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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 높고 수심 깊어 발만 “동동”/유조선 침몰 현장 이모저모

    ◎태풍 북상에 기름 추가유출 싸고 설전/해군­경,예인작업 실패책임 서로 미뤄 ○…유조선 제1유일호가 침몰한 부산 남형제도 해상은 22일 파도가 3m로 일고 있고 수심도 60m가 넘어 선박의 인양은 고사하고 기름회수도 힘든 실정.다이버들이 작업할 수 있는 수심은 50m밖에 안되기 때문에 로봇과 같은 기계 외에는 별다른 손을 쓸 수 없다. ○…낮 12시 파고 3∼5m,풍속 14∼20m의 폭풍주의보가 내린데다 태풍 라이언호가 북상하고 있어 앞으로도 당분간 인양이나 오염 제거 작업은 순탄하지 않을 전망. ○…태풍 라이언이 24일 하오 남해안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침몰된 유조선에서의 기름 추가유출을 놓고 설전. 해경관계자들은 유일호가 해저 60∼70m 사이에 침몰해 A급 태풍이라도 파고가 이 정도에는 이르지 못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이는 파고의 영향은 수평선위나 수평선밑에 동일하게 미치기 때문.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유조선이 어떤 형태로 침몰해 있느냐와 해저의 조류 흐름에 따라 선박이 파손될 가능성도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말것을 주문. ○…경찰은 벙커C유 유출량이 적은 것으로 미루어 선박의 파손된 탱크부분이 모래와 진흙인 바다 밑바닥에 처박힌 것으로 추정.한편 유일호는 건조된지 15년이 넘는 낡은 배인데다 기름탱크도 2중구조가 아닌 홑겹이다. ○…전문가들은 벙커C유는 섭씨 25도 정도가 유동점이어서 요즘의 수중 온도가 섭씨 10∼15도인 점을 감안하면 「젤」형태로 서서히 굳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일호는 선원들의 안이한 근무자세로 좌초했고,치밀한 준비도 없이 성급하게 예인에 나선 당국의 무모함으로 침몰했다는 것이 중론. 사고 당시인 지난 21일 상오 4시55분의 해상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3m가 넘는 파도가 일고 있었으나 당직 항해사 고재봉씨(41)는 『남형제도 부근은 거의 매일 다니는 항로여서 선박위치를 측정하지 않았다』며 『오징어배의 불빛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한 눈을 팔았다』고 말했다. ○…지휘체계도 확립하지 않고 무리하게 예인한 것도 사고의 원인.예인작업은 해군 구난함과 민간 예인선 두척 등 3척이 맡았으나 작업이 실패로끝나자 현장 지휘를 책임지는 해경은 예인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 부산해경 사찬수 서장은 『선체가 부력을 잘 받도록 하기 위해 기름을 다른 배에 옮겨실은 뒤 예인하려고 했다』며 『민간 선박이 예인에 착수한 뒤에야 통보받았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해군도 『민간 선박이 예인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단지 지원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인선 선진202호 선장 양득조씨(48)는 『해군이 유조선을 5백m만 끌어주면 함정으로 끌겠다고 말해,예인했을 뿐』이라고 각기 상반된 주장.
  • 경찰 가스총에 실명/국가가 배상해야/부산지법 판결

    【부산=김정한 기자】 부산지법 제 9민사부(재판장 김종규 부장판사)는 22일 경찰관이 쏜 가스총을 맞고 한쪽 눈이 실명된 김성우씨(31·부산 동구 범일2동)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8천6백8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김씨가 마약사범 단속 경찰관과 실랑이를 하다 빰을 때린 과실은 있지만 규정 이상으로 과도하게 총기를 사용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 당선가능성 위주 “총선 필승” 포석/민자 조직책 1차선정 언저리

    ◎30∼40대 신진인사 대거 발탁 눈길­서울/김 대통령 직계그룹 전면에 포진­부산/구여권·군출신 내세워 돌풍 기대­경북·충청 민자당이 19일 확정한 15개 신설 및 사고지구당 조직책 인선내용은 내년 15대 국회의원 총선의 공천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손학규 대변인은 이번 인선배경을 지역지지기반 및 지명도·참신성·국가­지역사회 기여도·각계각층의 전문성 및 능력 등으로 설명했다.당의 한 관계자는 『당선 가능성을 원칙으로 삼아 지역별 상대당 후보에 대한 격파력을 극대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인물 면면을 통해 본 인선의 각론적 특징은 우선 김영삼 대통령의 직계그룹이 대거 기용됐다는 점이다. 「상도동사단」의 박관용 청와대정치특보(동래갑),서석재 전총무처장관(사하갑),김무성 내무부차관(남을)등의 부산 지역구 입성은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특히 서전장관은 전직대통령비자금설 파문의 후유증을 씻고 명예회복의 시동을 걸게 된데 대해 고무돼 있다. 문민정부 초기부터 사정수사를 일선에서 총괄해 온 김도언 전검찰총장(금정을)과 지방선거 시기 여론조사 파문 등과 관련,야당의 공격을 받기도 한 정형근 전안기부1차장(북구)도 각각 동래고와 경남고 출신으로 이래저래 「친YS(김대통령)계」로 분류돼 왔다.이들은 박특보등과 마찬가지로 관직 핵심에서 김대통령의 임기전반기를 뒷받침해 오다 부산 지역구 조직책으로 기용됐다. 경기 양평·가평의 김길환 청와대사정1비서관도 문민정부 초기부터 청와대에서 일해 온 민추협 출신이다. 서울 송파갑의 김광일 고충처리위원장과 인천 남동을의 이원복 전통일 민주당지구당위원장,대구 수성을의 윤영탁 의원 등은 한때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국민당으로 출마했던 「전력」에도 불구,통일민주당이라는 뿌리가 인정됐다. ○…김대통령의 세대교체 의지를 입증하듯 각계각층의 젊은 명망가들을 대거 발탁한 점도 눈에 띈다. 맹형규 SBS앵커(49·서울 송파을) 정전 안기부1차장(49) 김내무부차관(44) 이원복씨(39) 탤런트 이덕화씨(43·경기 광명갑) 대우그룹사장 출신이며 이용희 전통일원장관의 아들인 이재명의원(47·인천부평을)등이 모두 40대 이하로 전문분야에서 왕성한 활동력으로 명성을 쌓아온 인사들이다. ○…지역특성 및 상대당 후보와의 경쟁력을 고심한 흔적도 짙게 드러났다. 부산 출신의 김광일 고충처리위원장을 서울 송파을에 배치한 것은 격전지가 될 서울에서 김씨의 높은 지명도와 중산층 밀집지대라는 지역구 특성을 활용,정면승부를 걸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문민정부 출범 뒤 정보사테러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최근 사면·복권된 육군참모총장출신의 이진삼 전체육청소년부장관을 발탁한 것은 구여권 및 군출신 끌어안기라는 측면이 강하다. 민자당은 같은 맥락에서 율곡비리로 구속됐다가 최근 사면·복권된 이종구·이상훈 전국방장관등 구여권의 군·관계 고위직 출신의 영입도 본격화,대구 경북 충청등 「취약지구」 조직책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탤런트출신의 최영한(예명 최불암)의원은 방송가와 자택이 있는 영등포을에서 대중적 인기와 소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무기삼아 국민회의 김민석 지구당위원장의 패기와 논리에 맞불을 놓기 위해 전국구에서 지역구로 무장시켰다는 것.부평에 이재명 의원을 배치한 것은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다는 지역사정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민자당은 나머지 20개 신설·사고지구당의 조직책도 다음달 중순까지 순차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 자전거 도둑(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고달픈 민중의 삶 생생히 묘사/출연자 전원 배우아닌 아마추어 이채 해거름의 러시아워로 어수선한 로마의 거리.노동자풍의 사나이가 힘 없이 걷고 있는 데 그 옆을 어린소년이 따르고 있다.아버지와 그의 아들이다.울먹이듯 찌푸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소년의 눈빛에는 가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서려있다.이윽고 부자간의 측은한 뒷모습은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로 붐비는 황혼의 땅거미속으로 사라져간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명작「자전거 도둑」(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의 라스트 신이다. 40여년전 피란지 부산의 한 극장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된 나는 화상이 사라지고 불이 켜진 다음에도 멍청하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내팽개치듯 구원 없는 암담한 현실에 전율적인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물론 내가 받은 충격은 이 마지막 장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영화의 이야기는 생계의 유일한 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은 사나이가 끝내 남의 자전거를 훔치려다 붙잡히는 엄청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어설픈 도둑질이 곧 발각되어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갖은 수모를 겪는 사나이의 억울하고 분한 심정이 뼈저린 고통을 낳고,이내 암담한 절망감으로 이어지는 격정의 내면순환이 라스트 신에 응집돼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오랜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나이는 간신히 일자리를 얻게 되는 데 자전거를 갖는 것이 필수조건이었다.마누라는 집안의 침대시트를 모조리 걷어내 전당포에 맡기고 빚에 저당잡힌 자전거를 찾아온다.그러나 온 가족의 기쁨속에 일을 시작한 첫날 그 소중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사나이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미친듯이 거리 구석구석을 뒤지며 헤맨다.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같이 단조롭고 절박한 과정을 아무런 보탬이나 주관적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카메라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다만 전후 황폐한 로마의 거리표정과 고달픈 민중들의 삶의 현장이 생생하게 병행 묘사된다.현실의 한 단면이 아니라 현실이 빚는 총체적 상황속에서 개인이 대처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응시하는 네오 리얼리즘의 특징을 절묘하게 구상화시킨 작품이다.네오 리얼리즘의 지도자 추자레 자바티니가 각본을 썼고 출연자 모두 배우가 아닌 아마추어를 기용했다는 사실도 이 영화의 놓칠 수 없는 특색중 하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최초로 쓴 영화에 관한 글은 「자전거 도둑」을 중심으로한 데 시카론이었다.내게 있어 「자전거 도둑」은 영화예술의 위대한 표현성에 눈뜨게 해준 스승 같은 영화다.
  • 교통난 완화에 왕도 없다/양수길 교통개발연구원장(서울광장)

