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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2)

    ◎암흑속의 공로/언어탄압에도 우리말 지켜와/한국최초의 여기자 1920년에 선발/인신매매 비리 등 추적… 언론기능 수호 한일합방후 그 제호에서 「대한」을 떼버리고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한 매일신보(1938년부터 매일신보로 개제,이하 「매신」으로 통칭)는 일제의 한국병탄을 합리화하는데 이용됐다.민족의 존재를 부인한 언론으로 오욕의 역사를 대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래서 민족주의적 입장의 신문사 연구학자들 가운데는 일제통치하에서 민족지가 존재하지 않던 1910∼20년,1940∼45년의 두 시기를 「무신문기」로 분류하는 이도 있다. ○일제치하 1차사료 그러나 정진석교수(외국어대)는 그의 저서 「한국언론사」에서 ▲민족지가 없던 시기의 1차사료 ▲민족지와의 비교 대상 ▲우리 언론인및 문인들의 피난처및 발표지면 제공등의 이유를 들어 매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매신은 비록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보도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지만 사회·문화 보도에 있어서는 문제점을 적시,총독부의 그릇된 정책을 일깨우기도 했다.그리고 일제말기 우리글 말살정책하에서 유일한 한글매체로 우리글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신은 또 조선 동아의 강제폐간으로 오갈데 없어진 당시 언론인들의 은신처로 제공돼 그들이 해방후 민족정론을 펼칠수 있는 기반을 닦을수 있도록 했다.특히 최초로 기자공채제도를 도입,여기자를 채용하는등 부분적으로는 신문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도 부인할수 없는 것이다. 매신은 인재의 폭넓은 등용을 위해 최초로 기자공개채용을 실시했다.이는 당시 아는 사람의 소개등으로 신문기자가 되던 관행으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매신의 첫 기자채용은 1918년 이다.이무렵 홍란파와 유지영이 매신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들은 후에 음악도로 이름을 날렸는데 당시 신문사는 시인 소설가뿐 아니라 음악·미술학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그후 기자공채가 지상에 보도된 것을 중심으로 보면 20년7월,29년8월,35·36·38·39·40년 1월에 이뤄져 비교적 정기적으로 이뤄졌음을 알수 있다. 40년 이후에도 여러차례 견습기자를 모집했다.매신보다는 10여년 늦은 민간지는 조선일보가 1930년에 처음으로 기자를 공채했으나 그나마 지속시키지 못했던데 반해 매신은 공개채용의 제도화와 함께 타사와의 활발한 기자교류도 시도했다.당시 기자채용의 자격요건은 전문학교 졸업자로 초기에는 30세미만이었으나 40년부터는 27세로 연령을 낮추었다. ○인재를 폭넓게 등용 기자공채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여기자 공채였다.매신 20년 7월2일자에는 부인기자를 채용한다는 사고가 실려있다.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탄생을 알리는 신호같은 것이었다.당시의 사고는 부인기자의 채용이유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부인계의 해방을 위해 가정개량및 부녀개조의 완벽을 기함에는 현숙박학한 숙녀의 책임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시세의 요구」때문이라고 강조했다.또 응시자격은 ①가장있는 부인 ②20세 이상 30세 이하 ③고등보통학교 졸업정도 이상으로 문필취미가 있는 부인등으로 못박았다. 이무렵은 조선과 동아가 창간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다.그때까지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매신은 경쟁상대들의 출현으로 편집국을 개편하고 그들과의 차별화와 새로운 이미지를 심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여기자채용은 그 일환으로 실시된 것이지만 여자들의 문밖출입마저 철저히 금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 여성의 기자직 진출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때 뽑힌 여기자가 이각경이다.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져온 최은희(1924년 조선일보 입사)보다 4년이 앞섰다.1897년 2월 서울에서 출생한 이각경은 한성여자고등학교(현경기여고) 기예과와 사범과를 나와 2년간 교편생활을 하다 매신에 입사,9월5일 정식으로 발령을 받았다.그녀는 9월14일자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해 「부인기자의 가정방문기」「축첩에 대한 이해」「위생에 대한 주의」를 비롯,가정·여성·아동·교육문제등 수많은 기명기사를 남겼다. 총독부기관지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신의 기자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파헤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30년대말 「기생 박애란 음독자살사건」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권번기생 출신인그녀는 24세때 돈많은 지주의 소실로 가게 되었다.그러나 그녀는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끝까지 거절하자 기생어미가 그녀를 창녀굴에 팔아넘기려 했다.그러자 머리물들이는 약을 입에 털어넣고 자살한 사건이었다.매신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신매매가 공공연하게 허용되고 있는 사회비리에 초점을 맞춰 심층보도했다. ○사회의 문제점 고발 그 결과 한달후 총독부령으로 전국적인 인신매매행위 엄단이 공포되었고 현재 빚에 묶여있는 기생이나 창녀들을 무조건 해방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기에 이르렀다.또 「용인보통학교 생도구타사건」도 비슷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용인 어느 학교 3학년생이 수업료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에게 매를 맞고 늑골이 부러졌는데 이를 항의하던 생도의 아버지도 교장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이었다. 생도가 서울 의전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독자의 제보를 받고 뛰기 시작,사건의 전모와 학생체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보도를 했다.결국 보도가 나간지 얼마 안돼서 그 교장과 교사가 파면되었으며 각급학교에 생도들에 대한 체벌을 경고하는 지시가 내려졌다. ○40년대 45만부 발행 매신은 40년대들어 일제의 우리 언어말살정책에 따라 각급학교에서 우리말을 못가르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일체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시킨 상황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켜나간 유일한 매체였다.이때문에 전쟁중 45만부에 달하는 엄청난 부수 신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매신은 또 조선 동아가 폐간당하자 해고된 수많은 언론인들에게 호구지책이든 호신지책이든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매신은 전쟁중 어려운 시기에도 자체 감원이나 감봉없이 사원들을 안정시켰다.그리고 오갈데 없어진 언론인들을 포용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이무렵 매신에 들어온 대표적 언론인들은 백철 정비석 정현웅 이관구 우승규 서승효 김규택 조풍연 곽복산 조경희 노천명 이홍식 박종수 홍종인씨등이다.이들은 광복후 대한민국의 문화·언론계를 이끌어나간 인재들이기도 했다.매신은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수 있도록 피난처를 제공해준 것이다. 매신이 총독부기관지라는 굴레속의 언론이라는 사실은 결코 숨길수 없다.그러나 일제통치 기간중 한번도 중단됨없이 우리말 신문의 위치를 지키는 가운데 많은 역할들을 수행해 왔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한국언론사」(정보석·나남 1990) 「언론비화 50편」(한국신문연구1978) 「한국언론인물사화」상·하(대한언론인회 1992)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3)

