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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춘제 폭죽놀이 금지 딜레마

    지난 9일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 전후로 베이징에만 14만명의 경찰들이 경계 근무를 섰다. 중화민족이 1000년간 이어온 춘제 풍습인 ‘폭죽놀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해마다 폭죽놀이로 전국에서 수백명씩 목숨을 잃고 수천명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이번에 확실하게 잡겠다는 중국 당국의 의지다. 당국은 명절을 전후해 폭죽 판매상과 소지자 523명을 적발,16만발의 폭죽을 압수했다. 이중 3명을 구금하고 520명에게 벌금을 물리는 등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 베이징의 경우 1993년 이래 도심지역인 4환로(四環路) 안에서의 폭죽놀이가 금지돼왔고 올해부터 5환로로 지역을 확대했다. 그럼에도 7∼9일 사이 베이징에서만 폭죽놀이 도중 2명이 숨지고 290명이 다쳤다. 폭죽은 중국어로 ‘비볜파오(鞭)’라고 하는데 원통형의 폭죽을 줄줄이 달아 한 묶음으로 만들어 일시에 터트리는 것이다. 요란하게 터뜨려야 귀신과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성능이 좋은 폭죽은 1통에 800∼1000위안(약 10만∼13만원)이나 한다. 한달 수입이 2000위안(26만원)에 불과한 택시기사나 샐리리맨들도 폭죽비 만큼은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폭죽놀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때문에 “훌륭한 민족문화와 전통을 계승해야 할 정부가 법을 앞세워 민족문화를 억압한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중국문학예술연합회 정이민(鄭一民) 부위원장은 “설날 폭죽소리를 듣지 못하면 일년이 개운치 않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당국이 어떻게 위로할 것이냐.”고 반문한다. 향후 10년내에 ‘무성(無聲)의 설’을 맞을 것이라는 개탄의 소리도 들린다.90년대 초 광저우(廣州)시가 처음 설 폭죽놀이를 금지시킨 이후 현재 30여개 도시가 뒤쫓고 있다. 안전사고를 막겠다는 중국당국과 전통문화를 고수하려는 인민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oilman@seoul.co.kr
  • [하프타임] 하승진 NBA 부상자 명단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농구(NBA)에 진출한 하승진(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이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포틀랜드는 23일 홈페이지를 통해 허리 통증을 느끼고 있는 센터 하승진을 부상자 명단에 올리고 포워드 다리우스 마일스를 12인 로스터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포틀랜드는 하승진이 지난 8일 부상자 명단에서 벗어난 뒤 소속팀에서 3경기에 나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소득세법 개정 주요내용

    소득세법 개정 주요내용

    재정경제부가 21일 발표한 소득세법, 법인세법,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은 간접세(부가가치세·특별소비세 등) 부문과 달리 개인과 기업의 호주머니에서 직접 빠져나가는 세금들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 ●소득세 1%포인트의 힘 ‘글쎄’ 올해 소득세법 개정의 핵심은 근로소득세율 인하에 따른 세금 인하다. 지난해 내수경기 회복 등을 위해 국회에서 세율을 1%포인트 낮췄다. 그러나 인하 폭이 뚜렷하게 체감할 수준이 되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를테면 연봉 3600만원(월 300만원)을 버는 4인 가족 가장의 경우, 세금 감소분이 연간 15만원(월 1만 2000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어서 소비심리 자극에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기획예산처는 “소득세율 1%포인트 인하로 세수는 2조원 줄지만 경기활성화에 미치는 효과는 작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도 지난해 “1%포인트 인하로는 별다른 효과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감세효과를 보려면 3%포인트 이상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인세…창업·투자 활성화 초점 법인세 부문에는 창업, 투자, 연구개발 등 성장 잠재력 강화의 취지가 많이 살아 있다. 이를테면 과거에 사업용자산으로 썼던 공장설비 등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창업을 해도 이를 ‘창업 중소기업’(소득 발생 이후 4년간 소득세·법인세 50% 감면 등 혜택)으로 인정하지 않아 왔지만 앞으로는 인수자산이 전체의 30% 이하이면 창업으로 친다. 대기업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특허권을 중소기업에 무료로 이전할 때도 특허권의 장부상 가액에 대해 연구개발 세액 공제를 적용받게 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협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또 정보보호 시스템, 기업부설연구소 및 연구개발 전담부서의 생체인식시스템 등 기술유출 방지설비에 대한 투자금액의 3%가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공제된다. 이밖에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와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는 6000만원 한도에서 분리과세가 이뤄지는 세금우대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또 신용불량자의 신용회복을 위해 자산관리공사가 100% 출자해 설립하는 배드뱅크도 은행처럼 자산건전성 분류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수 있게 돼 충당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보상 대신 생계지원”

    정부가 한일협정 문서공개에 따른 대책마련에 나선 가운데, 피해자에 대해 ‘보상’보다는 ‘생계지원’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소요자금 규모는 최소 5조원에서 50조원 이상에까지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8일 이와 관련,“모든 가능성이 논의되겠지만, 현재 일본군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지급되고 있는 일시금 4300만원과 월 60만원의 생계지원금 등 지원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당국자는 그러나 “현재로선 일제하 징용·징병 피해자에 대한 재정지원 근거가 없어 특별법을 만들어야만 지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 일각에서는 보상은 정부 재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므로 생활안정지원, 기념사업, 위령사업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시민단체 등은 당시 보상에서 제외된 징병·징용으로 인한 부상자에 군인·군속을 제외한 단순 노무자, 여성 근로정신대, 일본군 정신대, 원폭 피해자 등을 포함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태평양희생자유족회에 따르면 군인·군속을 제외한 노무자에 대한 미불 노임은 원금만도 2억 1000만엔에 이르며 그간의 물가상승률과 이자 등을 감안한 현재 금액은 1조 6321억엔(우리 돈으로 1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편 학계는 일제 강점에 따른 피해자는 징용 732만명, 징병 38만여명, 군 정신대 피해자 4만∼20만명, 원폭 피해자 7만여명 등 800여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중복되는 경우 등을 감안하면 200만∼400만명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고베지진 10년…피해자 40% 아직 후유증

