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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재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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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통부 외교전략 ‘외통수’/중·장기정책 실종이 對러 갈등의 원인

    ◎통상·재외동포관련 기본계획도 없어 한국과 러시아가 정보담당 요원을 맞추방하며 외교분쟁을 벌일 때 “과연 외교 당국이 어떤 전략 아래 이번 사태를 다루는가”라는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됐다.당시에 우려했던 대로 외교통상부는 ‘전략’에 매우 약한 부처인 것으로 평가됐다.‘전략 부재’가 한·러 외교갈등의 한 요인이 된 셈이다. 정책평가위원회는 5일 각 부처가 반드시 수립했어야 할 계획을 간과하고 넘어간 사례 세 가지를 제시했다.그 가운데 하나는 국가 기간 교통망 종합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건설교통부를 향한 것이었다.그리고 나머지 두 개가 모두 외통부 해당 사항이다. 외통부는 우선 중·장기 통상외교 정책 추진의 기본 계획조차 세우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외무부와 통상산업부의 통상 기능을 합쳐 만든 것이 외통부.그렇다면 중·장기 통상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그 점을 외통부는 게을리한 것이다.외통부는 지난 4월 ‘새 정부의 통상정책 방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기는 했으나통상교섭의 기본 계획과 목표,세부추진 일정 등이구체적으로 담겨있지 않았다고 평가위는 지적했다, 두번째 지적은 재외동포 정책 기본계획 미수립.정부는 지난해 10월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하면서 재외동포 정책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그러나 외통부의 재외동포 정책 입안,추진 노력이 부족하고 각 부처 재외동포 사업의 총괄,조정 기능이 미흡하다고 평가위는 밝혔다.
  • 무용평론가 李丙姙(이세기의 인물탐구:178)

    ◎백조의 나래접고 무대비평 30년/애정어린 패러독스로 무용계 ‘미운오리’/평론 1,000여편… 시들지 않는 필력 자랑/1年 3∼4회 태평양 넘나들며 세계화 앞장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을때 무리 중 아무도 여자에게 돌을 던진 사람은 없었다. 60∼70년대를 거쳐 무용계를 독주하면서 악명을 떨치던 무용평론가 李丙姙. 아마도 그의 이름을 들으면 지금도 손사래를 흔드는 이가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투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하게 꿰뚫는 이병임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그의 정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당시 한국예술분야 중 무용은 가장 뒤떨어진 분야로 치부되어 음악과 무용을 평론하는 원로 박용구씨마저 ‘평론할만한 의욕을 일깨워주는 무용공연이 없어서’ 무용평론에서 손떼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평에 생소한 무용계와 그와의 사이는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의 평론활동은 시작부터가 우여곡절의 반복이었다. 지난 75년 ‘한국문학’지에 실린 수필에 보면 그는 “나는 무용계의 생태같은것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젊은 혈기만으로 기성세대에 항거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나의 당돌함은 무용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고 쓰고있다.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무례로 간주되었으며 종횡무진의 이 맹랑한 문제아 출현에 논리부재의 무용계는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전국무용협회 회원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한동안 ‘바위밑에서 영원히 사멸되는듯이’ 보였으나 사나운 파도속에 휩쓸리면서도 끝내 가라앉지 않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점이 비난받아 마땅한가. ○“창작력 없는 춤에 분노” 예를들어 그는 남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한 원로의 춤을 보고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전통도 제대로 답습하지 못한 저런 춤을 추느냐. 창작력이 없이 추는 춤은 부끄러움에 앞서 분노가 느껴진다”고 비난했다. 지난 74년 문공부가 주최한 한국무용용어 통일위원회에 한 중견 무용인이 위원으로 입회를 희망할때도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거부하는가하면 국립무용단 창단때는 “왜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많은데 권력있는 자가 국립산하에 들어오려고 하느냐”고 한 특정인을 가리켜 몰아붙이기도 했다. 더이상 분노를 참을수 없는 무용계는 ‘곡필(曲筆) 평론가’‘소피스트케이션’을 내용으로한 투서와 전화로 신문사에 그의 평문을 싣지 말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때 한 신문은 “집단이 한 개인을 놓고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근 평론가는 있고 창작이 없는 상황에서 이병임은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일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평론을 쓸때마다 ‘코피가 터지고 옷이 찢어지는’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그는 ‘논쟁은 대화’이며 ‘무용에 대한 애정’임을 매몰차게 강변했다. 협회에 사과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중재하려 했으나 그는 “사실을 말한것뿐이다. 절대로 굽힐수 없다”고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다녔다. 온갖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 앙칼지게 일어서려는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긴 碧史 한영숙씨는 “우리 무용계에도 재인(才人)이 있다”고 그를 두둔했고 연극 ‘햄릿’의 연출가이며 예총회장이던 고 이해랑씨는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는 세력때문에 그의 카리스마와 패러독스는 계속될수 없었으나 매너리즘에 허덕이던 무용계에 활기와 자극을 준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우리 무용계 才人’ 높이 평가 이병임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태어나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상임이사를 지낸 李命九씨와 白世鉉씨의 6남2녀중 둘째. 신교육을 받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학교보다는 연극과 무용공연에 따라다니거나 비를 맞고 거리를 방황하면서 ‘최승희같은 무용가’가 될것을 꿈꾸기도 했다. 이화여대 입학후 김보남 김천흥 한영숙을 사사, 졸업후 부모의 강요로 60년에 결혼, 2년만에 남편과 헤어져 68년 조흥동 개인발표회 무용평을 쓰면서 평단에 데뷔했다. 서울에서만 600여편, 지금까지 1,000여편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에 가서 그는 영국의 무용평론가 리처드 버클이 영국의 유력지 더 타임스에 ‘니진스키 평전’을 기고한 것을 보고 스승인 벽사등 원로무용가의 평전에 손대기 시작했고 지난 88년 LA타임스에 국립무용단 미주공연평을 비롯, ‘한국의 멋’을 기고하기도 했다. 미주 한국무용협회 발족에 이어 85년 미주 예총 창립, 미주 무용단을 이끌고 한국전통문화연구원이 주최하는 고궁 공연에 참가하는가 하면 격년으로 고국의 인간문재인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강선영씨와 육완순 김말애 박명숙등을 미국에 초청,공연을 갖기도 한다. 특히 100만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문화단체로 성장한 미주 예총이 있기까지는 ‘언제나 공격적인 이미지’와 ‘마치 투쟁이나 하듯이 굴하지 않는 용기와 진취성’으로 그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역설한 결과다. 그의 대학선배이자 오랜 무용의 동반자인 현대무용가 육완순씨는 “그의 정의감과 무용이 성장할수 있게 뼈아픈 조언을 해온것은 사실”이라고 조언한다. 자녀는 USC에서 연극을 전공한 아들 김정구씨와 UCLA를 나온 화가 딸 유나씨가 있다. ○민주한인사회에 긍지 심어 누가 뭐래도 그는 한때 ‘이병임시대’를 독주한 여류다. 여전히 시들지 않은 가시돋친 장미꽃같은 필력을 지키고있으나 이제는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는 비평이 아니라 말속에 뼈를 감춘 담예논도(談藝論道)로 무용계의 발전을 모색하는 문제제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무용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왔고 ‘미주 한인사회에 우리 예술의 긍지를 심어준 공로가 지대하다’는 점에서 혼자 외롭게 투쟁하는 그에게 조국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무용계는 말하게 되었다. 쉴새없이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흔적을 그때마다 확고히 남기는 그는 더이상 소피스트케이션이나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우리 무용의 확대와 세계화에 앞장서기 위해 한해에도 서너차례씩 태평양을 넘나들면서 민간 사절의 몫을 해내는 역동적인 메신저로 높이 발돋움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길 1936년 서울 서린동 출생 1958년 이대 체육과 졸업 1958­64년 풍문여고 교사 1968년부터 무용평론 활동 1968­74년 한양대강사및 전임강사·이대대학원강사 1973년 대한무용학회창립,상임이사 1975년 세계무용가회의 참가 1981년 도미 1983년 미주 한국무용협회창립 1985년 미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미주예총) 창립및 부회장 1985년부터 인간문화재 미주초청 1986년 이병임 자전적 무용공연 1988년 진달래어린이무용단 창단 1989­현재 미주 예총회장 1989년 88올림픽1주년기념 세계 한민족예술제미주예술단 예술감독, MBC주최 이산가족찾기운동예술제 참가 1991·98년 우리춤보존회 회장 1993년 대전엑스포 전야제 참가 1994·98년 LA한인회 자문위원 1997­현재 민주평통 고문 1997년 한국전통문화연구원초청 ‘한국전통문화예술제’ 예술감독 1998년 국립민속박물관공연 참가 LA시장 감사패(87·88·91·92·95년) 서울시 주최 ‘세계를 빛낸 한국인’ 선정(95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감사패(91·92·95·96년) LA시의회의장 감사패(92·94·97년) ‘한국무용교육의 재검토’‘해방30년 한국 현대무용의 정리’‘전통문화의 올바른 정립’등 다수
  • 기존 장비 국지성 호우엔 ‘먹통’/폭우 피해 문제점·대책

