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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A 출신 미모의 직장여성 ‘에로 배우’로 데뷔 사연

    MBA 출신 미모의 직장여성 ‘에로 배우’로 데뷔 사연

    대학을 3년 만에 졸업하고 경영학석사(MBA) 학위까지 있는 '엄친딸'이 포르노배우로 나선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미국 잡지 코스모폴리탄 온라인판은 홍보회사 직원에서 포르노배우로 전업한 뉴욕 출신의 알릭스 링스(26)와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탄탄한 앞날을 포기하고 매일 옷을 벗는 링스는 놀랍게도 커뮤니케이션 학사와 디지털 마케팅 석사 학위를 가진 고학력자다. 가정생활도 풍족했다. 건축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박사학위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 그녀는 한 마디로 '엄친딸'이었다. 3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MBA까지 마친 그녀는 곧 높은 연봉을 받는 홍보회사에 취업했다. 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라 생각됐던 그녀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였다. 경기침체 여파로 연봉삭감은 물론 정리해고의 칼날이 회사에 몰아닥친 것. 이에 회의감을 느끼던 그녀를 유혹한 것은 어린시절 마음 속에 꼭꼭 숨겨뒀던 꿈이었다. 링스는 "10대 시절부터 포르노 배우에 매력을 느껴왔다"면서 "주위 친구 중 일부는 나의 꿈을 이미 알고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부모님은 좋은 학교를 졸업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원해 그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회사를 나온 그녀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컴퓨터 웹캠 앞에서 옷을 벗는 일이었다. 이후 폭발적으로 남성 시청자들을 불러모은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한 포르노 회사의 눈에 들어 정식으로 데뷔했다. 링스는 "부모님이 새로운 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지해주고 있다"면서 "드디어 꿈을 이뤘고 이제는 포르노 영화계의 최정상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에 참석한 한 신입생이 부모님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으며 입학식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16세 부부’ 부러워하는 중국, 당신의 생각은?

    [World 특파원 블로그] ‘16세 부부’ 부러워하는 중국, 당신의 생각은?

    신랑 장자러(張家)는 2000년 9월생이고, 신부 우밍민(吳明敏)은 2000년 10월생입니다. 결혼식을 보면 특히 신랑이 앳돼 보입니다. 둘은 지난해 1월 첫눈에 반했답니다. 3월부터 진지하게 사귀기 시작했고 6월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지난 15일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중국에서는 남자는 22세, 여자는 20세 이상이어야 혼인신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당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문인 신경보의 인터뷰입니다.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로 지켜주는 것입니다(신부).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죠(신랑). →부모님이 끝까지 반대하면 어떻게 하려고 했나요. -그래도 결혼했을 겁니다. 한평생 믿을 수 있는 남자입니다.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아요.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는 게 두렵지 않나요. -시부모님께 잘 배우고 있어요.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나요. -겉모습은 아이처럼 보이지만, 생각은 어른처럼 합니다. 아내를 어떻게 아낄지, 부모님을 어떻게 모실지 등등 다 생각하고 결혼했어요. 어린 신랑은 돈이 없어 결혼 예물로 빨간 꽃신 한 켤레만 준비했습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신랑은 인근 난닝시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데, 일당이 130위안(약 2만 5000원)이라고 합니다. 역시 중학교를 중퇴한 신부는 “한 달 수입이 3500위안(약 66만원) 정도여서 아직 독립할 수 없지만, 2년 뒤에는 차도 사고 작은 집도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사연이 전해지자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는 격려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처녀·노총각들은 “나보다 낫다”며 부러워합니다. 애송이 부부가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은 중국도 한국처럼 결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취직하기가 어렵고 집값이 너무 비싼 데다 중국 특유의 결혼식 과소비가 큰 원인이죠. 홍콩 명보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평균 결혼 비용이 가장 비싼 지역이 광저우 선전시인데, 무려 208만 위안(약 4억원)이나 됐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남성은 30년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야 결혼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다 갈수록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해져 농촌이 ‘홀아비촌’으로 바뀌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서울포토]‘김치~’…연세대학교 입학식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입학식에 참석한 한 신입생이 부모님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으며 입학식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2016. 2. 26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단독] 인분 교수 뺨치는 ‘악마 동기생’

    [단독] 인분 교수 뺨치는 ‘악마 동기생’

