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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냥갑 구조 벗어난 곡선설계 눈길

    성냥갑 구조 벗어난 곡선설계 눈길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바닷가에는 명품 해양도시 개발공사가 한창이다. 현대산업개발(현산)이 조성하는 ‘해운대 아이파크’(조감도) 현장이 바로 그 곳이다. 해운대 아이파크는 여느 부동산 개발 상품과 다르다. 이 주상복합 아파트는 최고 72층을 비롯한 3개동(棟) 1631가구다. 별도 건물인 첨단 인텔리전트 오피스 빌딩과 명품 쇼핑시설이 들어선다.250실의 최고급 호텔도 한 울타리 안에 건설된다. 주택과 백화점·호텔·업무용 빌딩은 서로 연결돼 단지 안에서 원스톱 생활이 가능하다.2011년 10월 완공되면 부산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해운대 아이파크는 현산의 기업정신인 기술혁신 정신이 담겨있는 현장이다. 우선 디자인을 보면 설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바람을 머금은 돛을 형상화해 건물 디자인을 곡선으로 설계했다.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재건축 설계 공모 당선자인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설계 의도를 반영했다. 해운대 바닷가 자연과 돛단배, 부산의 상징 동백꽃을 형상화한 곡선 설계는 시공도 까다롭고 공사비도 훨씬 많이 든다. 한국 전통의 선을 살리면서 각 가구의 조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획일적인 아파트 평면 설계 관행을 깬 현장이기도 하다. 대개 2000여가구 아파트를 짓는데 적용하는 평면은 20∼30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운대 아이파크는 천편일률적인 설계를 내던지고 199개 평면을 도입했다.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도 면적·향·층에 따라 설계를 달리한 것이다. 특이하고 개성있는 평면 설계는 주변 자연 조망과 어울린다. 리조트나 특급 호텔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기에 무빙월(내부 가변형 벽체), 슬라이딩 도어 등으로 실내 공간 확장성을 높이고 외부 조망을 최대한 끌어들였다. 이 단지를 설계하면서 등록한 지적재산권만 업계 최다인 384건에 이를 정도로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에너지절약 시설도 눈에 띈다. 단지 안에 소형 열병합발전설비를 설치해 폐열로 가구들의 급탕 및 공용 공간 냉방 에너지로 활용할 방침이다. 전득진 현장 소장은 23일 “입주자들이 세계적인 예술작품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될 것으로 자신한다.”며 “2011년 완공되면 호주의 시드니, 미국의 마이애미 등 세계 어느 해양도시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명품 해양레저단지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아름다운 간판 2008] (5)간판이 살아나야 경제가 산다

    [아름다운 간판 2008] (5)간판이 살아나야 경제가 산다

    간판이 방문객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간판 정비는 단순히 상점의 겉모습만 아름답게 바꾸는 게 아니다. 끊어지던 방문객의 발길을 되돌리고, 등지려던 업주들의 마음을 다잡는다. 이처럼 부산 중구 남포동 광복로는 간판 정비를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광복로의 현재…방문객·매출 ‘쑥쑥’ “간판을 바꾸니 방문객과 매출이 쑥쑥 올라가네요.” 꽃이 만개한 고목처럼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광복로에 ‘희망의 바람’이 불고 있다. 광복로는 1970∼80년대 부산을 대표하는 번화가였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0년대 말 이후 해운대·광안리 등 새로운 상권들이 부상하고, 시청·경찰청 등 주요 공공기관들이 빠져나가면서 상권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하지만 광복로는 간판·거리 정비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간판과 거리의 변화상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방문객 증가로 이어진 것. 부산 중구청에 따르면 실제 광복로를 찾은 방문객 수는 간판 정비 이전인 2006년에 비해 하루 평균 최대 40% 이상 늘어났다.2년 전에는 평균 방문객 수가 평일 8000명, 주말 6만 3000명에 그쳤으나 지난달에는 평일 1만명, 주말 9만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방문객의 증가는 이곳 상점들의 매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과점을 운영하는 김정욱 사장은 요즈음 매출전표를 계산하면서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고 한다. 최근 3개월 동안 매출이 이전에 비해 10%가량 뛰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과거와 비교하면 대박 수준”이라면서 “손님들이 간판과 거리가 짜임새 있고 예쁘다고 칭찬을 많이 하고,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단골손님들도 다시 찾기 시작했다.”면서 껄껄 웃었다. 매출이 오른 상점은 비단 이곳뿐만 아니다.15년째 피자가게를 운영 중인 김익태 사장도 맞장구를 친다. 그는 광복로 입주업체들의 대표자인 주민지원협의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광복로에 있는 상점 대부분의 매출이 10% 이상 올랐다.”면서 “볼거리가 늘어나니 방문객이 증가하고, 장사가 안 돼 떠나려던 상인들도 다시 짐보따리를 풀고 있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광복로의 1년전…화두는 조화로운 ‘S라인’ 지난 2월 부산 중구청과 광복로 상인들은 장장 3년에 걸친 ‘광복로 시범가로 조성사업’을 마무리했다. 부산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용두산공원 아래 광복로 750m 구간과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PIFF) 광장 주변 240m 구간 등이 대상이었다. 우선 광복로에 들어서면 부드럽게 굴곡을 이룬 ‘S라인’ 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곧게 뻗은 기존 2차선 일방통행로를 S자형 1차선으로 바꾼 것이다. 차도의 폭을 줄이는 대신 보도는 넓혔다. 여유공간 곳곳에는 분수·벤치·화단 등 쉼터가 조성됐다. 보기에도 시원한 야자수, 강아지 모양의 앙증맞은 의자, 나무를 형상화한 가로등 등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사람들이 직접 쓴 ‘추억남기기’ 조형물 위에서는 무언극인 ‘마임’ 등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펼쳐져 발길을 붙잡는다. 차도 역시 시커먼 아스팔트 대신 분홍빛 화강석으로 바뀌었다. 장애인들이 불편을 호소했던 차도나 보도의 높은 턱도 사라졌다. 이와 함께 거리 양 옆으로는 깔끔하게 정비된 상점들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간판에는 산과 바다를 상징하는 녹색과 파란색 형광띠가 새겨져 광복로의 야경을 책임지고 있다. 광복로에 입주한 450개 상점 중 75%인 336곳이 이같은 간판 정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통해 건물을 도배하다시피했던 1300여개 간판은 900여개로 30% 이상 줄었다. 오세욱 중구청 토목계장은 “S자형 도로로 도시 미관을 살릴 뿐만 아니라, 차의 속력은 줄이는 대신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으며 쇼핑할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담고 있다.”면서 “정비 사업에 국비 30억원을 포함해 모두 85억원이 들었지만, 효과는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광복로의 미래…주민들 자발적 규제로 ‘쾌청’ 광복로는 지난달 관광특구로도 선정됐다. 이처럼 가시적인 성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데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도 밑바탕됐다. 광복로 일대의 건물·상가·주민 대표들은 ‘시범가로지원협의회’를 만들어 머리를 맞댔다. 정비사업 자체를 꺼리는 이웃들도 직접 설득했다.3년간 130여차례의 회의를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혔다. 사업이 끝난 뒤에는 ‘간판감시위원’을 자체적으로 뽑아 간판이 무질서하게 난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사업 초기에는 호두껍질같이 단단했던 사람들도 이젠 형님, 아우하고 지내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면서 “간판이 커야 잘 된다는 생각을 바꾸니 건물과 거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방문객과 매출까지 늘어 살맛까지 느끼게 된 민·관이 만든 최고의 합작품”이라고 만족해했다. 오는 2013년 광복로 주변에는 107층짜리 엔터테인먼트단지인 롯데월드가 들어설 예정이다. 과거에는 상권을 위축시킬 ‘악재’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호재’로 간주된다. 오 계장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타이완의 경우 100층짜리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25만∼30만명에 이른다.”면서 “광복로는 접근성이 뛰어나고 편의시설까지 잘 갖춰져 방문객 증가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 등의 추가 유입 가능성도 높다.”고 기대했다. 부산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지방시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정말, 정말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서 일구어낸 민주주의인가. 얼마 동안 민족적 자존과 긍지, 통일의 그날에 대비코자 쑥물만을 삼키는 듯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가. 아, 그래서 우리는 기억한다. 할머니가 켜 둔 등잔불 혹은 촛불 밑에서 제발 이 나라가 평화스럽기를,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빌고 빌지 않았던가.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히로히토 천황군’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들의 쓰라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빌면서, 우리는 어느덧 이렇게도, 키가 훌쩍 커버리지 않았던가. 국군과 공산군의 몸이 무더기로 묻혀, 함께 썩어간 이 땅 삼천리 한반도…. 한국전쟁 직후, 무밥과 해초밥만을 먹고 자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땅 삼천리 한반도가 제발 폭력과 총소리가 없는 날이 계속되기를 천지신명께 빌지 않았던가. 너무나 빠른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고향사람들의 무덤 위에서 철없이 뛰놀던 우리들의 유년시대(the Age of Korean Boys), 전후 반공시대의 흑막 속에서 수많은 정치가들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에미애비도 없던 우리들의 슬픈 유년’은 코밑 수염이 시커먼 청년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이다. “아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미스 김도 잘 있거라 미스 리도 안녕히….” 그렇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면서 베트남으로 떠나갔던 10년 동안 연병력 55만여명의 따이한 병사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250억달러를 벌어와 1960,70년대의 한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아아 그 시절의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들의 두 손에 묻은 붉은 피의 냄새들! 그랬다. 베트남전쟁에서 별을 달고 돌아온 일부 장군들은 1980년 5월, 자신들의 조국―한반도의 남녘땅 광주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총소리, 총소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잿밥(정치)에 눈이 어두워 지키라는 최전방(DMZ)을 뒤로하고 후방인 ‘빛고을 광주’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광주시민들과 전체 국민들의 함성이 모아진 1987년 6월항쟁 등을 통해 대한민국은 비로소 ‘정치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것 아닌가. 신군부 출신 전두환·노태우를 ‘세기의 재판’을 통해 단죄코자 한 김영삼의 문민의 정부→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권위주의를 불식시키려 했지만 ‘경제민주주의’의 코드를 찾아내지 못한 가운데서 연약한 생명을 유지하다가 CEO 출신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에게 대권의 바통을 넘긴 참여정부의 노무현-. 아 그런데 2008년 6월, 이른바 ‘이명박호(號)’는 어떤가. 과연 항해가 순조로운가. 우리가 볼 때는 아직 출항 직전인 것 같다. 아직 항로가 불투명하고 안개 속인 것 같다. 아니 어둠보다 더 걱정스러운 안개 속에서 좌초 직전에 놓인 듯이 보인다.“이래서는, 저래서는 안되는데….”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비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다니! 그 발상부터가 틀리다는 것을 어서 빨리 알아차리고 애당초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끼운 다음, 새로운 출항의 자세로 ‘민주주의의 항로’를 계속하길 바란다. 민주정치와 민주경제는 동전의 앞뒤처럼 같다는 것을, 달리는 열차로 말하면 두 레일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 님께서도 세종로에 나와, 촛불 앞에 앉아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돌이켜보길 부탁드린다. 이 땅의 구성원들 모두를 ‘ 끝끝내 보낼 수 없는 님’으로 손잡아주면서 함께 일어서주길 바란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20 & 30]“난 이럴때 핑계”… 직장인들 ‘거짓말 백태’

