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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향과 몽룡 거닐었던… 남원의 밤, 그대가 떠올랐다

    춘향과 몽룡 거닐었던… 남원의 밤, 그대가 떠올랐다

    춘향전·만복사저포기·변강쇠 등다양한 사랑 이야기 전해 내려와 달의 여신 사는 ‘월궁’ 빗댄 광한루신선 세계관과 천상 우주관 표현한국의 4대 누각으로 상찬하기도 국내 최다 260편 시 남긴 김삼의당작은 시비 하나만 남아 안타까워전북 남원은 사랑의 도시다. 대한민국 사랑 이야기의 대표작이라 할 춘향전이 남원에서 탄생했다. 산 사람과 죽은 이의 사랑을 그린 고전소설 ‘만복사저포기’나 김삼의당과 담락당 하립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남원이 무대다. 다소 부풀려진 ‘혐의’는 있지만 변강쇠와 옹녀의 끈적한 로맨스가 담긴 곳도 남원에 있다. 지리산 자락의 천년송마저 암수가 짝을 이루고 있으니 남원은 그야말로 사랑이 꽃피는 고을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남원에 핑크빛 역사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정유재란, 동학혁명 등 도시 곳곳에 고난의 역사도 새겨져 있다. 남원의 온전한 모습은 이런 이야기들과 함께할 때라야 비로소 완성된다. 남원 하면 광한루원(廣寒樓苑, 명승)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장소다. 흔히 ‘광한루’라 알려졌지만 광한루(보물)는 여러 건물 중 하나이고,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은 광한루원이다. 낮의 광한루원은 꽤 익숙하다. 실제 가 본 이도 많을 테고, 드라마나 영화 등 각종 매체를 통해서도 숱하게 접했을 터다. 밤 풍경은 또 다르다. 무척 낭만적이다. 광한루가 서울의 경회루처럼 거대했거나 정원의 꾸밈새가 창덕궁 낙선재처럼 웅숭깊었다면 이런 느낌은 덜했을 것이다. 그리 넓지도, 비좁지도 않은 공간에 뿌리 깊은 나무들과 세월의 켜가 잔뜩 쌓인 돌다리,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은은한 경관조명 아래 어우러져 있다. 작고 아름다운 연못은 이런 풍경들을 고스란히 비춰 내고 있다. 목석같은 이라도 이런 풍경 속에서라면 로맨틱한 감성에 빠지지 싶다. 오후 6시 이후엔 입장료(어른 3000원)와 주차비를 받지 않는다. 이런 풍경이 공짜라니, 횡재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주변의 숱한 추어탕 맛집에서 다소 이른 저녁을 먹고 밤마실 하듯 광한루원을 설렁설렁 돌아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문화재청 누리집에 따르면 광한루원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그러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인지가 달의 여신 항아가 산다는 월궁(月宮)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 빗대 광한루라 부르며 이름이 굳어졌다. 문화재청에선 광한루원을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에 월궁 같은 광한루를 짓고, 연못 가운데엔 삼신산(三神山)인 봉래·방장·영주섬을 조성했다. 연못 한편엔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도 놓았다. 남원의 호사가들은 광한루를 경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북한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한국 4대 누각이라고 상찬하기도 한다. 규모나 외형 등을 제외하고 복원 시점(1639년)으로만 따지면 광한루가 다른 누각들보다 훨씬 오래된 건 분명하다. 이런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춘향전이 태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춘향전의 저자는 ‘공식적으로’ 미상이다. 한데 1999년 한 대학교수가 “이몽룡의 모델은 경북 봉화의 성이성(成以性·1595~1664)이며 춘향전은 팩트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 소설의 효시”라는 주장을 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는 춘향전의 작가가 성이성의 글공부 선생이었던 조경남(1570~1641)이라고도 했다.실제 성이성의 인생 여정은 춘향전 속 이몽룡을 빼닮았다<서울신문 2019년 10월 4일자 33면>.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온 것이나 암행어사로 활약하며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로 시작되는 한시를 지은 것 등이 모두 기록이 전하는 사실(史實)이다. 여기서 초점은 성이성과 춘향의 일화다. 성이성은 두 번 호남 지역 암행어사를 지내며 딱 한 번 ‘그때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일기를 토대로 후손들이 펴낸 ‘계서선생일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소년 시절 일을 생각하며 밤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소년 시절 일’의 정체가 뭘까. 무슨 사연이 그를 전전반측의 밤으로 이끌었을까. 그는 어사가 돼 첫 번째로 남원을 찾았던 그날 밤 스승이었던 조경남과 밤새 정담을 나눴다고 했다. ‘정담’의 내용은 전하지 않지만 조경남이 이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춘향전을 썼다는 것이 ‘이몽룡=성이성’설의 핵심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경남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만복사저포기는 조선 초 김시습이 지은 한문 소설이다. 남원에 사는 양생이 만복사에서 만난 여인의 영혼과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까지 맺는다는 얼개다. 소설의 모태가 된 만복사는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됐고, 현재는 절터와 오층석탑, 석조대좌, 당간지주, 석조여래입상(이상 보물) 등 몇 점의 문화재만 남아 있다. 만복사지 주변의 마을 담장엔 이 이야기를 토대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이번 남원 여정에서 가장 관심을 뒀던 곳은 사실 향교동 유천마을이다. 김삼의당(1769~1823)과 담락당 하립(1769~1830)의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마을이다. 김삼의당과 하립은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둘은 18세 되던 해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립은 과거에 합격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당시 세태에 따라 한양으로 떠나 오랜 시간 공부에만 매진했고, 김삼의당은 그런 남편을 위해 남원에 머물며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그를 조선의 전형적인 여성상으로 추켜세우는 이도 있다. 한데 김삼의당은 그런 수준에 머물 여성은 아닌 듯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260여편의 시를 남겼다. 유실된 것을 제하고 그렇다.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도 뛰어나다. 그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과거시험 자금을 마련했다. 가난 탓에 33세 되던 해엔 전북 진안의 산골로 쫓기듯 옮겨가야 했다. 그의 시는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그는 가난을 구실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집안일을 핑계로 자아실현을 멈추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유천마을에 남은 건 벽화 몇 점과 작은 시비 하나가 고작이다. 남원의 명소 교룡산성이 마을 인근에 있지 않았다면 찾아가 보시라 권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나마 이웃한 진안군에서 김삼의당과 하립을 기리는 ‘명려각’을 세워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이다.광한루원을 나와 승월교를 건너면 남원관광단지다. 춘향테마파크와 놀이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전망대에서 커피 한잔 홀짝대며 남원 시내를 굽어볼 수도 있다. 최근 ‘남원에어레일’, ‘어사와이어’ 등의 시설도 들어섰다. 시와 운영업체 간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일시 개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원에어레일은 길이 약 3㎞의 모노레일이다. 11m 남짓한 높이의 고공 레일을 따라 남원관광단지에서 김병종미술관을 오간다. 어사와이어는 두 가지 코스로 구성된 집라인이다. 현재는 높이 78m의 춘향타워에서 출발해 남원 도심을 가로질러 광한루원까지 가는 910m짜리 프리미엄 코스만 운영 중이다.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하는 곳은 백장암계곡 초입의 변강쇠백장공원이다. 백장암계곡은 조선 팔도를 떠돌던 변강쇠와 옹녀가 찾아와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 정착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계곡이다. 계곡 안쪽으로 옹녀탕, 음양바위 등의 볼거리가 있다. 백장공원은 계곡 초입에 조성된 작은 공원이다. 팔도의 장승, 변강쇠와 옹녀 조형물 등이 조성돼 있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19세기 한국/우석대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19세기 한국/우석대 명예교수

    영국 정치인 조지 커즌은 1893년 조선을 방문한 후 조선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있다고 확신했다. 영국인들은 조선 정부의 실정(失政)에 경악했다. 조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잘못 통치되고 있는 나라’로 보였고 ‘웃음거리 왕국’이었다. 영국 외교관이나 여행자들 모두 조선 정부와 지배층의 부패와 착취를 언급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관리는 습관적으로 수탈과 횡령을 자행했고, 그 부패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국왕이 있다고 봤다. 조선 국왕과 지배층에서 공공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만 골몰했다. 영국인들은 개인의 이익과 가문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 조선의 지배 엘리트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원칙이라고 평가했다. 시민이 주축이 되는 근대 국가가 성립하지 못한 전근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었다. 조선 정부의 무능과 지배층의 파벌 싸움에 실망한 영국인들은 조선인이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하고 조선을 일본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주일 영국 공사 어니스트 새토의 눈에 고종은 근대적 통치자로서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로 비쳤다. 그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은 조선 정부의 허약함과 부패·분열에 의해 조장됐다’고 판단했다. 그는 튀르키예가 ‘유럽의 환자’라면 한국은 ‘동아시아의 환자’라고 말했다. 주한 영국 공사로 서울에서 근무(1896~1905)한 존 조던은 처음 부임했을 때 독립협회의 개혁운동에 좋은 인상을 받아 ‘서울이 프랑스혁명에서 파리가 한 역할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곧 실망한다. 조던은 고종을 혹독하게 평가했다. ‘황제는 정말로 희망이 없다. 조선 궁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교하면 로마가 불에 탈 때 네로가 현악기를 연주한 것은 차라리 위엄 있는 행동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부패하고 억압적인 체제의 희생양은 결국 국민이었다. 19세기 말의 저명한 여성 여행가인 이저벨라 버드 비숍은 정직한 정부에 의해 산업이 진흥되고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조선 사람도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평가했다. 국민의 우수한 자질이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는 것이다.
  • 커피·포도주·국수… 천년의 예향 강릉, 올가을 맛있게 함께해요

