체험에 바탕한 훈계에 검찰 간부들은 진땀을 흘리며 새 출발을 다짐했다고 한다. 검찰에 대해 공식적인 견해를 전혀 밝히지 않던 대통령이 취임후 처음으로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검찰관(檢察觀)을 피력한 사실 자체가 무척 인상적이다.아울러 검찰이 법 질서의 수호자요,인권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로 한 약속에 대해서도 우리는 기대를 갖게 된다. 검찰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없이 어느 시대에나 막중하다.“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대통령의 지적은 이 시대 검찰의 사명(使命)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그만큼 지난 날 우리의 검찰은 정치권력의 논리에 좌지우지(左之右之)되었고 스스로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경우가 많았다.金대통령도 한보사건과 지난 89년 용공(容共)조작 사건 수사를 예로 들며 거듭 공정수사를 강조해 검찰 수뇌부를 쩔쩔매게 했다. 이날 보고자리에서는 “나도 감옥에 있어 봤는데…”라며 시작되는 대통령의 교정(矯正)시설에 대한 지적도 간곡하다.‘4평정도 방에 재소자 10명이 들어간다’는 보고를 받고 “이건 교정이 아니다”는 말로 질타하고 개선을 명령했다.이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부정부패를 막았더라면 우리 경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歎息)으로 검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해 검찰을 한층 곤혹스럽게 했다.검찰은 인사를 공정하게 하고 권력을 위해 검찰권 행사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바로 받아들여 정말 신뢰받는 검찰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 金 대통령 법무부 업무보고 받고 지시

    ◎“검찰 표적수사 많았다 신뢰 받는 법집행하라”/검찰 정경유착 차단 총력을 金大中 대통령은 9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朴相千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면서 “검찰이 중립을 지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새 검찰상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검찰이 과거 한보사건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등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검찰이) 지난 89년 徐敬元 의원 사건 때 (徐의원을) 3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했다”면서 “용공(容共)조작으로 徐의원이 북한에 간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고 북한에서 받은 1만달러를 나에게 주었다는 허위자백을 하게 했다”고 검찰권 행사를 질책했다. 金대통령은 “검찰이 권력의 목적을 위해 표적수사를 했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 정권 아래서는 권력의 필요에 따라 검찰을 이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IMF시대가 온 것도 기업과 금융기관,정부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만 검찰이 정경유착을 막는 ‘법의 파수꾼’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도 이유가 있다”면서 “검찰이 소임을 다하면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것과 부정부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金대통령은 “지금까지 검찰이 권력의 지배를 받아왔지만 다시 태어나 과거의 타성을 일소하고 깨끗하고 엄정한 권한을 행사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朴장관은 金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실업으로 인한 범법자들은 범죄 동기와 재범 가능성 등 정상을 충분히 참작,직업훈련을 받거나 취업한 때에는 과감하게 기소유예 또는 불구속 기소 등으로 관용 처분하는 등 IMF생계형 범죄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퇴직금 편취 및 취업 사기 등 민생침해범죄와 주가조작·악성루머 유포·고의부도 등 경제회생저해사범,외화도피 등 외환위기조장사범은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재소자의 권익을 강화하기 위해 4,5월 두달 동안 영등포·군산·마산교도소와 청주여자교도소등 4곳에 IC카드 공중전화를 설치,모범수들에게 외부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뒤 올해 안에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다만 통화 대상은 가족이나 친족,자매결연자 등으로 국한했다. 모범 수형자나 장기수가 교도소 내 잔디밭에서 가족들과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합동접견제도 도입,연 4회 이내에서 허용키로 했다.
