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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39쇼핑 사장 자살 결론/부검결과 타살흔적 없어

    39쇼핑 사장 朴京洪씨(39) 변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용산경찰서는 15일 시신부검 결과 朴씨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朴씨의 유가족과 유가족측이 요청한 의사 2명이 입회한 가운데 부검한 결과 朴씨의 직접 사인은 추락 당시 충격으로 인한 심한 장기손상이며 타살로 볼 만한 상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 39쇼핑 사장 자살 한듯/朴京洪씨 오늘 부검 실시

    홈쇼핑 전문업체인 39쇼핑 사장 朴京洪씨(39) 변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용산경찰서는 14일 사건 당시 정황으로 미뤄 朴씨가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자살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朴씨의 목 부위에 자해할 때 나타나는 주저흔이 있는 점,출근할 때 부인에게 유언 형식의 말을 남긴 점,당일 宋德鎬 상무(39)등 임원 3명을 불러 宋상무에게 자금관리 장부 등을 인계한 점 등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이르면 15일 시신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할 방침이다.
  • 민주열사 열전:11/‘녹화사업’ 의문사:상(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제순화·프락치 강요에 ‘비극적 저항’/정 烈士 시위현장서 곧바로 징집… 의문의 죽음/5공 군당국 부모에 ‘이의제기 포기’ 각서 간청 광주학살 등 폭력을 자행한 5공화국의 全斗煥정권은 80년대 초 국민을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독재정권의 기반을 다졌다.공포의 경찰국가 같은 상황이었지만 대학의 ‘반독재 반군사정권’ 시위와 함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5공 정권은 대학 시위를 막기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하기에 이른다.그중 하나가 대학생 강제징집과 ‘녹화(綠化)사업’이다. ○대학생 477명 강제징집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밝혔으나 그 과정에서 여섯명의 의문사(死)가 나왔다.본래 군대갈 나이가 됐더라도 대학에 다니고 있으면 퇴학·휴학 등의 학적변동이 없는 한 신체검사와 입영이 연기된다.아울러 신검과 입영은 각각 20일,30일 전에 통지서와 영장이 송달된 뒤에 이뤄지도록 되어 있다.그러나 5공정권은 81년 11월부터 시위저지책의 하나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버젓이 대학내에 상주해온 정보요원에 의해 문제학생으로 지목됐으나 법으로 걸 만한 뚜렷한 혐의가 없던 학생,시위현장에서 붙잡힌 단순가담 학생들을 경찰서로 끌고와 구타와 함께 조사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곧바로 군부대로 끌고 갔다.병역법상의 사전통지 조항을 정면으로 무시했고 대학생 입영의 필수요건인 학적변동도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6공이 들어선 88년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5공정권은 83년 말까지 2년 동안 이같은 강제징집으로 447명의 대학생을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자진 휴학 등 정상적으로 학적이 변동되어 입대하는 경우와는 다른 이 ‘특수 학적변동’ 입대자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신검을 받았을 경우 입대할 수 없는 신체상 결격사유나 가정환경의 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됐다.연령 미달자도 있었고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편한 사람과 3대독자도 끌려갔다. ○장애자·3대 독자도 끌어가 강제징집은 강제징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당시 군 보안사령부가 입안한 ‘녹화사업’이 기다리고 있었다.‘녹화사업은 병역법에 의거,학원소요 관련 학사징계로 83년 11월까지 입대조치된 자 447명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문제학생들의 급격한 입대 증가 추세로 좌경의식의 군내 유입이 우려돼 보안사에서 이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많은 의식화 오염자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했다고 이때 국방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강제징집되어 군에서 녹화사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그들은 학생운동에 관한 정보를 빼내고 이를 탄압하기 위해 보안사가 펼친 강제순화 및 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라고 주장해 왔다.녹화사업은 정신적인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분량의 자술서 작성으로 시작된다.의식 상태를 면밀히 심사하고 체제를 긍정하도록 하는 의식 개조작업이 뒤따른다.소속 군부대 및 서울 보안사 분실에서 행해진 운동권학생들의 ‘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작업은 보름에서 두달간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녹화사업은 그러나 ‘순화됐다’는 맹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순화’된 학생에게 이를 입증할 관제프락치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대개 휴가 형식으로 사회에 내보낸 뒤 대학 선후배 등을 만나 활동상황,특이 동향의 정보를 수집,보안대에 보고하도록 강요한다.