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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 큰 7살 어린이 호기심에…차량 운전하다 담벼락 들이받아

    간 큰 7살 어린이 호기심에…차량 운전하다 담벼락 들이받아

    7살 어린이가 차 키가 꽂힌 채 도로에 주차돼 있던 차량을 호기심에 몰다가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 경찰이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5시 10분쯤 경기 광주시 오포읍에서 7살 A군이 차 키가 꽂혀 있던 다마스 차량에 타고 시동을 걸어 20∼30m를 운전하다가 담벼락에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A군은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이 사고로 담벼락이 무너지면서 부근에 주차돼 있던 카니발과 BMW 등 차량 2대가 파손됐다. A군은 경찰에서 호기심에 차량을 운전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 7세인 A군은 촉법소년에도 해당하지 않는 형사책임 완전 제외 대상이다. 따라서 A군의 부모가 다마스 차량을 비롯한 피해차량 3대의 차주, 담벼락 주인 등에게 민사상 배상 책임을 지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중학생 제자와 성관계 맺은 日여교사...2년만에 들통나 퇴출 [김태균의 J로그]

    중학생 제자와 성관계 맺은 日여교사...2년만에 들통나 퇴출 [김태균의 J로그]

    일본의 한 중학교 여성 교사가 자기 집에서 남학생 제자와 부절적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2년여 만에 들통나 교직사회에서 퇴출됐다. 21일 일본 후지TV 보도에 따르면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이달 초 관내 중학교에 근무하는 여성 교사 A씨(32)에 대해 ‘청소년 건전육성 조례’ 위반 책임을 물어 징계면직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19년 3월 28일 오후 10시쯤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던 중학교 3학년 제자 B군과 자기 집에서 성관계를 맺었다. 당시 A씨는 29세, B군은 15세로 두 사람 사이에 14세의 나이차가 났다. 교육당국에 따르면 사건 당일 B군은 A씨의 휴대전화에 ‘봄방학 중 선생님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허락도 받지 않고 막무가내로 A씨 집에 찾아 왔다. B군이 평소 자신에 대해 각별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A씨는 집 앞에서 만나 “안에는 들어오지 말고 여기서 얘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제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B군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마음이 약해진 A씨는 제자를 집에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그날 밤 성관계를 맺었고, B군은 다음날에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둘의 행적이 탄로난 것은 사건이 있고나서 2년 반 정도가 흐른 지난해 8월이었다. A씨는 경찰관이 가택수색 영장을 들고 집으로 찾아온 후에야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A씨는 경찰 가택수색 이틀 만에 청소년 건전육성 조례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같은해 10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경찰에서 A씨는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후 B군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며 부적절한 관계는 단 1차례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2년 이상 지난 일을 어떻게 인지하게 됐는지 교육당국에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후지TV는 “교사와 학생의 부적절한 관계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발각되는 경우는 학생이 부모에게 오래전 일을 털어놓거나 학생이 특정 사건에 연루돼 이에 대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탄로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A씨는 교육당국에 “제자가 호감을 갖고 접근해 왔어도 넘어서는 안될 선은 지켰어야 했다”면서 “전체 교직원에게 커다란 민폐와 심려를 끼치고 말았다”고 사죄했다.
  • 제주도교육청 “이번주 학생인권침해 여고 학생들 실태조사 4월초 발표”

    제주도교육청 “이번주 학생인권침해 여고 학생들 실태조사 4월초 발표”

    제주도교육청은 21일 기자실에서 지난 15일 제주 한 사립여자고등학교 학생인권침해 실태 기자회견과 관련한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이날 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해당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사례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앞서 제주 한 사립여자고등학교 졸업생 A씨는 지난 15일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욕설, 폭언, 성추행 등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담은 조사보고서를 공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날 A씨는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제주학생인권조례 TF팀과 함께 학생들의 피해 사례를 폭로하고, 도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해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지난 18일 학부모총회를 열었고, 진상조사 과정에서 진정인을 비롯한 학생들이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협조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사안 처리의 객관성과 신뢰성 확보 위해 국가인권위워회 제주출장소와 도교육청 학생인권심의위원회 소위원회 등 외부전문가 포함해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해당 사안에 대한 객관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번주까지 졸업생 및 재학생 2~3학년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할 예정이며, 문항과 설문 방법에 대해 최종 검토 후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진정서에 기재된 해당학교 2022년 1월 졸업생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등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현실적인 조사의 어려움이 있어 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하고, 자발적 개별참여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주 설문조사에 대한 분석을 마치면 늦어도 4월초 쯤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김영관 학생인권교육센터장(장학관)은 “진정인이 요구사항은 학생인권침해 재발방지와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이었다”며 “인권침해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유관기관 등과 협조 아래 권고조치는 물론 문제점 발생시 해당 교사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학교를 대상으로 인권감수성 함양을 위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이며 권고사항 이행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해당학교 교장은 현재 교사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특정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확인을 통해 2차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후속조치 발표에 대해 “재발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어 교사들에게 변명의 빌미만 제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날 학생인권교육센터는 가해교사 처벌과 관련한 질문에 해당학교에 ‘권고’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한편 도교육청은 지난해말 초·중·고 학생인권실태조사를 마쳤으나 이번 사태와 맞물리면서 발표를 미뤘다. 조만간 내놓을 이 조사에서도 학생과 교사간의 인권 감수성 격차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 [단독] “버릴 수밖에 없이 내몬 사회도 잘못”… 영아유기 80%는 집유[남겨진 아이들, 그 후]

    [단독] “버릴 수밖에 없이 내몬 사회도 잘못”… 영아유기 80%는 집유[남겨진 아이들, 그 후]

    A양은 고교생이던 2015년 11월 딸아이를 출산했다. 병원이 아닌 부산의 한 원룸에서였다. 역시 고교생이었던 남자친구 B군이 아이를 받았다.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이들 주변엔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었다. 당장 먹고살 것도 막막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였지만 그릇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출산 이틀 뒤 부산의 한 아동복지시설 주차장에 이불에 싼 딸아이와 유아용품을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놓고 도주했다. “1년 뒤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남긴 채였다. 20일 서울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7년 2월 말부터 지난 2월 말까지 최근 5년간 형이 확정된 영아유기 관련 사건은 총 50건이었다. 연도별로는 2017년과 2018년 각각 11건에서 2019년 14건, 2020년 10건이었다가 2021년 4건으로 줄었다. 경찰청에 접수된 영아유기 사건은 2016년 109건에서 2018년 183건으로 증가한 뒤 2020년 107건으로 감소했다. 영아유기 관련 접수 사건과 기소 사건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부모 중 한쪽이 신고하거나 자수하지 않는 한 수사와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전체 50건 중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대신 5분의4 정도인 39건이 징역형의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 영아유기나 아동복지법 위반 등 유기 행위 자체만으로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 아이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유기했다가 자수한 싱글맘에 대해서는 선고유예가 내려지기도 했다. 앞서 사례의 A양과 B군 역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이 내려졌다. 이는 부모가 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데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사법부의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전지법 형사6단독(부장 문홍주)은 2018년 4월 영아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에게 “성장 과정에 안타까운 점이 있고, (범죄에 대해)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탓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며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 [남겨진 아이들, 그 후]법원도 ‘우리 사회도 영아유기 함께 책임져야’

    [남겨진 아이들, 그 후]법원도 ‘우리 사회도 영아유기 함께 책임져야’

    A양은 고교생이던 2015년 11월 딸아이를 출산했다. 병원이 아닌 부산의 한 원룸에서였다. 역시 고교생이었던 남자친구 B군이 아이를 받았다.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이들 주변엔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었다. 당장 먹고살 것도 막막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였지만 그릇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출산 이틀 뒤 부산의 한 아동복지시설 주차장에 이불에 싼 딸아이와 유아용품을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놓고 도주했다. “1년 뒤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남긴 채였다. 20일 서울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7년 2월 말부터 지난 2월 말까지 최근 5년간 형이 확정된 영아유기 관련 사건은 총 50건이었다. 연도별로는 2017년과 2018년 각각 11건에서 2019년 14건, 2020년 10건이었다가 2021년 4건으로 줄었다. 경찰청에 접수된 영아유기 사건은 2016년 109건에서 2018년 183건으로 증가한 뒤 2020년 107건으로 감소했다. 영아유기 관련 접수 사건과 기소 사건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부모 중 한쪽이 신고하거나 자수하지 않는 한 수사와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전체 50건 중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대신 5분의4 정도인 39건이 징역형의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 영아유기나 아동복지법 위반 등 유기 행위 자체만으로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 아이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유기했다가 자수한 싱글맘에 대해서는 선고유예가 내려지기도 했다. 앞서 사례의 A양과 B군 역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이 내려졌다. 이는 부모가 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데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사법부의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전지법 형사6단독(부장 문홍주)은 2018년 4월 영아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에게 “성장 과정에 안타까운 점이 있고, (범죄에 대해)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탓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며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 월 50만원 구단주, 베냉 청년 희망슛

