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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의락 교수 저 ‘탈식민주의와 현대소설’

    ◎아프리카­영미의 문학 그 상관관계는 무엇인가/나이지리아·가나출신 작가들 작품 해부/탈식민주의 관련 논문·참고문헌도 망라 문학이 역사적 맥락을 떠나 그 자체의 법칙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유럽 부르주아 이념의 핵심인 보편주의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문학의 심미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이러한 서구문학의 관점은 또한 미국의 신비평론자 같은 형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무시된 문학이 과연 존립할 수 있을까.최근 부산외국어대 영어학과 김의락 교수가 펴낸 ‘탈식민주의와 현대소설’(자작아카데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아프리카 문학과 영미문학을 비교·분석한 책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프레드릭 제임슨이 제3의 역사적 발전단계로 강조하는 후기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단일국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라는 틀에 박힌 상식과 한계를 초월한 범세계적인 문화체계를 의미한다.오늘날 우리는 더이상 순수한 형태의 원형이나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 보편적인 문화체계 속에 살고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같은 인간 삶의 모습을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치누아 체베(‘모든 것이 허물어지다’)·부키 에메체타(‘어머니의 기쁨’)·아이 케이 알마(‘우러러볼 만한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우스만 셈빈(‘저주’)·마리아마바(‘길고 긴 편지’)·구기 와 티옹오(‘십자가 위의 악마’)·나딘 고디머(‘버거의 딸’)·아마 아타 아이두(‘흥을 깨는 자매’) 등이 그것이다. 현대 영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문학이 영미문학에끼친 영향과 이들의 관계,그리고 아프리카 문학 자체의 독특한 뉘앙스 등을 폭넓게 알 필요가 있다.김교수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속’을 예로들어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인다.이 소설은 유럽 식민지인 아프리카가 주된 관심사인 만큼 엄격하게 서구문학의 틀에서 보기 보다는 아프리카 소설인 치누아 체베의 ‘모든 것이 허물어지다’같은 작품과 연계해 이해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라는게 그의 지적.나아가 ‘어둠의 속’은 주인공 찰리 말로의 입장에서 볼 수 있듯 아프리카인들을 인간으로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서아프리카 영어권 소설에 주목한다.아프리카 국가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와 영국 식민지로부터 처음으로 독립을 쟁취한 가나 출신 작가들이 아프리카 소설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나이지리아 출신 소설가들은 영어로 소설을 쓰기 전에 이미 전통적인 아프리카 이야기체의 소설을 펴냈다.영어로 글을 쓴 최초의 아프리카 소설가로 꼽히는 투투올라는 그들의 구전체 이야기인 ‘요루바 구전 민담’을 토착어로 썼다. 또 그의 또다른 작품인 ‘팜주의 주정꾼’의 환상적인 요소는 카프카나 조이스의 작품 분위기를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아프리카 작가들에게 정신적 지주와 같은 인물인 동부 나이지리아 출신인 치누아 체베에 관한 해석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그의 대표작 ‘모든 것이 허물어지다’를 그리스 비극에 견줘 이해하는 평자들의 견해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하나의 예로 평론가 모지즈는 이 작품에는 ‘호머풍의 특질’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구기의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투쟁의 양상’‘다문화 문학비평’‘퍼논의 『비참한 세상』해설’ 등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영문논문도 실렸다.또한 탈식민주의에 대한 모든 참고문헌을 망라해 탈식민주의 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 비껴간듯한 탈식민주의 문학의 핵심을 주류문화에 노출되지 않은 제3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 컴퓨터프로그램 조기개발(북한 이모저모)

    북한은 24일 전체 과학자·기술자들에게 김정일이 제시한 컴퓨터프로그램개발 관련 과업들을 최단기간내에 관철할 것을 촉구했다고 중앙방송이 25일 보도했다. ◎올림픽 폐막 뒤늦게 보도 북한은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의 북한선수들의 경기성적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채 3일이 지난 25일 폐막사실을 뒤늦게 보도했다. ◎김정일찬양 가창대 조직 북한은 김정일에 대한 청소년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각지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단위로 가창대를 조직,활동케 하고 있음이 노동신문의 최근 보도로 확인됐다. ◎미국 RFA방송 경계 촉구 북한은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통해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을 ‘미국의 사상 문화적 침투책동’이라고 주장하며 주민들에게 이 방송을 비롯,각종 부르주아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 ◎아태위협세력 지목 비난 북한은 24일 미국이 연례전략보고서에서 북한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위협 세력으로 지목한 것과 관련,흑백을 전도하는 망언으로서 우리에 대한참을 수 없는 도전이라고 반발하고 평양방송을 통해 미국을 비난했다.
  • 앙드레 말로/피에르 드 부아데프르 지음(화제의 책)

