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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화해의 신앙이어야한다(사설)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는 정말 슬프다.『가정을 돌보지 않을 만큼』종교에 빠져버린 아내를 증오하는 남편이 교회에 불을 질러 열네명이나 되는 생목숨을 불태우고 숱한 부상자를 냈다.자기 죄에 자신도 놀라 회한에 찬 「범인」과 그 아내의 「종교」가 지은 허물에 모골이 송연해진다.「착한 주부」였던 아내가 가정도 가족도 팽개치고 이런 결과를 초래하도록 섬기기를 요구하는 하느님이,우리 모두 알고 있고 또 많은 인간이 사랑하며 구원을 바라는 하느님과 바로 같은 하느님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내의 신앙생활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이런 끔찍한 짓을 한 남편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그러나 이 사건은,오늘의 우리 종교계가 예감시키던 어떤 불길을 적중시킨 것 같아 우리를 더욱 우울하고 불행하게 한다.맹목적이고 광신적으로 팽창해가는 교세들과 그 확장을 위해 물불 가리지않는 선교방법,종교간의 비방과 경쟁으로 벌어지는 분란,상업화로 치닫고 집단이기주의로 경직돼가는 파당성들이,사려있는 사람들에게 종교혐오증까지 유발해 왔다.종말론이라는 해괴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증세까지 만연시켜 공권력까지 동원시키고 있다.그런 가운데서 벌어진 이 방화살인은,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집대성처럼 생각된다. 무릇 종교란 사랑과 화해가 본체다.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효를 알며 자애로써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종교의 가르침이다.그런 본체를 왜곡시켜 극단적이고 편파적이며 자의적인 방법으로 미망에 빠지게 하여 그 본래의 의미를 무너뜨리는 종교들이 횡행하더니 그것이 불행의 씨가 되었다.이 비종교적인 결과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묻는다. 한 가족구성원이 종교를 갖는 일로 가정에 적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부부가 종교를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종교가 도덕적 신뢰를 갖게하는 정도의 기여는 반드시 할 수 있어야 옳다.종교에 의해 진선미의 변화를 실증하지 못하는 신앙은 의미가 없다.남편으로 하여금 증오에 불타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늪에 빠지게 한,그런 변화밖에 부르지 못했다면 그 종교지도자는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모든 종교의 성직자들은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이 신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늘 성찰해야 한다. 타락하고 이기적인 심성이 종교에까지 침투하여 전문 사기꾼보다 더한 방법으로 신앙을 악용하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종교생활을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해 사려깊어야 한다.당치도 않은 개인 기복으로 환상을 조장하고 혹세무민을 일삼는 종교와 광신이 들끓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중요한 일은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도 국가와 사회와 가정이 부정되는 극단적인 신앙은 수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그런 종교가 부를 수 있는 비극에 대해서는,종교자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미구에 다가온다.그것을 다 함께 성찰할 계기가 지금이라고도 생각한다.이미 죄지은 이를 단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같은 악운이 거듭되지 않도록 모든 성직자와 신도는 바로 지금부터라도 노력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 예배중 교회방화… 14명 사망/지적공사 직원

    ◎부인 「여화와의 증인」 심취 불만/“아내 내놓아라” 거부하자 격분/출입문에 휘발유 붓고 불질러/원주 왕국회관/2층에 출구 비좁아 큰 피해… 36명 부상 【원주=정호성·김민수·박현갑·조한종기자】 부인의 종교활동에 불만을 품은 30대 회사원이 예배중인 교회 건물에 불을 질러 14명이 숨지고 36명이 부상을 입었다. 4일 하오2시35분쯤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74의 8 「여호와의 증인」교회인 「왕국회관」에서 원언식씨(35·지적공사 원주출장소 직원·원주시 태장2동 광의아파트 102동503호)가 교회 출입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 정태용씨(59·원주시 우산동 우산아파트 9동 105호)부부등 14명이 불에 타 숨지고 36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숨진 사람가운데 김형태씨(57)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해 하오8시쯤 숨졌다. 원씨는 이날 하오2시쯤 술에 취한채 「왕국회관」에 찾아와 부인 신성숙씨(33)를 내놓으라며 소란을 피우다 신씨가 나오지 않자 휘발유를 출입문에 뿌리고 불을 질렀다. 불은 교회 바닥에깔린 카페펫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으며 당시 교회안에서 예배를 보던 신도 90여명은 황급히 대피했으나 일시에 출입문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현장에서 10여명이 숨지는등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2층인 교회에서 건물밖으로 뛰어내리다 중상을 입었다. 원씨는 범행후 경찰에서 『아내에게 「여호와의 증인」에 나가지 말라고 만류했으나 말을 듣지 않아 교회로 찾아가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원씨는 불을 지른뒤 경찰에 자수했다. 사망자들은 원주기독병원에 안치됐으며 부상자들은 원주시내 원주의회원·원주기독병원·연세병원등에 분산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한편 원씨의 부인 신씨는 방화 당시 교회 안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사건후 행방을 감추어 경찰이 행방을 찾고있다.
  • 50대신도,수혈거부… 끝내 사망/「여호와의 증인」 교회 방화