갑자기 군에 끌려온 학생들은 이같은 녹화사업으로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84년 초 강제징집된 6명의 대학생이 보안사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학원가에 돌았고 곧 정치·사회문제화됐다.84년 6월 당시 尹誠敏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학적 변경과 관련한 입대자 중 81년이후 군에서 사망한 인원은 자살 4명(정성희 이윤성 김두황 한영현),군기사고 1명(최온순) 등 5명이며 자진휴학 지원입대해 자살한 1명(한희철)을 포함하면 모두 6명’이라고 밝혔다. ○선후배 활동상황 보고 강요 尹관은 이같은 인명 손실은 학원사태 관련 군입영자에 대한 차별대우로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물론 ‘강제징집’ ‘녹화사업’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녹화사업이 82년 9월부터 84년 11월까지 265명에 실시됐다고 밝힌 88년 국감 때도 국방부는 의문사에 대해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다만 녹화사업이 정치문제화함에 따라 84년도에 녹화사업 업무를 중단하고 보안사 전담부서를 폐지했다고 밝혔다.관련 자료도 3년 보존기간이 지나 폐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단체와 가족이 제기하는 녹화사업 의문사는 심증만 있을 뿐 진상을 알기가 극히 난망한 실정이다.여섯명의 의문사 중 ‘강제징집 사망1호’인 정성희씨의 경우를 먼저 살펴본다.(나머지 5명은 다음 회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81년 연세대 영독불문학 계열에 입학했던 정성희는 대학생활 8개월 만인 11월25일 교내시위 현장에서 20여명의 교우와 함께 연행됐다.이중 15명이 강제징집당했다.연행 3일 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군에 강제로 입대한 그는 82년 6월8일 첫 휴가를 나와 친구,가족들에게 보안대의 감시 등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귀대한 지 달포 후인 7월23일 아침 갑자기 사망통보가와 가족이 전방으로 달려가자 이날 새벽 0시10분 철책근무 중 목에 M16소총 4발을 발사해 자살했다는 설명이었다. ○사망현장 답사요구 묵살 군당국은사고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의 최전방이므로 현지답사가 불가능하다며 간단한 도면설명과 함께 자살임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부모로부터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그리고 사망사인에 이의없고 이후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사체를 처리했다.유서는 없고 ‘백양로를 한번 더 걸어보고 싶다.죽음 앞에서 내가 이렇게 담담하다니’ 등 8줄 정도의 낙서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84년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사망원인에 따르면 입대해 평소 사회제도에 불만을 토로했으며 사고 당일 전방교육 실습차 입소한 대학생 1명과 복초근무를 하면서 “순수한 철학도의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이다.88년 국감자료는 보안사 정훈교육 이전 사망자로 염세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정성희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정성희와 다른 5명의 의문사는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비극적 저항이었다. □정성희 열사 연보 ▲1962년 인천 출생 ▲81년 부평고 졸업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81년 11월25일 학생시위로 연행 ▲81년 11월28일 강제징집 ▲82년 7월23일 사망 ◎당시 고려대생 양창욱씨 ‘녹화사업’ 회고/1주일간 심한 구타뒤 ‘감옥’‘군입대’ 택일 강요/보안대 조사땐 ‘감쪽같이 죽을수도’ 공포 엄습 현재 부천에서 ‘어린이 과학실험교실’을 내고 있는 양창욱(38)씨는 고려대 4학년 때인 83년 3월 문과대 시위주동자로서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다음은 그의 녹화사업 회고. 경찰서에서 1주일간 심하게 두들겨맞은 뒤인 3월7일 갑자기 부모를 불러오더니 ‘감옥에 보내겠느냐,군대에 보내겠느냐’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부모들이 군입대 각서에 서명한 직후 춘천 보충대로 가서 요식적인 신검을 치렀다.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서류작성에 불과했다. 동해에 있는 훈련단에 보내져 6주 훈련에 들어갔다.보름 만에 부친상을 당해 휴가를 나왔는데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슬픔도 슬픔이지만 해방감에 당황할 정도였다. 3개월쯤 지난 뒤인 6월 초 배치된 철책 초소에서 강릉 사단사령부 보안부대로 소환됐다.하룻밤을 묵으면서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모 중위로부터 친구,학내 동향과 관련해 심문을 받았다.구타는 없었다.얼마 후 같이 강제징집된 친구 김두황의 죽음을 우연히 전해들었다. 10월 사단 보안대의 그 중위와 함께 서울 세운상가 뒤 아파트로 이동,녹화사업을 받았다.아파트 안은 오직 책상 하나와 백열등뿐이었고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사가 진행됐다.1주일간 이곳에 혼자 갇혀 있으면서 16절지 300장에 달하는 자서전을 작성했다.옆 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구타나 고문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순화교육이 끝났다는 표시로 태극기 아래서 사진을 찍더니 8일간의 휴가를 주면서 학교,서클과 관련해 몇몇 정보를 얻어 아파트로 다시 라는 프락치 임무가 주어졌다.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정보 몇개를 가지고 갔더니 미진하다며 3일간의 추가 ‘프락치 휴가’를 주었다. 사흘 후 다시 가자 정보를 더 물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있었던 일을 일절 입밖에 내지 않겠으며 이후 보안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이같은 조사는 제대할 때까지 두번 다시 없었으나 사단의 중위가 3개월마다 직접 부대에 와 점검했다.
  • 北送 통일소 71마리 폐사원인 뭘까