    ◎길림시절:2/체류시기의 왜곡/육문중 재학기간 실제보다 1년 늘려/마적활동설 등 평단중시절 비행 은폐/27년 8월 입학을 1월로 주장 김일성이 길림 육문중학교에 들어간 것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1927년 1월 17일이 아니라 사실은 그 해 8월이다.61년에 발간된 「조선근대혁명운동사」는 그가 「육문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26년8월 공산주의 청년동맹에 가맹했다」고 쓰고 있는데 26년이나 입학,공청동맹 가맹 같은 것은 다 사실이 아니지만 8월이란 날짜만은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김일성의 27년8월 길림행은 3가지근거로 증명할 수가 있다. ○사실확인의 세 근거 그 첫째는 앞에서 말한 이선일 증언이다.그는 27년8월 심양 평단중학교 입학 때 그 직전 김일성이 이 학교를 중퇴한 소문을 들었다.그리고 그는 30년에 최덕현 오가자에서 김일성과 같이 있게 되었을 때 이 사실을 직접 본인으로부터 확인하고 있다.27년 당시 심양의 한인 인구는 적었으므로 중학생 김일성의 동향은 곧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김일성이 29년 5월에 길림 육문중학교를 중퇴한 사실을 들 수 있다.이 때 허소가 만든 「조선공산청년회」란 조직에 길림의 정의부계통 청년들이 망라되고 있었다가 일본 길림총영사관 경찰에 발각되었다.그 속에 김일성도 있었는데 그는 도망쳐서 길림을 탈출하고 체포를 면하였다. 그는 이에 따라 육문중학교도 중퇴했다.최형우는 김일성이 다닌 중학교를 잘못 알고 있었지만 중퇴사실 자체는 다음과 같이 정확히 말하고 있다. 「…김일성은 졸업기를 목전에 둔 제오중학의 교문도,소년탐험대의 자리도 떠나서 단신 방랑에 가까운 여인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일본 기록과 최형우의 서적으로 우리는 김일성이 29년 5월,3년제인 길림초급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것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필자가 평단중학교 문제 때 소개한 중학교 학년학기 일정표이다. ○방학기간 이용 이동 이 일정표에 의하면 당시 중국의 2학기 마감은 6월 28일로 되어 있다.따라서 졸업식은 그후 며칠 안가서 진행되는데 김일성은 바로 「졸업을 목전에 둔」5월 중순에길림성성을 탈출하여 중학교를 중퇴한 것이다. 또 이 일정표는 1학기 수업개시가 8월 24일로 되어 있다.그래서 이 날짜를 가지고 그의 재학 가능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1926년 8월 24일 1학년 입학 1927년 8월 24일 2학년 진학 1928년 8월 24일 3학년 진학 1929년 5월 중순 3학년 중퇴 그런데 이상의 표에서 26년 입학 가능성은 그것이 길림 육문중학교 같으면 현재 김일성이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있을 수가 없다.그는 1학년 시절은 대체로 심양 평단중학교에 있었다.또 일정표를 보면 당시 여름 방학은 6월 29일부터 8월 23일까지의 약 2개월이었다.이선일의 증언과 같이 그는 이 방학기간에 심양으로부터 길림으로 이동한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의 길림시절을 사실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가 중학교에 있었던 1927년 8월부터 29년 5월까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그는 육문중학교에 가기 직전에 심양에서 길림으로 왔고 20개월 후 일종의 학생 비밀결사조직에 있었다가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하여 길림을 떠났다.이 1년 10개월동안이 김일성이 길림에 있었떤 전 기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는 이같이 주장하지 않고 있다.그들은 김일성이 27년 1월에 무송에서 와서 29년 가을 길림감옥에 투옥될 때까지 길림에서 「혁명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길림체제기간을 27년 1월부터 8월까지의 6개월간과 29년 5월부터 가을까지의 약 6개월간씩 넓히게 되었다.모두 1년 정도 김일성이 길림에 더 있었던 것으로 꾸민 것이다. 여기서는 김일성이 넓힌 이 「활약기간」중 그의 길림 입성을 둘러싼 문제만 다루어 놓았다.그가 8월에서 1월로 반년이나 길림 입성을 앞당긴 것은 그의 전기 작성상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⑴그는 평단중학교 시절의 진상을 철저히 은폐할 수 있게 되었다.그의 이 시기 생활이란 학생 기준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슨 상궤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그가 일종의 마적떼에 있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므로 학교생활도 짐작이 갈 것이지만 그는 이런 일들을 은폐한 것이다. ○「주체형 조직」강변 ⑵이 시절을 은폐하는 것으로 그는 26년 가을부터 27년 여름까지 10개월 정도 우상화를 위한 어떤 날조물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는 세월을 획득하게 되었다.그는 이 기간을 26년과 27년으로 양분하고 26년에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새날소년동맹,반일부녀회 등 대체로 29∼30년에 있었던 민족주의단체 국민부의 하부조직이나 변두리조직을 「주체형」의 조직으로 제멋대로 왜곡,변형해왔다. ⑶따라서 육문중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인 27년 상반기란 텅 비운 시일도 김일성이 앞으로 거기에 무엇을 집어넣는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①동서 232면 ②평전 212면 이하 ③29면 ④평전 107면종
  • 유엔군 보스니아 증파/세르비아에 회교도학살 중지도 촉구/안보리결의

    【유엔본부=임춘웅특파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일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한 회교도 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동부 보스니아에 유엔군을 즉각 증파하도록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안보리는 이날 미국 요청으로 긴급 소집된 회동에서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이같은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이날 채택된 결의는 그러나 병력이 증파될 경우 어떤 기능을 수행할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구속력도 갖고있지 않다. 유엔은 지금까지 보스니아에 대부분 유럽에서 차출된 모두 7천5백여 병력을 배치해 주로 구호 활동을 지원해왔다. 안보리 결의는 또 세르비아 민병대가 부녀자 및 어린 아이를 가리지 않고 보스니아 회교도를 무차별 학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점과 관련해 『이같은 만행을 즉각 중단토록』경고했다.
  • “생활환경개선 내주변부터”/새마을중앙협주최 토론회

    ◎공해추방 가정·직장서 솔선해야/쓰레기줄이기·재활용 생활화를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회장 김수학)는 3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회의장에서 생활환경운동실천토론회를 갖고 가정과 직장등 일상생활주변의 환경오염예방및 방지대책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학계,여성단체회원 ,경처등 관련 정부부처관계자,새마을부녀회회원등 3백여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새마을부녀회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펼치고 있는 폐품수집및 쓰레기 분리수거운동의 확산및 생활화방안등을 모색하고 앞으로의 환경운동방향등을 점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연세대 이승무교수는 「환경운동과 국민의식개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산업화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각종 공해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환경관련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절약운동,농산물직거래운동,쓰레기줄이기,자원재활용운동등 생활환경전략을 범국민공동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교수는 이와함께 『더러운일·힘든일을 하지않으려는 사회분위기를 극복,자기희생과 봉사협동의 공동체정신을 실천하려는 사회기풍을 만들어 나갈때 환경운동은 효과를 거둘수 있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환경철학의 확립을 위해 새정부는 확고한 환경보존의지 표명과 환경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또 정부는 국민들의 환경의식과 기업의 환경윤리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의 강구와 더불어 민간환경단체들과의 정보교환 공동연구사업추진 활동자금지원등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속에 환경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1)

