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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프랑스 요리/함혜리 논설위원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영양섭취를 식사의 주목적으로 삼는 반면, 후자는 식탁에서 특별한 즐거움을 찾고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후자를 대표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기름지고 넓은 평야와 높은 산을 갖고 있으며 지중해와 대서양에 면하고 있어 질 좋은 농·축·수산물이 풍부하다. 지역별로 각기 다른 재료를 사용한 특유의 음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 요리라 일컫는 것은 귀족들의 식사에서 발달한 요리를 가리킨다. 프랑스 요리는 숙련된 요리사가 고도의 기술로 다양한 식재료를 충분히 살리고 향신료와 소스로 섬세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포만감이 적으면서 미각을 즐겁게 하는 요리를 최고로 치는데 달팽이 요리, 거위간으로 만든 푸아그라, 송로버섯으로 만든 트뤼프 요리 등이 유명하다. 정찬의 경우 6~7코스는 기본. 아페리티프(식전주)에서 시작해 입맛을 돋우는 오르되브르-수프-생선요리-육류요리-샐러드-치즈와 디저트- 설탕조림과일-커피로 이어진다. 요리 종류에 맞는 포도주가 곁들여진다. 프랑스의 식문화는 요리만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세팅, 테이블 매너, 대화법 등을 포함한다. 요리와 문화가 어우러진 프랑스식 미식은 17세기 루이14세의 궁중에서 시작됐다. 스스로를 ‘태양왕’이라고 불렀던 이 강력한 군주의 식탁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올랐으며, 식기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는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호화로운 식탁을 권력 과시의 수단으로 삼았다. 식탁은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결속을 다지는 특권적인 장소였다. 식탁에서의 대화술이 중시된 것도 이때부터다. 18세기 말 대혁명으로 귀족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식탁문화를 신흥 부르주아들이 세습한다. 귀족들을 위해 요리하던 요리사들이 일자리를 잃자 레스토랑을 열기 시작했고, 신흥 부르주아들이 레스토랑에 드나들면서 현란한 식도락 문화를 선도했다. 본격적인 미식 문학이 등장하고 최초의 음식비평가도 출현했으며, 프랑스한림원(아카데미프랑세즈)은 1835년 미식(gastronomie) 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인정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후보에 등재됐다고 한다.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지고 식재료의 궁합까지 살린 우리 궁중요리의 문화유산 등재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 G20회의-문화외교] ‘리움’ 소장품 1만5000여점… 전통·모던 ‘공존’

    [서울 G20회의-문화외교] ‘리움’ 소장품 1만5000여점… 전통·모던 ‘공존’

    11일 저녁 G20 정상회의의 정상 부인 공식행사가 열린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은 삼성문화재단이 2004년 10월 설립한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이다. ●세계적 건축가 3명이 설계 삼성그룹 창립자 호암 이병철의 성(姓)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영어 ‘museum’을 합성해 이름을 지었다. 소장품 규모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통틀어 1만 5000여점에 이른다. G20 준비위가 장소 선정 이유로 “한국적 특색과 모던한 이미지를 동시에 갖췄다.”고 평가한 대로 리움미술관은 외관부터 외국 정상 부인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예술적 가치를 자랑한다. 3개의 건물로 구성된 미술관은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프랑스의 장 누벨,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 등 세계적 건축가 3명이 한국적 미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 가야금관(국보 제138호), 태환이식(보물 제557호), 금제환두태도(보물 제776호) 등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비롯해 이우환, 박서보, 이중섭 등 국내 대가들과 아니시 카푸어, 루이스 부르주아, 제프 쿤스 등 외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 등 소장품도 화려하다. 호암이 수집한 고미술과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방대한 컬렉션 위에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라희 전 관장이 수준 높은 안목으로 고른 해외 현대미술품까지 더해져 국내 최고 수준의 컬렉션으로 이름높다. 외국 정·재계 인사들이 개인적인 관심으로 미술관을 방문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다수의 해외 정상들이 참여하는 정부 공식행사 장소로 활용된 것은 처음이다. ●가구박물관엔 2000여점 빼곡 12일 정상 부인들이 오찬 행사를 갖는 한국가구박물관은 성북동의 전통 한옥 10여채에 목가구를 중심으로 옹기·유기 등 전통 살림살이 2000여점을 선보이는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이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아 정식 개관은 하지 않은 상태다. 구겐하임미술관장 등 외국 귀빈들이 비공개로 관람한 뒤 호평한 것으로 알려져 정상 부인들에게 한국의 주거문화와 전통 가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심속 최적의 공간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40)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고전 톡톡 다시 읽기](40)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1913년 말의 파리. 프랑스 문학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화자가 불분명하고, 중심 사건이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소설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어린 마마보이 마르셀이 겪는, 인과가 불분명한 사건들의 연속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 문단의 신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 작품 ‘스완네 집 쪽으로’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연작의 첫 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프루스트는 어떤 혹평과 칭찬에도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작품을 발표해 나갔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1919), ‘게르망트 쪽’(1920~1921), ‘소돔과 고모라’(1921~1922), ‘갇힌 여인’(1922), ‘사라진 알베르틴’(1925), ‘되찾은 시간’(1927) 이렇게 7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대작이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연작 첫 부분 프루스트가 작품을 처음으로 구상하게 된 것이 1909년 무렵부터라고 하니 구상에서 완성까지 무려 19년이나 걸린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 작품의 완간을 보지 못한 채 1922년 11월 18일 파리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봄에 밭을 바라보는 사람은 농부가 어떤 씨앗을 뿌려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을이 되고 열매를 맺고 나서야 ‘아 지난봄에 바로 이것이 싹트고 있었구나.’ 알게 된다. 프루스트는 ‘스완네 집 쪽으로’ 안에 농부가 씨를 뿌리듯 이야기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그래서 ‘스완네 집 쪽으로’의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독자는 제7권 ‘되찾은 시간’을 읽고 나서 돌아와 다시 읽어야 한다. 이렇게 두 번 읽어야 하는 책. ‘스완네 집 쪽으로’는 프루스트가 숨겨놓은 8번째 책이 된다. ●콩브레-시간 여행의 출발지 ‘스완네 집 쪽으로’는 다시 제1부 ‘콩브레’, 제2부 ‘스완의 사랑’, 제3부 ‘고장의 이름’으로 나뉜다. 사실 제1권의 배경은 스완네 집만이 아니라 마르셀네 집 안, 마을의 시냇가, 들판, 성당 등이다. 게다가 스완네 집이 있는 콩브레에는 대부르주아인 스완네 집보다 훨씬 더 멋지고 화려한 대귀족 게르망트네의 영지가 있다. 프루스트가 ‘스완네 집 쪽으로’를 강조한 것은 스완이라는 인물의 사랑과 예술적 취향이 어린 마르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체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르셀의 가족은 지방 부르주아에 불과하다. 마르셀 식구들은 언제나 스완네 집 쪽과 게르망트 쪽 중 어느 쪽으로 산책할 것이 좋은지 고민한다. 한쪽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평야”가, 다른 쪽에는 “전형적인 강가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제1권에서 스완과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이렇게 뒤섞일 수 없는 사회의 두 계급을 상징한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전혀 다른 이 두 세계가 만나서 섞이고 뒤바뀌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마르셀은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스완의 딸 질베르트를 만나면서 부르주아 세계로 곧장 진입하게 되며, 게르망트 대공 부인을 쫓아다니면서 귀족 사회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문의 문지방을 넘나들면서 평범한 시골 소년에서 파리의 모던 보이로 성장한다. 마르셀은 두 가문 사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그들의 배신과 죽음을 겪은 후 고향에 돌아와 안착한다. 그리고 우연히 산책하다가 스완네 집 쪽으로 난 길이 결국 게르망트네 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혀 달라 보이던 두 풍경이 실은 맞닿아 있었으며, 함께 콩브레의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겉으로 달라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또 다른 길들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결국 ‘스완네 집 쪽으로’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 모든 장소는 낯선 인생의 진리를 보여주게 될 길의 입구가 된다. ●시간 여행자여, 마들렌 과자 타임머신을 타라 어떻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우리는 프루스트가 설명해주는 시간 여행 방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마들렌 과자 먹기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신비롭다. 추운 날 밖에서 귀가한 마르셀에게 어머니가 몸을 녹이라며 홍차와 마들렌 과자를 준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입 맛보았을 뿐인데 감미로운 행복감이 엄습한다. ‘이건 무슨 느낌일까? 과자 안에 어떤 비밀이 있는 거지?’ 그러다 마르셀은 자신이 느낀 만족감이 과자 때문이 아니라 유년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콩브레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침상에 누워만 계시던 레오니 고모가 늘 홍차와 함께 마들렌 과자를 주던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다. 마르셀의 머릿속으로 유년의 고향 콩브레 마을 전체가 서서히 펼쳐졌다. 레오니 고모네 정원에 핀 꽃, 스완 아저씨네 넓은 뜰의 온갖 꽃들, 대귀족 게르망트네 영지 옆을 흐르던 비본느 강의 연꽃…. 놀랍게도 마들렌 과자 한 모금의 맛이 이 모든 추억을 되살려낸 것이다. 타임머신 마들렌! 마르셀은 과자 맛을 음미하며 자신의 유년과 청년 시절을 왕복하고, 갖가지 사건 사고들을 생생하게 다시 체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프루스트는 왜 이런 시간 체험에,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불러내어 미지 세계의 진리를 찾아가는 것에 매달렸던가. 프루스트는 우리가 현재 놓치고 있는 세계에 관심이 있었다. 스완의 사랑을 간직한 콩브레의 들판, 마들렌 과자를 좋아했던 고모의 개성, 해질녘 콩브레 성당이 보여주는 멋진 뒤태! 그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이런 것들을 생생한 현재로 떠올릴 수 있다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루스트는 마들렌 과자가 촉발한 상상 작용을 일본 종이꽃 놀이에 비유한다. 물이 담긴 사기 그릇에 형체 없는 종이꽃을 넣으면, 윤곽이 생기고 색깔이 선명해지면서 집이며 물건이며 감춰진 부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종이꽃 놀이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들의 다양한 측면들이 드러나고 의미가 분기한다. 그러나 프루스트가 집중하는 것은 종이꽃이 다 펼쳐진 상태가 아니다. 종이꽃 놀이를 진정 즐기려면 종이가 퍼지면서 형체를 갖추는 ‘순간’에 집중해야 하듯이, 프루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사건의 ‘중간’이었다.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그 순간에 무엇을 보고 겪게 되는지를 쓰려고 했다. ‘스완네 집 쪽으로’ 이후 사건은 더욱 일관성 없이 확장되고,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두서없이 공존하는 중층적 구조로 전개된다. 하지만 독자들이여, 당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 법. 그저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아내듯이, 종이꽃 놀이를 즐기듯이, 천천히 한 장면 한장면을 음미하며 풍요롭게 증식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된다. 오선민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서울신문 · 수유너머 공동기획
  • “헌법 119조 경제 조항 없애도 국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다”