    전국주요도시와 그 주변의 도로상에 교통혼잡이 실로 극심하다.이제는 수년전까지만해도 출퇴근시간대에만 나타나던 이른바 첨두현상도 사라지고 야간이외의 모든 시간대에 교통혼잡이 나타나고 있다.또 시내거리가 일요일에는 한적하던 것도 이제는 옛적 이야기가 되고 있다.학생데모 등을 위시한 주요 가두행사가 있거나 비 혹은 눈이 조금이라도 내리면 시내교통은 아예 마비되어 버리듯 한다.그래서 요즈음에는 약속장소에 한시간정도 늦게 나타나는 것은 이미 예사가 되어 버렸고 심지어는 교통난으로 인해 주요 참석자가 공식적 행사에 참석하는 것마저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버스전용차선제를 실시한 이후로는 주요간선도로를 따라 버스를 이용할 경우 시내통행이 크게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버스전용차선의 보급은 아직도 시내 모든 4차선도로의 10%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버스를 이용하여 시내교통난을 극복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가장 신속한 시내교통수단은 역시 지하철이다.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도시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어 있지 않고 서울과 부산의 경우 현재 건설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하더라도 지하철망의 보급이 너무나 성글어 지하철이용에도 한계가 있다.통행난에 못지않게 심지어는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 박차난이다.자동차보유가 급증함에 따라 주거지의 골목길마다 저녁시간이 되면 야간주차되는 승용차들로 인해 차량의 소통이 불가능해지다시피함은 물론이요 사람의 보행도 만만치 않게 어려워진다.주거지 주변의 모든 공간과 도로가 승용차들의 차고지로 이용되기 때문이다.그러고도 부족해서 이웃사촌간에 갈등과 반목이 일상생활화되고 심지어는 주먹싸움마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자동차,특히 승용차의 급증으로 인한 것임은 물론이다.30년전(1965년)만 해도 전국에 등록된 자동차는 4만대에 불과하였다.최근에는 그 수가 8백만대에 이르고 있으니 과연 폭발적인 증가라고 할 수 있겠다.그러나 실로 두려운 사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통행난과 박차난이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급증을 주도하고 있는 승용차는 현재 5백50만대에 이르고 있다.인구비례로 보자면 인구 1백인당 12대의 승용차를 보유하는 셈이다.그런데 선진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승용차보급률이 1백인당 60대에 이르고 있다.그외의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1백인당 42대의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아직도 개발도상국인 우리는 앞으로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승용차보급률이 선진국의 수준을 향해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승용차수의 지속적인 급증이 예상되는 것이다.인구증가는 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2011년이 되면 우리의 인구는 5천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에 소득수준 향상을 전망,아울러 감안해 볼때 우리의 승용차보급률은 1백인당 36대 수준을 능가하고 절대수치로는 1천8백만대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승용차수가 현수준의 3.3배에 달할 것이란 말이다.유사한 논리로 계산해 보면 매우 가까운 미래인 2001년에는 승용차보급률이 1백인당 29대 수준에 육박해 그 절대규모가 지금의 2.5배 규모인 1천3백50만대의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이것은 곧 승용차가 앞으로 6년간 연평균 1백30만대꼴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전망인가.그에 따른 통행난과 박차난을 상상해 보라.실로 특단의 결심과 대책을 요하는 상황이라고 하겠다.이러한 차원의 대책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승용차 보유에 엄중한 책임을 부과한다.즉 차고지대책이 없는 승용차보유를 금지시킨다.일본이 그러했듯이 소위 차고지증명제를 실시하는 것이다.주거지주변의 주차가능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동시에 주거지의 주차시설확충을 자유화하고 지원하고 또한 제도의 도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경우 이 제도의 도입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둘째,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세금을 대폭인상해서 승용차의 이용을 과감하게 억제한다.이를 위해서는 우선 승용차를 생활필수품으로 보는 시각을 탈피해서 승용차를 고급사치품으로 보는 시각으로 전환해야 한다.평소에는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 그리고 주말에만 승용차를 쓰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자는 뜻이다. 셋째,지하철과 버스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충한다.지하철의 건설을 위한 재정지원을 크게 확대한다.그 혜택은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한편 중단기적으로는 버스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버스전용차선제를 과감히 확대하고 동시에 버스산업의 공용시설확충을 지원한다.이와 아울러 버스노선망을 정비하고 특히 버스와 지하철을 중심으로 하는 연계환승체제를 정비한다.이들과 같은 조치에는 재원이 필요하다.이에는 휘발유와 경유로부터의 세수를 활용한다.이들과 같은 조치에는 많은 승용차운전자들이 반대할 것이다.그러나 교통난 완화에는 따로이 왕도가 없다.당면한 교통난을 극복하는 비결은 바로 이러한 반대를 극복하는데에 있으며 바로 그래서 특단의 결심이 요청되는 것이다.그 결심은 바로 시민들의 용단을 의미하기도 한다.이 세가지 조치를 동시에,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받아들일 때에는 교통상황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모든 시민들의 복지가 향상될 것이다.나아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회형평도 크게 증진될 것이다.
  • 길소뜸/분단의 비극적 현실 영상화(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이산가족 찾기서 착안… 국제영화제서 수상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85년 화천공사 제작)은 한국 현대사의 농축이다.필자는 북(함경남도)의 아버지,남(제주도)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다.그래서 곧잘 나의 탄생은 분단의 산물이라고 말하곤 한다.성장기 나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명절이면 술타령과 꺼이꺼이 우시는 것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그것이 한의 삭힘이라는 것을….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과의 재회는 물론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자책감과 좌절감을 이기기 위해 쓰디쓴 소주에만 의지했을 뿐이다.끝내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시며 단 한말씀,할아버지를 부르는게 아닌가. 평론가의 문턱에 들어설 즈음,그러니까 꼭 10년전 여름 대한극장 개봉때 관람한 「길소뜸」은 직업상의 이유로 반복해서 볼적마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생면부지의 아들을 자신의 장남으로 입적시키기 위해 가족들과 회의를 하는 김동진(신성일 분)의 모습은분단후 모든 아버지 세대들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의 고리로 짓누르는 아픔을 더해준다. 추억과 현실,역사와 오늘의 모습이란 무엇일까.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퍼내어도 풋풋한 추억이지만 세월이 훨씬 지나 변화된 모습으로 마주한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33년만의 해후와 애타게 찾던 그 아들(한지일 분)이 눈앞에 있건만 본능의 직감을 거부하고 법의학에 의한 친자확인 결정도 애써 부인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는 민화영(김지미 분)의 현실이 야속한 드라마 작법같지만 이것이 곧 사실주의 미학에 입각한 객관적인 서술의 정직한 태도이다. 대체로 인간은 경우는 다르지만 하나의 인생 안에 두개의 세계를 간직하게 마련이다.동진은 1남2녀와 사려깊은 남편을 둔 화영의 다복한 형편에 비교할때 초라한 모습이다.그는 두개의 가정을 잊어본 적이 없다.현재의 가족인 아내와 다섯아들을 거느리고 달동네에 살면서 마음속에 간직한 또하나의 가정,즉 추억의 가정을 한번도 기억 밖으로 내몬적이 없다. 이처럼 분단이후 우리사회 내부에 내재하는 또 한번의 비극적 현실을 임권택 감독은 끔찍하리만치 엄격하게 통제된 카메라(정일성)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영화 「길소뜸」의 원인은 TV이며 결과는 필름이다.83년 KBS­TV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TV보다 한층 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였다.제36회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제22회 시카고영화제 「게츠 세계평화상」도 수상한 작품이다.
  • 김영삼 정부 30개월/문민개혁 전반기 평가와 후반기 과제

