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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국민 눈높이 태극기/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열린세상] 국민 눈높이 태극기/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나라의 상징이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국경일 국기게양 비율은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하락했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근년에는 전국 국기게양률이 8%에서 3%로 급감했다니 예사로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 초·중·고 교실 앞 벽면에 걸려 있던 태극기도 대부분 사라지고 있고, 국경일이면 신문들이 태극기 없는 아파트 풍경을 취재하며 국기의 실종을 개탄한다. 국민의 가슴에서 멀어진 태극기,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 수 있을까? 해마다 7월로 접어들면 정부 및 여러 단체들이 국기게양 운동에 나선다. 연중 공식 국기게양일의 86%가 하반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에서는 한국자유총연맹의 ‘나라사랑 공감 한마당, 전 국민 태극기 게양 확산운동’이 시작되었고, 안전행정부는 광복절을 앞두고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는 ‘국기게양일 지정’ 조례를 추진하고, 국경일은 물론 도에서 의결한 날도 국기를 달도록 정하며, 복지보육시설과 취약계층에게 국기게양대를 설치해 주고 태극기를 지원할 계획이란다. 이 부산한 움직임들은 국민의 태극기에 대한 무관심이 갈 데까지 갔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캠페인은 태극기 보급과 게양 확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런 노력이 진정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미국은 성조기를 채택한 1777년 6월 14일을 국기의 날(Flag Day)로 지정하여 매년 기념하고 있으며, 1966년부터는 대통령이 국기 주간(Flag Week)을 공표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 국기와 관련된 문화예술 공연, 문학작품 공모가 있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손 국기(手旗), 국기 스카프, 국기 스티커 등을 가지고 놀거나 국기를 얼굴에 그리는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 또 노스캐롤라이나의 국기박물관에서도 국기 관련 전시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그러한 풍경들은 국기에 대해 삼엄한 마음을 갖는 우리의 정서와는 크게 대비된다. 어릴 때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게양 의무로 느낀 압박감이 이제는 국기를 거저 주고 달기를 호소해도 잘 통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국기법 11조는 국기 또는 국기문양의 활용 및 제한 조항에서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태극기와 그 문양을 각종 물품과 의식(儀式)에 활용할 수 있다고 열어 놓았다. 교실 벽면에 높이 걸린 액자 태극기 대신, 깃대형으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둔다면 그들은 태극기와 더 긴밀히 눈 맞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스가 국기를 여권을 비롯한 각종 상품에 세련되게 적용하듯, 경쟁력을 지닌 우리 제품들에 태극기 적용을 연구하여 관공서와 기업에 그 용례를 제시하자. Made in Korea로 원산지 표시를 할 때 태극기가 늘 동반된다면 한국이 태극의 나라로 자리매김되고, 한국인이 궁극의 조화를 추구하는 국민으로 각인될 것이다. 게양대 위의 태극기가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속에서 표출되도록 디자인한다면, 국민은 항상 태극기를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국기는 한 국가의 종합상징체계의 정점에 위치하는 항목이다. 태극기의 역사와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을 찾아내고, 공간을 설계하자. 국기의 날을 기념하는 세계 40여개국처럼 우리나라도 국기의 날을 제정하자. 1883년 고종이 왕명으로 태극도상과 4괘로 이루어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한 3월 6일을 국기의 날로 지정하든가,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기통일양식’을 제정한 6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공립박물관, 사설박물관, 개인 소장자 등으로 흩어져 있는 태극기 관련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태극기박물관을 설립하자. 그리고 우주론을 담은 세계 유일무이의 국기를 통해 국가 브랜딩에 나서자. 2002월드컵 경기 때 우리는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아버지 같은 태극기와 처음으로 진한 스킨십을 경험했다. 이제 저 높은 곳의 국기는 눈높이 국기로, 존엄한 국기는 사랑스러운 국기로 국민들의 가슴에 다가가야 한다. 태극기 보급과 게양률 높이기도 중요하지만, 태극기가 어머니같이 편하고 친구같이 함께 있어 마냥 좋을 때, 태극기는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 일본 꺾은 감동 어디로…여전히 텅빈 WK리그

    일본을 2-1로 격파하며 북한의 첫 우승에 힘을 보탠 여자축구 대표팀의 감동이 WK리그로 이어지기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2013 WK리그 23라운드 부산 상무와 인천 현대제철이 맞붙은 보은종합운동장 스탠드는 여전히 빈 자리가 많이 눈에 띄었다. 무료 입장인데도 관중들은 1000명을 넘지 않는 듯 보였다. 대표팀에서 돌아온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특히 올 시즌 한 번도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상무 선수들은 더욱 많은 비지땀을 쏟아냈다. 현대제철이 전반 23분 비야에 이어 후반 3분 두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여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강유미가 골을 넣어 2-0으로 이겼다. 10경기 무패를 이어간 현대제철은 2위 서울시청과의 승점 차를 5로 벌려 선두를 굳혔다. 상무는 20경기를 치를 때까지 7무13패로 한 번도 승리를 맛보지 못하는 쓰라림을 이어갔다. 전북 고양대교는 화천종합운동장에서 수원시설공단을 만나 전반에만 네 골을 퍼부어 4-0 완승을 거뒀다. 전반 1분 상대 김나영의 자책골로 기세를 잡은 고양대교는 22분과 45분 쁘레치냐가 모두 연결한 한송이의 두 골에 전반 41분 쁘레치냐가 한 골을 더했다. 올시즌 수원시설과의 네 차례 대결을 모두 승리로 이끈 고양대교는 세 경기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보며 서울시청 추격에 나섰다. 쁘레치냐는 도움 6개로 단독 선두로 나섰다. 경기 전 4위였던 수원시설은 두 계단 밀려났다. 서울시청은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충북 스포츠토토와 90여분 헛심 공방 끝에 0-0으로 비겼다. 이로써 스포츠토토는 리그 4위로 올라섰다. 동아시안컵 대회 내내 팬들이 부재를 아쉬워한 박은선(서울시청)은 선발 출장, 전반 3분 조효정의 코너킥을 머리에 맞혔지만 빗나가고 말았고, 27분 뒤 문전 혼전을 틈타 슛을 날렸지만 또 빗나갔다. 후반 42분에도 오버헤드킥을 시도했으나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WK리그는 합천 선수권대회 때문에 한 달 정도 쉰 뒤 다음 달 26일 24라운드로 재개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중기청과 함께하는 우수기업 열전] “이젠 시니어 창업지원도 필요 흩어진 지원센터 집적화 계획”

    [중기청과 함께하는 우수기업 열전] “이젠 시니어 창업지원도 필요 흩어진 지원센터 집적화 계획”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사업화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1인 창업의 요람인 부산 창업비즈니스센터 유점석(59) 센터장은 28일 “최근 구직난 등으로 창업을 원하는 청년과 회사를 떠난 베이비붐 세대 등 중장년층의 창업 열기가 잇따르지만 계획 없는 창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사전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전 직장에서 쌓은 경험 및 지식과 관련된 업종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무작정 주변 말을 믿고 창업하면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창업 성공의 사전 조건으로 그는 우선 발품을 많이 팔 것을 주문했다. 업종과 종목이 선택되면 관련 설명회 등을 찾아다니며 사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상담하러 오는 예비 창업인들을 보면 한결같이 아이디어는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 지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허다하다며 안타까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창업비즈니스센터와 소상공인지원센터 등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창업비즈니센터의 경우 창업과 관련해 정부 지원 제도 활용 방법, 기업 경영을 위한 관리시스템 운영 방법, 대화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청년 창업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베이버 부머 세대의 시니어 창업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그는 “‘시니어 최고경영자(CEO) 맞춤형 창업 지원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센터에서는 40세 이상 창업 희망자 또는 창업 초기 기업 15명에게 전문 서비스 등 6대 분야에 대해 2000만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한다”며 적극 참여를 권했다. 창업비즈니스센터는 앞으로 부산 지역 여러 곳에 흩어진 창업지원센터를 한곳에 모아 집적화해 나갈 계획이다. 유 센터장은 “요즘에는 정부가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아이디어와 구체적인 사업 계획 등만 갖춰지면 자기 자본이 없어도 얼마든지 창업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건반위의 별들, 스승 위한 멜로디 빛낸다

    건반위의 별들, 스승 위한 멜로디 빛낸다

    “‘빗방울 전주곡’ 어떠세요? 제가 따라갈게요. 선생님 먼저 치세요.” 여든을 훌쩍 넘긴 노스승과 이순(耳順)을 앞둔 제자가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을 힘있게 두드리는 사제의 호흡이 전날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척척 맞아들어갔다. 두 사람의 시계는 순간 47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피아노를 막 알아가던 열 살 소년과 그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준 30대 후반의 젊은 교수로 말이다. 스승에게 소년은 야단칠 일이 없는 영민한 제자였다. 소년에게 스승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1966~1968년 서울 약수동에서 앞뒤 집에 살며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두 사람은 어느덧 1·2세대 대표 피아니스트로 한국 피아노 역사를 떠받치고 있다. ‘피아노의 대부’ 정진우(85)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영호(57)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다. 정 교수는 ‘정진우 사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자들을 몰고 다닌다.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 이대욱 한양대 교수, 강충모 줄리아드음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문익주 서울대 교수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자들의 선생님 사랑은 극진하다. 스승의 회갑·고희·팔순 음악회를 일일이 다 챙겼다. 매년 1월 8일 정 교수의 생일에는 어김없이 생신축하 겸 신년회 자리가 벌어진다. 그런 제자들이 이번에도 스승을 위해 뭉쳤다. 새달 17~2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여는 제2회 ‘피스(평화) 앤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정진우 교수를 위한 ‘오마주 콘서트’를 마련한 것. 피아니스트 15명 등 20여명의 연주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정 교수에게 소감을 묻자 “미안하다”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고맙고 미안하죠. 다들 대학 교수들이고 바쁜 사람들인데 일부러 이런 행사까지 열어주니 미안할 따름이죠.” 스승의 무안함을 제자가 지우려 나섰다. “전원이 너무나 흔쾌히 응했는 걸요.”(김 교수) 오마주 콘서트에서는 정 교수의 인생 역정도 사진과 영상으로 펼쳐진다. 본디 그는 의학도였다. 아버지의 뜻이었다. 1949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6·25전쟁이 터지자 군의관으로 참전한 그는 1951년 중공군이 포위한 강원도 성지봉 전투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동상으로 썩어버린 두 발을 결국 잃고 말았다. 발등까지 잘라낸 그는 절망을 딛고 1952년 전쟁 통에 부산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언론은 그런 그에게 ‘비운의 삶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피아니스트’라는 헤드라인을 붙여줬다. “‘아버지 하라는 대로 해서 발을 다쳤으니 이젠 정말 나 하고 싶은 거 하겠다’ 해서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졸업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당시 현제명 서울대 음대 학장이 빈까지 쫓아왔어요. 음대 교수를 맡아달라는 거예요. 공항에 도착하니 음대 교수들이 다 마중을 나왔더라고.”(웃음) 그렇게 그는 피아노계의 큰 스승으로 후배 피아니스트들의 밑거름이 됐다. 반주에 그쳤던 피아노의 역할도 실내악 연주, 레퍼토리의 다양화 등으로 어엿한 악기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는 요즘도 제자들의 연주회가 있으면 지방까지 쫓아다닌다. 반세기를 건너 세계 무대에서 놀랍도록 성장한 국내 피아니스트들에게 ‘정진우’라는 이름 석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제자마다 추억이 다 다르겠죠.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모든 제자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다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극과 극](1)814만분의 1…로또1등 ‘별을 딴 사람들’

    [극과 극](1)814만분의 1…로또1등 ‘별을 딴 사람들’

