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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 한 채 값이 1680만원, 최고가 아이더 다운 어떻게 모을까

    이불 한 채 값이 1680만원, 최고가 아이더 다운 어떻게 모을까

    깃털이 들어간 누비이불 한 채 값이 1만 5000달러(약 1680만원)나 나간다.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따듯하며 비싼 다운 깃털을 모으려는 노르웨이인들의 가상한 노력이 2일(한국시간) 영국 BBC 트래블에 소개돼 눈길을 끈다. 북극을 둘러싼 아크틱 서클의 바로 아래 쪽, 노르웨이 북단 베가 열도의 6500여개 섬에는 매년 4월이 되면 겨울을 대처에서 난 주민들이 친구와 친척들을 일손으로 대동하고 돌아온다. 중심이 되는 섬 베가의 작고 비좁은 로난 평원에 세운 임시 거처에서 봄과 여름을 나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깃털들을 모은다. 마을 주민이라야 8~10명뿐. 약 40년 전까지 일년 내내 이 마을에서 살았던 선조들처럼 5월쯤 이곳을 찾는 큰바다오리 수백 마리의 둥지를 마련해준다. 큰바다오리는 커먼 아이더(common eider)라고도 불리는데 유럽과 북미, 러시아 북쪽에 서식하는 바다오리를 통칭한다.주민들의 돌봄을 받아 교미도 하고 알도 낳아 부화한 바다오리들은 둥지를 떠나면서 풍성한 깃털을 남겨 은혜에 보답한다. 회색 빛을 띠는 아이더 다운은 세계에서 가장 가볍고 따듯하며 비싼 다운 깃털로 손꼽힌다. 주민들은 정성껏 모아 깨끗이 닦은 뒤 수십 채의 누이이불을 짓는다. 잘 만든 한 채 값으로는 1만 5000달러 이상 값을 부를 수 있다. 이처럼 독창적인 조류와 인간의 공생 관계는 몇백년을 이어온 지속가능한 아이더다운 사육으로 조명받고 있다. 2004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다. 남자들은 어업과 농장 일을 하고, 여자들은 아이더 모으는 일을 하느라 떨어져 지내 ‘아이더 마누라’란 신조어도 생겼다. 아이더다운은 침구계에선 최상의 제품으로 여겨진다. 사료를 먹여 키우는 거위나 오리 깃털이 성긴 것과 달리 아이더다운은 서로 갈고리처럼 조직이 연결돼 있어 공기가 잘 통하면서도 보온 효과는 뛰어나며 거의 무게를 잴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보통 이불은 수백 차례 눌리면 형태가 그대로 굳어지는데 아이더다운 이불은 늘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복원력을 자랑한다. 해서 여러 세대를 거쳐 사용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바이킹 시대 무덤에서도 아이더다운 유류품을 발견했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전해진다. ‘세상의 모든 아이더다운 제품을 다 모아도 조그만 로리 하나에 다 넣을 수 있다’고,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문 대통령, 국군의날 행사 간소화에 “사병 고충 생각해야 한다”

    문 대통령, 국군의날 행사 간소화에 “사병 고충 생각해야 한다”

    지난 1일 국군의날 행사가 시가지 퍼레이드 생략 등 간소하게 진행된 것과 관련해 일부 야당이 반발한 가운데 문 대통령이 ‘사병의 관점’을 언급했다. 2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티타임에서 “국군의날 행사가 바뀐 것은 평화 기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사병들의 관점에서도 해석돼야 한다”면서 “과거 국군의날 행사를 하자면 사병들은 4월 봄부터 준비를 해야 하고, 특히 여름철이면 훨씬 더 힘이 많이 든다”면서 “기수단과 사병들이 발을 맞춰서 열병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고충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특전사의 경우도 과거 여의도 광장에 낙하산 점프를 했는데 TV 화면에는 사뿐히 낙하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은 몇달 전부터 호된 훈련을 하고,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서 “국군의날은 사병이 주인이 되는 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70주년인 국군의날 기념식은 시가지 퍼레이드나 열병식 없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또 가수 싸이의 축하 공연 등이 펼쳐졌고, 평일인 점을 감안해 많은 국민들이 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대에 처음으로 진행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문 대통령 “국군의 날, 장병들 고충 먼저 생각해야”

