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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투신전 부모님 위패에 마지막 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봉하마을 뒷산인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기 직전 정토원에 들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정토원은 부엉이바위와 250m 정도 떨어져 있다. 25일 정토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 이병춘 경호과장과 함께 부모님과 장인어른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에 들러 이승에서 삶을 마감하는 인사를 드린 것으로 파악됐다. 정토원에 들른 시간은 당일 오전 6시30분 전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토원의 선진규 원장은 “그 날 새벽 노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정토원에 들렀다.”면서도 “나는 노 전 대통령을 못 봤고 경호원만 봤다. 부모님 위패가 모셔져 있으니 와보고 싶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선 원장은 구체적인 방문 시간은 밝히지 않고 “경찰 수사가 다시 이뤄질 것이니 그때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정토원 관계자는 “선 원장이 경호원에게 VIP(노 전 대통령)와 함께 왔냐고 하니까 혼자 왔다고 대답하는 걸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과장에게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원장이 계신지 알아 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과장이 정토원측에 문의하는 동안 혼자 법당 뒷길을 통해 부엉이 바위쪽으로 먼저 내려갔고 이 경호과장이 뒤따라가 노 전 대통령과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지난 24일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쓴 직후인 오전 5시50분쯤 이 경호과장과 함께 봉하마을 사저를 출발해 약 30분 동안 산을 올라 6시20분쯤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 뒤 6시45분쯤 투신했다.”라고만 발표, 정토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정토원 방문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재연 유대근기자 oscal@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사저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앞으로 그가 머물던 고향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의 운영방안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마련한 사저가 이제 바깥주인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장례도 끝나지 않은 현재로서는 사저 활용에 대해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지금처럼 사저에 계속 머물지, 아니면 기념관 등으로 활용할지는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권 여사가 다른 곳으로 이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괸측된다.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약 500m의 지척이어서 권 여사가 사저를 드나들 때마다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 괴롭지 않겠느냐.”며 이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만약 권 여사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현재의 사저는 노 전 대통령의 기념관으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반면 봉하마을 주민들은 권 여사가 마을에 남기를 원하고 있다. 한 주민은 “비록 지아비를 잃은 아픔이 크지만 권 여사가 고향 마을을 지키며 함께 살기를 원한다.”며 “(권 여사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것보다 차라리 고향인 이곳에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또 권 여사가 환멸을 느껴 자녀가 있는 미국 등으로 거처를 옮겨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를 지냈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아무튼 사저의 활용 향방은 장례가 끝나고 난 뒤 한참 후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저는 지난 2007년 1월 공사에 들어가 2008년 2월 초 준공됐다. 총 비용은 땅 매입비 등 12억원이 넘게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건축면적이 993㎡ 규모로 착공됐으나 설계변경을 통해 연면적이 1277㎡로 30%가량 늘어났다.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황톳빛 외벽에 수십개의 유리창이 들어간 ‘ㄷ’자 구조이다. 3채의 독립 건물이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김해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미처 꿈 피우지 못하고…” 분향소마다 끝없는 애도 물결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미처 꿈 피우지 못하고…” 분향소마다 끝없는 애도 물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사흘째인 25일 전국 81개 정부 분향소와 197개 민간 분향소에는 평일인데도 남녀노소 추모객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일부 추모객은 고인의 비극적인 최후가 안타까운 듯 흐느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또 전 세계 재외공관과 한인회에도 분향소가 설치돼 교민들도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전국 278곳 분향소에 추모객 몰려 서울 경희궁 옆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 마련된 정부 공식 분향소에서는 오전 8시쯤 유족측 대표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노 전 대통령의 영정 봉안식을 거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식 조문에 들어갔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이 유족대표 자격으로 추모객을 맞았다. 한승수 국무총리,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희락 경찰청장 등 정·관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과잉수사 논란으로 주목받고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도 문성우 대검 차장과 빈소를 찾았으나 굳은 표정으로 헌화한 뒤 말없이 돌아갔다. 오세훈 서울시장,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도 고인을 엄숙히 애도했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여행객과 출·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추모객을 맞았다. 분향소 주변에서는 ‘상록수’ ‘아침이슬’ 등 민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울렸다. 서울시는 모든 분향소에 페트병 수돗물 ‘아리수’를 무료 공급했다. 