    ◎장시간 이동으로 수송열·이식증 발생/정부·현대측 “환경변화 적응 못한듯” 현대가 북한에 보낸 소 71마리의 폐사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북한은 폐사한 소들이 비닐과 밧줄을 먹은 게 직접 사인이라며 이를 우리측이 먹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현대측은 이는 수의학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20시간 이상 이동의 후유증으로 생긴 수송열(Shipping Fever)과 이식증(異食症) 때문이라고 강조한다.서산목장에서 사료를 먹으며 자란 소가 북한에 보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부실한 영양관리로 비닐과 밧줄을 먹는 등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죽었다는 것. 수송열은 통상 소의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고 폐렴,설사 등의 합병증을 유발한다.관리가 양호해도 장시간 이동시 7∼10일 사이에 수송열이 발생,5∼10%의 폐사율을 보인다.북측이 북송 당일 죽은 소를 부검한 결과,대뇌와 내장 등에 충출혈병변이 나타난 점은 바로 패혈증을 동반한 급성 수송열의 전형적인 임상증상.이럴 경우 이물질을 먹지 않아도 폐사 가능성이 있다. ‘소들의 뿔 껍데기가 떨어지는’ 현상은 소의 영양상태가 최악인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사료를 먹던 소가 북한측의 관리소홀로 광물질,단백질의 공급이 달리자 영양결핍에 걸린 것이다. 또 소의 밧줄길이가 2m인 점을 감안하면 지름 1㎝ 800m에 이르는 36.5㎏을 먹는 건 불가능하다.비닐도 A4 용지 크기여서 배설되기 마련이며,더구나 우리측에서는 노란색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한마리가 7월9일 독을 바른 물체에 찔려 죽었다는 북측 주장은 이 소가 북송후 23일간이나 살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현대는 소의 교체설과 관련,소귀에 서산목장의 관리번호와 검역증 개체번호가 같이 있어 혼선을 빚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교체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 숨진 신도 폐속에 그을음/영생교회 7명 부검 결과

    ◎‘산채로 불에 타 사망’ 확인 영생교회 신도 집단사망 사건을 수사중인 속초경찰서는 7일 사망자 7명에 대해 부검을 한 결과 이들의 목과 폐에서 다량의 그을음이 검출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불에 타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속초의료원에서 부검을 집도한 김봉수 외과의원 원장은 “사망자의 신체에서는 골절 등 외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정밀검사를 해 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으나 위점막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볼 때 극약과 같은 약물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취중행패로 구류처분 40대/경찰 유치장서 쓰러져 숨져

    28일 오후 5시30분쯤 인천시 중구 항동 인천 중부경찰서 유치장에서 全창흡씨(49·노동·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일산동)가 갑자기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全씨와 함께 유치장에 있었던 金모씨(30)는 “유치장에 앉아 있던 全씨가 물을 찾더니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말했다. 全씨는 이날 오전 1시쯤 인천시 중구 내동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뒤 술값이 없다며 행패를 부리다 파출소로 연행돼 인천지방법원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구류 1일 처분을 받고 이날 오전 9시40분쯤 유치장에 입감됐었다. 경찰은 全씨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키로 했다.
  • 간첩 死因으로 본 침투 전모