    (상) 운명 갈린 1등 당첨자 10, 23, 29, 33, 37, 40 2002년 12월 8일 처음 선보인 로또복권의 당첨번호다. 1등 당첨금은 11억 4000만원이었다. 하지만 1등 번호 6개를 다 맞춘 당첨자는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번호 5개와 보너스 번호를 맞힌 1명만이 2등 당첨금 1억 4393만원을 챙겼다. 로또 바람은 이렇게 불어왔다. 이른바 ‘로또 광풍’으로 돌변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로또복권 판매소를 찾는 발길이 늘고, 토요일 저녁마다 추첨 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TV에 눈이 쏠렸다. 재미나 장난이 아닌 순식간에 ‘한방’ 인생 역전을 위해서다. 한마디로 극(極)으로 달리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사건 Inside’에 이은 온라인 기획물 ‘별난 세상 별난 인생,극(極)과 극(極)’ 을 마련했다. ‘극과 극’은 로또 당첨이라는 횡재를 쫓는 사람들처럼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때로는 쉽게 맞닿을 수 없는 최고, 최다, 최저 등의 별난 세상을 다룰 계획이다.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 전화 한통에 한순간 멍 한호성, 40대 초반의 회사원, 477회 로또복권 1등 당첨자다. 신분 노출을 우려, 가명과 대략 나이를 쓴다. 지난해 1월 21일. 고된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에 찍힌 번호는 02-5XX로 낯설었다. “뭐야, 또 스팸 전화인가”라며 다소 짜증스러워하면서도 “혹시 일거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순간 멍해졌다. 손이 떨렸다. 전화기를 놓칠 뻔했다. 가입한 로또복권 번호 추출 업체에서 1등 당첨 사실을 알려온 것이다. 별다른 반응이 없자 업체 측에서 “안 사신 것은 아니죠?”라고 되물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갖고있던 로또복권과 1등 당첨 번호를 맞췄다. 꿈이 아니었다. 한씨의 당첨금은 19억 2000여만원이었다. 세금을 떼고 13억원 가량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마치 뭔가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었어요. 아마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 기분일 것 같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기 전 한씨는 꽤 상황이 나빴다. 가난했다는 말이 맞다. 부모님이 진 빚을 갚느라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다. “디자인 회사에 다녔지만 한달에 200만원이 채 안되는 월급으로 빚을 갚으면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지요. 디자인이라고 하지만 간판까지, 닥치는대로 일거리를 맡았습니다. 퇴근하고 대리운전까지 해야만 했고요” 하루에 2~3시간씩 쪽잠을 자가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15년 가까이 악착같이 버텼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2007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낡은 전세집이 원인 모를 불로 다 타버리는 바람에 전세금도 못 받고 쫒겨나야 했다. 당시 한씨에게 다가온 것이 로또였다. 2002년 12월 당시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문화관광부, 노동부, 건설교통부, 산림청, 중소기업청, 국가보훈처, 제주도 등 10개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가 연합해 발행한 복권이 로또다. 복권 발행 기관 및 종류의 난립에 따른 과당 경쟁을 피함으로써 공공재원 조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조성된 기금은 취약계층, 서민주거, 문화예술, 국가유공자, 자연재해 등 5대 공익사업에 지원된다. 2007년 이후 농협이 운영하고 있다. 당첨금의 상한선도 두지 않은데다 1등 당첨자가 없으면 다음 회의 1등 당첨자에게 당첨금을 이월해 합산 지급했다. 번호를 직접 선택할 수 있기에 1등도 여러 명 나올 수 있다. 19세 이상 구입이 가능하도록 길을 텄다. ‘열풍’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814만분의 1 확률… 주변에 안알리고 평범한 일상 한씨 역시 로또에 매달렸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열풍’에 휩쓸렸다. 로또복권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1주일에 2만원씩 꾸준히 로또복권을 샀다. 1주일씩 희망을 산 것이다. “누군가는 있지도 않은 희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설렘이 있었으니까요” 로또에 손을 댄지 5년만에 ‘꿈’은 현실이 됐다. 814만분의 1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45개 숫자 가운데 6개를 동시에 맞춰야 하는 로또의 조합 확률이다. “1등 당첨 숫자를 기억하느냐고요. 내 인생을 바꿔준 행운의 숫자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시 산 복권과 은행에서 준 13억원짜리 통장 등을 고히 간직하고 있다. 한씨는 13억원을 손에 쥐었지만 크게 달라진게 없다. 스스로 티를 내지 않는다. 실제 주변에서 로또에 당첨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직장도 계속 다니고 있다. “당첨금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연금가입이었죠. 나머지는 빚갚고 집사는데 썼습니다. 한 순간 실수하면 순식간에 없어질 돈이라고 여겼지요. 쉽게 들어온 만큼 쉽게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렸죠” 여유가 생겼다. 돈에 쫓기지 않아서다. 가장 좋은 점이라고 내세웠다. 장래를 생각할 때마다 어렴풋이 그려봤던 베이커리 카페도 현실로 나가왔다.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기에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까 싶어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매달 후원하고 있다. 로또복권 관계자는 “한씨처럼 당첨 뒤 천천히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여유를 즐기는 당첨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당첨자들이 ‘모험’보다 ‘안정’을 선택하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라고도 했다. 하지만 모든 당첨자들이 한씨같지는 않다. 갑작스럽게 온 행운은 한씨의 말처럼 짧은 시간에 불행으로 바뀔 수 있다. 횡재가 횡액(橫厄)이 되는 것이다. 복을 가져다 준 ‘로또의 저주’에 걸려 패가망신, 가정불화, 해외도피 등의 수식어 아래 인생을 망친 이들의 사연도 적잖다. 로또의 저주?도박·유흥에 돈날리고 스스로 목숨 끊기도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A씨는 2011년 10월 로또복권 1등에 당첨, 13억원을 거머줬다. 뜻밖의 ‘일확천금’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꿈꾸던 A씨는 당첨 직후 결혼한 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다 전과자로 전락했다. 2006년 1등에 당첨된 B씨는 도박과 유흥에 빠져 8개월만에 당첨금 14억원을 모두 탕진한 뒤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금은방을 털다 붙잡혔다. 또 다른 당첨자는 당첨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2년여만에 돈을 모두 날리고 목욕탕 탈의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2010년 5월 포항에서는 로또 1등에 당첨돼 실수령액 15억여원을 받은 50대 남성은 손윗 동서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기도 했다. 한씨는 “가끔씩 들려오는 1등 당첨자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들으면 참 안타깝다”면서 “1등 당첨이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여유있게 천천히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까지 로또복권은 554회 추첨을 마쳤다. 여태까지 총 1등 당첨자수는 323명으로 회당 평균 5.8명 정도가 대박을 맞는다. 2등은 총 1만 8711명이다. 하지만 불규칙한 숫자를 이용한 게임인 이상 매번 일정하게 당첨자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로또복권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는 최고 당첨금의 주인공은 강원도 춘천에 사는 경찰관 박모(49)씨였다. 혼자서 무려 407억 2000만원의 당첨금을 받았다. 현재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을 뿐이다. 대박 부르는 행운의 숫자 있다? 없다? 1년 안에 벼락에 맞을 확률(50만분의 1)보다도 낮은 814만분의 1의 확률을 뚫었지만 정작 낮은 당첨금으로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5월 18일 546회 로또복권 1등은 무려 30명. 한 사람이 받을 당첨금은 4억원에 그쳤다. 물론 큰 돈이지만 ‘전설’에 비하면 100분의 1 수준이다. 추첨 직후 부산의 특정 지점에서만 10명이 나왔고 똑같은 번호를 수동으로 10장 적어 제출한 사람이 당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때아닌 ‘조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눔로또 측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번호인 17, 27, 37 등 7이 들어간 숫자가 많아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로또의 행운의 숫자는 뭘까. 전통적인 행운의 숫자인 7은 지금까지 68번 등장했다. 통계상 그리 빈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대신 숫자 40은 92회나 나왔다. 거의 다섯 번에 한 번 꼴이다. 숫자 20은 91회, 34는 89회, 37은 88회, 1과 27은 86회 당첨 숫자에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행운의 숫자’를 조합하면 1등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지금껏 이 숫자들이 모인 1등 번호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웠던 사례는 6월 15일 550회 추첨으로 1, 20, 34, 37이 동시에 뽑혔다. 반면 가장 적게 등장한 숫자는 59번 나온 9로 가장 많이 나온 40의 65% 수준이었다. 8은 60회, 41은 62회, 38은 64회, 6과 16은 65회로 비교적 자주 추첨되지 않았다. 한씨도 빈도가 잦은 숫자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1주일의 희망, 설렘을 주는 로또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글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사진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동아시안컵] 공한증 대신에 골가뭄만…

    [동아시안컵] 공한증 대신에 골가뭄만…

    홍명보호의 첫 골은 이번에도 터지지 않았다. 첫 승도 다음으로 미뤄졌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4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중국과의 2013동아시안컵 2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화룡점정’의 골 결정력이 이번에도 아쉬웠던 경기였다. 호주전에 이어 두 경기째 득점 없이 비기면서 승점 2(2무)에 머물렀다. 중국 역시 이번 대회에서 2무승부지만 일본과의 1차전을 3-3으로 끝내 다득점에서 한국을 앞섰다. 하지만 중국과의 역대 전적은 한국이 16승12무1패로 우세를 지켰다. 홍 감독은 지난 20일 호주전과 완전히 다른 스타팅을 내밀었다. 슈팅 21개를 날렸지만 골을 뽑지 못했던 공격조합은 물론, 강력한 압박과 촘촘한 짜임새로 홍 감독 스스로 ‘100점’을 줬던 수비라인까지 싹 바꿨다. 서동현(제주)을 원톱에 두고 2선 공격진에 염기훈(경찰)·윤일록(서울)·조영철(오미야)을 세웠다. 포백라인에 김민우(사간 도스)·황석호(히로시마)·장현수(FC도쿄)·이용(울산)을 배치했고, 더블 볼란테에는 박종우(부산)·한국영(쇼난)을 내세웠다. 1차전 때 뛰었던 선수는 정성룡(수원)과 윤일록, 두 명뿐이었다.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를 무너뜨린 파격적인 용병술이었다.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내년 브라질월드컵에 나설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선발 엔트리에서 엿보였다. 누구도 주전을 장담할 수 없도록 경쟁심을 극대화해 기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건 보너스다. 경기 전날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훈련에선 조끼를 입는 것으로 ‘베스트11’을 파악할 수 없게 한 것과도 맥이 닿는다. 대폭 변화된 라인업 때문인지 내용은 2%가 부족했다. 태극전사들은 90분 내내 골문을 두드렸지만 이번에도 골맛을 못 봤다. 슈팅은 정교하지 못하거나 세기가 약했다. 심지어 너무 정직해 번번이 상대 골키퍼 쩡청(광저우)의 품에 안겼다. 전반 12분 한국영, 전반 28분 윤일록, 전반 44분 조영철, 전반 45분 서동현이 골과 다름없는 슈팅을 날렸지만 끝내 골문을 여는 데 실패했다. 후반에도 마찬가지로 골문을 쉼없이 두드렸고, 후반 19분 교체로 들어온 김신욱(울산)의 제공권까지 더해지며 주도권을 확실히 쥐었지만 그뿐이었다. 후반 교체로 들어간 이승기(전북)와 고무열(포항)의 화력도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3년 5개월 만의 설욕전은 물거품이 됐다. 이날 전까지 가장 최근 맞대결이었던 2010년 2월 동아시안컵 때 한국은 중국에 0-3으로 대패했다.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리던 중국 축구가 32년 만에 한국을 꺾은 경기. 홍 감독은 골키퍼 이범영(부산)을 뺀 전체 22명 스쿼드를 전부 가동하면서 선수들 실력검증을 했지만 ‘공한증 재건’에는 실패했다. 홍 감독은 경기 후 “첫 경기에 비해 별로 만족스러운 부분이 없다”면서도 “선발 멤버가 많이 바뀐 상황에서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경기를 펼친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홍명보호는 오는 28일 잠실주경기장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상대로 마수걸이 승리에 도전한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농촌으로 ‘유학’ 보냈더니… 경쟁 지쳤던 아이 얼굴에 ‘웃음꽃’

    농촌으로 ‘유학’ 보냈더니… 경쟁 지쳤던 아이 얼굴에 ‘웃음꽃’

