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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8) 옹기장이와 땜장이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8) 옹기장이와 땜장이

    김준근의 ‘옹기장이’는 옹기장이가 옹기를 만드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발로 물레를 돌리며 옹기 안에다가 편편한 나무판자를 대고 바깥에서 몽둥이로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옹기를 굽는 흙 가마가 있다. 옹기가 나오는 그림은 여럿이 남아 있는데, 거개 옹기로 물을 담아 나르거나 혹은 젓갈 따위를 담아 판매하는 행상을 그린 것이다. 옹기를 만드는 것을 그린 것은 김준근의 그림이 유일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준근의 또다른 작품 ‘땜장이’를 보자. 옹기나 사기그릇이 부수어지면 깨진 부분에 접착제를 바르고 철사로 테를 단단히 둘러서 고정시켜 준다. 옹기나 사기그릇이 귀했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땜장이를 불러 다시 보수해 썼기에 생긴 직업이다. ●물레 돌려 질그릇 만들고 유약 입혀 구워내 옹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 흔하디흔한 생활용기였다. 물을 담아두는 것은 물론이고,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 김치와 같은 저장식품은 모두 옹기에 담아 보관했다. 그뿐인가. 쌀이며 보리 등의 곡식도 옹기에 담았다. 전기냉장고가 보급되고, 아파트가 주거의 대세를 이루면서 맨 먼저 사라진 것은 큰 옹기들이었다. 간장·된장·고추장과 김치가 공장에서 ‘생산’되면서 더 이상 옹기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 한약을 다리는 약탕기는 한약을 일회용 파우치에 담아 먹으면서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 외의 부엌에서 쓰이던 소소한 옹기들은 모두 플라스틱이나 비닐, 알루미늄 호일이 물리쳤다. 이제 옹기는 큰 규모로 장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면, 장식품이 되어 남거나 박물관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아마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의 송영감이 죽었을 때 시간 속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옹기의 운명 역시 정해졌던 것이다. 옹기는 질그릇에 황갈색의 유약을 입혀 구운 것이다. 따라서 먼저 질그릇을 만들고 그것에 유약을 입혀 구워야 옹기가 되는 것이다. 질그릇이야 원래 토기니,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는 것이지만, 유약을 바른 옹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뒤에야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하긴 이것은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고, 질그릇이나 옹기나 문헌을 보면 꼭 구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위의 그림에서 옹기, 곧 질그릇을 만드는 사람을 옹기장이, 한자로 옹장(甕匠)이라고 한다.‘경국대전’을 보면, 공조에 13, 봉상시 10, 상의원 10, 내자시 10, 내섬시 8, 사도시 8, 예빈시 8, 내수사 7, 소격서 4, 사온서 4, 의영고 4, 장원서 8, 사포서 10, 양현고 2명의 옹장을 두고 있다. 이런 관청은 질그릇이 절실히 필요했던 관청이다. 예컨대 사온서란 관청은 궁중에 필요한 술을 빚는 관청이니, 당연히 질그릇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관청에 옹기장이가 각각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옹기를 굽기 위해서는 가마가 필요한 법이다. 위의 관청들은 절대 다수가 궁중에 있는 관청이다. 궁중에 가마를 둘 수 없는 일이니, 아마도 어디선가 가마를 두고 옹기를 만들되, 그 옹기장이를 파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성종 때 인물인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사람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으로서 도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마포, 노량진 등지에서 진흙을 구워 그릇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모두 질그릇, 항아리 독 같은 종류다.”라고 말하고 있다. 곧 마포와 노량진에 질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었던 것이다. 또 조선후기의 기록들을 보면, 서강의 ‘옹막촌’, 노량의 ‘옹막리’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관청에 소속되는 장인을 경공장이라 하고, 지방의 관청, 예컨대 관찰사영이라든지 군·현 등에 소속되는 장인을 외공장이라 한다.‘경국대전’을 보면 경공장과 외공장을 각각 밝히고 있다. 즉 사기장은 서울의 관청에도 있고, 지방 관청에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옹장의 경우 외공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지방에도 옹장이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허다한 명목으로 세금 만들어 옹기장이 쥐어짜 민유중이 1659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올린 보고서를 보면, 철점(鐵店)과 옹점 등이 모두 통영과 병영의 소속이 되어 폐단이 많다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옹점 등이 국가 기관에 소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순조 때 만들어진 ‘만기요람’에 의하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는 장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는데, 한 사람마다 세목(稅木) 한 필이라고 하였다. 세금을 거두는 대상은 주철장(鑄鐵匠)ㆍ유철장(鍮鐵匠, 놋쇠를 만드는 장인)ㆍ수철장(水鐵匠, 무쇠를 만드는 장인)·옹점장(甕店匠)인데, 앞의 세 장인은 호조에, 옹점장은 공조에다 세금을 바쳤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당연히 지방 각 곳에 옹기를 만드는 곳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주변에서도 옹기를 굽는 곳을 흔히 찾아볼 수 있었으니, 그런 곳은 대개 조선시대에 옹기를 굽던 곳이었다. 옹기를 만들어 파는 옹기장이는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지위의 장인들이었고, 국가로부터 심한 착취를 당했다. ‘정조실록’ 13년(1789) 윤5월22일조를 보면 장령 조성규는 균역법이 시행된 이후 지방 고을 수령들이 장인이나 상인, 혹은 사기나 옹기를 만드는 마을에서 징수하는 세금에는 모두 정해진 액수가 있는데, 허다한 명목을 새로 만들어내어 백성을 쥐어짜는 묘책으로 삼고 있다고 왕에게 말하고 있다. 그 대책으로 양심적인 수령을 뽑자는 말이지만, 그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옹기 만드는 기술도 무형문화재의 대접을 받지만, 조선조의 옹기장이는 이렇게 쥐어짜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천민이다. 역사에 이름이 남을 리 없다. 범죄에 관련되어 한두 이름이 남을 뿐이다.‘세종실록’ 15년(1433) 12월21일조를 보면, 선산의 옹기장이 대금(大金)이 남의 집 종을 모살하여 참형을 언도받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또 한 사람 옹기장이는 천주교 신자로서 신유사옥 때 순교한 김귀동이다. 그는 박해를 피해 충청북도 제천 배론의 옹점으로 옮겨서 살았다 하는데, 옹점이란 것은 원래 지명이 아니라, 옹기장이인 그가 옮겨가 살면서 옹기를 구웠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김귀동은 신유사옥 때 황사영이 도망오자 숨겨 주었고, 황사영은 그의 집에서 저 유명한 ‘황사영백서’를 썼던 것이다. 황사영은 천주교회의 역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김귀동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김장독처럼 큰 옹기는 어떻게 팔았을까 옹기를 파는 곳은 어디인가? 육의전(입전·면포전·면주전·포전·저전·지전)을 제외한 나머지 상품들에 대해서 자유로운 상행위를 허락한 신해통공 때 이 정책의 발의자이자 추진자였던 채제공은 금난전권을 시전에 허락한 것이 결국 물가를 올린다고 말하면서 “요사이는 심지어 채소나 옹기까지도 판매하는 전(纏)이 따로 있어서 사사로이 서로 사고 팔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음식에 소금이 떨어지고, 가난한 선비가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일까지도 생깁니다.”(‘정조실록’ 15년 1월25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자료를 보건대 한때 시전에서 옹기를 독점 판매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전에 옹기를 파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길이 없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의하면, 종루거리와 남대문 밖에 도자기를 파는 자기전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판매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 지방이라면 어디서 팔았을까. 사기그릇은 지고 다니며 팔지만 김장독처럼 큰 옹기는 어떻게 팔았는지 자못 궁금하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보면 ‘옹점이’란 여자가 나온다. 이문구의 어렸을 때 친구다. 옹점이란 이름은 이문구의 조부가 이 여성의 어머니가 딸을 옹점에서 낳았다고 해서 옹점이라 부르라 했던 것이다. 옹점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옹기를 굽는 곳이다. 지명을 사람의 이름이나 호로 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인촌 김성수가 살던 마을이 인촌이었기에 호가 인촌이 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옹점이란 이름은 그 사람이 옹점에서 태어난 것을 말하니, 좋게 들리지 않는다. ‘관촌수필’에서 이문구가 그리고 있는 옹점이는 얼마나 손끝이 맵고 싹싹하고 눈치 빠르고 영리한 여성인가.‘옹점’이란 이름은 그것을 지워버린다. 사족. 대학시절 ‘관촌수필’을 읽고 문체에 홀딱 반하였다. 다시 그런 문체가 있을까. 앞으로 한국문학은 이문구처럼 그렇게 리얼하고 치밀한 충청방언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쉽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지자체 공약이행 충주 등 13곳 최우수

