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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미네르바 K는 대북사업가 권씨의 작품?

    월간 신동아를 통해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행세를 해온 K씨가 가짜 행세를 계속한 데에는 대북사업가로 알려진 권모 씨의 강한 압박이 작용했던 것으로 동아일보사의 자체 진상 조사 결과 드러났다. 권씨가 어떤 이유로 이런 역할을 했는지 검찰이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사는 18일 1면에 ‘거듭 사과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사과문을 싣고 지난 2월17일 첫 번째 사과문에서 독자들에게 약속했던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요약해 1개 면에 실었다.진상조사위는 송문홍 신동아 편집장 등을 비롯한 신동아 기자들로부터 K씨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믿었던 경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장시간 조사한 것은 물론,대북사업가로 K씨의 기고문과 인터뷰 게재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권씨와 K씨,누리꾼 3명 등을 심층적이고 다면적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편집장은 물론,기자들 실명까지 공개해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려 한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동아 취재진이 K씨의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간과했다고 시인했다. 진상조사위의 활동 기간에 출판편집인이 회사를 떠났고 출판국장과 신동아 편집장에게 오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정직하는 등 엄중 문책을 단행했다고도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권씨가 K씨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했다는 점.18일자 동아일보 29면 한 면에 게재된 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신동아팀이 지난 2월12일 심야와 13일 새벽에 걸쳐 서울의 한 호텔 객실에서 K씨에게 가짜가 아니냐고 계속 추궁하자 K씨는 “기고문을 보낸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도 심하게 압박이 들어와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 박대성이 구속됐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 13일 새벽 3시쯤 권씨가 “K씨랑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K씨도 “담담당당(권씨의 다음 아고라 필명) 선생이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두 사람만 남겨놓고 신동아팀은 객실에서 나왔는데 이 과정에서 권씨가 K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신동아팀은 이날 오후 충정로 사옥 인근 카페에서 K씨를 다시 만나 왜 미네르바를 사칭했느냐고 재확인하자 K씨는 “독서클럽 멤버 중에 50대 K 씨가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다. 이름은 모르지만 50대 K 씨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K씨는 신동아팀의 거듭된 추궁에 “포털사이트 다음이 아닌 네이버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동한 적 있었다.미네르바가 유명해진 이후 사람들이 나를 자꾸 미네르바라고 단정했다.내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믿어주지 않아 그냥 미네르바 행세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조사결과 신동아측이 K씨에게 건낸 원고료는 K씨에게 건재지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이 부분은 권씨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신동아로부터 원고료를 받아 K씨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신동아는 K씨의 원고료 88만원은 그와 같은 인터넷 독서클럽 멤버의 은행 계좌로 송금했고,K씨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돈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독서클럽 멤버 역시 K씨가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아 자신이 사용했다고 말했다고 신동아는 전했다. 동아일보사의 진상 조사는 이 대목에서 멈춰 있다.왜 권씨가 K씨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로 가짜 미네르바 행세에 강한 집착을 보였는지,K씨는 (’이날 처음 만난) 권씨로부터 어떤 약점을 잡혔길래 이런 수모를 감수하고 있었는지 등은 앞으로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동아일보사의 진상조사로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대목일 수도 있다.기왕 검찰은 진짜 미네르바 박대성(31)씨를 구속해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다.권씨가 K씨로 하여금 완력을 행사한 경위가 명확히 규명되어야만 여전히 진짜 미네르바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일부 누리꾼의 주장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다음은 동아일보가 18일자 29면에 게재한 동아일보사 진상조사단의 진상조사 보고서 요약본이다.신동아 3월호에 전문이 실렸다. 1.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및 활동 동아일보사는 2009년 2월 16일 자매지인 ‘신동아’에 기고문(2008년 12월호)을 싣고 인터뷰(2009년 2월호)를 한 K 씨가 미네르바를 사칭했다는 출판국의 보고를 받고, 당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는 신동아의 편집장과 기자들에게 각자 K 씨 보도 관련 경위서를 제출받았으며 조사위원들이 이를 토대로 1명씩 면담을 실시했고 필요 시 추가 면담했다. 송문홍 편집장과 K 씨 보도에 관여한 기자들의 동의하에 당사자들의 e메일 내용도 확인했다. 면담 및 조사 활동과는 별개로 진상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과 이민웅 한양대 언론정보대 명예교수를 외부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3차례에 걸쳐 조사위 활동 전 과정과 조사 내용 및 결과를 설명하고 보고서에 대해 자문 및 검증을 받았다. 최용원 출판편집인은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2차례 6시간 40분 동안, 송문홍 편집장은 4차례 22시간 반 동안 면담 조사했다. 신동아팀 윤영호 편집위원, 조성식, 정현상 기자는 1차례씩 각각 1시간 반, 1시간 반, 1시간 45분 동안 면담했다. 허만섭 기자는 2차례 5시간 반 동안, 송홍근 기자는 3차례에 걸쳐 13시간 40분 동안 면담했다. 황일도 기자는 1차례 3시간 동안 면담했으며, 한상진 기자는 2차례 3시간 45분 동안 면담했다. 면담 외에도 필요할 때마다 전화와 e메일 등을 통해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작업을 했다. K 씨는 2차례 만나 7시간 40분 동안 조사했다. K 씨는 이후 잠적해 추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대북사업가로 알려진 권모 씨에 대해서는 3차례 만나 19시간 10분 동안 조사를 실시했다. 누리꾼 M은 1차례 만나 2시간 10분가량, 누리꾼 I는 1차례 2시간 반가량 면담 조사에 응했다. 누리꾼 S는 면담 조사를 거부한 대신 1시간 반가량 1차례 조사위원과 e메일 및 인터넷 채팅을 통해 질문에 답했다. S는 이후 조사위에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입장을 추가로 밝혔다. Ⅱ. 2008년 12월호 K 씨 기고문 게재 경위 송문홍 편집장은 2008년 11월 8일경 권 씨로부터 “미네르바 기사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전화로 받았다. 송 편집장은 11월 10일 다시 권 씨의 전화를 받고 신동아 12월호에 K 씨와의 인터뷰를 추진하려 했다. 권 씨가 송 편집장에게 보낸 인터넷 채팅록을 분석한 결과, 권 씨는 11월 11일 한 인터넷의 ‘경제독서모임’에서 활동하는 누리꾼 ‘M’의 주선으로 K 씨와 처음으로 인터넷 채팅을 했다. K 씨는 채팅 기록에서 권 씨에게 자신을 계속 ‘늙은이’라고 표현하며 “늙은이가 경고한 대로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번에 외신에 대한민국 외환위기설 기사제보 외국계 지인에게 늙은이가 터뜨렸습니다.”“심적 고통이 몸까지 상하게 합디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등을 언급했다. 권 씨는 K 씨에게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여러 차례 권했다. 송 편집장은 11월 12일 권 씨와의 통화에서 “미네르바가 인터뷰를 꺼린다.”는 말을 듣고 13일 K 씨의 기고문을 싣기로 결정했다. K 씨는 11월 13일 밤부터 11월 14일 새벽까지 기고문을 작성했으며 다음 아고라에 올라 있는 미네르바 박대성 씨의 글과 자신의 이전 글을 섞어 기고문을 작성해 M을 통해 신동아팀에 전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누리꾼 M은 K 씨 기고문을 11월 14일 오전 송 편집장의 e메일로 발송했다. 송 편집장은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에게 e메일로 받은 기고문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황 기자는 기고문을 읽어본 뒤 “최소한 필자의 신원을 밝혀야 한다.”고 건의했으며, 송 편집장은 기고자의 신원 자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몇 가지 질문을 11월 14일 오후 e메일로 M에게 전달했다. ‘노란 토끼’란 무엇인지, ‘미네르바는 50대 초반, 증권사 근무와 해외체류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보도가 맞는지 등이었다. M은 같은 날 오후 송 편집장에게 e메일로 답장을 보내 “(원고가) 중구난방이니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 손을 좀 봐 달라. 영감님이 담담당당(권 씨의 아고라 필명) 선생님께서 보시고 오케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신다.”고 밝혔다. M은 답장 e메일에서 “노란 토끼는 환투기세력을 언급한 것이고, 증권사 근무 경력이 있고 해외 체류경험이 있다. 나이는 노코멘트” 등이라고 답변했다. 황 기자는 원고를 정리한 뒤 송 편집장에게 “앞뒤 문체가 확연히 다르고, 내용상 중복되는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원고를 정리한 사람이 여러 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M은 11월 15일 오후 송 편집장에게 e메일을 보내 “영감님께서 ‘꼭 미네르바라고 (기고문에 적시)해야 하느냐, 사이버경제논객 장사꾼 정도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여쭤봤다. 지금도 글을 안 싣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Ⅲ. 2009년 2월호 K 씨 인터뷰 게재 경위 권 씨는 신동아 12월호가 발매된 날인 11월 18일 K 씨와 다시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조선하고도 연락하는 중입니다. 그쪽이 쉽게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송편(송 편집장)이 이미 데스크 한 자리를 가지고 이번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동아의 방향이 가장 극악한데… 그걸 이제는 못하는 겁니다. 한 번 정하면 부인 못하는 곳, 그래서 조선을 일단 눌러두고 동아부터 때린 겁니다. (중략) 그리고 이진법 내에도 혼란은 생깁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2009년 1월 8일 박대성 씨가 미네르바라며 박 씨를 구속했다. 1월 12일 오전 본사 임원들과 일부 실·국장들이 참석하는 월요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동아 미네르바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밀한 확인 취재를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주문했다. 송 편집장은 월요 간담회에서 제기된 문제점 등을 13일 권 씨에게 e메일로 보냈다. 송 편집장은 1월 14일 다시 M에게 e메일을 보내 K 씨 인터뷰를 요청해 이날 20:00경 지하철 아현역에서 K 씨를 만나 인근 카페에서 1시간 반 정도 대화를 나눴다. 송 편집장은 22:00경 K 씨에게 “차라리 우리 회사로 가자.”고 설득해 그를 출판국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인터뷰는 1월 15일 03:30경까지 진행됐다. 실명을 밝히라는 요구에 K 씨는 망설이다 자신의 이름은 ○○○이며, 한 외국 언론사의 정부 부처 출입기자를 안다고도 말했다. 허만섭 기자는 1월 15일 K 씨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정부 부처 출입기자인 Y 씨가 K 씨를 아는지 문의했다. 허 기자는 다음 날인 1월 16일 그 지인으로부터 ‘Y 씨가 △△은행에 다니는 ○○○(K씨 실명)을 안다고 하더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조사 과정에서 말했다. 