    “내가 잡은 고추잠자리 좀 봐봐.” 지난 17일 충북 단양의 한드미 마을. 장난기 어린 얼굴을 한 남자 아이 셋이 나무 아래 모였다. 아이들의 눈이 향한 곳에는 고추잠자리가 날개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잠자리를 관찰했다. 잠시 뒤 아이들은 옆 계곡으로 자리를 옮겨 자그마한 손으로 계곡물을 떠서 마셨다. 임현영(11)군은 “배 아프지 않겠냐”라는 질문에 “물이 얼마나 깨끗한데요!”라고 활짝 웃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자연과 호흡하고 있었다. 계곡과 산은 이미 아이들의 친구이자 선생님인 듯 보였다. 아이들이 농촌 지역을 방문해 6개월 이상 생활하는 농촌유학이 인기를 얻고 있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의 농촌유학시설은 2010년 24개소에서 2012년 37개소로 늘어났다. 유학생 역시 302명에서 464명으로 상승 추세다. 2007년 설립돼 농촌 유학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단양 한드미 농촌유학센터 역시 처음보다 학생 수가 4배쯤 늘었다. 박종현(35) 생활지도교사는 “첫해 12명이었던 유학생들이 지금은 48명이나 된다”고 귀띔했다. 한드미 농촌유학센터는 일본의 산촌유학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2006년 당시 정문찬(58) 한드미 마을 대표가 농림부의 ‘1인1촌 전문가 컨설팅 지원사업’을 신청했고 마을을 방문한 김재현 건국대 환경과학과 교수로부터 일본의 산촌유학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정 대표는 “산촌유학을 통해 젊은 사람의 유입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드미 마을을 위해 적합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농촌유학은 과도한 경쟁에 지친 도시 아이들의 쉼터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경기 성남에서 충북 단양으로 온 지 2년 반 됐다는 김유석(11)군은 “성남에 있을 때 다닌 학원만 영어, 수학, 태권도 등 10개가 넘고 오후 2시에 학교가 끝나도 8시쯤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좋아하는 야구나 축구 같은 운동도 친구들과 실컷 할 수 있어 참 좋다”고 웃어 보였다. 인천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 남동생과 함께 왔다는 홍영민(15)양도 “학생 간의 경쟁이 인천보다 훨씬 덜하고 활동량이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실제 센터 내에서 어두운 낯빛을 한 아이를 찾아 보기는 힘들었고 유학센터는 시끌벅적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거나 게임에 중독된 도시 아이들도 일부 있었다. 아이들의 하루 일과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이날은 초등학교 2~4학년을 대상으로 ‘미술심리 모니터링’ 수업이 진행됐다. 유학센터 근처 가곡초 대곡분교에서 아이들이 정규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단양에서 온 선생님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빙 둘러앉았다. 선생님은 각자 아이들에게 태극기를 그리게 하고 태극 무늬가 가진 뜻을 질문했다. 아이들은 조그마한 입을 연신 움직이며 ‘하늘’, ‘물’과 같은 답을 내놨다. 이세정(27) 생활지도교사는 “‘영어로 배우는 사물놀이·민요교실’, ‘로컬푸드 요리교실’, ‘한드미 관악 빅밴드’, ‘한드미 자연 놀이터’, ‘농촌의 사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한드미 농촌유학센터의 자랑”이라고 했다. 센터의 활성화는 시골 마을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07년 센터 설립 후에 아이들을 따라 귀농한 집만 해도 12곳에 이른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을 곳곳에서는 허름한 집들을 새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부산에서 단양으로 온 지 7년 됐다는 정영광(33) 생활지도교사는 “체험 마을로 쓰던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하는 등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젊은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니 마을에 활력이 넘친다”고 전했다. 센터 직원들은 농촌이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심어 줄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입을 모았다. “도시에 있는 학생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학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그런데 농촌에 오면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풀을 하나 뽑더라도 더 쉬운 방법을 찾게 되고 상상력을 나름대로 동원하게 된다. 이곳은 아이들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놀이터이자 공부터이다.” 단양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배낭 멘 여행길에선 낯모르는 이와 “안녕” 하고 입만 벙긋하는 인사만으로도 말꼬리가 길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아주 사소한 호감부터 “너 지금 행복하니?” 선문답 같은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는 꿈꾸듯 거닐며 수많은 이방인들과 옷깃 스치는 인연을 맺었다. 이를테면 옷깃스침 동행이랄까. 유럽 땅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나는 마냥 행복했다가 돌연 쓸쓸해지고 그지없이 황홀했다가 못내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순간순간을 맞이한다. about ‘동행’ 본 기사는 SJR EUROPE에서 론칭한 ‘동행’ 상품을 따라 여행한 기록이다. 3월27일부터 4월12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총 6개국 18개 도시를 탐방했다. tip 1 동행 상품가 외에 옵션투어 비용, 식비, 자유 여행을 하면서 지출한 교통비와 각종 입장료 등 15박 17일의 현지에서 지출한 여행경비는 120만원 남짓. 기념품 구입 또는 개인 쇼핑 품목이 많을 경우에는 더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tip 2 파리의 라스파일 시장과 몽파르나스 묘지, 뮌헨의 영국정원과 슈바빙, 프라하의 카프카 뮤지엄, 비엔나의 레오폴드 뮤지엄, 베네치아의 리도섬과 부라노섬 등은 기본 투어가 아닌 자유 시간을 활용해 여행했다. 기본 투어에 해당하는 파리, 프라하,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등의 주요 도시 투어 역시 일부 구간 동행 후 자유로이 움직였고, 옵션 투어 가운데 바티칸 시국은 개별적으로 방문했다. France Mont Saint Michel, Paris 파리에서 지도 없이 걷기 기어코 파리. 파리는 독보적이다. 자정 가까이 늦은 밤에 도착한 파리였지만 여행에 앞서 만난 선배의 말이 실감이 됐다. “아마도 네 마음과 부단히 싸우는 여행이 될 거야.” 어디부터 갈까, 뭐부터 할까, 마음은 급한데 결정은 못하고, 그럼에도 파리에서는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여행은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가까이에 위치한 호텔Campanile Maine Montparnasse 로비에서 15박 17일간의 동행들과 만났다. 며칠 전에 도착해 이미 파리에 푹 빠진 이도, 스페인이며 어디며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이도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동행을 태운 버스는 파리를 조금 아껴두고 4시간여를 달려 프랑스의 끄트머리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에 닿았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신성한 산성, 몽생미셸은 노르망디Normandie 해변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바위섬이자 중세로부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수도원이다. 일대는 드넓은 갯벌이다. 바닷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바위섬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워낙에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썰물의 간격이 짧아 많은 이들이 휩쓸려 버린 탓에 ‘몽통브mont tombe’, ‘무덤 산’이란 고약한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8세기 초반의 어느 날, 인근 아브랑쉬Avranches 지역 오베르St. Aubert 대주교의 꿈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예배당을 세울 것을 명령했고, 그후 서서히 모습을 달리한다. 14세기 백년전쟁 때에는 전투 요새로, 18세기 대혁명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 내가 마주한 몽생미셸은 고되고 혼란스러운 노르망디의 역사가 쓸려가고 다시금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밀려오는 축복의 성지다. 그 물살에 실려 동화 속 풍경처럼 아른거리는 몽생미셸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섬 꼭대기의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좁고 가파르지만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호텔과 기념품 가게를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는 짧은 물때를 맞추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하고 먹을 수 있는 이곳의 대표음식 오믈렛과 사과 파이, 발효주 시드르Cidre 등을 즐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선 수도원에서 갯벌 뒤로 어디서부터가 바닷물인지 모를 그저 눈부신 노르망디 해안을 실눈으로 조망한다. 드디어 정말, 파리의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 진작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조식 서비스를 마다하고 향한 곳은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er.’ 카페 홀을 등지고 바깥 거리 쪽 테라스 좌석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으로 파리지엔의 밥상을 받아든다. 그러나 난 이따금씩 꿈꿨다. 저마다의 삶을 일구고 있는 파리지엔들마저 도시의 풍경으로 소비되는 파리에서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 이 도시의 산보객이 되는 순간을. 개인의 삶과 분리하여 도시 자체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한가한 무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소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카페 드 플로르에서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바로 옆 서점에서 발길을 멈춘다. 막 문을 여는 참이다. 출근하는 서점 직원들을 따라 들어가 바바리코트 차림의 백발 할아버지들과 책 구경을 한다. 파리를 담은 사진집 몇 권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감이 이끄는 대로 걷다 ‘라스파일 시장Marche Biologique Raspail’에 이른다.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우리의 오일장처럼, 라스파일 도로변에 장이 선단다. 일요일에는 파리 근교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파는 유기농마켓이 열린다. 운이 좋다. 마침 장날이다. “봉쥬르.” 늘어선 가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싱싱한 인사와 한 손에는 애견,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동네 할머니와의 연속된 조우. 그리고 갖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올리브를 맛보기로 건네는 손길까지 의도치 않게 살가운 일상을 공유한다. 예상치 못했던 진짜 파리지엔의 모습.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몽파르나스 묘지Montparnasse Cemetery에는 안내지도를 들고 명망가들의 묘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시장에서 산 빨간 딸기를 베어 먹으며 보들레르 묘 앞에 마주앉은 나는 잠시 시간여행자로 전환된다. 아, 파리에서의 3일은 턱없이 짧다. 나는 파리를 빠르게 읽기로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튈르리 정원과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그 긴긴 길 위엔 셀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의자가 줄지어 있고 그 위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기대어 있었다. 그날 밤, 중세 파리 투어를 했던 동행 몇몇이 해질녘 몽마르트르에서의 낭만을 안주 삼아 조촐한 와인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장소가 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다음날, 동행들로부터 귀동냥한 정보를 중얼거리며 뤽상부르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 역시 조식 서비스 대신에 공원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크레이프와 커피로 덜 깬 잠을 달랜다. 조깅하는 파리지엔과 이른 아침부터 가이드 뒤를 쫓는 단체여행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까짓것 부지런해져 보지 뭐. 반의반, 그 일부만이라도 보겠다고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으로 갔다. 역시나 나의 관심사는 미술작품보단 ‘오르세’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므로 두어 시간이면 될 거라는 건방진 생각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오르세는 물론 파리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다. 그냥 넋 놓기로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한가운데서 본의 아니게 낯선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몽마르트르의 예술가에게 초상을 맡기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붓 대신 가위를 들고 2~3분 만에 옆모습 실루엣을 종이에 오려 준다는 거리 예술가 앞에 앉았다. 대개 어린 아이들이 재미 삼아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인지 예술가의 손놀림인지 모르겠더라.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민망함을 누르는 동안에 완성된 나의 실루엣. 하나도 안 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탐이 나는 파리에서 마지막은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위에서의 센강 유랑이다. 저마다의 파리를 즐긴 동행들이 하나둘 선착장으로 모여 이야기를 쏟아낸다. 듣는 이는 드물다. 알알이 불씨 오른 에펠탑이 가까워진다. 탄성이나 호들갑 없이 오히려 조용해진다. 파리의 밤이 강물 따라 흘러간다. ▶travie info 동행 프로그램은 여행하는 도시 가운데 주요 도시에서 지식 가이드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는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1일 투어를 기본 일정에 포함하고 있고 파리에서는 2가지의 옵션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옵션 투어는 물론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지식 가이드 투어에도 강제사항은 없다. 개인의 여행 기호를 존중하여 얼마든 자유 여행이 가능하다. route 1. 루브르 박물관+중세 파리투어 샹젤리제 거리→개선문→루브르박물관→중식→시테섬→노트르담성당→최고재판소→콩시에르쥬리→시청사→퐁피두센터→사요궁전(에펠탑 조망) route 2. 오르세 미술관+파리 인상파 투어 오르세 미술관→로댕미술관 정원→몽마르트르 언덕(성심성당, 예술인의 광장, 피카소의 작업실, 물랭루즈(조망))→개선문(샹젤리제) Switzerland Interaken,Luzern,Mürren,Mürren 만년설 위로 반짝이던 하루 파리 유랑을 끝낸 동행들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꼬박 8~9시간 몸을 구겨 잠을 청해야 한다. 다들 오랜 시간의 쪽잠이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세 잠에 빠진다. 조금 깊이 잠들었다 깨어났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낯선 도로 위다. 예상치 못한 거센 눈발로 좀더 안전한 길을 찾아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번 여정은 이 야간이동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라하까지 여정의 절반 이상을 이 버스 한 대로 움직인다. 유럽 배낭인데 유레일이 아니고 버스라니 처음엔 갸웃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시간 이동에 소비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예상보다 한두 시간 늦었지만 무사히 인터라켄이다. 도시락으로 요기한 동행 대부분이 ‘Top of Europe’ 융프라우에 오를 채비를 한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인터라켄에서 나는 과감히 융프라우를 포기했다. 이미 올랐다는 것이 큰 이유였지만 파리 파노라마가 가시기 전 유럽의 지붕 아래서 그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 아쉽게 놓쳤던 청정마을 뮈렌Murren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착지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기 전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홈메이드 스프 한 그릇을 먹었다. 얼마나 내렸는지 눈에 파묻힌 것만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뮈렌에서 단출한 워킹화에 의지하여 곧 미끄러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다. 날쌔게 지나가는 스키어들은 물론 눈썰매 힘껏 지치는 어린 아이들도 탄탄한 기운을 뿜어낸다. 변덕스런 날씨로 여행자 애태우기 일쑤인 그날의 융프라우는 다행히 쾌청했다고 동행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산했다. 오늘은 다들 세상 모르고 잠이 들겠지. 하얀 솜사탕처럼 멀리 뭉게뭉게 겹쳐 있는 알프스 산맥의 품속에서 그만큼 달달한 꿈을 꾸면서. 이른 아침인데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알프스 높은 곳 어디에선가 발을 뗐을 패러글라이더들이 드문드문. 지천이 눈꽃, 상고대로 뒤덮인 산길을 지나 어느새 루체른Luzern이다. 호반 위로 얌전히 뻗은 카펠교Kapellbrucke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고즈넉함을 맛본다. Germany Füssen, Munich 찰나지만 더없이 벅찬 순간 몇 시간 후 국경을 넘어 독일 퓌센Fussen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전후인데 벌써 어둑하니 날씨가 궂다.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동화 속 모습이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상당수 장면의 배경이니 말이다. 성의 일부가 보수공사 중인 데다 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는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라 아랫마을에서 성의 초입까지 짧은 산책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뮌헨으로 방향을 틀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뮌헨Munich은 몹시 차분했다. 물론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는 달랐다. 동행들과 우르르 몰려간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홀답게 사람도, 맥주도, 열기도 거품이 일 듯 넘쳐났다. 뮌헨에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동행들이 삼삼오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파리에서의 3박 4일이 짧다 투덜댄 것이 무안할 정도로 뮌헨에선 아주 잠시 머물렀다. 그래도 슈바빙Schwabing과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의 잔상 때문이었을 게다. 이젠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슈바빙과 영국정원의 모습만은 또렷했다.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 전, 자유로운 3시간이 주어졌다. 호텔 리셉션에서 지도 한 장과 함께 효율적인 동선을 추천받아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곧 멎을 것처럼 숨이 찼음에도 자전거와 유모차가 차례로 엇갈려 지나가고 오리와 거위가 벤치를 돌며 길동무 해주는 영국정원에서 더 깊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킨다. 그리곤 지그재그로 훑어 내려간 슈바빙. 짧아서 아쉬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다. 전혀. 그곳에 내가 존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차기만 한 걸. 찰나일지라도. 다시 올라탄 동행 버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은 눈 깜빡일 때마다 영화 스틸 컷이 된다. 할슈타트로 가는 길이다. 휴대전화로 알림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 네트워크 설정을 알리는 메시지. 버스가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네트워크 설정이 달라진다. 독일 통신망을 잡았다가 오스트리아 통신망을 잡았다가. 이윽고 조용해졌다 싶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그곳, 할슈타트 끄트머리에 있었다. Austria Hallstatt, Salzburg, Vienna 유럽의 작은 마을들을 가다 여전히 하얀빛을 발하는 눈이 마을을 살포시 덮고 있다. 그만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쾌하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 기분. 깜빡 졸다 깨나니 어느새 할슈타트Hallstatt 호수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다. 할슈타트를 포함하여 이 일대를 보통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작은 마을들은 알프스 아래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다.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호숫가로 내달린다. 공기 중엔 감탄만이 존재한다. 떠나오기 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모차르트, 클림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훈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그들이 태동한 마을, 도시, 공간 그 자체였다. 할슈타트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이후 잠깐의 산책이 허락됐다. 호수 가장자리 꽤 경사진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할슈타트의 집들. 집 위에 집, 그 위에 다시 집이 층층이 피라미드를 이룬다. 그런 까닭에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탈 아래 집의 다락방 또는 굴뚝과 눈이 마주친다. 집 앞 정원, 뒤뜰은 물론이고 담장, 벽면, 창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고 손질하는 정성이 느껴진다. 골목길에 맞닿은 벽면에 벤치를 놓은 집들이 많다. 허락 없이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등허리를 기대고 가만히 마을을 관찰한다.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자 허기가 밀려온다. 이미 때는 놓쳤고 아쉬운 대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투박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핫초코 한 잔을 주문한다. 할슈타트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동행 버스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 도착했다. 재빠르게 캐리어를 호텔 방에 밀어두고 저녁나절 동행의 지식 가이드를 따라 나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을 지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까지 단숨에 잘츠부르크 구시가를 가로지른다.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차례로 맛보며 오스트리아 스타일의 만찬을 가져볼까 잠시 고민. 하지만 생선요리를 판매하는 이곳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몇 가지 요리를 포장하고 기차역 안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슈니첼과 케이크, 과일 그리고 와인까지 푸짐하게 장을 본다. 호텔 방 안에 차려낸 배낭여행자의 잘츠부르크식 만찬에 흡족해하며 여행 친구들과 꽤 긴 수다를 늘어놓는다. Czech 에곤 실레 그리고 카프카 할슈타트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좁다란 골목골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하나. 모차르트 엄마 그리고 에곤 실레 엄마의 고향이 각각 할슈타트와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것.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그게 아니다. 두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포인트. 특히나 엄마의 고향 체스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체스키를 표현한 작품도 상당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익은 에곤 실레의 초상과 작품으로 디자인한 전시 포스터들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The Egon Schiele Art Centrum도 있다. 굴라쉬 브런치를 즐긴 다음 그가 걸었을 법한 골목을 따라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동안 자주 걸음을 멈췄다. 가파르기도 했지만 시야가 트이는 성벽길에 접어들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그 너머의 마을 가장자리를 둥그스름하게 에두르고 그 안쪽에 중세의 시간을 간직한 집들이 소복히 모여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마을엔 아늑한 기운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프라하Prague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화약탑, 천문시계, 카렐교까지 프라하 구시가를 동행 매니저의 꼼꼼한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렐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인들을 뒤로하고 다리 난간에 바싹 붙어 프라하 성을 바라본다. 카렐교 건너의 펍에서 벨벳 맥주 한 잔. 부드러운 벨벳 거품이 입술에 닿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그 기쁨은 스쳐 지나갈 뿐이었나. 잔이 빌 때쯤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셈하게 된다. 달게 자고 일어난 프라하의 아침은 지난밤만큼 아름다웠다. 성비투스성당, 황금소로가 이웃하고 있는 프라하 성 일대를 함께 둘러보는 동행 가이드 투어 이후엔 홀로 프라하 시가지를 쏘다녔다.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었음에도 끝내 제 발로 찾아갔다, 카프카Franz Kafka를. 마냥 들뜨고 신나게 보내도 아쉬움 가득할 여행길에서 가슴 철렁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새 나는 카프카 뮤지엄Franz Kafka Museum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닙니다. 꺼져 가는 꿈과 열정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뒤덮인 시간이라는 태양의 갈라진 바닥을-잠수종 속에서처럼-우리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곳은 재미있는 곳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곳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구스타프 야노우호의 <카프카의 대화> 인용문 中 카프카가 남긴 기록을 보는 사이 낭만적이기만 했던 프라하는 한순간에 반전된다. 숨이 턱 막힌다. 달달한 체코 전통빵 뜨르들로Trdlo를 뜯어먹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곧 프라하를 떠난다. 숨 가쁘게 도착한 다음 여정은 비엔나Vienna.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꼭 맛보아야 한다는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에곤 실레와 맞바꾸고 나는 다시금 배고픈 여행자가 된다.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 만난 에곤 실레.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섰다. 에곤 실레의 체스키는 내 기억 속의 그곳보다 훨씬 어둡고 울적했지만 나로선 참 반가운 장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간이 다르고 에곤 실레와 나 사이의 시간 또한 다르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풍경이 있고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의 순간에 감사한다. ITALY Vaticano,Rome,Veneziam,Sorrento,Sorrento,Sorrento 냉정해질 수 없는 이탈리아 여행 오늘 나는 생애 첫 야간열차를 경험한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까지. 꼬박 12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원했던 베네치아에 닿는다. 이번 동행길에서 가장 기대한 곳 중 하나가 베네치아다. 6개의 간이침대가 세 개씩 양 벽면을 의지해 층을 이룬 열차 칸은 비좁았다. 부피 큰 캐리어는 침대 아래 보관함에 들어가지 않아 양쪽 침대 사이에 나란히 줄지어 세웠다. 그 위로 다시 작은 짐들을 포갠다. 이제 열차 칸의 여섯 명은 발 디딜 공간 하나 없이 밤을 달린다. 열악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 모든 것이 야간열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와 단둘이 감행했던 여행이 떠올랐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두근두근했던 그 느낌. 한참 줄을 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슈니첼 한 덩이를 패티로 넣은 버거와 커피 한 병. 자정 가까이 돼서 맛보는 제대로 된 첫 끼니다. 꿀맛. 푸르렀다. 물이 곧 땅인 베네치아Venezia에서는 모든 것이 맑고 푸르렀다. 동행들과 베네치아 본섬 투어에 나섰다. 떠밀리듯 걸을 수밖에 없을 만큼 본섬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 북적임이 베네치아를 더욱 활기 넘치게,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 물결을 따라 조금 멀리 나가 보자. 배에 올랐다. 리도 섬Lido으로 가는 배다. 매년 가을,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섬 리도의 4월은 따사로웠다. 흐드러진 벚꽃과 나뭇가지마다 터져 나온 초록 잎사귀들로 봄기운이 물씬했다. 한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세계의 끝은 낮고도 깊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반짝이는 해변에서 태양 빛을 그대로 흡수한다.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바다 가까이 다가간 아빠, 양동이와 집게를 들고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 파도를 마주하고 앉아 무심한 얼굴로 사과를 베어 문 젊은 연인. 영화와도 같은 삶의 순간들이다. 리도에서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부라노 섬Burano은 색색이 선명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에 데칼코마니 풍경을 찍어내는 부라노의 색채는 바다로 나간 이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집집마다 알록달록 칠을 한 것이 오늘날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 거품이 절반이나 되는 폭신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안녕, 부라노. 안녕, 베네치아.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베네치아의 축복 속에 헤엄치던 나는 어느새 피렌체Firenze 산타마리오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한 마디로 두오모Duomo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두말 할 것 없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곱씹으면서. 찰나에도 시작과 끝은 있다. 조금씩 여행의 끝이 보인다. 동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로마 떼르미니. 악명 높은 떼르미니역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부터 동행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돈다. 마지막 여행지니 모두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지. 주변을 살피고 짐 가방 단속도 단단히 한다. 이제 로마Rome의 법을 따를 시간이다. 이튿날 아침, 로마의 여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맛있게 먹었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을 시작으로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나보나 광장까지 세상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의 중심을 통과한다. 촌스럽게 무슨 동전 던지기를 하냐고 피식 비웃었던 나는 어둔 밤 조명 밝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앞에서 슬그머니 동전을 꺼내들었고, 칠칠치 못하게 거리에서 무슨 젤라또를 날름거리냐고 흉봤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맛있다는 젤라또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테베레강 건너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마을에 이르러서야 느긋한 한때를 보낸다. 중세로부터 이어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라고 했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라도 동네 어귀 작은 카페며 레스토랑 어디엘 들어가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피와 피자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웬만한 부침개보다 훨씬 큰 피자 한 판도 머릿수대로 주문하는 것을,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는 와인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 틈에서 매끄러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훅 들이킨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과 노천카페가 테두리를 만들고 있는 광장으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진다. 조바심쟁이가 모처럼 너그러워진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나폴리 항을 곁눈질한 끝에 도착한 폼페이Pompeii에서는 그 폐허 위로 핀 들꽃처럼 가슴 뛰는 생명력을, 아말피 코스트Amalfi Coast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쏘렌토Sorrento에서는 나른해서 더 달콤한 지중해 마을의 여유로움을 삼킨다. 꿈은 아니겠지. 마지막은 아니겠지. 바티칸에서 뜻밖에도 새로이 선출된 교황님의 알현식을 마주하기도 했으니 이번 여행, 정말 제대로다. 떼르미니역에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Leonardo Express 열차를 타고 도착한 로마 피우미치노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노트북 전원을 켠다. 사진 폴더 안에 새로이 추가된 이미지 파일만 3,000장. 힘들었던 기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간순간이 애틋하게만 기억되는 동행. 나는 지금 또다시, 더없이, 여행을 안달하고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SJR EUROPE www.sjreurop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삽자루의 유럽 ‘동행’ 15박 16일 2013년 SJR EUROPE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배낭여행. 파리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끝나는 15박 16일의 여행 프로그램으로 항공권은 개인의 기호와 예산에 맞게 선택, 자연스럽게 동행 일정 전후로 자신만의 여행 일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일정 내내 전문 지식 가이드 출신의 인솔자가 동행하여 주요 도시에서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한편 여행자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여행 정보와 노하우는 물론 충분한 자유 일정을 지원한다. 함께하는 낭만과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동행의 가장 큰 매력.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퓌센, 할슈타트, 체스키 등 자유 여행에서는 가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를 경유하는 것도 동행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 더욱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를 위해 남부지중해 투어, 바티칸 투어 등 다양한 옵션 투어도 마련해 두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여행자 또는 안전과 도시간 이동에 부담을 느끼는 여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상품이다.
  • [사설] 지자체들, 디트로이트市 파산에서 교훈 얻길

