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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따라 맛 따라… 섬진강 3美3味

    꽃 따라 맛 따라… 섬진강 3美3味

    해마다 이맘때면 섬진강 주변 마을마다 꽃 잔치가 열립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산수유꽃이 노란 제 빛깔을 자랑하고, 광양에서는 매화가 고절한 자태를 선보이지요. 경남 하동에서는 봄철 한때 잠깐 수확되는 차들이 싱그러운 연둣빛 여린 싹을 틔워냅니다. 먹거리도 덩달아 풍성해집니다. 겨우내 섬진강 끝자락의 기수역에 웅크리고 있던 참게들이 소상하기 시작하고, 재첩잡이도 기지개를 켭니다. 여기에 그윽한 하동 녹차로 입을 씻는다면 봄날의 여정으로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지금 섬진강에 가시면 꽃과 맛이 함께합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지요. 섬진강에 흩뿌려지는 꽃비를 맞으려면 서두를 일입니다. ●노란 산수유꽃과 시원한 참게탕 최근 ‘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가 여수 등 16개 지역의 숙박·음식·쇼핑분야 지정업소 393곳을 선정, 발표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구례에서 하동에 이르는 19번 국도 주변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의 참게 명산지 중 한 곳이 19번 국도와 나란히 흐르는 섬진강 주변이다. 봄이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서식하던 참게들이 ‘봄물에 방게 기어나오듯’ 섬진강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낸다. 덩달아 수많은 식객들도 제철 맞은 참게탕을 맛보기 위해 섬진강 줄기 따라 몰려든다. 구례 사람들은 이맘때 참게를 ‘영등게’라 부른다. 음력 2월을 뜻하는 영등철에 잡히는 참게를 이르는 말이다. 다리마다 살이 꽉 차서 단단하고 특유의 향기가 몸통에 가득하다. 참게는 주로 탕으로 먹는다.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인 물에 섬진강변에서 잡아 올린 참게와 겨우내 말린 시래기 등을 넣고 끓여낸다. 여기에 무와 호박, 토란줄기, 고사리 등을 곁들이는데, 걸쭉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이 압권이다. 중독성이 있다고 할 만큼 밥을 다 먹고도 계속 손이 갈 정도다. 구례 읍내에서 곡성 쪽으로 향하는 섬진강변에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지리산회관 (782-3124), 노고단식당(782-2171), 노고단산장(782-1877, 이상 지역번호 061) 등이 그 중 유명한 참게탕집들이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참게 한 마리가 1만원에 달하는 만큼 참게탕값도 녹록지는 않다. 3만~5만원 선. 이맘때 구례의 으뜸가는 볼거리는 산수유꽃이다.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기댄 산동면 상위마을은 산수유꽃 감상 1번지. 만복대 자락에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이 산수유 군락과 어우러져 영락없는 풍경화를 그려낸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꽃멀미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다. 계천리 현천마을은 ‘사진발’을 잘 받는 곳이다. 마을 입구의 현계정을 지나면 돌담을 두른 밭고랑마다 산수유꽃이 내려와 외지인을 반긴다.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계척마을도 나름의 정취가 있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떨어져 있다. ●고절한 매화와 재첩의 쌉쌀한 맛 구례를 지난 섬진강은 하동땅을 지나고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한껏 그 폭을 넓힌다. 바로 이쯤부터, 그러니까 섬진강이 광양만 바닷물과 몸을 섞는 하류의 사질 토양에서 재첩이 익어간다. 쉽게 말해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져야 재첩 맛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기수역 위쪽 지역에도 재첩이 서식하고는 있지만 어민들의 손길이 이르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재첩은 벚꽃이 필 때쯤 잡기 시작한다. 국과 회무침, 전 등이 재첩 요리 삼총사로 꼽힌다. 비타민과 칼슘, 철분 등 영양소가 풍부해 건강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청송회식당(883-2485)과 혜성식당(883-2140)은 이십년 넘는 라이벌 맛집이다. 1990년대 화개장터 맞은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열었는데, 현 위치로 이사온 뒤에도 공교롭게 대문을 마주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부흥재첩식당(884-3903)과 하옹촌(883-8261), 부두횟집(883-8288), 금양가든(884-1580, 이상 지역번호 055) 등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재첩회덮밥 1만원, 재첩정식 7000원 선. 예년보다 보름가량 늦게 핀 섬진강변 매화는 지금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섬진강변의 첫손 꼽히는 매화 명소는 전남 광양의 청매실농원.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 답동마을에서 청매실농원을 거쳐 염창마을에 이르기까지 20여개의 크고 작은 매화마을마다 하얀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하동땅 매화도 아름답기로 치자면 광양에 못잖다. 특히 광양 청매실농원과 마주한 흥룡마을과 먹점마을 등이 소문난 매화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흰 점을 찍어 놓은 듯 새하얀 매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특히 산골짝 먹점마을 매화는 여백의 미를 한껏 드러낸 수묵화와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마음이 키운 찻잎과 녹차의 정갈한 맛 하동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가 야생 차밭이다.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진 화개면 일대엔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야생차 재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동의 야생차밭에서 보성이나 제주 등의 일렬로 나란한 풍경을 기대하지는 말자.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지 않은, 말 그대로 야생차가 산기슭을 따라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거칠다. 바위틈에서 자라기도 하고, 별스럽게도 발품 팔아야 하는 산 중턱에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요즘 갈수록 줄어드는 ‘찻잎 따는 할머니’들의 애면글면한 수고와 마음이 없다면 맛보기도 쉽지 않을 지경이다. 이제 곧 차 애호가들의 ‘로망’ 우전차(곡우 전에 따는 차)가 나올 터다. 김정옥 관아수제차 대표가 “긴 겨울을 지나고 첫 수확한 찻잎을 덖을 때면 손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그 향기에 환장한다.”고 한 바로 그 차. 제아무리 산해진미가 유혹해도 차 한 잔 들어갈 여유는 남겨 둬야 하는 이유다. 다만 지난겨울 유난히 추워 빨갛게 타버린 차나무가 곳곳에 눈에 띈다. 예년에 견줘 우전차 값이 치솟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제16회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오는 5월 4~8일 화개면과 악양면 녹차마을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3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축제로 선정한 축제다. ‘섬진강 달빛차회’ ‘대한민국 차인 한마당’ 등 프로그램으로 알차게 꾸며졌다. 화개지역은 한국 3대 차 생산지이면서도 찻집이 드물다. 차를 시음하고 구입하는 차 가게는 많아도 여유 있게 차를 즐길 공간은 흔치 않다. 산유화(884-5262)와 다우찻집(883-0765, 이상 지역번호 055) 등이 정갈하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향하는 길에 있다 ●여행수첩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익산분기점에서 익산포항간고속도로를 탄 뒤 전주나들목을 지나 완주분기점에서 새로 난 완주순천간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구례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산수유와 만난 뒤 하동, 광양 순으로 돌아본다. 잘 곳:수류화개는 화개천을 내려다보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한옥 펜션. 화개장터에서 5분 거리다. 총 6채가 별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6채 모두 편백나무와 전나무 등을 이용해 못질 한번 없이 전통한옥 건축방식대로 지어졌다. 수려한 풍경 만큼이나 주인장의 입담도 화려하다. 10만~35만원. (055)882-7706. 글 사진 구례·하동·광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LNG 생산기지의 24시간 작업현장