    ◎현대 프랑스문화의 거두 말로 전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현대 프랑스 문화를 일구어낸 작가 앙드레 말로(1901∼1976)에 관한 전기.앙드레 말로는 전 생애에 걸쳐 넓은 의미의 ‘문화’를 체화해낸 인물이었다.정치적 연설이나 강연회에서조차 그는 ‘문화’라는 개념을 항상 우선시했으며,그의 모든 정치적 역정도 예술과 문화를 통해 형성됐다.프랑스의 문학사가인 지은이는 앙드레 말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험보다,혁명보다,운명의 추구보다도 더 끊임없이 말로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것은 예술이다,예술은 그의 지성과 마음의 고향이었다” 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의 편집장 생활을 비롯해 여러 진보적 잡지에 참여한 말로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아울러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서도 항상 제일선에서 투쟁했다.그러나 결코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말로는 진정 프랑스 ‘문화’의 역량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잊혀졌던 트리아농성의복원을 재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했으며, 모든 갤러리와 박물관을 개방함으로써 20세기에 걸맞는 문화도시 ‘파리’를 재건했다.문화부 장관으로서 가장 괄목할만한 말로의 업적은 1964년에 실시된 ‘프랑스의 기념비와 예술적 재원의 총람’ 제작작업이었다.이 자료가 그에 의해 완성됨으로써 프랑스 국가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공적인 행동의 기초가 마련됐다. 말로는 부르주아 사회의 천박성에 짓밟힌 예술가의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브라크와 스위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장례식을 위해 루브르의 정원을 개방한 것은 그가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말로는 진정한 문화관료의 표본을 보여준다.이창실 옮김 한길사 1만3천원
  • 황영안 말련 과기평론가 아주주간 기고 요지(해외논단)

    ◎다국적 통일정부 설립 필요 세계는 지금 ‘하나의 부락’으로 급속하게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동남아 국가들의 통화위기가 우리나라 등 전세계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황영안 말레이시아 제5TV 정보과학기술 평론가는 최근 ‘글로벌화의 거시 정치경제학’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는 지구촌의 글로벌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데 기인한다며 전통적인 주권국가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글로벌화 시대에는 세계 여러나라의 경제 및 문화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통일된 다국적 정부를 설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다음은 아주주간에 실린 그의 기고문 요약. 지난 7월2일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위기가 빠른 속도로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통화위기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을 금융의 ‘아노미(대혼란)’ 상태로 몰아넣은 뒤 싱가포르,홍콩,대만을 거쳐 북미·남미,서유럽 뿐 아니라 러시아까지 요동치게 하고 있다. 금융분석가와 경제계는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관련,갖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이중 지배적인 견해는 중국이 94년 거시경제목표의 조정 이후 달러화에 대한 위안(원)화의 환율가치가는 30% 정도가 하락,중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미국 및 세계시장에서 동남아 국가의 상품을 밀어내게 됐다는 것이다.이것이 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동남아 국가들의은 수출경쟁력을이 급격히 쇠퇴시키면서 이들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따라서 동남아 국가의 통화는 외환투기를 통해 한몫을 챙기려는 헤지펀드들의 표적이 됐다. ○글로벌화 과정 가속화 아시아 금융위기는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사안이다.아시아 통화의 폭락은 미국 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현상은 아시아 국가들의 상품 가격 경쟁력을 높여 미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얘기다. 올해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 폭풍은 냉전 이후 시장경제체제의 운용구조에 있어 지구촌의 글로벌화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일찍이 “부르주아계급은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국가의 생산 및 소비활동 등은 세계성을 지닌다“고 지적한 바 있다.지구촌의 글로벌화는 자유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객관적이고 본질적인 경향이기 때문이다. ○자금·자원 유동성 급증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로 이들 나라는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으며,남미 및 인도가 자본주의체제를 가속화시키고 중국도 개혁·개방에 나선게 대표적 사례들이다.이를 계기로 자연히 단기 및 장기 자금,자원,인력 등의 유동성이 급속히 늘어나며 지구촌의 글로벌화 과정은 하루가 다르게 진전됐다.여기에 정보 및 과학기술,교통의 글로벌화도 뒤따르며 지구촌 글로벌화의 속도에 가속을 붙였다.대학 및 기타 학술기구를 연결하는 인터넷도 글로벌화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이같은 지구촌의 글로벌화는 정치 및 안보 등의 이유로 제한받아온 정보의 통제에 종언을 고하며,전 세계에 각종 정보의 유통을 끊임없이 확산시켰다.그런데 지구촌의 글로벌화로 사람들은 매우 절실한문제를 경험하게 됐다.투자부문 등은 지금까지 한 나라의 통제 및 관리 등을 경험해 글로벌화 환경을 따라잡기에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민족·경제·문화 통합을 따라서 글로벌화 시대에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발상 전환의 관건은 안정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오 나치즘·민족주의·국가주의·허무주의 등 극단적 집단주의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느냐로 요약된다.전통의 민족국가와 주권국가의 의미가 날로 퇴색돼 국가의 금융 및 경제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는 글로벌화 시대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민족 경제 및 외환거래,문화 등을 통합관리하는 하나의 다국적 통일정부가 설립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빨치산 옷차림 본받기 권장/북한 이모저모

