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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 고시원서 방화 추정 불… 7명 사망

    용인 고시원서 방화 추정 불… 7명 사망

    25일 새벽 불이나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용인의 고시원 화재는 ‘방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화재 현장 잔해물과 CC(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용의자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날 오전 1시25분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10층짜리 상가건물 9층의 T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40분 만인 오전 2시5분쯤 진화됐다. 잠을 자던 이영석(38), 정찬영(27)씨 등 7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부상자 10여명은 용인지역 병원에서 분산 치료 중이다. 사망자 중 지문감식을 통해 이날 오후 5시 현재 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발화 장소는 6호실과 8호실이었다.6호실은 전소됐고,8호실은 침대 일부가 불에 탔다.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면적이 6.6㎡(2평)도 되지 않는 68개 방들이 벌집처럼 붙어 있고 대피로가 턱없이 좁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상열 용인 소방서장은 “거리가 떨어진 방 2곳에서 한꺼번에 불이 날 수는 없다.8호실에 먼저 불을 붙였는데 불이 제대로 나지 않자 6호실에 다시 불을 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6호실과 8호실은 모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누군가 고의로 불을 냈다는 설명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정황들이 확인되고 있는 만큼 목격자 진술과 CCTV 조사 등을 통해 용의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용인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차질 우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공사가 최근 착공됐으나 5·18 관련 단체들이 옛 전남도청 별관 건물의 원형 보전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사업 차질이 우려된다. 5·18유족회 등 4개 단체는 21일 “역사적 현장인 옛 전남도청 별관 건물 보존을 위해 최근 ‘공동대책위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철거 저지 투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책위 관계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기획단이 사업 내용이 결정됐다는 이유로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며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사적지인 이 건물의 보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5·18구속부상자회 회원들은 최근 이 건물의 보전을 촉구하며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도청 본관과 이어진 별관 건물도 5·18 역사적 공간의 한 부분”이라며 “이를 철거하겠다는 ‘추진기획단’의 계획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획단측은 “문화전당의 주요 통로인 옛 도청 별관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기본설계 틀 자체를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5·18 관련단체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따라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사업의 차질이 우려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땀 흘리고 피흘리는 교육용 마네킹 화제

    땀 흘리고 피흘리는 교육용 마네킹 화제

    마네킹이 땀을 흘리고 심지어는 구토까지? 진짜 사람처럼 움직이고 토하며 땀까지 흘리는 마네킹 인형이 나왔다. 원격 조종으로 움직이는 이 마네킹의 이름은 아이스탠 (iStan). 의료종사자들이 실제상황처럼 실습할 수 있도록 만든 최신형 트레이닝 도구다. 포츠머스 대학 연구팀이 만든 이 마네킹의 가격은 자그마치 4만 파운드 (약 8천1백만원) 로 해골부터 눈 속까지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를 그대로 모사해 디자인됐다. 마네킹의 동공은 팽창과 수축이 가능하고 살에 닭살이 돋기도 하며 출혈은 물론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 혈압이 떨어지거나 칼에 찔려 내부 장기가 밖으로 나오는 상황 연출도 가능해 위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레슬리 레이놀드 교수는 “학생들은 이 마네킹을 이용해 자동차 사고나 계단추락 사고 등을 미리 겪을 수 있다.”며 “진짜 환자를 상대로 연습할 수 없는 돌발상황을 마네킹을 이용해 연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네킹을 이용해 학생들을 교육시킨 헬스케어 전문가 필 에쉬웰은 “마네킹이 부상자 치료의 질을 향상 시킬 것”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 중 몇몇은 마네킹의 진짜 같은 모습에 경계심을 갖기도 한다.”며 “그러나 실습을 시작해보면 더 빠르고 깊게 배운다.”고 덧붙였다. 사진= bbc 인터넷판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글로벌 시대] 오늘을 뛰어넘는 희망/간노 도모코 일본 프리랜서 언론인

    [글로벌 시대] 오늘을 뛰어넘는 희망/간노 도모코 일본 프리랜서 언론인

    “오늘을 뛰어넘는 희망.” 지난 6월10일 서울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두고 일본의 어느 저널리스트는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했다. 그날 집회 현장에 나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촛불 행렬에는 중·고등학생부터 유모차를 끈 30대 부부, 넥타이족까지 있었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차도를 가득 메운 광경은 압권이었다. 이들은 차분하게 내게 분노를 말해줬다. 행진 대열을 뒤따르면서 일본인은 언제부터 분노하기를 포기했을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일본에서 시위가 정점에 올랐던 것은 1960∼70년대다. 최대 규모는 60년의 신(新) 미·일안보조약에 반대한 ‘안보투쟁’ 때였다. 국회의사당 앞에 약 65만명이 모여 많은 부상자를 내고 학생 1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당시 기시 내각을 총사퇴시킨 시위가 ‘국가 권력에 대한 투쟁’이란 무정부주의로 변모하자 시민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쇠퇴해 버렸다. 지금 일본에서도 고용문제, 고령자 의료문제 등으로 분노가 솟구치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하나로 뭉쳐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다. 한 일본인 기자의 탄식이다.“불만의 목소리가 가득 차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진다. 과거 같은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체념 분위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만 해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미국은 대선 후 일본에 쇠고기 수입조건의 폐지 압력을 가해 올 것인데, 일본은 과연 먹거리 안전을 놓고 한국처럼 국민이 궐기해 반대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1977년부터 3차례 교섭을 거쳐 91년 수입을 시작했다. 싸고 부위별로 수입할 수 있어 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돼 수입이 처음으로 중단됐다. 남녀노소가 즐겨 먹던 ‘쇠고기 덮밥의 위기’가 닥쳤다. 쇠고기 덮밥 체인점이 미국산 쇠고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2001년 9월 일본에서 처음으로 광우병 소가 발견돼 열도를 공황 상태에 빠트린 적이 있다. 당시 일본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나는 여성이 주름을 없애기 위해 주입하는 콜라겐도 소에서 추출한 것이어서 위험하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일본산 소에 대한 전수검사가 시작됐다. 일본은 미국에도 전수검사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20개월령 이하의 소에서는 광우병 발병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오히려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하면 검사가 필요없다는 완화된 조건을 제시하고 일본 정부가 수용하는 형태로 수입이 재개됐다. 그런데 2006년 1월 나리타 공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검역하면서 SRM에 해당하는 척수가 섞여 있는 사실이 드러나 다시 수입이 금지됐다. 같은해 7월 일본 시찰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안전성이 확인된 시설에 한해 수입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는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중단과 재개가 몇차례 되풀이됐다. 국민들이 전전긍긍할 때 저명한 경제평론가가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쇠고기 덮밥’에 대해 “덮밥을 먹고 광우병에 감염돼 죽는 게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 낮다.”고 지지발언을 한다. 이후 지난해 3월부터 대형 마트에 미국산 쇠고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또 SRM이 포함된 쇠고기가 발견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은 꼬리를 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은 수입소의 월령을 30개월 미만으로 하도록 일본에 이미 요구해 놓은 상태다. 게다가 올 들어 미국이 복제 소의 수출을 일본 측에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이러한 사태 전개에 일본인은 어떻게 대처할까. 분노를 잊은듯한 일본인에 “오늘을 뛰어넘는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간노 도모코 일본 프리랜서 언론인
  • [사설] 또 쇠파이프와 물대포인가

