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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따리 메고 어린자녀 손잡고 ‘피난행렬’

    보따리 메고 어린자녀 손잡고 ‘피난행렬’

    인천 해경부두에는 연평도를 ‘탈출’한 주민들의 ‘피난행렬’이 이틀째 이어졌다. 전날 연평도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공포의 밤을 지새운 주민들은 24일 인천해경과 해군 등에서 지원한 함정을 타고 인천항을 통해 속속 ‘상륙’했다. 오후 1시 30분쯤, 인천 해경 함정 두척이 346명의 주민들을 태우고 해경부두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항구에서 대기하던 주민 가족 100여명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렸다. 16개월 된 딸아이를 분홍색 포대기로 감싸 안고 시어머니를 기다리던 김훈이(32)씨는 “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통화가 됐다. 그 전까지 연락이 안 돼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른다.”면서 “빨리 배가 도착해 어머니 손부터 잡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연평해전 등 이전에 있었던 북한의 도발은 주민들에게 직접 피해가 없어 먼 얘기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마을 집들이 무너지고 산이 불타는 모습을 보니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주민들을 실은 해경 312호 함정이 항구에 도착하자 주민들이 쏟아져 내렸다. 얼굴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손에 든 파란색 담요로 얼굴을 감싼 조순애(47·여)씨는 함께 온 초등학교 6학년 딸 박소원(12)양의 손을 꼭 붙잡고 배에서 내렸다. 조씨는 “우리 집이 포탄에 맞아 폭삭 무너졌다. 아무것도 못 챙겨서 나왔다.”며 오열했다. 첫 번째 해경함정을 타고 먼저 부두에 도착한 오여제(83) 할머니는 두 번째 함정을 타고 들어오는 며느리를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오 할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배를 타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첫 번째 배에 나밖에 못 탔다.”면서 “우리 막내 아들은 아직도 연평도에 있는데 빨리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30분쯤 뒤인 오후 2시 무렵, 172명의 주민을 태운 두 번째 해경함정이 도착하자 부둣가에서는 이들을 기다리던 가족들이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듯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찾는 모습도 보였다. 큰 가방과 보따리 등을 이거나 메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는 모습은 흡사 전쟁통의 피란민을 연상케 했다. 도착한 주민들은 연평도 부두에서 해경함정을 타기 전의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기억했다. 윤종균(58)씨는 “아내를 먼저 태우려고 했는데 사람들에게 떠밀려 내가 먼저 배에 타게 됐다.”면서 “아내가 다음 배를 타고 온다고 했지만 떨어지는 순간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인천부두에 먼저 도착한 김영길(49)씨는 “첫 번째 배에는 어린 아이들과 보호자 한명만 우선적으로 탈 수 있었다.”면서 “아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다음 배를 타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3시쯤에는 해군에서 제공한 고속함정을 이용해 또 다른 179명의 주민들이 해경부두에 도착했다. 인천 해경부두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자녀 학비 벌려 건설현장에”… 동료들 “우리만 살아 죄책감”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가장이었죠. 일도 잘하시고 좋은 분들이었는데…. 우리만 살아남은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인천 옹진군 연평면 동부리 주둔 해병대 숙소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 도발에 김치백(61)씨와 배복철(60)씨 등 두명의 동료를 잃은 건설근로자들은 24일 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사망한 두 사람은 연평도 주둔 해병대 독신자 숙소 건설현장의 작업반장이었다. 김씨는 작업을 총괄 지휘했고, 배씨는 베테랑 미장 반장이었다. 김씨는 지난 8월부터 연평도 건설현장에서 일했으며, 배씨는 일주일 전부터 일했다. 1남1녀를 둔 김씨는 자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을 떠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가슴을 찡하게 하고 있다. 김씨는 또한 수시로 자녀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한 다정다감한 가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과 2명의 딸을 둔 배씨는 인천 등 수도권 일대에서 일을 하다 조금 나은 벌이를 위해 연평도에 들어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4남1녀 중 장남으로 알려진 배씨는 말수는 적었지만 미장공으로서 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생존 근로자들에 따르면 김씨와 배씨는 북한군의 포격이 있었던 지난 23일 오후 해병대 숙소 건설현장에서 작업에 한창이었다. 김씨는 건물 밖에서 현장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배씨는 2층에서 5명의 미장공과 함께 작업 중이었다. 이 건물은 지난 6월 착공돼 골조공사를 마치고 난방공사 등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1층에서는 인부 3명이 창호작업을 했고, 한편에서는 기계공 2명이 난방작업을 했다. 공사는 내년 6월 중순에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작업 도중 갑자기 포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군부대 훈련인 줄 알았으나 곧바로 포탄 3발이 공사 중인 건물 지붕과 좌·우측에 거의 동시에 떨어지면서 ‘실제상황’임을 직감했다. 북한의 1차 포격 때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인부 가운데 일부는 지하실로 급히 피했으며, 나머지는 대피소나 당섬부두로 달려갔다. 부두로 간 인부들은 무작정 여객선이나 어선을 타고 23일 인천으로 탈출했다. 대피소로 간 사람들은 24일 해경함정을 타고 귀환했다. 황급한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고, 그래서 동료들은 김씨와 배씨가 없어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동료 인부들은 “포탄이 떨어진 직후 급히 현장을 탈출해 뿔뿔이 흩어졌기에 이들이 사망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다른 대피소에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포격 여파로 휴대전화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도 이들 간의 소통을 어렵게 했다. 이들의 실종 사실은 인천으로 피신한 인부들의 수를 세던 건설회사 본사 직원에 의해 비로소 파악됐다. 회사 측은 김씨와 배씨 실종사실을 24일 오전 11시쯤 해경에 알렸고, 공사장 수색에 나선 특공대원들은 오후 3시 20분쯤 이들의 처참한 시신을 발견했다. 해경은 건물 밖에서 발견된 김씨의 시신 상태로 보아 포탄을 직접 맞고 산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신체 대부분이 크게 훼손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배씨는 포탄 폭발에 따른 화재로 하체가 손상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을 고용한 경림건설 관계자는 “두분 모두 성실한 분으로 건설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어 연평도 현장까지 불러들여 공사를 맡겼다.”며 “불시에 참변을 당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배씨의 매형은 “시신을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아 현 상황이 실감나질 않는다.”면서 “죽은 사람이 내 처남이 아니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한편 옹진군은 배씨와 김씨의 시신을 내일 중 육지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옹진군은 시신을 연평보건소에 안치한 뒤 25일 경찰 과학수사대가 검시를 마치면 관용선을 이용해 인천 시내 병원 영안실로 옮길 계획이다. 유족들은 25일 오전 배편을 이용, 연평도 현지로 떠날 예정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오늘의 눈] 기자 통제 누구의 지시인가/윤샘이나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기자 통제 누구의 지시인가/윤샘이나 사회부 기자