한편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를 경찰차로 막은 데 대해 “일부는 버스를 치워달라고 요구하지만 일부는 경찰 버스가 막아주니 분향하는 데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버스가 막아주니 아늑” 발언 논란 전남 함평군 해보면 대각리 오두마을에서 생태휴양지 ‘황토와 들꽃세상’을 운영하는 김요한(66) 목사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 큰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김 목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오두마을을 방문한 사실을 떠올렸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국가를 대표해 제주 도민과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고,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희생자들을 위로했다.”면서 조문단을 구성, 국민장에 참석하기로 했다. 부산역광장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영정 앞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무엇이 급해 그토록 소원했던 ‘사람 사는 세상 봉하마을’의 꿈을 미처 피우지 못한 채 서둘러 떠났느냐.”라고 애통해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4월 충북도로 이관한 대통령 별장 청남대에도 영정이 설치됐다. 청남대관리사무소는 역사문화관에 영정과 함께 좌우에 노 전 대통령의 활동사진 20여점을 전시했다. 대전시청 북문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50m 길이의 현수막이 걸렸고, 노사모 회원이 사용했던 노란색 풍선도 등장해 애통함을 더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애도의 조문행렬 주미 한국대사관은 24일(현지시간) 대사관 1층에 분향소를 설치, 교민과 외국인들의 조문을 받았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부인과 함께 가장 먼저 분향한 뒤 동포단체 등의 조문을 받았다. 한 대사는 “애통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강하신 분이라 잘 견디실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인회와 종교 단체에도 민간 분향소가 속속 설치됐다. 주일 대사관도 25일 미나토구의 대사관 건물 1층 접견실에 고인의 분향소를 설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한·일 관계를 냉각시켰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 하시모토 세이코 외무성 부대신과 야부나카 미토지 외무성 사무차관 등이 이날 오후 분향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명복을 빌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도 이날 총영사관에서 떨어진 지역의 교민들을 위해 지역 민단에 분향소를 뒀다. 이현주 주중한국대사관 공사는 “대사관 직원들에게 국민장 기간에 화려한 복장이나 빨간색 넥타이 등을 자제하고 음주 가무를 중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대전 이천열·베이징 박홍환·서울 김승훈기자 sky@seoul.co.kr
  • 강금원 보석 등 ‘盧의 남자들’ 풀려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거의 다 풀려나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를 찾게 됐다.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위현석 부장판사)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금원(57) 창신섬유 회장이 뇌종양을 이유로 지난 1일 청구한 보석을 26일 허가했다.이에 따라 강 회장은 보증금 1억원을 공탁하는 대로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강 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병원 2곳에 사실감정을 의뢰한 결과 ‘악성 뇌종양이 발견됐고 시급히 조직검사와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답신이 왔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오랜 세월을 노 전 대통령을 후원하며 의리를 꿋꿋이 지킨 것이 알려져 구속 직후에도 네티즌들로부터 ‘의리의 사나이’로 불렸다.강 회장은 옥중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서럽게 통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노 전 대통령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구속집행정지를 허가했다.  3명 모두 석방되는 기간은 27일 낮 12시부터 29일 오후 5시까지이고 이 기간에 자택과 노 전 대통령의 장지를 벗어나선 안 된다.  서울중앙지법은 ‘박연차 게이트’로 구속 수감된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조문을 위해 신청한 구속집행정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검찰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서거 직전까지 회고록 집필 했었다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서거 직전까지 회고록 집필 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63년의 삶과 평생의 과업이 담긴 책을 집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회고록과 비망록 성격의 책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담고 정치인과 대통령을 거치며 겪었던 생각을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원고 분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출간에 앞서 중요한 구상을 키워드별로 정리해놓은 원고가 사저에 보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이후 국가기록원에 대통령 기록물 사본을 반납했기 때문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일부 인사들이 봉하마을에 내려와 구술에 참여했다고 한다. 한 최측근은 25일 “본격적인 회고록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저서를 준비 중이었던 것은 맞다.”면서 “살아온 얘기와 겪었던 일, 그 과정에서 느꼈던 생각 등을 종합적으로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평소부터 이런저런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고 책의 뼈대가 되는 내용을 구분해 정리해놓은 원고를 사저에서 본 적이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을 통틀어 담은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책의 성격에 대해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을 직접 남기고 싶어했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본직절인 문제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종합하면 지역통합과 국민통합, 양극화 해소 등이 주제였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특히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원망하지 말라.’ ‘오래된 생각이다.’라고 밝힌 부분도 이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과제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지난해 1월24일 그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 했던 동지들 앞에서 “대통령 1년쯤 하고 나니까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국민이 원하는 일이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국민이 분열돼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고 돌아봤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미완의 작업은 이제 우리 사회의 또다른 과제로 남은 것 같다. 