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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9) 고려 태조 왕건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9) 고려 태조 왕건상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고려 태조 왕건상’이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왕의 ‘초상조각’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데다, 옷을 입지 않은 나상(裸像)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지요. 왕건상은 남쪽의 특별전이 끝난 뒤 현재는 평양의 조선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고려 태조 무덤인 현릉(顯陵)에서 발굴된 이후에는 줄곧 개성 고려박물관에 있었지요. 고려박물관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개성의 성균관 건물을 그대로 전시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쪽에서 각광받는 왕건상이 북쪽에서는 한동안 그리 주목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1996년 평양에서 발간된 ‘고려태조 왕건’의 말미에는 현릉 발굴 결과가 실렸는데, 왕건상을 ‘금동불상’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같은 해 사이토 타다시(齋藤忠) 일본 다이쇼대학 명예교수가 펴낸 ‘북조선고고학의 신발견’에도 사진이 실렸지요. 경주 황남동 109호분을 발굴하기도 한 사이토 교수는 북한학자들의 해석을 존중해 ‘불교의례의 일단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적었습니다. 이듬해 기쿠다케 준이치(菊竹淳一) 일본 규슈산업대학 교수가 고려박물관에서 이 금동조각을 발견하여 북한 관계자들에게 왕건상일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고 합니다. 당시 왕건상은 ‘보살상’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채 적조사 철조석가여래좌상 등 다른 불상과 나란히 전시되고 있었다고 하지요. 기쿠다케 교수는 ‘고려 태조 왕건상 시론(試論)’에서 학술 논문으로는 이례적으로 ‘부기(附記)’를 달아 왕건상을 만난 과정을 간단하지만 지극히 감상적으로 술회했습니다. 그는 고려박물관을 방문하기 전날 밤 만월대에 올랐다고 합니다.‘하늘에 가득한 별 아래서 술을 마시며 감격해서 왕궁전터의 땅바닥에 누웠을 때, 태조 왕건이 나에게 개성에 머무는 동안 자신을 찾으라고 계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후 왕건상에 얽힌 갖가지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준 사람은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입니다.951년쯤 조성되어 봉은사 태조진전(太祖眞殿)에 모셔져 있던 왕건상은 고려가 망함에 따라 지금의 숭의전이 있는 경기도 마전현의 작은 사찰로 옮겨졌고, 주자학적 제례법을 따르려는 세종의 의도에 따라 초상조각이 목주(木主·나무로 깎은 위패)로 대체되면서 세종 11년에 현릉에 묻혔다는 것이지요. 왕건상은 나체조각만 남았지만, 고려시대에는 옷을 입혔습니다. 발굴 당시 왕건상의 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얇은 비단천과 금도금을 한 청동조각이 붙어 있었다고 하지요. 노 교수는 조상제례에 옷을 입히는 조각상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 고대 이래의 문화전통이라고 설명합니다. 왕건상은 ‘동명왕 어머니 유화의 소상(塑像)이 3일 동안 피눈물을 흘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 시조신상(始祖神像)의 특징을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기쿠다케 교수는 ‘얇은 비단천’에서신체를 훤히 비치게 표현한 ‘수월관음도’ 같은 고려불화를 떠올렸습니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속살이 투명하게 비치는 보살의 시스루(see-through) 패션’이라며 고려불화의 표현법에 감탄한 적이 있지요. 그리스 조각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직접 드러냈다면 ‘수월관음도’나 왕건상은 얇은 천 너머로 육체가 비쳐 보이게 하여 살아 있는 듯 느껴지게 표현하는 고려시대 특유의 미의식을 보여 준다고 기쿠다케 교수는 해석했습니다. dcsuh@seoul.co.kr
  • 박원순 봉은사 미래위원장 위촉

    조계종 봉은사(서울 강남구 삼성동)는 13일 공식 자문기구인 ‘봉은사 미래위원회’를 발족, 위원장에 박원순(희망제작소 대표) 변호사를 위촉했다. 발족식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 정성헌 평화생명포럼 대표,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장, 신계륜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 25명이 참석했다.
  • [부고]

    ●차영조(대구시의원)씨 상배 20일 경북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5시 (053)420-6151●안순환(전 서울은행 부장)주환(삼성전자 LCD총괄 부사장)세환(전 삼성생명 부장)윤희(전 우리은행 지점장)윤옥(구의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3410-6916●정용(사단법인 관우회 회장)씨 별세 준(연세피부과 원장)욱(후지쯔코리아 과장)엽(DHL 〃)혁(우리홈쇼핑 대리)씨 부친상 김영진(정보통신연구진흥원 전략기획단장)씨 빙부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3010-2230●배재봉(신세계인터내셔날 상무)정민(한국하이델베르그 부장)씨 모친상 홍도재(후마이스타일렉트로닉스 지점장)박병천(브레인컴퍼니 대표)김진홍(정화식품 상무)씨 빙모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5시 (02)3410-6914●문상호(사업)상환(원광디지털대 기획처장)상욱(대한항공 차장)씨 모친상 최재권(FEV코리아 대표)씨 빙모상 19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31)787-1501●박광원(동양메이저건설)혜원(하나은행 봉은사로지점 대리)씨 부친상 서덕원(삼일회계법인 매니저)씨 빙부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9●노이전(사업)도전(〃)씨 모친상 주호식(신용보증기금 팀장)박종문(충북대 교수)씨 빙모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7●이재근(세원공영개발 대표)재갑(사업)제훈(상봉정밀 대표)재진(남서울합동법률사무소 실장)재경(우림건설 품질감사실 부장)씨 모친상 채종환(샬롬IT직업학교 대표)씨 빙모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6시 (02)3010-2265●김홍규(전 우리은행 지점장)인규(르노삼성자동차 구매본부장)용규(삼성생명 평촌지점)씨 부친상 1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590-2352●구태언(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은아(GS텔레서비스)씨 부친상 1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40분 (02)590-2697●홍성중(대한볼링협회 이사)성범(서울시볼링협회 〃)씨 모친상 김종환(사업)신재흠(연세대 축구부 감독)씨 빙모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3●심재섭(전 LG데이콤 홍보팀장)씨 별세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6시 (02)3010-2236●김호용(우리투자증권 감사)씨 부친상 백진식(자영업)황수관(중전전기 대표)씨 빙부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3010-2292
  •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화산 아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188).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 전농동)에서 화성(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겨 모신 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능침사찰(陵寺)이다.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의 합장묘인 융릉(용주사에서 동북쪽으로 10여분 거리)을 수호하기 위해 지어 ‘효(孝)의 본찰’로 널리 알려진 도량이다. 능사의 사격 그대로, 다른 전통사찰과는 달리 산이 아닌 평지에 들어서 사찰보다는 오히려 궁궐과 사대부 가옥의 특징들을 더 많이 갖춘 독특한 가람이다. 능사란 왕이나 왕비의 능 근처에서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재(齋)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1곳이 세워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론 용주사를 비롯해 세조의 광릉을 위한 봉선사, 세종의 영릉 수호사찰 신륵사, 중종의 정릉 능사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 능사 가운데 용주사는 당파싸움의 와중에 억울하게 뒤주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절절한 효심이 그득한 ‘효 사찰’이란 차별성을 갖는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조성한 뒤 능사를 짓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각처에서 길지를 모색하던 중 신하들로부터 ‘천하제일의 복지’로 추천받아 낙점한 곳이 바로 옛 갈양사 터이다. 신라시대부터 사찰의 이름이 등장하는 갈양사는 한국불교 선종(禪宗)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제2조 염거 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했던 선찰이다. 지금도 그 선풍을 이은 선원 서림당과 중앙선원엔 안거(安居)를 가리지 않고 참선수행하는 선승들의 정진이 이어진다. 신라기부터 고려기까지 왕실 원찰로 받들어졌으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과 아귀를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는 ‘수륙재’가 처음 열린 곳이기도 하다. 갈양사는 이처럼 명성이 높았지만 어떻게 소실됐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잦은 전란으로 사라져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용주사 대웅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에 따르면,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봉안한 다음해인 1790년 2월 공사를 시작해 불과 7개월 만에 사찰 짓기를 모두 마무리했다.140여칸이나 되는 사찰 규모를 볼 때 정조가 용주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절을 지을 때 큰 시주를 한 관료의 명부인 ‘대시주진신안(大施主縉紳案)’에는 경기감사를 비롯한 각 도의 감사 9명, 군수·현감·부사·만호·첨사 같은 지방관료 87명 등 모두 96명의 관직명과 이름이 들어 있다. 중앙의 고위관리들도 당연히 시주했을 것이며 ‘용주사건축시각도화주승’에서 확인되었듯이, 용주사 창건을 위해 각 지방의 승려들이 책임을 맡고 나섰음을 볼 때 이 불사는 승속을 초월해 대규모로 진행된 유례없는 것이었다. 절 이름 ‘용주(龍珠)’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는 지형에서 비롯됐지만, 절을 다 지은 뒤 낙성식이 있던 전날 정조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 꿈을 꾼 뒤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람의 큰 골격은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故) 정대 스님이 주지 시절 새로 지은 불음각이며 중앙선원, 호성각, 천불전을 빼곤 창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제일가람 용주사’라고 쓴 일주문을 들어서 좌우에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같은 불교 경전 속 경구들을 새긴 표석들을 바라보며 천왕문을 넘으면 좌우 양쪽에 행랑을 거느린 맞배지붕 양식의 삼문이 눈에 들어온다. 삼문이란 동서 옆문과 중앙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부르는 이름. 전통사찰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인데 사도세자의 재궁(齋宮)으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용이 꽃구름 속에 서리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한다.” 삼문 네 기둥에 ‘龍珠寺佛’의 네자를 각각 첫 글자로 딴 시구를 적은 주련이 인상적이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꾼 꿈에서 비롯됐다는 사찰 이름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삼문과 주 전각인 대웅보전 중간에 서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천보루(天保樓)도 왕실이 직접 지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주문 쪽에서 보면 천보루요, 대웅전 쪽에서 보면 홍제루(弘濟樓)라고 쓰인 현판이 사찰 양식이 아닌, 꼭 궁궐 풍이다.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한다.” 여섯 개의 목조기둥을 떠받치는 거대한 장초석도 주로 궁궐 건축에 쓰이는 것들이다. 누각 좌우로 7칸씩의 회랑이 맞닿아 있고 동쪽에 나유타료, 서쪽에 만수리실이 회랑과 연결돼 있다.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모두 바깥 마당으로 출입문이 나 있고 툇마루가 달려 있어 절집보다는 오히려 대갓집을 연상케 한다. 창건 당시 각각 선원과 강원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회의 때 사용하는 큰방과 스님들의 요사채로 바뀌었다.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이 천보루와 나유타료, 만수리실을 대웅전과 연결해 ‘ㅁ’자형으로 도드라지게 꾸며 그 정점에 대웅보전을 놓았다. 대웅보전은 창건 때 세워진 주 전각으로 조선후기 사찰양식을 그대로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화려한 닫집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옹휘하는 듯하다. 삼존상 뒤 후불탱화의 아랫부분 중앙에 ‘주상전하 수만세(壽萬歲) 자궁저하 수만세 왕비전하 수만세 세자저하 수만세’라 쓴 축원문이 들어 있다. 부처님의 가피가 왕실에 미치기를 기원한 탱화인 것이다. 당대의 불화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서양화법의 원근법·명암법을 쓴 게 특이하다. 오래 전부터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대웅보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의 “민관 상겸 성윤 등 25인이 탱화를 그렸다.”는 기록을 앞세운 학자들이 김홍도가 아닌 다른 화승들의 작품임을 주장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웅전 앞의 회양목(천연기념물 제264호)은 정조가 직접 심은 나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뒤 갖은 위협과 고난을 참고 견뎌냈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번뇌를 떨어내려 심었을까. 오래도록 사철 푸른 잎을 피웠지만 지금은 병이 들어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세운 뒤 융릉과 용주사를 틈나는 대로 들렀다고 한다. 아버지의 능을 참배한 뒤 귀경하다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해 일행이 걸음을 늦추곤 했는데, 바로 그곳이 서울로 향하는 1번 국도변의 ‘지지대 고개’이다. 정조의 효심이 담긴 때문인지 대웅전 앞의 회양목은 마른 가지에서도 힘겹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를 잉태하고, 쓴 것은 뱉고 단 것은 먹여 주시며, 나를 키워주고, 먼길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수억만년 돌아다녀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 마치 바로 옆 ‘부모은중경탑’의 경문에 화답하듯이…. kimus@seoul.co.kr ■ 용주사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정조는 즉위 초기에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마찬가지로 억불정책을 폈던 것으로 전한다. 즉위하자마자 조선 초기부터 궁실에서 빈번하게 지어왔던 원당(願堂) 사찰 건립을 금지시켰고, 걸미승(乞米僧)들의 성내 출입을 엄금하는 조치를 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정조가 어떻게 전 국민이 동참하는 불사인 ‘용주사 건립’의 뜻을 세웠을까. 다름 아닌 불경 ‘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때문이다.‘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정조는 전남 장흥 보림사의 보경 스님이 바친 ‘부모은중경’을 읽고 마음에 느끼는 바가 커 용주사를 창건토록 지시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크고 깊은 10가지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친 경전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컸던 정조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정조는 실제로 ‘부모은중경’에서 비롯된 용주사 창건을 전후해 불교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었다. 해남 대흥사에 세워진 휴정 스님 사당의 편액 ‘표충’을 직접 썼으며, 안변 석왕사의 고사(古事) 내용을 담은 비문을 손수 지어 세웠다. 표훈사의 사찰 중수를 도왔는가 하면, 무학대사에게 ‘개종입교보조법안광제공덕익명흥운대법사’라는 법호를 내리는 등 고승들의 추존에도 열성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가 ‘부모은중경’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는 용주사의 숱한 유물들에서 그대로 읽힌다. 용주사 건물들에 걸린 많은 주련들은 정조가 당대의 명 문장가였던 이덕무에게 명해 쓰도록 한 것이다. ‘부처님과 용주사의 복을 빈다’는 내용의 게송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는 직접 지은 것이며,‘부모은중경’의 내용을 한문·언문·그림으로 새긴 73매의 ‘부모은중경판’중 목판 42매(변상도·김홍도 그림)도 정조가 하사한 것이다.
  • 이진강 대한변협 회장에 듣는다