신동아 기자 대부분은 당시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생각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1월 15일 오후 발행인에게 K 씨와의 인터뷰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에 따라 15일, 16일 주요 간부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대부분 회의 참석자들은 K 씨가 미네르바인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므로 IP, ID 문제 등에 대한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Ⅳ. K 씨 자백 경위 1월 28일경 허만섭 기자는 외국 언론사 Y 씨를 직접 만나 신동아 2월호 인터뷰 과정에서 촬영한 K 씨 사진을 보여주며 아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을 시도했다. 이에 Y 씨는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송 편집장은 2월 6일 M에게 e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K 씨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K 씨가 M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자, 송 편집장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1월 14일 인터뷰 당시 찍은 K 씨의 사진과 녹취한 음성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M에게 말했다. K 씨는 2월 12일 오후 “오늘 저녁에 만나겠다. 담담당당님(권 씨)을 인터뷰 장소로 데리고 오라.”고 제안했다. 일부 기자는 “신동아의 취재 공간에 제3자인 권 씨를 데리고 가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2월 12일 20:00경 송 편집장, 권 씨, K 씨, M 등 4명이 지하철 당산역 인근에서 만났다. 22:00경 송 편집장, 송홍근 기자, 한상진 기자와 권 씨, K 씨 등 모두 5명은 S 호텔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신동아팀은 가장 먼저 K 씨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해 K 씨의 성명과 주소, 생년월일 등을 확인했다. 이어 K 씨에게 “미네르바가 맞다면 그동안 글을 올린 ID와 패스워드를 밝히라.”고 요구했고, K 씨는 “사실 글은 내가 직접 올리지 않아서 ID와 패스워드는 모른다.”고 말했다. 2월 13일 01:00경 ID 문제 등을 계속 질문하던 한상진 기자가 K 씨에게 “당신 미네르바 아니지?”라고 물었고 K 씨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네”라고 답했다. K 씨는 또 “기고문을 보낸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도 심하게 압박이 들어와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 박대성이 구속됐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03:00경 신동아팀은 K 씨에게 “그만 가라.”고 했으나 K 씨는 가지 않았다. 이에 권 씨가 “내가 K 씨랑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K 씨도 “담담당당 선생이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두 사람만 남겨놓고 신동아팀은 객실에서 나왔다. 신동아팀은 호텔 1층 로비에서 30여 분간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기자 등이 “객실에 권 씨와 K 씨 둘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03:30분경 신동아팀은 호텔을 나왔고 권 씨와 K 씨는 객실에 함께 있다가 07:00경 귀가했다고 조사위에 밝혔다. 조사위는 이 과정에서 권 씨가 객실에서 K 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이날 11:00경 출근한 송 편집장으로부터 K 씨의 자백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받았다. 신동아팀은 진위를 재확인하기 위해 이날 오후 충정로 사옥 인근 카페에서 K 씨를 만났다. K 씨는 왜 미네르바를 사칭했느냐는 질문에 “독서클럽 멤버 중에 50대 K 씨가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다. 이름은 모르지만 50대 K 씨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신동아팀은 통상의 원고 마감일을 하루 앞둔 2월 14일 오후 출판국에서 전체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신동아 기자들은 K 씨가 가짜 미네르바라고 최종 결론 냈다. 황 국장은 회의를 마친 뒤 전화로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K 씨 자백 상황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Ⅴ. K 씨와 권 씨 K 씨는 1976년생으로 출생지는 ○○이며 지방 도시의 S고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K 씨는 지방의 모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K 씨는 자신이 2000년 H 창투를 시작으로, C 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영업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H 창투를 다녔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K 씨가 C 투자증권에 다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권 씨의 진술에 따르면 권 씨는 1963년생으로 출생지는 ○○이다. 조사 과정에서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했으나 확인 결과 1982년 지방의 K대에 입학해 1989년 졸업했으며, 1989∼1995년 KOTRA 특수사업과에서 근무했다. 송문홍 편집장은 1997년 미국 연수 후 권 씨를 처음 만나 10여년간 만남을 지속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보를 제공받아 왔다고 조사에서 밝혔다. 권 씨는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담담당당’이란 필명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Ⅵ. 문제점 ① 검증의 부재 신동아는 2008년 12월호 K 씨의 기고문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필자에 대한 신원과 경력을 확인하지 않았다. 송 편집장은 K 씨를 소개한 권 씨의 얘기만을 믿고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속단했다. 기고도 K 씨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누리꾼 M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았다. 신동아가 2009년 2월호 K 씨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할 때도 신원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터뷰 게재 당시 신동아가 알고 있는 것은 K 씨의 성명뿐이었다. 검찰이 박대성 씨를 미네르바로 특정한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IP와 ID 문제에 대해서도 신동아팀은 엄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기사를 게재했다. ② 게이트키핑 시스템 미작동 K 씨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를 제작 책임자인 송 편집장이 주도하면서 사실상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신동아팀 기자들은 기고문의 게재 경위나 인터뷰 성사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송 편집장의 판단과 결정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③ 윤리적 문제 송 편집장은 M으로부터 K 씨의 기고문을 받은 뒤 글의 내용에 관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M에게 전달했다. 신동아 2008년 12월호의 <편집자주>는 M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을 토대로 작성했다. 그럼에도 ‘K 씨를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 모호한 표현을 씀으로써 K 씨를 직접 만났거나 그와 전화 인터뷰를 한 듯한 인상을 줘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신동아팀은 2월 13일 03:00경 권 씨와 K 씨만을 호텔방에 남겨두고 현장을 떠났으나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난 데다 K 씨에게 신동아 기고를 수차례 요구한 사람이 권 씨였던 만큼 K 씨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신동아팀 관계자가 현장을 지켰어야 한다는 것이 조사위의 판단이다. 송 편집장은 사내 정보를 제3자인 권 씨에게 지속적으로 유출했다. Ⅶ. 개선 대책 동아일보사는 이번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를 계기로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고,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시행할 방침이다. ① 취재 및 보도 원칙 재정립과 교육 강화 사실의 검증, 익명 취재원 처리, 인용, 정정, 반론, 표절금지, 사진 및 영상물의 사용 등에 관한 기준을 재정립한다. 이 같은 원칙과 기준을 데스크와 기자들에게 교육을 통해 실천토록 한다. ② 인터넷 정보 활용 원칙 마련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사실 확인, 내용 검증, 인용 기준, 정정보도 등에 관한 원칙을 마련해 시행한다. ③ 게이트키핑(단계별 기사 검증) 강화 기사 관련 정보의 정확성과 기사 가치 판단에 대한 보도·논평·편집 간부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단계별로 충실한 게이트키핑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 취재 내용에 관해 기자들과 데스크 간의 의견 교환을 활성화한다. ④ ‘스탠더드 에디터’ 제도 도입 스탠더드 에디터는 보도 준칙의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정확한 보도와 취재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관련 교육을 담당한다. ⑤ 내부 심의 강화 신문 기사 위주로 이뤄졌던 회사 차원의 내부 심의 기능을 잡지, 인터넷 기사까지 확대한다. ⑥ 독자위원회(가칭) 설립 동아일보사는 사회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한 독자인권위원회를 2001년부터 운영해 왔다. 이를 ‘독자위원회’로 확대 개편한다. 독자위원회는 독자의 인권보호는 물론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정확히 준수했는지 심의한다. 독자위원회의 심의 대상에는 신문뿐 아니라 잡지, 온라인 기사까지 포함한다. 동아일보 진상조사위원회 [다른기사 보러가기] ”신인 여배우 12명 돌아가며 만나는 재벌” 연 8만명 중동여행…여행사들 생계수단 체육활동중 부상자도… 도넘은 유공자 남발 결국 법정 가는 고교등급제 의혹 ’녹색기획관’은 자리 늘리기? 의사·경찰·‘나이트 삐끼’까지 “코끼리 주사 한 방만…” 애원
  • 예멘은 어떤나라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예멘은 ‘시한폭탄’ 같은 나라다. 1990년대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던 예멘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조상들이 뿌리를 박고 살아온 고향. 이런 유래 때문에 나라 전체가 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의 거점으로 쓰이며 테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무장단체가 차량폭탄 등으로 수도 사나 주재 미 대사관을 공격해 16명이 사망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이달 초 여행이나 방문시 신변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위험국 8위에 예멘을 올렸다. 예멘에선 자기 방어 목적의 총기소지가 헌법으로 보장돼 총기 범죄도 들끓는다. 최근 4년간 발생한 범죄 4만 5000건 중 절반을 차지한다. 성인 한명당 평균 3정의 총기를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예멘의 뿌리깊은 납치 행위 때문이다. 지방부족들이 중앙정부에 도로건설, 일자리 등을 요구하는 협상 카드로 외국인 납치나 기간 시설물 파괴 등을 일삼는 것. 나라가 이처럼 ‘통제불능’인 까닭은 최빈국인 데다 정부가 테러조직과 소수부족을 장악하지 못하는 등 치안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예멘 남동부 시밤은 2세기에 들어선 고대 성곽도시로 3세기에 하드라마우트왕국의 수도로 지정됐으며 16세기까지 교역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말린 흙벽돌로 쌓아올린 5층~16층 높이의 건축물 500여채와 5∼6m의 성벽이 자아내는 풍광 때문에 ‘사막의 맨해튼’으로 불리며 1982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 7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청장없는 국세청 벌써 두달