    ◎소년시절:22/강반석의 「반일부녀회」 결성설/26년 12월18∼19일 마적단 대약탈/“26일 여성단체 결성” 못믿을 주장/아들 우상화에 어머니까지 “악용”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이 「ㅌ ㄷ」과 새날소년동맹을 조직한 경험에 토대하여 그의 모친 강반석을 도와 1926년 12월26일 「반일부녀회」를 결성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강반석은 남편 김형직이 죽은 후 「혁명투쟁」의 길로 나가 무송 도처에 야학을 세우고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면서 그들을 혁명화했다는 것이다.그는 이러한 주장을 68년 전기부터 하고 있다. ○야학까지 개설 강변 김일성은 자기의 우상화를 위하여서는 모친도 그냥 두지 많는 위인이다.그는 무송에서 당시 있지도 않았던 「새날소년동맹」을 날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친까지 동원하여 26일에 부녀회를 결성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1주일 전인 18일과 19일에 무송현성은 무려 5백명이나 되는 대련합마적단에 유린당하였다.1920년대는 만주 일대에서 마적이 창궐을 극한 시기였지만 그들의 이무송현성 습격은 그중에서도 최대라 할 수 있는 대겁략이었다. 당시의 마적은 지방 경찰이나 자위단 따위를 무색케 할 정도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하나만 예를 들면 22년경의 부두목 강괴무(천중앙)는 돈화현 사하장의 수림지대에서 4백50명의 부하를 데리고 기관총 4정을 포함한 총기 4백80정,총검 3백개,수류탄 1백개,탄약 13만 5천발을 가지고 있었다.1명당 3백발이나 탄약을 가진 이 마적떼는 대지 5백평이상 되는 곳에 큰 병사를 두채나 지어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적떼는 26년 경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5백명이나 되는 연합마적단이 무송현성의 상점을 3분의1이나 불사르고 재물이란 재물은 몽땅 가져갈 뿐 아니라 퇴각한 후에도 볼모로 잡아간 자의 일가친척들에게 온갖 요구를 다 내놓고 있는 이 때에 강반석은 별스럽게도 「반일부인회」란 공산주의 유사 단체를 결성했다는 것이다. ○명부작성 어불성설 거리에서는 치안을 회복하려고 중국군경이 분주하게 설치고,마적의 방화로 집이 불타서 쫓겨난 사람들이 백두산 북쪽 기슭의 차디찬 칼바람에 떨면서 불탄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판이었다.마적 습격 1주일 후 같으면 사상자를 낸 가족들의 통곡도 그치지 않았을 것이고 남편이나 자식을 납치당한 부인들이 마적에게 넘겨줄 재물을 구하는데 동분서주하고 있는 시기였다. 이런 북새판에 유독 강반석만은 어디에서 한가한 여성들을 데려왔는지 부인회를 조직하고는 다음과 같이 한가해도 한참 한가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전기에 의하면 그는 여성의 해방과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싸우자고 해놓은 후 회원명부의 작성에 들어갔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매 사람의 이름을 물어시었다.그러나 자기 이름을 주저없이 선뜻 부르는 여성이 몇몇 안되었다.그것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긴 해도 여자라는 죄 아닌로 하여 아름다운 이름조차 못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반석 전기는 68년부터 수종류 발간되고 있는데 여기 인용한 것은 80년판이다.전기로서는 갈고 닦아서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우상화되어 있는 책인 셈인데도 반일부인회에 관한 글이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러한 명부작성 작업은 마적떼가 덮치고 간 직후라는 난리북새통을 생각하면 경황에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다. 당시의 마적 규율 속에는 여자를 겁탈하지 않는다는 1항목이 있었다.그러나 이 규율이 1백% 지켜질리가 만무했고 크고 작은 봉변은 수두룩 하였다.이외에도 부녀자들은 금품을 강탈당하고 혈육이 피살되고 집이 불타고 납치당한 가족들의 안부를 알 수가 없어서 벌벌 떨면서도 마적단에게 온갖 치다꺼리를 다 해야했다.이러한 비참한 처지에 놓인 부인들이 과연 이름같은 것에 신경쓰고 있을 틈이 있겠는가 말이다. ○날짜 조정 엄두못내 따라서 「반일부인회」도 마적떼가 무송을 습격한 당시의 참상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김일성만이 할 수 있는 날조로 밖에 되지 않는다. 필자는 평전에서 나의 논문으로 당시의 마적습격 사실이 북한에 알려지더라도 전기의 허구성으로 하여 김일성이 설정한 반일부인회 결성날짜는 바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을 보니 85년의 필자의 주장대로 그들은 역시 그 날짜를 재조정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대신 김일성은 전에 없던 1절을 설정하여 정의부계통의 유명한 여성독립운동가 이관린이 당시 강반석의 집에 머물고 있었고 그와 독립운동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관린이 반일부인회 결성을 도왔다는 명시적인 말은 단 한마디도 없다.이 점으로 보아 그는 80년대 후반에 평양에 돌아와서 잠시동안 김일성의 이용물이 되었지만 「반일부녀회」를 강반석이 결성했다는 그의 주장에는 끝까지 동조하지 않고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①평전 93면 ②「조선의 어머니 강반석여사」 근로단체출판사간 252면 ③평전 98면
  • “보람에 산다”자원봉사 참여 늘어/청소·세탁에서 호스피스까지 다양

