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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첫 장애인 실업 스키팀 창단

    하이원리조트(대표이사 조기송)가 국내 첫 장애인 실업팀인 ‘하이원 장애인스키팀’ 창단 계획을 23일 공표했다. 지난해 창단 의사가 처음 공표(서울신문 2007년 12월10일자 29면 보도)된 지 6개월여 만의 일이다. 하이원리조트는 지난 19일 제78차 이사회에 창단 계획안을 상정, 이사진 만장일치로 창단을 결의했다. 하이원 장애인 스키팀에는 현재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크로스컨트리 종목의 임학수(시각장애 5급·20)를 비롯, 알파인의 이환경(하지절단 장애 3급·35), 한상민(소아마비 장애 1급·29), 박종석(척수마비 장애 1급·41) 등 4명의 선수와 2명의 코칭스태프로 구성돼 9월 중 창단식을 갖기로 했다. 하이원리조트의 모기업 격인 강원랜드에 부임한 2006년부터 장애인스키협회장을 맡고 있는 조기송 대표이사는 “이번 창단을 시발점으로 더 많은 기업에서 새로운 팀이 창단돼 장애인 선수들의 투지와 능력이 펼쳐지길 바라며,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다.2004년 창단된 청주시청 사격팀에 이어 2006년 강원도청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이 출범했지만 민간기업이 장애인 실업팀을 창단한 것은 여름, 겨울종목을 통틀어 처음이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한국어 가르치며 공짜로 영어 배운다

    한국어 가르치며 공짜로 영어 배운다

    ‘한국어를 가르치며 영어를 배운다.’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 교수나 유학생에게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해외 어학연수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당장 ‘영어말하기’공부에 도움이 된다. 취업할 때 이력서에 ‘경력’으로 기재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해외 어학연수와 비슷한 효과 한양대 안산캠퍼스 화학공학과 4학년 채석헌(26)씨. 그는 7월 1일부터 독일에서 온 분자생명학부 버트 비나스 교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일주일에 두 번,1시간 30분씩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 캠퍼스에서 지난 달부터 운영 중인 ‘외국인 교수의 한국어교육자원봉사자’ 프로그램이다. 자원봉사지만 사회봉사 1학점도 인정받는다. 학교 쪽은 처음엔 자원봉사자를 한명만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몰려 모두 4명을 선발했다. 의외로 인기가 높아 앞으로 새로 부임할 외국인 교수의 수요까지 고려한 조치라고 학교 쪽은 설명했다. 복학생인 채씨는 지난 겨울에도 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한국어를 1시간 가르쳐 주면,1시간은 상대방으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지난해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채씨는 외국인 학생과의 이런 ‘품앗이’ 공부가 영어말하기의 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졸업반이라 외국에 지사가 많은 건설회사에 취업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영어쓸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영어말하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교수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영어권 출신 유학생 상한가 연세대의 ‘랭귀지 익스체인지’도 비슷한 프로그램이다. 이 대학 한국어학당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과 연대 재학생을 1대 1로 맺어 준다. 쿼터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을 한해 4차례 선발한다. 외국인 유학생은 영어권 국가 말고도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어권국가 출신 유학생과 짝이 되고 싶어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다.‘영어말하기’ 실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영어권 학생과 짝을 이루지 못한 일부 학생이 “왜 등록을 일찍 했는데 영어권 학생과 매칭이 안 됐느냐.”고 호소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다. 한국어학당 관계자는 “영어권 국가에서 온 유학생은 전체 등록생의 20% 정도에 불과한 반면 한국 학생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가 유창한 유학생과 짝을 이루기를 바라기 때문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숙명여대는 ‘버디(Buddy·친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의 한국생활을 돕기 위해 재학생의 지원을 받는다. 학생들은 외국인 유학생이 공항에 도착하면 픽업해주는 것부터 시작해 지하철 타는 방법, 휴대전화 개통하는 방법, 수강신청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며 한국생활의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된다. 자원봉사인 만큼 따로 학점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나중에 교환학생에 지원할 때 자원봉사 10시간당 0.2점씩 가산점을 받는다. 이 대학 대외교류팀 관계자는 “중국·일본 등 아시아권 유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영어말하기 능력을 중요시하는 풍토 때문인지 ‘영어권 국가의 학생을 배정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해당국가 문화도 덤으로 배울 수 있어 2004년부터 운영되는 한성대의 외국인 유학생 지원프로그램인 ‘한성앰버서더’는 재학생 사이에 호응이 뜨겁다.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영어는 물론 해당 외국어를 배우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는 지원자가 10명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300여명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05년 졸업반 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성대 기획협력팀 김재희(26·여)씨는 “해당 국가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눈을 뜰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학교측서 영어학원비 지원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이 발벗고 나서기도 한다. 한성대는 국내 대학에서는 유일하게 ‘교육훈련지원 장학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 1∼4학년 동안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낸 수강료나 토익시험 비용 등에 대해 학생 한 사람에 최고 100만원까지 학교 쪽이 대신 부담해 준다.2002년 10월부터 도입한 제도다. 영어학원에 다녔다면 80%이상 출석했다는 증명서를 내거나, 토익시험을 봤다면 성적표를 제출하면 학교 쪽에서 장학금을 준다. 이 대학 취업지원팀 관계자는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키우고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면서 “지난해 11억원의 재정이 소요되긴 했지만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기숙사에서는 영어로만 대화 춘천의 강원대학교는 2006년 3월부터 영어전용기숙사인 영어생활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숙사에서는 학생들끼리 원칙적으로 영어만 써야 한다. 이를 어기고 정해진 벌점 이상을 받으면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등 엄격한 규율이 적용된다. 학생들은 월∼목요일엔 강의가 끝난 뒤 오후 6시 30분 이후부터 2시간 동안 회화수업이나 토익·팝송 스터디 등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영어생활관 관계자는 “학생들의 영어말하기 평가 점수를 학기초와 학기말로 비교하면 평균 40∼50% 이상 높아지는 등 영어실력이 뚜렷하게 향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외국어대는 50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머물고 있는 어학관 앞을 ‘외국문화의 거리’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한국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고 연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대학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유학생의 80%는 중국 출신이지만 중국어를 못하는 한국 학생이 많기 때문에 중국 학생들과도 주로 영어로 대화하는 등 자연스럽게 ‘영어말하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부고] ‘식물학 대부’ 이영노 교수

    [부고] ‘식물학 대부’ 이영노 교수

    ‘한국 식물학계의 대부’인 이영노 한국식물연구원 원장(전 이화여대 교수)이 22일 오전 5시3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88세. 평생을 한국 식물학의 명맥을 잇기 위해 몸바친 고인은 지난 5월8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이화여대 목동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20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한 그는 전주사범학교 학생 시절, 일본인 교사로부터 “식물 관찰도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은 것이 계기가 돼 전국의 산과 들녘을 헤매기 시작했다. 한때 교사생활을 했지만 식물연구의 꿈을 버리지 못해 서울대 사대 생물과에 진학했다. 이후 미국 캔자스주립대(석사), 일본 도쿄대(박사)에서 수학했고 1965년 이화여대 생물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식물학회, 식물분류학회, 난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식물연구에 매진하다가 96년부터 한국식물연구원장으로 일해왔다. 평생 150여종의 꽃과 풀에 이름을 지어줬고,2006년에는 ‘새로운 한국식물도감’(2권)을 집필해 70여년 연구성과를 후세에 남겼다. 이 책에는 한반도에 서식하는 거의 모든 식물(197과 4157종)의 사진과 설명이 담겨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관세(에너지관리공단 실장), 현세(전 대구시향 상임지휘자)씨가 있다.24일 오전 8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인한다.(02)3410-6915.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행복을 담보로 청부했던 계약득남(契約得男)