    “헌법 119조 경제 조항 없애도 국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 개헌 얘기가 솔솔 나온다. 권력구조가 가장 큰 관심거리지만, 한동안 뜨거웠던 경제조항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헌법 제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근거를 마련한 조항으로, 법률가 출신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우리 헌법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이유다. 때문에 이 조항은 한때 국내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겐 약점이 하나 있다. 이 조항이 사회주의라 불리는 이유는 자유방임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어서다. 자유방임주의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각국 정부가 쓴 재정적자정책은 반칙이다. 시스템 위기를 막는답시고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것 역시 반칙이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쫄딱 망해버리자, 그게 자유방임이다.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전임자로 대공황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는 자유시장주의자이자 토목기업가 출신인 후버 대통령은 대공황을 일러 ‘신의 섭리’라 했다. 이렇게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위기 대응책을 보고 미국 우파들이 사회주의라 비난하는 것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논리적 일관성만큼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반면, 공격적 재정확대 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권에 대해 ‘시장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체제 정권’이라고 비판하는 일관성 있는 한국 우파를 찾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이렇게 타깃이 된 경제조항이건만, 이를 없앤다 해도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법학평론’(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펴냄) 창간호에 실린 이황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의 논문 ‘재산권, 독특한 기본권-헌법상 재산권 규정의 이해’가 담고 있는 주장이다. 법학평론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편집위원회를 구성, 발행하는 반년간지다. 창간호에는 모두 9편의 논문이 실렸는데, 이 연구관은 이 논문에서 헌법 23조의 재산권 조항을 분석했다. 재산권은 흔히 부르주아 헌법의 기본으로 꼽힌다. 불온한 혁명의 기운에서 내 재산을 지키는 것이 부르주아 헌정질서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구관이 보기에 우리 헌법상 재산권 조항은 특이하다. “기본권 행사가 공공복리에 적합”(23조 2항)해야 하고, “보상을 통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23조 3항)고 하기 때문이다.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등 10조부터 22조까지 나열된 기본권은 헌법 자체로 선포되는 기본권이고, 공무담임권과 재판 받을 권리 등 24조부터 39조까지 나열된 기본권은 하위 법률 규정의 도움을 받는 기본권들이다. 이들 조항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항상 따라다닌다. 이에 반해 재산권은 법률로서 ‘제한’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기본권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23조 재산권 조항은 제헌헌법 15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제헌헌법을 만들었던 유진오 박사는 1919년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 헌법 153조에서 끌어와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유 박사 스스로 ‘헌법해의’라는 책에서 “소유권은 절대불가침한 것이 아니고 그 이용할 의무가 있는 것을 선명히 한 것”으로 “19세기의 소유권 신성불가침의 사상으로 볼 때 획기적 변천”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잇따른 경제공황에 따라 자유방임주의를 폐기하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연구관은 “다른 기본권들은 주체의 행위나 상태에 대한 것인데, 재산권은 외부 대상물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이는 재산권이 다른 기본권처럼 자연권적 기반 위에 있다기보다 사회의 합의, 도덕적 가치평가, 세계관의 대립수준 등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헌법 23조가 유지된다면, 헌법 119조가 차후 헌법개정에서 삭제된다 하더라도 119조의 취지는 여전히 헌법 속에서 규범적인 힘을 잃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연구관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부연설명도 달아뒀다. 그는 “이런 관점이 경제조항은 불필요하다는 취지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 연구관은 “국가의 시장 개입 문제는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헌법의 119조만 없애면 국가의 경제 개입이 불가능해진다는 주장은 틀렸고, 또 23조와 119조가 겹치니까 하나를 없애도 된다는 주장 역시 두 조항을 둘 만큼 헌법제정권자의 강력했던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어서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장편 ‘새엄마 찬양’ 등 6권 국내 소개

    장편 ‘새엄마 찬양’ 등 6권 국내 소개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중 국내에 소개된 책은 장편소설 ‘새엄마 찬양’(문학동네 펴냄)을 비롯해 총 6권이다. 페루 리마의 한 부르주아 가정을 배경으로 한 ‘새엄마 찬양’은 도덕적 규범과 갈등하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새엄마와 의붓아들의 아슬아슬한 에로티시즘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이야기와 연관된 여러 명화에 얽힌 일화를 끼워 넣어 상승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페루 국경 아마존 지역에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창설한 ‘특별봉사대’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냈다. 작가는 속으로는 부패했으나 겉으로는 청교도 같은 행동을 보이는 페루 군부를 조롱하면서 유머 속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은연 중에 드러낸다. 소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녹색의 집’,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에세이집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등도 번역돼 나와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의 암살과 그 후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염소의 축제’와 파리에 정착해 작가이자 번역가로 살아가는 리카르도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화려한 삶을 꿈꾸는 가난한 리마 여인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최신작 ‘나쁜 소녀의 짓궂음’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사람들이 ‘강남적인 무엇’ 내세우는 까닭은?