    제헌절인 그제 밤 서울 도심에서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의 쇠파이프와 경찰 물대포가 또다시 등장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시위 이후 처음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참여와 호소로 폭력시위가 수그러드는 듯했다. 우리도 그동안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측과 정부간 대화를 촉구하며 폭력을 자제하길 당부해 왔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기에 그랬다. 따라서 19일만에 양측의 충돌로 부상자가 다수 생긴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또 대규모 거리집회를 열 계획이라니 걱정된다. 거듭 강조하건대 폭력은 안 된다. 서울 중앙지법은 어제 쇠파이프를 휘둘러 경찰관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씨에게 징역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혐의 인정은 물론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시위현장에선 한두 사람이 폭력을 선동해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바로 군중심리다. 폭력은 의도의 순수성에 상관없이 엄벌해야 마땅하다.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과잉진압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촛불시위 과정을 조사해온 국제앰네스티측은 경찰의 과도한 진압을 지적했다. 경찰도 인권단체의 속성이려니 탓하지 말고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물리력은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라는 얘기다. 최근 서울신문의 창간특집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1%가 “촛불집회를 그만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계속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은 29.2%에 불과했다. 촛불집회 강행의견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판국에 폭력행사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 [MLB] 찬호 다시 불펜?

    박찬호(35·LA 다저스)의 선발 로테이션 잔류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다저스의 일본인 마무리투수 사이토 다카시(38)가 부상을 당해 ‘연쇄 보직이동’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사이토는 13일(한국시간)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직구를 뿌리다가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껴 강판됐다.15일 MRI검사를 받아봐야 부상 정도를 알 수 있지만, 노장인 데다 1997년 일본에서 팔꿈치 수술을 한 전력이 있어 코칭스태프가 긴장하고 있다. 조 토레 감독은 “올스타브레이크(15∼18일)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있다. 사이토가 4∼5일 쉬고 괜찮아지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다저스는 사이토가 부상자 명단에 오를 경우 셋업맨 조너선 브록스턴을 마무리로 돌린다는 복안이다.문제는 브록스턴이 맡고 있는 셋업맨. 주로 이기거나 동점 상황에서 7∼8회 등판하는 셋업맨에겐 마무리 투수 못지않은 구위가 요구된다. 현재 다저스 불펜에서 이 임무를 맡을 만한 투수는 타이완 출신 좌완 궈훙즈가 꼽힌다. 궈훙즈는 올시즌 주로 롱맨으로 나서 3승1패 방어율 1.69의 빼어난 성적. 하지만 한때 ‘아시아의 랜디 존슨’으로 불렸던 궈훙즈는 네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잦은 등판이 요구되는 셋업맨으론 위험하다는 평가도 있다. 궈훙즈를 제외하면 토레 감독이 셋업맨을 맡길 만한 투수는 사실상 박찬호뿐. 올시즌 선발과 롱릴리프를 오가며 빼어난 구위를 뽐내 ‘어떤 임무를 맡겨도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코칭스태프의 뇌리에 남아 있다. 설사 궈훙즈가 셋업맨을 맡더라도 롱릴리프에 공백이 생겨 불펜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너무 잘 던져도 문제(?)인 셈.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9) 남한산성의 나날들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79) 남한산성의 나날들 Ⅲ