    행복을 담보로 청부했던 계약득남(契約得男)

    『자식만 낳아주면 일생을 함께 살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으로 청부임신, 자식을 낳자 그 사내는 본부인과 함께 핏줄을 훔쳐 줄행랑. 여자팔자는 뒤웅박팔자라지만 아무리 떼굴 떼굴 굴러봐야 진수렁길을 벗어나지 못한 전순희(全順姬)여인(36·가명·춘천시 조양동 237)의 씨받이 인생전말. 때늦은 후회에 가슴을 쳐 가난해도 행복했던 초혼 『차라리 자식을 데리고 가난한 대로 행상이나하며 살것을 공연히 가슴에 커다란 상처만 남겼다』면서도 달아난 임을 원망할 수 만도 없다고 그리움에 사무친 정을 주체못하는 전(全)여인은 오늘도 『내사랑 어디에』를 되뇌이며 방황하고 있다. 첫 남편은 가난과 2남1녀를 큰 재산이나 되는것처럼 유산으로 남겼고, 비록 첩살이지만 큰마누라의 공인과 협조아래 함께살던 두번째 남편은 깊은 상처를 가슴에 새겨주고 사랑의 씨앗인 자식마저 훔쳐 달아나 버려 이제는 솜처럼 나른한 심정만이 낙엽처럼 뒹굴고 있다. 첩살이란 대부분이 본처의 증오의 대상. 그러나 청부임신을 맡고 들어간 전여인의 첩살이는 떳떳했다. 전여인은 지난 67년 까지만해도 춘천 명동거리에서 「라이터」「배터리」등 행상을 하던 남편 성(成)태민씨의 아내로 가난한 셋방살이를 보금자리삼아 2남1녀를 키워오던 알뜰한 주부였다. 그러던 지난 67년 초겨울, 하늘같이 믿던 남편이 연탄「개스」중독으로 어처구니 없이 죽었다. 이때부터 전여인의 기구한 인생이 시작됐다. 남편의 죽음이 이렇게 커다란 비극을 안겨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하루 1~2천원 벌이로 집마련 3개년계획등 오붓하게 키워오던 꿈이 덧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행상 한달만에 몽땅 거덜 끈질긴 통사정에 넘어가 남편을 잃자 눈앞이 캄캄했으나 현실은 비정한 것-전여인은 식구들의 생활을 위해서 뛰기 시작했다. 남편의 행상「라이카」를 떠맡아 4식구의 여가장이 됐다. 그러나 삶이란 노력과 성실만으로 되는것이 아니었다. 기술이 없어 「라이터」기름조차 제대로 넣을줄 모르는 전여인의 「라이터」행상은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 『제가 맹초 였어요. 얼른 처분하고 다른짓을 해야하는건데』 1개월만에 거덜이 났다. 명실공히 빈주먹이 되었다. 채소행상을 했다. 춘성군 신북면 고탄리등 40~50리나 되는 깊은 산중에 찾아가 산나물을 뜯어다 삶아 팔고하여 겨우 연명했다. 전여인의 부지런함은 시장바닥에 다 알려졌다. 이웃에서 제법 큰 어물상을 하던 오명식(吳明植)씨(42·가명)가 눈독을 들였다. 69년 1월 전여인의 딱한 사연을 동정이나 하듯 단골손님이었던 춘천시 효자동2구 강(康)정례여인(53)이 재가를 하라고 권유했다. 『새파란 청상과부가 어린자식들을 데리고 살아봤자 자식덕 볼 수 있느냐. 그래도 남편하나 잘 얻어 호강하고 자식들을 가르쳐야 할것 아니냐』- 좋은 혼처가 있다고 재혼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전여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비없는 자식 기르는 것도 안타깝지만 의붓아비밑에서 자식들을 키우는 일은 더욱 못할짓 같았다.강여인은 찰거머리 처럼 끈질겼다. 할수없이 만나나 보기로 했다. 막상 만나보니 얘기는 더 엉뚱했다. 상대는 바로 이웃상점 주인인 오씨였다. 건장한 체구에 호남으로 인상이 괜찮던 남자다. 거기다 술담배도 못하는 성실한 가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본처의 양해아래 함께 살며 자식만 낳아달라는 것.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어 말도 안나오더군요. 아무리 팔자가 세기로서니 남의 철삽이를 하라고 하는데는 너무 얕잡아 보는것 같아 눈물조차 안나왔어요』 딱잘라 거절했으나 상대편도 꽤나 질겼다. “짐승 짓” 같았으나 욕심도 핏줄 앗기자 괘씸해 고발 나중에는 본부인과 함께 찾아와 애원을 하다시피 했다. 『자식만 낳아주면 평생을 함께 살겠으니 제발 적선하는 셈치고 함께 삽시다』 전남편의 자식들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씨받이라는 소리가 꼭 짐승들 하는짓 같아 어처구니 없었지만 사실이 그런걸 어쩌겠어요. 보통 첩이라면 본처를 두고 눈이 맞아 사는 것이지만 제 경우는 좀 떳떳하다고 생각했지요』 『어차피 행복하고는 담쌓은 인생』자식들이나 배곯리지 않고 키우기 위해 첩살이를 결심했다. 지난 69년2월 오씨와, 본부인 박애자(朴愛子)여인(37·가명) 그리고 전여인이 모여 3자회담을 했다. 박여인은 『내가 애를 못낳는 죄로 남편보기도 떳떳하지 못하고 혹시 남편이 변심할지도 모르니 꼭 자식을 낳아달라』고 매달렸다. 평생을 동서지간의 정을 변치 않고 보살펴 주마고도 했다. 청부임신을 결심했다. 이웃보기가 쑥스러워 그때까지 살아오던 효자동을 버리고 조양동으로 이사했다. 오씨는 1주일에 3일은 큰집에 4일은 작은집에서 머무르기로 협정도 맺었다. 오씨는 귀가때 마다 데리고 들어온 자식들을 친자식 보살피듯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전여인은 동거 2개월만에 태기가 있었다. 오씨부부는 전여인을 보물단지나 되는것 처럼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10년보다도 더 긴 10개월이 흘렀고, 전여인은 70년 2월 달같이 훤한 옥동자를 분만했다. 정말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후 생활은 꿈같았어요』 그이는 물론 하루도 거르지않고 찾아왔고 본부인 박여인은 남편이 이쪽만 편애해도 조금도 언짢은 기색없이 흐뭇해했다. 아기도 무럭무럭 자랐다. 박여인은 젖을 빨리 떼어 양쪽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기르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무척 자랑스러웠어요. 남의 대를 이어주고 또 그렇게 좋아 하는것을 볼때마다 보람을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행여 아주 뺏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단다. 오씨는 어린애를 입적시켰다. 그저 입적시킨다니 그런가보다 했단다. 그런데 오씨부부는 지난 8월20일께 아이를 빼내 어디론가 행방을 감춰버렸다. 통사정에 못이겨 첩살이를 했고 아이까지 낳아준 전여인은 끝내 씨받이로 끝나고 말았다. 오씨부부는 어느새 가산을 정리하고 이사를 해버린 것이다. 『이왕 버린 몸이니 나야 별문제지만 내 핏줄을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뺏겼으니 보고싶은 마음이야 금할수 있겠느냐』는 것이 전여인의 자식 뺏긴 슬픈 독백. 전여인은 지난 28일 춘천경찰서를 찾아 자식뺏긴 모정을 호소한후 매일 경찰을 찾아오느라 남은 자식들과의 살길조차 막연한 실정이다.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2일호 제4권 36호 통권 제 153호]
  • 쇠고기 민심 자극할까봐…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취임 보름이 지나도록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임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 문제의 여파로 보인다. 군 소식통은 19일 “샤프 사령관이 지난 3일 취임 직후 청와대에 대통령 예방 의사를 전달했으나, 아직 면담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면서 “쇠고기 협상 관련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 대통령이 미군 사령관과 만나는 모습 자체가 자칫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 대통령에게 신고를 할 구속력 있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큰 문제가 없는 한 부임 직후 인사를 하는 것은 관례나 다름없다. 특히 샤프 사령관의 마음이 조급한 것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곧 방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샤프 사령관은 부시 대통령 방한 이전에 이 대통령 예방을 완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초 샤프 사령관 취임식 참석차 방한했던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이 대통령을 예방하지 않고 출국한 것을 놓고도 쇠고기 파문 때문이라는 관측이 일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SBS ‘워싱턴DC 교육개혁’ 소개