    한상률 전 청장의 퇴진으로 국세청장 자리가 빈 지 16일로 두 달을 맞는다. 허병익 차장이 청장직무 대행을 맡아 국세청을 이끌고는 있으나 국세청의 총수가 이처럼 오랜 기간 공석이 된 것은 유례가 없다. 한 전 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직후 본격화했던 차기 청장 인사검증 작업도 최근에는 시들해진 모습이다. 청와대 주변에선 한때 한 청장 후임으로 15명 안팎의 인사가 거명되면서 일부가 검증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의 세금 미납 사실이 드러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후보군 모두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종 결재서류에 오르는 데 실패했고, 이후로는 별다른 검증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세청 안팎에선 청장 대행을 맡고 있는 허 차장이 조만간 대행 꼬리표를 떼고 청장으로 승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지난 12일에는 일부 언론이 허병익 청장 내정설을 보도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즉각 부인하면서 해프닝이 되고 말았으나 마땅한 적임자가 없다는 ‘대안부재론’이 허 청장 내정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두 달 국세청을 무난하게 이끌어온 데다 강원 출신이어서 지난 9일 TK(대구·경북) 출신 강희락 경찰청장 취임으로 재연되고 있는 지역 편중 논란을 비켜갈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는 요소다. 다만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인 데다 국세청 내부 인물이라는 점이 변수로 남아 있다. 허 청장 대행 외에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과 허종구 조세심판원장 등도 여전히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주성-전군표-한상률로 이어지는 전임 세 청장의 불명예 퇴진으로 어느 때보다 국세청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는 점에서 제3의 외부 인사가 임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관계자도 15일 “세정개혁의 큰 틀에서 후임을 물색하고 있는 만큼 시간에 쫓겨 인선이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외부 인사 발탁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에 따라 차기 국세청장 인선은 현재 청와대에서 검토되고 있는 국세청 개혁 방안에 연계돼 이뤄질 전망이다. 이달 말 개혁안이 확정되면 청장 인선도 급류를 타겠지만 개혁안이 늦어진다면 허병익 대행 체제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세정에 관한 한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 허 국세청장 대행, 허용석 관세청장, 허종구 조세심판원장 등 네 명의 허씨로 이뤄진 ‘4허(許) 시대’가 계속되는 셈이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경제활성화 세제개편안] 땅·주식팔아 기업채무 갚으면 양도세 3년 유예

    [경제활성화 세제개편안] 땅·주식팔아 기업채무 갚으면 양도세 3년 유예

    경제위기로 기업과 금융기관의 어려움이 커지고 얼어 붙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자 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 이어 4월 국회를 겨냥해 또 다시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이 중 상당수는 정부·여당에서 그때그때 추진 방침을 공표해 왔던 것들이다.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다주택자 등 ‘있는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내용들이 여럿 포함돼 있어 정부는 이번 조치가 ‘감세(減稅)’로 비쳐질까 우려하는 눈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양도세 완화는 감세가 아니라 왜곡된 징벌적 세제를 바로잡는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15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은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 지원 ▲부동산시장 정상화 지원 ▲외환 유동성 확충 지원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나누기 지원 등 크게 네 가지 부문에서 이루어졌다. 정부는 부실기업이 금융기관 채무를 갚기 위해 부동산·주식 등을 매각할 경우 양도차익에 대해 법인세·양도소득세를 3년 거치 3년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해 주기로 했다. 비슷한 이유로 대주주가 기업에 자산을 증여할 때도 법인세를 감면해 준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업 양수도 및 주식교환에 대한 세제 지원안도 포함돼 있다. 모기업이 부실 자회사를 다른 기업에 양도하기 위해 자회사 채무를 인수하면 법인세를 깎아 준다. 은행 자본확충 펀드(SPC)도 지원한다. 은행 자본확충 펀드 이익에 대한 법인세 과세 이연을 허용하고, 은행 자본확충 펀드가 우선주를 매각할 경우 증권거래세를 면제한다.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의 폐지 외에 기업 또는 개인의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 과세도 일반 세율로 전환된다.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중과제도는 2005년 말 개정으로 도입돼 2007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개인의 비사업용 토지에는 부재지주 농지와 임야·나대지·잡종지 등 대부분 토지가 포함된다. 그동안 개인의 비사업용 토지에는 66%(부가세 포함)의 높은 세율이 적용돼 왔다. 법인이 비사업용 부동산을 팔 때에도 일반 법인세율(양도차익 2억원 이하 11%, 2억 초과분 22%)만 부과된다. 법인세율은 내년부터 각각 10%와 20%로 더 낮아진다. 그동안 법인은 비사업용 토지 양도 때 법인세와 양도세를 이중으로 부담했다. 양도 시점에 양도차익에 대해 30%를 무조건 양도세로 내는 한편 이듬해 순익에 전년도의 부동산 양도차익 전액을 더해 법인세를 부담했다.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 활성화 차원에서 임금을 삭감해 고용을 유지한 중소기업에 대해 임금 삭감분의 50%를 손비로 인정해 주기로 한 데 이어 해당 기업 근로자에게도 소득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삭감된 임금의 50%를 근로소득세를 계산할 때 소득 공제해 주는 것이다. 공제한도는 1000만원까지이며 올해부터 내년까지 적용된다. 임원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금이 감소한 만큼에 걸맞은 혜택을 줘서 잡 셰어링을 확대하고 서민층의 생활안정도 꾀하겠다는 취지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유통플러스]

    ●라테 속에 마시는 젤리인 에스프레소 커피젤이 들어 있는 카페라테 에스프레소&젤이 나왔다. 이미 제조된 젤리를 첨가하는 게 아니라 카페라테 안에서 커피젤리가 순간 겔로 변화되는 신공법을 적용했다. 창립 40주년을 맞은 매일유업이 12년 전 출시돼 지금까지 8억개가 팔린 카페라테를 업그레이드해 새롭게 내놓은 제품이다. 200㎖, 1400원. ●아모레퍼시픽 헤라에서 지복합성 및 민감성 피부용 선 메이트 에어라이트 SPF30 PA++를 새롭게 출시했다. 파우더를 바른 듯 매트한 뒷마무리가 특징으로 피부재생력을 키워 준다고 설명했다. 50㎖, 3만 5000원. ●랑콤이 남성용 화이트닝 에센스 겸용 로션 랑콤 맨 블랑 엑스퍼트 GN-화이트TM 제너레이팅 뉴화이트니스 스팟 이레이저를 출시했다. 랑콤은 남성의 피부는 여성보다 노화가 늦게 시작되지만 그 속도는 더 빠르다는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기미와 잡티를 없애 매끈하게 보이게 하는 화이트닝 제품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30㎖, 6만 5000원. ●면사랑이 100% 국내산 쌀 30%와 밀 70%로 만든 우리쌀 우리밀 소면·쫄면·수제비 3종을 출시했다. 칼슘과 DHA를 첨가해 어린이 급식용으로 좋다고 추천했다. (02)555-1436. ●오는 19일부터 뚜레쥬르·투썸플레이스·빕스·씨푸드오션·콜드스톤 등 CJ푸드빌의 9개 브랜드 어디에서나 포인트 적립과 사용이 가능한 CJ푸드빌 패밀리포인트 카드가 나온다. 브랜드별로 발급한 기존 멤버십 카드는 올해 9월까지 병행 사용할 수 있고, 이후부터 내년 2월까지는 포인트 사용만 가능하다. ●롯데마트는 오는 18일까지 아침의 계란·제주 독새기·해발 500미터 계란 등 15개 들이 계란 1팩을 팔 때마다 계란 1개씩을 적립해 푸드뱅크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한다. 다달이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뉴트로지나가 1초에 100번 진동해 장착된 클렌징 패드로 모공 속 노폐물과 각질을 제거하도록 한 진동 클렌저 뉴트로지나 웨이브를 내놓았다. 미국·유럽에 이어 아시아 시장 최초로 한국에 출시됐다. 2만 5000원. 딥클린 포밍 패드 리필은 30개 1만 250원. 080-023-1414.
  • 한국인 재판관 ICC 수장됐다

    한국인 재판관 ICC 수장됐다

    인종청소 등 반(反)인류범죄 및 전범을 단죄하는 세계 유일의 영구적 형사법원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장에 송상현 재판관이 11일 선출됐다. 동료 재판관들의 호선으로 선출된 송 신임 소장은 전임 필립 커시(캐나다)의 뒤를 이어 앞으로 3년 동안 국제형사재판소를 이끌게 된다. 파투마타 뎀벨레 디아라(말리), 한스페터 카울(독일) 부재판소장도 함께 선출됐다. 현재 107개국이 가입한 ICC는 구 유고연방과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등을 겪은 국제사회의 각성 속에 1998년 채택된 ‘로마협약’에 따라 2002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됐다. ICC는 범죄발생 지역이나 범죄인의 국적이 조약 가입국인 경우 자동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한다. ICC는 설립 이후 수단 다르푸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 등을 조사해 각각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 장 피에르 벰바 전 DRC 부통령 등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아르헨티나) 수석검사가 이끄는 검찰실 관련 이슈를 제외한 재판소 내 운영과 행정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송 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196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데 이어 1963년 사법고시(16회)까지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972년부터 모교에서 교수로도 활동해 왔으며, 국제거래법학회 회장, 한국 법학교수회장 등을 지냈다. ICC는 “동료 재판관들이 ICC 초기부터 활약해 온 신임 송 소장이 법원 운영, 형사소송에서의 ‘증거주의’ 등과 관련, 폭넓은 실무·학문적 경험을 고루 갖춘 점을 높이 평가해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재판소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는 “ICC 소장 선출은 우리나라 출신 재판관이 처음으로 국제재판소 소장이 된 것으로, 국제법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크게 높인 것”이라고 논평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해결사’ 김태균 4번타자 자리매김