    미국 디트로이트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근년에 그 도시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디트로이트가 결국 185억 달러(약 21조원)의 빚을 견디지 못해 엊그제 미시간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한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의 파산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우선, 방만한 재정의 비참한 말로다. 디트로이트는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모노레일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돈을 썼다. 돈이 없다 보니 지방채, 중앙정부 보증채 등 빚을 마구 끌어다 썼다. 지난해 우리나라 지자체 채무는 27조 1252억원이다. 5년 전보다 50% 가까이(8조 9000억원) 급증했다. 72조원을 넘어선 지방공기업 부채 등을 합치면 지방채무는 100조원에 육박한다. 인천(35.1%), 대구(32.6%), 부산(30.8%) 등은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이미 ‘주의’(25%) 단계를 넘어섰다. 디트로이트를 파산으로 몰고 간 직접적 원인은 과다 부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미래 청사진의 부재가 자초한 결과다. 한때 200만명이었던 디트로이트 인구는 70만명으로 급감했다. 호황기 때의 고임금과 복지 수준을 견디다 못한 기업들은 떠나갔고, 일본·독일차 등의 부상으로 미국 차산업 자체도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는 인구 감소와 세수(稅收) 감소 등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도 디트로이트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 유치 경쟁력과 재정여건에 기반한 중장기 청사진 없이 당장 눈에 보이는 도로 공사나 주민들에 대한 선심 행정에 매달리고 있는 국내 지방정부들은 디트로이트의 파산 소식에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지방정부가 파산하는 제도는 없다. 하지만 사실상 파산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천시는 한때 공무원 월급을 주지 못했고, 경기 성남시는 판교신도시 개발사업과 관련해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다. 디트로이트의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채권자들의 자산이 깎이고 일부 공무원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고통을 맛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방재정 정보 공개 확대 및 지방공기업 부채 합산통계 계획 등을 차질 없이 이행해 사전 감시를 강화하고 이상조짐이 엿보이면 즉각 경보 발령과 함께 강제적 자구 노력을 주문해야 한다. 지방공기업 부채 감축도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 부산① 해운대 어데까지 가봤노?

    부산① 해운대 어데까지 가봤노?

