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미증시패턴 대공황 직전 상황과 유사
■로버트 프렉터 e메일 인터뷰
경기침체속에서도 물가가 올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거론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세계 다른 나라들에선 디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의 동반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온다.이미 일본과 홍콩은 디플레의 수렁에 빠져있고,싱가포르·중국 등도 디플레 조짐이 있다.이라크전 이후에도 세계 경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가하락도 이어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디플레 뛰어넘기’(Conquer The Crash)의 저자이자 시장분석가인 로버트 R. 프렉터(54)가 주가 대폭락과 세계적 디플레를 주장,눈길을 끈다.그는 “주식침체,경기불황에 따른 디플레는 불가피하며 이미 디플레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디플레에 대비한 안전한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다음은 프렉터와의 e메일 인터뷰 내용.
책 출간 이후 9개월이 지났는데 디플레가 발생할 것이라는 소신에는 변함 없나?그렇게 믿는 근거는.
-그렇다.디플레 압력은 강하게 형성돼 왔다.미국에서는 현재 모든 투자등급 채권의 50% 정도가 ‘BBB’등급으로 평가받는데,이것은 가장 낮은 투자등급이다.여기서 한 단계만 떨어져도 이 채권들은 ‘휴지’로 전락할 것이다.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디플레는 빚(신용)의 위축이다.신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시장이 ‘채무 불이행’에 더욱 취약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디플레보다 인플레 우려가 컸다.이라크전 이후 통화를 풀어 인플레 우려 의견도 있다.
-투자자 및 애널리스트는 대체로 잘못된 것과 보통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걱정한다.자연스럽게도 대다수가 1970년대의 문제였던 인플레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이같은 실수는 또 사람들이 좋은 일을 기대할 때 나타난다.10여년전 걸프전때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있었고,사람들은 이라크전도 똑같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이번에는 인플레가 아니라 디플레가 문제다.그리고 향후 주식시장은 시장분석에 따라 ‘위’가 아닌 ‘아래’로 움직일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때는 각국의 협조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중앙은행도 신속하게 대응한다.통화정책을 통해 디플레를 막을 수 있지 않나.
-국가들이 어떤 일에서는 협조를 잘했다.미국은 영국 중앙은행의 부채 관련 처리를 돕기 위해 협조했다.나는 통화정책이 디플레를 막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통화정책은 지난 수십년간 신용 인플레를 조장했다.신용팽창의 한계가 디플레로 반전될 것이다.
디플레때는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아 현금확보가 우선이라고 했다.그러나 한국은 부동산 경기가 좋았다.자산은 어떻게 갖는 것이 바람직한가.
-부동산 경기의 호황은 팔 기회를 제공해왔고,또 여전히 처분할 기회다.나는 이 책을 주식·부동산을 처분할 때 썼다.그것이 포인트다.호황은 매도의 가장 좋은 기회다.호황과 랠리를 활용하려면 안전한 현금과 같은 스위스 국공채나 싱가포르 채권,미국 재무부 채권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이라크전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계경제가 침체되고 있다.전쟁이 끝난 뒤 세계경제의 상황 및 주식시장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
-모든 전쟁은 기대보다 항상 오래 갔다.향후 경제 전망은 심각한 위축과 침체가 될 것이다.예상컨대 주식시장은 2004년 하반기까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이후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더 생길 것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
■디플레 위험과 대책
로버트 프렉터는 자신의 책에서 증시붕괴에 따른 공황 및 디플레의 위험을 경고했다.1929년과 같은 대공황 직전의 상황은 이미 2000년에 도래했다는 것이다.필자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손질하고 있던 2002년 1·4분기말에 S&P500 지수는 1147.39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이달초 870선으로 내려왔다.디플레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까?프렉터 저서의 주요 내용과 자산보호법을 간추린다.
●증시,이대로 주저앉나.
‘신(新)경제’에 대한 장밋빛 보고서가 넘쳤던 지난 90년대에 대해 프렉터는 다우지수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서 신경제의 허상을 꼬집는다.1932년 이후 다우지수의 다섯차례 파동에서 제5파동기(74∼2000년)의 실물경제가 제3파동기(42∼66년)보다 취약했다고 지적한다.주가상승률은 5파동기가 2배 정도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금융의 건강성은 뒤떨어졌던 것이다.