    ◎1명 잠수정서 떠오르다 죽었으면 공작조 2명은 잠수정 복귀 가능성/육지 접근중 한류 만나 심장마비땐 남은 2명 수영으로 해안상륙 도주 ‘말없는 무장간첩의 시신이 침투 당시의 상황을 얼마만큼 말해주고 있을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발견 당시 무장간첩은 숨진 지 8∼1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고 사인이 심장경색에 의한 심장마비였다는 사실은 이들의 침투시점과 경로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내장의 내용물 등 시신 부검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잠수정이 해안에서 1.5㎞ 떨어진 해상에 도착,수심 20∼30m 해저에 안착한 시간은 지난 11일 하오 11시 전후.곧 3인 1조의 침투조원들은 잠수정의 해치를 열고 나온 뒤 추진기를 가지고 오리발을 이용해 수면위로 부상했다.1∼2분만에 수면 위로 올라온 이들은 육안으로 침투지점을 확인한 뒤 추진기를 작동시켰다. 군 당국은 물 위로 올라오는 도중,또는 추진기를 작동하며 출발하던 초기에 추진기수가 숨졌을 경우 다른 공작조 2명은 잠수정으로 복귀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인조가 추진기를 타고 해안에 접근할 당시 해상에는 짙은 해무가 끼어 있었고 파고는 1∼1.5m 가량이었다.추진기는 5∼10m의 물밑을 시속 2.5노트의 속도로 이동했다.250m가량 가다가는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내쉬며 목표 지점을 확인한 뒤 다시 잠수하는 일명 ‘돌고래 항법’을 이용했다. 이때까지 별탈없이 뭍으로 향하던 이들은 목표지점을 얼마남겨 두지 않은 지점에서 갑작스런 조류와 냉수대를 만났다.공기통과 장비 등이 든 가방을 휴대한 추진기수는 물속과 밖의 기압차 등으로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서 의식을 잃었다.이 경우 2명의 침투조는 수영으로 해안에 상륙,내륙으로 잠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버려진 추진기는 그대로 항진하다 밀물에 밀려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1.8㎞가량 떨어진 곳에서 스쿠루에 해초가 끼인 채 표류했다.발견 당시 엔진은 꺼져 있었고 밧데리는 방전돼 있었다. 그로부터 7∼9시간이 지난 12일 상오 9시20분 무장간첩의 시신 1구가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그러나 그 동안우리 군은 무장간첩의 침투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공작조 2명이 내륙으로 달아났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 軍,예상도주로 수색 강화/무장간첩 침투

    ◎숨진 1명 死因은 ‘심근경색’ 사흘째 북한 무장간첩 수색작전을 펴고 있는 군 당국은 14일 무장간첩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수중 추진기를 타고 침투하던 중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침투조원 2명은 해안에 침투,내륙으로 달아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그러나 사흘동안 육상과 해상 등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에서 이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으며 침투조원들이 잠수정으로 복귀했거나 익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이들이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해 비무장지대에 있는 우리측 최전방 관측초소(GOP)를 공격한 뒤 북으로 귀환할 가능성에 대비해 산악지역 및 주요 예상도주로를 겹겹이 차단하고 있다. 또 해안지역의 은신처에 숨어있다가 우리 선박을 탈취하거나 북한 잠수정과 다시 접선,해상으로 달아날 것에 대비해 예상 은신지역에 대한 수색 및 해상도주로에 대한 정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군은 침투조원들이 해상 및 수중에서 익사했을 가능성도있을 것으로 보고 시신 및 추진기가 발견된 동해시 묵호동 주변 5㎞이내 지역에 대해 바둑판식 정밀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편 군 당국은 이날 북한 무장간첩 시체가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500m 가량 떨어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북쪽 해안에서 발견된 잠수복 2벌은 합동신문 결과 국산이며 불에 탄 흔적 등으로 미루어 대공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北 침투’ 안보리문서로 채택/정경분리 햇볕정책은 고수