    이진강 대한변협 회장에 듣는다

    “국내 대형 로펌들이 규모도 커지고 수익도 엄청나다고 하지만, 외국 로펌과 비교하면 다윗과 골리앗에 불과합니다. 시장은 개방하되 우리 변호사들의 몸값을 올려야죠. 덩치도 키우고 실력도 높여서 외국 자본이 함부로 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지난달 26일 제 44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된 이진강(64) 변호사는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률시장 개방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국내 법조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변협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잇따른 비리 등으로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심해진 데다 법률시장 개방과 로스쿨 도입 등 현안이 산재한 시기에 재야 법조계의 수장 자리에 오른 그는 “일부 변호사의 비리가 터졌을 때 협회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야단을 많이 맞았습니다.”면서 “팀을 따로 꾸려 변호사 윤리규정을 세분화하는 등 내부적으로 기강을 다지고 법조 3륜(법원·검찰·변호사)으로서 화합상생의 길로 가는 조정자 역할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이 목전에 다가왔는데, 향후 국내 법조계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일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법률시장 부분은 단계적 개방을 원칙으로 하고,3단계에 이르러 완전개방 까지 12∼1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이 완전개방에 18년 걸렸는데, 세계 법률 시장이나 교역관계의 발전 속도를 볼 때 우리의 12년은 일본보다 더 길다고 봐야 해요. 중국도 이미 2단계 개방을 했기 때문에 한국은 시장을 빨리 개방해야 한다고 영국과 미국은 요구하지만, 우리 법조계 보호 차원에서 그 정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1단계 개방이 일정 자격조건을 갖춘 외국 변호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외국법에 대해 자문하는 것을 허용하는 수준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국내 법조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려면 변호사자격을 취득한 나라에서 5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력을 얻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자격을 갖춰도 언어문제 등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시장 개방에 대응하려면 어떤 자구책이 필요할까요. -3단계 완전개방 이후에 외국 로펌이 국내 로펌을 합병하거나 국내 변호사들을 고용해 법률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게 가장 우려됩니다. 먹히지 않으려면 덩치도 키우고 실력도 단단하게 해서 외국로펌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죠. 그쪽에서 덤벼들어 계산을 해봤을 때 감당이 안될 정도로 몸값을 높여야 하는 겁니다. ▶정책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부분도 있어 보이는데, 변협에서 마련중인 대응책도 있습니까. -우선 로펌 사이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문제 등에 대해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합니다. 변협 차원에서도 전문 교육 실시 등으로 개인의 실력을 배양하도록 지원해야죠. 로스쿨 도입이 무산되고 지금의 사법시험 제도가 유지된다면 사법연수원제를 폐지하고 연수원을 변협의 교육기관으로 해달라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변협에서 변호사 양성 업무를 맡아 일정 기간 변호사 활동을 한 사람을 판·검사로 임명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죠. 특별법 등 별도 조치도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법조 교육 전문화의 디딤돌이 될 겁니다. ▶법률 시장 개방으로 대형 로펌이 위협을 받게 되면 로펌이 송무업무를 강화하면서 개인변호사의 영역에도 진출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데요. -그러지 않아도 대형 로펌 대표들을 만나서 개인변호사들이 해야 할 사건까지 저인망식으로 쓸어가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더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개인 변호사들도 송무 외에 법률업무를 개발해야 합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들도 이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아야겠죠. ▶국내 로펌과 외국 로펌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시는지요. -상대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 대형로펌들이 고액보수에 수입이 엄청나다는 비판도 받지만, 외국에서 보면 한줌에 먹을 수 있을 정도라는 거죠. 국내 대형 로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외국 기업을 대리한다고 해서 매국노처럼 보는 시각이 있는데,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사업할 때는 당연히 신뢰할 수 있고 네임 밸류가 있는 국내 로펌을 찾지 않겠습니까. 국제화시대에 국가적인 이득이 된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대형 로펌들은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데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압니다, 잘못한 것 많아요. 법조인들이 좀 인색하죠. 이제부터라도 제가 직접 로펌 대표들을 찾아 좋은 일에 참여해달라고 협조를 구하고, 공익활동도 많이 하도록 유도할 테니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많은 로펌이 법률구조재단에 매해 기부금을 내는 등 사회환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변협은 로스쿨 법안 졸속처리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로스쿨 도입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법을 다른 법과 패키지로 묶어서 정치적인 딜을 하겠다고 해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로스쿨 도입에 회의적인 것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법학부를 그대로 두고 일부 대학에 로스쿨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이중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판중심주의 등으로 지난해 변협과 검찰·법원이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변호사 입장에서 공판중심주의는 적극 찬성입니다. 다만 법원에서 공판중심주의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내세웠기 때문에 국민들도 오해를 하고, 검찰도 날을 세운 것입니다. 공판중심주의는 민·형사를 떠나 변호사, 검사, 피고인이 충분한 공방을 하고 법관이 판단자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인력 문제 등에 있어 법원, 검찰, 변호사 다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혼자 하겠다고 하니 혼란이 생긴 겁니다. 이런 부분은 취임 직후 이용훈 대법원장을 만나서 “함께 잘 해가자.”고 했더니 공감을 하시더군요. 국민을 위해서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서울신문 독자와 국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국민을 위한 ‘생활인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싶습니다. 최근 인권이사에게도 인권의 개념에 대해 다시 검토해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에는 독재권력에 의해 핍박을 받거나 억눌린 사람들의 인권만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법률지식이 모자라서 혜택을 못 받는 것도 인권침해로 봐야 합니다. 생활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사가 앞장서서 인권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지자체 등과 협조해서 시민포럼이나 법률학교 등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부분이 바로 국민을 돕는 진짜 ‘일’ 아니겠습니까. 정리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 그가 바로 관세음보살” 한 검사가 검찰을 떠났다. 건강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는 그를 걱정했다. 건강 때문이라기보다는 ‘울화’를 어찌 감당할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을 지내던 잘 나가던 검사였기에 주변의 우려는 더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견뎌내기 어려우리라고 봤다. 성남지청장이 검찰내 마지막 자리였다. 하지만 그 검사는 화를 툴툴 털어내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진강 신임 변협 회장은 동기들이 하나둘씩 승진하면서 자신을 추월할 때마다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버리는 훈련을 했다. 그는 이 훈련을 우물을 청소하는 것에 비교했다.“수면에 떠있는 것뿐 아니라 바닥까지 휘저어서 탁하게 만든 다음에 물을 퍼내야 우물이 깨끗해지죠. 사람도 마음에 엄청난 감정의 찌꺼기가 섭처럼 깔려있어요. 그게 무슨 요인이 있을 때마다 올라오는데, 그 때 그 울화를 버리면 깨끗해지는 겁니다.” 그래도 힘들 때는 화를 치밀게 하는 사람을 ‘관세음보살’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내 마음에 낀 울화를 빼주는 사람이니 관세음보살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면서 “승진 먼저 한 친구들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렇게 화를 다 버리고 나니 지금은 오히려 더 친해졌습니다.” 웃었다. 최근 2남1녀를 모두 출가시킨 이 회장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아파트에 부인과 단둘이서 생활하고 있다.24년째 살고 있는 집 근처의 봉은사를 찾아 108배를 하고 대모산에 오르는 게 그의 건강비결이다. 마음을 다스리니 약을 먹거나 따로 건강관리를 할 필요도 없다는 설명이다.“사람이 살다 보면 아플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힘들지만, 그런 과정을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생을 살아가며 더 큰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얻은 결론입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약력 ▲1943년 경기 포천 출생 ▲휘문고, 고려대 법학과 ▲1965년 5회 사법시험 합격 ▲198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 ▲1994년 변호사 개업 ▲1999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 [한나라 빅3 세갈래 행보] 손학규, ‘결단’ 앞둔 長考?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불참 가능성을 시사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14일 “(옛말에) 결정이 어려우면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오전 봉은사 법회에 참석, 축사를 통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지금 나한테 있는 어떤 길도 어려운데 내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라며 이같이 말했다.‘백척간두진일보’는 불경에 나오는 당나라 때 장사(長沙) 스님의 말로, 불가에서는 높은 뜻을 이루기 위해 극한의 순간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정진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는 또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데 풀 포기 하나 잡으려 안달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뭇 사람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보살은 씨앗을 심는 것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고승들의 ‘선문답’과도 같은 손 전 지사의 발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측근들조차 “속뜻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캠프 대리인인 정문헌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당이 가진 근본적 문제가 계속 드러난다면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이런 문제를 바꾸는 데 헌신할 용의도 갖고 있다.”면서 “손 전 지사는 ‘순교(殉敎)’할 생각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인사]