    ○…북한은 최근 청소년들 속에서 확산되고 있는 미니스커트 등 ‘부르주아 생활풍조’를 근절하기 위해 옷차림과 몸단장 등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의 생활양식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벼낟알 포장용기 부족 심각 ○…북한은 벼 포장용기 부족으로 각지 협동농장들에서 탈곡된 벼 낟알이 허실되는 현상이 빈발하자 포장용기 회수작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 염상섭 소설 ‘불연속선’ 복원

    ◎1936년 매일신보 연재물… 1년간 재구성/식민지시대 청춘남녀 연애 이야기 횡보 염상섭의 장편소설 ‘불연속선’이 도서출판 프레스21에서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발간됐다.1년여 동안에 걸쳐 원본을 재구성하고 복원해 염상섭 문학의 결정본을 냈다.1936년 매일신보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횡보가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만주로 떠나기 직전 발표한 것으로,식민지 시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불연속선’은 세태풍정 묘사에 초점을 맞춘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다.택시운전사 김진수와 일본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카페 여주인 송경희라는 두 인물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우연히 만나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어 간다는 것이 기둥줄거리.횡보는 신파조의 황홀한 연애행각을 그리는 한편 혼사장애의 이야기를 낯설게하기의 기법으로 재현한다.특히 이 소설에는 ‘제야’와 ‘표본실의 청개구리’‘만세전’‘삼대’ 등에서 보여준 현실인식은 증발되고 무정란같은 닫힌 현실에 안주하는 인물들만 넘쳐흘러 눈길을 끈다.무위도식하며 유희나 즐기는 가리사니없는 이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일까.전형적인 신흥 부르주아의 자제이자 모던 보이인 김진수는 조선의 사이비 신흥 부르주아의 모습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1930년대의 횡보는 근대를 문제 삼았고 근대를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에 주목받는 작가로 남아있다.그러나 ‘불연속선’에서의 근대는 역사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근대가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사이비 근대 혹은 유사근대에 가깝다. 한편 이 소설 끝에는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보다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현재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우리말에 대한 풀이를 실어 주목된다.고팽이(한 차례의 왕복),낫세(‘나잇살’의 비표준어),널치(몹시 지친 상태),떨뜨리다(위세를 드러내 뽑내다),민주대다(귀찮고 싫증나게 굴다),바자위다(성미가 깐깐해 너그러운 맛이 없다),버릊다(파서 헤집어놓다),뼈지다(하는 말이 매우 야무지다),안차다(겁이 없고 깜찍하다),어숭그러하다(유난스러운 데가 없이 수수하다),지다위(제 허물을 남에게 덮어씌움),채심하다(정신차리다),첫대바기(맞닥뜨리자 처음으로),흑책질(교활한 꾀로 남의 일을 방해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자본주의 바람’ 차단 사상교육 강화(오늘의 북한)

    ◎한국·외국인 왕래 잦아 폐쇄빗장에 틈새/장발·미니스커트 등 외래풍조 배격운동 요즘 북한 당국은 전 선전매체를 동원,전체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풍조 유입에 대한 경감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사상교양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그동안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해 남한의 풍족한 생활상의 전파와 외래사조의 침투를 막아왔는데 최근 경수로 건설공사·대북 식량지원 감시활동·대북 투자·관광 등을 위해 한국인과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마지 못한 항구개방이 늘어남에 따라 차단틈새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요즈음 북한 당국이 ‘황색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점차 ‘비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옷차림·치장·행동에 대한 단속,외래풍조배격 토론회 개최,사회주의정신 고취 교육 강화,‘김정일 따라 배우기 운동’전개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북한 당국이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청소년들의 옷차림·머리모양·치장·행동 등이다.청년동맹기관지인 청년전위 최근호는 청소년들이 “국적 모를 괴상한 머리를 하고 다닌다“며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닐 것을 촉구했다.이 신문은 청소년 머리형태 중에는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머리형태를 딴 것도 있다면서 “이렇게 무턱대고 따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주아 생활양식에 오염돼 구렁텅이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또 옷차림에 대해선 “일부 여성들이 우리식이 아닌 치마바지나 무릎 위에 올라가는 짧은 치마(미니 스커트)와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도 수치스러운 줄을 모르고 있다”고 개탄했다.최근 번지기 시작한 여성들의 짙은 화장과 관련해서는 “눈 둘레를 색소로 물들이는 것(눈화장)은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유행”이라고 질타하고 있다.그리고 문신에 대해선 “먹물로 살속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는 것은 얼빠진 사고방식으로부터 하는 장난질”이라고 개탄했다.이밖에 ▲청춘남녀의 팔짱 끼기 ▲자전거 뒤에 여자 태우기 ▲여자의 바지치마,남자의 쫑대바지(몸에 꼭 달라붙는 바지) 입는 문제 등을 ‘부르주아적이며 퇴폐적인 생활풍조’라고 비판했다.그리고이같은 미국식 생활양식을 “청년들을 병들게 하는 위험한 독소”로 규정하고 전체 청년들에게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같은 비사회주의적인 풍조의 만연을 막기 위해 청년동맹의 ‘청년규찰대’를 동원,장발을 자르는 등 두발과 옷차림 단속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또 전체주민들에 대해 자본주의 사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최근호 사설에서 “소련과 동구국가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선택한 결과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실업·빈궁 등으로 파국적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환상이나 기대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자본주의사상은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반동적인 독소”라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제때 사건화하고 강한 투쟁을 벌여 싹에서 부터 가차없이 짓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천리마’ 역시 “반동적 사상문호는 사회주의 진지를 무너뜨리고 혁명과 건설을 망치게 하는 무서운 사상독소의 매개물이며 전파자”라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 시인 ‘백석’문학 총체적 복원/실천문학사 전집 발간