    사람들이 ‘강남적인 무엇’ 내세우는 까닭은?

    부러움이건 질시건 농담이건 간에 ‘강남’에 대한 얘기들은 많다. 그러나 서울 지역에서 거주 목적의 비닐하우스 90%가 몰려 있는 곳이 또 강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왜 ‘강남적인 것’을 구분하는가. 도대체 ‘강남적인 것’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가. ●이동헌·이향아씨 공동 발표 7일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에서 열리는 ‘2010 서울학 정례발표회’에서 이동헌(영국 런던대 도시계획학 박사과정)·이향아(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학 박사과정)씨가 공동 발표하는 연구논문 주제다. 두 연구자는 ‘경계 짓기’(Making Boundaries) 논리에 따른 ‘심상 규모’(Cognitive Scale)에 초점을 뒀다. 즉 ‘강남적인 것’을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강남의 영역이 바뀐다는 주장이다. 경계 짓기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distinction) 전략을 떠올리면 이해가 좀 더 쉽다. 예컨대 묶인 밧줄이 찍힌 사진을 그냥 제시했을 경우 노동자 계급은 이게 뭐냐고 밀쳐버리고 만다. 반면 부르주아 계급은 어떻게든 뭔가 거창한 설명을 달아 두려 한다. 이것이 부르디외가 말하는 구별 짓기다. 계층 간 차별화 전략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쉽게 말해 ‘좀 더 있어 보이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계 짓기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강남 거주자는 강남지역을 좁게 한정 두 젊은 연구자들은 ‘강남적인 것’의 실체를 찾기 위해 183명을 설문조사했다. 우선 서울 지도를 펼쳐 놓은 상태에서 각자 생각하는 강남 지역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강남 거주자는 좁게, 강남 비거주자는 넓게 그리는 경향이 확인됐다. 언론 등에서 흔히 ‘강남 3구’라 일컫는 강남·서초·송파 3구 전체를 표시한 사람은 불과 4%였다. 그나마 강남 비거주자는 3구를 대략 포괄하도록 그린 데 반해, 강남구 거주자는 강남구만을 강남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상대적으로 서초구 거주자는 서초구 일부도 포함시켰고, 송파구 거주자 역시 잠실 일부 지역을 강남에 포함시켰다. 이는 강남 지역 안에서도 강남에 대한 ‘지리적 인식’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강남 이미지’ 차이와 연결된다. 강남 비거주자는 ‘강남=비싼 땅값, 땅투기, 졸부, 외제차’를 떠올렸다. 반면 강남 거주자는 ‘강남=학력, 직업, 직위’라고 답했다. 강남 거주자들은 단순히 부(富)뿐 아니라 일정 정도 학벌에 사회적 지위까지 갖춰야 강남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의미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강남 비거주자는 강남에 대해 ‘탈세, 사교육 과열, 오만, 성형미인’을 많이 꼽았다. 똑같은 질문에 대해 강남 거주자는 ‘효율, 자녀에 대한 헌신, 진취, 세련’이라고 답했다. ●강남 안에서도 경계짓기 좀 더 흥미로운 사실은 강남 거주자 8명을 상대로 한 심층 인터뷰 결과다. 이들은 “대치(동)나 은마(아파트)는 강남이 워낙 비싸서 젊은 사람들이 몰려간 곳” 정도로 치부했다. 강남 안에서도 구분 혹은 경계 짓기, 즉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강남적인 무엇’을 내세우는 것은 욕망의 사다리에서 좀 더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경계 짓기 전략과 다름없다는 게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동의 여부를 떠나 지정학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한국 사회의 ‘뜨거운 영역’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시선을 끄는 연구결과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國 ‘반동분자’ 공자를 껴안은 이유는

    中國 ‘반동분자’ 공자를 껴안은 이유는

    문화혁명기 중국의 ‘하방(下放) 운동’ 하면 북한의 아오지 탄광 얘기와 맞물려 부르주아 물이 든 먹물들을 농촌에 보내 시쳇말로 ‘개고생’시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다른 해석이 나온다. 초기 산업화로 인한 경제적 압력을 농촌사회를 통해 해소한 것으로 보는 긍정적인 평가가 그것이다. 서구 선진국은 경제성장 초기에 발생하는 사회적 압력을 식민지에 전가해 풀었지만, 약 10억명의 인구를 갖춘 농업국가인 데다 외부와의 교역이 원활치 못한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했던 중국으로서는 내부시장, 즉 농촌사회를 통해 해소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성장 따른 불가피한 현상” 최근 나온 반년간지 ‘오늘의 동양사상’ 상반기호는 특집 ‘중국의 사상,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통해 자본주의적 성장을 진행하고 있는 사회주의 중국의 복잡한 내면풍경을 들여다 본다. 키워드는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다. 사회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교란 뿌리를 뽑아야 할 낡은 봉건적 폐습이다. 1949년 중국은 이미 공자를 ‘귀족정치를 옹호한 반동분자’로 규정지었다. 잡지에서 박승현 중앙대 교수, 박영미 한양대 강사, 김태용 한양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이어진 중국 내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간의 논쟁을 통해 이 문제를 되돌아 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민주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시장자유의 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반면, 신좌파 이론가들은 이런 신자유주의를 무분별한 서구 추종주의로 보고 거세게 비판한다. ●유교의 현대화 필요성 주장 얼핏 보면 양극단의 주장 같지만 결국 중국 전통, 유교의 현대화를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톈안먼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은 조금 더 중국적인 자유주의를, 신좌파들은 조금 더 중국적인 좌파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유교자본주의와 마오쩌둥의 복권을 얘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라고 잡지는 해석한다. 이는 그만큼 성장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강력한 국가 주도 성장과정에서 지식인들이 국가를 직접 비판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는 범위내에서…이런 딜레마가 드러난 곳이 바로 영화‘공자’다. 주광호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영화 속에서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가 말했던 대동(大同)은 인격적 완성을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필요로 하는 유가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유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자’의 사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중국이 공자의 부활을 얘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범위 안일뿐. 문화대혁명 때 하방 운동이 불가피했다면 조금 더 성장한 중국에서 공자의 부활도 불가피한 현상이란 해석이다. 결국 성장이 답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발자크 ‘고리오 영감’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발자크 ‘고리오 영감’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는 성공을 꿈꾸며 프랑스 최고의 도시 파리에 상경한다. 늙으신 어머니의 걱정으로 팬 이마 주름을 등지고, 누이들의 저금통을 털어 멋진 양복과 젊음으로 자신을 무장하고서 파리 시민 귀족들 흉내를 냈다. 하지만 라스티냐크는 파리의 실체를 몰랐다. 도시를 관통하는 것은 애욕과 배신. 라스티냐크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누이를 배신하고, 사랑을 불신하고, 늙은 동료의 죽음을 지키는 관조자로 타락하고 만다. 그렇게 파리의 삶을 배우고, 파리 시민이 되어 간다. 발자크(1799~1850)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사실 라스티냐크의 상경과 성숙을 다룬 입신출세의 드라마다. 그러나 작가는 라스티냐크와 정반대의 운명을 갖고 있는 ‘불쌍한 영감탱이’ 고리오를 작품의 얼굴로 내세웠다. 라스티냐크가 속악한 사교계의 게임 법칙에 서서히 길들어갈 동안, 같은 하숙집 사람 고리오의 운명은 점점 하강 곡선을 긋는다. 라스티냐크가 부유하고 멋진 사교계의 여성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갈 동안, 고리오는 점점 더 궁핍한 처소로 자신의 짐을 옮긴다. ●누가 고리오 영감에게 돌을 던지는가? 왜 라스티냐크가 아니라 고리오가 소설의 제목으로 선택되었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파티 장면, 부정한 방법으로 동시에 한 자매를 사랑하는 청년, 남편 몰래 정부를 두는 여인들, 최하층의 사람부터 최상층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지각색의 사건사고, 무엇보다 근대화되고 있는 파리의 세밀한 풍경들. 하지만 발자크에게는 작품을 생기롭게 만드는 이 모든 요소들보다 고리오의 운명이 중요했다.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이 늙은 남자. 발자크는 바로 이 고리오 영감과 함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어째서 이런 일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가족 드라마 ‘고리오 영감’은 고리오 영감의 3층 하숙집 생활로부터 시작해서 1821년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출세를 뒤따르려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고리오도 혁명의 수혜를 받았다. 1789년 대혁명 때 희생된 주인의 사업체를 우연찮게 인수하면서 국수공장 노동자에서 신흥 부르주아로 변신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첫 패배를 한 1813년에 파리의 허름한 하숙집으로 들어와서, 나폴레옹이 결정적으로 몰락한 해인 1815년에 그 하숙집의 가장 남루한 3층으로 이사를 하며, 나폴레옹이 죽는 1821년에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난다. 발자크는 나폴레옹식 벼락 출세의 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나폴레옹 세대의 몰락을 이야기의 기본 축으로 설정했다. 고리오와 그의 두 딸은 나폴레옹 실각 후 왕정복고 시대 프랑스 사회의 세 계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고리오의 막강한 금력은 두 딸의 신분을 바꿔 놓았다. 무척 아름다웠던 큰딸 아나스타지는 대귀족과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둘째 델핀은 언니보다 예쁘지 못해서 많은 지참금을 갖고 자본 부르주아인 은행가와 결혼한다. 고리오는 이 두 딸의 드레스와 값나가는 보석을 대주느라 장례 치를 돈조차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죽는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아버지의 돈을 갖고 경쟁하느라, 딸들은 한 응접실에서 차도 마시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딸들보다 신분이 낮았던 고리오는 더럽다는 이유로 낮에는 딸들을 방문할 수조차 없었다. 이들을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발자크는 딸들에게 동전 한 푼까지 털리고 마는 고리오의 몰락을 보여줌으로써 프랑스 사회의 부권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평등한 계층 간 연대의 꿈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 현장을 드러냈다. 이 가족 옆에 시골 청년 라스티냐크가 있다. 그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큰딸과 둘째딸 사이를 오가며 신분 상승의 기회를 엿본다. 청년은 이들 가족의 욕망을 지켜보고, 거기에 동참하고, 또 그들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간다. 그러다가 고리오의 진실된 부성애에 감동하여 자신의 허영을 깨닫게 된다. 라스티냐크는 끝까지 고리오 영감의 죽음을 지키고, 그의 장례를 치른다. 그렇다면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죽음을 계승하고 그 노인의 운명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 라스티냐크는 고리오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자본 부르주아지에게 시집간 둘째딸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는 앞으로는 귀족이 몰락하고 자본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가 될 것을 예감할 수 있다. 하지만 발자크는 라스티냐크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남겨두었다. 델핀을 찾아가기 전에 청년은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 꾸불꾸불 펼쳐진,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본다. 거기에 그가 들어가고 싶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있었다. 그는 벌집에서 꿀을 미리 빨아먹은 것 같은 시선을 던지며 말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라스티냐크 “나폴레옹 같은 우상에 기대지 말자” 그렇다.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보답 받지 못한 부성애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홀로 설 것을 다짐한다. 나폴레옹과 같은 우상에 기대지 말자! 역사적 소명과 싸우지도 않겠다! 아무리 누추하고 잔인하더라도 오직 내가 원하는 것에 매달리자! 청년이란 자기 자신밖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자, 누군가의 죽음을 딛고 서면서도 더욱 의연한 자, 무엇보다도 뒤돌아보지 않는 자다. 타락해도 좋다! 라스티냐크의 패기 덕분에 발자크의 독자들은 고리오의 죽음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젊은이의 모습에서 자기 운명의 불안정함을 있는 그대로 떠안은 자의 당당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선민 수유+너머 구로 연구원
  • [주말 데이트] 한국인 첫 시카고예술대 名博 이성순 소마미술관 명예관장