    ◎슈퍼컴퓨터·기상레이더 추가 설치 시급/당국 허술한 대처·피서객들 방심도 문제 ‘기습적인 폭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달 31일 밤부터 1일 새벽까지 쏟아진 집중호우로 남부지방에서 발생한 수재는 기상청의 늑장 예보와 낡은 장비,현지 당국의 허술한 대처,피서객들의 방심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상청의 허술한 예보능력 때문. 기상청은 31일 하오 5시30분 호남지역의 예상강수량을 20∼70㎜로 예보했다. 또 지리산 일대에 호우경보를 내린 시점도 이미 피해가 발생하고 있던 하오 11시30분이었다. 기상청이 부정확하거나 늑장 예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실한 장비 때문이다.기상청은 선진국 기상청에선 필수장비에 해당하는 슈퍼컴퓨터를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한 대도 갖고 있지 못하다. 기상청 관계자는 슈퍼컴퓨터가 있으면 기존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기상레이더,기상위성 등으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적어도 3∼6시간전 예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특히 기존 장비로는 속수무책인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관측을 위해 기상레이더 및 고층 기상관측소를 더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현재 기상레이더는 전국 5곳에 설치돼 있으며,특히 서해안지역에는 군산 한 곳에만 있어 입체적인 전방위 감시를 위해선 흑산도 및 백령도에 기상레이더를 추가 설치해야 한다는 게 기상 전문가들의 얘기다. 전문가들은 관측자료 수집 및 예보,유관기관간 정보교환을 보다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가동중인 국가 초고속 통신망을 기상청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지 당국의 사후 대처능력도 수준이하였다.지리산 뱀사골 계곡에서 발생한 실종 및 인명피해는 관계당국의 신속한 예고방송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구조된 사람들에 따르면 31일 하오 5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사고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었지만 국립공원관리소측은 관할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 한번의 경고방송도 하지 않았다. 국립공원 관리소측은 31일 하오부터 시간당 100㎜ 이상의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리기 시작한 1일 상오 1시까지 8명의 단속반이 차량을 이용해 공원내 야영객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수차례에 걸쳐 경고방송을 했다.그러나 사고발생지점인 뱀사골 상류지역에 대해서는 단속 관할구역에서 50∼400m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단 한차례도 경고방송을 하지 않았다. 경남 산청군에 설치된 호우자동경보시스템은 시간당 20㎜ 이상의 비가 내릴 경우 자동적으로 경계사이렌을 울리고 대피방송을 하도록 돼 있지만 쏟아지는 빗소리와 계곡 물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야영객의 안전의식 부재도 피해규모를 크게 했다.야영 및 대피요령에 대한 기초상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피서객들이 계곡 부근에 몰려 야영하다가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을 미처 피하지 못해 희생이 커졌다.
  • 어느 경찰관의 안타까운 죽음/故 楊柄起 석관2파출소장

    ◎申昌源 검거 24시간 비상근무… 과로로 쓰러져/새벽 3시 숨지기전까지 순찰·검문검색 독려 탈옥수 申昌源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종암경찰서 석관2파출소 楊柄起 소장(42)이 과로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31일 상오 3시10분쯤 파출소에서 가까운 자택에서 “신창원 때문에 고달프고 피로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갑작스레 숨진 楊소장은 치안부재라는 비난속에서도 묵묵히 일선을 지켜온 모범 경찰관이었다. 楊소장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고 동료들은 입을 모았다.지난해 7월 부임한 楊소장은 집과 파출소가 따로 없을 정도로 관내의 크고 작은 일을 직접 챙겼다. 29일에는 24시간 근무했다.상오 8시30분쯤 출근한 楊소장은 상오 11시까지 파출소안에서 직원 조회를 하고 申昌源 관련 업무지시를 하느라 바삐 움직였다.상오 11시쯤 파출소를 나서 하오 5시30분까지 순찰하며 직원들의 근무 자세를 점검했다.이어 종암경찰서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으며 하오 8시부터 30일 0시 30분까지는 일제검문검색령에 따라 검문 현장을 돌아다녔다.그뒤 申昌源과 관련한 제보에 대한 수사 상황을 살펴본 다음 상오 2시까지 순찰을 돌고 파출소에서 고단한 몸을 눕혔다. 30일 상오 10시에야 간신히 퇴근한 그는 비번이었는 데도 몇시간 뒤 파출소로 나와 하오 3시까지 申昌源 관련 보고를 챙겼다.이어 楊소장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주민 몇몇과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지난 80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楊소장은 청와대 제101경비단과 경찰청에서 정보관련 업무를 맡다 일선으로 배치됐다.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두아들을 두고 있다.楊소장은 근무중 사망한게 아니어서 ‘순직’처리가 어려운 상태.장례는 다음달 2일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 국민회의 대표체제론 급부상/“국정개혁에 힘실어줘야” 대세

    ◎“趙 대행이 당연” “바뀔수도” 대립 ‘총재권한 대행체제’를 ‘당 대표체제’로 전환하려는 국민회의 내부의 목소리가 급류를 타고 있다. 이를 위한 ‘조기 전당대회냐’ ‘중앙위원회 의결이냐’의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방법론의 문제만 남은 분위기다. 지난 24일 당 총재인 金大中 대통령과 趙世衡 총재 권한대행의 청와대 독대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조직을 대폭 강화하라는 金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초선의원들로 구성된 개혁성향의 ‘21세기 푸른 정치모임’은 보다 구체적으로 대표체제 전환을 촉구했다. 고위 당직자들도 겉으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한 일부 당직자들도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고 있다. 당체제를 정비,국정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대표를 맡느냐도 관심사항이다. 趙대행의 측근들은 金대통령과 趙대행의 청와대 독대에서 “늦어도 내년 4월까지 ‘선거구제’를 포함한 정치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趙대행의 보고에 金대통령이 공감했다”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내년 4월까지 ‘趙대표 체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개혁성향 의원들의 상당수도 ‘대안부재’를 이유로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趙대행=趙대표 등식은 가변의 명제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국민회의의 지도체제 전환문제는 휴가중인 金대통령의 결심만을 남겨 놓고 있는 셈이다.
  • 잘못된 관행/공명심에 겉도는 共助수사(위기의 경찰:3)