    [20 & 30]“난 이럴때 핑계”… 직장인들 ‘거짓말 백태’

    누구나 한번쯤은 직장에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핑계’를 댔다가 곤란한 적이 있을 것이다.“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혹은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눈치 빠른 상사들은 알면서 속아주는 때도 있고, 가당치 않은 핑계를 대면 면박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내 한몸 불살라’ 열심히 일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뺀질거림의 달인’들은 오늘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궁리한다.2030 직장인들에게 어설픈 핑계를 댔다가 들통나서 생긴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을 들어봤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는 노총각 최모(35)씨는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주말 잠실 3연전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본사 회장이 회식 자리에 특별히 참석한다는 것이다. 전 직원이 비상상황에서 회장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최씨의 마음은 이미 야구장에 있었다. 최씨는 금요일 저녁 ‘선약’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야구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경기 내내 끌려가던 롯데 자이언츠는 9회 초 뒤집기에 성공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맥주를 마시며 ‘부산 갈매기’를 불러댔다. 그러나 최씨는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상무에게 불려갔다. 상무의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선본 아가씨랑 야구장 갔어?중계방송에 최 대리가 나왔더라고. 오징어 씹으면서 ‘부산갈매기’를 목청껏 부르더라고….” 섣부른 핑계는 ‘연애사’를 꼬이게 하기도 한다. 직장인 박모(28·여)씨는 몇 달 전부터 직장 상사 A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훤칠한 키에 업무능력도 훌륭한 상사는 박씨의 이상형이었다. 박씨는 그 상사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져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런 박씨를 본 동료들이 혹시 A씨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며 박씨를 놀리기 시작했다.‘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고 박씨는 직장동료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A씨를 좋아할 바엔 B씨를 좋아하겠다.”고 맘에 없는 말을 해버렸다. 회사에서는 박씨가 B씨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루는 A씨마저 박씨에게 “B씨를 좋아한다며?내가 봐도 진국이지. 잘해봐요.”라며 응원을 해줬다.“이건 정말 아니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말인데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회식자리 피하기 가장 좋은 메뉴는 “집안에 제사가 있어서…” 전모(27)씨는 여자친구에게 조건부 결별을 통보받았다. 여자친구는 “금요일 저녁에 친구가 나오는 연극을 함께 보러 가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말했다. 전씨도 금요일이면 노총각 회사 선배들이 막내인 자신을 끌고 다니면서 새벽까지 술을 퍼먹이는 행태가 싫지만 내색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데드라인으로 내건 금요일에는 개발부 전체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전씨는 문제의 금요일에 기독교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제사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여자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연극도 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와인도 한 잔 했다.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 주는 길에 멀리서 낯익은 모습들이 보였다. 회사 선배들이 한껏 술이 취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며 시끌벅적하게 다가왔다. 전씨가 피해가려는 순간 눈치 빠른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잘못봤나? 제사 지내러 간 전 대리가 있네?” 박모(33)씨도 제사 핑계를 대고 회식에 빠졌다가 곤란한 적이 있었다. 박씨는 신촌에서 회식이 있는 날 애인과 함께 청담동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동료들이 청담동으로 2차를 온 것이다. 박씨는 다음날 과장에게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오히려 과장님이 이해를 해주셔서 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진짜 사정이 있어서 회식에 빠지려고 하면 동료들이 두 번째 애인이 생겼냐고 놀려대서 민망합니다.” ●야근하기 싫어 핑계 대는 ‘뺀질거리기’의 달인들 이모(32)씨는 스스로 ‘뺀질거리기의 대마왕’이라 칭할 정도로 잘 둘러댄다. 연일 밤을 새는 대기업 직장생활이 어언 4년째. 조직에 충성하다간 제 몸 하나 간수 못할 것 같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나서 잔꾀 부리기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씨는 어떻게 하면 야근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있을까를 자주 고민한다. 한 번은 몸이 좋지 않아 어머니 생신이라고 회사에 둘러대고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여자친구가 보고싶었던 영화가 있다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결국 이씨는 여자친구와 영화 한편만 보고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영화관에서 팝콘을 사러 갔을 때였다. 팝콘을 사고 영화관으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뒷줄에서 누가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평소 이씨와 앙숙이었던 직장동료 박씨였다. 동료 박씨는 이튿날 회사에 이씨의 만행(?)을 모조리 다 소문내 버렸다. “그날 이후로 정말 회사에서 찍혀버렸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계속된 거짓말로 인해 진짜 몸이 아픈 날이나 야근을 할 수 없는 날마저도 이젠 사람들이 믿으려 들지 않아요. 자업자득인 거죠.”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1)씨는 ‘뺀돌이’로 통한다. 일을 다른 동료에게 자꾸 미뤄서 생긴 별명이다. 지난해 8월 어느날 그는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동료와 야근까지 바꾸었다. 그런데 부장이 갑자기 야근을 요구했다. 김씨는 맡은 일이 중요해 담당자인 자신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부장에게 동료가 대신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야근을 할 동료에게는 부장이 자신의 일을 그에게 대신 시켰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음날 회의시간에 부장이 동료에게 일을 대신해 준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했고 동료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순간 정말 민망해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동료에게 사과하고 이후에 대신 야근을 두 번이나 해주었죠.” ●아프다는 핑계 잘못 댔다 곤란했던 ‘아픈 추억’ 1년차 직장인 김모(28)씨는 아직도 신입사원 때의 ‘대소동’을 잊지 못한다. 입사한 지 3개월째 됐을 무렵, 고교동창 모임이 있었다. 김씨는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 처음엔 다음날 출근이 걱정돼 적당히 마시려 했다. 하지만 한 번 술이 들어가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라는 배짱이 생겼다. 김씨는 이튿날 깜짝 놀랐다. 눈을 떠보니 시곗바늘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회사와 팀 선후배들의 전화번호가 수십 개나 찍혀 있었다. 더구나 오전에는 협력 업체와 미팅도 잡혀 있었다. 김씨는 심호흡을 한 뒤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던 중 갑자기 심하게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아파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둘러댔다. 문제는 그날 저녁에 불거졌다. 팀원들이 문병을 오겠다고 한 것. 김씨는 “퇴원해서 지금은 집에 있다. 괜찮으니 애써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팀원들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며 집으로 몰려왔다. 김씨는 병자 아닌 병자가 돼야 했다.“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부장과 팀원들에게 미안해요.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꾀병을 부렸는데, 그분들은 위로도 모자라 문병까지 와줬으니까요. 그날 이후로는 절대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요.” 회사원 이모(29·여)씨도 ‘핑계’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회사에서 단합대회 삼아 계획한 산행이 너무 싫어 다리를 다쳤다고 핑계를 대며 며칠 전부터 일부러 절뚝절뚝 다리를 저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줬다. 심지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예약전화를 거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행 전날, 이씨는 그만 커피 물을 끓이다 커피포트를 넘어뜨려 다리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붕대를 감고 덴 곳을 소독해야 하는 자신을 보며 이씨는 ‘거짓말이 준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 잘못 처리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한 ‘굴욕’의 순간들 회식이나 사내 행사에서 빠지기 위한 핑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업무 실수를 핑계로 둘러대다간 자칫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하모(39·여) 과장은 최근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하 과장은 홍보부 소속으로 브로슈어, 카탈로그, 사보 등을 총괄한다. 이 업무들은 대개 외주를 주기 때문에 홍보대행사 등 하청업체와 함께 일하는 때가 많다. 지난달 중순 부서장에게서 “패션 카탈로그를 15일 이내에 제작해 달라. 이달 말 열리는 패션 전시회에 사용해야 하니 일정을 꼭 맞춰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 과장은 당시 다른 업무가 밀려 있어 부서장의 지시사항을 깜빡 잊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장이 독촉해오자 하 과장은 그때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하 과장은 “하청업체 담당 직원이 몸이 아파 며칠째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곧 출근해서 작업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순간을 모면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다른 일로 하청업체를 찾은 부서장이 업체 사장에게 아픈 직원의 안부를 물었던 것. 하 과장의 핑계는 들통이 나고 말았다.“쥐구멍에라도 찾아들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어요. 하청업체에 부서장이 직접 방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죠. 그날 이후 부서장의 신뢰를 회복하느라 애먹었습니다.”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근무하는 신모(30) 대리는 접대비 명목으로 나온 회사 돈을 잘못 썼다가 상사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신 대리는 회사와 거래관계가 돈독한 B업체에 주로 접대를 해왔다. 신 대리는 한 달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B업체와 식사를 했는데, 그날은 분위기가 너무 좋다 보니 유흥주점까지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평소 접대비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나왔다. 결국 신 대리는 나머지 금액에 대한 핑계를 대야 했다. 신 대리는 상사에게 여의도에 위치한 A업체와 식사를 한번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상사는 “여의도에서 여기까지 오기는 좀 멀지 않냐.”며 신 대리를 추궁했고 결국 거짓말이 들통나고 말았다.“그날 상사가 회사에서 돈 관리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엄청 혼냈죠.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더라고요. 한번만 봐달라고 싹싹 빌어서 겨우겨우 넘어갔죠. 생각도 하기 싫어요.” 사건팀 stylist@seoul.co.kr
  • [물류대란 ‘비상’]컨테이너 4·5층으로…10일뒤면 마비