    ◎90여명 주일예배중 횡액/교회내부엔 유리파편·핏자국만/피해자 가족들,울음도 잊고 망연자실 【원주=정호성·김민수·박현갑·조한종】 부부간의 종교갈등이 끝내 참극을 빚었다. 4일 하오2시30분쯤 원언식씨(35·강원도 원주시 태장2동 광의아파트 102동 505호)가 술을 마시고 아내가 다니던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74의8 「여호와의 증인」교회에 불을 질러 신도 14명이 숨지고 36명이 중화상을 입었다.병원으로 옮겨졌던 부상신도들 가운데 14명은 이날 하오 귀가했다. 화상을 입은 김형태씨(51·원주시 일산동 일산아파트 5동211호)는 기독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 수혈을 거부,끝내 숨졌다. 불이 나자 20여평크기의 교회내부는 신도들이 출입문쪽으로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이뤘으며 부상자들은 유리창을 깨고 1층으로 뛰어내리다 대부분 다쳤다. 원씨는 경찰에서 『아내가 이단시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을 믿으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아 불을 질렀으며 이처럼 엄청난 사상자를 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고순간◁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극은 원씨가 이날 하오2시35분쯤 2층 예배당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원씨는 『정주엄마를 내놓아라』고 외치면서 나무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러나 안에서 예배를 보던 김영상장로(47)등 신도90여명 가운데서 한사람이 『그런 사람은 여기없다』고 하자 원씨는 미리 준비해간 10ℓ짜리 휘발유통을 출입구 앞바닥에 뿌린뒤 『가정보다 종교가 중요하냐』면서 라이터로 불을 붙여 예배당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불이 나자 신도들 가운데 제단쪽에 모여있던 장동규군(17)등 13명은 미처 불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숨졌다. 한편 뒤편에 앉아있던 나머지 신도들은 동신공업사 차고지쪽을 향해 나 있는 옆문을 통해 빠져나와 화를 면했다. ▷범인 주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원씨 동료들은 원씨가 자수성가형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뒤 71년 지적공사에 들어간 원씨는 방송통신고를 졸업했으며 87년 대졸자들이 딸 수 있는 지적기사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부인 신성숙씨와는 오랜 연애끝에 결혼,금슬이 좋았으나 부인이 7개월전부터 「여호와의 증인」교회에 다니면서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 보스니아에 또 대규모 포격전/50여명 사상… 극도 혼미

    ◎비행금지구역 반발/세르비아계 평화회담 불참 경고 【사라예보 AFP AP 연합】 세르비아계와 회교도 등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교전당사자들은 일부 중화기를 유엔감시하에 두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수도 사라예보 중심가에서 14일 대규모 포격전을 동반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최소한 4명이 숨지고 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와 함께 보스니아 영토의 3분의2를 장악하고 있는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이날 국제사회가 세르비아 항공기들의 보스니아 영공비행을 금지할 경우 오는 18일로 예정된 제네바 평화회담에 불참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보스니아사태는 극도의 혼미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라예보 라디오방송은 이날 세르비아 민병대측이 대포의 지원하에 보병부대를 동원,전면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밝히고 이번 공격으로 적어도 5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으나 병원측은 최소한 4명이 숨지고 5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확인했다. 사라예보 외곽에 포진한 세르비아 민병대측은 이날 페로 코소리치 광장에 집결한 보스니아 병력에 맹렬한 포격을 가했으며 사라예보 주거지역에도 포탄이 떨어졌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추석연휴 윤화 줄었다/전년비 14%/3천여건… 1백55명 사망

    추석귀성이 시작된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동안 전국에서 모두 3천1백80건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일어나 1백55명이 숨지고 3천9백52명이 다친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사고건수는 14%,사망자는 35.4%,부상자는 20.5%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사고가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은 귀성·귀향길 통행량이 지난 해보다 20% 가량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교통질서의식이 높아져 중앙선침범,끼어들기,갓길사고등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은 이번 추석연휴에 일어난 사고가 대부분 초보운전자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 니카라과에 강진 8백명 사망·실종/지진에 해일 겹쳐

    【마나과 DPA AFP AP 연합】 니카라과 연안 바다에서 1일 하오 7시쯤(한국시간 2일 상오9시)리히터 지진계로 강도 7.2를 기록한 강진이 발생한데 이어 이 지진의 영향으로 태평양 연안에 해일이 엄습,약 1백명이 사망하고 7백여명이 실종되는등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 마나과에서 남서쪽으로 1백20㎞ 떨어진 해저를 진앙지로 하는 이번 지진의 여파로 일어난 해일은 니카라과 태평양 연안지역의 약2백㎞를 휩쓸었으며 지금까지 사망 및 실종자를 제외한 부상자만도 약 3백명에 이르러 앞으로 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 보스니아 내전 격화/한달새 최대규모

    ◎대통령 집무실 불타/2백여명 사상 【사라예보·자그레브 AP 로이터 AFP UPI 연합】 영국의 구호물자 수송기가 위협사격을 받은 뒤 이틀동안 폐쇄됐던 사라예보 공항이 20일 재개됐으나,사라예보 중심부에서는 한달만의 최대 포격전이 벌어져 대통령 집무실이 불타고 하룻동안 41명의 사망자와 2백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보스니아 내전당사자들이 모든 중화기를 유엔 감독하에 두기로 합의한지 하루만인 이날 사라예보 시내에는 박격포와 로켓탄이 비오듯 퍼부어지는 가운데 보스니아 정부 청사를 비롯,의회와 주요 병원등이 불길에 휩싸였다. 크로아티아 TV는 이날 저녁 20층짜리 보스니아 정부 청사가 화염에 휩싸인 장면을 방영하면서 『정부청사가 3발의 대형 포탄에 명중됐다』고 보도했다.
  • 여의도 현장검증/택시광란질주 사건

    지난 16일에 일어났던 서울 여의도광장 택시질주사건 현장검증이 18일 하오 2시30분부터 30여분동안 사고현장에서 실시됐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송관호검사의 지휘아래 진행된 이날 현장검증에서 범인 이봉주씨(36)는 포승에 묶여 황성경양(12)등을 택시로 들이받은 뒤 달아나는 첫번째 범행과 여의도광장 주변을 한바퀴 돌아와 사고현장을 구경하던 시민들에게 다시 돌진,15명의 부상자를 낸 두번째 범행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씨는 이날 『세상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는 등 범행동기를 횡설수설했던 범행직후와는 달리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검증에 응했다.
  • 외언내언