    ◎주부·대학생중심… 전국서 3만명 활동/신분보장·교통비지원·보험혜택 절실 88서울올림픽이후 사회봉사에 대한 국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않다.자원봉사는 남을 도움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수 있을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완,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는 조그만 디딤돌이 된다. 전문가들은 자원봉사가 이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자원봉사활동이 국민들 사이에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최근들어 자원봉사인구가 크게 늘기는 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곳을 충당하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또 홍보부족 등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절차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원봉사의 실태와 접근요령 등에 대해 소개한다. ▷현황◁ 현재 각종 사회복지시설이 자원봉사자의 수급을 맡아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최근에는 대학생 주부 직장인 뿐만아니라 전문직종사자의 참여도 느는등 자원봉사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시설봉사에서 가정방문봉사 위주로 경향이 바뀌었다. 자원봉사자의 전체숫자는 가장 최근 자료인 91년도 보사부 통계에 의하면 2만8천명이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자원봉사자의 70%이상은 여성이며 주부와 학생 종교인 직장인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이들의 활동은 청소 세탁 취사 심부름 말벗 등 단순노력봉사에서 부터 상담 치료 간병 학습지도등 전문적 영역까지 매우 다양하다. 자원봉사자의 모집과 관리는 각 사회복지시설에서 개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주요시설의 활동상황은 다음과 같다. ◇여성자원활동센터=여성유휴인력 활용을 위해 정무제2장관실 산하에 설치된 여성자원봉사자 모집기관으로 전국 1백10개 시군구의 1백25곳에 설치되어 있다.여성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교육및 배치를 맡은 부녀복지관 여성회관같은 지역센터로 보내주는 역할을 맡고있다. 서울시의 경우 22개구청의 가정복지과 부설 등으로 26곳에 설치된 여성자원활동센터에서 자원봉사 신청자를 모아서 지역센터인 마포·구로·노원부녀복지관에서 이들을 교육시킨후 사회복지시설과 연결해준다.여성개발원의 인력은행을 이어받아 91년 7월에 시행된이래 1만여명이 거쳐갔다. ◇재가복지봉사센터=92년부터 보사부 시행에 의해 3백평이상의 종합사회복지관에 부설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1백44군데에 이른다.파견된 2명의 사회복지사가 자원봉사신청자의 희망에 맞춰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봉사할 곳을 정해주면 자원봉사자는 주1회 정도 무의탁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 등의 가정을 방문,각종 봉사활동을 벌인다. ◇지역복지봉사센터=사회복지시설의 협의체인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설로 전국 15개 시도에 설치되어 있다.신청자에 대해 사회복지와 자원봉사 일반에 대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교육을 시킨후 원하는 봉사처와 연결해준다.91년이후 3백5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순수민간단체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중점적으로 모집·관리하고 있다.장애인·노인·아동청소년복지관련 자원봉사활동에 현재 1천5백여명,32개 단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개선점◁ 대부분의 모집기관들이 절대적인 홍보부족에다 분산되어 있어 많은 자원봉사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게다가 자원봉사자에 대한 신분보장이 미흡,사기 저하로 중도에 그만두는 예도 적지않다.자원봉사에 대한 정책과 지원 없이 과도한 봉사정신만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자원봉사의 실태.자원봉사자들에게 최소한 교통비와 중식비를 제공하고 봉사활동 중에 다치는 경우에는 전액 보험처리해주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참여방법◁ 자원봉사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는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의 형편과 능력에 닿는 조그만 봉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봉사를 할 마음이 있더라도 선뜻 할 자신이 없으면 친구나 이웃과 함께 시도해 보는것도 좋다.1주나 2주에 한차례씩 봉사하다가 능력이 생기면 1주에 2회이상 봉사할수도 있으며 호스피스활동등 보다 전문적인 봉사활동으로 옮길수도 있다.아무리 쉬운 봉사활동이라도 꾸준한 인내와 정성을 요하므로 성급한 성취감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가까운 모집시설에 전화나 면담으로 보다 자세한사항을 안내받을수 있다.
  • “부패·갈등 없는 사회 만들길”/새 문민내각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

    ◎지역 균형개발… 중단없이 개혁을/가계주름살 펴게 경제회복 주력/여성문제 관심… 통일앞당기는 정책을 새 정부의 첫 내각이 발표된 26일 국민들은 예상보다 훨씬 새로운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게 됐다면서 과감한 개혁의지를 통해 정치·경제·사회안정을 이뤄졌으면 한다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국민들은 이번 내각의 면면에서 다시 한번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확인하고 「중립내각」에 이어 「개혁내각」출범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개혁의 뜻이 중도에서 좌절·실종되지 않고 국가발전과 민족통일완성으로 꽃 피우기를 기원했다. 특히 32년만에 맞은 문민화시대에 걸맞게 학자를 안기부장에 임명한 것은 새로운 정치실현의 의지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또 지역감정타파와 국민화합차원에서 특정지역출신이 중요자리를 독차지하지 않도록 하고 지역문제에 대한 국민적인식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들이었다. 광주·전남지역에서도 이번 조각에 대해 『뭔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질 것 같다』며 새 정부가 적극적인 국민화합정책과 함께지역균형개발에도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표정들이었으며 안기부장과 서울시장에 교수와 재야변호사를 기용한 것을 보고 『완전히 판을 새로 짜는 모양』이라는 얘기들도 나왔다. 국민들은 이번 내각의 진용이 행정적인 실무에는 경험이 적은 행정의 초보자임을 지적하면서도 도덕성과 개혁의지를 갖춘 인사들로 짜진데다 국제적 감각과 전문지식을 지닌 인사들로 구성된데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대 권태준교수(환경대학원)는 『새 얼굴들이 많아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읽을 수 있다』며 『행정경험부족을 문제삼는 시각도 있지만 앞으로의 관건은 새로운 정치의 뜻을 일관성있게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의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수변호사(47)는 『새 내각은 부패·부정척결과 국민을 위한 국정에 최우선을 두고 과거 기득권세력및 이해집단들과 타협하지 말고 일관성 있는 개혁활동을 벌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신기씨(39·회사원)는 『각계의 인사들을 전문성과 경력을 고려해 과감히 등용했다는 점에서 참신한 느낌과 함께 문민정부의 개막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부정부패일소의 바탕위에서 경제회복을 이루어 나갈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송영미씨(29·주부·서울 강서구 화곡8동)는 『늘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와 실제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와는 별개의 것이었다』며 『이번만은 장바구니물가를 잡아주는 내각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성균관대 김동희양(22·문헌정보학과3)은 『여성각료들이 3명이나 기용되는등 정부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전환을 엿볼 수 있었다』며 『새정부가 청소년범죄와 부녀자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문기씨(40·택시기사)는 『서민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각료들이 많아 시민들의 희망이 국정에 반영되리라는 점에서 기쁘다』며 『정부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생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 신대옥씨 주택은 목동지점장(맹렬여성)

    ◎“아파트가구 절반 고객으로 모실 계획” 『예상보다 5년이나 빨리 지점장에 올라 기쁘기도 하지만 저를 지켜보는 4천여명의 후배 여행원들을 생각하면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섭니다』 지난달 주택은행 목동지점에 부임한 신대옥지점장(42)의 소감이다. 국내 30여개 은행의 여행원이 18만명이나 되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영광을 짐작할 만하다.주택은행에는 3명의 여지점장이 있는데 신지점장은 그 중 한명이다. 『어릴때 꿈이었던 은행원이 된지 꼭20년만에 지점장에 오른 것은 여성권익의 신장과 함께 은행측의 배려가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지난 73년 입행 이후 본점 외에도 도곡동·서초동·과천등지의 지점에서 10년간 실무경험을 쌓았고 장충동과 평창동출장소장을 거치며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출장소장 시절 남루한 차림의 70이 넘은 할머니가 복대에서 5천만원을 선뜻 맡길때 평소 고객을 편견없이 성실히 대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밝히고 『과거 거래하던 분 중 지금도 3백명과 거래를 유지하며 가정일까지 상의하고 있다』며 고객관리 비결을 털어놓았다. 목동지점은 아파트단지 속에 있는데 1,2단지 1만여 가구중 차세대 주택종합통장의 가입률이 20%에 그친다며 앞으로 부녀회와 반상회에 참여하는등 호별방문을 통해 이를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사업계획을 밝혔다. 서민이 주택부금에 가입하면 다른 은행보다 쉽고 싸게 전세자금을 빌려주고,내집마련때 대출과 상담등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을 고객에게 뚜렷이 인식시키겠다며 의욕을 내보인다. 1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신씨는 일할 때 남녀 구별을 하지 않는다.『회식자리에서 소주를 함께 기울이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다』며 오히려 남자행원들이 잘 따라준다고 자랑했다. 서울대 사대부고와 숙명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일을 좋아하다 보니 아직껏 미혼』이라며 활짝 웃는다.
  • “경사났네”… 온종일 축하잔치/대통령 취임하던날 거제·마산 모습