    ■ 농림부 ◇서기관 전보 △ 감사담당관실 최이규△정책홍보관리실 김정욱△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박운창■ 문화재청 ◇과장급 전보 △발굴조사과장 尹光鎭△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池炳穆△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장 姜舜馨■ 국회사무처 ◇차관보급 △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文濟豊■ 국가청소년위원회 ◇전보 △청소년보호단 청소년성보호팀장 千相基△정책홍보관리관실 법무감사〃 安相賢△청소년정책단 미래전략〃 崔圭鐘△청소년보호단 생활환경〃 徐學奉△중앙점검단 총괄〃 宋正根■ 외환은행 ◇지점장 △63빌딩 박태형△가락 곽순범△강남대로 한우찬△강남외환센터 최은성△개포동 이인순△경주 김승구△광화문 박홍종△구서동 이재동△권선동 장진술△금오 최형태△남영동 박기남△녹산공단 조강래△다대동 최원화△달성 오승준△도당동 위성춘△동대문 전찬영△동수원 박상필△마두역 이승남△마산 조철환△마포남 이돈근△망우동 임채성△목동남 김정래△미아동 권석하△반월당 최유종△반포동 김회헌△방배동 윤병남△부평 김익만△분당 박세현△삼선교 곽대호△삼천동 양정철△상동 박재석△상록수 김정일△상무 김칠섭△상현 김학동△서소문 장관식△서초남 오재환△서초동 백영환△서현역 허동환△성동 임흥택△세종로 임상훈△수지 오상영△시화공단 김대영△시흥동 박병호△신갈 허윤배△신설동 정대웅△신제주 박철몽△신평 이정덕△야탑역 윤택현△양재동 박해정△여수 박준연△여의도광장 권오경△여의도남 장삼수△역삼동 김두일△역삼중앙 이흥순△올림픽 김정규△울산 성종섭△웅상 박대균△을지로 박문철△의정부 윤동현△이천 이성합△이촌동 홍지표△이태원남 임현숙△잠실역 장택수△제주 황의선△주례동 김남명△중곡동 이기원△진량공단 김창태△천호역 이용복△철산역 송천△청담역 강성진△청량리 정대조△토평 권종순△퇴계로 황선일△평창동 박윤옥△포이동 장문성△포항 정영표△하단역 김종선△한남동 황순갑 ◇개인금융부문장△경주지점 박대순△광산 기세완△구로 박문철△구성 변만리△국제전자센터 김상완△남동공단 김광섭△동수원 이석규△마포 박권순△무역센터 홍만식△반월공단 양재도△부평 심창식△사상 전윤열△서면 이낙준△선릉역 이천석△신갈 박경수△익산 현경수△청주 김현철△충무로 박무기△포이동 목옥균 ◇기업금융부문장△김포지점 안창용△의정부 김범철 ◇대기업금융지점장△대기업사업본부 김효상 ◇해외지점장△런던 김대환△파리 이동섭 ◇본점 부서장△외국기업부 유재후 ◇본점 팀장△여신정리부 김대집△〃심사부 허환열△〃관리부 박철△〃관리부 정일홍△〃정리부 김청운△〃심사부 문종건△〃정리부 최형삼△〃관리부 이영식△감사부 기정근△〃 이융재△〃 어훈경△재무본부 박종영△고객지원팀 고형권△광고디자인팀 김연주△영업지원센터 조영호 전영환 김영철△기업마케팅부 최수석△개인마케팅부 안상권 정명순△신용기획부 박종춘△자금부 남창우△TFT관리팀 석승징■ 기업은행 ◇이사대우(부행장)△柳凞泰 金基玄 金京泰 ◇사업단장 및 지역본부장△PB사업단 尹炳國△신탁〃 張相憲△고객만족추진단 周永來△강남지역본부 朴鍾權△강동〃 柳致華△강서〃 金榮周△남부〃 南云澤△중부〃 安基憲△경기중앙〃 鄭忠鉉△경수〃 朴琮圭△부산경남〃 金圭泰△부산울산〃 李潤漢△충청〃 李鍾烈■ 신한은행 ◇본부장 신규 △시너지영업추진 金鍾哲△개인고객그룹 영업 金容吉 朴柱元 李基東 李起奉 李星憲△기업고객그룹 宋善悅 ◇본부장 이동△고객그룹지원 金學周△개인고객그룹 영업 申學浩△기업고객그룹 金銶泳 成宇基△가치혁신 朴燦 ◇부서장 승진△상품개발실장 韓相國△자금결제〃 韓相淵△개인고객부팀장 朴釪赫△대기업영업추진〃 申台淳△재무기획부〃 張東起△IT기획부〃 楊萬燁△IT서비스부〃 金鎬出△가치혁신본부〃 魯容勳 李淳雨 林盛基△SOHO고객부장 朱仁鍾△특수고객〃 林鍾植△개인여신관리〃 李鍾文△홍보〃 尹容珍△여신기획〃 韓宗憲△준법지원〃 李種甲△글로벌사업부 조사역(부서장대우) 全永杓 崔興珉△인사부소속 〃(부서장대우) 裵勝勳 申辰雨 李載馥△인력개발실소속〃(부서장대우) 李炳鐵△뭄바이지점 〃(부서장대우) 金易東△글로벌사업부 〃(부서장대우)(신한비나은행) 盧星虎△여신감리부장 겸 선임심사역 李炯光△여신심사부 〃(부서장대우) 宋昇錫 金善鶴 ◇지점장 승진△고덕동 李定吉△공항동 黃永淑△대치역 金善弘△면목동 金英培△목동해누리 李香馥△무교 朴政培△반포서래 張秉植△번동 潘鍾永△삼성중앙 朴浩基△서초동 馬祥烈△신반포 安秉煥△신사동 李恒穆△암사동 尹亨燮△역삼남 李孝植△원효로 김남준△종로광장시장 金漢鎭△검단 丘在信△덕소강변 金兌垠△부천 李昶熙△서현동 林壽△성남태평 李光稙△수지신봉 朴漢俊△용인동백 梁鎭奎△인천삼산동 尹炳隣△구미중앙 金必洙△금정 洪逸杓△김해 金光浩△대덕테크노밸리 曺圭馹△동대신동 安濬植△동래 金在謙△부산롯데월드 李泰龍△부산서면 노기식△사상 柳榮泰△사상중앙 具滋佑△삼척 李鎔鋼△속초 尹禹永△송정 李眞榮△순천연향동 朴桂秀△약사동 李廷浩△영주 呂桂銀△영주동 姜炅好△온산 朴晟雨△용암 李相哲△용전동 姜鍾植△월배 李在根△장림동 金官泰△전주중앙 金榮春△진주중앙 崔晩愚△청주중앙 金榮基△청주터미널 具法謨△춘천 黃煥吉△포항중앙 裵漢京△하당 文龍周△해운대동백 金斗源△신한 Private Bank 서울파이낸스센터 朴鍾淵△이화여자대학교 韓貞順△국립암센터 孫玄澤△수원 許順錫△광주법원 沈載龍△안동 朴富基△우산동 崔昌鶴△광교 종합금융센터 金千默△강남〃 尹鍾林△여의도〃 楊圭烈△관저동지점 개설준비위원장 金補善△송파 SOHO금융센터〃 金鍾勳△수원법원지점〃 申東和△울산법원지점〃 金連經△천안법원지점〃 朴旻浩△청주법원지점〃 申東鎭△신한 Private Bank 서울파이낸스센터 SPB(부서장대우) 李民鎬△기업영업부 SRM(부서장대우) 金甲洙△기업영업부 〃(부서장대우) 任棟崙△구로동 기업금융지점장 겸 〃 張春根△논현동 기업금융지점장 겸 〃 林洪九△논현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宋永徽△등촌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姜明焄△마포중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李鍾根△방배중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金孝衍△삼성중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李東鎬△선릉중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任景檜△성수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南相德△신사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郭峻碩△양재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李愼載△여의도 기업금융지점장 겸 〃 金英周△여의도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金正洙△역삼남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林洪燮△역삼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白用鉉△영등포중앙 기업금융지점장 겸 〃 鄭明洙△을지로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金錫柱△잠실 기업금융지점장 겸 〃 馬京煥△잠실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林秉憲△종로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李煥容△테헤란로 기업금융지점장 겸 〃 安商瑄△남동공단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李興洙△시화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윤주해△평촌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黃福善△광주 기업금융지점장 겸 〃 吳京珍△부산서면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宋大欽△신평 기업금융센터 지점장 겸 〃 申浩燮△울산중앙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金永玟△창원 기업금융지점장 겸 〃 金潤煥△창원 기업금융지점 〃(부서장대우) 李應宇 ◇부서장 이동△스타타워 종합금융센터 센터장 겸 ERM 金淳鍾△마케팅전략부장 崔宰烈△고객지원〃 權五均△기업고객〃 李泳薰△종합금융시장〃 文大煥△IB사업〃 李熹承△자금〃 朴喜聖△글로벌사업〃 高錫振△외환사업〃 洪萬基△전략기획〃 李泳鎭△종합금융영업〃 鄭斗泳△기업고객부 팀장(부서장대우) 吳暎鎭△가치혁신본부 〃(부서장대우) 池沅求△글로벌사업부 조사역(부서장대우) 金鎰照△글로벌사업부 〃(부서장대우) 薛榮五△인사부소속 〃(부서장대우) 權泰燁△IB사업부 〃(부서장대우)(신한아주금융유한공사) 兪光浩△여신심사부장겸 선임심사역 李廷元△여신심사부 〃(부서장대우) 李在鶴 朴文遠 趙成培△인력개발실장 李昌九△직원만족센터〃 薛榮福 ◇지점장 이동△갈현동 李鍾認△강남중앙 李範燮△광화문 韓宗軒△구일역 崔炳圭△남대문중앙 金炫秀△남부터미널 金昌完△남산 愼聖範△남산타운 沈圭植△노량진 盧亨燮△논현동 李珉浩△답십리 裵栽憲△대치중앙 金慶泰△도봉동 李元熙△독산동 成恩模◇지점 개설준비위원장△동대문패션TV 朴喆圭△동여의도 尹明德△등촌동 李桓洙△마들역 朴相昊△마천동 崔榮民△만리동 金世權△목동중앙 宋潤康△반포타운 朴官九△방학동 姜大石△봉은사로 柳忠昊△불광동 安東燮△사당동 鄭億在△사당중앙 崔龍植△삼성동 李晃周△삼성동아이파크 姜保淳△삼풍 張永勳△서대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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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吉來△광안동 廉松坤△김천 羅圭燦△김해공항 李世權△부산법조타운 金命培△온양 朴性珍△제주중앙 高榮俊△스타타워 종합금융센터 姜鳳求△후쿠오카 金載祐△뉴욕 趙鏞炳△홍콩 曺義瑢△호치민 朴仁浩△싱가폴 徐大源△서산중앙 申榮晨△워커힐 鄭淙慶△잠실타운지점 朴來吉△구성언남동지점 金基鍾△동부 SOHO금융센터 李鍾成△중부 SOHO금융센터 申蓮植△경기남부 SOHO금융센터 李昌杓△인천 SOHO금융센터 林興澤△영남 SOHO금융센터 金洙훤△서부트럭터미널 陳聖寬△서초3동 李相秀△하계청구아파트 鄭夢溶△풍무동 朴永植△대전롯데 延京桓△전민동 金眞鉉△SK지점 崔相烈△광교 기업영업부장겸 SRM 朴大善△광교 기업영업부 〃(부서장대우) 吳培祿 ◇기업금융지점장 겸 SRM△가산디지털 愼先宰△강남대로 閔承和△광화문 韓龍錫△구로동 (부서장대우) 李相烈△구로역 金性洙△구로중앙 李承喆△남부터미널 金壯洙△동여의도 李常赫△롯데월드 具榮書△무교 李泰允△반도 崔炳徹△방배중앙 李容浩△보라매역 金世鎭△사당동 韓昌佑△삼성중앙 姜능遠△선릉(부서장대우) 禹相泰△신사동 李康熙△압구정역 鄭有錫△언주로 張根守△여의도서광장 安成珪△여의도중앙 李重徹△역삼동 朴大得△역삼역 金鍾烈△영동 安秉准△영동(부서장대우) 張起來△영등포 鄭基承△용산전자상가 李基俊△을지로 文鍾福△장한평 宋圭殷△종로중앙 安菊煥△중앙 朴夏龍△코엑스 丁在權△학동 文光植△한남동 李道俊△화양동 金盛壽△부천 李榮旭△부평 洪顯相△성남공단(부서장대우) 吳貞煥△송림동 鄭天泳△송현동 蔣基托△인천남동(부서장대우) 禹衡九△일산중앙 崔鎭宇△평촌 李承浩△평촌역 朴興緖△평촌역(부서장대우) 方孝權△강원 李起昌△경주 申永根△광산 李正完△구미 鄭泰佑△구미중앙 黃雲峰△김해 李明圭△대구중앙 金在烈△둔산 鄭敦永△부산 盧奉善△부산중앙 金成旭△부전동 朴汶根△울산 張性烈△웅상 柳正鎬△강남 종합금융센터 센터장 吳世日△여의도 종합금융센터 〃 秦燦熙 ■ 신한금융지주 ◇승진 (부장급 M2) △홍보팀장 金官億△IT기획〃 南乘祐 (부장급 P4)△홍보팀(부서장대우) 金弘益△리스크관리팀(부서장대우) 朴玄俊△IR팀(부서장대우) 柳承憲△전략기획팀(부서장대우) 朴容植■ 대한투자증권 ◇부서장 전보 △인력지원부 崔鍾杉△사무〃 金元植△경영관리부 金時亨△자금〃 宋基台△e-Buisness부 金炳住△장외파생TF팀 金先花 ◇지점장 전보△돈암동 權鳳章△천호역 曺玉煥△신대방 金錫宰△인천 趙琇衍△학동 金濟應△야탑역 權五鎭△수유 金善太△광주 崔日燮△범어동 朴致賢△원주 李鍾浣△대구광장 崔相起■ 서울보증보험 ◇전보△ 통신채권부장 金基周△부산신용관리지원단장 李哲煥△대구〃 宋東胄△중부〃 姜鎬南△강북〃 劉東圭△평택지점장 鄭京春△국제업무팀장 林亨澤■ 헨켈코리아 △전자사업부문 영업담당 이사 최영근
  • ‘관광지하철’ 5~8호선을 즐기세요

