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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炳俊 수사본부장 일문일답

    ●압수한 정씨의 영업장부에서 뇌물 규모가 드러났나 정확하게 계산하지는 못했다.장부에는 5만∼80만여원까지 관공서에 상납한것으로 기록돼 있다.그러나 당사자들을 일일이 소환해 확인해야 한다. ●정씨가 관공서에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나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특히 지난해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히트노래방 관리를맡았던 양모씨(27·여)가 “정씨가 관공서에 뇌물을 줬다”고 증언한 부분에대해서는 해고에 앙심을 품고 양씨가 장부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중부경찰서 방범지도계장이었던 최모(54)경위는 정씨 업소에 단속을 나갔다가 폭력배들로부터 위협을 받았다는데 최경위가 당시 서장에게 불법 영업을 하는 업주를 구속하자는 건의는 했다고들었다.위협을 받았는 지는 더 조사하겠다. 당시 서장의 조치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겠다. ●왜 초기에 정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았나 화재 발생 당일에는 사망자와 부상자 후송 및 치료와 화재원인 조사 때문에경황이 없었다.수사를 진행하다가 실제 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알고바로 검거에 나섰다. ●앞으로의 수사 방향은 경찰의 명예를 걸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는 사람은 지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다. 전영우기자 ywchun@
  • 조종사과실·공항관리 소홀 ‘半半’

    건설교통부가 지난 97년 8월 발생한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의 원인에대해 조사 주체인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의 발표문을 과잉 해석,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에 오히려 피해를 준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NTSB는 3일 오전(한국시간) 괌사고의 원인은 조종사 과실과 함께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최저안전고도경보장치(MSAW)의 작동 중단 및 괌공항의 관리소홀로 추정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짐 홀 NTSB위원장은 이들 사고원인의 경중을 가려달라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조종사 과실과 MSAW 작동 중단 및 괌공항 관리 소홀은 똑같은 서열(equal ranking)”이라고 분명히 밝혀 두 요인이 똑같은 비중의 사고원인임이드러났다. 이에 따라 괌 사고 사망자의 유족과 부상자들이 미국 법원에 제소한 170여건의 소송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건교부는 영문으로 된 NTSB의 최종보고서 초안을 사전에 입수,사고의 주된 원인은 대한항공 조종사의 실수이며 사고에 기여한 과실(기여과실)로 FAA의 경보장치 작동 중지 등이라고단정했다. 건교부는 최종보고서 원문에 “PROBABLE CAUSE(근거가 있는 주된 원인)”란 항목 속에 기술된 “Contributing to(기여,종속)”라는 문구를 법적 용어인 ‘기여과실’로 해석,사고의 주원인은 대항항공 조종사들의 실수이며 부수적인 원인으로 FAA의 경보장치 작동 중단 등인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NTSB의 짐 홀 위원장은 “Contributing의 의미는 ‘종속’이나 ‘기여’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하나의 요인’으로 보면 된다”고 현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혀 건교부의 문구 해석이 자의적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건교부 관계자는 “문구 해석을 위해 국제관계 전문가인 법무부의국제법무과 소속 검사를 통해 자문을 받았으며 해석상 무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성태기자 sungt@ *건교부, 대한항공 징계 내용 건설교통부는 3일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지난 97년 발생한 대한항공기 괌사고의 원인으로 대한항공 조종사 과실과 괌공항 관리체제 미흡 등을 발표함에 따라 대한항공에 대해 향후 1년간 국제선 노선 배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건교부는 또 작년 4월1일 이후 노선이 폐지된 바 있는 대한항공의 사고 관련 노선인 괌 및 사이판 노선에 대해 이날부터 향후 2년간 노선면허 발급을금지키로 했다. 건교부는 아울러 지금까지는 항공기 사고에 대한 원인이 밝혀진 후 사고 항공사에 대한 제재를 했으나 앞으로는 추락,전복,충돌,화재 또는 폭발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당해 항공사에 대해 일정기간 국제선 노선 배분 등을 제한키로 했다. 특히 사망자수가 10인이 넘을 경우 사고발생 다음날부터 1년간,10인 이하일 경우 6개월씩 국제선 노선 배분, 증편 및 신규 면허를 제한할 방침이다. 박성태기자
  • [인천 화재참사] 이모저모