    문 대통령 “국군의 날, 장병들 고충 먼저 생각해야”

    “과거 국군의 날 행사를 하면 장병들은 4월, 봄부터 준비를 한다. 특히 여름철이면 더 힘들다. 기수단과 장병들이 발을 맞춰 열병을 하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니다. 그 고충을 생각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년마다 치러졌던 대규모 퍼레이드 등을 생략하고, 역대 최초로 저녁 ‘프라임타임’에 방송 생중계와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축제처럼 치러진 전날 국군의 날 행사에 대해 2일 이렇게 평가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을 의식해 축소 지향으로 행사를 치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진보 진영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대화가 본궤도에 오르려는 시점에서 ‘평화 기조’에 초점을 맞춰 평가한데 대한 문 대통령의 관점을 드러낸 것이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정례브리핑에서 “국군의 날 행사가 바뀐 것은 평화 기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장병들의 관점에서도 해석돼야 한다”고 문 대통령이 이날 아침 참모들과의 티타임에서 밝혔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특전사의 경우도 과거 여의도 광장에 낙하산 점프를 했는데, TV화면에는 사뿐히 낙하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은 몇달 전부터 호된 훈련을 하고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군의 날은 장병이 주인이 되는 날이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특전사령부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리며 “(입대 후 공수훈련) 그 첫 점프 때 동기 한 명이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땅에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며 “그때 먼저 낙하를 마치고 지상에 있었기에 사고를 생생히 목격했는데, 지상에 있던 우리가 올려다보면서 보조낙하산을 펴라고 소리쳤지만 끝내 보조낙하산을 펴지 못한채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우리집 낭만 친구들 1호 아랫집 사는 장닭 끈스탁

    우리집 낭만 친구들 1호 아랫집 사는 장닭 끈스탁

    창문을 내다보니 슬렁슬렁 우리 집 향해 걸어오는 녀석이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은 텅 비어있고, 옆집 개는 묶여 마구 짖어대고, 우리 집 개는 창문에 매달려 한참 짖어댄다. 요즘처럼 고양이가 많으면 저리 쉬이 다니지 못할 텐데 녀석은 거칠 것 없이 여유를 부리는 것이었다.인적 없는 골목에서 골목을 걷는 자가 주인이라는 듯 풍채 좋은 녀석은 위풍당당하게 올라와 슬쩍 옆집을 들어가 살피더니 불쑥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풀을 휘적휘적, 꽃밭을 콕콕! 텃밭을 뒤적뒤적 기웃기웃 그러다 후르르 햇볕 좋은 자리에 가서는 깃털 정리하며 멋을 내는 것이다. 어머나~ 멋진 손님이네 하며 구경 좀 하려 창문을 여니 걸음아 날 살려라 마구 도망가는 녀석. 아랫집 사는 수탉이다.매일 들어와 집을 탐색하여 그 모양 구경하자고 하면 잽싸게 줄행랑치는 녀석. 집에 닭장 만드는 걸 알고 저러나 빈 마당 혼자 독식하듯 묶인 개들 희롱하고 늙은 개 무시하며 껄렁대며 다니니 이보다 희한한 풍경은 처음 보는지라 쫓아내기보다 언제 오나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그렇게 한량인 양 다니던 녀석이 다급해지고 절절해지는 계기가 생겼으니 우리 집에 암탉 네 마리가 들어온 다음부터이다. 아침에 닭들 밥 주러 나서면 벌써 와서 기다리고, 훠이~훠이~ 쫓아도 기어이 닭장 앞에서 암탉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가 와도 그 비 맞으며 닭장 문 앞을 지키니 슬쩍 문 열어줄밖� �. 당연히 지 집 인양 서둘러 들어가는 녀석. 우리야 장닭이 생겨 좋은데 그 집에서 찾는 거 아닐까 싶어 아랫집 가서 전후 사정 얘기를 하니 원래 그렇게 동네 돌아다니던 닭이었다며 사료까지 챙겨주려 하기에 고맙다고 인사하고 백숙해 드시라 닭 사다 드렸다.그리하여 장닭 한 마리에 알만 낳는다는 늙은 암탉 4마리, 그리고 다시 알 품을 암탉 2마리 더해 7마리가 한 식구 되었다. 닭장 안이 복닥복닥 하더니 식구 느는 건 일도 아니었다. 병아리들이 크는 건 순간이고 어느새 닭들이 닭장을 가득 채워가며 맞이한 첫 겨울. 극심한 한파 예보에 걱정되어 닭장 안 바닥에는 왕겨를 두툼하게 깔아주고, 둘레는 비닐을 두 겹으로 해서 바람막이해주었다.다행히 닭들은 겨울이 되어도 달걀 놓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조류독감 소식이 들려왔다. 논밭 건너 산자락 양계장에 왔다 하고, 이어 마을에서 키우는 닭들을 살처분 했다는 소식이 우리 집에도 전해졌다. 어떠한 증상도 없이 여전히 달걀 놓고 활발하게 노니는 닭들. ‘끈스탁’과 ‘검은발’, ‘날랭이’, ‘분홍부리’, ‘새댁닭’과 ‘여시닭’ 그들의 병아리들. 그리고 무시로 닭장 안에 드나들며 사료 먹는 참새, 박새, 오목눈이들....고민이 깊어지니 지인의 조언과 이장님의 보이지 않는 배려, 이런저런 상황을 물어보고는 동네 발생지와 거리 확인해보겠다는 담당검역 직원과 통화로 살처분을 피할 수 있었다. 봄은 어찌 그리 더디게 오던지. 그렇게 그 겨울을 넘긴 닭들을 5마리만 남겨놓고 정리했지만, 여전 건강하게 잘 살아 있다. 이제 다시 맞이할 겨울. 혹한이 몰려온다 하는데 조류독감 걱정 없이 잘 넘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아름다운 가을날이다.글 그림: 신가영 작가
  • [길섶에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이종락 논설위원