    ◎특진욕에 혼자 검거나서다 낭패 일쑤/이기주의에 관할 아니면 “나 몰라라”/대형사건 터지면 ‘특수팀’ 급조도 문제 작은 잘못에도 큰 욕을 듣는다고 경찰은 늘 푸념한다.‘동네북이냐’는 불만이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는 잘못된 관행들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게 사실이다.고질적인 악습들이 고쳐지지 않는 한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특히 공조수사체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96년 5월 서울 양재동 데이트 남녀 납치 사건은 공조수사의 부재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이다.당시 범인들이 충남 아산에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서울경찰청은 직접 범인들을 잡겠다는 욕심에 현지에 형사대를 내려보냈으나 놓치고 말았다.아산경찰서에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공조수사가 제대로 안되는 이유는 공명심 때문이다.공을 혼자 세워 ‘특진’을 하겠다는 생각에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탈옥수 申昌源이 평택에 나타났을 때 한 경찰관이 혼자 붙잡으려다 놓친 것도 비슷한 사례다. 반대로 관할구역에서 발생하지 않은 사건은 소홀히 여긴다. 즉흥적인 조직 신설이나 재편으로 일선경찰관들은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한다.한 경찰서에 ‘특별수사팀’이나 ‘수사전담반’이 몇개나 되는 일도 있다.적은 인력으로 특별수사나 전담수사는 사실상 어렵다. 본청 및 지방경찰청에 설치됐던 광역수사단도 ‘졸속기구’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공조수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기구는 자서(自暑)이기주의 때문에 유명무실한 상태다.‘지존파사건’‘온보현사건’이 터지자 인력·예산·기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급조된 탓이다. 군림하려는 의식도 여전하다.관내 업주와의 유착,고자세는 불신을 키우는 또다른 요인이다.지난해 정부가 37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원인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경찰은 35위를 기록했다. 인력구조도 기형적이다.파출소의 인력은 전체 경찰 8만9,000여명의 4분의 1도 안되는 2만여명에 불과하다.발로 뛰는 경찰이 턱없이 적은 셈이다. 근무 관행에도 비효율적인 게 많다.일이 있든 없든 상관이 퇴근하기 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게 관례다.일종의눈치보기며 예산 낭비다.경찰 예산의 6.6%인 2,331억원이 시간외 수당으로 지급된다. 주먹구구식 인사관행도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있다.자질이나 경력이 우선시되지 않는다.한 부서 근무기간도 들쭉날쭉이다.전문분야가 없다.본래 업무 이외의 일에 차출되는 경우도 잦다.강도나 살인범을 잡아야 할 형사가 경호 경비 캠페인 등에 동원되는 일은 허다하다. 한 형사는 “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지만 교통 캠페인에까지 형사들이 나가서야 되겠느냐”고 불만스러워했다.
  • 혁명적 정화(金三雄 칼럼)

    단재 신채호선생은 우리는 ‘혁명적 정화’가 없는 민족이라고 아쉬워했다. 혁명 쿠데타 반정 정변 경장 등 정치상의 모든 방법이 나타났지만 한번도 ‘혁명적 정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몇차례 기회가 없지 않았다. 건국과 함께 반민특위에서 친일반역자들을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정화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승만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4·19혁명후 독재세력을 청산할 혁명재판이 열렸지만 군사 쿠데타에 짓밟히고 말았다. 6월항쟁후 여소야대 국회의 5공청산 작업은 3당야합으로 역전되고,문민정부의 개혁은 역사의식의 부재와 너무 쉽게 부패하여 스스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金大中 정부의 개혁작업은 지금 심한 도전에 직면했다. 모든 개혁을 좌절 역전시킨 반개혁 수구세력의 도전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최근의 몇가지 사례만 봐도 과연 이들의 도전으로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첫째,햇볕론에 대한 수구세력의 도전이다. 이들은 동해안 간첩사건을 계기로 햇볕론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과거 햇볕론이 없고 강경일변도로 나갈때도 수차례 공비가 출몰했던 사실을 외면한채 정부의 햇볕 정책때문에 간첩이 나타난 것처럼 비판하면서 왜 응징하지 않느냐고 앙탈이다. 한바탕 붙기라도 하잔 말인지,지난 50년 강풍정책의 결과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국민정신을 반개혁 성향으로 오도한다. 반민주와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아온 독재자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면서 국민이 개혁보다 강압통치 시대에 향수를 갖도록 여론을 조성한다. 셋째,‘우파는 사정(司正) 좌파엔 화해’란 도식을 만들어 햇볕정책을 색깔론으로,개혁을 우파 또는 특정지역에 대한 탄압으로 비약시키면서 계층과 지역감정을 조장한다. 명백히 드러난 수뢰 정치인의 사정도 표적수사 또는 지역차별이라고 억지를 부려 정치권의 사정과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의 늪지대에서 성장해온 남한의 극우세력과 부자 세습체제에서 성장해온 북한의 극좌세력은 평소 가장 적대적 상대인 듯 하지만 비상시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조관계’가 유지된다. 예컨대,1972년 朴正熙의 유신헌법과 金日成의 주석제헌법 개정이 거의 동시에 단행되고, 87년 야권의 승리가 보이는 듯 할 때 마유미(김현희)의 대한항공 폭파사건,92년 대선때 이선실의 간첩사건,96년 총선때 판문점 무장북한군 출몰사건,97년 대선때 특정세력과 북측의 내통사실 등 개혁세력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북한은 어김없이 안보위기나 공안사건을 만들어 수구세력을 도와주었다. 최근 북한의 잠수정침투사건도 햇볕론이 국민의 관심을 모으면서 소떼입북, 금강산관광등 한창 화해무드가 조성될 때 나타나 수구세력의 입지를 도와준 셈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민주주의와 반공을 내세울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학살해온 독재전위 세력이었으며,반공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일 뿐이고, 오늘의 국난을 불러온 중심세력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영웅시하고 화해정책을 용공시하고 사정을 계층과 지역감정으로 몰아가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세력에 대한 ‘혁명적 정화’없이는 국난극복은 불가능하다. 50년만의정권교체는 민족모순과 사회모순을 바로 잡으라는 역사의 뜻이고,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뛰어넘으라는 국민의 선택이다. 언제까지 이런 해묵은 ‘악령과 괴담’속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가 세월을 보내야 하겠는가. 정부는 더 이상 원칙없는 온정주의와 눈치보기로 개혁에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 좀더 과감한 사정과 개혁으로 5,000년 묵은 역사의 찌꺼기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보수라는 이름 아래 역사의 방향과 전진을 가로막는 기득세력의 ‘여론’을 혁파해야 한다. 金大中 대통령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어려웠던 시절 레닌의 침착함과, 1932년 대공황때 보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밝은 미소,프랑스가 패배한후 국민을 다시 규합한 드골의 리더십,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여유와 지략으로 총체적 개혁을 단행할 때이다. ‘혁명적 정화’를 통해 제2 건국을 이뤄야 한다. “태양이 비칠때 풀(草)을 말리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 자질/재교육 부재… 직업정신 실종(위기의 경찰:1)