    인천 중구 인현동 ‘호프러브’ 화재사고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영안실에는 유가족들의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학생들의 문상도 끊이지 않았다. 참사의 한 단면을 엿보게 했다. ■인하대 병원과 인천 길병원 등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과 응급실은 화재가난 다음날인 31일까지 그을음 냄새가 진동했다.연기에 그을려 온몸에 화상을입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응급실을 가득 메웠다. 서영민군(15·중학 2년)의 빈소가 차려진 길병원 영안실에서는 서군의 어머니 김분녀씨(38)가 “영민이 찾아 와….어떻게 키운 자식인데…”라고 흐느끼다 끝내 실신.서군의 큰어머니 김일순씨(52)는 “짧은 시간에 어린 학생들이 한꺼번에 많이 죽은 것은 단순한 화재사고가 아닌 분명한 ‘인재’”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엄중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병원측은 신분증이나 소지품 등이 발견되지 않자 사망자들의 사진을 병원 응급실 입구에 붙여 신원을 확인했다.사진이 나붙자 가족 수십명이순식간에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으며,사진을 확인한 뒤안도하는 가족과 사망사실이 확인된 가족들의 통곡이 터지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 ■가천의대 부속 길병원 응급의학과 이근(李瑾)교수는 이번 화재사고 부상자들은 앞으로 3일간이 생사의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이교수는 대부분의부상자들이 유독가스 흡입자들이라며 가스 흡입량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나지만 폐부종의 경우 3일 이내에 환자의 60∼70%가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시 교육청은 31일 낮 12시 현재 이번 사고 사상자 134명 가운데 중·고교생은 인천 시내 34개교 105명인 것으로 잠정집계했다.이중 49명이 숨지고 56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고교생은 전체 82개교중 30개교 96명이,중학생은 4개교 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참사가 발생한 30일 인천지역 82개 고교중 13개 학교가 이날 축제일이어서 학생 사망자가 많은 것으로 풀이.교육청은 일단 축제를 마친 학생들중 일부가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피해 학생들의 출신교가 무려 34개에 이른 점을 들어 이 호프집이 청소년들에게 술을 파는업소로 널리 알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은 31일 오전 인천 중구청을 찾아가 합동분향소 설치를 요구하며 강하게 항의했다.김준호군(16)의 아버지 김용식씨(40) 등 인하대 병원에 시신이 안치돼 있는 유가족 10여명은 “말로만 합동분향소를 세워주겠다고 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이들을 냉동실에 다시 넣으란 말이냐”며 울부짖었다.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하게 불에 탄 사체에서 나온 학생증이 남의 것으로 확인돼 죽은 줄 알았던 학생이 무사히 구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 사랑병원으로 옮겨진 사체에서 진상호군(18·인천 계산공고 1년)의 지갑이 발견돼 경찰과 진군의 부모는 진군이 죽을 줄 알았으나 확인 결과,진군은 가벼운 타박상만 입고 인하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 金대통령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 철저점검 지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31일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와 관련,“영업 폐쇄명령을 받은 유흥업소가 사업을 계속하면서 화재사고가 발생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행정감독기관의 감독소홀,불법묵인 등 문제가 있었는 지를 점검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부상자들의 치료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했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유흥업소에 대한 점검을 철저히 하고 겨울철을 맞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이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점검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현장] “촛불 지키듯 키운 자식인데…”

    “바람앞에서 촛불을 지키듯 하루하루 지성으로 키워온 자식들이라 더욱 가슴이 쓰리고 아립니다” 28일 웃으며 나간 아들 딸을 한순간에 싸늘한 시신으로 맞이해야 했던 5명의 어린이 부모들은 목이 메어 통곡마저 제대로 토해내지 못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시내버스에 어이없게 희생된 5명의 어린이가 모두 정신지체아 교육학원 ‘샘터조기교실’의 원생들이었음이 밝혀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고양시 원당의 세란병원에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천호준(5)군의 어머니안은란(31)씨는 “조금 다쳤다고 해서 놀라 병원에 와봤더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냐”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아침에 웃으며 인사하고 나간 호준이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는 안씨는“호준이가 숨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며 “어릴 때부터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워 왔는데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끝내 넋을 잃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온 방선욱(4)군의 아버지 방창식(41·사업)씨도 아들의 죽음 소식이 믿겨지지 않는 듯 병원측에 확인 또 확인을거듭한 뒤에야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방씨는 “선욱이가 정신장애에 자폐증세까지 보여 그동안 정성을 다해 키워 왔다”며 “지난 1월부터 샘터조기교실에 보내 최근에는 증세가 다소 호전되는 것 같아 모두 기뻐했는데 웬 날벼락이냐”고 울부짖었다. 끔찍한 사고를 현장에서 보았던 부상자들도 사고 당시의 기억에 몸서리쳤다.고경실(35·여·서울 은평구 구산동)씨는 “버스가 원당 지하차도를 들어서기전 대형트럭을 스친 이후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2차 충돌사고를 냈다”며 “버스안은 승객들이 손잡이 등을 잡느라 뒤섞였고 고함과 비명으로 아비규환이었다”고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고씨는 “승객들이 ‘브레이크를 잡아라’고 소리쳤지만 버스는 전혀 속도가 줄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충돌한 뒤 정신을 차려보니 사고가 난 승합차에 어린아이들이 가득해 너무 안타까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전국팀 한만교기자mghann@
  • 臺灣남부 또 강진