    ‘SBS 스페셜’은 22일 오후 11시 20분 ‘공부꼴찌 워싱턴 DC 미셸 리의 교육개혁’을 방영한다.대표적인 공교육 실패 지역으로 지목받던 워싱턴 DC에 지난해 6월 교육감으로 부임한 한인 2세 미셸 리의 거침없는 교육개혁을 들여다 본다.수많은 학교와 사람을 직접 찾아 다니며 발로 뛰는 그녀의 개혁 행보를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다.
  • ‘저항적 민속학’에도 일제 흔적 많다

    ‘저항적 민속학’에도 일제 흔적 많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다. 촬영 시기는 1938년 3월5일, 촬영 장소는 경성 시내 태서관이라는 고급 식당이다. 기모노 차림의 이마무라 도모가 정중앙에 자리 잡았다. 통감부에서 근무하며 조선 민정풍속을 조사한 이마무라는 ‘조선 민속학계의 장로’로 불렸다. 이마무라를 중심으로 왼쪽엔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 아카마쓰 지조와 조선총독부 민속조사담당이자 관방민속학의 대표 인물인 무라야마 지준이, 오른쪽 바로 옆엔 ‘조선민속학의 일인자’로 일컬어지던 경성제대 교수 아키바 다카시가 차례대로 앉았다. 일본인이 상석을 채운 식사 자리엔 조선인 세 명도 함께 했다. 아키바 옆으론 해방 후 ‘신민족주의’를 주창한 손진태 보성전문학교 교수와 정인섭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무라야마의 왼쪽 옆 말석엔 조선민속학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송석하가 각각 자리했다. 식민지 조선에 부임한 네 명의 일본인과 식민 본국에서 유학한 세 명의 조선인 학자가 자아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선 지배·피지배의 이분법적 대립을 찾아 보기 힘들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사진은 남근우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가 최근 출간한 ‘조선민속학과 식민주의’(동국대 출판부 펴냄)의 문제의식을 독해하는 데도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조선민속학을 연구해온 주류적 해석은 ‘동화주의 지배담론’ 대 ‘토착주의 저항담론’의 이분법적 관점에 기초한 것이다. 일본인 학자와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민속을 연구했다면, 조선 학자들에게 민속학은 식민지 정책에 맞서는 민족주의적 저항을 의미했다는 시각이다. 저항 민속학의 선두엔 송석하와 손진태가 있었다. 남 교수는 이 같은 입장에 이견을 제시한다. 그는 ‘저항적 민속학’에 일제의 흔적이 묻어 있음을 밝힌다. 해방 후 국립민속박물관을 설립하고 금관문화훈장(1996년)을 추서받으며 실천적 문화민족주의자로 자리매김한 송석하의 ‘오락 선도론’은 민중 오락의 교화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무라야마 준지의 식민지 ‘건전 오락론’과 공명하는 대목이 많다는 주장이다. 전자가 오락을 통한 정서적 만족으로 내일을 위한 ‘정력’ 창출을 꾀했다면, 후자는 ‘반도 향토의 전통 오락을 선도해 생산력 증강을 위한 지구력을 확보하자.’고 외쳤다.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또 서울대 문리대 학장과 문교부 차관을 역임하며 민족 내부의 단결을 주창했던 손진태의 ‘신민족주의사관’ 역시 그가 식민지 시기 일제의 ‘만선사학’(滿鮮史學·만주사와 조선사가 하나란 주장)에 경도됐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고 지적한다. 만선사학은 3·1운동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가 위협을 받게 되면서 단군운동으로 상징되는 민족해방운동을 제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1927년 손진태는 일본 사학계의 권위자로 단군을 부정했던 시라토리 구라키치를 만난다. 남 교수는 시라토리와의 만남이 손진태가 학문적으로 만선사학자들의 타율사관에 가까워지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남 교수는 “한국 민속학사를 바라보는 기존의 이항 대립론적 견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자료 발굴과 실증적인 검토를 바탕으로 조선민속학의 정치성과 사상성을 짚어 보고자 했다.”고 집필 취지를 설명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김태호 지사, 선배 훈수받다