    대학 같은 과 1살 어린 가해자 고급 외제차 타며 부유함 과시 “내가 맡을 회사에 취업시켜 줄게” 경제 형편 안 좋은 피해자에 접근 1년간 가혹행위 전치 8주 부상 폭행에 ‘학습’돼 저항 못 한 듯 “지난 1년은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습니다. 지금도 문득 ‘그놈의 방에서 또 맞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도 잘 안 와요. 하지만 뒷배 든든하고 돈 많은 그 친구가 저뿐 아니라 우리 집 식구들에게까지 해코지를 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한 지방 사립대 재학생이 같은 학교 동기생에게 “취업을 시켜 주겠다”는 구실을 붙여 1년여에 걸쳐 상습적으로 폭행 및 감금, 협박 등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 과제나 집 청소를 대신 시키는 등 사실상 ‘노예’처럼 동기생을 부렸고, 이 과정에서 성적 학대까지 있었다고 수사 당국은 전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폭력의 형태와 강도가 지난해 제자를 수년간 폭행하고 노예처럼 부린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던 ‘인분 교수’ 사건에 못지않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지검은 지난 19일 대학생 A(24)씨를 강제추행치상, 상습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의정부지검과 남양주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1년간 같은 대학 동기생 B(25)씨를 수십 차례에 걸쳐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A씨의 학대와 구타 후유증으로 비뇨, 피부, 정형, 안과 등에 걸쳐 전치 8주의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씨와 B씨는 2014년 초 B씨가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면서 같은 과 동기생으로 처음 만났다. A씨는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등 부유한 집의 자제로 알려져 있었다. 반면 B씨의 가정은 차상위계층으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A씨는 B씨에게 “나한테 잘하면 나중에 내가 운영할 회사에 취업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B씨의 부모까지 만나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뒤 B씨와 함께 동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A씨는 B씨를 만나고 1년 정도 지난 뒤부터 자신의 자취방에서 수시로 B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고 뺨을 때렸다. A씨의 폭행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거의 매일같이 B씨를 엎드리게 한 뒤 허벅지나 엉덩이 등을 유리병으로 내리쳤다. “금속제 옷걸이 8개를 편 뒤 꽈배기처럼 엮어 만든 쇠뭉치로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고 B씨는 경찰에서 진술했다. B씨에 대해 “평소에도 얼굴이 붓고 멍이 들어 있는 등 멀쩡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동네 주민들의 증언도 나왔다. 성적 학대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경찰에서 “A씨는 자신이 온라인 게임을 할 때 나에게 옆에 서서 지켜보도록 했고, 내가 졸 때마다 쇠뭉치로 성기를 수십 차례 가격했다”, “껌 10여개를 한꺼번에 씹게 한 뒤 입에 소금과 후추, 참기름 등을 들이부었다”고 진술했다. 또 매일 A씨의 자취방을 청소하게 하고 밤에는 A씨 대신 게임 레벨을 올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마다 자신을 깨울 것을 명령하고 군대와 비슷하게 새벽 1시에 취침 점호 보고까지 시켰다. 폭행과 가혹행위는 자취방뿐 아니라 A씨가 부업차 운영하는 회사와 부모님 집 등에서도 계속됐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A씨의 가혹행위를 눈치채지 못했다. A씨는 주변에 “B씨를 내가 돌봐 주고 있다. B씨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라”며 B씨를 주변과 격리시켰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B씨에게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뿐 아니라 최근 취업난에 고민이 많은 B씨의 심리 상태를 이용해 폭행을 계속하면서도 B씨가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밝혔다. A씨의 범행은 지난달 초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학교 수업 시간에 B씨의 상태를 이상하게 여긴 교수가 B씨에게 병원 진료를 받게 했고 병원 관계자는 B씨의 부모에게 “오랫동안 폭행당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에게 그동안의 문자 내용을 지우라고 시키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결국 B씨는 지난 1월 A씨를 의정부지검에 고소하면서 1년간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씨 측은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B씨가 원해서 이뤄졌다”며 “A씨의 무죄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B씨가 A씨를 ‘취업난의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 상황에서 A씨의 폭행에 ‘학습’되다 보니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 같다”며 “인분 교수 사태와 마찬가지로 청년 취업난의 세태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밝혔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깡촌 소작농의 아들 누나의 희생으로 진학 철도원으로 살다가 다시 주경야독육사에 붙고도 결핵으로 불합격그래도 내 결론은 도전박운상 선생님 덕에 물리학에 눈떠4년 만에 석·박사 탄소나노튜브 실험과 응용 연구나는 콧수염 학자 애벌레처럼 살 거야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콧수염의 역사를 묻자 이영희(61) 교수는 “사람들이 전공인 탄소나노튜브보다 이 털들을 더 궁금해하니 큰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경기 수원에 있는 연구실(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물리학과)로 그를 만나러 간 지난 15일은 전국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수는 7명의 교수, 30명의 박사후연구원 및 연구교수, 80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 등 120명에 이르는 대식구와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학생들 논문 지도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며 약속 시간에 30분 늦은 데 대해 양해를 구했다. -1974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며 메마른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10년 뒤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철도고를 졸업하고 철도청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다. 인천 부평에서 누나 집에 얹혀살며 매일 근무지인 서울역으로 통근을 했다. 갑작스럽게 든 생각처럼 결론도 갑작스럽게 났다. ‘그래, 다시 공부를 하는 거야.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 그때 고민만 하고 끝났다면 지금쯤 난 한적한 시골역의 역장이 돼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게 산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 전북 김제의 깡촌에서 자랐다. 논이 동네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누가 “이 동네에서 가장 못사는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우리 집을 가리켰을 것이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머슴에 가까웠지만.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초등학생 때 가진 꿈은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큰 농장을 갖는 것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어린 사람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동네 형들하고도 주먹질을 할 정도로 괄괄한 ‘이씨네 말썽꾸러기’로 통했다. -원래 집안 사정이 안 좋기는 했지만 애들이 공부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어려워진 것은 ‘딸깍발이’ 할아버지 탓이 컸다. 일제가 쳐들어와 양반들이 몰락하자 “왜놈들 세상에선 아무것도 안 한다”며 평생 돈벌이라곤 하지 않으셨다. 집 안에 먹을 게 다 떨어져 자식들이 굶고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소신만 지키셨던 것 같다. 평생 힘들게 사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려서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은 이게 뭐냐”고 대들다가 아버지나 삼촌들한테 맞은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난한 집에 먹는 입은 많다고, 나는 3남 2녀 중 장남이었다. 바로 위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누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내가 이만큼이나마 된 것도 그렇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이 초등학교 교사와 공무원을 하고 있는 것도 누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부모님은 “우리 장남 영희는 중학교까지는 나와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뒤집어 보면 중학교 졸업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남의 집 머슴일을 하면서 틈틈이 중학교 등록금을 모아 놓으셨는데, 어느 날 그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에 못 가게 될 상황이 된 거였다. 그때 이웃집 할머니께서 “사내놈이 중학교까지는 나와야 하지 않겠나”라며 여기저기 수소문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셨다. 그게 나에겐 약이 됐다. 중학교 들어가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한 초등학교 친구가 “영희가 미쳤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꿈은 없었다. 그냥 공부를 잘하는 걸로 만족이었다. -대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는 마치고 싶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인문계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나라에서 세운 철도고에 들어가면 학비 대주고, 나중에 취업까지 시켜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딱 내 학교였다. 그렇게 철도고에 들어갔는데 철도원으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다 보니 별달리 꿈이란 게 생길 턱이 없었다. 머리건 몸이건 좀 더 써 보고 싶은데, 내 몸의 혈액과 호르몬들은 나에게 한계 상황까지 가 보라고 다그치는데 현실은 그저 ‘등교-수업-하교’가 전부였다. 그러다 유도를 시작했다. 먹고 자는 시간과 수업받는 시간을 빼고는 그것만 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멋지게 업어치고 메칠 수 있을까, 관심은 그것뿐이었다. -1974년 1월 5일 토요일에 졸업식을 하고 7일 월요일 서울역으로 첫 출근을 했다. 통신전자과 출신인 나에게는 통신기지국과 열차 간 송수신기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고 열차 자동 정지장치를 수리하는 일이 부여됐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달을 지내고 난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었던 것이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됐다. 딱히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가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에 공부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고나 할까. 실업계 학교를 나왔으니 당연히 대학 입시 기초가 약했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종로YMCA에서 대학입시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난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국문학과가 어울릴까? 수학 문제를 풀 때가 제일 신나는데, 그리로 가 볼까?’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학원에서 ‘분석물리’ 과목을 가르치던 박운상 선생님 덕이다. 입시 학원이었음에도 문제 풀이 요령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실험도구를 갖고 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리학도 문학만큼이나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구나.” 거창하게 말하면 내 인생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1975년 초 기관차 수리 공장이 있는 수색역으로 발령났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곳이라 공부하기엔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체력은 바닥나고 업무 환경도 그리 좋지 않아 대입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결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중한 병을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해 번듯한 직장까지 얻었으면서 몸까지 상해 가면서 대학을 가려고 하느냐.” 아버지는 나를 꾸짖다가 “다 내가 못나서 널 제때 공부를 못 시켜 준 탓”이라며 통곡을 하셨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공짜로 공부시켜 주는 곳.’ 내가 가야 할 대학의 최우선 조건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필기·실기시험에 모두 합격했지만 결핵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때의 상실감은 아주 컸다. 회사에 2개월 휴직계를 냈다. 머리까지 박박 밀고 고향집에서 2주 동안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부모님께서는 ‘얘가 죽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셨단다. 방 안에 틀어박혀셔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일단 시작한 것, 원 없이 한번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2개월 휴직 기간이 끝나니 김제에서 가까운 익산역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직장 생활과 대학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전북대 물리학과였다. 입학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76학번으로 입학했다. 함께 일하는 직장 선배가 눈감아줘 근무 시간에 전공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그러기를 1년. 공부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회사에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냈다.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장학금 받기 위해서도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뤄진 공부가 쌓이자 내 평생의 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지도교수님께서 미국 켄트대를 추천해 주셨다. 입학 지원서를 냈는데 놀랍게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1982년 8월 졸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가을 입학을 하라는 통보를 받아 7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 후 첫 학기를 끝낸 1월 갑자기 온몸이 아파 왔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학교 보건소 의사는 타이레놀 한 알을 주더니 “푹 자라”고 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유학에서 비롯된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좋아하는 공부를 장학금 받고 해서 그랬을까. 석·박사 과정을 4년 만에 초고속으로 마쳤다.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고 모교인 전북대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우리 학교에 교수 자리가 하나 났으니 지원하라”고 하셨다. 덜컥 합격했는데 그게 1986년 여름이었다. 7월 켄트대 학위수여식을 한 달 앞두고 모교에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박사 때까지 희한하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는데 외려 그것 때문에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학위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이 없다. 아들내미와 딸내미가 아빠 학력 위조한 거 아니냐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반도체 물리학이 전공이었지만 다양한 분야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1991년 탄소나노튜브가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논문들을 읽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본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이면서도 실험과 응용연구가 가능했다. 대단한 매력이었다. 물리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이론과 실험 두 분야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내게는 공고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직장에서 열차 무전기를 고쳤던 경험 등 현장에도 익숙하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실험과 응용연구에 두려움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에게 내 연구 분야는 아주 생소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탄소는 뭐고, 나노는 뭐고, 거기에 튜브는 뭐란 말인가. 탄소나노튜브 연구가 잘 이뤄지면 요즘 많은 사람이 관심 갖는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까. 탄소나노튜브를 응용하면 고성능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전자 소재로 응용될 경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초고속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각국의 연구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눈에 불을 켜고 책과 논문을 파고 실험을 하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기초이론을 보강하고 응용연구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앞으로도 지난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후배들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막다른 길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연구원들에게도 나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한다. ‘애벌레가 화려한 나비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최종 목표’를 묻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다. “내 최종 목표는 이거다”라고 정해 버리면 그것을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무슨 재미로 삶을 살겠나. 나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내 인생 최종 목표를 향해 이제 제대로 한 걸음 뗄 수 있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영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나라보다 해외 학계에서 더 유명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장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전 세계 대학 연구실과 산업 현장에 ‘탄소나노튜브’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대표 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는 단층 탄소나노튜브의 대량 합성과 성장 메커니즘 규명이 그의 성과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론’과 ‘실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기 주력 분야를 정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이론뿐 아니라 수소 저장, 투명전극, 복합체 연구 등 산업화 기술도 함께 개발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누가 “기초과학은 투자 대비 성과가 적다”, “기초과학은 돈이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면 질색을 한다. ‘기초과학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그가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87년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1989년 미국 에임스국립연구소 방문연구원 ▲1993년 IBM 취리히연구소 방문연구원 ▲2001년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06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수상 ▲2006년 국가석학 선정 ▲2014년 수당상 기초과학분야 수상. 【탄소나노튜브 Carbon nanotube】 탄소 6개로 이뤄진 육각형 모양이 서로 연결돼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을 이루고 있는 신소재. 1991년 일본 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처음 발견한 이 물질은 튜브의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1에 불과한 나노(10억분의1)급 크기여서 탄소나노튜브로 불린다. 탄소나노튜브는 구리보다 전기 전도율이나 열 전달률이 우수하고 강도도 강철보다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배터리, 초강력 섬유, 생체 센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 [단독] 인분 교수 뺨치는 ‘악마 동기생’