    LNG 생산기지의 24시간 작업현장

    대한민국에서 하루 동안 쓰이는 액화천연가스(LNG)는 13만 ㎘.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에는 이보다 1.2배 많은 가스가 사용됐다. 최근 들어 LNG 가스 사용량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가 사용하는 LNG 가스는 가스 생산국으로부터 통영, 인천, 평택의 가스 기지로 수입된 뒤 커다란 가스 탱크에 저장돼 공급된다. 6일 밤 10시40분부터 방영되는 EBS ‘극한직업’은 영호남 지역권의 가스 공급을 책임지는 통영의 가스 생산기지의 작업 현장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한다. 영하 160도의 초저온 LNG로 인한 동상의 위험과 맞서며 24시간 비상근무에 돌입하는 가스 생산기지의 숨 막히는 작업현장. 근무자들은 모두 이른 아침부터 들어올 가스 선박의 부두 접안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들어오는 LNG 선박의 한쪽 면을 네 대의 예인선이 둘러싸면 두꺼운 줄을 내리고 본격적인 선박 접안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선박의 앞뒤에 각각 한 대의 예인선이 방향을 잡아주고, 측면에서 두 대의 예인선이 배를 천천히 밀어주는 이 작업에서 선박의 측면을 밀어주는 두 대의 배는 8만t의 육중한 LNG 선박에 깔릴 위험이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 LNG 선박의 부두 접안이 완료되면 두 공간을 이어주는 철탑 다리를 내려 본격적인 LNG 하역 준비가 이루어지게 된다. 각 작업과정에서 1분, 1초도 지연되지 않도록 철저한 시간계획을 짜는 것을 시작해 선박의 송출배관과 부두의 하역배관인 ‘암’을 연결, 12시간의 긴장된 LNG 작업이 시작 된다. 14대의 LNG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는 통영 가스 생산기지. 매년 늘어나는 LNG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이곳에서는 현재 세 개의 탱크를 더 건설하고 있다. LNG의 온도 보존을 위해 외벽과 내벽의 이중 구조로 만들어지는 이 탱크는 장충체육관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이다. 내벽은 영하 160도의 초저온 온도를 견뎌내도록 9% ‘니켈강’이라는 특수 철판을 사용해 만든다. 외벽은 75㎝ 두께의 콘크리트로 제작된다. 천장과 외벽 천장의 사이에는 가스 온도 보존을 위한 보냉재가 2000개 정도 들어간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인천 “매년 20% 성장” vs 부산 “물동량 7배 많아”

    인천항이 선석 100개를 돌파하면서 전국 최대 항만인 부산항에 도전장을 내밀고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물동량은 부산항이 앞서지만 성장세와 항만 운영 첨단화 등을 내세워 우리나라 최초 개항지(1883년)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4일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 1일 북항에 2만t 규모 2개 선석이 개장됨에 따라 인천항에서 운영되는 선석은 100개에 달하게 됐다. 인천항은 수년 전부터 내항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북항, 남항, 송도신항으로 영역을 넓혀 가며 도약기를 맞고 있다. 인천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190만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단위)로 2009년 157만 TEU에 비해 20% 늘어나 개항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물동량도 2005년 100만 TEU를 달성한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가 닥친 2009년을 제외하고 매년 20%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항만 구조조정을 통해 운영 효율화 및 선진화도 꾀하고 있다. 내항은 청정화물, 북항은 조악화물(Dirty Cargo·누출 우려가 있거나 악취·분진이 발생하는 화물) 처리로 부두별 기능을 특화했다. 따라서 현재 내항에서 취급하고 있는 사료부원료를 비롯해 고철·원목·잡화 등은 2015년까지 북항으로 모두 이전해 처리한다. 운영 효율을 위해 세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CIQ기관 합동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했다. 내항은 논란이 되고 있는 재개발에 대비, 고부가가치 청정화물 전담 항만으로 전환하기 위해 타깃 화물별 시장분석은 물론 화주를 대상으로 다양하고 공세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부산항(163개 선석)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1419만 TEU. 인천항의 7배가 넘는 수치다. 하지만 인천항의 컨테이너 화물이 전체 화물의 21%인 반면 부산항은 95%를 차지한다. 또 부산항의 성장세는 인천항에 비해 뒤떨어진다. 2003년 처음으로 1000만 TEU를 기록한 이후 연간 증가율이 대체로 5%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항만에서 부산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80%에서 2005년 77%, 2008년 75%, 2010년 73%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부산항이 ‘항만 맹주’의 자리를 쉽게 내줄 것 같지는 않다. 환적화물과 물류기능 확대에서 살길을 찾고 있다. 전체 물동량에서 환적화물이 차지하는 비율을 현재 45%에서 2020년까지 50%로 늘린다는 복안이다. 또 신항 개발과 함께 배후물류단지(660만㎡)를 조성, 다국적 기업을 유치해 고부가가치의 물류 기능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수출량 증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본·중국·미주로 가는 환적화물을 늘리고 신항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부산항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독도 경비대원 “뱃삯 너무 비싸요”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발표로 독도가 또 한번 홍역을 앓은 가운데 경찰 등 독도를 지키고 있는 경비대원들의 뱃삯이 도마에 올랐다. 울릉도 현지 주민들은 연안 여객선 최고 운임제 시행에 따라 1만원이면 섬과 육지를 오갈 수 있지만 이들은 11만원이 넘는 뱃삯을 물고 있다. 이들에게도 할인 혜택을 줘 사기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경북도와 울릉군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 3월 1일부터 제주 및 육지와 연결된 연륙 도서를 제외한 울릉도 등 전국의 255개 섬 주민을 위해 연안 여객선 최고 운임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도서민들이 섬과 육지를 오갈 때 이용하는 여객선 운임 중 5000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액 국비 등으로 지원해 주는 제도다. 그러나 울릉도와 독도에 상주하는 군인·경찰 등 경비대원들은 울릉 주민과 달리 여객선 최고 운임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지역에 상주하는 장병과 경비대원은 대략 300~400명 정도. 혜택에서 제외된 건 섬 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법(제6조 2항)상 군인(일반 사병)들은 군부대 전입 신고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정기 및 위로휴가 때만 국방부와 경찰청, 울릉도 취항 여객선사가 제공하는 뱃삯을 지원받을 뿐 청원·경조 휴가 및 외박 시에는 섬과 육지 왕복 뱃삯 11만 6100원(일반실 기준)을 고스란히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털어 부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는 정기·위로 휴가를 제외한 다른 휴가 때는 집에 한번 다녀오는 데 뱃삯을 포함해 20만원이 넘게 들어 휴가를 아예 포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같은 도서 지역인 백령도에 근무하는 장병의 부모들은 면회를 위해 육지와 섬을 오갈 때 뱃삯 할인 혜택을 받지만 울릉도는 예외다. 인천시와 옹진군은 면회객 등이 인천 연안부두여객터미널~백령도 배편을 이용할 경우 뱃삯의 50~80%를 할인해 주고 있다. 독도경비대 관계자는 “최근 독도 문제가 또 화두가 된 마당에 이를 지키고 있는 경비대원들의 복지와 사기를 올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北주민 27명 50일 만에 송환