    「붉은 자본주의」란 말이 가능할지 모르겠다.정치는 사회주의,경제는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중국로선을 두고 일본매스컴이 붙인 이름이다.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도 당초는 바로 이 「붉은 자본주의」를 꿈꾸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공산당주도의 자본주의도입을 통한 북구식 민주사회주의의 건설이었다는것.◆그것이 무참한 실패로 끝나 구소련이 붕괴되고 고르비는 퇴장당한 것이 지난 연말이었다.러시아를 비롯한 각공화국들이 본격 자본주의 실험을 시작했으나 그역시 아직은 진통의 국면.등소평의 중국식 「붉은 자본주의」는 성공할 것인가.키신저는 그럴거라 낙관했다지만 지금은 그것이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다.◆89년의 천안문사건이후 움츠려만 들던 중국의 자본주의화개혁이 다시 기지개를 켠것은 지난1월 등의 「남순강화」때부터다.개혁이 가속화되었으며 현추세대로라면 중국의 개혁은 곧 안정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이런 시점의 8일,중국개혁의 메카로 통하는 심수의 증시폭발인 것이다.◆중국의 「붉은 자본주의」실험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공급부족에 수요폭발이 중국의 주가를 6개월에 5배나 올려놓았다.한때 우리 증시의 과열을 무색케한다.사기만 하면 그자리서 10배가 오른다는 신규50만주 발매에 중국판 투기꾼의 「황오당」등 일확천금을 노린 1백만인파가 전국서 몰려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경찰이 출동,최루탄·물대포에 공포까지 동원해야 하는 시위폭동사태.수백명의 부상자에 사망자까지 났다는 보도다.「돈이 뭐길래」의 탄식이 나올법하다.수세에 몰린 보수파의 좋은 반격자료가 될것이란 우려도 있다.그러나 돈벌겠다는 것은 자본주의정신의 기본.중국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중요한 것은 그런 자본주의심이를 어떻게 경제개혁으로 잘 승화시키느냐는 것이 아니겠는가.
  • 전국 교통경찰에 구급법 교육

    ◎경찰청 3,600여명에 지혈등 6개분야/사고현장 인명구조요원으로 활동/내년엔 외근 결찰까지 확대키로 경찰청은 7일 교통사고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직접 부상자를 응급조치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전국의 교통경찰관 3천6백56명에게 응급조치법을 교육하기로 했다. 대한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아 이달말까지 실시할 응급조치법교육은 심폐소생술·지혈·화상·골절상 등 6개분야이며 교육대상은 순찰차요원 1천2백78명·사고조사요원 1천3백37명·사이드카요원 5백78명·수신호요원 4백63명 등이다. 경찰은 교육을 마친 경찰관에게는 대한적십자사가 발행하는 교육수료증을 주어 인명구조요원으로 활용하고 내년부터 이같은 교육을 모든 외근경찰에게 확대실시할 방침이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교통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경찰이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되면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 포화속 단전·단수… 보스니아는 생지옥/탈출이민이 밝힌 유고참상

    ◎가족·재산잃고 맨몸으로 독일행열차에/5천여 부녀자·노약자등 전화에 치떨어 내전중인 유고서 처음으로 서구로 집단 소개돼 일행 1백10명과 함께 28일 아침 베를린중앙역에 도착한 보스니아 난민 슈테판 부릭씨(55)는 허탈과 안도감이 교차되는 그런 표정이었다.보스니아의 보산스키 보니시 근교에서 농사를 짓다 내전으로 아들과 동생 그리고 모든 재산을 빼앗긴채 딸과 부인만을 데리고 맨몸으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부릭씨는 유고내전의 참상과 탈출순간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세르비아군은 보니시 주택에 큰 피해를 주지않는 선에서 사격을 가해 주민들이 시동쪽에 몰리게 만들었다.그들이 노리는 것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주려는 것보다 회교도를 시외곽으로 내쫓는 것이며 대부분 회교도인 보니시민들이 시쪽으로 밀려나자 갑자기 집중사격을 가해 시민들을 시에서 완전히 추방해 버렸다.회교도들이 보니시서 완전히 밀려난 것은 지난주 수요일.세르비아군은 회교도가 남기고 간 재산과 주택에 세르비아인을 정주시키고 있으며 이는 히틀러의 유태인 추방정책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세르비아가 28일 보스니아 영토 4분의3을 세르비아소속이라고 선언한 것도 이같은 타민족 추방에 의한 영토확대정책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서 주초 전격적으로 진행된 보스니아 난민 수송작전으로 5천6백23명의 부녀자·어린이·노약자들이 유고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 집단 소개됐다.이들은 1년4개월간 계속된 전쟁에 지치고 35도를 넘는 불볕 더위속에 탈진한 모습들이었다. 난민열차가 본을 떠난 것은 지난주 금요일과 일요일로 크로아티아의 칼로박역에 모여 있는 보스니아 북동부 노비시서 쫓겨난 회교도들을 독일로 데려오는 것이 목적. 노비시는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등 3개국이 접경한 산악 3각지대로 세르비아군의 보스니아,크로아티아 공격 전초기지.이때문에 세르비아군은 이 지역을 봉쇄,3개월째 급수·전기를 단절해 주민들이 지하실에서 사투를 벌여야만했다.이같은 사태가 독일이 난민들을 전격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계기가 됐으며 프러시아식의 정확하고 빈틈없는 소개작전이 은밀히계획됐다. 지난주 노비시민들은 토요일인 26일 상오8시30분까지 카로빅시 체육관에 집결하라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난민들은 이곳서 2∼3일을 지내며 열차를 기다렸다.지난27일 아침10시25분. 첫번 열차로 독일로 갈 난민 8백33명이 15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역으로 향했다.체육관엔 예상인원의 2배가 넘는 8천여명이 집결,큰 혼잡을 이루었으며 4천여명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열차에는 식당칸이 연결돼 있어 지친 난민들에게 식수와 빵을 공급했으며 의료진이 부상자와 탈진한 어린이·노약자들을 돌보았다. 지칠대로 지친 난민들은 적십자사요원들의 지시에 순종했다.어른들은 시름에 잠겨 말없이 천장과 차창을 바라보았으며 어린이들은 차에 오르자 곧 잠이 들었고 금세기 3번째 전쟁을 겪는 노인들은 망연한 표정들이었다. 『애기가 열이 나요.누가 좀 도와 주세요』두번째 칸에 탔던 30대부인의 고함이 무거운 객차분위기를 흔들어 놓았다.의료책임자가 달려와 어린이를 4번째 객차 의료칸 침대로 옮겨 진찰했다.부상당한 부위가찌는듯한 더위로 악화,열이 올랐으며 아무것도 없어 자식을 도울 수 없었던 부인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식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5개 난민열차는 중부유럽을 관통,22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뉘른베르크·베스트팔렌·칼스루헤등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때까지 살아야 할 이국땅에 내려 놓았다.
  • 고속도로 헬기 인명구조대 창설