이재연 박성국기자 oscal@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권여사 월 690만원 연금 승계받을 듯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권여사 월 690만원 연금 승계받을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에 대한 예우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권 여사 등에 대한 예우가 가장 많이 바뀌는 부분은 연금.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월평균 985만원의 연금을 받아왔지만, 권 여사 등에게는 690만원가량만이 지급될 전망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유족 중 배우자에게 대통령 연금의 70%를 유족 연금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비서관들은 면직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비서관의 신분은 행정안전부 소속의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면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재 봉하마을에는 별정직 가급 1명, 나급 2명 등 3명의 비서관이 근무하고 있다. 또 운전업무 등을 맡는 6급 직원 1명도 근무 중이다. 하지만 권 여사 등에 대한 경호는 당분간 청와대 경호실에서 계속 맡는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에는 퇴임일 이후 2년간 청와대 경호처가 유가족 경호를 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법률적으로는 2010년 2월24일까지는 청와대 경호처가, 그 이후에는 경찰이 주요 인사 관리 차원에서 경호를 맡게 된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으면, 2015년 2월24까지 청와대 경호처가 경호를 담당할 예정이었다. 이 밖에 유가족에게 무상으로 지원되던 병원 진료(국·공립병원 무료, 사립병원은 사후 국가정산)와 공무상 국외여행 경비 지원 등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모두 끝난 뒤, 권 여사 등에 대한 예우를 구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마을 개발 사업 향배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주변의 각종 개발사업은 어떻게 될까.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정부와 김해시가 추진하는 봉하마을 개발사업의 추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예정된 봉하마을 각종 개발사업의 보류나 취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봉하마을과 관련된 개발사업이 중단되면 현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김해시는 여론의 흐름을 지켜보며 봉하마을 개발사업의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해시·정부, 여론 추이보며 재조정 앞서 김해시는 지난달 봉하마을 각종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조정할 방침임을 밝혔다. 봉하마을 개발사업을 비롯해 여러 사업 예산이 모자라 각 부서별로 진행되는 사업의 효율성과 투자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꼼꼼하게 따져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김해시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계기로 봉하마을을 자연친화적인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봉화산 일원 관광자원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비는 75억여원이다. 기본계획 사업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생가복원사업(사업비 9억 8000만원)과 사저 맞은편의 봉하마을 공동주차장 조성사업(12억)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한다. ●미곡종합처리장·생태주차장 보류 또 환경부가 추진하는 화포천의 생태하천 복원사업(60억원)과 산림청의 봉화산 산림경영 모델숲(웰빙숲) 조성사업(30억원) 등 중앙부처 사업은 예정대로 이뤄질 예정이다. 화포천 복원과 봉화산 웰빙숲 조성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과 퇴임 뒤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업이었다. 김해시 관계자는 “추경예산을 짤 때 예산이 많이 부족해 봉하마을 개발사업도 사업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조정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 김상화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고비마다 그의 손엔 담배가 있었다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고비마다 그의 손엔 담배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기 직전에 수행 경호관에게 “담배 하나 있냐.”고 물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분향소마다 고인의 영정 앞에 불 붙인 담배가 제기(祭器)에 오르고 있다. 주변의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생애의 고비마다 겪었던 고뇌와 인간적 면모를 보여 주는 상징으로 담배를 꼽기도 한다. 고인이 괴로울 때에는 하루에 2갑 이상 줄담배를 피워 물었고, 안정기에는 금연을 결행하는 등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시절 ‘애연가’로 통했던 노 전 대통령은 값이 싼 담배라고 할 수 있는 ‘디스(2000원)’를 즐겼다. 그것도 중간에 끄는 게 아까워 필터 앞까지 끝까지 피우는 알뜰 흡연습관을 지녔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힌 2001년 10월에 금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10월쯤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10%대의 부진한 지지율로 고전하면서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시 담배를 끊었다가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참모진에게 담배를 찾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기 직전에도 참여정부 인사 30여명과 차를 마시며 담배 두 개비를 피웠다. 착잡한 심경을 담배로 달랬다. 검찰조사 중 잠시 쉴 때마다 담배를 피웠다.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 [사설] 노 前대통령 조문, 이념·정파 갈려서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에 따른 충격과 슬픔 너머로 또 다른 아픔이 국민들의 마음을 시리게 파고들고 있다. 고인의 영정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이념과 정파의 대립이다. 어제 박희태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가 마을 주민과 일부 노사모 회원들의 저지에 막혀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그제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한나라당 전·현직 대표가 모두 헛걸음한 셈이다. 입법부의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은 성난 주민들에게 물세례를 받고 돌아섰다가 새벽녘에야 주민들 눈을 피해 조문하는 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지지자들의 고통을 모르지 않는다. 