    공연장과 박물관으로 떠나는 서대문 나들이,10만평 가족공원이 펼쳐지는 화랑대, 도심 속 사찰 봉은사와 화려한 코엑스몰이 닿은 청담역, 역사와 자연으로 산책하는 몽촌토성…. 지하철 5∼8호선의 역 주변에는 이처럼 갈 만한 곳들이 다양하게 숨어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9일 지하철 5∼8호선 역세권에 있는 명소를 담은 안내 책자 ‘문화철도 5678 지하철로 떠나는 서울기행’을 내놓았다. 지난해 봄에 나온 ‘광화문-청계천 가는 길’에 이은 두 번째 소책자다. 정동극장·난타전용극장과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 5호선 서대문역을 비롯해 ▲계절마다 다른 색깔을 내는 가족공원 태릉푸른동산으로 가는 6호선 화랑대역 ▲1200년 역사를 지닌 봉은사와 문화가 집중된 코엑스몰이 있는 7호선 청담역 ▲소마미술관, 몽촌토성, 석촌호수 등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8호선 몽촌토성역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역명 유래, 주변 약도, 명소, 사진 등과 함께 호선별로 대표적인 문화명소, 조망명소를 간략하게 소개한 노선도도 실었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시민과 관광객이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곳곳의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책자를 발간했다.”면서 “서울의 역사적 상징이나 문화 가치를 한 데 엮어 문화네트워크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철도공사는 5∼8호선 148개 역사에 노선별로 각 1종씩 모두 20만부를 비치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0) 석가 진신사리 모신 오대산 상원사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0) 석가 진신사리 모신 오대산 상원사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서북쪽으로 9㎞쯤 떨어진 오대산 산록에 아담하게 앉은 상원사(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건물이래야 목조 문수동자좌상을 모신 주 전각 문수전에 딸린 영산전과 청량선원, 범종각 정도가 고작인 소박한 사찰이다. 가람의 규모가 작은 탓에 흔히 월정사의 ‘산내 암자’쯤으로 인식되지만 숱한 고승을 배출해온 1200년 신라 고찰이자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겐 ‘한국 최고의 범종’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으로 인해 잘 알려진 사찰. 불교계에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에,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문수신앙이 보태져 수행하는 운수납자(雲水衲子)와 신도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지이다. 원래 오대산의 산명(山名)은 처음 산문을 연 개산조인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꿈속 게송을 받고 돌아와 절을 창건한 데서 비롯된 이름. 자장 스님은 중국 오대산에서 한 노 스님으로부터 “당신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니 가서 뵙도록 하라.”는 말과 함께 가사와 발우 한벌, 부처님 정골사리를 받고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귀국해 월정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상원사는 한참 후인 성덕왕 4년(705)에 두 왕자인 보천·효명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진여원(眞如院)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당시 오대산은 오류성중(五類聖衆), 즉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삼국유사) 당시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보천태자에게 신문왕의 후계를 권했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거부해 결국 효명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성덕왕이다.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가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 여러 모습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세운 것이 진여원, 지금의 상원사다. 이 설화를 뒷받침하듯 지금도 오대산에는 상원사를 중심으로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상두암(미륵암)이 포진해 있다. 이 오대 중에서 상원사가 있는 중대는 바로 오만 보살신앙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상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무래도 적멸보궁과 상원사동종.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러운 궁전이란 뜻.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으니 괴로울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를 말한다. 국내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 모두 다섯군데의 적멸보궁이 있는데 불교계는 상원사의 적멸보궁을 가장 먼저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는 ‘천하의 명당’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정식 사리탑은 없고 최근 증축한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 뒤쪽에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상징물이 서 있다. 문수전 앞 마당 작은 건물 안에 달려 있는 상원사동종은 종소리와 청동 합금, 주조기술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종의 모범. 무릎을 세우고 허공에 뜬 채 수공후와 생(笙)을 연주하는 비천상을 비롯한 의장(意匠)과 우아한 문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종의 마멸과 훼손을 막기 위해 타종을 중단해 지금은 아쉽게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1469) 윤2월조와 경북 안동읍지인 ‘영가지(永嘉誌) 6권´에 따르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5년(725년)에 제작되어 안동의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조선 예종1년(1469년)에 이곳 상원사로 옮겨왔다. 죽령을 넘을 무렵 종이 너무 무거워 애를 먹던 중 종유(鐘乳) 하나를 떼어 안동으로 돌려보내자 종이 수월하게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원래 종의 동서남북 사방 면에는 각각 9개씩 36개의 종유를 만들었는데 1개가 없어진 35개만 남아 있어 흥미롭다. 상원사에서 특이한 것은 불교 중흥기인 고려대엔 사찰의 중창과 관련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오히려 숭유억불책을 썼던 조선조에 왕실의 각별한 비호와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던 태종은 만년에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을 정도였다. 특히 세조와 관련된 흔적은 사찰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서울에서 상원사까지는 달포나 걸리는 먼 길이었지만 세조는 재위기간 중 3차례나 상원사를 찾았다고 한다. 상원사 주차장 앞에는 세조가 몸을 씻기 위해 의관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가 지금도 서있다. 단종을 죽인 세조는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꿈을 꾸고 난 뒤 온 몸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병에 걸리자 오대산을 다니며 기도를 올려 병이 낫도록 발원했다고 한다. 어느날 오대산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우연히 지나던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했는데 동자승이 등을 밀어준 뒤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감격한 세조가 화원을 불러 그 동자승의 화상을 그리게 했는데 지금 문수전 오른쪽 외벽에 그 모습을 재현한 벽화가 걸려 있다. 문수전 안의 목조 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도 그런 연유에서 조성해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30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조의 왕사인 신미 스님이 복을 빌기 위해 상원사를 중수하려 하자 세조가 채색·쌀·무명·베와 철재 등을 보내면서 그 취지를 적었다는 ‘중창권선문’(국보 제292호)도 왕실과 상원사의 관계를 짐작게 한다. 세조가 대(大)시주자로 앞장서자 왕비를 비롯한 궁인, 종실, 조정 신료와 전국의 수령방백들이 앞다투어 시주에 나섰던 사실을 보여준다. 문수전 앞 두마리의 고양이가 나란히 선 석조상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양이가 상원사 법당에 들어가려는 자신의 옷소매를 물고 늘어진 것을 수상하게 여긴 세조가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진 끝에 불상 좌대 밑에 칼을 품고 숨은 자객을 찾아냈다고 한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원사의 고양이를 잘 보살피라는 뜻으로 묘전(猫田)을 하사해 상원사는 사방 80리의 땅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세조의 원찰이 되었던 상원사는 안타깝게도 1946년 선원 뒤의 조실(祖室)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지금의 문수전과 청량선원 등 대부분의 전각은 모두 그 이후 복원되거나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kimus@seoul.co.kr ■ 천고에 자취감춘 학이 머물렀던… ● 한암 스님과 상원사 상원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을 비롯해 수월 운봉 동산 등 역대 선지식(善知識)들이 주석하며 수행했던 유서깊은 곳. 이들 선지식 중에서도 27년간 오대산문을 나서지 않은 채 ‘오대산 도인’으로 통했던 한암(1876-1951)스님은 상원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선승이다. 금강산에 유람갔다가 발심해 장안사 행름 노사를 은사로 출가한 한암 스님이 상원사에 든 것은 50세 때인 1925년. 당시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었던 스님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오대산을 찾았다. 들고 다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상원사 산 중턱의 중대 사자암 앞뜰에 심었는데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 나무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단풍나무가 서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일제시대 일본 조동종 사토가 상원사로 한암 스님을 찾아와 법거량을 한 끝에 “한암 스님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인물”이라며 떠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 일이 있은 뒤 상원사에는 한암 스님을 만나려는 일본 저명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6·25전쟁 중에는 국군이 “월정사와 상원사가 적의 소굴이 된다.”는 이유로 상원사 법당을 불태우려고 하자 법당에 앉아 “법당을 지키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니 어서 불을 지르라.”며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국군이 어쩔 수 없이 법당 문짝만 뜯어내 불지르고 떠나는 바람에 상원사가 남아 있게 됐다고 한다. 한암 스님은 이곳에서 보문 난암 탄허 스님 등 한국불교의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키워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좌탈입망(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 [인사]