    ◎해방뒤 북 귀향… 88년 작품 해금/향토성 짙은 시·소설·평론 망라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가즈랑집은 고개 밑의/산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닭 개 즘생을 못놓는/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 한다…〉 한국 근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재북시인’ 백석의 ‘가즈랑집’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향토적인 시어로 우리 민족의 원형적인 삶의 모습을 노래한 백석.그동안 냉전이데롤로기에 묻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백석 시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다.백석의 문학작품을 소개한 책으로는 지난 87년 시인 이동순씨가 펴낸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이 처음.지난해에는 시집 ‘여우난골족’(솔)이 출간됐으며 올해 들어서는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시와사회)가 잇따라 나왔다.이와 함께 최근 실천문학사에서 ‘백석전집’을 펴냄에 따라 백석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른 느낌이다. 백석은 본명이 백기행으로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백석은 관서지방 방언을 잘 살린 첫 시집 ‘사슴’(1936년)으로 일제하 지식인과 문인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그러나 백석은 45년 광복이후 신의주를 통해 귀향,북에서 시작활동을 해왔다.때문에 그는 88년 정부의 납·월북작가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잊혀진 시인’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인 김재용씨가 엮은 ‘백석전집’은 시는 물론 소설,동화시,평론과 정론까지 망라해 백석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특히 그동안 나온 책들이 대부분 해방전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 것과는 달리 이 전집은 해방후의 작품까지 싣고있어 주목된다. 백석 문학의 특징중 하나는 민속적 세계를 즐겨 다루고 있다는 점.백석의 작품세계에 대해 김씨는 “‘여우난골족’이나 ‘고야’등의 작품에서 보듯 백석의 시들은 단순한 동심의 세계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공동체의 생활리듬속에서 느끼는 공동체적 연대와 우주적 합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평했다.또한 백석의 방언사용과 관련,그는 “일차적으로는 표준어에 대한 저항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의 중앙집권화와 물신화에 대항해 인간의 진정한 삶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광복직후 남북현실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었던 백석은 당시 복잡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매우 미묘한 위치에 서게 됐다.그는 분단이후 북쪽에서 시보다는 동화시를 주로 썼다.전후 해빙기에 자신의 문학관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부르주아 잔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작품활동이 위축됐던 백석은 58년 숙청돼 국영협동조합의 축산반에서 일하게 됐다.이 시기에 그는 다시 시작활동을 시작했지만 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관련,일체의창작활동을 중단했다.
  • 김정일 친위조직 ‘청년동맹’ 흔들린다