    김태균(27·한화)이 숙적 일본을 상대로 결승 타점을 올리며 이승엽(요미우리)과 김동주(두산)를 잇는 한국 야구의 4번 타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김태균은 9일 일본과 WBC 아시아 1·2위 결정전에서 일본 선발 이와쿠마 히사시(라쿠텐)를 상대로 결승타를 뽑아내 한국의 1-0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쿠마는 경기에 앞서 “한국 타자 중 김태균을 가장 조심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김태균의 한 방으로 패전투수의 멍에를 쓰고 말았다. 5회 무사 1루에서도 김태균은 구원투수 마하라 다카히로(소프트뱅크)에게서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가르는 2루타를 뽑아내는 등 이날 4타수 2안타 1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아시아예선 4경기를 통틀어 12타수 5안타(.417) 1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이승엽의 뒤를 잇는 대표팀 4번 타자와 1루수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것. 동시에 3년 전 초대 WBC 중심 타선이었던 이승엽과 김동주가 빠지면서 제기됐던 대표팀의 거포 부재의 우려도 말끔히 씻어 냈다. 김태균은 지난 7일 한·일전에서도 0-3으로 뒤진 1회 2사 3루에서 일본의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를 상대로 좌월 초대형 2점포를 뿜어 냈었다. 일본에서도 이만한 대형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 히터’가 많지 않아 일본 스카우트의 시선이 올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김태균에 쏠렸다. 지난 시즌 홈런 31개로 ‘홈런왕’에 오른데 이어 WBC 아시아라운드 예선전에서도 폭발적인 화력 시위를 벌인 김태균이 16일부터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8강 본선에서 강국들을 상대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술집 여주인에 홀딱 빠져 3년동안 가족 모른체

    술집 여주인에 홀딱 빠져 3년동안 가족 모른체

    12일 상오 10시께 전(全)모여인(50·광주시 중흥동)은 뒷방을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 손(孫)씨(52)가 극약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뒹굴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전여인은 급히 남편을 병원으로 옮기던 중「택시」안에서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날 몇시간 뒤 광주지방 검찰청 검사장은 한통의 장문 편지를 받았다. 글씨며 문장이 엉망진창이었지만 그것이 대충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는 알아볼 수 있었다. 「H온천 공사할 때 술집이 현장 바로 옆이기 때문에 술거래를 하던 중 서로 눈이 맞아 몸이 닿게 된 후…」로 시작되는 이 유서는 손씨가 술집 여인을 사귀고, 또 어떻게 패가망신했고, 끝내는 「억울한 일을 당하니 생각다 못해 세상을 뜨기로 작심하여 이 유서를 쓴」다음 극약을 먹기까지의 경위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손씨는 광주지방에서 신용있고 실력있는 건축업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3개의 극장과 모 TV방송국 건물 등 그의 손에 의해 이룩된 고층건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중흥동에 있는 손씨의 자택은「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 는 말이 있지만 건축업자의 집이라고 전혀 믿을 수 없게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다. 말하자면 손씨는 이제 알거지가 되어 껍데기만 남은 것. 손씨가 첩살림을 차렸던 임모여인(45)을 알게 된 것은 H온천 공사를 시작한 69년 봄. H온천 근처에 술집이 있어서 그는 공사장 인부들을 위해 공사가 끝날 때까지 그 술집에서 단골로 술을 팔아주었다. 『나도 1년 동안이나 통 몰랐당게요. 외박하면 공사장 일이 바빠서 그런가보다 여겼지 누가 각시 생긴 줄 알았을 것이요? 하도 돈을 안 갖다 주길래 알고 보니 임(林)가란 여자한테 푹 빠져 거기다 처박아 넣드란 말이요』 전여인은 이 때문에 심장병을 앓게 되었다고 말한다. 손씨는 임여인과 「서로 눈이 맞아 몸이 닿게 된 후 큰집은 자연히 멀어지던 차 큰집서 눈치를 채고 집을 조사하자」딴 곳으로 옮겨 계속 늦바람을 피웠다. 광주시 월산동에 방을 얻고 식료품 가게를 하나 차려 주었던 것. 경찰에 의하면 임여인은 전남 해남에서 출생, 목포로 시집갔으나 결혼생활 2년을 못 채우고 이혼을 했다. 이때 위자료 1백만원을 받아 그걸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광주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5년 남짓. 이동안 광주 각지로 옮겨 다니며 술집을 경영했다. 임여인이 광주에서 소문난 존재로 알려지기는 3년 안팎. 재산과 이름이 있는 중년 남자들 여러명과 사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林)가는 한글도 전혀 못쓰는 사람인디 그런 여자가 무슨 수로 수많은 남자를 얽어 기둥뿌리까지 뽑았을 것이요. 임가 배후에는 임가를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어라우. 주인도 나중에는 그걸 알고 벌벌 떨드랑게요』 전여인의 말이다. 어쨌든 손씨는 임여인을 들어앉힌 뒤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거액의 대공사를 맡았으면서도 1원 한푼 집안으로 들여오지 않았다. 모두 5남2녀의 자녀를 둔 전여인으로선 기막힌 액운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번째 액운은 70년 봄. 월산(月山)동 가게 위치를 확인한 전여인은 4월 초순께 어느날 『각시질을 하려면 새끼들 입에 풀칠이나 해가며 하라』면서 가게의 물건 4만 5천여원 어치를 집으로 실어와 버렸다. 임여인은 고소장에서 이 당시 『칼을 들고 위협하며 도둑질해 갔다』고 밝히고 서광주(西光州) 경찰서에 김여인과 아들을 걸어 특수강도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장과는 달리 전여인은 『아들은 구경하고 나 혼자 실어 냈지요』라고 상반된 주장. 『가정불화이니 봐달라』는 손씨의 호소로 화해가 성립, 보호실에서 풀려나왔다는 것이 전여인의 말. 이토록 본처와 자식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는데도 손씨는 임여인에게 전혀 맥을 추지 못하고 물렁물렁 당하기만 했다. 『경찰서에서 나오는디 고(高)씨라는 형사가「잘못 걸렸구만. 저 여자는 옷 한 벌 남기지 않고 홀딱 껍데기를 벗겨야 떨어지는 계집」이라고 하드랑게요』 70년 5월, 손씨는 서울 A건설 주식회사의 하청공사를 맡아 영등포구에서 C회관을 세우게 됐다. 임여인도 뒤따라 올라와 손씨를 졸라 봉천(奉天)동에 30평 대지를 75만원에 매입, 23평짜리 주택을 세워 본격적인 살림을 차렸다. 이동안도 물론 손씨는 집에 생활비 한푼도 보내주지 않았고 이어서 두가지 대공사를 맡아 해냈지만 72년 3월까지 가족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금년 4월에 여동생이 시집 갈 때 내려왔다가 올라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시더구만요. 다시는 서울에 가시지 않겠다고 그래요』 아들 손모씨의 말. 지난 5월 초순, 손씨에게 빨리 상경하라고 수차 독촉 편지를 내던 임여인은 광주에 내려와 손씨가 다시는 서울에 올라갈 눈치가 없자 엉뚱하게 전여인과 그 아들을 특수강도 혐의로 다시 고소했다. 70년 6월 월산(月山)동 가게에서 물건을 실어낸 사건을 또 문제삼은 것. 광주경찰서 수사과는 1차 구속영장을 기각 당하고 두 번째 신청하여 마침내 전여인 모자를 구속해 버렸다. 지난 14일,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전여인 모자는 풀려나왔지만 두 번째의 고소사건으로 손씨는 충격을 받고 유서에다 「본처와 둘째 아들을 경찰서에다 가두어 놓고 보니 본인은 배경도 없고 임여인 가족들은 배경이 좋아서 이렇게 억울할 일을 당하니 세상을 뜨기로」결심했다고 항변한다. 뒤늦게 손씨는 자신의 기나긴 악몽을 깨우친 셈. 아들 손씨는 말한다. 『모두 좋습니다만 70년도에 이미 화해가 성립된 사건을 다시 고소한다고 구속하는 것은 무슨 법률인지 알 수 없어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원칙에 벗어난 것이 아닙니까? 아버님의 자살은 그러니까 강요된 자살이라 이겁니다. 배경 없이 약한 사람은 죽어야 합니까?』 이에 대해 광주서 수사과 방(方)모 순경은 『전에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나 임여인의 고소에 따라 수사를 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수사하겠다. 그 외에는 말하기 곤란하다』라고 대답했다. <광주에서 박안식(朴安植)·정일성(丁日聲)기자>[선데이서울 72년 5월 28일호 제5권 22호 통권 제 190호]
  • 회계감사보고서 “생존능력 의문”