    24일 오후 1시, 연평도 주민들의 피난행렬이 이어진 인천해경부두 앞에는 300여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펜과 카메라를 든 취재진은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는 주민들 앞에 펜과 마이크를 들이댔다. 정부와 군이 취재진의 연평도 진입을 철저히 통제하면서 주민들의 증언과 국방부의 발표만이 현장의 참상을 전하는 유일한 통로가 됐다. 앞서 어선과 여객선 등을 통해 연평도 진입을 시도한 취재진들은 상륙을 앞두고 모두 끌려나와야 했다. 기자들이 뽑은 인천시청 풀 기자단도 군에서 허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뱃머리를 돌렸다. 북한에서 날아온 백여발의 포탄으로 초토화가 된 연평도에 온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에게 전해진 것은 바다 건너 보이는 불타는 연평도 사진 한장, 인천으로 대피한 주민들의 “무서웠다”는 전언뿐이다. 연평도에서 122㎞ 떨어진 먼발치에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취재진은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할 의무를 타의에 의해 저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이자 권리다. 국방부는 무엇이 두려워 기자들의 현장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는가. 포탄도 받아들이면서 언론 보도는 무엇이 두려워 막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과 여덟달 전 서해상에서 스러져간 천안함 순직 장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토가 유린되는 일이 터졌다. 전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청와대와 국방부의 대처는 국민들을 절망케 한다. 연평도 진입을 시도하는 취재진에 군 관계자들은 “국방부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취재진의 출입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일하게 연평도와 육지를 잇고 있는 해군과 해경함정, 구호물자를 싣고 들어가는 배는 철저히 탑승자의 신원을 통제했다. 군 관계자들은 신분증을 검사해 얼굴을 대조하고, 혹시나 취재진이 숨어들지는 않았는지 함정 기관실과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졌다. 구호를 위해 연평도로 들어가는 제한된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역시 화면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나 휴대전화 카메라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철저한 취재 통제로 인한 결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루머와 오해뿐이다. 정확한 보도가 없는 상황에서 트위터와 인터넷 게시판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퍼지고 있다. sam@seoul.co.kr
  • “피난 나왔는데 찜질방 가 있으라고?”

    “피난 나왔는데 찜질방 가 있으라고?”

    “피난 나온 사람들한테 찜찔방 가라니요.” 24일 오후 3시. 100여명의 연평도 주민들이 인천 옹진구청으로 몰려왔다. 이날 오후 1시 두척의 해양경찰 경비함을 타고 연평도를 빠져나온 피난민들이다. 매캐한 화약내가 진동하는 ‘전쟁터’를 피해 육지로 탈출해 왔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군청 직원들의 “일단 찜찔방에 가 있으라.”는 말뿐이었다. 전기도, 물도 없는 대피소의 찬 바닥에서 밤을 새우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주민들의 마음이 상처로 얼룩졌다. 최전방 영토를 삶으로 지키다 북한군 포탄에 집이 부서지거나 불 타 없어졌지만 피해 보상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당국의 ‘탁상행정’에 주민들이 분개한 것이다. 오후 2시.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한 연평도 피난민들은 옹진군청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군청으로 가자는 주민들의 요구에 한 군청직원이 “군청에 가도 별 수 없다. 일단 찜질방으로 가시라.”고 종용한 게 발단이 됐다. 군청에서 준비한 버스 기사까지 나서 “군청으로는 갈 수 없다.”며 주민들의 군청 행을 가로막았다. 연평도에서 30년 넘게 어업을 해 온 김귀진(65)씨는 “한가하게 찜질이나 하라는 거냐.”라며 “일단 흩어져 있으라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번 폭격으로 집과 식당이 전소된 이향미(33여)씨는 “배를 곯며 밤을 새웠는데 식사 한끼 안 주는 군청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군청 관계자는 “인천에 친지가 없어 갈 곳 없는 주민들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학교에서도 北 사격연습 소문 돌았다”

    “학교에서도 北 사격연습 소문 돌았다”