    민선 4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공약 이행 여부 등을 평가하는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충북 충주시와 강원 횡성군, 광주 동구 등 13곳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경기 이천시와 전남 강진군, 서울 마포구 등 23곳은 우수 지자체에 선정됐다. 11일 한국매니페스토운동본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주최한 ‘2008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심사결과다. 대회는 지난 10일부터 이틀간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에서 열렸다.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차로 선정된 36개 지자체의 매니페스토 실천사례를 놓고 4개 분야(평가활동분야, 제도 및 조직개선분야, 공약성과분야, 매니페스토 활성화 분야)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각각 선정했다. 평가활동 분야에서는 충북 충주시(매니페스토 실천을 위한 공약이행 시민평가제 도입·시행), 강원 횡성군(군민과 함께하는 공약평가 및 공개로 참공약 실천), 광주 동구(주민, 시민단체, 공무원이 함께하는 참여형 공약평가 시스템 구축·운영) 등 3곳이, 제도 및 조직개선 분야에서는 경남 진해시(시의회와 함께하는 로컬매니페스토 실천),‘매니페스토 실천을 위한 공약이행 실적가점제 실시(대구 동구)’ 등 2곳이 각각 최우수상을 받았다. 공약성과 분야에서는 경남 창원시(자전거 특별시 추진), 전북 김제시(공존의 지혜, 나눔의 기쁨, 독거노인 어울림 생활가정 그룹 홈 조성), 충남 서천군(소외계층 교육복지 증진 멘토링사업), 충북 청원군(열린 민원심의제 운영), 광주 서구(상무지구 24시간 업무지원시스템 구축), 부산 부산진구(자주 재원 확보를 위한 재정의 건전한 운영), 부산 수영구(주민 참여 기념식수 공원 조성) 등 7곳이, 매니페스토 활성화 분야에서는 전남 나주시(매니페스토운동 확산을 위한 종합활동)가 각각 최우수상을 받았다. 부산 김정한·서울 조현석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전갑길(광주 광산구청장)씨 모친상 10일 광주 송정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9시 (062)941-7103 최승빈(전 LG건설 전무이사·효산 C&C 전무이사)씨 별세 규식(GM대우)씨 부친상 이태규(오브젝트 필름 감독)주기욱(삼성전자 대리)씨 빙부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11시 (02)3010-2236 박인서(전 동아출판사 편집위원)씨 별세 찬웅(육군본부 과장·대령)찬중(SK케미칼 사업개발실장)씨 부친상 정운서(송호개발 대표)장대성(육군대학 교관·중령)씨 빙부상 김효영(국민대 교양학부 교수)씨 시부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410-6916 조덕제(우리은행 IT지원본부단장)씨 동생상 10일 경남 김해 e-좋은중앙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55)314-6070 김용석(여수 MBC 영상제작부 부장)씨 빙부상 9일 목포 기독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20분 (061)287-4446 김철웅(한국메틱스 대표)봉재(부산 감천항수산물도매시장 감사)씨 모친상 박명은(자영업)씨 빙모상 9일 부산 동아대병원, 발인 12일 오후 2시 (051)256-7011 송상현(코오롱 고문)씨 별세 10일 서울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30분 (02)2072-2011 허담(전 효성중공업 수출부장)씨 별세 업(부산대병원 의사)선(독일 유학)씨 부친상 9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4시 (02)2227-7577
  • “살기좋은 지역 가꾸는 정보교류 場으로”

    “살기좋은 지역 가꾸는 정보교류 場으로”

    ‘2008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가 10일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 10·16기념관에서 개막됐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경진대회에는 노진환 서울신문사 사장, 강지원 실천본부 상임대표, 김인세 부산대 총장, 정낙형 부산시 정무부시장, 배덕광 부산 해운대구청장 등 10여개 기초자치단체장과 시민, 교수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노진환 서울신문사 사장은 대회 개회사를 통해 “자치단체장의 매니페스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추진되고 있는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주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는지는 단체장의 지역주민과의 소통지수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면서 “이번 대회가 단체장들이 살기 좋은 지역을 가꾸는 데 필요한 정보교류의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막식에 이어 매니페스토 우수 사례발표와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지역 매니페스토운동의 현황과 성과에 대해 김창룡 인제대 교수의 사회로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유문종 사무총장과 김성균 평가위원이 주제 발표를 했다. 김 위원은 ‘민선4기 2년차 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이행 분석 결과’를 통해 “16개 광역 및 230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재정확보가 어렵다거나 중장기 계획에 의한 사업지연, 상위계획과 상위기관과의 연계성 부재, 사업타당성 검증 부재 등의 요인이 공약사업 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유 사무총장은 “민선4기 지방자치단체장 공약이행을 위해서는 행정 운영의 내실을 도모할 수 있는 관리 체계와 로드맵 구축, 제도적 장치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주민과의 소통이 상생적 발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전담관리부서 설치, 지침마련, 체계적인 일정에 의한 공약사업 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1일에는 39개 기초자치단체의 다양한 매니페스토 실천 사례 등에 대해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이 공동으로 현장심사해 시·군·구별로 각각 4개 분야(평가분야, 제도 및 조직개선분야, 공약성과분야, 매니페스토 활성화 분야)에서 최우수상 1곳과 우수상 2곳을 각각 선정해 시상한다. 부산 김정한·서울 조현석기자 jhkim@seoul.co.kr
  • 지자체 선거공약 잘 실천되고 있나

    ‘2008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가 10일부터 11일까지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 ‘10·16기념관’에서 개최된다. (사)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상임대표 강지원)와 서울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경진대회는 ▲자치단체 매니페스토운동의 확산을 통한 ‘신뢰공동체’ 건설 ▲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발굴 및 확산 ▲자치단체 매니페스토 활동 촉진 및 지원·협력 방안 모색 등을 위해 열린다. 이번 경진대회에는 부산 수영구, 서울 마포구, 광주 동구, 대구 남구, 충북 진천군, 경남 사천시 등 전국 39개 기초자치단체가 ▲공약이행 평가 및 평가단과 관련한 평가활동 분야 ▲공약이행을 위한 효율적인 제도 및 제도 개선분야 ▲공약이행 성과분야 ▲매니페스토운동 확산을 위한 지자체 종합 활동분야 등 4개 분야에 대해 발표를 할 예정이다. 대회 첫날인 10일에는 참가자 등록과 개회식에 이어 오후 3시부터 ▲ 민선 4기 기초 지자체장 공약이행 현황 분석 발표 ▲한국 매니페스토 기초지자체장 네트워크 포럼이 열린다.11일에는 오전 9시부터 분야별 사례발표가 열리며, 적합성·확산가능성·독창성·참여성·체감성 등 5개 기준에 의해 평가, 우수 지자체를 선정하고 시상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경진대회에서는 매니페스토 평가위원단뿐만 아니라 지자체당 공무원 3명과 지자체 추천 민간평가위원단 3명이 함께 참여해 평가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PD수첩 논란 전문가 견해

    검찰이 PD수첩의 광우병 쇠고기 보도 수사에 속도를 붙이면서 이를 바라보는 언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보수·진보 성향과는 무관하게 PD수첩 방송내용에 의도적 왜곡이 있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창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의도적 왜곡이냐 실수냐는 제작진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했고, 채백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외부인으로서는 프로그램 왜곡 여부를 가릴 만한 근거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반면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 취지와는 무관하게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에 대해서는 왜곡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채백 교수는 “방송의 공정성을 평가하는 자율규제기구가 있음에도 검찰이 공권력을 동원해 수사에 나선 것은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보수언론단체인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 이창근 교수도 “언론자유를 감안할 때 검찰 개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논란의 해법도 검찰 수사가 아닌 저널리즘 원리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창근 교수는 “MBC 스스로가 자체조사 위원회를 만들어 논란의 진실을 밝히는 게 맞다.”고 말했고, 김영호 교수도 “MBC가 이해당사자들이 출연해 해명할 건 해명하고 논쟁할 건 논쟁할 수 있도록 후속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김우룡 교수는 “기왕에 검찰이 손을 댔다면 순수하게 광우병을 우려해 방송을 제작한 것인지, 사회 혼란을 부추기려는 악의적 의도가 있었는지 분명히 밝혀서 언론이 윤리의식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지지했다.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MBC PD수첩의 의견진술일을 16일로 결정했다. MBC는 방통심의위의 심의결과가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의견진술을 법원의 1심 판결 이후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방통심의위는 “위원회 심의는 법원 판단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MBC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아레사 빈슨의 뇌 MRI가 PD수첩 논란을 규명할 핵심 자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자료를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교과서에서 배운 단원 김홍도 고누도 알고 보니 윷놀이 그림”

