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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 드라이브] 日영화의 ‘원작자 파워’… 우리는

    지난 3일 일본영화 ‘도쿄 타워’(24일 개봉)의 기자시사회장에서는 흥미로운 풍경들이 목격됐다. 시사회가 끝나자 일부 여성관객들이 극중 대사들을 일일이 들먹이며 “소설과 똑같다.”“플롯은 좀 다르다.” 등 원작을 섭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깊이있는 감상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20대 청년과 40대 유부녀의 금지된 사랑이야기를 불륜 이상의 낭만멜로로 그린 ‘도쿄 타워’의 원작자는 에쿠니 가오리. 바다 건너 이 40대 초반 여성작가의 한국팬들이 마침내 관심의 반경을 스크린으로까지 뻗치고 있는 것이다. 수입사 스폰지의 관계자는 “오카다 준이치, 마츠모토 준 같은 청춘스타들의 힘도 크지만 30대 이상의 폭넓은 여성관객들을 움직이는 최대 동력은 원작자”라고 풀이했다. 매우 이례적으로 수입사측은 영화홍보의 초점을 ‘원작자의 브랜드’에 맞췄다. 스크린 쪽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브랜드 가치는 ‘냉정과 열정사이’(200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2004) 등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치솟았다. 최근 씨네큐브에서 재개봉된 ‘조제…’는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할 정도. 씨네큐브측은 연장상영을 계획 중이다. 잇따른 영화개봉과 함께 출판가의 열기도 뜨겁다. 지난달 17일 출간된 소설 ‘도쿄 타워’(소담출판사)는 2주 만에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2위에 올라섰다.“초판 2만부를 넘어 현재 5만부까지 팔렸다.”고 출판사측은 밝혔다.감각적 문체나 대사, 사랑표현 방식에 동감하는 20∼30대 여성팬들이 특히 많으며, 그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영화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2000년 ‘냉정과 열정사이’가 국내 첫선을 보인 이후 국내에 소개된 가오리의 소설은 ‘호텔 선인장’‘낙하하는 저녁’ 등 8권.‘냉정과 열정사이’는 무려 8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 이쯤 되면 스크린에서 장르변주된 문학을 재확인하려는 눈밝은 문화소비자들이 상당수일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런 대중의 취향을 발빠른 영화사라면 방관할 리 없다. 싸이더스FNH는 가오리의 화제작 ‘반짝반짝 빛나는’의 판권을 사들여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문화장르의 상생(相生)에는 어떤 경우에든 박수를 쳐줄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쓴 입맛이 다셔질까. 가오리보다 ‘쿨’한 감성의 브랜드 작가가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있을 텐데….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주인공 정재영 vs 황정민

    주인공 정재영 vs 황정민

    ‘나의 결혼원정기’ VS ‘너는 내 운명’. 형식에 내용이 지배되진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23일 개봉하는 ‘나의 결혼원정기’(제작 튜브픽쳐스, 이하 원정기)는 흥행멜로 ‘너는 내 운명’(이하 내 운명)과 틀거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비교선상에 놓일 작품이다. 농촌총각의 절박한 현실에서 출발해 멜로대열에 줄서는 두 이야기에는 엇비슷한 장치들이 많다.“‘책’(시나리오)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나?”란 의문들이 나올 정도다. 어느 쪽이 비교우위를 점하느냐를 따지는 건 의미없다. 전반적 분위기나 목표점이 엄연히 다른 작품들인데다 둘 모두 외풍을 타지 않을 만큼의 튼실하고도 고유한 감상포인트를 갖췄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비교충동이 일어나는 까닭은 다름아니다.18세 관람등급의 ‘내 운명’은 이미 전국 310만명을 동원한, 국내 멜로사상 최고의 흥행작.‘원정기’ 역시 그에 못잖은 흥행이 감지되는 기대작이기 때문이다. #정재영 vs 황정민…최민식 잇는 ‘뜨거운’ 배우들 언젠가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을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연기를 할 배우”로 지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장담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에이즈에 걸린 티켓다방의 여자를 목숨바쳐 사랑하는 ‘내 운명’의 황정민이 있었다면,‘원정기’에는 정재영이 있다.KBS 인간극장 ‘노총각, 우즈베크 가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영화에서 정재영은 여자와는 눈도 못 맞추는 38세의 쑥맥 노총각 홍만택. 할아버지,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죽마고우 희철(유준상)과 함께 신부감을 찾으러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들을 엮는다. 만택과 희철의 상황을 통해 답답한 농촌현실을 코믹 어조로 역설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무대를 옮긴 영화는 현지 통역관인 라라(수애)를 끼워넣어 멜로 구도를 짜나간다. 어색한 양복차림으로 낯선 나라 여자들 앞에서 진땀을 빼거나, 그런 한편으로 생활력 있고 다부진 라라에게 조금씩 수줍은 감정을 내비치는 만택의 순정파 연기는 장면장면들이 ‘진국’ 그 자체이다. 저런 질감의 연기를 또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 오버랩되는 얼굴이 황정민.“그냥 쉬게 해주고 싶어” 여자(전도연)를 대낮에 여관방으로 불렀던 ‘내 운명’의 순정파 시골 노총각(극중 황정민도 필리핀으로 신부감을 찾아나선 것으로 설정됐다.)의 질박하고도 뜨거운 미소가 만택과 꼭 닮았다.“다 자쁘뜨러”(‘내일 또 만나요’의 우즈베키스탄어)를 외치며 라라와 이별하는 만택의 눈물,“안 변해요, 사랑”이라고 꾹꾹 눌러말하던 황정민의 감정 연기도 한줄에 포갤 만하다. 만택의 때묻지 않은 감수성이 빚어내는 돌발 해프닝 덕분에 ‘원정기’는 유머가 관통하는 훈훈한 드라마로 포장됐다. 그러나 돈벌이용으로 맞선을 주선해주는 중개소, 또 다른 꿍꿍이로 한국행을 노리는 현지 여자들의 씁쓸한 풍경 사이로 영화는 라라의 신분을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다니는 탈북자로 노출시킴으로써 드라마의 갈등을 예고한다. #현실에 발 디딘 ‘휴먼 멜로’ 추상형 묘사가 아닌 구체적 사건을 통한 캐릭터들의 감정 진행, 사실주의적 기둥 소재를 통한 현실발언 덕분에 이 투박한 영화는 진정성이 넘쳐나는 휴먼멜로로 다듬어졌다. 에이즈에 걸린 여자의 실화로부터 최루성 멜로를 사뭇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킨 ‘내 운명’이 그랬듯 이 영화 역시 사실성 충만한 멜로(라라가 필사적으로 대사관 철문을 넘는 장면 등)로 거듭났다. 답답한 농촌현실과 탈북 문제가 교차한 드라마임에도 내내 유쾌하고 유연한 감수성으로 관객의 신경줄을 풀어 놓는다. 선명한 계몽적 메시지가 영화의 ‘태생적 촌티’를 차원높게 승화시키진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하지만 정재영, 수애, 놀랍도록 흡인력 있게 캐릭터를 소화한 유준상은 엄연한 흠집들을 가려줄 만큼 균형잡힌 연기를 선보였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다시 만나는 정겨운 오누이

    오전·오후반으로 나뉜 오누이가 낡은 운동화 한 켤레를 번갈아 신고 정신없이 학교로 내달리던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무척 반가울 듯하다. 18일 개봉하는 골람레자 레자 라메자니 감독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2-시험보는 날’은 제목에서 짐작 가듯 4년 전 국내에 개봉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속편. 감독은 전편과 다르지만, 가슴 한편을 찡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과 가난한 이란 마을의 정겨운 풍경은 여전하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오누이는 영화 내내 흙담길 골목 이곳 저곳을 누비느라 숨이 턱에 차오른다. 하지만 이번엔 ‘운동화’가 아닌 ‘갓난 동생’ 때문에,‘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시험’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른다. 주인공인 하야트(가잘리 파사파)는 늘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똑똑한 아이. 초등학교 졸업반 5학년생(이란은 초등학교가 5년제)으로 중학교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시험날 아침 아버지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고,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향한다. 집안에는 2학년짜리 남동생(메다드 하사니)과 갓난 여동생뿐. 시험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공들여 준비했건만, 갓난 여동생을 맡길 곳이 없어 낙심천만이다. 남동생에게 부탁해보려 하지만 미덥지 않다. 그다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시험장에 갈수는 없는 노릇. 이웃집들을 돌며 하소연을 해보지만, 치매 할머니가 아기 우유를 뺏어 먹지 않나, 이웃 아줌마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되레 역정을 낸다. 시곗바늘은 점점 시험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데, 아기를 맡길 곳은 없고…결국 이렇게 시험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들의 천진함에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피어나고, 오누이의 고군분투에 안타까워하며 마음 속으로 응원하느라 80분이란 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진다. 단순한 스토리에 약간은 억지스러운 웃음도 유발하지만, 가슴 속 따스함은 온기를 더욱 높여간다. 하지만 속편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일까, 전편에 비해 2%쯤은 부족한 느낌이다. 전체 관람가.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제시카 알바 주연 ‘블루스톰’