    ‘해운대’라는 이름에 오버랩되는 백사장과 파라솔의 향연 말고, 즐비한 횟집과 술집, 으리으리한 호텔들로 병풍을 둘러친 거리 말고, 해운대 어디까지 가봤나요? “이것 한번 잡숴봐” 해운대시장 해운대 앞 대로로 5분 정도만 걸어 나오면 왼편의 한 골목을 자치하고 있는 재래시장이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부산스러운’ 시장의 느낌만은 오롯한 곳. 골목 끝에 자리한 손바닥만한 공간의 수선집이나, 우뭇가사리 묵을 콩국에 말아 후루룩 먹고 떠나는 시장 상인의 모습에 정감이 넘친다. 배덕광 해운대구청장이 극찬했던 선술집 ‘봉자네’는 지역 토박이들도 손에 꼽는 애주가들의 방앗간. 값도 싸지만 인심도 푸근해서 자주 찾는 곳이다. 주소 부산 해운대구 중1동 1394-193 문의 051-746-3001 한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을 가득 채우는 파라솔이 아니더라도 화려한 축제가 끊이지 않는 해운대는 밤이건 낮이건, 여름이건 겨울이건 언제나 생생한 기운으로 와 닿는 곳이었다. 으리으리한 건물들과 잘 짜여진 도시의 면모는 몇년 전 해운대 방문 때보다 더 화려해졌다. 호주의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했다는 영화의 전당, 번쩍번쩍 눈이 부신 센텀시티의 건물들, 해운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모습이었다. 사람과 건물이 넘쳐나는 도시. 그러나 센텀시티의 높은 건물들을 쿨하게 지나친 차는 해운대해수욕장도 송정해수욕장도 아닌 복작복작한 시장, 혹은 호젓한 소나무 숲길, 작은 포구 마을에 멈춰섰다. 방금 전까지 건물이 빽빽한 도심 속을 달려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무언가. 정말 해운대의 모습이 맞단 말인가. 내 편견을 깨 버린 해운대가 거기 있었다. 해운대포구여행 부조화 속의 조화, 삼포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는 와우산 자락에 위치한 삼포. 그중 청사포다. 등 뒤로 도시의 번잡함을 외면한 마을에는 멀리 등대 두 개, 횟집과 조개구이집 그리고 이국적인 카페가 한풍경을 이루고 있다. “여기가 내가 처음 부산에 와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곳이에요.” 동행한 해운대구청 박영희 주무관의 말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포구의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에 빨갛고 하얀 등대 두 개가 화룡점정이다. 옛날에는 횟집밖에 없었다는 이 작은 어촌마을은 그래서인지 요즘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는 중이라고. 횟집 사이에서 별스러움을 뽐내는 카페는 한편으론 이상하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다. 부산에 왔다면 청사포 조개구이를 먹어 봐야 한다. 사실은 이곳에는 횟집이 더 많았었지만 언젠가부터 조개구이집이 유행처럼 늘어났다. 청사포 왼편으로 늘어선 조개구이집들은 밤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 자글자글 조개 굽는 재미에도 그렇겠지만 달빛 은은한 어촌 마을 밤 풍경이 발길을 유혹하지 않았을까! 또 다른 포구인 구덕포는 송정해수욕장의 오른편에 자리한 어촌마을. 듬성듬성 앉은 나지막한 집들과 홀로 생뚱맞게 자리를 잡고 있는 높은 건물…. 레저를 즐기는 사람도 많고 자동차들도 많은 송정해변과 더욱더 비교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가만히 서서 바라보니 구덕포는 송정해변과 해변 끝에 있는 죽도 공원까지 한눈에 보일 만큼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레저 관광을 테마로 구덕포 한 쪽에 해양레저콘트롤하우스를 짓는 중이라고. 사람이 많이 찾는 포구를 찾는다면 단연 미포다. 미포 가는 길은 울산과 부산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이 지나가는 철로를 끼고 있어 기차 건널목 특유의 표식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곧 신시가지로 철로가 옮겨가지만 아직까지는 철커덩철커덩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기차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마음이…> 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이용되었고 덩달아 관광객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미포로 접어들어 포구 가까이 다가가면 건물들과 배가 한눈 가득 들어온다. 오륙도로 떠나는 유람선과 고기잡이배, 노점을 펼쳐놓은 할머니, 복잡하지만 활기찬 어촌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 안에 맺혔다. 달맞이고개 탐방 밤에도, 낮에도, 언제라도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송정해수욕장을 향해 만을 따라가는 달맞이길에는 여기저기 멋진 장소와 풍경이 자리했다. 오래 전부터 부촌이었던 이곳엔 갤러리들, 스튜디오와 레스토랑 등이 길 안쪽에 빼곡하다. 언덕 초입에 있는 갤러리 몽마르트르의 박덕남 부관장의 말에 따르면 갤러리 방문객이 한 달 평균 200~300명에 달한다고. 맥화랑의 장영호 대표 또한 사람들이 운동복을 입고도 갤러리를 찾아온다며 갤러리가 친숙해지는 것 같아 기쁘단다. 그래서 더 다양한 전시와 강좌를 준비하며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런 변화는 갤러리 자체의 노력도 있겠지만 해운대구가 달맞이길에 10년에 걸쳐 나무데크 인도를 설치한 것도 그 영향이 크다. 올해 3월 완공한 이 길 덕분에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달맞이길 아래로 총 2.2km의 산책로를 만들어 달빛을 받으며 걷는 ‘문탠로드’를 개발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름에 걸맞게 밤 11시까지 불을 밝혀 숲길임에도 늦은 밤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달맞이길에서는 해운대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들도 많다. 그중 해월정은 달맞이 고개 언덕 위에 있는 팔각정으로 공원, 카페 등이 모여 있는 길목에 위치해 찾아오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2005년 APEC 개최 기념으로 세운 해마루도 있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해 탁 트인 바다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달맞이 고개를 넘어 송정해수욕장의 끝 죽도공원에 있는 송일정까지 길따라 차례로 만나게 되는 이 세 곳의 팔각정에서는 오륙도는 물론, 날이 맑으면 대마도까지 관찰할 수 있다. 좀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달맞이고개 곳곳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찾는 것도 좋다. 유리외벽으로 전망이 좋아 친구나 연인끼리 많이 찾는 메르씨엘 레스토랑뿐 아니라 길을 따라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들어서 있어 다양한 맛의 커피도 즐길 수 있다. 글 차민경 기자 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해운대구청 www.haeundae.go.kr ▶travie info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서머 패키지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은 7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Summer Fun+패키지’를 운영한다. 숙박객들은 아이리얼 파크, 신세계 센텀시티 스파랜드, 부산시티투어버스 중 하나를 즐길 수 있다. 2박 이상일 경우 케이크 만들기, 샌드위치 만들기 등의 실내 프로그램과 야경코스를 돌아보는 ‘달을 향해 하이킥’, 이기대-오륙도를 트레킹하는 ‘오륙도 상륙작전’, 태종대를 둘러보는 ‘왕의 정원을 찾아라’ 등 야외 프로그램 중 한 가지를 이용할 수 있다. 야외 프로그램은 체험 프로그램 전담팀 FaCeFun, Activity, Cool, Entertainer가 동행해 체험을 돕는다. 가격 객실 22만~51만원(세금, 봉사료 별도). 해운대 해변을 이용할 때 파라솔과 선베드, 즉석카메라를 선착순으로 대여해 준다. 문의 051-749-7001 www.echosunhotel.com 반짝반짝 빛나는 티파니21 육지에서 바다를 보는 것과 바다 위에서 육지를 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 특히 저녁시간, 불빛이 반짝이는 광안대교를 먼 바다에서 즐기는 것은 압권이다. 높이 솟은 센텀시티는 낮보다는 밤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 티파니21은 하루 네 번 운항한다. 투어는 시간대에 따라 런치·쿠키·디너·나이트로 나뉘며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항로는 비슷하지만 런치·쿠키 투어에는 오륙도 투어가 포함되어 있다. 요금 런치(낮 12~2시) 6만6,000원, 쿠키(오후 3시30분~5시) 4만4,000원, 디너(오후 7~9시) 9만9,000원, 나이트(밤 10시~자정) 7만7,000원. 문의 1577-7721 www.coveacruise.com ●mini interview┃송정 윈드서핑 서핑학교 서미희 대표 바람을 부르는 바다 “송정이 얼마나 좋은 서핑포인트인데요.” 송정 최초의 서핑학교인 ‘송정 윈드서핑 서핑학교’의 서미희 대표는 말했다. 파도가 아주 높은 곳은 아니지만 중급자나 초급자에게 이만한 바다도 없다고. 보통 서핑 하면 외국만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송정은 동해와 남해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여름에도, 겨울에도 바람이 계속 불어 1년 365일 서핑을 즐길 수 있다고. 실제로 아직 해수욕장이 개장하지 않았는데도 송정 바다에서는 서핑, 카이트 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미희 대표는 우연히 송정바다에 들렀다가 서핑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을 보고 송정의 가치를 발견한 뒤 17년째 송정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는 서핑이 자주 방송에 노출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고. 서미희 대표가 운영하는 송정 윈드서핑 서핑학교에서는 서핑강습뿐만 아니라 장비 일체를 대여해 준다. 송정 윈드서핑 서핑학교┃주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711-9 문의 051-704-0664 surfschool.co.kr
  • 동화같은 기차여행

    동화같은 기차여행

    동화같은 기차여행 시속 300km의 고속철도가 등장했어도 여전히 기차여행은 낭만으로 통한다. 철길 소리를 들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그런 낭만이 그리워질 때쯤 O-train과 V-train에 몸을 실었다. 기차 타고 수채화 속으로 명절마다, 방학마다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친구들과 달리 내게 기차는 언제나 ‘여행’이었다. 당연히 항상 설렘을 동반했다. 부산으로 가는 KTX에 처음 올랐을 때처럼,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춘천행 ITX청춘열차를 탔을 때처럼 기분 좋은 기대감을 안고 아침 일찍 O-train중부내륙순환열차에 올랐다. 코레일의 첫 번째 관광전용 열차로 탄생한 O-train은 중부 내륙 3도강원·충북·경북 257.2km를 동그랗게 하나로 잇는 순환열차다. 과거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의 대동맥 역할을 했던 중부내륙 철도는 경제발전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내륙지방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높다. O-train은 다람쥐를 닮은 동글동글한 외관과 유럽 특급관광열차처럼 꾸민 목조 느낌의 객실로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창밖 풍경과 마주하고 앉을 수 있는 전망석부터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도록 좌석마다 설치해 둔 콘센트까지 여행객을 위한 소소한 배려가 엿보였다. 도시락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목적지인 경북 봉화 분천역에 도착했다. 체르마트를 닮은 분천 “외국에서 왔어요?” 분천역 앞에서 고운 얼굴의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네신다. 마을에서 못 보던, 카메라를 들고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은 젊은 처녀가 신기하셨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 2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분천역 인근 마을에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시골마을의 작은 역사는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 이벤트의 주인공이 분천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깨끗한 강과 산, 소박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 스위스 풍으로 곱게 꾸며진 역의 모습도, 정답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주민들의 포근한 표정도, 작은 시골길을 걷는 고양이의 뒷모습도 모두가 그림 같았다. 분천역은 O-train과 V-train백두대간협곡열차의 환승역이다. 분천역에서 갈아탄 V-train은 중부내륙지역 백두대간 협곡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분천·양원·승부·철암 27.7km을 하루 3번 왕복 운행한다. 바깥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시속 30km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디자이너인 펠릭스 부코브자Felix Boukobza의 작품인 백호 무늬의 기관차와 진달래색 열차의 앙증맞은 모습은 동화 속 기차를 탄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열차가 출발했다. 철커덕~ 철컥, 철커덕~ 철컥…. 정겨운 기찻길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창을 통해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밖으론 수채화 같은 풍경이 쉼 없이 펼쳐졌다. 작은 터널을 지날 땐 열차 안을 수놓은 귀여운 야광별 스티커가 반짝반짝 빛났다. 어릴 적 꿈꿨던 기차여행이 이곳에 현실이 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시골역 V-train의 다음 기착지는 양원역. 양원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다. 1955년 영동선이 개통됐지만 양원역 인근 원곡마을에는 역사도, 기차도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분천역 또는 승부역에 내려 양원까지 걸어와야 했다는 것. 장날에는 주민들이 달리는 기차 밖으로 무거운 짐을 던지는 바람에 원곡마을 인근 기찻길을 따라 짐이 수북하게 쌓이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고. 불편함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정부에 청원을 넣었고 마침내 개통 33년 만인 1988년, 양원에도 기차가 정차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양원역은 그 당시 주민들이 직접 지게를 지고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분천역에서 출발한 V-train의 종착역, 철암역에 도착했다. 역 인근 탄광문화마을에는 천변에 시멘트 기둥을 박아 세운 ‘까치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태백시는 광산 개발 당시의 생활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 건물 11동의 외형을 보존하면서 내부는 미술관으로 꾸미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루 15~20명밖에 찾질 않던 마을이 V-train과 O-train이 생긴 뒤로 주말이면 400~500명이 찾을 만큼 활기를 찾았다고 한다. 관광열차는 여행객들의 낭만을 실어 나르고 여행객들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었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www.korail.com, 스위스정부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레일유럽 한국사무소 www.raileurope-korea.com ▶travie info 오-트레인 패스 O-train·V-train 및 연계 노선 일반 열차를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 1일권 어른(만 26~54세) 기준 5만4,700원. 청년(만 14~25세)과 시니어(만 55세 이상)는 30% 할인, 어린이(만 13세 미만)는 50% 할인해 준다. 사용개시일 12일 전부터 여행 당일까지 구입할 수 있으며 명절(설·추석) 기간에는 사용할 수 없다.
  • [주말 인사이드] 비전문가의 색다른 시각 ‘깨알같은 아이템’ 대박…창조적 쇼핑을 이끌다

    [주말 인사이드] 비전문가의 색다른 시각 ‘깨알같은 아이템’ 대박…창조적 쇼핑을 이끌다

    남성용 가슴노출 방지밴드, 종이에 쓴 대로 스마트폰에 옮겨주는 스캐너펜, 바늘이 없는 손목시계…. 소셜커머스에서 날개돋친 듯 팔린 아이디어 상품들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한 전자상거래인 소셜커머스는 1~7일간 한정된 수량의 상품을 파격적인 할인가로 제공한다. 국내에는 2010년 처음 들어왔는데 무서운 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온라인쇼핑협회에 따르면 쿠팡, 티몬, 위메프, 오클락 등 4대 소셜커머스 업체의 시장 규모는 2010년 500억원에서 지난해 2조원으로 2년 동안 무려 40배 성장했다. 협회는 2014년에는 3조 7500억원 이상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불황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소셜커머스의 성장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태어난 지 3년밖에 안 된 소셜커머스 업계는 벌써부터 기성화를 걱정하고 있다. 취급하는 상품이 3000~4000개로 늘어나면서 옥션, G마켓과 같은 인터넷쇼핑몰과 비슷해져 간다는 자기반성이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고민 끝에 지난 1월 신채널팀을 꾸렸다. 소비자들의 눈이 번쩍 떠질 만한 신선하고 재미있는 거래(딜), 창조적인 쇼핑을 선보이자는 취지였다. 신채널팀에는 상품을 기획해 본 경력자가 거의 없다. 잘 팔릴 만한 물건을 찾아서 판매대에 올리는 상품기획자(MD)를 소셜커머스 업계에선 큐레이터라고 부른다. 한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작은 웹과 모바일의 특성상, 상품을 고르고 전시하는 역할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쿠팡 신채널팀의 이진원 팀장을 비롯한 12명의 팀원 가운데 큐레이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정승화 대리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신입사원, 관리직, 시스템기획자 등으로 전문적인 쇼핑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지난 5월 팀에 합류한 전성웅씨는 인터넷 쇼핑을 한 번도 안해 본 중견 건설사 자재구매 담당 출신이다. 전씨는 19일 “물건은 꼭 직접 만져보고 사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인데 신채널팀에 온 지 두 달 만에 편리하고 재미있는 인터넷 쇼핑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했다. 팀을 비경험자 위주로 꾸린 것은 ‘고객의 눈’으로 상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함경범 대리는 “소비자와 다를 바 없는 비전문가들은 전문 MD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상품도 발굴해내곤 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신채널팀 직원들은 쇼핑 카테고리를 식품, 패션, 화장품 등으로 나누지 않는다. 누구든지 어떤 상품이든 찾아서 기획할 수 있다. 팀원들은 ‘하나의 틀’에 가둬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니플하이드’는 신채널팀의 초대박 상품 중 하나다. 여름철 남성들이 티셔츠 한 장만 입으면 가슴 부위가 도드라지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곤 하는데, 이를 가려주는 밴드 상품이다. 함 대리는 지난 5월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의 게시판에서 니플하이드를 처음 알았다. 그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남성의류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은품 식으로 끼워 주던 것이었는데 쇼핑몰 사장을 찾아가 정식으로 팔아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딜에서 준비한 수량 2000개가 모두 팔렸다. 남성들은 물론이고 애인이나 남편 선물로 사려는 여성고객에게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달 초 내놓은 패션팔찌 ‘H7’은 신채널팀이 직접 기획해서 브랜드를 만들고 제작한 상품이다. 여름철 액세서리로 매듭팔찌가 유행인 점을 노렸다. 정 대리는 “취미로 팔찌를 만드는 친구가 있어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며칠 밤을 지새워 만들게 했다”며 웃었다. 팔찌는 4500여개가 판매됐다. 남성 캐주얼화인 ‘보트아일랜드’ 역시 신채널팀이 운동화 제작업체를 직접 찾아가 만든 브랜드로, 매번 딜마다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상품이다. 바늘 없는 시계 ‘밸룩’은 부산의 중소기업박람회에서 찾아낸 아이템이다. 신채널팀은 품질이 우수하지만 판로가 마땅치 않은 알짜 중소기업 상품을 찾기 위해 전국의 박람회 전시장을 돌아다닌다. 시침과 분침이 없는 밸룩은 액정화면을 터치하면 ‘타임라이트’라고 부르는 불빛 2개가 나타나 시간을 알려주는 패션시계다. 스마트폰 충전기로 충전하는 특허제품이다. 이달 초 쿠팡에서 처음 소개돼 500개 이상 팔렸다. ‘롤롤펜’은 종이에 쓴 글과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스캐너펜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잘 주목받지 못하던 것을 가져와 판매했다. 틈새 아이디어 상품으로 350여개가 팔렸다. 칫솔모에 치약이 코팅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일회용 칫솔 ‘이지칫솔’도 신채널팀이 처음 취급했던 상품이다. 함 대리는 “호텔과 병원에서도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인데 업체 측에서 판로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특허를 받은 지 3일 만에 쿠팡에서 판매해 인지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말했다. 창의적인 상품은 어떻게 찾아낼까. 신채널팀은 일반 회사원이 들으면 부러워할 법한 일과를 보낸다. 하루종일 이들이 하는 일은 ‘서핑과 쇼핑’이다. ‘부장님’ 눈치를 보며 몰래 하는 일이 아니다. 당당한 공식업무다. 국내외 블로그나 해외 쇼핑몰, 인터넷 오픈마켓을 돌아다니며 재미있는 상품을 찾아낸다. 그런 다음 각자 한 개씩 최고의 상품을 정하고 상품 설명을 한줄로 적은 뒤 12명 팀원이 모두 점수를 매긴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상품은 회의를 거쳐 판매 여부가 결정된다. 아무리 재미있는 상품이라도 잘 팔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신채널팀 직원들은 해맑게 웃으며 “우리는 매출의 압박에서 자유롭다”고 입을 모은다. 새롭고 신나는 쇼핑을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이지, 매출을 많이 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상품이 실제 우수한 실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쿠팡 본사 7층의 신채널팀 사무실 벽에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 의류, 패션잡화, 생활주방 등 쇼핑 카테고리에서 신채널팀이 기획한 상품이 매출 1위를 기록하면 상품과 팀원의 이름, 한마디가 전시된다. 팀원들은 올해 안에 벽면이 가득 채워질 것 같다며 기대했다. 신채널팀의 또 다른 임무는 팀 바깥 직원들의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이진원 팀장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상품을 기획하는 신채널팀은 사내 다른 큐레이터들의 경쟁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이 더 분발하고 신선한 아이템을 찾을 수 있도록 자극한다는 면에서 신채널팀은 쿠팡의 ‘활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즐거운 놀이도 일이 되면 싫어지게 마련이다. 양혜정씨는 “쇼핑을 좋아하지만 하루종일 상품을 찾다 보면 질리기도 한다”며 “그럴 때에는 밖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신채널팀은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가서 한강 둔치에 둘러앉아 회의를 겸한 나들이를 하곤 한다. 한 달에 한 번 팀워크를 다지는 ‘쿠요일’에는 다같이 모여 여가시간을 즐긴다. 지난달에는 코스트코, 이마트트레이더스, 빅마켓 등 3대 창고형 할인마트를 찾아가서 3곳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피자를 먹으며 진지하게 맛을 비교,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의 방식도 독특하다. 신채널팀은 매일 오전 ‘회고의 시간’을 가진다. 어제 판매된 상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과 매출을 점검해보고 개선방향을 찾는 다소 무거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힐링캠프’가 시작된다. 팀원이 각자 맡은 주제로 짧은 발표를 하는 것이다. 정 대리는 “뉴스 스크랩부터 나의 쇼핑일기, 연예가 소식, 건강운동법 등을 브리핑하면서 아이디어 발굴에 도움을 주고 받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1월 파일럿 조직인 ‘태스크포스’(TF)로 출발한 신채널팀은 지난 3월 그 성과를 인정받고 정식 팀으로 자리 잡았다. 연말에는 팀 전체가 미국 올랜도 디즈니랜드에 놀러갈 꿈을 꾸고 있다. 김 사장이 ‘고객에게 재밌고 쉽고 행복한 쇼핑을 선사한다’는 사훈을 가장 잘 실천한 사원 또는 팀에게 포상여행권을 주기로 한 때문이다. 이 팀장은 “다른 인터넷쇼핑몰과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고 고객들에게 특별한 쇼핑 경험을 줄 수 있도록 거듭 새로워지겠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그분의 정치投, 먹먹한 감동投, 배꼽티 섹시投… 시구 속 사회