    [타이베이 AFP AP 연합] 지난 22일 지진이 강타한 타이완 남부 지역에 24일 오전 최대 리히터 규모 5.2를 기록한 강진 등 10차례의 지진이 또다시 연속발생했다. 이날 지진은 새벽 1시8분(한국시간 2시8분)쯤 타이베이 남쪽 약 300㎞ 지점의 자이(嘉義)시 일원을 강타한 것을 시작으로 부근 지역에서 10차례 지축을흔들었으나 인명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타이완 기상국은 지난 22일 240명의 부상자를 낸 규모 6.4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자이시 일원에 275차례의 여진이 관측됐다고 밝히고 “앞으로 2주일동안 여진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LA 7.0강진 이모저모

    강진이 몰아친 16일 새벽 주민들은 놀라 잠에서 깨 대피하는 등 큰 혼란이빚어졌다.LA 카운티와 오렌지 카운티 등지에서는 변압기가 폭발하며 정전사태를 빚어 9만여명의 주민이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었다. LA다운타운 일대와 라스베이거스,빅베어등지의 주민과 호텔 및 모텔 투숙객들은 방송사와 소방서 등에 전화를 걸어 대피여부를 묻는 등 불안한 밤을 보냈다. 진동은 침대 위의 몸과 천정에 달린 전등이 흔들리고 부엌 선반에 올려놓은 그릇과 음식물이 떨어질 정도로 심했으며 일부 지역의 경우 잔디 스프링클러가 파열되거나 수영장과 가옥,건물 벽에 금이 가기도 했다. 탈선한 앰트랙 소속 시카고발 LA행 열차의 객차 22량은 탈선 뒤 다행히 전복이 되지 않아 부상자가 적었다.승객들은 사고 뒤 앰트랙이 마련한 버스에분승,LA에 무사히 도착했다. 각종 위험에 대한 자문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EQE 인터내셔널사는 지난 8월 17일 터키와 9월21일 대만(臺灣)에서 발생한 규모 7.4이상의 지진이 LA 카운티와 오렌지 카운티 일대를 강타할 경우 수천명의 사상자와 1,000억 달러이상의 재산피해를 낼 것으로 우려했다. 한편 이번 지진으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가 앞으로 지진의 대재앙지가될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질학자들은 미 서부지역에 앞으로 30년안에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나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이틀전 이번 지진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던 미국 지질연구소(USGS)는 태평양 연안에서 내륙으로 약60㎞ 들어간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의 삼각주(델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역이 지진 고위험지역이라고 밝혔다. 지진을 일으키는 여러 단층대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인구밀집 지역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판(板)구조론에 따르면 이 지역은 태평양판과 북아메리카판 등 2개의 지질구조판에 끼여 불안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층이 산안드레아스 단층.캘리포니아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데 길이는 1200㎞,깊이는 16㎞나 된다.이 단층대를 따라 매년 작은 지진이 수천차례씩 발생한다.지난 1857년 남부 캘리포니아의 지진과 리히터규모 8.6의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10년전 캘리포니아 북부 로마 프리에타에서 발생한 지진이 모두 이 단층대를 따라 일어났다. 천재지변 관련 피해 자문회사인 EQE 인터내셔널사는 최근 LA 인구밀집 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피해규모는 사망 6,000명,부상 15만명,재산피해 1,3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추석연휴 교통사고 109명 사망

    추석연휴를 포함한 지난 22∼25일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629건으로 지난해추석연휴때의 2,586건보다 1.6% 늘었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추석연휴 중 교통사고 사망자수도 109명으로 지난해의 107명보다 늘었고,교통사고 부상자수는 3,251명으로 지난해 2,581명보다 무려 25.9%가 증가했다. 25일 오후 2시쯤 경북 칠곡군 가산면 금화리 국도에서 대구에서 안동쪽으로 달리던 경북72아 2309호 직행버스(운전사 권용배)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경북27라 6923호 엑센트승용차(운전자 김홍일)와 정면충돌,4명이 숨지고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밖에 24일 낮 12시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원천동 42번 국도 수원성주유소 앞길에서 경기30노 9583호 스쿠프승용차(운전자 박선호)와 경기04머 3459호 엑셀승용차(운전자 이소석)가 중앙선을 잇달아 침범,마주오던 대전01구 5816호 엑셀승용차(운전자 허황희)를 들이받아 박씨 등 3명이 숨지고 13명이중경상을 입었다. 노주석기자 joo@
  • 작년 교통사고 사망자수 11년만에 1만명이하로

    87년 이후 11년만에 처음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1만명 이하로 떨어졌다.22일 건설교통부가 발간한 ‘99년도 교통안전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교통사고는 24만1,483건이 발생해 9,549명이 사망하고 34만1,297명이 부상했다.매일 661건이 발생해 26명이 사망하고 935명이 부상한 셈이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97년에 비해 2.7%,부상자는 0.8%가 줄었다.특히 사망자는 23.1%가 감소해 87년 이후 처음으로 1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자동차사고는 지난해 23만9,721건이 발생,9,057명이 사망하고 34만564명이부상했다. 자동차 보유대수는 88년의 203만5,000대에서 98년 1,046만9,000대로 늘어연평균 17.7%의 증가율을 보였다.운전면허 소지자도 619만2,000명에서 1,954만9,000명으로 늘어 인구 2.4명당 1명꼴로 운전면허를 갖고 있다. 박성태기자
  • 대만 지진 이모저모