    왕세자를 보내지 않으면 화친은 꿈도 꾸지 말라는 청군 지휘부의 요구가 있은 직후 성안의 분위기는 복잡했다. 여전히 화친을 시도해야 한다는 부류와 화친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최후의 결전을 벌여야 한다는 부류로 나뉘었다. 결단은 쉽지 않았다.1636년 12월17일 청군이 성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음에도 도체찰사 김류는 발포하지 못하게 했다. 행여 청군을 자극하여 화친 시도를 망칠까봐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조선 편이 아니었다. 화친이든, 결전이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갈팡질팡할 경우 얼어 죽거나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군량 고갈·동상환자 속출로 지구전 불가 포위가 길어지면서 남한산성의 형세는 날이 갈수록 고단해졌다. 성을 에워싼 청군의 압박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여러 가지 물자들이 고갈되고 있었던 점이었다. 남한산성에 몰아친 한파는 혹독했다. 갑자기 소집되어 들어왔던 병사들이 방한(防寒) 장구를 제대로 갖췄을 리 없었다. 그저 빈 가마니 하나를 방한복 삼아 두른 채 밤새도록 살을 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미 12월17일 성첩을 지키는 병사들이 추위 때문에 손과 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동상에 걸리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군량이 고갈되는 와중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동상에 걸리는 병사가 속출하자 사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군량을 비롯한 물자가 부족해지자 후유증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다. 당장 먹이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전마(戰馬)들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굶주려 늘어져 버린 말을 타고 무슨 전투를 치를 것인가? 성으로 들어온 지 닷새도 되지 않아 극심한 추위와 물자 부족 때문에 전쟁을 치르기가 도저히 곤란하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었다. 지구전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퍼져가자 결전론(決戰論)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김상헌(金尙憲)을 비롯한 일부 신료들은 적과의 화친을 성공시키려면 전투를 치러 아군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었다. 시간은 이미 홍타이지와 청군 편이었다. 제대로 된 전투를 치러 어느 정도 타격을 주어야만 청군도 화친을 고려할 것이고, 화친의 조건 또한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청군과의 화의(和議)를 주도하던 최명길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은을 상으로 내걸어 용사들을 모집한 뒤, 그들을 시켜 적을 기습하자고 주장했다. 타격을 주어 곤혹스럽게 만들어야만 청군이 다시 강화를 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명길은 더 나아가 적정을 세밀하게 정탐한 뒤 광주(廣州)와 이현(梨峴)에 있는 청군 주둔지를 급습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팎으로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인조는 두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기습작전을 벌일 장사들을 빨리 모집하라고 지시했다. ●규모 작지만 수성 뒤 첫 승리 거둬 사기↑ 싸우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인조는 성을 사수하며 결전을 벌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12월18일 인조는 친히 산성을 순시하면서 방어 태세를 점검했다. 서장대(西將臺-守禦將臺)까지 돌아본 인조는 성첩을 지키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조처를 내렸다. 엄동설한에 분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중군(中軍) 이하 장졸 가운데 6품이 안 된 자는 6품 실직(實職)을 주고,5품 이상은 순서대로 승진시키라고 지시했다. 또 성첩 수비군들에게 향후 10년 동안 전세(田稅)를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인조는 이어 행궁(行宮) 주방에서 사용하던 은기(銀器)를 모아 병사들에게 상을 내리는 데 쓰라고 지시했다. 인조는 남문으로 거둥하여 대소 신료들과 장졸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유시문을 내렸다.‘정묘년에는 종사(宗社)와 생령(生靈)들을 위해 임시로 화친을 허락하고 치욕을 감수했다. 지금 오랑캐가 황제를 참칭(僭稱)하고 우리나라를 업신여기므로 천하의 대의를 위해 그 사신을 배척했다가 이 같은 환란을 만났다. 이제 화의는 이미 끊어졌고 오로지 결전이 있을 뿐이다. 이기면 상하가 모두 온전할 것이요, 이기지 못하면 상하가 모두 망할 것이다. 저 오랑캐가 외로운 형세로 깊숙이 들어왔으니, 사방의 원병이 이어 달려오고 하늘이 돕는다면 우리는 이길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구하고 자식이 아비를 구하는 마음으로 싸운다면 병력이 비록 적어도 적을 물리칠 수 있나니, 하물며 지금 우리는 많고 적들은 적음에랴!’ 인조는 유시문에서 결연한 자세를 드러냈다.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의지는 결연했지만 청군에 대한 인식은 정확하다고 할 수 없었다. 적군이 깊숙이 들어온 것은 맞지만 그들의 병력이 조선군보다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12월15일 남한산성 부근에 도달했던 마부대 일행의 병력은 4000여명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산성으로 몰려드는 적병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조선 조정은 청군이 증강되고 있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적정(敵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인조가 유시문을 내린 것을 계기로 성안의 분위기는 결전의 방향으로 돌아선 것 같았다. 더욱이 인조가 남문으로 갔을 때 전 참봉(參奉) 심광수(沈光洙)가 ‘최명길을 참수하여 화의를 끊고 백성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입장이 곤란해진 최명길은 거둥 행렬에 있다가 자리를 피했다. 이날 어영부사(御營副使) 원두표(元斗杓)가 정예병 50여명을 이끌고 북문을 열고 나아가 적을 기습했다. 청군은 당황했고 조선군은 처음으로 적 6명을 살해했다. 산성으로 들어온 이후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아쉬운 것은 그들의 수급(首級·적군의 머리)을 획득하지 못한 점이었다. 당시 청군은 전사한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가져가는 데 결사적이었다. 동료의 시신을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두표 군의 승리는 성안의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청의 대군 몰려와도 깜깜한 조정 12월19일부터 23일까지 조선군은 성밖으로 나가 기습작전을 벌이는 등 소소한 전투를 계속 치렀다. 