     ‘11.23 연평도 포격 사건’의 와중에 있었던 김준휘(사진·16·연평고 1년)군은 24일 오후 1시30분쯤 인천 해경 전용부두에 도착하면서 그제서야 22시간 쌓였던 긴장의 끈이 풀렸다.“이제야 살았구나.”는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 언제 돌아갈 지 모르는 고향 땅 연평도쪽 바다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김군은 23일 밤 연평도 대피소를 찍은 동영상을 서울신문에 보내 단독으로 보도하게 한 장본인이다.다음은 1박2일간 그와의 통화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북한군 사격연습한다는 소문 돌아”  23일 오후 3시쯤 연평고등학교 교실에서 모의고사를 보던 김군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 창문이 깨지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학교 뒷산에 포탄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떨어진 것이다.  김군은 “아침에 학교에 나왔는데 북한군이 사격 연습을 할 것이란 소문이 있었다”고 증언했다.사격 연습을 한다는 소문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닥친 것이었다.뒷산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태가 즉각 북한군에 의한 포격이라고 직감했다.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김군을 비롯한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교 교문 앞 대피소로 급히 피신했다.“태어나서 지금까지 딱 한번 대피훈련을 받아봤다.”는 김군이었지만 급박한 상황인데도 비교적 신속하고 차분하게 학생과 선생님이 대피했다고 전했다.  ●“대피소엔 음식 없고 촛불만”  원룸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는 대피소는 교실 2개쯤 크기였다.잠시 있으니 연평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그리고 마을 주민 50여명이 모였다.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격려해 가며 시간을 보냈다.전쟁이 난 것 아닌가 하는 공포와 불안이 엄습했다.더 이상의 포격은 없었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포감은 극대화 됐다.  가족들 안부도 걱정됐다.형 귀휘(18.연평고 3년)군은 함께 대피했으나 부모님의 소재는 몰랐던 것이다.다행히도 휴대전화가 통했다.부모님은 김군이 있는 대피소에서 걸어서 5분쯤 거리에 있는 연평농협 앞 대피소에 무사히 피신해 있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공포와 불안은 더욱 커졌다. 대피소 안에는 전기는 고사하고 랜턴도 없었다.간신히 촛불 8개를 켜놓고 50여명이 불안을 달랬다. 그들에게 지급된 것은 바닥에 깔 스티로폼 몇 장과 침낭이 전부였다.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 <김준휘 군 제공>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밤사이 인천으로 나간다는 소식 들어”…밤 9시 넘어 라면 공급  그런 가운데 간간이 바깥소식도 들려왔다. 마을 주민 일부는 개인 어선을 이용하여 인천으로 나가고 있고, 오후 7시쯤 마을에 번진 불은 진압이 되었지만 산불은 아직 번지고 있는 것 같다는 등 여러 소식을 바깥에 나갔던 어른들이 알려주었다. 어두컴컴한 대피소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떨다 오후 9시쯤 외부에서 누군가가 가져온 라면과 빵,물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컴컴한 밤길을 걸어 부모님이 있는 농협 앞 대피소로 가봤다.김군의 아버지(55)와 어머니(51)는 김군 형제를 보자마자 울먹거렸다.그렇게 가족 4명이 무사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울컥했다.부모님과 합류하고 싶었지만 농협 앞 대피소는 김군 형제까지 있기엔 너무 비좁았다.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비록 몇시간이지만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그 와중에도 대피소 상황을 외부에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었다. 이 동영상(23일 서울신문 홈페이지 보도)을 서울신문 기자에게 보냈는데 국내외 TV와 인터넷 등에 널리 보도됐다는 얘기를 인천항에 도착하고서 알게돼 깜짝 놀랐다.  ●“밤 10시 지나자 통신마저 두절”  일단 학교 대피소로 돌아왔지만 외부와의 소식은 두절된 상태였다.게다가 언제까지 이런 대피소 생활이 계속 될 지 모른다는 상황이 김군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휴대전화로 서울신문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이마저도 오후 10시 이후로는 통신두절이 됐다.  대피소에는 학생 10여명,선생님 10여명만 남았다.나머지는 부모님과 합류하거나 집 근처 대피소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추위가 엄습했다.침낭에 몸을 넣었지만 추위와 함께 공포가 가시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정든 고향 등졌으나 다시 돌아오는 건 두려워”  24일 오전 6시쯤,면사무소 직원이 “곧 인천으로 나갈 것”이라고 통보를 했다.몇가지 옷가지와 세면도구만 챙긴 김군 가족들은 아침을 거른 상태에서 오전 6시30분쯤 면사무소 앞에 모였다.이들이 해경 선박에 오른 것은 1시간쯤 뒤.이웃과 함께 악몽 같은 하루밤을 지낸 연평도를 출발할 수 있었다.  안산에 있는 친척이 인천항으로 마중을 나왔다.뜻하지 않은 북한의 포격으로 고향을 떠난 김군은 “모든 것이 정상화 되더라도 무서워서 연평도에 돌아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민수 영상콘텐츠부 PD globalsms@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포탄소리에 여객선 다시 인천항으로…참사 면해

    23일 북한이 해안포로 연평도를 무차별 공격을 했을 당시 부두에는 여객선이 막 입항했던 것으로 밝혀져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인천항과 연평도를 오가는 괘속선 ‘코리아익스프레스’가 200여명을 태우고 이날 정오 인천항을 출발, 오후 2시 35분쯤 연평도 당섬부두에 도착한 순간 북한의 포격이 시작됐다. 신도 16명과 함께 섬을 찾은 인천제일교회 김모(66) 장로는 “배가 연평도에 막 닿았을 무렵에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로 불길이 치솟았다.”면서 “배를 바로 돌리지 않았으면 포탄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김씨를 비롯한 승객들은 부두에서 2㎞가량 떨어진 마을이 포격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발길을 다시 육지로 돌려야만 했다. 배는 원래 연평도에서 오후 3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태에 놀라 황급히 섬을 떠났다. 연평도 해병부대에 근무하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한모(52)씨는 “포탄 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뛰어 부두에 도착했을때 배가 5∼10m가량 부두를 떠났는데 부두에 있던 20여명과 함께 다시 와달라고 손짓해 배를 타고 인천항에 왔다.”며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15m 앞서 포탄 터져… 주민들 노렸구나 직감”

    [北 연평도 공격] “15m 앞서 포탄 터져… 주민들 노렸구나 직감”