    커피·포도주·국수… 천년의 예향 강릉, 올가을 맛있게 함께해요

    “커피, 와인, 누들…. 멋과 맛과 향이 어우러진 강릉의 가을축제에 초대합니다.” ‘예향의 고장’ 강원 강릉시가 테마 있는 가을축제를 잇따라 펼친다. 전통문화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문화재야행부터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커피·와인·누들축제까지 다양하게 열린다. 천년 문화가 깃들어 있고 천혜의 자연자원을 간직한 강릉을 국내 최고 문화와 테마축제가 융합한 고장으로 가꾸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자유롭지 못했던 관광 문화를 다시 살려 ‘세계 100대 관광도시 강릉’을 만들겠다는 뜻도 있다. 서울신문은 8일 김홍규(60) 강릉시장을 만나 풍성한 가을축제와 문화관광 인프라 조성에 대한 포부를 들었다. “원석에 머문 강릉의 문화와 관광을 가공해 보석으로 만들겠습니다.” 김 시장은 관광 인프라 조성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강릉의 우수한 문화관광 자원을 융합해 새로운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고, 관광 수용체계를 개선해 사계절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시를 만들 작정이다. 김 시장은 “강릉에는 돌멩이 하나, 이끼 한 줌, 이름 없는 당간지주에도 천년의 문화가 깃들어 있고 천혜의 자연자원도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며 “대형 숙박시설과 골프장, 곤돌라 등 관광객이 선호하는 관광시설을 늘려 단순히 스쳐 가는 관광지가 아닌 함께 즐기는 장기체류형 관광 명소로 강릉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주 4일 근무제에 대비한 워케이션지원센터 설립, 올림픽 유산과 연계한 메타버스 관광산업 육성, 강릉단오제의 전 지역 확산을 통한 천년 전통축제 육성, 커피축제 등 테마 확대 전환을 통한 발전 등을 이끌어 낼 계획이다. 당장 추석 이후 올가을 대규모 테마축제를 열어 강릉을 알릴 예정이다. 문화재야행부터 커피축제, 와인축제, 누들축제를 차례로 열어 관광객을 맞는다. 관광객 5000만 시대를 목표로 사계절 머무르고 즐길 수 있는 관광도시로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축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강릉시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강릉 관광산업과 지역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찾겠다는 전략이다.●문화재야행 강릉문화재야행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사흘간 강릉대도호부관아를 중심으로 서부시장 일대에서 열 번째로 펼쳐진다. 38개 프로그램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전통문화 공연부터 버스킹, 체험, 먹거리 장터까지 오감이 즐거운 행사가 주축이다. 첫날 강릉대도호부사 부임행차 거리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수문장 교대식, 강릉의 대표적 무형문화재 공연을 선보인다. 방짜·자수 등 강릉 대표 장인들의 작품 전시를 통해 강릉 지역 전통문화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드론 라이트쇼·미디어파사드·빛의 터널 등 역사, 문화예술, 과학문화가 융합된 이색 야경도 장관이다. 서부주막, 저잣거리, 주변 상권과 연계한 쿠폰 할인 이벤트 반짝야행도 운영된다. 강릉문화재야행은 2017년과 2019년, 지난해 전국 최우수 야행으로 선정됐다.●커피축제 14회째를 맞는 ‘강릉커피축제’는 다음달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강릉올림픽파크 강릉아레나에서 열린다. 친환경 축제로 관람객 모두가 개인 텀블러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축제장에 텀블러를 가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하면 플라이강원 국내·국제선 항공권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마련한다. ‘100인(人)100미(味) 바리스타 핸드드립 퍼포먼스’는 코로나19 재확산 방지를 위해 스크린을 활용해 온·오프라인으로 추진한다. 커피올림픽 ‘국제 브루어스 컵 챔피언십’에 출전할 한국 국가대표 바리스타를 선발하는 ‘코리아 브루어스 컵 챔피언십’도 열린다. 커피인들의 네트워크 파티 ‘카페인’(cafe人) 행사도 다음달 9일 저녁 명주예술마당에 마련된다.●와인축제 강릉와인축제는 11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월화거리 일대에서 개최된다. 강릉 지역에서 급성장하는 와인산업을 육성해 관광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처음 연다. 와인을 대중화하고 강릉이 와인을 소비하기 좋은 도시라는 것을 알리는 데 초점을 뒀다. 축제 기간 세 차례 ‘선셋와인아워’를 진행한다. 전통시장 먹거리와 와인을 컬래버한 행사로, 100명을 예약받는다. 강릉 지역 주류업체와 해외 와인유통사, 강원도 내 와이너리가 참가해 시음·홍보 행사를 펼치며, 와인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터도 운영된다. 와인과 관련된 사연이 있는 관람객을 선정해 와인과 지역 호텔 숙박권을 제공하는 숙박 패키지가 마련되고,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논알콜 와인제작 클래스도 운영될 예정이다.●누들축제 강릉누들축제는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월화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강릉이 장칼국수와 막국수, 짬뽕, 옹심이칼국수 등 면 요리를 사랑하고, 면 요리 맛집을 많이 보유한 고장임을 알린다. 행사는 인기 있는 면 요리의 반죽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을 한자리에서 퍼포먼스로 즐길 수 있는 ‘강릉특선 누들요리 쿠킹쇼’를 비롯해 유명 셰프가 버스킹 공연에 맞춰 요리한 음식을 시식하는 라이브쿠킹쇼 등이 펼쳐진다. 다양한 누들 요리대회와 면 뽑기대회, 오픈 쿠킹 클래스 등이 준비된다. 관람객이 누들로드를 탐방하는 누들로드 스탬프투어, 강릉 특선 요리 및 농특산품 판매도 마련된다. 김 시장은 “풍성한 가을축제들을 시작으로 강릉을 널리 알리고, 문화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조폭 같은 러 “한국, 유가상한제 동참시 심각한 부정적 결과 직면할 것”

    조폭 같은 러 “한국, 유가상한제 동참시 심각한 부정적 결과 직면할 것”

    “서울 잘 알아…韓, 불필요한 문제 만들지 마라”미 주도 러시아산 원유가격상한제 불참 압박“북한 요청하면 원유·석유제품 공급 재개”러, 우크라 지지 한국 비우호국 지정 제재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에 한국이 동참할 경우 한국 경제가 심각하게 부정적인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문제를 만들지 말라고 러시아 외무부 고위 당국자가 7일(현지시간) 경고했다. 원유 등 에너지원을 사실상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의 최대 약점을 무기로 한국 경제가 치명타를 입도록 손보겠다는 조직폭력배식 엄포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는 자신의 우방국인 북한에 대해서는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유 등을 원한다면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우린 손해보며 원유 공급 안해”“한국, 훨씬 비싼 가격에 원유사게 될 것” 남·북한과 중국, 몽골 등을 담당하는 러시아 외무부 제1아주국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국장은 이날 관영 스푸트니크 통신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이런 계획에 동참한다면 주로 한국 경제 스스로에 대한 심각한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워싱턴이 러시아 원유에 대한 ‘구매자 카르텔’에 서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에 대해 알고 있다”며 이러한 ‘구매자 카르텔’이 ‘미국의 계획대로라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노비예프 국장은 “우리나라는 손해를 보면서 원유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한국 파트너들은 더 싸지 않은, 더 비싼 가격에 원유를 사게 될 것이고, 이건 훨씬 비싼 가격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서울이 이를 이해하고 자신을 위해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만약 한국이 추가로 긴장 고조시키면더 금융제재 강화…아직은 최악 아냐” 지노비예프 국장은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에 대한 러시아 대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러시아는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해 두고 있다. 그는 “현 단계에서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행동을 하는 한국에 대해 취해지고 있는 (러시아의) 금융 조치는 충분하며 비례적인 것으로 본다”면서 “한국 측이 추가로 긴장을 고조시키면 조치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만 “우리는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부정적 시나리오에 따른 사태 전개를 피하고, 미국에 의해 강요된 제재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라면서 현 단계의 한·러 관계가 최악 상황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장호진 신임 주러 한국 대사도 러시아 도착 후 실질적 협력 강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상기시켰다. 신임 장 대사는 지난달 31일 모스크바에 부임했다.러, 대북제재 중인 北엔 원유 지원 의사“中, 군사정치 동맹 넘어선 긴밀한 관계” 지노비예프 국장은 또 북한이 요청할 경우 대북 원유·석유제품 공급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그는 “북한이 코로나19 대응 조치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러시아 에너지 자원과 다른 상품 수입을 중단했다”고 설명하면서 “북한 파트너들이 상품 거래를 재개할 준비가 되면 상응하는 양만큼의 원유와 석유제품 공급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노비예프 국장은 이밖에 갈수록 긴밀해지는 러·중 관계에 대해서도 논평했다. 그는 “군사·정치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활성화는 양자관계의 전반적인 경향이며, 양국이 격변하는 대외정치 환경 아래서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다년간의 노력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냉전시절의 군사정치 동맹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간 관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반갑다 예비역 병장님들… K리그1 군데스리가 전력 보충