    ◎정부,교통사고 구급의료체계 개선안 마련/서울·부산·대구에 윤화전담병원 □구급체계 개선안 긴급신고전화 8백대 증설 순찰차 12㎞마다 배치운영 129센터에 전산자료망 정부는 22일 고속도로 교통사고때 부상자를 신속하게 치료받도록 하기위해 헬기를 이용한 구급체계망을 신설하고 서울·부산·대구등 3대도시에 교통사고전담 시립병원을 설립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국무총리실 주재로 「교통사고구급의료체계개선」을 위한 내무·국방·건설·보사·교통부 실무진 회의를 갖고 지금까지의 고속도로 교통사고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점검,이같은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회의에서는 현재 통신망·인력·장비등의 부족으로 응급조치가 늦어져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경찰과 도로공사를 연결한 「고속도로교통관제센터」를 올하반기까지 설치하고 구급차 30대를 갖춘 「구급대」를 올8월에 도로공사직속으로 설치,운영키로 했다. 또 경찰·산림청과 군·소방대가 보유한 헬기 37대를 이용,「헬기긴급구조대」를 설치해 경찰청 주관으로 구급활동을 펴는 한편 사고가 많은 곳에 기존 119구급대의 장비와 인력을 보강해 적정 배치토록 했다. 또 신속한 사고발생신고를 위해서는 94년까지 모두 42억원을 들여 사고다발지역에 8백대의 긴급전화를 증설하고 현행 18㎞마다 1대씩 설치된 순찰차량을 늘려 93년까지 12㎞마다 설치·운영,상시순찰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응급환자를 위해서도 현행 129응급환자정보센터를 강화,병원시설·진료과목·의사·장비등을 총괄하는 전산자료망을 갖춰 신속히 대처토록 했고,응급차 출동때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중 1명과 응급구조요원 2명이상등 모두 3명이상이 반드시 동승해 실질적인 응급구조가 되도록 했다. 환자치료는 서울등 6대도시의 고속도로 진입로 반경 2㎞이내 병원을 지정운영하며 서울등 3대도시에 교통사고전담병원을 설립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정부는 중장기계획으로 서울등 6대도시에 모두 3백30억원을 들여 고속도·국도등 진입로 주변 종합병원에 병상수 30개이상의 1천2백평 규모로 민간교통사고 전담병원을 설치해 나가기로 했다.
  • CIS국 민족분규 확산/타지크회교도 농장 급습… 1백명 사망

    ◎그루지야·몰도바·나고르지역 전투 재발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그루지야와 몰도바 등에서의 휴전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28일 또다시 유혈충돌이 발생,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구소련 전역의 민족분규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루지야 공화국군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대통령간에 합의되었던 휴전협정이 발효될 예정이던 이날 그루지야내의 남오세티야 마을에 포격을 가해 20명이 사망하고 86명이 부상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한편 지난 88년부터 분쟁이 시작돼 지금까지 모두 2천여명의 희생자를 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도 이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에 또다시 교전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중앙아시아의 타지크공화국에서는 지난 27일 밤 회교 반정부세력이 집단농장을 급습,1백여명이 사망하고 1천5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모스크바 TV가 보도했다.
  • 흑인폭동 여파/LA에 통기 구입 붐(특파원코너)

    ◎남가주선 8일새 5천여정 팔려/“규제 필요”­“소유 불가피” 큰 논란/「왓츠폭동」후와 흡사… 미 개인보유 5억정 추산 「4·29인종폭동」이후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에 총기류구입 붐이 일고있어 이에대한 규제의 필요성과 자기방어상의 불가피성 주장간에 큰 논란이 일고있다. 「4·29폭동」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무능력을 지켜본 많은 주민들과 상인들이 『결국 내생명과 재산은 내가 지킬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낌에 따라 「방어용 총기류」구입이 급격히 증가,총포상들에 때아닌 호경기를 안겨주는 이변까지 낳고있다. 「왓츠폭동」등 60연대에도 미국내 대도시 도처에서 폭동이 발생,한때 총기류판매가 기록적으로 늘어난적이 있었다. 지난 4월29일부터 5월6일까지,그러니까 「LA폭동」발생 8일만에 LA일원에서는 작년동기간에 비해 무려 5천5백정의 총기류가 더 팔린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현재 미전국에는 약2억정의 각종 총기류가 각가정에 보관돼있는것으로 집계되고있으며 이는 70년대에 비해선 약2배가량,50년대에 비해선 약4배가량늘어난 숫자다.총기류구입의 이같은 증가에 비례하여 개인또는 가정의 안전도도 그만큼 높아졌느냐하면 그렇지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것으로 전문가들은 총기류의 확산에 우려를 나타내고있다. 비극적인 사실은 작년에 발생한 총기류에 의한 사망자수가 67년에 비해 약2배나 늘어난것으로 집계되고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총기류 소지자들은 자기방어용등으로 적법하게 사용하고있으나 파괴적 요소로 이를 사용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데에 찬·반양론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90년의 경우 미 전국에서 발생한 총기류에 의한 살인사건 1만1천7백여건중 정당방위로 밝혀진 경우는 고작 2백15건에 불과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지난해 LA에서는 모두 1천5백54명이 총기류에 의해 사망,이는 70년의 4백64명보다 무려 2.5배나 늘어난것이며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웃도는 수치로 밝혀졌다.이중 약25%는 19세 미만의 「틴 에이저」들이며 총기류사고 부상자치료비도 5천4백만달러에 달했던것으로 한 통계자료는 보여주고있다. 지난2년간 LA카운티에서는 매6가정당 1가정이 총기류사고와 관련됐었으며 남가주전역에서의 총기류관련사고 비율도 8대1이나 됐다. 총기류사고가 이처럼 폭증하고 있는 이유는 소지자들의 불법적 또는 부적법한 사용에 그 큰 원인이 있다. 그러나 소관행정당국의 감독 내지 관리 소홀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총기류판매허가는 미연방 주류·담배·화기류 관할국(ATF)소관이나 현재의 ATF소속인원 숫자로는 늘어나기만 하는 총기류사고를 줄이기엔 역부족이다. LA인근에만도 3천여개의 총포상이 있으나(LA카운티 전역에는 약 4천여개) 이의 감독청인 LA지역 ATF소속인원은 고작 12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총기류구입희망자는 가까운 총포상에 30달러와 함께 구입신청서를 제출,수사기관에 의한 범죄관련여부조회를 거쳐 약 2주후쯤이면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엔 정신병력 소유자로 투표권까지 유보돼 있던 「찰스·맥도날드」란 사람이 총기류판매허가를 취득,89년부터 2년여간 약 1백여정의 총기류를 판매한 사실이 밝혀져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더구나 그가 판 총기류 중12정이 강도·살인 등의 범죄행위에 사용돼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다. 많은 총기류 판매상들이 상점도 차려놓지 않고 집이나 호텔방 개인 오피스 심지어는 정부소유 건물에서까지 총기류 판매가 이뤄지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져 선량한 시민들을 전율케 하고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위해 갖가지 대책이 검토되고 있다.LA타임스의 경우는 지난 2개월 사이에 총기류소지확산에 관련된 사설을 3번이나 게재할만큼 큰 관심을 보여왔다. 카운티검찰청 산하에 총기류단속전담반을 신설,지역 검찰청간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총기류관련 범죄를 단속하자는 의견도 LA타임스는 제시하고 있다. 연방정부 관할아래 모든 총기류를 일련번호로 등록하자는 안,자동차면허 취득시험처럼 총기류소지면허도 보다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발급하자는 안,정신병력의 소유자나 범죄기록보유자에겐 판매를 엄격히 제한하자는 안에 이르기까지 대책마련에 모두가 부심하고 있다.
  • 6·25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참전·전후세대 좌담