    “쓰나미(지진해일) 피해를 본 순간 10년 전 공포가 부활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재난으로 기록된 고베 대지진이 난 지 10년째를 맞은 17일 오전. 고베시 시청 근처 공원을 비롯한 곳곳에서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의식이 거행됐다. 그날의 재앙이 찾아온 오전 5시 46분을 기해 종이 울려퍼지자 빗줄기 속에 희생자 숫자만큼 촛불을 켜둔 유족 등은 일제히 묵념을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0년 전 발생한 리히터 규모 7.3의 지진은 불과 20초 만에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부상자도 4만 3000여명에 이르렀고 건물과 도로 등이 무너지는 등 경제적 피해만 100조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대참사가 난 지 10년이 흐른 현재, 당시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면서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던 한신고속도로가 복구됐고 인구도 152만명으로 지진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정신적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다. 택시기사 마에카와 마모루(67)는 “도시의 겉은 다시 지어졌다지만 속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고, 당시 숨진 아내를 위해 촛불을 들고 나온 키타야마 히데야스(82)는 “최근 쓰나미 참상을 보고 공포가 되살아났다.”며 몸서리쳤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일본 언론들이 지진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40% 가량이 아직도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지진 10주년 다음날인 18일부터는 5일 동안 고베에서 쓰나미 조기경보체제 구축 등을 논의하는 유엔 ‘국제재난 감축회의’가 열린다. 세계 150개국에서 4000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회의에서는 향후 10년간의 국제 재난대책을 담은 ‘2005∼2015년 효고(兵庫) 행동체제’ 계획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효고는 고베 대지진 피해지역이자 회의 개최지인 고베가 속한 현(縣)의 이름. 일본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쓰나미에 대처하기 위해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다. 일본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원조기금인 정부개발원조(ODA) 항목에 ‘방재’를 신설해 재해예방의 예산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지난달 26일 발생한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 16만 8000명을 넘어 17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韓日협정 문서 공개] 사망 1인당 1650弗 받아 30만원 지급

    [韓日협정 문서 공개] 사망 1인당 1650弗 받아 30만원 지급

    ‘일제 피해자를 두 번 울린 박정희 정부의 한일 협정과 쥐꼬리 보상.’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당시 원화 948억여원) 중 우리 정부가 실제 개인보상에 사용한 금액은 불과 91억 8769만원(9.7%)에 불과했다. 협상과정에서 민간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금액으로 3억 6400만달러을 요구했음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일본측에 피해자 보상 명목으로 청구권을 내세웠으면서도 협상 이후에는 실제 피해자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향후 무더기 개별 소송이 예상된다. ●신청기간 10개월, 부상·생존자 보상안해 1965년 ‘제7차 한일회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1차 회의 회의록’을 보면, 청구권 분쟁을 우려한 일본측 대표와 달리 우리 정부측 대표는 “각종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된 만큼 이후 개인청구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각각 국내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한다.”며 개인청구권 청구 가능성을 차단했다. 당시 우리 정부측의 제시 자료에 따르면 일제 피징용자는 노무자, 군인·군속을 합쳐 사망자 7만 7603명에 부상자는 2만 5000명, 생존자는 93만명이 넘어 모두 103만여명이다. 청구 금액은 사망자 1억 2800만 달러, 부상자 5000만 달러, 생존자 1억 8600만 달러 등 3억 6400만 달러로 계산됐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1975년부터 2년 동안 실제로 사망자 8552명에게 지급한 금액이 1인당 평균 30만원에 불과한 25억 656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정부가 피해자 보상 청구를 지렛대로 삼아 청구권 자금을 따내려 했을 뿐 실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의지는 없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부상자와 생존자들이 피해 보상 청구를 했음에도 사망자 외에는 보상하지 않았음도 드러났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이 액수는 당시 군인 및 대간첩작전 중 사망한 향토예비군에게 지급하는 일시 급여금에 준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무상 3억달러 농림수산에 가장 많이 사용 당시 정부는 한일협정을 체결한 이듬해부터 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단계적으로 밟았다.1966년 ‘청구권 자금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71년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 노무자·군인·군속 등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된 사람 중 사망자와 재산권 소지자에 한해서 71년 5월부터 72년 3월까지 10개월간 보상 신청 신고를 받았다. 74년에는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75년 7월부터 77년 6월까지 2년 동안 총 인명·재산 신고건수 10만 9540건 가운데 인명보상은 8552명에게 25억 6560만원, 재산보상은 7만 4967명에게 66억 2209만원을 각각 지급했다. 모두 8만 3519건에 대해 91억 8769만원을 보상했다. 무상공여 3억달러 중 나머지는 농림수산업 부문에 37.4%인 402억 6600만원이 쓰였고, 포철 건설에 16.2%인 174억 4200만원 등이 사용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부, 日서 보상금 3억弗 받아 25억원만 지급