    [타이베이 타이중 외신종합] 지진참사로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여진까지 계속되자 타이완섬 전체가 공포에 질린채 이틀째 밤을 세웠다.22일부터 국제사회의 지원이 답지하면서 구조 및 구호활동이 본격화됐지만 정전,단수,교통두절의 절박함과 가족을 잃은 슬픔마저 겹친 10만여명의 이재민들은망연자실한 모습들이었다. ■올해 초 대형 지진을 예고한 바 있는 타이완(臺灣) 지진학자들은 지아이(嘉義)현과 먀오리(苗栗)현에도 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이날 경고했다.국립타이완과학기술대학의 섀넌 리 교수는 “대지진이 발생할 장소는 난터우가 아니라 지아이현이라는데 이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타이완 남서부 지아이현에는 30∼50년을 주기로 큰 지진이 발생해 왔으며 “지아이현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강도는 난터우 지진에 못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난터우(南投)현에는 이날 수많은 시신을 분주히 병원으로 실어 나르고 있으나 영안실이 부족해 시신들을 파란색 비닐시트로 싸 도로 한켠에 계속 내려 놓고 있다. 섭씨 27도의 기온에다 정전으로 도로에 내려놓은 시신은 물론이고 영안실에있는 시신들도 부패하기 시작,악취마저 진동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넋이 나간 모습으로 실종 가족을 찾기 위해 시체를 싼 비닐 시트를 차례로 들춰보고 있고 그 옆에는 새로운 시신을 실은 구급차들이 속속도착했다. 한 남자는 “형이 부모를 찾기 위해 4시간동안 손으로 건물 더미를 치워낸끝에 숨진 80세 노모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臺北)시는 시내 중심가 신이루(信義路)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정전된 가운데 밤이 되면서 수천명의 이재민과 옥내에 있기가 두려운사람들이 임시 수용소로 몰려들었다.시내의 거의 모든 식료품점은 약탈당한것처럼 보였다.건물 잔해 제거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는 남편이 건물더미에 매몰된 한 여성이 승용차에 계속 머리를 짓찧으면서 “그이 없이는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었다. ■이날 새벽 다시 강력한 여진이 수 차례 발생하자 혼비백산한 주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뛰쳐 나왔으며 일부 여성들은 도로에 엎드리거나 나무 등 고정물을 붙들고 움직일줄 몰랐다. 대피할 곳도 없는 생존자들은 공터,공원,자동차 안에서 밤을 지새며 추위에 떨었다.르웨탄(日月潭)지역 등의 주민들은 가옥과 인근 학교 등 대피 시설로 이용 가능한 건물마저 파괴되자 도로에서 잠을 청했다. ■타이완 각지의 종교,시민 단체들이 보내온 쌀,담요,의약품 등 구호 물품들이 일부 피해지역 주민들에게는 전달되고 있으나 많은 지역은 교통이 두절돼 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특히 중부의 몇몇 마을은 밤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전체 건물의 98%가 파괴된 진앙지 인근 푸리를 중심으로 반경 30㎞ 지역에는 의약품과 식료품 공수 및 부상자 수송을 위한 헬기 운항마저중단돼 날이 밝기만을 기다려야 했다.구조대원들의 접근도 어려워 주민들이직접 맨손으로 땅을 파며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도 내년 3월 치러지는 총통선거에 출마하는 ‘빅 3 후보’들은표밭 갈이를 계속했다.이재민과 유가족들을 찾아 위로하는 한편 언론 매체의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는 구조작업 현장도 빠짐없이 챙겼다. ■한편 타이베이시내 하얏트 호텔은 21일 밤 타이베이 전체가 암흑속에 빠져있음에도 불구, 비상 전력을 공급,불을 밝힌뒤 2층 식당에서 음악 연주회까지 열어 주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됐다.
  • 나타아트마자 駐韓 印尼대사 문답