    ◎“통일의지 가다듬는 「역사의 거울」삼아야”/「상잔의 비극」 잊으면 제2불행 초래/“젊은층 북한 몰라… 통일 접근 신중히”/깨어있는 젊은이 많아야 한반도 앞날 밝아 6·25동란 42돌을 맞았다.전쟁이 일어난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고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장년이 되어 사회각분야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직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생생한데 젊은 세대에게는 6·25가 한낱 역사속의 「사건」으로만 여겨져 가고 있다.인공기가 내걸리고 북한의 상투적인 구호가 그대로 외쳐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6·25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며 또 무엇을 배울것인가.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후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6·25의 참뜻을 되새겨본다. ▷참석자◁ ▲배명오씨(63·전 국방대학원 교수) ▲김용승씨(53·월간 「한사랑」 주필) ▲박현정양(21·동덕여대 의상학과 3년) ▲배명오교수=전쟁의 비참한 날들이 아직 생생하고 6·25의 상처가 다 아물었다 할 수 없는데 벌써 42년이 흘러갔습니다.저는 서울대 3학년 재학중 6·25가나 바로 육군종합학교에 입학했다가 참전했습니다.숱한 격전을 치르며 살아남은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해마다 6월만 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6·25가 역사 속으로 묻혀가며 잊혀지는게 섭섭하고 우리 국민의 80%나 되는 전후세대들이 북한을 너무 모르는게 안타깝고 국민들의 성급한 통일욕구가 불만스럽기 때문입니다. ▲김용승주필=저는 국민학교 6학년때 전쟁을 맞았습니다.지긋지긋했던 피란살이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전후세대가 들으면 「또 고리타분한 이야기하는구나」하며 외면할지 모르지만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자』는 것을 강조합니다.누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개인이 잘 되려면 웃어른을 잘 모셔야 되듯 나라도 공세운 유공자들을 위해야 잘되는 것입니다.이 말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로부터 대접받자는 뜻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축구만 잘해도 국가가 예우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참전세대는 어림잡아 1백59여만명 되는데 이 가운데 47만명이 생존해 있습니다.특히 전쟁부상자 1백10명은 보훈병원에서 40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이들의 영예를 선양해 줄 때 국민적 구심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박현정양=저는 솔직히 이런 자리가 어색해요.부끄러운 말씀이지만 6·25에 대한 인식도 매우 적었습니다. 과연 6·25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저는 당혹스럽습니다.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이데올로기의 홍수에 혼돈을 느끼고 있습니다.난롯불에 직접 손을 덴 사람과 그저 막연히 「아,뜨겁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국민학교때에는 학교에서 「상기하자,6·25」라며 표어를 만들고 포스터를 그리기만 했을 뿐입니다.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선 그런 막연한 개념들을 자연히 잊어버렸습니다. ▲배교수=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위치,항상 그 영향을 받게 돼있습니다.우리가 한반도에서 생존하는 한 현재는 물론 2000년 이후에도 전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이 때문에 우리는 6·25전쟁을 망각해선 안됩니다. 서울을 보십시오.「세계적 대도시」라고들 합니다만 그게 자랑거리가 안됩니다.많은 안보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너무 밀집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자본주의의 좋은 점보다도 취약한 요소들이 도처에 많습니다. 안보·국방은 더욱 투철히 해두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주필=통계에서 보면 우리민족이 9백여차례나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여기에서 우리는 더이상 전쟁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설명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또 과거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인도속담은 우리에게 던지는 경구입니다.우리민족의 역사의식은 유감스럽게도 매우 약합니다.전쟁이 끝난지 불과 39년입니다.그런데 현재 우리국민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 평화의 집앞에는 이런 비문이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무서운 경구입니다.평화를 지키는 힘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국민의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박양=두분께서 저희 젊은 세대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자본주의의 영향탓인지 물질만능에 젖어 정신적인 것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이들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요.각자 개인들이 작은 일부터 질서를 지키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교수=좋은 말입니다.민족혼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많다고 봅니다.박수갈채를 보낼만한 훌륭한 젊은이들도 많아 한편으로는 마음든든합니다. 그들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우리민족의 통일에 대한 미래는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국민들을 공연히 들뜨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최근 우리의 통일정책은 너무 양보하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과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주필=통일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높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높은 교육열을 잘만 활용하면 통일문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최근 우리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각계에서 번지고 있는 데 이것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면 민족통일문제와 접목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양=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25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배우고 익혀서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것 찾기,우리 물건쓰기운동도 한창인데 이럴때 애국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시키면서 국민의 정신력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6·25가 우리에게 건전한 의식을 갖게 해주는 역사적 거울로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봐요. ▲배교수=통일문제와 관련해 최근 우리 체제만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유감스럽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론을 제기하고픈 생각이에요.우리의 현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대한민국 주도하에 이뤄져야 하며 체제와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둬야 할 것입니다.▲김주필=우리에게 있어서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점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순화시키는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배교수=젊은이들은 남북고위급 회담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들의 미소와 유연한 자세를 보았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온화한 미소뒤에는 지난 5월22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 침투한 북한 무장침투조의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박양=동족상잔의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보며 경제성장과 함께 정신적 가치관의 확립이야 말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독일/범죄는 느는데 시민신고정신 퇴색(특파원코너)

