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훈장/진경호 논설위원
현대사회에서 훈장(勳章)의 가치가 극대화된 공간은 전쟁이다. 희생의 대상이 전쟁이고, 그 희생의 대가가 훈장이다. 작가 이외수의 등단작 ‘훈장’에서 아버지는 그런 전장에서 잘려나간 한쪽 팔의 대가로 훈장을 받고, 이 훈장을 매일 닦고 또 닦으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는 것으로 생을 보낸다. 그런 ‘아버지의 훈장’을 작가 이병주는 “아이로니컬한 난센스이며, 이에 집착할 때 (인생은) 비극보다 슬픈 희극이 된다.”고 했다. 그 아버지에게 호국의 대가인 이 훈장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넘어가면 또 다른 가치가 된다. 동생 진석(원빈 분)을 하루빨리 전쟁터에서 빼내려 진태(장동건 분)는 국방군이든 인민군이든 전쟁영웅이 돼 훈장을 받아야 했고 결국 목숨을 던진다. 호국 대신 전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훈장이든, 진태의 훈장이든 희생의 상징이며, 덧이 있고 없음을 떠나 희생으로 피운 꽃일 것이다.
상훈법 제2조가 규정한 ‘훈장 받을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다. 올해 8779명 등 정부 수립 이후 43만 8800명이 훈장을 받았다. 대통령 부부와 외국 원수 부부에게만 수여되는 최고훈장 무궁화대훈장부터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훈장 종류만도 11개에 이른다. 무궁화대훈장을 빼고 각 훈장마다 5개 등급이 있으니 총 훈장 수는 무려 51개나 된다.
훈장은 받을 때보다 거부하거나 치탈, 즉 빼앗길 때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정부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로로 받은 태극무공훈장 등 10여개의 훈장을 취소한 것이 한 예다. 올 2월엔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뜻으로, 그리고 최근엔 지방의 한 정년퇴직 교사가 무너진 교육현실을 자책하며 서훈을 거부하기도 했다.
8·31 부동산 대책 ‘유공 공무원’ 30여명에게 수여한 훈·포장을 취소하라는 여론이 거세다. 이들의 훈장이 폭등한 집값에 주저앉은 서민들의 눈물 위에 핀 꽃으로 남아선 절대 안 될 일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