    “교과서에서 배운 단원 김홍도 고누도 알고 보니 윷놀이 그림”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에 들어있는 ‘고누놀이’는 고누놀이가 아니라 윷놀이 장면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초등학교 국어과 ‘읽기’ 교과서는 이 그림을 ‘고누놀이’로 설명하고 있는 만큼 학계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속학자인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최근 발간된 월간 ‘민속소식’ 7월호의 ‘단원의 고누도(圖), 정말로 고누놀이를 그린 것일까’라는 글에서 이 그림의 제목을 ‘윷놀이’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본지 그림있는 풍속사에서도 지적 앞서, 서울신문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를 연재하고 있는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도 이 그림을 다룬 지난 4월7일자 ‘고누와 나무하기’편에 같은 생각을 담았다. 김홍도가 37세되던 1781년 무렵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단원풍속도첩은 모두 25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후기 민중의 진솔한 삶을 과감한 붓질로 생동감있게 화폭에 담아냈다.‘무동(舞童)’,‘씨름’,‘서당’,‘벼타작’을 비롯하여 하나하나의 그림이 모두 조선시대 풍속화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보물 제527호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장 연구관은 당초 풍속도첩에는 낙관이나 제목이 없다가 근대에 와서 제목이 붙기 시작했고,13번째 그림인 나무꾼들의 놀이장면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1891∼1968)이 ‘지기지도(地碁之圖)’라고 이름을 붙인 뒤 그동안 의심없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고누놀이를 한자로 옮길 때는 흔히 땅장기라는 뜻으로 지기(地碁)라고 쓴다. 하지만 장 연구관은 그림에 등장하는 말판의 생김새가 눈이 5개인 ‘우물고누’와는 달리 지금의 윷판과 똑같은 데다, 던져진 기물도 4개라는 점에서 명백히 크기가 작은 ‘밤윷’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그림의 제목은 ‘윷놀이’이어야 하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밤윷놀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명관 교수는 “이 그림의 고누판은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속에 다시 십자를 그리고 있는데 이런 고누판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둥근 원형 안에 작은 물건 넷이 보인다. 이것이 윷일 수 있다. 윷은 꼭 나무로 길게 만든 것이 아니라도 된다.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작은 고동 껍데기를 윷가락 대신 쓰는 것을 보았다.”면서 “이 그림은 윷판으로 보인다.”고 같은 견해를 밝혔다. 장 연구관은 이 그림이 2001년 이후 7년동안 교과서에 실렸고,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8차 교육과정에서도 유지된다는 소식에 지난해 12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구두로 이의를 제기했고, 이번에도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제기했다. ●교과부 “교과서 내용 수정 계획 없어” 하지만 교과부는 ▲이 그림이 고누놀이가 아니라는 것이 학계에서 통용되는 의견이 아니고 ▲학생들이 고누놀이 장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으며 ▲고누놀이 장면이 아니라고 해도 대체할 수 있는 고누그림이 없는 만큼 현재의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내왔다고 한다. 장 연구관은 “그동안 잘잘못을 가리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은 관행적으로 이어온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암묵적 동의에 기존의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순종적 태도 때문”이라면서 “어쩌면 그림은 알되 놀이를 모르고, 놀이는 알되 그림에 접근할 수 없는 미술사학과 민속학의 연구 영역 한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 그림이 윷놀이임을 밝힌 나의 글이 좀더 비판적으로 검토되기를 바라며, 그 결과 윷놀이 그림이 옳다면 오류를 시정하는 데 주저할 까닭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 연구관은 ‘민속소식’에 실린 글을 보완한 정식 논문을 역시 민속박물관이 발간하는 학술지 ‘생활문물’에 게재를 요청해놓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용어클릭 ●고누란? 선조들이 즐기던 놀이의 하나로 지역별로 고니, 꼬니, 꼰, 꼰질이, 고누로 이름이 다르고,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놀이판 위에서 상대방의 말을 다 잡아내거나, 못 움직이게 가두거나, 상대방의 집을 먼저 차지하면 이긴다. 옛날에는 땅바닥에 줄을 그어 고누판을 만들고, 작은 돌멩이나 나무 조각을 말 삼아 놀기도 했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7) 우아한 취미 ‘서화 감상’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7) 우아한 취미 ‘서화 감상’

    김홍도의 작품 ‘그림 감상’을 보자. 유건을 쓴 유생들이 둘러서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워낙 단순한 그림이라 그림 자체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작자 미상의 ‘후원아집도(後園雅集圖)’는 연못까지 있는 부유한 양반가의 후원을 그린 것이다. 왼쪽에는 바둑이 한창이다. 그 오른쪽 소나무에 기댄 두 사람을 보기 바란다. 두루마리를 펴서 감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림이나 글씨를 보고 비평하는 중일 것이다. ●안평대군 서화 소장품 어마어마 이처럼 서화를 감상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 농도는 다르다. 이 부분을 약간 검토해 보자. 세조 때 인물인 신숙주의 ‘화기(畵記)’란 글은 안평대군의 어마어마한 서화 소장품에 대한 기록이다.‘화기’를 통해 조선전기 서화의 수집과 감상 풍조가 유행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서화들은 남아 있지 않다. 고려와 조선전기 서화가의 작품도 전해지는 것은 몇 안 된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궁중에 소장된 책과 서화, 골동품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이니, 민간에서도 서화를 챙길 여유가 없다. 이래서 대부분이 망실된 것이다. 서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다. 이 문제를 조금 살펴보자. 박지원의 글 중에 ‘필세설’이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시커멓고 우묵하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골동품이라고 하며 팔러 다니는데, 그게 무슨 골동품이냐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연암의 친구 중 서상수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그 물건을 보더니, 단박에 “이것은 필세(붓 씻는 그릇)다.”라 하고는 그 재질과 생산지를 따지더니, 보물이라면서 거금을 던지고 소유해 버린다. 연암은 이 글에서 서상수의 높은 안목을 칭찬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인즉 “처음 시작한 공로는 있지만 감상안은 투철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한다. ●18세기 서화·골동 수집의 선구자 김광수 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광수부터 골동품과 서화의 감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김광수는 김동필의 아들인데, 김동필은 소론 온건파로서 영조의 탕평책에 협조하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조판서에 이른 인물이다. 김광수는 “감식안이 신묘하여 한 물건이라도 마음에 들면 가산을 기울여 후한 값을 치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소장품의 대부분이 중국 수입품이란 것이다.19세기의 서화가 조희룡은 김광수를 두고 “사람됨이 소탈하고 우아하여 집 재산을 기울여서 멀리 연경에서 고서·명화·벼루·먹·골동품 등을 많이 사들여 종일토록 그 사이에서 읊조리고 완상하였다.”라고 했으니, 김광수는 서화와 예술품, 골동품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알았던 사람이었다. 김광수는 1696년 출생이고 사망한 해는 모른다. 대체로 영조 일대를 살았을 것이고, 좀 오래 살았다면 정조의 치세도 경험했을 것이다. 김광수가 서화 골동을 소장하고 또 애호하는 취미의 선구자라면, 조선후기의 서화 골동 취미는 18세기 이후의 산물인 것이다. 김광수에게서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북경에서 서화와 골동품을 수입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주목해 보자. 조선은 병자호란 이래 청을 섬기게 되어 여전히 북경에 사신단을 파견했다. 청은 조선을 의심하여 조선 사신단을 숙소에 묶어 놓고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에 와서 청 체제가 안정되자 조선의 사신들은 비로소 서적과 서화, 골동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유리창 거리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거창한 규모의 서화와 골동품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최초의 대량 구입자가 바로 김광수였던 것이다. 이 수입 서화와 골동은 국내의 생산을 자극했다. 도화서와 선비 화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와 감상과 품평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예술품 수집가들의 소장 대상이 되었다.18세기를 지나면서는 그 풍조를 비판하는 소리까지 나왔다.18세기의 문인 이정섭은 이런 풍조를 “요즘 사람들은 고서화를 많이 소장하는 것을 청아한 취미로 삼아 남에게 비단 한 조각이라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떳떳하지 못한 온갖 수단으로 기필코 구해 농짝을 가득 채우고 진귀한 보배인 양 자랑을 한다.”라고 비판하였다. 이제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에 대해 지식을 쌓아, 그림이나 글씨 혹은 골동품을 보면 거기에 대해 진위를 가리고 비평을 하는 것은 양반들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다. 서화 수집가이자 비평가인 남공철(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멋있게 포장했다.“정자를 용산과 광릉 사이에 지어두고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많이 심어 간소한 차림으로 나가서 한가롭게 거닐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향을 사르고 단정히 앉아 경전과 역사에 대해 토론하였고, 곁에 고금의 법서(法書)·명화·골동품을 두고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니, 마음이 담박하여 세상의 영리를 바라지 않았다.” 서화와 골동을 품평하고 감상하는 것을 아주 고상한 삶의 형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광통교서 산 그림을 자기 작품이라 속이기도 이런 풍조로 인해 별별 희극이 다 벌어졌다. 다산 정약용이 이정운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내주신 신선 그림은 대릉(이정운이 살던 곳을 말함)에 계시는 여러분의 그림은 아닌 듯싶은데 혹 광통교에서 사 오신 것은 아닙니까? 어떤 신선이기에 눈은 순전히 욕심으로 불타 있고 얼굴은 순전히 육기뿐이니 말입니다. 우열을 비교해 봤자 반드시 하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림으로 승부를 걸려면 반드시 우리 모임의 벗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대면하여 직접 그린 것만이 시합에 응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간사스러운 폐단이 있어 두루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니, 우스운 일입니다. 이정운은 다산과 같은 서클에 든 사람이고, 이 서클은 그림을 그려서 서로 돌려보며 품평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위의 그림도 그런 그림 감상, 품평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정운은 그림에 별 솜씨가 없어 광통교에서 파는 그림을 사와서 자기 그림이라고 남에게 돌려보였던 모양이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다. 추측건대 18세기 후반에 광통교에 그림을 걸어놓고 파는 상인이 생겼고, 서울 시민들은 집치레 그림을 여기서 구입하였다. 이정운은 요즘 말로 하자면 이발소그림을 사서 동료들에게 자신의 것인 양하고 보냈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다산은 또 윤참판이란 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윤참판이 자신에게 그려 보내준 난초와 매화 그림을 격찬한 뒤 장난조로 다시 이정운을 비난한다.“오사(이정운)께서는 언제나 광통교 위에서 걸어놓고 파는 하찮은 그림을 사다가 사중에서 일등을 하려고 하니 이러한 사실을 시험관에게 알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정말 웃음이 터지는 일입니다.” 이정운의 가짜 그림은, 그림을 그려 동료들 간에 돌려 보이고 품평하는 풍조가 낳은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이발소에 가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시골풍경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을 보며 지루한 이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발소그림을 굳이 예술사조로 따지면 낭만주의 풍이다. 이발소그림이 다루는 가장 흔한 제재, 곧 목가적 풍경이나 장엄한 풍광이 낭만주의 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얼마 전 퇴근길에 보니 길거리에 그림을 잔뜩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발소그림이었다. 반가운 생각이 왈칵 들었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천천히 그림을 보았다. 배운 사람들은 이발소그림을 한 마디로 폄하하지만, 이른바 제대로 된 예술품 대접을 받는 그림은 값이 너무 비싸 구입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발소그림이야말로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김홍도의 ‘그림 감상’을 보고 절로 떠오른 생각이다. 그런데 ‘그림 감상’ 속의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궁금하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기부 약속’ 무효소송