    정부, 日서 보상금 3억弗 받아 25억원만 지급

    한·일회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제 강점 시절 노동자·군인·군속으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생존·사망·부상자 103만 2684명에 대해 3억 6400만달러의 피해 보상을 일본측에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통상부가 17일 공개한 한·일회담 청구권 관련 문서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했던 1인당 피해 보상금은 생존자는 200달러,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650달러와 2000달러였다. 그러나 한·일협정 10년 뒤인 1975∼77년 부상자 등을 제외하고 사망자 8552명에게 지급된 25억 6560만원 등은 청구 금액의 9%에 불과해, 관련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정부가 일본의 ‘청구권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개인 보상 청구권을 ‘활용’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마저 포기한 사실이 정부 공식 문서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향후 피해자들의 개인보상 및 재협상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4년 2월,5월 부처간에 오간 질의 답변에서 외무부는 “정부는 개인청구권 보유자에게 보상의무를 진다.”고 개별보상 의무를 분명히 했으나 이후 반영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부는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국무총리실에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을 설치, 가동에 들어갔다. 대책기획단은 피해자 조사와 관련 입법 검토 및 피해보상 민원 처리 문제를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단 문서가 한번 공개된 이상 추가 문서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오는 8월15일까지 한·일회담 관련 전체 문서 161권을 가능한 한 모두 공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개인청구권을 포기하게 된 과정과 우리측이 협상 접근방식을 정치적 타결로 선회하게 된 상황 등 한·일회담의 전모가 드러나 이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될 전망이다. 또한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일본이 ‘청구권’이라는 개념을 회피하고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칭을 집요하게 주장했던 상황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간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전후 보상 소송에서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발뺌해온 일본 정부의 이율배반적 태도에도 피해 관련자들의 비판이 제기될 전망이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지난해 2월 서울 행정법원의 공개 판결 이후 정부의 항소로 현재 서울 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문건들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주요 협상 경과 등에 관한 보고서, 훈령, 전문, 관계기관간 공문, 한·일간 회의록 등 5권이다. 한편 이날 꾸려진 정부 대책기획단은 국무조정실과 외교부, 행자부, 재경부, 복지부, 보훈처, 기획예산처 등 7개부처 차관으로 구성됐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사설] 협정공개, 韓·日정부가 할 일

    정부가 한·일협정 외교문서를 일부 공개한 데 따른 논란은 두 원칙에 의해 풀어야 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개발연대에 대외관계에서도 국민 기본권을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고 일제치하 피해자 보상책을 법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둘째, 일본 정부는 협정 문구에 매달리는 편협한 자세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차원에서 보상문제에 함께 나서야 한다. ●일제 피해자 보상 특별법 마련해야 어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협상 당시 일본측은 일제강점 기간 한국민의 피해를 배상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경제협력자금이라는 형식을 통해 과거사를 비켜가려는 의도가 곳곳에 나타나 있다. 한국측은 청구권 금액을 조금이라도 늘려볼 욕심에 일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앞장서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한국 정부는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동원됐던 피해자를 103만 2684명으로 산정해 총 3억 6400만달러의 포괄적 피해보상을 일본측에 요구했으나 숫자 집계가 주먹구구였으며,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절차가 없었다. 결국 일본이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제공하는 선에서 청구권 문제를 매듭짓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이중 10%만을 피해자 보상에 썼다. 그것도 성의 없이 신고를 받아 사망자 및 재산피해에 국한된 보상을 했다. 한국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무시했고, 정확한 피해규모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일협정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군위안부 등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상황변경의 논리에 의해 신협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한·일협정 폐기를 선언하거나, 전면 재협상을 추진하기에는 외교적 어려움이 많다. 한·일 국교정상화라는 협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일제 치하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실질적 보상조치를 추진하는 게 현실적이다. 정부는 봇물을 이룰 소송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특별법 제정을 통한 합리적 보상을 추진해야 한다.‘태평양전쟁희생자 생활안정지원법’이 의원입법으로 계류되어 있지만, 그 법으론 불충분하다. 피해자 단체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종합특별법안이 필요하다. 박정희 정부때 보상에서 제외됐던 징용 피해와 함께 생존자·부상자 보상도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강제징용자 노역 미불임금 부분은 일본측에서 해결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피해자 보상 및 명예회복조치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리라 예상된다. 예산확보가 우선 필요하지만 다른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은 포철을 비롯한 국가기간산업과 고속도로 건설에 쓰였다. 피해자들의 피땀이 밴 돈으로 발전을 이룩한 공기업 등이 앞장서 이익의 일정 부분을 보상기금으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와 함께 관련 문서를 전면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청구권 협상 당시 한·일간에 정치자금 거래가 있었는지와 함께 독도 문제를 불분명하게 처리한 배경도 석명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개인배상 계속한 독일예 본받아라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자체를 무효화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 변해야 할 것이다. 나치 피해자들에게 개인 배상을 계속해온 독일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 독일은 유엔을 통해 개인 배상을 하면서, 배상액의 일부를 폴크스바겐 등 기업들이 냈다고 한다. 침략전쟁의 혜택으로 성장한 일부 일본 대기업들에 모범이 될 만하며 국가사회 전체에서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보상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북·일 수교 문제도 풀린다. 십수명의 납북 일본인 문제를 갖고 그렇듯 떠들썩하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일제 피해자들을 몇억달러 경협자금 제공만으로 모른 척한다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대국이 될 수 없다. 올해는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문서공개를 계기로 한·일 정부가 옛 정권, 지난 시대의 일이라 하더라도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과거청산이 되고, 양국 관계의 미래도 밝아진다.
  • 태국 방콕지하철 추돌사고