    대학 같은 과 1살 어린 동기생이 고급 외제 승용차 몰고 다니며 “내 회사에 취업시켜 줄게” 빌미 피해자에 성적 학대 등 가혹행위 2년간 폭행… 전치 8주 부상 폭행에 ‘학습’돼 저항 못한 듯  “지난 1년은 매일매일이 지옥이었습니다. 지금도 문득 ‘그놈의 방에서 또 맞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도 잘 안 와요. 하지만 뒷배 든든하고 돈 많은 그 친구가 저뿐 아니라 우리 집 식구들에게까지 해코지를 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한 지방 사립대 재학생이 같은 학교 동기생에게 “취업을 시켜 주겠다”는 구실을 붙여 1년여에 걸쳐 상습적으로 폭행 및 감금, 협박 등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 과제나 집 청소를 대신 시키는 등 사실상 ‘노예’처럼 동기생을 부렸고, 이 과정에서 성적 학대까지 있었다고 수사당국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폭력의 형태와 강도가 제자를 수년간 폭행하고 노예처럼 부린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던 지난해 ‘인분 교수’ 사건에 못지않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지검은 지난 19일 대학생 A(24)씨를 강제추행치상, 상습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의정부지검과 남양주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1월부터 올 1월까지 1년 간 같은 대학 동기생 B(25)씨를 수십 차례에 걸쳐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A씨의 학대와 구타 후유증으로 비뇨, 피부, 정형, 안과 등에 걸쳐 전치 8주의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씨와 B씨는 2014년 초 B씨가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면서 같은 과 동기생으로 처음 만났다. A씨는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등 부유한 집의 자제로 알려져 있었다. 반면 B씨의 가정은 차상위계층으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A씨는 B씨에게 “나한테 잘하면 나중에 내가 운영할 회사에 취업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B씨의 부모까지 만나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뒤 B씨와 함께 동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A씨는 B씨를 만난 지 1년 정도 지나고 난 뒤부터 자신의 자취방에서 수시로 B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고 뺨을 때렸다. A씨의 폭행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거의 매일같이 B씨를 엎드리게 한 뒤 허벅지나 엉덩이 등을 유리병으로 내리쳤다. “금속제 옷걸이 8개를 편 뒤 꽈배기처럼 엮어 만든 쇠뭉치로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고 B씨는 경찰에서 진술했다. B씨에 대해 “평소에도 얼굴이 붓고 멍이 들어 있는 등 멀쩡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동네 주민들의 증언도 나왔다. 성적 학대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경찰에서 “A씨는 자신이 온라인 게임을 할 때 나에게 옆에 서서 지켜보도록 했고, 내가 졸 때마다 쇠뭉치로 성기를 수십 차례 가격했다”, “껌 10여개를 한꺼번에 씹게 한 뒤 입에 소금과 후추, 참기름 등을 들이부었다”고 진술했다. 또 매일 A씨의 자취방을 청소하게 하고, 밤에는 A씨 대신 게임 레벨을 올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마다 자신을 깨울 것을 명령하고 군대와 비슷하게 새벽 1시에 취침 점호 보고까지 시켰다. 폭행과 가혹행위는 자취방뿐 아니라 자신이 부업차 운영하는 회사와 부모님 집 등에서도 계속됐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A씨의 가혹행위를 눈치채지 못했다. A씨는 주변에 “B씨를 내가 돌봐 주고 있다. B씨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라”며 B씨를 주변과 격리시켰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B씨에게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뿐 아니라 최근 취업난에 고민이 많은 B씨의 심리 상태를 이용해 폭행을 계속하면서도 B씨가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밝혔다. A씨의 범행은 지난달 초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학교 수업 시간에 B씨의 상태를 이상하게 여긴 교수가 B씨에게 병원 진료를 받게 했고, 병원 관계자는 B씨의 부모에게 “오랫동안 폭행당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에게 그동안의 문자 내용을 지우라고 시키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결국 B씨는 지난 1월 A씨를 의정부지검에 고소하면서 1년간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씨 측은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B씨가 원해서 이뤄졌다”며 “A씨의 무죄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B씨가 A씨를 ‘취업난의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 상황에서 A씨의 폭행에 ‘학습’되다 보니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 같다”며 “인분 교수 사태와 마찬가지로 청년 취업난의 세태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밝혔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7만 꿀벌 서울숲으로! 서울 성동 4월 양봉학교 개장