    ■ 교육인적자원부 △산학협력과장 변영만■ 한국공항공사 ◇1급 승진 △제주지역본부 지원총괄팀장 이재훈△외주관리〃 안종현△제주지역본부 건축설비〃 홍관표△건설사업2〃 권순구△항로시설본부 지원총괄〃 장세훈◇2급 승진△청주지사 운영팀장 이길은△부산지역본부 고객지원〃 정광일△제주〃 항무〃 함영주△〃 재무관리〃 김경화△안전환경팀 환경TF〃 황태욱△서울지역본부 조경〃 조희형△부산〃 전기통신〃 이창섭△미래경영센터 R&D TF팀 임영희◇1급 전보△사업개발팀장 이한성△제주지역본부 운영단장 정호석△포항지사장 문성돈△항공인력개발원 교수 정석래△항행시설팀장 최중봉△항무계획〃 박담용◇2급 전보△인사총무팀 사회공헌TF팀장 이정문△항공인력개발원 교수 백종은△항로시설본부 전산팀장 김진교△정보관리〃 안희주△서울지역본부 토목〃 이승우△〃 건축시설〃 정태형△〃 기계시설〃 구재삼△안전환경〃 민병훈△여수지사 시설〃 김종원△서울지역본부 레이더〃 윤용호◇3급 전보△부산지역본부 토목팀장 최정수■ 한국전력 ◇본사 △감사실장 김종호△기술기획실장 장영진△기획처장 정찬기△재무처장 홍종광△구조조정처장 김임호△노무처장 이인교△물류경영처장 황기철△전력수급처장 황우엽△배전처장 오재형△배전운영처장 김지년△송변전처장 김문덕△송변전건설계획처장 이춘식△계통계획처장 황종영△정보통신처장 김홍△아주사업처장 허경구△구미사업처장 이영하△원자력사업처장 변준연◇사업본부장△서울 김기학△남서울 김광중△인천손세찬△경기 백승도△충남 조성희△전남 전덕수△대구 조인국△부산 황동목△경남 허두집◇지사장△강릉 이웅기△충북 장완성△경북 이원국△제주 김귀중◇지점장△서울사업본부 박형렬 임대환△남서울사업본부 이호웅 이택범 안준기 신상표△인천사업본부 김기호 김완종△경기사업본부 유정근 우현종 강희태△충남사업본부 오승균 김은식△전남사업본부 박래용△대구사업본부 이용태 이복렬 이진형 정상봉△부산사업본부 김훈 강영석 이재희 이정규△경남사업본부 강문규△고양지점장 신명식△구리지점장 정종필 △서청주지점장 이광희△익산지점장 조성인◇전력관리처장△서울 김인섭△남서울 김창곤△인천 김명수△수원 하광을△제천 차연수△대전 정만위△광주 조춘익△대구 김우겸△부산 이근영△창원 김동현◇건설처장△부산전력구 온대현△전력계통 장석한◇기타사업소△업무지원처장 박영호△사옥건설처장 박노석△IT지원처장 이상대◇전력연구원△원장 박상덕△원자력발전연구소장 안홍준△전력계통연구소장 명근식△전력경영연구소장 신창근△수석연구원(갑) 이용관 김종진△중앙교육원 교육요원 조성훈 방병천△필리핀현지법인장 이강원■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 송종길■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실·단장 △경영혁신단장 장현창△디지털접근지원단장 신광우△정보활용촉진단장 서종길△정보화역기능대응단장 김병구△국제정보격차해소협력단장 박원근△국가지식정보사업단장 신인철△정보격차해소연구센터장 최두진△검사역 신덕식 ◇팀장△경영기획 이병하△혁신전략 한상필△홍보영상 조용준△접근기획 홍경순△접근기반 박효수△접근지원 김진호△정보활용기획 박영식△정보역량개발 양석민△평생정보화교육 이의순△건전정보문화 남길우△미디어중독대응 김혜수△IT WORLD 이욱진△글로벌기획 조정문△글로벌사업 최명순△글로벌HRD 최완식△지식자원협력 한석안△지식자원구축 강종관△지식포털운영 권순진△행정지원 박종배△미래사회전략 고정현△조사연구 김은정■ 주택산업연구원 △금융·경영연구실장 권주안△정책연구실 이성재■ 한겨레신문사 △편집인석 기획위원 홍세화△교육사업부장 강석운△한겨레경제연구소 설립추진팀장 이원재■ 대한전기협회 ◇2급 승진 △기술처 기술운영팀장 이동제△기술기준처 발전기술팀장 서효복△KEPIC처 원자력팀장 김안섭△〃 전기팀장 이덕재◇보직 부여△KEPIC처 기술지원팀장 이성근■ 국민은행 ◇부장 △재무관리 張光淳△재무보고통제 梁琮熙△채널기획 具滋源△고객만족 姜庸熙△수신 李致漢△가계여신 任炳洙△소호여신 白承均△기업자금관리서비스 鄭在同△기업금융업무지원 崔相雲△기업금융경영개선 咸植△기업금융여신심사 李明奎△자산유동화 鄭相權△카드업무지원 李啓熙△카드영업추진 咸泳卓△카드마케팅 趙正熙△PB사업 金亨泰△PB영업추진 金知學△부동산사업 車炯根△외화자금 鄭允植△금융공학 全裕文△트레이딩 安宰完△개인금융업무 全泳山△자금운용지원 黃圭萬△총무 梁基一△통합구매 金泰浩△콜센터관리 崔明東△시장·운영리스크 朴靜林△IT기획 金容源△IT개발 韓洪錫△IT채널서비스 張龍一△인프라개발 柳錫興△개발관리 趙根徹△시스템 安永燁△계정서비스 金大元△정보서비스 宋璨熙△인사 金德洙△직원만족 黃舜燦△검사기획 林承得△경영검사 廉在賢△준법감시 洪鶴基△준법감시운영 김양균△감찰반장 康益煥△이사회사무국장 鄭薰模△해외사업기획 禹治九△해외사업추진 劉光根 ◇법인장△런던 白肇鉉△홍콩 朴光昊 ◇지점장△명동영업부장 朴伯洙△여의도〃 權仁九△서여의도〃 金鐵弘△동경 金相成△강남역 洪錫哲△강남타운 安慶恩△논현역 朴炯宰△도곡동 石鍾淳△매봉 白康鎬△봉은사로 申尙浩△삼성동 朴裕彬△스타타워 李京秀△신사역 崔仁根△압구정역 李起範△압구정 林采燮△영동 朴永生△청담2동 辛仁善△청담동 徐唱鉉△청담북 李振鎬△코엑스 朴泳泰△포이동 安奎相△학동역 鄭然井△현대아파트 韓相敦△거여동 朴憲正△굽은다리역 吉丙洙△길동 姜点求△둔촌동 李榮煥△방이남 崔承昌△삼전북 徐大範△상대원 南仁△상일동 牟剛杓△신장 吳尙憲△신천역 方惠淑△암사역 陸完洙△올림픽 韓宗烈△천호동 金德九△태평역 鄭奇春△곡선동 金東燮△광명역 朱鍾洙△내손동 金秉聲△북수원 朴柱洪△산본2동 朴相哲△산본역 金澤洙△수원팔달 鄭季媛△신매탄 金栽煐△안양동 金鍾勳△영통남 金炯五△의왕 全德洙△인덕원 李德淳△하안동 李景淳△호계동 金東烈△화서동 梁盟浩△강화 梁拮榮△검단 高在玄△김포서 朴浩奎△남동공단 崔完基△동춘동 愼錫縡△만수6동 姜寶遠△만수동 金載龍△산곡동 崔昌洙△숭의동 權純重△신포동 金允洙△용현동 金仲坤△인천원당 鄭永殷△임학동 全金永△주안중앙 李琯錫△주안 李俊煥△항동 鄭永喆△구의남 배영빈△구의동 宋白圭△능동 金兌郁△동자양 韓大洙△면목동 鄭振亨△사가정역 金玘洙△삼척 梁榮錫△양평 韓承淵△원주 李種建△이문동 李光圭△장안동 李在薰△장한평역 金智勳△제기동 趙誠柱△중곡동 安慶鎬△중곡서 高洪培△중화동 孫澈圭△청량리역 周賢哲△청량리 李鍾卓△춘천남 趙連浩△홍천 崔完燾△화양동 金活洙△가산패션타운 李晶豪△고척동 朴鍾燮△구로남 尹承煥△구로 李在邦△금천 李容澤△독산동 鄭浩澤△등촌동 安秉善△목동중앙 沈武吉△신길동 姜元奎△신길서 金英洙△신도림역 林豪默△신도림 姜成和△신월뉴타운 金正柱△신월동 서정완△신정1동 鄭万鎔△양평동 安秉麟△여의도리버타워 金相洙△여의도 趙成烈△영등포구청역 金謹洙△영등포로 李成容△오류동 辛卿夏△고양동 許誠燮△대화역 尹雄源△마포역 全宰奭△불광동 金永洙△서강 金亨根△성산동 金駱鎬△성산로 李良浩△성산 吳壽鐘△신능곡 吳泰雄△아현동 崔洪範△역촌역 羅元柱△연서 金江河水△연신내 金萬洙△응암3동 張弘哲△응암오거리 盧靜信△일산 金炯秀△광산 高光淑△광양 李政殷△광주 韓辰洙△군산 李重崎△김제 金成淳△나주 金鍾範△부안 高正柱△송정 吳茂根△쌍촌동 李奉烈△여천남 李同燮△영등동 金成潤△오치동 羅琮紈△용당동 崔鶴天△운암1동 李鍾承△운암2동 文盛柱△전주중앙 林景燮△전주 曺榮基△첨단 金光石△평화동 金裕澤△풍향동 金春鎬△화순 朴鍾弼△효자동 洪圭植△가장동 河哲鎬△계룡대 李起世△공주 梁熙大△내덕동 李貞淵△논산 朴文洙△대덕특구 白秉春△대전가양동 林采能△대전원동 金演錫△두정동 李鍾涉△둔산갤러리아 趙成翼△반석동 權榮鎭△삼천동 李一九△서대전 全雲仙△성정동 吳炳均△신탄진 金基喆△옥천 李鍾求△용문역 許鳳吉△용전동 洪九杓△유성 金圭大△유천동 李性康△제천 洪錫奎△청주남문 金鍾勉△충주 石相根△경안북 金思鎭△구갈남 金庠洙△구갈 李京子△분당시범단지 金鍾久△분당양지 李承鎬△수지성복 鄭在金△야탑역 黃石煥△여주 朴永祚△오산운암 朴濟鉉△용인구성 馬在烈△용인대로 郭彩潤△용인 李在允△이천 鄭丙朝△죽전역 金在鳳△내발산 李昇求△본오동 吳信學△부천상동 千冀五△부천중앙로 金永喆△부천 元善鎬△부천홈플러스 金禎烈△상록수 李榮基△송내동 裵在哲△시화 柳大衡△심곡동 柳演相△안산사동 安玹洙△안산 韓仲淵△원종동 洪性郁△남성역 尹沅植△내방역 全國鉉△방배서 宋炯根△봉천중앙 李瓚烈△사당동 張德浚△사당역 洪良杓△서초2동 趙鍾采△서초북 李仁傑△신림서 金泰勳△신림역 吳世雄△신반포 尹善日△신사동 尹在瓘△양재남 安熙泰△양재동 李康烈△흑석동 朴貞運△가능동 崔京柱△노원 權五錠△덕소 李善洙△도봉 金亨君△동두천 劉虎△방학동 李亨鎭△삼양동 金載煥△성북역 李基赫△송우 李五星△수락산역 姜錫貞△의정부금오 白東鎬△의정부서 李哲奐△중계북 金在煜△태릉역 尹統圭△광교 金榮閔△광화문역 印惠媛△구기동 高永權△대학로 金善龍△동소문동 金丙文△모래내 許滿旭△서린동 金楠永△세종로 鄭相宇△연희3동 文重玉△연희동 金海連△종로5가 朴炅敦△종로6가 宋爀進△종암동 孫讚龜△창신동 韓相俊△혜화동 吳錫晩△홍제동 金德出△금호동 朴湖周△남산타운 李英善△동대문패션타운 田正午△명동역 孫漢一△명동중앙 鄭善文△숭례문 崔圭德△시청역 鄭樂宗△신평화 趙成泰△옥수동 朴根用△이태원 曺在錫△중부 曺永辰△청계4가 宋基奉△충무로 李容熙△태평로1가 柳東鎰△후암동 黃圭煥△가야 白昌燮△구서동 金鍾敏△남양산 金文守△남천동 朴大孝△대연동 李炯來△동울산 朴永泰△문현동 李慶雄△미남 李京和△부곡동 白太欽△부산법조타운 朴英美△부산진 崔世柱△부전2동 金俊源△서면중앙 金俊坤△서면 全德龍△언양 宋石峰△온천동 尹仁宇△울산 許應道△초량 朱康植△토곡 金承哲△해운대역 彭庚鎭△해운대우동 鄭允均△해운대 韓英原△감전동 田大植△김해 河元達△내동 趙泰永△내외동 金昌洙△도계동 宋斗鎬△동삼동 慶文秀△모라 吳東象△밀양 尹泳根△부산 金勳△사상 金澄△삼방동 金是△신평동 朴成一△주례 金炳男△진주 金李列△충무동 安鍾檜△토성동 鄭雲容△통영 金永民△하단동 李承鎬△거창 李東煥△공평동 李圭哲△관음동 金昌圭△구미역 李秉煜△구미 安孝榮△대곡동 金雲權△대구본동 李錫彩△대구비산동 金庾坤△두류동 尹相憲△문경 姜錫坤△범어4동 金圭東△수성동 河成睦△시지 權五勳△신암동 李永壽△영주 金俊勳△영천 李址烈△왜관 丁彦榮△이곡동 金太官△중동교 崔聖善△지산동 金光立△칠곡 鄭在柱△평리동 權憲柱△포항 李鍾華 ◇기업금융지점장△서여의도법인영업부장 金昶坤△스타타워 全容澤△강남역 孫海振△강동 金郡鎬△강원 朴炯洙△거제 李圭洪△구미 鄭泰權△달성공단 朴正賢△대구 孔鍾杓△부산 朴基元△사상 吳京錄△사하 魚泳水△성남 金鍾國△성서 姜永德△성수동 李成觀△오산 韓明洙△용산 金東男△창원 姜大炫△광산 金錫珍△광주 羅振豪△광화문 李鍾麟△남동공단 金宗燦△둔산 朴基岩△디지털밸리 金雲泰△디지털센터 林東述△부천 金龍九△서인천 李載顯△순천 黃潤晧△신사동 金正洙△익산 金珽洙△정자동 崔孝植△종로5가 金址燮△충무로 金泰洙△호계동 朴鉉培 ◇센터장△방배PB 金海京△청담〃 朴惠慶△경인심사 李相勳△남부〃 徐甲錫△북부〃 金弘植△충청〃 羅錠業△경매/소송관리 金正坤△기업여신관리 姜湧遠△신용여신관리 金斗錫△인천〃 閔明植△포항〃 尹東石△전주〃 李京在△제주〃 黃基澤△청주〃 金麗中△천안〃 兪承錄△자금결제처리 孫泰甲△서울대출실행 李鶴武△집단〃 金禹森△서울업무지원 鄭健澤△업무상담 咸京植△대전콜 申完洙△경인업무지원 李濟京△대구〃 崔倫燾△전주〃 兪昌熙 ◇기관영업부장△李淳根△李容浩△池慶浩△金淳泰△羅敬萬△裵吉烋△劉起東△崔柱倫 ◇개설준비위원장△롯데잠실PB센터 沈載五△백석역지점 金東敏△창동아이파크〃 申斗淳■ 하나은행 ◇지점장 △삼양동 李明錫■ 비씨카드 ◇상무이사 승진 △IT 담당 윤병한△마케팅 〃 조중화 ◇팀장·지점장 승진△카드센터구축 TF 이덕희△경영지원 김태진△청주지점장 권기동 ◇팀장 전보△경영전략 서거정△경영혁신 김흥수△인사기획 채병철△교육CS 정명철△재무관리 이영수△가맹점운영 송병식△회원청구 송선진△승인정산 이정호△국제업무 이중규△상품개발 장홍식△제휴마케팅 이경훈△마케팅지원 김진철△영업점관리 안광오△여행 최성욱△개발 이덕수△준법감시 최기언◇지점장 전보△상계 홍명표△창원 김세용△동래 최동훈△춘천 김진철△포항 조용문△순천 김상기■ 신한생명 (단장)△중앙지원단 李相潤 (부장)△영업기획 金哲△영업교육 崔正煥△개인고객 朱鳳一△법인고객 趙翊成△CM고객 尹錫在△리스크관리부 金武河△융자부 李榮俊△인사부 吳濟延△총무 朴閏熙△감사 崔在圭 (팀장)△경영기획 劉鳳赫△DB제휴 崔振基△고객만족 裵森容 (지점장)△혜화 朴相信△중부 張錫河△명동 金泰煥△청계 簡鍾澤△신촌 吳源喆△강서 洪誠培△인천위너스 兪丁植△구월 權赫鎭△계양 鄭尙謨△서초 禹弘均△사당 朴漢姬△잠실 張裕熙△테헤란 南憲祐△용인위너스 李永在△부천 丁暎澤△안양 金龍△안산위너스 李泰炯△평촌위너스 吳東現△남부산 李永宰△부산 韓景淑△청운위너스 金桃福△청솔위너스 余鍾烈△울산 朴哲賢△범어 朴東植△대명위너스 沈權輔△진주 全炳鎬△마산 王炳奎△동청주 金鎭山△아산 任世淳△대전 鄭甫永△보령 張翼熙△상록위너스 韓仁洙△정읍 李昇眞△남원 姜逸錫△목포 吳東根△광주 吳正煥△빛고을위너스 張炳貴△광화문위너스 孫明鎬△세종위너스 金在枓△탐라 愼桓揆△중앙AM 徐光鎭△서울AM 崔東孝△경인AM 宋種敏△중부법인AM 黃仁相△동부법인AM 李周明△남부법인AM 鄭演根△하나법인AM 金甲淵△SKTM 韓相一△롯데TM 李暻歡△현대TM 崔明福△행복에이스 裵東運△희망에이스 邊在祐△으뜸에이스 朴鍾鎭△대구방카슈랑스 河景鎭△부산방카슈랑스 申命機 (센터장)△영남고객지원센터 辛永京△대구〃 都在彦△광주〃 康允壽■ 금호생명 (지점장 )△미디어 魚診善△제일 張浩起△한강 李仁洙△영동 裵閏嬉△광양 趙鎭相△곡성 金顯哲■ ING생명 ◇ 승진 △다이렉트채널본부총괄 상무 박동주△다이렉트채널본부 다이렉트세일즈부 이사 김래원■ 대한투자증권 ◇임원 선임 △영남지역본부장 백승헌△강남지역〃 조현준 ◇임원 전보 △충청·호남지역본부장 장능원■ 한성대 △교무처장 강신일△기획협력〃 한정수△총무〃 이병은△입학홍보〃 방갑산△인문대학장 박호영△사회과학〃 민성기△공과〃 홍윤기△일반대학원장 이상한△행정〃 이성우△디지털중소기업〃 정진택△학술정보관장 이정숙△사회교육원장 최기흥△전자계산소장 최재봉△산학협력단장 이창원△법인사무국장 정대홍■ 신성대 △기획관리실장 이승재△도서관장 김준권△인성교육〃 백미열■ 순천향대 △교무담당관 신혜종△입학〃 강병권△기획〃 전창완△산학연구〃 김동식■ ㈜만도 ◇부사장 승진 △평택사업본부장 徐仁錫◇상무 승진△국내영업담당 咸泳煥△중앙연구소장 黃仁龍△원주사업본부 경영지원실장 孫正遠△원주사업본부 조향1공장장 沈昌燮△익산사업본부장 李尙洌◇상무보 승진△평택사업본부 CBS1공장장 金炯中△원주사업본부 경영지원실 경영관리팀장 朴泰彦■ TU미디어△경영지원실장 김장기△성장전략실장 박기한△Biz개발본부장 이철희△판매본부장 조정섭
  • [seoul in] 강북구 난치병청소년돕기 콘서트