검찰을 욕하고, 이명박 정부를 원망하고, 보수언론을 탓하는 것도 감당키 어려운 심적 고통의 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어느 누구의 대통령이 아니었음을 깊이 헤아렸으면 한다. 봉하마을 주민의 대통령도, 몇몇 386정치인들의 대통령도, 노사모로 대변되는 친노세력만의 대통령도 아니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었다. 영정을 끌어 안은 채 누구의 조문은 되고, 누구는 돌아가라고 외치며 ‘우리만의 대통령’으로 고인을 묶어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나라가 이념과 정파로 갈려 대립했던 것도 결국은 특정 이념이나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민의가 빚어낸 진통이 아니었던가. 노 전 대통령은 지역 갈등의 높은 장벽을 허물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인물이다. 보수세력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지만 그가 지향했던 가치는 대립과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고 화해였다고 우리는 믿는다. 자신의 영정 앞에서 다시 네편 내편이 갈리는 모습이 연출되는 현실을 고인은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 역시 보다 의연한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 임시분향소 주변에 전경버스로 울타리를 치고, 물대포를 대기시키는 협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제2의 촛불시위를 걱정하기에 앞서 지난 5년 이 나라를 이끈 지도자의 영면을 빌어야 할 때다.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길에서 이 나라 보수와 진보가 공존을 모색하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 [노 前대통령 서거] 주변서 전한 검찰 조사뒤 ‘盧의 23일’

    지난달 30일 검찰조사를 받고 봉하마을로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2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주변에 따르면 이때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불면증과 칩거 생활이라는 말로만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을 앞둔 시점부터 모종의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 관계자는 24일 “서거 5일 전쯤 노 전 대통령의 지인을 만났더니 ‘대통령이 서울에 갔다 온 뒤 보니까 일낼 것 같더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초동에 다녀온 뒤 방문객도 받지 않았고 방문이 이뤄져도 예전 같으면 면담이 한 시간쯤 걸렸는데 아예 (대통령이) 말이 없어서 방문객들이 인사만 하고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인호 전 청와대 부대변인은 “최근 사저를 방문했을 때 볼살이 빠졌더라.”면서 “서거하기 3~4일 전부터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점을 전후해 마음을 굳히신 것 같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권 여사의 초등학교 동창인 경남 김해 진영농업협동조합장 이재우(63)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권 여사와 함께 등산을 가기로 해놓고 혼자 나갔다는 얘기를 권 여사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었기에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답했지만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갔다고 한다. 이씨는 그러면서 “권 여사가 ‘나를 떼어놓으려고 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당시 사저에서 경호차량이 급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저에 전화를 했더니 권 여사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20일 오후 6시30분쯤 대통령 내외를 사저에서 만난 뒤 나오면서 ‘독한 마음 먹지 마시라. 언제 새벽이나 밤에 저하고 등산을 하십시다.’라고 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오후에도 사저에서 화포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강사 앞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고향 마을과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영강사의 청호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이 화포천에 청소하러 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두번씩 우리 절의 앞길을 지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면서 “19일에는 평소와 달리 손만 흔들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해 특별취재팀 zangzak@seoul.co.kr
  • 유시민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

    유시민 “내게는 영원한 대통령”

     25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부 공식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팬클럽 사이트인 ‘시민광장’에 ‘서울역 분향소에서’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유시민 전 장관은 시(詩)처럼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글에서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이 떠났다.”고 가슴 아픈 심정을 내비쳤다.  이어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 온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유 전 장관은 전날 노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던 사실 때문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영전에 바쳐 눈길을 끌었다.그를 따라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이 담배에 불 붙여 영전에 올리는 모습이 잇따랐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해인사스님 300여명 조문

    [노 前대통령 서거] 해인사스님 300여명 조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에 합천 해인사가 대규모 조문 사절단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분향소에서 10여분간 반야심경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들은 24일 오전 9시20분쯤 자동차 통행이 통제된 봉하마을 입구부터 1㎞쯤 줄을 지어 걸어서 빈소에 입장했다. 스님들은 10여분간 고인의 영정 앞에서 ‘반야심경’을 외우며 합장을 했다. 이날 상주로서 추모객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독경 소리가 커질 때마다 서럽게 흐느끼며 두 손을 모은 합장으로 스님들의 조문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어 스님들은 빈소의 한쪽 공터에 자리를 잡고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불교신자 등 일부 추모객들이 그 옆에서 함께 합장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권양숙 여사는 기력을 잃고 사저에 누워 있는 처지라 빈소의 스님들을 맞이하지 못했다. 권 여사는 몸을 일으켜 미음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딸 정연씨와 종친회 사람들의 간호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관스님 사저 찾아 권여사 위로 이날 빈소를 찾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사저를 찾아 누워 있는 권 여사에게 “건강을 챙기시고 불심으로 힘을 내시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염주 하나를 건넸다. 지관 스님은 앞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조화와 포용, 자비의 정신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애도문을 전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 불교 조계종과 서울 봉은사에 꾸준히 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임 초기에는 매일 오전 6시를 전후해 봉은사를 찾아 두 자녀와 남편의 무사를 빈 것으로 전해졌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특별기고] 노 前대통령의 서거에 부쳐/이근배 시인