    ◎“잘해야 본전” 관할 아니면 사건 무관심/일부 생활고에 비리 유착… 사명감 잃어가/학력은 향상… 체계적 교육프로그램 절실 탈옥수 申昌源 사건으로 경찰은 ‘총체적 부실’을 드러냈다.개개인의 자질에서부터 조직 체계 및 운용에 이르기까지 허점 투성이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하지만 경찰 나름대로는 할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큰 사건이 터질때마다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쇄신책을 마련하겠다는 다짐이 뒤따랐지만 대부분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시리즈를 통해 경찰이 오늘날 직면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책을 모색해 본다. ‘경찰 정신’이 실종됐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군인정신이 필요하듯이 경찰정신이 없으면 범죄와 싸워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경찰관들의 투지와 사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근무환경 등이 열악하다 보니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맨손으로도 申昌源을 잡을 수 있다는 정신무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에서 20년째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고 있는 李모경사(45)는 요즘 경찰관 생활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申昌源사건’과 동료 경찰관의 비리를 접하다보면 일할 맛이 안난다는 것이다. 李경사는 지난 16일 새벽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나타난 申을 검거하지 못한 것이 ‘경찰의 부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재교육 부재와 느슨한 직업의식을 그 이유로 댔다. 실제로 하위직 경찰관은 순경 때 받는 6개월의 기본교육이 고작이다.독일 2년6개월∼3년,영국 2년,일본 6개월∼1년 등 외국경찰의 기본교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관할지역이 아니면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 ‘관할 이기주의’도 경찰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부 경찰관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이다.끊임없이 발생하는 각종 비리가 ‘신성한 직업의식’에 금이 가게 한다고 한탄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뇌물 등 각종 비리로 적발된 경찰관은 한달 평균 70∼90여명에 이른다.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휠씬 많다. 그러나 대다수 경찰관은 성실하다.최근의 순경 채용에는 고학력자들이 몰려 외형적으로는 자질이 상당히 향상되고 있다.23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최근의 순경시험에 전문대 이상의 학력소지자가 90.3%나 됐다. 시위진압 요원 정도로 인식되던 경찰관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학력향상이 자질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투철한 직업의식과 사명감 고취가 시급한 과제다. 업무능력 배양을 위한 재교육 과정의 강화도 급선무다. 경찰의 한 고위간부는 “인원을 늘리는데만 치중되다 보니 우수자원을 제대로 선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체계적인 수급계획과 알찬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바람직스런 경찰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국회표류로 金 대통령 개혁 지연

    ◎여야 장기대치 정치불안/각종 개혁입법 손질못해/노사안정·외자유치 차질 제헌절 50돌을 맞는 17일 국회 표류를 보는 金大中 대통령의 심사는 어떤 것일까. 청와대는 일체의 공식 언급을 삼가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회는 국회가,당은 당이 알아서…”라며 애써 무관심한 반응을 지었다. 金대통령도 외부인사와의 면담을 갖지않고 간단히 수영을 한뒤 관저에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공휴일인 탓이라기 보다는 金대통령의 심사가 어지러운데서 비롯된 불편함으로 여겨진다. 여야간 장기대치로 후반기 원구성도 못하고 있는 등 정치안정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나아가 6·4 지방선거후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통해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려 했던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당초 6·4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정계개편을 마무리짓고 각종 개혁입법을 손질,2차 정부조직과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다. 노사안정과 외국인 투자유치를 정치권의 총체적 지원 속에 이끌어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구상이 벽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적게는 집권여당의 정치력 부재에 따른 부담이기도 하지만,크게는 아직도 관망중인 외국투자자들의 등을 돌리게 함으로써 경제난 극복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결국 21일 재·보선이후로 넘겨진 형국이다.
  • 뇌사국회 제헌절/鄭信模 논설위원(外言內言)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도 나날이 편리해진다.대한민국 헌법을 처음 제정하던 50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라 아니할 수 없다.개인의 일상 생활은 물론 사회간접자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것만큼 행복해진 것인가.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오히려 공업화로 인해 인간성의 파괴가 가속화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최근 국내에서 논쟁거리가 된 환경호르몬도 이런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환경호르몬이란 동물의 생식기능을 저하시키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을 말한다.수컷의 몸 속에 들어간 환경호르몬은 정자(精子)수를 감소시키고 종국적으로는 암컷화시킴으로써 종(種)의 소멸을 초래한다. 지난 92년 덴마크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938∼1990년 사이 남성의 평균 정자 수는 ㎖당 1억1,300만마리에서 6,600만마리로 감소했다.또 일본 도쿄에 사는 20대 남성의 평균 정자 수는 ㎖당 4,600만마리로 40대 남성의 55%에 불과했다.환경을 파괴하며 이룩한 공업화의 대가로 인간의 멸종이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남성의 정자수가 계속 줄어들면 수태(受胎)가 불가능해지므로 결국 인간은 멸종하게 된다. 여기서 이런 우스개가 생각난다.정치인과 정자와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답은 “사람 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수천만의 경쟁을 뚫고 수정(受精)에 성공해야 사람이 될 수 있는 정자처럼 정치인이 온전한 사람이 될 확률 역시 수천만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야유다.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돌게 됐나 싶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17일은 50주년을 맞는 제헌절이었으나 제헌 반세기를 경축하는 기념식에선 여야간 정쟁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국회의 꼴불견이 그대로 노출됐다.경축사는 전의장이 낭독했고 각 정당의 대표는 모두 불참했다.각 정당은 성명을 내고 식물국회의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겼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국회 없는 제헌 50주년은 헌정사의 오점이라고 정당들을 비난했고 민주노총은 국회부재 상태는 범죄행위라며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은 퇴출대상이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 우울한 여름/홍명호 고려대 가정의학과 교수(굄돌)

    날씨가 무더워졌다.장마 비까지 뿌려서 습도가 높아진,그야말로 고온다습한 날씨라 별일이 없어도 짜증이 날 수 있으므로 참는 김에 잘 참고 지내야할 계절이다.환자들도 꽤 많이 줄어 오뉴월에 IMF한파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환자들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응급상황이나 아주 참을 수 없을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 않게 되고,걔중에는 좀 더 부담이 적은 보건소를 찾아 약을 타 복용하는 것으로 그친다.건강을 지키는 상책이야 말할 것도 없이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고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중책은 질병을 조기에 발견,치료함으로써 질병에 따른 합병증과 불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건강유지에 투자하는 비용 면에서도 질병예방과 조기진단·조기발견이 훨씬 경제적이다.웬만하면 그냥 버티다 병이 커져 합병증이 생기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야만 병원을 찾으니 치료비도 많이 들고 치료 효과도 떨어져 합병증이나 불구가 많이 발생한다. 혈압이 높아서 혈압강하제를 장기간 복용해 온 환자가 어느날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소견서를 발부해 달라고 했다.이유인즉슨 보건소에서 약을 그냥 탈 수 있는데,보건소에서는 약을 먹지 말고 기다려서 혈압이 높아져야만 약을 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그래서 자기는 혈압강하제를 계속 복용하여 혈압조절을 하고 싶다니까,그렇다면 병원의 소견서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한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역시 국가의 경쟁력에 좌우되고 삶의 질에도 의학의 수준보다는 IMF한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시대에 우리가 산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환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복지부재의 시대를 IMF가 만들어내다니….
  • ‘취업 외교’로 IMF 극복을/金弄柱 연세대 취업담당관(발언대)