    ◎범인검거율 하락… 독정부 대책마련 부심/도시거대화로 정의감 실종·무관심팽배/눈앞의 사건·사고 “모른척”… 증언도 기피 독일사회는 8천만국민이 사회감시원이라고 불릴 만큼 전통적으로 신고정신이 철저한 것이 특징이었다.이를테면 경미한 차량접촉사고만 나도 뒤따른 운전사들이 저마다 경찰에 신고하고 가던 길을 멈춰 증인으로 나서 진술한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가장 중요시하며 사고 당사자들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억지주장은 통하지 않는다.아무도 안보이는 숲속에 무성히 자란 고사리를 나물로 뜯던 한국노인들이 적발돼 벌금을 무는 것도,새로 이사해 보름안으로 규정된 전입신고라도 깜박 잊는 경우 경찰관이 찾아와 그 경위를 묻는 것도 모두 시민과 주민들의 철저한 신고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독일인들의 신고정신이 퇴색되고 있는데다 범죄나 사고로 인해 길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 사람을 못본체 지나치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에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최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지가 실험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국도에 방금 차량 2대가 충돌,피투성이가 된 부상자가 신음을 하는 장면을 꾸며 놓고 이를 본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해 보았더니 현장을 목격한 차량의 3분의2가 그대로 지나쳤으며 부상자를 도우려고 차를 세운 사람은 5분의1정도였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체벌로 부상하는 14세미만 어린이가 독일서 한해 40여만명이 발생하고 있으나 경찰에 신고되는 사례는 지난해 2만8천건밖에 안됐다. 최근 서베를린 6번 지하철에서는 15명의 승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남자가 26세의 청년을 칼로 찌르고 다음번 정류장에서 내려 도망했으나 아무도 범행을 제지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또 동베를린 번화가에선 미케(21세)라는 스킨헤드족이 담배가게 문을 열려는 베트남인 누엔 반 투(29)씨의 목을 졸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아무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독일 범죄전담국 차헤르트국장은 독일인의 신고정신이 퇴색되고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는데 대해 여론조사결과와 일치하는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사회의 이같은 변화에 대해 도시가 커지면서 시민 정의감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해졌으며 신고로 인한 불이익을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때문에 지난해 은행강도에서 자동차도둑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4백30만건의 범죄가 발생했으나 검거율은 40%밖에 안돼 수사관계자들은 보상제도의 신설등 최근 시민신고정신을 살리기 위한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 6·25관련 구소 극비문건 공개/러시아 군사연 코로트코프박사