    23일 오후 8시 30분 인천 연안부두. 28명의 연평도 주민과 함께 9.7t 유자망어선 ‘신복호’에서 내린 윤희종(48·선원)씨는 충혈된 눈과 쉰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윤씨는 “집은 불타고 대피소에는 전기와 구호품, 물조차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현지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섬을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군 통제소가 허락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 앉아서 포탄 맞아 죽을 순 없지 않느냐고 항의한 뒤 통제소 제지를 무시하고 나왔다.”면서 “다른 배들과 무선교신을 해보니 7~8척 빠져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밤 11시 넘어서까지 10여척 넘는 배에 수백명이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윤씨는 “대피소나 밖에서 무서웠던 것이 (북한군이) 일반 민간인들을 노렸다는 점”이라며 “공포에 질린 주민들이 다들 바닥에 엎드리고, 소리를 지르고 말 그대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고 당시 상황에 치를 떨었다. 포탄이 터지면서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15m 거리에서도 포탄이 터져 차가 크게 들썩일 정도였다고 전했다. 윤씨는 “3분 거리에 있는 대피소로 걸어서 이동했으나 대피소란 게 말만 그럴듯하고 가져다 놓은 것 하나 없이 열악했다.”면서 “현재 연평도의 주민 부상자도 파악이 안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피소에 들어간 뒤 잠잠해져서 3~4m 나와서 둘러보는데 다시 포탄이 쾅쾅 떨어졌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해 오후 4시 30분쯤 인천으로 나가는 것을 결정해 28명이 배를 타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크지 않을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했다. 윤씨는 “김장철이라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어 대피가 쉬웠을 것”이라면서 “70% 이상은 집이 비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탄이 떨어질 때 이거 공포탄 아니구나, 실화구나. 주민들만 일부러 노렸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며 “연평해전도 있고 해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진짜로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윤씨는 “포탄은 면소재지 부근에만 20~30발 정도 떨어졌는데 북한군이 연평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이곳을 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평도를 빠져나온 배는 오후 10시쯤 3척이 더 들어왔다. 글 사진 인천 연안부두 백민경 김양진기자 white@seoul.co.kr
  • [北 연평도 공격] “포탄 비오듯… 삽시간에 온동네 불바다” 공포에 떨어

    [北 연평도 공격] “포탄 비오듯… 삽시간에 온동네 불바다” 공포에 떨어

    23일 오후 2시 34분쯤 인천 연평도에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이 중심가에 쉴새 없이 떨어지면서 집이 날아가고 일부 가옥과 산이 불바다로 변하는 등 평온하던 마을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1300여명의 주민들은 “실제상황, 실제상황긴급대피하라.”라는 긴급 안내방송을 듣고 방공호와 연평중고등학교 등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을 전체가 연기로 휩싸였고, 희생자도 속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주민은 어선으로 연평도를 떠나 인천으로 피신했다. ▲ ‘포격’ 연평면사무소… 주민들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 <중앙일보 제공> 피격으로 전력 선로가 끊겨 민가 절반 가량이 정전된 탓에 밤이 되자 칠흙같은 어둠만 연평도를 감쌌다. 이동전화 기지국도 피해를 입어 휴대전화도 불통됐다. 주민들은 촛불 등을 켜고 추위를 견디면서 두려움에 밤을 지샜다.  김운한 인천해경 연평출장소장은 “산과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연기로 휩싸였다. 사람들 모두 대피소로 대피하고 있어서 누가 불을 끄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35)씨는 “집 안에 있다가 갑자기 쾅 소리가 나서 밖에 나와 봤더니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됐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씨는 “포탄이 떨어진 뒤 안개가 낀 것처럼 사방이 뿌옇고 어둡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모씨는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10여가구 이상의 민가가 불타고 있는 걸 봤다.”며 “산불도 났고 실전상황이니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집밖으로 뛰쳐나가 인근 중학교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은 “마을이 초토화 됐다. 암흑천지다.”면서 “마을 전체가 불에 타고 있고 주민들이 모두 대피소나 다리 밑에 숨어있다.”고 말했다. 주민 안모씨(57)는 “6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마을에 포탄이 비 오듯이 떨어져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안내방송을 듣고 학교 등으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 대피소에서도 끝나지 않은 대낮 ‘포격 공포’ <김준휘 군 제공>  대피소로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은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인 당섬으로 대피했고, 일부 주민은 가까운 군 진지로 피하기도 했다. 연평도에는 13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나 꽃게 조업철을 맞아 외지 선원들이 들어와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많았다. [현장사진] “온동네가 불바다” 연평도에 北 포탄  오후 3시 50분 이후 포성이 가라앉았지만 주민들은 혹시 추가 포격이 있을지 몰라 대피소에 계속 머물렀으며, 일부 주민들은 당섬 부두로 달려가 상황을 지켜봤다. 박모(46)씨는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연평해전 당시에도 우왕좌왕하지 않았던 주민들이지만 이번에는 포탄이 마을로 직접 떨어져 무척 놀랐다.”면서 “북한이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민간마을에 포탄을 퍼부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최부경 연평파출소장은 “저녁때가 돼서야 순찰을 돌면서 주민 피해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를 탈출한 김옥순(57·여)씨는 “백령도에 소방차가 한대밖에 없어 불 끄기 힘들 것이다. 가뜩이나 건조한 날씨라 민가와 산이 모두 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해경은 연평도로 향하는 모든 항로를 통제했다. 백령도·연평도를 오가는 여객선 3척은 경비함정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으로 되돌아왔다. 해경은 또 서해상에서 조업 중인 어선 87척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인근 백령도 주민들도 연평도 사태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김학준·이민영기자 kimhj@seoul.co.kr ●“하도 정신없이 뛰어 양말만 신고 배에 탔다”  23일 북한의 인천 연평도 해안포 공격을 목격한 연평도 방문객들은 “민가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라고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연평교회 목사 위임식 참석차 동료 신도 16명과 함께 섬을 찾은 인천제일교회 김영남(66) 장로는 “오후 2시30분께 배가 연평도에 닿을 즈음에 마을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로 불길이 치솟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두에서 400∼500m 떨어진 마을의 3∼5군데에서 불이 났으며 육안으로 뚜렷하게 보았다”라고 덧붙였다.  남편 우두재(52)씨와 함께 연평도 해병 부대에 근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한미순(52.여.경기도 포천)씨는 “남편,아들,내가 민박집 승합차로 부두로 오는데 갑자기 차 위로 ‘빠바빡’하는 소리를 내며 폭탄이 날아가 차에서 내려 차 밑으로 엎드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훈련인줄 알았는데 포탄이 많이 떨어지고 집집마다 시커먼 연기가 나니까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이것은 실제 상황”이라면서 ’방공호로 대피하라‘고 말하고 자기들은 군부대로 서둘러 돌아갔다“면서 ”하도 정신없이 뛰어 양쪽 구두를 모두 잃어버리고 양말만 신은채 배를 탔다“라며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 씨는 ”부두에 도착했을때 배가 5∼10m가량 부두를 떠났는데 부두에 있던 다른 사람 20여명과 함께 다시 와달라고 손짓해 배를 타고 인천에 오게 됐다“면서 ”아들을 떼 놓고 오는 마음이 무척 무거웠지만 아들과 군인,주민들이 모두 평안하기를 몇번이나 기도했다“라고 말했다.  연평도 친정집을 남편과 함께 다녀온 전옥순(62.인천)씨는 ”뱃터에 왔는데 쾅쾅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이 나기 시작했고 불길이 치솟아 북한에서 쏜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86세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와 마음이 불안하다“라고 밝혔다.  사업차 연평도에 갔다 발길을 돌린 김순식(53.수원)씨는 ”연평도에 도착했는데 배에서 방송으로 ’훈련 중인 것 같으니 배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잠시 뒤 ’실제 상황인지 알 수 없다면서 배에 다시 타라‘고 했다“면서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산에서 불이 났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연평도 방문객 200여명은 고려고속훼리㈜의 코리아익스프레스 쾌속선으로 연평도에서 오후 3시께 출발,오후 5시9분께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 폭력장 된 법정