    강북구(구청장 최선길) 13일 오후 7시 구민운동장에서 ‘제8회 난치병청소년돕기 한마음 콘서트’를 연다. 이날 파란과 바다, 서영은, 하리수 등 인기가수가 대거 출연한다. 구와 평화방송, 조계종 봉은사가 함께 여는 이 콘서트는 난치병 청소년을 돕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문화공보과 901-6323.
  • 儒林(66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

    儒林(66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 퇴계가 말하였던 정자(程子)는 북송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정호(程顥)와 정이(程 )형제를 높여 부르는 말. 유학사상 최초로 이기의 철학을 내세우고 유교 도덕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두 형제였으나 그들에게는 윤순(尹淳)이나 양시(楊時)와 같은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인 중에서 누구를 취할 만한가.’하고 왕이 물었을 때도 ‘취할 만한 사람이라면 쉽게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던 고사를 인용하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대답한다. “그런데 신이 어찌 감히 전하를 속이고 누가 특별하다고 취할 만하다고 여쭈오리까.” 그러나 선조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선조는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으로 독대(獨對)를 하는 퇴계로부터 인물 하나를 반드시 천거받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학문을 착실히 한 사람이 있을 것 아니겠소.” 그러자 퇴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굳이 말씀드린다면 기대승 같은 사람은 글을 많이 읽었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해서 그 견해가 유학에 정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퇴계는 기대승을 추천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덧붙였다고 한다. “…다만 수렴공부는 아직 적은 듯싶사옵니다.” 수렴(收斂). 이 말은 ‘몸을 잘 단속하여 근신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학자로서의 정신수양을 이르는 말인 것이다. 이를 통해 퇴계 역시 고봉의 거친 성정과 반골기질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선조와의 독대를 끝으로 퇴계는 마침내 8개월간의 마지막 한성체류를 끝내고 우사를 떠난다. 도성을 나온 퇴계는 강변에 있는 목뢰정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튿날 한강을 건넌다. 이때 고봉은 사방에 수소문하여 스승 퇴계가 있는 목뢰정을 방문하게 되었고 새벽녘에 함께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봉은사에서 작별인사를 고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퇴계와 고봉이 이승에서 함께 보낸 마지막 상봉. 고봉은 한강을 건너는 배 안에서 스승 퇴계에게 다음과 같은 이별시를 읊었던 것이다. “밤낮으로 도도히 흐르는 한강수야.(江漢滔滔日夜流) 선생님 행차를 네가 좀 말려다오.(先生此去若爲留) 강가에 매인 닻줄 풀기 싫어 일부러 어정대며 시간을 끌었다.(沙邊 纜遲徊處) 애끓는 이별의 정 엄청난 이 슬픔 그칠 줄을 모르네.(不盡離腸萬斛愁)” 퇴계가 떠난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관리들은 관청을 비웠고 장안의 선비들과 백성들이 한강변에 몰려와서 떠나는 퇴계를 전송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배를 타고 따라왔고 강변에서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퇴계를 향해 손을 흔들어 작별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인사]