    ◎「부패추방」·「정치개혁」에 가장 역점둬야/개혁 미흡 분야 정치권·교육계·행정부 순/정당국고보조금액 “적당” 44% “많다” 39%/“공무원 깨끗해졌다” 54%/여성 20% “교육혁신 시급”/“대통령 단임제 적합” 67%… 개헌에 부정적/“지지정당 없다” 50%… 정치권에 냉담/“국회의원 소선거구제 고수를” 59%/대북정책 “유화적으로” 60%·“강경히 대응” 39% 서울신문사는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접어드는 시점에 즈음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김대통령의 지난 임기 30개월의 평가와 앞으로의 중점과제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여론조사는 그동안의 개혁작업 및 부정부패척결 등에 대한 평가와 함께 세대교체등 정치현안과 관련,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여론조사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만20세 이상 성인남녀 7백명을 대상으로 전문면접원의 전화통화로 실시됐다.응답자는 남자 3백43명,여자 3백57명이었고 연령은 20대 2백19명,30대 1백88명,40대 1백18명,50대 이상 1백75명이었다.학력은 중졸 이하 1백73명,고졸 2백66명,대졸 이상 2백61명이었으며 직업은 농·임·어업 69명,자영업 98명,사무직 1백33명,생산직 35명,주부 2백5명,학생 81명,무직 79명이었다.지역별 조사대상자수는 시·도별 인구비례에 따랐다. ○임기후반 과제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후반기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16.8%가 부정부패의 척결을 꼽았으며 정치개혁 15.3%,사회개혁 12.5%,경제개혁 12.1%,경제발전 10.7%,남북문제 6.8%,민생안정 3.6%의 순으로 나타났다.이 질문에는 선택할 보기를 주지 않고 응답자들이 자유롭게 과제를 지적하도록 했다. 지역적으로는 강원 지역 응답자들의 41%,호남지역 응답자들의 23.5%가 부정부패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아 전국 평균을 훨씬 상회했다.반면 충청지역은 9.8%,인천·경기지역은 12.2%등 평균치보다 낮게 나타났는데 인천·경기지역 응답자의 26.3%와 대전·충청지역 응답자들의 25.3%는 부패척결보다 정치개혁을 임기후반기 최우선 과제로 손꼽았다. 그러나 강원지역(4.4%)과 대구·경북지역 응답자(7.4%)들은 정치개혁을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경제발전과 경제개혁을 우선과제로 제시했고 젊을수록 부정부패 척결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정치개혁의 세부적 과제로 ▲지역갈등 해소 ▲인사정책 ▲여론 의식 ▲5·6공 청산 ▲후계자 결정 등을 제시했다.경제개혁의 과제로는 ▲빈부격차 해소 ▲금융실명제 유지 ▲부동산 대책 등을 꼽았다.또 사회개혁 분야에서는 사회전반의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확실한 안전사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부정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을 임기 후반기과제로 제시하는 비율이 높았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을수록 사회및 경제개혁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세대교체 시각」 김대통령의 세대교체론 제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5.9%가 「전적으로 동의한다」(29.7%)거나 「동의하는 편」(46.2%)이라고 응답,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3.8%의 응답자만이 「동의하지 않는 편」(21.1%)이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2.7%)고 답변했다. 그러나 세대교체에 대해서는 지역별 찬반비율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 최근 김대중 국민회의창당준비위원장과 김종필자민련총재의 정치행보가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별로는 부산·경남지역 응답자의 85.2%가 세대교체에 찬성한다고 응답,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으나 반대한다는 의견은 서울 33.0%,호남지역 28.4%,대전·충청지역 22.3% 순으로 나타나 대조를 보였다. 성별로는 남성 응답자의 78.8%가 세대교체론에 찬성했고 여성은 73.1%가 찬성해 상대적으로 남성의 세대교체 요구가 다소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또 학력별로는 대졸이상 76.3%,고졸이상 77.9%,중졸이하 72%로 조사돼 세대교체는 학력에 상관없이 고르게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대교체 방법 세대교체를 찬성한 응답자들만을 대상으로 세대교체의 방법을 물은 결과,응답자의 61%가 선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답변했고 38.5%는 정치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은 대전·충청에서 79%,강원지역에서 82% 등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농촌지역이 68.6%로 도시지역보다 높게 나타났다.정치인들이 자발적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은 자영업자(43.3%),농·임·어업종사자(43.3%) 등에서 약간 높게 나타났다. 성별로는 정치인이 자발적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남성이 40.2%로 여성의 36.7%보다 높았다.그러나 선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은 여성이 62.9%로 남성 59.1%보다 높았다. ○부패척결 평가 김대통령이 그동안 공무원의 부정부패척결을 어느 정도 이뤘다고 보느냐에 대한 질문에 성공했다는 응답이 54·%,실패했다가 45.8%로 나타나 긍정적인 평가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성공했다는 응답은 대구·경북 63.2%,인천·경기 62.3%,부산·경남 60.2%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또 30대(59.4%)와 40대(59.6%)의 연령층,고졸학력자(63.1%)에서 높았다.그러나 실패했다는 응답은 서울거주자(58.1%),20대(50.1%)와 50대 이상(49.8%)의 연령층,대졸이상의 학력자(53.8%),학생층(61.9%)에서 높게 나타났다. ○개혁 미흡 분야 응답자들은 국회 및 정당 21%,교육계 17.1%,행정부 16%,재계 8.6%,사법부 6.2%,경제분야 4.9% 등의 순으로 개혁이 미흡하다고 응답했다.군은 2.4%로 가장 낮아 상대적으로 개혁이 가장 잘된 곳으로 꼽혔다. 정치를 의미하는 국회 및 정당의 개혁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응답자는 지역별로는 부산·경남이 26.6%로 가장 높았고 강원지역이 9%로 가장 낮았다.성별로는 남성 응답자의 24.4%가 국회 및 정당을 개혁이 가장 미흡한 분야로 지적한 반면 여성응답자들은 교육계(20.1%)를 가장 개혁이 덜된 곳으로 꼽아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성들보다 높고 학교를 방문하는 기회가 많은 주부들의 눈에 학교의 부패가 많이 목격됐던 것으로 분석됐다. 개혁이 미흡한 분야의 세부내용으로는 국회및 정당에서는 ▲지역갈등‘행정부에서는 ▲부정부패 ▲인사정책 ▲치안문제 ▲독단적인 정책결정등이 지적됐다.또 경제분야에서는 ▲물가 ▲서민문제 ▲농민복지 ▲세금 ▲지역발전등에서 미흡하다고 지적됐다. ○4당체제 시각 김종필씨의 자민련과 김대중씨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민자 민주 자민련 국민회의 4당체제가 된데 대해 응답자들의 68.8%가 부정적 평가를 했으며 30.6%만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응답의 특징으로는 4당체제 정치구도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평가는 지역적으로 대구·경북(87.8%) 대전·충청(79.3%) 서울거주자(73.1%)에서 높았고 연령으로는 40대(72.9%)에서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반면에 바람직스럽다는 응답은 광주와 전남·북지역(55.9%)에서 가장 높았다. 4당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한 응답자의 소득 수준별로 보면 월 1백만원이상 2백만원 이하 소득자 71.8%,2백만원 이상 소득자 65.5%,1백만원 미만 소득자 64.8%순으로 나타났다.따라서 중산층이 가장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지하는 정당 현재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없다,모르겠다」라는 답변이 49.7%로 가장 높게 나타나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냉담한 시선이 반영됐다.이어 지지정당은 민자당 23.2%,민주당 16%,새정치국민회의 7.4%,자민련 3.9%의 순으로 나타났다. 민자당에 대한 지지는 부산·경남(48%),대구·경북(32%),농촌지역거주자(33.8%)에서 높았다.또 50세 이상(32.3%),중졸이하(34.1%),농·임·어업종사자(35.6%)무직및 기타(37.9%)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광주와 전남·북지역응답자의 25.8%가 지지해 전국평균의 3배가 넘었고,자민련도 대전·충청지역 응답자의 8.8%가 지지해 전국 평균의 3배가 넘는등 두 정당이 대표자의 출신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민주당은 강원지역에서 가장 많은 29.2%가 지지했다.이 가운데 재미있는 현상은 광주와 전남·북지역 응답자들의 지지정당이 민주당(26.5%)과 새정치국민회의(25.8%)로 양분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 지역 응답자들이 아직 새정치국민회의와 민주당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지정당이 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지역별로 서울(63.1%),인천·경기(50.6%),대구·경북(49.5%)순으로 나타났다.또 거주지역은 대도시거주자(58.1%),연령별로는 20대(58.9%),학력별로는 대졸이상(55.6%),직업별로는 사무직(62.5%)에서 지지정당이 없는 정치 무관심층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차기대선 후보 여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적합한 인물과 관련‘외부인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65.3%로 민자당의원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30.7%)는 사람보다 많았다.외부인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응답은 서울지역이 81.2%로 가장 많았고 민자당의원 가운데 나와야 한다는 응답은 대전·충청지역이 43.6%로 가장 높았다. ○단·중임제 선택 대통령 임기를 현재의 단임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 두번 할수 있도록 하는 중임제가 좋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67.2%가 단임제를 지지,개헌에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반면 중임제를 지지한 응답자는 32.1%에 그쳤다. 단임제에 대한 선호는 서울(72.2%)과 호남지역거주자(85.9%)에서 높게 나타났다.또 50대이상(75.2%),중졸이하(72.1%),농·임·어업종사자(87.3%),학생층(79.6%),생산직(75.5%)에서 높게 나타났다. 대통령 중임제는 대전·충청지역거주자(47.1%),30대(36.6%)와 40대(37.1%),사무직(40.4%),주부(38.1%)에서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 선거구제 한 지역구에서 한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2∼3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 가운데 어느 제도가 바람직스럽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9.1%가 현재와 같은 소선거구제를 지지한 반면 중·대선거구제는 38.7%가 지지했다. 소선거구제 지지는 지역별로 호남지역(76.2%),대전·충청(64·9%),대구·경북지역거주자(64.4%)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중·대선거구제는 서울거주자(49.4%)가 가장 높게 지지했고 연령은 30대(48.9%),학력은 대졸이상층(43.8%)에서 가장 높게 지지했다. ○행정조직 축소 현재 시·도와 시·군·구,읍·면·동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 지방행정조직 계층을 2단계로 줄이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응답자의 62.6%가 축소에 찬성했고,반대는 35.3%로 나타나 대체로 행정계층의 축소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정당 국고지원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라 지난 「6·27지방선거」때에는 각 정당에 국고보조금이 모두 5백22억원이 지원됐다.지원금 규모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들의 44.4%가 적당하다고 응답했고,39.2%는 너무 많다,10.7%는 너무 적다고 응답했다.따라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현재의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규모가 적당하거나 다소 많다고 답변,당분간 국고보조금의 규모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북정책 방향 김대통령이 취임 후반기에 대북한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가장 많은 60.2%의 응답자가 화해및 유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답변했다.그러나 강경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도 39%나 되어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화해및 유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은 호남지역(83.5%)과 서울지역거주자(64.8%)에서 높게 나타났다.반면에 강경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은 부산·경남거주자(51.4%)와 40대 연령층(46.4%)에서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북한에 15만t외에 추가로 쌀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72.7%,더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26.9%로 부정적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폐지폐 유출/과연 단독범행 일까/현장검증 결과 증폭되는 의문

    ◎범행 10여차례 3억여원 유출 납득안돼/정사기 뚜껑 열려있어도 누구도 발견못해 한국은행 부산지점 폐기용 지폐 절취사건이 전 서무과 직원 김태영씨 혼자 저지른 범행일까.또 절취한 금액도 3억5천만원뿐일까. 경찰이 한은 고위간부의 축소지시와 공범 여부에 대해 집중수사하고 있지만 과연 김씨 혼자서 10여차례에 걸쳐 3억5천여만원만 빼냈을까에 대해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있다. 더욱이 22일 상오 부산시 중구 대청동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실시된 김씨의 현장검증 결과 이같은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날 검증에서 정사기의 열쇠를 따로 보관하고 있는 정사과장과 계장이 김씨가 범행하기 하루 전날 미리 정사기의 수리를 이유로 세단기를 열어 둘 것을 요구하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열어준 것이나 세단기의 뒷뚜껑이 다음날까지 열려 있었는데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 과장과 계장이 기계수리때 입회하도록 규정돼 있는데도 김씨가 10차례 범행하는 동안 한번도 입회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공범이 있을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 정사기 옆에는 일일점검표가 붙어 있고 여기에 담장직원이 매일 작업이 끝나면 이상유무에 대한 점검체크를 한뒤 계장이 확인하도록 돼 있었다. 현장검증이 실시되는 동안 5천여만원의 돈이 분쇄되지 않고 아래로 흩어져 내릴때 기계 틈새로 튕겨나와 바닥에 나뒹굴어 눈에 쉽게 띄었고 절단되지 않은 돈이 받침대로 설치된 아크릴판을 쉽게 넘쳐흘러 오고가는 직원들의 눈에 잘 띄어 공모가능성을 짙게 했다. 범행금액도 3억5천여만원을 웃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김씨가 마지막에 훔치려 했던 금액이 7천2백여만원인데다 한꺼번에 5천만원을 훔쳐낸 적도 있다고 경찰조사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가 범행액수에 대해 여전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고 있는 데다 빼낸 돈을 제3의 장소에 보관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름으로 투자했을 경우는 사실상 추적이 어렵다.
  • “쓰레기 대란” 현장 실태 긴급점검