총융사(摠戎使) 구굉(具宏)과 어영별장(御營別將) 이기축(李起築) 등이 출전하여 전후로 청군 100여명을 죽였다.23일에는 어영군이 청군의 수급을 가져와 성 안에 높이 매달기도 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청군에 비해 조선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전후의 전투에서 10명 이내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각각 발생했을 뿐이었다. 인조는 수시로 성을 순시하며 장졸들을 위로하고, 전사한 장졸에게 휼전(恤典)을 베풀 것과 그 자손들에게 벼슬을 주라고 지시했다. 몇 차례의 작은 승리를 통해 청군과 싸워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분명 큰 수확이었다. 또 몇 차례 당한 기습에 영향을 받았는지 12월20일과 22일에는 청군 지휘부가 역관 정명수(鄭命壽) 등을 보내와서 다시 화친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미 12월19일 오후, 청군의 좌익(左翼) 주력군 2만 4000명이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성안의 조선 조정은 이 같은 바깥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산성 주변에 포진한 청군 진영에서 불길이 오르고, 산성 서쪽의 먼 곳에서도 불길이 오르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 조선 조정은 여전히 근왕병이 오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시백(李時白)은 인조에게 열흘 정도만 버티면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에서 근왕병이 올라올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발언이었다.12월19일 인조는 강화유수(江華留守) 장신(張紳)과 강화도 검찰사 김경징(金慶徵)에게 납서(蠟書·밀랍으로 감싼 비밀 문서)를 보냈다. 도원수와 여러 지방의 관찰사, 병사(兵使)들에게 연락하여 근왕병을 이끌고 빨리 산성으로 오게 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강화도는 남한산성과 달리 물길을 통해 다른 지역과 통신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조처였다. 근왕병은 과연 올 것인가?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근왕병을 학수고대하는 사이 어느덧 병자년이 저물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열린세상] 정부는 ‘법치주의’를 버리려는가/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열린세상] 정부는 ‘법치주의’를 버리려는가/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미국산 쇠고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점점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가 아니라 선거로 선출된 정부’라는 것을 명분으로 강경진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촛불시위 때문에 ‘법치주의’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법치주의에 대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우선 선거로 선출된 정부라고 해서 잘못된 공권력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의 대명사로 꼽히는 히틀러도 상당한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집권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법치주의’라는 단어도 제대로 쓰여야 한다.‘법치주의’의 반대말은 불법 시위가 아니라 ‘권력자에 의한 자의적인 지배’이다. 본래 ‘법치주의’는 공권력의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온 원리가 아니라,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나온 원리이다. 즉 전제적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맞서, 법 앞의 평등과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법에 의한 지배’를 하려는 것이 법치주의인 것이다. 사실 ‘법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에 임기가 남아있는 공공기관장들에 대해 법적인 근거도 없이 사표를 종용했다.‘법의 지배’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태였다. 임기제를 통해 공공기관장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법치주의’이건만, 이명박 정부는 임기제 정착을 위해 그동안 해 왔던 노력들을 한순간에 무산시켰다. 그리고 최근에는 촛불 시위에 대해 강경진압을 하고 있다. 그 명분은 ‘법치주의’ 회복이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법치주의’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시위진압 경찰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국민이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법 어디에도 경찰이 누워있는 시위대를 발로 밟고 곤봉으로 내리치고 방패로 찍으라고 하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지난 6월28일 밤 경찰은 비폭력적으로 누워있는 YMCA 이학영 사무총장을 비롯한 시민들을 밟고 내리치고 찍어서 많은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이런 초법적인 폭력진압을 묵인하는 정부는 ‘법의 지배’와는 거리가 먼 정부이다. 또한 ‘법치주의’의 기본은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수사권, 감사권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PD수첩의 보도가 일부 공정하지 못했다고 치자.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었다고 해서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한다지만,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훼손한 장본인은 언론이 아니라 졸속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이다.KBS에 대한 특별감사, 네티즌들에 대한 수사 등도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비판의 자유’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권력기관들이 정권 핵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면, 법치주의가 유린되었던 독재정권 시절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오히려 현 정부야말로 ‘법치주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중단하고, 시위에 대한 불법적인 과잉진압을 중단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법치’를 통해 ‘선진화’를 달성하겠다고 한 정부다. 그런데 지금의 행태는 ‘선진’이 아니라, 후진기어를 넣고 페달을 밟는 것이다. 법치가 아닌 ‘자의적 통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이런 행태는 정권에도, 국민에게도 모두 불행한 일이다.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 주말 48시간 촛불집회 폭력 격화