    조직폭력배 두목이 법정에서 자신보다 형량이 낮게 나온 부두목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10일 광주고법 전주재판부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3시 30분쯤 이 법원의 8호 법정에서 열린 전주시내 폭력조직 J파 두목 박모(48)씨와 부두목 한모(44)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박씨가 피고인석에 놓인 마이크로 한씨의 머리 부위를 한 차례 내려쳤다. 박씨는 마이크로 한씨를 계속 공격하려 했으나 법원 경위와 교도관이 제지해 폭행 사태는 마무리됐다. 박씨는 부두목의 형량이 자신보다 낮게 나온 데 불만을 품고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조직폭력단을 결성해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으며 박씨는 이날 항소심에서 징역 6년, 한씨는 징역 4년이 각각 선고됐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 지정 고시

    경북 영일만항 컨테이너 부두 배후에 들어설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포항시는 2015년까지 북구 흥해읍 용한·우목·곡강·죽천리 일원 부지 418만 3000㎡에 1조원을 들여 조성할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를 지정 고시했다고 밝혔다. 4일반산업단지는 신소재, 메커트로닉스, 조선 업종, 자동차 부품업체 등을 위한 산업시설(173만㎡)과 상업시설(45만 4000㎡), 단독 및 공동주택(47만㎡), 공원·녹지 및 문화교육시설(152만㎡)등이 들어서는 다기능 복합산업단지로 개발된다. 시는 이를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키로 하고 이달 말까지 사업 시행자 전국 공모에 들어간다. 하지만 시는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 등으로 사업 시행자 응모가 없을 경우 입주 예정기업을 모집, 산업용지를 미리 개발한 뒤 선택적으로 공급하거나 1·2단계로 나눠 단계별로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4일반산업단지는 내년 초 단계별 보상에 착수, 8월쯤 실시계획 승인을 받은 뒤 본격 부지 조성공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9300억원의 경제유발 효과와 함께 2만 9000여명의 고용창출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를 잇는 영일만항 진입도로와 포항 국도 대체 우회도로, 영일만항을 잇는 철도 노선 등과 연계돼 수출입 물동량 수송에 최적인 산업단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시 관계자는 “4일반산업단지는 영일만항을 끼고 있어 철강 원자재 공급 및 수출입 물동량 수송에 큰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영일만 산업단지는 이미 완공된 1·2일반산업단지(170만㎡)와 내년 완공 예정인 3일반산업단지(19만 7000㎡)에 이어, 4일반산업단지가 완공될 경우 모두 632만 9000㎡로 늘어나 포항 철강공단과 더불어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남극 제2기지 ‘장보고’ 시공사 이르면 주말 선정