    10월이다. 이때면 자주 듣는 가곡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있지 않나 싶다. 바리톤 김동규씨의 대표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 곡은 노르웨이 작곡가 롤프 뢰블란이 아일랜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피오눌라 셰리와 결성한 듀오 ‘시크릿 가든’이 연주한 곡이다. 뢰블란은 1996년 이 곡을 ‘Serenade to Spring’이라는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발표했다. 시크릿 가든을 결성하기 전인 1992년에는 노르웨이 출신 뮤지컬 가수 엘리자베스 안드레센에게 ‘Danse Mot Var’라는 곡명을 붙여 부르게 했다. 이 노르웨이 곡명을 영어로 바꾸면 ‘Dance toward Spring’이다. 우리말로는 ‘봄의 세레나데’나 ‘봄을 향해 춤을’ 정도가 된다.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 곡이 작사가 한경혜씨를 통해 10월 곡으로 개사됐다. 좋은 음악은 계절의 구분이 없는가 보다. 언제 들어도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비발디의 사계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각각의 부제를 알고 들어서 그 계절과 어울린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아닐는지. ‘봄’ 곡을 ‘가을’에 들으면 가을 노래로 들리듯이. 오늘처럼 청명한 가을날에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듣는 맛이 제격이다. 유튜브에서 소프라노 강혜정씨가 부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틀었다. jrlee@seoul.co.kr
  • 영화·TV 속 여행지로 이번 가을엔 떠나볼까