    ◎마을대청소후 TV보며 함께 기도/거제/주민들 농악에 맞춰 “신한국” 합창/마산 ○…김영삼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남 거제군 장목면 대계마을 70여가구 3백여 주민들은 지난 23일부터 이틀동안 마을 대청소를 실시한데 이어 25일 아침 생가와 마을입구에 「경축 김영삼대통령 취임」이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돼지고기와 떡 음료수 술 과일등을 차려놓고 상오9시부터 종일 큰잔치를 벌였다. 주민들은 취임식이 시작되자 TV수상기 2대가 설치된 생가로 몰려들어 기쁨을 나누었으며 특히 대통령이 선서하는 대목에서는 기도를 하며 새대통령의 앞날을 축복했다. 주민들은 이어 농악대를 선두로 마을을 여러 바퀴 돌았는데 하오에 외포마을등 인근마을의 농악대까지 가세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 마을 정수갑이장(57)은 『큰닭섬에서 탄생한 새 대통령이 반드시 신한국을 창조할 것』이라면서 김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생가에서 축하잔치를 열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랐다. 한편 박부나할머니(82)등 여든을 넘긴 할머니 5명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김대통령의 모친 묘소에 둘러앉아 아들의 대통령취임 소식을 전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82)이 살고있는 마산시 회원구 회성동 동네에서도 흥겨운 잔치마당이 벌어졌다. 회성동노인회 농악단이 집앞 사거리에서 한바탕 농악놀이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인근주민 5백여명이 새마을부녀회와 청년회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한껏 즐거워 했다. 주민들은 김대통령의 앞날에 영광이 함께 할 것과 취임식 참석차 상경한 김옹의 건강을 함께 빌기도 했다. 주민 박인길씨(66)는 『새 대통령의 부친이 거주하는 동네에 함께 산다는게 괜히 자랑스럽다』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 졸업식하객 등 상대 1천만원 소매치기/일당 4명 영장

    서울경찰청 지하철방범수사대는 23일 남관우씨(21·특수절도등 전과5범·동대문구 청량리2동)등 4명에 대해 특수절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남씨등은 23일 상오11시30분쯤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이모씨(46·여)의 손가방을 열어 현금 15만원을 훔치는등 이달초순부터 지금까지 부녀자들을 상대로 하루 10여차례에 걸쳐 1천여만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 조직폭력배 검거령/검찰/정부이양기 틈탄 범죄 엄단

    대검은 18일 최근 정부이양기를 틈타 새로운 폭력조직이나 출소한 조직폭력배들이 유흥업소 이권에 개입,금품을 뜯거나 부녀자들을 납치,폭행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들 조직에 대한 특별단속을 펴라고 전국 검찰에 긴급지시했다. 대검은 이 지시에서 각급 검찰청은 조직폭력배단속전담반을 정비,보완해 기획수사를 통해 신흥폭력조직과 수배중인 폭력배를 조속히 검거하라고 시달했다. 또한 신흥폭력조직과 출소조직폭력배들이 단순 폭력범이더라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해 폭력배들에 대한 처벌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각급 청별로 설치된 단속반은 관내 신흥·출소조직배들의 동태를 철저히 파악,범죄예방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 여권서류·비자용직인 위조/전 외무부직원 등 둘 검거

    ◎1명 구속·1명 영장 【부산=이기철기자】 부산경찰청은 16일 비자발급용 가짜 직인 1백여개를 만든 서울 종로구 수성동 삼일사 주인 신한철씨(31·인천시 북구 효성1동 268)를 인장업단속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가짜서류를 만들어 일본의 유흥업소에 취업을 원하는 부녀자들에게 비자를 발급받게 해준 전 외무부 여권과 고용직 박재영씨(33·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156)에 대해 관광진흥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씨는 지난 90년 12월부터 91년 6월까지 여권브로커 신영대씨(45·구속중)에게 부산시내 구청장,경남도내 읍면장,일본 요코하마시장 직인등 가짜직인 1백여개를 새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박씨는 지난해 6월초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789의6 희구빌딩 5층에 흥주기획이라는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본에 취업을 원하는 박모씨(23·여·부산시 남구 망미동)로부터 1백60만원을 받고 가짜서류를 만들어 일본입국 비자를 받게 해주는등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1천40만원을 받고 여권발급서류를 위조해준 혐의를 받고있다.
  • 최저임금 심의위 사무국장 신명씨(인터뷰)

    ◎“노·사·정간 합리적선에서 산출방침”/전국 산업·직종·연령별 임금실태 조사 『내년도 최저임금 수혜대상근로자는 모두 12만7천명으로 그중 대부분이 여성입니다.「저임금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최저임금제도의 발전·정착이 여성근로자의 권익보장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보다 합리적인 최저임금이 산출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으로는 처음 노동부「최저임금심의위원회」사무국장에 최근 임명된 신명씨(48).지난 88년 최저임금제 도입과 함께 마련된 이 자리는 노·사·정의 다음해 임금협상 전초전으로 작용해 심의기간(6∼9월)내내 팽팽한 힘겨루기가 전개되는「최심위」의 모든 실무를 맡아하는 팀장이다. 『이익이 대립하는 것은 당연하지요.「최심위」구성원인 근로자·사용자대표·공익위원회 3자가 원만하게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신씨가 올해 심의를 앞두고 구상하고 있는 작업은 「전국 산업·직종·연령별 근로및 임금실태조사」.전국의 노동부 지방노동사무소에 의뢰,작성한 최신의 정보를 최심위측에제출,최저임금산정에 활용토록하는 자료다. 신씨는 지난 67년 노동부 기획관리실에 9급공무원으로 발을 들여놓은뒤 27년간 노동부 노정업무를 대부분 거친 배테랑. 『길을 가다 전신주에서 뻗어난 굵은 전깃줄을 따라가 보면 어김없이 근로조건이 엉망인 가내공장이 있었습니다.당시에는 발로 뛰어다니며 법망을 빠져나간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죠』 많은 사업장의 근로조건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던 지난 76·77년 근로감독관으로서 「저임금 일소」캠페인의 실무를 맡은바 있으며 청계천 봉제공장 노사분규현장에서 양측을 중재하는 등 최일선에서 거치지 않은 일이 없는 그는 지난 81년 최초의 여성근로감독과장이 돼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노동부 부녀소년과 근무당시 동료들과 함께 입안·정책개발한 「남녀고용평등법」 「시범탁아소」가 미흡하지만 일단 씨를 뿌렸다는 점에서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신씨는 『어떤 자리를 맡든 최대한 노력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진출,나아가 노력을 인정받게끔하는 징검다리가 되겠다』며 여성으로서 공직생활에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6)