    월 50만원 구단주, 베냉 청년 희망슛

    GDP 112위… 축구 어려운 환경 이세현씨 등 10명 매달 후원금 작년 코치진 포함 24명 팀 신설 이씨 “생계 탓 축구 못 할 일 없길”20대 대학생과 청년 등 10명이 힘을 모아 서아프리카 작은 국가 베냉에 축구팀을 만들고 구단주로 활동하고 있다. 구단명은 ‘FC 알바트로스’. 너무 큰 날개 탓에 평소에는 잘 날지 못하다가 태풍이 오면 가장 멀리, 힘차게 난다는 새 ‘알바트로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현지 선수들이 가난과 어려움을 딛고 세계 최고의 축구팀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담겼다. 2년 전 동네 친구와 동생 등 지인 9명을 설득한 끝에 지난해 구단을 설립한 대학생 이세현(26)씨는 17일 매달 구단 운영비로 50만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10명이 각자 5만원씩 내는 식이다. 국내총생산(GDP) 112위로 경제 사정이 넉넉치 않은 베냉에서 50만원은 축구화와 유니폼 등을 사고 최소한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운영 비용이다. FC 알바트로스에는 코치진을 포함해 24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직 현지 선수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코치가 이씨에게 보내주는 훈련 사진을 통해 현지 분위기를 전달받고 있다.이씨는 단순히 돈을 보내는 것을 넘어 구단명과 엠블럼을 만들고 축구용품 회사 등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부탁했다. 이씨는 “소년가장으로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축구는 꿈도 못 꾸었던 선수도 있고 차비가 없어 연습을 하러 수 십㎞를 걸어오다가 경기를 포기한 선수도 있었다”면서 “현지 코치에게 ‘선수들이 잘 먹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얘기를 듣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FC 알바트로스의 로고를 새겨 직접 제작한 맨투맨 티셔츠와 휴대전화 액세서리 등을 파는 블로그 마켓도 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매달 용돈 20만원을 받는 평범한 대학생 이씨가 지구 반대편의 조그만 나라 선수들을 위해 후원하는 이유는 6년 전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에서의 해외봉사 경험 때문이다. 원래 축구를 좋아해 키라바시에 축구공을 챙겨 갔다는 이씨는 “현지 친구들과 축구를 했더니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항상 제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며 “가난 때문에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하거나 축구공 등 인프라가 없어 축구를 좋아해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런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했다. 이씨의 꿈은 현재 4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FC 알바트로스를 3부 리그에 진출시키고 이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만들어 세계 최강의 축구팀으로 키우는 것이다.
  • 韓 대학생이 나눈 공 차는 즐거움···서아프리카에 축구팀 만들었다

    韓 대학생이 나눈 공 차는 즐거움···서아프리카에 축구팀 만들었다

    국내 청년 10명, 십시일반 후원금 모아서아프리카에 베냉에 축구 구단 신설“가난에 공 차지 못하는 현지 선수들 돕고파”코치·선수단 24명으로 이뤄진 FC알바트로스 탄생20대 대학생과 청년 등 10명이 힘을 모아 서아프리카 작은 국가 베냉에 축구팀을 만들고 구단주로 활동하고 있다. 구단명은 ‘FC 알바트로스’. 너무 큰 날개 탓에 평소에는 잘 날지 못하다가 태풍이 오면 가장 멀리, 힘차게 난다는 새 ‘알바트로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현지 선수들이 가난과 어려움을 딛고 세계 최고의 축구팀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담겼다. 2년 전 동네 친구와 동생 등 지인 9명을 설득한 끝에 지난해 구단을 설립한 대학생 이세현(26)씨는 매달 구단 운영비로 50만원을 지급한다고 17일 말했다. 10명이 각자 5만원씩 내는 식이다. 국내총생산(GDP) 112위로 경제 사정이 넉넉치 않은 베냉에서 50만원은 축구화와 유니폼 등을 사고 최소한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운영 비용이다. FC 알바트로스에는 코치진을 포함해 24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직 현지 선수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코치가 이씨에게 보내주는 훈련 사진을 통해 현지 분위기를 전달받고 있다.이씨는 단순히 돈을 보내는 것을 넘어 구단명과 엠블럼을 만들고 축구용품 회사 등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부탁했다. 이씨는 “소년가장으로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축구는 꿈도 못 꾸었던 선수도 있고 차비가 없어 연습을 하러 수 십㎞를 걸어오다가 경기를 포기한 선수도 있었다”면서 “현지 코치에게 ‘선수들이 잘 먹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얘기를 듣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FC 알바트로스의 로고를 새겨 직접 제작한 맨투맨 티셔츠와 휴대전화 액세서리 등을 파는 블로그 마켓도 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매달 용돈 20만원을 받는 평범한 대학생 이씨가 지구 반대편의 조그만 나라 선수들을 위해 후원하는 이유는 6년 전 남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에서의 해외봉사 경험 때문이다.원래 축구를 좋아해 키라바시에 축구공을 챙겨갔다는 이씨는 “현지 친구들과 축구를 했더니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항상 제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며 “가난 때문에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하거나 축구공 등 인프라가 없어 축구를 좋아해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런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했다. 이씨의 꿈은 현재 4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FC 알바트로스를 3부 리그에 진출시키고 최종적으로는 이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만들어 세계 최강의 축구팀으로 키우는 것이다.
  • 양육비 밀린 부모, 출금 요청 기준 3000만원으로 하향

    양육비 밀린 부모, 출금 요청 기준 3000만원으로 하향

    양육비를 밀린 부모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 기준이 현행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아진다. 또한 감치명령(법원이 직권으로 구속하는 제도) 이후에도 3개월 이상 양육비 미지급 시 채무액에 관계없이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17일 입법예고한다. 개정안은 규제 심사 및 법제처 심사, 차관·국무회의 등을 거쳐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출국금지 요청 제도를 시행한 이래 채무 기준이 높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여가부는 관계부처와의 협의 끝에 출국금지 기준액을 낮춰 3000만원으로 확정했다. 아울러 양육비 채무 금액에 관계없이 채무 불이행에 따른 감치명령 결정 이후 3개월 이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도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밀린 양육비가 기준액을 넘지 않는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도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신청이 가능한 소득기준도 현행 중위소득 50% 이하에서 75% 이하로 완화했다. 여가부는 지난 10일 제23차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를 열고 양육비 채무자 22명에게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45명에게는 관할 경찰서에 운전면허 정지처분을 요청했다. 출국금지 처분 요청 대상자는 지난해 10월 2명, 12월 7명에서 22명으로 늘었다. 운전면허 정지 처분 요청 대상자도 지난해 10월 6명, 12월 10명에서 45명으로 급증했다. 여가부는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 조치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높아지면서 양육비 채권자들이 이들 조치를 적극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양육비 이행 책임성과 제도 효용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명단공개 대상자 선정 때 의견진술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尹 당선인은 수능 늘린다는데,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반영 대학 지원

    尹 당선인은 수능 늘린다는데,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반영 대학 지원

    교육부가 대입전형에서 고교학점제 운영을 지원하는 대학들에 575억원을 지원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고교학점제 추진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정시 확대를 밝힌 만큼 향후 혼선이 불가피하게 됐다. ●고교학점제 확대 위해 올해 지표 20점 신설 교육부는 ‘2022∼2024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기본계획을 16일 발표했다. 대입 전형과 고교 교육과정간 연계를 높이고, 학생·학부모의 입시 부담을 완화하는 데에 기여한 대학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에는 75개 대학을 선정해 총 553억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선정대학이 90여개로 늘고, 지원 액수도 575억원으로 확대했다. 기존 2년 단위 사업은 올해부터 3년 단위로 개편한다. 평가는 대입 공정성 및 책무성, 수험생 부담 완화, 학생선발 기능강화 및 전문성 제고 등을 따져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 지난해와 다르게 올해는 대입 공정성 및 책무성 지표를 비롯해 일부 지표를 줄이고 20점짜리 ‘고교교육 연계성’을 추가했다. 고교 연계 프로그램 운영 계획, 고교교육 반영 전형연구 및 평가체계 개선 계획 등을 살핀다. 고교학점제를 대입전형에 반영하는 대학을 지원해 제도를 정착하고 확산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고교학점제는 올해 직업계고 학교에 먼저 도입되며, 일반고에는 2025년부터 전면 도입된다. 시도별로도 사실상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지역이 많고 내년에는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고1부터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현장에 정착했고 고교학점제도 단계적으로 시행 중인 만큼 2023∼2024학년도 대입 계획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김혜림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학생들이 선택과목들을 많이 이수하고 있고 진로선택 과목은 석차등급이 (성적표에) 안 나오는 등 현장 변화가 있어 대학들이 미리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수능과 충돌하는 고교학점제, 대학들은 혼란 그러나 고교학점제가 새 정부의 교육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고교학점제 취지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수능을 확대해 정시를 늘려가겠다고 했다. 고교학점제는 대학교처럼 고교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일정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선택과목이 수능 과목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연스레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고, 오히려 수능 과목에 대한 사교육을 부를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애초 수능 자격고사화, 학생부종합전형 강화와 짝을 이루는 제도로 설계됐다. 원래대로라면 수능 비중을 줄이고 고교학점제에 기반을 둔 학생부 종합전형을 늘리면서 수시를 확대하는 게 문재인 정부의 목표였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지면서 대입제도가 꼬여버렸다.이번 사업에서도 수도권 대학은 수능위주 전형을 30% 이상 운영해야 하고, 특히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등 서울의 주요 16개 대학 참여 요건은 40% 이상을 설정했다. 대학들이 이 사업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고교학점제를 반영해 대입제도를 설계하려면 수시 비율을 늘리는 게 맞는데, 조국 사태 이후로 교육부가 갑자기 정시 확대 목소리가 높였다. 여기에 윤 당선인이 정시 확대를 강조하고 있어 앞으로의 방향이 상당히 모호해졌다”고 말했다. ●꼬여버린 대입제도, 피해는 학생들에게 앞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2025 교육과정 개정을 발표하면서 “2025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교육과정이 바뀌면 대입에 반영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면서 “지금처럼 한 번의 시험을 치르는 수능 체제가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입제도 개편안의 틀을 함께 내놓겠다는 애초 약속과 달리 다음 정부로 대입제도 개편의 공을 넘겨버렸다. 대선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함께 나왔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대입제도의 틀을 틀어버리면서 앞으로의 대입제도도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새 정부는 2024년 2월까지 새 대입제도를 발표하고, 이에 따라 2028학년도부터 새로운 대입제도를 적용한다.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하는 2025~2027학년도 대입제도에 걸린 학생들은 자칫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교육부도 이를 감안한 듯, 이번 사업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고교학점제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인정하고는 “정시 비율은 사업 참여를 위한 요건이고, 고교학점제는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대학들이 준비할 부분이기에 두 부분이 서로 상충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해명을 내놨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측면에서 이뤄지는 활동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사업에서는 최근 4년간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유형Ⅱ)의 지원 규모를 8곳에서 20곳으로 확대한다. 지원 규모는 50억원이다. 지원할 대학은 오는 25일까지 사전 접수해야 한다. 선정 대학 발표는 5월 말쯤 한다.
  • 3세 아들 갖고 놀던 총에 20대 친모 숨져…美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