    [주말 인사이드] 그분의 정치投, 먹먹한 감동投, 배꼽티 섹시投… 시구 속 사회

    시구(始球)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기에서 유명 인사가 던지는 공이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매 경기 시구를 한다. 꼭 유명 인사가 시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시구는 프로야구 경기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19일 포항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시구자로 ‘다둥이 가족’ 김경헌씨의 아홉 자녀가 동시에 9명의 포수에게 공을 던져 큰 박수를 받았다. 시구에 숨어 있는 사연을 알아봤다. 잠실을 홈으로 쓰고 있는 LG. 시구자가 유명해지는 경우가 늘면서 연예인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시구자 중 절반 정도는 구단이 아닌 기획사에서 먼저 연락한 경우다. LG는 한 달 전에 시구자 섭외를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인지도와 야구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구자를 고른다. 시구자는 경기 시작 1시간~1시간 30분 전 도착해 실내연습장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는다. 당일 선발을 제외한 투수들이 번갈아가며 투구 자세와 공 던지는 법 등을 설명한다. 시구를 마치면 유니폼 상의와 모자, 프리미엄 좌석(4석)을 선물로 받는다. 엄순홍 LG 마케팅팀 과장은 “연예인이 시구를 한다고 해서 특별히 구단 가치가 높아지거나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라며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연고 구단은 향토기업 인사나 팬들을 시구자로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욱 롯데 홍보팀장은 “연예인들이 시구를 위해 부산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다양한 지역 인사로부터 시구 요청을 받는데, 공익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KIA는 네임데이 행사가 펼쳐지는 경기에서는 관계자들에게 시구를 맡기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대학교의 날’로 지정된 경기에서는 총장이나 학생회장이 시구를 하게 한다. 지역 단체장이 시구를 희망하면 소정의 기부금을 받은 뒤 연말 성금으로 활용한다. 허권 KIA 홍보팀 차장은 “시구자로 선정된 일반인들은 경기 전 1시간가량 구단과 함께하면서 우리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상 첫 시구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있었다. 오쿠마 시게노부 전 일본 총리가 1908년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미프로야구(MLB) 연합팀과 와세다대와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와세다대를 설립한 그를 예우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2년 뒤인 1910년 윌리엄 태프트 당시 대통령이 워싱턴 구장에서 첫 시구를 했다. 당시 시구는 마운드가 아닌 관중석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첫 시구의 주인공도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삼성-MBC전에서 시구자로 나섰다. ‘각하’의 경호는 삼엄했다. 야구장 화장실과 더그아웃, 그라운드에도 경호원이 배치됐고, 구심의 공 주머니까지 수색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의 ‘행차’가 너무 요란했던 탓일까. 이후 대통령의 시구는 많지 않았다.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만이 마운드에 섰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잠실 삼성-LG전 개막전에서 시구하는 등 세 차례나 야구장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올스타전에서 한 차례 ‘깜짝’ 시구를 했다. 참고로 미국은 태프트 전 대통령 이후 지미 카터를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개막전이나 올스타전, 월드시리즈에서 시구를 했다. 개막전이 갖는 무게감 때문인지 이후에도 시구는 ‘묵직한’ 관료와 단체장이 맡았다. 1983년 개막전(잠실 OB-MBC전)은 이원경 당시 체육부장관이 시구를 했고, 이듬해부터는 체육부차관과 서울·인천·대구·부산·광주시장 등이 돌아가며 마운드에 올랐다.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가 시구한 것은 ‘프로야구 정치학’을 함축한다. 하지만 1989년부터 시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강수연이 4월 8일 광주 빙그레-해태 개막전에서 연예인 최초의 여성 시구자로 나선 것. 김집 당시 체육부장관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와 환호를 받았다. 같은 날 잠실에서 열린 MBC-OB전에서는 OB베어스 1호 성인 회원 이국신씨가 나서 시구자의 지평을 일반인으로 넓히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연예인 시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 팬이나 장애를 이긴 감동 사연을 가진 인물들도 종종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반면 축제 성격이 강한 올스타전에서는 처음부터 연예인들이 시구자로 나섰다. 1982년 7월 1일과 3~4일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배우 이경진과 정애리, 정윤희 등 당대의 인기 스타들이 차례로 시구를 했다. 남성 연예인 중에서는 신성일이 1984년 올스타전에서 첫 시구자의 영예를 누렸다. 한국시리즈 시구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피터 오말리 LA 다저스 전 구단주다. 그는 1982년 한국시리즈 4차전과 198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각각 시구를 했다. 박찬호와 서재응, 최희섭, 류현진이 잇달아 입단한 다저스는 이때부터 한국 야구와 인연을 맺었던 것. 톡톡 튀는 시구자도 많다. 1984년 올스타전에는 부녀자 멀리던지기 대회 우승자인 박정일씨가 초청받았고 1989년 올스타전에는 물구나무서기 세계기록보유자 신동묵씨가 선정됐다. 2001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프로야구 원년 개막일 출생자 유연희, 김인재씨가 마운드에 올랐다. 2006년 개막전(문학 현대-SK전)에서는 8살에 인하대에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송유근군이 시구를 했다. 가장 심금을 울린 시구는 2001년 잠실 두산-해태 개막전의 애덤 킹(한국명 오인호)일 것이다. 킹은 뼈가 굳고 다리가 썩는 선천적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된 아홉 살 소년이었다. 그러나 티타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마운드에 올라온 뒤 씩씩하게 공을 뿌려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배우 홍수아, 모델 이수정 등은 선수 못지않은 멋진 폼으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공을 꽂아넣는 ‘개념 시구’로 인기를 끌었다. 손연재와 양학선, 신수지는 체조 기술을 응용한 동작으로 와인드업을 해 큰 갈채를 받았다. 특히 신수지의 ‘백일루션 시구’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골퍼 장하나 등 다른 종목 프로 선수들의 시구가 늘고 있다. 1992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했던 김사율 당시 감천초 야구선수는 지금 롯데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자라면, 특히 연예인이라면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한 심리. 그러나 몇몇은 노출이 너무 심한 의상으로 마운드에 섰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5월 3일 잠실 두산-LG전에서 가수 클라라는 배꼽이 보이도록 짧게 줄인 두산 유니폼과 하반신 각선미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고 마운드에 올라 남심을 흔들었다. 레이싱모델 윤승연도 2011년 핫팬츠에 상의가 절반가량 드러난 옷을 입었고, 중국 배우 장쯔이는 시구 도중 의도치 않게 속옷을 노출하고 말았다. 시구자가 결석한 경우도 있다. 2004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로 예정됐던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경기가 임박해서 불참을 통보했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에 따른 대책회의가 시급하다고 해명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부랴부랴 대체자를 수소문했고 전년도 한국시리즈 7차전 시구자였던 배우 박정아를 섭외했다. 덕분에 박정아는 한국시리즈 두 경기 연속으로 시구를 한 유일한 인물로 남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新 대한민국 24시] (1)제주 신풍속도