    [물류대란 ‘비상’]컨테이너 4·5층으로…10일뒤면 마비

    “컨테이너 야적장이 포화 상태여서 최대 열흘 정도 버티겠지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5년전과 같은 물류대란까진 가지 말아야 하는데….”(부산 감만부두 간부) 화물연대 부산지부가 13일 오후 2시 감만동 신선대부두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가진 부산항에는 하루종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파업 첫날이기 때문인지 과격한 행위 등 우려되는 움직임은 없었다. 쌓여있는 육중한 컨테이너 모습만이 향후 파업과정에서의 ‘험난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산항은 전국 컨테이너 물동량의 75%를 처리하는 곳이어서 파업이 장기화하면 가장 먼저 피해가 예상돼 파업 향배가 주목되는 곳이다. 지난 2003년 화물연대 파업때는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파업 출정식은 조합원들이 “유가 인하”,“운송료 인상”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작됐다. 오전부터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사이 도로에는 컨테이너 차량 100여대가 시위하듯 늘어서 파업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부두의 주요 도로인 남구 우암로 4차선 도로에는 화물차량도 눈에 띄지 않았다. 부산항을 오가는 컨테이너 차량은 3081대로 이 가운데 화물연대 가입차량은 3분의1가량인 960여대로 파악되고 있다. 전창갑 화물연대 부산지부장은 “전 근대적인 물류체계를 개혁하고 화물운송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마지막까지 대화를 통한 해결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협상 결렬로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출정식을 마친 이들은 신선대·감만부두 주변에서 가두시위를 한 뒤 오후 7시 서면 쥬디스 태화백화점 옆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예상대로 자발적 참가자와 비조합원이 많았다. 비조합원인 김모(58)씨는 “2003년 첫 파업때에는 동참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여서 적극적으로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산항 부두 운영선사들은 파업이 시작되자 “올 것이 왔다.”며 화물연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이번 파업은 2003년과 2006년 때의 파업과 달리 노조원들의 조직적 파업에다 비노조원이 가세하는 생계형 파업이어서 피해 규모와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항 관계자들은 “부산항 마비 등 전국적 물류대란은 예전의 ‘7∼10일’에서 ‘3일’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를 반영하듯 부산항에는 평소보다 반입·반출 물량이 크게 줄었고 야적장에 설치돼 있는 대형 트랜스퍼 크레인(컨테이너를 적정 위치에 놓아주는 크레인) 가동률도 10%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이날도 부두마다 빈공간(야적장)을 확보하려고 반출 물량을 늘리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현재 부산 북항 13개 부두(컨테이너 전용터미널 5개, 일반부두 8개)의 장치율은 평소의 60∼90%로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더 이상 컨테이너를 쌓아둘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부두 야적장에는 컨테이너 화물이 최고치인 4단까지 켜켜이 쌓였다. 하루 6000∼7000개의 수출입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감만부두는 파업에 대비해 지난 10일부터 평소보다 10∼20% 반출 물량을 높였으나 이날은 거의 정지된 상태였다. 감만부두 강현구 소장은 “현재 컨테이너 야적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운 60%로 적정 수준인 50%를 넘어섰다.(파업으로 화물이 반출되지 않을 경우) 최대 열흘 정도 버틸 수 있으나 그 이상은 무리”라며 물류대란을 걱정했다. 부산시 등은 이번 총파업으로 컨테이너 화물의 하루평균 수송 차질은 평상시의 2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산시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되고 비조합원들의 참여가 늘어나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물류대란 ‘비상’] 주력산업 줄줄이 ‘직격탄’