    반갑다 예비역 병장님들… K리그1 군데스리가 전력 보충

    ‘군대스리가가 온다.’ 7일 프로축구 K리그1 김천 상무 1기가 제대하면서 부상으로 조기 제대한 최준혁(광주FC)을 제외한 13명이 원소속팀으로 복귀한다. 이들은 당장 이번 주말에 열리는 31라운드부터 경기에 나선다.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이들 ‘예비역 병장’들의 활약에 따라 각 팀들의 상황도 달라질 전망이다. 돌아오는 예비역 병장이 가장 반가운 팀은 전북 현대다. 전북에는 최전방 공격수 조규성가 돌아온다. 조규성은 올시즌 김천에서 23경기에서 13골을 넣으며 득점 3위를 달리고 있다. 전북은 일류첸코(FC서울)를 여름 이적시장에서 떠나보낸 뒤 구스타보 혼자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규성이 합류하면 전북의 공격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리그 1위 울산 현대도 전력 보충이 이뤄진다. 울산은 수비수 정승현이 돌아오면서 수비라인이 한층 강화 될 전망이다. 현재 울산은 김영권, 임종은, 김기희가 중앙 수비수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데,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29라운드에선 최하위 성남FC에 2골을 헌납하며 무너졌다.3위 포항 스틸러스에는 수비수 하창래가 돌아온다. 포항은 올시즌 알렉스 그랜트와 박찬용으로 중앙 수비진을 꾸려 왔다. 측면 수비를 주로 보는 박승욱이 중앙 수비수로 변신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무릎 부상으로 이탈해 있다. 하창래는 김기동 감독이 부임한 후 주전 수비 자리를 맡아왔던 자원이라 적응도 따로 필요 없다. 하위권 팀도 군데스리가 선수들이 반갑다. 수원 삼성은 명준재와 박상혁이 합류한다. 명준재는 측면 자원이고, 박상혁은 중원에서 뛸 수 있다. 특히 박상혁은 왕성한 활동량과 공격 가담이 좋다. 정경호 감독 대행 부임 후 2연승에 성공한 성남도 연제운과 유인수가 합류한다. K리그1 최다 실점(54실점)을 기록 중인 성남 입장에서는 둘의 합류와 적응이 최하위 탈출에 중요한 키가 될 전망이다. 이 외에도 김주성, 정현철(이상 FC서울), 서진수(제주 유나이티드), 구성윤(대구FC) 등도 복귀한다.
  • 북베트남, 닉슨 방중에 춘계 대공세… 남북 베트남군 7만명 전사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북베트남, 닉슨 방중에 춘계 대공세… 남북 베트남군 7만명 전사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닉슨과 中·蘇 정상회담 갖기로 해 북베트남, 베이징·모스크바 압박 신형 탱크·대공미사일 등 받아내 북군, 부활절 휴가 중 대대적 공세 사이공 근처 전략 요충 안록 포위 월남, 美 북폭 도움받아 북군 격퇴 파리 평화회담서 미국 입장 강화 美 모스크바 정상회담 군축 타결 1971년 가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기분이 좋았다. 연말이면 베트남 주둔 미군은 14만명으로 줄어들 예정이었다. 닉슨은 이듬해 상반기로 예정된 베이징과 모스크바 방문에 큰 기대를 걸었다. 10월 20일 헨리 키신저는 닉슨의 중국 방문을 협의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났다. 키신저는 저우언라이 등 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러 곳을 방문했다. 마지막 날 공동선언을 기초할 때 중국 측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천명하자고 했으나, 키신저는 “대만해협 양측은 모두 하나의 중국을 주장함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제안해서 이 문제를 피해 갔다. 하지만 키신저의 노력은 같은 날 유엔총회를 통과한 중국 대표권 결의로 빛을 잃었다.●‘중공의 중국 대표권’ 유엔 표결 통과 유엔에선 공산권과 제3세계 국가들이 대만(중화민국)이 아닌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표권을 갖는다고 주장해서 이에 반대하는 미국과 대립해 왔는데, 1971년 들어서 총회는 이 문제를 표결로 다루게 됐다. 윌리엄 P 로저스 국무장관과 조지 H W 부시 유엔주재 대사는 중국이 안보이사국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대만이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반면에 키신저는 그렇게 하면 중국을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10월 25일 유엔 총회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표권을 갖는다는 결의를 찬성 76표, 반대 35표, 기권 17표로 통과시켰다. 유엔에서 두 개의 중국을 원했던 미국은 패배했고, 제3세계 대표들은 회의장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춤을 추었다. 닉슨은 미국의 원조를 받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을 지지한 데 대해 화를 내면서도 키신저가 베이징에서 양보를 했다는 인상을 줄까 봐 우려했다. 한편 인도와 파키스탄이 동파키스탄 문제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해서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서 동파키스탄 독립운동을 진압하자 인도군은 동파키스탄을 침공했고 2주 뒤 전체를 장악한 다음 인도는 휴전을 선언했다. 중국 방문을 앞두고 파키스탄을 지지해 온 닉슨과 키신저는 사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동파키스탄은 독립국가 방글라데시로 태어나게 됐으니 미국 외교는 쓴맛을 보았다. 1972년 2월 17일 닉슨은 로저스 국무장관, 키신저 등과 함께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나섰다. 상하이를 거쳐 2월 21일에 베이징에 도착한 닉슨은 저우언라이 총리의 영접을 받았고 오후에는 마오쩌둥과 회담을 가졌다. 닉슨 부부 등 일행은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방문했고 항저우를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저우언라이와 함께 상하이를 방문해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상하이 선언문은 양국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도 대만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언론은 세계 평화를 향한 노력이라면서 크게 다루었고, 닉슨은 의기양양하게 미국으로 돌아왔다. 키신저는 닉슨의 중국 방문이 소련으로 하여금 군축(軍縮)회담에 나서게 할 것이며 베트남 평화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미군 정보당국은 1971년 연말부터 소련과 중국의 많은 물자가 북베트남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새로운 무기와 장비가 반입되는 것을 살피던 미군 정찰기 3대가 격추되자 닉슨은 5일 동안 공중 폭격을 명령했다. 베트남 주둔 미군 사령부는 북베트남이 1968년처럼 구정(舊正) 전후로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월이 지나가고 3월이 와도 북베트남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월맹, 1972년 지나기 전 남쪽 장악 계획 평화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키신저는 하노이에 남베트남 지역에서 북베트남군 철수를 더이상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겠다고 비밀리에 제안했다. 북베트남은 키신저에게 비밀회합을 제안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키신저를 만난 북베트남 대표 레둑토는 더이상 큰 공세는 없을 것이며 이는 평화협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베트남 수뇌부는 1972년이 지나기 전에 남베트남을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북베트남 정부가 닉슨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베이징과 모스코바에 강력하게 항의하자 소련과 중국은 신형 탱크와 대공미사일 등 막대한 무기를 북베트남에 제공했다. 1972년 3월 베트남 주둔 미군은 7만명 수준이었는데, 남베트남군을 지원하는 군사고문단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활절이 다가오자 베트남 주재 엘스워스 벙커 대사와 미군 사령관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장군은 휴가를 떠났다. 3월 30일 북베트남군은 3개 전선에서 신형 탱크와 중포(重砲)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북베트남군은 순식간에 꽝찌를 함락하고 후에를 위협했다. 캄보디아를 통해 진입한 북베트남군은 사이공과 가까운 전략요충지 안록을 포위했다. 북베트남군은 또한 중부 도시 꼰뚬을 함락시킨 후 남베트남을 두 동강 내려고 했다. ●닉슨, 북베트남쪽 성역 없는 폭격 승인 닉슨은 여기서 밀리면 베트남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겠다는 자신의 약속이 실패할 것이며, 그러면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없음을 잘 알았다. 닉슨은 항공 전력을 최대한 투입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베트남 미군 기지에선 전폭기가 부족해서 주한 미 공군 소속 팬텀기들도 작전에 참가했다. 닉슨은 북베트남 영내에 대한 공습을 승인해서 미군 전폭기들은 베트남전쟁 시작 후 처음으로 성역 없는 폭격에 나섰다. 초기에 패퇴했던 남베트남군은 미군의 공중 폭격에 힘입어 반격에 나섰다. 후에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남베트남 해병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꽝찌를 탈환했다. 남베트남군 레인저 부대는 북베트남군의 포위망을 뚫고 안록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꼰뚬에서 포위된 남베트남군은 군사고문관 존 폴 밴의 지휘하에 B52 폭격을 유도해서 북베트남군을 완전히 섬멸했다. 존 폴 밴은 헬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닐 시핸 기자는 그의 일대기 ‘밝고 빛나는 거짓말’(1988년)을 통해서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고발했다. 꼰뚬을 포위하고 동쪽으로 향하던 북베트남군이 전략 요충지 안케패스를 지키던 한국군과 조우(遭遇)해서 우리 국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닉슨은 이 기회에 북베트남을 굴복시켜서 평화협상에 나오도록 할 계산이었다. 닉슨은 5월 9일을 기해 ‘라인배커 작전’이란 명칭을 붙인 대공습을 명령했다. ‘라인배커’는 미식 축구에서 방어 선수를 지칭하는데, 대학 시절 미식 축구 선수를 지낸 닉슨이 직접 지은 작전명이라고 한다. 이 공습에서 미 해군기들은 하이퐁 앞바다에 기뢰 1만 1000개를 투하해 항만 기능을 마비시켰고 B52 폭격기 편대는 하노이와 그 주변을 고공에서 폭격했다. 그해 10월 23일에 끝난 대공습 작전으로 인해 북베트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미군은 항공기 134대를 상실했다. 3월 30일에 시작된 춘계 대공세에 북베트남은 14개 사단 20만 병력과 탱크와 장갑차 300대를 동원했으나 5만명 이상이 전사했고 5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탱크와 장갑차는 대부분 파괴되는 등 사실상 궤멸됐다. 미군은 전투기와 헬기 조종사 등 300여명이 사망했고, 남베트남군은 2만명이 전사했다.●제인 폰다 방공포대서 미국 비난 물의 춘계 대공세와 미군의 대공습은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 6월 8일 사이공을 향하는 북베트남 부대를 차단하기 위해 투하한 네이팜탄으로 화상을 입은 소녀가 벌거벗은 채 달려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7월에는 하노이를 방문한 영화배우 제인 폰다가 미군기를 노리는 방공포대에서 미국을 비난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미국 법무부는 폰다를 반역죄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북베트남군이 패퇴함에 따라 파리 평화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이 강화됐고,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화(化) 전략이 성공했음을 내세울 수 있었다. 북폭이 한창이던 5월 말 닉슨은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미소 정상회담을 갖고 군축협상을 타결하며 1970년대 해빙(detente) 외교를 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고 50년이 지나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게 될 줄을 키신저는 상상이나 했을까. 중앙대 명예교수
  • ‘댓글 공작’ 전 기무사령관 파기환송심서 징역 3년, 법정 구속

    ‘댓글 공작’ 전 기무사령관 파기환송심서 징역 3년, 법정 구속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이 댓글 공작 혐의로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이승련·엄상필·심담)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배 전 사령관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재판부는 “범행은 집권 세력의 정권 유지 및 재창출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다”면서 “헌법에서 명시한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손상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 전 사령관 부임 전부터 범행 관련 업무들이 일부 진행된 측면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취임 이후에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범죄사실과 같이 위법 부당한 지시를 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배 전 사령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기무사 대원들에게 여권지지, 야권 반대 등 정치 관여 글 2만여 건을 온라인 상에 게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또 대원들에게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포털사이트 온라인 계정 수백 개의 가입 정보를 조회하도록 하는 등 직무와 무관한 불법 활동을 지시한 혐의도 받았다. 파기환송 전 1심은 배 전 사령관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반면 파기환송 전 2심은 일부 행위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정치 관여 글을 게시하게 한 것은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렵다며 일부 무죄, 일부 면소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형량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어들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정치 글을 게시하게 한 부분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유죄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단 취지대로 유죄를 인정했다.
  • 김태형의 마지막 해… ‘가을동화’ 마지막 회?

    김태형의 마지막 해… ‘가을동화’ 마지막 회?

    프로야구 사령탑 가운데 역대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김태형(55) 감독의 두산 베어스가 부임 8년 만에 처음으로 5강 탈락 위기에 놓였다. 두산은 24일 기준으로 1위 SSG 랜더스와 27.5경기 차까지 벌어진 8위다. 또 바로 앞 6, 7위는 최근 10경기에서 7승3패로 막판 스퍼트를 내는 롯데 자이언츠와 6승4패의 NC 다이노스다. 후반기 37경기가 남아 있는 가운데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뒤집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감독은 부임과 함께 2015, 2016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또 지난해까지 KBO 구단 최초로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창조했다. 그사이 연봉도 3년 총액 20억원(2017~19년)에서 28억원(2020~22년)으로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최고 연봉의 감독이다. 그런 김 감독이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최우수선수(MVP)였던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가 부상으로 달랑 3경기만 등판하고 지난 7월 팀을 떠난 게 큰 전력 누수이긴 하지만, ‘백업으로 선발을 짜도 1군 전력’이라던 두산이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은 아니었다. ‘미러클’ 두산이 가을 문턱에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는 투타에서 활약해 줘야 할 선수들이 조금씩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6선발 요원으로 준비했던 최승용과 박신지가 각각 9경기와 6경기에서 1승씩만 올리는 데 그쳤다. 기존 선발들도 카리스마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로버트 스톡이 9승, 최원준이 7승으로 ‘10승 투수’가 없다. 타격에선 올 시즌 직전 자유계약선수(FA, 4년 115억원) 대박을 친 4번 타자 김재환의 부진이 가장 아쉽다. 김재환은 91경기에서 타율 0.233, 16홈런, 51타점에 그쳤다. 김재환과 중심 타선을 이룬 양석환도 타율 0.253, 11홈런, 31타점,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도 타율 0.305, 6홈런, 64타점으로 지난해보다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이들의 장타율이 떨어지다 보니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하는 타선이 돼 버렸다. FA로 떠난 우익수 박건우(NC)의 공백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다. 마무리 김강률의 부상 공백 속에 고군분투했던 홍건희와 정철원은 과부하에 걸렸다. 홍건희는 등의 담 증세로 최근 2경기 몸도 풀지 못했고, 정철원은 데뷔 시즌에 벌써 55이닝을 던졌다. 김 감독이 계약 마지막 해에 마주한 이 난국을 ‘미러클 두산’으로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93년생 女유튜버, 대학 교수로 부임”…어떤 학과?

