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부임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참전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의안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새우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항의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12
  • 왜군·반역의 땅 충의로 평정한 ‘북관대첩’ 이끌어[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왜군·반역의 땅 충의로 평정한 ‘북관대첩’ 이끌어[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1592년 5월 3일 도성을 점령한 왜군은 선조의 어가를 추격해 5월 18일 임진강을 건넜다. 이후 왜적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은 평안도 방면, 가토 기요마사의 2군은 함경도 방면으로 나뉘어 북상하게 된다. 2만명 남짓한 대군을 거느린 가토는 황해도 곡산을 거쳐 관동과 관북의 경계인 철령을 넘어 5월 27일 함경도 감영이 있는 함흥부에 무혈입성했다. 여진족과의 접경지대로 가뜩이나 조선 사회의 소외지역이던 관북지방에서는 왜군이 몰려오자 투항을 넘어 적극적으로 앞잡이 역할을 하는 세력도 없지 않았다. 이렇게 한동안 왜군과 부역자들의 차지가 됐던 관북을 되찾은 일련의 전투가 북관대첩이다. 그 중심에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가 있었다.●조부 벽서사건 영향 정치적 부침 왜란 당시 조선 왕실의 가장 큰 치욕이라면 아무래도 임해군과 순화군이 가토의 포로가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왕자는 아버지 선조의 명에 따라 근왕병 모집을 명분으로 함경도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가토가 관북에 이르자 회령의 국경인, 경성의 국세필, 명천의 정말수 등이 다투어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회령의 토관(土官) 진무(鎭撫) 국경인과 경성 아전 국세필은 7월 23일 두 왕자와 가족, 수행한 신하들을 잡아 가토에게 넘겼다. 토관이란 변방 토호를 회유하고자 관찰사나 절도사가 내린 벼슬이다. 왜적의 인질이 된 두 왕자는 함경도 고원에 갇혔다가 이듬해 부산으로 옮겨졌고, 여러 차례 석방 협상 끝에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왜란 초기 왜군은 점령지 주민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시간이 흘러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가혹한 수탈에 살육과 방화를 자행하는 본색을 되찾았지만…. 그들은 “조선 민중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지배자를 징벌하고자 왔다”면서 관곡을 나누어 주는 한편 수세(水稅)를 낮추어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더불어 “군사들의 불법행위는 엄중히 금지할 터이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 생업에 힘쓰도록 하라”고 포고했다. 특히 함경도의 왜군은 반란 세력에 일본 벼슬을 내렸으니 국경인은 판형(判刑)으로 회령을, 국경인의 숙부인 국세필은 예백(禮伯)으로 경성을 다스리게 했다. 이렇게 회령 이북은 반란세력이 장악하고, 그 이남에는 왜군이 주둔하게 된다. 왜적의 선무공작으로 함경도에는 ‘새 왕조의 도래’를 반기는 분위기조차 없지 않았다고 한다. 선조수정실록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북도 사람들은 무인 관리들의 침학에 괴로움을 당해 가장 심하게 국가를 원망했다. 그러다 왜국이 새로운 임금을 세우고 국정을 개혁한다는 유언비어를 듣고는 떠들썩하게 마음이 기울어 장수와 관리를 다투어 결박해서 적을 맞이했다.’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는 흔히 ‘장군’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는 158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문관이다. 24세로 대과 합격자 34명 가운데 두 번째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수재다. 그럼에도 첫 번째 관직은 무관에게 돌아가는 정7품 한성부 참군이었다. 이듬해 정6품 홍문관 수찬을 거쳐 같은 품계의 사간원 정언, 1590년에는 정5품의 사헌부 지평으로 잇따라 자리를 옮겼다. 세 자리 모두 국정 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청요직(淸要職)이다. 젊은 문관으로는 출세가도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럴수록 반대세력도 많아지는 법이다.하지만 왜란을 한 해 앞둔 1591년 정문부는 함경북도 병마평사(북평사)로 자리를 옮긴다. 북평사는 여진족과 마주 보는 북변의 여러 진(鎭)을 돌아보고 관리하는 정6품 무관 벼슬이다. 장래가 촉망되던 20대 문관이 갑자기 변방의 무관 자리로 떨어진 이유는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조부 정언각의 양재역 벽서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벽서사건은 1547년 9월 정언각과 이로가 양재역에서 익명의 벽서를 발견했다며 조정에 알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외척 윤원형의 소윤 세력이 세자의 외숙인 윤임의 대윤 세력을 몰아내게 된다. 산림은 이 과정에서 다수가 숙청됐지만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재기한다. 무엇보다 선조는 집권하고 사림을 중용하면서 벽서사건을 무고로 규정했다. 그러니 그 부정적 영향은 정언각의 아들 정신은 물론 손자 정문부에게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정문부가 겪은 극심한 부침(浮沈)도 이런 정치적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문부에 대한 선조실록의 박한 평가에도 이런 이유가 있다. 정문부는 4월 29일 왜적의 부산 상륙 소식을 듣는다. 이후 7월 17일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을 보좌하면서 해정창 전투를 치렀는데, 조선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군사들은 모두 흩어졌고 정문부도 간신히 목숨만 보전해 경성 해촌으로 피신했다. 정문부는 8월 1일 의병장에 추대되는데, 이 과정이 흥미롭다. 의병진에서는 당연히 종3품 종성부사 정현룡(1547~1600)에게 의병장 직을 먼저 권유했다. 하지만 정현룡이 창의대장 자리를 고사하자 정문부가 의병장이 되고 정현룡은 부장이 된 것이다. 정현룡은 정문부보다 나이도 스무 살 가까이 많은 데다 1577년 알성시 무과에 급제한 무인이다. 정문부가 그만큼 당시 모인 의병들에게 설득력 있게 창의의 명분을 설파하고 왜군을 물리칠 계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방증으로 이해하게 된다.●전공 기려 길주에 북관대첩비 선조실록은 임진년 정문부가 의병진을 이끈 상황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조수정실록에는 비교적 자세히 서술돼 있다. 수정실록 1592년 9월 1일자는 함경북도 평사 정문부가 군사를 일으켜 경성을 수복했고, 10월 1일자에는 정문부가 길주의 적병을 패배시키고 성을 포위했으며, 11월 1일자에는 역적 국경인 등을 토벌해 주륙한 공을 논하여 정문부를 통정대부로 승진시키고, 나머지는 차등 있게 관직으로 포상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1593년 1월 1일자에는 함경도 길주의 적이 성을 비워 놓고 도망치면서 결국 정문부가 관북을 평정했다고 적었다. 1707년 북평사로 부임한 최창대는 임란 당시 정문부 의병이 왜적을 함경도 전역에서 완전히 몰아낸 전공을 기리는 북관대첩비를 길주에 세웠다. 최창대는 비문에서 ‘바다에서는 이충무(이순신)의 한산대첩이 있고, 육지에서는 권원수(권율)의 행주대첩과 이월천(이정암)의 연안대첩이 있어 역사가는 그것을 기록했고, 이야기꾼은 칭송하여 마지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오히려 지위가 있어 수레와 군사들을 낼 수 있음에 힘입은 것이다. 고단하고 미약한 데서 일어나 도망하여 숨은 무리들을 분발시켜 오직 충의로써 서로 격려하여 마침내 오합지졸을 써서 전승을 거두어 한 방면을 수복한 것은 관북의 군사가 그중 으뜸이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문부는 순찰사 휘하의 현직 북평사이자 의병장이라는 독특한 지위에 있었다. 선조수정실록 1593년 1월 1일자에는 ‘순찰사 윤탁연이 조정에 공을 반대로 고했으므로 정문부가 크게 쓰이지 못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정문부가 직급이 낮은 신분으로 의병대장이라 자칭하고 순찰사에게 관문(關文)을 보냈는데, 윤탁연이 ‘평사는 마땅히 감사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꾸짖었으나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문은 동등한 관서 사이나 상급관서에서 하급관서로 보내는 문서다. 정문부는 장계도 순찰사에게 보고하지 않고 행재소에 몇 차례 직접 보내기도 했다.●이괄의 난 연루 의심받아 고문사 윤탁연(1538~1594)은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역임한 중신이다. 임진년 당시 윤탁연은 55세, 정문부는 28세였다. 윤탁연은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비치는 정문부의 자유분방함을 우려했다는 시각도 있다. 정문부는 경성을 수복한 이후 ‘대소의 병민(兵民)이 예전에 범한 죄는 문책하지 말라’며 국세필에게 이전처럼 군사를 거느리게 했다. 일정한 세력을 거느린 자를 일거에 처단할 경우 있을 수 있는 반발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역자에 대한 사면은 순찰사도 갖지 못한 국왕만의 권한이었다. 더구나 왕자들을 왜적에 넘긴 자들이었다. 윤탁연은 정문부를 의병대장에서 해임했지만, 조정은 이후 함경도 군진이 지리멸렬해지자 그를 다시 기용했다. 정문부는 훗날 이괄의 난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아 고문 끝에 죽었다.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판단력은 물론 군중을 휘어잡는 리더십에 거칠 것 없는 실천력을 갖췄던 것이 오히려 조선 사회가 정문부를 ‘위험인물’로 분류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반역 혐의는 결국 무고로 밝혀졌다. 경성 창렬사, 부령 청암사에 배향됐다. 시호는 충의(忠毅)다. 글·사진 문화재위원회 위원