    13일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산업의 혈맥이 막히면서 전국적으로 물류대란이 빚어졌다. 사업장 곳곳에서 철강·유화 등 제품들이 출고되지 못하고 마당에 쌓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공장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포스코는 이날 내수용 철강제품의 육상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육상운송이 하루 물동량 3만 8000t의 3분의2를 차지하지만 공급업체에 화물트럭이 들어가지 못하면서 물건들이 대거 공장으로 되돌아왔다. 오전 한때 화물연대 일부 노조원들이 철강공단 안에 위치한 운송사 하치장과 고객사 출입문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내에 비상 야적장을 확보하는 등 파업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현대제철 포항공장도 지난 12일 철근,H빔 등 하루 9000t 중 30% 정도의 출하가 차질을 빚었으나 이날은 완전히 중단됐다. 하루 1만 3000t을 출하하는 동국제강 포항공장도 대부분의 출하가 중단됐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운송도 문제지만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반입이 중단돼 며칠간의 여유분이 바닥나면 조업마저 중단될 위기”라고 말했다. 유화업계에서는 이미 조업중단이 시작됐다.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KCC는 지난 9일부터 재고가 누적되고 원료 수급이 어려워지자 석고보드 공장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삼성토탈과 LG화학, 롯데대산유화 등 같은 단지 내 업체들도 출하중단이 6∼7일 지속되면 공장 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광주공장은 운송률이 50∼6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루 평균 200∼250대 정도 컨테이너를 내보내 왔지만 지난 10일부터 화물연대 광주지부 파업이 시작돼 운송에 심한 차질을 겪고 있다. 수출물량의 70% 정도를 처리하던 광양항이 봉쇄되면서 부산항 등 다른 항만으로 물량을 돌리고 있다. LG전자는 내수제품을 운송하는 차주들과는 운송료 인상에 합의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수출차질 등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비상운송 체제에 돌입했다. 중소기업들의 피해도 잇따랐다. 중소기업인 경기 양주시 A물산의 경우 서울에 있는 파이프 제품을 부산까지 수송할 컨테이너 운송차량을 구하지 못해 오는 16일로 예정된 과테말라행 선적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경기 성남의 전자제품 생산업체 B사도 평택항으로 수입된 부품을 운송할 화물차량을 구하려다 실패, 결국 12일 직원들이 직접 평택항으로 차량을 몰고 가 제품을 회사로 옮겼다. 한편 한국무역협회는 12일까지 이어진 화물연대의 산발 파업으로만 28개사에서 660만달러어치의 제품이 수출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입도 12개사에서 116만달러어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태균 주현진기자 windsea@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1)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은 이유를 “그 골짜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 또는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 산장지기로 약 40년, 피아골대피소에서만 20년을 지낸 함태식(81)옹의 저서에 따르면 1984년 산장 신축 굴착공사 중에 나온 인골만도 한 트럭분이나 된다고 한다. 피아골, 피로 물든 격전지쯤으로 각인되기 쉽지만 실은 식용 피가 많이 재배돼 피밭골로 불리던 것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계곡 초입의 직전(稷田)마을도 그로 인해 유래했다는 게 보편적이다. 원래는 8세기 중엽 연곡사를 찾던 사람들 중 김해김씨와 밀양박씨 2가구가 농경지 이용이 가능한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고 그 후 평도·직전·죽리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토지면 내동리가 되었지만 국립공원 구역 내 자리한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 직전마을을 따로 떼어내 직전리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사무소가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고 오는 2011년까지 주민 이주 작업을 완료키로 결정했으니 오히려 직전만 외톨이가 된 셈이다. ●규제 심해 관광객 발길 뜸해져 마을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자리한 ‘산아래첫집’ 한형석(46) 한선임(40) 부부는 20년 전 피아골로 들어왔다. 남편 형석씨는 결혼 전부터 설악과 지리를 누볐던 산꾼이었다. 멋모르고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나는 이도 많지만 다행히 한씨 부부는 TV도 라디오도 접할 수 없던 산중생활을 슬기롭게 견뎌냈다. 적어도 철거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타 관광지가 그렇듯 비수기와 성수기 구분이 뚜렷한 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규제가 심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심지어 이미 ‘마을이 철거된 게 아니냐?’고 문의 전화를 해오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예요.” 이주 단지 신규 조성이나 금전적 보상 등의 대안이 있긴 하지만 용역만 끝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하다는 게 한선임씨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국립공원 권역을 아예 마을 위쪽으로 옮겨 규제가 심한 공원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바라기도 한다. 마을 진입로에서 징수하는 연곡사 문화재관람료(2000원)도 관광객들에게 부담을 준다. 따라서 이주단지는 연곡사 아래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찌 되었든 피아골 산행 초입, 가장 끝 마을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주민들 대다수의 의견이다. ●성수기는 고로쇠 한달, 여름 한달, 가을 한달뿐 8년 전 ‘노고단산장’(상호)을 인수한 정명곤(48)씨는 이주단지가 연곡사 아래로 정해질 경우 그냥 그곳에 머물 계획이다. 어중간한 지역에 뚝 떨어져나가 식당을 계속 꾸려갈 자신이 없어서다. 정씨의 말대로라면 피아골 주민들의 성수기는 고로쇠 한 달, 여름 한 달. 가을 한 달뿐. 그렇다고 나머지 달은 마냥 노는 게 아니어서 고로쇠가 끝나는 3월 말부터 산나물을 뜯고, 새끼를 낳은 벌들을 위해 분봉 작업을 해야 하고, 그것마저 끝나면 슬슬 여름 장사를 준비하며 짬짬이 죽순 수확도 한다. 여름이 정신없이 지나면 산열매를 따고, 가을 장사 준비도 해야 하고, 후딱 단풍철이 지나면 눈 오기 전 고로쇠 호스 점검 작업에 들어간다. 눈이 폴폴 쌓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1월에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그저 “실속은 없이 바쁜 생활”이라며 너스레다. 적어도 이번 여름 동안은 민박과 식당을 겸한 직전의 30여집들 모두 철거와 이주의 머리 아픈 시름을 접어둔 채 복작복작 관광객들로 바빠져야 할 터, 피아골을 훑는 시원한 바람이며 맑은 물줄기도 덩달아 분주하다.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남원IC 등으로 나와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이후 19번 국도 외곡삼거리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들어선다. 연곡사 입장료 2000원은 마을에 식사하러 간다고 얘기하면 안 낼 수도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
  • 김태호 지사, 선배 훈수받다

    김태호 지사, 선배 훈수받다

    “서산대사가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마라.네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고 했듯 후배 간부들도 이를 새겨 처신을 잘했으면 한다.”(윤한도 전 지사) “지사 시절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로봇으로 생각하고 부리기만 했다.”(강영수 전 지사) “우리 풍토에서는 (단체장이 부임하면) 전임자의 책상 방향이라도 바꿔야 되는 줄 안다.”(최종호 전 지사) 10일 오전 경남도청 회의실.전직 경남지사 7명과 전직 실·국장,시장·군수 등 5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젊은 도백인 김태호(46) 지사가 경남 발전의 초석을 놓은 선배들의 고견을 듣고자 마련한 자리였다.‘전직 도지사,경남도 행정동우회 임원 초청 간담회’ 형식을 취했다. 간담회에는 1970년대 중반 도백을 지낸 강영수(17대) 전 지사와 최종호(20대)·조익래(23대)·최일홍(24대)·김원석(25대)·윤한도(26대)·김혁규(27,29∼31대) 전 지사 등 7명이 참석했다. ●도시 미관·출산 장려 등 당부 간담회는 30분 넘게 이어졌다.“반풍수의 조언은 집안 망친다.”던 이들은 분위기가 익자 마이크를 2∼3번씩 잡으면서 훈수를 뒀다. 최고 연장자인 강영수(81) 전 지사는 “집안이 잘되려면 자식이 잘하고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하는데 김 지사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면서 “(재임시 직원을 부려먹었다는 말을 의식한 듯) 시,그림,음악 등에 재능있는 공무원이 많다.이들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김혁규 전 지사는 “중국 도시에서도 같은 설계로는 건축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경제가 윤택해진 오늘날 건축과 도시 디자인은 예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재임시 강조했던 도시 미관과 나무 심기에 관심을 둘 것을 당부했다.김원석 전 지사도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윤한도 전 지사는 출산율을 장려하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창원 도청시대를 열었던 최종호 전 지사는 “우리 사회는 전임자가 떠나고 나면 자리를 옆으로 치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선행은 모래에 새기고 악행은 바위에 새긴다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시작했던 일이 악행으로 기록되지 않도록 후임자들이 잘해줘 고맙다.”고 덕담을 건넸다. ●“도정 홍보대사 역할로 힘 보태겠다” 참석자들은 오후에는 2010년 완공을 목표로 경남 거제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 건설 현장을 배를 타고 돌아본 뒤 헤어졌다.문백 행정동우회장(전 창원시장)은 “현직 지사와 전직 지사,행정동우회 임원 등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도정 등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 이날 자리가 너무 뜻깊었다.”말했다. 김 지사는 “대선배들을 모신 이 자리가 시집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 부모를 모시는 자리처럼 기쁜 날”이라며 간담회 내내 깍듯한 예우를 갖췄다.그는 이어 “선배들의 조언을 디딤돌로 삼아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경찰, 연행자 구속방침 철회