    ◎넘치는 쓰레기/2008년엔 버릴곳 없다/한해 5만8천t 나와 80% 매립처리/상황 나은 서울·경남·제주 13년후 포화/“우리 동네엔 안된다” 처리장 부지사고 「지역이기」 충돌 전국 방방곡곡이 쓰레기로 골치를 앓는다.지난 해 전국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는 모두 5만8천1백18만t.이 중 81%가 넘는 4만7천1백66t(2만6천3백68㎥)은 땅 속에 묻었고 2천25t은 태웠다.나머지 8천9백27t은 재활용했다.결국 대부분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이 문제인 셈이다.전국의 매립장 용량은 35만6천5백60㎥.지난 해 매립량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평균 13년6개월 뒤에 꽉 찬다.서울,경남,제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최장 7년 이내에 전면 포화 상태가 된다.대전은 이미 자체 매립이 불가능하며 부산은 을숙도 매립장을 억지로 쓰고 있다.본격적인 지방자치와 함께 혐오시설을 꺼리는 님비(NIMBY) 현상이 극성을 부리자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등 처리시설을 새로 만드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쓰레기를 둘러싸고 분란을 겪는 현장을 점검한다. ▷수도권◁ 군포시 산본1동 최모씨(29) 등 주민 3명은 지난 15일 폭력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렸다」는 시비가 주먹 다짐으로 이어진 탓이다.이들은 『눈에 띄는 곳마다 쓰레기가 가득 쌓이며 인심이 사나워졌다』고 후회했다. 군포시의 쓰레기 대란은 이미 30억원을 들여 기초공사에 착수한 산본의 쓰레기 소각장 건립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면서 빚어졌다.하루 2백여t의 군포시 쓰레기를 처리해 온 수도권 매립지 인근 주민들이 지난 7일부터 군포시의 쓰레기 반입을 전면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명분은 자기 동네에 쓰레기 소각장을 만들지 않겠다면,그 곳 쓰레기는 받아줄 수 없다는 것으로 각계의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인천시 검단동과 백석동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수도권 매립지 대책 위원회」는 『군포 사태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군포시는 산본이 아닌 다른 곳에 더 큰 규모의 소각장을 세우기로 했다.9월 중 부지를 확정하고 산본 소각장을 준공키로 한 97년6월까지 새로 짓겠다는 각서를 대책위에 제시하고 쓰레기 반입을 요청했다. 대책위는 이 약속에 따라 군포의 쓰레기 반입을 다시 허용키로 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시한부이다. 부지 확정 후 환경영향 평가,그린벨트 훼손행위 승인 등 절차를 밟고 토지를 사들이는 절차를 감안할 때 9월 말까지의 입지선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새로운 소각장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군포시 구도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신도시에서 반대하는 소각장을 구도시 역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군포시 쓰레기 문제는 군포 시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경북권◁ 포항시 구룡포읍 삼정리 간이 매립장에는 지난 6월29일 이후 쓰레기 반입이 중단됐다.매일 15t의 쓰레기를 묻지만 위생시설을 갖추지 못 해 악취가 심하고 해충이 들끓어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쓰레기 반입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할 수 없이 남구 오천읍과 연일읍 쓰레기 매립장을 이용하려 했으나 역시 그 동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주 처리장인 호동 매립장을 이용하고있다. 그러나 운반비용이 2배 가까이 커지자 삼정리 주민들에게 철저한 소독과 침출수 방지 등 시설 보완을 약속하고 20일부터 삼정리 매립장을 다시 쓰기로 했다. 인구 51만인 포항시의 하루 쓰레기는 4백60t.호동매립장에 3백30t을 처리하고 나머지 1백30t은 구룡포읍,연일읍,오천읍,청하면,송라면 등의 간이 매립장에 묻고 있다. 그러나 시설을 제대로 갖춘 호동매립장은 10년 후 수명이 끝나고 간이 매립장들은 삼정리처럼 위생 시설이 극히 빈약해 비가 조금만 와도 침출수가 흘러나온다. 포항시는 대규모의 새로운 매립장과 대형 소각장 시설을 서두르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부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 춘천시는 지난 2월 동산면 조양리에 6만1천여㎡를 확보해 매립장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 5월 말 한강환경관리청으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았다.그러나 조양리 옆 동네인 홍천군 북방면 역전평리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한 상태이다. 춘천시는 그동안 써 온 두 곳의 매립장이 모두 포화상태에 이르자 석사동 애막골에 새매립장을 만들려다 부근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부지를 다시 조양리로 바꿨다. 지난 해 9월부터는 버릴 곳이 없어 삼천동 사이클경기장 옆 빈 터에 임시 적치장을 만들어 놓고 하루 4백여t씩의 쓰레기를 보관해 놓았다.여기도 꽉 차자 올해 초에 통합된 구 춘천군의 장학리 매립장에 급한대로 버리지만 지난 달부터 과포화 상태를 보여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있다 다급한 춘천시는 지난 6월 16일 조양리 매립장 공사에 착공했다.결국은 춘천시 사회환경국장이 주민들에게 이틀 동안 억류되고 시 직원과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장 등 2명이 구속되는 사태로 번졌다. 홍천군 주민 1백50여명은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 매립장 반대 및 구속자 석방 촉구대회를 가졌고 또 다시 주민 4명이 입건되는 등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부지사가 중재에 나서는 한편 다른 장소를 물색 중이지만 아직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환경부의 입장/주민간 대화로 자율해결 유도 환경부는 군포 쓰레기 사태에 처음부터 개입이나 중재를 자제해 왔다.지방자치와 함께 표면화한 이런 갈등들은 해당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앞으로도 각종 혐오시설의 건설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마찰이 불가피한만큼 주민들의 자율 조정능력을 하루 빨리 길러주어야 한다는 게 환경부의 생각이다.이번에도 시일은 걸렸지만 자율적으로 해법을 찾은 것이 좋은 교훈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지금껏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 등을 지을 때마다 악취와 먼지방지,소음방지,침출수 처리대책 등의 완벽한 보완조치를 해 주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점을 반성하고 있다.이는 행정불신으로 이어져,결국은 지역 이기주의를 더욱 첨예화시켰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앞으로 혐오시설에 대한 기술지원을 적극 강화하기로 했다.특히 자치단체별로 쓰레기 매립지를 확보하기는 어려우므로 자치단체마다 소각장을 확보토록 할 방침이다. 부지를 확보하면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단이 기술을 지도하고 공사과정에서 부실공사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도 마련할 계획이다. 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주면 지금과 같은 갈등도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 김지태 폐기물시설과장은 『선진국처럼 도시구조에 맞는 시설의 입지조건,각종 시설의 복합유치 가능성,지역을 연계한 시설의 분담 모델 등을 개발해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쓰레기 처리 모범지역 제주/“생활시설 유치” 약속 주민 설득 쓰레기에 관한 한 제주도는 대표적인 모범지역이다.지난 해 매립한 생활쓰레기는 15만9천4백92㎥.매립장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각 1곳,북제주군과 남제주군 각 5곳 등 연면적 30여만㎡다.이 매립장들의 용량은 앞으로 11.4년이다. 제주시는 지난 90년 회천동 시유지에 2002년까지 쓸 수 있는 24만7천여㎡의 매립장을 만들 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 때 시장은 22차례에 걸쳐 1천1백여명의 주민들을 만났다.위생처리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2.6㎞의 하수도 시설 등을 지원하기로 하고 예정대로 91년에 공사에착수할 수 있었다. 북제주군은 지난 91년 만든 애월읍 납읍리 매립장이 지난 해 말 포화상태에 이르자 읍장에게 2∼3개 후보지를 물색토록 했다.읍장은 곧 주민공청회를 열었고 소길리의 사유지를 선정,지주를 설득해 부근 군유지와 교환키로 함으로써 순조롭게 해결했다. 한경면의 매립지는 각 마을마다 돌아가며 설치한다.지난 7월 말 판포리 매립장이 꽉 차자 8월부터 용수리에 매립장을 만들었고 다음 순서는 청수리로 정해져 있다. 최근 새로 조성한 남제주군 대정읍 구억리 매립장이나 성산읍 난산리 매립장 등도 원만하게 만들었다.행정기관과 주민들이 의견을 나눈 끝에 위생처리 등 과학적 처리와 농업용수 등 지역개발 사업을 약속하고 결정했다. 쓰레기 줄이기에서도 모범이다.제주시의 쓰레기 배출량은 하루 7백21t에서 종량제가 실시된 지난 해 4월 이후 4백34t으로 40%가,특히 남제주군은 1백27t에서 38t으로 무려 70%나 줄었다.
  • 「삼풍」 현장 구경거리로/외국 관광객·취재단 줄이어

    ◎백화점 잔해 배경 사진 찍기도 삼풍참사 현장에서 「부실한국의 현주소」를 배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지도 20일로 5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6·25동란이후 최대참사의 상흔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고 있다. 「건설후진국」의 실체를 파악하려는듯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등을 들고 무리지어 이곳을 찾는 외국인관광객과 기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사고현장은 이제 「관람객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의 참혹함을 짐작키는 어렵다.침울한 적막속에 A동 승강기탑과 중앙홀 등 남은 건물에 대한 철거작업준비만이 부산하다.가끔씩 혼백이 돼 떠돌고 있을 실종·사망자의 이름을 부르는 유가족들의 오열만이 중장비소리와 함께 허공에 울려퍼지고 있다. 백화점 맞은편 삼풍주유소 박돈영(30)과장은 『하루에 1백여명의 시민들이 사고현장 맞은편 주유소나 사법연수원 앞에서 「현장」을 지켜보다 돌아간다』며 『외국인관광객들도 하루평균 1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특히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UN 세계여성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중국 북경으로 가는 각국의 대규모 기자단들도 한국을 경유,삼풍현장에 들르는 것을 일정으로 짜놓고 있다는 것이다.앞으로 더욱 많은 외국언론인이 삼풍의 수치를 눈으로 확인할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의 망신살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잔존건물철거를 담당한 성도건설의 한 직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 반해 외국인들은 마치 기념촬영이라도 하듯 백화점 잔해를 뒷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며 『국가적으로 이런 망신살이 어디 있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국교1년생 아들과 함께 현장을 찾은 회사원 김광열(36·강서구 내발산동)씨는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가다가 짬을 내 한번 들러봤다』며 『어떻게 이렇게 큰 건물이 쉽게 무너질 수 있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 민자 새조직책/참신한 30∼40대를 찾아라

    ◎30개사고·신설지구당 인선 전망/형식적 절차 배제 직접 인물 추천 지시/정·재·법조·언론계 망라 1백50명 압축 16일 민자당에는 의미있는 지시가 떨어졌다.민자당의 사고·신설지구당의 조직책후보감을 있는대로 추천하라는 내용이었다.민자당은 물론 범여권을 총동원,최상의 인물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빈 자리는 이치호 전의원의 탈당으로 한개가 더 늘어난 30개.민자당은 빈 자리의 새 주인을 찾는 작업을 그전과는 달리 할 생각이다.형식적인 공모절차 없이 직접 인물을 찾아나서겠다는 것이다.물론 실무진에서 반대하고 있어 원래 예정대로 공모를 거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변화에서 나타나듯 여권은 「베스트 멤버」 구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내년 총선을 앞둔 1차 공천격인 새 조직책의 인선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할 생각이다.참신한 신진인사로 「세대교체」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중량급 인사로 국정의 안정감을 채우겠다는 이중포석이다.아울러 어정쩡한 「전문정치꾼」은 가능한 한 배제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민자당은 후보감을 1백50명가량으로 압축해놓고 있다.현재로서는 「인명록」을 작성해놓은 단계에 불과하지만 면면을 보면 역시 참신성이 눈에 띈다. 30대와 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경제인·언론인·학자·변호사·판검사·연예인 등 전문인도 많다. 경제인은 원종섭 제일제당부사장(부천 원미갑),김세중 극동건설부회장(시흥),서군석전 반도스포츠사장(군포),이민 삼성중공업부사장(〃),김영환 (주)대우부회장(고양),최종인 두산상사사장(〃),주진오 사조산업회장(경북 성주고령),신선호 율산명예회장(서울 강북을)등이 포함돼 있다. 변호사로는 안상수(서울 송파 또는 강북),박용일·홍성우(서울 송파병),김용원(부산 사상을),이사철(부천 원미갑),한경수씨(경기 고양)등이 거명되고 있다.N모(법무연수원·경기 분당)·J모(수원지법·안양)·P모씨(대구지검·안산)등 현직 판·검사도 대상에 들어 있다. 학자도 상당수 있다.김학준 단국대이사장,김광웅(서울대·인천 연수)·이필우(건국대·경기 시흥)·최명(서울대·〃)·정경훈(경원대·경기 분당)·문광식(수원전문대·안양 동안)교수와 오덕균 전충남대총장(대전 서을)등이다. 정·관계 출신인사로는 서석재 전총무처장관(부산 사하갑),박관용 청와대정치특보(부산 동래을),김무성 내무부차관(부산 남갑)등의 입성은 확실시된다. 홍재형 경제부총리(청주),강용식 의원과 최병렬 전서울시장(서울 송파병),최양부 청와대농림수산수석(서울),양경자 전의원(서울 강북을),임정규 민자당부대변인(〃),이상연 전안기부장(경북 성주·고령),이상희 전내무부장관(〃),이헌기전 노동부장관(인천 남동을),김광일 국민고충처리위원장(부산 북),김도현 문체부차관(서울 광진을),이수심 민자당조직국장(경북 칠곡)등도 검토대상이다. 이밖에 정기환전미국 록히드사 책임연구원,이병택 안양경실련대표등이 안양조직책후보에 포함돼 있다.언론계 출신도 10여명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예인으로는 유인촌·이덕화·이상용씨 등이 대상에 들어 있다.
  • 과거 청산(21세기 한­일 새 지평:1)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 광복 50년은 한국과 일본간에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매듭짓고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것이다.과거청산,외교·안보,경제협력,문화교류등 주요 분야별로 두나라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연재로 들어본다. ◎“일은 수억 아시아인 고통 외면 말아야”/일의 과거사 인식 자세의 문제점/아직도 침략전쟁 책임 회피 급급/굴절된 역사 직시… 참된 자성 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85년5월 당시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게 된다.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나치즘과 제2차대전의 교훈을 상기시켰다.같은해 8월 일본의 당시 나카소네총리는 A급 전범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정국신사에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배를 감행하였다. ○독일과 인식 큰 차 일본 각료들의 참배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금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제2차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죽은 일본군의 넋을 추모하는 결의가 무성하였다.과연 오늘의 독일에서 현직 각료가 나치 수뇌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제2차대전의 추축국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이같은 차이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대한 책임추궁제도로는 인적책임에 대한 전범재판과 물적책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제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제의 과거사에 관하여는 인적 책임과 물적 책임 그 어느편도 철저히 규명되거나 추궁되지 못하였다.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 미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단죄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대공방벽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였다.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보다도 일본의 경제부흥과 재군비를 더욱 강조하였다.그 결과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전후의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였으며 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전후처리가 맡겨졌다. ○가해자 인식 부재 이러한과정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전후처리 태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부각되었다.첫째,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이다.수억의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하여 장기간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되었고,오히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이 강조되었다.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가해자 의식의 부재는 전쟁책임의식의 부재로 연결되었다.일본인 스스로가 피해자의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을 외면하였고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하였다.패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죄결의가 속빈 강정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상의무도 회피 셋째,전쟁책임의식의 부재는 자연히 대외적 배상의무 회피를 조장하였다.전후 일본이 구군인 등 자국민 피해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의 누적합계가 근 40조엔에 육박하고 현재도 연간 2조엔에 상당하는 지불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 25개국과 체결한 29개 전후처리조약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지불한 금액의 합계는 1조엔을 약간 넘을 뿐이다.제2차대전의 희생자란 그릇된 나치즘의 피해자라는 성격 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의 전쟁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수행에 앞장서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 각지의 법원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하여 필리핀인·중국인·네덜란드인·홍콩인 등 각국 외국인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무려 30건 가까이 진행중이다.대부분이 70을 넘은 고령의 피해당사자가 그들 살아 생전에 끝나기나 할지조차 전망이 불투명한 소송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심정을 일본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일 소송 잇따라 금년 5월 유럽에서는 제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파리에서는 독일군의 시가행진도 있었다.금년의 독일군이 50년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닌 유럽 번영의 동반자로서 행진하였다는 점이다.일본은 현재 자신을 구적국으로 규정하고 출범한 유엔체제 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남경 아니면 마닐라에서 일본자위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일본 자신이 될 것이다. ▲정인섭 방송통신대 교수(41세) ▲서울 법대졸 ▲법학박사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바로잡는 일부터”/과거청산과 한­일 미래를 위하여/위안부 보상문제 등 적극 나설때/「불전결의 불발」 같은 추태 없어야 지난 6월9일 채택된 전후50주년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국회(중의원)가 보인 추태는 「50년 결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나라에의 국제공약이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일 국민 기대 배신 그것은 또 전후50년 결의가 아시아 여러나라와 진실로 화해하고 미래지향의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란 많은 일본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신진당 부당수)는 『전후50년이라는 고비를 살리지 못하고 결의를 끝내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대단히 엄한 반발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 신진당은 「50년결의」 채택의 본회의를 보이콧했다.여당 3당으로부터도 다수의 결석자가 있어서 5백2명의 중의원중 채택에 참가한 것은 겨우 과반수인 2백52명으로 이례적인 사태였다.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등 역대 일본총리가 방한시 행한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발언을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역대 총리의 발언을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만들고 만 일본국회의 어처구니없는 전후결의의 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찬물 끼얹는 행위 그런 가운데 일본인을 구해 준 것은 『일본의 국회결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새로운 불신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도 『좋은 내용의 결의를 향하여 노력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그 사람들은 이 결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앞으로의 노력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한 김태지주일대사의 적절한 발언이었다.(아시히신문·통일일보 인터뷰)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의 유력지들은 나름대로 특별기사를 게재하였으나 국교30년의 양국의 현재위치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어가는 상호의존」,「아직 두꺼운 마음의 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닛케이신문 6월 20일자였다.앞서 언급한 추태의 극을 보인 일본국회의 전후결의가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더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소걸음과 같지만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선,종군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해결등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문부성이 6월28일 발표한 국민학교 6년생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일본어의 강제,창씨개명,토지의 몰수,손기정선수의 일장기 사건등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나 국민학생도 잘 알수 있도록 됐다. 90년 5월 방일한 노태우전대통령은 일본 국회연설과 일본 기자클럽 회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호소했다.일본 문부성이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향해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 국교·중학교의 수업중 꼭 다루도록 지도를 거듭 내린 것도 이 때부터였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 이래 3년 넘어 보상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사업을 추진하는 임의단체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설립돼 7월27일에는 전참의원의장 하라 분베에(원문병위)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한국 중국 필리핀등 1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 전 위안부에게 일시금을 보상함과 아울러 복지와 의료면의 지원사업에는 일본정부로서도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로 됐다. ○청산 움직임 일어 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사람의 왕래는 30년전의 1백20배.지난해는 2백69만명을 헤아렸다.필요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람의 왕래의 확대다. 미래지향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한일 쌍방이 필요로 하는 관계의 심화와 발전인 것이다.앞에서 말한 닛케이신문은 「깊어지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묶는 키워드를 「공통의 이익」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한일간 수평분업체제는 또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필요로 하는 관계 자체다.엔고현상으로 생산거점을 대폭 해외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98년 생산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의 닛산자동차의 전면적인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협력관계 불가피 관련부품 메이커 1백15개사의 부산유치와 함께 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기타큐슈를 한국 남부와 결부,국경을 넘는 경제권의 성립이 예상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이인삼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국민의 뿌리깊은 감정마찰과는 별도로 세계의 외교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사실로 돼 있다」라는 닛케이신문의 지적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앞서 짚어보는 것으로서 매우 시사적인 것이다. ▲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 교수 61세 ▲나고야대 졸
  • 달라진 일인 관광행태(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