    北주민 27명 50일 만에 송환

    지난달 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온 북한 주민 27명이 27일 오후 북측으로 송환됐다. 남하한 지 50일 만이다. 이들은 오후 12시 55분쯤 서해 연평도 인근 NLL에서 자신들이 타고 내려온 선박(5t급 소형 목선)으로 귀환했다. 우리 해경정은 북한 주민 27명을 태워 NLL 인근에서 이들이 타고 온 선박으로 옮겼으며, 북측에서는 경비정 한척이 나와 선박을 인도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이들이 표류해 내려온 NLL 상 지점은 북위 37도 41분 25초, 동경 125도 36분 57초다. 27명은 오전 8시 9분쯤 그동안 머물던 인천해역방어사령부 내 부두에서 2척의 해군 함정을 타고 연평도 인근 해역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해군 측이 제공한 버스에서 내려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우리 측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함정으로 이동했다. 군시설 보안 때문인 듯 이들은 버스에서부터 함정으로 이동하는 동안 눈에 회색빛 안대를 했으며, 표류 때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옷을 입는 등 각각 다른 복장을 했다. 정부는 이들을 지난 17일 오후 서해 상으로 송환할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타고 온 선박이 고장 나면서 송환 일정이 열흘이나 미뤄졌다. 북한 주민 31명(남성 11명, 여성 20명)은 지난달 5일 연평도 인근 서해 NLL을 넘어 왔으며, 정부는 이들이 단순 표류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31명 가운데 나머지 4명(남성 2명, 여성 2명)은 귀순을 희망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귀환 중 침몰 의사자 지정 아직도 안 돼”

    “귀환 중 침몰 의사자 지정 아직도 안 돼”

    “국가의 요청으로 의로운 일에 나섰다가 희생된 분들이 이렇게 잊혀지는 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 당시 실종 장병 수색에 참여했다가 인천 옹진군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된 어선 ‘금양 98호’ 희생자 7명 유족들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고 이용상씨의 동생이면서 유족 대표로 나선 원상(44)씨는 “정부가 금양호 선체에 대한 수색을 포기해 선원들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면서 “이후에도 계속되는 당국의 무관심에는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불만은 무엇인가 -당시 선원들은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생명을 걸고 나섰다가 희생됐는데도 천안함 용사들에 비해 너무 빨리 잊혀진 존재가 돼 버린 것 같아 아쉽다. 정부와 언론, 정치권에서 금양호 사건은 잊혀지고 유족들만 외롭게 의사자(義士者) 지정을 부르짖는 꼴이 됐다. →의사자 지정이 안 되는 이유는 -정부는 금양호가 천안함 수색 작업을 중단하고 조업 장소로 이동하던 중 침몰됐다며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해역 해저가 험해 그물이 찢기는 등 더 이상 수색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수색 참여를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 의사자 지정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쟁점 법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계류 중이다. 다음 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해 본다.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추진했는데 -위령탑 건립에도 당국이 말만 앞세우고 실행하지 않아 유족들의 속을 태웠다.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 주지 않아 민간인 독지가가 사비를 털어 건립하는 형편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쨌든 위령탑은 다음 달 2일 인천 연안부두 옆 해양공원에서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지방시대] 산복도로를 아십니까?/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지방시대] 산복도로를 아십니까?/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국어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독특한 곳이 부산에 있다. 산복도로가 바로 그것이다. 시내 전역 산비탈 65㎞에 걸쳐 있는 이 산복도로는 부산의 지형 특성과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발달해 왔다. 부산이 산을 등지고 바다와 마주보고 있는 ‘배산임해’(背山臨海) 지형이어서 산등성이에 주거지역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멀리는 식민지시대 부두노동자들의 거주지로, 가깝게는 한국전쟁기에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의 거처로 쓰이면서 종횡으로 넓게 주거지가 발달했고, 이들 지역을 좌우로 연결하려고 도로가 형성됐다. 부산역에서 바다를 등지고 산을 올려다 보면 언덕배기에 촘촘히 들어선 집들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원도심의 산복도로는 연장 35㎞에 4개의 큰 산을 둘러싸고 이어져 있다. 이 원도심 산복도로 주변에는 30여만명의 주민이 가파른 계단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집들을 의지해 살고 있다. 영락없는 고지대다. 혹자는 ‘서민의 마천루’라 부르며 그 궁박함을, 또 다른 사람은 ‘항구도시의 성채(城砦)’라 부르며 경관적 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산사람 누구도 이 산복도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토박이를 제외하고 1960~70년대 대규모 이농으로 부산으로 전입한 많은 세대의 첫 거주지가 대부분 산복도로 주변인 경우가 많았다. 아마 집값이 싸고 텃세가 비교적 덜하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한국의 산업화를 부산이 이끌던 시절에 부산으로 몰려든 수많은 신발·봉제공장의 근로자들의 부담 없는 주거지가 바로 이 산복도로 언저리였다. 도심으로 내려와서 이것저것 해 보다가 잘 안되면 다시 이곳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서 산복도로를 노래한 어느 시인은 “부산사람의 시작이자 끝이 산복도로”라 했다. 이 산복도로는 이제 지난 60여년 동안 한국전쟁, 근대화,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서민들을 넉넉히 품고 애환을 달래주던 그 역할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은 가파른 계단, 낡은 집, 방범문제 등을 호소하고 있으면서도 이웃 간의 인정, 공동체 유대감 등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다. 르네상스가 복고와 인간성의 결합적 의미라면, 이곳이야말로 르네상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헐벗고 굶주리며 전국에서 피란 온 사람들을 넉넉히 품어 안았던 그 시절의 포용력을 다시 떠올려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또 이곳에도 예외 없이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원주민을 내모는 방식보다는, 아직 끈끈한 이웃 간의 정을 살리는 인간중심, 마을중심의 도시 재생을 해 보자는 것이다. 공간, 문화, 생활재생을 기치로 한 주민중심의 마을 만들기다. 이제 이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스스로 일어서려는 ‘자력수복형’의 르네상스 사업에 국가는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부산은 국가존망의 위기 때 국가와 피란민을 감싸안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도시계획은 엉망이 되고, 원도심의 쇠락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는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부산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주민중심의 마을만들기 운동에 국가가 대답해야 할 명백한 이유다.
  • 부산시, 日에 3억 상당 구호품 전달

    부산시, 日에 3억 상당 구호품 전달

    부산 지역 자치단체와 대학, 종교계가 대지진 등으로 고통을 겪는 일본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부산시는 18일 담요 5000장(1억원 상당)을 비롯해 3억원 이상의 구호물품을 부산과 일본을 왕래하는 정기 화물선인 선스타드림호(1만 3000t) 편으로 후쿠이현 쓰루카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성금 모금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물품을 전달하는 것은 부산시가 처음이다. 부산시는 이날 오후 1시 부산항 제1부두에서 이기우 부산시 경제부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품 전달식을 했다. 선스타드림호는 오후 3시 부산항을 떠나 19일 오전 10시 후쿠이현 쓰루카항에도 도착할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서울 내진설계율 8.7%… 전국평균 이하