    비취빛 맑은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바하마 군도. 쭉쭉빵빵, 울룩불룩 몸짱 남녀 두 커플이 연신 물속으로 자맥질을 해댄다. 이들은 오래전 보물을 그득 싣고 난파된 해적선 ‘제퍼호’의 흔적을 찾는 중. 자레드(폴 워커)와 샘(제시카 알바)은 섬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평범한 커플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물이 새들어오는 낡은 배 한 척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유일한 꿈은 오래전 난파된 보물선을 찾아 부자가 되는 것. 자레드의 친구이자 성공한 변호사인 브라이스(스콧 칸)와 그의 여자 친구 아만다(애쉴리 스콧)도 역시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다. 큰 허리케인이 바닷물속을 한바탕 휘집고 지나간 어느날 이들의 눈앞에 ‘제퍼호’의 잔해와 함께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얼마전 수천만달러어치의 마약을 싣고 가다 추락한 비행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 하지만 브라이스와 아만다는 자레드와 샘 몰래 마약을 빼돌려 한몫 챙기려다 거대 마약조직의 위협에 빠진다. 결국 샘은 마약 조직의 인질로 잡히고, 자레드는 ‘12시간 안에 모든 마약을 찾아오라.’는 거래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식인 상어떼가 득실거리는 바닷물속으로 몸을 던진다.17일 개봉하는 존 스톡웰 감독의 영화 ‘블루 스톰’(Into the Blue)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 영화. 해양 액션 어드벤처라는 문패를 달고 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용보다는 ‘볼거리’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액션 장면이 아닌 제시카 알바의 아슬아슬 수영복과 식인 상어의 섬뜩한 몸놀림에서 스릴감을 더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성근 스토리 얼개로 영화 곳곳에 지루함이 배어있기는 하지만, 이국적이고 화려한 화면에서 나오는 재미는 그런대로 즐길 만하다.15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10일 개봉 ‘이터널 선샤인’