    경찰은 2일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해 불구속 입건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 새벽까지 촛불집회 참가자중 연행된 222명에 대해 전원 불구속 입건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당초 일부 연행자에 대해 구속할 방침이었으나 정부가 이날 전격적으로 쇠고기 고시와 관련한 관보게재를 유보함에 따라 불구속키로 방침을 바꾼것으로 알려졌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1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한 데 대해 어청수 경찰청장을 비롯해 현장 지휘관 등을 고발하기로 했다. 경찰은 촛불집회 주최자로 판단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등에 대해 2차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확보하기로 했다. 경찰의 출석요구서는 보통 3차례 정도 발송된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면서 어청수 경찰청장과 현장 지휘관, 폭행한 경찰 당사자를 3일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2일 새벽 한 여대생이 경찰의 방패에 얼굴을 정면으로 찍혀 코뼈와 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기자협회는 성명을 내고 “2일 새벽 1시쯤 KBS 영상취재팀 신모 기자가 세종로 사거리에서 취재하다 전경에 맞아 왼쪽 눈의 핏줄이 터지고 눈 주위에 멍이 들었다.”고 밝혔다. 경찰의 군홧발에 머리가 밟힌 서울대 음대 이나래(22·여)씨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경찰을 피해 버스 밑으로 숨었다가 나왔는데 경찰이 또다시 폭행했다.”고 밝혔다. 서울 자양동에 사는 김모(36)씨도 같은날 경찰이 쏜 물대포를 얼굴에 맞은 뒤 안구와 입술, 입안 등에 부상을 입었으며 사물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시민 1500여명이 나와 쇠고기 관보 게재 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였으나 경찰과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또 미국산 쇠고기가 보관된 부산 감만부두 컨테이너 야적장 앞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 등 800여명이 모여 쇠고기 반출 저지 집회를 가진 뒤 촛불행진을 벌였다. 이재훈 김정은기자 nomad@seoul.co.kr
  • 요르단 깨고 조1위 굳힌다

    요르단 깨고 조1위 굳힌다

    태극전사들이 그라운드에 나서자 황사가 걷혔다. 중동의 복병 요르단과 운명의 일전을 하루 앞둔 30일,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축구팀이 결전이 벌어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모래바람을 잠재울 마지막 전술훈련을 실시했다. 정강이뼈를 다친 김동진(제니트)은 여전히 몸만 풀어 출전이 어렵게 됐다. 허정무호가 반드시 승점 3을 챙겨야 할 이유는 많다.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1승1무(승점 4, 골득실 +4)로 북한(골득실 +1)과 동률이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북한 등을 확실히 따돌릴 필요가 있다. 주장 김남일은 “요르단 원정(다음달 7일)과 일주일 뒤 투르크메니스탄 원정까지 험난한 여정을 떠나기 전 안방 승리를 챙겨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특히 대표팀은 2월 동아시아선수권대회부터 3경기째 무승부를 이어온 터라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도 승리가 절실하다. 허 감독은 “역습을 잘 차단해 실점하지 않고 상대 밀집수비를 흐트려 공격진이 결정력을 높이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라고 요약했다. 요르단은 25일 중국과의 평가전(중국이 2-0 승리)에 유니폼 번호를 가리고 나서 한국 코칭스태프의 눈을 피할 정도로 전력노출을 꺼렸다. 대표팀에 이어 이날 밤 같은 장소에서 최종훈련을 한 요르단 선수단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허정무호가 15분만 공개한 뒤 비공개 진행한 반면, 요르단은 전 과정을 공개했다. 3차예선에서 북한에는 0-1로 졌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는 2-0 승리를 거뒀는데 이때 추가골을 터뜨린 타에르 바와브가 가장 경계할 선수. 수비수로 골도 넣는 와심 알브주르는 “우리의 강점은 탄탄한 수비이며 충분히 한국을 꺾을 수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대표팀은 4-3-3포메이션에서 박주영(서울)을 꼭짓점으로 좌우에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청용(서울)을 배치하고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은 안정환(부산)에게 맡긴다. 박지성과 이청용이 좌우를 흔들면 박주영과 안정환이 뒷공간을 파고 들어 골로 연결한다는 복안이다. 통상 미드필더진을 정삼각형으로 세우던 허 감독은 김남일(빗셀 고베)과 안정환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조원희(수원)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워 상대 오른쪽을 집중적으로 파고 드는 한편, 역습을 1차 저지하게 된다. 가장 큰 고민은 포백(4-back). 이영표(토트넘)-곽희주-이정수(이상 수원)-오범석(사마라)으로 예상되는데 곽희주와 이정수가 바와브를 철저히 묶는 게 중요해졌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서울의 풍경] 입주 시작하는 은평뉴타운 미리 가보니

    [서울의 풍경] 입주 시작하는 은평뉴타운 미리 가보니

    서울시의 시범 뉴타운 중 하나인 은평뉴타운이 다음달 1일 입주를 시작한다. 층 낮은 아파트, 어디서나 조망 가능한 북한산, 아름다운 공원,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 등이 어우러져 서울의 대표적인 친환경 웰빙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교통이나 치안 등 개선할 점도 많다. 입주를 이틀 앞둔 30일 은평뉴타운 1지구를 찾았다. ●용적률 15층으로 제한 시원한 전경 입구에 들어서자 흡사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무채색의 아파트가 짙푸른 녹음과 대비되면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은평뉴타운 1지구는 진관근린공원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6·7·8단지 등 3개 단지로 이루어졌다. 역시 친환경적인 고품격 생태도시답게 북한산 자락의 수려한 경관과 환경친화적 공간이 눈에 띈다. 담·턱·옹벽·간판·전신주 등이 없는 ‘5무(無) 도시’답게 막힘없이 시원하게 전경이 펼쳐진다. 성냥갑 같은 서울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최고 층수를 15층으로 묶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SH공사 뉴타운사업본부 토목팀 나재하 차장은 “지구내 도로는 31일 개통식을 가질 예정이고 지구를 관통하는 실개천도 주변 나무와 돌 등의 자리를 잡는 마지막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1일까지 모든 공사를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아파트 입구에도 작업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우필 건축1팀장은 “벽지훼손, 주방기구 교체 등 지난 5월 고객 사전점검 때 받은 지적사항을 마무리하고 있다.”면서 “6월1일 깨끗하고 예쁜 집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은 3개 지구에 아파트 1만 5276가구, 연립주택 648가구, 단독주택 248가구 등 총 1만 6172가구가 건립된다.1지구는 14개 단지 아파트 4514가구가 새 주인을 맞는다. 인구밀도는 ㏊당 129명으로, 목동(229명), 분당(199명), 일산(175명)보다 크게 낮다. 아파트단지는 모양새를 다 갖췄지만 가게, 학원, 음식점 등 주민편의시설과 교통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직 상가들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상가 7월 이후 영업 주민 불편 예상 188곳의 상가도 학생들의 방학에 맞춰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는 7월 이후에나 영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교통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은 북한산 등산객 등이 이용하기는 해도 비교적 한산했지만 이제 승객 급증이 불가피해졌다. 다음 달 1일부터 주요 단지와 구파발역을 오가는 셔틀형 순환버스가 5∼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그러나 일부 입주민들은 6호선과 연결되는 연신내역에도 운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파발역에 300대 수용 규모의 환승 주차장 건립계획이 잡혀 있지만,2010년 이후 준공 예정이어서 당분간 자가용과 지하철 환승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덕 SH공사 뉴타운 사업본부 계획설계팀장은 “모든 것이 내달 1일에 맞춰 완벽하게 시행될 수는 없지만 입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더 빨갛게 타오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새 위생조건을 담은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 전국은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 수만명의 촛불 대행진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장관 고시를 발표하며 정부 측이 내세운 수입조건 강화 논리가 전혀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셈이 됐다. ●일부 시민 청와대行 저지 당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서울과 부산 등 전국 12개 지역에서 일제히 개최한 ‘광우병 쇠고기 수입 고시강행 국민심판 촛불문화제’에는 2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모였다. 서울에서는 1만여명(경찰 추산·집회측 추산 2만여명)이 촛불을 들었으며 오후 8시30분쯤부터는 서울광장을 나와 명동∼종각∼종로∼을지로∼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일부 시민들은 “청와대로 가자.”며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동십자각까지 진출했다가 경찰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이후 23번째 만에 최대 규모였으며 주최 측에 의해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한 것도 처음이었다. 시민들은 ‘고시 철회’,‘협상 무효’ 등을 외쳤고 일부에선 중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한국에 돌아오지 마라.”는 격한 표현을 했다. 서울광장에는 정부의 수입고시 발표를 보고 처음 집회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많았다. 서울 쌍림동에서 왔다는 주부 이진이(39)씨는 “집에서 TV로만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수입고시 발표를 보고 우리나라가 주권도, 아이들의 먹거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속이 상해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데리고 처음 촛불집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딸 둘과 함께 역시 처음 나왔다는 초등학교 교사 한모(33·여)씨도 “정부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수입고시를 강행하는 데다 교육 당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살코기는 100% 안전하다며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먹이라는 지침을 내리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면서 “내 아이들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봐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TV발표 본 뒤 자녀와 함께 현장으로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현장을 찾았고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민주화운동 실천가족협의회 회원 14명과 함께 나온 송유호(55)씨도 “이럴 때일수록 국민은 촛불문화제에 더 호응해야 한다 싶어 이 자리를 찾았다.”면서 “경찰의 폭력 대응을 보고 있자면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영어 교사 마그다(24·여)씨는 “먹거리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게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부산 서면 제일은행 앞에서도 2000여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회사원 권진현(43)씨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서울에 105개 중대 1만여명의 경력을 배치했고 전국적으로도 120여개 중대를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검찰은 이날 거리행진 연행자 106명을 전원 석방키로 결정했다. 검찰은 일선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는 106명 중 1명은 훈방하고 17명을 즉심에 회부했으며 나머지 88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김정은 장형우 황비웅·부산 김정한기자 kimje@seoul.co.kr
  • [일요영화]우리형