  • “너흰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義로 싸운다” 곡창 연백평야 중심 연안성 혈전 사수[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너흰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義로 싸운다” 곡창 연백평야 중심 연안성 혈전 사수[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1592년 4월 14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5월 3일 한성을 점령했지만, 선조가 북쪽으로 몽진하면서 전선은 크게 확장됐다. 평안도까지 북상한 왜군은 뜻하지 않게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군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도성 이북의 가장 큰 곡창인 연백평야를 차지하는 것이 왜군에게는 절실한 과제였다. 하지만 황해도 초토사 이정암이 이끈 의병이 연백평야의 중심인 연안성을 사수하면서 왜군의 조선 침략 구상은 크게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황해도 연안은 최근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가 세워진 교동도에서 지척이다. 6·25전쟁으로 연안읍에서 피란 나온 주민들이 세웠다는 교동도 망향대에서 바다 건너 연백평야는 불과 3㎞ 거리다. 망향대에서는 멀리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이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위성사진의 연안시가지는 이제 잿빛 건물만 빽빽할 뿐 고지도에 나타난 연안읍성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몸집 가냘픈 전형적인 문관 연안성 방어전을 이끈 사류재(四留齋) 이정암(李廷·1541~1600)은 1561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전형적인 문관이다. 1587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자 스스로 서생(書生)이어서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익히지 않았다며 부임을 사양하기도 했다. 왜적이 침입하면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동래에 자신처럼 문약(文弱)한 부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을 5년이나 남겨 둔 시점이었지만, 그만큼 왜침의 분위기가 이미 고조돼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다. 이정암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1593년 1월 30일자 선조실록에 담긴 사관(史官)의 평가에 잘 드러나 있다. 이정암은 키와 몸집이 작고 가냘퍼 옷의 무게도 이기지 못할 듯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과감하며 정교하고 민첩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 누구의 말에도 동요되지 않았고 시세에 따라 오고가지 않았기에 언제나 시류에 영합하는 이들에게는 배척받았다는 것이다. 이정암과 연안의 인연은 1572년 그가 연안부사에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그는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펼쳤지만 송사 처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이정암이 연안부사로 재임한 기간에 쌓은 신뢰는 훗날 왜적이 온 나라를 휩쓸자 황해도 의병을 이끌어 줄 리더로 지역민들이 그를 떠올리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란 초기 이정암의 행적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먼저 내세우는 당대의 일반적인 우국충정(憂國衷情)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윤색되지 않은 이정암의 전쟁 대응 과정은 ‘서정일록’(西征日錄)이라는 그의 전쟁일기가 남아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 ‘서정일록’은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된 1592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10월 7일까지 156일 동안 쓰여졌다. 이정암은 정3품 당상관인 이조 참의였다. 4월 29일자에는 도순변사 신립이 충주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 전체가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적었다. 이튿날에 새벽에는 선조가 세자인 광해군과 돈의문을 나와 평양을 향해 떠났고 백관 대다수는 호종하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늙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이 걱정돼 호종하지 않은 것이었다. 5월 1일 이정암은 가족을 이끌고 개성 풍덕으로 향한다. 이정암은 5월 2일 승지 신잡과 마주쳤다. 신잡은 선조의 명을 받아 도성의 형세를 살피러 가는 길이었다. 이정암은 신잡으로부터 동생 이정형이 개성유수에 제수된 사실을 알게 됐다. 5월 3일 그는 임금이 머물고 있는 개성 행재소에 도착했다. 이때 개성유수 이정형은 선조에게 형 이정암이 이미 벼슬이 떨어졌으니 자신과 함께 임진강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하지만 이정암은 이후에도 한동안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5월 19일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이정암은 배를 구해 바닷길로 피란할 방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6월 들어 이정암의 가족은 바다가 가까운 연안부로 옮겼다. 7월 21일 생원 박춘영이 찾아와 의병을 일으키려는데 주장이 돼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이정암은 노모를 모시고 피란 갈 계책을 세웠다면서 거절했다. 그럼에도 주변 지역 의병의 요청은 이어졌고 결국 이정암은 가족을 배에 태워 강화도로 보낸 뒤 7월 26일 의병 창의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광해군이 초토사에 제수 해서지역 의병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분조(分朝)를 이끌고 있던 광해군은 이정암을 황해도 초토사에 제수한다. 이정암은 8월 4일자 ‘서정일록’에 ‘나의 본뜻은 단지 연안·배천 등의 의사들과 의병을 모아 난리를 틈타 날뛰는 도적떼나 막자는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중임을 받고 보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선조수정실록은 연안성 주변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적병은 해서의 주군(州郡)을 나누어 점거하고 있었는데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가 주민들을 유인하니 반민(叛民)이 다투어 붙좇았다. 감사와 수령은 모두 바닷가나 산속으로 숨어버리고 연안 부사도 도망했다. 정암은 전에 연안 부사로 있으면서 인애하는 덕을 폈으므로 이때 아전과 주민이 듣고 와서 모였다.’ 왜군은 전투에 앞서 이정암에게 사신을 보내 ‘작은 성으로 대군(大軍)을 이길 수 없으니 항복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정암은 ‘너희는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의(義)로 싸운다’는 글을 써서 사신에게 주었다. 당시 연안성에 들어간 의병은 1000명 미만, 왜군은 3000~4000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안성방어전의 전말은 백사 이항복이 지은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 비문에 자세히 담겼다. 1608년 세워진 연성대첩비는 북한의 보존급(준국보급) 문화재다. 전투는 의병의 기세를 꺾으려는 왜적의 심리전으로 시작됐다. ‘28일 해가 기울었을 때, 왜적이 세 겹으로 성을 포위했다. 이윽고 한 적수(賊帥)가 성 밖을 두루 살피고 성루에 접근해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매우 화려했다. 이때 문장(門將) 장응기가 화살 한 발을 쏘아 그의 가슴을 관통시켜 죽이자, 적의 사기가 몹시 떨어져 감히 함부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이정암은 좌우를 둘러보며 ‘이것은 적이 패할 징조’라고 말했다고 선조수정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9월 1일 왜적이 성벽을 기어 개미처럼 떼를 지어 오르는 것을 본 이정암이 쌓아 둔 짚더미에 앉아서 아들 이준에게 “성이 함락되거든 분신 자결해야 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감읍해 모두 힘을 합쳐 함께 싸웠다. 이렇게 4일 동안을 싸우다 보니 왜적 또한 사상자가 절반을 넘었다. 이에 사기가 크게 떨어진 왜적은 이튿날 아침 시신을 모두 불태운 뒤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옥천 의병장 조헌과 육전 최초의 승리인 양주 해유령 전투를 이끌었음에도 도망자로 지목돼 참수된 신각의 일화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591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옥천으로 돌아간 조헌은 당시 평안감사 권징과 연안부사 신각에게 글을 보내어 참호를 깊이 파고 성을 수리해 전쟁 준비를 미리 하도록 했다. 권징은 그 글을 보고 ‘황해도·평안도에 왜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 하고 웃어넘겼다고 한다. 반면 신각은 무기를 정비하고 성안으로 봇물을 끌어들여 큰 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연안성방어전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조선의 안시성 싸움’ 연안성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이정암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정암의 장계에는 “단지 어느 날 성이 포위당하고 어느 날 풀고 떠났다고만 했을 뿐 다른 말이 없었다”고 한다. 광해군은 연성대첩을 두고 “고구려의 안시성주(安市城主) 외에는 일찍이 듣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연안성전투를 ‘조선의 안시성 싸움’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비변사는 이순신의 한산대첩 예에 따라 이정암에게 상을 내릴 것을 선조에게 주청하기도 했다. 이정암의 장계에 조정에서는 “전쟁에 이기는 것도 쉽지 않지만 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암은 선무공신 2등으로 월천부원군에 추봉됐고 좌의정에 추증됐다. 무덤은 황해도 개풍군에 있다고 한다. 남쪽에는 고양시 사리현동 벽제초등학교 앞에 ‘사류재사우’가 남아 있다. 글·사진 문화재위원회 위원
  • WHO 신임 평양사무소장에 몰디브 국적 보건전문가 임명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임 평양사무소장으로 몰디브 국적의 보건전문가를 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WHO 홈페이지에 따르면 신임 평양사무소장인 아흐메드 잠시드 모하메드 박사는 지난 8월 3일자로 WHO 평양사무소장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직전까지 WHO 방글라데시 사무소 부소장으로 일했으며 지난 2019년 WHO 평양사무소장 대행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 몰디브 출신인 잠시드 소장은 인도와 영국에서 의학, 공중보건학을 공부한 뒤 2013년 인도 뉴델리의 WHO 동남아 지역사무소의 의료책임자로 WHO에 합류했다. 그는 평양사무소장 업무는 시작했으나 아직 평양에는 부임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소식통을 인용해 “그가 현재 인도에 머물면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WHO는 잠시드 소장에 대해 “의료 서비스의 보편적 보장과 주민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실시되는 1차 보건 의료를 지지한다”고 소개했다. WHO는 지난 2006년 평양에 북한 상주대표 사무소를 개설하고 대북 보건의료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 방호복 입은 무소불위 中 ‘따바이’ 짝퉁도 등장…아파트 봉쇄도 마음대로