    10일 개봉하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은 기계로 과거 기억을 삭제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 그러나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해 모든 기억을 없애도 진정한 사랑은 지울 수 없다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았다. 조엘(짐 캐리)은 회사와 집밖에 모르는 소심한 성격의 남자. 어느날 자신과 정반대의 활달한 성격을 지닌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즐릿)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2년쯤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오래된 여인들’이 돼버린 둘은 항상 티격태격한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냉담하게 대한 것. 어느날 클레멘타인은 하루아침에 딴 사람이 된 듯 변심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조엘은 모든 기억을 지워준다는 회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기억은 가장 최근 것부터 없어지는데, 좋지 않은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는 행복한 과거가 자리잡는다. 조엘 자신이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보호하려고 무의식중에 노력하는 것. 영화는 연인들의 가벼운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대신 흑백사진 같은 기억 저편의 아련한 추억을 돌이키며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영화속 절절한 멜로 연기로 늘 따라다니던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어낸 짐 캐리의 호연과 함께,‘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즐릿의 톡톡 튀는 연기 변신도 눈에 띈다.15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정조7년(1783) 1월15일, 인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정감록’을 되뇌이던 역적들을 일망타진하게 된 사실을 기뻐하며 국왕에게 축하인사를 올렸다. 난리가 토벌되면 되풀이되는 하나의 관습이었다. 이날 정조는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웬만한 죄인은 다 풀어주라는 것으로, 이 역시 뒤숭숭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상투적인 조치였다. 왕은 포고문에서 문제의 정감록 사건을 일으킨 문인방과 이경래 등 주범들의 죄상을 간단히 요약했다. 사면령을 내리는 동시에, 역모사건의 전모를 백성들에게 간단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실록, 정조 7년 1월15일 정미) 먼저 사건의 중심에 있던 문인방의 죄를 성토한다. 문인방은 삿된 술수를 써 백성들을 현혹하였다고 했다. 그가 역모를 꾸민 것은 고대 중국에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과 비슷하다고 했다. 매우 심한 과장이었다. 그 옛날 장각이 이끈 황건적은 중국 한나라를 기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문인방 사건이 미수에 그친 것과는 천양지차다. 정조는 문인방이 각지를 떠돌며 힘센 장사를 모으려 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명종 때 유명한 도적 임꺽정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역시 과장된 표현이다. 문인방은 백천식, 김훈 등과 짜고 상주의 백학산 아래 만든 소굴에 머물렀다. 이 사건이 발각된 것은 그들과 한통속이던 박서집이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전라도에서 체포된 문인방은 전주 감영에서 취조를 받았고, 곧이어 서울로 붙들려가 본격적인 신문을 받았다. 그는 역모 사실을 모두 실토했다. 군량을 담당할 사람, 난리를 일으킬 때 선봉장을 맡을 사람 등 가담자들의 역할은 이미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 가운데는 도원수도 있었고, 대선생(大先生)으로 불리는 선비까지 존재했다. 문인방 사건 때 도원수로 내정된 이는 이경래였다. 이 사건이 뒷날의 여러 정감록 사건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송덕상(宋德相)이란 유학자를 ‘대선생’이라 떠받들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다는 점이다. 정조 즉위 초 산림(山林·재야에 묻혀 있던 큰선비)의 중심인물로 천거돼 조정에서 크게 활약한 송덕상이 정감록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각별히 주목된다. ●산림 송덕상과 권신 홍국영 문인방 사건으로 조정이 한 차례 홍역을 겪기 5년 전이었다. 대대로 충청도 회덕에 살고 있던 성리학자 송덕상은 산림으로 천거되었다. 정조는 송덕상의 학덕(學德)에 크게 감복한 듯, 그의 건의라면 무엇이든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른바 산림이란 명목으로 향리에 묻혀 지내던 큰선비들이 일시에 높은 벼슬에 등용되곤 했다. 그런데 영조 이후로는 산림이란 카드가 집권세력인 노론에 의해 정국수습용 임시방편으로 활용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마치 1970∼80년대 한국의 국무총리 자리가 그러했듯, 산림은 일종의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가끔 예외도 있었다. 효종 때 북벌론(北伐論)을 내세우며 정국을 홀로 이끌던 송시열(宋時烈)의 경우다. 그는 산림으로서 노론의 명실상부한 우두머리였다. 산림 송덕상은 바로 송시열의 자손이었으나 그 처지는 자기 조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송덕상은 정조 즉위에 공을 세운 홍국영 일파의 추천으로 조정에 등용된 만큼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했다. 정조 3년(1779), 이조참판 송덕상은 홍국영 등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김구주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 적이 있다.(실록, 정조 3년 6월18일 경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외척이었다. 그는 영조 말기 세손(世孫·정조)의 집권을 반대하던 벽파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을 물리치고 정조를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홍국영은 수년간 반대파를 모두 내쫓는 데 부심하였다. 그는 정조의 신변보호를 구실로 숙위소를 창설해 직접 그 책임을 도맡으면서 더욱더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홍국영의 권력은 날로 비대해졌고, 과거에 그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홍국영을 ‘대후겸(大厚謙)’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홍국영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자기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장차 외척으로 세력을 굳히려 했다. 하지만 일년 만에 누이 원빈이 병사하고 말았다. 홍국영은 꾀를 내어 왕제(王弟) 은언군 인의 아들 담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훗날 세자로 정할 생각을 가졌다.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담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였다. 정조4년(1780)에는 왕비 김씨를 살해하려고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그 일로 홍국영은 실각했고 그 여파는 송덕상에게도 미쳤다. 송덕상은 재빨리 상소를 올려 홍국영과 자기의 사이가 별것 아님을 애써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홍문관 교리 서유성 등 홍국영의 반대파들은 송덕상이 겉으론 산림으로 행세하면서 실제는 홍국영에게 아부를 일삼아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왕세자 책봉 건에 관여하는 등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맹렬히 규탄했다.(실록, 정조 5년 4월28일 신미) 결국 송덕상 역시 조정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로선 억울한 점이 있었을 테지만, 이런 식의 정계 개편은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늘 되풀이되어 온 일이다. ●송덕상의 제자 문인방 뜻하지 않은 스승의 정치적 몰락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왔다. 스승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미래 역시 어두웠다. 보통 스승이 중벌을 받으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미래를 기약하게 된다. 일단 죽림으로 들어간 젊은 선비들은 시서(詩書)를 연마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운이 좋아 언젠가 관리로 등용되기만 하면 왕에게 스승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종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개혁정치가 조광조의 복권과정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송덕상의 제자들 가운데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문인방 등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정감록’을 빙자해 난리를 꾸몄다. 과연 제자들이 스승 송덕상을 위해 역모를 꾀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송덕상과 역적들 사이에 사제관계가 형성돼 있었던 것인지, 쉽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여하튼 송덕상의 몇몇 제자들은 군사적 행동을 준비하다 발각돼 역적으로 처형되었고, 그 여파로 송덕상 역시 옥에 갇힌 것이 사실이다. 노론들 사이에서 박학다식한 큰선비로 통했던 송덕상은 여러 달 동안 영어(囹圄)의 몸으로 고통을 받다 드디어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실록, 정조 7년 1월7일 기해) 다른 역모사건들도 그렇지만 이 사건 역시 피의자들이 자기들의 처지를 변호하며 남긴 기록은 찾아볼 길이 없다. 있다면 취조문서가 전부다. 사건을 수사한 국가의 입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왜곡하였을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문인방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겠다. 송덕상의 제자 신형하는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며 스승을 변호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한다. 그것이 문제로 부각되어 신형하는 마침내 전라도의 한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송덕상을 추종하던 황해도 해주의 선비 박서집은 시를 지어 신형하의 절의를 기렸다. 그 시가 또 문제되어 박서집도 섬으로 귀양을 갔다. 박서집은 유배지에서 우연히 문인방이란 사람과 동거하게 되었다. 평안도 출신인 문인방은 놀랍게도 본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한 처지를 생각해서 장차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물론 박서집은 그에 찬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박서집은 겁이 났다. 그는 섬에 파견돼 유배자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문인방의 역모사건을 밀고하였다. 그 섬은 전라도 관할이어서 깜짝 놀란 전라관찰사는 급히 영을 내려 관련자 전원을 체포하였다. 전주와 서울에서 혹독한 신문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인방은 자기가 역모를 꾸민 사실을 시인하였다. 함께 붙들려온 백천식도 반란혐의를 인정하였다. 그들은 밀고자 박서집과 함께 일의 성사를 기원하며 하늘에 축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민지식인으로 술사이기도 했던 문인방은 ‘정감록’의 한 구절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때 ‘여섯 글자’의 흉악한 예언이 문제로 부각되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 구절은 문인방이 소지했던 ‘경험록’이란 예언서에도 나와 있다고 하였다. 현재 ‘경험록’이란 책자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사건 당시 문인방은 모두 4종류나 되는 예언서를 소지하고 있었다. 평소 그가 이른바 비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당류 이경래는 강원도 양양 임천리에 살며, 도창국은 평안도 영원 내락림에 있고, 김정언과 오성현은 함경도 안변에 거주하고, 곽종대는 평안도 순안에 살며, 이밖에 김훈과 백천식이 또 있습니다. 만일 난이 성공하게 되면 대선생으로 청계 선생을 모시려 하는데, 이는 송덕상이며 그 손자 송계유는 지금 나이 28세로 저와 마음을 합해 역모를 꾀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문인방처럼 고향이 평안도인 사람도 있지만 함경도 출신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이밖에 강원도 출신도 역모에 참여했다. 아울러 송덕상의 집안사람들도 일부 포섭돼 있던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송덕상 일가가 역모사건에 참여하였을지는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회덕에 세거하던 송씨 집안은 조선사회에서 손꼽히는 명문 양반이었다. 설사 그들이 송덕상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조선사회에서 그들이 향유한 특권적인 지위는 이런 정도의 일로는 무너질 리가 없었다. 따라서 송덕상의 손자가 모의에 참여했다는 문인방의 진술은 신문과정에서 억지로 강요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송덕상의 제자는 주로 서울과 충청도에 거주했을 텐데, 하필 조선사회의 변경인 서북지방과 강원도 해안지방의 몇몇 제자들만 스승을 위해 난리를 꾸몄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의 역적모의 사건의 주모자로 분류된 문인방은 힘세고 날랜 평안도 출신의 장사 도창국과 함께 강원도 양양의 선비 이경래와 친했다. 이경래 역시 송덕상의 제자였는데 정조5년(1781) 9월 문인방 등이 이경래를 찾아갔을 때 이경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스승님 송덕상이 조정에 죄를 얻어 뜻밖에 멀리 귀양을 가 계시므로 지금 사태가 급해졌다. 빨리 일을 도모하는 게 좋겠다. 문인방 그대가 인재를 잘만 모집하면 일이 성사된 다음 장수든 정승이든 여하튼 높이 등용하겠다.” 문인방 등은 그 말에 기뻐하며 이경래를 도원수로 삼고, 도창국을 선봉장으로 정했다. 이경래는 양양에 일가친척이 많은 데다가 노복도 숫자가 많으므로, 일단 유사시에 난을 일으켜 양양군수를 잡아 죽이고 무기와 병사를 확보하는 것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이웃 고을인 간성을 공격하고 강릉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 뒤 반란군은 원주를 함락시키고 곧이어 서울로 진격해 동대문을 거쳐 대궐을 점령하기로 하였다. 거사가 성공한 다음 그들은 송덕상을 ‘대선생’으로 책봉하기로 뜻을 모았다. 반란을 일으킬 시기는 갑진년(1784) 7월과 9월 사이로 정해졌다. 이경래의 집안은 강원도 양양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였다. 이경래의 친척 공조참의 이택징은 우선적인 포섭대상으로 떠올랐다. 이택징은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해 규장각 운영을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다.“규장각은 전하의 사적인 관서에 지나지 않고, 규장각의 관리들은 전하의 사사로운 신하일 뿐입니다.” 이처럼 정조의 정책적 고려에 날카롭게 맞선 인물이었다. 문인방 등은 이런 이택징을 서둘러 합류시키고, 그들을 지렛대 삼아 서울의 여러 양반들을 역모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당시 서울에는 몇 해 전에 거세된 홍국영 일파를 비롯해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하며 울분을 삭이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던 양반들이 많았다. 조선은 양반의 국가라, 양반들이 국가에 반기를 들 거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조 초년 삼남지방에서 일어난 무신란(1728)을 비롯해 몰락한 양반들이 반란을 꾀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정적(政敵)들에 의해 완전히 조작된 역모사건도 없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17세기 초에 일어난 인조반정(1622)은 양반들이 반란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 본보기였다. 그런 점에서 문인방과 이경래 등이 무력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문인방 사건의 경우 역모사건이 새롭게 달라진 측면도 있다. 권좌에서 밀려난 제일급의 양반들이 서북지방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평민지식인들 또는 술객(術客)들과 합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의과정에서 평민지식인들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었다는 점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볼 때 이경래나 이택징과 같은 일급 양반들보다 평민지식인 문인방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또 한 가지 강조할 사항은 ‘정감록’을 포함한 각종 예언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문인방은 양양과 서울은 일단 이경래에게 부탁해 놓고 자신은 삼남지방으로 내려갔다. 힘이 센 장사들을 다수 모집해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 생각이었다. 그가 관헌에 체포되기 직전 충청도 진천에 머물고 있던 것도 장사를 모으기 위해서였다.(실록, 정조 6년 11월20일 계축) ●평민지식인이 송덕상 같은 양반과 결탁하다니 억울하게 멸시받던 평민지식인들로서야 송덕상과 같은 명문가 출신의 양반과 사귀고 싶어도 도저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짐작은 매우 합리적으로 들리지만,18세기 조선사회의 실상과는 더 이상 부합되지 않는다. 문인방 사건 때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용케 법망을 빠져나간 평민지식인들 중에 이규운이란 사람이 있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훈장노릇을 하던 평민지식인이었다. 그런 이규운이 산림 송덕상과 서로 가까워진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비롯되었다. 정조 초년 이규운은 강원도 통천에 있었다. 통천은 송시열이 함경도로 귀양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머물던 곳이라 송시열의 기념비가 있었다. 이 비석을 다시 세우는 일로 이규운은 송덕상을 몇 차례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강원도 김화 수령으로 재임하던 송덕상의 아들까지도 사귀게 된다. 어렵게 대갓집과 연줄을 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규운에게 돌아올 몫은 아무 것도 없었다. 쥐꼬리만 한 벼슬 한 개도 차지할 운이 아니었다. 이규운은 본래 평안도 선천 사람이었고 진짜 이름은 오도하라고 했다. 이규운은 고향을 떠나 강원도를 떠돌았다. 그는 서울 양반 이찬이란 사람을 대신해 과거시험 답안지를 써주었는데 그 덕에 이찬은 진사가 되었다. 제 이름을 걸면 아예 과거시험장 출입이 불가능한 이규운이었으나 그가 대필해준 글로 다른 사람은 진사가 되었다.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허탈과 공황 속에서 이규운은 ‘정감록’을 읽었고, 반란을 꿈꾸었다. 이규운은 송덕상 같은 양반을 위해 피를 흘릴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술객에게 송덕상의 명예회복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소재 측면에서 볼 때 1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제작 싸이더스FNH 등·감독 윤태용)는 그대로 한국판 ‘빅’이다.13세 주인공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33세 어른으로 건너뛰어, 사랑과 감동이 어우러진 해프닝을 엮어간다. 키치적 냄새를 마구 풍기는 시중의 포스터 앞에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맨먼저 요약해줄 이 영화의 정보는, 시간에 최면을 걸어 순정한 사랑을 웅변하는 팬터지 멜로라는 사실이겠다. 80년대로 시계바늘이 옮겨간 화면 속 주인공은 시계수리점을 꾸려가는 미혼모 엄마(조민수)와 단둘이 사는 열세살 소년 네모. 아버지의 존재조차 모르는 네모는 장래희망을 “미혼모한테 장가드는 것”이라며 능청 떠는 밝고 장난스러운 아이이다. 영화는, 어딘가에 살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서러운 젊은 엄마와 철부지 네모의 동거를 전반부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넘어간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네모는 시계점에다 새로 만화방을 차린 미혼모(염정아)에게 마음을 뺏기고,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생떼를 쓴다. 나른한 동심의 팬터지에 진중한 무게중심의 추를 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네모가 만화방 여자의 아들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든 이후부터 드라마의 시계는 마법에 걸린다. 저승 문턱에 간 네모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조건으로 어른(박해일)이 되어 현실로 되돌아온다.‘좋은 세상을 만들려다’ 뇌사상태에 빠져 저승을 넘나드는 네모 아버지의 분열적 존재는 왜곡된 80년대 정치현실을 발언하려 고민한 설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감각을 무시했다는 인상이 짙다. 하루를 1년처럼 살며 90대 노인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네모의 순정이 구체적인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어로 부각되는 데는 실패했다. 동화를 뛰어넘은 사려깊은 팬터지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끝내 ‘그냥 동화’로만 주저앉은 빈약한 드라마는 난감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형식 쪽에 놓였다. 시간을 변주한 과감한 소재적 접근(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만화방이 있는 공간적 배치까지 신경썼다.)에 에밀 쿠스트리차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색감 등 어떤 영화보다 강력한 은유 능력을 자랑하는 건 사실이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1일 개봉 ‘러브토크’서 다중인격 캐릭터役 박진희

