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원/주석 지도받는 “행정대행기관”(오늘의 북한)
◎강성산총리 재기용계기로 살펴본 그 위상/중요정책 결정못해… 집행업무만/11차례 개각… 부처개편 등 잦아/72년 5기때 총리제 신설… 우리 내각과는 달라
북한은 지난 1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4차회의에서 연형묵을 정무원총리에서 전격 해임하고 전총리인 강성산을 재기용했다.아울러 북한은 총리경질과 함께 국가계획위원장등 경제부문 4개부서장을 교체하는 부분개각도 단행했다.향후 북한의 정책초점이 경제개혁에 맞춰질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12·11인사를 계기로 정무원의 구성과 권한·임무등을 살펴본다.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장이 총리로 있는 정무원은 북한의 최고행정집행기관으로 흔히 우리의 국무회의와 단순비교된다.그러나 실제에 있어선 우리의 국무회의와 북한의 정무원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차이가 있다.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국무총리가 부의장이 되는 우리의 국무회의는 행정부의 최고심의기관으로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정치·경제·사회·군사등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 정책의 심의·결정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이에반해 북한의 정무원은 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단순한 행정대행기관 일뿐 정부의 중요 정책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지난 4월 새로 채택된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제124조는 「정무원은 최고주권기관의 행정적집행기관이다.정무원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의 지도밑에 사업한다」라고 규정,정무원의 권한과 역할이 제한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무원은 주석의 제의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되는 총리와 총리의 제의에 의해 중앙인민위원회가 임명하는 부총리,부장(위원장)들과 그밖의 성원들로 구성되며 사업집행을 위해 「전원회의」와 「상무회의」를 두고 있다.정무원 전원회의는 총리·부총리·각 부서장등 정무원의 모든 성원으로 구성,국가관리사업의 중요문제를 토의·결정한다.
한편 총리·부총리 및 총리가 임명하는 성원들로 구성되는 상무회의는 정무원 전원회의에서 위임된 문제들을 토의·결정한다.
북한 신헌법 제126조에 나타난 정무원의 임무와 권한은 ▲각 부,정무원직속기관,지방행정경제위원회의 사업지도 ▲정무원직속기관의 설치및 폐지 ▲국가 인민경제계획 작성및 집행대책수립 ▲국가예산 편성및 집행대책수립 등이다.또한 ▲공업·농업·대내외상업·건설·운수·체신·국토관리·도시경영·과학·문화·보건사업의 조직집행 ▲화폐및 은행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대책수립 ▲외국과의 조약체결및 대외사업의 수행 ▲사회질서의 유지와 국가 이익보호및 공민의 권리보장을 위한 대책수립 등이다.
북한의 내각은 지난 48년 9월 9일 정권수립 이후 지금까지 11차례 바뀌어 왔는데 사회주의 헌법에 의해 그 명칭이 정무원으로 개칭된 것은 72년 12월에 출범한 제5기 내각때부터다.북한은 이때 명칭변경과 함께 수상제도를 폐지하고 총리제도를 신설하면서 정무원을 중앙인민위원회 산하기관으로 종속시켜 정무원의 정치적 위치를 약화시켰다.
북한은 제7기 내각 중반인 84년 1월 최고인민회의 3차회의를 열어 총리인 이종옥을 부주석으로 승격시키고 후임에 당시 제1부총리였던 강성산을 기용했다.이는 제2차 7개년계획 종료에 이은 차기 경제계획 집행을강이 주도케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인사조치였다.
북한은 이어 86년 12월 출범한 제8기 내각에서 7기 내각말 15개위원회,10개부,1개원이었던 것을 당비서국에 편입됐던 사회안전부를 다시 환원조치하고 중앙자재총연합상사와 체육지도위원회등을 정무원 기구로 편입시켜 14개위원회,15개부,1개원,1개상사,1개은행,2개국으로 확대 개편했다.총리에는 이근모,부총리에는 홍성남이 각각 기용됐다.
90년 5월에 닻을 올린 제8기 내각에서는 연형묵이 총리직에 유임됐으며 정준기가 물러난 부총리 자리에 최영림(국가계획위원장),김달현(대외경제위원장 겸 무역부장),장철(문화예술부장) 등 3명을 기용함으로써 종래 8명이던 부총리가 10명으로 늘어났다.이때 북한은 또다시 기구를 개편,기존의 13개위원회,25개부,1개원,1개상사,1개은행,2개국 등 모두 44개 부처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북한이 당시 합영공업부를 신설한지 2년도 안돼 대외경제위원회에 통합시킨 것은 대외교섭 창구 일원화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어쨌거나 북한의 12·11인사개편은 당정요직에김정일측근 인물들을 대거 포진시킴으로써 93년부터 가속화될 김정일의 통치국면을 뒷받침하는 한편 남북관계및 대외개방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키 위한 사전 정책조정으로 풀이되고 있다.주민들의 체제불신과 실정에 대한 희생양으로 물러난 연형묵에 이어 북한호의 조타수가 된 강성산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떠할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