    방호복 입은 무소불위 中 ‘따바이’ 짝퉁도 등장…아파트 봉쇄도 마음대로

    중국의 코로나19 봉쇄가 길어지면서 방호복을 입은 일선 방역요원을 사칭한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은 지난 27일 오전 중국 시안시 신구의 아파트 단지에 흰색 방호복 차림의 변 모 씨가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자신을 이 지역 방역예방통제 총 책임자로 부임한 관리자라고 소개한 변 씨가 아파트 주민 일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아파트 단지를 전면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일명 ‘따바이’로 불리는 흰색 방역 요원 차림이었다는 점에서 이 아파트 주민들 누구도 그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의심하지 못했다. 변 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방호복 차림새로 주민위원회를 통해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즉각 봉쇄와 폐쇄 조치 등의 가짜 방침을 시달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주민위원회 관계자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변 씨의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었으며, 실제로 현장에 배치됐던 다수의 ‘따바이’와 자원봉사자들 모두 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주민위원회 관계자가 변 씨의 신분을 의심하자 그는 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모여있던 주민위원회 관계자들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넘어뜨리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숫적으로 훨씬 더 많은 수의 주민위원회 관계자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따바이’ 총 책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변 씨의 사기 행각에 맞서지 못한 채 속수무책 그의 지시를 따라야 했던 셈이다. 그는 또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일부 관계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도발하는 등 일방적인 폭언, 폭행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주민위원회 관계자들은 변 씨의 지시에 따라 아파트 입구에 격리 펜스를 설치,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쇄 지침을 통보하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더욱이 이 아파트 주민들은 변 씨 보낸 봉쇄 지침 메시지를 받은 직후,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식료품 공동구매를 대량으로 진행하고, 이 지역 인근 초중고교에는 자가 격리와 온라인 학습 등과 관련 문의가 빗발치는 혼란이 빚어졌다. 하지만 이날 오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직원들이 변 씨의 방역복을 탈의시킨 뒤, 그의 신분을 확인하면서 그의 어처구니없는 ‘따바이’ 사칭 사기 사건은 일단락됐다. 관할 공안 수사 결과, 산시성 상루 출신의 32세 변 씨는 평소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인물로 따바이 사칭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앞서 수차례 절도 등의 혐의로 공안에 붙잡혔던 범죄 기록도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현재 변 씨는 형사 구금, 추가 여죄 여부를 수사 받고 있는 상태다.  
  • 프라이드, K5 그리고 쏘렌토까지 ‘1500만대’ 기아가 걸어온 길

    프라이드, K5 그리고 쏘렌토까지 ‘1500만대’ 기아가 걸어온 길

    삼륜차 ‘K-360’에서 시작해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프라이드’, 그리고 요즘 ‘아버지의 로망’으로 등극한 ‘쏘렌토’까지…. 1944년 창립해 올해로 78주년을 맞은 기아가 누적 차량 판매 대수 1500만대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8일 기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1498만 4825대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기아는 이달 초 1500만대를 돌파하며 한국 자동차 역사에 새 분기점을 빚어냈다. ‘형님’ 격인 그룹사 현대자동차가 이 기록을 세운 것은 2011년이다. K-360은 한국 최초의 삼륜 화물차다. 일본의 마쓰다와 기술 제휴를 맺고 생산한 차로, 오토바이 위에 자동차의 운전석을 결합한 모양에 뒤쪽에는 화물칸이 달려 있다. 이후 기아는 ‘T-600’ 등 주로 상용차만 제작해 판매했다.프라이드, 전설의 시작 그러다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부터로, 최초의 국산 승용차 ‘브리사’를 이때 출시했다. 특히 1987년 출시해 대성공을 거둔 프라이드를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브랜드로 떠올랐다. 프라이드에는 사연이 많다. 당시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1세대 프라이드는 가장 먼저 연간 판매 ‘10만대 클럽’에 가입했다. 1992년에는 기아 차종 가운데 역대 연간 최대 판매 기록(12만 6226대)을 세우기도 했다. 1991~1993년까지 3년 연속 10만대를 돌파하며 기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출시 이후 세대를 거듭하던 프라이드는 2017년 단종됐으나, 누적 89만대 판매로 아직 기아 전체 모델별 판매 순위 4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차그룹 편입…타이거노즈 디자인 정체성 혁신그러던 기아도 외환위기의 파고는 넘지 못하고 1997년 부도를 맞았다. 1999년 현대그룹에 인수된 뒤 현대차그룹 산하 브랜드로 거듭났다. 위기의 기아를 품은 뒤 현대차와 함께 한 지붕 밑에서 경쟁시키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것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주요 업적이기도 하다. 현재는 경영권을 이어받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5년 기아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뒤 취임 직후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K5’(수출명 옵티마) 등을 탄생시킨 것도 기아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기아의 디자인 정체성인 호랑이를 상징하는 ‘타이거노즈’도 이때 만들어졌다. 현재는 고문으로 물러난 피터 슈라이어는 은퇴 직전 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의선 회장을 “디자이너에게 ‘시간적 자유’를 준 경영자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K5는 2010년 이후 현재까지 누적 74만대로 역대 6위를 기록하고 있다. RV 시장 독보적 존재감현재 기아는 레저용 차량(RV)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프라이드, K5 등의 바톤을 이어받은 모델들은 ‘쏘렌토’, ‘카니발’ 등 레저 목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모델들이다. 올해 1~10월 국내 RV 시장 1~3위를 쏘렌토와 카니발 그리고 준중형 ‘스포티지’가 장악하고 있다. 전체 판매량 중 RV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3.6%다. 특히 지난 10월까지 3만 9538대나 팔리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경우 아직도 신차를 받기 위해서 17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아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RV 모델이 핵심 차종으로 자리잡은 만큼 높은 경쟁력으로 입지를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벤투는 고집쟁이? 본색은 변화무쌍!

    벤투는 고집쟁이? 본색은 변화무쌍!