    영화·TV 속 여행지로 이번 가을엔 떠나볼까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 주인공 학수(박정민 분)가 변산반도 바닷가에서 짝사랑 상대 선미(김고은 분)와 함께 바라보던 석양. TV 예능 ‘배틀트립’에서 배우 김승수와 박정철이 마지막 배를 놓치면서까지 먹었던 욕지도의 고등어회. 이번 가을엔 영화나 TV에서만 보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가을 여행주간을 실시한다고 1일 밝혔다. 2014년부터 시작한 여행주간은 봄, 가을 한 해에 두 차례 지정해 실시한다. 올해 주제는 ‘영상 속 여행지’다. 김태영 로케이션 매니저(로케이션 플러스 대표)가 ‘가족과 함께하면 더 좋은 여행지’, ‘연인과 함께하면 더 좋은 여행지’, ‘혼자여서 더 좋은 여행지’ 등 모두 20곳의 여행지를 추천한다. 이 가운데 4곳은 해당 지역 명사와 함께 ‘공간여행’으로 진행한다. 1차 여행에서는 오세득 요리연구가, 이상희 여행작가와 ‘배틀트립’ 촬영지인 경남 통영 욕지도를, 2차 여행에서는 황경택 숲 해설가와 ‘다큐멘터리 3일- 더불어 숲’ 촬영지인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숲을, 3차 여행에서는 윤완식 선생과 ‘해찬들’ 광고 촬영지인 충남 논산 명재고택을, 4차 여행에서는 김세겸 영화작가, 방준석·백현진 음악감독과 함께 영화 ‘변산’ 촬영지인 전북 부안 변산반도를 방문한다. 비용은 한국관광공사가 전액 부담하며 14일까지 여행주간 홈페이지(travelweek.visitkorea.or.kr)에서 신청하면 된다. 이 밖에 서울, 인천, 광주, 대전, 세종, 충남, 전북, 경북 등 8개 지역의 주제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예컨대 광주에서는 영화 ‘택시운전사’, ‘공작’ 촬영지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되는 ‘예술광주 유랑’ 등을 즐길 수 있다. 여행주간 인기 프로그램인 ‘만원의 행복 기차여행’은 올봄보다 1000명 늘린 38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비무장지대(DMZ) 여행 코스 2곳과 산업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고용위기지역 9곳을 포함했다. 오는 4일 오후 3시까지 여행주간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소월과 육사에 함께 취한 남북…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소월과 육사에 함께 취한 남북…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ㄷ’ 자의 서해 직항로 경로를 좌석 앞 모니터에 정확하게 펼쳐 보였다. 나는 비행기의 머리가 항로를 따라 시시각각 순조롭게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봄에 평양 근교 역포구역에 어린이사과농장을 만들기 위해 다녀온 뒤로 10년 만의 방북이었다.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환영 나온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10만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버스 안에서 차범근 감독이 유홍준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죠?” 차 감독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나야 정상이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 버려요. 아무 걱정 말고 울어 버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유 교수도 눈가를 훔쳤다.서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과 북의 시민들이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우는 것으로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울어 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 볼 날이 없었다. 고려호텔 2층 뷔페의 메뉴 중 하나로 나온 돌목어식해는 처음 먹어 보는 북쪽 음식이었다. 널리 알려진 가자미식해와 모양과 빛깔은 비슷했으나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돌목어는 도루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봤다. 북측 접대원에게 물어도 그는 도루묵을 모르고 나는 돌목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비리지 않은 쫄깃한 생선회를 씹는 느낌이 났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퀴퀴하고 들척지근한 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생선 식해에다 흰 밥을 먹는 것으로 평양 일정은 시작됐다.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유홍준 교수, 김형석 작곡가, 차범근·현정화 감독,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박종아 평창아이스하키남북단일팀 주장, 에일리·알리·지코 같은 가수들, 마술사 최현우는 소형버스 14호차를 함께 타고 다녔다. 우리 일행이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직후 북측의 리설주 여사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관계자들과 30분 가까이 병원 입구에 꼿꼿이 서서 김정숙 여사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깍듯하게 모시듯 환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동병원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는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까이에서 악수하면서 잡은 리설주 여사의 손은 연약하고 따뜻했다. 저녁에 평양대극장에서 ‘2018 평양 수뇌회담 환영공연’이 열렸다.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할 때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함께 ‘만세’ ‘만세’를 입 모아 외쳤다.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제지를 해도 그 웅장한 소리는 끝이 없었다. 최고지도자를 향한 그 존경심의 표현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극적이었다. 공연은 우리도 잘 아는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북쪽 노래와 남쪽의 노래를 섞어 진행됐다. 남쪽 가요 중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침이슬’ ‘흑산도 아가씨’와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모두 북한식 편곡과 연주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던져 주었다. 공연에 등장한 배우들의 한복 디자인은 현재 남쪽의 한복 디자인과 거의 비슷했다. 공연의 절정 부분에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홀로아리랑’이 배치됐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평화와 번영을 향해 가는 길이 순조롭고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남북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운행을 방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평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고, 여성들의 옷차림도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어떤 젊은 여성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휴대폰(손전화)을 계속 들여다보며 거리를 걸어갔다. 