    기부금의 사용처를 놓고 수년간 기부자와 대학간에 빚어온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다. 송금조(84) ㈜태양 회장과 부인 진애언씨는 3일 부산대를 상대로 기부금으로 내기로 한 305억원 가운데 나머지 110억원을 낼 의무가 없음을 확인받기 위한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부산지법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기부약속 무효소송이다. 기부자가 학교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며 결과가 주목된다. 송 회장 부부는 지난 2003년 부산대에 국내에서 개인기부 사상 최고액인 305억원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기로 하고 지금껏 195억원을 냈다. ●왜 소송 제기했나 송 회장은 “대학측이 이미 낸 돈을 기부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해 놓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고민 끝에 기부금이 목적대로 투명하게 사용되도록 바로잡고, 올바른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소송을 했다.”고 밝혔다. 송 회장은 소장에서 “20 03년 10월 부산대 양산캠퍼스 부지매입 대금으로 305억원을 내기로 했었다.”면서 “당시 김인세 총장이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용도를 명시한 기부약정서를 가져와 다음에 이를 바로잡아 주겠다고 말해 이를 믿고 서명한 뒤 2006년 8월까지 195억원을 납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측이 약정서 정정요구를 무시한 채 2004년 6월부터 2007년 2월까지 195억원을 대부분 유용한 뒤 2007년 3월 약정서의 기부용도를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으로 정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2007년 5월쯤 부산대 발전기금 이사회가 “다른 용도로 사용한 기부금을 모두 보충해 당초 용도대로 집행하겠다.”는 의결서를 보내왔으면서도 기부금 유용이 계속되면서 아직까지 이 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부 약속은 지킬 것” 부인 진씨는 “이번 소송은 부산대가 당초 기부목적과 달리 송 회장이 이미 출연한 195억원의 대부분을 다른 곳에 유용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소송의 목적이 이미 낸 기부금 195억원을 반환받거나 잔금 110억원을 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부산대와 김 총장이 기부금 유용을 인정, 그동안 우리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지출세목을 밝히고 공개적인 사과를 한다면 남은 기부금 110억원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대, 연구실적 미달 교수 승진임용

    부산대가 연구실적이 미달되는 조교수를 부교수로 임용했다가 적발됐다. 감사원은 지난 1∼2월 부산대 교수 임용과 관련된 국민감사청구에 따라 감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2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부산대 A조교수는 재계약(승진) 임용시 필요한 연구실적이 B학과 내부 심사기준에 미달, 스스로 임용을 포기했다.B학과 심사위원회도 이를 받아들여 A씨를 재계약 임용대상자에서 제외했고, 대학 인사위원회도 A씨를 재계약 임용대상자로 추천하지 않았다.그런데도 부산대는 A씨가 이 대학에 오기 전 다른 대학에서의 연구실적 4편 등을 모두 합산하는 방식으로 A씨를 부교수로 승진 임용했다. 감사원은 이에 부산대 총장에게 연구실적이 충족되지 못한 교원을 임용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자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은 또 외교통상부 등을 대상으로 외화예산지급시스템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 외교부는 2003∼2007년 모 은행에서 예치한 예금을 외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대환율을 적용받지 않아 1억 5000만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공관비용, 외자구매대금을 위해 외교부 등 각 부처가 필요로 하는 외화의 경우 한국은행의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하면 외화매입 및 송금 수수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 연 55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지방시대] 스포츠문화박람회 성공을 위하여/홍완식 세계사회체육대회 사무총장