    김태호 지사, 선배 훈수받다

    “서산대사가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마라.네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고 했듯 후배 간부들도 이를 새겨 처신을 잘했으면 한다.”(윤한도 전 지사) “지사 시절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로봇으로 생각하고 부리기만 했다.”(강영수 전 지사) “우리 풍토에서는 (단체장이 부임하면) 전임자의 책상 방향이라도 바꿔야 되는 줄 안다.”(최종호 전 지사) 10일 오전 경남도청 회의실.전직 경남지사 7명과 전직 실·국장,시장·군수 등 5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젊은 도백인 김태호(46) 지사가 경남 발전의 초석을 놓은 선배들의 고견을 듣고자 마련한 자리였다.‘전직 도지사,경남도 행정동우회 임원 초청 간담회’ 형식을 취했다. 간담회에는 1970년대 중반 도백을 지낸 강영수(17대) 전 지사와 최종호(20대)·조익래(23대)·최일홍(24대)·김원석(25대)·윤한도(26대)·김혁규(27,29∼31대) 전 지사 등 7명이 참석했다. ●도시 미관·출산 장려 등 당부 간담회는 30분 넘게 이어졌다.“반풍수의 조언은 집안 망친다.”던 이들은 분위기가 익자 마이크를 2∼3번씩 잡으면서 훈수를 뒀다. 최고 연장자인 강영수(81) 전 지사는 “집안이 잘되려면 자식이 잘하고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하는데 김 지사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면서 “(재임시 직원을 부려먹었다는 말을 의식한 듯) 시,그림,음악 등에 재능있는 공무원이 많다.이들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김혁규 전 지사는 “중국 도시에서도 같은 설계로는 건축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경제가 윤택해진 오늘날 건축과 도시 디자인은 예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재임시 강조했던 도시 미관과 나무 심기에 관심을 둘 것을 당부했다.김원석 전 지사도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윤한도 전 지사는 출산율을 장려하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창원 도청시대를 열었던 최종호 전 지사는 “우리 사회는 전임자가 떠나고 나면 자리를 옆으로 치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선행은 모래에 새기고 악행은 바위에 새긴다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시작했던 일이 악행으로 기록되지 않도록 후임자들이 잘해줘 고맙다.”고 덕담을 건넸다. ●“도정 홍보대사 역할로 힘 보태겠다” 참석자들은 오후에는 2010년 완공을 목표로 경남 거제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 건설 현장을 배를 타고 돌아본 뒤 헤어졌다.문백 행정동우회장(전 창원시장)은 “현직 지사와 전직 지사,행정동우회 임원 등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도정 등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 이날 자리가 너무 뜻깊었다.”말했다. 김 지사는 “대선배들을 모신 이 자리가 시집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 부모를 모시는 자리처럼 기쁜 날”이라며 간담회 내내 깍듯한 예우를 갖췄다.그는 이어 “선배들의 조언을 디딤돌로 삼아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세계 세번째 긴 현수교… 한국관광 명소로

    세계 세번째 긴 현수교… 한국관광 명소로

    미국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있고, 한국엔 묘도∼광양 대교가 있다. 해상 교량 건설분야의 대가인 대림산업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현수교가 될 묘도∼광양간 현수교(조감도) 공사에 주간사로 참여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여수 세계박람회 개막(2012년 6월) 전에 공사를 마무리, 세계 각국의 손님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공사비 4592억원에 총연장은 2260m. 주탑과 주탑 사이의 중앙 경간(徑間) 길이는 1545m로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1624m)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길다. 국내 다리 중 주 경간 길이가 가장 긴 것은 광안대교의 현수교 구간으로 500m에 불과하다. 현재 건설 중인 교량으로는 적금∼영남대교 현수교구간(800m)이 있지만 1937년에 준공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주 경간길이 1280m)에도 크게 못 미친다. ●여수박람회 개막 맞춰 준공 묘도∼광양간 현수교의 주 경간 길이가 1545m인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년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처음 해군제독으로 부임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장군 45m 동상 건립 대림산업은 광양측의 케이블 앵커리지(케이블 지지물)를 입에서 분수를 내뿜는 거북선 용머리 모양으로 하고, 묘도쪽 현수교량 끝부분엔 이순신 장군의 45년 생애를 상징하는 45m 동상을 세워 싱가포르의 머라이언(Merlion),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에 버금가는 관광 명소로 할 계획이다. 윤태섭 현장소장은 “세계 3대 현수교인 묘도∼광양간 현수교를 100% 순수 우리 기술로 시공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 다리는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3) 떠돌이 장사치의 괴로움, 행상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3) 떠돌이 장사치의 괴로움, 행상