    ◎정부,공식입장 정리… 金 대통령 내일 안보회의 주재 정부는 13일 북한 무장간첩 사건을 정전협정을 위반한 명백한 ‘무장침투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유엔 안보리의장에게 이번 사건의 경위와 정부 입장을 담은 서한을 보내 안보리 문서로 채택,국제사회에 대북압력을 요청할 방침이다. 또 판문점 장성급회담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미·일 등에 대북 경고를 요청키로 하는 등 잠수정 침투사건 때보다 대응 수위를 한단계 높이기로 했다. 특히 金大中 대통령의 정경분리 원칙은 고수하되 현 남북상황과 국민감정을 고려,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의 소떼 추가 북송 등 민간교류사업을 일시 보류하기로 하고 이를 민간기업에 권고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하오 삼청동 남북대화 사무국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고 千容宅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정부의 대응방안을 논의,이같이 결정했다. 이와함께 민·관·군 통합 방위작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별로 통합방위 중앙협의를 수시로 개최키로 했다. 金대통령은 우리의 통합방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15일 청와대에서 국가 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기로 했다. 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金대통령은 지난번 잠수정 침투사건과는 달리 이번에는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정경분리 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햇볕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林수석은 이어 “16일 유엔사 장성급회담에서는 지난달 잠수정침투와 함께 이번 무장간첩사건의 책임 추궁을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예상도주로 등 집중수색 【동해=특별취재반】 국방부 중앙합동신문조는 13일 무장간첩 침투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북한 노동당 작전부 313연락소가 지난 11일 밤 잠수정을 동해안으로 침투시켜 3명 1개조의 공작조 및 안내원(추진기수)을 해안에 상륙시키려다 안내원 1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군은 공작조 2명이 이미 육상으로 잠입했을 것으로 보고 예상 도주로를 집중수색하고 있다. 한편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무장간첩 시신 부검결과에 따르면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나이지리아 폭동 진정 국면/“아비올라 시신 부검뒤 국장”

    ◎45명 사망 【라고스 AFP DPA 연합】 나이지리아 재야지도자 모슈드 아비올라의 옥중사망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사망자가 45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이지리아 대부분 지역의 폭동이 9일(현지시간)들어 일단 진정됐다. 이는 당국이 아비올라의 고향인 아베오쿠타에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림에 따라 질서가 다소 회복된 것으로 폭동의 재발 가능성은 남아있다. 앞서 나이지리아의 신문인 ‘밴가드’는 아베오쿠타와 라고스에서 각각 15명이 숨지고 이바단에서도 10명이 사망해 사망자가 45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 남부의 이페 마을에서는 폭동발생 뒤 58명의 정치범이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폭동 사망자 수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병원측도 집계를 내지 못해 사망자 수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챔피온 신문은 폭동 사망자 수를 밴가드보다 훨씬 낮은 20명으로 보도했으며 AFP소식통들은 15명이 숨진 사실을 확인하면서 다만 사망자가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비올라의 부인 중 한명인 두베 오니트리 아비올라는 당국이 아비올라의 시신에 대한 부검이 끝난 뒤 라고스에서 국장을 치르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 합참 작전본부장 문답

    ◎“선체 확인결과 탈출흔적 없어 집단자살 싸고 다툼 있었던듯” 합동참모본부 丁永振 작전본부장(중장)과 姜浚權 국방부 대변인은 26일 “합동신문조의 1차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은 정전협정을 위반한 명백한 침투행위”라고 밝혔다. ­침투공작으로 단정하는 근거는. ▲표류 선박이라면 연막탄 등으로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데 북한 잠수정은 그물에 걸리자 북동쪽으로 달아나려 했다. ­침투 중이었나,공작을 마치고 복귀하는 중이었나. ▲시신과 유류품 등을 조사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잠수정 안에서 국산 음료수 병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육상 침투공작을 마친 것 같은데. ▲국산 음료수는 북한에서도 중국 등을 통해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승조원들은 언제 사망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시각은 부검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사망자 외에 탈출자가 있을 가능성은. ▲선체 외부를 확인한 결과 탈출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함교의 1차 출입문과 2차 출입문에서 잠수장비가 발견된 것을 보면 일부가탈출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조사해 보겠다. ­숨진 9명 중 4명을 공작원이라고 보는 이유는. ▲유고급 잠수정을 운행하는데 필요한 승조원은 보통 5∼6명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공작조로 봐야 한다. ­4명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5명은 난사당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공작조와 승조원들 사이에 집단 자살을 놓고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작원들이 잠수정 내부를 파괴하지 않았는데. ▲우리도 그 점에 의문을 갖고 있다. 잠수정이 어망에 걸리면서 당황했을 수도 있고 자살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어 미처 내부를 훼손할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 “폴 포트 시체 부검/학살 관련자 처벌”/美 국무부 대변인