  • 科技·법무부 업무보고­金 대통령 검찰 질책의 함축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과거 편파수사 사례 등 따끔한 지적/“권력도 검찰 이용하는 일 없게” 당부 金大中 대통령이 검찰에 대해 질책과 애정의 말을 동시에 쏟아냈다. 金대통령은 9일 상오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과거 잘못된 검찰권 행사를 놓고 검찰 수뇌부를 호되게 나무래는가 하면,검찰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며 국민의 신뢰를 받는 새로운 검찰상을 정립하도록 당부했다. ○“한보 깃털만 잡아넣어” 金대통령의 질책은 업무보고가 끝난 뒤 가진 법무부 간부들과의 자유토론시간에 시작됐다. 金대통령은 金泰政 검찰총장을 지목하며 “한보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수사팀을 교체하면서까지 재수사를 했지만 ‘깃털’만 잡아넣고 ‘몸통’은 남았다는 여론이 있다.당시 수사가 공정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검찰로서는 여간 난감한 질문이 아니었다.이 때문에 회의실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다. 한참 뒤에 말문을 연 金총장은 “당시 검찰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전제하면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또 “앞으로 (검찰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모든 수사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金대통령의 질책은 과거 검찰의 표적수사 사례를 들며 계속 이어졌다. “표적수사는 내가 직접 당해봐서 안다.89년 용공조작 사건 때 (검찰이) 徐敬元 의원을 3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해 북한에서 가져온 1만달러를 (나에게) 주었다고 진술하게 했다”고 회고한 뒤 “고시에 합격한 검사는 선망을 받는 자리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검찰이 너무나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고 나무랐다. ○“서경원 의원 고문 수사” IMF 체제와 관련해 검찰의 ‘간접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직접적인 원인은 정경유착의 당사자인 기업과 금융기관,과거 정부에 있지만 검찰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부정부패 척결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지 못하는 등 ‘법의 파수꾼’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金대통령의 질책은검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검찰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애정이 담긴 당부의 말로 귀결됐다. ○예기치 못한 질문 진땀 金대통령은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이 내 부탁의 전부다.검찰이 중립을 지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새롭게 결심을 하고 새 검찰상을 수립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과거처럼) 학연과 지연에 따라 검찰 인사를 좌우하지 않는 것은 물론 권력을 비호하기 위해 검찰을 이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도 내놓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업무 보고가 끝난 뒤 “(대통령이) 전혀 예기치 않은 질문을 하는 바람에 일부 참석자들은 진땀을 흘렸다”면서 “대통령의 질책은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고 앞으로 잘하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환투기 방지체제 만들자”/런던 ASEM 제1차회의 대화록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확고한 지원의지 긴요/외환위기국가 자국사정에 맞게 자구노력을 【런던=梁承賢 기자】 金大中 대통령은 3일 하오 개막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경제·금융분야 1차회의에서 사회를 본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요청에 따라 10여분동안 마무리 발언을 했다.이날 회의는 2시간 넘게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발언신청한 19명의 정상가운데 독일 콜 총리를 비롯한 7명만이 발언기회를 얻었다.이날 각국 정상들의 발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마하티르 말레이지아 총리=아시아 금융위기의 주범은 국제적 투기성 자금이다 환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금융감시와 환율거래감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일본 총리=아시아의 경제회복에는 일본경제 회복이 관건이라는 점에서 일본 경제 회복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아시아의 위기는 전 세계에 파급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자체 희생을 감수하고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안토니오 구테히스포르투갈 총리=아시아에 대해유럽은 확고한 지원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 ▲로마노 프로디이탈리아 총리=아시아의 위기는 전세계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멕시코와 다르다. ▲고촉통 싱가포르 총리=한국 기업이 지나친 투자로 많은 부채를 지고 있으므로 채권은행들이 장기채무로 전환해 주도록 각국이 노력해야 한다. ▲金대통령의 마무리발언=국제적으로 불건전한 세력들이 금융위기를 야기한다는 각국 정상들의 지적이 많았는데 이에 공감한다.이런 금융위기로 죄없는 약한 나라와 건실한 기업,선량한 시민들이 희생됐다.이는 정의나 민주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용납할 수 없고 시장경제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시장경제라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룰에 따라 기회균등한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불공정행위나 투기에 의해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에서 G­7이나 유엔등 국제기구에서도 이를 시정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ASEM은 유럽과 아시아가 21세기 세계화를 앞두고 긴밀한 협력을 약속하는 취지에서 설립됐다.태국에서 첫 회의를 가진 뒤 2년이 지나지 않아 일시적이고 극복될 수 있는 현상이지만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닥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유럽이 좋은 국가로서 아시아를 도와줘아셈을 잘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이번 회의에서 유럽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아시아의 고통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돕겠다는 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줘야 아시아 정상 국가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한국은 정치권이 은행대출을 지시하고 개입하는 등 정경유착에 의해 부정부패가 만연,금융을 망치고 기업도 경쟁력을 잃었다.우리는 시정경제원리에 따라 철저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이해 개혁해 나갈 예정이다.각 나라는각자의 사정에 따라 개혁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아시아 각국은 자국 사정에 맞게 자구노력을 펴야 한다.이번 ASEM의 성명서에도 이런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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