    3세 아들 갖고 놀던 총에 20대 친모 숨져…美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

    미국에서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총을 갖고 놀다가 어머니를 쏴 숨지게 한 비극이 일어났다. 14일(현지시간) CBS뉴스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미국 시카고 남부 교외 도시인 일리노이주 돌턴에 있는 한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권총을 갖고 놀던 3세 남아가 방아쇠를 당겨 발포된 총알이 22세 어머니의 목을 맞혔다. 어머니 데자 베넷은 시카고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현지 경찰은 “총기 사고를 낸 아이는 부모가 함께 탄 승용차의 뒷좌석 어린이용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차 안에서 권총을 발견하고 갖고 놀기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에 있던 아이 아버지는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총기 소유주로 확인돼 일단 수감됐다. 현재 경찰은 기소 여부를 판단 중이다.앤드루 홈스 돌턴 시의원은 사고 다음 날 현장에서 권총 잠금장치 400개를 무료로 배포하며 총기 안전 수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홈스 의원은 “이번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땐 항상 잠금장치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 전역에서는 더 강력한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애틀랜타저널(AJC)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지아주 유권자 중 70%와 공화당 유권자 중 54%가 총기 휴대 전에 면허 취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시는 지난 1월 총기 소유자에게 부담금을 납부하고 책임보험에도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총기 소유자는 연간 25달러의 총기 소유 부담금을 비영리단체에 내야 하고, 비영리단체는 납부된 부담금을 총기 범죄 예방 활동과 총기 폭력 희생자 지원에 사용하게 된다. 한편 총기규제 옹호 시민단체인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Everytown for Gun Safety)는 올해 미국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총기사고 가운데 43건을 어린이가 저질렀고, 이로 인해 16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에는 최소 379건의 사건이 어린이에 의해 일어나 154명의 사망자와 244명의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 “푸틴 막을 사람? 전장에 자식 보낸 러시아 어머니들뿐”

    “푸틴 막을 사람? 전장에 자식 보낸 러시아 어머니들뿐”

    러시아 침공 14일째를 맞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늘고 있다. 러시아 곳곳에서도 반전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식들을 참혹한 전장으로 내보내길 원치 않는 러시아 어머니들이 이 끔찍한 전쟁의 경로룰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에서 푸틴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어머니들의 분노와 공포에 찬 목소리”라고 밝혔다. 현 체제에서는 그들만이 푸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어머니들은 이미 명분 없고 비도덕적인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옛소련 말기인 1989년 결성된 ‘러시아 병사 어머니 위원회’가 가장 대표적인 군인 권리 옹호단체다. 체첸 전쟁 당시 정부는 군인이 죽더라도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거나 사상자를 축소하기 위해 공식 전사자 명단에 이름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당시 정부가 숨겼던 전쟁 사상자 실태를 알리고,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군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반전여론을 주도했다. 현재 이 단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전장에 나간 자식의 행방을 찾는 부모들을 돕고 있다. 실제로 일부 러시아 병사들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사실도 모른 채 전투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의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영상에서는 러시아 군복을 입고 팔이 뒤로 결박된 포로가 “군사훈련인 줄 알고 참여했다. 여기가 우크라이나 땅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우크라이나 어머니들은 전쟁 상대인 러시아 어머니들에게 “모든 어머니가 전쟁터로 와서 자식들을 집으로 데려가도록 하자”고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키 여사도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의 어머니가 데리러 온다면 모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 안보 전문가인 마크 갤리오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병사의 어머니들은 자체로 전쟁을 끝낼 수는 없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데는 큰 힘을 발휘한다”면서 “그들이 펼치는 순수한 풀뿌리 운동이야말로 이 전쟁이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라 푸틴의 전쟁임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소년범을 만든 건 누구인가

    소년범을 만든 건 누구인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김혜수기회 주면 바뀐다고 믿는 김무열뺑소니·성폭행 실제 사건 토대로왜 버려진 아이가 죄에 물드는지과연 판사의 그 처분은 합당한지손가락질보단 현실 그대로 짚어최근 국내외에서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지난달 25일 공개 이후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TV쇼에서 글로벌 톱10을 여드레 동안 지켰다. 8일 기준으로 톱10에서 빠졌지만 한국을 포함해 일본, 대만, 홍콩 등 정서가 비슷한 동아시아 6개국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소년범에게 내리는 이 처분은 합당한가. 죄의 책임은 그만의 것인가. 이 소년을 만든 건 누구인가. 영악한 아이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라고 쉽게 손가락질하는 대신 드라마는 아이들의 마음을 깊게 파고든다.10부작 시리즈를 이끌어 가는 건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과 “아이들은 기회를 주면 바뀐다”고 믿는 판사 차태주(김무열)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두 배우는 “편협한 시각으로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소년범을 더 깊게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드라마는 다양한 관점으로 소년범죄를 바라본다.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까지 다루며 제각기 다른 판사 4명의 시각을 제시한다. 심은석이 차가운 머리라면 차태주는 뜨거운 가슴에 가깝다. 당연히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부터 부딪치고,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나근희(이정은)와도 건건이 대립한다. 그러나 그 밑에 두껍게 깔려 있는 건 소년에 대한 고민이다. 김혜수는 심은석에 대해 “‘혐오’라는 강력한 대사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며 “사안을 냉철히 들여다보고 실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보여 줘야죠,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라는 심은석의 대사는 일견 소년범에 대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의지로 읽히지만 그 의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저지른 비행에 대해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때, 잘못을 혼내고 가르치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을 때, 법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다.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줘야 한다는 말은 그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고심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극중 사건은 초등생 유괴 살인, 무면허 뺑소니 사망, 집단 성폭행 등 실제 국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현실을 토대로 각색됐다.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기 위해 배우들 역시 실제 소년부 판사들을 만나 얘기하고, 직접 소년법원에 가는 등 치열하게 고민했다. 김무열은 “법정에서 판사님이 자리에 앉은 뒤 기록을 살피는 짧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의 침묵이 정말 무겁게 다가왔다”며 “판사가 내리는 결정이 한 인간,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절절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혜수는 “비행 이후 부모와 같이 심리·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진심으로 노력하고 바뀐 아이가 있었는데, 판사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세 번 하시더라”면서 “아이라고 책임이 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청소년 범죄는 가변적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관심을 주면 그만큼 바뀐다”고 강조했다. 잔인하기만 한 사건을 앞세우기보다 소년범죄의 현실을 면밀히 짚어 보려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강력범죄보다 절도 같은 ‘생활 밀착형’ 범죄가 더 많다는 점에 주목했고,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어떻게 비행에 빠지는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소년범죄는 저지르는 게 아니라 물드는 것”이라는 대사는 청소년 시기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짚어 내고, 시설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집단 탈출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시설 운영자 개인이 국가와 법의 일을 대신 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리하여 드라마는 마침내 “미안합니다, 어른으로서”라는 사과로 끝을 맺는다. 직접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전하는 미안함이자 범죄의 길로 가도록 버려진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건네는 사과다.
  • [인터뷰] “소년범, 나 역시 분노”…김혜수·김무열이 말하는 ‘소년심판’ 비하인드