    |방콕 AFP 연합|태국 수도 방콕에서 17일 오전(현지시간) 지하철 추돌 사고가 일어나 10여명이 중상을 입는 등 모두 200여명의 승객이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한국 교민이나 한국인 관광객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사고는 방콕 도심 지하철 ‘태국 문화센터’역 구내에서 7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달리던 열차를 뒤따라오던 빈 열차가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고 비사누 크르응암 내각장관이 밝혔다. 이 역은 방콕 주재 한국대사관과 가깝다. 부상자 가운데는 사고 열차의 운전사 1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콕 지하철은 지난해 7월 1일 개통된 뒤 가끔 경미한 문제가 생긴 적은 있지만 열차끼리 충돌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생긴 것은 처음이다.
  • 中, 뇌세포 실험실 배양성공

    |런던 연합|중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인간 뇌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손상된 뇌를 치료하는데 성공했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 일요판이 16일 보도했다. 인간 뇌세포의 실험실 배양 성공은 사고로 인한 뇌 또는 척추 부상자는 물론 뇌경색, 치매, 파킨슨씨병 등 각종 퇴행성 신경질환 환자에게도 치료의 길이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인물은 중국 푸단대의 주젠홍 교수. 푸단대 연구진은 초기 보고서에서 배양된 뇌세포를 이식받은 환자가 보행능력을 회복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이달 말 런던에서 연구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런던킹스칼리지 줄기세포연구소 스티븐 밍거 교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뇌세포 배양을 시도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뇌세포 실험실 배양 성공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NBA] 하승진 71초 ‘깜짝 출장’

    하승진(20·223㎝·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이 꿈의 미국프로농구(N BA) 무대에 한국인 최초로 첫 발을 내디뎠다. 하승진은 8일 포틀랜드 로즈가든에서 열린 04∼05시즌 마이애미 히트와의 홈경기에서 종료 1분11초를 남겨두고 92-103으로 뒤진 상태에서 닉 반 엑셀과 교체돼 코트에 나섰다. 승부가 사실상 마이애미로 기울었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 8666명의 홈팬들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바스켓볼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건너온 하승진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하승진이 교체돼 들어가는 순간 마이애미 벤치가 샤킬 오닐을 마이클 돌리악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기대했던 ‘공룡센터’와의 첫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하승진은 득점과 리바운드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데뷔전’을 치러 포틀랜드 코칭스태프의 기대치를 실감케 했다. 지난해 6월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6번으로 지명된 하승진은 거칠기로 소문난 하부리그 ABA 무대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고, 지난달 27일 포틀랜드와 정식 계약을 통해 꿈에 그리던 NBA에 입성했다. 하지만 하루만에 허리부상으로 부상자명단에 올라 데뷔를 미뤄왔다. 한편 이날 패배로 3연패에 빠진 포틀랜드는 9일 현재 14승17패로 서부콘퍼런스 11위로 처졌다. 더욱이 10일 뉴욕 닉스전을 시작으로 19일 새크라멘토 킹스전까지 원정 6연전의 힘겨운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다. 가뜩이나 센터진이 부실한 포틀랜드는 경기당 15.7득점에 8리바운드를 책임지던 파워포워드 샤리프 압둘하임(29·205.7㎝)마저 부상자명단에 올라 ‘젊은 피’ 하승진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남아시아에 더 적극적인 구호를

    지진과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동·서남아시아 일원의 피해 규모는 시간이 지나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수가 15만명을 넘어섰고, 부상자가 수십만명, 당장 먹고 마실 것이 없어 발을 구르는 주민 또한 수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다 콜레라,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 질병이 창궐할 우려가 커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지 모른다는 게 현지 구호단체들의 전언이다.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 등을 포함, 모두 10여개국이 이번에 피해를 입었다. 피해지역이 광범위하게 걸쳐있는 데다 도로, 철도의 태반이 파괴돼 구호품 전달에도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사망자가 두배로 늘 것이라는 우려까지 있다. 돌이켜보면 대재앙앞에 모두가 다소간 우왕좌왕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마음을 추스르고 체계적인 구호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전세계 45개국이 20억달러의 긴급지원 약속을 하며 발벗고 나선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 정부도 5000만달러 규모의 구호금을 지원키로 최종 방침을 세웠다. 초기 피해규모를 제대로 가늠치 못해, 지원규모를 너무 작게 잡았다가 다른 나라의 지원액수를 보고 뒤늦게 늘려잡는 등 혼선이 없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인류애적인 구호대열에 동참노력을 보인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도 아직 실종자 수색 등 뒷수습할 일이 많이 남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사정이 그렇게 여유있느냐는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슬픔을 딛고 구호노력에 동참하는 것은 성숙한 국가의 당연한 도리다. 일본과 중국이 경쟁하듯 지원에 나서는 데서 보듯, 이런 노력이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구호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 [씨줄날줄] 안녕! 2004/우득정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송년 만찬에서 “돌이켜보면 나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말로 올 한해의 소회를 대신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서도 보람과 후회, 기쁨과 절망이 교차한 한해였음을 고백한 것이리라. 언뜻 손꼽아봐도 대선자금 수사와 현역 국회의원 무더기 구속-대통령 탄핵-17대 총선 여당 압승-탄핵기각-신행정수도 위헌결정-4대 개혁입법 대립 등 노 대통령으로서도 굴절과 희비가 점철된 험로를 헤치고 온 것 같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어떨까. 실업자와 이혼, 교육·통신비가 증가하고 불황의 지표라는 소주 소비가 늘었다는 통계청의 백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올해 대차대조표의 끝머리에 고단했던 한해로 기록할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의 표현대로 ‘광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사사건건 대립하고 찢기고 발기었다. 상처투성이의 군상들이 양진영으로 나누어져 이전투구식 소모전만 한 꼴이다. 전투중 나뒹군 부상자들에게 긴급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천사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삶에 지친 낙오자들은 어느 날엔가 솥단지를 찌그러뜨리며 ‘SOS’를 타전하고, 개방의 해일이 목젖까지 차오른 농민들은 며느리, 손자 손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분노의 발길을 내달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간판을 바꿔다는 동네 구멍가게, 길가 두개 차선을 점거한 택시들의 기다림 행렬…. 행락철마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부자들마저 18억원짜리 아파트에 세금 60만원을 더 붙이려 한다며 난리다. 유영철이 희대의 살인극으로 전 국민을 전율케 하고 노(怒)한 하늘이 지축을 뒤흔들어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2004년. 없는 사람은 생존의 몸부림으로, 있는 사람은 마음고생만 했다는 2004년. 그렇다고 올해의 행복지수는 과연 ‘0’이었을까. 저울추가 행복보다는 불행쪽으로 다소 기울었다는 사람이 많을지는 몰라도 자포자기해야 할 정도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여전히 핏대를 세우며 전의를 가다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나 인생 전체로 보면 행복지수 총량은 엇비슷하다고 한다. 눈높이를 행복에 맞추면 행복이, 불행에 맞추면 불행이 높게 보일 뿐이다. 새해에는 행복에 눈높이를 맞추고 웃고 싶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지진 해일 대재앙] 印尼 희생자수 하루새 3배이상 늘어