    ■ 과학기술부 △우주기술개발과장 李起星■ 병무청 ◇본부장급 △정책홍보본부장 朴京圭△선병자원〃 鄭煥植△현역입영〃 權龍德△동원소집〃 張甲洙◇팀장급△감사팀장 宋斗杓△성과관리〃 文秉敏△운영지원〃 李殷兆△정책홍보본부 혁신인사〃 朴熙寬△〃 재정기획〃 申德澈△〃 정책홍보〃 金鐵洙△선병자원본부 선병자원〃 洪承美△〃 징병검사〃 林栽夏△〃 정보기획〃 金榮載△〃 정보관리〃 朴魯典△현역입영본부 현역입영〃 李相勳△〃 현역모집〃 金泰化△〃 국외자원〃 張憲瑞△〃 고객지원〃 崔聖元△동원소집본부 동원관리〃 金基龍△〃 공익관리〃 崔榮來△〃 산업지원〃 崔炳日△〃 공개심사〃 金泰春△병무민원상담소장 金重謙△대구·경북지방병무청 징병관 金榮哲△인천·경기지방병무청 〃 金善准△광주·전남지방병무청 〃 宋河善■ 특허청 ◇4급 승진△감사팀 李錫祚△경영혁신홍보본부 혁신기획팀 任宰成 嚴日相 李正熙△〃 심사평가팀 徐辛澤 李奇眩△산업재산정책본부 산업재산정책팀 朴眞煥△〃 산업재산진흥팀 具永敏△정보기획본부 정보기획팀 李炳燁△고객서비스본부 고객서비스팀 金斗鎬△상표디자인심사본부 상표디자인심사정책팀 全賢鍾 △〃 서비스표심사팀 朴章洙△〃 국제상표심사팀 千勇泰△〃 디자인심사1팀 李承宗△〃 디자인심사2팀 安永伯△기계금속건설심사본부 일반기계심사팀 金千熙△〃 李鎭旭△〃 운반기계심사팀 崔鉉九△〃 정밀기계심사팀 趙炳濤△〃 공조기계심사팀 權彛鍾△〃 제어기계심사팀 김광오△〃 금속심사팀 金洙星△〃 건설기술심사팀 李永玟△화학생명공학심사본부 생명공학심사팀 金容日 申敬娥△〃 섬유생활용품심사팀 洪在榮△전기전자심사본부 특허심사정책팀 左承官 郭俊泳△〃 전기심사팀 金容載 曺千煥△〃 반도체심사팀 鄭顯壽△〃 전자소자심사팀 成百斗△〃 전자상거래심사팀 李貞淑△정보통신심사본부 통신심사팀 姜秉燮△〃 영상기기심사팀 羅光杓△〃 디스플레이심사팀 林東禹 邊亨哲△특허심판원 심판행정팀 任浩淳△〃 송무팀 李文郁△서울사무소 출원등록서비스과 丁奎浩 ■ 우리은행 ◇수석검사역 △검사실 安成玉 吳炳基 金鎬承 ◇수석부부장 △파생금융팀 金昌演△업무지원본부 龍聖俸 ◇수석심사역 △중기업심사팀 劉浣鍾 安東俊 李斗榮 崔長一 趙載煥△대기업심사팀 柳炳植 ◇지점장 △대림3동 金光海△대우센터 禹相哲△둔촌남 張範在△둔촌동 朴任錫△매경미디어센터 崔眞源△방배역 李昊永△봉은사로 金起洪△상봉동 李景洙△석관동 朴鎔喆△성수남 金炳圭△수서역 邊在鳳△신대방동 金弘寬△신월7동 薛忠基△신정남 鄭永珍△여의도북 禹時俊△역전 兪炳權△월곡동 李鍾星△응암동 金榮國△인사동 朴松玉△잠원동 池六植△종로6가 李畯柄△종암 全福童△진주아파트 金吉分△포이동 李賢雨△홍은동 金龍泰△회기동 金乙植△옥련동 陸根榮△청천동 金永均△산본역 吳康熏△산본 白南九△선부동 鄭宰基△성남남부 吳信培△수리동 金鎭沃△시화공단 朴用基△의정부금오 金輝碩△평촌 崔相鏞△대전중앙 李相敦△대전 鄭沅在△서천안 朴台秀△서청주 金鎭浩△동해 裵在權△반여동 金基郞△범일동 吳英吉△범천동 尹秉憲△서면 趙鐵濟△수영역 金秀榮△용호동 許明守△해운대 李相殷△통영 朴大烈△내당동 李相準△노원동 李炯國△명덕 朱永明△평리동 李碩辰△포항남 신영구△POSCO타운 陳武雄△여천 吳在善△개성공단 延永煥 ◇개설준비위원장 △구로디지털밸리 柳根梁△목동역 黃成九△암사역 李銀錫△안정공단 安秉鹿△황금동 金相旭 ◇기업영업지점장 △트윈타워기업영업본부 金文煥 朴鍾薰△포스코기업영업본부 李起鳳△중앙기업영업본부 鄭哲鎭△종로기업영업본부 李吉永△서부기업영업본부 金大中△강남기업영업본부 金興鎭 吳炯坤△경수기업영업본부 尹東永 黃富東△경인기업영업본부 金琫基 李泰柱 ◇파견 △우리아메리카은행 李炳雄 李晶基■ 농협중앙회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직무대행 白承傑△학원사무국 참사 安世鏞■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강영진(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겸직) 김진 고현곤(경제연구소 근무 겸직) 이훈범△미디어기획실 라이팅에디터 이헌익 조우석△편집국 문화스포츠부문 김성희△〃 경제부문 김시래△〃 인물독자부문 이재훈△〃 중부본부 서형식△CRM실 섹션미디어팀 최준호■ 스포츠한국 △상무이사 裵成漢△편집국 이사대우 편집국장 南在國△〃 편집부 부장대우 崔秉昌△〃 생활경제부장 洪性弼△광고마케팅국 국장 金源植△〃 영업부 부장직대(차장) 金義性△〃 〃 차장 尹日均△총무국 국장직대(부국장) 金允燦■ KBS스카이 △경영팀장 손재오■ 고려대 △법무대학원장 겸 법과대학장 河京孝△정책대학원장 겸 정경대학장 趙政男■ 더화이팅콕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상무 최영표
  • “같이 죽자” 믿었더니…

    “같이 죽자” 믿었더니…

    『더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읍니다』- 수사관 앞에서 아가씨는 흐느꼈다. 「미스·광주(廣州)」선(善)인 강순자(康順子(21)) 양. 3각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한 남자를 죽게 한 어처구니없는 젊은 풋사랑의 종말이었다. 수사관은 혀를 찼다. 꼭 그러한 해결방법 밖에 없었을까? 아뭏튼 새 남자를 알게되자 그녀는 처음 사귄 사나이가 싫어졌다고 대답했다. 지긋지긋하게 쫓아오는 옛 사나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자와 여자의 사이가 「시소·게임」을 벌일라치면 대체로 쫓는 편이 감정의 폭발로 무슨 일인가를 저질러 가해자가 되는 것이 예사.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오히려 쫓는 남자 쪽이 속아서 목숨까지 잃는 역전극으로 끝났다. 그녀는 보기조차 싫어진 첫 애인 이수남(李秀男)(23·경기도 광주군광주면) 육군 일등병과 정사를 가장하기 위해 『같이 죽자』고 꾀어 극약을 사이좋게(?) 나눠먹은 뒤 남자 몰래 약을 뱉어 버렸고 남자의 숨이 끊어지자 자살한 것처럼 유서를 써서 싸늘해진 남자의 주머니에 넣고 달아났다가 사건발생 3개월만에 쇠고랑을 찼다. 얼굴이 반반한 아가씨 마음 한 수석에 냉혈(冷血)이 도사리고 있었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보살 같은 얼굴에 독사의 마음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9월 1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잡혀 온 康양은 울먹이기만 했다. 무지(無知)의 탓이었을까? 고향인 전북전주에서 S여중을 중퇴한 康양이 이수남(李秀男)씨를 알게된 것은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삼광직물공장의 여직공으로 일하던 지난 67년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여직공 8명과 동네청년 8명이 여관방을 빌어 「올·나이트」를 했다. 제비뽑기로 졍해진 「파트너」가 李씨였다. 康양에게 첫 눈에 반한 李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다. 잘 만나주지 않을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을 호소했다. 싫지는 않았지만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고 康양은 말하고 있다. 농촌에서 순박하게 자라난 李씨에겐 첫 사랑을 억누를 방법이 없었다. 매일같이 사랑을 호소해 오던 李씨는 마침내 몸져 누워 버렸다. 그제서야 康양도 李씨의 집을 찾았다. 李씨의 부모들은 대환영이었다. 『네 손으로 짜준 약을 먹어야 나을 것 같다』는 李씨의 핼쓱해진 얼굴을 보고 康양은 『내가 너무했던 것 같다』면서 서툰 솜씨로 달인 약을 李군의 입에 떠넣어 주는 것이었다. 그 날 밤으로 정을 나눴다. 그 뒤 康양도 키가 헌칠한 李씨가 차차 좋아졌다. 둘은 장래를 굳게 약속했다. 68년 5월 14일 康양이 미인선발대회에서 당선되자 평소에도 유혹이 많았던 康양에게 동네청년들로부터 3,4통의 「러브·레터」가 날아들었다. 李씨는 애인을 빼앗길까봐 康양을 서울로 올려보내 성북구 미아동 K섬유주식회사에 취직까지 시켜주었다. 여심(女心)은 알 수 없는 것. 지난해 6월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갔다오던 열차안에서 康양은 자리에 앉은 「카투사」심(深)모(24) 상병과 친해졌다.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마음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새벽 6시 용산(龍山)역에 내린 이 속성연인들은 그 길로 가까운 여관을 찾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외출을 나온 深상병과 뜨거운 사이가 됐다. 고교졸업인 深상병에 비하면 국민학교밖에 안나온 李씨 따위는 그녀에겐 아무것도 아니엇다. 李씨를 피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동대문구 휘경동 동영물산주식회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李씨를 떼어 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3각관계를 교묘하게 지탱해가기 1년이 가까운 지난 3월 25일 李씨가 군에 입대한 것을 계기로 그녀는 관계를 끊기로 결심했다. 거의 매일 훈련소에서 편지가 왔으나 답장을 쓰지 않았다. 지난 6월11일 휴가를 얻어 1등병 계급장을 달고 동생 수일(秀一)군과 함께 康양을 찾아 온 李씨는 질투와 원망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康양을 강제로 끌고 여관으로 데려가 변심한 이유를 대라고 다그쳤다. 이미 몸과 마음이 深상병에게 가 있는 康양에겐 이씨의 행동이 역겹기만 했다. 귀대날짜가 지나도 부대에 갈 생각을 않는 이씨에게 이여관 저 여관으로 끌려 다니던 康양의 머리에 문득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 『너와 결혼 못할 바엔 너 죽이고 나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李씨에게 『차라리 같이 죽어 버리자』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6월 19일 뚝섬건너 봉은사 뒷산 으슥한 풀숲에서 李씨가 준비해온 극약을 나눠먹고 그녀는 얼른 몰래 뱉어버렸다. 李씨의 숨결이 끊기자 자기손으로 유서를 썼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康양은 李씨가 휴가를 나온 뒤 자기와 함께 돌아다닌 사실을 알고 있는 李씨의 동생에게 따로 한줄 덧붙였다. 『동생 수일아 내가 죽는 것은 康양 때문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죄를 덮어 버리자는 속셈이었지만 이 구절은 단순히 염세자살로 끝나버릴 뻔했던 이 변사사건을 해결한 「키·포인트」가 됐다. 그 일이 있은지 나흘뒤인 6월 23일 康양은 당시 다니던 동명물산을 그만두고 이름을 「康진아」라고 고친다음 영등포구 당산동 2가 국제 염직회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李씨를 탈영병으로 수배해오던 군수사당국과 경찰은 지난 8월 17일 주민의 신고로 뼈만 남은 李씨의 시체를 발견. 유서내용으로 보아 일단 염세자살로 단정했으나 필적이 다르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康양을 쫓았다. 康양은 처음엔 모른다고 잡아뗐고 자기가 쓴 유서를 보고 이씨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유마저 보였다. 그러나 육군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결과 康양의 것과 꼭 같은 것으로 밝혀졌고 마침내 康양으로부터 『내가 썼다』는 자백과 함께 사건전모를 밝혀냈다. 위계(僞計)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려 했으나 형법원칙상 일방적인 진술이란 점을 참작, 자살방조죄로 그녀를 구속했다. [선데이서울 69년 9/21 제2권 38호 통권 제 52호]
  • 용인 ‘백남준 미술관’ 첫삽