    [주말 데이트] 한국인 첫 시카고예술대 名博 이성순 소마미술관 명예관장

    이성순(67) 소마미술관 명예관장은 지난달 22일 건축가 프랭크 게리,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 작가 고(故) 루이스 부르주아·에드워드 호퍼 등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로 모교인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세계적인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였다. 244년 역사의 시카고예술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대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남편과 어린 남매를 두고서 1976년 미국으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한 세대가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결혼한 여성이 홀로 외국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학생 때부터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이 강했고 책으로만 보던 현대미술을 현장에 가서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동생이 먼저 유학을 떠난 데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주셔서 조금은 마음 편하게 유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이 관장은 회고했다. 당시 시카고 예술대에는 한국인이 달랑 3명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한국인 담당 학생처장을 따로 둘 정도로 유학생 숫자만 350여명으로 늘었다. 한국인 졸업생으로는 이 관장 외에 홍상수 영화감독이 유명하다. 그는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2008년 정년퇴직을 한 뒤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의 명예관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이 관장은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이기 이전에 ‘몬드리안 추상화를 앞서는 아름다운 한국 보자기’의 매력을 세계에 알린 섬유예술가다. 조각보로 커튼을 만들어 꾸민 그의 집은 화보 촬영을 자주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흰 모시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커튼, 천장 장식, 캐노피 등 다양한 예술품을 선보였다. 17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00회 이상 초대전시회에 참여했다. 2000년 교환 교수로 다시 시카고예술대를 찾았을 때 이 관장은 “공예가가 화가와 똑같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염색으로도 그림과 같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발판으로 보자기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전통에 머무르면 전승공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카고예술대의 토니 존스 총장은 이 관장의 이러한 노력을 “한국 문화의 DNA였던 보자기로 새로운 언어와 톤을 창조했다.”고 평가했다. 소마 미술관장으로서 그의 꿈도 크다. 지난 4월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현대 미술상’의 첫 수상자로 태국의 미디어아트 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을 선정했다. 아피찻퐁은 연이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까지 챙겨 아시아 현대 미술상의 권위를 높였다. 오는 9월5일까지는 에이즈로 31살에 요절한 미국의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1958~1990)의 20주기 기념 전시가 열린다. 해링은 기어 다니는 아기, 눈 세 개짜리 인간, 양성인간, 가슴이 뻥 뚫린 사람 등 자신의 아이콘(icon)이 된 이미지를 단순명쾌한 검은 선으로 그려냈다. 10여년간 짧게 활동하며 탄생과 죽음, 사랑과 성, 전쟁 등의 보편적 주제를 애니메이션 같은 이미지로 표현한 해링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다. 이 관장은 “키스 해링은 상식적인 그림을 뛰어넘는 작가로 책받침, 티셔츠, 책갈피 등 각종 문화 상품으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소개했다. 그의 목표는 88서울올림픽 25주년과 30주년이 되는 2013년과 2018년에 세계인의 이목을 올림픽 조각공원과 소마미술관에 다시 집중시키는 것이다. 솔 르윗, 세자르 발다치니 등 21세기 스타 조각가들이 꾸민 조각공원의 대형 조각 작품을 재점검하는 심포지엄을 열고, 새로운 작품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작품 활동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모시로 작업하는 이 관장은 손으로 짠 국산 모시 대신 어쩔 수 없이 기계로 짠 중국 모시를 쓴다. 값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탓이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모시로 착각할 만한 신소재를 개발했다더라며 아쉬워했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보자기를 더욱 현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10월에는 프랑스 파리, 내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 관장은 “예술가는 정년퇴직이 없다.”며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글 사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단추·필름으로 녹여낸 삶의 고통