    서울 내진설계율 8.7%… 전국평균 이하

    서울 시내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낡은 건물이 많은 동대문구(4.8%)와 중구·종로구(평균 내진설계율 6%)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강남구(24%) 등은 두 곳보다 4배쯤 튼튼한 건물을 지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보다 오히려 비율 떨어져 서울시는 일본 대지진 피해를 계기로 공동 주택 등 지진 피해가 우려되는 각 분야의 위험 요인을 찾아내 내진 계획을 서둘러 진행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서울 시내 건물의 내진설계 비율은 이날 기준 8.7%로 전국 평균 16%보다 낮은 수준이며, 2009년 말 9.8%보다 오히려 1%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는 3층 이상, 총면적 1000㎡ 이상인 건축물(2005년 기준 마련) 65만 8298채 가운데 내진설계를 갖춘 건물은 5만 7008채로 8.7%에 불과하다. 내진설계 비율은 신축 건물이 많은 강남구(24%)와 송파구(22%), 서초구(19.9%) 등이 높은 반면에 오래된 건물들이 밀집한 중구(5.9%)와 종로구(6.2%), 용산구(6.4%) 등은 낮다. 그만큼 지진 등에 취약한 것이다. 2005년 이전까지 건축법에는 내진설계 기준이 ‘6층 이상 10만㎡ 이상 건축물’로 규정돼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다. 아울러 이 규정이 정해지기 전인 1987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는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별개로 1992년 이전에 지은 시내 아파트 10가구 중 7가구는 내진설계가 안 돼 지진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부두완 전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강남구의 경우 1992년 이전에 건설된 아파트 4만 425가구 중 14.5%, 송파구 22.7%, 노원구 26.4%, 양천구 37%만이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다행히 이후 건설된 아파트는 97%가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학교는 2450곳 가운데 16%인 393곳만 내진설계가 돼 있어 사실상 지진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권창주 서울시 건축기획과장은 “지난해 10월 한국지진공학회에 연구용역을 줘 건축물 내진설계 보강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일본의 경우 지진 대비책 마련을 위해 실·국 단위 조직이 있지만 우리는 팀단위조차 대응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5~8호선은 내진 1등급 지하철과 도로, 교량 등 도시시설물도 강도가 높은 지진에 견디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도시철도 전체 335.9㎞ 중 내진 성능을 갖춘 철도는 234㎞로 69.7%에 불과하다. 2000년 이후 개통한 지하철 5~8호선은 내진 1등급 성능을 갖추고 있지만 그 이전에 개통한 서울지하철 1~4호선 143㎞ 구간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구간은 15.8㎞에 불과하다. 시는 지하철 1~4호선에 대해 연차적으로 내진 성능을 보강할 계획이다. 일제시대 때 축조된 한강철교의 교각과 교량 받침 모두 내진 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지적됐다. 올해 국토해양부와 철도시설관리공단은 한강철교 등 2개 교량에 40억원을 투입해 내진 성능을 보강하고, 향후 1000억원을 투입해 나머지 교랑에도 내진 보강을 완료할 예정이다. ●공공하수처리장 4곳 모두 대비 미흡 상수도시설 중 수도시설은 98.3%가 내진 성능을 갖추고 있지만 공공하수처리시설 4곳은 모두 내진성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특히 재난과 전쟁 등 위급 상황이 발생해 상수도 공급이 중단됐을 경우 시민들이 최소한의 음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비상 급수시설은 지난해 7월 기준 인구대비 급수율 69%를 확보, 1282곳에서 18만 514t을 공급할 수 있다. 급수율은 1인당 식수 9ℓ와 생활용수 16ℓ 등 하루 25ℓ다. 민방위 대피시설은 3919곳으로 인구대비 266%를 확보하고 있다. 대피시설은 10시간 이내에 대피할 수 있는 시설로 도시인구를 기준으로 3.3㎡당 4인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나와 통일] (3) 양영희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나와 통일] (3) 양영희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나는 재일교포 2세다. 오사카에 살고 있고 어릴 때 조총련계 북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1971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오빠 셋을 북한으로 보냈다. 그때는 북한이 지상낙원인줄 알았으니 아들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오빠네 가족들을 만나러 평양에 갈 때마다 가족들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굿바이, 평양’은 1995년부터 13년 동안 평양을 오가면서 찍은 영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통일이 돼서 남북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한국, 일본,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 체제의 안정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문제를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는 것은 북한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평양에 있는 오빠네 가족들은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생필품과 먹을거리, 엔화가 없으면 생활이 거의 어렵다. 북한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진짜 목소리도 없다. 나는 평양에 갈 때마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나오는 장군님 찬양공연을 본다. 13년간 내용은 똑같다. 나는 평양에 있는 동안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 나는 영화 개봉 때문에 한국을 여러번 갔다 왔다. 이어진 땅에서 같은 한국말을 하고 같은 김씨, 박씨가 살고 있는데 남한 사람은 푸짐하게 먹고 북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서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한반도의 절반, 너희들 그냥 참고 살아.”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통일은 잔인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분단된 지 워낙 시간이 많이 흘러 과격한 방법으로 통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되어야 한다. 통일이 어렵다면 이메일이나 전화, 편지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선택권이 없이 북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관심은 무책임이나 다름없다. 일본 사람들은 남북의 통일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북한은 무섭다거나 밉다는 거부감이 강하다. 간혹 독일 통일 얘기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 한국이 10년은 고생하겠지. 북한은 동독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니까 더 힘들지 않겠어?”라고 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그냥 놔둘 순 없다. 일본에서도 북한에 간 사람이 많다. 1959년 북송사업을 시작으로 9만명 이상을 보냈다. 당시 자이니치(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것은 일본도, 남한도 아닌 북한이었다. 나의 오빠들이 북한에 갔을 때 나는 여섯살이었다. 당시에 부두에서 만경봉호를 탄 오빠들을 배웅하면서 손을 흔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빠들을 보낸 기억이 개인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나는 시대적인 흐름을 목격한 목격자가 됐다.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목격자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2006년 ‘디어, 평양’이라는 영화를 개봉한 이후 나는 북한에서 입국 금지조치를 당했다. 북한 정부는 나에게 사죄문을 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식적으로 낙인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죄문 얘기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제도나 권력자에 대한 혐오감이 그 땅에서 사는 보통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나라가 싫다고 해서 사람까지 미워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요즘 이집트, 리비아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북한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모른다. 북한사회가 좀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만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폭력적인 방법은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만 안 되면 좋겠다. ●약력 ▲47세 ▲도쿄 조선대학교 ▲뉴욕 뉴스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미디어연구과 석사 ▲‘디어 평양’(2006)으로 선댄스국제영화제 다큐 월드시네마 심사위원 특별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 등 수상
  • 낙도항로 민영화 딜레마

    낙도항로 민영화 딜레마

    정부가 50년 넘게 시행해 온 낙도보조항로 운영을 민간업체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자 섬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절감한다는 차원이지만, 민영화할 경우 운임 인상이 예상되기에 낙도 주민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7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인천지역 3개 낙도보조항로를 포함한 전국 25개 낙도보조항로를 일반항로로 전환한다는 방침 아래, 낙도보조항로를 운영하는 전국 6개 지방해양항만청별로 이달 중순까지 일반항로 사업자 모집공고를 내기로 했다. 낙도보조항로란 사업 채산성이 없어서 민간이 취항을 기피하는 항로에 정부가 국가 소유 선박을 투입하고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1956년부터 도서지역 해상교통 확보를 위해 운영해온 제도로, 현재 25개 항로에 26척이 운항 중이다. 이에 비해 일반항로는 해운업 면허를 받은 일반 사업자가 자가 선박으로 항로를 운영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낙도보조항로 선박 1척당 연간 2억∼3억원씩 투입되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채산성이 호전된 항로에 대해서는 일반항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천에서는 연안부두∼대난지도, 덕적도∼울도, 석모도∼서검도 등 3개 항로가 낙도보조항로로 지정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이들 항로에 7억 1199만원의 선박 운영비를 지원했다. 이들 항로는 이용객이 적어 보조금 없이는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해가 갈수록 낙도보조항로 적자폭이 커져 지원액이 2000년 56억원, 2005년 71억원, 2010년 82억원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낙도보조항로가 일반항로로 전환되면 정부 지원금이 끊겨 선박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운임이 대폭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 주민 박모(52)씨는 “정부의 일반항로 전환 추진은 낙도 주민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며 “어떤 민간 사업자가 손해를 보면서 배를 띄우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측은 “운임이 오른다고 해도 도서지역 주민들에게 국가와 지자체가 일정액을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낙도 주민들은 대체로 생활이 안정돼 있지 않기에 적은 운임 인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나아가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섬을 찾는 외지인이나 관광객들의 운임 부담이다. 섬지역 소득 향상을 위해서는 관광 활성화가 필수적인데, 오른 요금은 관광객 등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민은 깊어 간다. 인천항만청 관계자는 “낙도보조항로가 일반항로로 바뀌면 운임이 당연히 오르게 되므로 섬지역 관광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모든 낙도보조항로가 일반항로 전환 대상은 아니며, 민간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는 항로에 대해서는 낙도보조항로 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아파트가 좋다고? 고향땅 밟으니 아픈 몸도 금세 다 나았어”