    [지방시대] 스포츠문화박람회 성공을 위하여/홍완식 세계사회체육대회 사무총장

    오는 9월26일부터 1주일간 부산에서 지구촌 최대의 전통스포츠문화올림픽인 ‘세계사회체육대회(World TreX-Games)’가 열린다. 이 대회는 올림픽처럼 정형화된 경기종목을 가지고 메달 경쟁을 벌이는 엘리트 스포츠 대회가 아니다. 각국의 전통 스포츠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 다른 스포츠의 문화적 가치를 느끼고 전통적 스포츠문화가 인류유산임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다. 네번째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식 후원한다.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들의 지지를 얻어 대회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이 대회가 전통스포츠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대회 이념으로 삼아 미래 세대들에게 전통스포츠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교육시키는 올림픽운동 실천대회이기 때문이다. IOC 자크로게 위원장은 부산대회를 후원하는 메시지에서 “이 행사가 모든 사람에게 스포츠에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해 건강한 삶을 만들고 나아가 올림픽운동의 기본원칙인 사회체육을 보급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대회는 궁술, 연날리기, 전통민속춤, 탱고, 우슈, 삼보, 무에타이, 씨름, 기공, 즈루카네와 같은 전통스포츠 종목과 한국의 태껸과 같은 각 국가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스포츠를 중심으로 하되 신세대 문화를 상징하는 스포츠인 e게임과 X스포츠 종목도 가미돼 있다. 따라서 부산대회는 세계 각국의 전통 스포츠와 뉴(NEW) 스포츠가 함께 어울리는 새로운 스포츠문화축제의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전통의 의미를 미래에서 찾고 미래 또한 전통에서 그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100여개국에서 7000여명이 참가해 스포츠 문화의 진수를 보여줄 이번 대회는 비록 규모면에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스포츠문화 측면에서 볼 때 세계 스포츠계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해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IOC위원들과 스포츠 관계자들의 시선을 끈 것은 다름아니라 과테말라의 전통 스포츠인 ‘마얀볼’ 시연이었다는 것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종목의 면면을 보면 각자 대륙별 문화성이 있다. 가령 ‘즈루카네’라는 종목은 고대 페르시아 지역에서 시작돼 지금은 아시아 지역과 북미까지 퍼져 있다. 탱고는 남미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다른 전통스포츠 종목들은 발원지의 민족적 문화를 함유하고 있다. 또 부산대회에서는 이른바 액션(ACTION)스포츠인 X스포츠 종목들도 참가하므로 신세대 스포츠문화도 선을 보인다. 이같이 부산대회는 시공을 초월하고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는 스포츠문화의 종합축제이며 스포츠문화박람회다. 이 행사에서 아프리카의 남단에서도 우리가 어릴 적에 즐겨하던 ‘공기놀이’와 같은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세계 여러나라 국민이 한국씨름과 유사한 ‘벨트레슬링’을 예로부터 전통스포츠로 삼아왔다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무한도전의 젊은 기예도 접하게 된다. 특히 유네스코는 이번 대회에서 세계 전통스포츠를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선포한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 전통스포츠인 씨름이나 태껸, 널뛰기, 그네타기 등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한국이 세계스포츠 문화유산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문화국가로 널리 인식됐으면 한다. 홍완식 세계사회체육대회 사무총장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6) 활쏘기를 연습하는 사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6) 활쏘기를 연습하는 사연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 활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활쏘기는 출셋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정에서 활을 쏘는 사람을 한량이라 한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무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다. 김홍도의 ‘활쏘기’는 활쏘기를 연습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왼쪽에는 한 무관이 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내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 사내는 한쪽 눈을 감고 화살이 굽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앞에 놓인 것은 화살을 넣는 전동이다. 화살에는 종류가 퍽 많지만, 대개 연습용 화살은 유엽전이란 화살을 많이 쓴다. 유엽전은 화살촉이 버드나무 잎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아래의 사내는 쪼그리고 앉아 활에 힘을 주어 교정을 하고 있다. 활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시위를 얹지 않고 풀어두고, 사용할 때 시위를 건다. 이때 힘을 주어 자신이 쓰기에 알맞게 형태를 잡아 주는 것이다. 강희언의 ‘활쏘기’는 활 쏘는 장면에 집중하고 있을 뿐 김홍도의 그림과 대동소이하다. 그림 속의 활을 쏘는 장소는 활터, 한자말로 하자면 사정(射亭)으로 아마도 조선시대 서울 곳곳에 있던 사정 중 하나일 것이다. 땅값이 금값이 된 지금 누가 활을 쏠 너른 터를 그냥 두겠는가. 근대 이후 서울의 사정은 멸종을 하고 말았다. 겨우 남아 있는 것이 인왕산 기슭의 황학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산보 삼아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황학정은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안에 지어진 것인데,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 때 지금 장소로 옮긴 것이다. ●활쏘기는 무과 급제의 제1덕목 서울에는 사정이 많았다. 나라에서 세운 사정은 대개 군사 훈련용이다. 동대문 운동장은 조선시대에 군사를 훈련하던 훈련원 터다. 따라서 당연히 사정이 있었다. 또 충융청과 같은 군영에도 자체 사정이 있었다. 창경궁 후원의 춘당대도 사정이다. 하지만 사정은 민간에 더 많았다. 서울은 인왕산 기슭의 서촌(우대), 지금의 동대문 운동장 일대를 하촌(아래대)라 하는데, 전자에는 풍소정·등룡정·등과정·운룡정·대송정의 오정이 가장 유명하였고, 아래대에는 석호정·좌룡정·화룡정·이화정 등이 있었다. 이 외에도 곳곳에 사정이 있었다. 황학정은 등과정이 있던 터에 세운 것이다. 이들 사정 사이에는 서로 시합을 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편사놀음’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메달이 걸린 활쏘기 시합이란 양궁 일색이다. 전통적 활인 국궁은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불과 일백 수십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활은 국궁이고,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 활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활쏘기는 출셋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정에서 활을 쏘는 사람을 한량이라 한다. 소과에 응시하는 자를 유학이라 한다. 문인으로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 소과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을 유학이라 하듯, 무반 쪽으로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 무과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을 한량이라 하였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무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다. 무과의 과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활쏘기였기 때문이다. 무과 초시의 시험과목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擊毬)였다(영조 때 만들어진 ‘속대전’에 오면, 기사·기창·격구가 기추(騎芻)·유엽전(柳葉錢)·조총·편추(鞭芻)로 바뀐다). 복시도 목전·철전·편전·기사·기창까지는 동일하고 격구가 병서(兵書)를 잘 알고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강서(講書)로 바뀔 뿐이다. 마지막의 전시는 기격구(騎擊毬)와 보격구(步擊毬)가 시험 과목이 된다. 일별하여 ‘전(箭)’ 자 그리고 ‘사(射)’ 자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활쏘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목이었다. 무과는 문과처럼 간지에 자·오·묘·유가 들어가는 해, 즉 식년에 치르는 정기시험인 식년시가 있고, 문과처럼 증광시·별시·알성시 등의 비정기시험이 있다. 식년시를 중심으로 무과를 간단히 개괄해 보자. 무과도 문과처럼 초시·복시·전시가 있다. 초시는 식년 한 해 전에 서울의 훈련원과 각 도의 병마절도사 관할 하에 치른다. 훈련원에서 70명, 각 도에서 모두 120명을 선발한다. 이 190명을 그 이듬해 서울의 병조와 훈련원에서 병서와 무예 시험을 보여 28명을 선발한다. 이것이 무과 복시다. 그리고 28명을 다시 등수를 정한다. ●숙종때 만명씩 선발… 조선 붕괴 빌미 하지만 이것은 법률상의 원칙일 뿐이다. 무과는 훨씬 많은 사람을 선발했다. 오죽 했으면 무과를 만 명을 뽑는다 하여 만과(萬科)라고 했을까. 무과가 무질서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란 미증유의 전쟁 때문이다. 광해군 12년에 처음으로 무과 만과를 베풀었다. 내용은 자세하지 않으나,‘변경 방어’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만과는 적지 않은 문제를 낳았다. 시험장에 가지 않았는데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경우가 있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합격자에게 어사화와 합격증서인 홍패지(紅牌紙)를 마련하게 하는가 하면, 차사(借射) 대사(代射)로 부정을 한 사람이 많아 처벌 대신 무명 100필씩을 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만과는 한마디로 조선의 국가제도가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숙종 1년 10월19일조의 ‘실록’을 보면 환관이 무과에 응시한 것을 계기로 하여, 모의장(毛衣匠) 등의 공장(工匠)도 무과 응시를 요구하였다. 숙종 2년에 윤휴 등의 건의로 만과를 베풀었는데, 응시자가 너무 많아 서울에서 치지 못하고 중신을 각도에 보내어 선발하게 하였다.2만명에 가까운 합격자가 나오자 발령 낼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합격자는 모두 서울에 몰려들어 벼슬을 바라지만 벼슬자리 자체가 모자라니, 원망이 없을 수 없다. 서울의 쌀값도 이들 때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들을 군대에 졸병으로 집어넣자 아니나 다를까 반발했고 그로 인해 민심까지 흉흉해졌다. 북벌을 외쳤던 이완 대장은 당시 만과를 이렇게 비판했다.“우리나라는 조총이 장기인데, 만일 만과를 베풀면 사람들이 모두 총을 버리고 활을 택할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총의 위력을 경험했으면서도, 조선조 말까지 조총이 별달리 개량되지 않았고, 군대가 총포를 위주로 편성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무과가 활쏘기란 시험과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선후기 과거의 문란에 대해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대개는 문과에 대한 것이지 무과에 관한 것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무과는 문과보다 더 타락했다. 숙종조의 명상 남구만은 이렇게 말한다.“문과는 3년 동안 33명이 합격하는데 이것은 단지 먼 시골의 글을 못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도구일 뿐이다. 무과는 화살 한두 발이면 합격하여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자가 전후로 이어져 그 끝을 모를 정도다.” 문과 무과 모두 비판한 것이지만, 사실상 무과가 더 심했던 것이다. ●도심 유흥계도 장악… 한량 노는 것 연상 이것은 조선후기 내내 그러하였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계하면 무과 합격자는 문과 합격자의 10배나 되었다. 하지만 관직의 수는 무과가 문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였다. 숙종조의 재상 최석정은, 현재 무신 당상관의 자리는 300개인데, 전직 당하관이 약 1000명에 가깝고, 무과에 합격해 아직 벼슬길에 들어서지 아니한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된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람들의 원망이 어찌 없겠느냐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은 서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정조의 치세를 보자.1784년에 세자 책봉을 경축하는 경과(慶科)를 쳤는데, 합격한 무사가 무려 2676명이었다. 정조는 이들 중 선전관으로 발령을 낼 사람을 지방 사람이라 차별하지 말고 골고루 지시한다(‘정조실록’ 8년 11월18일). 선전관은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며 호위하고 임금의 명을 전하는 등의 임무를 맡는 무반의 요직이다. 선전관을 거쳐야만 무신으로 출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전관청의 정식 선전관은 20명, 겸직 선전관이 50명이니, 그 많은 합격자 중 극소수만 무반으로 출셋길을 잡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합격증만 안고 살아야 할 뿐이다.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을 한량이라 부른다. 그런데 19세기 자료에 의하면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을 무한량(武閑良)”이라 하였다(조재삼의 ‘송남잡지’). 사정에 활을 쏘러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은 정말 하는 일 없이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들은 서울 시내의 유흥계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한량이라 하면 노는 것을 연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5) 길 떠나는 상단(商團)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5) 길 떠나는 상단(商團)