저녁 환영만찬이 목란관에서 열렸다. 이 연회의 차림표를 여기 북한 표기대로 적는다.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김정숙 여사는 첫날 환영만찬에서 ‘동무생각’을 불러 왕년의 솜씨를 뽐냈다. 우리 14호차의 안내를 맡은 여성 두 사람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탁아소에 아기들을 맡기고 나온 이들 중 한 사람은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월과 육사의 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한번 들여다봤다. 뒷면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핸드폰의 앱에는 체계관리(설정), 조선대백과사전을 비롯해 류경바둑, 별찌까기와 같은 게임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북한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용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평양 방문은 우리에게 휴대폰으로부터 해방된 여행이었다. 혹시나 진동이 울리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양복 안주머니 쪽으로 손이 간다는 분도 있었다. 9월 19일. 방북 이튿날 일정은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점심 때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장에 도착하자 남북 공동선언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큰 숙제를 끝낸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평양을 방문한 수행단보다 남쪽의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생생하게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옥류관 오찬으로 나온 음식은 평양냉면뿐만이 아니었다. 잉어달래초장무침, 자라탕, 송이버섯볶음 등이 맛있었다. 나는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반 그릇을 더 먹었다. 평양에서 각 장르의 미술가들이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를 들르는 일은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감자꽃 필 때’라는 제목의 유색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 큰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림 값을 깎는 ‘가격투쟁’에는 실패했다. 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카드섹션에 참여하는 경기장 반대편 ‘배경대’는 1만 7490명의 중학생들로 구성됐다고 했다.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이 경기장에 막 도착했을 때 15만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호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대규모 평양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 나섰다.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집단체조 ‘아리랑’의 일부와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이 수만 명의 청년학생과 예술가들에 의해 펼쳐졌다. 공연은 북한식 집단주의가 역사적 경험과 만나면서 어떠한 예술적 영향력을 생산하는지 웅장하게 보여 주었다. 평양 방문단이 백두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19일 밤 9시쯤이었다. 백두산을 간다는 말에 우리는 들뜨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싣고 공군 2호기가 평양국제비행장에 온다는 말도 들렸다. 공군 1호기 조종사는 삼지연비행장의 활주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미리 떠났다고도 했다. 젊은 가수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대박!” 새벽 1시쯤 잠이 든 나는 4시에 모닝콜을 받았다. 평양 거리는 불을 켠 곳이 별로 없었다. 5시 30분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그때 버스 창문으로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이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연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환송 열기는 그에 못지않아 보였다. ‘뭉클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이다. 비행장에서는 남쪽에서 급히 공수해 온 방한복이 두 벌씩 지급됐다. 기자도, 그룹 총수도, 노동자도, 학생도, 성직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모두 하나같이 점퍼로 중무장을 마쳤다. 백두산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따로 수속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석표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고려항공에 탑승해 빈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이 말이다. 7시 40분 평양에서 한 시간을 날아가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삼지연에 가본 이후 13년 만이었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삼지연의 공기는 서늘한 가을이었다. 우리는 한두 달 앞당겨 가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어디 보자기에도 싸갈 수 없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의 길은 32㎞다. 모든 길의 양쪽 갓길에 이끼를 깔아 남과 북의 양 정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의 테두리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케이블카)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장군봉 정상까지 SUV 차량으로 올라간 수행원들도 있었고, 두 정상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삭도를 타고 생전 처음 천지 물을 손에 적시는 행운을 누렸다. 꽃은 졌지만 잎이 푸르게 남아 있는 만병초 잎사귀 하나를 따서 수첩에 끼워 넣었다. 두메양귀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나는 은밀하게 봉투에 넣었다. 숲에서 발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손가락 길이만 한 가문비나무 어린 새싹을 살짝 뿌리째 뽑아 들었다. 아름드리나무가 내 수첩 속으로 들어왔다. 평양도 백두산도 이제 먼 길이 아니다.
  • 이름 없는 꽃들을 위한 진혼곡…‘1991, 봄’ 티저 예고편