    단추·필름으로 녹여낸 삶의 고통

    단추와 엑스레이 필름을 재료로 아름답지만, 이면에 삶의 고통을 담는 작업을 하는 작가 두 명의 개인전이 다음 달 11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02-739-4937)에서 열린다. ●단추와 실로 표현한 ‘환상과 현실’ 1997년부터 뉴욕을 무대로 작업 중인 황란은 수천, 수만 개의 단추, 크리스털, 비즈 등으로 동양의 정신을 표현한다. 비즈로 만든 새와 부처, 달 항아리 등은 비어 있되 차 있는 공의 상태를 보여준다. 붉은 단추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는 한쪽 구석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매혹적인 설치작품 ‘라이트 오브 청계천’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화려하지만, 그 불빛 속을 타고 오르내리는 것은 독거미다. 뒤늦게 유학을 떠난 작가는 생계를 위해 자수업체의 문양을 그려주는 일을 했다. 주변에 무수히 쌓여 있던 단추를 망치로 박아 고정하는 작업은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시작했다. 살아남으려고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직접 본 작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태피스트리(직물) 가게 딸로 태어나 바느질로 여성성을 작품에 담아 페미니즘 작가로 불렸던 루이스 부르주아처럼 구슬과 단추 하나하나에서 보통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황란은 지난달 31일 부르주아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너무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가인데 작업실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다 보니 돌아가신 사실조차 몰랐다.”며 황망해했다. 뉴욕에서는 고(故) 백남준의 작업실이 있던 빌딩의 지하에서 한때 작업을 했던 것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엑스레이 필름으로 그리는 산수화 한국화를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한기창이 뼈가 찍힌 엑스레이 필름으로 꽃, 자연, 동물 등을 표현하게 된 것은 1993년 겪은 불의의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죽음 직전의 문턱에서 전신 깁스를 한 채 병원에만 갇혀 지내야 했던 작가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초기에는 서울 시내 정형외과를 돌아다니며 엑스레이 필름을 구해 손뼈로 꽃을 표현한 전시 ‘뢴트겐의 정원’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전시 ‘보나 피데 본딩(진실한 유대)’에서는 엑스레이 필름으로 싱싱한 생명력이 살아 넘치는 말을 표현했다. 필름에서 구체적인 뼈의 이미지는 많이 사라진 데다, 화려한 색으로 변하는 LED 조명을 배경으로 사용해서 표현한 말은 에르메스 패션광고처럼 아름답다. 엑스레이 필름을 이용한 작업으로 신체적 고통과 상처를 생명의 예술로 승화시켰던 작가는 아직 사고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한기창은 “이번 전시가 끝나면 무릎 수술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엑스레이 필름을 구하려고 병원을 전전하는 수고는 이제 덜었습니다.”라며 싱긋 웃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의사가 트럭째 필름을 가져다준단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려운 고전연극 톡톡튀는 재해석 눈길

    어려운 고전연극 톡톡튀는 재해석 눈길

    고전의 재해석은 무대의 영원한 화두. 숱한 해석은 결국 호소력에서 판가름 난다. 최근 공연되고 있는 볼 만한 재해석 작품 3편을 추렸다. 13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궁극의 절정, 그 전율 맥베스’(박정의 연출, 극단 초인 제작)는 형식적 변주라는 측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현대무용복 같은 의상을 똑같이 차려입은 배우들은 익숙한 해설적인 대사와 연기 대신 차갑고 건조한 독백과 무용을 택했다. 포인트는 배우들 동작과 호흡에서 풍겨져 오는 신체언어의 향연이다. 특히 전투 장면을 재연하거나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사를 드러낼 때 쓰이는 군무가 인상적이다. 배우들이 맨발로 무대를 뛰어다니다 보니 군무 때 발 구르는 소리가 극장에 울리는데, 때론 전쟁에서 승리한 맥베스의 당당함을, 때론 두려움에 내몰려 살인을 저지르는 맥베스의 광기를, 때론 핏빛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진격의 북소리 같은 느낌을 준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정적 속에 배우를 사물처럼 서 있도록 배치해 배우의 몸 자체를 무대장치이자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극 내내 배우들의 움직임과 호흡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적 리듬감이 가득하다 보니 별다른 장치도 없는 무대가 빈틈없이 꽉 차 보인다. 춤 동작은 탈춤이나 전통무예에서 빌려온 듯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한 품새가 동양적이다. (02)929-6417. 그루쉐는 브레히트 작품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백묵원 재판을 치르게 되는 하녀의 이름. 다음달 4일까지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 오르는 ‘달려라 그루쉐’(류태호 연출, 극단 봉 제작)는 경쾌하게 바뀐 제목처럼 백묵원 재판을 코미디로 채색했다. 어렵고 묵직하다는 고전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가령 그루쉐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에서는 반짝이 목도리를 두른 남자 배우가 느끼한 트로트 버전으로 사랑 노래를 불러주고, 그루쉐를 구박하는 올케는 오이팩에 선캡을 두른 대한민국 아줌마 패션으로 등장한다. 브레히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서사극적인 전통은 유지했다. 장면 전환 때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무대를 교체하면서 시점과 공간을 일러 주고, 그루쉐의 복잡한 심리도 남녀배우 1명씩 번갈아 나와 관객에게 설명한다. 특히 연극 초반에 300만원짜리 자전거를 낡았다면서 버린 아이와 이를 주워다 잘 고쳐 쓴 아이 간의 싸움이 나오는데, 이것 자체가 백묵원 얘기가 연극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주는 서사극적 전통을 상징하는 장치다. 가벼운 접근을 강조해선지 극 초반은 다소 수선스럽다. (02)3675-3677.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4관에 오르는 ‘비계덩어리’(김윤주 연출, 극단 수 제작)는 창녀의 큰 젖가슴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다. 정상적인 여성에게 젖가슴은 따듯한 모성의 상징이지만, 애를 낳지 않는 창녀에게 그것은 아무런 쓸모없이 달려 있는 살덩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런 비하의 태도 뒤에는 물론 그 가슴을 차지하고자 하는 사내들의 욕정이 숨겨져 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간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한 모파상의 원작 소설을 한국적으로 옮겼으나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젊은 창녀 수향을 중심으로 막걸리 장사꾼 이춘삼은 속물 부르주아를, 보수언론사 부장인 배 부장은 가식적 애국주의를, 열혈 민주투사 오병구는 위선적 도덕주의를, 하나님의 뜻을 여기저기 척척 잘도 갖다 붙이는 수녀는 종교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번안 작업이 꽤 수준 높지만 한국적으로 100% 깔끔하게 녹아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원작의 계급적 캐릭터나, 전시 상황에서 창녀 하나 덮치는 일에도 창녀의 허락을 구하는 프로이센 장교 행태 같은 것이 한국적으로 변용되기 쉽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럼에도 이질감이 그리 드러나지 않는 것은 속물적 부르주아 이춘삼 부부의 능청맞고도 코믹한 연기가 잘 배어 들었기 때문이다. (02) 889-3561~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마망’ 美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하늘로

    [부고] ‘마망’ 美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하늘로

    어미 거미를 형상화한 거대한 청동 조각상 ‘마망’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미국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31일 숨졌다. 98세. 루이스 부르주아 스튜디오 측은 부르주아가 지난 29일 밤 심장마비 증상으로 미국 뉴욕의 베스 이스라엘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고 1일 밝혔다. 부르주아는 한국에서도 2002년부터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대표작 ‘마망’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과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 조각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알을 업어 키우는 거미를 통해 모성을 형상화한 ‘마망’은 서울뿐 아니라 일본 도쿄, 스페인 빌바오, 덴마크 코펜하겐 등 전 세계 여러 대도시에 설치되어 있다. 부르주아는 태피스트리(직물) 갤러리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녀는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고 남자에 대한 분노는 부르주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지배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연민, 부도덕한 아버지를 향한 분노,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언니, 가학 취미의 남동생 등 가족은 부르주아에게 아픔이자 예술적 원동력이었다. 부르주아는 1938년 미국인 미술사학자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으나 60년 가까이 무명 시절을 보내다 1970년대 들어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2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1999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연극 리뷰] ‘타인의 고통’

    [연극 리뷰] ‘타인의 고통’