    [인터뷰] “소년범, 나 역시 분노”…김혜수·김무열이 말하는 ‘소년심판’ 비하인드

    “소년범죄는 아이들 개인이나 판사, 관계자만의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 어른들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죠.” 최근 화상으로 만난 배우 김혜수의 말이다. 지난달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이 국내외에서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0부작 시리즈를 이끄는 건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판사 심은석(김혜수)과 “아이들은 기회를 주면 바뀐다”고 믿는 판사 차태주(김무열)다. 두 배우는 화상 인터뷰에서 “단편적 시각으로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소년범을 더 깊게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드라마는 다양한 관점으로 소년범죄를 바라본다.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까지 다루며 제각기 다른 판사 4명의 시각을 제시한다. 심은석이 차가운 머리라면 차태주는 뜨거운 가슴에 가깝다. 당연히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부터 부딪치고,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나근희(이정은)와도 건건이 대립한다. 그러나 그 밑에 두껍게 깔려 있는 건 소년에 대한 고민이다.김혜수는 심은석에 대해 “‘혐오’라는 강력한 대사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며 “사안을 냉철히 들여다보고 실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나 역시도 촉법소년 문제나 소년범죄 등이 언론에서 보도되면 분노하고, 나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며 “그런데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면서 그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게 됐다”고 돌아봤다. “보여 줘야죠,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라는 심은석의 대사는 일견 소년범에 대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의지로 읽히지만 그 의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저지른 비행에 대해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때, 잘못을 혼내고 가르치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을 때, 법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다.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줘야 한다는 말은 그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고심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차태주는 소년부 판사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이상향에 가깝다. “충분한 관심이 주어지면 아이들도 갱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다른 판사들에 비해 자기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지 않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보듬는다. 그를 연기한 김무열은 “초반 1~2회 정도 분량을 찍고 ‘이렇게 힘을 빼고 연기해도 되나’ 하는 고민이 컸는데, 김혜수·이성민 선배님이 연기가 좋다고 칭찬해주시더라”며 “그때부터 캐릭터에 대해 확신이 생겨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극중 사건은 초등생 유괴 살인, 무면허 뺑소니 사망, 집단 성폭행 등 실제 국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현실을 토대로 각색됐다.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기 위해 배우들 역시 실제 소년부 판사들을 만나 얘기하고, 직접 소년법원에 가는 등 치열하게 고민했다. 김무열은 “법정에서 판사님이 자리에 앉은 뒤 기록을 살피는 짧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의 침묵이 정말 무겁게 다가왔다”며 “판사가 내리는 결정이 한 인간,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절절히 깨달았다”고 밝혔다.김혜수는 “비행 이후 부모와 같이 심리·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진심으로 노력하고 바뀐 아이가 있었는데, 판사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세 번 하시더라”면서 “아이라고 책임이 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청소년 범죄는 가변적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관심을 주면 그만큼 바뀐다”고 강조했다. 드라마는 잔인하기만 한 사건을 앞세우기보다 소년범죄의 현실을 면밀히 짚는다. 강력범죄보다 절도 같은 ‘생활 밀착형’ 범죄가 더 많다는 점에 주목했고,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어떻게 비행에 빠지는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소년범죄는 저지르는 게 아니라 물드는 것”이라는 대사는 청소년 시기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짚어 내고, 시설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집단 탈출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시설 운영자 개인이 국가와 법의 일을 대신 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그리하여 드라마는 마침내 “미안합니다, 어른으로서”라는 사과로 끝을 맺는다. 직접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전하는 미안함이자 범죄의 길로 가도록 버려진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건네는 사과다. 김혜수는 “촬영 후 이번에 완성된 드라마를 직접 보니 소년범의 현실에 맞게 법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년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며 “더 깊게 들여다보고, 사건의 이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처분은 소년범에게 내리지만, 이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껴야 한다’는 대사가 가장 와닿는다. 한번쯤은 외면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소년범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무열은 “이번 작품을 통해 소년범죄엔 열악하고 취약한 시스템, 그 근원에 있는 가정폭력, 인력 부족 등 포괄적이고 방대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당장은 해결할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엉켜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우리가 만난 아이들 = 이근아·김정화·진선민 지음일간지 기자인 저자들이 2020년 4∼11월 소년범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사회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책은 ‘소년범의 탄생’부터 ‘소년범의 홀로서기’까지 다룬다. 저자들은 소년범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며 이들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사회에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소년범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년의 죄’는 결국 ‘우리 사회의 죄’임을 밝힌다.이는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책이다. 소년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들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한 번의 따듯한 손길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고 호소하는 책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기보다”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아이를 놓쳐버린 게 아닐까?” 이 책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책에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신이 어른이라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벼랑 끝에 서 있는 소년의 손을 잡아주길. 소년범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 북한, 여성의날에 “주부‧며느리로서 시부모 잘 모시고 나라 떠받들라”

    북한, 여성의날에 “주부‧며느리로서 시부모 잘 모시고 나라 떠받들라”

    북한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국제 부녀절)을 맞아 여성들에게 가정 내 돌봄노동과 사회 참여를 동시에 잘 해내라고 당부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1면 사설에서 북한 여성들을 향해 “가정의 협소한 울타리 안에서 변천하는 시대와 현실을 관망하는 관조자 입장에서 탈피하라”고 주문했다. 신문은 여성들에게 “훌륭한 가풍과 국풍을 이어주며 나라를 떠받드는 믿음직한 고임돌이 되어야 한다”면서 “나라에 보탬을 주는 일감들을 더 많이 찾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정치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봉건적 구속’에서 헤매던 여성들의 지위에 근본적 전환이 일어난 것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만든 ‘고귀한 결실’이라며 여성들을 ‘복 받은 여성’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가정의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안해(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항상 자각하면서 시부모들을 잘 모시고 남편과 자식들이 국가와 사회 앞에 지닌 본분을 훌륭히 수행해나갈 수 있게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또 다른 기사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최고지도자들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울인 노력을 찬양하고, 자본주의 국가 여성들이 겪는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과 성차별 등을 거론하며 북한이 여성에게 살기 좋은 곳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주장과 달리 북한 여성의 실질적인 지위는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공개한 ‘북한인권백서 2021’에서 북한에서는 “여전히 남존여비와 정형화된 성역할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권력의 핵심부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정치적·행정적 책임과 권한을 지닌 내각의 각료로 등용된 여성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북한은 국제부녀절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명절처럼 각종 축하 공연과 이벤트를 열며 매년 크게 기념해왔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평양 청춘거리 송구경기장에서 여성의 날을 맞아 평양시 여맹 체육대회를 열기도 했다.
  • 너른 엄마 품 같은 한 자 한 자… 무자비한 세상에 헤진 마음 기대다 [작가의 땅]

    너른 엄마 품 같은 한 자 한 자… 무자비한 세상에 헤진 마음 기대다 [작가의 땅]