    1963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서독의 탄광회사 사장과 ‘광부파견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그것은 우리 정부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끈질긴 물밑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60년부터 조금씩 파견되던 한국의 간호사들이 65년 대규모로 서독에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파견된 한국의 광부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일한 때문이기도 했다. ○희망자 등록제 실시 80년대 150억불 이상의 해외 건설공사 수주와 이에 따른 건설인력의 수출은 당시 국가외환사정을 건강하게 해주었다.해외건설 시장에서의 성실한 시공 덕분에 85년에는 간호보조원 500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이 또한 취업 외교의 개가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일하기 보다는 쓰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더니 수년전부터 3D업종 기피와 과소비,노동 자세 상실과 정책부재 등이 겹치면서 결국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렀다.이대로 가다가는 IMF상황이 극복되더라도 일자리 부족 현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벤처기업 창업과 해외일자리 확대 정책에 달려 있다. ○진지한 노동자세 지녀야 해외 취업외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해외 노동시장 개척 기능을 확대 강화시킬 의지와 제도가 필요하다.먼저 ‘해외 취업 희망자 등록제도’를 범국가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노동부의 각 지방 사무소를 통해 희망직종,경력,능력,외국어 가능여부,진출희망 국가 등을 등록 받아서 집중 관리하고,이 자료를 각국의 공관에 보내 구인 희망자와 연결시켜 주는게 바람직하다.다음은 해외취업 희망자의 능력평가시스템을 직종별로 새로 만들어,이들에게 각 나라에서 필요한 기능훈련은 물론,현지 문화,직업여건,언어 등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이에 앞서 힘든 일도 하겠다는 우리 구직자들의 노동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외국의 탄광에서,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외로움과 싸우던 그 기백과 용기 없이는 해외취업 외교는 성공하기 힘들다. 1903년 하와이에서,63년 독일에서,80년대 중동에서 성공한 우리 선배들의 직업의식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자.고대희랍 사람들이 ‘일은 고역(苦役)’이라고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 불황 탈출 비상구는 어디에/위기의 日 경제 진단

    일본 경제가 심상치 않다.90년부터 시작된 장기 불황이 아시아 경제위기와 맞물리며 깊어지고 있다.사태의 심각함을 알아챈 일본 정부는 올들어 16조엔 규모의 종합 경제 대책을 마련하고 최근에는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기 위한 가교(架橋)은행 설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금융시스템 안정화 대책,소득세와 법인세의 영구 감세 등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내놓았다.하지만 ‘시장’은 냉담하기만 하다.아시아 나아가 세계 경제의 명암을 좌우할 일본 경제를 진단하고 앞날을 전망해본다. ◎경제규모/GNP 4조 9,635억弗 세계 2위/무역총액 4,700억弗… GNP 16%/올 외환보유고 2,203억弗 세계 1위 일본은 면적 37만여㎢에 인구 1억2,500여만명으로 한국에 비해 면적이나 인구면에서 3배 남짓하다.그러나 경제 규모는 세계 2위로 미국 다음의 경제력을 갖고 있다. 국민총생산이 4조9,635억8,700만달러(95년 기준)로 7조1,000억달러였던 미국의 뒤를 이었다.영국의 국민총생산 1조947억달러,프랑스의 1조4,510억달러, 독일의 2조2,523억달러를 모두 합한 규모를 웃도는 것으로 세계 경제 총생산의 18% 가량에 이르는 것이다. 한국의 국민총생산이 4,351억달러,중국이 7,449억달러.아시아 경제와 비교하면 중국과 한국에 더해 동남아 주요 경제국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그리고 호주의 국민총생산을 합친 규모의 2배가 넘는다. 일본의 무역규모는 95년도 수출이 4,433억달러,수입이 3,360억달러였다.이는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다.무역총액이 국민총생산에 대해 차지하는 비율은 15.7% 정도로 한국의 59.8%는 물론 독일의 42.3%,미국의 19.1%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일본 경제가 방대한 무역 흑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은 경제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수입확대를 통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시장을 제공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일본은 그동안의 성장과 무역흑자 등으로 축적된 부의 규모도 매우 커 외환보유고는 2,203억8,700만달러(1월말 기준)를 기록,세계 제1위였다. 일본이 이처럼 풍부한 자금,방대한 경제 규모,뛰어난 기술력을 살려서 ‘일본발 세계공황’을 막고 더 나아가 아시아 경제 위기 극복의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경제 현주소/엔低·高실업… 곳곳 빨간불/대형 금융기관 64곳 합병 등으로 사라져/200개 기업 신용도 곤두박질… 수출 ‘발목’ 6월 12일이었다.세계 주요 외환시장에서는 개장과 함께 엔화가치가 1달러당 145엔대까지 폭락했다.경제기획청이 지난해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0.7%였다고 발표한 때문이다.아무래도 0.9%는 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실망 폭락세’였다. 그러나 올 1·4분기의 국내총생산 실질 성장률은 -5.3%였다.일본 경제의 전광판이 온통 위험표시로 물들어 있을 것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다.당장 실업률만 하더라도 4월 들어 4%대를 돌파하더니 5월에는 4.1%로 악화됐다.곳곳에서 ‘대실업 시대’라는 비명들이 들린다. 엔화 약세도 앞날을 어둡게 한다.1달러당 140엔대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제자리가 아니다.더 미끄러질 것이란다. 금융기관들의도산은 꼬리를 물었다.90년대 들어 모두 64곳이 사라져 갔다. 지난해에는 홋카이도 다쿠쇼쿠 은행,에치고 증권,산요 증권,야마이치 증권 등 내로라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쓰려졌다.올들어서는 벌써 도쿠요시티 은행과 일본 장기신용은행 등이 사실상 파산하거나 다른 은행에 합병되는 등 도산 도미노가 이어졌다. 일본 경제의 빈틈은 곧바로 기업들에 대한 신용평가도를 낮추게 했다. 무디스(MOODYS)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사(S&P)는 올 상반기 동안 무려 200개 업체 회사채 신용등급을 낮췄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99개보다 두배가 넘는 것이다. 일본 수출도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엔화가치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올들어 수출이 맥을 못추고 있다. 5월까지 수출액은 1,61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나 떨어졌다.‘엔저(低)로 수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한다’는 그동안의 ‘얄팍한’ 계산조차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 만것이다. ◎정부 대응책/경기부양책 실효성 의문/영구減稅 등 구체실행방안없어 불신 가중/하시모토 訪美·‘선거용 정치제스처’ 비판 참의원 선거를 나흘 앞둔 지난 8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는 나고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영구적인 감세 조치를 내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밝혔다.침체 경기 탈출의 최후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일본 정부는 4월에는 16조엔을 쏟아 붓는 종합 경제대책을,그리고 6월 하순의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가교은행(브리지 뱅크) 설립 방안 등을 발표한터.앞으로 남은 대책이 있다면 역시 내수 촉진을 겨냥한 소비세율(부가가치 세율)을 내리는 방안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렇지만 ‘시장’은 굵직굵직한 경기 부양책에 대해 언제나 냉담했다.하시모토 총리가 감세조치를 발표한 다음날인 9일에도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듯 엔화 환율은 1엔 이상 떨어졌다. 일본 정부의 발표가 때를 놓쳤고 내용이 기대에 못미치는데다 구체적인 추진 방안이 결여됐다는 지적들이다. 항구적인 감세조치만 해도 그렇다.3일엔 ‘항구적 세제개혁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했으나,5일에는 ‘항구적인 감세란 말 안했다’고 하다가 8일 공식 발표했었다.그나마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나 재원 확보 방안은 언급조차 안돼 12일의 참의원 선거와 22일로 예정된 미국 방문을 앞둔 정치적 제스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여기에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나 정치적 리더십 부재도 불신을 가중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대책들을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부터 강력하게 요청받고서야 어쩔 수 없이 내놓았던 까닭이다. ◎전문가 전망/올 마이너스성장 불가피/엔貨 연말엔 150엔까지 떨어져 내년도 암울/소득·법인세율 영구인하로 내수 촉진 시급 주요한 정책 수단이 총동원되고 있지만 일본 경제는 한동안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지배적이다. 최근 일본 경제연구센터가 올해의 경기전망을 예측하기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한 경제 전문가들은 대부분 한마디로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종합 경제대책을 발표한 지난 4월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5∼2%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추정한 것에 비하면 매우 비관적이다.일본 정부도 당시에는1.9%의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경제연구센터 토론회에서 우에쿠사 가즈히데(植草一秀) 노무라 종합 연구소 주임 이코노미스트는 올해에는 경제 후퇴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지난해 경제규모보다 0.5%쯤 위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와카즈키 미키오(若月三喜雄)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도 “올해는 물론 99년도 낙관할 수 없다”면서 “영구 감세 조치와 공공사업을 추가로 실시해도 제자리 걸음,잘해야 0.2%의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 스탠리 증권의 로버트 펠드먼 매니징 디렉터는 “일본 경제가 연말에는 바닥으로 곧두박질칠 것”이라며 “환율도 150엔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소득세와 법인세율을 영구히 내려 국내 소비를 촉발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버겁다면 재정개혁 노선을 당분간 접어 두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도시다 세이이치(土志田征一) 일본 경제연구센터 이사장은 “재정개혁 정책을 일단 보류하고 대신 영구 감세 조치를 즉각 시행해야만 내년부터라도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北 배우자 생사몰라도 상속세 5억 인적공제/국세청 유권해석