    2008년 상반기 개관 예정인 백남준미술관 기공식이 9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미술관 건립부지에서 열렸다. 백남준 타계 100일을 맞아 열린 기공식엔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 등 유족과 손학규 경기도 지사, 유홍준 문화재청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관 건립 주체인 경기문화재단 송태호 대표 등이 참석했다. 1만여평의 부지에 연면적 1700여평 규모로 세워지는 미술관엔 상설 및 기획전시실, 자료실, 창작공간 등이 들어서게 된다. 기공식에 앞서 안은미 무용단이 축하 퍼포먼스 공연을 펼쳤으며 백남준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 2001년 ‘백남준’이란 명칭이 들어간 세계 유일의 미술관을 세운다는 양해각서를 백남준과 체결한 뒤 28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재단은 미술관 착공을 기념해 11일부터 한 달간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특별전 ‘백남준 스튜디오의 기억-메모라빌리아’를 연다. 뉴욕 브룸 스트리트 스튜디오의 한쪽 벽면을 통째로 구입해 소장하고 있는 재단 측은 이번 전시를 위해 이를 그대로 재현, 백남준에 대한 기억과 작업 과정을 되새긴다. 백남준이 1960년대부터 작업하던 뉴욕 브룸 스트리트의 스튜디오는 백남준 예술의 요람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각종 TV와 전선, 작업도구들이 얼기설기 배치된 선반에 쏟아질 듯 놓여있고 백남준이 벽에 휘갈겨 놓은 전화번호, 작업도면, 낙서, 친구사진, 포스터 등이 널려있다. 조각가 임승오씨가 3주동안 매달려 벽면을 재현했다. 한편 백남준의 조카이며 법적 대리인인 켄 백 하쿠타는 이날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인의 유분 일부를 봉은사에 계속 안치하고 백남준의 친구인 조각가 하영진이 1994년 주조한 고인의 데드 마스크도 봉은사에 둘 것”이라고 밝혔다. 하쿠타는 자신의 유분을 세계 여러나라에 분산하기를 바란 백남준의 뜻에 따라 유분 일부를 49재에 맞춰 지난 3월 한국에 들여와 봉은사에 안치해 왔다. 백남준 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경기문화재단과 갈등을 빚어온 하쿠타는 기공식과 관련,“백남준 미술관 기공은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기공식에 불참한 것은 초청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불교인사 “황우석박사 600억 지원”

    조계종 전 중앙종회의장 설정 스님 등 승려 5명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교계 일부 인사들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재개를 위해 60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설정 스님은 “한 사찰의 주지 스님과 불교 신도인 중소기업가 2명이 연구 자금 450억원과 서울, 부산에 있는 150억원대 부동산을 연구 부지로 아무런 조건없이 내놓기로 했다. 이름을 밝히면 논란이 일 수 있어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에게 대신 발표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황 박사측 이건행 변호사는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서면 확인서를 받은 상태다. 황 박사는 이들의 뜻을 전해듣고 고맙다는 의사만 전했으며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이라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세우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심상덕의 서울야화] (2) 종달새의 배설물은 세제?

    올 봄에 서울에서 종달새 울음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지금은 우리 서울에 보리밭도 거의 없어지고 밀밭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요. 서울의 한강변이 지금처럼 개발되기 이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의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쪽으로 봄 소풍을 갈 때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바로 그 시절애는 한강변에서도 종달새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강변에 보리밭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빌딩숲으로 변한 여의도에서도 종달새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또 그 건너편 영등포 쪽으로도 보리밭들이 많다보니까 그 보리밭에 둥지를 튼 종달새들이 적지 않았던 거죠. 그 보리밭에서 주워온 종달새 알에선 풋풋한 보리냄새를 느낄 수 있었고요. 그 보리밭에 찰랑찰랑 봄 햇살이 반짝이면서, 봄 바람에 출렁이는 보리밭 사이로 높이높이 날아오르던 종달새들. 하늘 높이높이 지금의 63빌딩 꼭대기정도, 그렇게까지 높이 올라갔었거든요. 또 우리 어린 시절 어른들 하시는 말씀 속에서도 “오늘은 종달새가 높이 나는 거 보니까 날씨가 아주 좋겠구나.”하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고, 그리고 또 “얘들아 보리밭에 들어가서 그렇게 종달새 둥지에 있는 알을 꺼내오면 안된다. 둥지에서 알이 없어진 걸 알면 종달새가 보리밭을 다 망쳐놔요.” 그 예전엔 종달새가 많다 보니까 이렇게 일상생활용어 속에서도 종달새 얘기가 자주 등장했었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 어린시절 불렀던 동요 속에도 자주 나오잖아요,‘이 종달새가? 그래요’, 이원수님의 글인데 아마 기억나실 겁니다. 종달새 종달새 너 어디서 우는냐 보오얀 봄 하늘에 봐도봐도 없건만 비일비일 종종종 비일비일 종종종 종달새 종달새 네 동무는 많구나 동요 속에도 등장할 정도로 그 많던 종달새들, 그러나 이제는 또다시 이렇게 봄이 돌아왔건만, 종달새들은 도대체 다들 어딜 갔을 가요. 그런데 봄에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처음엔 땅에서 가까이 날아오릅니다. 그러다가 기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높이 높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 이유가 뭔가 하면 땅기운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땅기운이 솟아오르는 그 높이만큼만 날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종달새가 나는 높이를 보면 땅기운이 그만큼 올라왔다는 얘기고, 종달새가 높이 날면, 날씨가 풀리면서 땅기운 역시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예전엔 큰 기침하는 대감댁에선 귀하게 입던 옷을 빨래할 때, 종달새의 배설물로 빨래를 했답니다. 다시말해 우리선조들은 종달새의 배설물로 옷을 빨았어요. 그 이유가 뭔가 하면요. 종달새의 배설물에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플테아제’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요. 물론 이것은 한 참후에 과학적으로 밝혀진 얘기지만 그 예전에 우리 선조들께선 이같은 사실을 다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런데 효소세제라는 것이 최근에서야 선보인 세제거든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효소세제 역시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종달새의 배설물을 이용했던 것과 원리가 똑같은 겁니다. 이런 거 보면요, 지난날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는 배울 게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서울 근교에선 예년 평균으로 봤을 때 13일부터 종달새의 첫 울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늘부터 찬물에 세수할 때마다 양쪽 귀를 잘 씻고 종달새 소리가 가까이 들리길 기다려 보자구요. 종달새 소리를 한번 쯤 들어봐야 진짜 서울에 봄이 찾아온 것이랍니다. 창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세요. 종달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죠.
  • “불꽃 예술혼 영원하기를…”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이 떠나는 길은 고인의 예술인생 만큼이나 특별했다. 18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고 백남준 49재 행사가 미술인과 일반 추모객 10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오후 5시50분부터 1시간40분간 진행된 행사의 막은 여성 무속인 이비나씨가 올렸다. 이씨는 작두 타기, 천 찢기에 이어 유족들에게 종이꽃을 나누어주었고, 뒤이어 백남준의 장조카 켄 백 하쿠다가 고인이 1961년 선보였던 퍼포먼스 ‘바이올린과 끈’(1961)을 되살려 추모객 사이로 바이올린을 끌고 다녔다. 또 1962년의 퍼포먼스 ‘바이올린을 위한 하나’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존 헨허트, 백남준 스튜디오 큐레이터 존 호프먼 등이 재연해 바이올린을 때려부쉈고 일반 추모객 100여명도 똑같은 방법으로 바이올린을 부쉈다. 이어서 추모객 1000여명은 줄을 지어 촛불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 뒤 백남준의 대표적 비디오 작품인 ‘다다익선’을 본뜬 탑에 촛불을 세워 백남준의 가는 길을 밝혔다. 추모객들의 촛불행진이 끝난 후 백남준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각인시켰던 피아노를 뒤엎는 퍼포먼스를 켄 백 하쿠다와 헨허트, 호프먼 등이 선보였다. 이날 행사엔 백남준의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지팡이를 짚고 참석했으며, 백남준의 유치원 동창인 수필가 이경희씨, 최경한 백남준 미술관 추진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박명자 갤러리 현대 사장, 김홍희 쌈지스페이스 대표 등 국내 미술계 인사들과 유족들도 참석했다. 백남준 49재를 맞아 봉은사뿐만 아니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은행동, 전주 고사동 등에서도 고인이 생전에 즐겨했던 넥타이 자르기 퍼포먼스 등이 진행됐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백남준 유해 오늘 귀국

    지난 1월30일 타계한 고 백남준의 유해가 15일 한국으로 온다.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 관장이자 백남준의 장조카인 켄 백 하쿠다는 15일 낮 12시5분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아시아나항공 OZ107편으로 고인의 유분(遺紛)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고 국내 대리인을 통해 14일 전했다. 백남준의 유분은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로 옮겨져 안치될 예정이다. 봉은사에서는 18일 오후 5시30분부터 백남준 49재 추모행사가 일반인이 참여하는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편 백남준 스튜디오 측은 16일 오후 1시 백남준이 마지막으로 서명을 남긴 미공개 유작 ‘엄마’를 봉은사에 설치해 언론에 공개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강남 귤,강북 탱자/원철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국장

    그 암자에는 탱자나무가 길게 빙 둘러져 있다. 이런 생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는 이제 일부러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산중은 겨울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라 잎 없이 뾰족뾰족한 가시들이 더욱 도드라져 담장이라는 본래 기능에 더없이 충실하다. 길바닥에는 지난해 떨어진 탱자 열매들이 메마른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예전에는 한약재라고 하면서 일부러 익기를 기다렸다가 더러 따가고 하더니 이즈음은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물론 떨어진 뒤도 마찬가지다. 열매가 제 값을 못해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춘삼월이 왔음을 아는지 여기저기 가지 끝에도 파아랗게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서귀포에 위치한 그 절은 정원수가 모두 귤나무였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나지막한 현무암 돌담으로 경계를 친 요사채의 큰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멀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돌려 이른 봄임에도 불구하고 황금빛의 큼지막한 귤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하여 한참 쳐다보았다.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도반과 함께 오랜만에 찻상을 마주하니 십만팔천리 떨어진 강남으로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하귤(夏橘)’이라고 대답했다. 육지에서 온 사람마다 모두 의아해 하며 물어보는 모양이다. 겨우내 꽃처럼 나무에 매달려 동절기를 견디는 만생종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해주었다. 며칠 전 두루마리 상태로 남아 있는, 고려에서 처음 만든 경전들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 남선사(南禪寺)로 향하는 연구원들을 배웅했다. 그들은 일보다도 ‘호시절이라 교토 곳곳에 만개한 매화꽃을 볼 수 있겠다.’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이즈음의 강남 풍경을 ‘항상 강남의 3월 풍경을 생각하니 새가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로우리라.’라고 했던가. 봄을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제주도건 일본이건 중국이건 남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언제든지 봄을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귤나무를 생각하니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론 원어의 남북은 중국의 양자강을 중심으로 지역을 나눈 것이다.‘강남의 귤, 강북의 탱자’라고 했으니 같은 나무를 심어도 강 남쪽에는 귤이 열리는데,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므로 그 맛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강남과 강북의 지리적·자연적 환경이 서로 다른 까닭이다. 하지만 귤과 탱자는 같은 운향과(雲香科)에 속한다. 그처럼 양자강은 남북을 갈라놓기도 하지만 또 강을 중심으로 서로를 함께 마주보도록 해주어 또 다른 하나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강남북의 기준을 양자강이 아니라 한강으로 바꾸어 놓으면 또 다른 언어가 된다. 강남의 뚝섬 봉은사는 강북의 잘 나가던(?) 상궁들이 나룻배를 타고서 갈대밭을 헤치며 기도하러 오가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화려한 고층빌딩의 숲에 둘러싸인 채 도심 속의 섬이 되어 버렸다. 이는 몇십년만에 강남과 강북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 까닭이다. 이제 지하철 종각역 벽에는 ‘강남같은 강북’ 혹은 ‘강북에서도 이제 강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가 심심찮게 나붙는다. 하지만 이것이 지역적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제든지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변한 ‘말씀’으로 읽히는 한가한 토요일 아침, 송나라 야보도천 선사의 시를 가만히 읊조려 본다. 강북에는 탱자되고 강남에선 귤이지만(江北成枳 江南橘)/ 봄이 오면 모두 함께 같은 꽃을 피우는구나(春來都放一般花) 원철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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