    “아파트가 좋다고? 고향땅 밟으니 아픈 몸도 금세 다 나았어”

    포격으로 폐허가 됐던 연평도 곳곳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깨져 널려 있던 유리 파편이 사라지고, 거리마다 나뒹굴던 쓰레기들도 말끔히 치워졌다. 피폭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는 잠시나마 묵을 수 있는 보금자리도 생겼다.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지어진 임시가옥이 그곳이다. ●“내 마을 내가 돌보니 정말 좋아” 4일 오전 10시. 연평도 남동쪽에 위치한 해경파출소 옆에서는 ‘취로사업’에 참여한 남부리 주민 99명이 부서진 건물 잔해 등 주변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취로사업은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됐다. 사업은 5월까지 이어진다. 인천시가 행정안전부로부터 2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연평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한 사람당 기본 5만원에 식대를 더해 5만 3000원을 일당으로 지급한다. “아파트든 뒤파트든 그게 무슨 소용이야. 고향 돌아오니까 이렇게 좋은데. 아프던 몸도 금세 다 나았어.” 취로사업에 참여한 조연화(81) 할머니가 밝게 웃으며 동료 할머니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옆에서 일하던 윤선비(74) 할머니가 “내 고향 내가 치우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라고 말을 받았다. 인천의 찜질방을 전전하다 없던 병을 얻고, 두고 온 집 걱정에 한시도 편하게 잠을 청한 적이 없었던 할머니들이 고향에 돌아오자 기운이 솟는 모양이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조 할머니는 6·25 때 연평도로 피란 와 연평도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남편을 만난 뒤 자식들을 낳아 길러 뭍으로 내보냈다. 60년 넘게 연평도에서만 살았다. 조 할머니는 “처음엔 아파트라고 해서 좋은 줄만 알았지. 그런데 가서 보니 남의 집에 산다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임시가옥이지만 친구들 있어서 행복해” “임시가옥에서 살아도 연평도에 오니 좋아요.” 지난 3일 오전 11시, 연평초등학교 4학년이 된 고성현(10)군이 인천연안부두에서 연평도행 코리아나익스프레스 여객선에 혼자서 탔다. 사흘 전부터 연평도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기상악화로 인천에 더 머물러야 했다. 연평도 포격으로 피란길에 오른 후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려서 부모가 따로 사는 탓에 할아버지·할머니 품에서 자랐지만 구김살이 없었다. 되레 맑고 검은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친구들 보러 빨리 가고 싶어요.” 성현이는 새 교과서, 새 담임 선생님과 새 교실에서 공부할 생각에 한껏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다. 포격으로 몽땅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현이는 가족들과 당분간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임시주택에서 살아야 한다. 할아버지·할머니·큰아버지·성현이 그리고 강아지 ‘가을이’까지 다섯 식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소중한 거처다. 전국재해구호협회가 국민 성금으로 지은 임시주택 39채에 포격으로 집을 잃은 32가구 69명이 입주했다. 머리를 감으려면 화장실 문을 열고 엉덩이를 쭉 빼야 할 만큼 좁고, 둘만 누워도 몸을 뒤집지 못할 정도로 협소하지만 성현이 가족은 오히려 감사했다. 할아버지 고영선(72)씨는 “우리를 위해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마련해 준 집인데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느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 성현이가 연평도에 도착한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성현이는 연평마트 앞 인조잔디 축구장으로 나가 반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뒤엉켜 놀았다. 구김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까불었다. ‘남의 동네’인 인천에서는 할 수 없었던 ‘놀이’였다. 올해 성현이의 가장 큰 소망은 빨리 새집이 생기는 것이다. 새집이 마련되면 아빠가 새 책상과 침대를 사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빠도 다시 볼 수 있다. 성현이는 “빨리 새집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가슴의 상처 빨리 치유됐으면…” “이웃들이 돌아오니 내 마음이 부자가 된 거 같아요.” 4일 오전 8시 30분 남부리 연평교회 맞은편. 이기옥(51·여)<서울신문 2010년 12월 22일자 1면>씨가 집을 나섰다. 요즘 매일 아침 9시면 두꺼운 점퍼를 세 겹이나 껴입고 집을 나선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취로사업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내 마을을 내 손으로 다시 세운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사람들 모두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큰데 상처는 여전히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북한의 포격 후 100일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기쁜 일은 해병대 연평부대에서 복무하던 아들 성기림(24)씨가 돌아온 일이다. 성씨는 포격으로 숨진 고(故) 서정우 하사의 해병대 입대 동기로, 지난달 10일 만기제대했다. 그간 이씨는 아들을 지척에 두고도 연평도 사태 이후 계속되는 비상근무로 얼굴을 보지 못해 속을 끓였다. 이씨는 “아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온 게 지난 100일 동안 내게 일어난 가장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면서 다시 빗자루를 들며 웃었다. ●주민들에 매달 5만원씩 지원 연평도 복구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날도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직원 11명을 파견해 연평도 곳곳의 전기선로 교체작업을 벌였다. 연평면사무소에 따르면 창문·창틀 교체작업은 99%, 대문·방문 교체작업도 98% 끝났다. 상수도도 수리를 신청한 228가구 중 199가구, 보일러는 171가구 중 160가구가 공사를 마쳤다. 난방용 기름도 차질 없이 공급돼 추위를 덜 수 있게 됐다. 또 올 1월 시행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으로 인해 이달부터 6개월 이상 거주한 주민은 매달 5만원씩 정주지원금을 받는다. 여기에다 올 7월 ‘서해 5도 종합발전계획’이 확정되면 노후주택 개량지원, 생필품 구매대금 지원 등 추가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경남 하동항, 무역항 지정…경북 강구항은 연안항으로

    경남 하동군 하동항이 무역항으로, 경북 영덕군 강구항이 연안항으로 각각 지정된다. 국토해양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항만법 시행령 개정안이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대통령 결재를 받아 다음 달 공포, 시행된다. 하동항은 원래 화력발전소 운영을 위한 부두시설로 출발했다. 지난해에는 363척의 내외항선이 입·출항해 1171만t의 화물을 처리했다. 경남에선 마산항 다음으로 많은 실적이다. 박준권 국토부 항만정책과장은 “내년쯤 갈사만·대송 산업단지가 인근에 준공된다.”면서 “조선 및 조선기자재, 금속가공 등의 화물처리가 늘어나 무역항 지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울릉도까지 최단거리 항로를 보유한 강구항은 관광객 수요 증가에 따라 연안항으로 지정된다. 울릉도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여서 새로운 연안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근 수산식품단지 및 농공단지가 2013년 준공되면 화물수송 수요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홀몸노인 말벗서비스] ‘나눔문화재단 서담賞’ 여수 개도우체국 이중열 집배원