    자우하리 나타아트마자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21일 국무회의에서 동티모르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안을 의결한 데 대해 “한국의 다국적군 참가를 환영한다”고 반겼다.이어 “우리 정부는 동티모르의 평화와 치안을 회복하기위해 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다음은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가진 일문일답. ■한국군의 다국적군 참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환영한다.전투요원 뿐만 아니라 공병들도 참여해파괴된 동티모르 재건과 부상자 치료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 ■한국정부에 파병을 요청했나. 그렇지 않다.한국군의 다국적군 파병은 유엔의 제의에서 비롯됐다. ■호주보다는 아시아군이 다국적군을 주도하기를 바랐다는데. 다국적군의 국적에 대해 특별하게 요청한 바는 없다.우리 정부는 다국적군이 특정국가 대신 여러 국가들로 구성된 다국적군이기를 바란다. ■한국군 파병에 대해 한국 교민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동티모르의 평화회복을 위해 한국군이 파병되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교민을 해칠 이유는 없다. ■무력충돌이 일어나 한국군 사망자가 발생하면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가악화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20일 동티모르에 다국적군이 처음 도착했으나 아무런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무력충돌에 대해서는 너무 과장해서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또 다국적군이 투입됨에 따라 인도네시아군은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다국적군이 민병대에 맞서 동티모르를 보호할 것이다.때문에 10월쯤에 파병되는 한국군과 인도네시아군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한국군이 자치파와 독립파를 동등하게 대하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동티모르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동티모르의 구스마오,벨로 주교 등 지도자들이 자치파와 독립파의 화해를주도하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동티모르 민병대를 몰래 지지하고 있다는 비난이 있는데. 아니다.우리 정부는 동티모르가 신생국가로 태어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않을 것이다.현재 동티모르에는 다국적군이 투입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군은 단계적으로 철수하게 된다.뒤에서 몰래 지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세계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주현진기자 jhj@
  • 美 교회 총기난사…7명 사망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한 교회에 15일 저녁(현지시간) 30대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이 침입한 뒤 총기를 난사,범인을 포함해최소한 7명이 숨졌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포트워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쯤 검은 옷을 입은 범인이 포트워스남서부 웨지우드 침례교회의 예배실에 난입,수요 청소년부 예배를 보던 신도들에게 총을 마구 쏘았다. 데이빗 엘리스 포트워스 경찰서 부서장은 현재 어른 3명과 청소년 3명이 숨졌으며,8명이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부상자중 일부는 위독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 당국은 난사 직후 총으로 자살한 범인은 30대로 추정되며 신원은 확인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교회의 대학생 선교담당인 댁스 휴즈 목사는 “사건 당시 예배실 안에는150여 명의 청소년이 있었다”면서 괴한이 자신이 들어 온 것을 알리기 위해 출입문을 거세게 열고 들어와 바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hay@
  • 공공근로 안전관리‘구멍’

    실업대책으로 실시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에 올해 참여한 77만여명 가운데8월말까지 27명이 숨지고 932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15명이 숨지고 744명이 다친 지난해에 비해서 크게 늘어난것이다. 행정자치부는 15일 올해 사망자 한 명당 2,500만원의 보상비를 지급했으며,부상자에게는 모두 3억7,631만원의 치료비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공공근로 참여자들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것은 안전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산업안전공단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근로사업자에게는 사전 안전교육 요청을 권하고 있으나,올해 근로사업 참여자 77만명 가운데 지자체의 요청을 받아 공단으로부터 안전교육을 받은 사람은 2만9,00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산업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하는 등의 안전관리는 하지 않고 공공근로참여자 가운데 노무경력이 있는 사람을 감독요원으로 지정하는 데 그치고 있다. 산업안전공단의 관계자는 “사고 위험이 있는 공공근로사업장마다 안전관리요원을 두면 사고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며 “연간 2,000만원 정도면 사업장마다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
  • 모스크바 아파트 폭발 200여명 매몰