    주말 48시간 촛불집회 폭력 격화

    경찰이 야간 촛불집회 원천봉쇄에 들어간 29일 촛불집회는 사실상 열리지 못했다. 촛불집회가 예고와 달리 열리지 못한 것은 지난달 2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경찰은 전·의경 11개 중대 1000여명과 경찰버스 30여대로 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광장 주변을 1∼2겹으로 에워쌌다. 광장 주변에 주차됐던 대책회의와 화물연대의 무대차량를 견인해 갔고, 항의하던 시민 16명을 연행했다. 이에 따라 시위대는 명동, 종각, 동대문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인 뒤 종로1가 보신각 앞에 모여 농성을 벌였다. 사전체포영장이 발부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지도부는 이날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대책회의 일부 인사는 농성에 동참했으나 집회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집회를 생중계해 왔던 일부 인터넷 뉴스들은 방송 장비가 물에 젖어 이날 방송을 하지 못했다. 농성에 참여했던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경찰이 집회와 시위를 일시적으로 해산할지 모르지만 국민 마음속의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색 형광 염료 물대포 첫 사용 앞서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 8000여명(주최측 추산 20만여명)의 인파가 모여 ‘6·10 촛불대행진’ 이후 가장 많았다. 경찰과 시민들은 전경버스를 사이에 두고 양측 모두 폭력을 동원하며 대치했다. 경찰은 시민들이 경찰버스를 흔들자마자 오후 8시50분쯤 물대포를 뿌렸고, 일부 시위대는 쇠파이프 등으로 버스를 부쉈다. 경찰이 조기 해산 작전에 들어가자 흥분한 시위대는 깃대등으로 전경버스의 유리창을 부수고 계란과 돌, 물병 등을 던졌다. 시위대는 고립된 경찰의 살수차에서 빼낸 소방호스를 인근 건물 소화전 등에 연결해 경찰에게 즉석 물대포를 쏘는 등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벌어졌다. 오후 11시50분쯤 시위대가 일부 경찰차량을 끌어내자 경찰은 본격적인 진압에 들어갔다. 전경들은 노약자와 여성 등을 가리지 않고 진압봉으로 내리쳤다. 소화기, 쇠파이프, 각목 등을 시위대를 향해 집어던졌고 진압봉과 방패를 마구 휘둘렀다. 일부 흥분한 전경들은 곤봉에 맞아 도로에 넘어진 시민에게 몰려들어 짓밟기도 했다. 전경들은 이를 말리던 시민들을 폭행했고 인도까지 올라가 시민들을 무차별로 때렸다. 일부 시위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와 각목 등에 전·의경의 부상도 이어졌다. 한 전경은 시위대에 폭행당해 뇌진탕 증세를 앓고 있고, 한 20대 여성은 전경들로부터 집단으로 폭행을 당해 오른팔이 골절됐다. 파란색 형광 염료를 넣은 물포가 처음으로 사용됐다. 경찰 부상자는 자체 추산으로 112명, 시민 부상자는 대책회의 추산으로 300여명이다.55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밤샘 시위는 29일 오전 7시쯤 남아 있던 시민들이 자진해산하며 끝났다. ●경찰, 대책회의 간부 2명 첫 구속 한편 경찰은 서울 지하철 경복궁 역앞 기습시위 현장에서 검거된 대책회의 안진걸(35) 조직팀장과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윤희숙(32·여) 부의장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주최측 간부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대책회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80년대 군사독재를 방불케 한 폭력 경찰의 만행은 평화적인 시민을 폭력 시위자로 매도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탄압의 명분을 획득하려는 것”이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시위에 대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게임’이라고 했지만 지금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건 바로 국민들”이라고 주장했다. 김승훈 장형우 황비웅기자 zangzak@seoul.co.kr
  • [사설] 폭력의 악순환 더는 안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갈수록 불법·폭력으로 변질돼 부상자가 속출하고 전경 버스가 파손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급감해 울상이다. 급기야 비폭력을 호소하는 순수한 집회 참가자들이 따돌림을 당하는 등 우려했던 부작용이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의 건강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촛불 시위가 순수성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그래야 설득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비폭력·평화 시위를 유지해 새로운 시위 문화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부가 쇠고기 추가 협상을 통해 30개월령 이상 수입을 금지하고, 검역권을 강화하는 성과를 얻어낸 것도 비폭력 시위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촛불 시위는 이제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고시의 관보 게재에 반발하며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전개된 ‘1박 2일’ 집회가 또다시 폭력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서는 “비폭력으로는 안 된다.”는 구호가 거침없이 쏟아졌다. 국민들은 촛불 시위가 반미(反美) 또는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산되는 등 1980년대식 이념 투쟁으로 바뀌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폭력의 악순환이 더 이상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 과격 행동을 부추기는 일부 정치, 노동 단체는 폭력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미국 쇠고기 수입에 따른 후속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는지 조용히 지켜보면서 경제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도 불법·폭력 시위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쇠고기 협상을 잘못한 점을 시인한 만큼 책임질 사람들을 문책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국정 운영의 모습을 하루빨리 보여 주길 기대한다.
  • “역사적 물품 고철로 팔다니”

    대구지하철공사가 지난 2003년 19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불에 탄 전동차를 매각하자 유족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는 27일 “대구지하철공사측이 추모사업추진위원회나 유족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고 전동차를 매각했다.”며 “이는 사고의 교훈과 유족의 아픔,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사고 전동차 매각 사실이 알려진 지난 26일 대구지하철공사를 항의 방문, 사장의 사과와 함께 처분 절차를 중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최근 불에 탄 전동차 12량 중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안전교육용으로 보관 중인 1량을 제외하고, 대구 안심차량기지에 보관돼 있던 나머지 11량을 입찰을 통해 경기도의 한 고철업체에 2억 1500여만원에 팔았다. 희생자대책위 관계자는 “사고 전동차가 단순히 지하철공사의 소유물이지만 참사를 겪은 뒤부터 정서적으로는 유족과 부상자, 대구 시민의 것”이라며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역사적인 물품으로 영구 보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지하철공사측은 “참사 이후 대구지방경찰청 방화사건 수사본부로부터 차량처분 승인을 받았고, 장기 보관에 어려움이 있어 매각하게 됐다.”며 “유족의 요구에 따라 이미 반출된 전동차 6량을 제외한 나머지 5량은 희생자대책위 등과 협의를 거쳐 처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공권력 경시풍조 도 넘었다

    광화문·시청 집회가 점차 불법·폭력시위로 변해가고 있다. 여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공권력과 시위대의 충돌을 소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갈등 연장선상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도를 넘고 있다. 일부 시위 과격파는 도심을 누비면서 경찰에게 유리병이나 돌로 채운 페트병을 내던졌다. 심지어 구슬을 장전한 새총을 조준해 쏘아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시위대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경찰 수뇌부는 청와대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 버스를 동원해 청와대 진입로마다 바리케이드를 치는 통에 밤만 되면 동네 주민들의 발이 묶이고 상점들이 철시를 하는 상황이 한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법치와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할 공권력이 코너에 몰린 지 오래다. 무기력한 청와대와 대의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일부 불법 시위대를 쳐다봐야 하는 시민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미 진정한 의미의 촛불은 꺼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단위 참가자들과 중·고교생들이 떠난 이후 광화문의 촛불집회는 또 다른 요구의 광장이 된 지 오래다. 보수정권의 타도를 외치는 급진 진보세력, 일부 반미단체들이 국민건강권을 볼모로 벌이는 정치투쟁에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야당이 합세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고시를 강행한 뒤 처음 맞는 이번 주말이 향후 정국의 최대 고비이다. 정부는 말로만 단호 대처를 외칠 것이 아니라 교통마비로 불편을 겪는 주민들과 직장인, 생계에 지장을 받는 서민 등 일반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법과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과격시위대와 일반 국민에 대한 공권력 집행은 당연히 구분해야 한다.
  • [美쇠고기 고시 이후] 거세진 시위대