    [홀몸노인 말벗서비스] ‘나눔문화재단 서담賞’ 여수 개도우체국 이중열 집배원

    남도 외딴섬에서 노인들의 말벗이 되고, 잔심부름에 집안일까지 거드는 집배원이 민간 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우체국 이중열(42) 집배원이 28일 ‘청소년을 위한 나눔문화재단’의 서담상을 수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일꾼을 찾아 격려하는 상이다. 여수에서 뱃길로 22㎞ 떨어진 섬 개도의 유일한 집배원인 이씨는 2001년 9월부터 섬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개도가 고향이어서 섬 주민 모두를 부모처럼 공경하고 형제처럼 아끼고 있다. 개도는 1000여명의 주민 가운데 무려 800여명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외지여서 버스나 택시도 다니지 않는다. 이씨는 자신의 승용차로 우편물을 배달하고 홀몸노인 등의 손발이 돼 주고 있다. 육지에서 보내 준 생필품이 부두에 도착하면 주소를 확인한 뒤 산동네 노인들에게 전달해 주고 노인들이 아프면 보건지소에 데려다 준다. 노인들은 텃밭에서 키우는 야채를 건네며 고마움을 대신한다. 이씨는 적은 월급을 쪼개 소년 소녀 가장에게 쌀과 학용품을 사주기도 한다. 또 퇴근 후에는 인터넷을 검색해 노인들에게 농사와 어업, 건강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특히 섬에는 기술자가 없기 때문에 농기계 수리는 그가 전문가 수준으로 도맡아 한다. 집배원이 아니라 만능 ‘슈퍼맨’인 셈이다. 전남체신청 홈페이지에 칭찬 글을 올린 개도 파출소장은 “2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보건지소에 밤낮으로 노인들을 승용차로 데려다 주고 있다.”면서 “노인들의 손과 발인데 이씨가 쓰러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동료 직원들은 “친절이 오래 전부터 몸에 배었고, 힘든 일인데도 웃음 한번 잃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업에 실패해 빚에 허덕이다 우연히 집배원이 됐다.”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도움을 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소말리아 해적, 삼호드림호 납치도 가담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던 소말리아 해적들이 삼호드림호 납치에도 가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서울신문 2011년 2월 2일자 1, 6면> 부산지검은 25일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석해균 선장에게 소총을 난사한 마호메드 아라이(23) 등 소말리아 해적 5명을 해상강도살인미수 등 혐의로 전원 구속기소했다. 또 선박 및 해상구조물에 대한 위해행위 처벌법(선박위해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아라이는 검찰 수사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랍 선원들과 작전 해군들의 진술, 아주대병원 의료진들에 대한 출장조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감식과 국방과학연구소의 총기발사 실험 결과 등을 근거로 아라이를 총격의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또 배후 세력과 관련, 해적들에게 고속보트와 무기, 식량 등을 제공한 현지 투자자가 ‘마하드 유수프’라는 제3의 인물이라는 해적들의 진술을 받아냈다. 다만 그 내용을 아는 두목과 부두목이 이미 사살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못했다. 검찰은 사살 또는 생포된 해적 13명 중 일부는 지난해 4월 삼호드림호 납치에도 가담했다는 위성통화상의 증거도 확보했다. 부산지법은 외국인전담 재판부인 형사5부(부장 김진석)에 사건을 배당하고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쯤 첫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해적 5명은 현재 수감돼 있는 부산주례구치소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재판를 받게 된다. 이들은 형이 확정되면 외국인 교도소가 있는 천안교도소로 이감돼 징역형을 살게 된다. 수감된 해적들은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간단한 한국말을 배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다 조사 일정에 빠진 해적은 교도관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한국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45년 전국투어 나서는 ‘젊은오빠’ 남진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45년 전국투어 나서는 ‘젊은오빠’ 남진