    7만 꿀벌 서울숲으로! 서울 성동 4월 양봉학교 개장

    사랑을 전달하는 꿀랑이, 꿈을 펼치는 꿀몽이, 행복을 나누는 꿀복이, 꿀벌 삼총사가 성동구 어린이들을 만나러 간다. 성동구는 강원도 횡성군의 에덴 양봉원과 ‘무지개 꿀벌학교’ 운영 협약을 체결했다고 23일 밝혔다. 꿀벌학교는 구가 올해부터 추진하는 ‘온 마을 체험학습장’ 만들기의 일환이다. 지난해 11월 융복합혁신 교육특구로 지정되면서 정원오 구청장은 구 전체를 창의적 체험 학습의 공간으로 활용,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생생한 현장형 교육으로 학생들의 적성 및 진로 탐색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다. 오는 4월 꿀벌학교 개장을 위해 구는 서울숲에 양봉장을 조성 중이다. 약 7만여 마리의 벌들이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다. 평소 도심에서 벌을 보기 힘든 학생들에게 신기하고 새로운 생태교육의 장이 될 전망이다. 꿀벌학교 개장에 앞서 구는 꿀벌 삼총사 캐릭터를 제작해 저작권 등록을 하기도 했다. 꿀벌학교에선 아이들이 꿀벌을 직접 관찰하고 채밀도 할 수 있다. 양봉원에서 꿀벌의 특성 등 교육과 벌꿀을 이용한 제품 만들기 등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학교별로 교육 희망자를 받아 실시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1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도록 자유학기제, 방과후 동아리 등을 활용해 지속적 교육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체험 교육 후에는 교육 수료증도 제공된다. 정 구청장은 “학생들이 부모님과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지역 안에서 다양한 자연생태 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창의체험 학습공간을 집중 육성하고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신생아 작명·성인 개명, 좋은 이름으로 지어야 성공한다

    신생아 작명·성인 개명, 좋은 이름으로 지어야 성공한다

    좋은 이름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태어날 때부터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결정된 이름. 어떤 사람은 너무도 만족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반면,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국내 작명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함부로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이름에 대한 만족도가 모두 다르다 보니 최근에는 개명이나 작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5년 당시 7만 명 정도에 이르던 개명 신청 건수는 지난 2010년에는 무려 16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매년 2~3만명 정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작명이나 개명을 결심했다면 좋은 작명소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즘은 잘못된 이론을 바탕으로 작명을 해주는 작명소가 늘다보니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어느 정도 전통과 명성을 갖춘 작명소 선택은 앞으로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특허청에 작명법 서비스 등록이 되기도 한 천기작명법에 대해 성민경 이름박사는 “각자의 운명에 맞는 천기를 맞춘 시간에 개명 또는 아기 이름 짓기를 하는 것이 천지우주의 기운과 맞물려 좋은 이름을 만들게 되는 천기작명법”이라며, “이처럼 각 개인에게 맞는 사주도 모른 채 이름을 짓는 것은 몸의 치수를 모르고 양복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기 때문에 사주 풀이를 통해 타고난 성격을 바탕으로 좋은 이름으로 작명과 개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명 업계에서 성민경 이름박사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고. 실제 성 박사의 독자적인 이론인 천기작명법을 통해 개명한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이 성공을 이룬 사례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 뿐만 아니라 성민경 박사는 국내 유수의 육아잡지, TV 등 언론매체에 소개됐으며, 뛰어난 통찰력으로 유명 정치인들의 자문 역할도 맡았다. 국내 ‘파동성명학’ 분야의 1인자인 성민경 이름박사는 동양 사상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설 및 원설을 토대로 성명의 음양, 획수, 음운, 자의 등을 연구, 분석해 그 사람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판단, 성민경 이름박사만의 천기작명법을 완성시켰다. 성민경 이름박사가 30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천기작명법은 천지음양오행 성명학 법칙을 이용하여 각자의 운명에 맞는 천기를 맞춘 시간에 작명하는 것을 뜻한다. 성 박사에 따르면 이름도 하늘과 땅과 우주 정기를 받고 태어나야 무병장수, 학업성취, 사업번창, 만사형통의 대운을 이룰 수 있다. 성민경 박사는 “최근 개명 열풍이 불며 검증되지 않은 작명소가 난립하고 있어 좋은 작명소를 찾는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며 “10만원의 작명료로 이름을 3개 이상 여러개 지어주는 곳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으며, 작명을 위해 관상을 봐야 한다며 방문을 유도하는 곳 역시 사이비 작명소일 가능성이 높다. 작명에서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세월이 변해도 불변하는 개인의 생년, 월, 일, 시이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왜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파동성명학’의 지적재산권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하며 널리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성 박사는 현재 서울강남작명소와 대구작명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서울강남작명소는 성 박사의 장남 성정홍 수석연구원이 대표로 운영 중이며, 대구작명소는 성민경 이름박사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특히 ‘유명한 작명소’, ‘예쁜이름 잘 짓는곳’, ‘작명개명 소문난 곳’, ‘작명소 유명한 곳’, ‘작명개명 유명한곳’, ‘유명한 작명소 추천’, ‘개명 잘하는 곳’, ‘아기이름 짓기’ 등의 키워드로 유명한 두 작명소는 서울, 부산, 인천, 일산, 고양, 분당, 김포, 군포, 안양, 수원, 광주, 전주, 순천, 대전, 천안, 울산, 공주, 포항, 경주, 구미, 김해, 거제, 아산, 진해, 춘천, 강릉, 원주, 김천, 김해, 진주, 제주 등 전국에서 방문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성민경 이름박사로부터 개명 및 작명을 직접 상담 받고 싶은 사람들은 홈페이지(www.name114.com)와 전화(080-253-3333), 카카오톡을 통해 문의할 수 있다. 또한 서울강남작명소와 대구작명소에서 방문 상담 받는 것도 가능하다. 성민경 박사의 홈페이지에서는 이밖에도 이름감정, 한자획수와 운명, 개명 절차 등 이름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서 의문의 사망…가해자 무죄 미스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서 의문의 사망…가해자 무죄 미스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 사망사건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서 의문의 사망…가해자 무죄 미스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배우 이상희씨의 아들 사망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내 아들은 두 번 죽임을 당했다-배우 이상희 아들 이진수 군 LA 사망 미스터리’가 방송됐다. 2016년 2월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는 유례없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기소된 이상희 아들 이진수군의 사망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었다. 이상희의 아들 이진수 군은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같은 한인유학생과 몸싸움 끝에 사망했다. 당시 LA경찰은 살인혐의로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지만 LA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 후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를 뒤늦게 안 이상희 부부의 노력으로 한국에서 재수사가 실시됐고 5년만에 기소가 이뤄졌다. 지난 2010년 12월 14일 새벽 6시, 이진수군의 어머니 이해경이 불길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깼을 때는 미국 LA에서 유학중인 아들 진수군이 한창 운동장을 뛰어 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해경은 진수군이 다니는 고등학교 측에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 진수군이 친구와 싸워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해 LA의 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진수군은 이미 뇌사상태였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부모님을 맞고 있었다. 이상희 부부가 진수군의 곁을 지킨 지 이틀 만에 결국 인공호흡기는 제거됐고 진수군은 부모의 곁을 떠났다. 당시 진수군과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한국인 유학생 선우(가명)군이 징이 박힌 축구화를 신고 진수군을 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선우(가명)군을 살인용의자로 소년구치소에 구금했다. 그러나 3년 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됐다.  진수군이 사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희씨에게 미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현직 LA총영사라고 소개한 김씨는 경찰영사로부터 보고를 받아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변호사인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상희씨 부부는 사건을 수임하게 된 김씨에게 사건의 기소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니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다. 김씨가 사건을 맡은 지 1년 후, 김씨는 돌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수임을 포기했다. 제작진은 불기소 이유와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LA로 떠났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배우 이상희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 후 하지도 않은 장기기증 허락이 되어있었다”며 “얼굴을 뺀 모든 장기를 기증한다고 되어있더라”며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이어 의료진과 인근 교민들은 “장기기증을 할 때 여러번 상담을 하게 하는데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이상희의 아들 사망 사건 직후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불구속기소 처분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에 이상희의 아내는 당시 증인들의 증언을 거론하며 “가해자는 덩치 큰 백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미국 경찰의 조사 결과에 대해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이었지만 평소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이상희씨 아들 “하지도 않은 장기기증 허락” 무슨 일?