    ◎「남침 D­데이」 김일성이 선택했다/“인민군 서울 진격” 소대사 본국 급전/미군 인천상륙하자 김일성 “나는 실패했다” 당황/스탈린 수습책임 중국에 떠넘기며 김에 등돌려 다음은 러시아 국방부직속 군사연구소 책임연구원 가브릴 코로트코프박사가 비밀문건을 중심으로 밝혀낸 한국전쟁과 북한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집권과정등에 관한 내용의 요약이다. ▷한국전쟁 관련◁ 한국전쟁이 어느 편에 의해 발발됐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모스크바와 평양이 「해방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며 다만 시기에 관해서는 김일성이 6월25일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당시 평양주재 대사 스티코프가 개전 당일 스탈린에게 보낸 긴급 전문에는『조선인민군이 강을 습격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서울로 진격하고 있다.평양은 아주 조용한 분위기이며 사람들은 누구도 전쟁개시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씌어 있다. ○평양시민도 몰라 또 국방부 문서보관소에 있는 「작전계획 초안」에는 『6월25일,○○탱크연대는 ○○도시로 향한다.○○보병사단은 ○○방향으로 진출한다』는 식으로 연대급 이상 부대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으며 이밖에 「서울점령 초안」도 포함돼 있다. 전쟁이 초기 승세에서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김일성은 크게 당황했다.당시 스티코프가 스탈린에 보낸 전문에는 『김일성이 쇼크를 받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그의 군대지휘와 국가지도는 엉망이 되고 있다.김은 지하사령부에서 본인에게 「나는 실패했다.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나는 또다시 빨치산투쟁을 하는 것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같다.(미군의 진격이 너무 빨라서)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에 스탈린에게 부탁해 나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돼있다. ○“김일성 무능” 불만 스탈린은 10월 전쟁이 실패했음을 느끼자 수습책임을 중국에 떠넘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초기에는 매우 빈번히 김과 전문을 주고 받았으나 이때부터는 김에게 아무런 답신도 보내주지 않음으로써 실망감을 표시했다. 당시 스탈린측근으로 총참모부 작전부장이었던 스테멘코 장군은 후일 본인과의 인터뷰에서 스탈린이 『김은 아주 무능한 장군이다.그가 어려운 시기에 처해 의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대체인물이 없으니 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또한 본인이 극동군총사령관 말리노프스키원수 휘하에서 한국전 정보담당 장교로 재직시 그는 김일성을 한번도 이름으로 호칭하는 법이 없이 오직 「모자를 쓴 대위」라는 별칭으로 부르면서 『그는 진짜 군인이 아니다.군대지식도 적고 전쟁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한국과 관련된 소련군◁ 45년 8월 소련군의 북한 진주부터 53년 종전까지 한반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은 군인은 모두 약 1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특히 한국전쟁과 관련,훈장을 받았거나 전사자·부상자 및 유가족들은 2차대전 심지어는 최근의 아프간전쟁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은 소련당국(지금은 러시아정부)이 한국전 개입사실을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본인 역시 한국전쟁과 관련해 적성훈장을 받았다.그러나 훈장증서에는이상하게도 「조선전쟁에서 주어진 과업을 수행했으므로 이 훈장을 수여함」으로만 돼 있고 구체적인 공적사항은 전혀 없다.이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항일빨치산투쟁◁ 김일성이 붉은 군대에 정식 입대한 것은 1942년 7월17일이었다.이같은 사실은 45년 8월30일 그가 적기훈장을 수여받은 훈장증서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다.김이 훈장을 받게 된 공적사항으로는 항일빨치산투쟁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돼 있다.그러나 이에 앞서 김이 소련군 대위로 진급시 승진 상신서에는 「진지첸(김일성)을 만주에서 빨치산대장으로 활동하도록 파견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이는 김일성이 북한당국의 공식 선전에서 처럼 스스로 빨치산부대를 편성,지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소련극동군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군이 항일 명령 특히 김일성이 45년 9월 중순 북한지도자로 선발되기 위한 면접을 하기 직전 심사위원격인 극동군 전선사령관 푸르가예프상급대장과 동 군사위원 슈킨대장 앞으로 제출된 김의 인물평가서에는 ▲동만주에서 빨치산활동 참가 ▲하바로프스크 군사학교에서 특수과정 수료 ▲수차 걸쳐 사령부로 부터 표창 ▲42년 입대,현재 대대장등 연대순으로 기록돼 있는데 입대 전에 이미 소련군 당국으로 부터 표창을 수차 받은 사실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이지도자로선택된과정◁ 45년 9월 모스크바는 승전의 축제분위기속에서 병력을 대폭 축소키로 함에따라 김일성은 아주 곤란한 입장에 빠졌다. 그가 소속된 88특수저격여단이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는데다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그로서는 다른 부대로의 전출이나 진급을 바라보지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이때 김은 『특별인터뷰를 위해 즉각 하바로프스크로 돌아가라』는 돌연한 명령을 받았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당시 극동군 전선사령관 푸르가예프와 군사위원 슈킨을 면접했다. 두 장군은 몇가지 경력을 물은 후 김에게 『소련정부의 결정에 따라 한국국적을 가진 전문가들이 북한에 보내지고 있다.현재 북한은 새 조국을 건설할 전사들이 필요하다.귀관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특별임무를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같은 발언은 김일성이 이미 북한의 지도자로 결정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도자후보 분석 이에앞서 모스크바에서는 북한의 새 지도자감으로 많은 후보들이 심도있게 분석,평가되었다. 주로 장시우,박동홍 등 코민테른그룹과 박헌영,김두봉 등 자생적 공산주의자,김일성등 만주그룹,그리고 조만식선생등 비공산 민족주의자들이 대상이었다.그러나 스탈린은 이들이 군대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부했다. 스탈린은 결국 그의 구미에 딱맞는 인물을 물색한 결과 김일성이 돌연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하여 지도자로 선택을 받은 김은 45년 10월2일 부터 「진지첸」이란 이름을 버렸으며 8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소련함정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에 도착했다. 당시 원산시 소련 군정책임자인 크루지코프 대좌가 영접했는데 그는 후일 본인과의 면담에서 김일성 영접은 평양의 스티코프 대장의 긴급명령으로 행해졌다고 말했다.
  • 지하철공사장 붕괴 3명 압사/1명 중상/4호선 금정∼사당구간

    ◎터널굴착중 암석 떨어져/전날 발파뒤 지반 약해진듯 6일 하오8시40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2동 2909 지하철4호선 사당과 금정사이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터널굴착공사를 하고 있던 신익수씨(43)등 인부 3명이 암석이 무너지는 바람에 암석더미에 깔려 숨지고 김기봉씨(34)가 중상을 입었다. 이날 사고는 신씨 등이 지하철 4호선 사당역과 서울대공원사이 남태령고개 지하 1백40m 지점에서 터널굴착을 위해 돌부스러기를 청소하던중 터널막장 천장에서 갑자기 암석이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났다. 이 공사를 맡고 있는 삼부토건 천갑병소장(53)는 『사고가 난 지점은 남태령고개 지하 1백40m지점이어서 지압이 높은데다 지반의 상태를 전혀 예측할 수 없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구간은 지난 89년 철도청이 발주,삼부토건이 공사를 맡은 것으로 현재 공정이 70%정도 진행돼 있으며 내년말쯤 완공될 예정이었다. 삼부토건측은 사고가 난 지점에서 5일 하오4시쯤 30㎏의 다이너마이트를 사용,발파작업을 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는 김인범반장등 13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신씨와 김씨등 사망자와 부상자를 뺀 나머지 9명은 암석이 무너지는 순간 재빨리 대피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숨진 사람은 신익수씨(43)황준철씨(34)김영덕씨(50)다. 경찰은 이날 사고가 5일의 폭파작업으로 암석이 부서져 있었으나 이 사실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철도청의 현장감독 2명을 불러 감독소홀이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추궁하고 있다.
  • 「보훈의 달」의미 되새기는 「호국 할머니」오금손여사(이사람)