    나는 김홍도의 ‘부부 행상’(그림 1)을 볼 때마다 애잔한 생각이 들곤 하였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지게 작대기를 들었고, 여자는 광주리를 이고 있다. 남자의 벙거지는 낡아서 너덜거린다. 여자는 아이를 업고 있다. 희한하게도 아이는 처네로 업지 않고 옷 속에 업고 있다. 이들은 부부임이 분명하다. 남편의 지게에는 나무로 엮은 통이 얹혀 있다. 줄로 단단히 묶은 이 물건은 무엇인가, 새우젓인가? 아내의 광주리에 실린 것은 또 무엇인가, 푸성귀인가. 그리고 둘은 마주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세금 거두고 행상 면허증도 발급 ‘포구의 여자 행상들’(그림2) 역시 김홍도의 작품이다. 이 그림에 붙은 강세황의 제사는 이러하다.“밤? 게? 새우? 소금/ 광주리와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새벽녘 포구를 떠나니, 해오라기 놀라 난다.” 포구에서 이것 저것 이고 지고 도시로 행상을 떠나는 아낙네들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는 농업사회다. 농민은 정주민이다. 농토를 갈아 곡식을 심고 거두어 땅에 붙어 산다. 제 땅이 있다면 친숙한 고향을 떠나 멀리 낯설고 물선 이향을 돌아다니며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에서 잠을 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행로가 만약 반복적 일상을 벗어나 전에 보지 못했던 지리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그림 (1)의 등에 진, 광주리에 인 변변치 않은 물화를 보라. 옷차림 또한 남루하다. 제 손으로 끊지 못한 나머지 고생스레 이어야 하는 목숨을 위해 이토록 타향을 떠돈다면, 그것은 저주에 가깝다. 행상의 역사는 오래다.“달아,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머리곰 비취 오시라.”로 시작되는, 행상을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을 절절히 노래하는 ‘정읍사’는 저 아득한 옛날 백제의 노래가 아닌가. 행상은 역사 이래 없었던 적이 없었다. 조선시대에도 당연히 행상은 있었다. 하지만 떠돌이 행상이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하고, 또 면허증을 받아야 했다.‘경국대전’ 호전 잡세조에 이런 규정이 있다. 행상에게는 노인(路引·여행 허가증)을 발급해 주고 세금을 거둔다. 육상(陸商)은 매월 저화(楮貨) 8장, 수상(水商)은 대선(大船)이 100장, 중선이 50장, 소선이 30장이다. 조정에서는 행상을 등록시키고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행상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을 억제했던 것이다. 조선조의 지배층 양반들은 상행위를 아주 천한 것으로 보았다. 명종 21년 윤연(尹淵)이란 사람이 장연현감(長淵縣監)에 임명되었는데, 사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윤연은 여염의 천인(賤人)이다. 그 아비가 행상이었기 때문에 남에게 천대를 받았다. 때문에 그는 과거를 보러 가서 이름을 올릴 때 자기 아비를 적어내지 않고 아저씨 이름을 적어냈다. 이 같은 사람이 오히려 조정 반열에 끼었으니,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닌가.(‘명종실록’ 21년 6월21일). 적어도 명종 때까지는 행상을 하던 상인의 자식도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행상을 천시하는 관념은 너무나 깊었다. 그것은 유가가 원래 상업을 물질적 생산 없는 이익추구로 본 데 기인한 것이다. 행상을 천시한 것은, 그것이 또 고되고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행상은 물화를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강도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0년 윤4월10일조에 의하면, 황해도의 강도가 인가를 불태우고, 행상을 살해하며 재물을 강탈했다고 하고,‘성종실록’ 2년 11월7일조에는 행상에게 강도질을 한 죄로 개성부의 백성 최백이 등 3명이 참형을 언도받고 있다. 행상을 노리는 도둑은 조선시대 내내 존재했다. 숙종 때 관료인 민유중(1630∼1687)의 말을 들어보자. 민유중은 명화적이 민가를 약탈한 사례를 열거하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보부상 단결해 강도 재물 강탈 막아 전주의 행상 몇 사람은 정읍현에서 숙박하다가 도적의 칼에 찔렸고 그 중 한 사람은 즉사했습니다. 영남 사람은 공물을 받으러 금산 땅을 지나다가 밤에 화적을 만났는데, 한 사람이 살해되었습니다. 남원, 장수의 백성 10여명은 소금을 거래하기 위해 전주의 시장으로 가서 관문에서 10리 떨어진 들에서 묵었는데, 초저녁에 도적이 돌입하여 말 7필과 말에 실었던 재물과 포목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두 사람은 피살되고 두 사람은 다쳤습니다. 사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행상은 지극히 위험한 직업이었다. 보부상의 단결 역시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상의 활동에 대해서 전하는 자료는 드물다. 하지만 조선후기가 되면 행상이 상당한 수로 불어났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여러 자료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창협(1651∼1708)은 ‘홍천에서 인제에 이르기까지 길에서 만난 사람은 대개 과거를 치러 가는 유생이었고, 또 장사꾼으로서 영동 지방에서 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짓는다.’라 하고 “나그네 되어 대관령 동쪽 길 가노라니/ 서쪽으로 오는 사람은 많이 만나누나/ 책상자를 진 과거 칠 선비거나/ 생선을 한 바리 실은 행상들이로다.”라는 시를 쓰고 있다. 김창협은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에 동해 바다 생선을 잔뜩 실은 행상들을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사정이 꼭 같았던 것은 아니다. 남구만이 1670(현종 11)년에 올린 상소에 의하면, 충청도 청주는 배가 다니는 길과 멀어 장사할 길이 없고, 시장에는 곡식을 사고파는 행상이 없다고 하였으니, 지역에 따라 행상이 오가며 상업이 활발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던 모양이다. 양반이 상인을 천하게 여기는 풍조를 식견 있는 사람들은 비판하였다.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경우 벼슬하던 사람이 비록 재상까지 지냈다 하더라도 은퇴하면 모두 행상을 하기에 아주 가난한 데 이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대로 경상(卿相)을 지낸 집안이라 하더라도 한 번 벼슬길이 끊어지면, 자손들이 가난해져 다시 떨치지 못하여 심지어 유리걸식하는 사람이 나오기까지 하니, 단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거늘, 풍속이 같지 아니함이 이와 같다. ●상인 천시 양반들도 소금장사로 연명 정조뿐만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수원과 박제가 역시 양반이 상업을 천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양반 역시 상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한데 양반이 상행위에 뛰어든 경우도 없지 않다. 홍성민(1536∼1594)은 임진왜란 직전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간다. 이내 빈털터리가 된 그는 먹을 것을 마련할 방도가 없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바닷가의 싼 소금을 사서 곡식이 넉넉한 오랑캐 땅에다 팔아 보란다. 홍성민은 장사치가 될 수 없다며 망설이다가 주림을 참지 못하고 소금 장수를 시작한다. 한데 이 소금 장수가 재미있다. 그는 종에게 몇 되의 곡식을 주어 90리 밖의 바닷가에서 소금을 사서 함경도 북쪽 120리 길을 다니며 곡식과 바꾸어 오게 하였다. 곱이 남는 장사였다. 일시에 굶주림이 해결되었지만, 곡식이 떨어지자 종을 또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장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다가 괴로워하다가 마침내는 장사가 잘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장사하는 일이 양반인 그를 얼마나 괴롭혔던지, 급기야 때때로 혼자 허허 웃다가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도 하는 등 아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홍성민은 종을 시켜서 한 상행위에 대해서조차 더할 수 없는 치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귀양에서 풀려나면 한 사람의 착실한 농군이 되어 밭을 갈고 김을 매어 가을에 거두어서 나라에 바치고 자기 한 몸을 먹여 살리겠노라 다짐한다. 사회의 지배층이 상업에 대해 이렇게 뿌리 깊은 수치감을 갖는 사회에서 상인에 대한 처우가 어떠했을까? 상업이 발달할 수가 있었을까.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식민 일상’서 벗어나려는 알제리인들의 투쟁 기록

    프란츠 파농. 서인도 사람으로 태어났고, 서른여섯 살에 알제리 사람으로 죽었다.‘마르티니크’란 작은 화산섬의 원주민이었고, 식민 모국 프랑스로 유학 가 정신과 의사가 됐다. 훈장까지 받은 ‘자랑스러운 프랑스인’이었으나, 알제리 정신병원에 부임하면서 ‘가면 쓴´ 프랑스인임을 자각했다.‘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투사가 됐고, 알제리 독립을 앞두고 백혈병에 걸렸다. 뉴욕타임스와 르몽드는 그의 죽음을 단 한 줄 부고기사로 처리했다. 그와 그의 책은 한국에서도 오랜 시간 입에 올릴 수 없는 금기의 이름이었다. 파농은 내 속에 파고들어 내 것이 돼버린 지배자의 의식을 경계했다.“노예가 없어지면 주인도 없어진다.”고 외쳤고,“식민주의의 죽음은 피식민지배자의 죽음인 동시에 식민지배자의 죽음”임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사르트르는 “제3세계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파농을 통해서”라고 했다.‘오직 자기 자신으로 깨어나라.’고 촉구하는 파농의 탈식민주의는 프랑스 제국주의에게든 한국 독재정권에게든 위험천만한 사상이었다. ‘알제리 혁명 5년’(홍지화 옮김, 인간사랑 펴냄)은 파농이 1959년 알제리인들의 일상 속 탈식민화를 분석한 책이다. 파농의 관심은 혁명지도자가 아닌 평범한 민중이었다. 파농에겐 정치적 독립만큼 일상 속 의식의 독립이 중요했다.‘하얀 가면’(서구인)을 벗어던진 ‘검은 피부’(제3세계인)의 파농은 혁명을 겪는 동안 알제리 민중이 자기 자신의 피부색을 찾아가는 변화를 분석했다. 책은 일상화된 식민의식에 맞서 싸우는 알제리인들의 생활 투쟁기다. 늘 착용해왔고 때로는 여성 억압적 기제로 활용돼왔던 히잡이 식민주의가 강제로 벗기려 하는 순간 강력한 투쟁도구가 되고, 소일거리 도구에 불과하던 라디오가 알제리인들에게 숨가쁘게 흘러가는 독립투쟁 소식을 전하는 무기가 된다. 결혼식과 장례식의 풍경, 의약품을 둘러싼 일화 등을 통해 파농은 전쟁 도중 관찰되는 알제리 사회의 세밀한 변화를 날카롭게 묘사했다. 알제리는 그렇게 바뀌어 갔고, 파농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알제리 사람들은 1930년의 알제리인도,1954년의 알제리인도,1957년의 알제리인도 아니다. 늙은 알제리는 죽었다.” 책 출간 후 50년. 한국의 수많은 촛불에서 파농의 얼굴을 본다. 정부의 일방적 논리에 자신의 의식을 더 이상 맹목적으로 일치시키지 않는,‘하얀 가면’을 벗어던진 ‘노란 얼굴’의 파농들이 어른거린다. 알제리처럼 한국도 그렇게 바뀌고 있다.1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인터밀란, 기대되는 3가지 ‘무리뉴 효과’