    연극이라기보다 대자보에 가깝다. 다음달 6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무대에 오르는 ‘타인의 고통’(김재엽 연출, 드림플레이 제작) 얘기다. 연극은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 참사’를 다룬다. ‘외부 극렬세력이 개입한 도시게릴라 난동사건’으로 보는 이나 ‘할 줄 아는 거라곤 주먹질밖에 없는 이명박 정권의 패악질’로 보는 이 모두에게 이 연극은 불편할 것 같다. 그냥 내달려서다. 용산 참사 20년 뒤인 2029년. 남북통일은 이뤄졌고 덕분에 부동산 투기 바람은 평양, 개성, 금강산으로 옮겨붙었다. 뉴타운 바람을 타고 용산에 들어선 최첨단 아파트 ‘스카이 팰리스’ 로열층에 강성현-민지은 부부가 이사오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첫 회를 보면 마지막 회를 짐작할 수 있는 TV 통속드라마마냥 인물은 전형적이고 구도는 도식적이다. ‘미쿡’(연극 맥락에서 ‘미쿡’은 미국이다)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장관님 외동아들 강성현은 먹물든 부르주아이고, 오뚝이 인생을 살아온 민지은은 현실적 처세를 중시한다. 다리 절뚝대는 아파트 관리인 박일두는 예전 용산 참사 생존자이고, 강성현의 둘째아이 소원이가 급사한 사건을 수사하러 온 형사 이정하는 박일두 친구의 아들이다. 이들의 얽히고 설킨 사연이, 하필이면 강성현의 아들 도원이를 통해, 그것도 꿈을 매개체로 해서 드러난다는 것도 전형적이다. 구도가 이리 짜이다보니 몇몇 대사는 거의 관객을 상대로 한 아지프로(Agitprop·선전선동)에 가깝다. 무대를 별 다른 장식 없이 텅빈 공간으로 둔 것도 “딱 내 말만 들어.”라는 압력같다. 강성현의 전공이 하필 문화인류학인 이유는 인디언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인디언 원어로 ‘타슝가 위트코’) 얘기를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다. 크레이지 호스는 1860~70년대 백인들의 인디언 사냥에 맞서 싸운 대추장이다. 항복하면 주거지를 주겠다는 약속을 믿었으나 끝내 백인들의 배신으로 살해당하는 인물이다. 용산 참사 피해자는 결국 크레이지 호스와 똑같다는 얘기다. 강성현이 아버지 후광으로 국립 개성대학 정교수 자리를 꿰찰 뻔했다는 설정은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 역시 땅을 빼앗기는 인디언이 되리라는, 그래서 문화인류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미개종족으로 전락하리라는 암시다. 그런데, 수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만 하기엔 영 개운치 않다. 연극 제목 ‘타인의 고통’은 미국의 지성(知性) 수전 손택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수전은 책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신문·방송 같은 미디어 이미지로만 소비하기에 바쁜 현대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결국 연극은 “용산 사태 보도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노했던 너, 그런데 지금도 용산 참사를 기억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 있니?”라는 되물음이다. 연극 자체의 불편함 보다 더한 불편함을 안기기, 작품이 노린 의도였던 셈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4·19혁명 50주년] “4·19는 한국적 근대민주주의가 제 모습 드러낸 것”

    [4·19혁명 50주년] “4·19는 한국적 근대민주주의가 제 모습 드러낸 것”

    4·19혁명이 ‘한국적 근대 민주주의의 원(原)체험’이라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곧이어 일어난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인해 ‘미완(未完)의 혁명’으로 평가받던 것과 다소 다른 맥락이다. 이승만 정권을 끝장내고도 박정희 군사정권을 불러들인 게 혁명의 한계와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18일 학계에 따르면 한국적 근대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서양의 부르주아 계급처럼 근대를 추동할 수 있는 세력이 우리에게도 있었느냐는 점이다. 식민사학 타파를 내건 국사학계는 조선후기에서 답을 찾으려 들었다. 조선 후기에 이미 상공업과 화폐와 시장이 발달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이다. 그러나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서양식 근대의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열등감으로 인한 작위적 해석이라는 반론이 쏟아졌다. 최근 국사학계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찾은 인물은 고종이었다. 이 역시 쉽지 않다. 왕실 주도의, 위로부터의 근대화라는 점을 부각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라를 빼앗겼다는 점 때문에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반론에 막혀서다. 최근 몇 년간 논란이 됐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를 근대세력으로 본다. 아무리 미워도 근대적 제도와 체험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이 원한 것은 우리의 근대화가 아니라 일본의 팽창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반론을 낳았다. 역사를 연속적으로 본다는 대목은 매력적이나 때로는 몰이해 때문에, 때로는 스스로 드러낸 과도한 정치적 편향 때문에 아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4·19혁명 때 비로소 ‘국민 만들기(Nation-Building)’가 이뤄지면서 근대적 시민으로 세례받았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끈다. 지난 14일 4·19혁명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고트프리트 칼 킨더만 독일 뮌헨대 명예교수는 전통적 유교개념을 토대로 한 이승만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학생들이 주도한 것에 대해 “미국식 민주주의 원칙과 자유세계의 역사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제와 이승만정권이 형식적으로 근대나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내용적으로 근대와 민주주의가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4·19 아니냐는 얘기다. 지난 15일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산업화로 인한 인구집중 ▲분단·전쟁으로 피난민의 도시유입 ▲매스컴과 근대교육의 보급으로 시민의식이 성장한 것 등을 혁명의 뼈대로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마저 4·19혁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1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홍성대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자는 “4·19기념탑이 박정희에 의해 세워진 것은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혁명의 열기에 정치적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한 포섭의 전략”이라고 규정했다. 민정이양 이후 대통령 취임식에서 “4·19의 혁명이념을 계승한다.”고 연설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들은 근대성의 관점에서 4·19혁명을 재조명한 책 ‘4·19와 모더니티’(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프랑스혁명 뒤 나폴레옹 황제가 등장했다는 점을 들어 4·19혁명 뒤 5·16쿠데타가 있었다 해도 혁명 정신 자체는 유산으로 남았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 교수 역시 해방 직후에는 민주주의 가치를 잘 몰랐기 때문에 4·19혁명에서 민족자주·인민주권·민족자립경제 등 ‘최대정의적(maximalist) 민주주의’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고 평가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연극리뷰] 대학살의 신