    제너럴모터스(GM)가 프리패키지(pre package) 파산신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리패키지 파산은 회사가 파산을 신청하기 전 채권자들끼리 채무를 재조정하는 것으로, 파산 법원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실제 전날 AP통신 등 외신들은 “GM의 회계감사를 맡은 딜로이트 앤드 투시(D&T)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연례 사업보고서에서, GM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파산보호 신청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D&T는 이 보고서에서 “계속되는 영업 손실과 주주 손실, 현금 유동성 창출 능력의 부재 등을 점을 감안할 때 GM의 지속적 생존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소비자들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회사의 자동차 구매를 꺼릴 것이기 때문에 파산 보호 신청은 곧 GM의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이렇듯 파산 가능성이 계속 대두되자 일부 GM의 임원진들은 프리패키지 파산 카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WSJ은 GM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 “GM이 몇 개월간의 조사와 파산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결과 프리패키지 파산 신청을 할 경우 회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고 전했다. 프리패키지 파산을 통해 채무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가 이뤄지면 채권단이 회생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특히 GM이 채권단과 출자전환 합의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파산 용인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분석이다. 신문은 “GM이 프리패키지 파산에 나설 경우 60일 정도 혼란을 겪겠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고 채권단, 은퇴자 건강보험기금(VEBA), 노조 등이 협력하면 회생절차를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서 “파산 절차를 밟는 것이 현재 GM이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계획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스티븐 해리스 GM 대변인은 프리패키지 파산신청 가능성에 대해 “파산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염주영칼럼] 속도전과 지구전

    [염주영칼럼] 속도전과 지구전

    미국의 금융위기가 다시 도졌다. 이번에는 실물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달러당 200원 이상 올랐다. 장중에는 1600원선을 뚫기도 했다.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1998년 3월의 환율 수준이 1550원 선이다. 환율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와 다를 바 없다. 지난 1년 동안 원화는 일본의 엔화나 중국의 위안화 대비 70%, 미국의 달러화 대비 50%, 유럽연합(EU)의 유로화 대비로는 40% 이상 폭락했다. 왜 이럴까?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을 쌓아 두고도 시장은 여전히 외환위기의 악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외환시장에 짙게 드리운 공포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야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진단은 매우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외환위기 학습효과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환위기의 교훈이 경제주체들에게 과잉 학습된 나머지 시도 때도 없이 위기의식이 발동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경제위기가 한참 진행 중인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 안이한 설명이다. 다음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부재가 지적되곤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해 떠나는 것은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원론적인 설명이다. 신뢰가 없다면 애당초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외환시장의 이상폭등 현상이 미국의 금융위기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생긴 위기가 순식간에 전 세계,전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과 산업의 동반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 출범한 미국 오바마 정부를 비롯, 세계 각국이 재정확대 등의 수습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부터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위기의 성격이 단순한 금융사고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위기이자 도덕성의 위기라는 측면을 띠었기 때문이다. 즉 금융자본가들의 탐욕이 신자유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약탈적 금융시스템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감독부재의 허점을 타고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 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이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을 재건하고 도덕성의 위기를 치유하자면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미국 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론을 폈던 일부 학자들도 지금은 대부분 주장을 수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도 지구전을 펴야 한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오래간다는 전제 하에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외환시장 정책이다. 윤증현 경제팀이 들어선 이래 비교적 침착한 대응을 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엊그제 일부 시장개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환율을 몇십원 더 낮추는 데 힘을 소모할 때가 아니다. 경상수지 흑자 유지와 통화스와프 확대 등을 통해 가용 외환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펼치는 속도전이 불안하다.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조기 달성을 위해 밀어붙이기 식으로 대응한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책의 내용이 ‘성급한 대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염주영 이사대우·멀티미디어본부장 yeomjs@seoul.co.kr
  • 군경, 6·25때 ‘형무소 집단학살’ 576명 확인돼

    군경, 6·25때 ‘형무소 집단학살’ 576명 확인돼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학살을 당한 사실이 국가기관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안병욱)는 2일 “부산·마산·진주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민간인 등 최소 3400여명이 육군본부 정보국(CIC),헌병대,지역경찰,형무관(교도관)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됐다.”며 “희생자 중 576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가 이번에 조사한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은 한국전쟁 전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의 여파로 전국 형무소 20여곳에 수감 중이던 최소 2만여명의 재소자와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돼 암매장되거나 수장된 사건이다.형무소 재소자들에 대한 집단학살 의혹은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국가가 조사를 통해 그 실태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부산형무소에서는 1950년 7월26일부터 9월25일까지 3차례에 걸쳐 1500여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됐으며,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8명이다.이들은 부산 사하구 동매산과 해운대구 장산골짜기 등지에서 집단 사살됐으며,일부는 오륙도 인근 해상에서 산 채로 물에 빠뜨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마산형무소에서는 같은 해 7월 5일부터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최소 717명(신원확인 358명)이 총살되거나 마산 구산면 앞바다에 집단 수장됐고,진주형무소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최소 1200명(신원확인 70명)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이 집단 총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또 “부산·경남 지역 형무소에서 희생된 대다수의 재소자들은 정당한 법적절차 없이 살해됐다.”면서 “또 징역 3년 이하를 선고 받은 일부 기결수들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뒤 헌병대에 인계돼 총살됐다.”고 전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은 헌법이 규정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어떤 사건에 대하여 일단 판결이 내리고 그것이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를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 군법회의는 요식적인 행위였을 뿐 사실상 집단 학살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전시였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통치하고 있던 비전투·비교전 지역인 부산·경남 지역에서 단순히 남하하는 인민군에 동조할 것을 우려,형무소 재소자들과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것은 범죄행위”라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유족들에 대한 사과 ▲위령사업 지원 ▲민간인 희생 내용 공식간행물 반영 ▲인권교육 강화 등을 국가에 권고했다.진실화해위는 2006년 11월부터 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작했으며,현재 조사 중인 675건은 올해 안에 조사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4년 공들인 T-50 수출 결국 물거품

    한국우주항공(KAI)이 개발한 고등 훈련기 T-50을 아랍에미리트(UAE)에 판매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지식경제부는 26일 “UAE 측에서 차세대 훈련기로 이탈리아의 M-346을 도입하겠다고 최종 발표했다.”고 밝혔다. UAE는 2007년 11월 25억∼30억달러 규모의 차세대 훈련기 도입사업에 T-50과 M-346을 후보로 선정했다. 결국 2005년부터 공을 들인 T-50의 첫 수출은 물거품이 됐다. 국무총리와 산업자원부 장관, 공군참모총장 등은 UAE를 방문할 때마다 UAE 정부에 T-50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고, UAE 정부 관계자들은 방한 때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2006년 6월에는 UAE의 군 부총사령관인 모하메드 왕세자가 방한, 경남 사천 비행장에서 T-50 시뮬레이션에 참여한 뒤 T-50의 성능을 호평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07년 11월 T-50이 다른 기종들을 제치고 이탈리아 아에르마치사의 M-346과 함께 최종후보로 낙점되면서 계약성공의 꿈은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첫 수출의 길은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좌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치밀하지 못하고 미온적인 대처가 비판받고 있다. 이탈리아는 아프가니스탄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UAE에 군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UAE 군 고위층을 공략했다. 광범위한 산업협력 방안은 물론 관광객 증대를 위해 사막에 자동차경기인 포뮬러 원(F-1) 경기장 유치를 지원하겠다고 제안, 관광 수입 증대에 역점을 두고 있던 UAE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UAE측이 고등훈련기 선정 때 기종의 성능은 물론 해당 국가와의 산업협력 프로젝트도 중요한 고려 요소로 따지겠다고 밝혔지만 UAE의 이목을 끌 만한 산업협력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 실무차원에서만 ‘30개 프로젝트’라는 각종 협력 사업들을 제안했지만 UAE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UAE 정부가 요청한 인천∼아부다비 직항로 개설조차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모하메드 왕세자는 지난 1월 UAE를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나 “솔직히 말해 9개월 동안 기다렸는데 (한국 정부는) 산업협력 프로젝트와 관련해 아무런 답변이 없다.”며 정부의 무성의에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후 모하메드 왕세자가 2월 UAE에서 열리는 국제국방전시회 전까지 관계장관이 새 제안을 갖고 오라고 마지막 기회를 줬지만 일정상의 이유로 곧바로 당국자를 파견하지 않고 다음달 8일에나 담당 차관을 보낼 계획이었다. 정보 부재로 최종계약자 발표를 4월로 알고 느긋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경험을 교훈 삼아 싱가포르와 폴란드 등을 대상으로 고등훈련기 수출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9년 3月, ‘3色 로맨스 영화’ 스크린 점령

    2009년 3月, ‘3色 로맨스 영화’ 스크린 점령

    올해 3월, 극장가에 유독 로맨스 영화가 눈에 띈다. 지난 25일 ‘라스트 프로포즈’가 시사회를 통해 첫 테이프를 끊으면서 화려한 로맨스 영화의 시작을 알린데 이어 오는 3월12일 화이트 데이를 겨냥해 개봉하는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와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역시 봄날, 감수성을 자극하는 로맨스 영화로 손꼽히고 있다. #총 제작비 100억원, 볼록버스터 로맨스 ‘라스트 프로포즈’ 유위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덕화와 서기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아온 ‘라스트 프로포즈’는 세상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사랑만큼은 서툰 백만장자 샘(유덕화 분)과 평범하지만 언제나 당당한 클럽 댄서 밀란(서기 분)의 조건을 초월한 사랑을 담고 있다. 총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한 초대형 로맨스를 그린 이 영화는 실제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와 부인 ‘안젤라 렁’의 ‘세기의 로맨스’를 모티브로 만들어져 제작 초기부터 세간의 큰 관심을 끈 기대작이다. 중국에서 먼저 개봉한 ‘라스트 프로포즈’는 로맨스 영화 오프닝 최고 성적 기록, 1300만불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2009년 최고의 로맨스 영화로 등극했다. #다양한 사랑이야기 담은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사랑과 이별을 그린 시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원태연 감독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풍부한 멜로 감성 감독과 배우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희생적 사랑’ ‘외톨이 사랑’ ‘눈먼 사랑’ 등 각기 다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 내며 한동안 부재했던 정통 멜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영화배우 권상우가 결혼 후 처음 출연해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오는 3월12일 개봉한다. #유쾌 상쾌 통쾌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같은 날 개봉하는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은 뉴욕 최고의 연애 박사에게 결혼 한 달 전 찾아온 러브 태클을 그린 영화다. 잘 나가는 연애 박사이자 뉴욕 최고의 싱글 엠마(우마 서먼 분)가 ‘자신도 모르게 결혼 당한다’는 소재를 바탕으로 그의 피앙세 콜린 퍼스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게 그려져 색다른 로맨스를 선사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10년 전 처음 읽고 한눈에 반했다는 우마 서먼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 첫 도전장을 내밀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위부터 영화 ‘라스트 프로포즈’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스틸 컷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데스크 시각] 체육계 관치 사라져야 한다/김민수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체육계 관치 사라져야 한다/김민수 체육부장