    고집불통인 줄 알았더니 카멜레온이 따로 없었다. 본선에서 유연한 전술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인 파울루 벤투 감독이 가나전을 어떻게 운영할지 팬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한국과 우르과이의 경기에선 벤투 감독의 유연함이 드러났다. 그간 잘 쓰지 않았던 이강인(마요르카)이 후반 조커로 깜짝 투입됐고, 벤투 감독의 철학인 ‘빌드업 축구’를 위한 짧은 패스에서 벗어나 롱패스로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줄곧 빌드업 축구를 강조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축구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무력하게 상대에 패배하는 경기가 나와도 절대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며 한국 축구 역대급 재능에 속하는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는 등 “쓰는 선수만 쓴다”는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플랜 A만을 날카롭게 다듬었던 벤투 감독이기에 손흥민(토트넘)이 부상당했을 때 플랜 B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막상 뚜껑이 열린 뒤 기우였음이 증명됐다. 이강인 투입은 벤투 감독의 유연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전이 끝나고 “손흥민과 나상호(FC서울)를 지원하고 스피드를 더하기 위해 이강인을 투입했다”면서 “전반적으로 팀이 어떤 부분에서 서포트가 필요한지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차례 무너지는 경기에도 바뀌지 않던 그가 상황에 따라 유연해질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 줬다. 롱패스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짧은 패스만 가지고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원에서 좌우 측면으로, 후방에서 한 번에 전방으로 향하는 롱패스가 몇 차례 나왔다. 상대 수비수 뒤 공간을 침투하는 롱패스는 일본이 독일을 2-1로 꺾는 결승골 장면에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다. 한국도 황인범(올림피아코스)과 정우영(알사드)이 우루과이 측면 수비 뒤 공간을 노리고 길게 차면서 흐름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벤투 감독의 전술적인 유연함이 있었기에 열세로 예상됐던 우루과이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다양한 전술은 상대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 가나로서도 경기 준비를 쉽게 할 수 없게 됐다. 벤투 감독은 “한국은 전반적인 팀의 노력보다는 각각의 개별 선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저는 전반적인 팀의 성과를 생각한다”면서 “지금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가 자부심을 가지고 달리고 있다.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고집불통? ‘이강인+롱패스’ 벤투의 변신은 무죄

    고집불통? ‘이강인+롱패스’ 벤투의 변신은 무죄

    고집불통인 줄 알았더니 카멜레온이 따로 없었다. 본선에서 유연한 전술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인 파울루 벤투 감독이 가나전을 어떻게 운영할지 팬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한국과 우르과이의 경기에선 벤투 감독의 유연함이 드러났다. 그간 잘 쓰지 않았던 이강인(마요르카)이 후반 조커로 깜짝 투입됐고, 벤투 감독의 철학인 ‘빌드업 축구’를 위한 짧은 패스에서 벗어나 롱패스로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줄곧 빌드업 축구를 강조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축구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무력하게 상대에 패배하는 경기가 나와도 절대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며 한국 축구 역대급 재능에 속하는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는 등 “쓰는 선수만 쓴다”는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플랜 A만을 날카롭게 다듬었던 벤투 감독이기에 손흥민(토트넘)이 부상당했을 때 플랜 B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막상 뚜껑이 열린 뒤 기우였음이 증명됐다. 이강인 투입은 벤투 감독의 유연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전이 끝나고 “손흥민과 나상호(FC서울)를 지원하고 스피드를 더하기 위해 이강인을 투입했다”면서 “전반적으로 팀이 어떤 부분에서 서포트가 필요한지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차례 무너지는 경기에도 바뀌지 않던 그가 상황에 따라 유연해질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 줬다. 롱패스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짧은 패스만 가지고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원에서 좌우 측면으로, 후방에서 한 번에 전방으로 향하는 롱패스가 몇 차례 나왔다. 상대 수비수 뒤 공간을 침투하는 롱패스는 일본이 독일을 2-1로 꺾는 결승골 장면에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다. 한국도 황인범(올림피아코스)과 정우영(알사드)이 우루과이 측면 수비 뒤 공간을 노리고 길게 차면서 흐름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벤투 감독의 전술적인 유연함이 있었기에 열세로 예상됐던 우루과이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다양한 전술은 상대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 가나로서도 경기 준비를 쉽게 할 수 없게 됐다. 벤투 감독은 “한국은 전반적인 팀의 노력보다는 각각의 개별 선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저는 전반적인 팀의 성과를 생각한다”면서 “지금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가 자부심을 가지고 달리고 있다.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세계 최대 감리교회 일군 김선도 목사 소천

    세계 최대 감리교회 일군 김선도 목사 소천

    한국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였던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25일 소천했다. 92세.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인 고인은 1971년 광림교회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이 교회를 세계 최대 감리교회로 성장시켰다.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한 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1대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세계감리교협의회 회장, 한국월드비전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30년 태어난 고인은 6·25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징병됐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위해 북한군에서 탈출했고, 지나가던 국군에게 발견돼 5분 만에 북한 군복에서 국군 군복으로 갈아입게 된다. 김 목사의 자서전의 제목이기도 한 ‘5분의 기적’은 이 사건에서 나왔다. 광림교회는 그가 담임목사로 부임할 당시만 해도 신도 150명명이 다니는 작은 교회였다. 그는 매일 전도, 매일 성경공부를 외치며 교회를 급성장시켰다. 현 위치에 1978년 교회를 새롭게 건축해 지금의 광림교회가 됐다. 김 감독의 장례는 25~28일 기독교대한감리회장으로 4일간 교회 내 빈소에서 진행된다. 입관 예배는 26일 오전 11시, 장례 예배는 28일 오전 9시 30분 광림교회 대예배실에서 진행된다. 하관 예배는 28일 오후 12시다. 장지는 광림수도원이다.
  • 에너지 기업 횡재세… 유럽 취약층 구명줄

    에너지 기업 횡재세… 유럽 취약층 구명줄

    유럽 각국에서 올 들어 천문학적 이윤을 남긴 에너지 기업에 부과하는 횡재세(초과이득세) 열풍이 번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팍팍한 에너지 취약 계층의 구명줄로 추가 세수를 쓴다는 방침이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올해 말까지 횡재세를 도입한다. 대상 기업은 2018~2021년 평균 이익의 20% 이상을 초과한 석유·석탄·가스·정유 등 에너지 기업이다. 독일은 이들 기업으로부터 올해와 내년 초과 이익 33%를 환수하면 10억~30억 유로(약 1조 4000억~4조원)를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횡재세를 도입한 국가는 줄줄이 세율 인상에 나섰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극우 정부임에도 지난 21일 의결된 내년도 예산안 초안에서 내년 7월까지 횡재세 세율을 종전의 25%에서 35%로 인상하기로 했다. 영국 보수당 내각도 내년부터 에너지 기업에 대한 세율을 25%에서 35%로 끌어올려 약 140억 파운드(22조원)의 세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전 회원국 차원의 횡재세 부과 정책도 시행된다. EU는 횡재세를 도입하지 않은 회원국에 한해 다음달부터 화석연료 사용 기업에게서 ‘연대 기여금’으로 명명한 횡재세를 걷기로 했다. 이를 통해 EU 전체에 약 1400억 유로(198조원)의 추가 수입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으로 횡재나 다름없는 거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미국 최대 석유 기업인 엑슨모빌은 올 3분기에만 197억 달러(28조원)를 벌어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했고 셸·브리티시퍼트롤리엄(BP) 등 글로벌 기업의 수익도 역대급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횡행한 미국마저 횡재세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백악관 연설에서 이들 기업의 이익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횡재”라고 규정하며 횡재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횡재세 부과에 대해 긍정적이다. 횡재세를 통해 거둬들이는 추가 세수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지원 등에 투입돼 에너지 양극화 해소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은행과 에너지 기업에 부과한 횡재세로 대도시권 통근 열차 서비스를 무료 제공한다. 헝가리는 에너지 기업뿐 아니라 수혜 산업 전반에서 ‘초과이윤세’로 거둔 약 8000억 포린트(2조 8000억원)를 에너지 요금 안정에 활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6월 시카고 부스 경영대학원이 유럽의 경제학자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횡재세 부과에 동의했고, 반대는 17%에 불과했다. 횡재세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도 도입된 바 있다. 1차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등 최소 22개국이 기업의 과도한 이익에 세금을 부과했다. 존 반 리넨 런던정경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현재 거둔 이익은 과거의 투자나 위험을 감수한 경영 활동으로 인한 보상이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거나 대상 업종이 자의적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 “사우디 감독, 2002 세네갈 감독의 미망인과 연애 중”