    동남아와 서남아 지역을 강타한 쓰나미로 희생자 수가 계속 느는 가운데 29일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확인된 사망자 수만 3만 6300명을 넘어섰다. 구호작업을 총괄하는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이날 인도네시아 주재 외교관들에게 “사망자 수가 4만명 선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전날까지만 해도 확인된 사망자 5000여명을 포함, 사망자 수를 1만명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구호작업이 진행되고 피해지역과의 통신이 재개되면서 하루 사이에 희생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요 피해지역인 수마트라섬 북쪽의 아체주는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자유아체운동’과의 교전 지역이라 확인작업이 지연되는 등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수마트라섬은 작은 섬들과 울창한 열대우림 지역이 많아 구호작업에 시간이 걸린다. 인도네시아의 피해는 아체주의 주도 반다아체를 비롯해 진앙지에 가까운 동부 ‘환(環)수마트라’ 지역에 집중됐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8일 “인도네시아와 인도 본토에서 1200㎞ 떨어진 벵골만의 인도령 안다만과 니코바르 군도에서의 인명피해가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며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AFP통신은 피해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5000여명이 두 곳 군도에서 사망했다고 전했으며 BBC 방송은 니코바르 군도에서만 1만 8000여명이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외신은 두 군도의 572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82개 섬의 상당수가 바닷물에 잠겨 이 곳의 사망자 수만 3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AP통신이 각국 외무부를 통해 집계한 외국인 사망자는 영국 43명 등 473명이지만 태국에서만 실종자 수가 4000명을 넘어 희생자는 40여개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외국인 실종자는 스웨덴 1500여명, 노르웨이 800명, 뉴질랜드 300명, 덴마크와 체코 각각 200명 등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과거 특정 지역의 재해가 단지 ‘현지의 문제’로만 여겨졌으나 이번 사고로 이제부터는 멀리 떨어진 여타 외국 지역에서도 사고의 슬픔을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들 국가는 구호작업이 진전됨에 따라 실종자들의 생사확인 작업을 서두르는가 하면 부상자·사망자 이송을 위해 군용기를 동원한 특별 수송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하프타임] 부상자 등재 하승진 데뷔전 무산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농구(NBA)에 발을 디딘 하승진(19·223㎝·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데뷔전이 미뤄졌다. 포틀랜드는 28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허리 통증 때문에 하승진을 부상자 명단(DL)에 올렸다.”고 밝혔다. 포틀랜드는 발가락을 다쳐 지난달 9일부터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던 슈팅 가드 리치 프램을 하승진 대신 12인 로스터에 올렸다. 이로써 하승진의 NBA 코트 데뷔는 빨라야 내년 1월8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홈경기에서나 가능할 전망이다.NBA 규정에 따르면 선수가 DL에 오를 경우 최소 5경기는 뛸 수 없다.
  • 연락두절 한국인 590명…피해자 갈수록 늘어

    연락두절 한국인 590명…피해자 갈수록 늘어

    동남아 및 서남아 지역의 지진 해일로 연락이 끊긴 해외여행자와 체류자가 590명에 달해 상황 수습이 본격화 되면 한국인 피해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인 사망자가 2명 추가된 것으로 확인돼 사망자는 최소한 4명으로 늘어났다. 28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현재 이번 재해로 인한 한국인 피해자는 사망 4명과 실종 12명, 부상 17명, 미확인 590여명(태국 400명·인도 100명·인도네시아 20명·기타 지역 70명)으로 집계됐다. 외교통상부는 “말레이시아 교민인 임모(33)씨와 푸켓 남단 피피섬에서 사망한 임모(19·여)씨 외에 이날 오전 푸켓섬에서 실종된 배모(75·여) 할머니의 시신이 유가족들에 의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초 사망자로 집계됐던 박모(5)군은 현지 관계자가 재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시체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와 관련, 애초 태국 팡아만과 카오락 지역에서 연락이 끊겼던 신혼부부 4명 가운데 신부로 보이는 이모씨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현지에 합동분양소가 설치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피피섬에서 생환한 부상자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당시 자신은 야자나무를 붙잡고 있어 해일에 휩쓸려 가지 않았다고 했다.”면서 “당시 정황으로 보아 미귀환자 7명은 실종됐을 가능성이 크고 현재 피피섬에 잔류하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9일 오전 인도 남부지역 첸나이시에 인도대사관 총영사를 파견하고 인도네시아 아체주 지역에서 소재확인이 되지 않는 3명의 안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28일 현지 영사를 급파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지진 및 해일 피해 구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명피해 규모는 6만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28일 하오 11시 현재 10개국이 공식 집계, 발표한 사망자수는 5만 5175명으로 하룻새 3만여명이 급증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국가별로는 인도네시아가 2만 7174명으로 가장 많고, 스리랑카 1만 7640명, 인도 8523명, 태국 1439명 순이다. 피해국 정부 관계자들은 복구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했다. 김균미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한국인 51명 연락두절…사망 3만명 넘을듯