    “93년생 女유튜버, 대학 교수로 부임”…어떤 학과?

    인기 트위치 스트리머가 전문대학 교수에 임용됐다. 김포대학교(총장 박진영) 유튜브크리에이터과는 24일 트위치 스트리머 원보라(이녕)씨를 교수로 임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유튜브와 트위치에서 각각 23만, 11만 팔로워를 보유한 유튜버이자 스트리머다. 최근 유튜브와 트위치, 아프리카TV, 온라인 강의 컨텐츠 등 다양한 온라인 미디어를 어디서든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은 스스로를 브랜드화 해 미디어를 만드는 직업으로서의 크리에이터에 대한 열풍을 몰고 왔다. 어린이 장래 희망, 3위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앞서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폴’은 글로벌 완구회사인 레고의 의뢰를 받아 주요 선진국 어린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1위를 차지한 직업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인기 직업인 판·검사, 의사 등을 제치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3위에 올랐다. 그만큼 어린이를 비롯한 청소년들로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크리에이터 가운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수입을 올리는 창작자들이 생겨나면서 대세 직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영상 시장의 규모가 커지며 기술적 능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전문가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교육하는 시스템과 기관의 부족으로 인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원보라 신임교수는 게임 관련 리포터, 캐스터, MC, 라이브커머스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며 축적된 현장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로서 꼭 필요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학생들을 지도할 예정이다.1993년생인 원 교수는 ‘이녕’이란 닉네임으로 2015년 데뷔한 후 트위치 스트리머 및 유튜버 활동을 했다. 현재 트위치 파트너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다. 원 교수는 게임 리포터, 게임 캐스터, 게임 MC, VJ ,패션 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원 교수는 “E스포츠 유망기업(블리자드 코리아, 라이엇 코리아 등), 네트워크 기업(패러블 엔터테인먼트)과 같은 여러 MCN 등을 연계하겠다”며 “김포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게임 관련 콘텐츠 특성상 만연하게 퍼져있는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 힘써 종합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한편 김포대학교 유튜브크리에이터과는 시대 트렌드를 반영해 한류 콘텐츠 시장의 전반적인 프로페셔널 교육을 지향하는 크리에이터 양성 학과다. 2022년 9월 13일부터 10월 6일까지 2023학년도 신입생 1차 수시모집 원서 접수를 진행한다.
  • 역대 최고 연봉 사령탑 김태형의 두산, 8년 만에 5강 탈락 눈앞

    역대 최고 연봉 사령탑 김태형의 두산, 8년 만에 5강 탈락 눈앞

    한국야구위원회(KBO) 프로야구 사령탑 역대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김태형(55) 감독의 두산 베어스가 부임 8년 만에 처음으로 5강 탈락 위기에 놓였다. 두산은 24일 현재 포스트 시즌 진출권인 5위 KIA 타이거즈와 6.5경기차까지 벌어진 8위다. 또 바로 앞 6, 7위는 최근 10경기 나란히 7승 3패로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다. 페넌트 레이스(정규 리그) 38경기가 남아 있는 가운데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뒤집기 어려운 상황이다.김 감독은 부임과 함께 2015, 2016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또 지난해까지 KBO 구단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창조했다. 그 사이 연봉도 3년 총액 20억원(2017~19년)에서 28억원(2020~22년)으로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 40년 역사에 최고 연봉 감독이다. 그런 김 감독이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최우수선수(MVP)였던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가 부상으로 달랑 3경기만 등판하고 지난 7월 팀을 떠난 것이 큰 전력 누수이긴 하지만, ‘백업으로 선발을 짜도 1군 전력’이라던 두산이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아니었다. ‘미라클’ 두산이 가을의 문턱에서 기적의 시동을 걸지 못하는 본질적 이유는 바로 투타 양면에서 활약해 줘야 할 선수들이 골고루 조금씩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6선발 요원으로 준비했던 최승용와 박신지가 각각 9경기와 6경기에서 나란히 1승 씩만 올리는데 그쳤다. 기존 선발들도 카리스마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시즌 막판에 접어든 현재까지 로버트 스탁이 9승, 최원준이 7승으로 10승 투수가 없다. 타격에선 올 시즌 직전 4년 115억원의 FA(자유계약) 대박을 안겨준 4번 타자 김재환의 부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김재환은 90경기 타율 0.234(321타수 75안타), 16홈런, 51타점에 그쳤다. 김재환과 중심타선을 이룬 양석환도 타율 0.253 11홈런 31타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도 타율 0.306 6홈런 64타점으로 지난해보다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이들의 장타율이 떨어지다보니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하는 타선이 돼 버렸다. FA로 NC로 떠난 우익수 박건우의 공백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고, 마무리 김강률의 부상 공백 속 고군분투했던 홍건희와 정철원은 과부하가 걸렸다. 홍건희는 등 담 증세로 최근 2경기 몸도 풀지 못했고, 정철원은 데뷔 시즌에 벌써 55이닝을 던졌다. 김 감독은 지난 7년 동안 경기장 안팎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두산을 리그 최정상의 팀으로 이끌어왔다. 그가 계약 마지막해 마주하게 된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이겨내고, 또 기적의 가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 [황성기 칼럼] 강제동원 해결에 놓인 암초들/논설실장

    [황성기 칼럼] 강제동원 해결에 놓인 암초들/논설실장

    4년간 표류하던 강제동원 문제가 입구에 들어섰다. 윤석열 정부의 해결 의지가 강해 보인다. 희망이 있다. 윤 대통령은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 칭했다. ‘힘을 합칠 이웃’은 친일 프레임을 꺼리던 이전 정부까진 별로 없던 표현이다. 취임 100일 회견에선 “강제징용 판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 채권자(원고·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논란의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현금화 전에 피해자가 보상받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만 내세웠지 보상은 지연시킨 전 정권에선 생각할 수 없던 말이다. 윤 대통령 100일간의 어설픈 내치와 달리 한미 등 외교에서는 정치를 시작한 1년 사이 제법 내공을 쌓은 단면을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시간이 안 맞았다는 게 이유지만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회담 없이 전화통화로 끝낸 점도 한중 외교의 한 수였다. 주변에 포진한 외교 현자들 덕분이며, 과외를 잘 받고 윤석열식으로 잘 소화한 결과다. 이런 의지가 대일 외교에서 구현된 게 한일정책협의단의 일본 파견이고, 박진 장관의 방일이며,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일본을 맡았던 윤덕민의 주일대사 부임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봉인했던 ‘강제동원’을 지지율이 깎이더라도 정면돌파하며 “정치쇼”는 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관철한다면 험로도 헤쳐 나갈 수 있다. 정부의 보상안이 해결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강제동원 문제의 출구를 나서기까지는 여러 난관들이 기다린다. 첫째, 피해자와 시민단체, 정부 해법을 훼방하려는 야당을 포용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 책임하의 대위변제에 의한 보상’이 지론인 5선의 이상민 의원 같은 이는 더불어민주당에선 극소수다. 민주당에게 정부 대위변제는 공격의 호재료다. 하지만 4년간 이 문제를 방치한 건 민주당 정권이었다. 현 정권과 전 정권이 허심탄회하게 풀어야 할 공동 숙제다. 둘째, 강제동원 해결 여부가 어떤 국익, 어떤 손실을 가져올지 명확해야 한다. 윤덕민 대사가 수십, 수백조의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간다고 주장한 것으론 모자란다. 현금화가 일어나면 일본은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2019년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를 초월하는 파상적 제재를 가해 올 것이다. 한국 내 자산을 매각당한 일본 기업들이 외교적 보호권을 요청하면 일본 정부도 강경 행동의 근거를 갖게 된다. 일본 은행이 한국 기업에 행한 대출의 강제 회수라는, 한일이 동시에 핵폭탄을 맞는 극한적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셋째, 한일 모두에는 역사 문제의 해결을 바라지 않는 세력이 있다. 서로 통한다는 일본의 극우, 한국의 극좌다. 일부 정치인, 언론, 운동가 등의 역사퇴행형 혹은 생계형 혐한, 혐일이다. 이들이 과거사 해결을 저지하려고 어떤 찬물을 끼얹더라도 강인한 맷집으로 버텨 내야 한다. 또한 반성에 약한 일본과의 역사 문제는 장기전을 요한다는 인식도 필요하다. 넷째, 대법 판결에는 없는 사죄다. 하지만 피해자는 물론 적지 않은 국민들이 강제동원에 대해 “65년 협정으로 다 끝났다”는 일본의 주장을 턱없이 모자란다 여긴다. 일본의 적절한 인사가 적절한 공간과 시점을 골라 도의적 책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다. 박진 외교의 과제다. 다섯째, 소소한 문제이지만 채권자의 동의 없는 대위변제는 불가능하다는 해괴한 논리가 외교부까지 침투해 있다. 법제처를 비롯한 책임 있는 기관에서 유권해석을 내려 정리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오부치의 ‘사죄’와 김대중의 ‘평가’가 한 축이라면 ‘역사인식을 심화시켜 미래를 지향한다’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미완의 ‘한일 98년 체제’를 쉽지는 않지만 완성해야 한다.
  • 강기정 광주시장 “광주,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과 협력”

    강기정 광주시장 “광주,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과 협력”