    [美쇠고기 고시 이후] 거세진 시위대

    정부의 장관 고시 관보 게재에 실망한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경찰이 시민들을 무더기로 연행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서 심각한 불상사가 우려된다. 26일 밤 광화문 주변에서 벌어진 50차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9시부터 경찰버스를 끌어내기 시작했고, 경찰은 곧바로 소화기와 물대포로 응수했다. 양측 모두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시민들은 “세종로에서 한가롭게 구호나 외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만류에도 청와대 진입 시도가 계속됐다. 앞서 이날 오전까지 이어진 49차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청와대 방향으로 진입이 용이한 신문로 새문안교회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새문안교회 뒤 주차장에 도착하자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폭이 5m도 안 되는 주차장 진입로에 시위대 300여명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200여명의 전의경을 투입했다.“밀리면 안 된다. 기자도 예외없다.”는 현장 지휘관의 지시도 나왔다.3m 떨어진 시민들에게 고압의 물대포가 직격으로 쏟아졌다. 차량 위에 올라가 있던 방송사 촬영기자에게도 물대포를 쐈다. 조모(53·자영업)씨는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절단됐고,2명의 시민은 방패에 찍혀 코뼈가 내려앉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전·의경들도 극도로 흥분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파리 ‘자전거 혁명’ 자축

    |파리 이종수특파원|파리 시민 10명 가운데 1명이 회원으로 가입, 이용자 2500만여명….’ 사회당 소속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이 1년 전 야심만만하게 도입한 ‘벨리브(자전거·velo+자유·liberte)’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자전거 혁명’이었다.1년 동안 210만여명의 파리 시민 가운데 20만여명이 벨리브 회원으로 가입했다.1만 6000여대가 비치된 무인 자전거 대여소는 대부분 텅텅 비어 있을 정도로 인기다.‘여왕’이라 이름 붙인 금회색 자전거는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은 물론 일상의 파리 거리를 반짝거리며 달린다. 벨리브 효과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더 빛난다. 급등하는 유가 대신 벨리브 자전거뿐만 아니라 일반 자전거 이용자도 늘어났다. 이제 벨리브는 파리의 교통풍속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파리 시는 벨리브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1년 동안 벨리브 자전거 대여료로 3000만유로(약 489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또 ‘환경 도시’ 이미지를 키우는 데도 일조했다. 나아가 차기 사회당 당권은 물론 2012년 대권에 도전하려는 들라노에 시장의 정치적 야망에도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후유증도 적지 않다. 자전거 사고가 계속 늘어났다. 올해 1·4분기 동안 자전거 사고로 인한 부상자가 11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1.4%가 증가했다. 또 무인대여소에 설치된 자전거 30%가 도난·훼손 등에 시달리면서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파리 시내 광고 게재를 조건으로 자전거를 제공하는 JC데코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용자 98%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27일 샹젤리제에서는 페달을 밟으며 자유를 만끽하는 파리지앵(엔)의 새 풍속화를 기념하는 큰 축하행사가 열린다.vielee@seoul.co.kr
  • [美쇠고기 고시 이후] 확산되는 고시 반발

    정부의 장관 고시 관보 게재와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촛불집회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26일 전국 곳곳에서 고시 강행을 규탄하거나 미국산 쇠고기 냉동창고 반출을 막으려는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26일 저녁 7시 5만여명(경찰 추산 3500여명)의 시민들이 태평로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50번째 촛불문화제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시위대가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로 향하면서 저녁 9시부터 광화문 사거리 및 근처 골목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시민 수명이 피를 흘리면서 후송되기도 했다. 경찰은 곧바로 물대포와 소화기를 시민들에게 난사하며 행진을 막았다. 시민들은 세종로를 막은 경찰버스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버스 위로 올라가 ‘고시 철회’를 외쳤다. 청계천 광장에서는 시민들에 의해 대열에서 끌려나온 전경 한 명이 다쳤고, 수백명의 시민들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정문으로 다가가 계란과 쓰레기를 던졌다. 시민들이 던진 벽돌에 동아일보 유리벽에 금이 가기도 했다. 신수민(43·서울 강남구)씨는 “조용히 촛불만 들다가 결국 이렇게 됐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소리쳤다. 최유식(45·서울 강서구)씨는 “고시 강행은 무효다. 불도저 대통령을 엎어버리는 뚝심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국민들이 정권퇴진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국민적 거부·불복종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회의는 28∼29일 ‘이명박 정부 심판’을 위한 1박2일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7월5일에는 ‘100만 촛불대행진’을 열 계획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은 오후 5시 서울광장에서 ‘국민 건강권 쟁취를 위한 총파업 출정식’을 가진 뒤 촛불집회에 가세했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3000여명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민주택시본부 조합원 2000여명도 합류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450여명은 경기지역 12곳을 비롯, 전국 14개 냉동창고에서 미국산 쇠고기 운송 및 출하 저지 투쟁을 벌였다. 부산지역 노조 대표 150여명은 감만부두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며 냉동차량들의 반출입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당직자 20여명은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강기갑 의원은 청와대 정문 30m 앞까지 달려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환경운동연합과 여성민우회 등 여성환경단체 회원 9명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행진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수정안 고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민변은 “정부는 불안해하지 않을 때까지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저버렸다.”면서 “입법예고 절차 없이 고시를 강행한 것은 행정절차법과 법제업무운용규정 등을 위반한 것으로, 검역주권과 국민건강권을 포기한 데 이어 법치주의의 원칙마저 무시했다.”고 강조했다. 김승훈 황비웅 김정은기자 hunnam@seoul.co.kr
  • 황정민 아나 “과격 시위 실망” 발언 논란