    지난 연말연시 체육계는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4년마다 일제히 치러지는 경기단체장 선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여당 정치인들이 체육계에 첫발을 밀어넣기가 용이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단체장 교체기여서 군침을 흘리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이 뛰고 경기인들의 ‘밥그릇’과 직결된 탓에 경선은 과열됐고 혼탁했다.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구태는 여전했고 후유증 탓에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번 대한체육회 산하 54개 경기단체의 대의원 총회 결과, 30%인 17개 종목 단체장이 물갈이됐다. 이중 8개 단체는 경기인 출신을 선택해 눈길을 끈다. 축구·복싱·조정·보디빌딩·트라이애슬론 등이다. 여전히 정치인과 기업인이 득세한 점을 감안하면 경기인들이 선전했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인들의 선전은 각 단체의 사단법인화에 따른 재정적 안정과 무관하지 않다. 종전 단체장들은 예산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한체육회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자생이 가능한 상태다. 이번 선거에서 이목이 쏠린 곳은 지난 19일 치러진 대한체육회장 선거였다. 이연택 회장의 출마가 불확실한 가운데 무려 8명의 후보가 난립했고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대결 구도로 치달아서다. 체육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위원장을 겸해 상징적으로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린다. 54개 산하단체를 거느리고 1300여억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실권도 쥐고 있다. 이 자리를 거쳐간 인물은 여운형 신익희 이기붕 이철승 민관식 등 대부분 당대의 쟁쟁한 정치인이다. 사실상 정치인의 ‘전유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이 자리에 두산그룹 회장인 박용성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앉게 됐다. 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선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이후 25년 만의 기업인 수장이다. KOC 분리 여부를 놓고 벌인 이연택 회장 등과 정부의 힘겨루기는 체육회장 선거로 옮겨왔고, 결국 정부가 ‘관치(官治)’ 포기를 선언하면서 매듭지어졌다. 정부가 박 회장을 밀었기 때문에 발을 뺀 것이란 소리도 있다. 어쨌든 모양새는 나빴지만 정부로부터 ‘선거 불개입’을 이끌어낸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선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대 서종철 국방장관을 비롯해 이웅희 김기춘 홍재형 정대철씨 등 정치인과 관료 출신들이 줄지어 ‘낙하산’을 탔다. KBO는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추대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총재 선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유 이사장은 한 바퀴 돌아 총재에 오르는 꼴이 됐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의도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물론 정부가 살림살이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감독·관리 기관이라는 이유로 개입을 당연시한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일부 경기인들은 실세 정치인들을 내세워 집행부 장악을 노리기도 했다. 정치인과 정부가 나서야 예산을 더 끌어올 수 있다는 구태한 명분을 들었다. 정치인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돈 한푼 안 들이고 서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선거 직후 체육계는 주인의식 부재를 꼬집으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정치인 등에 ‘기생’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수익을 창출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면 경기인들은 영원히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도 재정 보조금을 들먹이며 체육계를 좌지우지하는 관행을 청산해야 할 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민수 체육부장 kimms@seoul.co.kr
  • ‘꽃남’ 김준 어린시절 ‘빛나는 외모’사진공개

    ‘꽃남’ 김준 어린시절 ‘빛나는 외모’사진공개

    ‘꽃남’F4 김준이 방송 최초로 집을 공개하면서 어린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김준은 MBC ‘오늘밤만 재워줘’의 최근녹화에서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첩을 공개했다. 어렸을 적부터 단연 빛나는 미모의 소유자였던 김준은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고. 김준의 사진첩을 보던 MC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김준의 올(?)누드 사진을 발견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MC들에게 김준은 “내가 아닌 것 같다.”며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 한편 그룹 티맥스 랩퍼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은 데뷔 초 공개방송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을 고백했다. 갓 데뷔한 신인이었던 티맥스는 공개방송의 스케줄을 잡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고. 김준은 “그 당시 매니저의 부재로 멤버들이 직접 짐을 들고 코디와 함께 공개방송장소에 가야 되는 상황이었다.”며 “그날따라 엄청난 폭우로 인해 비를 맞으며 힘겹게 장소까지 찾아갔지만 MR(음원)CD를 가져오지 않아서 방송을 못할 뻔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방송 관계자의 도움 덕분에 엔딩으로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가 오는 상황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 넘어지고 미끄러졌지만 현장의 분위기가 좋아 무사히 공연을 마치게 되었다.”며 “그러나 나중에 방송을 보니 통 편집이 됐다.”고 데뷔시절 고생담을 전했다. 김준의 어린 시절 모습과 색다른 면모가 낱낱이 공개되는 MBC ‘오늘 밤만 재워줘’는 27일 오후 11시 40분 방송된다. (사진제공 = MBC,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대통령님 저희 서민들 말 꼭 들어주세요”

    “대통령님 저희 서민들 말 꼭 들어주세요”

    25일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역대로 이 대통령만큼 다사다난한 1년을 보낸 대통령도 없을 듯하다.’강부자’ ‘고소영’ 등으로 대변되는 정책들은 서민들의 반감을 샀고,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서 촉발된 3개월간의 ‘촛불집회’는 국정 수행이 어려울만큼 파장을 불렸다.또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고,이 경제 난국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서도 여느 집권자와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의 ‘서민 감싸기’ 행보는 계속됐다.갖가지 ‘감성 코드’로 ‘서민 대통령화’ 하려는 목적도 다분히 녹아있었다. ‘대통령 목도리’의 가락시장 박부자(73) 할머니,췌장암에 걸린 노모를 보살피는 환경미화원 정준섭(46)씨 등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중심 인물이었다.1주년을 맞아 이들을 만나봤다. ●인사동 청각장애인 풀빵장수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풀빵을 파는 청각장애인 아주머니.지난 2006년 12월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이 민생 체험차 인사동에 들렀다가 풀빵을 직접 구워 화제됐었다.  인사동 한복판에 ‘이 대통령과 함께 찍힌 신문기사 사진’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는 그를 찾는 건 쉬웠지만 인터뷰하는 건 쉽지 않았다.필담으로 진행해야 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남편과 얘기하라.”고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수십 줄에 걸쳐 인터뷰 의도를 설명하는 글을 적으며 애원한 끝에 그는 결국 기자의 수첩에 짧은 글을 남기는 것으로 대화를 수락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대신 남편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며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대통령 덕분에 저희들은 잘 벌고 있어요.정말 감사하고 있어요.대통령 취임(1주년)을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남은 3년 동안 경제 잘 되시면 좋겠습니다.”  삐뚤빼뚤한 기자의 글씨 아래 남겨진 그의 비뚤배뚤한 답글이 자못 정겹다. ●마포 고깃집 사장 박순자씨  이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17일 ‘중소기업중앙회 임원 송년회’가 열리던 서울 마포의 한 고깃집을 깜짝 방문했다.  이 가게의 주인인 박순자(60)씨와는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박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오전 11시에는 부재중이었고,오후 5시에는 외출중이었다.그와는 오후 9시가 넘어서야 통화가 가능했다.식당일로 바쁠 것이라 예상되던 그는 의외로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많은 말을 해줬다.  박씨는 “식당에서 일할 한국 사람이 없다.”는 말로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세태를 꼬집었다. 그는 요즘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 했다.“한국 사람이 없으니 외국인을 쓰게 되죠.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짧은 가봐요.조금 일하면 외국 나갔다 와야 돼 불편합니다.일이 좀 능숙해지면 들어가고 할 만하면 들어가고….차라리 업주들이 ‘신원 확실하다’고 보증을 서면 체류기간을 연장해 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또 한국 사람 고용하고 그러면 (식당이라도) 임금을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는 부모들의 자식교육도 지적했다. “요즘은 유학이다 특목고다 그런 것만 강조하는 것 같다.신문방송에서 ‘자식 교육시키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나라가 잘 살려면 인력이 중요하다.”며 통화를 마쳤다. ●가락시장 박부자씨  이 대통령이 2008년 12월 초 가락시장을 방문했을 때 목도리를 벗어주자 복받친 울음을 터뜨렸던 박부자씨.최근 들어 박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전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처음 전화했을 당시 그는 통화도 힘들 정도로 목소리가 좋지않았다.이날 박씨는 “며칠 전부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하루는 쉬려고 한다.”며 “다음에 다시 전화하자.”고 말했다.  3일후 두 번째 통화에서도 박씨는 “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프다.”면서 “그래도 오늘은 시장에 나가려고 한다.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어려운 시장 상인들 만나러 와준 게 감사할 뿐이었다.”고 말문을 연 그는 “나같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냐.”고 할 말을 아끼려다 “대통령께서 경제를 살려주셨으면 좋겠다.”며 당부의 말을 잊지않았다.박씨는 이어 “언론에 나간 이후 주변에선 ‘장사 자리를 새로 내달라고 해라.’ ‘집을 사달라고 해라.’라고 말하지만,나 혼자 살 수는 없지 않느냐.요즘 얼마나 어려운데 다 같이 잘 살아야지···.”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종로구청 환경미화원 정준섭씨  이 대통령이 환경미화원 출신이란 건 잘 알려진 얘기다.지난 해 12월23일 청와대에 초청돼 이 대통령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했던 환경미화원 정준섭씨를 만났다.평일 오후 3시 일과가 끝난 뒤라 샤워를 말끔히 해 머리를 멋스럽게 빗어넘긴 정씨와 청와대 인근을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이 대통령의 편이었다.“모든 일에 대통령 탓만 하지 말았으면 한다.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이 정도 하는 것도 아주 잘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무얼 해달라고 바라기 전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순서”라며 모든 게 대통령 탓으로 보는 세태를 탔했다.  췌장암 말기의 노모 얘기 도중엔 “병원을 자주 가는데,입원실이 없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병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놓았다.이어 “우리 같은 서민들이 입원하게 되면 비싼 1인실에 먼저 들어갔다가 나중에 5~6인실로 옮기는 데 애초부터 비싸지 않은 병실로 갔으면 한다.”는 병원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눈빛에 힘이 실려있다.”면서 “주위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중심을 지키면서 휩쓸리지 말고 정책을 수행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3자녀 다둥이 김석태·엄계숙 부부  13명의 자녀를 둔 ‘다둥이 가족’으로 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던 엄계숙(45)씨는 전화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는 심정을 말했다.경북 구미에 살고 있는 엄씨는 “취임식 초청이 삶의 큰 기로가 됐다.애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행실을 똑바로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며 육아와 교육 문제에 대한 말을 많이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영어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선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더 힘들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단계 높은 수준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제도가 결코 나쁘지 않다는 뜻을 표현했다.그는 “영어 어린이집 등 돈이 더 많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우리 세대보다 일찍 영어를 접하게 한다는 생각은 좋은 것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맹수열기자 taiji@seoul.co.kr
  • [WBC 전력분석] 일본대표팀 내야 라인업 ‘수비+한방’