    23일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접견, 교류·협력 등 논의 골드버그 대사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같은 곳” 강기정 광주시장은 23일 시청 접견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를 접견하고 광주와 미국 간 협력방안 등 공동 관심사를 논의했다. 강 시장은 이날 “대사의 광주 방문을 환영한다”며 “광주는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성지이자, 이제는 인공지능 대표도시, 미래산업 중심도시로 도약 중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미국의 협력이 안보를 넘어 경제, 과학 기술 등 폭넓어지고 있다”며 “광주도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과 협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광주시는 11개국 22개 도시와 자매우호도시를 맺어 교류·협력하고 있으며, 미국 샌안토니오시와는 1982년 자매결연을 체결해 올해 40주년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5·18민주화운동의 날을 제정해 매년 5월18일을 기념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의 교류가 더욱 확장되는 뜻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골드버그 대사는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기에 부임 후 첫 지방 출장으로 꼭 방문하고 싶었다”면서 “민주주의 완성으로 나아가는데 광주와 미국이 함께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미국의 협력이 안보를 넘어 경제, 과학, 기술 등으로 폭 넓어지고 있는데, 광주가 여기에 함께 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 금산~전주 길목 이치서 대승… 왜군의 호남 진격 막은 결정적 전투[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금산~전주 길목 이치서 대승… 왜군의 호남 진격 막은 결정적 전투[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황진은 1590~1591년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의 호위군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그들의 침략 의지를 직접 확인한 이후에는 좋아하던 술도 끊고 무술을 단련하는 데 힘썼다. 지금은 전남 화순땅인 동복의 현감으로 부임하고는 읍성을 단단하게 고쳐 쌓으며 외침에 대비했다. 왜란 발발 이후 황진은 금산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이치에서 왜군을 격퇴했는데, 왜군이 호남 진공을 포기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됐다. 황진의 이치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곽재우의 정암진대첩과 함께 곡창 호남을 방어해 왜군을 무력화시킨 결정적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대 승리인 이치전투의 현장은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대둔산이 그림처럼 배경을 이루고 있다. 배고개라는 뜻의 이치(梨峙)는 이제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부와 진산군의 경계였다. 전라도 진산군과 금산군은 1914년 통합돼 금산군이 됐고, 전북 금산군은 1963년 충남도에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1791년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 사건인 신해사옥(辛亥邪獄)을 진산 사건이라고도 부르는데 당시 전라도 진산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치 정상에는 ‘이치대첩유허비’와 ‘무민공 황진장군 이치대첩비’, ‘임진왜란 이치대첩 의병장 황박장군 추모비’,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치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 아래 서쪽으로 가면 전주다. 반대편 옥천 방향으로 가면 권율장군 이치대첩 유적이 있다. 진산에서 갈라진 68번 지방도는 금산으로 이어진다. 금산읍내에 접어들기 직전 고경명선생 순절비가 보인다.황진(黃進·1550~1593)은 조선 초의 명재상 황희의 5대손으로 남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남다르게 뛰어났는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1576년 27세에 별시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이 됐고, 이듬해에는 주청사 황림의 수행군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무과에 급제한 직후 외교사절의 수행군관을 맡았으니 무인으로 일찍부터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니탕개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경원 안원보 권관에 임명됐을 때는 허술한 성첩(城堞)과 포루(砲樓)를 모두 튼튼히 고치기도 했다. 1590년 조선통신사행의 정사 황윤길은 황진의 종숙부이니 아버지의 사촌동생이다. 황진은 부산포를 출발할 때부터 통신사행 자체에 회의를 표시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편찬한 ‘무민공실기’(武愍公實記)에는 당시 황진이 썼다는 한시가 전한다. ‘조정이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 오랑캐가 스스로 찾아오는구나 / 창파만리 밖으로 / 통신사는 왜 가는가 / 누가 이런 논의를 벌였는지 / 모든 게 어리석다네’ 황진은 1591년 12월 동복현감에 임명됐다. 선조수정실록은 ‘황진을 동복현감으로 삼았다. 무인으로 문자는 알지 못했으나 용략(勇略)이 있었다. 김성일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왜변이 장차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매일 공무가 끝나면 곧바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부지런히 익혔다’고 적었다. 실록에 종종 등장하는 ‘문자를 알지 못했다’는 표현은 성리학이 깊지 않았다는 뜻이다.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5월 3일 한양을 점령하자 황진과 동복현 군사는 전라도관찰사 이광이 이끄는 3도 근왕병(勤王兵)의 일원으로 북상한다. 모두 5만명에 이르렀다는 전라·경상·충청 근왕병은 그러나 6월 6일 용인에서 수군 출신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1500명 남짓한 왜군에 참패한다. 대부분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던 조선군은 왜군이 나타나기만 해도 두려움에 떨며 흩어졌다. 하지만 전사자가 많은 것은 아니어서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 관군이나 의병으로 다시 참전하게 된다. 황진은 이광과 근왕병을 나누어 지휘한 방어사 곽영의 중위장인 광주목사 권율 휘하에 있었다. 5월 8~9일 한양에 입경한 왜군 수뇌부는 조선 8도를 나누어 통치하기로 한다. 조선 전역을 명나라 침공을 위한 보급기지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전라도를 맡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임진강변에 진을 치고 있다가 전라도의 초입인 금산으로 남하한다. 승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행영(行營)을 지으라는 명령을 모리 데루모토에게 전하려 조선에 왔지만 도요토미의 도해(渡海) 계획이 취소되면서 호남 침공을 거든다. 남원을 거쳐 전주에 입성하려던 안코쿠지는 일찌감치 의령 정암진에서 곽재우 의병에 격퇴당했다. 그러자 낙동강으로 의령을 우회한 다음 합천과 고령을 돌파해 거창 방면에서 호남에 진입하려 했지만 김면·정인홍 의병에 가로막혀 금산으로 북상하게 된다. 호남의 조선군은 절제사에 오른 권율이 격문을 돌리며 근왕병을 다시 모집하고 훈련에 나서는 등 최소한의 체계를 잡아 간다. 적침이 우려되는 요해처에는 군진을 설치하는데 ‘난중잡록’에 이런 정황이 담겨 있다. ‘방어사 곽영은 금산에, 조방장 이유의는 팔량에 진을 쳤으며 이계정은 육십현에 진을 치고 장의현은 부항에, 김종례는 동을거지에 진을 쳐서 수비하며 왜적의 변란을 대기했다.’ 팔량은 남원 운봉 지역이다. 육십령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육십현은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 부항은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을 각각 잇는다. 동을거지(冬乙巨旨) 역시 호남과 영남의 경계로 추측할 수 있다.왜군은 먼저 웅치로 몰려들었다. 웅치는 이치 남쪽으로 진안현과 전주부의 경계다. 오늘날에도 임도에 가까운 샛길인데 매우 높고 험하다. 선조수정실록은 ‘전라 절제사 권율이 군사를 보내 왜적을 웅치에서 물리쳤는데 김제군수 정담이 전사했다. 왜병이 또 이치를 침범하니 동복현감 황진이 패배시켰다’고 했다. 7월 7일 웅치전투의 상황을 두고는 ‘왜적의 선봉 수천명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정면으로 돌진해 왔는데, 나주판관 이복남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활로 쏘아 죽인 것이 헤아릴 수 없었으며 적이 패하여 물러갔다’고 적었다. 이튿날 새벽 적이 병력을 총동원하자 조선군은 전주성에서 불과 십리 남짓 떨어진 안덕원까지 물러섰다. 하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왜군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치전투는 7월 8일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학계는 정황상 시차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선조수정실록은 ‘왜장이 또 대군을 출동시켜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하여 동복현 군사를 거느리고 부장 위대기·공시억 등과 함께 재를 점거하여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하여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쏘는 대로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하여 적병을 대파했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까지 피비린내가 났다. 이날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사들을 독려하여 계속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서술했다. 이치의 조선군은 1000명 남짓이었고 많아야 1500명 정도였지만, 왜군은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실록은 ‘왜적은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에 이치의 전투를 첫째로 쳤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임진왜란의 3대 전투는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이다. 하지만 왜군 시각의 3대 전투는 이치전투, 벽제관전투, 평양성전투라고 한다. 왜군은 벽제관에서 명나라 군대를 대파했고, 평양성에서는 조명연합군을 상대로 처절하게 싸웠다. 이치전투의 패배가 그만큼 뼈아팠다는 뜻이다. ‘난중잡록’은 ‘동복현감 황진을 익산군수로 승진시켰다. 이현(梨峴·이치)에서 승전한 보고가 올라오자 또 충청도 조방장으로 승진시켰다’고 적었다. 황진은 이듬해 5월 이전에 다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다. 종6품에서 종2품으로 1년도 되지 않아 수직상승했으니 전장에서 보여 준 투혼이 놀라웠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 황진은 경기 죽산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퇴각하는 적을 상주까지 추격하며 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와의 화의 협상이 본격화하자 조선 침략이 실패로 돌아가는 데 따른 분풀이로 10만 병력을 동원해 전라도로 가는 길목으로 김시민 장군이 굳게 지켰던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게 된다. 제2차 진주성전투는 1593년 6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벌어졌다. 순성장(巡城將) 황진은 진주성 방어전의 실질적인 총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해 사실상 조선 주둔 왜군 전 병력이 투입된 진주성을 한동안 영웅적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산을 이룬 왜적의 시신 사이에 숨어 있던 적병이 발사한 조총 탄환에 이마를 맞고 전사했다. 수성군의 정신적 지주였던 황진이 순절하자 진주성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 조선통신사 수행군관, 왜적의 호남침공 야욕 완벽하게 분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조선통신사 수행군관, 왜적의 호남침공 야욕 완벽하게 분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황진은 1590~1591년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의 호위군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그들의 침략의지를 직접 확인한 이후에는 좋아하던 술도 끊고 무술을 단련하는 데 힘썼다. 지금은 전남 화순땅인 동복의 현감으로 부임하고는 읍성을 단단하게 고쳐 쌓으며 왜침에 대비했다. 왜란 발발 이후 황진은 금산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이치에서 왜군을 격퇴했는데, 왜군이 호남 진공을 포기한 결정적 이유의 하나가 됐다. 황진의 이치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곽재우의 정암진대첩과 함께 곡창 호남을 방어해 왜군을 무력화시킨 결정적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대 승리인 이치전투의 현장은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대둔산이 그림처럼 배경을 감싸고 있다. 배고개라는 뜻의 이치(梨峙)는 이제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부와 진산군의 경계였다. 전라도 진산군과 금산군은 1914년 통합되어 금산군이 됐고, 전라북도 금산군은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1791년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해사옥(辛亥邪獄)을 진산사건이라고도 부르는데 당시 전라도 진산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치 정상에는 ‘이치대첩유허비’와 ‘무민공 황진장군 이치대첩비’, ‘임진왜란 이치대첩 의병장 황박장군 추모비’,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치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 아래 서쪽으로 가면 전주다. 반대편 옥천 방향으로 가면 권율장군 이치대첩 유적이 있다. 진산에서 갈라진 68번 지방도는 금산으로 이어진다. 금산읍내에 접어들기 직전 고경명선생 순절비가 보인다.  황진(黃進·1550~1593)은 조선초의 명재상 황희의 5대손으로 남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남다르게 뛰어났는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1576년 27세에 별시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주청사 황림의 수행군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무과에 급제한 직후 외교사절의 수행군관을 맡았으니 무인으로 일찍부터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니탕개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경원 안원보 권관에 임명됐을 때는 허술한 성첩(城堞)과 포루(砲樓)를 모두 튼튼히 고치기도 했다.  1590년 조선통신사행의 정사 황윤길은 황진의 종숙부이니 아버지의 사촌동생이다. 황진은 부산포를 출발할 때부터 통신사행 자체에 회의를 표시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편찬한 ‘무민공실기’(武愍公實記)에는 당시 황진이 썼다는 한시가 전한다. ‘조정이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 오랑캐가 스스로 찾아오는구나 / 창파만리 밖으로 / 통신사는 왜 가는가 / 누가 이런 논의를 벌였는지 / 모든 게 어리석다네’ 황진은 1591년 12월 동복현감에 임명됐다. 선조수정실록은 ‘황진을 동복현감으로 삼았다. 무인으로 문자는 알지 못했으나 용략(勇略)이 있었다. 김성일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왜변이 장차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매일 공무가 끝나면 곧바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부지런히 익혔다’고 적었다. 실록에 종종 등장하는 ‘문자를 알지 못했다’는 표현은 성리학이 깊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5월 3일 한양을 점령하자 황진과 동복현 군사는 전라도관찰사 이광이 이끄는 3도 근왕병(勤王兵)의 일원으로 북상한다. 모두 5만에 이르렀다는 전라·경상·충청 근왕병은 그러나 6월 6일 용인에서 수군 출신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1500명 남짓한 왜군에 참패한다. 대부분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던 조선군은 왜군이 나타나기만 해도 두려움에 떨어 흩어졌다. 하지만 전사자가 많은 것은 아니어서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 관군이나 의병으로 다시 참전하게 된다. 황진은 이광과 근왕병을 나누어 지휘한 방어사 곽영의 중위장인 광주목사 권율 휘하에 있었다.  5월 8~9일 한양에 입결한 왜군 수뇌부는 조선 8도를 나누어 통치하기로 한다. 조선 전역을 명나라 침공을 위한 보급기지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전라도를 맡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임진강변에 진을 치고 있다가 전라도의 초입인 금산으로 남하한다. 승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행영(行營)을 지으라는 명령을 모리 데루모토에게 전하려 조선에 왔지만, 도요토미의 도해(渡海) 계획이 취소되면서 호남 침공을 거든다. 남원을 거쳐 전주에 입성하려던 안코쿠지는 일찌감치 의령 정암진에서 곽재우 의병에 격퇴당했다. 그러자 낙동강으로 의령을 우회한 다음 합천과 고령을 돌파해 거창 방면에서 호남에 진입하려 했지만 김면·정인홍 의병에 가로막혀 금산으로 북상하게 된다.  호남의 조선군은 절제사에 오른 권율이 격문을 돌리며 근왕병을 다시 모집하고 훈련에 나서는 등 최소한의 체계를 잡아간다. 적침이 우려되는 요해처에는 군진을 설치하는데 ‘난중잡록’에 이런 정황이 담겨있다. ‘방어사 곽영은 금산에, 조방장 이유의는 팔량에 진을 쳤으며 이계정은 육십현에 진을 치고 장의현은 부항에, 김종례는 동을거지에 진을 쳐서 수비하며 왜적의 변란을 대기했다’ 팔량은 남원 운봉 지역이다. 육십령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육십현은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 부항은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을 각각 잇는다. 동을거지(冬乙巨旨) 역시 호남과 영남의 경계로 추측할 수 있다.  왜군은 먼저 웅치로 몰려들었다. 웅치는 이치 남쪽으로 진안현과 전주부의 경계다. 오늘날에도 임도에 가까운 샛길인데 매우 높고 험하다. 선조수정실록은 ‘전라 절제사 권율이 군사를 보내 왜적을 웅치에서 물리쳤는데 김제군수 정담이 전사했다. 왜병이 또 이치를 침범하니 동복현감 황진이 패배시켰다’고 했다. 7월 7일 웅치 전투의 상황을 두고는 ‘왜적의 선봉 수천명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정면으로 돌진해 왔는데, 나주판관 이복남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활로 쏘아 죽인 것이 헤아릴 수 없었으며 적이 패하여 물러갔다’고 적었다. 이튿날 새벽 적이 병력을 총동원하자 조선군은 전주성에서 불과 십리남짓 떨어진 안덕원까지 물러섰다. 하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왜군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치전투는 7월 8일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학계는 정황상 시차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선조수정실록은 ‘왜장이 또 대군을 출동시켜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하여 동복현 군사를 거느리고 부장 위대기·공시억 등과 함께 재를 점거하여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하여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쏘는 대로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하여 적병을 대파했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까지 피비린내가 났다. 이날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사들을 독려하여 계속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서술했다. 이치의 조선군은 1000명 남짓이었고 많아야 1500명 정도였지만, 왜군은 1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실록은 ‘왜적은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에 이치의 전투를 첫째로 쳤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임진왜란의 3대전투는 한산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이다. 하지만 왜군 시각의 3대 전투는 이치전투, 벽제관전투, 평양성전투라고 한다. 왜군은 벽제관에서 명나라군대를 대파했고, 평양성에서는 조명연합군을 상대로 처절하게 싸웠다. 이치전투의 패배가 그만큼 뼈아팠다는 뜻이다. ‘난중잡록’은 ‘동복현감 황진을 익산군수로 승진시켰다. 이현(梨峴·이치)에서 승전한 보고가 올라오자 또 충청도 조방장으로 승진시켰다’고 적었다. 황진은 이듬해 5월 이전에 다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다. 종6품에서 종2품으로 1년도 되지 않아 수직상승했으니 전장에서 보여준 투혼이 놀라웠음을 짐작케한다. 이후 황진은 경기 죽산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퇴각하는 적을 상주까지 추격하며 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와 화의협상이 본격화하자 조선침략이 실패로 돌아가는 데 따른 분풀이로 10만 병력을 동원해 전라도로 가는 길목으로 김시민 장군이 굳게 지켰던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게 된다. 제2차 진주성전투는 1593년 6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벌어졌다. 순성장(巡城將) 황진은 진주성 방어전의 실질적인 총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해 사실상 조선 주둔 왜군 전 병력이 투입된 진주성을 한동안 영웅적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산을 이룬 왜적의 시신 사이에 숨어있던 적병이 발사한 조총 탄환에 이마를 맞고 전사했다. 수성군의 정신적 지주였던 황진이 순절하자 진주성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 ‘檢총장’ 후보 이원석은 누구?…‘똑부’·‘한동훈 동기’·‘독서광’