    [모스크바 외신종합] 9일 새벽(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최소 14명이 숨지고 200여명의 주민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 매몰됐다. 러시아 비상대책부는 폭발사고가 이날 새벽 12시12분(한국시간 새벽 5시12분) 모스크바 남동부의 페차트니키의 9층짜리 건물에서 발생,이 건물 4층의108가구가 완전 또는 부분 파괴됐으며 폭발 직후 건물은 화염에 휩싸였다고밝혔다.매몰주민 숫자는 147명이라고 대책부는 덧붙였다. 이날 사고로 지금까지 14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으며 어린이 12명을 포함,최소 60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목격자들은 폭발이 시신을 30여m나 날리고 아파트 주변에 서있던 차량을 전복시킬 만큼 강력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대책부 관계자는 “천연가스누출에 의한 폭발인 듯하지만 테러리스트의 폭탄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義烈 독립투쟁](5)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자 일제는 이를 ‘암살’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자신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공격, 처단했다고설명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향반(鄕班)집안에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안 의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있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로 이사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두 학교의 교장이 된 안 의사는 애국교육과 신학문 교육을 통해 애국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안 의사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설치하여 자신이 지부장을 맡고 부인과제수의 패물까지 모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다. 1907년 7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의병부대를 조직,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등 연해주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300여명의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煙秋·노보키에프스크)에서 의병부대를편성한 안 의사는 당시 이 부대의 실질적 통솔자였다. 안중근부대는 모두 세차례의 전투를 치렀다.1908년 4월 초순 두만강 최하단인 함경북도 경흥군 일본군 수비대 진지를 공격한 안중근부대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는 귀환하였다.이어 1908년 7월 제2차전투에서는 함경북도 신아산(新阿山) 부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수 차례 기습공격,10여 명의 일본군 병사를 생포하였다.청년 휴머니스트였던 안 의사는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에 의거,무기만 빼앗고 석방하였는데 이것이화근이 돼 제3차 전투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기습해온 때문이었다.겨우 목숨을 건진 안의사는 부하·동지 몇 명과 연추로 돌아왔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포신문 ‘대동공보’의 연추지국장으로 일하고있던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분할 협의차 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도모하였다.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장실에서는 총무 유진율(兪鎭律),주필 정재관(鄭在寬),기자 윤일병(尹日炳)·이강(李剛)·정순만(鄭順萬),연추지국장 안중근,회계원 우덕순(禹德順) 등 7명이 모였다.이자리에서 안 의사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토를 처단하겠다”고 자원하였고 우덕순도 자원하고 나섰다.특공대는 2개조로 나뉘어 안중근·유동하(劉東夏)조는 하얼빈에서,우덕순·조도선(曺道先)조는 채가구(蔡家溝)에서 거사키로 하였다.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통과함으로써 결국 거사임무는 안중근조에게 넘어갔다. 거사당일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안 의사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취재차 나온 신문기자’라고 속이고는일본인 환영객 집단 구역까지 깊숙이 진입하였다.이날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 의사는 여섯발의 총탄을 날렸는데 그 중 세 발이이토에게 적중하였다.거사에 성공한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창하였다. 안 의사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거사는 ‘암살’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특공작전을 전개한 결과라고 누차 밝혔다.안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만주침략은 장기간 지연되었다.중국인들이 만주·중국 관내에서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임한 것은 바로 안 의사와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안중근 의사 직계후손 근황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장남 분도(芬道)는 6세때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분도보다 3살 위인 장녀 현생(賢生)씨는 백범 김구 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작고)씨와 결혼,은주(恩珠·71)·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 자매를 두었다.은주씨는 남편 이용문(李容文·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남편 작고후 귀국,경기도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후손이다. 항주(杭州) 호강대학을 졸업한 차남 준생(俊生·1951년 45세로 작고)씨는 부인 정옥녀(鄭玉女·91년 작고)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안 의사의 장손격인 준생씨의 장남 웅호(雄浩·67)씨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간호대학 출신인 장녀 선호(善浩·70)씨는 한국인 2세와 결혼,4남매를 두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차녀 연호(蓮浩·65)씨는 시애틀에거주하고 있다.정운현기자*白凡과 안중근家의 인연 19세의 청년 김창수(金昌洙·김구의 아명)는 1894년 양반사회를 타도하고자 황해도 동학농민전쟁의 해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참여한다.그런데 당시 황해도에서는 반농민군 세력으로 의병이 조직되는데,그 대표적 인물이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박영효(朴泳孝)가 모집한 해외파견 유학생 70명에 선발되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출세의 길을 버리고,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淸溪洞)으로 들어갔다.1894년 황해도 동학군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안태훈은 안중근 등 그의 아들과처자들까지 편입시킨 의병을 일으켰다.그 위력과 명성이 자자하여 황해도 동학군은 안태훈 부대를 두려워하였고,김창수 부대 역시 청계동을 특별히 경계하였다. 그런 안태훈이 청년 김창수에게 밀사를 보냈다.그 결과 두 진영 사이에는서로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까지 성립되었다.