    [특별기고] 노 前대통령의 서거에 부쳐/이근배 시인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아니 대한민국과 그 구성원인 국민들은 만들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비극을 연출해 놓고 지금 객석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누구도 예고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어쩌면 예정된 한국정치의 수순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국 이후 우리 국민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열 분의 대통령을 뽑았다. 그 가운데 여덟 분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거나 옥고를 치르거나 아들들을 감옥에 보내는 수모를 겪었다. 우리는 앞의 여덟 번의 국민적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믿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아홉 번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극단적인 상황에 부딪히면서 왜 우리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가지면 안 되는 국민인가 하며 분노가 치민다. 지금 우리에게 과연 정치가 있는 것인가, 법이 앞서고 정치력이 실종된 현실이 이렇게 까지 몰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아픈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명 민주주의 절차에 의한 공정한 선거로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가난한 농사군의 아들로 태어나 학비가 없어 장학금을 따라 상고를 졸업한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 판사로 나갔다가 법복을 벗었다. 이어 민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으로서 돈을 좇는 일보다는 자기신념에 투철했던 만나기 어려운 모험가였고 승부사였다. 그는 3당 합당에 반기를 들고 정치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역주의 극복에도 앞장서 나갔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지난해 미국이 선택한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신선한 충격에 앞선 것이기도 했다.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도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기에 착수했고 금권선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였으며 정보정치, 공안정치를 배제하여 대통령이 구사할 수 있었던 막강한 권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퇴임 후 고향 봉하 마을로 돌아가 주민들과 친환경 농사를 짓고 맑은 물, 깨끗한 흙을 가꾸며 살자고 했던, 높은 담장에 갇힌 귀족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으로 여생을 마치고자 했던 그에게 뜻하지 않았던 사정의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었다. 포괄적 뇌물수수죄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야 했고, 그가 평생토록 신념과 이상으로 내세웠던 청렴성과 도덕성은 돌에 맞은 항아리처럼 깨어지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법률을 잘 아는 그였기에 법정에서 방어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이 연루된 마당에서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오직 하나 지키며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던 도덕성이 받은 상처였으리라. “자기를 버려달라.”고 인터넷에 올렸고, 국민 앞에 “면목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으며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유서에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 모든 이를 용서했으나 오직 자기 자신만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를 용서하지 못한 우리가 그에게 용서를 빌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용서를 빌어야 할 차례이다. 우리의 한 시대가 만들어 낸 지도자 노무현, 역사는 그가 민권의 수호자, 민주주의의 신봉자로 반독재 반권력 반부패의 실천가로 한국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국민의 희망이었던 대한민국 대통령이었음을 오래 새길 것이다. 이근배 시인
  • [노 前대통령 서거] 빗속 300m 조문행렬… 건평씨 묵묵부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하늘은 비를 뿌렸고,사람들은 오열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이날 오후 2시20분쯤 기상청도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추모객들은 30여분이나 비를 맞았지만 300여m나 늘어서 조문 차례를 기다렸다. 추모객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빗소리가 뒤엉키면서 봉하마을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오늘 새벽 1시30분쯤 입관식 추모객들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10~20명이 한꺼번에 조문했다. 차례로 줄지어 흰 국화 1송이씩을 영정 앞에 올린 뒤 묵념하고 유족에게 인사했다. 오전 11시30분쯤 마을회관 옆에 폭 10m 규모의 철제 구조물로 된 공식 분향소가 마련됐다. 수천 송이 국화가 제단에 헌화됐고,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빈소와 분향소 설치를 도왔다. 빈소를 찾는 추모객의 행렬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봉하마을로 향하는 진입로가 좁고 주차장이 없어 혼란이 더했다. 봉하마을 측은 인근 진영 공설운동장을 임시주차장으로 꾸미고, 대형 셔틀버스 6대를 운행했지만, 몰려드는 추모객들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추모객들은 공설운동장에서 봉하마을까지 5㎞ 넘게 늘어섰다. 25일 새벽 1시30분쯤 고인에 대한 입관식을 가졌는데, 더위로 인한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약품처리를 했다. ●40여가구 조기 내걸어 봉하마을 40여가구는 이날 조기를 게양했다. 