    황정민 아나 “과격 시위 실망” 발언 논란

    2002년 미선·효순양 사망사건에 따른 반미 시위와 관련해 ‘부끄럽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던 KBS 황정민 아나운서가 이번에는 ‘미국 쇠고기 고시 저지’를 위한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를 폄하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황 아나운서는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생방송 도중 지난 25일 밤 ‘쇠고기 고시 저지’를 위한 시민들의 시위가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하며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한 것을 두고 “과격해진 시위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날 KBS 2FM ‘황정민의 FM 대행진’을 진행하며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한 것에 대해 “고시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돼 시위대가 흥분했다.”며 “경찰의 물대포야 기대한 게 없어 그런지 몰라도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황 아나운서는 이어 “그동안 외신들이 (촛불집회에 대해)‘새로운 시위문화’라고 보도했었다.”며 “하지만 이젠 다시 ‘그럼 그렇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을 들은 청취자들은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에 황 아나운서의 발언을 비난하는 글들을 남겼다.이주현(eclipse0120)씨는 “현 정권이 먼저 시민들을 자극했다.”며 “촛불을 폄하하지 말라.”고 말했다.염솔(sakuraichu1)씨 역시 “촛불집회 나와 보기나 했나.”라며 “그 현장을 직접 본 적이 없으면 말을 꺼내지 말라.”고 꾸짖었다.신명희(hi4689)씨도 “당신이 실망했다던 시위대가 어제도 보수단체와 싸우면서 KBS앞을 지켰다.”며 “이런 사람이었다니 실망스럽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반면 “바른 말 했다.일부 폭력 시위자가 촛불시위를 변질시키지 않았나.”(함성자씨·hsj1912),“기운내라.이 사회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소신있는 발언이야말로 진정한 촛불”(백종훈씨·hotymca)) 등 황 아나운서를 옹호하며,과격해진 시위문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편 황 아나운서는 지난 2002년 ‘뉴스8’ 진행 중 ‘여중생 미국 장갑차 사망사고’에 따른 대학생들의 미군 영내 기습시위에 대해 “부끄럽다.”는 발언을 해 큰 물의를 빚고 앵커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었다. 네티즌 안승호(babelahn)씨는 당시를 상기하며 “2002년도 (미선·효순양 관련)발언 당시에는 ‘설마’라는 생각이었다.”라며 “‘지금’의 그 멘트는 당신의 ‘사고체계’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되자 황 아나운서는 해당 방송프로그램 말미에 “제 발언 때문에 마음 불편하신 분이 많은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유로 2008] 게르만 vs 투르크 ‘민족 충돌’

    “그네들도 진짜 게르만의 혼을 지니고 있다.” 겁 없기로 유명한 발라크가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독일 축구대표팀의 주장 미하엘 발라크(31)가 26일 새벽 3시45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터키와의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8 준결승을 앞두고 엄살인지, 경계책인지 모를 말을 남겼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같은, 리더의 지배력이 강한 독일축구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라크는 대표팀의 야전사령관으로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휘하고 통제한다. 발라크는 24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터키가) 준결승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는 자세로 나설 것으로 보여 힘든 상대가 될 것”이라며 “경기 막판 기어이 골을 터뜨리는 그들의 능력은 오직 독일인만이 가져왔던 것”이라고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발라크의 말은 준결에 오르기까지 사투를 벌이느라 부상자와 경고누적 선수가 많아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를 13명밖에 가동하지 못하는 터키를 상대로 늘어놓는 ‘엄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욱이 유럽축구연맹(UEFA)은 필드플레이어로 보직 변경을 검토했던 후보 골키퍼 톨가 젠진 대신 다른 필드플레이어를 충원하도록 해달라는 터키의 청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투르크 전사’들은 퇴로마저 차단당한 셈.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터키 선수들의 승부욕과 집념에 불을 질러 독일의 참극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점. 터키 선수들은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10명의 필드플레이어들이 모두 139㎞를 뛰어다녀 통상 정규경기 100㎞ 안팎을 훨씬 웃돌았다. 투르크 민족의 엄청난 영토확장욕(?)을 입증한 이런 활동폭에 독일이 긴장하고 있는 것. 독일이 역대전적에서 11승3무3패의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고 1951년 친선경기 1-2 패배 뒤 1992년까지 무패(11승2무)를 이어갔지만 최근 10년새 상황이 뒤바뀐 것도 꺼림칙하다. 터키는 유로2000 예선에서 1승1무로 앞선 데 이어 2005년 평가전에서도 2-1로 이겼다. 민족감정도 걸린다. 터키가 1차대전에 뒤늦게 주축국으로 참전해 영토를 빼앗긴 데다 옛 서독이 경제부흥기에 엄청난 터키 이주노동자를 불러다 쓴 뒤 ‘폐기처분’하는 분위기가 맞물려 투르크 전사들의 전의를 불태우게 한다. 게르만과 투르크 두 민족의 충돌이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영세중립국에서.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광우병 대책위 시민운동 새 지평