즉 안태훈은 비록 동학군을 토벌하는 입장이었지만 인재를 아끼고 있었고 개화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청일전쟁 전후의민족적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 부대는 점차 토호화하고 있던 같은 동학접주 이동엽(李東燁)부대에의해 해체되었다.얼마간의 잠적 이후 이듬해 김창수가 찾아 간 곳은 청계동의 적장 안태훈 집이었다.청계동에서 ‘적장(敵將)과의 동거’는 청년 김창수에게 중요한 인연과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안태훈의 각별한 후원으로 김창수는 부모님과 더불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안태훈가(家)의 식객인 고능선(高能善)은 동학의 꿈이 깨진 청년 김창수에게 새로운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또다른 식객 김형진(金亨鎭)은 같이 의기투합해 청국원정을 떠나사선을 넘나드는 동지가 되었다. 김창수는 청계동에서 스승과 동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안태훈가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안중근의 아우 공근(恭根),조카 우생(偶生)은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측근이 되었으며,질녀 미생(美生)은 백범의 맏며느리가 되었다.또한 안태훈과의 화해,고능선의 교도로 백범은 양반이냐,상놈이냐 하는 계급의식 이상의 차원,즉 조국·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都珍淳 창원대 사학과 교수*安의사 5촌조카 民生씨 편지 발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꼽힌다.그러면 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은 해방후 어떻게 살았을까.지난 8월말 학술행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본사 김삼웅(金三雄)주필이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입수한 두 통의 편지에 따르면,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해방된 조국에서 대접은 커녕 분단과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많은 일생’을 마친 것으로드러났다. 김 주필이 중국서 입수한 편지는 지난 88년 한국에 거주하던 안 의사의 5촌조카인 민생(民生·생사불명)씨가 중국 연길(延吉)에 있던 사촌여동생 경옥(京玉)씨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경옥씨는 70세였다. 88년 1월 27일자 첫 편지에서 민생씨는 “지난 (87년)11월 15일 독립기념관장 춘생(椿生)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며 연락이 닿은 경위를 밝혔다.두 사람은 안 의사의 삼촌인 태건(泰健)씨의 손자녀들로 46년 7월 민생씨가 귀국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었다. 민생씨는 편지 서두에서 “해방후 형제·자매들이 귀국하였으나 모두 전재민(戰災民)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며 해방후 집안 인척들의 이산을 안타까워 했다. 특히 민생씨는 “1961년 5월(‘5·16’을 지칭함) 조국의 평화통일 이념을주장했다는 이유로 나는 반국가범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근(敬根) 당숙도 7년형을 선고받아 일제때 명근(明根) 당숙이 옥고를 치르시던 서대문형무소 특감(特監)8사(舍)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며 “해방,독립된 내조국에 돌아와서 또 감옥살이를 치러야 함으로써 우리 안씨 가문은 이역과조국에서 선후대(代)에 걸쳐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고 통탄해 했다. 안 의사 집안 가운데 안 의사의 사촌동생 경근과 5촌 조카인 민생씨는 해방후 유달리 험난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장면(張勉) 정권 하에서는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준비위원회(민자통)에 참여하기도 했었다.5·16후 군사정권의 혁신세력 탄압 때 두 사람은 반국가범죄 혐의로 투옥됐으며 경근은 출옥 직후 작고했다. 민생씨의 경우는 ‘최악’이었다.1933년 만주에서 만주군에 붙잡혀 혹독한고문을 당한 후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양쪽 발끝을 작두로 절단당한 민생씨는 그 몸으로 감옥살이를 한 데다 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년에는 지팡이와 의족에 의존해야 했다. 편지를 쓸 때 이미 70고개를 넘긴 민생씨는 “헤어진 동료들과 형제들이 그리울 때면 저 머-ㄴ 북녁(만주땅을 지칭한 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가슴 쥐고 나무밑헤 쓸어진다 혁명군/가슴속에 솟는 피는 푸른 풀에 절벅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적은 뒤 “가마귀도 우름을 멈추고 바람만 스치고지나갈 무덤없는 그들의 핏자죽 위에 한 송이 들꽃이라도 받쳐들고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며 눈물지었다.현재 민생씨는 생사가불명이다.광복회·국가보훈처·안중근의사기념관은 물론 사촌형인 안춘생씨마저 민생씨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5월 28일자 두번째 편지에서 민생씨는 “과거 우리들은 안중근의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왜놈들에게 죽어야 했고,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해방후에는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들의 피해는 여전했다”며 역대 권력자 가운데 친일경력자들의 면면을 거론하였다. 정병학(鄭秉學·79)안중근기념관장은 “안 의사 집안의 인사 가운데 민생씨처럼 해방후 불우한 삶을 보낸 인사가 적지않다”며 “이는 해방후 친일·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정운현기자* 안중근家의 독립운동가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 의사를 포함,모두 9명이 독립유공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몇 명이 포상 심사중이다.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안 의사는 독립유공훈장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으며,안 의사의 두 친동생 정근(定根)·공근(恭根)은 각각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또 사촌동생 가운데 명근(明根)은 ‘105인사건’으로,경근(敬根)은 임시정부 활동으로 각각 독립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조카뻘인 ‘생(生)’자 항렬에서도 여러 명이 훈장을 받았다.대표적으로는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 출신으로 해방후 육사교장·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춘생(椿生·87·독립장)을 비롯해 춘생과 친형제로신민부에서 활동한 봉생(鳳生·애국장),그리고 안 의사의 첫째 동생인 정근의 장남으로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원생(原生·애족장)과 둘째 동생공근의 차남낙생(樂生·애족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납북이나 공적서류 미비 등으로 서훈이 보류된 인사도 여럿 있다. 우선 공근의 장남 우생(偶生)은 중경 임시정부 시절 임정 편집부 과원으로활동했으며 해방후에는 백범의 대외담당비서로 활동했으나 그 후 납북돼 포상이 보류돼있다.또 안 의사의 사촌 봉근(奉根)의 자제인 민생(民生)과 그의형 호생(鎬生)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후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나 서류미비 등으로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 크렘린宮 이웃 상가에 폭탄테러