마을 스피커에서는 진혼곡과 함께 ‘솔아솔아 푸른 솔아’ 등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추모객과 봉화 주민들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고인을 애도했다. 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노사모 회원 500여명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켰다. 추모객들의 식사대접을 돕거나 행사장 질서유지에 나섰다. 장례 진행을 맡은 배우 문성근씨도 마을 스피커로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은 (정파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따뜻이 맞아주자.”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반복해서 내보냈다. 이날 5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빈소를 찾은 경남이주민연대회의 이철승 목사는 “노 전 대통령께서 퇴임후 ‘힘이 있을 때 이주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이날 오전 11시20분쯤 한 50대 여성은 조문을 마친 뒤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갑자기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10여명이 대기 중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았다. ●건평씨 “죽기는 왜 죽어”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법원으로부터 7일 동안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이날 새벽 봉하마을의 동생 빈소를 찾았다. 지난해 12월5일 세종증권 매각비리 연루 혐의로 구속된 뒤 5개월 20여일 만에 풀려나 고향 땅을 밟은 건평씨는 오전 8시50분쯤 빈소에 도착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다만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집에 머물 때 찾아온 마을 주민에게 “죽기는 왜 죽어.”라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관은 빈소 정면의 병풍 뒤에 안치돼 있다. 병풍 앞에 영정이 놓여 있으며, 외부에서는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연예계, 노 前대통령 추모물결…홈피마다 ▶◀

    연예계, 노 前대통령 추모물결…홈피마다 ▶◀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연예인들도 검은 리본을 달고 있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영화배우 명계남과 문성근은 지난 23일 오전부터 경남 김해 봉하마을 합동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4인조 밴드 YB(허준, 김진원, 박태희, 윤도현)도 25일 봉하마을 합동분향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토이의 유희열은 24일 오전 7시 경 국화 한송이와 담배 한갑을 들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조문했다. 미처 분향소를 찾지 못한 연예인들은 온라인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배우 이준기는 미니홈피에 국화 사진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문근영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인터넷 근조 표시인 ‘▶◀’를 걸어놨다. 엠씨더맥스 보컬 이수(본명 전광철)는 자신의 미니홈피 게시판에 올린 ‘근조(謹弔)’라는 제목의 글에서 “가는길 마저 당신의 방식대로 티없이 깨끗이 가셨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차원에서 연예계의 축제성 행사와 방송 예능 프로그램 역시 자제되고 있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과 국민 정서에 비춰볼 때 지상파 3사의 예능프로그램 결방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진행될 이번 주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봉하마을, 매스미디어는 가고 블로거는 뜬다

    봉하마을, 매스미디어는 가고 블로거는 뜬다

    거대한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우리 언론사에도 기록될 전망이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매스미디어(mass media)보다는 블로거나 아고리언(포털사이트 다음의 네티즌 토론 공간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같은 퍼스널미디어(personal media)가 보다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국에 생중계 하고 있어서다. 당장 취재 환경부터가 크게 다르다. 봉하마을에는 별도로 천막을 쳐 취재기자석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24일까지 이 곳을 활용하는 기자들은 많지 않았다. 성난 시민들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등 기성 언론사 기자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23일에는 조문객 수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KBS 중계차량이 마을에서 철수 당하기도 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일부 보수 언론 기자들 역시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예 노트북과 카메라 등에서 소속 언론사 스티커를 가린 채 취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취재 기자석에서는 기사 송고에 필요한 전력을 구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기성 언론 기자들은 마을 공동화장실 내의 전원을 이용하는 실정이다(사진). 반면 유명 블로거나 아고리언들은 시민들로부터 환대받고 있다. 이들은 마을회관 인근의 노사모기념관 실내(사진)를 이용하고 있다. 이 곳은 취재기자석에 비해 전력과 무선인터넷 등 취재 환경이 훨씬 낫다. 블로거 입장에서 현장을 취재중인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는 “기성 언론 취재 기자들은 역대 최악의 취재 현장이라고 토로하는 반면, 소속 언론사를 밝히라는 시민들에게 블로거라고 하면 대부분 이해하고 성원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언론 전문가들은 서울 시내 촛불 집회에 이어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 현장 취재야말로, 여론을 독과점해온 소수 언론에서 다중의 개인 언론으로 언론의 중심축이 옮아가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봉하마을 취재가 어렵다는 기존 언론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25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취재기자석을 확대하고 편의시설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서울신문NTN 이여영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서거] 노무현의 공과 1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험’의 정치인이었다. ‘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소수파를 자처했고, 지역 정치를 해소한다며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에 뿌리박힌 지역주의에 맞섰고, 권위주의를 깨려 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이런 모습을 평가했다. 