    ◎조직 이탈자 급증… 급격한 사상동요 반증/체제 회의·통제력 약화탓… 교육·노역 강화 “조직에 얽매이기 싫다”,“일하기 싫다”,“사상교육도 싫다”… 최근들어 김정일의 친위조직인 ‘청년동맹’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등 북한 사회에서 과거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 이반현상이 청소년 및 대학생층에서 폭넓게 나타나고 있음이 최근 북한의 주요 조직 기관지와 출판물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김정일도 최근 청년동맹의 조직이완에 우려를 나타내며 사상교양강화를 중심으로 한 동맹내부사업을 강화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동맹 기관지 최근호에 따르면 청년동맹원들 가운데 조직이탈 현상이 급증함에 따라 이탈자들로 청년돌격대를 구성,채탄장과 각종 건설현장에 투입하고 조직사상 카드,조직생활 유리자 도표 등을 작성,집중 관리하는 등 비상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각 도,시,군 청년동맹 조직들은 조직생활 ‘유리자’들과 이탈경향이 농후한 미배치 제대군인,외부출장자 등을 분류해 집중 관리하고 있으며 이들만으로 청년돌격대를 구성,개간사업장에 투입하는 등 각종 통제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조직생활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유리자 범위에는 불량청소년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것.그래서 이들을 소집해 김일성동상 등 우상화물에 화환증정모임,기록영화 참관 등을 갖도록 하며 충성을 맹세하고 결의하게 하는 등으로 조직생활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청년전위지는 양강도 풍서군에서는 1백54명에 대해 조직생활유리자 대책정형도표,평양시 모란봉구역에서는 1백46명에 대해 임시조직 사상카드를 만들어 집중 관리했으며 함남도 신흥군에선 유리자 46명을 대상으로 돌격대를 구성,원료기지 조성사업에 투입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또 청년동맹원들 가운데 회비를 내지 않는 맹원들이 많다면서 회비납부도 촉구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젊은이들이 일하기를 싫어해 이들을 노동현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관계기관이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고위층 자제들을 중심으로 가라오케,전자오락,비디오를 통한 지하문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돈이면 최고다”는 황금만능사상도 폭넓게 번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각종 사상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부르주아 사상과 생활양식을 철저히 배격하고 사회주의를 고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또 최근 부르주아사상·수정주의 날라리풍·개인 이기주의 등으로 지칭되고 있는 비사회주의적 사상요소들이 대학사회에 크게 만연됨에 따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북한 청소년들의 이같은 이반현상은 김일성 사망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이는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갈수록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체제에 대한 회의와 함께 당국의 통제력이 떨어지면서 가치관이 급속히 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당국은 최근 청년들의 사상이완 방지를 목적으로 각 공장 기업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년학교’의 내실화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북한당국은 또청년동맹 간부들이 청소년 교양사업에 대한 무책임성을 개탄하며 동맹내의 조직생활 지도및 사상투쟁을 한층 강화해나갈 것을 촉구했다. 청년동맹은 3대혁명소조와 함께 김정일을 떠받치는 친위조직으로,3대혁명소조가 지난 94년말을 기해 사실상 해체됨으로써 현재는 김정일친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젊은층에 문신·눈화장 유행

    최근 북한 젊은층들 사이에 문신이나 짙은 화장이 성행해 북한 당국이 방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 최근호를 통해 “먹물로 살속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는 것(문신)은 거기에 마치 그 어떤 뜻이나 용맹이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얼빠진 사고방식으로부터 하는 장난질”이라고 지적했다. 또 여성들의 화장에도 언급,“미를 돋구어 보려는 생각에서 눈 둘레를 색소로 물들이는 것(눈화장)은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유행”이라고 질타하고 이러한 부르주아적 유행의 침습을 철저히 경계할 것을 요구했다.청년전위는 이들 문제 외에도 청춘남녀가 팔짱을 끼는 현상,자전거뒤에 여자를 태우는 것,여자가 바지치마를 남자가 쫑대바지(몸에 꼭 달라붙는 바지)를 입는 것을 부르주아적이고 퇴폐적 생활풍조라고 비판했다.
  • 이승훈씨 10번째 시집 ‘나는 사랑한다’

    ◎다양한 시적 실험 통한 ‘제도성 파괴’ 1917년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은 뉴욕의 앙데팡당전에 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하면서 작품 이름을 ‘샘’이라고 명명했다.이것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엎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이후 예술에 대한 정의는 새로 내려지게 되었다.이것을 우리는 아방가르드라고 부른다.예술에서의 아방가르드는 순수한 허무주의를 부르짖었고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거부했다.또 부르주아 문학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와 문학·예술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거침없이 표명하고 나섰다.1997년,시인 이승훈(한양대 국문과 교수)은 최근 낸 10번째 시집 ‘나는 사랑한다’(세계사)에서 ‘준이와 나’라는 사진 한장을 한편의 시라고 내세운다.지금까지 시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 예술이라는 정의에 동의해왔던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나를 사랑한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은 이 시집에서 사랑하는 대상의 비규정성과 대상의 부재를 통해 자아의 소멸을 깊이있게 그린다.시를 파편화·패러디화함으로써 시인은 시적 통일성,곧 한 편의 시속엔 오직 한편의 시만 존재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허구성을 파괴하는 놀이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하나의 예로 그는 프랑스 태생의 미국작가 레이먼드 페더만의 시 ‘크리티픽션­페더만이 페더만에게’를 패러디해 ‘크리티포에추리?’란 시를 선보인다.〈…그의 시는 모순어법으로 말하면 구멍들로 가득차 있고 간극들로 차 있으며 빠진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시들은 늘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다.이승훈은 완성된 문장들로 만들어진 완성된 시처럼 행세하는 미완성의 문장들로 만들어진 미완성의 시를 쓴다 예컨대 ‘벽에 걸린 모자여’는…〉 일종의 시로 쓴 시론,이를테면 ‘시론시(시논시)’인 셈이다. ‘나를 사랑한다’에는 모두 50편의 시들이 실려 있다.이번 작품집의 특징은 에세이시·비평시·편지시·독후감시 등 다양한 시적 실험을 통해 문학의 일관성과 통일성,그리고 시의 제도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시인은 신변잡기처럼 소소한 일상과 주변 이야기를 ‘시적 긴장’이라는 장치를 배제한 채 자유롭게 펼쳐 놓는다.이러한 형식이야말로 ‘시적인 것은 없다’는 이승훈의 시론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다.
  • ‘광주비엔날레’ 새달 1일 개막