    마흔 살에 등단해 맹렬한 글쓰기연이어 가족 잃은 슬픔에도 집필암 투병 중에도 후배 작가 챙기고부의금 받지 말라던 시대의 어른 사후 문학관·문학마을 건립 반대도서관에 세워진 자료실이 유일소설·수필·동화 등 치열한 흔적둘러보기만 해도 마음 놓이는 곳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산했던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 있다. 선생께서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와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앞서 ‘엄마’가 놓이는 것은 그의 너른 품과 손맛 그리고 그가 쓴 문장의 힘에 모두들 기대어 산 덕분이 아닐까. 선생에게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들과 무자비한 세상을 향해서 날카로운 문장으로 단도리를 해 주던 큰엄마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소설을 누군가의 슬하에 놓아두어야 한다면 최소한 한국 문학의 자리에서 그 주인은 ‘박완서’다. 나는 입때껏 그리 믿고 읽고 써 왔다. 이 또한 나만의 일일까.소설가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출생했다. 세 살 무렵에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선생은 훗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손녀와 집안 사람들의 창씨개명을 허락하지 않았던 까닭에 ‘박완서’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딸을 사대문 안의 좋은 학교에 보내고자 했던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개성에서 경성으로 이사를 했다. 숙명고등여학교에 입학했지만 일본의 소개령으로 인하여 개성으로 이사한 후에 호수돈고등여학교로 전학을 갔다. 개성에서 해방을 맞았고, 서울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1950년 6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한다. 스무 살의 박완서는 전쟁 중에 숙부와 오빠, 올케를 잃는다. 어린 조카와 어머니를 책임져야 했기에 학업에 복귀하는 대신 미8군의 PX 초상화 부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던 박수근 화백을 만나게 되고 이는 훗날 등단작 ‘나목’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선생은 그곳에서 일하는 것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졸지에 가장이 된 처지였던 터라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후에 서울의 동화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그곳에서 만난 측량기사와 결혼을 한다. 1남 4녀의 자식을 둔 채로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던 중에 1968년에 열린 박수근 유작전을 보고 그와 함께 일을 했던 때의 이야기를 쓴 수필을 소설로 개작해 ‘신동아’ 장편소설에 응모를 한다. 첫 소설 집필작으로 당선이 된 선생은 그때의 소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중략) 자꾸 쓰다가 빗나가면서 내가 상상한 걸 보탤 적이 있어요. 그럴 때는 즐겁게 써져요. 원고지에다가 쓸 때니까 하루 대여섯 장만 써야지 했는데, 20장도 써지는 날이 있어. 보면 내가 막 보태는 거야. 그 다음날 계속해서 쓰려고 어제 거 읽어 보면, 이건 아닌 거예요. 진짜만 추리고 나면 뼈대만 남고. 말보다는 거짓말을 보태니까 잘 써진다 싶어요. 거짓말을 시키는 게 내 소질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는 생각도 못했지만, 쪼끔 어려운 말로 하면 상상력이죠. 사실에다 상상력을 보태야지 사실의 뼈대만 갖고 쓰는 건 난 도저히 재미가 없구나.”(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나이 마흔의 늦깎이 등단이었다. 그 이후의 엄청난 창작열은 데뷔하던 해 작가의 나이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준 셈이다. 선생은 끝까지 현역 작가로 살다 가겠다는 뜻을 품었고, 마침내 이루어 내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이렇게 말했다. “늦깎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보여요. 일단 냉정하고 현실적이에요. 문인이기 때문에 삐딱함이나 낭만이 없을 수 없지만, 세상과 삶을 보는 방식에는 낭만기가 없어요. 냉정하죠. 냉소적이기도 하고요. 젊지 않은 나이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양상은 다르지만, 늦깎이가 지니는 맹렬함 같은 것도 보여요.”(서영채, ‘왜 읽는가’에서) 그야말로 맹렬하게 써 내려갔다. 왕성하다는 말로도 부족함이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어쩌면 서영채의 말대로 ‘냉정하고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시간을 엄마의 시간에서 떼어 내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등단 이후에도 작가와 엄마의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해 나갔던 터라 집안은 평화로웠고 작가로서의 치열함은 매해 출간되는 작품집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나 1988년 5월에 암투병을 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마취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일이 벌어진다. 연이어 가족을 잃은 선생은 심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산의 분도 수녀원에 요양을 하러 내려가기도 했다.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아픔 속에서도 선생은 다시 글을 써 내려갔다. 그 당시의 심정을 수필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 토로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중략) 행복했을 때는 아침이 좋았는데 요샌 정반대다. 내 앞에 펼쳐진 긴긴 하루를 살아낼 생각이 지겹도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시때때로 탈진하도록 실컷 울면 그동안이라도 시간을 주름잡을 수가 있는데 그것도 용납 안 되는 하루 동안이란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한 말씀만 하소서’에서)부산 수녀원을 나와서 미국에 살던 딸네 집으로 갔던 선생은 머지않아 서울로 돌아와서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전과 다름없이 꾸준히 작품을 생산해 내었고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별세 후에는 보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우스갯소리로 ‘박완서 선생이 타지 못한 문학상은 젊은작가상밖에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만큼 현존하는 문학상을 거의 다 수상했다. 수상하지 못한 젊은작가상은 ‘심사’를 하다가 돌아가셨으니 어느 정도 연관은 있게 된 셈은 아닌가. 선생은 암 투병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젊은 후배들의 작품을 읽었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도 즐겼고 간간이 후배들을 만나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이었다고. 등 뒤에 서 있는 이들에 대한 촉을 놓지 않으려는 어른의 배려를 받은 작가들은 그 시간을 더할 나위 없이 그립다고들 한다. 해마다 쏟아낸 작품의 종수와 그의 빼어남은 육신의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선생께서 세상을 뜨셨을 적에 오죽하면 ‘우리는 원로 작가 한 분을 떠나보낸 게 아니라 당대의 가장 젊은 작가 하나를 잃었다’(문학평론가 신형철)고 했을까. 게다가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치고 박완서 선생의 글을 곁에 두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다작이면서도 빼어난 작품들을 스스럼없이 써내는 선생을 귀감으로 삼는 후배 작가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한 사람으로서도, 소설가로서도 모든 것을 알고 읽고 있는 듯하던 선생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돌아보았다.“돌이켜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였다.”(‘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다른 이도 아닌 ‘박완서’의 말이었기에 더 수긍이 가고 또 그의 수백 편의 소설들 덕분에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병석에서 후배들의 병문안을 극구 사양하고, 별세하기 전에는 가난한 후배 문인들에게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을 남겼던 시대의 어른. 미처 다 읽지 못한 ‘젊은작가상 심사 원고’가 선생의 곁에 놓여 있었다는 병실의 풍경은 너무도 많이 되뇐 탓인지 보지 않았는데도 마치 본 것 같다. “한국 문단에 박완서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희망이었는지 선생님은 아실까요. (중략) 선생님만큼 오랫동안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가슴에 품은 후배 작가들이 저 말고도 참 많습니다.”(소설가 정이현의 편지 중에서) 너른 품으로 감싸 안아 줬던 후배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른 아니 엄마의 자리에 있던 선생의 부음을 들었을 문단과 독자들의 상실감은 아직도 너무 크다. 선생이 기거하던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의 노란 집에는 아직도 가족들이 살고 있다. 자신의 사후에 집이 문학관이나 문학마을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박완서의 이름이나 유물의 전시가 아닌 오로지 작품으로만 후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작가의 유지였지만 작가 박완서를 기리는 후대의 갈망은 더 컸던 모양이다. 구리시에서 문학관 건립을 승인했고 착수 절차에 돌입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됐다. 그리하여 2009년 인창도서관에서 문을 연 박완서 자료실이 현존하는 유일한 박완서의 기념관인 셈이다. 박완서 자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서울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선생의 모습이었다. 전쟁통에 그만둔 학교에서 훗날 문학박사 학위 수여식을 열기까지 선생의 삶의 면면들이 한눈에 펼쳐진 공간이기도 했다. 소설, 수필, 동화에 이르기까지 선생이 엄혹할 정도로 치열하게 썼던 흔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자료실 곳곳에 놓인 선생의 사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마음이 놓이는 장소였다. 다시 한번 선생의 소설을 펼쳐 보고 싶어지는 공간이었달까. 한 작가의 자료를 모아 둔 곳이 꼭 그가 살던 터는 아니어도 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마음 한자리에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새겨 놓은 공간을 마련해 둔 것이니. 게다가 그 작가가 박완서라면 살아가는 내내 마음이 무너지고 다리가 꺾일 때마다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든든한 의자 하나 마련한 것과도 같을 터이다.우리에게는 박완서가 있었다. 손맛 좋아 밥을 두 공기씩 먹게 만들고 이야기를 잘 들려주어 밤마다 채근하듯이 그의 곁으로 모이게끔 하는.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박완서의 소설이 남았다. 종종 선생께서 돌아가셨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가 쓴 소설의 힘이 아닌가. 소설이라는 집의 가장 첫 번째 주인 같은 박완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그가 만든 소설 속에서 상처받고 헤진 마음을 놓아두어도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엄마의 품에서는 그래도 된다. 소설가 이은선
  • [STOP PUTIN] 휴전 혼란 일었던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민간인 대피 재개

    [STOP PUTIN] 휴전 혼란 일었던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민간인 대피 재개

    러시아군이 포위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6일(이하 현지시간) 민간인 대피가 재개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마리우폴 시의회는 “이날 낮 12시(한국시간 오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민 40만명 중 일부가 대피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측은 대피하는 9시간 동안 임시 휴전하기로 했다. 당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마리우폴과 볼로바하에서 민간인 대피에 합의하고 전날 오전부터 임시 휴전을 통해 ‘인도적 통로’를 마련하기로 했으나 양측의 교전이 멈추지 않아 무산됐고, 양측은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렸다. 마리우풀 주민 알렉산드르(44)는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길거리로 나왔더니 폭격 소리가 3∼5분마다 들리고 피난 가려 했던 차들이 되돌아오고 있다”고 증언했다. 막심(27)이 조부모의 아파트에서 촬영한 동영상에도 위험천만한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상이 보여준 마리우폴 도심은 곳곳에 폭발로 인한 연기가 가득했다. 막심은 대피 경로로 지목된 자포리자행 고속도로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며 “미사일 소리가 들리고 주변 건물에서도 연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폭격을 피해 나선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좌안 지구에서 온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거리에 시신들이 보이고 완전히 재앙 수준”이라고 말했다.마리우폴에 가족을 둔 다른 지역 주민들도 애를 태웠다. 케이트 로마노바(27)는 마리우폴에 갇힌 부모와 오전에 통화했는데 부모는 대피와 관련한 정보를 듣지 못했고 폭격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내에 대피 정보를 알려주는 확성기가 있는데 사람들은 러시아 측이 흘린 가짜 정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이를 믿어야 할지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히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도 휴전은 러시아의 폭격으로 완전히 무효가 됐다고 BBC에 밝혔다. 그에 따르면 당초 최대 9000명이 전날 버스와 민간 차량 등 50대로 마리우폴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폭격이 그치지 않아 무산됐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마리우폴을 아직 통제하고 있으나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20만명 정도가 물과 전기 없이 나흘째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인구 45만명의 마리우폴은 동부의 친러 반군 지역과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림반도를 이어 보급로를 확보하려는 러시아군의 핵심 전략 목표다.
  • ‘궁궐 정치는 무서워’…내명부 여인의 권리 [클로저]