    ◎소년시절:17/「ㅌ·ㄷ」강령의 출처/30년 결성 「농민총동맹」의 강령 개작/68년부터 「조선노동당 뿌리」로 선전/민족주의 단체에 소속… 공산운동과는 무관 김일성이 날조하여 1968년부터 등장시킨 타도제국주의동맹은 그후 「조선노동당의 역사적 뿌리」를 내린 모체로서 백방으로 선전되어 나간다. ○사이비 공산주의자 필자는 전고에서 그가 을 결성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그러나 당시의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동급생이나 학교당국과 고립되어 있었고 김시우의 집에나 가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그리하여 결국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고야 말았다.따라서 의 날조는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생활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의 당시의 사상은 민족주의가 아니었다.이 때문에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었다.또 그가 당시 살부회에 속하거나 살부회의 영향하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유치한 극좌적 사고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그리하여 이것은 당시 그가 일종의 사이비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에게는민족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어떤 사상적 맹아상태가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필자는 이것이 그후 북한에서 유일독재를 실시하는 으로 되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1966년은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자신의 사상임이 명백히 되어 나가는 시기였다.또 67년은 그가 저지른 일종의 쿠데타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가 있었다.그는 이 회의를 열어서 보천보전투 때에 중공유격대를 국내에서 도운 박금철등을 숙청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라고 전 당원에게 강요하였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란 김일성의 말만 들으라는 야만적인 탄압을 당원들과 대중들이 감수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상체계인데 이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다.북한에서는 74년에 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의하여 밝혀진 이론과 방법의 체계로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현시대의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레닌주의들과는 근본 다른 독자적인이론이다」 ○유일사상체계 강요 따라서 주체사상의 맹아로 되는 그 어떤 사상상태를 추정할 때 화성의숙 시절의 김일성의 정신상태는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김일성의이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전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고 있는 부분은 날조로 밝혀졌다.하지만 필자는 지금 「주체사상의 뿌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의 화성의숙 시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의 이른바 「강령」문제에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이께서는 의 목적을 장차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며 당면하게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것이 68년 전기의 기술인데 물론 결성되지도 않았던 에 이러한 강령이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그러나 없었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 김일성 전기연구의 숙명이므로 이 강령의 추처를 알아 본다. 김일성이 화전의 을 날조할 때 그는 1929∼1930년에 남만주에서 사귄 인물들의 사적과 그들이 가담한 사건들을 자기의 업적 날조에 대거 동원하고 있다.최형우의 「소사」도용과 국민부 산하 남한청총 청년들의 맹원 만들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의 강령도 1930년 3월에 남만주 흥경현에서 있었던 동성조선인농민총동맹의 강령 내용을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남한청총에서는 한번도 간부가 되지 못하였으나 남한청총이 합류하여 결성된 이 농민총동맹에서는 하부말단 임원으로 선발되었다.그는 이 동맹의 강령에 접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강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일본제국주의를 박멸하고 조선의 절대 독립을 완성함. 2,노동자 농민의 민중정권을 건설함. 3,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민에게 무보상 대여함. 4,청년 부녀의 독자적 발전을 기함. 5,전세계의 무산계급 및 피압박민족과 단결함. 이 농민총동맹의 강령 제1조가 강령의 당면목적이 되고 나머지 조목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하여 싸운다고 추상화되었다.당시의 국민부는 공산주의조류의 도도한 흐름에 못 이겨 민족주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청년층의 좌경화가 촉진되고 있었다. ○재* 번져가던 시절 우리는 이상과 같은 분석으로 조선노동당 강령의 「뿌리」가 된다고 선전되어 있는 이 엉뚱하게도 당시 약간 좌경화된 국민부 산하단체의 강령에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1920년대의 김일성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관계가 거의 없었다.그는 실제로는 민족주의단체 정의부나 국민부의 청소년 단체에 소속해 있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공산주의운동이 아니라 사실은 민족주의 단체 정의부나 국민부 내에 있었던 김일성 개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①평전 295면 ②「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49면 ③「현대사자료 29」 562면
  • 담배자판기철거 마찰(현장)

    ◎주민 자진철거 요구에 업자 반응 냉담 9일 상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버스정류장앞 슈퍼마켓. 『청소년들을 위해 제발 담배자판기를 철거해 주십시요』 『아니,요즘 애들이 자판기가 없다고 담배를 안피우겠습니까』 『그래도 자판기때문에 청소년들이 손쉽게 담배를 구하지 않습니까』 『왜 하필 담배 자판기만 갖고 야단입니까.이곳 말고도 청소년들에 유해한 업소가 어디 한두곳입니까』 이날 부천시내 20여곳에서는 「부천담배자판기 추방시민단체연대」(일명 담추련)회원들과 아직 철거하지 않고 담배자판기를 갖고있는 업주들간에 이같은 실랑이가 벌어졌다.심지어는 멱살을 잡거나 삿대질이 오가기도 했다. 이날 이 지역 89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담추련」(상임대표 김흥식)의 3백여 회원들은 가는 곳마다 업주들의 큰 반발에 부딪쳤다. 회원들은 자판기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진 철거를 요청했으나 업주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되레 호통을 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사유재산권을침해하는 거요』 『그렇게 청소년문제에 관심이 많으면 당신의 집 아이들이나 돌보시요』 이럴때마다 회원들은 『자판기가 없으면 청소년들이 그래도 담배를 덜 피우지 않겠느냐』면서 양해를 구했지만 업주들은 막무가내였다. 가는 곳마다 실랑이가 벌어지자 한 부녀회원은 『자식기르는 부모심정으로 이 운동에 협조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왜 당신들만 유별나게 구느냐』는 핀잔을 듣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 때문에 결국 회원들은 이날 현장방문을 통해 부천지역에 설치됐던 전체 1백12대의 자판기 가운데 아직까지 자진철거를 거부하고 있는 22대의 자판기철거에 동의하는 위임장을 받아내려던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지난해 행정당국의 권유로 자진철거했던 자판기의 일부가 다시 그자리에 설치되고 있는 것이 드러나 회원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했다. 이행사에 참석했던 박경희씨(40·여·부천YMCA)는 『자판기설치금지조례에는 처벌조항이 없어 업주들의 반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없다』면서 실정법상의 한계를 아쉬워했다. 더욱이 미철거업주들은 『금지조례제정자체도 자유경쟁시장원칙에 위배된다』며 이의 위헌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내놓고 있는 상태여서 담배자판기추방운동은 갈수록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이날 「담추연」성수렬사무국장(39·여)은 그러나 『부천을 선두로 서울·부산등 전국 각 자치단체에서 같은 조례제정이 잇따른 것만도 큰 성과』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 「프랑스의 여성정책」 출간 최신덕서기관(인터뷰)