정치인으로서 성공한 주요 배경이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개인사가 있었기에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험’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전진을 이룬 듯 제자리에 맴돈 듯, 그의 실험은 평가에 앞서 논쟁의 한가운데 서곤 했다. 권위와 권위주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금권 정치 극복을 위한 진일보한 환경을 조성한 반면, 스스로는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실험은 후진들에 의해 계속되겠지만, 그의 삶은 실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화했다. ■ 민주주의 발전 “연대와 사회 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라야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란 보통사람들이 힘쓰고 사는 세상이다. 진보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기 펴고 사는 세상이다. 지금은 절반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한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가장 많은 설명과 주석을 내놓은 대통령이었다. 그 개념도 이전의 것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것이었다. 그러기에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식 민주주의’를 직접 설명하려 애썼다. 전에 없이 ‘국민과의 대화’를 애용했다. 언론을 통한 전달과 ‘재해석’에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화두를 던지고 스스로 재해석을 내놓는 방식을 선호했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발전 측면에서, 노 전 대통령은 “통합과 개혁에 가치를 두었다.”고 했다. 간단하고 명료해 보이지만, 그의 민주주의 소신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설명하고 구현하려던 민주주의가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인 모양새를 띤 것도 한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는 국내·대외 정책에서 대결주의를 취한다. 평화는 진보주의가 가깝다.”, “오늘날의 한국은, 지난 20년간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의 성과물이다.”, “역사에는 중립이 없다. 우리 좋은 역사 만드는 데 동업하자. 절반까지 온 민주주의 역사를 완성하자.”며 끊임없이 화두를 제시했다. 국민들의 ‘개념 따라잡기’가 부족하다고 느낀 때문인지, 설명이 덧붙여지고 논쟁이 뒤따랐다. 이 작업에 힘이 부쳤는지,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의 의견과 대통령의 의견이 다를 때, 때론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참 어렵다.”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노 전 대통령의 공과는 셈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주의 발전이 진보의 확장 또는 진보의 발전과 연관돼 있다면,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여전히 절반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는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대통령’,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 했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권위주의 타파 ‘비주류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 ‘주류’들과 끊임없이 맞섰다. 주류 진영의 ‘성역’과 ‘금기’를 타파하기 위해 때로는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인 2003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판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를 임명했다. ‘파격 인사’였다. 진보성향의 여성 변호사를 장관 자리에 앉히자 검찰은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전국 검사와의 대화’를 가졌지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포기하지 않았고, 검찰 내 상명하복의 근거가 됐던 ‘검사 동일체 원칙’을 폐지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찰청법 조항을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르도록 한다.’고 고쳐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게 했고, ‘이의 제기권’도 신설했다. ‘국정원 쇄신’ 역시 노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말 국정원의 국내 사찰업무를 중지시키고 도청을 금지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국내 정치정보에 투입됐던 많은 요원들이 대테러와 산업보안 분야에 배치됐다.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이전 정부와 많이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 비서관이나 담당 행정관을 배석시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청와대 내 온라인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을 통해 비서관은 물론 행정관까지 노 전 대통령과 정책 토론을 벌였다. 퇴임 직후 봉하마을에 돌아가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한 모습은 국민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역시 전례없는 일이었다. 이같은 모습은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그는 임기 내내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내놓아 ‘가볍다.’는 인상을 심어줬고, “권위주의 타파가 아닌 (대통령의)품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박근혜·김형오 ‘헛걸음’

    [노 前대통령 서거] 박근혜·김형오 ‘헛걸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김해 봉하마을에 24일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의 ‘구원(舊怨) ’을 풀려는 듯 최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치인들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근태 전 의원, 민주당 추미애· 천정배 의원 등 ‘비노’(非) 진영의 유력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정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쯤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있어서는 안 될 아픔으로 명복을 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 의원은 전날에도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일부 노사모 회원 등이 “뭐하러 왔느냐.”, “배신자”라고 제지하자 발길을 돌렸다. 손 전 대표는 “고인이 이루고자 했던 뜻이 많았을 텐데, 못다 이룬 뜻을 저희가 받들겠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슬픔과 분노,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한다. ”며 눈물을 보였다. 추 의원은 2003년 민주당 분당(分黨)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결별했다. 김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했는지 국민도 알 것”이라고 애도했다. 