    ◎역사·문화탐방 늘어… 하루 3천명 입국/민족감정 표현 자제… 불신은 여전 지난달 27일 하오 3시쯤 김포국제공항 신청사에 한 중년 신사와 고만고만한 세 어린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북해도 신문기자로 13년간 일하고 있다는 일본인 준 수가와라씨(37·일본 홋카이도 히로시마타운 거주)는 휴가를 이용,한국땅을 처음 밟았다며 함께 데리고 온 국민학교에 다니는 세자녀를 차례로 소개했다. 수가와라씨 가족은 김포공항에서 잠시 머물다 같은날 하오 부산발 비행기에 올랐다.한·일간의 특수했던 역사를 더듬어 보기 위해서는 옛날 일본의 한국관문이었던 부산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그는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처음 들어온 부산주변의 여러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식민통치를 옹호한 와타나베 전일본외상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탄한 한국언론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밝힌 그는 백제문화유적물이 비교적 많이 있는 부여·공주등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6일 하오 3시30분쯤 김포국제공항 신청사 관광공사 종합안내 데스크 앞에서는 고도리씨(33·회사원)등 일본관광객 2명이 서울지도를 펴놓은 채 숙박업소 명부를 뒤적이고 있었다.나흘동안 값비싼 호텔에 투숙할 만한 여력이 되지않아 저렴한 숙박업소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관광공사 안내원의 권유로 TV와 에어컨시설이 모두 구비되어 있고 하루숙박비가 2만원 하는 종로1가 P여관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즐겼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하루 평균 4천여명.이 가운데 75%인 3천여명이 일본인 관광객이다. 한국관광의 해였던 지난해 정부가 일본인관광객에게 무사증(노비자)입국을 허용하면서부터 부쩍 늘고 있다. 관광형태도 다양하다.일본문화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백제,신라의 유적지를 찾는 역사·문화유적 관람등의 「문화관광」,제주등지에서의 골프관광 등은 꾸준한 관광상품.피부마사지를 받으려는 속칭 「때밀이 관광」도 적지않다.최근들어서는 엔고에 편승,서울 남대문·동대문 시장등지에서 쇼핑을 하기위한 「장사형 관광」도 성행하고 있다.특히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서 일본의 온천 휴양지등은 한산한데 비해 경주등 우리나라 관광지는 일본인들로 북적대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을 마치고 귀국한 일본 교직자 한국수학여행시찰단 일행 29명은 백제문화유적지가 많은 부여·공주권 역사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니가타 상업고교 가치야마 교장(59)등 일행은 한강유람선을 타고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한국의 발전한 모습에 감탄했으며 공주박물관과 부여국립박물관 견학에서는 도자기등 전시유물을 보며 『아! 우리 것이랑 똑같다』고 일본문화가 백제에서 유래됐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견학에서는 「왜 이것을 철거하는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독립기념관 4관인 「3·1운동관」을 둘러볼 때에는 일본군의 잔인한 탄압장면에 잠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가치야마 교장은 『일본에 돌아가면 학생들에게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알려,앞으로 한·일관계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홋카이도비라토리 고교 미야치 료이치 교장(55)도 『양국의 인적교류가 더욱 많아져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때 우리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던 일부 일본 관광객들의 기생관광은 크게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관광객들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한 안내원은 『입국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본관광객을 기다리다 허탕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 경우 대부분 마중나온 현지처와 함께 미리 빠져나갔다고 보면 틀림 없다』고 귀띔했다. 일본관광객들은 한국관광에서 바가지요금을 의식,대부분 모범택시를 이용하고 수돗물은 마시지 않는다.또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말을 하지않고 공산주의 관련 서적도 갖고 다니지 않으며 「조선」이라는 말도 좀처럼 꺼내질 않는다. 일본 관광협회에서 이렇게 교육을 받은 탓이다.한·일 국민간의 마찰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일본인 역시 우리를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올해를 「한국 재발견의 해」로 정하고 3백9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이 가운데 절반인 1백85만명을 일본관광객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부 일본부의 김응상(37)과장은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면서 『일본관광객들과 가장 먼저 부딪치는 여행사 가이드·호텔 종업원·택시기사 등은 물론 시민들의 친절한 안내와 따뜻한 미소가 불편했던 한·일 두민족간의 감정의 앙금을 없애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부 강철수(31)과장대리도 『날이 갈수록 우리와의 접촉이 늘어나는 일본인들을 감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다 냉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할때』라고 강조하고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서 양국민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일본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일본 고지도전과 동해 원적/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30일 일본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에서는 일본 고지도전이 마지막 날을 맞고 있었다.근처 사쿠라기쵸역 앞에는 제3회 코리아청년축전을 맞아 동포 3세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한국 가락을 멋들어지게 선보여 차에서 내려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서양인들도 있었다. 개항자료관에는 미국외교관이었던 폴 C 블룸씨(1898∼1981)가 소장했던 서양인들이 제작한 세계,동아시아,일본 지도가 진열돼 있었다. 일견 15∼16세기의 지도 등에는 인도와 인도지나반도 등은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져 있지만 필리핀 이북은 부정확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서세동점의 시기에 유럽인들의 발길이 그 지역에 먼저 닿았던 탓이리라.한반도가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17∼18세기에 들어서면 한반도 등도 정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데 위트의 「타타르국」지도에는 제주도까지 나타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시기 지도에서는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동해바다가 한국해로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베랑의 일본도(1752)에는 「Merde Coree」였고 보엔의 일본도(1747)에는 동해가 「Sea of Korea」로 명기돼 있었다.이에 앞서 에도(도쿄)를 방문한 네덜란드 사절단이 에도에서 들은 것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베르니에의 일본도(1680)에는 「The Sea of Coreer」로 돼 있었다. 이 시기 지도에서 일본해라는 표기는 동해가 아니라 일본 동쪽 태평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제작된 지도에는 동해가 일본해로 둔갑하기 시작한다.에로스미스(1804),핀카튼(1809),톰슨(1816),페로(1826)의 지도가 그러하다.물론 이 시기 지도에도 대한해협은 부산에서 쓰시마,쓰시마에서 규슈까지를 아우르는 해협 이름으로 표시돼 있었다. 여하튼 이들 지도에서는 태평양을 일본 코 앞까지로 표시하면서 일본해라는 지명을 엉뚱하게도 일본열도를 건너뛰어 한국바다에다가 붙여버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해의 「원적」은 꼭 찾아야 한다.일본측이 제작한 지도를 확인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다만 이번 전시를 보면서 우리가 동해를 한국의 바다로 찾기 위해서 일본이 일본해를찾도록 도와주는 것과 병행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미 한국전참전비 27일 워싱턴서 제막