    [일요영화]우리형

    ●우리형(KBS1 명화극장 밤 12시50분) 연년생 형제인 동생 종현(원빈)과 형 성현(신하균)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것도 같은 반이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형만 편애하는 것같아 묘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종현은 어느날 형과 또 다른 경쟁에 맞닥뜨리게 된다. 둘이 동시에 미령(이보영)에게 반해버린 것. 이래저래 서로에 대한 불편함과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형제. 그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며 대판 싸운 날, 형 성현은 동생 종현에게 간절하게 부탁을 한다.“종현아! 한번만 형이라고 불러줄래?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만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종현에게 늘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안했던 처지였으나, 결국 성현의 작은 소원은 이뤄지지 못한다. 종현은 ‘형’이라 불러달라는 성현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한다. ‘우리형’의 연년생 형제는 사사건건 다투고 경쟁하는 우리네 형제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현과 성현 또한 한쪽은 싸움실력이 뛰어난 반항아, 다른 한쪽은 순하다 못해 소심하기까지 한 모범생으로 상반된 성격이라 바람 잘 날이 없다. 한 핏줄이지만 적성도 취미도 너무 다르다. 그래도 신통한 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이다. 위기상황에서 서로를 도와주는 장면 앞에 관객들은 번번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은 두 톱스타 배우의 연기질감을 비교감상하는 점이다. 신하균과 원빈의 말그대로 ‘환상의 호흡’이 드라마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 됐다. 특히 남자 형제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과 끈끈함, 애증과 애정 등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잡아내 공감을 이끌어낸다. ‘친구’의 조감독 출신인 안권태 감독의 데뷔작. 그러고 보면 ‘친구’가 그랬듯 지나간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로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이 영화 곳곳에서도 눈에 띈다. 부산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등의 설정들은 특히 그렇다.‘친구’에서 맛보았던 우정의 농도만큼이나 진한 우애로 가슴을 적셔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채널을 고정시켜도 좋겠다.2004년작.112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與 원내 투톱 지원, ‘재선급’ 화력으로

    與 원내 투톱 지원, ‘재선급’ 화력으로

    22일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선출을 앞두고 ‘홍준표(원내대표)-임태희(정책위의장)’조(組)가 단독 출마한 가운데 원내부대표단과 정책조정위원장들의 진용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의 18대 국회 첫 당직 인선의 특징은 계파별·지역별 화합에 중점을 뒀다. 특히 정조위원장들의 경우 재선급으로 격상한 것이 눈에 띈다. 원내수석부대표로는 친이(친이명박) 핵심인사인 주호영(재선·대구 수성을)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보 담당 부대표로는 김정권(재선·김해갑) 의원이 유력하다. 이밖에 지역안배를 고려해 윤상현(초선·인천 남구을)·이종혁(초선·부산 진을)·박준선(초선·용인 기흥)·이범래(초선·서울 구로갑) 의원 등이 원내부대표로 유력하다. 각 정조위원장들은 각 부처의 장관을 상대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 재선급으로 격상될 전망이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은 정조위원장 모두를 초선으로 배치했다. 또 정조위원장은 당 화합을 위해 친이와 친박(친박근혜)인사들을 골고루 인선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 정조위원장은 친박(친박근혜)성향의 최경환 의원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재경위·정무위·예결위를 담당하는 3정조위원장을 겸임할 것으로 보인다. 정조별로 재선의 장윤석(제1정조)·안홍준(제5정조)·김기현(제4정조) 의원 등이 검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초선의 박상은 의원도 정조위원장으로 거론된다. 이와 함께 원내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각 정조위원장들을 국회 상임위 간사와 겸임토록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위의장에 단독출마한 임태희 의원은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그같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22일 새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선출하면 원내부대표단과 정조위원장들을 의원총회의 동의를 얻어 신임 원내대표가 임명하게 된다. 한편, 이번 국회 당직 인선을 놓고 의원들간 경쟁도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국회직은 여당으로서 정책 마인드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동거해야 하는 여당 당직보다는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중진 의원들도 당직보다는 국회 상임위원장 등을 맡으며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분위기다. 한 중진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 전반기에는 국회직을 맡고, 후반기에는 당직을 맡는 게 낫다는 인식이 많다.”고 전했다. 김지훈 한상우기자 kjh@seoul.co.kr
  • 꺼지지 않는 ‘교복 촛불’

    검찰과 경찰, 교육당국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대 ‘교복부대’들이 지핀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시교육청은 교사와 장학사 등 1000여명을 동원해 ‘현장 지도’에 나섰지만 청계천 광장에는 2만여명(경찰추산)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특히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온 초·중·고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고등학교 1학년 딸과 함께 청계광장을 찾은 정광훈(48)씨는 “처음엔 딸을 말렸다.”면서 “그러나 국민의 목소리에 귀닫는 정부, 학생들의 권리를 짓밟는 교육당국의 행태를 보면서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서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딸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가수 윤도현, 김장훈, 이승환씨와 영화배우 김부선, 문소리씨 등이 동참했다. 윤도현씨는 “미군 장갑차에 생명을 잃은 여중생 집회 이후 4년 만에 광장으로 나왔다.”면서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는 걸 보고 아주 창피했다.”고 고백했다. 이날 광주·부산을 비롯한 전국 12개 지역,36개 장소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가 열렸다. 광주 금남로에선 ‘5·18민주화운동 28주년 전야제’와 ‘미국 쇠고기 수입 규탄대회’가 함께 열렸다. 과천 지역에서 시작된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 걸기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 현수막은 현재 옥션과 지마켓 등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나도 잡아가라” 촛불집회 사법처리 방침에 경찰청 홈피 마비