    ◎속도·공간·혼성 등 5개 소주제 지상중계/세계 39개국 377명 작품 409점 전시 광주비엔날레가 오는 9월1일 대망의 장을 연다.‘지구의 여백’이란 주제아래 88일간 빛고을 중외공원 문화벨트 71만평 일원에서 펼쳐질 올해 비엔날레.첫 해의 불협화음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말끔히 씻기라도 할듯 2년전 준비상황과는 사뭇 다르게 1년3개월간의 긴 준비기간을 마감하고 있다. 세계 39개국 377명의 작가가 409점의 작품을 보여주는 이번 행사의 백미는 아무래도 본 전시.현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속도 공간 혼성 권력 생성의 문제를 놓고 5명의 커미셔너가 선정한 작가 117명이 참여하는 이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색다른 예술체험을 하게 된다. ▷‘속도­수’전◁ 속도에 의해 이끌리는 현대문명과 정신에 대한 시적인 해석의 마당.빌 비올라의 ‘물 불 공기’라는 비디오 설치작품과 물을 신체와 결합시키는 피필로티 리스트의 작품들이 있다. ▷‘공간­화’전◁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동시에 담고 있는 세계각국의 도시를재현하는 방법.오늘날 지구촌 도시의 양태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혼성­목’전◁ 시대와 지역 국가 인종 성이라는 틀을 넘어 이질적인 것들이 복잡하게 뒤섞이고 있는 지구촌문화를 반영한다.LA와 휴스턴 등지에서 빈곤층이 사는 집들을 재건축한 릭 로우의 대형 설치작품 등이 대도시의 거리를 다니며 잡종 문화양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권력­김’전◁ 전통적 권력개념과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권력의 양상을 보여준다.파시즘이나 냉전 등 고전적 권력구조에서부터 테러리즘,핵풍경과 같은 최근의 정치적 상황들을 시각화하는 작업들이다. ▷‘생성­토’전◁ 생명의 근원적인 상태와 그 변화양상을 보여주는 공간.특히 여성이나 어린이 동물 등에 초점을 맞춰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를 낳는다.토테미즘 등 상징적인 내용의 중국 작가 황용핑,신체 사이클을 표현하는 루이스 부르주아 등이 이 전시에 포함된다.
  •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강명관 지음(화제의 책)

    ◎조선후기 말단지배층의 갈등 고찰 조선후기의 새로운 문학담당층인 여항인의 역사적 성격과 그들의 문학을 고찰.여항인은 경제적·문화적 성장을 통해 조선후기에 뚜렷한 사회세력으로 대두한 서울의 중간계급을 일컫는 말.경아전과 기술직 중인이 주류를 이룬다.여항인은 도시의 중간계급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쵸닝(정인)이나 서구의 부르주아와 비견되기도 하지만 중세 양반사회에 대한 기생성을 완전히 청산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조선왕조 지배층의 말단을 차지한 여항인들은 승진 또한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서 기껏해야 지방현감 자리까지밖에 오르지 못했다.때문에 그들은 늘 앙앙불락했으며 조선왕조에서도 감당하기가 어려워 교화하기 어려운 존재,곧 난화지물로 불렸다.여항문학은 이러한 여항인들의 불만의식과 갈등을 기조로 한다. 여항문학은 중세적 문학양식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그렇다고 중세문학의 보편화를 추구한 것도 아니다.지은이는 “여항문학은 양반 사대부들의 권력의 생산처인 지식과 문학의 독점을 해체하고 파괴했다.이것은 곧 중세의 해체이자 근대로의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창작과비평사 1만2천원.
  • 플로베르/허버트 로트먼 지음(화제의 책)