    ‘궁궐 정치는 무서워’…내명부 여인의 권리 [클로저]

    나라의 왕비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대선 D-3, 소란스러웠던 ‘배우자 문제’우리 조상은 어떻게 관리했을까내명부 수장 왕비, 어떤 것 감내했나“추문·말싸움·모욕으로 얼룩진 역대 최악의 선거” (미국 워싱턴포스트, 2월 8일 보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한국 대선을 표현한 말입니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선거”라며 “추문·말다툼·모욕으로 얼룩지고 있다”고 지난달 8일(현지시간) 보도했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3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정치권 평가가 나오는데요. WP는 후보 당사자보다 배우자 스캔들이 한국을 시끄럽게 한다고 조명했습니다. WP는 “논란은 그들의 가족에게도 확장됐다”며 “한 후보의 부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기자를 감옥에 넣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성폭행 피해자를 비하했다. 이 부인의 모친은 경제 범죄와 연루됐다”고 했죠. 이는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를 지칭한 겁니다. 매체는 “또다른 후보의 부인은 자신의 남편의 수행원들의 사적으로 유용했다”며 “이들의 아들은 도박 혐의에 연루돼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는 이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를 가리킨 것이죠. 국내 여론에선 ‘남의 나라 대선에 말 얹기’냐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시원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실제 이번 대선에서는 이 후보, 윤 후보의 부인들이 각각 얽힌 스캔들 탓에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각에선 후보 아닌 배우자를 향한 과도한 조명을 지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죠. 다만 대통령의 배우자 역시 당선인을 따라 해외 순방에 나서거나 국내외 행사를 주관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하기에 이들을 향한 검증은 당연한 절차라는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당선인의 배우자가 되어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죠. ● ‘바쁘다 바빠’ 내명부 수장 과거에도 이런 논쟁은 존재했습니다. 대통령과 왕을 동일시할 순 없지만 한 나라의 통수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동일선에 두겠습니다. 과거 내명부의 수장이던 왕비들 역시 사는 동안 검열, 권력투쟁에 익숙해야했습니다. 내명부의 여인이라고 해서 아무 일도 없이 방 안에 앉아있던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궁 안에는 당대의 왕과 직접 연관된 여성들만 살 수 있었습니다. 공주·옹주는 궐 밖으로 나가야 했죠. 왕비는 나라의 노인들을 위한 행사인 양로연, 선왕·선왕후를 모시는 행사 등을 기획, 주관했습니다. 또한 지금의 서울 잠실에서 길쌈을 하는 친잠례도 진행했죠. 안으로는 내명부 최고 어른으로서 문안인사를 드리고 또한 받는 등 기강을 다지는 일을 맡았습니다. 즉, 안팎으로 왕비가 주도해 하는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왕비 자신의 힘도 있어야 했고요. 늘어나는 후궁을 보면서 기강을 다잡을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했죠.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조직으로서 내명부를 관리할 수 있는 책임감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왕비의 일이 규칙화된 것은 세종대왕, 성종에 이르러서의 일입니다. 중궁전에 올라가던 ‘진상(進上)’, 그 외의 것을 부르던 ‘공상(供上)’ 역시 세종대에 정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경외(京外)의 관원이 대전(大殿)과 공비전(恭妃殿)에 바치는 모든 물품은 진상이라 일컫고, 그 나머지 각전(各殿)에는 공상이라 일컫도록 하소서” 하자 “그리 하였다”는 기록은 세종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죠. 대왕대비·왕대비·왕비·후궁 등 왕실 여성들은 별도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독립된 존재로서 어떠한 형태의 결정권은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들은 지방에서 올리던 진상(進上)·공상(供上) 등을 받아 자신의 의식주를 관리했는데요. 이를 위해 궁방 인장이 필요했죠. 궁방은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장소입니다. 왕비뿐 아니라 후궁도 이런 인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 인장 일부는 지금까지도 전해집니다.  이전에는 후궁들에게 봉작을 주지 않아 이들의 신분이 불안정했죠. 또한 고려왕실과 달리 근친혼을 멀리하게 되면서 더 다양한 사대부가의 여식들이 궁 안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성종에 이르러 경국대전 내명부 체제를 법제화하면서야 왕비를 정점으로 한 형식이 완성됐습니다. 이로써 왕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 역할했습니다. 이 일이 주업무였고요. 물론 때에 따라 수렴청정을 해야 하는 일 등을 권한이라 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되레 여성이 왕이 될 수 없으니 세자를 잘 보필하라는 의미가 강하므로 주도권 명분의 결이 좀 다릅니다. ● ‘나랏님’ 세자빈 찾는다 소식에 ‘곤란’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왕비를 어떻게 앉혔을까요. 간택을 통해 세자빈을 찾는 경우에 한해 보겠습니다. 그 외의 방법들도 있으나 원칙대로 살피겠습니다. 세자가 대개 10살쯤 되면 전국에 ‘봉단령’을 내려 13~17세 여성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들 중 간택을 거치는데요. 이른바 ‘처녀단자’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는 그 단자입니다. 조선건국 초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간택제도는 없었습니다만 태종이 중매혼 제안을 거절당하는 일이 생기자 이에 노해 도입됐죠. 본래 간택의 적용범위는 비빈까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반 왕자녀(王子女)의 배우자까지도 이 제도를 통했죠. 모집 대상은 이씨가 아닌 사람, 부모가 있는 사람, 세자(또는 왕자녀)보다 2, 3세 연상까지의 여(남) 및 이성친(異性親)의 촌수 제한이 있었죠. 간택은 초간택·재간택·삼간택 등 3차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사실상 정해져 있던 자리였고요. 또한 간택령을 내린다고 해서 단자를 올리지 않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최종 면접에 갔다가 떨어지면 원칙상으로는 새로 혼처를 구하는 것이 금지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추후 융통성 있게 구제하는 방안들도 마련됐다고는 합니다. 세자빈이 되어도 궁 내의 견제로 집안이 풍비박산날 수 있으니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치장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속칭 ‘들러리’가 되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셈이 됐기 때문이죠. 실제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단자를 올리기 위해 빚을 내야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 구중궁궐 암투, 버텨내기 쉽지 않네 이후 세자가 장성해 왕이 되는 것에 따라 자연스레 왕비가 된 경우는 조선시대 총 27명의 왕 중 7명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세자가 왕이 되는 것에 변수가 많았습니다. 7명의 왕비 중에서도 세자빈·왕비·대비를 모두 거친 이는 1명뿐이죠. 세자빈으로 간택받아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방증입니다. 치열한 권력싸움을 견제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내명부를 이끌어야 했으니 가진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겁니다. 실례로 혜경궁 홍씨 역시 임오화변으로 더 이상 궁과 관계없는 신분이 되어 자진해 궁 밖으로 나가기도 했죠. 그는 세자빈이 되어 세자를 낳았지만 대비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혜경궁 홍씨였죠. “생각이 나라를 근심하는 데 있으매, 항상 경계(儆戒)의 도를 올리고, 마음이 조심하는 데 있으매, 일찍이 연안(宴安)의 정(情)이 없었다…(중략)…이에 명하여 왕공비(王恭妃)를 삼고 책(冊)과 보(寶)를 주니, 더욱 상서(祥瑞)를 맞이하여, 길이 큰 경사를 받을 것이다. 화평하게 숨은 교화(敎化)를 펴서, 편안한 모계(謨計)를 만년까지 전하고, 왕후의 덕을 바루어, 큰 경사를 백세에 전파할 것이다.” 자신의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내명부를 완벽히 이끌었다고 후대의 평을 받는 소헌왕후에 관한 기록입니다. 세종실록에 실린 것이죠. 세종대왕의 비입니다. 소헌왕후는 자신이 왕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현자’를 추대하라는 여론에 태종이 결국 세종을 다음 후계자로 택해 개인의 삶으로선 풍파를 맞았죠. 아버지 심온은 사약을 마셔야 했고 어머니는 노비가 됐습니다. 외척 세력을 없애려던 태종의 뜻에 당시 세종은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은 지키면서 결국 후대에 이름을 높인 소헌왕후. 정치란 무서운 것이지만, 후대에 어질다고 이름을 남긴 건 그네요. 그걸로 갈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 ‘多多益山’ 이리저리, 거닐수록 빠져든다… ‘一喜一味’ 요리조리, 먹을수록 입맛돈다 [이우석의 미시여행]

    ‘多多益山’ 이리저리, 거닐수록 빠져든다… ‘一喜一味’ 요리조리, 먹을수록 입맛돈다 [이우석의 미시여행]