    ◎「반공강연」 22년간 4천61차례/독립군 유복녀… 「군번없는 간호장교」로 6·25 참전/“「무조건 통일」 주장하는 젊은이들 안타까워요” 『북한공산집단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처절한 전쟁을 치러야했던 우리들입니다.더욱이 북한의 집요한 남침위협속에 처해 있는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당시의 비참함과 참혹상을 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에서 독립군 유복녀로 태어나 광복군생활을 거쳐 6·25전쟁에 참전해 꽃다운 젊음을 바쳤던 오금손여사(62·대전시 중구 산성동 우성아파트 107동 910호)가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대학가에서 인공기가 거리낌 없이 나부끼고 있습니다.젊은 학생들이 무조건 「통일」「통일」하는데 저들을 잘 모르고 하는 짓들입니다.하기야 국민의 70%가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북한공산당의 잔학상이나 기만성을 알 리가 없겠죠』 그래서 그런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1일 아침 일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대전 국립묘지를 찾아 집을 나서는 오여사의 발걸음은 왠지 무겁게만 보인다.오여사가 젊은 가슴을 향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증언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3월 대한상이군경회로부터 호국의식계도 강사로 임명되면서부터였다.오여사는 호국강연을 그때부터 22년동안 모두 4천61회나 했다. 『저는 1930년 2월20일 독립군 유복녀로 중국 북경에서 태어났습니다.아버지(오흥삼)는 제가 태어나던 해 왜놈들에게 체포돼 행방불명 되셨고 어머니(이봉녀)는 저를 낳은지 1주일만에 왜경들에게 끌려간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갑자기 고아가 된 저는 14살때까지 중국군 장군의 수양딸로 자라다 15살때인 1944년3월 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오세덕씨를 따라 독립군본부에 들어가 광복군 일원으로 활동하다 해방을 맞았습니다』 오여사가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긴 것은 해방 이듬해였다.그러나 서울엔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었다. 『하느님이 도우셨던가 봅니다.당시 청진동에서 순천병원을 개업한 양근섭씨가 오갈데 없는 저를 양녀로 삼아 1년후에 개성간호전문학교에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스무살이 되던 1949년3월 간호전문학교를 나온 오여사는 개성도립병원에 취직해 보람과 긍지를 갖고 나이팅게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러나 얼마안가서 하늘과 땅이 통곡한 6·25가 터졌다. 『그때 저를 비롯해 개성도립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원 24명이 모두 간호장교(소위)로 자원입대했습니다.군번은 없었습니다.그래서 저희들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팔뚝에 배치부대이름인 「백골부대」란 문신을 새겼습니다』 야전병원엔 연일 부상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의약품이라곤 다이아진과 압박대 뿐이었다. 휴전무렵 금화지구전투에서 오여사와 친구 한명은 인민군의 포로가 됐다.인민군부대에는 1백50여명의 양민들이 불잡혀 있었다.인민군들은 한 여학교 교사를 국방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면도칼로 가죽을 벗겨 살해했다.오여사의 친구는 국방군의 위치를 대지 않는다고 젖무덤을 도려내 살해했다.붙잡힌 양민 대부분이 그렇게 죽어갔다.오여사도 손톱과 발톱 이빨을 모두 뽑혔다. 오여사는 54년봄에 서울로 왔다.냉차장사·화장품장사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돈이 조금 모이길래 윤락여성과 탈선청소년들의 선도일에도 간여했다. 오여사는 건강이 좋지않아 지난 82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로 내려갔다.그곳에 「독립군 정양원」을 건립,상이군경과 독립유공자들이 마음놓고 쉴 수 있게 했다. 지난 90년 11월 호국영령들이 묻힌 곳에 가까이 있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온 오여사는 지난해 7월엔 중국을 방문,그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3개월간 호국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달에는 거의 매일 강연을 해야될 것 같습니다.영령들이어 고이 잠드소서』 호국강연을 하기위해 발길을 돌리는 오여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 보스니아난민 “밀물”/몸살앓는 유럽 3국(특파원코너)

    ◎내전이후 독·오·이에 1백20만명 몰려/“EC분산수용”요청… 입국저지 안감힘 서유럽국가들이 유고내전으로 인한 난민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내전이 보스니아공화국으로 확대돼 수도 사라예보가 유고군과 세르비아민병대에 의해 집중공격을 받자 시민들은 남부여대의 장사진을 이루어 안정된 서구국으로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다. 이들 난민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로 피난길에 올랐으나 이들 국가들은 동구와해후 크게 늘어난 망명자들의 메카가 될 것을 우려,입국을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독일 본에 있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리사무소(UNHCR)에 따르면 전쟁지역인 보스니아공화국에서 서구로 탈출하는 난민들만 1백2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들의 목적지는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순이다. 최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는 국경에서부터 난민들의 입국을 막기 위해 검문을 철저히 하고 있으며 목숨을 걸고 사지를 탈출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열차로 들어오는 보스니아난민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하루 수백명씩 되돌려 보내고 있다. 독일은 이들이 비자를 받지 않은 불법입국자로 분류,오스트리아로 되돌려 보내고 있지만 보스니아공화국에는 독일대사관이 없어 난민들은 비자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난민들은 일단 인접한 오스트리아로 탈출해 비자를 받기 위해 독일대사관에 장사진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만 운이 좋아 비자를 받게 되더라도 2개월이상을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기진맥진한 상태. 보스니아의 비극은 서구국 각 도시에 투영돼 잘츠부르크시의 경우 1천2백명의 난민들을 시립체육관과 천막촌에 수용하고 있다.이들중 1백80명은 임산부며 4백20여명은 어린이들로 기약없는 피난생활에 지칠대로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난민들이 몰려드는 이들 서구3국은 특정국가로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서구국들이 능력에 따라 쿼터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여타국들은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난민문제가 해결될 전망은 없는 실정. 지난주 빈에서 열린 보스니아난민 국제회의에서 오스트리아는 유고내전의 짐을 유럽공동체각국이 함께 나눠야 한다며 난민들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이탈리아는 지난주 1천3백20명이 국경에 집결하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서구의 협조를 요청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이들을 되돌려 보냈다. 독일은 내전으로 인한 파괴상과 살육상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부녀자·노약자·부상자 등의 비자발급 수속을 간소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들에 대한 비자면제는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공동체는 난민의 홍수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내전의 종식이 급선무이나 현재로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전쟁지역에서 탈출한 시민들이 자국내 안전지대에 대피해 생활할 수 있도록 구호품 수송에 주력하고 있다.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지난주 3천8백만달러 상당의 천막·모포·식량·의약품 등을 보스니아에 보냈으며 오스트리아는 국경지역에 수용소를 세워 난민들을 일단 보호한뒤 제3국으로 보낼 계획이다. 서구국들은 동구와해후 정정불안과 생활고를 피해 한해 1백30여만명의 동구인들이 몰려드는 사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비슷한 수의 보스니아난민이 또다시 쏟아져 더욱 당황하고 있다.더욱 큰 우려는 구소련의 경제난이 악화될 경우 3천만명이 밀려들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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