    [新 대한민국 24시] (1)제주 신풍속도

    대한민국의 하루는 바삐 돌아간다. 24시간이 모자란다. 누구라 할 것도 없다.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매우 역동적이다. 새로운 풍경은 사회 트렌드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바꾼다.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많다. 이를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 ‘신 대한민국 24시’를 주 1회 게재한다. #풍경 하나 “이 더위에 왜 길을 나서느냐고요?” “당신도 한번 걸어 보세요 스스로 행복해진답니다.” 요지경이다.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4~5시간 걸어 보란다. 그러면 행복해진다니. 태양이 작렬하는 7월의 제주섬에는 올레꾼들이 넘쳐난다. 오직 걷기 위해서 돈 써 가며 비행기 타고 제주에 온 사람들이다. 이해불가다. 하지만 무작정 간세다리(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어)처럼 걸어 보란다. 그것도 혼자서. 그러면 왜 제주 올레길이 행복한 길인지를 스스로 알게 된다고….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고 다들 행복해했다. 불 같은 7월. 사람들은 연신 땀을 훔치며 기꺼이 올레길을 걷는다. 푸른 바다와 오름, 곶자왈 숲을 따라 살포시 펼쳐지는 제주의 속살에 모두들 열광한다. 걸음걸음을 뗄 때마다 내 안에 쌓이고 쌓였던 무언인가가 눈녹듯 사라져 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치유’라고 불렀다. 내 안의 상처를 걷어내자 내면은 깊이를 더해 갔다. 어디 올레꾼들만 행복할까. 올레길 마을 제주섬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던 올레길 주변 동네 구멍가게는 다시 문을 열었다. 소박한 시골집은 ‘할망민박’이란 이름을 달았고 할망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절정으로 치닫는 여름. 올레길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올레길에서 만나 서귀포 작은 포구에 신혼집을 차린 그들은 여전히 행복한지….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올레길을 찾았던 어머니의 허한 가슴은 아직도 여전할까. 실연의 아픔으로 올레길에서 눈물을 떨구었던 젊은 도시 여자는 다시 사랑하게 됐을까. 직장을 잃은 막막한 마음을 올레길에 쏟아냈던 50대 가장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까.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한 해 200만명이 자신들의 사연을 올레길에 쏟아낸다. 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은 “올레길은 세상사에 상처받아 치유받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친구 같은 존재”라며 “올레길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제주는 올레가 대세다. 아직도 ‘치유의 길’ 제주 올레 한번 걸어 보질 않았나요? #풍경 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신하 서복에게 동방의 나라에 있다는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명했다. 서복은 불로초를 찾아 한라산까지 왔다가 서귀포 정방폭포 암벽에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서복과지’(徐福過之)라는 글귀를 남겼다. 진시황이 불로초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제주섬. 제주는 요즘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의 세상이다.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항저우, 하얼빈, 광저우…. 중국 전역에서 쉴 새 없이 비행기들이 유커를 제주로 실어 나른다. 제주와 중국을 잇는 하늘길은 거미줄이 다 돼 간다. 저녁 무렵 제주시내는 우루루 길거리 쇼핑에 나선 유커들로 만원이다. 가게마다 빨간 중국어 간판과 메뉴판은 필수가 됐다. 지난해 1만 2000여명의 대규모 인센티브 여행단(기업의 포상휴가)을 제주로 보낸 것에 대한 화답으로 신제주에는 중국기업 바오젠의 이름을 붙힌 거리도 등장했다. 중국어가 거리를 지배하고 중국 화폐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바오젠거리는 흡사 중국 어느 도시를 옮겨 놓은 듯하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봐 여권과 지갑을 넣은 작은 전대를 허리춤에 꽉 조여 맨 유커들. 좌변기를 사용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하고 해수탕에서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풍덩 탕 속에 뛰어들어 눈총을 받기도 한다. 떼를 지어 우루루 도로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호텔이고 식당이고 아무 곳에서나 독한 중국산 담배 연기를 뿜어댄다. 유명 관광지 화장실과 일부 식당가에는 친절한 좌변기 사용 안내문도 등장했다. 아마도 1989년 해외 여행 자유화 이후 우루루 동남아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난생 처음 해외관광을 떠났던 우리의 모습도 그러했으리라. ‘닥치고 쇼핑.’ 저녁이 되면 제주시내 쇼핑거리는 유커들 차지다. 중국에선 명품 대접을 받는다는 중저가 국산 화장품은 단연 유커들의 최고 인기상품. 인삼과 꿀, 담배, 술을 닥치고 쇼핑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여야만 지갑을 연다. 제주 오일장 할망들도 중국어 한마디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유명 면세점은 매일 즐거운 비명이다. 하루 내내 유커들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줄을 잇고 매장 안은 밀려드는 유커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유명 면세점 한 곳의 한 달 매출액만 1610만 달러 수준이다. 유커들이 제주에서 자고 먹고 쇼핑하는 데 쓰는 돈은 1인당 157만원 정도(2013년 5월 제주관광공사 외국인 관광객 실태조사)다. 큰손들도 수두룩하다. 전세기를 타고 제주의 특급호텔 카지노에 머물며 수억원을 베팅하거나 면세점 명품 가방과 고급 시계를 싹쓸이하기도 한다. 싸구려 중국 여행 가서 중국 사람들이 해주는 발마사지 한 번 안 받아본 한국 사람 어디 있을까. 제주에서는 전세 역전이다. 밤이 되면 관광에 쇼핑에 지친 유커들의 발마사지는 이제 한국 사람의 몫이다. 영주권을 주는 5억원짜리 고급 콘도도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제주에는 중국 영사관도 들어섰다. 다들 이구동성이다. 중국의 해외여행 바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1~3시간 비행의 뛰어난 접근성에다 멈추지 않을 것 같은 한류 바람, 세계자연유산 신비의 화산섬 제주로 유커들이 계속 몰려들 거라고. 중국인들이 뽑은 신혼여행지 1위 제주섬.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설레는 여행을 제주에서 하고 싶단다. 과연 그럴까? 한때 엔화를 팍팍 뿌렸던 일본인들의 모습은 이제 제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김의근 제주 국제대 교수(관광학)는 “중국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아울러 중국인의 해외여행 바람은 앞으로 더 거세게 불 것”이라며 “동북아에서 접근성이 우수한 제주가 이들의 휴양 관광지로 계속 관심을 끌 것”이라고 말했다. #풍경 셋 여행만 가지 말고 아예 제주에서 눌러살아 볼까. 먹고살기 팍팍했던 배고픈 시절 섬 사람들은 하나둘 섬을 등졌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뭍으로 뭍으로 떠났다. 예전에 제주섬도 그랬다. 땅은 척박했고 거센 바다는 아버지를 삼켜버리곤 했다. 믿거나 말거나,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시절, 제주섬 여성들의 일등 신랑감은 철도 기관사였다. 기차가 없는 제주섬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터이니. 세상사 돌고 돈다 했던가. 제주섬은 요즘 뭍에서 이주민들이 몰려든다. 지난해 인구가 무려 6000여명이나 늘어났다. 모두 뭍에서 제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아니 이민 온 사람들이다. 제주는 이주가 아니라 이민이라 불러야 한다. 외국어 수준의 제주 사투리와 낯선 풍습들. 어딜 가든 텃세가 없으리라만은 ‘육지것들이’ 하는 제주섬의 텃세는 등급이 다르다. 예전에는 정 붙이고 살지 못하고 다시 떠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도시 사람들은 과감하게 제주 이민에 나선다. 수두룩하던 제주 변두리 시골 빈집은 이제 모두 그들이 차지했다. 5분이면 탁 트인 푸른 바다고 5분이면 한라산 울창한 숲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는 서울에서 역유학 온 도시 아이들로 가득하다. 옛말에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 했던가? 이젠 말도 사람도 모두 제주로 보내는 시대다. “어디 제주 한적한 시골 마을에 빈집을 구할 수 있나요?” 제주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이민자를 위해 시골 빈집 구하기 바쁘다. 제주에서 ‘안단테 안단테’ 느린 삶을 즐겨 보겠다는 이민자들이다. 바야흐르 르네상스 제주다. 수년 전 대구에서 이주, 섬 속의 섬 우도에 카페를 차린 이상국(48)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제주로 이주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한 박자 느린 일상 등은 도시에서는 누리지 못한 큰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하나된 드레스 코드 하나된 승리 코드…홍명보호 첫 소집

    하나된 드레스 코드 하나된 승리 코드…홍명보호 첫 소집

    축구대표팀이 확 달라졌다. 2013동아시안컵을 앞두고 17일 소집된 태극전사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출발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각을 잡았고,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정문부터 숙소동까지 걸으며 국가대표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졌다. 원한다고 아무나 걸을 수 없는 길을 밟으며 태극마크와 투혼을 심장에 꾹꾹 새겼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과 10분간의 미팅을 통해 “대표선수의 사명감을 가져 달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를 던졌다. 동아시안컵은 대회 자체의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홍명보호’의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끈끈한 팀워크와 희생·헌신을 기본으로 하는 홍 감독의 축구철학을 엿볼 수 있는 데뷔전이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졸전,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문 등으로 흐트러진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과 동시에 1년도 남지 않은 브라질월드컵 멤버를 검증하는 의미도 있다. 올해로 5회째인 동아시안컵은 한국·중국·일본·호주가 풀리그로 우승국을 가리는 대회다. 두 차례(2003년·08년) 정상에 섰던 한국은 오는 20일 오후 7시 호주와의 1차전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과 차례로 격돌한다. 홍 감독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사령탑으로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준비할까에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팀정신과 경기력은 물론 브라질에서의 활약 가능성까지 전체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월드컵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몇몇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된 만큼 선수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홍 감독 품에서 공을 찼지만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낙마한 김동섭(성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눈을 빛냈고 고무열(포항)도 “절실함을 보여 주는 게 우선”이라고 털어놨다. ‘제2의 홍명보’로 불렸지만 부상으로 꿈이 좌절된 홍정호(제주)는 “올림픽을 다녀온 선수들에게 도전하는 입장인데 감독님께 믿음을 심어주겠다”고 말했다. ‘팀 스피릿’이 돋보이는 첫날 풍경이었다. 이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홍 감독. 소집 시간보다 두 시간 앞선 오전 10시에 NFC 정문으로 들어선 그는 취재진을 향해 “올림픽대표팀을 맡았을 때부터 항상 제일 먼저 왔다”고 멋쩍게 웃었다. 홍 감독은 “내가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진해선수촌까지 버스로 5~6시간을 가면서도 긴장해서 잠도 못 잤다”고 회상하며 “짧지만 선수들이 정문부터 숙소까지 걸으면서 국가대표로서의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태극전사들은 홍 감독이 앞서 공지한 ‘드레스코드’에 맞춰 정장 차림으로 모였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맸다. 서동현(제주)이 오전 10시 30분 첫 테이프를 끊었고 염기훈과 김신욱이 차례로 들어왔다. 과거 스포츠브랜드의 광고행사장, 혹은 외제차 쇼케이스장 같던 모습과 180도 달랐다. 직접 차를 몰고 NFC 숙소동 앞에서 내렸던 선수들은 이날 정문에 내려 직접 트렁크를 끌고 350m를 걸었다. 모처럼 구두를 신은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표선수로서의 책임감을 말했다. 새 캡틴으로 낙점된 하대성(서울)은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세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면서 “경쟁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목표를 갖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 때 나눠 준 양복을 입은 박종우(부산)는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더라”고 전했고 김동섭은 “성남 백화점에서 3일 전에 양복을 사며 의지를 다졌다”고 얼굴을 붉혔다. 고무열은 “넥타이 매는 법을 몰라 호텔 직원이 도와줬다”고 수줍게 웃었고 이명주(포항)는 지난해 K리그 시상식 때 큰맘 먹고 구입했다는 겨울 양복을 입고 땀을 쏟았다. 가장 늦은 오전 11시 40분에 들어온 김영권(광저우)은 ‘꼴찌’라는 귀띔에 당황하며 “아직 20분 전인데 내가 마지막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대표팀은 한 시간 동안 미드필드 압박 위치와 수비 조직력을 꼼꼼히 맞춰보며 담금질을 시작했다. 이날 경기가 있는 김창수(가시와), 황석호(히로시마) 등 J리거 7명은 훈련 이틀째인 18일부터 합류한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열린세상] 두 개의 제국 사이에서/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두 개의 제국 사이에서/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5월과 6월은 대통령의 방미·방중 외교로 부산했다. 정부가 바뀌고 남북관계가 위기로 치닫는 과정에서 새롭게 주변 강대국과 현안을 논의하고 입장을 조율하는 자리가 시급했을 것이다. 한·미 간에 이루어진 공동성명에서는 이전 정부 때부터 지속되어온 ‘포괄적 전략동맹’의 구도가 다시 확인되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비핵, 민주주의, 자유시장의 원칙에 입각한 한반도 평화통일 3원칙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한·중 간에 이루어진 공동성명을 보면 한·미 간의 성명에 비해 꽤 다른 모습이 관찰된다. 우선 분량이 많다. 한·미 간에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원칙적인 내용들이 편안하게 표현되고 있는 반면, 한·중 간에는 많은 내용들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다소 엄격한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번호까지 붙어 있는 걸 보니 고시 답안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문안 합의에 고민과 어려움이 많았음직하다. 정치적으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애매한,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제시되었다. 동아시아적 특성을 살린 ‘소통’과 ‘인문 유대’의 측면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미 간에는 60년에 걸친 정치적, 군사적 ‘동맹’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이야기를 굳이 명문화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냉전이 종식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고, 군사동맹의 목적이나 기능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지금 시점에서 한·미동맹도 재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의 기능적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안보위협이 어느 곳보다도 큰 한국 입장에서는 동맹이 이완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방기’(abandonment)의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동맹관계에서 ‘방기’가 걱정되니 매번 만날 때마다 ‘안보 공약’ 재확인을 요구한다. 방위비 분담이나 다양한 군사협력을 통해 동맹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일도 한·미동맹 관계의 주요 메뉴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지나치면 원치 않는 ‘연루’(entrapment) 관계에 대한 걱정도 커진다. 동맹은 쌍방 또는 다자 간의 합의이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더라도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이견이 노정된 것도 이런 ‘연루’ 관계에 대한 우려가 원인이었다. 그만큼 동맹관계가 너무 느슨해져도 걱정이고, 심화되어도 걱정이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과 더불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있어 중요한 축을 이루어왔다. 그런데 이번의 한·중 공동성명에서는 한·중·일 간의 협력 및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고 있다. 한·미·일 3국간의 기존 협력프레임을 상당한 정도로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한·미 그리고 한·중 간에 얼마나 심각하게 논의한 결과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5월과 6월의 정상회담 결과가 서로 잘 들어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이 기존의 한·미동맹 틀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로 한 것인지 주변 국가들이 궁금해할 일이다. 최근 과거사 문제나 영토문제 등으로 한국·중국과 불편해진 일본은 그렇다 치고, 태평양 건너에서 한·중 간의 대화를 바라보아야 하는 미국의 입장은 또 어떨까? 강대국들 사이의 세력구도 변화가 낳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기에는 한국의 동맹관리 전략이 부실한 것은 아닐까? 역사학자 앙드레 슈미드는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라는 저서를 통해 구한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처한 한국의 고뇌를 탐구한 바 있다. 기울어져 가는 제국인 중국과 떠오르는 제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존을 모색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21세기가 된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글로벌 파워 중국과 오랜 동맹인 미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생존전략을 구상해야 할까? 마침 이달 초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고를 일으켰던 항공기는 중국인이 절반을 차지하는 승객을 싣고 미국으로 향하던 한국 국적기였다. 21세기를 움직일 두 제국을 부지런히 연결하는 한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안타까운 마음에 더하여 만감이 교차한다.
  • [길섶에서] 얼음/진경호 논설위원

    햇볕보다 운(運)이 더 센 날, 학교를 마치고 헉헉대며 집에 가면 얼음이 있었다. “와, 얼음이다~” 엄마가 시장 얼음가게에서 머리통만 한 얼음덩어리 하나를 사다 놓으신 것이다. 곁엔 얼음덩어리 두 배만 한 수박도 한 통…. 엄마는 얼음에다 과일칼을 대곤 홍두깨로 콩콩 두드리며 얼음을 쪼갰다. “내가 해볼게~” 얼음은 이리저리 튀고, 튄 얼음을 주워 먹는 손길은 부산스러웠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커다란 양푼에 썬 수박과 깬 얼음을 섞어 넣고는 동생과 마주 앉아 숟가락으로 퍼먹는 건 여름날 놓칠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별미였다.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을 전동빙수기에 넣어 갈고, 여기에 단팥, 우유, 연유 등을 얹어 팥빙수를 만들다 문득 광화문 교보생명의 글판에 실린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가 떠오른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빙수를 한가득 머금은 입이 아리다 싶더니 금세 눈이 시리다. 한입 가득 얼음덩어리 물고 “와~”하며 마냥 행복했던 그 아인 어디 있을까. 비가 오나. 창밖이 뿌옇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파란 눈의 한류 전도사들 “한국 문화체험 GO!”

    파란 눈의 한류 전도사들 “한국 문화체험 GO!”