    그것이 알고싶다 이상희씨 아들 “하지도 않은 장기기증 허락” 무슨 일?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 사망사건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 사망사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배우 이상희씨의 아들 사망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내 아들은 두 번 죽임을 당했다-배우 이상희 아들 이진수 군 LA 사망 미스터리’가 방송됐다. 2016년 2월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는 유례없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기소된 이상희 아들 이진수군의 사망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었다. 이상희의 아들 이진수 군은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같은 한인유학생과 몸싸움 끝에 사망했다. 당시 LA경찰은 살인혐의로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지만 LA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 후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를 뒤늦게 안 이상희 부부의 노력으로 한국에서 재수사가 실시됐고 5년만에 기소가 이뤄졌다. 지난 2010년 12월 14일 새벽 6시, 이진수군의 어머니 이해경이 불길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깼을 때는 미국 LA에서 유학중인 아들 진수군이 한창 운동장을 뛰어 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해경은 진수군이 다니는 고등학교 측에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 진수군이 친구와 싸워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해 LA의 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진수군은 이미 뇌사상태였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부모님을 맞고 있었다. 이상희 부부가 진수군의 곁을 지킨 지 이틀 만에 결국 인공호흡기는 제거됐고 진수군은 부모의 곁을 떠났다. 당시 진수군과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한국인 유학생 선우(가명)군이 징이 박힌 축구화를 신고 진수군을 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선우(가명)군을 살인용의자로 소년구치소에 구금했다. 그러나 3년 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됐다.  진수군이 사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희씨에게 미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현직 LA총영사라고 소개한 김씨는 경찰영사로부터 보고를 받아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변호사인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상희씨 부부는 사건을 수임하게 된 김씨에게 사건의 기소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니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다. 김씨가 사건을 맡은 지 1년 후, 김씨는 돌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수임을 포기했다. 제작진은 불기소 이유와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LA로 떠났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배우 이상희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 후 하지도 않은 장기기증 허락이 되어있었다”며 “얼굴을 뺀 모든 장기를 기증한다고 되어있더라”며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이어 의료진과 인근 교민들은 “장기기증을 할 때 여러번 상담을 하게 하는데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이상희의 아들 사망 사건 직후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불구속기소 처분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에 이상희의 아내는 당시 증인들의 증언을 거론하며 “가해자는 덩치 큰 백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미국 경찰의 조사 결과에 대해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이었지만 평소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LA서 아들 사망 미스터리…가해자 무죄, 대체 왜 그랬나?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LA서 아들 사망 미스터리…가해자 무죄, 대체 왜 그랬나?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 사망사건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LA서 아들 사망 미스터리…가해자 무죄, 대체 왜 그랬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배우 이상희씨의 아들 사망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내 아들은 두 번 죽임을 당했다-배우 이상희 아들 이진수 군 LA 사망 미스터리’가 방송됐다. 2016년 2월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는 유례없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기소된 이상희 아들 이진수군의 사망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었다. 이상희의 아들 이진수 군은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같은 한인유학생과 몸싸움 끝에 사망했다. 당시 LA경찰은 살인혐의로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지만 LA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 후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를 뒤늦게 안 이상희 부부의 노력으로 한국에서 재수사가 실시됐고 5년만에 기소가 이뤄졌다. 지난 2010년 12월 14일 새벽 6시, 이진수군의 어머니 이해경이 불길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깼을 때는 미국 LA에서 유학중인 아들 진수군이 한창 운동장을 뛰어 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해경은 진수군이 다니는 고등학교 측에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 진수군이 친구와 싸워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해 LA의 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진수군은 이미 뇌사상태였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부모님을 맞고 있었다. 이상희 부부가 진수군의 곁을 지킨 지 이틀 만에 결국 인공호흡기는 제거됐고 진수군은 부모의 곁을 떠났다. 당시 진수군과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한국인 유학생 선우(가명)군이 징이 박힌 축구화를 신고 진수군을 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선우(가명)군을 살인용의자로 소년구치소에 구금했다. 그러나 3년 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됐다.  진수군이 사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희씨에게 미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현직 LA총영사라고 소개한 김씨는 경찰영사로부터 보고를 받아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변호사인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상희씨 부부는 사건을 수임하게 된 김씨에게 사건의 기소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니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다. 김씨가 사건을 맡은 지 1년 후, 김씨는 돌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수임을 포기했다. 제작진은 불기소 이유와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LA로 떠났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배우 이상희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 후 하지도 않은 장기기증 허락이 되어있었다”며 “얼굴을 뺀 모든 장기를 기증한다고 되어있더라”며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이어 의료진과 인근 교민들은 “장기기증을 할 때 여러번 상담을 하게 하는데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이상희의 아들 사망 사건 직후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불구속기소 처분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에 이상희의 아내는 당시 증인들의 증언을 거론하며 “가해자는 덩치 큰 백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미국 경찰의 조사 결과에 대해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이었지만 평소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 대체 무슨 일?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 대체 무슨 일?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 대체 무슨 일? 그것이 알고 싶다 이상희 아들 LA 사망사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배우 이상희씨의 아들 사망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내 아들은 두 번 죽임을 당했다-배우 이상희 아들 이진수 군 LA 사망 미스터리’가 방송됐다. 2016년 2월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는 유례없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기소된 이상희 아들 이진수군의 사망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었다. 이상희의 아들 이진수 군은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같은 한인유학생과 몸싸움 끝에 사망했다. 당시 LA경찰은 살인혐의로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지만 LA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 후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를 뒤늦게 안 이상희 부부의 노력으로 한국에서 재수사가 실시됐고 5년만에 기소가 이뤄졌다. 지난 2010년 12월 14일 새벽 6시, 이진수군의 어머니 이해경이 불길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깼을 때는 미국 LA에서 유학중인 아들 진수군이 한창 운동장을 뛰어 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해경은 진수군이 다니는 고등학교 측에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 진수군이 친구와 싸워 쓰러져서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해 LA의 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진수군은 이미 뇌사상태였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부모님을 맞고 있었다. 이상희 부부가 진수군의 곁을 지킨 지 이틀 만에 결국 인공호흡기는 제거됐고 진수군은 부모의 곁을 떠났다. 당시 진수군과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한국인 유학생 선우(가명)군이 징이 박힌 축구화를 신고 진수군을 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선우(가명)군을 살인용의자로 소년구치소에 구금했다. 그러나 3년 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됐다.  