노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요직을 맡았던 유력인사들의 발걸음도 당연히 이어졌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우리사회가 대립과 갈등 때문에 이런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세청장과 건설교통부 장관 등을 지낸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사전에 충분히 갈등과 대립을 조율할 수도 있는데 이런 비참한 사태까지 벌어졌어야 됐는지 안타깝다.”고 침통해했다. 일부 조문객들은 노사모 회원과 주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날 김형오 국회의장이 봉하마을을 찾았지만 마을 입구에서 노사모 회원 등 지지자들의 저지로 경비 숙소로 피신하기도 했다. 오후 1시45분쯤 김 의장 일행이 빈소가 차려진 마을회관에 들어서려 했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와 “우리끼리 장례를 치르겠다.”면서 생수통과 물을 뿌리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오후 4시40분쯤 서병수· 유정복· 이성헌 의원 등 측근들과 함께 봉하마을 입구 근처까지 왔다가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현지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저녁 7시40분쯤 봉하마을 입구에 도착했지만 노사모 회원 등이 “여기는 아무나 오는 데가 아니다.”라며 조문을 반대, 결국 발길을 돌렸다. 전날에도 한승수 국무총리가 버스로 봉하마을에 진입하려고 했지만 노사모 회원과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당직자 일행과 미니버스를 타고 봉하마을로 들어오려 했지만 마을 입구에서부터 노사모 회원 등이 계란과 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하자 조문을 못한 채 돌아갔다. .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전직에 대한 禮에 최우선

    청와대는 24일 오전 정정길 대통령실장 주재로 관계 수석비서관 회의와 전체 수석비서관 회의를 잇따라 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 직접 찾아 조문한다는 방침도 정했다.이 대통령이 봉하마을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키로 가닥을 잡은 것은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호상 문제, 정치적 해석 등 부담이 작지 않지만 최대한 예우를 갖춤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도리는 다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이 대통령 명의로 보낸 조화가 훼손된 것과 관련, 봉하마을 장례위원회 측에서 ‘빈소가 제대로 차려지지 않는 상태에서 조문객과 지지자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불상사였다.’고 유감의 뜻을 전해왔다.”면서 “공식 분향소가 마련되니까 보내주면 화환을 빈소에 모시겠다고 해서 24일 다시 보냈다.”고 덧붙였다.청와대는 북한에서 조문을 요청할 경우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러진다. 정부 분향소가 서울역 광장과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곳곳에 설치되며, 유해는 유족 뜻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4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유가족측으로부터 장의 형식을 국민장으로 하고 유가족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하자는 의견을 전달받았다.”면서 “추모를 위해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서울에는 외국의 조문사절 등의 편의를 위해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광장에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장지는 유족의 뜻에 따라 봉하마을로 잠정 결정됐다. 국민장 거행을 위한 장의위원회 위원장은 유가족 협의과정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외에 유가족 대표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장의 기간은 23~29일까지 7일간이다. 영결식은 오는 29일 김해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되며 당일 조기를 달기로 했다. 화장 절차에 대해서는 논의가 늦어져 25일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장은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의식 가운데 하나로 전·현직 대통령이나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장의비용은 일부만 국고에서 보조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장은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장례방식이 결정됨에 따라 정부는 본격적인 장례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행안부는 장의 부위원장을 맡을 인사로 국회부의장과 감사원장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달곤 행안부 장관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강희락 경찰청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인평 행안부 의정관 등으로 장의 집행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또 행안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작업단’을 구성, 의전·안내·운구·식장준비 등 실질적 장례 업무를 담당케 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지가 봉하마을로 최종 확정되면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별도의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안장식을 위한 제반 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또 서울시와 협의해 옛 서울역사 앞 시계탑 부근과 신문로 시립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성북·서대문·구로·강동구 4개 구청 내 등 서울에 6곳의 분향소를 마련키로 했다. 지방에도 권역별로 수십곳 이상의 분향소를 설치한다. 해외 한국 대사관·총영사관 등의 재외공관에도 조문장소가 마련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재외공관마다 조문록을 비치, 주재국 인사 중 원하는 사람은 조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장례식 당일에는 전 재외공관에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거 이튿날인 24일 하루에만 봉하마을 임시 빈소에 10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리는 등 전국에서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도 애도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한승수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25일 오전 9시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합동 분향할 예정이며, 오전 10시엔 주한 외교사절이 분향소를 찾는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현지 특별취재팀 ●정치부 홍성규 김지훈 ●사회부 이재연 장형우 유대근 박성국 ●사회2부 김정한 한찬규 김상화 강원식 박정훈 ●사진부 김명국 도준석 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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