    경찰이 ‘광우병 촛불집회’ 주최자와 ‘이명박 대통령 탄핵서명 운동’ 관련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히자 네티즌들이 항의성 ‘자수글’을 연달아 올리면서 경찰청 홈페이지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 경찰의 잇따른 정권 코드맞추기에 분노한 시민들이 마침내 사이버 시위로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14일 사이버경찰청 열린게시판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대역죄를 저질렀으니 부디 처벌을 부탁합니다.’,‘온·오프라인 서명운동에 동참했으니 자수할게요.’,‘출국금지 요청합니다.’라는 등의 글이 4000여개나 폭주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어청수 경찰청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권력 집행이 불공정하다.’,‘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항의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우리 땅에서 무력 폭동을 일으킨 중국인들은 손끝 하나 못대면서 자국인들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경찰의 이중 행보에 분개하기도 했고 ‘한정된 인원으로 130만명이 넘게 서명한 청원을 수사하시려면 고생이 많겠다. 개인의 자유권까지 침해하면서 처벌하신다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때문에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이 거부될 정도로 마비됐다. 완전 실명제로 운영되는 사이버경찰청 게시판에 이처럼 많은 네티즌들이 ‘자수’ 명목으로 글을 올린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열리던 촛불집회는 14일 저녁 처음으로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옮겨져 개최됐으며, 경찰은 7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부산과 광주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도 경찰 추산 4000여명이 참여해 광우병 쇠고기와 관련한 정부의 각종 무능한 대응을 규탄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선 당초 촛불문화제의 주축을 이뤘던 10대들의 참석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고등학교 3학년 이모(18)군은 “집회에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불이익이 있을까봐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이재훈 김정은기자 nomad@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깐깐한 상호주의와 적극적 대화정책

    [정종욱 월드포커스] 깐깐한 상호주의와 적극적 대화정책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며칠 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적극적 대화정책이라 설명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권장해 왔고 이것이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취지였다. 이는 정부의 대북 정책에 미묘한 변화를 시사한다. 지금까지는 깐깐한 상호주의가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였다. 북한과의 대화에 지장이 되더라도 따질 건 따지고 북한이 얼굴을 붉혀도 지켜야 할 원칙은 지키겠다는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시시비비의 태도였다. 작년 10월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바로 그랬다. 그런 정책이 이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일방주의로 선회한 것은 아니지만 깐깐한 대북정책(tough engagement)이 보다 유연하고 적극적 대화정책(positive engagement)으로 선회하는 전략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전략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급변하는 동북아의 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우선 북핵문제가 그렇다. 신고에 대한 협상이 사실상 타결되면서 북한이 테러지원국의 명단에서 빠지게 될 가능성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부시와 함께 밤새 발이 부르트고 목이 쉬도록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싶다던 김정일의 숙원이 올여름이 가기 전에 이루어질 수도 있게 되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의 명단에서 빠지면서 벌어질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되는 기막힌 장면은 그것이 비록 연출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외교적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검증과 폐쇄와 같은 까다롭고 험난한 문제가 남아있다 해도 북한은 이미 핵문제에 관해 사실상 면죄부를 받게 되는 셈이다. 미국도 이런 결과를 바라고 있다.8년 내내 이라크 전쟁의 악몽에 시달려온 부시 대통령에게 임기 말을 멋있게 장식할 수 있는 더할 수 없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협상을 성공시킨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북핵문제뿐 아니다.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눈을 녹이고 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후쿠다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며칠 전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으로 따뜻한 봄나들이(暖春之旅)를 했다. 전략적 호혜관계를 목표로 내걸고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서 유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아직 얼음이 녹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 주변의 역학구도가 새로운 질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반드시 나쁠 것은 없다. 북·미관계 개선은 결국 남북관계에도 긍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를 떠나 북·미관계의 개선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북·미화해에 불안해하고 초조해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적어도 북·미관계의 악화나 중·일관계의 후퇴는 아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냉전적 사고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주변의 변화가 가져올 전략적 기회를 우리가 대담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 정부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로서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가 된다고 해서 한·미 동맹에 무슨 큰 구멍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이 생각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를 수 있다. 우리 스스로를 냉전적 사고의 틀 속에 묶어놓고 선택의 여지를 좁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실용주의 외교의 핵심이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차가운 돌덩이에 포근한 숨결…

    차가운 돌덩이에 포근한 숨결…

    팔순에도 정과 망치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열정. 이름 석자가 그대로 돌조각으로 자동연결되는 원로 조각가 전뢰진(79)씨가 7년 만에 작품을 내놓았다. 스물여섯 청춘에 망치를 처음 들었으니 반백년이 넘게 돌만 상대해온 작가다.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방식 때문에 젊은 작가들조차 백기를 들고 있는 돌조각이건만, 노작가는 여전히 기계에 기대는 일이 없다. 사람 손끝이 닿는 것과 그렇지 않은 작품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란 진실을 저버릴 수가 없다. 일년에 대여섯 작품밖에 못 내놓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 덕분일까. 그의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체온을 잃지 않는다.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재료로 썼음에도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이 극대화되는 돌조각들이 이번 전시에도 선보였다.‘누나하고 나하고’‘가족’‘모정’ 등을 비롯해 동심을 표현한 대리석 작품 ‘바다나들이’가 눈에 띈다. 부산 태종대 ‘모자상’은 두고두고 그의 작품세계를 압축해 보이는 일화로 남았다.1970년대에 태종대에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그곳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 “돈을 더 벌 수 있는 유혹이 아무리 들려와도 돌조각이 아니면 앞으로도 몸을 움직이지 않겠다.”는 작가는 이번에 조각 13점과 구상단계의 드로잉 작품들을 함께 전시했다.30일까지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02)549-3112.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광우병 화장품 전염’ 괴담이라고?

    소의 부산물로 만든 화장품이 인간 광우병(vCJD)을 유발할 수 있다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평가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파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지난 2일 공동기자 브리핑에서 “2005년 이전까지 화장품 원료인 젤라틴, 콜라겐의 광우병 유발 위험성이 제기됐지만 국제수역사무국(OIE)은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부인했다. 청와대도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 기저귀, 생리대를 사용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는 광우병 괴담을 사실이 아니라며 전면 부인해왔다. 하지만 2004년 7월14일자로 FDA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공식문서에는 “소 단백질이 사용된 화장품을 상처난 피부에 사용하면 단백질이 흡수될 수 있음이 실험으로 확인됐다.”고 보고됐다. 소에서 유래한 물질이 포함된 화장품 사용시 인간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FDA는 화장품에 포함된 광우병 유발물질 프리온이 인간 광우병을 유발하는 경로로 벗겨진 피부 조직, 화장품 삼키기 등을 지목했다. 눈의 결막 조직을 통한 광우병 감염 위험도 지적됐다.FDA는 “많은 화장품이 눈에 사용되고 마스카라, 샴푸같은 용품들이 비비는 행위로 눈에 침투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FDA는 프리온에 소량 노출됐을 경우 잠복기가 길어 발병까지 오래 걸리지만 소량의 프리온이라도 광우병 유발 위험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FDA는 화장품 제조에 사용되는 단백질이 어느 부위에서 나온 것인지, 처리과정이 프리온 농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피부나 눈을 통한 전염률이 얼마나 되는지 등은 불명확하다면서 감염위험률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FDA는 “화장품에는 단백질 함량이 적은 소 지방 파생물이 주로 사용돼 전염 위험은 낮은 편”이라면서도 “화장품으로 인한 광우병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조과정에서 소 단백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20&30]가정의 달 5월의 스트레스를 아시나요