    [연극리뷰] 대학살의 신

    변호사와 작가. 둘은 말로 먹고 산다. 다른 점도 있다. 변호사는 힘의 논리와 객관적 현실세계를, 작가는 깊은 감정이입과 주관적 해석세계를 상징한다. 연극 도입부터가 그렇다. 작가 베로니카(오지혜)는 아들이 몽둥이로 “중무장한” 11살 아이에게 맞아 이가 두 개나 부러졌다고 주장한다. 변호사 알렝 레이(박지일)는 어린애가 동네 놀이터에서 집어든 막대기 하나 가지고 무슨 ‘중무장’이냐고 반박한다.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다음달 5일까지 한 달간 무대에 오르는 연극 ‘대학살의 신’. 2009년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등 3관왕, 2009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코미디상 수상 등으로 관심을 모았던 프랑스 작품이다. 극단 신시컴퍼니가 한태숙 연출로 번안한 연극은 듣던 대로 일상의 ‘쪼잔함’에서 웃음을 끌어낸다. 아이들 싸움 뒷수습을 위해 만난 변호사 레이와 부인 아네트(서주희), 작가 베로니카와 남편 우이에(김세동) 두 부부. 베로니카는 허황된 소리나 늘어놓으며 가해자의 깊은 도덕적 회개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변호사 레이는 능글맞고도 차갑게 이를 요리조리 피해나간다. 단어 하나하나를 두고 말이 뒤엉키면서 극은 점점 뜨거워지고, 마침내 온몸을 날리는 육탄전이 벌어진다. 아네트의 마지막 대사처럼 “정말 지랄맞은 하루”다. 제목이 ‘대학살의 신’이라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말꼬리잡기 싸움을 보노라면 ‘난폭’보다는 ‘난장’이란 단어가 어울린다. 큭큭 거리며 웃느라 정신없다. 다만, 마음껏 웃기엔 편치 않은 대목이 있다. 베로니카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캐스팅은 맞아 떨어진다. 오지혜는 신경질적이고 오만방자한 목소리톤과 표정연기는 물론, 후반부 때는 온몸을 던지는 육탄연기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요즘 허리가 안 좋다는데도 전혀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러나 캐릭터 자체는 묘하다. 베로니카가 상징하는 ‘부르주아 교양’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다. 남들에게 남편이 ‘리버럴 좌파’로 보이길 원하고, 레이 부부를 불러 놓고 50만원을 들여 집안에 꽃장식을 하고, 수단 다르푸르 학살 사태에 대해 해박한 식견을 보인다는 내용 말이다. 원작이 프랑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될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 중산층이 그런 ‘부르주아 교양’을, 베로니카의 가식만큼이라도 보여준 적이 있던가. 대사를 한국적으로 가다듬고 입에 붙이는 데만도 연습의 절반 이상을 소모했을 정도라니, 그 이물감을 짐작할 만한다. 조금 더 우리 식으로 풀어내지 못한 연극이 문제일까, 그런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문제일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재벌패션 따라하기/함혜리 논설위원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입기가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된 것은 절대왕정이 확립된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부터였다. 왕권 강화와 더불어 귀족층이 궁정으로 모이게 되고 궁정의 흐름을 따르면서 귀족들은 거의 비슷한 의상을 입게 됐다. 유행의 시작이다. 프랑스 궁정의 유행은 즉각 유럽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도 퍼졌다. 당시 뛰어난 패션 감각과 심미안을 지닌 궁정의 여인들이 유행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퐁파두르 부인이다. 그녀는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으며 20년 가까이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프랑스의 문학, 철학, 미술, 건축, 가구, 도자기 등 예술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우아하고 고상한 미적 감각으로 의상, 장신구, 헤어스타일 등에서 많은 유행을 만들어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녀는 패셔니스타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롭게 권력을 얻게 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평민들과 차별화하고 특권을 과시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귀족처럼 차려입음으로써 유행의 주된 소비층이 됐다. ‘유행’이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특정 양식을 가리킨다. 유행은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집단에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다가 소멸되는 특성을 갖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유행이란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 중에서 아주 특별한 것’이라고 했다. 남들과 같아지려는 마음과 조금 다르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타협안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같아지려는 대상은 언제나 자기보다 좀더 나은 신분이거나 나은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다. 반면 자기보다 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는 차별화하고 싶어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명품으로 치장하고 연예인 패션 따라잡기에 열중하는 이유다. 특히 드라마에서 재벌가 2세나 상속녀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재벌들의 패션을 따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 일가가 공개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눈에 띄는 현상이다. 백화점에는 이 전 회장이 입은 양복, 큰딸이 들고 나온 손지갑, 둘째딸이 입은 코트와 핸드백을 찾는 고객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벌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중산층과 차별화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개성을 못 살린 소비행태는 ‘패션 빅팀(희생자)’을 만들 뿐이란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조은지특파원의 밴쿠버 인사이드] 흑인은 아직도 이방인

    ‘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미국)가 18일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이어 밴쿠버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피드스케이팅 1000m 2연패에 성공한 데이비스는 감격에 겨운 듯 링크를 돌며 오랜 시간 손을 흔들었다. 관중들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4년 만에 또 시상대에 선 그의 모습은 찡한 감동을 안겼다. 동계올림픽에서 흑인으로서 유일한 개인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실력보다 피부색으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하계올림픽에서는 월등한 신체조건을 앞세운 흑인들이 주류다. 반면 동계올림픽에서 흑인이 시상대에 서는 건 낯설다. ‘눈과 얼음의 축제’에 초대된 흑인도 거의 없다. 총 2622명의 참가선수 중 손으로 꼽을 정도. 북미와 유럽대륙의 백인 선수들이 대부분(2300여명)이다. 단 1명만 출전한 나라가 20개국인데 대부분 흑인이다. 우선은 환경 탓일 게다. 동계스포츠는 유럽과 북미의 추운 지역에서 발달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는 사시사철 덥다.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생활수준의 차이도 이유가 된다. 겨울스포츠는 고가의 장비가 기본. 육상이나 농구 등 ‘백야드(backyard) 스포츠’보다 돈이 많이 든다. 선진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부르주아’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다. 신체 특성도 영향이 있다. 지방보다 근육이 많은 흑인은 유난히 추위에 약하다. 무거운 근육이 많아 수영에서 빛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1980년대부터 흑인들의 ‘조용한 반란’이 시작됐다. 1988년 캘거리 대회에서 데비 토머스(미국)가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동메달로 흑인 사상 처음 시상대에 올랐다. 영화 ‘쿨러닝’으로 유명한 자메이카 봅슬레이팀도 출전해 ‘흑인’이 화두가 됐다. 도전은 이어졌다. 마침내 토리노 대회에서 데이비스가 흑인 최초로 개인종목 ‘금빛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피겨스케이팅에서 흑인만으로 구성된 페어팀이 처음 출전했다. 야닉 보누르-바네사 제임스(프랑스)가 주인공. 알파인 스키에서는 홀로 출전해 ‘도전 정신’을 보여 주는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아좀퐁이 있다. 큰 족적을 남긴 데이비스는 1500m에서도 메달을 노린다. 이들의 분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그럼에도 동계올림픽은 여전히 ‘잘사는 백인들의 잔치’다. ‘반쪽 축제’가 언제쯤 전 지구인의 축제가 될까. zone4@seoul.co.kr
  • 박물관·미술관 센스만점 생활용품 쇼핑