    남극 제2기지 ‘장보고’ 시공사 이르면 주말 선정

    우리나라의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의 시공사가 이르면 이번 주말 결정된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 컨소시엄간의 자존심을 건 3각 경쟁에서 최후 승자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국토해양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기술평가에서 앞선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수주가 유력한 가운데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마지막 가격평가에서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 4일 실시된 장보고기지 턴키 설계심의(기술평가)에선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97.93점을 받아 삼성물산 컨소시엄(92.08점)을 5점 이상 앞섰다. 설계와 시공능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가격평가가 남았지만 기술과 가격의 평가 비율이 8대2로, 업계에선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현대건설(46%), 코오롱건설(18%), 계룡건설(18%), 현대엔지니어링(18%)으로 구성됐다. 삼성물산 컨소시엄은 삼성물산(50%), 한화건설(15%), 태영건설(15%) 등이 손을 잡았다.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대우건설(70%), 두산건설(30%)로 이뤄졌다. 이들은 올 7월 조달청의 입찰자격 사전심사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경쟁을 벌여왔다.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내면 1988년 제1기지인 세종기지를 완공한 뒤 22년여만에 남극기지를 건설하게 된다. 세종기지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시절 시공했던 곳이다. 장보고기지는 2014년까지 남극 테라노바만에 세워진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조달청에 의뢰한 공사비는 모두 720억원 규모. 조립식 건물을 지어 이송하는 공사방식을 고려하면 실제 건설비는 470여억원에 불과하다. 운송비, 설계비, 인건비, 조립비용 등을 뺀 액수다. 2만 2000㎡ 터에 연면적 4232㎡로 들어설 장보고기지는 착공일로부터 1236일 안에 완공되도록 계약조건에 명시됐다.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만 공사가 가능해 실제 공사기간은 9개월 안팎이다. 1단계로 기초공사, 2단계로 공통시설 가설과 담수시설·폐기물처리시설·숙소·일반 연구동 건설, 3단계로 독립연구시설·열병합시설·부두시설 건설 등이 이뤄진다. 이런 이유로 이번 수주전은 이윤을 남길 수 없는 대형 업체 간 자존심 대결로 불렸다. 혹독한 자연환경은 물론 낮은 수주비용에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업체 관계자는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금액에 상관없이 공사를 따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다른 대형 업체 관계자는 “악천후 외에 운송비나 공사비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면서 “참여업체들의 고민이 남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인천서 어선 침몰… 9명 사망·실종

    인천서 어선 침몰… 9명 사망·실종

    8일 오전 9시 28분께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방 31마일(57㎞) 해상에서 인천 선적 저인망어선 17동양호(93t급)가 악천후에 따른 피항 도중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9명의 선원 가운데 박현중(53) 선장을 비롯한 한국인 5명, 샤림(33)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인 2명 등 7명이 실종됐다. 김종대(41)씨와 장학철(37)씨는 오전 11시 35분쯤 사고해역 인근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7동양호는 오전 5시를 기해 서해 중부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지자 조업을 펴던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인근 해상에서 가덕도로 대피하다 사고를 당했다. 해경은 17동양호와 짝을 이뤄 조업한 18동양호가 “1㎞ 안팎의 거리를 두고 앞서가던 17동양호가 파도에 부딪혀 옆으로 기운 뒤 침몰했다.”고 밝힘에 따라 17동양호가 기상악화에 따른 높은 파도 때문에 침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고가 나자 해경 함정 4척, 해경 헬기 2대, 해군 함정 2척 등이 수색에 나섰으나 사고 해역에 초속 20∼24m의 강풍이 불고 높이 4∼5m의 파도가 일어 어려움을 겪었다. 17동양호는 지난 8월 2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항해 3개월이 넘게 서해상에서 조업을 해 왔다. 실종자 ▲박현중(53·선장·인천 용현동) ▲서복용(54·인천 용현동) ▲김태원(49·인천 항동) ▲오기환(50·부산 남항동) ▲노상빈(54·인천 신흥동) ▲샤림(33·인도네시아) ▲타주리앤디(21·인도네시아) 사망자 ▲장학철(37·충남 아산) ▲김종대(41·대구 평리동)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광양~일본 카페리 운항사 특혜 논란

    전남 광양시가 호남 최초로 광양~일본을 오가는 카페리호를 운영할 회사를 선정하면서 특정 업체에게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하고 운항 조건을 완화해주기로 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광양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4월 물류 관광도시를 만든다는 계획 아래 광양과 일본을 왕복하는 카페리호를 운영할 업체로 ‘광양훼리 주식회사’를 선정했다. 선정에 앞서 시는 ‘광양~일본 간 카페리 항로 개설 의향 선사 공개모집 공고’를 통해 화물 운송은 매일, 여객은 주 3회 운영하고, 공공기관 지원 요청 금액이 적은 업체에 우선권을 부여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시는 광양훼리 주식회사가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해 운송업체로 결정되자 화물 운송 횟수를 주 3회로 줄여줬다. 또 광양시와 전남도,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이 이 업체에 초창기 4년 동안 12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은 운항회사가 건립해야 할 국제여객터미널 대합실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0억원을 들여 다음 달 중순 건립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회사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한 광양페리 주식회사는 리스를 통해 1991년 건조된 1만 5971t급 카페리 1척을 구매했다. 이 선박은 현재 여수 YS중공업에서 2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역 해운업계에선 광양시가 소규모 업체에 당초 공고상의 조건을 완화해주고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배경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한국컨테이너부두의 한 관계자는 “국내 카페리 회사 대부분은 당초 공고 내용에 대해 타당성이 없다고 보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선정 업체가 사업을 오래 하지 못할 경우 지원했던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윤영학 광양시 항만통상과장은 “10여개 회사에 접촉해 각종 지원을 해준다고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며 “호남권 관광객과 수학 여행 유치 등을 통해 충분한 수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광양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28일 부산 ‘수산물 수출가공단지’ 기공식

    28일 부산 ‘수산물 수출가공단지’ 기공식

    수산물 원료확보, 제품생산, 포장·선적 등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국내 최대 ‘수산물 수출가공 선진화단지’(조감도) 조성 사업이 본격화된다. 부산시는 28일 수산물 가공사업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산물수출가공선진화단지 조성 기공식을 감천항 동편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 옆 수산물부두 조성 부지 현장에서 갖는다고 25일 밝혔다. 총 사업비 1390억원이 투입되는 수산물수출가공선진화단지는 6만 711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수출입 전용부두와 식품가공공장 56곳, 수산물종합연구소와 포장디자인센터 같은 연구·지원시설이 들어선다. 수산물 선진화단지는 국내 수산물 유통거점이자 수산 가공식품 수출전략기지 역할을 하게 되며 원료공급과 제품생산, 포장, 수출선적 등 수산물가공산업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한곳에서 제공하게 된다. 부산시 관계자는 “동북아 최대 수산물류·무역중심이 될 수산물수출가공선진화단지를 착공하게 돼 수산물가공산업은 물론 연관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울산 태화강 바지락 내년 맛본다