    북한내의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배우자에 대해서도 상속세 인적공제를 받을 수 있을까. 6일 국세청에 따르면 이같은 의문은 6·25전쟁때 남편을 북한에 두고 내려온 金모씨가 최근 사망,가족이 상속재산을 물려받은 과정에서 제기돼 그 해답이 나왔다. 당시 관할 지방국세청은 金씨의 상속 가족에게 60세 이상 상속자에게 적용되는 연로자공제 3천만원만 계산해 1억1천만원의 상속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상속인들은 金씨의 남편에 대해 실종선고의 청구를 한 사실이 없으므로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배우자공제를 해야 한다며 불복,국세청에 심사청구를 의뢰했다. 심사위원회는 “배우자가 호적상 미수복지구 거주로 표시돼 있고 상속개시일 현재까지 실종선고나 부재선고가 없었으면 상속세 인적공제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북한에 배우자를 두고온 사람의 상속인들은 5억원의 인적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속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 경쟁원리 도입 ‘부실’ 대수술/공기업 민영화-의미와 문제점

    ◎재벌개혁·은행퇴출과 균형 맞춰/대규모 실직·외자조달 차질 우려 공기업이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다. 정부가 공기업의 경영혁신을 강도높게 추진하는 것은 한마디로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 국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이다.공기업에도 경쟁원리를 도입해 ‘저비용 고효율’의 체질로 바꾸고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이다.즉 55개 부실기업의 정리 등 재벌개혁과 5개 은행의 퇴출등 금융부문 개혁과의 형평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정부는 이미 중앙 및 지방공무원 감축과 10% 임금삭감,연구기관 및 훈련기관의 통폐합 등을 단행했다.이번에도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정 전반의 일대 혁신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기업은 그동안 부실경영과 비효율의 ‘공룡’으로 불려왔다.11개 공기업이 전체 108개에서 차지하는 매출,인력 등 비중은 70∼80%,예산규모가 정부예산을 웃도는 78조원에 달한다.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간부가 지나치게 많은 항아리형 인사구조,온갖 명목의 임금 올리기,경영진의 무책임 등이어우러져 국민경제의 ‘천덕꾸러기’로 불렸다.역대 정부가 지난 80년대 이후 세차례나 개혁을 시도했지만 부처 이기주의와 해당 공기업의 반발에 밀려 실패했을 정도였다. ‘국민의 정부’가 이번 공기업 개혁에서 포항제철 등 공기업 11개를 완전민영화하기로 한 것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다.그래서 입찰자도 당초와 달리 국내 5대 재벌의 진입을 허용하는 한편 외국기업에도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특히 종업원 보호와 국민의 참여 확대를 위해 우리사주와 국민주 매각방식을 채택했다.민영화로 인한 요금인상과 서비스 부재를 막기위해 규제기구도 설치하기로 했다.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부족한 외화유치와 재정을 충당,구조조정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11개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내년까지 모두 70억달러의 외자유치가 가능하다.이 가운데 국내에서 올해 1조∼1조2,000억원,내년에 2조원의 추가 세입이 기대된다. 그러나 공기업들은 저마다 20∼30%선의 인원 감축을 꾀하고 있어 5만명 정도의 실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간산업의 사적 독점화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매각대상을 축소하고 시간에 쫓겨 당초 170억∼220억달러를 조달하려는 계획에도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공기업 개혁의 성패는 정부와 국민의 지속적인 감독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전산망 정지땐 금융시스템 마비 고려안해/5개銀 6·29퇴출 허점

    ◎퇴출노조의 행동지침 입수못해 대책 불재/월말­분기말 겹친 시기에 발표해 혼란 자초/재경부선 강건너 불구경하다 뒤늦게 “부산” 금융당국의 판단 착오로 부실은행 퇴출이 금융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뻔히 예상된 퇴출은행 직원들의 반발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고,은행업무의 핵심인 전산 시스템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퇴출발표 시기를 은행거래가 폭주하는 6월 말로 잡아 피해를 극대화시켰다.중요 허점을 지적해 본다. ■전산망 마비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퇴출은행 발표 이전 예금인출 사태에만 신경을 썼을 뿐 전산망이 가동되지 않으면 금융결제 시스템이 마비돼 금융시장이 마비된다는 상식을 잊고 있었다.발표 이전에 12개 은행의 전산실에 관리인을 모두 배치했다면 이같은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보의 부재와 편중이 심했다=퇴출은행 노조는 미리 발표에 대비,전산 및 영업창구 직원의 행동지침을 만들었다는 소문이다.금감위가 이같은 첩보만 입수했어도 정상 상황을 전제로 한 ‘최상의 시나리오’를 짜지 않았을 것이다.퇴출정보도극소수만 알고 있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 ■발표시기가 적절치 못했다=세금과 공공요금 납입일이 집중된 월 말에 발표한 것이 잘못됐다.기업들의 월 말 은행거래는 월 초보다 3∼4배가 된다.30일 영업이 끝난 다음이나 7월1일 발표했어도 늦지 않았다. ■재경부와 금감위의 손발이 맞지 않는다=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는 감독권을 금융감독위원회에 넘긴 탓인지 ‘강건너 불구경하 듯’ 팔짱만 끼고 있다가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한 은행 관계자는 “감독능력만 있고 행정능력이 전무한 금감위는 처음부터 재경부와 상의했어야 했고,재경부도 성의껏 협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仁寺洞 문화거리 살리자(사설)