    ‘檢총장’ 후보 이원석은 누구?…‘똑부’·‘한동훈 동기’·‘독서광’

    이원석(53·사법연수원 27기)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 18일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청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예상했던 인사”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미 지난 5월부터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아 검찰 인사와 수사에 관여한 이 후보자를 낙점해 ‘총장 패싱’·‘식물 총장’ 논란을 피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지명됐다면 ‘검찰 인사 및 주요 수사 착수’를 다 끝난 뒤 별달리 역할이 없는 검찰총장을 앉히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을 것이다. 또한 이 후보자는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임시직’이라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실제 검찰총장급의 적극성을 띠고 업무에 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수통인 이 후보자를 택해 문재인 정권을 상대로 한 ‘사정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후보자에 대한 검찰 안팎의 평가와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함)+독서광 검찰 안팎에서 이 후보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그를 똑똑하고 부지런하다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한다. ‘윤석열 사단의 브레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는 데다 자타공인 ‘워커홀릭’이기도 하다. 대검 차장검사로 부임하자마자 전국 검찰청에 독려 전화를 하며 ‘일하는 검찰’ 모토를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말에도 종종 출근하며 일을 쉬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일부 대검 검사들 사이에서는 “야근이 많아졌지만, 기쁘게 하고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과거에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차장검사는 “옛날에 있었던 소소한 일까지 너무 잘 기억해서 놀랄 때가 많다. 머리가 굉장히 좋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독서를 즐기고 진중한 성격을 지녔다는 평가도 있다. 후배들과의 소통도 중요시 해, 자기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손편지’와 함께 후배·동료들에게 종종 선물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장검사 시절에는 후배 검사들이 들고 온 기록을 펜으로 하나하나 고쳐줬다는 일화도 있다. 한동훈 장관 동기 이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27기로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동기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에서 같은 반, 같은 조였다. 법조인 경력 초반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나이는 1969년생인 이 후보자가 1973년생인 한 장관보다 4살 더 많다. 두 사람은 검사 임관 후 특별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공통점도 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경쟁관계였지만 ‘윤석열 사단’으로 묶여 문재인 정부 시절 좌천을 당하면서 동변상련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둘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함께 승승장구하고 있다. 다른 27기 검찰 동기인 이정현·심재철·신성식 연구위원이 검찰 내에서 ‘유배지’로 불리는 법무연수원으로 발령난 것과 대조적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과 긴밀히 소통할 일이 많은데, 한 장관과 동기라는 점도 후보자로 낙점되는 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후보자는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한 장관과 검찰 간부 인사를 10여 차례 논의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다만 기수가 너무 연소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임인 김오수(사법연수원 20기) 전 검찰총장보다 일곱 기수 낮아졌다. 검찰에는 ‘후배 검사’가 검찰총장이 되면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선배 검사’들이 용퇴하는 문화가 있었다. 요즘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으나 24~25기가 포진된 고검장급에서 한 둘은 그만둘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사단 이 후보자는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 후보자가 수원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검 검찰연구관이었던 윤 대통령과 함께 ‘삼성그룹 비자금 및 로비 의혹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윤 대통령은 2011년에도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함께 일하면서 이 후보자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2019년 7월~2020년 1월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맡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확실하게 ‘윤석열 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연일 충돌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이 후보자가 대검 참모로 함께 힘든 시기를 겪으며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윤 정부가 출범한 뒤 3개월 만에 ‘지검장 말석’이라 볼 수 있는 제주지검장에서 고검장급인 대검 차장으로 영전한 뒤, 다시 검찰총장 후보자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7기 중에서 고검장급 승진자는 이 후보자뿐이었는데 ‘고검장급 막내’가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검찰 수장 후보까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주요 요직에 이미 ‘친윤 검사’들이 포진해 있는데 검찰총장까지 이 후보자를 낙점한 것은 친윤 일색 인사의 화룡점정이란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 의원들이 ‘혹독한 검증’을 벼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기획통 이 후보자는 특별수사 부서와 기획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특수·기획통’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관여한 주요 수사로는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사건’, ‘2005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2007년 삼성 비자금 및 로비 의혹 사건’, ‘2011년 오리온 비자금 사건’, ‘2016년 정윤호 법조 비리 게이트 사건’, ‘2017년 국정농단 사건’ 등이 꼽힌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뒤 기소했다. 사건의 법리와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따지고 확인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자는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서 법무부 및 국회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다만 친윤 성향의 특수·기획통을 검찰총장으로 앉혀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더 휘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야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또한 ‘정운호 게이트’ 관련해 당시 조사를 맡은 이 후보자가 수사 정보를 유출했다는 논란이 최근 불거졌지만 그는 “수사를 성공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사 기밀을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 여가부 장관 “버터나이프 크루 폐지할 것… 정산 방안 협의 중” 사업기관 “사실 무근”