    인터밀란, 기대되는 3가지 ‘무리뉴 효과’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인터밀란(이하 인테르)과 3년 계약을 맺으며 9개월간의 백수생활을 청산했다. 무리뉴는 3일 저녁(한국시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입심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여러 루머가 나돌 만큼 그의 행선지는 세간의 관심사였다.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갈등으로 비록 중도하차 했지만 그가 가진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르의 이번 무리뉴 영입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뜨겁기만 하다. 명장 무리뉴의 영입, 과연 인테르에 어떠한 효과를 불러 일으킬까? ① 드록바, 에시엔, 램퍼드…모두 인테르로? 무리뉴 영입의 가장 큰 메리트는 아무래도 그의 애제자들 영입에 있을 것이다. 과거 FC포르투에서 첼시로 부임할 당시 히카르두 카르발료와 파울로 페헤이라 등을 첼시가 손쉽게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무리뉴의 입김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첼시 시절 그가 중용했던 프랭크 램퍼드, 디디에 드록바, 마이클 에시엔 등이 무리뉴의 이동과 함께 곧바로 인테르와 연결되고 있다. 드록바의 경우 인테르 이적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으며 에시엔은 인테르의 영입대상 1순위에 올라 있다. 램퍼드 또한 첼시와의 얼마 남지 않은 계약 기간을 이용해 인테르가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상태다. ② 권태기에 빠진 인테르, 변화가 필요하다 20년 넘게 한명의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의 클럽들은 한 감독이 3년 넘게 팀을 운영할 경우 권태기에 빠지게 된다. 무적일 것만 같았던 레이카르트 감독의 바르셀로나가 3년째 접어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너져 내린 것도 바로 권태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비록 세리에A 3연패에 빛나는 인테르지만 지난 시즌 무패행진을 벌였던 때와 비교하면 올 시즌 분명 페이스가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무리뉴의 영입은 인테르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팀 리빌딩을 통한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③ ‘우물 안 개구리’ 이미지 벗어날까? 일정 부분 운이 작용하는 챔피언스리그 무대라지만 근래 세리에A에서 보여 지는 ‘포스’를 감안할 때 인테르의 2년 연속 16강 탈락은 아쉬움이 남는 점이다. 결국 그러한 아쉬움이 로베르토 만시니 전 감독의 경질로 이어졌고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라 불리는 무리뉴를 영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리뉴에게 있어 챔피언스리그는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영광의 무대다. 그는 FC포르투를 이끌고 03-04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바 있으며 첼시를 2번이나 4강에 진출시켰다. 세리에A만 벗어나면 작아지는 ‘우물 안 개구리’ 인테르, 무리뉴의 지도아래 유럽무대를 비상할 수 있을지 다음시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soccerview.ahn@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8) ‘빈자의 등불’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안광훈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8) ‘빈자의 등불’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안광훈 신부

    ‘그리스도의 대리인’, 즉 사제들은 분명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과 번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극기와, 사회정의를 위한 복례(復禮)를 사제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라 여긴다. 많은 사제들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그렇게 자신을 속박한 채 애써 덕목을 지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는 교회속 ‘그리스도의 대리인’에 안주하지 않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향해 교회 밖으로 밖으로 뛰어나가는 ‘길 위의 사제’가 적지 않다.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서울지부 안광훈(67·본명 로버트 브레넌·뉴질랜드) 신부도 ‘빈자의 등불’이 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살아가는,‘거리의 신학자’중 한 사람이다. ●“나는야 점퍼때기 거리의 신학자”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서울지부 접견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한국의 사제 17명이 살고 있지만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적막한 사제관의 맨 앞쪽 방이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신부가 나타나지 않는다. 견디기 힘든 적막에 걱정이 겹쳐 목이 탄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점퍼 차림의 신부가 불쑥 방으로 든다. 예상했던, 목에 빳빳한 로만 칼라를 두른 말쑥한 사제복 차림이 아니다.“미아동 성당 오전 미사를 주례하느라….” 미사 집전도 점퍼 차림으로 하고 내쳐 달려왔다는 말과 함께 신부가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작은 방으로 이끈다. 대면부터가 여느 사제들과는 다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전화 기술자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남2녀 중 장남. 어릴 적부터 집으로 배달되는 골롬반 선교지를 받아보며 자랐다. 별 다른 진로 걱정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골롬반 외방전교회에 입회해 신학교를 졸업한 사제. 그것이 안광훈 신부가 한국에 오기까지의 이력이다. ●30년간 한국의 달동네 전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 사제. 그런 그가 30여년간 교회 대신 한국의 달동네를 전전하며 삶의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이며 빈민들의 입과 발이 되어 울타리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택한 길이니 뚜렷한 이유와 방향이 있지 않을까. 대뜸 첫 부임지 강원도 삼척 사직동성당에서 만난 지학순 주교 이야기를 꺼낸다. “저를 가난한 탄광지대인 삼척 사직동성당으로 파견한 게 바로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였어요. 아주 활달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지요. 처음엔 어디서 그의 그런 열정과 사랑이 나오는지 몰랐는데….” 지학순 주교였다.30여년을 한결같이 달동네 전셋방을 옮겨다니며 철거민들과 함께 울고 웃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부대끼는 험한 길의 처음에는 지학순이란 인물이 있었다. 삼척에서 1년을 살고 정선본당 주임으로 산 게 무려 11년.30명이 100원씩 출연한 3000원으로 1973년 설립한 정선 신협은 지금 300억 규모로 성장해 전 강원은행 건물을 살 정도가 됐다. 지금의 정선 본당도 안 신부가 세운 성당. 초대 춘천교구장 구(具)토마스 주교가 미8군에서 얻어쓰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교인 바자회와 교구청, 본국 뉴질랜드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세운 ‘1000만원짜리’성당이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온 몸을 던져 군사정권과 독재에 맞서다 구속된 지학순 주교와 함께 했던 정선의 세월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원주 시내의 주교좌성당인 원동 성당과 공소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가며 열었던 시국관련 기도회며 미사 중 주교회의 선언문 발표 때 어김없이 지 주교의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 교회를 위한 교회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지역주민 전체를 위한 도구나 제도,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회를 위한 교회는 쓸모없다” 본격적으로 교회 밖 세상에 몸과 마음을 둔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다음해인 1981년 안양천변의 목동 철거민 투쟁 때부터. 목동 본당 주임으로 있으면서 신시가지 계획에 따라 쫓겨난 안양천변 철거민들의 아픔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목동성당 앞은 거의 논밭이었어요. 구로공단에서 흘러드는 폐수에 오염된 물로 길러낸 곡식으로 연명하는 철거민들이 가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주거권이란 말도, 보상이란 말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한 푼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내쫓긴 사람들에게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 사제로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지요.” 여기저기서 모금한 돈으로 철거민 100여가구가 모여살 만한 목화마을을 시흥에 마련한 것은 작지만 큰 보람.5년간의 목동성당 주임신부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보람 때문일까. 그의 ‘길 위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신여대 입구 부근의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6년간 맡은 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고 한다.“빈민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간곡히 전해, 받아들여졌다. 곧바로 미아6동 산동네에 전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개발 바람이 불어 1992년부터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세번을 쫓겨났고 집도 모두 헐렸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미아8동의, 네 번째 셋방인 셈이다. 집은 물론 자기 소유의 손전화도, 자동차도 단 한번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서울의 대표적 재개발지역인 달동네 미아동 지역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아니 해결해놓았다. 재개발이 되면서 쫓겨났던 미아 1·6·7동, 정릉4동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앞장선 끝에 미아6·7동 주민들을 위한 가이주단지 기금 확보를 이끌어냈다. 안 신부의 전셋방은 늘상 세입자 대책위원회가 열리는 투쟁의 중심이었다. 철거될 동네의 주민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어느 곳으로든 옮겨살겠단다. ●지금은 미아동 전셋방서 빈민운동 서울에서 제일 먼저 도시빈민 사목을 위해 세워진 선교본당인 미아1동 성당(솔샘공동체)의 초대 주임을 맡아 5년을 지낸 뒤 한국인 신부에게 자리를 물렸다. 지금은 주임 신부를 돕는, 일종의 보좌신부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미아동 주민들과 어울려 살고있다. 이런 저런 직책을 갖고 있다 보니 일주일 내내 회의의 연속이다. 하루 3∼4번씩 회의에 참석할 때도 있다고 한다. 골롬반 서울지부 재정담당, 강북구 실업자사업단·주거복지센터 대표, 삼양 주민연대 대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 서슴없이 입에 담는 타이틀만 해도 10여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가끔 본당 미사 집전도 해야 하고 주민들을 위한 성경공부도 가르쳐야 하고…. “외국인인 데도 이렇게 많은 일을 믿고 맡기는 주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재 골롬반 외방전교회에 소속된 한국인 신부 6명은 모두 안 신부의 제자. 골롬반 신학원 초대원장 시절 안 신부에게 배운 사제들이다.“골롬반 사제들은 성직주의, 관료주의, 권위주의에서 멀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만을 끝까지 생각하기를….” ●“빈민대출은행 꼭 성사시켜야죠” 신부가 아니라면 고고학자, 특히 성서고고학자가 됐을 것이라는 안 신부.“예수는 하루종일 성전에 앉아 기도하지 않았다.”며 봉사의 정신을 새겨야 할 신부들이라면 응당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아픈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배고픈 사람을 찾아가 고쳐주고 먹을 것을 주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잘못된 정치와 경제 때문에 희생되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봉사.“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변두리에 처져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가치관”이라고 거듭 말한다. 지금 안 신부가 가장 신경쓰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대출은행.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같은 성공사례들을 벤치마킹하며 가난한 주민들의 돈 걱정 줄일 생각에 흠뻑 빠져 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안광훈 신부는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생 ▲1959년 고교졸업,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입회 ▲1965년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소속 시드니 신학대 졸업, 사제 수품 ▲1966년 한국 입국 ▲1968년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 주임신부 ▲1969∼79년 정선본당 주임 ▲1981년 서울 목동성당 주임, 철거민들과 투쟁 시작 ▲1985∼91년 골롬반 신학원 원장 ▲1992년 미아5동 성당 부임, 달동네 전입 ▲현재 미아동 전셋방에 살며 빈민운동
  • “맨유 퍼거슨 감독 리더십 배워라”