    【안롱벤·워싱턴 AP AFP 연합】 미국은 16일 캄보디아 국경지역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악명높은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가 이틀내 화장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의 시체부검 및 지난 70년대 대량학살 주도세력들의 처벌을 촉구했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70년대 크메르 루주 집권 당시 저질러진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심판해야 할 필요성은 폴 포트가 숨졌다 해서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한편 유엔은 폴 포트의 사망에도 불구,크메르 루주 지도부를 재판에 회부하려는 계획을 진척시키고 있으며 이미 명망있는 국제 재판관을 증거 수집팀장으로 임명했다고 톰스 하마버그 캄보디아 인권담당 유엔 특별대표가 이날 밝혔다.
  • 세살바기 딸 아사 직전 발견

    ◎열흘전 숨진 엄마 곁에서 울다 지쳐… 【영천=金相和 기자】 3살된 딸이 숨진 어머니의 팔을 베고 10여일 가량 누워 있다 아사 직전 아버지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위독하다. 14일 상오 11시 30분쯤 경북 영천시 청통면 원천2리 高모씨(50) 집 2층에 세든 梁모씨(33·무직) 집에서 梁씨의 아내 李위숙씨(30)가 방안에 숨져 있었고 딸(3)이 李씨의 팔을 베고 누워 있는 것을 梁씨가 발견했다. 梁씨의 딸은 발견 당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며 숨진 李씨는 심하게 부패돼 있었다. 梁씨는 직업이 없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지난달 23일 자신은 아들(5)을 데리고 고향인 경북 상주로 갔으며 아내는 서울 언니집으로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뒤 이날 집에 와보니 출입문이 잠긴채 아내가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李씨가 외상이 없는데다 집안에 외부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자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시체를 부검,정확한 사인을 가리기로 했다.
  • 흑두루미 11마리 집단 폐사/김포 통진면 논바닥서

    지난 4일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 귀전2리 마을 앞 논바닥에서 먹이를 먹던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 11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6일 문화재관리국에 따르면 지난 4일 하오 4시쯤 흑두루미 100여마리가 이 마을 논으로 날아와 먹이를 먹던중 10여마리가 갑자기 쓰러지는 것을 마을주민이 한국조류보호협회에 신고,협회 구조대원과 문화재관리국 직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활동을 벌였다. 쓰러진 두루미중 7마리는 현장에서 폐사했고 4마리는 후송도중 폐사했다. 문화재관리국은 두루미들이 농약 등을 먹은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폐사체 부검을 의뢰했다.
  • 검사장급 27명 인사/서울지검장 박순용씨/법무부검찰국장 신승남씨

    ◎대검중수부장 이명재씨/대검공안부장 진형구씨 법무부는 19일 서울지검장에 박순용 대검중수부장을,신광옥 서울고검부장검사는 법무부기획관리실장에 승진 발령하는 등 검사장급 27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인사를 오는 23일자로 단행했다.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신승남 전주지검장,대검중수부장에 이명재 대검총무부장,대검공안부장에 진형구 대검감찰부장이 전보됐다. 사시 13회의 송광수 서울동부지청장은 부산고검차장,김원치 서울남부지청장은 대전고검차장,명노승 서울북부지청장은 대구고검차장,김학재 부산동부지청장은 법무연수원기획부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이태창 창원지검장 등 지검장 5명은 유임됐다. 한편 신현무 대구지검장은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냈다. ▼지검장△부산 김수장 법무부보호국장△대구 강신욱 법무부 법무실장△광주 유재성 수원지검장△수원 이재신 광주지검장△대전 송인준 대검강력부장△인천 전용태 청주지검장△울산 박주환 대검형사부장△춘천 제갈융우 대구고검차장△청주 주선회 대검공안부장△전주 최병국 인천지검장 ▼법무부△교정국장 김경한 춘천지검장△법무실장 김영철 보호국장△보호국장 윤동민 기획관리실장 ▼대검부장△총무 이종찬 울산지검장직대△형사 안강민 서울지검장△강력 임휘윤 공판송무부장△감찰 김승규 대전고검차장△공판송무 이광수 법무연수원기획부장
  • 검찰 간부 대대적 물갈이