    ◎“우리나라여성 삶의 질 향상에 참고 됐으면” 『여성관련 실무를 맡아보면서 여성정책에 관한 참고자료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다른 모든 정책 입안자들이 마찬가지 고충을 겪고 있으리란 생각에 유학기간과 해외출장중 틈틈이 모았던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최근 「프랑스의 여성정책」(정문사간)을 펴낸 정무장관(제2실)실 최신덕서기관(48).그는 『지난 2년간 책을 쓰느라 주말과 휴가를 아예 포기해야 했지만 프랑스의 여성정책전반을 망라,행정실무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인사를 자주 들으니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는다. 「프랑스의 여성정책」은 일반여성뿐 아니라 윤락여성,범법여성등 특수층 여성관련 제도를 소개했으며 최근자료와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10여년전 일본어자료가 고작이었던 여성관련 사회보장분야에서 그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67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경기도 부녀계장을 시작으로 공직자의 길을 걷게된 최서기관은 74년부터 79년까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보사부특채로 재취업했다.86년 총무처 공무원장기연수 케이스로 2년간 프랑스파리제2대학에서 사회보장법 제3기과정을 수료했다. 『우리의 제도나 기구가 겉으로는 거창하지만 실용화되지 않고있는 반면 프랑스의 여성관련제도들은 실제로 매우 효율적입니다.특히 가족급여 부분은 오랜동안 수정보완을 거쳐 부러울만큼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최서기관은 『프랑스의 역사·문화적 배경이나 여성정책이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일선 경찰관 애환·보람 수록/남대문서,수기집 펴내 화재(조약돌)

    ○…서울남대문경찰서(서장 윤웅섭총경)가 일선 경찰관들이 근무를 하면서 느낀 애환과 보람을 담은 수기집을 펴내 화재. 「3분 거리,그러나 마음은 하나」라는 제목의 이책에는 남대문서 직원들과 가족·시민들이 쓴 1백20편의 수기와 편지형식의 글을 담고있다. 부녀자 인신매매가 극성을 부리던 90년 당시 사창가의 업주를 처벌해달라는 윤락녀의 눈물어린 고발을 접수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부터의 잘봐주라는 압력을 물리친 채 업주에게 철퇴를 가한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소신껏…」이란 시원스런 글에서부터 26년여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경찰은 불효자인가」등 법집행자로서의 번민과 고통을 담담하게 그린 짤막한 글이 진한 감동을 주고있다. 남대문서가 수필집 발간을 계획한 것은 지난해 9월 윤서장이 부임한 직후. 87년 경기 여주경찰서장재직시 「이강의 메아리」라는 직원수필집을 만들어 호응을 얻었던 윤서장은 『시민들이 경찰관의 고충을 이해하고 사랑받는 경찰관이 될수있는 산교과서로 활용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만들었다』면서 『서울시내 모든 파출소와 동사무소등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보내 국민과 경찰이 보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도록 할것』이라고 말했다.
  • 전재희 노동부 부녀지도관(만나고 싶었습니다)

    ◎“취업여성 출산·육아비 국고지원 추진”/직업안내창구 96년까지 4천개로/직장내 탁아시설 확충 등 다각 노력/노동계 구석구석에 산재해있는 과제들 해결 산업화 사회로의 변화와 함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고 있다.여성인력이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이제는 고도의 전문적인 직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전체적인 여성근로자의 처우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한 목소리도 높고 이들에 대한 관심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이 때문에 정부의 여성근로자들을 위한 정책도 다양한 변화를 모색해가고 있지만 모집·채용과 근무차별,그리고 출산·육아등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게 사실이다.김령자 한국노총 여성국장(52)이 지난해 1월 노동부 보험국장으로 옮겼다가 최근 부녀지도관으로 복귀한 전재희국장(43)을 찾아 우리나라 여성근로자의 현주소와 향후 대책을 들었다. ▲김국장=산업사회가 급격히 변하면서 여성취업도 구조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부녀지도관이 할일도 상당히 늘어났다고 생각되는데요. ▲전지도관=지난 60∼70년대의 여성관련 노동행정이 열악한 근로여성 보호쪽에 치우친 반면 이젠 그보다는 남녀고용차별해소가 큰 과제로 떠오른 셈이지요.전문직 고학력여성 취업난해소와 주부취업촉진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면서 사실 노동행정도 엄청나게 바뀌고 있습니다. ▲김국장=그런 관점에서 남녀고용평등법등 제도적 장치마련으로 어느정도 여성인력의 입지강화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산업현장에선 차별해소의 목소리가 높은게 사실입니다.새로 부녀지도관 직책을 맡으신만큼 보다 개혁적인 남녀고용차별해소책이 있으신지요. ▲전지도관=자리를 옮긴뒤 얼마되지 않아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우선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성인력을 보는 인식개선이란게 제 기본적인 생각입니다.여성을 남성의 대체인력아닌 동등한 인력으로 봐야한다는 것이지요.기업은 여성을 남성의 값싼 대체인력으로 필요로 하고 여성은 자신의 학력과 능력에 적합한 취업을 원하다보니 수급이 맞지 않을수 밖에요.실제로 여성경제활동인구가 지난80년에 비해 2백20여만명이나 늘었는데도 우리나라 여성 유휴인력이 전체의 65%나 차지한다는 것은 여성취업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볼수 있지요. ▲김국장=최근 기업들이 인력난을 겪으면서도 여성유휴인력 고용을 기피하는 큰 이유가 여성의 연속근무가 잘 지켜지지 않는데 있다고 보는데 노동행정이 바로 연속근무를 보장하도록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지도관=출산과 육아에 신경을 써야하는 여성의 경우 사실상 연속근무가 쉬운 일이 아니지요.그런 측면에서 기업측도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고요. ▲김국장=그렇다면 근본적인 개선책이 없을까요. ▲전지도관=현재 출산·육아보호지원에 관한한 기업에 대한 의무규정만 있어 기업측으로서는 임금과 노무관리에 부담이 된다고 볼수 있지요.앞으로 이같은 여성의 고유한 인력부담을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할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입니다.현단계에선 상당히 급진적인 방침이긴 하지만 여성인력이 늘고 선진국대열에 끼기 위해선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만큼 이같은 정책에 대한 공청회나 여론수렴을 거쳐제도화해나갈 계획입니다. ▲김국장=그중에서 빼놓을수 없는 부분이 사업장내나 공공탁아소시설 마련이라고 볼수 있을텐데요.실제로 대부분의 제조업 여성종사자중에는 가정형편상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고 육아시설에 맡길경우 너무 비싸 지원체제가 시급한 실정이지요. ▲전지도관=출발이 늦긴 했지만 그점에선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만큼 수년안에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그와함께 부부의 역할분담등 가정내에서의 인식도 크게 바뀌어야 하겠지요. ▲김국장=대단히 희망적인 말씀입니다.그에 못지않게 중요한게 산업현장에서의 차별철폐가 아닐까요. ▲전지도관=과거 성별역할분담관념때문에 여성이 객관적인 적성·능력구분없이 현장에 배치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요.결과적으로 이런 흐름이 기업측에도 이롭지 않은만큼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야겠지요. ▲김국장=취업규칙 차별조항등이 사실상 여성차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보는데요. ▲전지도관=여성고용의 책임은 사회 문화적인 관행에만 있는게아니고 여성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도 없지않아요.대학 학과 선택에 있어서도 여성의 전통적인 인식에 근거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에 맞게끔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김국장=그것은 제도상 여성이 참여할수 있는 길이 막혀있기 때문이 아닐까요.그래서 여성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게 우리 노동계 현실이구요. ▲전지도관=그렇지 않습니다.직업훈련기관의 여성참여율이 대부분 31%미만인 점을 볼때 소극적이라는 말입니다.여성들 자신이 현실을 냉정히 파악해야 할 때입니다. ▲김국장=여성들의 취업증진을 위해 취업알선 정보망을 늘릴 계획은 없으신지요. ▲전지도관=현재 국립직업안정기관을 중심으로 44개소가 운영중인데 96년까지 이같은 직업안내창구등을 읍·면·동까지 연결해 3천9백98개소로 확충할 계획입니다.그렇게 되면 여성들이 이용할수 있는 여지도 넓어진다고 봐야지요. ▲김국장=거의 1년만에 복귀한 자리인만큼 종전과는 색다른 각오가 많으실텐데 우리 여성근로자들의 기대또한 큽니다. ▲전지도관=사실 지난번 재직때 못다한 숙제를 풀겠다는 생각입니다.노동계 구석구석에 산적해있는 과제들을 작은 것부터 풀어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꼭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 철도 공안원 변재수 공안담당관(이런자리 저런일)