    서울 인사동 문화의 거리 축제가 당분간 중단된다고 한다. 시작도 성급했던 데다 중단의 대안도 제시되지 않고있다. 졸속계획과 행정부재의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4월 ‘차 없는 일요일’을 선언하고 ‘인사동 거리축제­문화장터’를 계획할때는 인사동이 당장이라도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로 부상하는 듯했다. 그러나 1년반 만에 청사진은 찢기었고, 여론도 당초의 의도에서 빗나간다면 문화행사 자체를 폐지하라는 쪽이다. 이런식으로 작은 문화 하나도 지켜가지 못한다면 다른 더큰 문제들은 기대할 수조차 없겠다. 인사동의 상징은 골동품과 화랑이다. 거리에 들어서면 미술전시를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넘치고 길가에 늘어선 고상점들이 이 거리만의 정취를 풍기면서 개성과 특성을 자랑해왔다. 지난봄 축제를 시작한 후 일요일마다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든 것만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난속에 이 지역에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업소들이 자리를 넓히게 되자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전통문화·예술·관광의 보존지구로서 인사동을 무차별 비문화적 산업의 침투로부터 보호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모든 사람이 고루 참여하는 축제를 마련,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자연스러운 문화장터를 만든다는 것이 행사의 취지였다. 그러나 몰려드는 인파와 잡상인을 통제할수 없게되자 문화의 거리는 하루아침에 지리멸렬한 저잣거리로 추락해버렸고 보존은커녕 파괴가 아니냐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는 이유는 한국 전통고전문화중에서도 미술관련으로 고유의 특색을 살려왔기 때문이다. 그처럼 오랜 전통으로 인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한번쯤 들러볼만한 장소로 추천되는 곳이다. 그런 인사동이 서투른 행정과 졸속계획으로 휘청거리다니 여간 한심한 노릇이 아니다. 더이상 전통의 거리가 훼손되고 변질되기 전에 가장 개성적인 문화의 거리를 성취하기 위해 이런 행사보다 본래의 모습이라도 잘 보존하고 지키라고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하나가 잘되면 너도나도 끼어들어 그 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깨트리고야 마는 습성이 있다. 어느 경우에라도 인사동 고유의 정취가 사라지면 모든이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존재자체가 가치가 없어지기 십상이다. 돈으로 발전시키기에 급급하지 말고 이 거리의 특성을 어떻게하면 좀더 개성있게 살릴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인사동을 지키는 일은 문화민족의 긍지다. 문화의 거리는 한번 사라지면 유흥가로 타락해 두번 다시 되찾을 수 없게 된다.
  • 오늘 창립 ‘국민화합시민연대’ 토론회 주제 발표

    ◎“지역화합은 총체적개혁 선결 조건” 지역갈등 해소를 통한 지역화합을 지상목표로 삼은 범국민운동 단체인 ‘국민화합시민연대’(약칭 화합연대)가 27일 창립대회를 갖고 정식 출범한다. 화합연대는 지난 2월말 대학교수들이 주축이 돼 모임을 결성한뒤 7차례의 추진위원회를 거쳐 지난 5월30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창립을 보게된 시민단체. 이 땅의 고질인 지역갈등을 전문적인 시민운동으로 풀어나간다는 목표아래 閔丙天 서경대 총장과 黃惠仁 동국대 교수,金世悅 한남대 총장,李正熙 한국교민연구소장,金麟濟 대전대 총장,朴龍壽 강원대 교수,金三雄 서울신문 주필 등이 공동대표로 참여하는 등 대학교수 법조인 전직 언론인 등 유력인사 495명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 27일 창립대회에 이어 동국대 문화관 예술극장에서 열리는 토론회 주제발표 내용과 사무총장 인터뷰,창립선언문을 소개한다. ◎金大中 정부 인사정책/구여권 개혁인사 널리 등용을/金昊均 명지대 교수·경제학 金大中 정부의 인사정책을 평가함에 있어 감안되어야할 사실은 한국사회가 안면사회라는 점이다. 새 인물을 발굴하고 평가하기까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평소 잘 아는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불가피한 현실이다. 金大中 정부도 한국사회의 이러한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총체적 개혁작업에서 정부가 가장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에 비춰볼 때 金大中 정부는 향후 인사에서 안면사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더욱 숙고해야 한다. 경쟁이 계속되는 한 이해당사자는 물론이고 국외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인사란 불가능하다. 金大中 정부는 50년만의 정권교체에다 경제위기가 가중되면서 역대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사정책의 실행에서 커다란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통합에 의한 정국안정과 경제위기 대책의 신속한 수립 및 집행을 위해서는 구여권인사의 전문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반면 정권교체는 과거 정부와의 차별성과 참신한 개혁인사의 중용에 대한 국민의 요구라고 평가된다. 최근의 경제위기의 원인이 과거 정부의 국정전략 부재에 있는 한,이에 책임이 있는 인사의 중용은 피해야할 것이다. 이같은 모순된 요구를 지역문제와 관련시켜 본다면,구여권이 지역패권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여권인사는 압도적으로 영남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정권교체의 의미를 살린다면 그동안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출신 인사가 많이 중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패권지역과 구여권인사가 일치하지 않듯이 구소외지역과 개혁인사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구패권지역에서도 개혁을 추진할 인사는 얼마든지 동원 가능하다. 그러므로 金大中 정부의 바람직한 인사정책은 구소외지역의 구여권인사는 사양하고 구패권지역의 개혁인사를 널리 수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경우에 인사정책은 지역화합과 개혁을 동시에 달성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지역화합을 위한 인사결정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을 대표할 수 있고,또 해당 지역주민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인사가 기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편중 인사 원인과 재인식/지역할거 정치구조 타파 급선무/盧秉萬 경북대 교수·정치학 金大中 정부의 출범 초기부터 논란이 되는 지역편중 인사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는 朴正熙 정권 이래의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실태와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朴正熙 정권에서는 경상도 출신의 지역편중 인사가 나타났으나 최고집권자의 출신지역에 따른 충원이 일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없는 반면 全斗煥 정권 이후부터는 최고집권자의 출신지역에 따른 충원이 일정하게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원인으로는 朴正熙 정권에서는 최고집권자의 자의적 충원이 지역연고에 의한 편중인사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나,全斗煥 정권에서는 신군부 집권세력의 취약한 권력기반이 지역성을 담보로 한 충원이 되게 만들었다. 盧泰愚 金泳三 金大中 정부에서는 지역할거적 정치구조에 기인한 지역정권의 성립이 지역편중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한 것으로 나타났다. 全斗煥 정권 이래 지역편중 인사가 구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역편중 인사가 지역감정·갈등의 본질적 원인이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지역감정·갈등의 진정한 원인은 지역편중 인사나 지역간 경제적 차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할거적 정치(정당)구조와 지역정권의 성립에 있는 것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이 지역할거적 정치구조와 지역정권의 성립에 있으므로 金大中 정부에서 호남편중 인사가 이뤄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편중 인사가 문제시되는 것이 무의미함에도 불구,이슈화되는 이유는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과 정당·정치인의 정략적 지역감정 이용,또한 언론의 흥미위주 보도 때문이다. 따라서 정계와 언론계는 지역편중 인사 문제를 이슈화하여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행을 자제해야 하고 金大中 정부는 부적절한 지역편중 인사가 되지 않도록 더욱 신중히 인사를 해야 한다.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인 지역할거적 정치구조를 형성시킨 주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민의 지역감정이나 지역연고 의식을 이용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지역할거적 정치구조를 해소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할 것이다. ◎‘화합연대’ 사무총장 黃台淵동국대 교수/“현장중심 동서화합 운동 앞장”/정치인 지역감정 조장 언행 언론에 공개 27일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하는 ‘국민화합시민연대’(화합연대·상임공동대표 張潤煥)의 사무총장 黃台淵 교수(동국대 정치외교학)는 이 단체 태동부터 창립까지 줄곧 관여해온 주역중 한 사람이다. ­화합연대의 활동방향은. ▲각 개인의 개성과 지역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려낸다는 방침이다. 온 국민의 화합을 이뤄내기 위해선 지역과 개인의 목소리를 고루 포용하면서 하나로 모아가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각 요소들을 결집한 시민운동의 첨병역할을 철저하게 해낼 것이다. ­가장 큰 목표는. ▲구체적이고 전국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간다는데 있다. 지역문제에 대한 시민의식 계몽과 함께 언론·국정에 대한 비판·감시 등 전문적인 시민운동을 통해 완전한 국민화합의 초석을 다질 계획이다. ­화합연대가 보는 현 상황은. ▲정권교체가 지역화합의 전기이면서도 지역갈등이 더 격화될 수 있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심화되고 있는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권교체가 됐는데도 지역갈등은 해소될 전망이 없나. ▲지역감정이 언제든지 분출할 수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지역화합 문제가 경제위기를 맞아 국정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국민화합을 이룩하려는 정치적 의지 자체가 여야대결 구조로 인해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지역화합 노력은 배가돼야 한다. ­종전에도 지역화합을 위한 운동들이 적지않게 진행돼 왔는데. ▲물론 동·서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크고 작은 단체와 운동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하지만 전문성 결여와 전국적인 조직 부족으로 모두 실패했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운동이 반(反)지역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엄연한 지역차별을 사소한 문제로 여겨 추상적 운동에 그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체적인 활동계획은. ▲다른 시민운동단체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 현장활동을 중심으로 철저한 비판·감시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우선 일상사업으로 정당·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조장발언을 정도와 빈도수를 파악해 언론에 공개하겠다. 매 선거때마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 낱낱이 파헤칠 생각이다. 지역화합에 앞장선 인물도 언론에 공개해 바람직한 방향을 유도하면서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청원 입법을 통해 뿌리뽑아 나갈 것이다. 북한 이탈주민과의 대화나 영호남 주민이 교환방문하는 은행나무심기같은 이벤트를 마련하고 지역문제해결을 위한 외국사례연구를 병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조직운영은. ▲발기인들을 각 지부장으로 삼아 이들을 주축으로 한 지부제로 운영하겠다. 500여개의 촘촘한 지부를 중심으로 모든 시민들이 고르게 역할을 분담해 체계적인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창립선언문 요약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과 21세기 국가발전을 위해 지역대결 구도를 반드시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실현해야 할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역문제에 대한 시민의식을 계몽하고 언론과 국정을 비판 감시해야 할 전문적인 시민운동의 출현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각 지역의 차이를 말살하는 추상적 중앙통합과 지역패권은 지역차별과 문화말살,독재권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개성과 차이의 존중에 굳게 발디딘 구체적 연대정신만이 사회발전과 문화창조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의 철학’에 대한 확신 속에서 지역적 문화·기질의 차이를 존중하고 나라의 영원한 발전의 동력으로 받드는 자세로 국민적 시각전환을 꾀할 것입니다. 지역과 지역출신들의 구체적 소외와 차별에 대해 눈감은채 추상적 민족단결만을 외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지역간 정치·경제·문화·사회적 차별과 특권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모든 지역의 공동발전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정의와 연대’에 헌신할 것입니다. 지역등권적 공동번영과 국민화합의 고귀한 목표는 ‘체념의 미학’과 ‘차이의 철학’,그리고 ‘구체성의 철학’을 결합한 우리의 정치철학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들은 그같은 방향에서 정부·정당의 정책집행과 언론·정치인의 언행을 압박·감시하고 비판·항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등권적 국민화합의 최종적 완성은지역화합적,전국적 민주정당 편제를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각 지방의 고유한 지역정서를 상호존중,이해하면서 독특한 지역문화를 경쟁적으로 발전시켜 국민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철학을 가진 전문성에 기초하여 국민화합의 의지로 조직된 중립적인 시민운동체의 출현이 절실합니다. 이에 지역등권적 국민화합의 바람과 지혜를 모은 각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민주발전과 지역등권의 상관관계에 대한 확고한 인식아래 지역문제에 대한 일대 각성을 촉구하며 지역화합을 촉진하기 위해 ‘국민화합시민연대’를 창립합니다.
  • 축구대표팀 질책 그만/金炳局 고려대 교수·정치학(時論)