진수군이 사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희씨에게 미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현직 LA총영사라고 소개한 김씨는 경찰영사로부터 보고를 받아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변호사인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상희씨 부부는 사건을 수임하게 된 김씨에게 사건의 기소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니 기다려보라는 말뿐이었다. 김씨가 사건을 맡은 지 1년 후, 김씨는 돌연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수임을 포기했다. 제작진은 불기소 이유와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LA로 떠났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배우 이상희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 후 하지도 않은 장기기증 허락이 되어있었다”며 “얼굴을 뺀 모든 장기를 기증한다고 되어있더라”며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이어 의료진과 인근 교민들은 “장기기증을 할 때 여러번 상담을 하게 하는데 이상했다”고 증언했다. 이상희의 아들 사망 사건 직후 용의자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불구속기소 처분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에 이상희의 아내는 당시 증인들의 증언을 거론하며 “가해자는 덩치 큰 백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미국 경찰의 조사 결과에 대해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이었지만 평소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은 우리나라 산업 개발기에 경제정책을 입안한 전문가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에서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무역협회장에 취임한 지 오는 26일로 1년을 맞는다. 50년 가까이 한국 경제의 발전과 변화를 지켜본 경제·산업계의 원로가 세계 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출의 부진, 경제 도약의 한계론 등에 대해 긍정적인 진단을 내리는 게 반갑다. 18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무역센터 50층 사무실에서 김 협회장을 만났다. →본론에 앞서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철수한 것에 대한 입장은. -기업들의 피해 상황이 안타깝다. 북한은 세계 평화와 한반도 긴장 완화 기조에 역행함으로써 국제적 고립을 스스로 재촉했다. 하루빨리 공단이 정상 가동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정부도 지원에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 →수출이 구조적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있는데. -1월의 전체 수출 증감률이 전년 동월에 비해 -18.5%로 악화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액이나 물량이 줄고 있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고, 그에 비하면 우리는 상당히 선전한 그룹에 속한다. 수출 총액이나 물량보다 이익이 얼마인지 부가가치는 어떤지 등을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 경제 상황은 늘 꿈틀대기 때문에 순환적 시각보다 구조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게 옳다. 그런 점에서 지금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다만 위기 극복에 필요한 변화를 위해선 기업이 먼저 나서야 한다. 과감한 혁신을 통해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기업은 과거 수출 경제를 일군 기업가정신에 더해 ‘글로벌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정부는 기업 환경을 자유롭고 유연하게 뒷받침해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산업 경제의 기반마저도 주저앉고 있는 것 아닌가. -세계 경제의 침체기에는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를 이미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선 어떤 나라보다 고급 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경제 여건이 곧 활성화되면 이들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의 현재 산업 인프라가 별 게 아니라고 여길 수 있는데, 세계는 우리를 부러워한다. 탄탄한 국가 기반산업을 바탕으로 앞선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활용해 융·복합 산업에 박차를 가한다면 우리는 한참 더 잘 먹고살 수 있다. 셋째,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제조업의 40% 수준에 그치고 있으나 이를 60~70%까지 끌어올린다면 재도약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 아닌가. -서비스 산업의 경우 이미 한류와 문화 콘텐츠의 활발한 수출을 지켜보고 있지 않나. 한반도 주변에는 반경 2000㎞ 이내에 인구 100만명의 도시가 147개나 있다.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고부가가치의 전시 산업 등을 육성할 수 있다. 코엑스의 경우 30여년 전에 지어져 급증하는 마이스(MICE) 산업의 수요를 충족할 전시공간이 절대 부족하다. 따라서 경제성장률 2~3% 등락에 노심초사하지 말고 우리의 잠재적 발전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이를 발현하는 게 중요하다. 기업은 끊임없이 혁신하고 정부는 기업을 믿고 지원하며 사회는 기업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 준다면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수출입 의존도가 큰 중국의 저성장에 대한 우려도 크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총수출의 4분의1을 웃도는 상황에서 1월 수출이 21.5% 감소했다. 또 중국 경제의 현실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가 위기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금융 전문가인 조지 소로스의 경우는 중국이 이미 경착륙을 하고 있다는 비관론을 편다. 중국은 체제 특성상 정부 주도로 산업 발전을 진행했고 세계는 이를 신뢰했다. 그게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위험한 것이다. 속단은 금물이고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중국과 인도는 우리 자신을 위해 계속 함께할 비즈니스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그럼 중국 시장을 대할 때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가 고급 제품을 수출하고 그들의 값싼 생활용품을 수입하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국제적 시장이다. 특히 14억명 인구 모두가 소비하는 그들의 내수 시장을 노려야 한다. 현재 중국 소비 시장은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조금 넘을 뿐이어서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지난달 쓰촨성 청두에 지부를 개설했다. 내수뿐만 아니라 현지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가 썩 괜찮았다. 무역협회가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할 계획이다. →젊은이들은 극심한 취업난, 중소기업은 만성적 구인난을 겪는다. -인생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다. 그전에 먼저, 나는 어릴 적 책을 무척 많이 읽었다. 학창 시절의 독서가 나중에 사고력, 표현력, 문장력 등에 큰 도움을 준다. 초등학교 때 10권짜리 삼국지(삼국지연의)를 세 번 완독했다. 집안이 가난해 책을 살 돈은 없었고, 늘 책방 한쪽에 쪼그려 앉아서 외우다시피 읽었다. 중고생 땐 몰래 수업 중에도 작가 박종화의 작품 등 당시에 나온 역사 소설을 다 봤다. 대학에 와선 ‘적극적 사고방식’(노먼 빈센트 필 지음)이 큰 감명을 주었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부정적인 것과는 엄청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작품이다. 긍정적 사고를 위해 ‘왜 내 주변엔 좋은 사람(일)이 없을까라고 고민하는 것보다 내가 좋은 사람(일)의 주변에 있자’라고 결심했다. 시간이 지나면 기대한 결과가 나온다. →그런 위로가 당장 힘든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요즘 금수저, 흑수저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라고 말하는 아내와도 논쟁을 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자신이 성공하는 줄에 설 것인가, 실패할 줄에 설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기 바란다. 어떤 조직에도 ‘30%룰’이 적용된다고 하더라. 즉 30%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는 그냥 제 밥값만 하거나 그것마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 열심히 하는 30%만 데리고 조직을 꾸리면 어떨까. 다시 그 가운데 30%만 일하고 나머지는 따라만 간다. 나머지가 무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구성원이다. 다만 언제든 상위 30%에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이에 더해 눈을 좁은 국내에 머물지 말고 해외로 돌리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30년 공직과 20년 기관장을 거치며 공무원 후배들에게 해줄 말은. -국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데 자긍심을 갖고 긍정적 사명감을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50년 전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을 당시엔 여러 가지 기회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월급으론 도저히 가정생활을 꾸릴 수 없어서 주말에 학원 강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편하게 살면 자기의 능력을 검증할 수 없다. 겁내면 숨은 능력이 발휘될 기회가 없다. 똑똑하다는 공무원만 모였다는 경제기획원도 30%룰을 적용받더라. 배에 힘을 주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라. →좋은 말씀 많이 하셨는데, 좌우명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등을 늘 되새긴다. 집안의 가훈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이다. →건강해 보이는데, 비결은. -1980년대 정부과천청사 시절부터 간단한 아침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닌다.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다. 지금도 출근길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가벼운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결은 우선 건강한 신체를 물려주신 부모님 덕분이고 잘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것이다.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김인호 무역협회장은 ▲경남 밀양(74)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미국 시러큐스대(MBA) ▲행정고시 4회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경제기획국장·차관보 ▲환경처 차관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대통령 경제수석 ▲중앙대·세종대 출강 ▲중소기업연구원장
  •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답답한 숨·불편한 몸…그래도 꿈”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답답한 숨·불편한 몸…그래도 꿈”