    “사우디 감독, 2002 세네갈 감독의 미망인과 연애 중”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개막전에서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이긴 ‘반전의 주인공’ 세네갈과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꺾은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 축구대표팀의 기묘한 인연이 화제다. 2002년 당시 세네갈 대표팀 감독의 부인과 이번 대회 사우디 감독의 여자친구가 동일 인물이라고 영국언론 데일리메일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우디의 에르베 르나르 감독이 2013년 암으로 사망한 브루노 메추 전 세네갈 대표팀 감독의 미망인인 비비안 디에예와 연애 중이라는 것이다. 사우디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으면서 최고의 파란을 일으켰다. 브루노 메추가 이끌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세네갈 대표팀 역시 프랑스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디에예는 브루노 메추 감독의 사망 이후 에르베 르나르 감독이 모로코 대표팀 감독 부임 시절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르나르 감독은 사우디 감독 부임 이전인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모로코 대표팀을 이끌었다. 한편 세네갈 출신인 비비안 디에예는 이탈리아에서 전 남편인 메추 전 세네갈 감독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메추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르나르 감독이 모로코 대표팀을 맡은 시기에 모로코에서 스포츠 매장 사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육류수출협회,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 개최

    미국육류수출협회,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 개최

    미국육류수출협회(한국지사장 박준일)는 다음달 8일까지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 행사를 진행한다고 23일 밝혔다. 2015년과 2016년, 지난해 이어 4번째로 개최된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는 미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활용해 정통 바비큐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경험할 수 있는 미식 행사다. 미국인의 ‘소울푸드’로 불리는 ‘아메리칸 바비큐’는 고기를 훈연한 후 낮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간접열로 구워 내는 ‘로우&슬로우’ 방식으로 조리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아메리칸 바비큐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모두 사용되며, 소고기 메뉴는 브리스킷과 비프립, 돼지고기 메뉴로는 스페어립, 베이비백립, 풀드포크, 소시지가 대표적이다. 이번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는 고릴라브루잉(광안점), 더보일러스, 루트889, 립스립스립스, 문츠바베큐, 바비큐파크, 블루스모크, 스모크타운, 스모키립스, 스톤벨리 바베큐, 어반그릴 바베큐하우스, 유제이 스모크하우스(평택점과 동탄점), 카우보이그릴, 텍사스로드하우스, 피가로, 헬카우 등 손꼽히는 전국 16개 브랜드의 22개 매장이 참여한다. 이번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는 참여하는 브랜드와 매장 수를 비롯해 지역도 지난해 대비 전국구 규모로 확대돼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정통 아메리칸 바비큐를 소개하고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매장 방문, 포장, 배달 외에도, 일부 레스토랑의 경우 온라인 몰에서 밀키트로 주문해 택배로도 받아볼 수 있어 매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다양한 장소에서 아메리칸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행사 기간 동안 참여 레스토랑에서 행사 메뉴를 주문하는 고객들에게는 ‘맛밤’ 또는 ‘음료’를 증정한다. 특히, 이번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참여, 레스토랑 중 한 곳인 ‘문츠바베큐’를 직접 방문해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위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7월 부임 이후 국내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한국인들과 소통하며 미국 문화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츠바베큐에서 필립 골드버그 대사는 인기 먹방 유튜버인 히밥과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를 응원하는 콘텐츠 촬영도 함께했다. 필립 골드버그 대사의 온화함과 히밥 특유의 에너지로 아메리칸 바비큐를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촬영이 진행됐다. 미국육류수출협회 박준일 한국지사장은 “한국 소비자분들께 보다 다양한 정통 아메리칸 바비큐를 소개하고 코로나19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소상공인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번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를 준비했다”며 “방문, 포장, 배달 뿐만 아니라 택배로 받아보는 밀키트까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와 함께 여권 없이 떠나는 미국 여행을 즐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육류수출협회는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를 기념해 지큐 코리아 공식 인스타그램과 인기 팟캐스트 ‘씨네마운틴’ 인스타그램에서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 참여 브랜드의 식사권과 밀키트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2022 아메리칸 바비큐 위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 및 이벤트 정보는 미국육류수출협회 공식 소셜 미디어 채널인 ‘아메리칸 미트스토리’ 웹사이트 및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미국 ‘대통령 아들’ 앞세워 웨일스와 1-1…네덜란드는 세네갈 완파