    ◎철도여객위한 “범죄 청소부”/치기배 단속서 청소년선도역까지 전담/범죄 갈수록 포악화… 업무도중 부상 많아 『명랑하고 쾌적한 열차여행을 위한 범죄없는 역을 만들자』 4만여명의 철도청공무원들 가운데 사법권을 갖고있는 3백19명의 철도공안원들을 총지휘하고 있는 변재수공안담당관은 아침마다 공안원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철도공안원들은 역구내와 열차안의 소매치기와 폭력사범 등 현행 형사범을 검거할 뿐 아니라 대합실의 잡상인·암표상·소란행위·부녀자희롱·강제기부요청 등 행정사범도 검거해야 한다. 또 무단상경한 가출 소년소녀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선도하고 차표를 마련해주고 보호자에게 인도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1963년 철도공안제도의 도입으로 창설된 공안공무원들은 서울·대전·부산·순천·영주 등 5개 지방철도청별로 12개 분실과 18개 주재소를 두고 근무하고 있다. 전국의 주요역에 배치되어 있는 공안분실및 주재소에는 질서저해사범신고센터와 가출인상담소가 설치되어 있다. 경찰전문학교를 졸업한 무술경관출신인 변재수씨는 60년대초 장면총리를 경호하다 5·16이후 철도공안원이 되어 30년간을 한 직종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키 1백76㎝,몸무게 78㎏의 육중한 체격의 변씨는 『대부분의 공안원들은 대학출신이며 유도·태권도유단자』라며 『그러나 범죄행위가 날이 갈수록 지능화·포악화됨에 따라 공안원들이 업무수행중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공안원들은 강도5명,절도1백17명,폭력83명,기타풍속사범 2백31명을 검거,1백46명을 구속송치했다. 또 잡상인 1천5백28명,음주소란행위 1천4백66명,암표상 2백32명,기타 1만1천8백35명등 1만5천61명의 행정사범을 검거,3천24명을 즉심에 회부하고 8천5백78명을 훈방,3천4백59명을 경찰이나 군등 관계기관에 인계했다. 열차안에서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드링크류를 마시게 한뒤 실신시킨뒤 손가락의 금반지나 돈등 귀중품을 약탈하기도 한다. 변재수공안담당관은 『현재 전국의 총여객열차는 하루 1천4백24개 운행되고 있으나 3백여명밖에 되지 않는 공안원들이 모두 탑승할 수 없어 사고빈도가 높은 열차와 취약시간에만 기동단속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 총리표창 부산남부경찰서(민원행정 수범기관:5)

    ◎고압적자세 탈피 친절봉사에 앞장/고소 등 껄끄러운 문제도 웃으며 맞고/집단민원 해당관청과 협의,적극해결 『명랑하고 쾌적한 열차여행을 위해 범죄없는 역을 만들자』 4만여명의 철도청공무원들 가운데 사법권을 갖고있는 3백19명의 철도공안원들을 총지휘하고 있는 변재수공안담당관은 아침마다 공안원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철도공안원들은 역구내와 열차안의 소매치기와 폭력사범등 현행 형사범을 검거할 뿐 아니라 대합실의 잡상인·암표상·소란행위·부녀자희롱·강제기부요청등 행정사범도 검거해야 한다. 또 무단상경한 가출 소년소녀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선도하고 차표를 마련해주고 보호자에게 인도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1963년 철도공안제도의 도입으로 창설된 공안공무원들은 서울·대전·부산·순천·영주 등 5개 지방철도청별로 12개 분실과 18개 주재소를 두고 근무하고 있다. 전국의 주요역에 배치되어 있는 공안분실및 주재소에는 질서저해사범신고센터와 가출인상담소가 설치되어 있다. 경찰전문학교를 졸업한 무술경관출신인 변재수씨는 60년대초 장면총리를 경호하다 5·16이후 철도공안원이 되어 30년간을 한 직종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키 1백76㎝,몸무게 78㎏의 육중한 체격의 변씨는 『대부분의 공안원들은 대학출신이며 유도·태권도유단자』라며 『그러나 범죄행위가 날이 갈수록 지능화·포악화됨에 따라 공안원들이 업무수행중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공안원들은 강도5명,절도1백17명,폭력83명,기타풍속사범 2백31명을 검거,1백46명을 구속송치했다. 또 잡상인 1천5백28명,음주소란행위 1천4백66명,암표상 2백32명,기타 1만1천8백35명등 1만5천61명의 행정사범을 검거,3천24명을 즉심에 회부하고 8천5백78명을 훈방,3천4백59명을 경찰이나 군등 관계기관에 인계했다. 열차안에서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드링크류를 마시게 한뒤 실신시킨뒤 손가락의 금반지나 돈등 귀중품을 약탈하기도 한다. 변재수공안담당관은 『현재 전국의 총여객열차는 하루 1천4백24개 운행되고 있으나 3백여명밖에 되지 않는공안원들이 모두 탑승할 수 없어 사고빈도가 높은 열차와 취약시간에만 기동단속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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