    [WBC 전력분석] 일본대표팀 내야 라인업 ‘수비+한방’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일본대표팀은 내야와 외야에서 독특한 특징이 있는 라인업이다. 외야라인이 정교한 타격과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로 구성됐다면 내야수들은 안정된 수비와 한방을 갖춘 선수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번 대회에 내야수로 출전할 선수는 총 6명. 그중 마츠나카 노부히코(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탈락으로 지명타자가 유력시 되는 무라타 슈이치(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제외하면 5명의 내야수들로 구성됐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 1루수 출전 유력 4년연속 30홈런 이상을 때려낸 오가사와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내야수중 한명이다. 2006년-2007년 2년연속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으며 양리그에서 MVP를 연속해서 받은 2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미스터 풀스윙’ 이란 닉네임처럼 빠른 배트 스피드가 일품인 선수다. 다소 타이밍이 늦었다 싶은 공도 특유의 손목힘으로 장타를 때려낼수 있는 능력이 있다. 소속팀 요미우리에서는 3루수로 출전하고 있고 있지만 니혼햄시절에는 1루가 원래 포지션이었다. 카타오카 야스유키(세이부 라이온스)- 2루수 출전 유력 세이부의 리드오프이자 작년시즌 퍼시픽리그 도루왕인 카타오카는 좌우 수비폭이 넓은 야수다. 마쓰이 카즈오의 미국진출 후 세이부의 7번을 물려받았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선수중 한명이다. 삼진을 잘 당하지 않을만큼 적극적인 타격이 돋보이며 주루 플레이 역시 항상 도루를 노리는 적극적인 성향을 가졌다. 이번 WBC에서는 하위타순으로 나설 전망인데 상위타선과의 연결고리는 물론 1점차 승부에서 그의 발을 조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무라 아키노리(템파베이)가 2루수 주전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을만큼 유동적인 포지션이다. 나카지마 히로유키(세이부 라이온스)- 유격수 출전 유력 카와사키 무네노리(소프트뱅크)와 함께 주전 유격수 후보 중 하나다. 소속팀 세이부에서 ‘키스톤 콤비’로 손발을 맞춰왔던 카타오카가 주전 2루수로 나선다면 나카지마의 유격수 출전은 확실하다. 세이부의 미래인 나카지마는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갖춘 근래에 보기 드문 대형유격수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참가했었다. 나카지마는 3년연속 퍼시픽리그 실책 1위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잔실수가 많은 편인데 하라감독이 공격력에 초첨을 맞춘다면 나카지마, 수비력에 무게를 둔다면 카와사키가 한-일전에 선발로 출전할듯 보인다. 이와무라 아키노리(템파베이 레이스)- 3루수 출전 유력 일본 야쿠르트 시절에는 3년연속(2004-44개, 2005년-30개, 2006년-32개) 30홈런 이상을 때려낼 정도로 거포 내야수였지만 2007년 메이저리그 템파베이로 이적한 이후에는 홈런(2007년-7개,2008년-6개)이 한자리수로 급감했다. 하지만 2007년 빅리그 첫해에 전체 3루수중 가장 높은 수비율(.998)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감 있는 수비 실력을 선보였다. 무라타도 같은 3루수지만 수비력이 떨어지는 특성상 이와무라가 주전 3루수로 나설것으로 전망된다. 이와무라는 2루수비도 가능하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유동적인 수비포메이션의 중심 선수로 활약할 가능성이 큰 선수다. 무라타 슈이치(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지명타자 유력 2년 연속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무라타는 소속팀에서는 3루가 자신의 주 포지션이다. 당초 4번과 지명타자 자리가 확실했던 마츠나카의 탈락으로 대타요원으로 분리됐던 무라타지만 지명타자 자리는 그의 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라타의 장점은 어느 볼카운트에서든지 자신의 스윙을 가져가는 우직함이 돋보일 정도로 큰스윙을 하는 타자다. 특히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흐르는 변화구나 공이 살짝만 가운데로 몰리면 여지없이 홈런으로 연결하는 배팅파워는 현역 일본선수중에는 최고라는 평가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가 극도의 부진으로 비판의 중심에 섰던 선수다. 하지만 당시에는 감기몸살로 인해 최악의 컨디션이란 점을 감안할때 이번대회에서 한국 투수들은 어느 볼카운트에서든지 그의 한방을 조심해야 한다. 한편 최종엔트리가 발표된 직후부터 라쿠텐 골든 이글스의 노무라 카츠야 감독은 연일 하라 감독을 비판하고 있다. 하라 감독이 이나바 아츠노리(니혼햄 파이터스)를 4번타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마츠나카와 호소카와 토오루(세이부 라이온스)를 대표팀에서 제외시킨 것에 따른 불만의 표시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마츠나카의 부재 그리고 뛰어난 투수리드를 인정받아온 호소카와의 탈락이 한-일전에서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韓킬러 와다가 탈락?…日 의외의 엔트리