    박물관·미술관 센스만점 생활용품 쇼핑

    세계인으로부터 ‘모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은 미술관 앞에 있는 디자인 스토어가 더 인기 있다는 평을 듣는다. 미술관에서 받은 감동을 집으로 가져가 오래 간직할 수 있고, 디자이너들의 영감이 담긴 창의적인 소품으로 생활의 질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김홍도의 풍속도가 우산으로,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핸드백으로, 신라 금귀걸이가 지칼(봉투칼) 등으로 새롭게 태어나 쇼핑의 즐거움도 안겨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전통의 멋 살린 소품 국립중앙박물관은 5명의 디자이너가 역사 깊은 유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산 2000원짜리 청동기 시대 한국식 동검 형태로 만들어진 풍선칼을 들고 노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들은 뿌듯하기 그지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층에 있는 140여평의 문화상품점과 어린이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어린이 문화상품점, 전시장 중간에 있는 2개의 문화상품점뿐 아니라, 온라인쇼핑몰(www.museumshop.or.kr)도 운영하고 있다. 600원짜리 도자기 모양 지우개부터 유물을 복제한 30만원짜리 베게 마구리 장식까지 가격대와 종류도 다양하다. 보통 문화상품 하면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값은 싸지만 한국적인 멋을 살린 1만원 이하 상품들이 많다. 모마 온라인스토어 코리아(www.momaonlinestore.co.kr)의 제품들이 특이한 디자인으로 구매욕구를 일으키지만 고가라는 점에 견주면 큰 장점이다. 우선 아이들을 위한 상품으로, 블록으로도 쓸 수 있는 공기놀이(1500원), 초가집 만들기 키트(2000원), 도깨비 방망이 풍선(3000원), 전통 문양이 담긴 요요(6000원) 등은 부모들이 부담 없이 자녀 손에 들려줄 수 있는 장난감이다. 전통 도자기 모양의 비닐 화병(2000원), 오리·닭 유물 모양의 아로마 향초(2700원), 십이지신 머그잔(6500원), 화려한 색깔의 민화인 ‘책가도’로 만든 메모패드(1000원)와 포스트잇(1200원) 등은 생활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드는 소품들.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 상품 가격이 저렴한 까닭은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상품을 순수 국내 공장에서만 제작하여 중간 유통 이윤을 없앴기 때문이다. 꽃과 나비 등 전통문양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적 감각을 더한 나전함(3만 5000원), 커플을 위한 실크 100%의 당초무늬 넥타이와 스카프 세트(9만 9000원), 당초무늬로 고급스러움을 살린 보스턴 소가죽가방(12만 5000원), 황금색이 화려한 금동 광배 커피잔 세트(12만원) 등 선물용으로 좋은 제품도 많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대형 청동거미 설치조각 작품인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 작품을 세계 최초로 아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부르주아의 동의하에 만들어져 리움에서만 독점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부르주아 아트 상품은 아름다운 색을 띤 선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식탁 매트(9000원), 앞치마(3만 5000원), 쟁반(5만 5000원) 등이다. 선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부르주아의 드로잉은 반복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을 용서하고자 하는 작가의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삼성 미술관 리움, 감각적 디자인 생활용품 또 삼성 디자인학교 ‘사디(SADI)’와 손잡고 만들어낸 감각적인 디자인의 생활용품들은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골프공을 땅콩처럼 꺼낼 수 있는 땅콩껍질 모양의 골프공 지갑(7000원),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해 명함을 넣고 빼기 쉬운 명함지갑(1만 5000원), 쌍쌍바처럼 나누는 즐거움이 있는 셰어 펜슬(3000원), 자연의 감성을 살린 조약돌 USB(4만 5000원), 보자기처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가방(3만 5000원) 등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의 현대미술 작품을 다양한 문화 상품으로 개발했다. 작가 이동기가 만든 캐릭터인 아토마우스는 머그잔(2만원)과 마우스패드(1만 1000원)로, 홍경택의 대표작 ‘훵케스트라’는 실크스카프(4만 5000원)와 머그잔(2만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행남자기가 만든 김창열의 ‘물방울’ 2인용 커피잔 세트(6만원)도 눈길을 끄는 상품.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진희 문화상품 디자이너는 “권기수 작가가 만든 캐릭터인 ‘동구리’가 들어간 점보 색연필(1만 5000원)과 그림공부(3000원) 등 어린이 교육관련 문화 상품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혼자보기 아까운 伊 매력

    혼자보기 아까운 伊 매력

    미켈란젤로의 그림, 아르마니와 발렌티노의 옷, 페라가모 구두, 포모도로 조각, 롬바르디아 지방의 가구와 식탁용 은제품,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유리공예품과 심지어는 파스타와 피자까지…. 각 분야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는 이들의 공통점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란 것이다. 어떻게 이탈리아 스타일이 명품으로 추앙받으며 유명해졌을까. 한국적 아름다움의 세계화를 추진 중인 우리나라로서는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2월20일까지 서울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센터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스타일-드레싱 홈’은 가구, 조명, 은기 등 이탈리아 디자인의 대표작 180점이 전시된다. 이탈리아 창의력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이탈리아 스타일’ 전에 소장품을 전시한 조르지오 포르니 사르티라나예술재단 관장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태어나기를 아름다움 속에 태어난다. 미적 충격이 많은 환경이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루초 잇조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장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공통된 가치는 ‘전통’”이라며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예술가와 장인, 순수미술과 공예를 구별하지 않았다. 작가들도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창의적인 것을 예술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스타일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브 보르도 TV의 패널 디자인은 베니스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LG전자 역시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디오스 김치냉장고, 오븐, 바닥재 등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하고 알레시사가 출시한 와인 병따개 ‘안나 G’와 그녀의 남자친구 ‘알레산드로 M’을 함께 볼 수 있다. 멘디니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본떠 만든 여성 얼굴 모양의 안나 G는 세계에서 가장 예쁘고 유명한 와인 따개로 명성이 높다. 멘디니뿐 아니라 필립 스탁, 론 아라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등 20세기의 스타 디자이너와 건축가 70여명의 디자인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명성을 확립했으며 ‘의자 디자인 역사의 혁명’이라 불리는 ‘사코’는 1968년 처음 만들어져 지금도 팔리고 있다. 캔버스천, 인조가죽과 같은 자루에 폴리스티렌 알갱이로 속을 채운 사코는 사람이 몸을 의자에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의자가 사람의 자세에 따라 변한다. 사코를 베낀 의자가 아직까지 나올 정도로 이 디자인은 관습을 벗어난 대안 가구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 히피문화, 학생 시위가 빈번하던 시대에 30대를 보낸 당시 이탈리아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부르주아의 미적 가치에 도전하며 ‘반(反) 의자’ 개념으로 만들어낸 것이 사코였다. 이탈리아는 전통이 깊고 반도국가라는 점 외에도 부족한 원자재, 다혈질의 국민성 등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원자재가 없어 품질 좋은 수공업으로 고급 가구 시장을 선점한 이탈리아는 산업 사회에서도 다른 나라와의 품질 차별화를 위해 신기술과 소재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화학자인 카스텔리가 설립한 자재 회사 ‘카르텔’은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을 주방 등 가사 공간의 소재로 활용했다. 1964년에는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의자를 제작해 세계를 놀라게 하며 ‘플라스틱 신드롬’을 일으켰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하고 카르텔이 만든 의자 ‘라 마리’는 투명한 의자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가볍고 견고할 뿐 아니라 충격에 강하고 쉽게 긁히지 않는다. 현재 이탈리아는 세계 2위의 가구 수출국이며, 브랜드 선호도는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 여미영씨는 “높은 부가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기술력이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진화된 방식의 장인 기술이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그리스 神 이미지로 현대사회 5가지 모델 제시

    최근 간행된 ‘행복의 역설’(질 리포베츠키 지음, 정미애 옮김·알마 펴냄)에 따르면 인류의 소비 문명은 3단계를 거치며 변화했다. 1880년대 소수의 부르주아 계층만 소비의 주체가 된 1단계, 1950년대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거의 모든 계층이 30년에 걸쳐 풍요를 누린 2단계, 그리고 1970년대 말 이후 과잉물질주의가 이끈 ‘과소비 사회’가 3단계다. 저자가 본 ‘과소비 사회 이후’는 결코 밝지 않다. “과소비사회를 대체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발달할 것이라는 게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삶은 행복과 기쁨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인다.”며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일부 모델에는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 신들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첫째는 페니아(빈곤의 여신). 물질 과잉은 소비자를 끊임없이 결핍의 상태로 몰아가고 주기적으로 불만족스럽게 만들어 평온함과 기쁨을 앗아간다. 기쁨을 맛볼 기회가 많을수록 소비자는 더욱 만족의 상태에서 멀어진다. 이것이 바로 풍요 속의 빈곤, 페니아의 강박증이다. 둘째는 디오니소스(술의 신). 전통문화에서 인간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함으로써 개인주의에서 해방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과소비사회는 공동체의 쾌락 대신 개인적인 기쁨으로 대체됐다. 셋째는 슈퍼맨. 현대사회에서는 경쟁력과 유능함, 적극성 등이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다. 개인마다 잠재력을 최대한 격발시켜 자기 초월을 시도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늘 ‘슈퍼맨’ 현판이 붙어 있다. 넷째는 네메시스(율법의 여신).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증오심과 질투심, 경쟁심리를 부추겼다. 네메시스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많은 부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벌한다. 다섯째는 호모 펠릭스(행복한 인간). 20세기 인류는 위대한 진보를 거듭했지만 지구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현대의 ‘행복한 인간’ 숭배가 더 큰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저자는 이처럼 다섯 가지 모델을 들어 과소비사회의 종말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저자는 “온전한 만족감 대신 상품의 욕구만을 따른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고 단언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아직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11억명에 이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올해 통계에 따르면 기아로 고통받는 인구가 10억 2000만명이다. 전쟁보다 기아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행복의 역설’은 이런 곳에서도 유효할까. 저자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은 프랑스다. 2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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