    11일 개봉 ‘러브토크’서 다중인격 캐릭터役 박진희

    박진희(27)는 모순적 매력을 지닌 배우다. 여지껏 콘트라스트 강하고, 다중적인 연기 색감을 보여왔다. 여러 장르를 통해 섹시하고 도도하면서도 순수하고 청순가련한, 때로는 청승맞기도 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유독 그녀를 규정짓는 이미지는 ‘생기발랄함’이다.‘성숙하지 못함’이나 ‘가벼움’의 또 다른 말일 것이다. 데뷔한 지 8년이 지나도록 진짜 성인 연기를 했다는 느낌을 별로 주지 못했다. 하지만 11일 개봉하는 영화 ‘러브토크(Love talk)’(감독 이윤기, 제작 LJ필름)속 박진희는 사뭇 다르다. 속이 더 찬, 훨씬 무거워진 느낌이다. 연기적 나이로 이제야 성인식을 치렀다고나 할까. 이번 작품이 그녀에겐 ‘성장영화’가 된 셈이다. ‘러브토크’는 사랑을 꿈꾸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에 다가서길 주저하는 세 남녀가 미국 LA에서 보내는 치유와 방황의 시간을 그린 작품. 그녀는 라디오 토크쇼에서는 도덕적 기준을 내세워 심리상담을 하는 심리학도이면서, 정작 실제에서는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져 있는 모순적인 캐릭터인 영신역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 영화 홍보차 서울신문사를 찾은 그녀에게 “배우로서의 현실과 작품속 모순된 삶과 이미지에 답답함을 느낀 것 같다.”고 첫마디를 건네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핀다. “‘맞아!’라며 무릎을 쳤어요. 여지껏 배우로서, 일반인으로서 제 자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온 터라 캐릭터 자체가 가슴에 팍 와닿더라고요. 영화 찍으면서 제 스스로 많은 위안을 얻었죠.” 하지만 이내 그녀의 손사래가 이어진다. 꼭 다른 모습이나 이미지 변신을 위해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란다.“많은 분들이 바로 이전 작품의 이미지만을 기억하시죠. 언론에서 그것만 부각시키기도 하고요. 이번 작품도 이미지 관리 차원이 아니에요.‘다중인격’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컸죠.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하고픈 욕망이 꿈틀대더라고요.” 그녀는 ‘러브토크’가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최고로 특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평소 개봉전에는 미리 영화를 한번도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시사회장에 나와 영화를 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스크린을 통해 8번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이번이 단독 주연이 아님에도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계기로 제 연기폭이 크게 넓어진 것 같아요.”감독과의 부딪힘 없이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를 모두 캐릭터에 쏟아부을 수 있어 촬영 내내 힘이 났단다. “해외촬영인 탓에 힘든 점이 많았을것 같다.”고 말하자 그녀의 눈망울이 더욱 커진다.“내심 걱정과 부담이 컸어요. 감독님 스타일을 잘 알거든요.(웃음)그저 ‘내가 잘해서 이 영화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 는 생각뿐이었죠.” 배우로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대박영화’가 되길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번 작품은 상업영화보다는 이른바 ‘예술 영화’의 범주에 가깝다.“대박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으냐?”고 물으니 ‘선머슴’ 같은 성격의 그녀답게 호탕하게(?) 웃어제낀다.“아 글쎄, 제가 시나리오 받고 맘에 안들어 거절한 작품은 모두 대박이 나더라고요. 한동안 ‘내가 대중을 이해 못하는건가?’라는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죠.”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믿는다고 했다.10년,20년뒤 ‘박진희가 선택한 작품은 어떤 의미와 느낌이 있다.’고 관객들이 느끼도록 만들겠단다. 그녀의 연기 욕심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영화 촬영이 막 끝난 지금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미 차기작 영화 촬영에 돌입한 상태다. 또 곧 한류 스타로서 자리매김한 그녀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아시아권에 수출하는 드라마에 도서관 사서역인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항상 마지막 출연 작품이 제 자신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최고로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앞만 보고 달려나가려고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이산상봉 5일~10일 금강산서

    제12차 남북이산가족 행사가 5일부터 10일까지 금강산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에 상봉하는 가족은 남북 모두 200가족이다. 4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5일부터 7일까지 1차로 북측 100명이 남측에 살고 있는 가족 444명을 상봉하고 이어 8일부터 10일까지 2차로 남측 145명(거동불편자 동반가족 45명 포함)이 북한에 있는 가족 223명을 만난다. 올해 101살인 남한의 배동욱 할아버지는 북한에 살고 있는 딸 4명과 손자들을 만날 예정이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4일 개봉 ‘월래스와 그로밋’

    4일 개봉 ‘월래스와 그로밋’