    미륵도 탐냈을 사통팔달의 도시… 기름진 땅만큼 걸음마다 보물… 이리역 폭발 아픔 뒤로하고 보석처럼 반짝반짝전주 뺨치는 황등비빔밥·칼칼 낙지곱창볶음 일품… 40년 노포 안줏거리·곰돌이 호두파이에 ‘훈훈달달’전북 익산시는 도내에서 두 번째, 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 기준이다. 약 28만명으로 광주광역시, 전주시, 전남 순천시에 다음간다. ‘다다익산’(多多益山)이다. 철도와 도로 교통도 좋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교차하고 충남 천안부터 이어진 장항선이 이곳에 종착한다. 호남고속도로를 비롯해 1번과 23번 등 국도와 지방도가 사방팔방 얽혀 있다.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는 너른 땅이다. 옥토의 드넓은 곡창지대 호남평야가 펼쳐졌다. 1970년대엔 이리수출자유지역이 생겼다.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익산군과 이리시는 1995년 통합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리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유명했던 까닭이다. 이리는 산짐승 이름과 같아 기억하기 쉽다. 이리는 원래 솜리, 솜니, 솝리 등으로 불렸다. 이리(裡里)의 뜻이 ‘속 마을’이란 뜻이라 그랬다. 작은 농촌 마을이던 솜리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 계획에 따라 갑자기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며 부쩍 성장했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차례로 놓이고 군산항까지 연결해 호남평야의 쌀을 깡그리 거둬 일본에 실어날랐다.●옛이름 ‘이리’와 지금의 ‘익산’ 하지만 익산이 중요한 지정학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사실 그보다 2000년 이상 먼저 일이다. 마한과 백제의 여러 유적으로 미뤄 볼 때, 이 지역은 일찌감치 발달한 고도(古都)였다. ‘익산 출신’인 무왕이 사비성(충남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까지 시도했을 정도다. 앞서 기원전 청동기 시대에는 고조선 준왕이 내려와 건마국을 세웠고 이는 마한의 첫 수장국(수많은 소국 중 맹주 역할을 하는 국가)으로서 국력을 과시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된 미륵사지를 비롯해 왕궁리 궁성 유적, 익산 쌍릉 등은 한반도 고대사에서 익산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지를 알려 주는 유적이다. 익산(益山)의 뜻은 ‘첩첩 산이 많다’는 의미지만 실제 익산에는 그리 높은 산이 없다. 오히려 김제와 더불어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광활한 들이 많다. 북부 함열과 동부 금마 쪽이 원래 익산의 중심이었는데 이리역이 생겨난 이래 시내 중심이 바뀌었다. ● 지역 역사 송두리째 바꾼 ‘폭발사고’ 살기도 좋은 땅이다. 큰비도 눈도, 심지어 태풍도 거의 없고 강이 둘이나 지나니 가뭄 걱정도 없는 곳이다. 폭염과 혹한도 없다니 얼마나 좋은가. 재해라고는 딱 하나, 굉장히 유명한 ‘인재’(人災)가 있었다. 1977년 11월 11일 일어난 이리역 폭발 사고는 사망 59명, 부상 1158명에 이재민 1647가구 7800여명이 발생한 국내 최악의 화약 폭발 사고였다. 당시 한국화약의 화물열차에 실려 있던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 폭발물 40t에 호송 책임자가 켜 놓은 촛불이 옮겨붙어 대형 폭발로 이어졌다. 반경 500m 이내 건물이 깡그리 무너지고 폭발 지점인 이리역에는 지름 40m에 깊이 15m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날 정도였다. 초대형 폭격을 맞은 정도의 규모다. 기관차가 700m 떨어진 민가까지 날아갔다. 이 사고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라진 역사(驛舍)는 물론이며 지역의 역사(歷史)까지 달라졌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도 이 사고와 인연이 깊다. 사고 현장과 가까운 삼남극장 지붕이 무너졌다. 이날 ‘가수 하춘화 리사이틀’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하춘화를 당시 무명이던 이주일이 들쳐업고 구해 낸 것. 이 인연으로 이주일은 하춘화 전속 사회를 맡게 됐고 이후 국내 최고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공중분해된 이리역은 1년 후 당시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지었다. 인근 창인동 익산군청은 건물에 금이 가 2년 후 함열읍으로 이전했고 남성여중과 남성여고, 남성고도 영등동 소라산으로 옮겨야 했다. 건물 9000여 채가 무너졌으니 한마디로 폭발 사고 한 방이 도시 자체가 재건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통합시가 익산시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에도 당시 재난이 연상된다는 여론도 한몫했다고 한다. ●고대사 품은 ‘국보급 도시’ 풍요의 땅 익산에는 보물도 많다. 앞서 언급한 고대 한국사의 국보급 문화재는 국가가 공인한 보물이다. 여기에다 ‘보석 도시’란 예명에 맞게 금은보석 세공 등 보석가공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석재로 유명한 황등석도 보석이다. 국가 공인 4대 종단 중 하나이자 국내 최대 토종 종교인 원불교를 열고 익산 땅에 잠든 소태산 대종사, ‘원불교의 바티칸’ 격인 익산 중앙총부도 익산시의 보석이라 할 수 있고, 호남에서 가장 큰 사학인 원광대학교도 미래의 보석이 아닐 수 없다.● 대각의 종교 ‘원불교’ 성지 익산을 설명하며 원불교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현재 국방부에서 군종 병과를 인정하는 종교는 가톨릭, 불교, 개신교, 원불교뿐이다. 원불교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대각(大覺)의 종교로 1916년 소태산 대종사가 창시해 100여년의 역사를 지켜왔다. 이 원불교의 중앙총부가 익산 신룡동에 있다. 원불교의 교법을 편 전법성지(傳法聖地)인 이곳엔 중앙총부뿐 아니라 영모전, 대각전, 박물관, 원음방송 등이 함께 있다. 소태산 대종사 성탑, 정산종사 성탑, 성비 등도 자리하고 있다. 주변엔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상주선원, 문화원, 퇴임 교무 정양소 수도원, 원로원 등이 갖춰져 있다. 일반인도 언제나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이라 익산시 관광 스탬프 코스로 지정돼 있다. 익산 시내 중심가와 가깝고 탁 트인 가람의 경내 분위기나 박물관, 솔숲 산책로 등이 좋아 이른 봄기운을 받으며 둘러보기에 딱이다. 원불교가 창시된 4월 28일 대각개교절에 맞춰 시민 참여 행사도 열 계획이다. 원광대가 시작된 ‘유일학림’ 등 건축물들은 조선 말기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소태산 대종사가 설법에 사용했던 탁상과 수첩, 교전 등 성품, 물품들이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원광대 교정은 봄꽃과 건축물, 인공호수 등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인터넷과 언론 등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로 여러 번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상징인 봉황탑을 재치 있게 해석해 ‘닭다방’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호수 위 카페와 산책로, 오솔길, 대학박물관 등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있어 교정을 둘러보다 쉬어 가기 안성맞춤이다.●모양도 이야기도 빛나는 보석박물관 국정교과서에 익산이 여러 번 나온다. 국사 교과서엔 마한·백제·미륵사지·원불교 등이, 지리 교과서엔 보석산업이 나온다. 보석 광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석 가공업체가 몰려 있다. 백제의 귀금속 가공술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석박물관에는 11만점의 보석과 원석, 공예품 등이 있다. 옆에는 보석을 보고 구입할 수 있는 보석산업센터가 함께 위치했다. 보석이라 하면 그저 반지, 목걸이와 왕관에 붙이는 형형색색의 돌덩이만 연상했는데 둘러보니 참 많은 종류가 있다. 식물성 호박부터 동물성 산호, 여러 광물이 보석의 범주에 든다. 다이아몬드, 수정, 옥 등 다양한 보석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보석은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다색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색조차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던 필자가 매우 똑똑해져서 나올 수 있었다. 얼마나 현명해졌는지 살짝 자랑하자면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슈퍼맨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북극으로 부모의 유물을 찾아갈 때 등장하는 크립토나이트는 수정이 아니라 집섬(Gypsum)이나 녹주석의 일종인 아쿠아마린을 닮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또한 영화에서 마녀들이 요술이나 예언을 행할 때 쓰는 둥근 구슬은 호랑이 눈알을 의미하는 호안석(虎眼石)이 분명하다.● 익산의 상징 ‘미륵사지’ 익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보물은 역시 미륵사지(사적 제150호)다. 백제 사찰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무려 3탑3금당 방식으로 다른 절터에 비해 2~3배 이상의 규모와 형식을 자랑한다. ‘서동’ 백제 무왕이 639년 창건했다는 기록까지 등장하니 이래저래 익산의 상징이다. 신라 황룡사와 고구려 금강사에 대응할 만큼 백제 대표 호국사찰로 꼽히는 절이며 백제의 가장 거대한 석탑을 품은 옛 절터다. 무너져 내려 반만 남은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더할 익(益)자를 모티브로 한 익산시 로고로도 쓰일 만큼 강력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서동요’의 진실은 과연 실제 보물도 쏟아졌다.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 과정에서 첫 번째 심주석 안에 봉안된 사리병과 금제사리봉영기, 구슬 등 사리장엄구 9900여점이 나왔다. 세세하고 정교한 조각과 문양으로 가득한 사리병은 백제금동대향로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걸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금판에 붉은 글자를 새긴 사리봉영기는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이로써 미륵사가 백제 무왕 재위 시절인 기해년(639년)에 창건됐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무왕의 왕후가 신라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인 사택씨 가문임도 함께 드러나 ‘서동요’ 이야기가 허구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백제판 남자 신데렐라’ 서동의 성공담이 사라질 수 있는 ‘불상사’를 낳은 셈이다. 이후 일부다처설, 후처설 등이 대두되며 아직까진 서동 설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사리봉영기에 선화공주 이름이 정확히 기록돼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무왕릉으로 추정되는 익산쌍릉에선 신라제 토기가 출토돼 서동·선화공주 결혼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아무튼 미륵사는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조선 중후기까지 건재했지만 숭유억불책과 자연재해,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17세기 들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1990년대 초반 동탑을 서탑의 모양에 상상을 더해 복원(?)했지만 고증에 대한 근거도 없고 너무 급조해 만든 티가 난다. 21세기 들어 복원에 들어간 서탑만큼은 원래 석재를 최대한 사용하며 없는 형태를 상상해 만들지 않기로 했다. 젠가(블록빼기 게임)를 하다 망한 것처럼, 그나마 무너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형식으로 복원을 마친 후 2019년 일반에 공개한 서탑에 더 많은 이들이 몰린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로, 미륵사지당간지주는 보물로 지정돼 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위원회가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5층 석탑 등 유적, 공주·부여의 유적들을 ‘백제역사 유적지구’란 이름으로 묶어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난해 초 미륵사지 지하 공간에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은 미출토 유물과 백제의 여러 유물을 모아 전시 중이다. 내부엔 다양한 전시기법을 사용해 한눈에 익산의 여러 유적과 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세대불문 미각 깨우는 맛의 고장 물산이 풍요롭고 도시 규모가 제법 되는 익산이라 ‘먹는 보물’도 많다. 전주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황등비빔밥을 파는 여러 노포를 비롯해 푸짐한 인심이 돋보이는 부송국수, 칼칼한 낙지곱창볶음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동서네 낙지, 수제만두로 유명한 태백칼국수, 매콤한 콩나물국밥을 파는 별미집 등이 유명한 식당들이다.곰 얼굴 모양의 귀여운 호두파이와 다양한 종류의 타르트를 만들어 파는 ‘빵곰언니와 호두파이 공장’은 전국적으로 젊은층에게 널리 알려진 디저트집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입소문을 타고 순례객을 양산하고 있다. 1982년 ‘역전할머니맥주집’에서 출발한 ‘호프 노포’ 엘베강도 익산역 앞을 지키고 있다. 맛집들은 창인동 중앙시장과 영등동, 원대입구(대학로), 모현동, 부송동, 황등면 등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이동하기 편리하다. 마한의 첫 수장국으로 시작,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 됐을 곳. 그리고 근대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 이리로부터 지금의 보석 도시 익산. 역사를 거슬러 봐도 언제나 풍요로움이 넘쳐나던 곳이다. 이리저리 돌아보며 ‘다다익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가기 전에 이건 꼭! -미륵사지와 익산박물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춘 전시물부터 다양한 체험까지 가능한 어린이박물관도 함께 있다. 왕궁리 유적 박물관은 현재 휴관 중이다. -서동공원 경내 마한박물관에는 율촌리 고분 출토 옹관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 중이다. 웅포면 입점리고분전시관은 익산 지역에 살았던 백제 귀족의 무덤에서 발굴한 금동관모와 장신구 등의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원광대 박물관도 알짜배기다. 마한과 백제 유물부터 옹기, 회화, 민속, 불교 예술 등을 모아 놓은 종합박물관이다. 천주교 유적지도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모신 나바위 성지가 익산에 있다. 백제의 석불로 국가 중대사에 앞서 땀을 흘린다는 익산석불좌상도 삼기면 석불사에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20만명대 확진 시대… 개학 첫날 교사·학부모 ‘불안불안’