    ◎“자유민주주의 수호”/미 국민정신 되새겨/한·미 정상·참전용사 등 참석 성대한 행사/한반도서 숨져간 3만3천여 병사의 넋 기려/부산 피란당시 텐트촌 재현 등 다양한 행사도 27일 제막식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는 워싱턴의 한국전참전비는 단순히 한국전쟁에서 싸우다 숨진 미군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지키려 애쓴 미국민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매년 수백만 미국민들이 찾아오는 워싱턴 한복판 몰(Mall)공원에 「자유는 공짜로 얻는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세워진 한국전참전비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숨져간 3만3천여 영령들의 귀중한 자유수호 의지를 역사 속에 길이 빛나게 할 전승기념비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전참전비가 워싱턴 한가운데 자리잡게 됨으로써 한국전쟁이 2차대전 후 냉전체제 아래서 최초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 전쟁으로, 또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보병전쟁으로 미국이 끝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전쟁이라는 미국역사상,미군전사상 새롭게 자리매김되는 의미 또한 갖는다. 이같은 역사적 의미를 뒷받침하듯 오는 27일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그리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과 참전용사,한국전 참전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성대한 제막식과 이를 전후해 개최되는 각군 주관 행사 등은 이른바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내용들로 돼있다. 또 전장터를 의미하는 삼각형 부분은 삼각형의 긴 꼭지가 원의 중앙에 도달케 돼 있으며 주진입로가 되는 좌측 변에는 한국을 비롯한 유엔참전국들의 국명을 돌판에 새겼고 우측 변에는 화강암 벽면을 길게 설치해 한국전쟁중 미군활동의 전체과정을 부조했다. 미국 참전비건립위원회와 한국전참전기념사업위원회의 주관으로 미육군 공병대가 시공한 이 참전비는 92년6월에 착공,3년1개월만에 완공되는데 총비용은 1천8백만달러가 들었으며 한·미 양국 기업들의 모금과 기념주화 판매 등 수익사업 등으로 충당됐다. 참전비 제막식 관련행사는 다음과 같다. ◆26일=낮 12시몰공원에서의 텐트촌(Tent City) 개장식으로부터 본행사가 시작된다.부산 피난 당시를 연상케 하는 이 텐트촌에는 각국 참전재향군인회,정부유관기관 등 현재 16개 단체가 입주를 신청했다.하오 7시에는 미해병대가 이와지마 기념비에서 미해병대의 황혼(Sunset) 퍼레이드를,미육군은 백악관앞 엘립스광장에서 군악연주회를 갖는다. ◆27일=상오 10시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묘에서 진혼제를 시작으로 하오 3시에는 양국 대통령이 참석,제막식을 갖는다.하오 8시부터는 불꽃놀이 등 축제가 열리고 같은 시각 미해병대의 이브닝 퍼레이드가 열린다. ◆28일=상오 11시 워싱턴기념탑 아래 광장에서 3만여명의 참전용사와 현역병이 참가하는 대형 열병식이 거행된다.20세기 들어 처음이며 남북전쟁 이후 최초로 행해진다.하오 1시에는 해군기념비에서 진혼제가 열린다. ◆29일=상오 11시 참전용사 귀환 환영 퍼레이드가 시내 중심가에서 펼쳐지며 하오 4시 텐트촌의 철거로 모든 행사를 끝맺는다. ◎“참전비는 전장서 잃은 내몸의반쪽”/참전기념위 사무국장 웨버 예비역대령/“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무한한 긍지”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이 참전비를 세움으로써 한국전쟁의 끝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한국전참전비 공사장에서 만난 윌리엄 웨버 예비역 육군대령(69)은 베트남참전비가 10여년 전에 세워진데 비해 한국전참전비가 이제 세워진 것은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80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한국전참전기념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해온 그는 『한국전쟁은 2차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명분있는 전쟁이었다』면서 『피로 지켰던 한국이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가는 것을 볼 때 참전용사의 한사람으로 무한한 긍지와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전에서 몸의 반을 잃고 한평생을 살아온 내게 이 참전비는 뒤늦게 되찾은 내몸의 반쪽』이라는 개인적 의미 부여도 서슴지않는 웨버 대령은 켄터키 주둔 미 187 공수여단의 팀장인 대위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적후방 교란 임무를 띠고 8월말 평남 순천에 투하되었다.다음해 2월 중국군과의 원주전투에서 한쪽 팔과 다리,눈을 잃고 본토로 후송될 때까지 7개월간 적진 구석구석을 낙하산을 타고 누볐다.타고난 군인이었던 그는 퇴원 후 정부에서 제의해온 많은 좋은 자리들을 거부하고 군에 남기를 희망,2차대전 때부터 37년간 미육군을 지켜왔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피흘림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 『자유와 민주를 지킨다는 일념에서 아무 조건없이 낯선 땅 한국을 찾았을 뿐인 만큼 그 관계는 「빚」으로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초장 민주 84­민자 71­무소속 52명/6·27지방선거 총정리

    ◎투표결과와 의미/광역의원 민주·민자·무소속 순/관권시비 사라져 공명선거 정착 34년만에 지방자치시대의 문을 활짝 연 6·27 4대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향후 3년동안 지방자치를 책임질 15명의 시·도지사와 2백30명의 시장·군수·구청장,9백72명(비례대표 97명 포함)의 시·도의원,4천5백41명의 시·군의원을 선출했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시대의 원년을 맞아 지역살림을 꾸릴 일꾼을 뽑는다는 원래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간의 사활을 건 대결로 철저한 지역분할구도가 재현됨으로써 국민화합 측면에서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민자당의 부진,민주당의 선전,자민련의 도약,무소속의 분전으로 요약된다.15명의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자당은 부산과 인천,경기,경남,경북에서 5명을 배출하는 데 그친 반면 민주당(서울,광주,전남,전북)과 자민련(대전,강원,충남,충북)은 각각 4명을 당선시켜 대구와 제주를 차지한 무소속과 함께 여소야대의 지방정국을 이끌어 냈다. 기초단체장도 민자당이 71곳을차지한 반면 야권은 민주당 84곳,자민련 23곳,무소속 52곳을 각각 당선시켜 민자당을 압도했다.광역의원(비례대표 제외) 역시 민자당이 2백86명에 그쳤으나 민주당은 3백55명,자민련은 83명,무소속은 1백51명을 배출했다. 이같은 선거 결과가 나타난 것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등장과 김종필 자민련총재의 「충청도 핫바지론」 등에 따른 지역감정 재연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민주당 지원유세라는 형식을 빌려 정치활동을 재개한 김이사장은 줄곧 「지역등권론」을 기치로 내세워 호남권의 지역정서를 자극했다.여권은 「세대교체론」을 내세워 맞불작전을 폈으나 결과적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 됐다. 특히 양금씨는 선거과정에서 내각제개헌문제에 공감대를 이루며 연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함으로써 이들의 향후 행보가 야권은 물론 정치권 전체의 판도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원칙대로 그 규모에 비해 역대 어느 선거보다 돈을 적게 쓴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관건선거시비도 거의사라져 공정한 선거풍토를 이루는 전기가 마련됐다는 지적이다.선거기간동안 활발했던 후보자간 TV토론은 바람직한 선거문화의 새 전형으로 떠올랐다.그러나 후보와 정당들간의 무차별적 인신공격과 상호 비방등 선거막판에 나타난 혼탁상은 이번 선거의 오점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시 도별 투표율/투표율 68.3%… 91년때보다 높아/제주 80.5% 최고­인천 62% 최저 전체유권자 3천1백4만8천5백66명 가운데 2천1백21만7천5백66명이 투표에 참여,평균 68.3%의 투표율을 보였다.이는 지난 92년의 총선 투표율 71.9%나 대선 투표율 81.9%에는 다소 못미치는 수치다.그러나 지방자치선거가 처음 실시된 91년의 기초의원선거투표율(55.0%)이나 광역의원 선거투표율(58.9%)에 비해서는 크게 높아졌다. 지역별로는 서울(65.9%)과 부산등 5개 광역시가 모두 62∼66%대를 기록,평균을 밑돌았으며 경기(63.3%)를 제외한 나머지 8개 도는 70%를 넘어섰다.제주도는 유권자 34만8천1백91명중 28만2백65명이 투표,80.5%의 투표율로 전국최고를 차지했다.반면 인천은1백55만1천9백25명의 유권자중 62.0%인 96만1천7백79명이 투표해 가장 낮았다. 투표율이 91년 지방선거때보다 크게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 단체장을 선출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34년만에 부활된 단체장,특히 광역단체장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선거가 지역대결·정당대결의 성격을 띤 점도 투표율 제고에 큰 요인이 된 것으로 지적된다.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각각 「지역등권론」과 「충청도 핫바지론」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지역정서를 부추긴 것이 결과적으로 투표율을 끌어 올렸다는 분석이다. ◎광역 단체장/3당 3각 지역분할 구도 뚜렷/민자 5·민주 4·자민 4·무소속 2 6·27 4대 지방선거의 지역주의 양상은 전국 15개 시 도지사 선거에서 특히 뚜렷했다. 먼저 지난 90년 3당통합 이후 민자당의 지지기반으로 편입돼 있던 충청권이 김종필씨의 자민련 창당이후 「독자세력화」했음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대전에서 자민련의 홍선기 후보는 초반 지지율에서 앞서가던 민자당의 염홍철 후보를 3배에 가까운 62.5%로 꺾고 충남에서도 자민련의 심대평 후보는 65.74%의 압도적 우위로 민자당의 박중배 후보를 눌렀다.끝까지 양측이 우위를 주장했던 충북에서는 자민련의 주병덕 후보가 35.4%로 당선된 반면 민자당의 김덕영 후보는 2위 자리마저 민주당의 이용희 후보에게 내주고 말았다. 호남권에서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뿌리깊은 영향력이 다시 확인됐다.광주에서는 민주당의 송언종 후보가 88%,전남에서는 민주당의 허경만 후보가 67.2%를 얻어 전국 시·도지사 당선자 가운데 득표율 1위와 2위를 각각 차지했다.초반 한때 민자당이 「이변」을 기대했던 전북에서도 민주당의 유종근 후보는 65.17%로 민자당의 강현욱 후보를 눌렀다. 반면 김영삼 정부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부산·경남에서는 김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문정수·김혁규 후보가 각각 50.29%,61.5%로 당선,3당통합 이전의 지역대결 구도를 복원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전통적인 여권지지 기반으로 인식돼온 대구·경북에서는 「반민자·비민주」라는 지난해 8·2보궐선거 양상이 확대,재생산됐다.대구에서는 무소속의 문희갑 후보가 36%로 당선된 반면 민자당의 조해령 후보는 16.5%로 4위에 그쳤다.경북에서는 민자당의 이의근 후보가 36.6%로 33.1%를 얻은 무소속의 이판석 후보에게 힘겹게 승리했다.대구·경북에서는 무소속의 약진과 함께 자민련의 이의익·박준홍 후보가 각각 21.6%,26.7%의 득표율로 선전한 점도 눈에 띈다. 인천과 경기에서는 선거 초반부터 높은 인기율을 보인 민자당의 최기선,이인제 후보가 민주당 및 무소속후보들의 추격에도 불구,39%대의 지지율로 당선됐다.민주당은 경기에서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원선거에서의 백중세에도 불구,28.9%에 그치는 부진함을 보였다. 서울에서 민주당의 조순 후보는 민주당의 92년 총선득표율(37.2%)보다 4.48% 높아진 41.68%를 얻어 33%를 얻은 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를 따돌렸다.민자당의 정원식 후보는 92년 총선에서 민자당이 얻은 34.7%보다 14.36%P 낮은 20.34%에 그쳤다. ◎기초장·광역의원/지역 할거… 대전·제주 “무소속 바람” 광역단체장선거에서의 여소야대 구도는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났다.민자당은 적어도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다수의 행정가출신등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압승을 자신했으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분 지역바람은 결국 이들 선거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대전·충남에서 자민련은 기초단체장 20개 가운데 19개,광역의원 78석 가운데 72석을 휩쓸었다.민자당의 이춘구 대표가 수시로 내려가 현장지휘한 충북에서는 민자당이 3분의 1정도를 차지,1순위는 유지했으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2명,자민련이 2명,무소속이 3명을 차지하는등 야권의 도전이 두드러졌다. 광주에서는 민주당이 5개의 기초단체장과 23석의 광역의원을 모조리 차지,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황색바람」을 전면 부활시켰다.전남과 전북에서도 민주당은 기초단체장 38개 가운데 35개,광역의원 1백19석 가운데 1백11석을 자치했다.무소속이 단체장에서 3명,광역의원에서 8명이 당선되기는 했지만 전북지역에 대한 민자당의 기대는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부산·경남에서 민자당은 기초단체장 37개 가운데 25개를 차지,「텃밭」은 지켰다.무소속이 12명이나 당선,민자당의 지역장악력에 적신호를 울렸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들 대부분이 공천불만이나 지역특수성과 관련된 여권인사라는 점에서 민자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대구·경북에서는 무소속이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의 절대다수를 차지,「반민자 비민주 정서」를 뚜렷이 했다. 현역 국회의원 3명이 모두 민자당 소속인 제주에서는 광역단체장에 이어 광역의원도 무소속이 다수를 차지,전통적인 무소속 기류를 반영했다. 경기·인천에서는 광역단체장에서 민자당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과 민주당이 엇비슷하고 광역의원은 도리어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은 25개 구청장 가운데 민주당이 23개를 차지한 반면 민자당은 서초와 강남구만을 건졌다.서울시의회선거에서도 민주당은 11석만을 민자당에 남겨주고 나머지 1백22개를 석권했다.
  • 1·4후퇴(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7)