    이름 없는 꽃들을 위한 진혼곡…‘1991, 봄’ 티저 예고편

    1991년 봄의 청춘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1991, 봄’은 1987 이후,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부터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과 당시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죄명으로 낙인찍혔던 스물일곱 살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11명의 열사와 엄혹했던 그 시절을 꿋꿋하게 견디고 민주주의 꽃을 피운 이름 없는 이들을 차분하게 조명한다. 공개된 예고편은 먼저 서현, 씨엘, 김고은 등 많은 스타가 태어난 1991년이 11명의 열사가 세상을 떠난 해임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리고 11명의 청춘이 왜 꽃 같은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전한다. 지켜야 할 국민을 탄압했던 공권력을 휘두른 국가 앞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1991년 봄의 청춘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뜨겁고 슬픈 그 시절을 소환할 예정이다. 영화 ‘1991, 봄’은 오는 10월 31일 개봉한다. 89분. 12세 관람가.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찬바람 불기 전에, 아버님 예방접종해 드려야겠어요”

    [메디컬 인사이드] “찬바람 불기 전에, 아버님 예방접종해 드려야겠어요”

    보통 독감 유행 최소 한 달 전엔 맞아야 3종 무료 백신에 1종 추가 접종 추세 심장병 등 만성질환자· 노인에 권장 독감·폐렴 백신 함께 맞으면 감염률 뚝 예방접종이라고 하면 보통 어린이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성인에게도 꼭 필요한 예방접종이 있습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65세 이상 노인들은 감염병에 취약합니다. 그래서 고가의 건강기능식품을 안겨 드리는 것보다 한 번의 예방접종을 권해 드리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지난 추석에 부모님 건강을 세심하게 못 살펴 후회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기 전이니 예방접종에 관심을 가져 보세요.●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적기 10~11월 우리가 흔히 ‘독감’이라고 부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은 백신 접종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인플루엔자는 보통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유행하는데 2주~1개월 전에 접종해야 면역이 생기기 때문에 이달부터 다음달까지가 최적의 접종 시기입니다. 또 매년 유행하는 바이러스 유형이 달라져 접종 효과는 그해에만 유효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50세 이상 중·노년층에 접종을 우선 권장합니다. 최성호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30일 “심장병, 당뇨병, 폐·간·신장질환자 등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와 노인은 합병증 위험이 높아 특히 권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인플루엔자 예방 효과는 70~90%입니다. 100%가 아니라고 무시해선 안 됩니다. 백신을 접종하면 설사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해도 가볍게 지나가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 65세 이상 노인은 지정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무료로 3종류의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3가 백신’ 접종을 해 줍니다. 4만원가량을 자비로 부담하는 ‘4가 백신’은 바이러스 1종을 추가로 예방해 줘 최근 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부모님이 최소한 무료 접종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꼭 확인하길 바랍니다. 인플루엔자 예방효과는 6개월간 유지되기 때문에 1회 접종하면 겨울은 물론 봄까지 안심해도 됩니다. 시기를 놓쳐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더라도 면역력을 높이려면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가벼운 감기 기운이 있으면 의사와 상의한 뒤 접종 여부를 판단하면 됩니다. ‘폐렴’도 백신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병입니다. 원인균인 ‘폐렴구균’은 폐렴뿐 아니라 중이염, 부비동염, 수막염도 일으킵니다. 특히 심장병,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와 노인에게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접종을 권장합니다. 신종욱 중앙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대체로 입원환자의 12%가 사망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중증환자는 사망률이 40%에 이른다”고 지적했습니다.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하면 세균 감염 위험을 60~70%나 낮출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플루엔자 백신과 폐렴구균 백신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신 교수 설명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백신 단독 접종의 폐렴 입원위험 감소율은 52%, 폐렴구균 백신은 27%인데 두 백신을 함께 접종하면 효과가 63%로 높아집니다. 사망위험 감소율도 인플루엔자 백신 70%, 폐렴구균 백신 34%, 동시접종은 81%입니다. ●폐렴구균 백신 접종은 13·23가 순서로 폐렴 백신은 23개 혈청형을 예방하는 ‘23가 다당질 백신’과 13개 혈청형을 예방하는 ‘13가 단백접합 백신’이 있습니다. 23가 백신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보건소에서 무료로 접종해 줍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23가 백신이 예방범위가 넓지만 면역효과는 13가 백신이 더 높습니다. 23가 백신은 65세 이전에 접종하면 5년 뒤 재접종을 권장합니다. 조현 순천향대 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두 백신은 보완적 관계가 있어 13가 백신을 먼저 접종하고 최소 8주 뒤에 23가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가장 좋다”며 “다만 23가 백신을 먼저 접종했다면 최소 1년 이상 간격을 두고 13가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병인 ‘대상포진’도 2012년부터 백신이 도입됐습니다. 50세 이상 성인이 1회 접종하면 됩니다. 대상포진 예방효과는 50대 70%, 60대 60%에 이릅니다. 예방에 실패해도 주요 증상인 신경통을 완화시켜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다만 이미 생긴 신경통 치료를 위해 뒤늦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플레이어’ OCN 역대 최고 시청률, 송승헌-정수정-이시언 환상적 팀플레이