    미국 ‘대통령 아들’ 앞세워 웨일스와 1-1…네덜란드는 세네갈 완파

    ‘대통령의 아들’ 티머시 웨아(미국)가 장군을 뒀는데 개러스 베일(웨일스)이 멍군을 놓았다. 미국과 웨일스가 카타르월드컵 첫 무승부를 합작했다. 미국은 21일(현지시간) 알라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웨일스와 1-1로 비겼다. 웨아가 전반 36분 선제골을 넣었지만, 베일이 후반 37분 직접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대회 개막 네 경기 만에 나온 무승부다. 미국은 8년 만에 오른 월드컵 무대 첫 경기에서 승점 1점을 따내는 데 그쳤다. 미국은 2014년 브라질 대회 이후 8년 만의 월드컵 16강에 도전한다. 1958년 스웨덴 대회 이후 처음이자 통산 2번째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웨일스는 첫 경기에서 극적으로 무승부를 일구며 한숨 돌렸다. 두 나라는 이날 이란을 6-2로 완파한 잉글랜드에 이어 B조 공동 2위에 자리했다. 미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소속인 크리스천 풀리식, 축구 스타 출신인 조지 웨아(56)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아들인 티머시 웨아를 최전방에 세우는 4-3-3 전술을 들고나왔다. 웨일스는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인 벤 데이비스를 수비라인에 세운 3-5-2 전술로 나섰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출신으로 현재 LAFC(미국)에서 뛰고 있는 골잡이 베일이 최전방에서 골문을 노렸다. 미국이 강한 압박과 풀리식의 간결하고 빠른 공격 전개를 앞세워 웨일스 진영을 몰아쳤다. 웨일스는 수세에 몰렸고, 좀처럼 베일에게 공을 연결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이 먼저 골문을 열었다. 전반 36분 웨아가 풀리식이 내준 침투 패스를 논스톱 오른발 땅볼 슈팅으로 마무리해 월드컵 데뷔골을 뽑았다. 웨일스 골키퍼가 빠르게 판단해 뛰쳐나갔으나 웨아의 스피드가 더 빨랐다. 조지 웨아 대통령은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불운의 스타를 꼽을 때 첫손에 꼽히곤 한다. 파리 생제르맹(PSG·프랑스), AC밀란(이탈리아) 등 유럽 명문팀에서 13시즌을 뛰며 공식전 478경기 193골을 넣은 특급 스트라이커였다. 발롱도르를 1995년에 수상했고, 같은 해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됐다. 유럽이나 남미 출신이 아닌 선수가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한 해에 받은 것은 웨아 대통령이 지금까지 유일하다. 하지만 라이베리아가 500만여명의 작은 나라인 탓에 웨아 대통령은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는데 아들이 대신 한을 푼 것이다. 그러나 후반전 중반부터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웨일스는 후반 37분 베일이 균형을 맞췄다. 베일이 에런 램지가 오른쪽에서 넘긴 컷백을 받으려 하자 미국 수비수 워커 지머먼이 백태클 파울을 저질렀다. 직접 키커로 나선 베일은 골대 오른쪽을 강하게 찔러 골망을 출렁였다. 웨일스는 전반전에 체력을 소진한 미국을 밀어붙였으나 역전골을 넣지는 못했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도하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A조 1차전에서 코디 학포(23·에인트호번)와 데이비드 클라선의 골을 엮어 2-0 완승을 거뒀다. 학포는 0-0으로 맞선 후반 39분 헤딩 선제 결승골을 터트려 팀의 승리에 앞장섰다. 프렝키 더용이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학포가 백헤딩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학포의 월드컵 데뷔전 데뷔골이다. 그는 전까지 A매치 아홉 경기에서 세 골을 넣었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유스 출신으로 2018년 1군 무대를 밟은 학포는 2020-2021시즌 공식전 29경기에서 11골(3도움), 2021-2022시즌 47경기에서 21골(15도움)을 넣으며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 시즌에는 24경기에서 13골(17도움)을 기록 중이다. 주도권을 잡은 네덜란드는 후반 54분 클라선의 쐐기골을 엮어 2-0 완승으로 승점 3을 얻어 카타르를 2-0으로 물리친 에콰도르(승점 3)와 A조 공동 선두가 됐다. 2014년 브라질 대회 이후 8년 만에 본선 무대에 복귀한 네덜란드는 1994년 미국 대회부터 시작된 월드컵 조별리그 14경기 연속 무패(11승 3무) 행진을 이어갔다. 세네갈전이 끝나고 학포는 경기 최우수선수인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Player of the Match)에 선정됐다. 지난해 8월 네덜란드 대표팀과 세 번째 동행에 나선 루이 판할 감독은 부임 후 16경기 무패(12승 4패)를 기록했다. 통계 전문 옵타에 따르면 판할 감독은 오렌지 군단을 이끌며 38승을 거둬 딕 아드보카트(37승)를 넘어 역대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 통산 최다승 기록도 새로 썼다.
  • 군기시 출신 박의장,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투입해 경주성 탈환 수훈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군기시 출신 박의장,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투입해 경주성 탈환 수훈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경주성 탈환 작전에서 조선군은 비밀 병기인 비격진천뢰로 왜적의 넋을 나가게 했다. 비격진천뢰의 실전 활용은 공세의 주역이 경주 판관 박의장(1555~1615)이라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박의장은 무과에 급제하고 병기를 제조하는 군기시(軍器寺)의 종9품 참봉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이후 군기시에서 부봉사, 봉사, 직장으로 승진하고 광흥창 주부로 나갔다가 군기시 주부로 복귀한 뒤 진해현감으로 수령 자리에 올랐다. 군기시에서 잔뼈가 굵었던 박의장은 이 새로운 무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파괴력도 잘 알고 있었다.●‘경주성 탈환 작전’은 경상좌도 되찾기 경주는 지리적으로 국토의 남과 북을 잇는 요충이다. 임진왜란 발발과 함께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의 제2군은 부산에 상륙한 뒤 울산, 경주, 영천, 상주를 거쳐 조령을 넘었다. 조선군은 초기 왜군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흩어지기 일쑤였지만 이후 전열을 정비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진다. 왜군이 휩쓸고 지나간 경상좌도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경주성 탈환 작전은 영천성 탈환 작전에 이어 경상좌도를 되찾기 위한 마스터플랜에 따른 것이었다. 전체 작전 계획을 짰을 경상좌병사 박진의 역할은 당연히 주목해야 한다. 문천회맹(文川會盟)으로 결사항전 의지를 다진 경주 의병의 분전도 기억해야 한다. 더불어 학계에서는 박진에게 가려 당시 조정에서 경주성 탈환의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경주 판관 박의장에 주목하고 있다. 신라의 옛 수도 경주는 조선시대에도 종2품 부윤(府尹)이 다스릴 만큼 위계가 높은 고장이었다. 임란 개전 당시 경주 부윤은 윤인함(1531~1597)이었다. 홍문관 부수찬, 이조 좌랑, 성균관 전적, 종부시 첨정을 지내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던 전형적 문관이었다. 조정은 왜군의 북상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경주 부윤을 무관인 강계부사 출신 변응성(1552~1616)으로 교체한다. 하지만 일찌감치 경주성이 왜군에 넘어가는 바람에 변응성은 부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 경주 부윤의 군정(軍政)보좌관 격인 판관 박의장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박의장이 종6품 진해현감에서 종5품 경주 판관에 승진 임명된 것은 왜침의 기운이 높아지던 1591년이었다. 경주 배치는 그만큼 박의장이 무관으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었다는 뜻이다.●‘난중잡록’에 朴 결정적 역할 기록 4월 13일 부산포에 왜군선단이 모습을 보이자 조선은 제승방략(制勝方略)에 따른 동원령을 내린다. ‘제승방략’이란 각 지방의 군사를 요충지로 불러 모으고 조정에서 내려보낸 장수가 이들을 통솔하는 것을 말한다. 박의장은 경주 군사를 이끌고 1차 방어선인 동래성으로 달려갔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박의장은 2차 방어선인 울산병영성으로 들어갔지만 경상좌병사 이각이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조선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성을 내줬다. 경주로 돌아간 박의장은 장기현감 이수일과 수성 의지를 다졌지만 왜적의 선봉이 접근하자 아전과 군사들이 겁에 질려 흩어져 버렸다. 왜적은 1만명이 훨씬 넘는데 수성군은 2000명에도 못 미쳤으니 경주성 방어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경주성은 4월 21일 왜적에 함락됐다. 이후의 상황은 ‘김학사(金鶴沙)가 찬한 판서 박공(朴公) 의장(毅長) 비명(碑銘) 뒤에 씀’이라는 ‘갈암집’의 글을 참고 한다. 학사 김응조(1587~1667)는 박의장의 신도비 비명을 썼는데, 산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꼽히는 갈암 이현일(1627~1704)이 훗날 보충 설명을 한 글이다. ‘공(박의장)은 끝내 (경주성을) 수비하지 못한 것을 큰 수치로 여기고 죽장현에 들어가 웅거하면서 흩어진 군병을 모으고 양식을 모아 훗날을 도모했다. 조정은 이각을 주륙(誅戮)하고, 밀양 부사 박진을 대신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삼았다. 8월에 박진이 13개 현(縣) 군사를 동원해 동도(東都·경주) 수복을 도모했으나 부산에서 올라온 적에게 요격을 당해 크게 패했다.’남쪽의 왜군 지원병에 기습을 당하면서 조선군은 안강으로 후퇴하게 된다, ‘갈암집’의 설명은 이어진다. ‘박의장이 마침내 9월 7일 결사대를 이끌고 곧바로 경주성 아래로 접근해 비격진천뢰로 공격하니, 적은 사상자가 매우 많아 놀라서 밤중에 도망쳤다. 공이 다시 이리저리 유격병을 풀어 요충지를 차단하니, 영천과 신녕의 도로가 소통된 것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제2차 경주성 전투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비격진천뢰 대목의 설명은 류성룡의 ‘징비록’이 자세하다. ‘뜰 안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를 처음 본 왜적은 신기한 듯 모여들어 이러 굴려도 보고 저리 밀어도 보는 등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포탄이 큰 소리를 내며 폭발하면서 수많은 쇳조각을 흩뜨리자 그 자리에서 서른 명이 넘게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들도 굉음에 놀라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이때부터 적은 한편으론 놀라고 한편으론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했다. 다음날이 되자 적들은 경주성을 버리고 서생포로 도망가 버렸다.’류성룡은 ‘진천뢰를 날려 보내 공격하는 방식은 예전에는 없던 병법인데, 군기시 화포장 이장손이 창안한 것이다. 진천뢰를 대완구에 넣고 쏘면 500~600보는 충분히 날아가 떨어지고, 잠시 뒤에는 저절로 폭발했다. 그런 까닭에 적은 이 무기를 가장 두려워했다’고 부연했다. ‘징비록’의 서술은 이렇게 이어진다. ‘경주성에 입성한 박진은 남아 있던 곡식 만석 남짓을 얻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박진을 가선대부로 승진시키고 권응수는 통정대부, 정대임은 예천 군수로 승진시켰다’고 했다. 박의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박의장의 공적을 배제한 제2차 경주성 전투의 서술 방식은 ‘징비록’에 이어 조선왕조실록으로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경상좌병사 박진이 안강에 주둔하고 흩어진 군사를 수합해 박의장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낮에는 성 밑에 달려 돌격해 군사의 위엄을 보이고 밤에는 산머리에다 횃불을 벌이고 포를 쏴 놀라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경주의 적이 숨어 나오지 못하다가 얼마 안 돼 성을 비우고 밤에 도망했다. 의장이 성에 들어가서 창고의 곡식을 수합하고 길도 통할 수 있게 됐다’는 대목이 보인다. 경주 판관 박의장이 총지휘관인 경상좌병사 박진의 휘하에서 경주성 탈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품계 한 번에 여섯 계단 뛰어올라 파격 박의장의 경주성 탈환 공적은 정조 시대가 돼서야 공식 사서(史書)에서 되살아났다. 1784년 정조실록은 그에게 무의(武毅)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박의장은 절도사 박진의 군사와 함께 크고 작은 전투를 50여차례나 했다. 왜구가 성을 버리고 도주하자 박의장은 마침내 동경(東京·경주)을 수복하고 성벽을 굳게 해 전후로 모두 7년 동안 적병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고, 여러 고을은 안전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아경(亞卿)에 발탁됐다’고 적었다. 아경이란 종2품 품계의 벼슬이니 경주 부윤에 발탁됐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박의장이 경주 부윤에 오른 것은 1593년 4월 300명의 군사로 왜적 2000명을 무찌른 대구 파잠 전투와 울산 군수 김태허와 왜적 50여명을 벤 울산 전투의 공적이 알려진 직후다. 종5품 경주 판관이 종2품 경주 부윤으로 승진했다는 것은 품계가 한꺼번에 여섯 단계나 뛰어올랐다는 뜻이다. 조정에서도 경주 탈환 과정에서 박의장이 올린 공적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유례없는 박의장의 초고속 승진은 이렇듯 공적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박의장의 ‘지방을 맡은 사람은 마땅히 그 땅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왜적에게 성을 빼앗겼음에도 결국 임지를 탈환했고, 이후 명군 대부대가 주둔해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부민들에게 신뢰받는 목민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경주는 전란이 끝날 때까지 울산과 부산의 왜적과 마주하는 최전선이었다. 따라서 박의장의 전공은 병자호란까지 줄곧 이어졌다. 1599년 성주목사 겸 방어사, 1600년 경상좌병사, 1601년 인동부사를 거쳐 1602년 경상좌병사·공홍도수사·경상수사에 임명됐다. 공홍도는 당시 충청도를 고쳐 부른 이름이다. 호조판서에 추증됐고, 고향 영해의 정충사와 구봉정사에 제향됐다. 글·사진 문화재위원회 위원
  • 특별함 이긴 평범함, 동천고 야구부 [웹툰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특별함 이긴 평범함, 동천고 야구부 [웹툰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우리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문장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는 토머스 에디슨의 말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에디슨은 본인이 강조한 지점은 99%의 노력이 아니라 1%의 영감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인용돼 당황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에디슨이 말하고자 한 1%의 영감, 즉 타고난 것은 무엇이기에 99%의 노력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2021년 5월부터 카카오웹툰에서 연재 중인 ‘기프트’(사진·글·그림 정이리이리)는 고등학교 야구를 배경으로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노력과 재능 가운데 우리를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말이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주인공 정민용은 동천고 야구부 감독으로 새로 부임한 전직 프로야구팀 감독이다. 민용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눈으로 슬쩍 보기만 해도 선수의 재능과 성장한계점을 알 수 있다. 그의 눈에 선수는 A부터 F까지의 등급으로 판별되며, 그 선수가 성장할 수 있는 최대 등급까지도 보인다. 그러나 이런 능력이 감독으로서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민용은 프로구단 감독에서 동천고 감독으로 좌천된 상태다. 더군다나 프로야구팀과 다르게 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아이들 모두 장래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그들의 뒤에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학부모들이 있다. 대학 진학률과 학교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은근히 부담을 주는 교장 선생님은 덤이다. 하지만 민용은 이런 주변의 기대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81개 학교, 약 1000명. 그중에 프로에 가는 인원이 한 해에 약 100명, 거기서 3년 뒤까지 프로에 남아 있는 인원은 약 10명. 여기 있는 너희들이 그 인원에 들 확률은 제로”라고 동천고 야구 선수들을 평가하며 부임 첫날부터 자기 능력을 사용해 선수들의 등급을 냉정히 나눠 버린다. 그리고 테니스부에서 발견한 SS급 재능의 소유자 차태훈을 야구부로 데려와 기존 야구부원들에게 ‘재능의 차이’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준다. 작품은 초반에 보여 준 재능이라는 ‘현실의 벽’에 맞서 동천고 아이들이 한계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 나간다. 그 과정에서 어떤 아이들은 노력하고 어떤 아이들은 절망하며 어떤 아이들은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을 경험한다. 노력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기대감 사이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변화해 나간다. 여기에 학부모들의 현실적인 사연과 다른 고교 야구팀들의 이야기까지 촘촘히 펼쳐진다.민용은 거듭 고민한다. ‘노력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면, ‘믿음도 각오도 재능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경기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더 나아가 노력하고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C등급 아이들을 보며 ‘평범함으로 특별함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과연 민용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2022년 한국 시리즈는 SSG 랜더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동천고 야구부의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다. 동천고의 레이스를 한번 지켜보시라.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삶에 대한 묵직한 고민까지, 독자들에게 ‘몸쪽 꽉 찬 돌직구’를 던져 줄 것이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
  • 교육 첫발은 소통… 은평의 ‘학구열’ 활활 [현장 행정]