    4일 개봉하는 영화 ‘월래스와 그로밋 : 거대토끼의 저주’(Wallace and Gromit : The Curse of the Were-Rabbit)는 애니메이션도 음식처럼 ‘손맛’이 들어가면 감칠맛이 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명가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가 단편 시리즈인 ‘월래스와 그로밋’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것. 점토로 빚은 인형을 미세하게 움직여 촬영,1초에 24번의 움직임 변화를 주는 고도의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3D 또는 셀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색감이나 자연스러운 동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슈퍼야채선발대회’를 앞두고 토끼들로부터 야채를 지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월래스와 그로밋의 ‘해충관리 특공대’에게 SOS를 친다. 월래스와 그로밋의 특공대가 마을의 토끼들을 모조리 소탕하던 날 밤, 마을의 야채밭은 모조리 파헤쳐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거대한 발자국만이 남아있는 단서. 마을은 공포의 그림자에 휩싸이지만, 특수요원 월래스와 그로밋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범인이 돌연변이로 탄생한 거대토끼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범인의 정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영화 시작 전 10분 동안 미소짓게 만드는 ‘마다가스카르’펭귄 특공대 4총사들의 활약상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축구가 삶인 이주청년의 도전기 ‘골’ 4일 개봉

    축구가 삶인 이주청년의 도전기 ‘골’ 4일 개봉

    4일 개봉하는 ‘골!’(Goal!)은 스크린의 모든 피사체를 활어처럼 펄펄 뛰게 만드는, 싱싱한 스포츠 영화이다. 할리우드산(産)으로는 보기 드물었던 축구 소재의 드라마. 브라질 출신의 가난한 미국 이주민 청년 뮤네즈(쿠노 베커)는 타고난 스포츠 감각을 키워 프로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나 가족에게 희생하며 사는 것이 남자의 도리라고 굳게 믿는 고지식한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해 번번이 좌절한다.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뮤네즈 앞에 왕년의 축구선수이자 스카우트 담당인 글렌 포이(스테판 딜레인)가 나타나면서 그의 삶은 급반전의 계기를 맞는다.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황금같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속도감 있는 카메라 워킹, 가속을 붙여가는 드라마 전개방식 등이 스포츠 드라마의 밀도를 높여주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감상포인트가 한정적이지 않은 드라마의 내용도 다양한 관객층을 포섭하기에 유리한 점이다. 불법체류 가족이 되어 미국의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는 이민사회의 그늘이 주인공을 통해 그려지는가 하면, 그 장애를 가족의 힘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은 드라마의 감수성을 풍성하게 일궈내는 부수효과를 냈다. 멀리서 뮤네즈의 성공을 기원하는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남몰래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부정(父情) 등이 이 드라마를 ‘축구영화’로만 한정지을 수 없는 소재적 미덕이다. 도약과 질주, 함성이 쏟아지는 큰 동선의 스크린을 즐기고 싶다면, 무리없이 만족할 작품이다. 하지만 스포츠 영화의 고유정서인 ‘헝그리 정신’을 확인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허기가 질 수도 있겠다. 영화의 무게중심은 뮤네즈의 정상등극까지의 눈물겨운 우여곡절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이야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명예와 돈, 세속적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뮤네즈에게 균형감각을 되찾아주는 건 결국 소박한 여자친구 로즈(애나 프리엘)와 가족의 사랑이다. 여성관객이라면 멕시코 출신의 ‘선굵은’ 신인배우 쿠노 베커와 조우하는 즐거움도 ‘덤’이다. 데이비드 베컴, 지네디 지단, 라울 곤살레스가 카메오 출연한다.‘저지 드레드’‘피닉스’‘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을 연출한 대니 캐논 감독.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래원 “惡추억도 추억이다”

    김래원 “惡추억도 추억이다”

    배우 김래원이 연예 활동 중 ‘가출(?) 경험’을 처음 공개했다. 김래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97년 연예계 데뷔 이후 작품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가 촬영을 코앞에 두고 부당하게 ‘퇴짜’를 받은 경험이 여러번 있었다.”면서 “당시 충격과 좌절감으로 연락을 끊고 다른 직업을 찾으려고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기억은 데뷔 초기인 19살때. 당시 그는 모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됐고, 한달 반 동안이나 배역을 연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 시작 전날 감독으로부터 ‘배역이 바뀌었다.’는 황당한 연락을 듣고 분을 삭여야 했다는 것. 그는 “전 배역을 통틀어 내가 오디션 점수 1등이었는데, 말 할 수 없는 다른 요인(?)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내 존재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모든 연락을 끊고 무작정 고속터미널로 향했단다.“바다로 가서 원양어선 타고 돈 벌어 올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없던 시절이었어요. 다행히도 터미널로 저를 잡으러 온 매니저에게 출발 직전 붙잡혔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래원 [미스터 소크라테스] 김래원은 표정이나 몸짓보다 말투로 더 잘 이해되는 배우다. 그는 느릿느릿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낯가림도 심하고, 말하기에 앞서 뭔가 생각하며 뜸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뜬금없는 대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은 말수이지만, 신중하고 조리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성은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의 말투에 변화가 느껴졌다. 인터뷰 중간중간 목소리 톤을 높이기도 하고, 가끔은 질문하기도 전에 자신의 얘기부터 쏟아낸다. 무엇이 그의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걸까.10일 개봉하는 ‘미스터 소크라테스’(감독 최진원, 제작 커리지필름·오존필름)에서 180도 이미지 변신을 통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는 그를 만났다. #순수남에서 양아치로 김래원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늘 따라다니던 순진무구한 미소의 꽃미남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구동혁. 지하철 노약자석에 떡하니 누워있다가 훈계하는 할아버지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고,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용돈도 뜯어낸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쯤되면 패륜을 넘어 인간말종이라고 해야 할까. “의도한 변신이냐?”고 묻자 그가 씩 웃는다.“저도 이제는 다른 모습을 찾고 싶었어요. 귀엽고 장난기 있는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변화 하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나를 버린 첫 작품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나를 버릴 줄 아는 방법을 배웠다.”며 미소지었다. 이전까지는 촬영 전날 머릿속으로 연기 패턴을 다 그러놓고 현장에서는 감독의 요구와 충돌하며 고집을 앞세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연기에 임했고, 그랬더니 더 큰 것을 얻었단다. “감독과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어요. 이번엔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았죠. 제 머릿속으만 연기하면 ‘못해도 50점, 잘하면 70점’ 수준이지만, 감독님 믿고 하니 ‘잘하면 100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나를 버리는 연기 방식을 택할 거예요.”감독이 요구하는 ‘날것’ 그 이상 충분히 만족스런 연기를 했다며 미소 짓는다. #늘 성에 안 차는 연기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김래원의, 김래원에 의한, 김래원을 위한’ 영화다. 단독 주연이다 보니 부담감은 있겠지만, 만족감이 더 클 법하다.“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는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예전보다 더 눈에 띄더라.”라고 말하며 특유의 입꼬리를 올린다. 구동혁이 조직의 필요에 의해 강력반 형사로 키워지는 조금 ‘밋밋한’초반부 장면이 보다 강하게 그려졌으면 한다는 것. 시사회가 끝난 뒤 감독과 여러차례 통화도 했고, 과도한 편집보다는 ‘음악’을 통해 보강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제 연기에 아쉬움이 많죠.”라면서 “완전히 감을 잡지 못한 초반부에 연기적인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상대역인 강신일씨의 연기 속도보다 더 빠르게 템포를 조절해 속도감을 느끼게 했어야 했죠.”라며 자신의 연기를 돌이켰다. #신(新)한류 스타 김래원은 현재 일본과 대만에서 한류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며칠전에는 일본 주니치 신문, 나고야 방송이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신(新)한류 스타’로 평가,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단독 인터뷰해가기도 했다. 김래원 소속사인 블루 드래곤은 “주니치 신문을 후원하는 국내 모 항공사의 한·일 노선 취항에 맞춰 주니치 신문 등이 기획한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 1명 인터뷰’에 김래원이 뽑혔다.”면서 “배용준·이병헌·권상우·장동건 등 한류 4대 천황의 뒤를 이을 ‘신(新)한류 4대천황’으로 김래원을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12월에는 김래원의 출연작 ‘…ing’가 일본 현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말 현역 입대할 예정이라는 그는 내년엔 영화·드라마 합쳐서 3개이상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무리한 욕심 아니냐고요?원없이 팬들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난 뒤 군대에 가려고요.(웃음)”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쌀비준 철회” 성난 農心 거리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쌀 관세화 유예협상안 비준을 규탄하는 농민들의 성난 시위가 28일 전국 90여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경남 김해에서는 성난 농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봉하마을을 향해 가다 경찰에 제지되자, 일부 농민들은 쌀을 불태우기도 했다. 평택에서는 평택농민회 회장 김모(43)씨 등 농민 20여명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 조사를 받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남도연맹과 한국농업경영인 경남도연합회 등 경남지역 농민들은 이날 도내 20개 시·군에서 ‘쌀협상안 국회비준 철회’ 등을 요구하며 쌀과 벼, 볏짚 등을 쌓아두는 야적시위에 들어갔다. 진주지역 농민 500여명은 진주시청 앞에서 3000섬의 벼를 쌓으며 쌀 협상 비준안 국회상임위 통과를 규탄했다.이들은 “쌀 협상안 비준안을 본회의에 상정한 것은 농민을 기만하고 농업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볏단으로 만든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 등의 모형을 불에 태우는 화형식도 거행했다. 앞서 김해지역 농민들은 시청 앞에 3000섬의 벼를 쌓은 뒤 벼 일부를 태우고 정부 관계자 등의 사진에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특히 김해농민들은 이지역 국회의원 사무실과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을 향하다 경찰에 제지되기도 했다. 광주·전남지역 농민 6000여명은 17개 시·군에서 벼 야적시위와 집회를 갖고 농민총파업에 동참했다. 순천농민회 소속 농민 1000여명은 남부시장에서 쌀값 하락에 따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벼 야적과 함께 시내 행진을 벌였다. 해남군농민회는 트랙터에 상여를 설치한 뒤 시내행진을 벌이고 세계무역기구(WTO)허수아비 화형식을 가졌다. 전북지역 농민들은 도내 11개 시·군에서 동시 집회를 열어 내달 3일 전북도청 앞에서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내달 11일에는 서울 여의도 농민 집회에 참여하고,21일 이후부터는 농산물 출하를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충북지역 6개 시·군 농민들도 시·군청 앞에서 야적시위를 벌였으며 청원군, 음성군 농민회는 군청 앞에서 벼 수십 가마를 불에 태우며 경찰과 충동했다. 이밖에 경기도, 경북, 제주도 등 전국 90여개 시·군지역 농민들은 50만섬 규모의 쌀을 시·군청 앞에 쌓아놓고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농민의 현실을 외면한 채 국민의 식량주권을 송두리째 내던졌다.”면서 “350만 농민은 총파업에 돌입하며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위한 농민 대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전국종합 sunstory@seoul.co.kr
  • 女 PD가 만드는 드라마 色 다르겠네