    한국인 51명 연락두절…사망 3만명 넘을듯

    ●한국인 51명 연락 두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해역에서 26일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한국인 피해가 27일 오후 10시30분 현재 사망 2명과 실종 1명, 부상 14명, 소재 미확인 51명으로 집계됐다. 외교통상부는 “사망자와 부상자는 모두 태국에서 발생했으며, 소재 미확인자는 태국 49명과 인도네시아 3명”이라고 밝혔다. 소재 미확인자로 분류됐던 몰디브 거주 박모씨와 스리랑카를 여행 중이던 김모씨는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태국의 소재 미확인자 49명 중 대다수인 35명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여행온 여행객”이라면서 “사고발생 시점에 실제로 있었는지 다른 우리 국민과 현지인으로부터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소재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태국 이외에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교민이나 장기체류자 5명도 현재 연락이 되지 않아 소재 미확인자로 분류됐다.”면서 “해당 공관은 이들의 안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사망 3만명 넘을듯 2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을 강타한 지진과 이후 발생한 강력한 해일로 28일 0시 현재(한국시간) 비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가 2만 3000여명을 넘어선 데 이어 추가 사망자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사망자가 3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되는 등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지진 후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는 최고 리히터 규모 6.5에 달하는 여진이 수십차례 감지되고, 진앙에서 상당히 떨어진 걸프지역 예멘·오만에서도 경계령이 내려지는 등 지진 공포가 중동 일부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 각국은 피해 지역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수백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에 대한 긴급 구호에 나섰지만 아직 통신이 두절된 지역이 많아 인적ㆍ물적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 파악된 것보다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들이 아직 위생설비 마련이나 본격적인 복구작업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시체 수습 및 추가 피해 방지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산더미 만한 파도 “숨이 멎었다”

    산더미 만한 파도 “숨이 멎었다”

    26일 오전 10시쯤(이하 현지시간), 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푸켓의 해안가 마린비치 리조트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3층 베란다에서 쉬고 있던 문정희(46)씨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우우웅∼’하는 비행기 굉음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높이 2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해일이 밀어닥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화장실에 있던 남편을 불러내 무작정 복도를 달렸다. 하지만 3층 복도까지 밀려온 파도에 휩쓸려 잠시 정신을 잃었고, 뒤따라온 남편 이영석(50)씨가 부축해 4층 옥상으로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초강진이 발생한 지 2시간쯤 지난 시각, 해일에 의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문씨 부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1차 해일로 해변에 있던 사람들과 상당수 건물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후 30분간 크고 작은 해일은 4차례쯤 이어졌다.27일 오전 푸켓발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문씨는 “뼈에 사무치는 이런 공포를 느껴보기는 처음”이라며 악몽 같은 몇시간 전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해일 ‘죽음의 해일’은 푸켓의 대표적인 해변가인 파통과 카론, 판와도 휩쓸었다. 같은 시각 파통비치 인근 언덕에 있던 박경자(58)씨는 “영화에서나 봤던 산더미 같은 해일이 50m쯤 떨어진 언덕 아래 호텔 수영장에 있던 한 서양여자를 쓸고 와 옆 언덕 위로 던져버렸다.”면서 “다행히 여자는 살았지만 해변에 있던 수백명은 순식간에 쓸려내려갔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해일이 밀려오기 30분 전부터 파도는 높아졌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 이성석(36)씨는 “해변에서 가족들과 물놀이를 하던 중 갑자기 높아진 파도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죽었구나.’하고 생각한 순간 한 서양인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와 산쪽으로 무작정 달렸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해일이 할퀴고 간 자리엔 비명만 3시간쯤 흘렀을까. 오후 1시쯤 파도가 할퀴고 간 뒤 물이 빠져나간 리조트의 모습은 ‘아비규환’이었다. 해변과 나란히 서 있는 호텔과 리조트 바닥, 저층의 복도에는 피가 낭자했고 창이 모조리 깨져 유리파편이 난무했다. 해변가에는 시신들이 무더기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호텔과 리조트를 장식하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도 해안가에 둥둥 떠다녔다. 김규환(38)씨는 “실종된 가족을 찾는 외침과 부상자들의 비명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아야 할 정도였다.”면서 “앰뷸런스가 오지 않아 피 흘리는 부상자들이 몇 시간이나 그대로 복도 등에 방치됐다.”고 말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들에게 재차 해일의 공포가 엄습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 중이던 서승범(32)씨는 “오후 3시를 기해 다시 해일이 있을 것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해변가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리조트 일대는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고 말했다.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 모두 끊기는 바람에 관광객들의 공포는 더 컸다. ●“악몽을 예고한 지진에도 사람들 무관심” 구름 한점 없었던 푸켓의 악몽은 2시간 전 찾아왔다. 오전 8시쯤 지진의 여파는 관광객들에게도 감지됐다. 카론비치 인근 호텔에 묵고 있던 백재현(31)씨는 “진동에 전화기가 떨어지고 침대가 흔들렸다.”면서 “하지만 대피방송도 없었고 지진도 그리 심하지 않은 편이라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물놀이 등을 즐겼다.”고 말했다. 대재앙이 할퀴고 간 뒤 푸켓 공항은 서둘러 출국하려는 여행객으로 ‘난민촌’이 됐다. 신혼의 이기태(36)·홍민자(29)씨 부부는 “급히 나가고 싶은 생각에 신발이나 짐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면서 “‘지옥’ 같은 푸켓을 빠져나가려는 관광객들로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말했다. 푸켓에서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등 3편의 항공기를 통해 귀국한 789명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영규 박지윤기자 whoami@seoul.co.kr
  • 아시아 대지진 사망 1만명 육박