    韓킬러 와다가 탈락?…日 의외의 엔트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 출전할 일본 대표팀 최종 명단이 확정됐다. 일본 대표팀은 22일 미야자키 선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평가전에서 13-1 강우 콜드게임승을 거둔 후 24일 호주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28명의 최종 엔트리를 확정했다. 이번 WBC 엔트리 발표는 다소 의외의 요소가 다분하다는 평가다. 1차 대표팀명단에 포함됐던 6명의 외야수들 중 단 한명의 탈락자없이 그대로 대표팀에 승선했음은 물론 지난 1회 대회때 4번타자로 맹활약을 펼친 마츠나카 노부히코(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예비엔트리 33명으로 대표팀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일본은 모두 5명의 선수를 탈락시켰다. 와다 츠요시- 마츠나카 노부히코(이상 소프트뱅크 호크스), 키시 타카유키 - 호소카와 토오루(이상 세이부 라이온스), 쿠리하라 켄타(히로시마 도요카프). 반면 요리우리 소속의 5명은 전원 대표팀 최종엔트리에 포함돼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2008년 일본시리즈 MVP인 세이부의 키시는 이번 대회에서 새롭게 선보일 공인구에 대한 부적응이 탈락의 큰 이유로 풀이된다. 좌우 구석구석을 찌르는 예리한 핀 포인트 제구력과 과감한 몸쪽 승부를 즐겨하며 미래의 ‘일본 에이스’로 각광받았던 그의 탈락은 대표팀 훈련때부터 예상됐던 일. 당초 팀 동료인 와쿠이 히데아키가 독특한 투구폼으로 인해 보크 남발의 우려로 대표팀 탈락이 유력했지만 키시가 그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쿠리하라는 그렇지 않아도 거포 내야수들이 즐비한 일본대표팀의 사정상 탈락할수 밖에 없었던 케이스다. 소속팀인 히로시마에서는 주전 3루수이자 4번타자를 맡고 있지만 아직은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라고는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의외의 탈락은 와다 츠요시다. 그동안 국제대회 중요 길목마다 한국의 발목을 잡았으면 물론 작년 베이징 올림픽때도 맹활약을 펼친 그의 탈락은 충격적일 정도다. 좌완 투수인 와다는 2003년 아시아 선수권대회(아테네 올림픽 예선겸)때 한국을 셧아웃 시켰음은 물론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에서도 이대호에게 홈런을 허용하기 전까지 호투를 펼쳤던 ‘한국 킬러’였던 선수다. 1회 대회였던 지난 2006년 WBC에서 일본의 4번타자였던 마츠나카는 고질적인 잔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작년시즌 25개(리그 5위)의 홈런을 쳐내며 건재함을 과시하긴 했지만 그의 나이대(1973년생)를 감안하면 하향세가 두드러지는 최근의 활약이 미덥지 못했다. 일본 대표팀은 마츠나카의 탈락으로 인해 1루수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지명타자는 작년시즌 센트럴리그 홈런왕(46개)인 무라타 슈이치(요코하마)가 유력할것으로 전망된다. 세이부의 수비형 포수인 호소카와의 탈락도 의외다.현재 일본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호소카와가 주전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정도로 그의 ‘인사이드 워크’ 능력을 높이사는 전문가들이 많다. 단기전인 국제대회에서는 공격이 뛰어난 포수보다는 박빙의 승부처에서 투수의 리드를 원사이드하게 이끌 포수가 필요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08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세이부는 젊은 투수들이 주축이 됐던 경험 부재를 호소카와의 리드가 빛을 발해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초 외야라인에서 탈락이 유력시 됐던 카메이 요시유키(요미우리)의 최종엔트리 발탁도 납득하기 힘들다. 좌타자 일색인 대표팀 타선, 더군다나 우치카와 세이치(요코하마)를 제외하곤 모두 좌타자로 구성된 외야수들인지라 카메이의 탈락이 유력시 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한점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아베 신노스케-우츠미 테츠야-야마구치 테츠야는 물론 카메이까지 포함된 요미우리 출신 대표팀 명단이다. 요미우리 감독인 하라의 의중이 반영됐는지 아니면 일본 역시 학연 지연에서 자유롭지 못한것인지 의문시된다. 선수층이 두껍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한국전에 강점을 보였던 선수들이 탈락한 점은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편 구로다 히로키(다저스)를 대신해 예비명단에 포함됐었던 한신의 이와타 미노루가 투수 엔트리에 최종선발 됐다. 작년시즌 10승을 거둔 이와타는 당뇨로 인해 인슐린을 투여하며 경기를 치룰정도로 근성과 투지가 돋보이는 선수인데 이번 WBC에서는 중간 계투로써 그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화마당] 문화로 들여다본 국회의사당/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문화마당] 문화로 들여다본 국회의사당/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독일 국회의사당은 베를린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가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평일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나긴 줄을 만들어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또한 의사당 앞의 잔디 광장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데어 라이히스타크(Der Reichstag)’라는 이름을 가진 이 국회의사당은 19세기에 제국의회로 세워진 건물이다. 통일 후 수도를 다시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1993년에 개조하여 통독 국회의사당으로 부활시켰다. 이 건물의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옥상에 있는 거대한 채광 돔인데, 이곳에는 하늘로 치솟듯이 뻗어 있는 나선형 경사로가 있어, 시민들은 이 경사로를 따라 산책하면서 베를린의 환상적인 전경과 스카이라인을 만끽할 수 있다. 반대로 도심 어디서든 국회 돔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베를린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이렇게 누구나 자유롭게 즐기는 이 돔의 바로 아래에는 놀랍게도 본회의장이 위치하고 있다. 본회의장에서는 이 돔을 통해 햇빛을 공급받으며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고, 시민들은 상부에서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본회의장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투명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독일 의회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디자인적 요소이다. 즉 안과 밖을 통하게 하는 투명성을 통해 내부에 있는 국회는 외부의 시민을 염두에 두고 외부에 있는 국민은 내부의 국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투명성은 서독의 구 의회건물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독일의 스타 건축가 귄터 베니슈의 설계로 1992년 본에 세워진 이 건물은 사면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붕까지도 투명유리로 되어 있다. 현대건축에서 나타나는 이런 극대한의 투명성 덕분에 세계적 관광명소로 부상하였다. 당시에는 아직 독일사회체제 전복을 위해 요인 암살과 테러를 일삼던 독일 적군파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러한 투명 국회의사당의 건축은 대단한 용기의 발로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의회민주주의를 보여주는 문화적 사건이었다. 또한 국회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이 국회를 감시하고 관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건축문화적 표현이었다. 최근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들이 발견돼 화제이다. 그는 생각보다 밀실정치의 대가였던 것 같다. 불행히도 우리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면 어쩐지 이런 ‘밀실정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유신말기인 1975년에 준공된 건물이라 그런지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또한 우리 의사당도 돔이 있으나 채광창은 미미하고 측면도 개방감이 없어 외부와 단절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독재 정권 때나 보던 국회 내 폭력사태, 외유성 골프, 제 식구 감싸기 등이 초유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것 같아 더욱 우려된다. 친 시민적이지 못한 것은 국회 외부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사면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일반 시민을 위한 문화 공원이나 광장 운운하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이기만 하다. 심지어 국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검문도 통과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국민과 국회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것들이 쌓여 소통의 부재가 심해지는 것이다. 흔히 건축물은 그 주인의 얼굴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나라의 얼굴이고 국회건물은 이를 드러내는 결과물이다. 시민과 국회의 의식이 성장하고 의회민주주의가 꽃피게 될 때 우리 국회건물도 투명성을 뽐낼 날이 올 것이다. 이때에는 위압적인 열주가 사라지고 햇빛이 가득한 본회의장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미국이나 독일처럼 의회 앞마당이 시민이 즐기는 곳으로 변화할 것이다. 21세기 문화시대에 걸맞은 시민과 하나 되는 국회의사당의 변모를 기대해 본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부 교수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최종태 조각가 병 중에도 남 배려한 휴머니스트 김수환 추기경님을 처음 만난 것이 40년 전인 69년 말입니다. 나는 이화여대 가톨릭학생회의 지도교수였는데, 학생들의 일부 행사가 관행에서 벗어났습니다. 당황해 하는데, 행사장인 이화여대 중강당에 추기경님이 장익 신부님과 함께 행사 5분 전에 나타났습니다. 모든 염려가 물안개처럼 사라지고 행사는 잘 마무리됐습니다. 그 때 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 분만 만나면 모든 것을 풀 수 있겠다!’ 이후 열 살 위 큰 형님하고 노는 것처럼 추기경님이 그냥 좋았습니다. 그 분이 서울교구장직을 놓으시고 혜화동에 계실 때입니다. 동서남북 이야기가 번지다가 문득 마음 비우는 데로 이어졌습니다. 마음 비우는 일이 잘 안되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나도 그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죽어야 돼.” 하시고 또 “(사람이 죽은 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15분이 지나야 돼.” 그래서 모처럼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그 시절의 비서 수녀님이 오라 해서 여의도성모병원에 갔습니다. 추기경님은 옷을 깨끗이 입고 반듯이 앉아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30분 내내 방문객을 즐겁게 해 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며칠 전 아침 미사를 빠뜨렸다고 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인 즉 ‘한국의 추기경께서 늦잠 자다가 아침미사를 빠뜨렸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실이 폭소판이 됐는데 추기경께서 내게 속삭이는 말씀이 “밖에 나가서는 얘기하지 마!” 하십니다. 그래서 “말로가 아니라 내가 만천하에다 글로 쓸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서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저 분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그러셨구나 싶어서 가슴이 울컥하였습니다. 인천 소래의 사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피정의 집 바깥 산에 14처 조각을 설치할 때입니다. 현장에는 전날 오신 추기경께서 나오셨습니다. ‘예수 사형선고를 받으심’ 제1처의 예수님의 이마에 월계수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추기경님이 돌작품을 꼼꼼히 보고 계시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이마에 원래는 가시관을 만들었는데 어쩐지 마음에 안 들어 지우고 월계수 가지를 붙였습니다. 혹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추기경님 말씀이 “아니다. 이 사형수에게는 이미 승리가 예고된 집행이기 때문에 승리의 월계관을 미리 붙인들 무어가 잘못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용기를 얻어서 나는 한국의 교회미술 개척의 탄탄대로를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고치라고 하셨다면 오늘의 최종태는 있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누가 있어 세상에다 그 큰 사랑을 또 쏟으실까요. 파도를 잠재운 큰 강물 같은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의 어깨에는 너무도 큰 짐이 실려 있었습니다. 다 벗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 추기경 구명운동으로 사형 면한 양동화씨 “억울한 사람들의 든든한 성벽” “엄혹했던 시절, 추기경님은 스스로 고난을 감내하는 길을 택함으로써 큰 어른의 표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양동화(51)씨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어렸다. 1986년 그가 전두환 정권 최대의 간첩조작사건인 ‘구미(歐美)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그에게 견진성사(堅振聖事·가톨릭 교회의 7성사 가운데 세례성사 다음에 받는 의식)를 주러 온 것을 계기로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펼침으로써 1988년 무기징역 감형, 1998년에는 광복절 특사로 나올 수 있게 도와 준 이가 김 추기경이었다. 양씨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김수환 추기경은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이 기대는 곳,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가 지친 몸을 의탁하는 곳이었다. 양씨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직후인 1989년부터 출소 전까지 김 추기경과 12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모든 내용이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보고돼 자세한 얘기는 쓰지 못했다. “고생하고 있으니 좋은 일 있을 거다. 고통은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이다.”가 전부였다. 양씨는 “그 말을 거듭 새기며 수감 생활을 견뎠다.”고 회고했다. 편지를 주고 받다 보니 10년간 양씨의 옥바라지를 해온 연인 민연자씨에 대해서도 김 추기경은 알고 있었다. 1998년 양씨가 출소한 직후 찾아간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다짜고짜 “결혼은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었다. “이제 해야죠.”란 대답에 추기경은 “주례는?” 했다. 조심스레 부탁을 하니 추기경은 기다렸다는 듯 “날짜를 잡아 봐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 추기경은 양씨의 결혼식 주례까지 자청했다. 출소 4개월 뒤 양씨는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16일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들은 양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은연 중에 추기경님은 오래 사실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생전에 추기경님과 ‘인중이 길어 장수하실 것’이라는 농담도 주고 받았습니다.” 18일 명동성당을 찾아 김 추기경의 시신을 보고서야 양씨는 가슴 속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것을 느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날 빈소를 방문하는 것을 보며 김 추기경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양씨는 “추기경님은 그동안의 고난을 피할 길이 있으셨는 데도 온몸으로 묵묵히 받아 내셨다. 그분이 오래 앓아 오신 불면증은 그분의 남모를 고통의 방증”이라면서 “그래서 많은 분들이 추기경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부재(不在)를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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