    女 PD가 만드는 드라마 色 다르겠네

    ‘여성 드라마 PD, 앞으로 갓!’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다는 것은 진부한 이야기이거나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금녀의 집’으로 남아 있는 분야가 많다. 방송사에서는 드라마 연출이 특히 그렇다. 작가는 남성보다 여성이 월등히 많은 시대가 됐다. 하지만 프로듀서(PD)에 있어서는 시사교양국이나 예능국에 비해 드라마국 여성 PD가 눈에 띄게 드물다. 현재 KBS에 4명,MBC에 2명,SBS는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시청자는 여성 연출가가 메가폰을 잡은 드라마를 만나기가 힘들었다.10여년 전 KBS 단막극 ‘드라마게임’을 통해 첫 여성 감독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거친 환경 탓인지, 이후에는 조연출 단계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요즘, 차츰 달라지고 있다. MBC는 6개월 만에 부활시킨 ‘베스트극장’의 첫 작품이자,29일 시작하는 4부작 초미니시리즈 ‘태릉선수촌’의 연출을 이윤정 PD에게 맡겼다. 입사 9년차인 이 PD는 MBC 여성 연출가 1호. 지난해 일일드라마 ‘귀여운 여인’의 야외연출을 거쳐 올 2월 옛 ‘베스트극장’의 ‘매직 파워 알콜’로 입봉(영화, 드라마의 정식 감독이 되는 것)했다. 또 연작주말드라마 ‘떨리는 가슴’의 ‘바람’편을 담당하며 극찬을 받았다. 새로 출발하는 ‘베스트극장’의 서막을 거머쥘 정도로 MBC의 신뢰가 두텁다. 31일 시작하는 KBS 아침 드라마 ‘걱정하지 마’에서는 ‘진주목걸이’ ‘불멸의 이순신’ 등의 조연출을 거친 이소연 PD가 선배 한정희 PD와 공동연출로 드디어 입봉하게 됐다. 지난해 일일연속극 ‘금쪽같은 내 새끼’의 공동연출로 감독이 됐고,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에서 ‘수수께끼 보물섬’ ‘다함께 차차차’ 등 이색소재, 이색형식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던 KBS 권계홍 PD도 12월 말 ‘에덴으로 돌아오다’(가제)를 선보일 예정. 이 작품도 4부작 초미니드라마로 형식 파괴를 예고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이고 관성적인 소재를 다뤘던 드라마 제작 풍토에 벌써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태릉선수촌’은 엘리트 체육인들의 땀과 눈물, 사랑을 그릴 계획이며,‘걱정하지 마’ 또한 아침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명랑물이다. 흥신소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에덴’는 본격 추리극 형식. 여성 감독들의 물결이 더욱 반가운 이유는 그동안 남성 연출가 위주 국내 드라마가 여성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1970∼80년대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여성 PD들의 손에서 더욱 다양한 소재가 다뤄지고 현실감 있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윤정 PD는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겠지만, 몇 안 되는 여성 감독이라고 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다.”면서 “최선을 다해 좋은 연출가가 되고 싶다. 그래야 후배들도 늘 것 ”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랑해 말순씨’ 남매 이재응·박유선