    그때 20살의 한 청년은 ‘서울 플레이보이’란 노래로 세상 무대를 처음 노크했다. ‘나는 못생겼지만/머릴랑 깎지 않고 수염마저 길렀지만/멋쟁이 서울 플레이보이’라고 했다.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울려고 내가 왔나/낯설은 타향 땅에 내가 왜 왔나.’라고 다시 한번 호소했다. 여전히 냉담했다. 오기가 생겼다. 이듬해 청년은 ‘가슴 아프게’라는 카드를 꺼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흐느끼듯 가슴속을 후벼 파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로소 통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그는 당시 톱스타 문희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사고(?)까지 쳤다. 하지만 청년은 불붙은 인기를 뒤로하고 훌쩍 떠나 버렸다. 어디로?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 청룡부대의 노래처럼 ‘월남의 하늘 아래~’에서 군 복무를 마친 청년은 귀국 직후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 무대를 열었다. 소문을 듣고 많은 여성 관객들이 찾았다. 공연이 끝날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빠, 오빠’를 외쳤다. 이날부터 청년에겐 ‘오빠부대 원조’, ‘콘서트의 원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절정은 30살 때 ‘님과 함께’였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고 요동을 치며 읊었다. 젊은 남녀들에게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상징하듯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그는 우리나라 가요 45년사를 관통하면서 빅스타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었다. 블루스와 트로트를 비롯해 왈츠, 차차차, 트위스트 등 장르를 뛰어넘는 천부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특유의 무대 동작으로 변함 없는 국민 가수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또 한번 대형 사고를 친다. 가수 남진(66)씨. 다음 달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나선다. 그것도 신곡 세 곡을 들고 확 달라진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과 만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노래 인생 2막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더 ‘젊어진 오빠’의 모습으로, 정열의 무대를 꾸미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교대역 인근에 있는 ‘차태일 뮤직 스튜디오’. 남씨는 공연을 앞두고 열심히 녹음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흔들고 손동작과 미소를 지으며 역동적으로 노래를 불러댄다. 라이브 공연에 맞춰서인지 국민 애창곡 ‘님과 함께’는 더 빠른 템포로 편곡됐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이 덩실덩실 움직이게 했다. 신곡 ‘잘가라 청춘아’도 불렀다. 노랫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속절없는 청춘아/가거든 혼자 가지/아무도 모르는 샛길로 찾아와 나까지 데려가나/그래도 괜찮다 고맙다 청춘아~’ 4분의4박자 빠른 리듬풍의 노래다. ‘둥지’ 등으로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차태일씨가 얼마 전 작곡했다. 그렇게 30여분. 녹음을 마친 남씨와 마주 앉았다. 6년 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젊어졌다고 했더니 “그때는 살이 많이 쪘었다. 지금은 12㎏이나 빠져 (몸 상태가) 아주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거듭된 질문. 젊어지는 비결이 무엇일까. “언젠가 노래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살이 빠지더군요.(웃음) 노래를 알면 알수록 더 노력하게 됐습니다. 무대에 서면 힘찬 박수를 받게 되거든요. 그런 노래의 힘, 팬들의 힘이 저를 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젊어지도록 열심히 해야겠지요.” 이번 무대도 그런 노래의 힘을 바탕으로 꾸몄다. 하여 의미 또한 남다를 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저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965년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시민회관에서 데뷔 곡을 불렀습니다. 또 1971년 첫 단독 공연을 가진 곳이 시민회관입니다. 또 그해 첫 가수왕상을 받은 장소도 시민회관이고요. 이번 무대가 40년 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갖는 셈입니다. 물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으로 명칭이 바뀐 다음에는 처음이지요. 2시간여 동안 신·편곡을 포함해 모두 30곡 정도 부를 예정입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곡은 가사에 느낌이 확 꽂혀 선택했습니다. 기대해도 괜찮습니다.” 그는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사랑하며 살 테야’라는 타이틀 곡으로 45주년 기념 음반을 제작했다. 지금까지 성원을 보내준 팬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겠다는 뜻을 옹골차게 담았다. 또한 노래 인생 1막의 완결편 음반이자 전국 투어를 계획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였다. 옛날 극장무대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어 전국의 광역시는 모두 다닐 예정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의 팬들로부터 신청 곡이 벌써부터 쇄도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주제가 ‘사랑’이나 데뷔 곡 ‘서울 플레이보이’ 등 당시 노래는 좋았지만 히트치지 못했던 곡들도 오랜만에 불러 보기로 했다. 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이번처럼 두 시간 동안 라이브로 30여곡을 부를 때, 아무리 자신의 노래라고 하지만 사람인 이상 가사를 잊어 버리지는 않을까. “무대 앞쪽에 설치된 모니터에 가사가 뜨긴 하지만 그걸 볼 수는 없습니다. 보면 몰입이 안 되거든요. 예를 들어 ‘둥지’만 하더라고 수천번 불렀는데 가사를 잠시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비슷하게 얼버무리면서 얼른 넘어갑니다. 또 감기나 몸살 기운으로 정신이 약간 멍할 때도 가사를 놓치는 경우가 있지요. 또 20~30대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 가면서 그런 일이 간혹 있습니다.(웃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역시 주저 없이 대답한다. “가수 데뷔 전에 닐 세다카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자주 들었지요. 공교롭게도 엘비스 프레슬리와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엘비스도 21살 때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부르며 인기를 끌었지만 곧 군 입대를 했습니다. 제대한 뒤에는 저와 비슷하게 영화 수십편에 출연했지요.” 남씨 역시 21살 때 ‘가슴 아프게’로 스타가 됐지만 곧 군 입대를 했다. 이후 자신의 노래를 영화화한 ‘가슴 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 ‘별아 내 가슴에’ 등에 출연했다. 그럴 때마다 헤어 스타일이나 몸동작 그리고 하얀 가죽옷에 금속 장식이 있는 프레슬리 의상 차림으로 나와 팬들을 열광시켰다. 지금까지 그가 부른 노래는 1000여곡이나 된다. 대부분 애창되고 있지만 ‘남진’ 하면 얼른 떠오르는 대표 곡은 역시 ‘가슴 아프게’와 ‘님과 함께’가 아닐까 싶다. 일화 한 토막. 1966년 남씨는 작곡가 박춘석씨를 만난다. 이때 박씨는 작사가 정두수씨에게 가사 하나를 부탁했다. 고민하던 정씨는 서울 마포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라디오 연속극에서 뱃고동 소리를 들었다. 고향이 경남 하동인 정씨는 갑자기 바다가 그리워져 인천 연안부두로 달려갔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해서 바다도 보이지 않고 연안 여객선들도 출항하지 못했다. 그러자 승객들 사이에서 ‘가슴이 아프다’라는 탄식이 나왔다. 귀가 번쩍한 정씨는 바다로 인해 생기는 이별을 모티브로 가사를 썼다. 처음 제목은 ‘낙도 가는 연락선’이었다. 그러나 너무 올드패션의 느낌이 들어 고민 끝에 ‘가슴 아프게’로 바꾸게 됐다. ‘님과 함께’는 작곡가 남국인씨의 부인이 작사한 곡. 처음에는 동요처럼 느껴졌지만 때마침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삽시간에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가 ‘남진’이 된 사연도 있다. 본명은 김남진(金湳鎭)이다. 데뷔 직전 문여송 감독이 ‘남쪽의 보배’라는 뜻을 담긴 ‘남진’(南珍)으로 예명을 지어 주었다. 이름대로 지난 45년 동안 수많은 히트 곡을 내며 가요계의 보배로 살아 왔다고 얘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올해 66살. 영원한 청년인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팬들의 힘이 있었기에 제 인생에서 45년 동안 가수라는 직업으로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어느 날 세월 깊이 왔다는 것을 알았지요. 데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앞으로 정말 좋은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가수로서 성심을 다해 잘 마무리하는 것이 제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자신에 찬 목소리였다. 다시 녹음실로 간 그는 신곡 ‘너 말이야’ 중에서 ‘널린 게 행복이잖아~’를 힘차게 불렀다. ‘그렇구나’라는 찐한 느낌표를 뒤로하면서 헤어졌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가수 남진 배우 꿈꿔 영화과 진학… 윤정희·남정임·문희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작품 1945년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목포 북초등학교를 나온 후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경복중학교를 다녔다. 다시 고향으로 가서 1962년 목포고를 나온 뒤 평소의 꿈인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1965년에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가수로 데뷔했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끼를 살려 60여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윤정희, 남정임, 문희 등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자주 출연했다. 남씨의 부인은 부산 출신이다. 슬하에 3녀 1남을 연년생으로 두었다. 지난해 11월 큰딸이 결혼했다. 막내인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다. 자녀 중에는 셋째 딸이 노래에 소질이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라고 남씨는 말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자택인 경기 성남시 분당의 헬스클럽을 가끔 찾는다. 골프 핸디캡은 10 정도이며, 이탈리아 칸초네와 프랑스 샹송을 듣는 취미도 있다. 추억의 팝송도 자주 듣는다. 그는 1965년 데뷔 당시 ‘서울 플레이보이’, ‘울려고 내가 왔나’ 등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공전의 히트 곡 ‘가슴 아프게’를 발표했다. 1969~71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직후인 1971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첫 리사이틀 공연을 벌였고 한국무대예술상 그랑프리를 2회 받았다. 1969∼73년 TBC 남자 가수상 대상을 3회 수상했다.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1991)과 한국연예협회 이사장(2000) 등을 지냈다. 대표 곡으로 ‘가슴 아프게’, ‘별아 내 가슴에’, ‘미워도 다시 한번’,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 마오’, ‘빈잔’, ‘둥지’ 등이 있다.
  • “삼호 석 선장 몸속탄환 2발 우리 해군 것,해적 대부분 일가친척”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 3발 가운데 2발이 우리 해군의 유탄인 것으로 밝혀졌다.지금까지 1발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말리아 해적들은 삼호드림호 납치에도 가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지검은 25일 이같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적 모하메드 아라이가 쏜 총이 석 선장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라이 등 생포된 해적 5명은 해상강도 살인미수와 인질강도살인미수 등 6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석 선장의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서 우리 해군의 MP5 9㎜ 탄의 탄두가 나왔고, 오른쪽 무릎 윗 부분에서 해군 저격용 탄환의 부러진 탄심이 발견됐다.”면서 “모두 유탄으로 석 선장에게 치명상을 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석 선장의 몸 8곳에 상처가 발견됐고, AK 소총탄 1발이 석 선장의 몸을 관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해적 아울 브랄랫이 미성년자라고 주장했지만 치아 감정을 통해 실제 나이가 18.9세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배후세력에 대해 검찰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고속 보트, 무기, 식량 등을 제공하는 투자자와 선박 납치를 하는 행동대, 선주 등과 석방 대가를 협상하는 협상가가 있고, 일부 피고인들을 통해 마하드 유수프가 투자자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소말리아에는 20여개 조직, 1000여명의 해적이 활동 중이며 대부분 삼호주얼리호 해적과 마찬가지로 푼틀랜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투자자 및 협상가를 알 것으로 추정되는 두목과 부두목이 사망해 더 이상의 배후확인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다만 부두목의 아내와의 통화를 통해 두목과 부두목이 동서이고, 생포된 압둘라 세륨은 이들의 사촌 처남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살인미수 혐의 적용에 대해 “아라이는 조타실 안에서 총을 든 사실을 부인하지만 선원과 일부 해적, 작전 장병의 진술과 석 선장의 피격 부위와 탄환 분석, AK 소총 멜빵에 대한 DNA 감정 결과, 총격실험 등을 통해 아라이가 석 선장에게 총을 쏴 치명상을 입힌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삼호주얼리호 납치과정에 대해서는 ”해적들이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하기전에 5~6차례 다른 선박의 납치를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쳤다.”면서 “해적들이 처음부터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하려 한 게 아니라 여러 선박에 대한 납치를 시도하던중 우연히 납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광양만 경제자유구역청 개청 7년 성과·전망