    ◎불 사실주의문학의 대가 일생 그려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문예사조인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의 삶을 다룬 전기집.플로베르의 연인 루이즈 콜레,그의 ‘제2의 자아’와도 같은 친구 루이 부이에,플로베르가 말년에 후임자로 생각하며 아들처럼 아꼈던 기 드 모파상,사회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임을 자처했던 조르주 상드와의 관계 등이 가감없이 소개된다. 이 책은 플로베르의 대표작인 ‘보바리 부인’을 비롯 ‘감정교육’‘단순한 마음’ 등의 작품이 쓰여진 과정과 함께 당시 부르주아계급의 삶을 상세히 다룬다.플로베르의 작품생성 배경이나 소재선택이 단순히 그의 소견이나 좁은 생활공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냉소주의와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배려에서다.플로베르가 살았던 시대는 혁명의 세기였다.그런 역사적 격변의 공간 속에서 플로베르는 어떠한 주의주장을 지켰을까.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정부로 평가되는 파리코뮌이 ‘피의 주일’로 기록될 만큼 무자비하게 진행되는 동안에도 플로베르 자신은 그것을 옹호하지 않았다.그의 정치사상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진인혜 옮김,책세상,2만2천원.
  • 변증법적 문예학/플로리안 파센 지음(화제의 책)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 쉽게 소개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과 문학사회학을 알기 쉽게 소개.이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루카치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브레히트,마르크스주의의 이교도인 벤야민,그리고 철저하게 후기 부르주아적이며 역사적 유물론을 은유적으로 환원시키는 아도르노의 문학사상을 다룬다.마르크스주의 문예학의 특징은 심미학적인 추체험(작품미학)이나 현실적 해석(수용미학)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리얼리즘 문학의 주창자들은 문학을 사회의 반영으로 이해한다.나아가 이들은 아도르노를 제외하고 문학을 사회와 연계된 학문,즉 사회적 실천을 전제로 한 학문으로 간주한다. 벤야민도 지적했듯이 학문이 유행을 따르면 진지성을 잃기 쉽다.우리에게는 언젠가부터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시대를 오로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려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그러나 이 책은 테리 이글튼처럼 포스트모더니즘 내지 포스트모더니즘문학을 ‘물화현상’ 혹은 ‘긍정이데올로기’라고 매도하기 위해 씌여진 것은 아니다.다만 현실을 한걸음 물러서서 ‘낯선’ 눈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임호일 옮김,지성의 샘,9천원.
  • 러 공당 강경·온건 두토끼 쫓기/새 강령 채택 안팎

    ◎유럽식 사회주의 지향… “자본주의 타도” 불변 러시아공산당이 사상처음으로 강경·온건 두 정책노선을 모두 따르기로 한 수정강령을 채택,관심을 모으고 있다.러시아 공산당은 7일 간부급 중앙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당 진로를 담은 「나라를 구하는 길」이란 수정강령을 채택했다.이 강령은 『의회와 다른 정부조직 안에서의 정치투쟁은 강경노선과 함께 온건한 정책결정에도 관심을 기울이자』고 촉구하고 있다. 러시아공산당이 강·온 두 노선을 동시에 채택한 것은 옐친 대통령의 2기임기 기반이 공고화되고 당에서는 온건파의 목소리가 강화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이번 강령이 당을 깨고 나가려는 온건파에 대해 강경파가 내놓은 양보안으로 분석하기도 한다.당내 온건세력들은 현재의 당이 소비에트시대의 한부분일 뿐이라며 지난해 대선 이후 옛소련과의 고리를 끊고 유럽사회주의를 목표로 당의 체질개선을 요구해왔다. 수정강령은 당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당지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레닌의 「민주적 권력집중원칙」을 함께 채택했다.「당의 존립기반은 두 세력간 타협에 있다」며 타협의 원칙도 선언했다.또 정부에 대한 대응은 보다 엄하게 하되 당의 지도자들은 온건성과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해석을 남겼다. 하지만 새 강령은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만은 바꾸지 않았다.자본주의는 국가를 파멸시키는 역사적인 오류이므로 모든 애국세력이 단결해 저항하자는 것이다.새 강령은 이와 함께 사회주의만이 환경과 인구문제 등 현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공산주의의 실현에 대한 기반을 가져다줄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강령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위의 적대적 환경과 공산당지도자들의 잘못 때문이라면서 러시아에는 사회적 불평등이 극에 달해 있어 자본주의,마피아,신흥 부르주아세력을 제거하는데 공산당이 앞장서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새 수정강령은 국가의 재탄생을 위한 3단계 방안을 설정하고 있다.첫단계는 노동자의 권익을 되찾아 국부를 쌓는 일이다.이 단계에서 정부는 국가통제를 강화한다.두번째 단계는 사회주의의 사회·경제적 이점이 증명되는 단계이며 마지막으로는 이같은 단계들이 통합,지배적인 위치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현재의 공산당과 소련시대 공산당을 분리하자」는 주가노프 당수의 제안을 부결시키는 등 당지도부가 상당한 이념적 혼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나 공산당의 앞길은 험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부르주아 사상이 인민을 병들케 한다(북의 말말말)