    “맨유 퍼거슨 감독 리더십 배워라”

    오세철(61) 금호타이어 사장이 영국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본받으라고 임원들에게 주문해 눈길을 끌고 있다. 26일 금호타이어에 따르면 오 사장은 지난 22일 맨유의 2007∼2008시즌 ‘더블 우승(영국 프리미어리그·유럽 챔피언스리그)’ 달성에 맞춰 퍼거슨 감독의 인생을 다룬 책 ‘알렉스 퍼거슨, 열정의 화신’이라는 책을 전체 60여명의 임원들에게 전달했다. 1986년 하위권을 맴돌던 맨유에 처음 부임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끌어올린 그의 리더십이야말로 ‘2015년 세계 5위 타이어 기업’을 목표로 하는 금호타이어에 귀감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오 사장은 “그동안 퍼거슨 감독이 보여준 결단력과 계획성, 과감성과 냉철함은 위대한 지도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필수덕목”이라면서 “특히 선수 개인이 자기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그의 지도력은 회사의 비전 달성을 위해 임원들 모두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호타이어는 2007∼2008시즌부터 4년동안 맨유와 공식 스폰서 계약을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히딩크 에이전트 “첼시 감독 갈 계획없다”

    히딩크 에이전트 “첼시 감독 갈 계획없다”

    거스 히딩크 러시아 국가대표 감독측이 다음 시즌 첼시 감독을 맡을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히딩크 감독의 러시아 에이전트는 영국 일간지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이 첼시 감독으로 부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의 에이전트 반 니오이벤후이젠은 “히딩크 감독은 당초 계약대로 2010년 월드컵까지 러시아에 머물며 대표팀을 지도할 것”이라며 “첼시 부임은 물론 다른 어떤 계획도 없다.”고 모든 소문을 전면 부인했다. 첼시의 아브람 그랜트 전 감독이 경질된 이후 영국 언론들은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을 첼시의 유력한 차기 사령탑으로 꼽았다. ‘가디언’등 일부 언론은 “첼시가 히딩크 감독에게 비밀리에 감독직을 제안했다.”며 ‘물밑 접촉설’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첼시의 다음 감독으로는 히딩크 감독 외에 전임 감독이었던 조제 무리뉴(포르투갈)와 스벤 예란 에릭손 맨체스터시티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 전 바르셀로나 감독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혀 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MB 방중’ 지진에 묻히나

    ‘MB 방중’ 지진에 묻히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27∼30일 이명박(얼굴)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이 쓰촨 대지진 등으로 그 의의와 성과가 퇴색될 듯한 분위기다.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 관영 언론에 의해 먼저 조성되곤 했던 ‘분위기 띄우기’조차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취임후 첫 순방지로 중국을 선택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난 24일 1박2일의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을 떠나야 했지만, 이 대통령의 상황은 이보다 더욱 좋지 않다. ●초유의 ‘변칙 대사’ 이달 초 부임한 신임 신정승 대사는 아직 중국으로부터 신임장 제정도 받지 못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대통령 수행에 필요한 대사직을 100% 수행할 수 없는 형편이다. 관례대로라면 얼마전 권철현 주일대사처럼 정상회담을 앞두고 며칠 만에라도 이뤄졌어야 할 일. 하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재해 현장을 다니느라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다 보니, 중국이 도리어 “미안하다. 모든 대사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변칙’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분산되는 언론 관심 26∼31일은 우보슝(吳伯雄) 타이완 국민당 주석의 역사적인 방중 행사가 마련돼 있다. 지진을 계기로 동포애가 증폭되면서 양안 교류·협력에 상당한 성과가 예상된다. 중국 정부와 언론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보인다. 정상간 첫 회담일인 27일에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간의 회동까지 예정돼 외신들의 관심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도 이번주에 예정돼 있다. 특히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집중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언론의 관심이 지대하다. ●줄어드는 보따리? 이러면서 한국이 챙겨올 보따리가 자연스럽게 줄어느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진다. 예컨대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인 ‘비핵·개방 3000’에 대해 중국측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내려 했으나, 중국측은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인사는 25일 “협상이라는 게 서로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나열해 놓다 막판에 패키지 딜의 형태로 논의를 마무리하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정상회담 보름 전 지진이 발생해 이같은 숙성기간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의 불상사 등으로 빚어진 양국 국민 간의 오해와 갈등이 해소될 수 있었는데, 중국측 사정으로 그 여지가 좁아졌다.”며 아쉬움을 표했다.“실용적인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양국 국민간의 우호적인 감정을 높이는 것이 정상회담이 갖는 보이지 않는 의의”라는 얘기다.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이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인 관계로 격상되는 것이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충분한 홍보가 적어도 중국 국민에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jj@seoul.co.kr
  • [사설] 美대사 野대표에 항의전화 적절치 않다