    아시아 대지진 사망 1만명 육박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에서 대규모 해일을 동반한 리히터 규모 8.9의 강진이 26일 오전 8시(현지시간) 발생,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방글라데시 등 동·서남아시아지역에서 최소 7000여명이 숨지고 10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생겼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실종자도 수천명에 이르러 사망자 숫자는 1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상자도 수천명으로 추산됐다. 로이터통신은 6334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립지진연구센터는 이번 지진이 1964년 이후 가장 강력했다고 밝혔으며 이탈리아 국립지구물리학연구소도 “리히터 8.9의 강진은 최소한 40년 동안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지진의 진앙지는 수마트라섬 서쪽 해안 해저 40㎞ 지점으로 알려졌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인도의 안다만과 인도양의 니코바르섬에서 리히터 7.3 규모의 여진이 발생하는 등 주변의 동남아와 서남아 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해일로 스리랑카에서 3000여명, 인도네시아와 인도에서 각 1900여명씩, 태국에서 198명, 말레이시아에서 42명, 방글라데시에서 2명 등이 숨진 것으로 보고됐다. 부상자 규모도 집계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갈수록 커지고 있다. 태국 남부 국제적 휴양지 푸케트에서는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파통 지역을 포함해 35명 이상이 숨지고 500여명이 부상했다고 보건당국은 밝혔다. 푸케트와 크라비 등 태국 관광지에서는 적어도 4명의 관광객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황장석기자 연합 surono@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38) ‘두산동아’ 제2 전성기 이끄는 최태경 두산출판BG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8) ‘두산동아’ 제2 전성기 이끄는 최태경 두산출판BG 사장