    ‘플레이어’ OCN 역대 최고 시청률, 송승헌-정수정-이시언 환상적 팀플레이

    ‘플레이어’가 OCN 오리지널 역대 최고 첫 방송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며, 부패 권력 집단을 향한 통쾌한 응징의 서막을 열었다. 29일 방송된 OCN 새 드라마 ‘플레이어’ 첫 회가 평균 시청률(닐슨코리아 제공) 4.5%, 최고 시청률 5.3%까지 올랐다. 이날 방송은 부패 권력 집단의 민낯과 공권력과의 유착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냈고, 사법부의 심판뿐 아니라 범죄 수익금 몰수를 통한 완벽한 응징을 위해 정면으로 이들에게 달려든 플레이어 4인방 강하리(송승헌), 차아령(정수정), 임병민(이시언), 도진웅(태원석)의 의기투합이 펼쳐지며 몰입도 높은 전개를 펼쳤다. 온갖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에서 특혜를 받으며 생활을 하다가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 강남 사채왕 천동섭 회장(곽자형). 검사를 가장해 자신을 찾아온 강하리에게 속아 범죄 수익금 은닉을 시도했고, 플레이어들은 이를 역이용해 천회장이 출소하기 직전 200억대 범죄수익금 환수를 통쾌하게 성공시켰다. 검사 장인규(김원해)는 천회장을 찾아가 그의 돈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알리며 천회장의 뒷목을 잡게 했다. 이들 플레이어 4인방과 장인규의 공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시간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하리와 병민, 진웅은 늘 아쉬웠던 운전을 보강하기 위해 마지막 멤버 아령을 스카우트하면서 플레이어 4인방 완전체를 이뤘다. 그리고 지목한 타깃은 형진그룹 지목현(이승철) 회장이 정치인 뇌물로 마련한 비자금 80억. 판을 짜기 위해 그룹 일가에 대해 알아보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툭 튀어나온 아킬레스건”일지도 모르는 콩가루 집안의 막내아들 지성구(김성철)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지성구는 기상캐스터 박선영(강윤주) 성폭력 및 동영상 유포 혐의로 법정에 섰지만, 선영의 룸메이트였던 현주(최민주)의 위증과 권력집단의 유착으로 보석을 허가 받았다. 재판 내내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판결 후 담당 검사 장인규에게 “법대로 하니까 이렇게 좋네요”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고, 사악한 본색을 드러냈다. 반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 피해자 선영의 엄마(홍부향)는 “그놈한텐 돈 도 있고 빽도 있잖아요. 어차피 그놈 막아줄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라며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지성구는 출소하자마자 호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생 홍윤희(이슬)를 상대로 추악한 범죄를 반복해 공분을 샀다. 형진그룹을 타깃으로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한 플레이어들은 병민의 해킹 능력을 이용해 지성구의 사건 자료와 개인 SNS를 샅샅이 파헤쳤다. 여기서 윤희의 엄마가 수상한 사람이라고 지목했던 마이크(김서경)가 지성구와 아는 사이임을 알아냈고, 마이크의 개인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링크에 접속했다. 해당 사이트는 충격 그 자체였다. 윤희를 포함한 여러 피해자들의 성폭력 동영상이 있었던 것. 그 순간 노트북 화면에 경고 표시가 떴고, 플레이어들은 위치 추적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도망갈 새도 없이 그들이 타고 있던 차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포위 돼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 첫 방송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는 사건들과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액션에, “진짜 재밌다. 숨도 못 쉬고 봄”, “빨리 처벌 받아라! 나쁜 사람들”, “와 액션 최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플레이어들 벌써 잡히는 거 아니겠지? 2회 빨리 보고 싶다” 등의 유쾌한 응징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과연 플레이어 4인방은 위기에서 벗어나 지성구의 악행을 폭로할 수 있을까. 더불어 지목현 회장의 비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 이날(30일) 밤 방송되는 2회는 일시 변경된 편성으로 기존 방송 시간인 10시 20분에서 30분 늦은 10시 50분 OCN에서 방송된다. 사진=OC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대한항공, 임직원 맞춤 교육으로‘글로벌 항공 리더’키운다