    새달 3일 개봉하는 문소리 주연의 ‘사랑해, 말순씨’(제작 블루스톰·M&F)는 박흥식 감독이 1980년께로 시계바늘을 돌려 만든 휴먼드라마다.‘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인어공주’를 연출한 감독의 범상찮은 감성이 여지없이 또 묻어났다. ●이재응, ‘효자동 이발사´ 등서 연기력 인정 하지만 뚜껑을 열고본 즉 이 영화는 문소리의 것이 아니다. 극중 그녀(김말순)가 남편 없이 혼자 키우는 남매, 광호와 혜숙이의 영화이다. 사춘기 중학생 아들과 엄마가 겪는 통과의례 같은 갈등의 에피소드들에 소란했던 현대사의 한 자락이 녹아든 영화에서 남매는 관객을 속수무책으로 울려버린다.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을 완벽하게 그려낸 광호 역의 이재응(14)은 ‘선생 김봉두’‘효자동 이발사’‘꽃피는 봄이 오면’ 등으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얼굴. 혜숙 역의 박유선(6)은 500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이 영화로 데뷔하는 생초짜 신인이다. 시사회 다음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둘을 만났다. “소리엄마(문소리)를 또 만나서 행복했어요. 엄마와 티격태격하는 대목들은 어렵지 않았는데, 후반부 감정조절은 정말 어려웠어요.(엄마의 죽음 앞에서)너무너무 슬픈데도 펑펑 울어선 안 된다는 게 감독님 주문이었거든요.” ‘효자동 이발사’에서 문소리의 아들로 나온 이후로 재응이는 그녀를 ‘소리엄마’라 부른다.“너무 떨려서 기자시사회 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씨익 웃는 모습은 그대로 수줍음 많은 사춘기 소년이다. ●박유선, 500대1 오디션 뚫은 ‘생초짜 신인´ 주인공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크린에 데뷔한 건 ‘로드무비(2002년)’. 극중 황정민의 아들로 얼굴을 비쳤다. 재응이를 아역스타로 띄워올린 건 ‘선생 김봉두’. 양은냄비의 라면을 선생님과 나눠먹던 천진한 강원도 산골아이 역할로 무공해 이미지는 단박에 날개를 달았다. 까무잡잡한 피부, 유난히 둥글고 선한 눈망울 덕분이기도 했을까.‘효자동 이발사’‘꽃피는 봄이 오면’ 등 따뜻한 휴먼드라마 쪽으로만 부지런히 불려다녔다. “이번 영화에선 제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게 세 장면뿐이에요. 그걸 보고나선 연기가 더 두려워지는 거 있죠? 참 이상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땐 촬영현장이 놀이터 같았는데….” 그래도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는 자신있게 받아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았던 지난해는 중학교 1년생(현재 인천 연화중 2년).“극중 캐릭터와 똑같은 나이라 감정연기에 제대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촬영현장에서의 버팀목이자 제일 무서운 연기지도 선생님은 소리엄마였다.”며 “병든 엄마를 찾아간 외갓집에서 엄마랑 단둘이 처음으로 다정히 얘기하는 장면, 엄마가 떠나고 여동생과 함께 밥을 앉히는 장면 등이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고도 했다. ●“스릴러·공포물 도전해보고 싶어요” 현장 스태프들에게 ‘천재’소리를 듣는 재응이의 연기력은 어쩌면 타고났다. 옆에 있던 이모 매니저는 “꼬마적에 치마에 스타킹을 신고 다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소리 엄마’의 신뢰는 전폭적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이던 문소리는 재응의 캐스팅이 확정되자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재응이의 먼 꿈은 영화감독이다.“스릴러나 공포물에 도전해보고 싶고, 하지원 누나도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재응이와의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기자는 아차, 싶었다. 의자를 오르락내리락 천방지축인 여섯살 철부지를 어떻게 꼬드겨야 인터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넘칠락말락 하던 관객의 눈물샘을 기어이 흘러넘치게 만드는 암팡진 조연. 죽은 엄마의 옷을 끌어안고 “엄마냄새가 난다.”며 대성통곡하는 유선이의 막판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한 방’이다. 화제의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그것만은 확인해야 했다.“소리엄마가요, 엄마가 죽었는데도 엉엉 울지도 못하면요, 진짜 엄마따라 집에 가야 된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마∼악 눈물이 나왔어요.” 몇달 연기학원 다닌 게 유선이 이력의 전부. 한글도 떼지 못했는데, 그 힘든 장면을 NG 한번에 통과했다. 유선이는 최근 크랭크인한 현빈 주연의 로맨틱 드라마 ‘백만장자의 첫사랑’에 또 캐스팅됐다. 아무래도 이 늦가을, 말순씨네 아이들이 극장가에서 일을 내지 싶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랑해 말순씨’ 는 박흥식 감독의 감수성을 폐부깊이 공감해온 관객이라면 ‘사랑해, 말순씨’는 익숙해서 더 반가울 드라마다. 낡은 일상 속에서 툭툭 먼지를 털고 건져올린 남녀의 사랑이야기(‘나도 아내가’), 시간이 벌여놓은 가치관의 간극을 갈등하는 딸과 엄마의 가슴시린 이야기(‘인어공주’). 이번엔 아들이다, 열네살 여드름쟁이 중학생 소년.1980년을 배경으로 잡은 영화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빌려 얼룩진 현대사의 한 장을 복기해낸 요령 많은 휴먼드라마가 됐다. 중학교 1학년인 광호(이재응)는 화장품 냄새 때문에 “엄마냄새가 나지 않는” 화장품 외판원 엄마(문소리)가 창피하다며 늘 불만이다. 그런 엄마를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다섯살짜리 여동생 혜숙이(박유선)도 얄미워 죽겠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우디로 돈벌러간 남편 대신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말순씨’는 사춘기 아들의 억지투정을 웃음으로만 받아넘기는, 촌스럽고 무식하지만 푸근하고 인정많은 ‘동네 아줌마’다. 80년대를 추억하는 영화에는 이렇듯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아랫방에 세든 누나(윤진서)를 빙빙 맴돌다 몽정을 하고, 몰래 숨어서 도색잡지를 보고, 대화가 안 된다며 엄마에게 툴툴대는 주인공 광호는 모두의 사춘기 모습일 뿐이다. 골목길을 서성거리는 바보(TV ‘인간극장’에 소개된 다운증후군 소년 강민휘 분),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광주민주항쟁, 학원가를 떠돌았던 행운의 편지 등 지난 시대의 징표들이 추억의 화첩처럼 유쾌하고 잔잔하게 스크린을 채운다. 아버지의 부재, 모성을 향한 아련한 부채감 등 ‘인어공주’에서 보여준 감독의 감성이 시대상황을 재현해낸 디테일 풍부한 화면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지나치게 잘게 부숴진 에피소드의 나열로 드라마의 힘을 맛볼 수 없다는 게 약점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새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여기 40살 먹은 노총각이 있다. 이름은 앤디 스티처(스티븐 캐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대형 전자제품 매장 직원이다. 그런데 앤디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하나 있다. 불혹이 되도록 한번도 섹스를 못 해본 숫총각이라는 사실. 신체에 이상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너무도 순진한 나머지 여자를 만나면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며 ‘몸’보다 ‘마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주말에 동료들이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앤디는 집안에 틀어박혀 어린아이나 갖고 노는 슈퍼맨, 원더우먼 같은 장난감을 조립하고, 컴퓨터 게임 등으로 시간을 때우며 외로움을 달랜다. 때문에 주변 사람으로부터 게이 취급을 받는가 하면, 심지어 연쇄살인범으로 오해도 받는다. 본인 스스로도 ‘총각 딱지’를 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직장 동료들의 마음은 더욱 안쓰럽고 애가 탄다. 결국 동료들은 각종 경험을 동원해 앤디의 총각 딱지 떼기 작전에 들어가지만 매번 상황은 꼬이고 만다. 새달 4일 개봉하는 주드 아패토우 감독의 ‘40살까지 못해본 남자(The 40Year-Old Virgin)’는 섹스를 소재로 유쾌한 상상력과 신선한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코미디물이다. 하지만 ‘아메리칸 파이’ 같은 10∼20대를 위주로 한 통상적인 섹스 코미디와 달리 40살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숫총각인 앤디가 총각 딱지를 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결말. 하지만 영화는 제목과 달리 그리 야하지 않게 남성의 본능을 그려내면서도, 앤디의 답답한 속내를 자연스레 풀어간다. 저급한 유머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섹스보다는 사랑이 우선이라는 다소 교과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그 이유. 이 영화는 미국 개봉 당시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영화속 몇몇 대사와 상황 설정 등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국내 관객들의 비위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성보다는 남성들의 구미에 더 맞을 영화다.18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야수와 미녀’의 류승범

    ‘야수와 미녀’의 류승범

    스크린에서만큼은 철이 들지도, 나이를 먹을 것같지도 않은 배우. 류승범(26)을 보는 한 시선이다. 인기배우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언제나 신인 같고, 주류에 발들여놓길 거부하는 고집센 아웃사이더 같은 그가 이번엔 ‘자연인 류승범’을 통째로 스크린에 내놓았다. 27일 개봉하는 ‘야수와 미녀’(제작 시오필름)에서 그는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려는 소심남 역할이다. 꽃미남도, 그렇다고 근육질 마초도 아닌 수수한(?) 외모 그 자체가 영화의 최대 동력이 된 셈. 추남 분장을 따로 하지도 않았으니 영화를 위해 앞뒤 따지지 않고 온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뜨락에 붉고 노란 낙엽들이 꿈결처럼 뒹굴고 있는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악동같은 미소, 분방한 몸짓은 기실 ‘배우 류승범’의 영화적 장치일 뿐이다. 샛노란 티셔츠에 보라색 넥타이를 단정히 맨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실없이 웃음을 흘리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스크린 밖에서 그는 ‘얼렁뚱땅’ 스타일과 거리가 한참 멀다는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발언을 하는 ‘단단한’ 배우유형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류승범 7문7답 1.지금까지의 출연작들과는 역할이 사뭇 다르다. 모처럼 편했을 것 같다. -정말 그랬다. 극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다. 이 영화는 가만 들여다보면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훨씬 더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2.한 여자를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이번 캐릭터에는 특유의 화끈한 유머감각이나 뚝심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개인기를 자랑하지 않았다. -옆사람을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이게 해줄 수 있을까, 이번 작품에서는 그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영화보다 편하게 찍었다. 촬영현장에서 연기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휴식같은 작품이었다. 3.주특기인 애드리브를 애써 자제한 흔적도 역력하던데. -‘류승범이라면 저 대목쯤에서 이렇게 나오겠지.’식의 관객 예상치를 꺾어보고 싶었다. 뻔한 건 관객도 재미없겠지만, 나도 싫다. 그래서 많이 참았다. 아, 그리고 이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애드리브 잘 치면 똑똑한 배우로 대접받는 분위기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잔가지일 뿐이다. 결코 뿌리가 되지 못하는. 4.배우로서 누구보다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행운아란 생각을 해보는지.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다작을 한 것 같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배우생활 6년동안 주연한 작품은 ‘품행제로’‘아라한 장풍대작전’‘주먹이 운다’, 이렇게 3편뿐이었다.(인터뷰에서 가장 들떠서 대답한 대목이다.) 깊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품행제로’가 흥행실패했을 때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가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자문해본 것도 그때였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니구나, 인생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진실을 그때 깨달았다. 5.항상 아웃사이더 같은 이미지가 풍기는 게 ‘배우 류승범’의 매력이자 한계인 게 사실이다. -그게 참 어렵다(웃음). 내가 최근 내린 결론은 ‘언더는 없다, 아마추어가 있을 뿐!’이다. 나의 어디에서 그렇게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지 점검 중이다. 6.몇년 전의 인터뷰에서는 평생 배우로 살 마음은 없다고 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직업배우로 살고 싶다. 단, 대중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에 내 이름이 들어있나 아니냐에 연연하며 볼품없이 인생을 살진 않겠다는 마음이다. 7.이제 막 촬영에 들어간 차기작(‘사생결단’)에서는 다시 ‘쎈’ 캐릭터를 맡지 않았나.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마약판매상인데도 자신은 마약에 손조차 대지 않는 아주 차가우면서도 비열한 놈. 극장가에 나붙은 포스터를 먼저 봤다면 영화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털북숭이 야수 장갑을 낀 류승범이 아리따운 여자 옆에서 기죽어 있는 장면은 설렁설렁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그런 편견이 억울할 만큼 생각이 깊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주인공의 외모 콤플렉스가 중심소재가 된 영화도 없었다. 극중 역할은 시각장애를 앓는 여자친구 혜주(신민아)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자 외모에 자신이 없어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고 만다. 하필이면 고교 친구 준하(김강우)를 자신인 것처럼 얼버무린 게 화근. 혜주와 준하의 만남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성형수술까지 하는 그의 노력에는 유쾌함과 안타까움의 감상이 반반씩 스며있다. 차가운 류승범이라…. 결빙의 순간에 그는 또 어떤 방식으로 관객의 감각기관을 주무를지 벌써부터 기대가 쏠린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철없는 어른용? 팀버튼의 ‘유령신부’