    교육 첫발은 소통… 은평의 ‘학구열’ 활활 [현장 행정]

    “민선 8기 은평구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도시로의 도약이 목표입니다. 학부모님과 일선 선생님들께서 직접 알려 주시는 현장의 목소리는 교육도시 은평으로의 도약을 더 빠르게 할 것입니다.”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은 지난 3일 은평구에서 지역 내 16개 초등학교 학부모들과 마주 앉았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통안전 문제를 비롯해 시설과 환경 개선, 새드론과 코딩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진로 프로그램 등 교육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김 구청장은 “앞으로 구청이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 지역 교육과 구정이 함께 발전할 방법을 계속 고민하겠다”며 학부모들과 계속 이 같은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은평구는 이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육 현장 소통 창구 ‘학구열’(학교와 구청이 함께하는 열린 소통체계)을 마련했다. 김 구청장의 민선 8기 공약 중 하나인 교육도시로의 도약을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지난달 26일에는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새로 부임한 교장들과 함께 ‘학구열’을 진행했다. 이날 참석한 한 교장은 “구청마다 교육사업이 달라 새로운 지역 학교에 부임할 경우 구에서 진행하는 교육사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서 “이런 자리를 통해 구에서 운영하는 교육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학교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이날 학교장으로부터 건의된 구산중학교 내 노후화돼 방치된 이동식 화장실 문제를 듣고 즉시 철거를 결정해 처리하기도 했다. 김 구청장은 ‘학구열’ 제도를 발판으로 계속해서 학교 현장과의 소통의 기회를 늘려 구정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지역 내 68개 초중고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소통간담회를 비롯해 현장 요구조사 및 학교지원 모니터링을 강화해 지속적으로 지역 교육 지원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구는 내년 1~2월 학교 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한 뒤 3~11월 사이에 신규 부임 교장 간담회와 학교운영위원장 간담회를 연이어 개최한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은평형 수요자 중심 교육환경 조성 강화’(은평형 교육환경)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은평형 교육환경은 유치원 36곳을 포함해 총 104개 학교에 대해 교육경비 보조금과 수요자 참여형 공감학교 사업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총 64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수요자 참여형 공감학교 사업으로는 학교 내 유휴 공간을 학생이 직접 낸 아이디어를 활용해 도서관이나 놀이 공간 등으로 바꾸는 ‘내가 그린 공감학교’가 있다. 올해 14개 학교가 참여해 학생들의 학교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김 구청장은 “구에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와 학교를 연결해 학교를 교육공동체로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이 같은 교육공동체 조성은 안전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미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화합·구원 메신저, 윤이상만의 ‘심청’ 22년 만에 날갯짓