    21일 저녁. 뉴스가 시작하자 앵커가 차범근 감독의 경질 소식을 전한다. 기술위원회가 미숙한 팀 관리 및 경기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회 중간에 감독을 전격교체한다는 전갈이 파리 현지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한 평생을 축구로 살아온 차범근 감독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같았을 것이다. ‘기술 부재’는 그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축구장을 휘젓고 다니던 청년시절부터 쌓아온 명예와 명성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놓기 충분한 판결이었다. ○희생양된 국민스타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질 소식이 전해진 다음의 일이었다. 네덜란드 공격수가 한국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계속 비추어지고 대표팀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줄을 이었다. 한국 축구의 상징인 투혼마저 사라진 ‘최악의 졸전’이라는 관전평이 나오는가 하면 허탈감을 넘어서 ‘분노’의 수준에까지 이른 국민 감정 때문에 축구팀의 귀국길조차 순탄치 않을 지 모른다는 전망마저 점쳐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환란(換亂)에 바짝 움츠러든국민이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기를 펼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비난마저 가세하였다. 아무리 승자만이 살아남는 스포츠의 세계라지만 한 시대의 국민적 스타가 이렇게 추락하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시련이 불어닥칠 때마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한 시대의 영웅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한국 축구는 불모지가 되고 만다. 스타가 없으면 자신의 인생 전부를 축구에 걸고 실력을 키우려는 ‘새 싹’이 돋아날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녀사냥 식의 경질은 문제의 본질마저 흐려 놓는다. ‘16강 진출’은 언론과 상혼 및 전문가가 저마다의 손익 계산 및 이해관계에서 조장한 허황한 꿈이었지,축구 그 자체에 대한 국민적 열정과 투자 및 후원 아래 착실히 준비되어온 플랜이 아니었다. 그 ‘거품’이 빠지자 이제는 모두가 차범근 감독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적 분노를 달래려 한다. 한국 축구가 오늘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세계무대로 뻗어나갈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에 책임전가 안될말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시 선수 각자의 상처받은 마음일 것이다. 국민은 한국 축구의 연패 행진을 지켜보면서 허탈해하지만 그 허탈감은 대회가 끝나면 금방 잊혀져버릴 한 순간의 감정밖에 되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불거져 나오는 질책과 비난은 자신의 인생을 축구에 걸고 살아온 대표팀에게 영원한 상처를 남기는 비수가 되고 만다. ○2002년을 위하는 길 생애 통 털어 한번 출전할까 말까 하는 축구 대잔치에 일승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하여 수년 동안 기술을 연마하고 체력을 키워온 선수 당사자로서는 경기 결과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결국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총결산하는 최후의 심판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벨기에전이 치러지기 전에 달라져야 하는 것은 대표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더 이상의 질책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꿈이환란으로 갈기갈기 찢겨질 때 느꼈던 아픔을 거울로 삼아 절망감에 젖고 슬픔에 잠긴 대표팀을 어루만져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2002년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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