    철없는 어른용? 팀버튼의 ‘유령신부’

    팀 버튼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마침표를 찍을까. 그의 팬이라면 또 한번 챙겨봐야 할 작품이 새달 3일 개봉하는 ‘유령신부’(Corpse Bride)이다. 지난달 앞서 개봉한 그의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뭔가 모를 허기를 느끼고 있든, 그 천재성에 아직도 흥분을 달래지 못하고 있든 양쪽 모두에게 반가운 기회이다.‘팀 버튼이 만들면 뭔가 다르다.’는 명제를 재확인해 줄, 이번에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1993년 ‘크리스마스 악몽’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 지 10여년만이다. 가진 것이라곤 돈밖에 없는 반 도르트 일가와 가난한 세습귀족 에버글롯 일가가 사돈을 맺기로 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반 도르트 가의 아들 ‘빅터’(목소리 연기·조니 뎁)와 에버글롯 가의 딸 ‘빅토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는 결혼식 리허설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 결혼식 연습을 하던 빅터가 유령신부에게 반지를 끼우면서 인간신부와 삼각관계를 맺고, 빅터는 그 사이를 오가다 진실한 사랑에 눈뜨게 된다. 인간의 몸짓을 그대로 화면에 반영하는 기법(스톱모션) 덕분에 이 애니메이션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까지 한층 더 현실적인 느낌이 더해졌다. 눈썹을 치켜올리거나 찡그리는 표정 등 캐릭터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실제 사람의 동선과 거의 닮았다. 그럼, 이 영화에서 팀 버튼의 성취는? 애니메이션이 동심(童心)에만 복속하는 장치가 아니란 사실을 명백히 확인해준 작품! 팬터지를 잊지 못하는 ‘철없고 싶은’ 어른관객들을 사정없이 빨아들이는 화면이다. 전체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중년용 서부극? 케빈 코스트너의 ‘오픈 레인지’

    중년용 서부극? 케빈 코스트너의 ‘오픈 레인지’

    명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화약냄새 진동하는 정통 서부극 한편을 들고 왔다.27일 개봉하는 ‘오픈 레인지’(Open Range)는 그가 주연하고 메가폰까지 잡은 웨스턴 무비. 미리 귀띔하자면 극장홍보를 대대적으로 할 것 같진 않은 이 영화는 중년관객들에게 맞춤할 것 같다. 케빈 코스트너, 로버트 듀발, 아네트 베닝 등 출연진의 평균연령이 전연령층의 관객을 두루 공략하기엔 좀 높은 게 사실. 차분한 드라마 전개방식, 눈속임을 전혀 하지 않은 사실적 총격신 등이 진지하게 영화보기를 즐기는 관객들에게 어울릴 것이다. 개척시대 이전의 미국 서부 대초원. 최고 연장자인 보스(로버트 듀발), 말없이 맡은 일에만 충실한 찰리(케빈 코스트너) 등 방목을 하며 사는 카우보이 4명에게 한판 피의 대결이 기다린다. 소떼에 이끌려 다다른 작은 마을에서 악덕 농장주(마이클 갬본)와 타락한 보안관의 횡포를 목격하고 숙명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중반을 넘어서도록 영화는 서부극 냄새를 거의 피우지 않는다. 광활한 초원을 훑는 우수에 젖은 마초들의 눈빛만으로 견뎌내기엔 드라마의 힘이 너무 약한 게 약점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3분의 2 지점쯤 넘어선 뒤에야 맛볼 수가 있다. 거칠게만 살아온 찰리에게 간호사 일을 하는 중년의 여인 수 바로우(아네트 베닝)는 사랑으로 다가오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총격전을 치러야만 하고…. 온돌처럼 느리게 온도를 높여가는 중년의 로맨스, 특수효과가 끼어들지 않은 사실액션이 균형을 잡아 서부극의 품위와 스케일을 끌어올린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건강검진 개인신상 노출 심각

    건강검진 개인신상 노출 심각

    회사원 양모(28·여)씨는 지난 10일 평소 흠모하던 동료 남자직원으로부터 건강검진 결과를 직접 넘겨 받았다. 봉투도 없이 두 장짜리 종이로 전달된 기록지에는 평균치를 크게 웃도는 양씨의 체중과 비만도, 생활습관, 과거병력 등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1급 비밀’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양씨는 이후 며칠간 밥도 먹기 싫을 정도의 깊은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다. 중견기업 Y사는 최근 경기도 부천 S병원으로부터 건강검진 결과 기록지를 뭉텅이로 넘겨 받아 총무부 직원들이 개인별로 봉투에 넣어 밀봉했다.“내용을 보지 말라는 지시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관심 가는 직원들의 기록에는 눈이 가기 마련”이라고 총무부 직원은 말했다. 시중 K은행과 국책 K은행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개된 상태로 건강검진 기록을 배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직원들의 항의가 빗발쳐 올해에야 비로소 밀봉된 상태로 진단서를 나눠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2년 주기로 실시하는 건강검진 결과가 상당수 직장에서 공개적으로 개인들에 전달되고 있어 신상정보 노출은 물론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록지를 광고전단마냥 알맹이만 나눠주거나, 봉투에 넣었어도 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산업안전보건법 43조에는 ‘본인의 동의 없이 개별 근로자의 건강진단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서울 S병원 관계자는 “기업의 요청이 있으면 봉투에 넣어 보내지만 특별한 주문이 없으면 그냥 기록지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기관들이 모든 검진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밀봉을 해서 수검회사에 보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재 서울 강남 M병원이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있는 D전자 환경안전팀 박모씨는 “지난해까지 기록지가 서류 묶음 형태로 배달됐다.”면서 “이를 각 부서 서무 담당자에게 10∼20장씩 뭉텅이로 전달해 개인에게 나눠주는 통에 여사원들이 볼멘소리를 낼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신체에 관한 한 작은 부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직원들은 아예 건강검진을 거부하기도 한다. 입사 3년차인 회사원 이모(27·여)씨는 “감추고 싶은 몸무게나 키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놀림감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난해부터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검진을 기피하면 인사고과 평정 등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건강검진을 안 받으면 질병을 얻거나 불의의 사고를 만났을 때 산업재해 판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법 제정을 위한 연석회의 박준우 간사는 “개인정보 유출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지만 아직까지도 직장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꼼꼼하게 살피는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법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등 이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종 김준석기자 b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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