    김홍도의 작품 ‘길 떠나는 상단(商團)’이다. 먼저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복색을 보자. 차림새를 보아하니, 모두 양반은 아니다.9명의 사내가 등장하는데, 맨 오른 쪽의 사내만 대우가 작은 갓을 썼을 뿐, 나머지 8명 중 두 사람은 방갓을 썼고, 두 사람은 건을 썼다. 네 사람은 맨머리다. 맨머리의 사내는 상투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오른 쪽 부분의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맨머리의 총각은 어린 기색이 완연하다. 행색으로 보아 이들은 양반이 아니다. 맨 오른쪽 갓을 쓴 사람도 나이가 들었다 뿐이지 짧은 곰방대를 가진 품이나, 복색이 도포가 아닌 점으로 미루어 보나 양반은 분명 아니다. ●말·소 등에는 모두 ‘길마´가 얹혀 있어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장터길’이다. 내가 정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전해져 온 것이다. 단원이 원래 취한 제재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장터와 상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이들은 한 패거리이거나 아니면 두 세 패거리로 짐작이 된다. 먼저 오른쪽의 네 사람을 보자. 네 사람이 네 필의 말을 타고 있다. 중간의 머리를 천으로 싸맨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곰방대를 물고 있다. 갓을 쓴 사내는 한창 곰방대를 손으로 누르는 참이다. 담뱃불을 세게 댕기려 압력을 가하고 있는 참이다. 아래의 더벅머리 총각은 이제 막 담배를 배우는 것인지 얌전하게 담배를 빨고 있다. 그 왼쪽의 돌아보는 자세의 사내는 담뱃불을 댕기려고 부싯돌을 치고 있다. 이 네 사람이 한 패로 보인다. 왼쪽의 세 사람은 세 필의 말을 타고 한 필은 끌고 간다. 상호간 거리가 좁은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한 패로 보인다. 그리고 왼쪽 위의 언덕 건너편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더벅머리 총각으로 말을 타고 있고, 뒤를 따르는 사내는 걸어서 소를 몰고 가고 있다. 이들이 모두 한 패인지, 아니면 세 패인지는 단원이 다시 살아나거나 그림 속의 누가 그림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들이 같은 목적으로 같은 길을 가고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으로 아느냐고? 이 그림에는 말이 9마리, 소가 1마리 등장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맨 오른쪽 갓 쓴 사내가 타고 있는 말만 제외하면, 나머지 말과 소의 등에는 모두 길마가 얹혀 있다.(길마 아래 얹은 것이 언치다). 길마는 안장이 아니다. 안장이란 사람이 말에 올라탔을 때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 만든 장치다. 한데 위에 등장하는 것은 원래 말에 얹는 안장이 아니라, 주로 소 등에 얹는 길마다. 길마의 용도는 물건을 나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말들은 사람이 타는 승용마가 아니라, 물건을 나르기 위한 말인 것이다. 더욱이 승용의 말은 오직 양반만이 타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에 등장하는 양반 아닌 상것들이 말을 타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맨 왼쪽의 더벅머리 총각을 보자.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채찍이다. 채찍은 말을 몰고 가는 데 쓰이는 것이다. 이 총각은 원래 말을 몰고 가는 사람이다. 사람이 타는 승용마의 경우 양반네를 태우고 앞에서 말을 끌고 간다. 이 경우 그는 말구종이 된다. 말구종은 한자로 쓰면 견마부(牽馬夫)가 되고 ‘견마’가 입에 익으면 ‘경마’가 된다.‘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은 사실 말을 타면, 말을 끌고 가는 견마잡이를 두고 싶다는 말이다. 그림의 견마잡이는 물건을 싣지 않은 말을 타고 가는 참인 것이다. 또 그림 중간의 사람을 태우지 않은 말을 끌고 가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승용마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짐을 싣기 위한 빈 말을 타고 가는 중이다. 즉 어딘가로 짐을 싣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이며, 아직 짐을 싣기 전이기 때문에 길마를 얹은 빈 말을 임시로 타고 있는 것이다. 이 길마를 얹은 8마리의 말과 한 마리의 소가 짐을 싣기 위한 운반용이라는 것은, 담배에 불을 댕기려고 부시를 치는 사내가 앉은 길마에 밧줄이 묶여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 밧줄은 길마에 짐을 싣고 동여매기 위한 것이다. ●더벅머리 총각들은 견마부로 보여 등장인물 9명 중 더벅머리 어린 총각이 4명이다. 총각들은 모두 견마부로 보이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들 중 맨 오른쪽의 갓을 쓴 사내가 아마도 이 패의 우두머리로 보인다. 갓을 차려 쓴 것이라든지 또 이 사내만은 길마 위에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건대(사내가 타고 있는 것은 길마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안장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안장이라면 앞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단지 언치를 얹고 그 위에 앉기 편한 무엇, 예컨대 덕석 같은 것을 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이 패거리 중에서는 제법 행세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시장을 오가는 상인일 것이며, 이 사내는 상단(商團)의 행수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장터길이라는 제목도 썩 불합한 것은 아니다. 물론 상단이 아니라, 어떤 시골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시장에 가는 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선후기에 말이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한다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골 농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단을 그린 그림은 이형록(1808∼?)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눈길을 걷는 상단’도 있다. 소를 앞세우고, 말에 짐을 지우고, 아니면 어깨에 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역시 상단을 그린 귀중한 그림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유교가 국가의 이데올로기다. 유교는 상업을 원래 가장 낮은 직업으로 본다. 사·농·공·상! 즉 지식인, 농민, 수공업자, 상인의 순서다.‘맹자-등문공’에 농가(農家)인 허자(許子)의 제자 진상(陳相)과 맹자의 논변이 나온다. 진상이 전하는 허자의 논리는 이렇다. 유가들은 왜 노동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고 들면서 호의호식하는가. 이것이 허자의 문제 제기다. 이 말에 맹자는 허자가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쇠쟁기는 허자가 직접 만든 것인가, 허자가 쓰는 그릇은 허자가 직접 만든 것인가. 이에 진상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다. 허자가 생산한 곡식과 바꾼 것이다. 그렇다. 허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생산할 수 없다. 이 사회에는 사람마다 각각 역할이 있다. 곧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분업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역할을 정치라고 말하고, 허자가 대장장이 일을 농사짓는 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 역시 다른 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허자는 맹자의 사회적 분업을 말하는 논리에 패배하고 만다. 맹자의 논리가 맞는 것이라면, 상업이야말로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 아닌가. 하지만 맹자는 ‘공손추’에서 지역에 따른 가격차를 이용하여 이익을 보는 상인을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맹자의 눈에는 상인의 활동이야말로 구체적 생산물을 생산하지 않는 무용한 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허자에게 말한 교환이란 이익이 없는 단순한 교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황당한 생각임은 여기서 굳이 변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맹자의 말이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 상업은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고, 자본의 축적 규모가 커진다면, 그 자본은 필연적으로 생산자를 구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금융자본의 위력을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아니한가. ●조선 후기 私商 활동 부쩍 활발해져 유가의 상인에 대한 이런 정의 때문에 유교를 국가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은 상업과 상인을 적극 장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이 없을 수는 없다. 조선을 세우고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과 종묘, 관청을 지었다. 아울러 지은 것이 관영 시장인 시전(市廛)이었다. 조선후기가 되면, 이 관영 시장의 상인 외에 개성상인을 위시한 사상(私商)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진다. 이들은 국가의 감시를 뚫고 밀무역 루트까지 뚫는다. 이익이 나는 곳에 상인이 있었던 것이다. 또 역관이 주축이 된 북경과 한양, 동래와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이 제법 발달한다. 이번에 소개한 그림들은 아마도 이런 상업의 발달과 유관한 상단(商團)을 그린 것이 아닐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공무원시험 직급별 3관왕