    광양만 경제자유구역청 개청 7년 성과·전망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이하 광양경제청)이 2004년 3월 광양시 광양읍에 청사를 개청한 이래 올해로 7주년을 맞는다. 광양경제청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정부가 실시한 경제자유구역 성과 평가에서 부산·진해청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운영비 7억 3400만원을 확보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총 8880만 3000㎡… 3단계 개발 타 청에 견줘 규모나 배후 지역 내의 총생산, 재정자립도, 지명도 등 제반 여건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투자 유치와 종합개발계획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등 광양만권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다움인터내셔널 등 총 102개 기업 86억 달러의 투자유치를 통해 2만 791개의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광양항 물동량 207만 TEU(20피트 기준 컨테이너 단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광양경제청이 관할하는 경제자유구역은 전남 여수시와 순천시, 광양시 일대 7626만 3000㎡와 경남 하동군 갈사만지구 1254만㎡ 등 총 8880만 3000㎡규모다. 이들 지역은 2020년까지 3단계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된다. 일차적으로 2004~2010년을 1단계 개발목표로 정했다. 5개지구 22개단지 중 12개 단지를 개발해 광양컨테이너부두 배후지 1단계와 포스코터미널 CTS 등 2개 단지를 준공했다. 나머지 10개 단지는 올해부터 추진하는 2~3단계가 목표 대상이다. 각종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며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개정과 맞물려 당초 계획을 앞당겨 조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2단계 개발이 시작되는 올해에는 국내외 기업 30개사 20억 달러 투자유치와 광양항 물동량 240만 TEU 달성을 목표로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남 최초 외국인학교 설립 추진 광양경제청은 광양 부두 및 서측 배후지, 율촌 제1산단, 신대배후단지, 해룡일반산단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부족한 산업단지 조기공급을 위해 율촌 제2산단 등 6개산단 460만평을 신규로 조성하고 있다. 갈사만 조선산업 단지 내에 대우조선해양과 토지분양 계약이 체결한 데 이어, 오리엔탈정공·선보공업과도 분양 계약을 추진하는 등 활발하게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대송산업단지가 오는 11월 착공되는 등 당분간 투자를 유치할 산업단지 부지를 찾기 힘들 정도. 신규 조성 단지에 대한 사전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광양경제청은 또 내년 9월 개교를 목표로 전남지역 최초의 외국인 학교도 설립한다. 순천 신대지구(6만 6000㎡)에 들어설 이 학교는 초·중·고생 15 00명 정원으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가 승인한 교육프로그램을 활용,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습득할 수 있다. ●인지도 향상에 국제대회 활용 광양경제청은 2012여수세계박람회와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등 국제대회를 지역 인지도 향상과 투자유치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2020 뉴비전’으로 국내 최대의 생산거점, 교육의료·레저관광허브, 동북아 물류거점, 국제비즈니스 도시 등 5대 추진 전략을 정하고 이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종만 청장은 “개발이 마무리 되는 2020년에는 250억 달러의 투자유치와 매출액 110조원, 물동량 1200만 TEU를 달성할 것이다.”면서 “상주인구 12만명과 고용창출 24만명 등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물류 중심도시로 거듭날 것이다.”고 말했다. 광양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해적수사 결과 발표] “석선장, 헬기 지원사격으로 정전뒤 교전하다 맞은 듯”

    [해적수사 결과 발표] “석선장, 헬기 지원사격으로 정전뒤 교전하다 맞은 듯”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 4발 가운데 1발이 우리 해군이 사용하고 있는 MP5 기관총 탄환인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이 총알과 석 선장 용태의 관련성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의 주범인 소말리아 해적 두목과 부두목이 사살돼 수사의 한계성이 노출, 만족스러운 수사결과가 나오지 못했다. 특별수사본부가 밝히지 못한 각종 의혹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제대로 규명될지 주목된다. 김충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삼호주얼리호 해적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은 7일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 4발 중 3발을 인수했다.”면서 “3발 중 1발은 AK소총이 분명하고, 1발은 우리 해군이 사용하는 MP5 기관총 또는 권총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나머지 1발은 피탄으로 인해 선박의 부품이 (석 선장 몸에) 박힌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석 선장의 몸에서 해군의 탄환이 나온 것과 관련, 김 본부장은 “링스헬기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맞은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총탄이 어디에 박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확한 감식 결과는 다음주에 나올 예정이다. 탄환 1발이 우리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오만에서 의료진이 분실한 탄환 1발에 대한 실체규명도 과제로 떠올랐다. 특별수사본부는 두목과 부두목이 사살됐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호메드 아라이가 석 선장 총격범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현장에 있었던 선원과 외국인 선원 각각 2명, 해적 등 총 6명이 아라이가 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도 총격범으로 아라이를 적시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김 본부장은 “특정 해적을 적시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모선이 이란 선박이라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외교상의 문제’를 들어 명쾌하게 밝히지 않아 궁금증을 더 키웠다. 특별수사본부는 그러나 표적 납치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봤다. 김 본부장은 “해적 두목이 소말리아 카라카드항에서 지인을 통해 해적 12명을 규합하는 등 사전 모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표적 납치의 증거는 없다.”면서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하기 위해) 23일 동안 기름값을 들여 가면서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할 이유가 없다. 표적 납치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범행을 모의하고 모선을 활용해 짧은 시간에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사실을 감안하면 표적 납치 의혹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은 해적 조직과 푼틀란드 조직의 연관성 등에 대해 추가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부산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해적수사 결과 발표] “작전때 석선장 이미 바닥에 쓰러진 상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에 대한 오발 또는 유탄 사고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은 지난달 21일 오전 4시 58분(한국시간 오전 9시 58분) 여명이 밝아 오기 직전 어둠을 틈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배는 링스헬기의 지원 사격으로 외부 전원이 모두 끊어지는 바람에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운 상태였다. 이런 어둠 탓에 해적과 우리 선원의 구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군과 해적이 서로 총을 쏘며 교전을 벌였다. 이때 조타실 안에 웅크리고 있던 석 선장이 총알을 미처 피하지 못해 오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충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장은 7일 “작전 당시 새벽 시간이었고, 배에 불이 나간 상태였으며 링스헬기가 엄청나게 압박사격을 가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라며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특히 오발 탄환이 석 선장의 복부 또는 다리에 맞았는지를 밝히는 문제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복부상을 가져온 오발은 치명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데, 해군과 아주대병원에서는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이에 대한 조사 가능성에 대해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고 군사작전의 일환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한편 해적들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하기 전 해적선에서 15일 이상 총기조작 및 사격술과 선박 진압 훈련을 받은 뒤 납치할 선박을 찾아 항해를 하다 지난 1월 5일 오전 인도양 북부 아리비아해 공해상을 지나던 삼호주얼리호를 발견했다. 해적들은 선원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면서 칫솔, 팬티, 양말은 물론 전자제품, 현금 등 2750만원어치의 금품도 강탈했다. 이어 즐거운 괴성을 지르며 축하 파티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작전 과정에서 사살된 해적 두목 아브디 리스끄 샤크(28)와 부두목 수티 알리 하루트(29), 마호메드 아라이(23) 등은 여러 차례 선박 납치 경험이 있는 프로급 해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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