    울산 태화강 바지락 내년 맛본다

    울산 태화강 하구에서 생산되는 바지락이 내년부터 국내외 시장에 선을 보인다. 울산시는 21일 상황실에서 열린 ‘태화강 바지락 자원조사 최종보고회’를 통해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가 지난해 4월부터 연구용역을 실시한 결과 질병이 없고 자원량도 많은 것으로 확인돼 내년부터 본격 개발한다고 밝혔다. 동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바지락 체내의 납, 카드뮴, 수은 등 중금속 함량이 우리나라 식품공전에 정해진 기준치 이하로 나타났고 비소, 크롬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용치보다 훨씬 낮았다. 바지락 질병검사에서는 패류 기생충의 일종인 퍼킨수스 마리너스(Perkinsus marinus)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다른 지역 바지락 양식장의 종패와 해외 수출용 성패로 적합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바지락이 집단서식하는 태화강 하구 명촌교~현대자동차 수출부두의 수질(COD)과 퇴적물의 중금속 함량도 모두 양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바지락 자원량은 총 1470t 규모로 추정돼 연간 400t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동해수산연구소는 태화강 하구를 바지락 어장으로 개발하려면 주기적인 자원 평가 및 어장환경 모니터링, 총허용 어획량제 도입, 바지락 산란기인 6~9월 채취금지 등을 제안했다. 시는 연내 ‘내수면 조업구역 이용협의’(부산지방국토관리청)와 ‘조업구역 및 채취방법 승인’(농림수산식품부) 등 행정절차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시는 내년부터 태화강 바지락이 본격 개발되면 국내 바지락 종패시장의 20~30%를 점유하고, 일본 등 해외에 성패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울산시 항만수산과 박해성 담당은 “전국의 하천 가운데 유일하게 태화강에 바닷조개인 바지락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면서 “바지락 체내의 중금속 함량이 자연 수준에 가깝고 자원량도 많아 어장으로 개발하면 어민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울산시는 태화강에 전국 최대 규모로 서식하는 백로와 까마귀, 바지락을 ‘태화강 생물자원 3보’로 지정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부산 용호만부두 유람선 전진기지로

    지난 2월 완공된 부산 남구 용호만 부두가 부산지역 관광유람선 전진기지로 조성된다. 부산시는 마린 산업 및 해양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올 초 완공된 용호만 부두를 관광유람선 전진기지로 육성한다고 2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이곳에 2000t급 관광유람선 4~5척을 유치해 모항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한편 소형 유람선 등이 기항할 수 있도록 접안시설(부잔교)도 설치하기로 했다. 또 연안크루즈 선박도 용호만 부두에 대도록 하고 유람선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각종 관광시설도 설치하기로 했다. 시는 대기실, 매표소, 홍보관, 전망대, 휴식공간 등을 갖춘 연면적 2600㎡, 지상 3층의 유람선 터미널을 2012년 완공할 예정이다. 용호만 부두는 지난 2월 친수공간 100m를 포함해 길이 550m 규모로 건설됐으며 지난 7월 임시터미널이 설치됐다. 중구 중앙동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운항하던 누리마루호가 이곳으로 옮겨 오는 25일부터 4개 항로 운항을 시작한다. 시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방파제 등 각종 기반시설을 보강해 용호만 부두를 유람선 전용부두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초기에는 운영선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주차장과 상수도, 부두 사용료 등 각종 공과금을 면제하거나 감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는 지난 9월 이 부두를 모항으로 하는 관광유람선 운항사업자 전국 공모를 실시했으며, 전문가 심의를 통해 새부산관광을 최종 선정했다. 새부산관광은 길이 80m, 2000t급 유람선을 건조해 2011년 12월부터 관광유람선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한두번 회의하고 매달 200만원 챙겨

    부산항만공사(BPA) 항만위원회 위원들이 회의 수당 외에 3배 가까운 활동비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 지난 7월부터 활동비를 꼬박꼬박 챙겨온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7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이 BPA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항만위원들은 지난 5월17일 정기 회의에서 비상임항만위원에게 활동비와 회의 출석비, 여비 등을 지급할 수 있도록 운영규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회의 수당으로 50만원을 받아 온 10명의 비상임 항만위원들은 지난 7월부터 활동비를 보태 매달 1인당 200만원의 수당·활동비를 챙겼다. 1년치로 환산하면 2억 4000만원의 정부 예산이 비상근자인 이들에게 지급되는 셈이다. 올 1월 임기 2년의 위원으로 임명된 이들 위원은 9월 현재 정기회 포함 총 11차례 회의를 가졌다. BPA는 지난 7월부터 활동비를 지급하면서 예산이 없자 외부 자문료 등에 사용할 ‘지급 수수료’ 예산을 전용해 7월분 활동비를 8월13일 소급해서 줬고, 같은 달 정기 급여일인 8월20일에 또 8월분을 지급했다. 항만 관계자는 “당시 일부 위원들이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하는 다른 공기업 위원들은 월 활동비를 받고 있다.”며 “우리도 이들처럼 활동비를 받아야 한다고 강력 주장해 규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산하 같은 성격의 공기업인 인천·울산항만공사 및 컨테이너부두공단은 BPA처럼 활동비를 지급하지 않고 회의 참석 시 수당 50만원씩만 지급하고 있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장 의원은 “여비 등을 실비로 지급받고 있는데도 월 1~2시간 회의를 위해 다른 항만공사에 없는 활동비를 신설해 받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BPA 항만위원회는 BPA의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최고 기구로, BPA에 대한 견제·감시를 맡고 있으며 비상임 항만위원은 지난 1월 임명됐다. 지역 대학교수 등 학계 3명, 항만 이용자 대표 4명, 전문가 1명, 시민단체 1명, 회계사 1명 등으로 구성됐으며 임기는 오는 2012년 1월까지 2년간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두산중공업, 美 원전설비 6기 동시 출하