영국·미국의증시흐름을 보면 장기간 상승한 뒤에는 폭락이 있었다.이어 실물경제의 하락이 찾아와 공황을 겪게 된다.프렉터는 증시패턴을 ‘엘리어트 파동원리’에 따라 5단계로 나누고,마지막 상승장에 초점을 맞춘다.현재 증시는 마지막 랠리를 하고 있지만 기간은 짧을 것으로 전망한다.2001년 9·11테러 이후 추락했던 증시는 이내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다시 대세하락으로 반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제5파동기에는 주가가 고평가돼 거품이 금방 꺼질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PER(주가수익비율)도 주가를 예측하는 유용한 지표가 된다.2000년들어 S&P지수와 PER를 살펴보면 주가가 정점을 지난 이후 기업실적도 하락하고 있지만 투자심리가 비정상적으로 낙관적이어서 PER는 역사상 최고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이는 곧 실물경제의 몰락을 의미하고 투자심리가 비관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디플레,벌써 시작됐다?
공황은 팽창한 신용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발생한다.이는 생산의 전반적인 위축으로 이어지며 생산위축은 채무상환 능력을 떨어뜨려 디플레를 유발,악화시킨다.미국은 1835∼42년,1929∼32년 사이에 신용팽창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각각 디플레와 공황을 경험했다.
현재 전세계적인 신용팽창은 전례가 없다.미국은 거대한 ‘빚더미제국’이다.생산활동과 관계없는 카드빚이 폭발적으로 늘었다.이같은 신용팽창은 폭발 일보 직전에 놓여있으며 디플레가 발생할 경우 역사상 최악의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프렉터는 물가하락과 산업생산 급감이 뒤따른다면 경기변동 사이클에 따라 2004년쯤 공황 저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그는 또 파동의 길이를 예측한다면 공황의 종말은 2011년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플레에서 살아남으려면.
디플레에 따른 신용경색은 부동산·주식·채권시장의 폭락을 불러올 수 있다.그러나 치밀한 준비를 통한 올바른 자산선택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거나 적잖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디플레로 각종 자산가치가 폭락하면 매입 가능한 자산 리스트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이후 대부분의 자산을 팔아 현금화하고 일부는 국채나 국채편입 펀드에투자하는 것이 안전하다.석유·철광 등 상품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이나 은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
세계적으로 우량한 은행·보험사를 찾아 자산을 맡기는 등 투자판단의 시야를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스스로 판단하기 힘들다면 각종 투자자문 및 자산운용사 등의 정보를 활용하면 된다.프렉터는 자신의 조언을 따르지 않으면 파산을 피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반면 자신의 말대로 행동할 경우 큰 수익을 놓칠 수는 있지만 파국으로부터 자산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프렉터의 예측과 조언이 맞는지 두고 볼 일이다.
김미경기자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때를 디플레이션이라 하는 반면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태를 말한다.이런 구분에서 본다면 현재 세계경제가 직면한 상황은 디플레보다 디스인플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부에서 물가하락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미국의 상품가격 상승률은 2001년 4% 상승에서 최근에 -6%로 낮아졌다.그러나 상품가격 하락은 최근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90년대 초에도 비슷한 수준의 하락률이 나타났고,지난 12년간을 놓고 보면 연간 상품가격이 하락했던 때가 상승했던 때보다 훨씬 많았다.시장 진입이후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상품 가격이 자연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따라서 아직까지 선진국 경제가 디플레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상품 가격은 하락한 반면,서비스 가격은 여전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지난 몇 년간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인데 실업률이 추가로 급등하지 않는 한 서비스가격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00년 이후 경기둔화로 공급압력이 많이 줄어든 점도 디플레를 막는 역할을 한다.1930년 대공황은 경기가 호황을 지속하다 갑자기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 요인이었다.호황기간이 길수록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급증하는데 이때 불황이 갑자기 닥칠 경우,수요와 공급간의 괴리가 커져 디플레가 나타난다.이런 측면에서 지난 3년간 경기침체는 초과 공급을 줄이는데 일정한 역할은 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적 대응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지금까지 10년 넘게 디플레를 겪고 있는 일본은 경기 둔화 후 긴축정책을 강화하는 우를 범했고,이런 정책적 실패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단초가 됐다.반면 미국의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 2년간 12번의 금리인하를 단행했고,선진국 정부 역시 재정정책을 강화하고 있다.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계속되고 월가의 예상대로 하반기 경기가 회복된다면 위험은 현저히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