    부산대 재학생이 공무원 9급,7급에 이어 행정고시(5급)까지 합격해 이른바 ‘공시의 3관왕’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대는 지난해 12월 제51회 행시 재경직에 차석으로 합격한 통계학과 4학년 정상수(27)씨가 이에 앞서 7·9급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2004년 복학해 그해 부산시 9급 행정직에 합격했다.2005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행시를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2006년 행정안전부 통계직 7급 시험에도 합격했다. 이어 행시 준비 3년 만에 차석을 한 것이다. 그동안 행정·사법·외무고시 등에 모두 합격하는 ‘고시 3관왕’은 간혹 있었지만 정씨와 같은 ‘직급별 3관왕’은 보기드문 일이다. 오는 8월 대학졸업 예정인 정씨는 통계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복수 전공을 했다. 학점도 4.5점 만점에 평점 4.33을 받았을 정도로 우수하다. 정씨는 “전공인 통계와 부전공인 경제학을 함께 응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며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유교사회 조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유교사회 조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윤리사회를 지향했던 조선, 그 이면에는 윤리로 전혀 통제되지 않는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18세기 초 양반사회에는 춘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18세기 후반에 ‘금병매’를 읽지 않은 양반은 ‘수치’로 여겨졌다. 이처럼 강렬했던 조선사회의 성적 욕망을 성리학은 어떻게 억압했을까. 성은 가부장제와 어떻게 긴밀하게 엮여 들었을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문학을 통해 그 해답을 찾는다. ●윤리로도 통제 안된 성적 욕망 한국한문학회(회장 박성규 고려대 교수)가 21일 단국대에서 ‘한국한문학과 성담론’을 주제로 하계학술대회를 연다. “고운 눈길은 칼날이라 하고 굽은 눈썹은 도끼라 하며, 통통한 뺨은 독약이며, 매끄러운 피부는 숨어 있는 좀이라고 하는 것을.…이것이 어찌 가장 치명적인 해가 아니랴.”고려의 이규보는 ‘색유’에서 성의 강한 쾌락을 독에 비유했다. 성이 권력과 국가의 몰락을 낳은 원인이라는 것. 이 생각은 조선의 가부장제가 만들어지는 바탕이 된다. 강 교수는 이이, 이덕무, 이익 등 성리학자들이 일제히 “성욕을 억제하라.”고 주장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이덕무는 “색을 밝히는 사람은 결국 색욕에 굶주려 죽는 귀신이 된다.”고,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람만은 남자와 여자가 어울려 싸다니며 밤이야 낮이야를 가리지 않으니 금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확고했던 18·19세기 조선에서는 성에 대한 표현이 들끓었다. 특히, 민요와 사설시조·평시조, 가요 등의 구비문학에서는 노골적인 성적 욕망이 드러난다. 실제로 채록된 구비 서사 텍스트에는 성적 기교와 자위, 동성애, 동물애, 구강성교 등 현대의 모든 성적 행위가 나타난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남성 성욕 관철… 여성 성욕 금기 “사람이라면 누군들 정욕이 없겠는가. 내 딸이 남자에게 혹하는 것이 다만 너무 심할 뿐이다.”라는 어우동의 어머니 정씨의 말은 억압된 유교사회에서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발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 교수는 “성적 절제를 주장한 성리학의 의도는 가부장적 가족친족제를 실현하려는 것”이었으며 거기에는 ‘남성 성욕의 일방적 관철과 여성 성욕의 일방적 금기’라는 목표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학계나 국문학계에서 성담론은 연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강 교수는 “성담론 연구는 권력 관계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것이지만 한국 사학계나 국문학계에서는 성 연구가 정치나 경제 같은 근엄한 주제 아래 묻혀 있었다.”고 연구 배경을 밝혔다. 이밖에도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의 ‘조선조 후기 문예공간에서의 성담론의 빛과 그늘’, 윤채근 단국대 교수의 ‘조선 후기의 섹슈얼리티:정념에서 이익으로’,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의 ‘19세기 성담론과 소설 속의 섹슈얼리티 재현 양상’ 등 4개의 발표가 이뤄진다. 학회 연구이사인 정민 한양대 한국한문학과 교수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성을 활발하게 학술 담론으로 논의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풍속도나 문화사적 연구가 전무하다.”고 대회 취지를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 준비 순조…1만명 참가 역대 최대

    세계 각국의 전통무술과 민속놀이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4회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조직위는 18일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준비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9월26일~10월2일 개최 해운대구 벡스코와 사직실내체육관 등에서 9월26일∼10월2일 열리는 세계사회체육대회에는 지금까지 105개 국가에서 7887명의 선수단이 참가 신청을 했다. 조직위는 대회 개최 전까지 1만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산대회는 규모면에서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X스포츠와 e스포츠 등 새로운 종목이 대거 추가됐고 사상 처음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식 후원을 결정해 내용면에서도 한 차원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대회는 세계 각국의 문화와 전통무술, 민속놀이 등을 한자리에서 비교 경험할 수 있는 기회여서 ‘체육문화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어떤 종목이 치러지나 행사는 전통스포츠, 생활스포츠와 e스포츠,X스포츠로 나눠 진행된다. 순위 경쟁보다 공연과 내용 소개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태껸을 비롯해 태국의 무에타이, 러시아의 삼보, 중국의 우슈 등 각국의 전통무술과 X게임 및 산악자전거, 카트라이더와 스타크래프트 같은 e스포츠 등이 경연 및 시연 형태로 열린다. 특히 ‘종합격투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무술 스타인 표도르 에밀리아넨코(32)가 러시아 삼보 선수로 참가하기로 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또 조직위는 무술영화배우인 리롄제(중국·우슈)와 토니 자(태국·무에타이)의 대회 참가도 추진하고 있어 이들의 참가가 성사되면 흥행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 디딤돌 활용 IOC는 이 대회 기간에 부산에서 제6차 IOC 스포츠교육문화포럼을 열기로 했다. 자크 로게 위원장을 비롯한 IOC위원 등 각국의 스포츠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 부산시는 이번 행사를 올림픽 유치를 위한 홍보의 장으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조직위는 선수단 등록 및 비자 발급, 통관, 주관 항공사 및 여행사 선정, 숙소 확보, 의료 지원 등 각 분야의 준비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완식 사무총장은 “우리의 희망대로 리롄제와 토니 자까지 참가하게 되면 부산대회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사회체육대회는 세계사회체육연맹(TAFISA·회장 이상희)이 4년마다 개최하는 전통·생활스포츠 축제 한마당이다. 공식 명칭은 ‘세계 전통스포츠 페스티벌’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제진훈 사장은 16일 “제일모직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새로운 사업 진출 등 미래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혁신’과 ‘인재’ 그리고 ‘조직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사장은 “고객과 시장이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이 바로 혁신”이라면서 “그래서 모든 혁신의 출발점은 고객”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이 체질화되면 ‘실적 경신→자신감 회복→미래 준비’에 이르는 선순환 경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또 인재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글로벌 기업들이 탐내는 첨단소재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이 제일모직에 모이도록 하겠다.”고 인재 존중을 다짐했다. 실제로 제 사장은 지난 2004년 사장 취임 이후 해외에서 직접 채용설명회를 열고 있다. 산학(産學)을 연계한 우수인력 멤버십 운영, 카이스트와 맞춤형 석·박사 과정 개설 등 첨단 소재 분야의 인재 육성에 적극적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첨단소재 사업의 성패는 핵심 인력 육성과 원천기술 확보에 달려 있다고 늘 강조한다. 그는 또 일등 기업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소통을 꼽는다. 제 사장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부서간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은 미래 성장을 약속하는 새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 사장은 “인재와 소통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만들기 위해 혁신 활동에 주력하겠다.”면서 “소비자 욕구에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제 사장은 부산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1974년 제일모직에 첫발을 담근 ‘모직맨’ 출신이다.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장, 삼성캐피탈 사장 등을 지낸 ‘재무통’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산청에 한방약초연구소 설립

    국내 한의학 발상지인 산청군에 한방약초연구소가 건립된다. 경남도는 16일 지식경제부가 지역연고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주관한 ‘2008년도 지자체연구소 육성사업’ 공모에 산청군의 ‘한방약초연구소 설립사업’이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산청군이 주관하는 한방약초연구소 설립사업에는 부산대·동의대·경상대·진주산업대·경남생약협동조합·㈜본디올 등 20여개 산학연 기관이 참여해 인적·물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산청한방약초의 산업화를 추진한다. 사업 기간은 다음달부터 2013년 6월까지 5년간이다. 사업비는 217억원(국비 95억원, 지방비 105억원, 민자 17억원)이 투입된다. 주요 사업은 산청군 금서면 매촌리 일대 1만 1944㎡ 부지에 연구소 건립을 비롯해 장비구축, 공동연구개발, 기업지원, 시험생산 등이다. 산청지역은 우리나라 한의학 발상지이며 청정 자생약초(1,000여종)의 보고로 2000년부터 약초 재배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약초 재배면적이 880㏊로 전국의 7.5%를 차지했으며 1500t을 생산해 16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경남도와 산청군은 한방약초연구소가 설립되면 다양한 청정 한방약초 제품개발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과 한방약초 관련 스타기업을 육성할 수 있어 고용창출과 서부경남 지역경제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도 관계자는 “산청 한방약초연구소는 앞서 추진되고 있는 하동 녹차연구소, 남해 마늘연구소 등과 더불어 지역 성장동력산업으로 연구소 사이 시너지 효과 극대화도 기대된다.”고 말했다.산청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4) 담배 가게와 담배 피우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4) 담배 가게와 담배 피우기