    두산중공업이 원자력발전 종주국인 미국으로부터 주문받은 원전 설비 6기를 동시에 출하했다. 두산중공업은 미국 시쿼야 원전 2호기에 설치될 증기발생기 4기와 아칸소 원전 2호기 및 워터포트 원전 3호기에 각각 설치될 원자로 헤드 2기의 제작을 마치고 창원공장 부두를 통해 출하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들 설비는 모두 노후 원전 교체용으로, 두산중공업이 아칸소와 워터포트 원전 설비는 2005년에, 시쿼야 원전 설비는 2006년에 각각 수주한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미국에 원전설비를 수출하는 것은 1999년 미국 시쿼야 원전 1호기의 증기발생기 수주 이후 6번째다. 두산중공업은 미국 와츠바, 아칸소, 팔로버디 등의 원전에 증기발생기, 가압기, 원자로헤드 등의 원전 설비를 공급해 왔다. 2008년에는 미국이 30년 만에 원전 건설을 재개한 후 발주한 신규 원전 6기에 들어갈 주기기를 두산중공업이 모두 수주했다. 김하방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향후 원전의 추가 건설이 예상되는 미국 시장에서 원전설비 제작업체로서 위상을 더욱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예산 삭감·공모 탈락… 전북 사업 잇단 ‘좌초’

    예산 삭감·공모 탈락… 전북 사업 잇단 ‘좌초’

    전북도가 각종 현안 사업 추진에 고전하고 있다. 전북의 가장 큰 현안인 새만금 예산은 반토막이 났고 LH본사 이전,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공모사업에서도 잇따라 실패해 행정력만 낭비했다는 지적이다. 6일 도에 따르면 내년도 새만금 관련 예산으로 4개 분야 22개 사업에 5177억원을 요청했으나 정부 심의액은 49.8%인 2581억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수질개선 분야의 경우 하수관거 정비 등 10개 사업에 2002억원을 요청했으나 37.1%인 742억원만 반영됐고 합류식 하수도는 274억원을 요청했으나 90억원만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포항간 고속도로 건설은 내년에 100억원이 반영돼야 실시설계를 시작할 수 있지만 한푼도 계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북의 최대 숙원인 새만금 내부개발이 지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북혁신도시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LH본사 이전은 경쟁지역인 경남도가 정치권 등과 함께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는 것에 비해 분산유치 원칙만 고수한 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가 LH본사 유치를 사실상 포기하고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도 가시화되지 못하고 문서상으로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더구나 올 들어 참여했던 정부의 각종 공모사업에서는 잇따라 실패해 도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익산에 유치하려던 수출형 원자로사업은 타 지역에 비해 경쟁력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내세웠으나 쓰라린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남원시에 유치하려던 국립산악박물관 공모에서도 탈락했다. 이 밖에도 새만금지구에 유치하려던 국제상품거래소와 동북아개발은행, 크루즈 전용부두 건설계획도 무산됐다. 이같이 전북도의 현안 사업들이 잇따라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은 실현 가능한 치밀한 기획 없이 무모하게 의욕만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도정 지휘부가 현 정부의 눈에 거슬릴 것을 우려해 지나치게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도 전북도가 제 몫을 찾지 못하는 주요인이라는 여론이 높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北, 中에 동해 열어준다

    北, 中에 동해 열어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창(창춘)-지(지린)-투(두만강 유역) 선도구 개발계획’과 북한의 북동지역 개발계획을 연계하는 방안에 대략적인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후 주석을 만나 북동지역에 대한 중국의 투자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30일 베이징의 한 대북 소식통이 밝혔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창지투 개발계획과 북한의 나선특별시 개발을 연계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간 이런 합의가 구체화되면 중국이 북한의 나진항 등을 이용, 동해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제시한 동북지역 진흥계획은 매우 정확하다.”면서 “경제발전과 민생 개선을 위해 중국과 교류협력을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번 방중 기간 지린성 등의 산업시설을 시찰하는 자리에서 “동북지역의 거대한 변화에 큰 감동을 받았다. 중국의 방법과 경험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며 중국 동북3성과의 협력 필요성을 밝혔다. 한 소식통은 “북한과 중국이 이번 방중을 협의하면서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고 전한 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구상을 확정하기 전에 해당 지역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창춘, 지린, 두만강유역을 모두 둘러봐 달라는 중국 측 요청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이미 나진항 1호부두 10년 사용권을 획득한 상태로, 부두 규모가 작고 기간이 짧아 사용권 확대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두 정상 간 합의에 따라 김 위원장이 귀국하게 되면 양국 실무진 사이에 구체적인 협력방안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 진흥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창지투 선도구 개발계획’을 지난해 확정한 중국은 계획 성공의 핵심인 동해출항권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설득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며 난색을 보이는 등 의견차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중앙방송(CCTV)과 신화통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등 양국 언론들은 김 위원장이 지린성 투먼(圖們)을 통해 귀국한 직후인 오후 7시(현지시간) 일제히 이번 정상회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지난 27일 지린성 창춘 난후(南湖)호텔에서 정상회담 및 만찬을 가졌다. 정상회담에서 후 주석은 ▲고위급 교류 지속 ▲경제협력 확대 ▲전략협의 강화 등을 건의했고, 김 위원장은 이를 적극 지지했다. 김 위원장은 또 “중국과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숙한 시일 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중국 측은 후 주석 초청형식으로 진행된 김 위원장의 이번 비공식 방문에서 후계자로 거론되는 3남 김정은의 동행 여부에 대해 “명단에 없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 조(북)·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들에게 잘 넘겨주는 것은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라면서 “대를 이어 조·중 친선을 계속 강화·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후계구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의 지속적인 지지와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을 태운 전용 특별열차는 이날 오후 6시45분 투먼을 통해 북한의 남양으로 건너가 4박5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무리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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