    아무래도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가 그제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를 발언한 것이 실망스럽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는 또 민주당이 통화내용을 공개하자 “사적인 대화를 공개해 좀 놀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예의를 중시하는 외교관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대사로서 주재국 야당 대표와 대화를 갖는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다. 대사는 주재국의 주요 인사와 만나 이해를 돕고, 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높여야 하는 직업이다. 이런 점에서 버시바우 대사의 전화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대화의 내용에 따라 알맞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번 대화내용은 사적 대화 수준이 결코 아니다. 공식적인 외교활동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정부의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를 보면 대사가 주요인사와의 대화를 자국에 보고한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손학규 대표와의 대화도 문서화됐을 개연성이 높다. 버시바우 대사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신효순·심미선양이 치여 숨진 사건 이후 부임, 다양한 활동을 벌여 한국민의 호감을 많이 얻은 한국통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도를 지나쳤다는 것은 새정부 들어 무엇인가 오버할 만한 소지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지 걱정스럽다. 한·미 양국 동맹의 발전은 양국의 올바른 관계정립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점을 버시바우 대사가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싶다.
  • [프로축구] ‘김호의 대전’ 4골 폭발

    삼수(三修) 끝에 통산 200승을 이룬 여세를 몰아 김호(64) 대전 감독이 승리를 보탰다. 수원은 에두의 멋진 프리킥 결승골에 힘입어 14경기 무패(12승2무)로 팀 최다 기록을 작성했다. 김호 감독이 이끄는 프로축구 대전은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으로 공격축구의 대명사 대구FC를 불러들여 치른 하우젠컵 B조 5라운드에서 4-1 대승을 거둬 김호 감독에 201승째를 선사했다. 반면 같은 조 울산의 김정남(65) 감독은 성남의 브라질 용병 뻬드롱에게 K-리그 데뷔골을 내줘 0-1로 무릎을 꿇고 195승째에 멈춰섰다. 전반 5분 만에 박주현의 선제골로 앞서나간 대전은 22분 곽철호의 추가골로 쉽게 승기를 잡았다. 후반 24분 대구의 알렉산드로에게 추격골을 내줬지만 38분 권혁진의 프리킥골에 이어 추가시간 4분 박주현이 또다시 대회 2회골을 집어넣어 대승을 마무리했다. 변병주 대구 감독은 후반 7분 장남석과 39분 이근호를 투입하면서 반전을 노렸지만 대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3승1패로 승점 9가 된 대전은 울산을 제치고 조 선두 전북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수비의 핵 마토가 돌아왔지만 송종국, 박현범, 신영록이 부상으로 빠진 A조의 수원은 라돈치치와 보르코를 앞세운 인천의 공세에 쩔쩔매다 후반 42분 골지역 중앙에서 에두가 쏘아올린 프리킥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성남은 2005년 김학범 감독 부임 이후 홈에서 3무3패를 기록하던 울산을 맞아 처음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누렸다. 성남은 전반 14분 울산 수비수 현영민이 골키퍼 김영광에게 백패스한 것을 뻬드롱이 골지역 오른쪽에서 가로채 오른발로 강하게 때려넣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A조 2위를 달리던 부산은 56일 만에 골맛을 본 안정환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공오균과 김동찬에게 잇따라 골을 허용,1-2 역전패하고 조 3위로 미끄러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제주가 심영성과 이정호의 연속골로 2-0으로 FC서울을 제압하고 2연패 사슬을 끊었다. 제주는 2006년 3월 이후 서울 상대 1무5패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기쁨도 누렸다. 서울은 컵대회 5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며 2무3패로 인천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5위를 유지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안정환, 요르단전 예비 엔트리 35명에

    안정환, 요르단전 예비 엔트리 35명에

    이번엔 안정환(32·부산)이 태극마크를 달까. 대한축구협회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요르단과의 홈경기를 앞두고 허정무 감독이 제출한 국가대표 소집 예비명단 35명을 14일 확정, 발표했다. 올해 수원을 떠나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부산에 새 둥지를 튼 안정환이 19일 발표되는 최종명단에 들어가면 2006년 8월16일 타이완과의 아시안컵 예선 이후 무려 1년 9개월 만의 대표팀 복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해외파 7명이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고 중앙수비수 김진규(서울)가 허 감독 부임 이후 처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요르단전 최종 명단 23명은 26일 낮 12시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메이필드호텔에서 소집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으뜸교사에 학생들 왜 감동하나

    으뜸교사에 학생들 왜 감동하나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15일)이 찾아왔다. 해마다 존폐여부가 논란이 되고는 있지만, 교육현장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키는 역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선생님들의 몫이다.15일 오후 9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스승의 날 특집 프로그램 ‘사랑해요, 선생님’에서는 올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으뜸교사 수상자들의 감동사례를 다큐 드라마 형식으로 꾸민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김승만(43) 선생님은 이공계를 기피하는 세태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과학교사다. 과학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만들면서 배우는 과학교실’, 영어로 진행하는 영재들과의 맞춤과학 수업은 과학교육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이 일궈낸 결과다. 또 미국 버지니아 주정부 영재학교, 싱가포르 국립영재학교 등과 함께 협력지도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특히 물리 전공인 그는 학생들의 이공계 분야 진로지도를 잘하기 위해 35세에 카이스트 석사과정에까지 입학했다. 당시 옛 제자와 나란히 입학해 화제를 모았던 그는 무급휴직을 감행하면서도 기어이 학위를 따냈다. 인천 인일여고 김양희(46) 선생님은 20년간 국내 독서논술 교육현장을 이끌어온 ‘독서교육의 달인’이다. 실업계 고교에서는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풍토가 상식처럼 여겨지던 1990년대 초. 그는 도서관을 꾸미고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하는 독서교육에 소매를 걷어붙였다.2003년 인일여고에 부임한 뒤엔 학급마다 독서부장을 뽑아 한 달에 한번씩 독후감 발표, 토론, 논술쓰기 등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그해 인일여고가 인천지역 여고 가운데 최상위권 대학에 최다 합격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서울대 사범대 부설 여자중학교 김영선(42) 선생님은 ‘선생님들의 과외선생님’으로 통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초중고 수업지원단으로 동료교사들에게 수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수업 컨설팅’을 맡는다.18년차 국어교사인 그는 놀이방식을 도입한 ‘골든벨 방식 수업’,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의 감정곡선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감정곡선 수업’, 연극이나 노래 등으로 토론경쟁을 벌이게 하는 ‘토론 수업’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사해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사교육 시장의 난립 속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이들을 통해 우리 공교육의 희망을 찾아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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