    화합·구원 메신저, 윤이상만의 ‘심청’ 22년 만에 날갯짓

    1972년 獨 뮌헨올림픽서 초연2000년 이후 다시 명맥 이어가 정갑균 감독 “오페라 브랜드화”유럽 무대서 줄줄이 공연 예고심봉사는 학식은 높지만 자기중심적이다. 마음의 눈까지 멀었던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진정한 눈을 뜬다. 심청의 ‘효심’을 중심으로 했던 설화와는 달리 온 나라의 병들고 소외된 자들이 구원받는 마지막 장면으로 공동체를 강조하는 등 약간의 각색을 더했다. 눈먼 이가 빛을 보고, 병자와 소외된 자가 구원받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종교 지도자의 구원을 읽는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오페라 ‘심청’이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으로 오는 18~19일 22년 만에 다시 국내 무대에 오른다. 독일 정부가 인류의 화합을 주제로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윤이상에게 위촉해 탄생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 “심오한 음향과 정밀한 설계로 동양의 신비한 정신세계를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선 윤이상이 ‘동백림(동베를린) 간첩 사건’에 휘말려 1999년에야 초연했다.2000년 이후 끊겼던 작품은 정갑균 예술감독이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부임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정 감독은 지난 10일 화상 인터뷰에서 “작품을 다시 한번 세상에 내놓아 전 세계에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면서 “대구오페라축제의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동시에 우리 오페라의 브랜드화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윤이상의 작품이어서 외국 극장 관계자들도 쉽게 마음을 열었다. 2024년 불가리아 소피아국립극장, 헝가리 에르켈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시립극장에서 공연하고, 2026년에는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정 감독은 소박하면서 현대적인 무대 연출을 통해 천상의 세계, 지상의 세계, 물속의 세계로 대표되는 공간을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다면적 공간 활용과 특수 영상으로 시간의 흐름과 공간 이동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특히 인당수에 빠진 심청의 부활을 연꽃으로 표현한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1999년 국내 초연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최승한 지휘자가 이번에도 지휘한다. 그는 “윤이상 선생은 작품에 한국적인 정신을 넣으려 무척 애를 쓰셨다”면서 “‘심청’은 우리나라의 정신을 서양악기로 표현한 작품”이라 설명했다. 성악가들에게 음악적으로 높은 역량과 도전 정신을 요구하는 작품인 만큼 소프라노 윤정난, 바리톤 제상철, 메조소프라노 최승현, 소프라노 강수연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설 계획이다.
  • 부진 황의조 대신할 벤투 카드는

    부진 황의조 대신할 벤투 카드는

    최근 부진한 황의조(올림피아코스)의 대안으로 꼽히는 조규성(전북)이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벤투호 마지막 평가전 선봉에 선다. 11일 오후 8시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서 킥오프하는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을 1시간 앞두고 공개된 한국 축구대표팀 선발 명단에 조규성이 이름을 올렸다. 조규성은 2022시즌 프로축구 K리그1 득점왕이다. 최근 부진한 황의조를 대신할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권창훈(김천 상무)과 송민규(전북)가 측면 공격을 맡고 백승호(전북)와 정우영(알사드)이 중원을 책임진다. 중앙수비수로는 김영권(울산),권경원(감바 오사카),박지수(김천 상무)가 선발 출전해 스리백 수비라인을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8월 대표팀에 부임한 벤투 감독은 2019년 9월 조지아와 평가전 등 부임 초기 경기에서 스리백을 몇 차례 가동한 적이 있을 뿐 대부분 실전에서 포백으로 경기에 임했다. 좌우 측면 수비수로는 홍철(대구)과 윤종규(서울)가 나선다. 골키퍼 장갑은 김승규(알샤바브)가 낀다.
  • LG 트윈스, ‘112승’ 좌완 차우찬 내보낸다

    LG 트윈스, ‘112승’ 좌완 차우찬 내보낸다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통산 112승을 거둔 차우찬(35)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LG는 8일 투수 차우찬, 내야수 이상호와 김호은 등 3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LG는 염경엽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2010년대 초 삼성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차우찬은 2017시즌을 앞두고 LG와 4년 최대 95억원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었다. 2017년부터 차우찬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며 LG 마운드를 지켰다. 차우찬은 2020시즌을 마치고 2년 최대 20억원의 조건에 연장 계약을 맺었지다. 하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이 반복됐다. 2020년 13경기 5승 5패에 그쳤고 지난해 5경기 2승 1패만 기록했다. 올 시즌 후반기 복귀가 기대됐지만 끝내 마운드에 서지 못한 차우찬은 결국 6년 만에 LG를 떠나게 됐다. 차우찬은 아직 현역 생활 지속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삼성에서 프로야구 무대에 데뷔한 차우찬은 457경기에 등판해 통산 112승 79패 1세이브 32홀드 평균자책점 4.51을 기록했다.
  • 세계적 광학 권위자 이병호 서울대 교수 별세

    세계적 광학 권위자 이병호 서울대 교수 별세

    광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7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58세.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전기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1994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광섬유 센서, 나노광학, 3차원 디스플레이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한 고인은 우리나라 공학자로는 처음으로 저명한 세계적 학회 4곳(IEEE, SPIE, OSA, SID)에서 석학회원으로 추대됐다. 2014년 세계광학술대회에서 최고의 광학자 1명에게 수여하는 홀로그래피 기사(HOLOKNIGHT) 작위를 받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9일 오전 9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
  • 중국 문학계에 터진 첫 ‘미투’…유명 작가가 벌인 파렴치 행각

    중국 문학계에 터진 첫 ‘미투’…유명 작가가 벌인 파렴치 행각

    양질의 문학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돼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충칭이통대 문예창작과 학장이자 유명 작가인 딩바이후이에게 낯뜨거운 성추문이 제기돼 논란이다. 중국 매체 펑파이신원은 최근 이 대학 문예창작과 학장이자 작가인 딩바이후이에게 성추문이 제기됐으며 교육자로는 매우 부적합한 직장 내 괴롭힌 신고가 접수됐다는 점에서 대학 측이 딩 씨의 모든 직책을 해임시켰다고 7일 보도했다. 중국 문학계에서는 최초로 불거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작가 딩 씨는 안후이성 출신의 유명 작가다. 그가 펴낸 매거진 중에는 ‘베이징문학’, ‘장강문학과예술’ 등이 대표적이며 장편소설로는 '제3의손', '절대놓치지않겠다', '송림1호' 등이 있다. 그는 다수의 작품을 펴낸 이력을 인정받아 제3회 중국문학경연대회에서 장편 소설상을 수상, 안칭문학60년을 빛낸 인물 중 1인으로 선정됐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충칭시 정부로부터 막대한 교육 지원금을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충칭이통대 학장으로 부임했으나 이달 초 딩 씨에게 제기된 후배 교직원에 대한 성희롱 등 성추문 혐의로 파면된 것으로 알려졌다. 딩 씨와 관련한 성추문에서 피해 교직원 A씨는 “딩 씨로부터 수차례 모욕적인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그가 일방적으로 보낸 메시지에는 노골적인 성희롱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또 “다른 직원들을 통해 여러 번 딩 씨를 만류하고 피해를 호소하며 사과할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딩 씨가 전송했던 문자 메시지 내역 등을 증거로 학교 측에 딩 씨의 파면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당 대학 측은 자체적으로 내부 조사를 벌였으며, 조사 결과 이날 오전 딩 씨에게 계약 해지 통지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특히 피해 여성 A씨 사건에서 피해자의 공개 사과의 목소리가 제기되자, 딩 씨는 오히려 더 완강한 입장을 피력하며 A씨에 대한 사내 괴롭힘을 모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외부에 피해 사실을 호소한 직후 가해자 딩 씨는 더 강하게 나를 비방하기 시작했다”고 폭로했다. 조사에 나섰던 대학 측은 딩 씨와 관련해 추가 피해를 입은 퇴직 여교사 리 모 씨의 사례를 확인, 리 씨의 경우 3개월 계약직 교사였다는 점에서 재계약 전권을 가진 딩 씨가 리 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딩 씨는 피해 여성 리 씨에게 “(자신이)요구하는 대로 응하면 나중에 부학장 자리를 줄 것”이라면서 노골적인 성희롱을 가했다. 또 그는 리 씨의 업무가 끝난 한밤중에도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리 씨는 일찍이 퇴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