    [모스크바 AFP AP 연합] 31일 오후 8시4분(현지시간)쯤 러시아 크렘린궁 부근 마네즈 광장에 위치한 오호트니 랴드 쇼핑몰 지하 3층 오락실에서 폭탄테러가 발생,40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중에는 9∼14세의 아동 4명이 포함됐으며,32명이 병원으로 옮겨져치료를 받고 있다고 모스크바 응급의료단 관계자가 말했다.폭발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크렘린궁 집무실에 없었다고 대통령 공보실은 밝혔다. 모스크바 검찰은 이번 테러는 TNT 300g에 해당하는 위력을 가진 폭발물이터지면서 발생했으며 폭발 당시 충격으로 쇼핑몰 1층의 전면 유리창이 산산조각나고 인근 커피숍이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지난 97년 개관한 오호트니 랴드 쇼핑몰과 주변은 값비싼 수입품 판매점과패스트 푸드점,오락실 등이 있어 관광객과 모스크바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4월말 모스크바의 한 호텔내 승강기 폭발 사고로 11명이부상한 후 올해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두번째 대형 폭탄 테러이다
  • LA 한인점포서 총격전…6명 死傷

    [로스앤젤레스 AFP UPI 연합]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쪽 한인 밀집지역인 가든그로브시의 한인 소유 자동차 부품 상점에서 30일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최소한 4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경찰은 부상자 중 3명이 위독한 상태에서 인근 어바인 대학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부상자 중 2명은 청소년들로 각각 목과 등에 한발씩의 총탄을 맞았으며 48세의 한 남자는 뺨과 목,팔,둔부 등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아직 사건 동기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20대 아시아계 남자를 비롯한 2명의용의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 터키 지진 사망자 1만8,000명 넘어

    [이스탄불 앙카라 AFP AP 연합] 터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4일 1만4,000명을 넘어섰다. 정부 재해대책본부는 지진발생 1주일째인 24일 새벽 4시(현지시간) 현재 지진사망자가 1만4,360명이며 부상자는 4만3,873명이라고 밝혔다.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은 이즈미트시가 주도인 아다파라지주로 7,231명이숨진 것으로 집계됐으며 다음이 사카리야 3,46명,얄로바 2,539명 등이다. 터키 정부는 이날 이번 지진으로 2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며 구호및피해복구를 위해 텐트에서부터 불도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필요 물자 원조를 국제사회에 긴급 요청했다.
  • 터키교민들, 희생자 돕기 동참

    터키 강진 발생 4일째인 19일 공식 집계된 사망자수가 7,000명을 넘어서고현지 언론들은 1만여명을 초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선 이날도 필사의 구조작업과 수색작업이 계속됐다. 실종자 수천명에 부상자가 3만4,000명에 이르고 있는 피해지역에서는 터키군 5만여명과 외국 구조팀 2,000여명이 수색·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국정부도 20일 119국제구조대를 피해지역으로 급파했으며 동시에 피해를거의 입지 않은 현지 교민사회도 이날부터 적극적으로 희생자 돕기에 나서국제사회의 구호활동에 힘을 보탰다. 교민들은 이날 저녁모임을 통해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였으며 특히 일부교민들은 6·25때 터키의 참전을 언급하며 한국정부의 13만달러 구호금이 너무 적은 액수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지 현대자동차측은 식수난과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공장주변 주민들에게이스탄불에서 운송해온 물과 빵 비상약품 등을 나눠주며 터키 현지인들과 어려움을 같이 했다. 500여명에 달하는 터키 교민들은 이번 지진에서 신기할 정도로 피해가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지진피해가 심했던 아브질라르와 얄로바에 살고 있던 소수 교민들도 피해가 없었으며 진앙지인 이즈밋시의 현대자동차 공장도다른 회사들에 비해서는 피해가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피해지역에 대한 터키 정부의 대비책 미비로 구호활동과 피해복구가늦어지면서 주민들의 인심이 이반되는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또 지진 전문가들이 또다시 새로운 지진의 발생을 경고하면서 수백만명의 주민들이 집밖에서 밤을 지새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구호노력은 계속돼 국제통화기금(IMF)이 19일 터키에 3억2,500만달러의 긴급원조를 제공할 것임을 새롭게 발표했다. 이경옥기자 o
  • 터키강진사망 4065명 아직 1만명 매몰

    ?이스탄불 AP 연합?터키 북서부를 강타한 지진으로 19일 현재 공식 집계된사상자만 2만 5,000여명에 육박했다. 물적 피해도 무려 250억달러를 넘어 터키는 자력으로 회생하기 힘든 수준의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 터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낮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4,065명으로 늘어나고 부상자도 1만8,352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는 아직도 수천∼1만명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사상자 수는 3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지진이 강타한 북서부 지역은 국내총생산(GDP)의 35%를 차지하는 경제중심지로 피해액만 터키의 1년 수출규모와 거의 맞먹는 2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이스탄불만 해도 터키 GDP의 22.5%를 점유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피해복구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차관 도입에 필수적인 경제개혁 추진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지난 17일 밤 발생한 이즈밋 국영 투프라스 정유공장의 화재는 50개탱크 가운데 대형7개와 중.소형 탱크 2개를 연소시킨 뒤 불길이 잡혀가고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즈밋시의 빈곤지역에서는 당국의 구조손길이 미치지 않고 식량도 고갈되고있어 일부 주민들이 빵을 실은 트럭을 습격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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