    ‘호킹과 같은 병’ 두 돌 지나 알아 “책 한장 넘기는 것도 힘들지만 대학 못 간다 생각한 적 없어 내 병 생명공학으로 더 공부할 것” “제가 앓고 있는 희귀병인 ‘척수성 근위축증’에 대해 어릴 적부터 무척 궁금했어요.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16일 오후 3시 서울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명지(19)양은 “병 때문에 한 번도 두 발로 서 보지 못했고 호흡장애도 있지만 희귀병 때문에 대학에 못 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병은 단지 불편할 뿐 불가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양은 오는 3월 연세대 원주캠퍼스 생명과학기술학부에 입학한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근육 손상이 진행되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희귀병이다. 나중에는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진다. 세계적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앓아 알려졌다. 이날 병원에서는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라는 행사가 열렸다. 희귀병으로 호흡장애를 앓는 고등학생, 대학생 20명이 참석했고 이 중 김양을 포함해 5명은 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첫돌이 되기 전 선반을 잡고 일어서다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일어나지 않자 가족들이 처음에는 겁이 많다고 생각했대요. 하지만 두 돌이 지나도 못 걸으니 이상하게 생각한 거죠.” 김양은 곧 조직검사를 받았고 척수성 근위축증이라는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2년도 못 살 것”이라고 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치료약이 없다. 꾸준한 재활치료로 근육의 퇴화를 늦추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져 병원에서 호흡재활 치료까지 했다. “끔찍하게 힘든 상황도 있었죠. 하지만 부모님이 전폭적으로 믿어 주셨고 언제나 재활을 함께해 주셨어요.” 김양은 5살 때 장애인 유치원을 다녔지만 초등학교부터 일반학교로 진학했다. 처음에는 근육의 힘이 약하니 책 한 장을 넘기는 것도, 필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쉬는 시간은 오롯이 친구의 노트를 베끼는 데 사용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눕지 못하고 하루 12시간씩 휠체어에 앉아 있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짓눌렸다. 그러나 밝은 성격으로 최선을 다하는 김양의 모습에 많은 친구가 도와주었다. 어머니 김경희(45)씨는 “딸의 친구들에게 딸의 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니까 많이 도와줘 고마울 따름”이라며 “지금은 일어서는 것만 못할 뿐 친구들처럼 말하고 활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김양은 대학에서 자신의 병에 대해 연구한 후 화장품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화장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건강한 화장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저 때문에 고생한 가족에게도 꼭 보답하고 싶어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SNS서 평판이 좋군요, 대출금리 낮춰 드리죠