    ◎고·지검장급 40명 전원 대상… 빠르면 오늘 단행/대검차장 송정호씨 법무차관 김상수씨 등 물망 검찰 수뇌부의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빠르면 12일 하오 단행된다. 검찰뿐 아니라 안기부·경찰 등 국가 사정기관의 인사를 가름할 잣대로 여겨지는 이번 인사에서는 정치색이 짙거나 학연·지연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던 상당수 간부들이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사 대상은 대검차장과 법무부차관을 포함한 고·지검장급 40명 전원이며,연쇄승진및 자리이동이 예상된다. 대검차장에는 송정호 광주고검장(56·사시6회)이 유력하고,법무부차관에는 김상수 법무연수원장(56·사시6회)·,심재륜 대구고검장(54·사시7회),김진세 부산지검장(56·사시7회)이 거론되고 있다. 이원성 대검차장(57·사시5회)은 서울고검장,원정일 법무차관(53·사시7회)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검장은 사시8회의 박순용 대검중수부장(53),최경원 법무부검찰국장(52),김수장 법무부교정국장(53)이 막판 경합 중이다. 안강민 서울지검장(57·사시8회)은 고검장 승진이 유력시된다. 검찰국장은 신승남 전주지검장(54·사시9회),대검 중수부장은 이명재 대검총무부장(55·사시11회),대검공안부장은 진형구 대검감찰부장(53·사시11회)과 임휘윤 대검공판송무부장(54·사시12회)이 물망에 올라 있다.사시5∼6회인 고검장 3명은 용퇴할 것으로 전해졌다. 사시 12회의 신광옥 서울고검부장검사(55·사시12회)와 사시 13회 재경 지청장 등 3∼4명의 검사장 승진이 점쳐진다. 한편 심상명 법률구조공단이사장(56)과 최영광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58)은 후진들을 위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 농약 묻은 볍씨 먹고 죽어/재두루미 떼죽음/살포 경위 등 조사

    【구미=한찬규 기자】 구미 낙동강변에서 떼죽음당한 천연기념물 재두루미는 농약이 함유된 볍씨를 먹고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관리국은 6일 수의과학연구소에 폐사한 재두루미 2마리에 대한 부검을 의뢰한 결과,재두루미 위 속의 볍씨에서 솔잎흑파리 제거용 농약인 포스파미돈 성분이 230.25ppm과 8.83ppm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문화재관리국 관계자는 “오리의 경우 포스파미돈 3.1ppm이 치사량”이라면서 “떼죽음당한 재두루미 대부분이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숨진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관리국과 구미시 등은 직원과 주민 등 4백여명을 동원,구미지역 낙동강변 일대에서 볍씨 수거에 나서는 한편 재두루미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농약이 묻어 있는 문제의 볍씨가 뿌려진 경위와 살포자를 수사중이다.
  • 구치소 노역 40대 맞아 숨져

    서울 송파경찰서는 24일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다 숨진 박순종씨(49·동대문구 장안1동)의 부검결과,심한 폭행 흔적이 발견돼 수사에 나섰다. 박씨는 폭력과 관련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납부하지 못해 서울 성동구치소에서 노역을 하던 중 지난 달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18일 숨졌다. 경찰은 23일 실시한 박씨의 사체 부검에서 갈비뼈 3개가 부러지고 대뇌에서 출혈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 졸업파티 만취 고교생 동사

    【금산=이천열 기자】 고교졸업생이 호텔에서 친구들과 졸업파티를 벌이며 마신 술로 몸을 가누지 못해 동사한 지 5일만에 발견됐다. 지난 15일 하오 6시30분쯤 충남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인삼호텔 옥상에서 김모군(18·K고교 졸업생)이 숨져 있는 것을 이 호텔 직원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군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동사한 것으로 밝혀졌고 호텔 비상계단에 김군이 맨발로 올라간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뤄 김군이 술김에 옷을 벗은채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몸을 가누지 못해 얼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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