    국내 출판업계의 선두주자인 ㈜두산 출판BG(Business Group)는 지난 20여년간 사용해온 ‘두산동아’라는 브랜드로 더욱 친숙하다.1985년 동아출판사를 인수한 뒤 탄탄대로를 걷다가 외환위기때 시련에 부딪쳤지만 이를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 데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최태경(58) 사장의 남다른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출판계의 평가다. ●30년 두산맨, 출판사장으로 -68년 두산상사에 입사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무역이 최고로 중시되던 때라서 대학원 졸업 후 미쓰비시 뉴욕지사에 입사해 3년간 일했다.80년 다시 두산상사로 돌아왔다. 이후 두산컴퓨터와 오비씨그램, 두산제관 등에서 임원을 했고 97년 두산정보통신 대표를 맡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8월 두산동아 대표로 옮겨 99년 2월 사명이 두산출판BG로 바뀌면서 초대 사장이 됐다. 책을 읽는 것은 평소에도 좋아했지만 ‘두산맨’ 30여년간 출판쪽과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출판업은 재고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DB)가 중요시되는 위탁산업이자 대리점 영업이다.DB를 통해 물량을 예측해야 반품을 줄일 수 있다. 대리점 관리 또한 중요하다. 이 때문에 컴퓨터·주류 계열사에서 DB 및 대리점 경험을 한 내가 출판사를 맡게 된 것 같다. ●50억원 들여 재고 사전 모두 회수 -외환위기 직후 외국 컨설팅사와 함께 회사를 살려낼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잡히는 것이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고객 만족을 생각했다. 회사고객을 내부고객인 직원들과 외부고객인 대리점·학부모·학생 등으로 나눴다. 당시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며 매우 어려워 구조조정을 한다는 둥, 문을 닫는다는 둥 뜬소문이 많아 직원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 외부고객들도 두산출판이 책을 계속 낼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식으로 반신반의했다. 그런 와중에 98년 11월 양쪽 고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큰 결심을 했다. 단돈 1억원이 아쉬웠던 때, 대리점을 통해 재고 사전을 모두 반품받기로 한 것이다. 반품된 사전은 일부 기증하고 나머지는 폐기처분했다. 사전 반품에 30억원 투자키로 했으나 50억원 가까이 썼다. 그러나 효과는 엄청났다. 재고 사전을 거둬들임으로써 회사가 문닫지 않고 계속 영업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외부에서 “두산출판이 몇십억원이나 투자했으니 다시 한번 해볼 모양이다.”라는 평가가 들렸다. 직원들의 눈빛도 완전히 달라졌다. 다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대리점 사장들도 반품 처리에 고마워하며 우리 책을 더 많이 팔아줬다.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신바람이 났다.99년 들어 매출이 어느정도 회복됐지만 적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직원과 고객의 신뢰를 회복했으니 새로운 수익 창출이 관건이었다. ●직원의 자율성 강조 적중 -새로운 책을 준비하면서 ‘엉터리 책은 절대 안 낸다.’고 마음먹었다. 거래처들이 “두산출판에서 나온 책 맞아?”라고 할 정도로 내용은 물론, 디자인과 레이아웃, 컬러 등을 일대 쇄신했다. 직원들이 모든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나한테 가져오는 관행도 없앴다. 사장이 기획안을 결재하면 그 다음부터는 직원들이 모두 알아서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우왕좌왕했지만 고객의 니즈(요구)를 파악한 뒤 시장조사를 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책 한권이라도 마케팅·디자인·영업·편집팀 등에서 1명씩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TF에서 결론이 나면 끝까지 밀고 나가도록 했다. 위에서 지시만 받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책임지고 철저한 시장조사 결과에 따라 만드니까 반응이 훨씬 좋았다. 물론 직원들끼리 합의해 만드는 데 시간은 더 걸린다. 그러나 좋은 책이 나오는 과정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직원들에게도 고객은 두가지다. 편집직원의 내부고객은 영업직원이다. 좋은 책을 만들어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선생님·학부모·학원강사 등 외부고객이 뭘 원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고객의 마음을 알아야 성공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마케팅이다.3년째 모든 직원들이 한양대 마케팅 교수들과 팀을 이뤄 마케팅 교육을 받고 있다. 일을 잘한다고 해서 스카우트해오면 우리 회사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나가기도 한다. 시키는 일만 하다가 능동적으로 하려니 못 견디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자산이다. 시키는 일만 해서는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없다. ●투명경영으로 회사 비전 제시 -마케팅을 통한 핵심역량 강화, 선택과 집중에 의한 수익 극대화도 중요하지만 투명경영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장이 되자마자 임직원 대상 분기별 경영설명회를 계획했다. 임원들이 “회사 치부까지 드러내면 타사에 들어가 곤란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직원들을 모아놓고 직접 매출·손익 등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정보가 외부로 많이 나갔지만 2∼3번쯤 하니까 유출이 싹 없어졌다.‘이 부문의 실적이 안 좋은데 우리끼리 숨길 것도 없고 얘기하고 반성하자. 이 부분은 잘 되는데 잘 되는 이유를 나눠보자.’는 식으로 토론을 했다. 지금은 경영설명회가 자연스럽게 기업문화가 돼 매년 4번씩 한다. 실적이 안 좋았을 때보다 지금이 효과 만점이다. 결국 투명경영이 이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장 취임 후 3∼4년 정도는 회사를 안정시키기 위한 시간이었다.4년째 되니 이익도 좀 났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수 없다. 투명경영을 통해 회사 비전을 보여줘야 직원들이 따라온다. 직원들이 떠나지 않는 회사만이 희망이 있는 회사다. ●등산 통해 도전정신·끈기 길러 -지난 3년여간 백두대간을 종주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경영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산을 타게 된 것은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던 98년. 하루종일 회의에 시달리다가 머리를 식히러 공원 등에서 매일 1시간씩 산보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99년 들어 남산·북한산 등을 타면서 ‘회사 식구만 200명이 넘는데 회사가 잘못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회사를 살리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 어려운 목표를 세워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53세의 나이에 백두대간 종주를 타깃으로 삼았다. 내 스스로 도전해서 이기지 못하면 직원들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출판인산악회가 백두대간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습을 시작했다. 속리산 등을 헤매며 동계훈련을 끝내고 2000년 3월 소백산에서 첫 등정에 나섰다.3년3개월간 매월 한번씩 탔는데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하루 18시간 걷기도 했고 죽을 뻔한 고비도 많이 넘겼지만 종주를 끝내니 뿌듯했다. 당시 직원들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백두대간은 끝났지만 또다시 시작이다. 뭔가를 이뤘다고 해서 멈추면 안 된다. 변화와 도전을 위해 또 걷자, 또 오르자.’고 썼다. 매년 2번씩 직원들과 산을 탄다. 최근에는 설악산에서 분기설명회를 했다. 직원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끈기를 기르기 위한 교육에 따라와줘 고마울 뿐이다. -조직의 리더는 ‘페이스메이커’다. 돌격할 때도 있고 1보 전진했다가 2보 후퇴도 있다. 등산과 마찬가지로 경영도 좀 쉬면서 영양을 보충하기도 하고, 부상자도 치료해야 한다. 등산하기 전 장비와 식량을 준비하는 것도 경영과 같다. 무작정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이 최고 미덕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등산도 경영도 망치고 만다. ●책은 인생의 최고 스승 -책이라는 것은 제일 좋은 선생님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책을 읽는 만큼,‘평생교육을 통한 자아실현’이 우리 회사의 모토다.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초·중·고 학습물을 비롯, 유치·유아 부문의 교재를 새롭게 출시하고 있다.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레고 등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학습물도 만들고 있다. 중등 온라인교육 및 전자사전 시장에도 뛰어들었으며, 토익·토플 등 성인 영어교재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오랜 전통의 백과사전도 야생화 및 한국의 산, 세계의 문화유산 등을 가다듬어 펴내려고 한다. 일본의 대형 종합출판사를 벤치마킹해 임신·출산·육아 및 실버 관련 출판물도 기획해 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올해는 기존제품 대비 신상품 비율이 95대 5 정도였지만 내년에는 85대 15로 만든 뒤 2007년 7대 3,2009년 6대 4 정도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최태경 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카리스마 최’로 불린다는 최태경 사장을 만나 보니 나이에 비해 동안(童顔)인 데다가 캐주얼한 의상, 부드러운 눈웃음에 깜짝 놀랐다.‘고상한’ 출판사 사장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도 잠시, 다양한 계열사를 돌며 쌓은 경험과 백두대간 종주 등의 인생 스토리에서 관록이 묻어나왔다. 연세대 경제학과와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의 한차례 ‘외도’를 제외하고 줄곧 두산그룹을 지켜온 최 사장. 지난 6년간 책과 등산에 관심을 쏟아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고 했다. 주중 야근은 물론, 주말·휴일에도 나와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 회사가 생기있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자랑한다. 대학교수인 아내가 미국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어 2년째 떨어져 살고 있지만, 영문학 전공인 아내의 교육컨설팅이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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