    김홍도의 ‘담배 써는 가게’다. 이 그림에는 남자 넷이 등장하는데, 각각 하는 일이 다르다. 먼저 아래쪽을 보자. 아래의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넓은 잎사귀를 펼쳐서 다루고 있다. 그 아래에 차곡차곡 쌓인 것은 담뱃잎이다. 필자는 담배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위 그림이 담뱃잎을 가공하고 있는 것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쪽을 보자. 위쪽 왼편의 사내는 작두로 장방형으로 생긴 물건을 가늘게 썰고 있다. 오른편의 사내는 작두질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이 사내가 오른팔을 기대고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는 돈궤로 보인다. 물론 돈 이외의 다른 것을 넣기도 할 것이다. 작두 앞에는 둥근 물건과 삼각형 물건이 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두로 썰고 있는 물건도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왼손으로 꽉 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흔들리면 안 되는 물건이다. 추측건대 그림 아래쪽의 웃통을 벗은 사내가 차곡차곡 쌓은 담배를 작두로 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쪽 왼편에 있는 탕건을 쓴 사내는 부채질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다. 아마 소설 따위의 가벼운 책일 것이다. ●18세기 엽초전·절초전 상권 분쟁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은애전(恩愛傳)’에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강진현의 처녀 은애는 자신이 정조를 잃었다고 헛소문을 낸 노파를 죽인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정조는 은애를 정녀(貞女)라고 하면서 살려주고 이덕무에게 ‘은애전’을 짓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애가 아니고, 정조의 말이다. 옛날 어떤 사내가 종로 거리의 담배 가게에서 패사(稗史)를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영웅이 실의하는 곳에 이르자, 홀연 눈초리가 찢어지도록 눈을 크게 뜨고 입에서 거품을 내뿜다가 담배 써는 칼을 집어 들고 패사를 읽는 사람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았다. 패사는 곧 역사소설이다. 영웅인 주인공이 좌절하는 대목에 이르러 소설에 빠진 사내가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들어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 만 것이다. 정조는 아마도 이 사건을 심리했거나 아니면 관계되는 문서를 읽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담배 가게에서 소설을 읽었다는 것이다. 담배 가게는 약국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조선후기 서울 시민의 카페와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고담(古談)을 하기도 하고 또 소설책을 읽기도 했다. 그림 위쪽의 돈궤에 기대어 있는 사내나 책을 읽고 있는 사내는 아마도 놀러 온 사람일 터이다. 담배를 썰어서 파는 곳을 절초전(切草廛)이라 한다. 조선 후기에 와서 담배가 널리 퍼지자, 조정에서는 담배 판매의 독점권을 갖는 엽초전의 개설을 허락하였다. 그 뒤 담뱃잎을 그냥 팔거나 큼직하게 잘라 파는 엽초전에서 담뱃잎을 사다가 피우기 좋도록 가늘게 썰어서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것은 엽초전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8세기 이래 엽초전과 절초전 사이에 상권을 둘러싼 분쟁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절초전도 국역(國役)을 담당하기로 하고 절초의 독점판매권을 얻었다. 하지만 뒤에 절초전의 절초 독점 판매권은 더 영세한 상인들이 절초를 파는 것을 막는다는 문제를 야기해 1742년 폐지된다. 그러다 1791년 육의전(六矣廛) 이외 모든 시전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없앤 신해통공으로 인하여 다시 담배를 썰어 파는 가게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위 그림은 아마도 신해통공 이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송시열은 금연론자… 정조·정약용은 골초 담배는 17세기 초에 들어온 것이다.‘인조실록’ 16년(1638) 8월 4일조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몰래 담배를 심양에 보냈다가 청나라 장수에게 발각되어 크게 힐책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는 병자호란(1636)으로부터 불과 2년 뒤이고, 소현세자를 비롯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심양에 억류되어 있을 때였다. 이 당시 심양의 청나라 사람도 담배를 좋아해 뇌물로 가져갔던 것인데, 청 태종이 담배의 중독성에 주목해 금지하였으므로 담배를 가지고 간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날의 기사를 보자. 이 풀은 병진년(1616)·정사년(1617) 어림에 바다를 건너 들어왔다. 피우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리 성행한 것은 아니었는데, 신유년(1621)·임술년(1622) 이래로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위의 기록에서 보듯 담배는 1616년에서 1617년 사이에 처음 전래되었고, 불과 5년 뒤인 1621·1622년간이면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졌던 것이다.‘인조실록’ 6년(1628) 8월19일조에 광주(廣州)의 선비 이오(李晤)의 응지 상소를 보면 정묘호란 이후 조정에서는 청나라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은 세우지 않고 “여러 신하들이 비변사에 모여 농담이나 지껄이고 담배만 피울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바,1628년이면 이미 담배가 조정의 관료들 사이에도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담배에 관한 문헌은 무수하게 많다. 그 문헌들은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담배 유해론과 담배 유익론이다. 담배가 유해하다는 것은 그것의 중독성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명인들 역시 담배에 관해 서로 의견이 갈린다. 대동법을 만들었던 명재상 김육, 고문의 명인이었던 이식,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인 송시열은 모두 담배를 싫어한 금연론자였고, 역시 고문의 대가였던 장유,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군주인 정조, 그리고 정조를 능가하는 학문의 태두 정약용은 담배 유익론자이자 골초였다. 이들이 남긴 담배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요즘과 다를 바 없다. 건강에 나쁘고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것이 담배 유해론자의 견해이고, 그럴 수도 있지만 심화(心火), 곧 스트레스를 다스리기에 담배가 인간에게 이롭다는 것이 담배 유익론자의 견해다. ●흡연도구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까지 담배의 해로움이 널리 퍼지고, 또 조정에서 이따금 담배 금지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담배는 17세기 이래 일상에서 없앨 수 없는 필수적 기호품이 되었다. 서울 시전에는 절초전만 생긴 것이 아니라, 흡연도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까지 등장했던 것이다.‘동국여지비고’란 책을 보면, 군기시와 약현의 연죽전(煙竹廛)에서는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인 담뱃대와 담배통을 팔았고, 종로의 도자전(刀子廛)에서는 장도, 은비녀, 부인네의 패물, 금은 가락지와 함께 담배통을 팔았다고 한다. 이교익(1807∼?)의 작품 ‘쉴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에서처럼 심심하면 손이 가는 것이 담배다. 담배 역시 일종의 ‘마약’이다. 담배의 중독을 이덕무는 ‘한죽당섭필’에서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우연히 여러 사람과 각각 좋아하는 것을 말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담배·술·고기 셋이지요.“ 내가 물었다. “만약 다 갖추지 못한다면 어떤 것을 빼겠는가?” “먼저 술을 빼고, 다음에 고기를 뺄 겁니다.” 내가 그 다음 뺄 것을 묻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담배를 뺀다면 산들 무슨 재미가 있겠소.” 담배가 없다면 살아 있어도 재미가 없다는 말은, 사실 흡연이 쾌락을 유발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담배의 중독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필자는 건강상 문제로 담배를 끊었지만, 몇 년 전까지는 골초 중의 골초였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한 갑,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갑, 그리고 오후 6시부터 잠들 때까지 한 갑, 이렇게 하루에 세 갑을 피웠다. 집에도, 연구실에도,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여러 종류의 담배가 늘 구비(?)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문헌을 읽다가도 담배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모아 두었다. 만약 건강이 허락된다면 다시 그 향기를 맡아보고 싶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독점’… 헌재 세번째 공개변론

    ‘생존권이냐, 직업 선택의 자유냐.´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한 규정을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또 다시 뜨거운 공방이 펼쳐졌다.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이동흡 재판관)는 12일 시각장애인에게 독점적으로 안마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하는 것이 위헌인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안마사 자격 기준에 대한 위헌 공방은 지난 2003년과 2006년에 이어 세 번째다. 비시각장애인을 대리한 박태원 변호사는 이날 공개변론에서 “선진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변호사, 공무원, 속기사, 프로그래머, 전화 교환원 등 다양한 직업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비맹(非盲) 제외 조항은 시각장애인을 영원히 안마사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소영 부산대 법대 교수도 “비맹 제외 기준은 다른 장애인과 정상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는 참고 의견을 냈다. 반면 2000∼06년 헌재 재판관을 지내며 관련 헌소에서 두 차례 모두 합헌 의견을 낸 김효종 변호사는 대한안마사협회를 대리해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대립하는 기본권 충돌 문제”라면서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보호이익이 더 큰 만큼 우선되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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