    SNS서 평판이 좋군요, 대출금리 낮춰 드리죠

    ‘정규직 승격’ 성실함으로 인정, 추상적 요소도 계량화해 반영 “중신용자 많아 정교하게 평가” 서울 광화문에서 전통 막걸리집을 운영하는 A씨는 분점을 내기 위해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P2P(개인 대 개인) 금융업체 빌리에 5억원의 대출을 신청했다. 신용평가업체를 통해 책정된 A씨의 대출금리는 연 7%가 나왔다. 하지만 A씨의 페이스북을 모니터링한 빌리는 현재 점포가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 분점을 내도 부도 위험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고 금리를 연 5%로 낮췄다. 페북을 통해 A씨의 남편이 유명 요리사라는 걸 알게 된 것도 금리 인하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급격히 시장을 키워 가고 있는 P2P 업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내역, 심리 테스트, 맞춤법 등 다양한 신용평가 수단을 활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소득과 부채, 카드 사용액 등으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신용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와 심리 등 추상적인 요소를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계량화해 금리 산출에 반영하는 것이다. 또 다른 P2P 업체 렌딧은 페이스북 정보 수집에 동의한 대출 신청자에게는 무조건 0.1% 포인트 우대 금리를 적용한다. 급전이 필요해 카드론과 저축은행에서 연 18%의 금리로 820만원을 대출받은 사회 초년병 B씨는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렌딧에 대환대출을 신청했다. 렌딧은 페이스북을 통해 B씨가 부모님 치료비를 위해 대출받았고, 최근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승격’한 것을 파악했다. 성실한 청년이 연체할 우려가 낮다고 판단한 렌딧은 연 8%에 대출을 했다. 렌딧의 예측대로 B씨는 5개월 만에 대출금을 조기 상환했다. 렌딧이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시스템 ‘렌딧CSS(Credit Scoring System)’는 대출 신청자의 행동양식까지 분석한다. 신청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렌딧에 접속했는지, 홈페이지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마우스 스크롤 속도를 통해 약관 등 중요한 정보를 꼼꼼히 읽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총 20개로 세분화된 등급을 매긴다. 렌딧 관계자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나 행동양식을 활용한 신용평가는 아직 전통적인 심사 방식을 보완하는 정도의 자료로 쓰이고 있지만 향후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면 더욱 정교한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대출 신청자의 교육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니스트펀드는 일종의 심리 테스트를 통한 신용평가 기법을 성균관대 심리학과와 개발 중이다. 이르면 올해 상반기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테스트 시간은 대출 신청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5분 이내로 제한할 예정이다. 영국 핀테크 업체 비주얼 DNA는 40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심리 테스트를 실시해 신용평가에 이미 반영하고 있다. 제휴를 통해 이 기법을 도입한 글로벌 신용카드사 마스터카드는 체납률과 연체율이 23%나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는 “은행권 대출이 쉽지 않은 4~6등급 중신용자가 주요 고객인 P2P 업체는 체납과 연체 위험을 더욱 정교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며 “미국 벤처 캐피탈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비금융 데이터를 신용평가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나쁘다고 말한 사람이 더 나빠!” 큰애가 소리를 꽥 지르더니 입을 삐쭉 내밉니다. 동생이 자기 보드게임을 허락도 없이 했다며 말도 없이 보드게임을 뺏길래 제가 “그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했더니 화를 냅니다. 아빠 입장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는데 큰애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입니다. 큰애는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소파에 있던 쿠션을 들어 힘껏 내던집니다.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발이 아플 정도로 쿵쿵 굴러대고 거실을 돌아다니다 급기야 베란다 출입문을 발로 찹니다. ‘아니, 이놈의 자식이!’라는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더니 아내가 옆에서 팔을 잡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더이상 화내지 말라는 겁니다. 큰애가 일곱 살이 되더니 이상해졌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쉽게 화를 내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수많은 유아 교육 책과 TV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성장 단계에 따른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쉽게 정의합니다.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저는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부모가 이럴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①그냥 무시하거나 ②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거나 ③조용조용 잘못을 지적하거나 ④큰 소리로 혼을 내거나 ⑤때리거나 등입니다. 구정 연휴 동안 아이와 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저는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다섯 가지 선택 중에서 주로 ③번을 택했습니다. ④번도 적잖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⑤번을 택할 뻔도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이유가 뭘까요? 효과가 즉각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효과에 비해 그 후유증은 큽니다. 저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꽤 많이 맞았습니다. 동네 전자오락실에 가려고 부모님 지갑에서 돈을 훔치다가 걸려 호되게 맞기도 했고, 옆집 형의 샤프펜슬을 훔치고 동생을 괴롭혔다고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일일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맞을 때 겁에 질려 울면서 무릎 꿇고 싹싹 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의 기억과 당당하게 마주하고 어머니를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모의 자녀 학대 기사가 요즘 연달아 보도되고 있습니다. 인천 11세 소녀를 감금하고 학대한 부모에 이어 7세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부모의 사건. 11세 딸을 무차별적으로 때려 숨지게 한 목사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남편과 불화로 가출한 40대 주부가 7세 딸을 폭행하고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한 사실도 5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가슴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입니다. 이 부모 모두가 자기 자녀를 학대한 것을 쫓아가면 그 첫 단추는 결국 ‘폭력’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처음엔 그렇게까지 잔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폭력이 익숙해지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참변이 난 게 아닐까요. 수치심을 주고 죄책감이 들게 하고, 아이를 길들이겠다며 폭력을 쓰는 것으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탤런트 김혜자씨가 세계 곳곳의 버려진 아이와 부녀자를 찾아 이들을 도운 체험을 쓴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가 생각납니다. 진심을 전달하는 수단은 매질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gjkim@seoul.co.kr
  •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최고 시청률 21.9% 기록 ‘대박’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최고 시청률 21.9% 기록 ‘대박’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최고 시청률 21.9% 기록 ‘대박’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K팝스타5’ 유제이의 ‘여러분’이 파격적인 선곡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14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5’에서는 유제이가 윤복희의 ‘여러분’을 선곡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유제이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면서 “우리 부모님이 슬프면 저도 슬퍼요. 엄마를 위로하는 것 처럼 부르겠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유제이는 담담한 듯 노래를 불러 나가면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심사위원 박진영은 “이건 노래로 끝나는 곡이 아니다. 대중을 위로해야 하는 곡”이라면서 “한국 말도 서툰 아이가 이걸 소화하다니 깜짝 놀랐다”면서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양현석 심사위원도 “윤복희 선배님이 꼭 유제이 양이 부른 ‘여러분’을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유희열 심사위원도 “가창력이 있지 않으면 프로 가수들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 곡”이라며 놀라워 했다. 한편, 유제이의 ‘여러분’ 무대는 시청자들의 눈길도 사로잡았다.15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K팝스타5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14.4%, 수도권 기준 15.8%을 기록했다. 특히 유제이의 무대는 21.9%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시청률 기록…“윤복희 선배님 보셔야” 극찬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시청률 기록…“윤복희 선배님 보셔야” 극찬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시청률 기록…“윤복희 선배님 보셔야” 극찬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K팝스타5’ 유제이의 ‘여러분’이 파격적인 선곡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14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5’에서는 유제이가 윤복희의 ‘여러분’을 선곡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유제이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면서 “우리 부모님이 슬프면 저도 슬퍼요. 엄마를 위로하는 것 처럼 부르겠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유제이는 담담한 듯 노래를 불러 나가면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심사위원 박진영은 “이건 노래로 끝나는 곡이 아니다. 대중을 위로해야 하는 곡”이라면서 “한국 말도 서툰 아이가 이걸 소화하다니 깜짝 놀랐다”면서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양현석 심사위원도 “윤복희 선배님이 꼭 유제이 양이 부른 ‘여러분’을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유희열 심사위원도 “가창력이 있지 않으면 프로 가수들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 곡”이라며 놀라워 했다. 한편, 유제이의 ‘여러분’ 무대는 시청자들의 눈길도 사로잡았다.15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K팝스타5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14.4%, 수도권 기준 15.8%을 기록했다. 특히 유제이의 무대는 21.9%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최고 시청률 ‘대박’… “윤복희 봤으면”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최고 시청률 ‘대박’… “윤복희 봤으면”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순간 최고 시청률 ‘대박’… “윤복희 봤으면” K팝스타5 유제이 여러분 ‘K팝스타5’ 유제이의 ‘여러분’이 파격적인 선곡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14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5’에서는 유제이가 윤복희의 ‘여러분’을 선곡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유제이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면서 “우리 부모님이 슬프면 저도 슬퍼요. 엄마를 위로하는 것 처럼 부르겠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유제이는 담담한 듯 노래를 불러 나가면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심사위원 박진영은 “이건 노래로 끝나는 곡이 아니다. 대중을 위로해야 하는 곡”이라면서 “한국 말도 서툰 아이가 이걸 소화하다니 깜짝 놀랐다”면서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양현석 심사위원도 “윤복희 선배님이 꼭 유제이 양이 부른 ‘여러분’을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유희열 심사위원도 “가창력이 있지 않으면 프로 가수들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 곡”이라며 놀라워 했다. 한편, 유제이의 ‘여러분’ 무대는 시청자들의 눈길도 사로잡았다.15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K팝스타5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14.4%, 수도권 기준 15.8%을 기록했다. 특히 유제이의 무대는 21.9%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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