    ◎중국군 파상공세… 2개 사단 서울 재점령/모,김일성에 “북조선군 사단수 감축 필요” 전문/4∼5월 춘계대공세 맞춰 소제무기 증강 촉구 파상공세를 펼치던 중국군은 마침내 51년1월4일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그후 1월8일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15227).바로 팽덕회,김송,박일우등 3명의 전선사령관이 서울점령직후 김일성앞으로 보낸 작전보고서의 사본이었다. 『1.제116보병사단과 117보병사단병력 일부가 오늘(1월4일)서울을 점령했음.적군 병력은 한강이남의 강안으로 패주했음.적은 한강과 산악지대등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해 잔여병력을 끌어모아 시간을 끌며 이후 전투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음. 2.만약 적이 한강이남을 따라 방어선을 펴고 김포공항을 장악하고 제물포항을 이용해 보급품을 조달할 경우 서울은 적의 공습과 포공격의 위협을 받을 것임.이는 아군의 춘계대공세에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만약 적을 한강이남지역에서 더 패주시킬 경우 김포공항을 아군이 장악함은 물론 재물포항도 아군수중에 넣을 수 있음.아울러 춘계대공세때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임.적이 남으로 계속 후퇴할 경우 아군은 수원을 점령한뒤 추가 작전지시를 기다리겠음. 1월4일 24시. 팽덕회,김송,박일우』 ○“인민애국세력 승리” 이 전문을 읽은 스탈린은 전문위에다 자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모택동앞으로 보냈다.『본인은 팽덕회를 비롯한 사령관들이 1월4일자로 김일성에게 보낸 작전건의문을 읽었음.필리포프의 견해로는 이 건의가 타당하며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한다고 생각함.진심으로 서울을 점령한 귀하에게 축하를 보냄.이는 인민애국세력이 반동세력에 거둔 위대한 승리임』 추후 작전전개와 관련,1월16일 모택동은 김일성앞으로 다음과 같은 충고를 보냈다.이 전문사본은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스탈린에게도 보고됐다(전문번호 N15 603). 『현재 중국 동북부에서 훈련중인 10만명의 조선인 신병들은 2∼3개월후면 훈련이 끝남.이들을 인민군 각급 부대에 배치하되 각 중대인원은 1백명이상,사단병력은 1만∼1만명이상으로 구성돼야함.북조선군은 사단,여단급 부대가 너무 많음.모든 병력을 15개정도의 사단으로 나누어 이들에게 소련제무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음.그럴 경우 조선문제를 최종 마무리할 춘계대공세(4월∼5월사이)때 이들이 중국의용군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음. 향후 2∼3개월사이 중국의용군과 북조선군은 신병들을 보충해 부대를 새로 개편하는 중대한 대규모 작업을 해내야함.신병들에게 고참병들의 경험을 가르쳐야 하고 무기증강,철도보수,식량 및 탄약저장등을 마무리해야함.앞으로 있을 군사작전에서 적군사령부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다음의 2가지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됨. 1.아군의 공세에 밀려 크게 저항을 못하고 조선을 떠남.우리의 준비가 완벽하고 전력이 자기들보다 우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적은 물러날 것임.2.적은 부산,대구지역에서 최후저항을 벌일 것임.하지만 이 경우에도 저항이 무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조선을 떠날 것임.물론 이를 위해선 우리도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야됨.그렇지 않을 경우 1950년 6월에서 9월사이 북조선군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할 것임.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2월에 공세작전을 한번 펼친뒤 다시 휴식을 취하며 마지막 대작전에 대비한 병력재편성에 착수해야함.중국과 조선동지들은 인내를 갖고 필요한 준비에 임해줄 것을 바람』 이렇게 1·4후퇴를 계기로 김일성,모택동,스탈린 3인은 다시 한번 한반도무력통일이 임박했다는 벅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아울러 중국군의 대공세를 계기로 작전의 거의 모든 전권을 어느덧 모택동이 행사하고 있음도 이 전문은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을 받아본 김일성은 곧바로 중국군 전선사령관 팽덕회를 만나 후속문제를 논의했다.팽덕회는 김과의 회담결과를 1월19일 모택동에게 보고했다.이 전문도 물론 북경의 소련대사관을 통해 1월21일자로 즉각 스탈린에게 보고됐다(전문번호 N15974). ○모,작전 전권 행사 『김일성과의 회담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함. 1.김일성을 비롯한 북한동지들은 미군과 그의 괴뢰군들을 남쪽으로 패주시키기 위해서는 북조선군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음.북한동지들은 최소한 2개월은 휴식을 취하며 병력재편성에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음.박헌영은 이와 다른 입장을 보였으나 본인의 추가설명을 들은뒤 수긍했음.소련군사고문관도 앞으로 있을 추가 대공세는 결정적인 마무리작전이 돼야하기 때문에 북조선 당정치국의 뜻에 따라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게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했음. 2.해안방어 관련.소련으로부터 기뢰1천개,대전차 지뢰를 비롯한 각종 지뢰 20만개를 제공받았음.이중 10만개는 해안방어에 사용키로 했고 기뢰는 제일 중요한 항구들의 방어에 사용키로 했음. 3.5개군 편성건.각 군은 3개사단으로 편성키로 결정했음.현재 1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들은 모두 4∼5개사단으로 편성돼있음.그러나 이들 사단들은 모두 3천∼5천명의 병력만 보유한 불완전한 사단임.본인은 남조선군포로들중 2만명을 5개군에 골고루 배치해 넣자고 제의했으나 북조선동지들은 이에 반대했음. 4.새로 해방된 지역에서 일할 장교숫자가 부족함.서울인구는 이전에 1백50만이었는데 현재도 1백만이 남아있음.식량,연료난이 극심함.피란민,실업자들에 대한 보조가 전무함.인민군,중국의용군이 보유한 식량도 최저수준임』 팽덕회는 이 전문에서 이밖에도 크고 작은 각종 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해 시행에 옮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그중 몇가지만 더 소개한다.점령지역 통제강화,적군 사기저하를 위해 노력,북한주민들의 봄파종 지원,피란민 지원대책,미군·남조선괴뢰가 일시점령중인 지역에 대한 정치선전공세강화,적의 후방에 침투할 특수부대창설 등등.하지만 이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추후 재차 협의키로 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1·4후퇴를 계기로 한껏 고조됐던 중국군,북한군진영의 축제분위기는 1월말을 고비로 눈에 띄게 수그러지기 시작했다.그리고는 곧이어 불안,공포,때에 따라선 엄청난 히스테리현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관련문서들은 또한 중·소간에도 불협화징조가 커져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스탈린은 계속해서 소련군의 직접개입을 피하려 했다.소련군사고문단,조종사를 비롯한 군병력 일부를 한국전에 파견하기는 했지만 매번 모택동,김일성 양자로부터 몇차례씩 간곡한 파견요청을 받은 후에야 마지 못해 이에 응했다. 스탈린은 또한 병력지원뿐 아니라 무기,탄약지원에도 모,김일성 두사람이 요청한 것보다 훨씬 못미치는 양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소련의 형편 역시 크게 넉넉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휴전협상은 시간벌기 51년 1월28일자로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제4차 공세작전을 펼 뜻을 밝히고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의중을 물었다.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같은 날짜로 전선의 팽덕회장군앞으로 보낸 작전지시문을 동봉했다(전문번호 N16052.51년 1월29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 다음은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문의 주요내용.『서울과 재물포인근 지역으로 진격한 적군 2만∼3만명을 격퇴시키기 위해 제4차 공세작전준비에 즉각 착수할 것.대전­안동 북부지역을 점령할 것.재물포와 서울,그리고 한강이남지역을 확고히 장악한뒤 전선을 남하시킬 것.중국군,북한군 병력을 15∼30㎞북쪽으로 후퇴시킨뒤 임시휴전협상에 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적들은 우리병력이 북으로 물러나고 한강을 자기들이 장악한 뒤에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임.4차 공세가 끝나면 적들은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한 평화협상을 제의할 것임.그렇게되면 이 협상은 중국,북조선에 유리하게 됨.이후 아군은 2∼3개월 휴식과 준비기간을 거쳐 결정적인 제5차 대공세를 감행할 것임』 어떤 경우에도 불리한 상황에서 휴전협상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과 휴전협상은 추가 대공세를 펴기 위한 시간벌기로 이용할뿐이라는 점을 전선사령관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작전지시문이었다.
  • 여야 지도부 지원유세 현장