    [20&30]가정의 달 5월의 스트레스를 아시나요

    가정의 달 5월은 푸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보내며 아이들은 활짝 웃고 부모들은 자식들을 대견스러워한다. 징검다리 연휴에 모처럼 온 가족이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쩔 수 없이 속앓이를 감내하는 사람들도 많다. 만만찮은 자금 지출에 고민하는 직장인들도 있고, 싱글들은 주위에서 몰려드는 결혼 소식에 남몰래 한숨을 쉬기도 한다. 황금연휴를 취업공부로 보내야 하는 대학생들은 ‘잔인한 5월´을 실감한다. 가정의 화목 속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5월 스트레스´를 들어 보았다. 사건팀 kdlrudwn@seoul.co.kr ●‘가정의 달´ 여기저기 돈쓸 곳 넘쳐나고… 직장생활 10년차이자 결혼 9년차인 박모(39) 과장은 5월을 맞아 소박한(?) 결심을 했다.‘마이너스 통장´만은 피해 보자는 것이다.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에도 박씨는 부인에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다는 핑계로 금요일인 지난 2일 회사에 출근했다. 돈도 아끼고 번잡한 나들이도 피해 보자는 심사였다. 사무실에 들어선 박씨는 깜짝 놀랐다.“연휴 잘 보내라.”며 부하직원들에게 살갑게 인사했던 부장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이심전심´으로 배시시 웃는 박씨에게 부장은 “다음주 단기방학은 어떻게 넘어가야 되냐.”고 걱정했다. 박씨는 나들이를 포기한 대신 8살 아들에게 15만원짜리 휴대용 게임기를 선물했다. 하지만 아들은 “게임팩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며 혼잣말을 여러번 했다. 그는 “아들이라도 얄미워서 꿀밤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버이날도 은근히 걱정된다. 동생은 100만원짜리 안마기를 사서 부모님께 보냈다.“도대체 5월에는 보너스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직장인 최모(26·여)씨는 5월의 지출예상 가계부를 작성하다 자신의 재정 능력을 한탄했다. 백화점에 가보니 작은 핸드백 하나도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현금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최씨는 주말 동안 명동을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은 거의 다 30만원대였다. 결국 최씨는 한 달 50만원짜리 적금을 이번 달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월급은 빠듯하다. 최씨는 “5월이 되니 제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여요. 선물은 마음으로 하는 거라지만 능력이 안 되니 너무 섭섭해요. 좀 더 노력해서 좋은 직장에 입사했더라면….”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회사원 조모(27·여)씨는 최근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를 가려다 뜻을 접었다.5월 들어 지갑이 급속도로 얇아지고 있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연휴 때 남들은 놀러 간다고 난리지만 조씨는 여기저기 결혼식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이번 달만 결혼식이 네 차례로 축의금만 20만원 정도 나가야 하는 데다, 5월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식장에 가기 위해 보세 원피스를 5만원에 새로 장만했다. 휴일 외출을 포기하다 보니 술자리를 찾게 되면서 술값도 어지간히 지출했다. 월급명세서를 보니 이번 달엔 건강보험료도 올라 월급 봉투도 부쩍 얇아졌다. 어버이날 외식비로 수만원이 나갈 예정이고, 좋은 날씨에 성화를 부리는 친구들의 권유로 모꼬지도 갈 예정이어서 그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다.“어버이날 선물은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고, 6∼7월에 연달아 있을 부모님 생신 때 좋은 거 사드리려고요.” ●부쩍 늘어난 행사 “차라리 내 몸이 두개였으면”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박모(38)씨는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는 슬로건 때문에 퇴근시간만 되면 조바심이 난다. 박씨는 기술개발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밤을 새우거나 회사 기숙사에서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혼 초에는 부인의 신세한탄이나 구박이 심했다. 대개 “이럴 거면 왜 결혼했느냐.”는 핀잔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인도 서서히 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5월이면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친척들 결혼식까지, 챙겨야 할 행사가 부쩍 늘기 때문이다. 박씨는 연초마다 “올해 5월에는 가족 행사나 결혼식에 빠짐없이 참석하겠다.”고 부인에게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회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신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중압감에 일터를 쉽게 비우지 못한다.“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괜히 조바심이 납니다. 혹시나 퇴근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다가 야근에 돌입하면 부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바뀌죠.” 대학원에서 군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육군 대위 김모(30)씨는 휴일에도 대학원 수업을 하는 바람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김씨는 가족에게 어린이날을 맞아 아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가기로 몇 번씩 다짐했다. 하지만 교수 사정 때문에 어린이날에도 수업은 계속됐다. 아들은 아빠가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며 울먹였고, 김씨 부부는 아들을 달래느라 어린이날 하루 전 진땀을 빼야 했다. 김씨는 아들과 놀이공원에 못 가는 대신 평소 아들이 갖고 싶어 했던 무선조종비행기를 선물했다. 가정도 없이 휴일에 수업하는 교수가 공연히 미워지기도 했다.“자기가 가족과 보내기 싫으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이들에게는 일 년에 하루밖에 없는 날이잖아요.” 직장인 박모(27)씨는 5월만 되면 선물을 고르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박씨는 상대의 마음에 맞는 선물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을 3주 정도는 뒤져야 직성이 풀린다. 박씨가 챙겨야 할 날은 많기만 하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날에 3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의 생일까지 겹쳐 있다. 맏아들인 박씨는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일본 관광 여행을 준비했다. 지난 3월 퇴직한 아버지가 평소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십 가지의 관광상품을 분석해 일정을 비교하는 표까지 만들었다. 그는 “여유롭게 쉬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고르고 싶어 3주간 일도 손에 안잡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2명의 조카를 위한 선물을 찾기 위해 동네 완구점부터 인터넷, 백화점 등을 점심시간이면 틈틈이 찾기도 했다.“애인 생일선물도 골라야 하는데 벌써 골치가 지끈지끈해요. 힘들어도 선물을 받을 때 상대가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참는 거죠.” ●솔로에게 더 잔인한 5월 항공업체에서 일하는 이모(36·여)씨는 잇따른 결혼식으로 자금 사정이 휘청거린다. 이씨는 지난 3일 서울에만 두 곳, 4일에는 부산과 청주에 각 한 곳씩의 예식장을 찾았다. 모두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었다.5월에만 주말이면 평균 2곳 정도의 결혼식에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미혼인 이씨는 줄줄 새는 축의금에도 속이 쓰리지만, 다른 사람의 축하 자리에 들러리만 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 여겨진다. 더구나 남의 결혼식을 찾아다니느라 최근 교제를 시작한 사람과 이별까지 감수해야 했다. 지난달 말 직장 후배의 소개로 만난 남자는 직업이나 성격도 좋아 마음에 들었다. 이달 들어 주말마다 동료나 학교 후배들의 결혼식이 줄줄이 잡혀 있는 터라 이씨는 그 남자에게 “주말에는 모두 약속이 있다.”고 말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씨의 말을 사귀기 싫다는 퇴짜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이씨는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는 사람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청첩장을 들이밀 때는 정말 어이가 없어요.”라고 푸념했다. 직장 4년차로 미혼인 전모(30) 대리는 이번 5월도 외로운 빈털터리 신세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을 포함해 결혼식만 열 건이 넘는다. 평소 소주 한잔하자고 전화하면 바쁘다고 피하던 친구들이 친한 척하며 전화해서는 결혼식을 ‘고지´해댄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혀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내던 여자 동기들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미니홈피에다 결혼 소식을 알렸다. 나름대로 친했던 친구는 5만원,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는 3만원으로 정리해도 축의금만 모두 30만원이 훌쩍 넘는다. 주말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결혼식에 갈 때면 부모의 성화도 심해진다.“위기가 기회라고 남들 결혼식에서 좋은 여자와 만남을 가져 보려고요. 저도 올가을에는 꼭 장가가렵니다.” ●어린이날에 용돈을 받다니… 백수의 비애 백수 2년차인 이모(26·여)씨는 지난해 5월 어린이 취급을 받았다. 없는 돈을 모아 부모와 외식 자리를 마련했지만 아버지는 “어차피 이 돈 나한테서 나간 거 아니냐. 내 돈 주고 사 먹는 밥 별로다.”라며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도 “자기가 돈 못 벌고 결혼 안 하면 어린애나 매한가지”라고 꼬집었다. 결국 예약은 이씨가 했지만 비용은 결혼한 오빠가 냈다. 또 이씨가 세 살 조카에게 용돈을 주자 오빠는 오히려 다른 사람 안 보는 곳에서 이씨에게 용돈을 10만원이나 건넸다. 이씨는 올해도 어린아이 취급을 받을까봐 어버이날 외식을 먼저 제안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취직해야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따가운 햇살마저도 되레 우울하게 느껴져요.” 대학원생 강모(26)씨는 봄에 공부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른한 봄날 캠퍼스에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춘곤증 때문에 잠 조절이 되지 않아 멍한 상태에서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일주일에 두세 번 밤 11시에 온라인으로 하는 조모임이 있는데, 깜박 잠이 들어 참여하지 못하는 바람에 교수에게 꾸지람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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