    여가부 장관 “버터나이프 크루 폐지할 것… 정산 방안 협의 중” 사업기관 “사실 무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버터나이프 크루’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사업 수행기관인 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사업 중지 의사를 먼저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빠띠 측은 “성평등과 젠더 관련 의제를 빼자는 주장에 응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첨예하게 맞섰다. 김 장관은 18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가부의) 새로운 목표에서 젠더 갈등 해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이 사업이 적절한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폐지된 상태는 아니지만 폐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지난달 5일 버터나이프 크루 4기 출범 닷새만에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며 공개 저격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김 장관은 “빠띠와 지난달 21일, 22일, 27일 세 차례에 걸쳐서 논의했으나, 빠띠 쪽에서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해서 중지 방향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향후 계획에 대해 “폐지할 예정이며, 사업수행기관과 계약관계에 따라서 정산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김 장관 발언에 빠띠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반응이다. 빠띠 관계자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여가부가 지난달 21일 협의에서 성평등과 젠더 관련 의제를 빼고 진행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그건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이 아니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사업수행기관과 정산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전혀 진행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날 김 장관은 기존의 여가부 폐지 입장도 재차 강조했다. 세계성격차지수 개선을 위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지에 관한 질의에 김 장관은 “원론에는 동의한다”면서 여가부가 폐지돼도 이는 이어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부임 후 3개월간 일을 해본 결과 협업이 많은 부처여서 단독으로 일하기 어려웠다”면서 “여가부의 업무보고에 담긴 내용은 중요한 과제인데, 어떤 틀로 가져갈지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15비) 성추행 사건과 관련, 성희롱 방지 조직 진단 및 현장점검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국가기관 등의 장은 해당 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됐을 경우 피해자의 명시적인 반대 의견이 없으면 지체 없이 그 사실을 여가부 장관에게 통보해야 한다. 여가부 측은 “올 상반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공군 측은 여가부에 연락을 하지 않았고, 이후 언론보도로 인지한 여가부가 공군에 확인했을 때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을 통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 4일 입장을 바꾼 피해자가 여가부의 개입을 요청했고, 이에 공군이 지난 9일 여가부에 사건을 통보했다. 여가부는 17일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한 뒤 현장점검 및 조직진단을 결정했다.
  • 김현숙 “여가부, 세대·젠더 갈등 해소 못해” 폐지 의지 재확인

    김현숙 “여가부, 세대·젠더 갈등 해소 못해” 폐지 의지 재확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18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현재 여가부의 틀로는 세대·젠더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여가부 폐지에 대한 의지를 재차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여가부 폐지가 필요한 이유를 묻는 같은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호주제 폐지·(성범죄) 친고죄 폐지 등 성과는 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며 이같이 답했다. 김 장관은 또 “부임 후 3개월간 일을 해본 결과 협업이 많은 부처여서 단독으로 일하기 어려웠다”면서 “(다양한 가족, 경력단절여성 지원 등) 업무보고에 담긴 내용은 중요한 과제인데, 어떤 틀로 가져갈지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기존 기능) 컨트롤타워는 다른 부처에서 담당하게 되느냐’는 김한규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김 장관은 “말씀하신 형태로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김 장관은 “(여가부) 편제가 달라지는 것이지, 경력단절여성의 지원 등이 없어질 수는 없다고 본다”며 여가부가 폐지되더라도 기능과 역할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장관은 대통령과 장관의 여가부 폐지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6월 17일 조직개편 논의를 위해 여가부 내 전략추진단을 설치·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이에 앞서 이날 업무보고 인사말을 통해 “급속하게 변하는 인구구조 속에서 다양한 삶의 여건을 보장하고 미래세대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가부의 주요 과제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을 꼽았다. 핵심 추진과제로는 ▲가족 유형별 맞춤형 지원 강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제고 및 일가정 양립 지원 ▲디지털 기반 청소년 활동 활성화 및 위기청소년 지원 과정 체계화 ▲5대 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을 강화 및 권력형 성범죄 근절 등을 들었다. 김 장관은 전국 244개 가족센터를 중심으로 1인 가구, 조손 가족, 청소년 부모, 다문화 가족 등 유형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동양육비 지원대상 확대, 고의적·악의적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출국금지와 명단공개 등 제재 강화 등도 약속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일·가정 양립 지원 방안으로는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반도체·소프트웨어 분야의 미래직업 훈련 강화, 아이돌봄 서비스의 정부 지원을 민간영역까지 확대 등을 언급했다. 김 장관은 아울러 성범죄 근절을 강조하면서 성범죄 피해 신고부터 회복까지 원스톱 지원을 강화하고 여가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와 지방자치단체 간 피해영상물 삭제를 연계해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대응체계 강화와 피해자 보호조치 의무화 등 제도상 미비점을 개선하겠다고도 덧붙였다.
  • 그 섬들의 위로… 가만있어도 마음 편안해진다 [이우석의 미시여행]

    그 섬들의 위로… 가만있어도 마음 편안해진다 [이우석의 미시여행]