    광우병 대책위 시민운동 새 지평

    촛불집회를 주도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 상황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고작 20여명의 실무자가 근무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20∼30대 실무 간사들이다. 이들이 34번의 촛불집회와 행진을 주도하고,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올해 촛불집회 사상 최대 인파(경찰 추산 8만여명·주최측 70만여명)가 참여하게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대책회의에는 그 흔한 대표도 없다.170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네트워크 조직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과 한국진보연대 한용진 대외협력위원장이 공동으로 상황실장을 맡고 있다. 대책회의는 조직화와는 거리가 멀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율적으로 모인 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대책회의의 안진걸 조직팀장은 11일 ‘열린 네트워크 형태의 회의체로 시민·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를 돕는 조직’으로 정의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운동단체 대표자들이 내린 결정에 일반 참가자들은 무조건 따랐던 중앙집중적 지시와 수렴의 의사소통 방식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조직체다. 그래서 높은 참여의식과 쌍방향 소통을 기반으로 ‘웹 2.0’ 시대에 부응하는 시민단체의 연대체 혹은 네트워크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책회의는 촛불집회 과정에서 촛불이 모이는 장소에 무대를 설치하고 뒷정리하는 정도의 역할만 해왔다. 대책회의가 그동안 모금한 돈은 2억 3000만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음향장비를 한 번 빌리는 비용 500만∼600만원과 촛불을 사서 시민들에게 나눠 주는 비용도 여기서 나갔다. 대책회의가 그동안 사서 나눠준 촛불은 50만개 정도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곳에는 수박·오이·생수 등이 전국 각지에서 답지했다. 대책회의는 거리시위 현장에서 부상자가 발생하면 의료봉사를 자처한 의료인들이 긴급치료에 나서도록 하고, 연행자가 발생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나서도록 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했다. 이런 서비스는 대책회의에 개신교·천주교·불교 등 종교단체, 약사·의사 등 의료인 모임, 교수협의회·전교조와 같은 교원단체와 각종 연구소 등 다양한 단체가 참여했기에 가능했다. 참여연대·YMCA 같은 대중적인 시민단체부터 미친소닷넷 등 인터넷 모임, 환경운동단체들도 참여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쏟아 내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게 대책회의의 역할이었다고 한다. 안진걸 조직팀장은 “참여하는 단체가 많은 만큼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의견을 조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면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열어 가고 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는 창조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막내린 ‘72시간 촛불’… 막판 격렬 몸싸움

    막내린 ‘72시간 촛불’… 막판 격렬 몸싸움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8일 밤까지 나흘 동안 연인원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켠 촛불로 광화문을 밝히고 막을 내렸다.8일 밤에는 경찰 추산 4000여명(주최측 추산 2만여명), 사흘째인 7일밤에는 경찰 추산 4만 4000명(주최측 추산 2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나흘 동안 연인원으로 경찰 추산 12만여명(주최측 추산 50만여명)이 참여했다. ●방패 휘두르고 소화기 분사 8일 밤 서울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72시간을 정리하는 발언대를 가진 뒤 오후 9시쯤부터 행진했다. 대학생 최진성(27)씨는 “한 달 넘게 촛불을 들었지만 정부가 묵묵부답이기도 하고, 경찰이 폭력 시위를 유발한 측면도 있지만 평화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도 ‘평화집회 호소문’을 발표하고 “우리는 비폭력 평화 원칙을 선언하고 지난 31차례 촛불문화제에서 이를 견지해 왔다.”면서 “경찰의 폭력 유발 책동에 넘어가지 말고 평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선 7일 밤 12시를 넘기면서 세종로 사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차벽으로 동원된 경찰버스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일부 시민들은 인근 지하철역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쇠파이프와 사다리, 망치 등으로 경찰버스 창문을 부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분사하고 플라스틱 물병을 집어 던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이 오물로 추정되는 누런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시위대에 던졌다고 주장했으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경찰의 ‘오물 투척’에 항의하는 글이 잇따랐다. 경찰이 바닥에 쓰러진 시민들을 향해 방패를 휘둘러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소화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경찰은 8일 오전 5시20분쯤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면서 시민 11명을 연행했고, 검찰은 9일 중으로 연행자들의 처리방침을 정할 예정이다. ●네티즌 ‘청와대 진출´ 의견 엇갈려 ‘청와대행(行)’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은 분분했다.‘임일규’라는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 등에 “현실적으로 청와대 진출은 어렵다. 폭력진압이 이어질 것이고 사망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촛불을 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반면 아이디 ‘201KEI’는 “청와대로 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라.’라는 것”이라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청와대에 전달되고, 그래서 정부가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면 청와대로 가자는 얘기는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새벽 과격한 행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프락치 논란’도 일고 있다. 네티즌들은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다가 느닷없이 경찰버스로 돌진해 쇠파이프와 망치를 휘두른 시위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이경주 장형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日도쿄 도심서 ‘묻지마 칼부림’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박창규기자|휴일인 8일 낮 12시40분쯤 일본 도쿄 도심에서 ‘묻지마 칼부림’에 7명이 숨지고 10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범인 가토 도모히로(25·시즈오카현)는 이날 도쿄 지오다구 JR(일본철도)아키하바라역 부근 네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2t 트럭으로 행인들에게 돌진,5∼6명을 크게 다치게 했다. 이어 트럭에서 내려 행인들을 향해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하는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차에 치거나 칼에 찔린 시민은 무려 17명이나 됐다.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명이 숨졌다. 범행 뒤 달아나다 경찰관 등에게 붙잡힌 범인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키하바라에 왔다. 세상이 싫다. 누구라도 좋다.”라고 진술했다. 범행에 사용된 트럭은 렌터카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을 목격한 남성(20)은 “범인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행인들을 쫓아가 찔렀다.”고 진술했다. 때문에 휴일에 전자상가로 밀집된 아키하바라를 찾은 시민들은 한때 공포에 떨었다. 공공장소에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른바 ‘무차별 살인’은 최근 일본 사회의 심각한 골칫거리다. 앞서 지난 3월23일 도쿄 인근인 이바라키현의 쓰치우라시역 앞길에서도 가나가와 마사히로(24·무직)가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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