    20만명대 확진 시대… 개학 첫날 교사·학부모 ‘불안불안’

    코로나19 확진자가 20만명대에 진입한 2일 일제히 개학한 전국 초중고교에도 비상이 걸렸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불안한 개학’을 맞게 됐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비율이 청소년 연령대에서 가장 높지만, 백신 접종률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기준 18세 이하 확진자는 5만 2092명으로 전체의 23.8%를 차지한다. 인구 10만명당 발생률도 전체 평균 6764명에 비해 10~19세는 1만 73명, 0~9세는 1만 1144명이나 된다. 그러나 12~17세 청소년 2차 백신 접종률은 64.1%로, 96.1%인 18세 이상 2차 백신 접종률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교육부가 애초 3월 새 학기부터 추진하려던 청소년 방역패스도 사실상 폐지되면서 청소년 백신 접종을 늘릴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학생 확진자 추이에 따라 교장이 자율로 등교 방식을 결정하도록 하면서 학교의 불만도 여전한 상황이다. 교육부는 이날부터 오는 11일까지 2주간을 ‘새 학기 적응주간’으로 운영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3월 한 달 내내 학교 확진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서울과 수도권 등 코로나19 집중 감염이 우려되는 지역 학교들이 단축수업이나 원격수업 등 탄력적으로 학사를 운영하라”고 지시했다. 학생들은 이날부터 학교에서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받아 자택에서 주 2회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자 교육부는 ‘권고일 뿐’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여전히 강제라는 시각이 많다. 개학 이후 학교 내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면 책임론이 불거지고 학사 운영도 꼬일 가능성이 크다. 조성철 한국교직원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학사운영 방침을 정해야 학교 현장도 혼란을 덜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 22만명 확진, 방역패스 폐지, 학교는 불만…‘불안한 개학’

    22만명 확진, 방역패스 폐지, 학교는 불만…‘불안한 개학’

    “개학이 이렇게 겁나긴 처음입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도 20만명이 넘었다는데…”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며 초등 5학년, 중학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씨는 새 학기 시작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는 2일 “백신을 안 맞은 둘째가 확진되면 어떡해야 하느냐”면서 “전면등교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학교 설문에는 어쩔 수 없이 원격수업 병행이라고 답했다”고 토로했다. ●2주간 ‘새 학기 적응주간’ 운영하지만... 2일부터 전국 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했다. 학생들은 웃는 얼굴로 친구들을 맞았지만,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하루 확진자가 22만명에 이르면서 ‘불안한 개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이날부터 오는 11일까지 2주간을 ‘새 학기 적응주간’으로 운영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이런 내용을 발표하면서 “3월 한 달 내내 학교 확진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서울과 수도권 등 코로나19 집중 감염이 우려되는 지역 학교들이 단축 수업이나 원격수업 등 탄력적으로 학사를 운영하라”고 지시했다. 정상등교를 강조하던 교육부가 기존 방침을 바꿔 원격수업을 권고하고 나선 이유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이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9만 9573명이었던 확진자 수는 21일 17만 1452명으로 늘었고, 28일에는 13만 8993명으로 소폭 줄었다가 이번 달 2일 무려 21만 9241명으로 껑충 뛰었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사상 최다 확진자를 기록했지만, 청소년 백신접종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일 기준 18세 이하 확진자는 5만 2092명으로 전체의 23.8%를 차지한다. 그러나 12~17세 청소년 2차 백신 접종률은 64.1% 정도로, 18세 이상 2차 백신 접종률이 96.1%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다. 인구 10만명당 발생률도 전체 평균 6764명에 비해 10~19세가 1만 73명, 0~9세는 1만 1144명이나 된다. ●저조한 청소년 백신접종률, 학생 주2회 검사 교육부가 애초 3월 새 학기부터 추진하려던 청소년 방역패스도 사실상 폐지되면서 청소년 백신 접종을 늘릴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청소년 방역패스를 예고하며 백신접종을 독려했지만,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법원이 “코로나19 감염 중증화율이 현저히 낮고 사망 사례가 없는 청소년을 방역패스 적용대상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제한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결하면서 서울, 경기에 이어 인천, 대전, 부산 지역에서 청소년 방역패스의 효력이 잇따라 정지됐다. 방역 당국은 결국 이번 달 1일부터 방역패스를 일단 중지하기로 했다. 학교장이 자율로 등교 방식을 결정하도록 하면서 학교의 불만도 크다. 학생들은 이날부터 학교에서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받아 자택에서 주2회 실시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자 교육부는 ‘권고일 뿐’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여전히 강제라는 시각이 많다. 서울시교육청이 “저연령대에 한해 타액 기반 신속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하자”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다”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개학 이후 학교 내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면 책임론이 불거지고 학사 운영도 꼬일 가능성이 크다. 조성철 한국교직원총연합회 대변인은 “개학 이후 학생 확진자가 늘어나면 수업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교사들이 확진되면 대체강사를 어떤 식으로 구해야 할지 학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면서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학사운영 방침을 정해야 학교 현장도 혼란을 덜 겪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부모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학부모 김모씨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치명률이 떨어진다고 해도 아이들이 확진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면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학생에 대해서는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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