    ◎「공천장사」 야당에 본때 보여주자­민자/“기초의원 뒷 받침 없다” 박찬종씨 맹공격­민주/부여·논산 등 텃밭서 유세… 바람 확산 진력­자민련 여야는 24·25일 이틀에 걸친 주말유세가 6·27 지방선거의 대세를 판가름한다는 절박감 아래 수뇌부를 총동원,각종 쟁점을 둘러싼 공방과 더불어 대형공약을 제시하며 막판 표몰이를 위한 유세대결을 벌였다. ▷민자당◁ ○…이춘구 대표는 이날 청주와 대전에서 지역감정 타파의 목소리를 높이며 「JP(김종필 자민련총재)바람」에 맞불을 놓았다. 이대표는 이날 청주시 중앙공원 유세에서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지역감정을 자극하면서 소탐대실하는 시대착오적 야당에게는 한표도 줄 수 없다』고 김대중·김종필씨를 겨냥한 뒤 『그들은 지역감정 자극행위를 중단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는 것만이 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청주∼오창간 국도 8차선 확장,청주공항∼중부고속도로 연결도로 건설등 김후보가 제시해 놓은 대형공약을 확약하는 긴급 당정회의 결과를 제시하며 막판 「민심잡기」에 안간힘을 썼다. 이대표는 대전역앞 유세에서 『구시대 정치인을 청산하고 새대교체라는 역사의 대세를 이루기 위해 염홍철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달라』고 호소했다.이날 대전 유세에는 이 지역 유세로는 최대인파인 8천여명이 모여 대전시지부 관계자들은 들뜬 표정. ○…김덕룡 사무총장은 이날 군산을 시작으로 익산·전주등 전북지역에 대한 막판 세몰이에 나서 『너무나도 자주 말을 바꾼 김대중이사장은 정치불신의 장본인이 되고 있는 만큼 이제 쉬게 해 드려야 한다』고 김이사장의 정계은퇴를 촉구하는 등 맹공을 퍼부었다. 김총장은 『김이사장의 지역등권주의는 나라를 호남·충청·대구등 몇개로 분할시키면 호남만으로도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것은 결코 호남을 위하는 길이 아니고 정도가 아닌 사도』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이사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뒤 「세번씩이나 떨어진 것은 천명이요,하늘의 뜻」이라고 말한 만큼 이제 김이사장을 우리지역 출신의 정계원로,정신적 지도자로 모시고 다른 길을 모색해 볼 때』라고 주장했다. 김총장은 또 『전북이 특정인의 지시에 의해 대세몰이에 따라가기만 하는 개성,긍지,역사도 없는 전북이 돼서는 안된다』면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고 생각하며 공천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주당◁ ○…이기택 총재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이날 낮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조순 서울·신용석 인천시장후보및 장경우 경기지사후보 등과 오찬회동을 갖고 수도권에 대한 집중공략이 절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김이사장이 주로 서울을,이총재가 경기도를 맡는등 역할분담을 통한 막판 표몰이에 나서기로 했다. 이총재는 회동이 끝난뒤 곧바로 경기도 광주에서 장경우 후보를 위한 지원유세를 펼치면서 『민심이 현정권에 등을 돌렸음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심지어 현정권의 심장부인 부산·경남에서도 실망의 소리가 높았다』고 주장했다. ○…김이사장은 이날 경기도 성남을 거쳐 서울 동작구 서울기계공고와 효창공원,수유국민학교에서 잇따라 유세를 갖고 서울에서의 막바지 세몰이에 진력했다. 김이사장은 『민자당이 정원식 후보보다 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면서 『민자당의 진정한 후보는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없는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제대로 못하듯 구청장과 시의원,구의원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시장 또한 시정을 정상적으로 꾸려 나갈 수 없다』며 박찬종 후보의 「시장 불가론」을 피력했다. 김이사장은 또 『박후보의 유신체제 지지 발언을 문제삼자는 것은 아니지만 4천만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시민에게 거짓말한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민을 태연하게 속인 사람에게는 단호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무부의 지자제 관련 문서는 정부당국이 변조한 것』이라면서 『우리 당이 입수한 문건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자신의 가장 확실한 지지기반인 충남 청양과 공주 부여 논산을 찾아 「자민련 바람」을 확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총재는 『나는 YS(김영삼 대통령)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엄동설한에 입이 얼어붙도록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이 무엇이냐』면서 『이번 선거가 끝나면 내리막길을 갈 민자당에는 한표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어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통령중심제는 이제 한계에 왔다』고 주장하고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로 이나라를 바꾸어야 한다』고 의원내각제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 창무극 1인자 공옥진(이세기의 인물탐구:76)

    ◎고독을 춤추는 이시대 마지막 광대/타고난 끼와 파격의 몸짓으로 한맺힌 삶 표현/헤살궂은 사설조에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부친에게 창배워 유랑극단에… 장애인 동생 조카위해 국수장사도 전라도 광주땅에서 공옥진예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공옥진」 이름을 대면 「함평군 문장을 지나 40㎞쯤 들어간 영광에 가보라」고 일러준다.영광읍 교촌리 영광예술연구소에 들어서자 그는 찾아간 사람을 얼싸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눈물 많고 한 많고 정많은 모습은 예전이나 변함 없다.연구소 마루는 널찍한 20여평인데 비해 뒤꼍에 위치한 살림방은 사람이 둘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에 불과했다.전국 방방곡곡 이름을 떨치지 않은데가 없건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자신이 직접 캐온 불갑사 산나물이며 법성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바지락으로 상을 차리면서도 지난해 피땀으로 절약한 1천만원을 중고생 장학금으로 내놓아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는 얘기다.가난과 한과 고독이 점철된 그의 지나온 생애에 비춰 그는 한푼이라도 돈이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금도 의탁할곳 없는 동네 노인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기도 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 지금부터 17년전 중앙대 교수이자 무용평론가인 정병호씨가 「참으로 이 시대 그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예사롭지 않은 예인」이 있다면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데려간적이 있었다.그때 공옥진은 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차림의 평범한 시골 아낙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과 춤뿐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흥보가」「심청가」를 혼자서 몇시간이든 두루 꿰어나간다고 했다.막상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가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번뜩이는 예살이 범상치가 않았다.「서리서리 한맺힌 구성진 가락은 한여름철 장대비와도 같고 헤살궂은 사설조마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 담겨있었다.용궁막 황성 맹인잔치대목에 이르러 저고리 뒷섶을 활짝 뒤로 젖히더니 목속에 턱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사팔로 만들고는 엉거주춤 허리춤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휘돌아나갔다.엉덩이 빠진곱사춤,절름발이 곰배팔이 오리발 병신춤을 눈부시게 펼치는 가운데 인물치레 성음치레를 무시한 자재로운 몸짓은 도무지 몸을 사리거나 풍색을 개의치도 않았다.솔직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춤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신명같지만 하나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는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을 알리는 회무가 따르고 있었다.경륜 있는 예인으로서의 여유와 능수능란이었다. 그의 성공에 대해 민속학자 심우성씨(문화재 전문위원)의 「고격의 예술에 식상한 관객들이 섬세한 아름다움이기를 거부한 그의 진솔한 인간적 표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평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이후 국악관련 책자나 프로그램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예술가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공옥진을 꼽겠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공옥진의 타고난 「끼」,철저한 광대기질,총명과 명석은 가히 천재적인 것으로 그는 한번만 힐끗 보고도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표정을 날카롭게 읽어낸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예술사 연구를 하는 김철순은 『일찍이 이동백옹이 이혜구씨에게 말한 것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모든 한국예술의 본질은 기존의 법칙과 양식,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음악과 춤으로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이라야 한다면 그가 바로 공옥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공옥진의 춤은 춤사위로 이어진 정제된 춤이 아닌 고통스런 삶의 한풀이이자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진짜 고유의 조선춤」으로 호평했고 무언극공연차 한국에 왔던 마르셀 마르소도 「나는 무언극을 하지만 공옥진의 일련의 움직임은 그것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독특한 파격의 예술」임을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때 입산… 비구니로 공옥진의 광기랄가,신기랄가.그의 천부적 재질은 연습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격식을 갖춘 전통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사람을 사로잡는 힘과 정과 한이 일체감을 이루면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깬 살아 있는 몸짓」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만의 독특한 창무극을 무대에 정착시켰고 그는 일약 중앙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살때 단돈 천원에 일본에 팔려간 적이 있어요.당대 제일의 무용가인 도쿄의 최승희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일본인집에 넘겨졌지요.5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방랑길을 떠났고 어머니 마저 개가해버려 동생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때부터 장터에서 춤을 추고 창을 하게 됐답니다』 하얀 옥양목 치마끝에 찍어낸 눈물은 그의 말을 빌리면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됐을 정도다.그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어느 대목을 들어도 고초와 한숨이며 통곡의 파노라마다.그런중에도 국내 구석구석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라 불렸고 미 카네기홀 링컨센터 대공연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세키네는 그의 공연사진과 데생으로 도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옥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남도 인간문화재인 공대일 명창의 4남매중 둘째딸,그의 조부는 광주의 김채만을 사사,서울 협률사 초기멤버이던 공창식 명창이다.그는 일찍이 부친에게 창을 배운후 유랑극단의 소녀주역으로 활약하다가 두번의 결혼 실패끝에 한때는 지리산 천은사에 입산하여 「수진」스님으로 참선,중년에 접어들어 농아인 남동생과 곱사등이인 조카딸을 돌보기 위해 광주 지산면에서 국수장사를 했고 그곳에 공연을 왔던 김연수씨를 만나 우리국악단에 몸담으면서 다시 유랑생활에 나섰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로 얼룩진 그의 인생사는 그동안 여러잡지 신문 등에 소개된바 있지만 그 어느것도 그가 돗자리 하나만으로 장바닥에서 펼치는 통한의 눈물과 익살과 한숨에 미치지 못한다.또한 그의 「살풀이춤」은 장탄식과 짙푸른 한의 음영이 깃든 명무지만 「살다보니 어찌어찌하다 희극무인 병신춤 동물춤의 일인자」처럼 되었고 한때는 장애자들로부터 「무엇 할짓이 없어 장애인 흉내로 무대에 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그때마다 그는 곱사춤은 옛날부터 각 지방에서 내려오던 사당패들의 자리판 놀음이며 더구나 그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내손으로 키운 조카아이까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살아있는 여러 삶의 절박한 표현은 춤일수 밖에 없음」을 그때마다 상기시키지 않으면안되었다. ○84년 서울생활 청산 그는 지난 84년 6년여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를 모시고자 그가 자라난 영광읍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동생과 조카를 앞세웠고 부친마저 90년 세상을 떠난후 지금은 예술연구소에 남아 고향의 「아기」들에게 그의 춤을 전수시키고자 만모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수년전부터 앓아온 담석증을 세번째 수술하고 아직 건강치 못한 몸이지만 산에 가서 즉흥무를 추거나 산야에 대고 「제비 노정기」를 내지르면 「없던 힘과 신명이 절로 솟아」 아프던 몸이 거뜬히 낫는다고 말한다.지난봄부터 여수 영암공연,크고 작은 경로 효도잔치에 빠지지 않았고 7월에는 광주에 새로 생긴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옥진은 참으로 한이 많은 예술가다.그리고 그의 춤과 소리를 격조와 품위로 논하기란 어렵다.그러나 무대에 서면 진흙탕에 뒹굴듯 몸을 사리지 않고 인간의 「절대고독」을 춤추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누군가 말한대로 「광대가 될때만가장 인간적」이라고 한다면 꾸미지 않은 옛광대의 기질과 체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옥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광대라는 예감이다. □연보 ▲1931년 전남 승주 출생 ▲38∼43년 일본 체류 ▲45∼47년 조선창극단 ▲48년 고창·정읍 명창대회1등 ▲57∼63년 임방울창극단 협률사 입단 ▲61∼63년 김연수 우리국악단 ▲64∼66년 김원술안성국악단 ▲66∼67년 박녹주국극협회 ▲67·68년 일본공연 ▲78년 공간사랑 1인창무극 ▲81년 미 케네디센터 「한국전통무용」공연,전남 영광읍장터 「공옥진놀이판」 ▲84년 일본 공연,서울 결산무대 「공옥진춤판­그의 모든 것」(문예회관대극장),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서 「마당놀이 춤판」,낙향 광주서 부친 공대일명창과 「아버지와 춤을」 대공연 ▲85년 런던 국제 연극제 참가 ▲91년 1인창무극(호암아트홀) ▲92년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서울공연(세종문화회관)을 필두로 인천 성남 수원 구미 대구 천안 평택 충주 제주등 15개도시 순회공연 ▲93년 뉴욕(링컨센터) 시카고 LA 하와이 중국 런던 일본등 세계순회 및 부산(KBS홀)공연,「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예술의 전당),1인 창무극(미도파 메트로홀) ▲94년 1인창무극 「학녀의 한의 춤」(세종문화회관),그외 전국 50여 대학 초청 「공옥진 한의 춤」공연등 경로위로 잔치 수백여회 ▲95년 여수(진남체육관) 및 영암 정읍 공연,7월9일 광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예정 전남 영광예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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