    한류를 좋아하는 러시아 학생과 시인 등이 충남 홍성을 시작으로 한류 원형 체험에 나섰다. 대학생과 시인, 수필가 등 20~40대 초반의 러시아 한류 팬과 박정곤(39) 모스크바 고리키국립문학대학교 교수 등 원정대 6명은 12일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에 도착, 전통 한옥인 중요민속자료 제198호 조응식 가옥에 여장을 풀었다. 이들은 이날 밤 마을 주민들과 만나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습 등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박 교수는 “K팝 등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지난달 나에게 ‘K팝과 드라마가 한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한국으로 직접 가서 원형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해 일반인까지 참여했고, 각자 자비를 들여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착 이튿날 아삭이 고추를 따고 딸기밭을 정비하는 등 농촌체험을 한다. 종가인 조응식 가옥에서 절하는 법과 차 마시는 법, 전 부치기 등 전통 예절을 배운다. 이어 서부면 속동마을 앞 갯벌에서 각종 바다 체험을 하고 김좌진·한용운 생가 등 유적지도 둘러본다. 서부면 궁리에서는 아름다운 낙조를 촬영하는 시간도 갖는다. 신주철 홍성군 관광계장은 “홍성이 서해안의 중심도시인 데다 전통문화와 갯벌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관광을 한꺼번에 해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첫 방문지로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여행을 ‘푸른 눈의 신 한류 리포트’라고 이름 지었다. 주러 한국대사관·문화원이 자료제공 등 후원을 했다. 이들은 14일 홍성을 떠나 오는 22일까지 열차와 버스를 이용해 전남 순천, 부산 해운대, 경북 경주·영주, 강원 속초·평창·춘천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총 2000여㎞의 대장정을 펼친다. 귀국 후에는 이번 원정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러시아 방송과 인터넷, UCC 등을 통해 한류의 원형과 한국을 알릴 예정이다. 박 교수는 “이번 여행에 나선 러시아인들이 한국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겠다”면서 “앞으로도 이 같은 행사를 계속 마련하고, 원하는 러시아인들이 많은 만큼 규모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빗물박사’ 한무영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김문이 만난사람] ‘빗물박사’ 한무영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빗물의 맛은 과연 어떨까. 2010년 10월 서울대에서는 물에 관한 흥미로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한 콜라회사가 했던 챌린지와 비슷한 방법의 시음 조사였다. 수돗물(A형), 빗물(B형), 시중에 파는 병 물(C형) 등 세 가지 물을 시음한 후 가장 물맛이 좋다고 느낀 유형에 스티커를 붙여 달라고 했다. 그 결과 수돗물 6표, 병 물 7표, 빗물 23표로 빗물이 압도적인 승리를 차지했다. 빗물이 가장 맛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빗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깨끗한 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참에 빗물에 대한 추억을 하나 떠올려 보자. 어린 시절 마을 뒷동산에서 놀다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는 날, 마치 ‘구름 주스’를 마시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한껏 젖히고 혀를 내밀어 빗물을 마셨던 일이 있다. 또 사랑과 낭만이 담긴 비와 관련된 노래도 많다. ‘비가 오도다’로 시작되는 ‘비의 탱고’,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노란 레인코트’로 시작되는 ‘빗속의 여인’ 등은 비가 오는 날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요즘은 어떨까. 비에 대해 우선 ‘산성비’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속설까지 생겨났다. 그뿐만 아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와 ‘홍수’라는 말로, 비가 안 오면 ‘가뭄’이라는 말로 하늘을 원망한다. 따지고 보면 홍수와 가뭄의 원인은 자연의 순리를 무시한 인간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화가 되면서 거의 모든 땅이 포장되고 각종 개발로 콘크리트화되다 보니 물을 품을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서울 광화문 일대와 강남역 주변이 물에 잠긴 사례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야 하는데 그럴 공간이 없는 데다 흐르고 머무를 곳(저장 시설)마저 없어 빚어진 결과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고 한다. 정말일까. 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물 관리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빗물을 연구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대 빗물연구센터다. 지난 4일 오후 이 연구센터의 소장인 한무영(57)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빗물 연구에 푹 빠진 ‘빗물 박사’로 통한다. 원래는 상하수 처리 전문가였지만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빗물 연구에만 매달려 오고 있다. 현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빗물모아지구사랑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아 빗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새로운 가치 부여를 위한 연구와 홍보에 힘쓰고 있다. 빗물 연구의 첫 사회적 성과물은 2006년 완공된 서울 광진구 주상복합 건물 스타시티의 빗물 저장 시설이다. 이 건물 입주민들은 빗물을 생활용수로 활용하기 때문에 물값을 따로 내지 않으며 한강에서 물을 적게 끌어 와 쓴 덕분에 에너지도 절약하고 있다. 스타시티의 빗물 시설은 2008년 국제물학회지의 커버스토리에 ‘세계적인 미래형 물 관리 모델’로 소개됐다. 이후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가뭄으로 허덕이는 물 부족 국가들을 방문해 빗물 저장 시설 설계와 그동안의 연구 노하우를 전파해 오면서 빗물을 통해 지구의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의 수자원 전문가들도 학회지 등을 통해 ‘한무영의 빗물’을 칭찬하고 있다. 그가 쓴 여러 저서 가운데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은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빗물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 교수의 연구실은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건물에 있다. 이곳에는 특별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옥상에 있는 녹지 공간이다. 예쁜 꽃이 심어져 있어 경관도 좋지만 건물의 온도를 내려 주고 비가 올 때면 빗물을 아래로 천천히 내려보내는 역할도 한다. 다른 하나는 건물 입구에 있는 ‘빗물저금통’이다. 말 그대로 빗물을 잠시 모아두는 통이다. 한 교수는 빗물저금통 밑부분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면서 “요즘 비가 자주 내려 빗물이 많이 모였다”고 설명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옥상에서 물이 내려오는 홈통에 파이프를 연결하면 된다. 빗물 일부는 지표면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일부는 빗물저금통에 흘러 들어가 저장되는 것이다. 그는 “건물에 설치된 홈통 하나당 1년에 대략 130t의 물을 커버할 수 있다고 할 때 1t짜리 빗물저금통으로 1년에 60~70%인 약 100t 정도의 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따라서 10개의 홈통이 있다면 1년에 1000t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건물마다 많이 설치하면 홍수 유출 방지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예술적 감각이나 미적 감각을 활용해 정원의 아름다운 조형물이나 분수 등을 만든다면 건물의 상징물로 승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스타시티의 3000t 규모 빗물 저장 시설도 이 같은 원리로 만들어 홍수 방지용, 수자원 확보용, 비상용 등의 다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건물 지하 주차장의 주차 공간 2~3면 정도를 활용하면 100t짜리 간이 저장조가 금방 만들어진다”면서 물난리를 자주 겪는 동네에 이런 시설을 설치하면 일석이조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빗물저금통을 설치하려 할 때 서울, 부산, 수원의 경우 경비의 90%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광화문이 물에 잠겼던 원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 청와대 주변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더라면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원래 북악산 일대는 녹지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들어서고 주변에 군부대 등 여러 건물이 생기면서 대정원이 콘크리트 시설로 덮이고 말았지요. 그러다 보니 당시 한꺼번에 내린 빗물이 아래로 계속 흘러 결국 하류 지점인 광화문 일대가 잠겨 버렸습니다. 홍수라는 것이 정확히 말하면 많이 내린 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한꺼번에 빠르게 흘러 생기는 일입니다. 경복궁에는 경회루지와 향원지 등 두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큰 집을 짓거나 궁을 지을 때 홍수를 염려해 크고 작은 연못을 늘 생각했듯이 지금이라도 청와대 주변에 저류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쪽에 있는 광화문이 잠기는 일이 또 생기겠지요.” 화제를 돌렸다. 빗물이 산성비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고 하자 한 교수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듯이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런 악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퍼뜨렸는지 모르겠다”고 한 뒤 “빗물이 산성인 것은 맞지만 아무것도 아닌 산성이다. 어떤 사람은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들 하는데, 그런 사람 있으면 머리카락을 다 심어 드리겠다”며 웃는다. 오히려 머리 감을 때 쓰는 샴푸와 린스 가운데 어떤 제품은 산성비보다 100배쯤, 시큼한 오렌지주스나 콜라 역시 그 정도의 강한 산성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황온천 물도 마찬가지란다. 아울러 빗물은 땅에 떨어지면 곧 중화된다면서 지난해 9월 보성 녹차 홍보팀과 함께 빗물로 녹차를 만들어 시음을 했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며 이제는 빗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성비라고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생명의 물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한다. 토목(상하수도)을 전공한 그가 빗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봄 전국적으로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였다. 이런 상황을 보고 이제는 상하수도가 아닌 물 부족 현실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일본의 무라세 마코토 박사가 쓴 ‘빗물을 모아 쓰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책을 접했다. 책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전 세계 빗물 전문가를 만나기 시작했다. 일본에도 가 보고 독일에도 가 봤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사정이 달랐다.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궁에 있는 연못에서 행정단위를 나타내는 ‘동’(洞)이라는 글자를 보고 의미를 찾았다. 마을 사람들이 같은 물을 마신다는 조상들의 물 관리 철학을 깨달은 것이다. 측우기 발명과 강우 기록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비한 빗물관리법들이 민본사상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알아냈다. 그러던 2004년 서울대 측에 빗물연구센터를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고 이를 성사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4년 동안 빗물 관련 논문을 8편 썼다. 세균만 죽이고 마실 수 있는 연구 결과물도 내놓았다. 그러자 세계 학자들이 “빗물을 버리는 것만 알았지, 모아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 못 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올 2월에는 탄자니아에 가서 빗물 설치 사업에 대해 강연했고 이달에도 케냐, 탄자니아,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3개국에서 ‘마시는 빗물’ 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어떻게 마실까. “페트병에 빗물을 담아 반나절 정도 햇빛을 쪼이면 미생물이 죽는데 그때부터 마시면 된다”면서 “이러한 방법은 돈이 한푼도 안 들어가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는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빗속의 여인’이다. 빗물에 대한 사랑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희망에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빗물 연구가 한무영 소장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토목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박사학위(상하수 처리 전공)를 받았다. 이때 쓴 논문이 미국 대학원 교재에 실렸다. 현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빗물모아지구사랑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2006년 서울 광진구 주상복합 건물 스타시티의 빗물 저장 시설을 설계했다. 이 시설은 2008년 국제물학회지 커버스토리로 소개됐다. 주요 저서로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빗물과 당신’ 등 다수가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상하수도학회 우수논문상(2003년), 세계환경공학과학교수협의회 최우수논문상(2005년), 환경부 장관 표창(2005년), 국제물학회 창의프로젝트상(2010년), 대한민국 국가녹색기술대상(2010년) 등이 있다.
  • [당신의 책]

    옛 그림으로 떠나는 낚시 여행(안국진 지음, 책읽는오두막 펴냄) 옛 조상들은 능수버들 휘날리는 따뜻한 봄날 쏘가리 낚시를 즐겼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찐다”는 당나라 시가 일러 주듯 봄은 낚시의 계절이었다. 여울과 소가 만나는 지점에 돌무더기가 솟은 곳이 최고의 낚시 명당이다. 이 같은 봄의 정경을 담아낸 그림으로는 이경윤의 ‘유하조어도’를 꼽을 수 있다. 능수버들 아래 삿갓을 쓴 고운 인상의 선비가 온 정신을 모아 낚시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미소를 절로 자아낸다. 부산 토박이로 월간 ‘일요낚시’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는 김홍도의 ‘조어산수’부터 최북의 ‘한강조어’까지 옛 그림 속에서 발견한 낚시꾼들의 흥미로운 자취를 따라간다. 지친 삶 속에서 낚시로 활력을 찾는 강태공들에게 낚시의 운치를 더해 주는 책이다. 232쪽. 1만 3000원. 자본과 언어: 신경제에서 전쟁경제로(크리스티안 마라치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펴냄) 이탈리아의 저명한 좌파 경제학자가 ‘언어’라는 잣대로 금융위기의 본질을 파헤친 책. 저자는 세계 경제의 현 단계를 ‘신경제’로 진단하면서 “신경제에서는 ‘언어와 소통’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또 언어는 금융시장에서 자료와 정보의 전송 수단이자 하나의 창조적 힘이 된다고 설명한다. 중상주의, 산업주의, 신경제의 포스트포드주의적인 흐름에 이어 자본주의의 네 번째 단계인 ‘전쟁경제’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252쪽. 1만 7000원. 다시, 관계의 집으로(최우용 지음, 궁리 펴냄) 요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집에서부터 아파트, 기만적인 랜드마크 빌딩의 허구까지 젊은 건축가가 신선하고 매서운 시각으로 의미를 포착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외딴 수도원, 전북 완주군 불명산 자락의 화암사 극락전, 서울 남영동 옛 대공분실 등 다양한 건축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경기 일산의 밤가시초가, 제주의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기찻길 옆 공부방 등을 둘러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를 다섯 가지 테마에 나눠 세상과 소통하는 글로 풀어냈다. 몽상가의 눈, 관찰자의 눈, 소설가의 눈, 여행객의 눈, 건축가의 눈이 그 테마들. 저자는 사라져 가거나 변방에 놓인 건축물들에 주목했다. 이제 진정한 관계를 맺는 건축물로 이 땅을 채우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도 고민했다. 288쪽. 1만 5000원. 사고 문화재 만년제(주찬범 지음, 신성북스 펴냄) 만년 재앙이 된 연못 ‘만년제’(萬年堤). 이곳에 얽힌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화성태안 3택지 개발사업’과 ‘1번 국도 대체 우회도로 사업’은 2004년 돌연 중단된다. 경기도 기념물 161호인 만년제를 침범해 공사를 벌인 탓이다. 공사는 만년제의 위치를 잘못 표기한 경기 문화유적지도를 참고해 이뤄졌다. 국가사업 중단으로 수천억원의 혈세가 낭비됐고, 관계 부처 장관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도 해결하지 못해 결국 청와대가 관리하고 있다. 만년제는 ‘정조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조선 특유의 연못 양식. 중앙에 둥근 섬이 있는 네모난 인공 연못으로 규모가 대단하다. 저자는 문화재 당국이 만년제를 농업용 수리시설로 착각한 것이 비극의 단초였다고 말한다. 만년제에는 가난과 낙후함에 저항했던 정조의 도전과 좌절이 함께 투영돼 있다는 주장이다. 228쪽.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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