    ‘한산: 관광객의 출현’ 경남 통영세간에 회자되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봤더니만 문득 그 바다에 가고 싶어졌다. 결국 ‘토영’에 갔다. 토영은 경남 통영 사람들이 자신의 고장을 부르는 말이다. 통영은 통제영의 위엄과 거창함을 강요하는 느낌이지만 토영이라 말하면 뭔가 살갑다. 뒤 억양을 올리는 지역 사투리로 토영을 발음하면 빠닥빠닥 석쇠 위에 볼락 굽는 연기도 배어들고 풋풋한 멍게의 바닷내도 섞이는 것만 같다. 통영은 조선의 해군 본부 격인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로 1604년 이곳 두룡포에 설치됐다. 신식 군대가 생기기 전까지 약 300년간 삼도(전라·충청·경상)의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였으니 그 규모는 실로 장대했다. 남해의 자그마한 어촌이 조선 최대 규모의 군사도시가 됐고, 이후 ‘군사’를 떼어 낸 도시는 수산업과 문화예술, 관광 산업으로 지금껏 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고성반도와 이어져 내려와 150여개의 유무인도를 거느린 통영의 지형이 서쪽에 있는 전남 여수와 닮았다 했는데 알고 보니 홍콩반도를 더 빼닮았다. 어디서 홍콩과 통영이 닮았다는 글을 읽고 지도를 찾아보니 과연 그렇다. 고성반도(주룽반도)를 통해 내려오면 홍콩섬과 같은 미륵도가 다리와 해저터널로 이어지며 침사추이 격인 강구안, 항남동 등 통영 시가지 가운데 위치했다. 북쪽에는 고성읍(선전)과 창원(광저우)이 비슷한 위상으로 포진해 있다. 다만 홍콩의 경우 트램(통영에선 케이블카)을 타고 가야 하는, 전망대 구실을 하는 빅토리아 피크(미륵산)가 주룽이 아닌 홍콩섬(미륵도)에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남쪽 녹빛 바다엔 크고 작은 섬들이 쫙 깔렸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근대의 지드래곤’ 정지용 시인이 통영 앞바다를 보고 이른 말이 있다.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이은상 시인 역시 “결결이 일어나는 파도, 파도 소리만 들리는 여기. 귀로 듣다 못해 앞가슴 열어젖히고 부딪혀 보는 바다”라고 통영을 칭송했다. 그 말이 딱이다. 바다는 바다인데 호수의 생김 같다. 통영 바다에는 차가운 직선 수평선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샐 틈 없이 둥글둥글한 섬들로 막혔다. 동그란 섬들이 둥둥 떠 있는 형국이다. 아티스틱 스위밍 팀이 일제히 자맥질을 하면 물 위에는 궁둥이만 남는데, 통영 바다가 꼭 그 짝이다. 여기다 통영 땅을 누비는 길 역시 기막힌 곡선이다. 가로와 세로, 그리고 수직으로 뻗은 직선 도시에 지쳐 버린 이들이 숨어들기 딱 좋다. 여기선 가만있어도 마음이 평평해진다. 아름다운 통영의 지리를 잘 살펴보려면 미륵도 미륵산을 오르는 게 먼저다. 고도는 그리 높지 않다. 462m. 대신 바다에서 바로 솟아나 그 위세만큼은 몹시 당당하다.전국 지자체에 ‘케이블카 신드롬’을 몰고 온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오른다. 주렁주렁 매달려 바다와 산을 잇는 철삭(鐵索)의 길. 비록 차가운 쇠줄에 불과하지만 이 줄을 타고 오르는 이들의 마음은 뜨거워진다. 전망대에 오르면 누구나 쉽사리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굽이치는 산책로를 따라 이곳저곳을 모두 둘러보며 정상에 오른다. 미륵산 위에 올라서면 통영의 땅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좋으면 어스름하게 일본 쓰시마섬도 볼 수 있다. 한국의 할롱베이니 만중운산의 호수니 하는 말은 모두 이 풍경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풍경은 국립공원 100경 중 으뜸으로 꼽힌다.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던 미항(美港)이다. 관광 마케팅을 하려고 요즘 지어낸 말이 아니다. 무려 60년 전인 1962년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첫 장에 똑똑히 적혀 있다. 일찌감치 일본인들이 통영을 두고 그리 불렀다.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가 보지도 못한 세계 3대 미항의 이름을 가져다 붙여 놨을 정도니 말이다.비취색 바다를 앞두고 움푹 들어간 항구와 그 뒤를 버티고 선 든든한 언덕. 요즘은 ‘범죄도시’에 가까운 이탈리아 나폴리보다 아름다운 항도가 통영이 아닐까. 게다가 예향(藝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과 청마 유치환, 박경리 등 문화예술인 여럿이 이곳에서 자라며 영감을 얻었다. 통영의 아기자기한 멋과 이를 둘러싼 자연환경은 모두 알뜰살뜰하다. 예술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한 자연환경이 있었기에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 도시에서 예술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문화예술에 있어 왜 하필 군사도시 통영인가. 답은 권력에 있다. 과거 예술이 발달하려면 돈과 권력이 필요했다. 메디치의 부가 있었던 피렌체도 그랬고 합스부르크의 빈도 그랬다. 남해 끄트머리에 있지만 통영에는 무려 정이품의 통제사가 있었다. 요즘 공무원으로 따지자면 판서(장관) 이상이다. 이곳으로 부임하면 거느린 무관과 식솔 모두를 데리고 왔다. 통제사 일행의 자산과 당시 한양의 최신 문물이 고스란히 통영에 도달했다. 게다가 통제영에서 사용할 물품을 공급하는 군납 산업의 발달은 건축과 예술, 공예, 요리 등 문화예술 전반을 키우는 근간으로 작용했다. 한양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가장 큰 단일 목조건물 세병관(洗兵館)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위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랜드마크로, 단층 팔작지붕의 국보다. 시인 두보의 ‘세병마행’에 등장하는 구절인 세병은 칼(兵)을 씻는다(洗)는 뜻이다. 모두 궤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이름이 아닌 평화주의적 소망이 이 커다란 건물 현판에 녹아 있다. 세병관에 들어서기 전 지나야 하는 문의 이름도 지과문(止戈門)이다. 굳셀 무(武) 자를 파자한 것으로 ‘전쟁(戈)을 그치게 한다’는 뜻이다. 이 역시 무를 숭상하면서도 평화를 논한다는 의미로 지었다. 실로 엄청난 전화를 겪고 난 후 다시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겠다는 선조들의 철학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통영에 또 다른 별칭을 붙이자면 미향(味鄕)이 빠질 수 없다. 시인 백석도 통영 음식 맛이 여간 좋았던지 아예 ‘통영 2’라는 시에서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통영 바다의 음식을 노래했다.통영은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충무김밥과 도다리쑥국. 뱃머리에서 팔던 충무김밥은 제5공화국 때 관제축제 ‘국풍81’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도다리쑥국은 최근 몇 년 새 봄날의 계절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통영에는 이 외에도 맛난 먹을거리가 ‘천지빼까리’다. 원래부터 좋은 식재료가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고, 맛있는 것 먹기 좋아하는 무관들이 대대로 주둔했던 곳이니 식문화가 발달했다. 이순신 제독(수군으로선 장군보다 제독이 맞다)도 이곳에 있었다.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진왜란 중에 한산도 제승당에 주둔하면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조 ‘한산도가’도 남겼다. 난중이지만 어쨌든 충무공은 통영의 음식도 맛봤을 것이다. 돼지고기와 ‘금풍쉥이’(군평선이)를 즐겼다는 일기도 있다. 만약 충무공이 요즘처럼 맛깔나는 다양한 통영 식문화를 접했다면 이런 일기를 남기진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봤다. “초8일 임인(壬寅). 맑음. 공무를 본 후 아우와 멍게 부밥(비빔밥)을 먹었다. 초밥을 먹자 했지만 왜의 것이라 돌려보냈다. 아우가 밥을 남겨 장형 10대에 처했다. 부하들과 항남동에 나가 갯장어와 술을 먹었다. 제철이라 제법 살이 오르고 윤기가 도는 것이 가히 맛을 형언하기 어려웠다. 돌아온 후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통영의 맛난 음식은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에서 출발한다. 갖은 생어물과 건어물, 해조류, 젓갈로 가득하다. 넙데데한 가자미에 곰장어, 요즘 때를 맞은 갯장어가 좌판에 깔렸다. 이 모든 싱싱한 재료가 숙련된 솜씨와 만나 통영 특유의 밥상을 구성한다. 갑오징어, 감생이(감성돔), 뽈래기(볼락) 등 횟감도 좋고 슬쩍 익혀 내는 먹을거리도 수두룩하다. 시장통에는 오랜 시간 시민들에게 사랑받아 온 맛집도 많아 이곳을 순례하는 일도 참 재미가 좋다. 아침에 붕장어 대가리를 넣고 끓인 시락(시래기)국밥이나 시원한 졸복국 한 그릇으로 시작해 충무김밥과 멍게비빔밥, 간식으로 꿀빵, 마무리로 우짜(우동+짜장)까지 먹으면 몸도 마음도 포만감으로 차오른다. 저녁엔 통영 특유의 선술집 문화인 ‘다찌집’에서 신선한 재료와 함께 밤을 즐길 수 있다. 계절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상에는 푸짐하고도 다양한 안줏거리로 가득 찬다. 고둥이며 문어며 하나씩 집어 오물오물 임인년 여름의 후숙(後熟)을 즐겨 본다.통영에서의 섬 여행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앞서 미륵산에 올라 눈에 욱여넣었던 수많은 섬 중 몇 군데는 직접 다녀올 수 있다. 여행에 동기부여가 된 한산도는 무척 가깝다. 섬 안을 도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섬 해변길을 따라 걷다 제승당에 올라 한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충무공의 심정을 되새겨 볼 수 있다. 며칠 묵는다면 육지 통영과는 사뭇 다른 만지도며 욕지도, (누가 팔려고 내놓지도 않았지만) 매물도까지 두루 돌아보는 ‘섬 호핑 투어’도 가능하다. 앙증맞은 해수욕장을 품은 비진도와 내친김에 멀리 장사도까지 다녀와도 좋다. 신안섬과는 다른 풍광과 분위기가 기다린다. 통영을 여행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훑어봤다. 늠름한 거북선이 지키고 선 강구안. 특별할 것도 없는 허름한 다찌집에 앉아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 상쾌한 밤을 잔에 담아 기울인다. 오후 8시 책받침만 한 창문 틈 사이로 통영의 여름밤이 서서히 식어 가고 있다. 푸르게 짙푸르게. 놀고먹기연구소장 ■여행수첩 시락국=‘원조 시락국’. 붕장어 대가리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넣은 국 한 그릇이 하루를 살아갈 충분한 에너지를 준다. 서호시장에서 대대로 이름난 이 집은 이제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시락국 한 뚝배기를 내오면 늘어놓은 반찬을 맘껏 떠다 먹는 방식이다.졸복국=크기만 보고 무시할 게 아니다. 얼큰히 마신 후 시린 속 해장에 아주 좋다. 서호시장 ‘풍만복국’은 상호처럼 푸짐한 반찬과 함께 복국을 한 뚝배기 내준다. 존득한 살맛도 좋다. 미나리와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 낸 졸복국에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충무김밥=원래 여수~부산 여객선 승객에게 팔던 ‘뱃머리 김밥’에서 시작됐다. 맨밥을 김에 말아 꼬치에 꿰고, 호래기(참꼴뚜기)나 홍합을 졸여 섞박지와 함께 먹는 방식이다. 중간에 소를 넣지 않으니 잘 쉬지 않아 먼 길을 떠나는 배 안에서 먹기 쉽고 맛도 좋았다. 강구안 ‘엄마손김밥’이 옛날식으로 홍합과 호래기 등을 졸여 판다. 곰탕과 육회비빔밥=항남동 ‘풍전식당’. 통영에는 해산물만 있는 게 아니다. 한우 사골곰탕을 맛있게 끓이는 집이다. 구수하고 진한 곰탕이 보약 한 첩의 효과를 낸다. 신선한 육회를 올려 갖은 채소, 해초와 함께 비벼 먹는 통영식 육회비빔밥도 예술이다. 반찬도 맛있지만 곰탕이나 비빔밥 한 그릇이면 땡이다.고등어회=‘고등어와 전갱이’. 욕지도의 명물 고등어를 사철 회로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비리지 않고 고소하며 감칠맛이 감도는 횟감 고등어가 입맛을 당긴다. 두껍게 썰어 내 부드러운 살을 씹는 맛이 좋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름이 흘러 꿀떡 잘 넘어간다. 등 푸른 생선은 아무 데서나 회로 즐길 수 없기에 더욱 값지다.
  • “송혜교, 임지연도 술 먹고 얼굴 빨개지네”

    “송혜교, 임지연도 술 먹고 얼굴 빨개지네”

    배우 임지연이 송혜교와 투샷을 공개했다. 16일 임지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혜교언니랑 ‘더글로리’ 쫑파티”라는 글과 함께 근황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임지연이 송혜교를 끌어안은 채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술을 먹고 있었는지 살짝 불거진 두 사람의 얼굴이 눈길을 끈다. 한편 임지연은 새 드라마 ‘더 글로리’로 안방극장에 컴백할 예정이다. ‘더 글로리’는 건축가를 꿈꾸던 여주인공이 고등학교 시절 잔인한 학교 폭력으로 자퇴한 후 가해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아이 담임교사로 부임해 벌이는 철저하고 슬픈 복수극이다.
  • [여기는 중국] 해외에 호화 부동산 은닉에 바쁜 홍콩 고위 공직자들

    [여기는 중국] 해외에 호화 부동산 은닉에 바쁜 홍콩 고위 공직자들

    고위 공직자의 해외 부동산이나 주식 보유를 금지한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홍콩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해외 각국에 고가의 호화 부동산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홍콩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의 다수가 싱가포르, 호주,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 고가의 부동산과 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인권 단체 ‘홍콩 워치’가 확인해 공개했다고 16일 이 같이 보도했다.  이 매체는 ‘지난 11일 홍콩 정부가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22명의 해외 자산 보유 여부를 조사한 결과, 모두 해외에 어떠한 자산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홍콩 당국은 존리 새 행정장관과 홍콩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직책인 정무사 사장 천궈치, 홍콩 보안국 덩빙창 국장 등의 재산 보유 내역을 공개하며 이들이 해외에 개인 자산을 소유한 바가 없다며 고위 공직자 청렴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의 재산 내역이 공개된 직후, 인권단체 홍콩 워치와 현지 매체들은 이번에 연임한 홍콩 재경부의 쉬정위 국장과 주택국장에 새로 부임한 허용셴, 의무위생국장 노총모 등이 각각 싱가포르와 호주, 영국 등의 지역에 고가의 호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매체는 홍콩의 새 행정부 고위 공직자들 중 홍콩대 위원회 리궈장 주석과 보안국 정모즈 전 주석 등이 싱가포르와 영국 런던에 각각 두 채 이상의 호화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정협위원회 천칭루 위원은 싱가포르와 영국 런던에 두 채 이상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 헝성은행의 양가오메이 전 총재는 호주 시드니에 고가의 호화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홍콩 인권 단체 홍콩워치는 ‘홍콩 고위 공직자들이 해외에 자산을 불법 은닉하지 말라는 시 주석의 지침을 무시하고 해외에 자산을 불법으로 숨겨놓고 있다’면서 ‘그들은 한편으로는 홍콩 주민들을 억압하는데 앞장서는 중국의 앞잡이 노릇을 자청하고 뒤로는 서방 국가에 부를 은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세계 여러 국가들은 미국과 동일하게 홍콩 고위 공직자들이 해외에 은닉한 자산을 찾아, 이들의 자산 은닉을 제재해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고위 공직자를 제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시 주석은 지난 1월 당 징계 담당청에 “지도자급 고위 간부들은 반드시 가족의 규율과 윤리에 주의하라”면서 자녀 유학이나 해외 출장 등 적합한 이유 없이 고위 인사와 직계 가족들의 해외 금융 기관 계좌 개설을 금지한 바 있다. 또 지난 3월에는 이 지침을 어긴 것이 적발됐을 시 당 간부의 승진을 제한하는 강경책을 공고했다.  중국 중앙조직부가 지난 3월 공개한 내부 지침에는홍콩과 중국의 모든 고위 공직자의 배우자와 자녀가 해외에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승진 대상자에서 제외, 고위 공직자의 ㅎ해외 부동산이나 주식의 직간접적 보유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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