    미국이 조선반도의 불안정을 구실로 미군의 영구주둔을 꾀하고 반공화국 전쟁연습을 계속 벌인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15일 노동신문,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추진을 비난하며〉 제국주의자들이 반동적인 부르주아 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을 침투 유포시켜 인민들을 사상적으로 병들게 하고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천리마지,부르주아 생활양식 침투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며〉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김한수·박청호씨 신작장편 동시 출간

    ◎「소외」의 공간서 만난 사실주의·실험정신 두작가/하늘에 뜬 집­노동자 청년이 방황끝에 깨닫는 삶의 의미/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정신적 떠돌이 「나」를 통해 본 꿈과 현실사이 젊은 작가 김한수씨(33)와 박청호씨(31)가 「하늘에 뜬 집」(실천문학사)과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한뜻)이라는 신작 장편을 나란히 펴냈다. 삼십대 초입이라는 연배를 빼면 둘 사이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뵌다.노동자였다가 작가로 나선 김씨가 80년대 민중문학의 아들이라면,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희곡과 시 등단경력도 있는 박씨는 「전통파괴」를 마다않는 문화주의자에 가깝다. 사실주의를 고집하는 한사람과 실험적 첨단을 지향하는 듯한 또 한사람이 다른 방향에서 파고든 소설공간은 소외의 문제에서 만난다.나란히 놓인 두권은 젊은 남성작가들의 작품세계가 뜻밖에 다채롭다는 점,문제의식도 꽤 진지하다는 점 등 흘려버리기 쉬운 적잖은 덕목들을 붙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한수씨의 「하늘에 뜬 집」은 가난속에 자라 노동자가 된 현민이라는 청년이 위악에 가까운 방황을 거쳐 삶의 긍정적 의미를 깨우치기까지를 담고 있다.방에 쥐똥이 수북이 쌓이고 빈대 물어뜯는 기세에 잠을 이룰수 없는 가난도 가난이지만 현민이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자고새면 어머니를 두들겨 패는 폭력아버지와 죽도록 맞으면서도 흐느낌을 악물고 사는 어머니의 무기력이다.물론 여기엔 가족사의 비극이자 현민의 출생비밀이 깔려있다.어린 시절 옆집아저씨에게 강간당한 충격에 가출,건달아버지와 될대로 결혼해버린 엄마가 아이를 바라는 시댁 독촉에 미혼모한테 얻은 아기를 자기가 해산한양 속여 들여온 것이 바로 현민이었던 것이다. 현민 가족외에도 소설은 궁핍과 소외가 낳은 인간살이의 여러 참상들을 조명한다.휠체어에 앉아서도 착하기만 한 장애인 곽씨는 툭하면 집나가는 사나운 아내때문에 괴롭고 공장친구 성수는 핏덩이인 자기를 고아원에 버리고 달아난 생모를 폭행한다.현민은 강간범으로 감옥행까지 이른 태호에게서 가난이 망쳐버린 여린 심성을 엿보고 그토록 존경스럽던 공장장님마저 공돌이로 돌변시키는 사회에 좌절한다. 박청호씨의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은 제목만큼 구조도 다층적인 작품.「나 혹은 그」라는 핵심화자 외에도 그의 연인인 24세의 여자대학원생,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된 그의 동창인 「그녀」 등이 화자로 등장해 다각도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희곡작가겸 문필가이자 청소년문화센터 직원이기도 하지만 실은 어디에도 소속이 없는 정신적 떠돌이에 가깝다.운동권 학생들사이에서 고민만 많은 소부르주아로 배척당한 그는 어느날 풀려난 「그녀」를 감시하는 국가정보요원을 충동적으로 살해하지만 감시체계와 사법권을 쥔 국가기관에서도 그를 어떻게 분류해 처리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는다. 살인,갑작스런 교도소 탈출,17세 소녀와의 성교따위 이야기들을 실어나르는 감각적 단문과 변화무쌍한 의식의 전개는 소설에서 자주 현실과 허구사이의 경계를 허문다.현실세계인지 주인공의 꿈인지를 끝까지 회의하며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인간의식의 밑바닥까지 쫓아들어가 은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현대적 권력의 보이지 않는 위력을 돌아보게된다.
  • 「공산주의 연합」 7명 구속

    경찰청은 7일 김선태씨(31·연세대 건축과 졸업) 등 「공산주의자 연합」 조직원 7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이적표현물인 「공산주의자 연합 강령」 등 453점을 압수했다. 김씨 등은 지난 3월초 전북대 강의실에서 운동권 출신 42명과 함께 「공산주의자 연합」을 결성,「노동자와 농민 등 동맹세력과 연대해 공산주의 전략촌을 구축한 뒤 이를 거점으로 도시 게릴라전을 전개,부르주아 정권을 타도하고 공산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10여차례에 걸쳐 사상학습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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