    대한항공, 임직원 맞춤 교육으로‘글로벌 항공 리더’키운다

    인재 경영은 모든 산업에서 중요하지만 특히, 항공산업에서 더욱 중요하다. 운항, 고객서비스, 정비 등 각 분야가 사람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기업 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며, 사람의 변화는 결국 올바른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신념을 가진 배경이다. 그는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철학으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인재 중시 경영은 직원들의 채용에서부터, 교육, 양성 등 모든 인사관리의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조양호 회장은 종종 항공산업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 승무원, 정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조화롭게 협력해야 고객들에게 최상의 운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대한항공은 직원 개개인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각 직급별로 체계적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여성인력 경력단절 방지 위한 다양한 지원과 노력 전체 직원 1만 8700여명 중 약 42% 이상이 여성인 대한항공은 대표적인 여성친화 기업으로 꼽힌다. 여성 직원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퇴사 고민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내 문화와 제도를 활성화해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것이 목표다. 대한항공은 육아휴직, 산전후휴가, 가족돌봄휴직 등 법적 모성보호제도를 직원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매년 평균 600명 이상의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해 평균 사용률이 95%를 넘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15년 국내 평균 육아휴직 사용률인 59.2%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여성 인력 비중이 높은 객실승무원의 경우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임신휴직을 사용할 수 있으며, 출산·육아휴직까지 포함하면 최대 2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객실승무원이 임신, 육아 등으로 장기 휴직 후에도 빠르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매달 차수 별로 복직 교육을 진행한다. 이러한 복직 교육을 통해 장기간의 휴가에도 경력 단절이나 업무 공백 걱정 없이 비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자녀 2명 출산으로 3년 7개월간의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승무원들도 이 교육에 참여한 후 무리 없이 비행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녀가 만 8세 이하이면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주당 15~30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2명 이상의 자녀를 둔 여직원 수는 1500명이 넘으며 3명 이상 자녀를 둔 경우도 100명이나 된다. 아빠가 된 직원들에게도 유급으로 청원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산, 육아휴직을 사용한 이후에도 자기 계발이 필요한 일반직 직원은 최대 3년까지 상시 휴직이 가능하며 전문의에 의한 난임 판정을 받은 여직원 중에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 희망자를 대상으로 최대 1년 휴직을 부여하는 난임휴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양성 평등주의 인사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과장급 이상 관리자 1580명 중 약 40%인 620명이 여성이며, 여성임원 비율도 약 6%로 10대 그룹 상장사 평균 2.4%의 2배를 넘는다. 대한항공은 사내 공모를 통해 선발된 직원에게 국내외 경영전문대학원(MBA) 진학 기회를 주는데, 이 중 30% 이상이 여성으로 알려졌다. ■ 멘토링 제도부터 맞춤형 MBA까지… 체계적인 인재 육성 눈길 대한항공 신입사원은 항공사 직원으로서의 기본 자질 함양을 위해 집중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항공 운송 기본 과정, 서비스 실무 교육 등과 더불어 직무 역량 강화를 위한 직종별 전문 교육을 받는다. 신입사원은 입사 후 필수적으로 현장 업무 경험을 하게 되며, 선배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멘토링(Mentoring)제도’를 통해 전반적인 회사 생활에 대한 이해와 업무 적응을 돕고 있다. 입사 1년이 지나면 ‘리프레시(Refresh) 과정’을 통해 직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직원 스스로 경력개발 경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각 직급별로는 HR, 재무, 리더십, 조직관리 등 필수 이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직원은 해당 직급에 따른 필수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상위 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만큼 직원들의 해외 체험 교육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대한항공은 실무자 및 중간 관리자 대상으로 ‘해외지역 양성 파견’과 ‘지역 전문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고 업무 역량을 보유한 관리자들에게는 해외 주재 근무의 기회를 부여한다. 부장급 관리자 양성 대상으로는 AMS(Airline Management School) 과정을 진행한다. 항공사에 특화된 전문지식과 경영마인드, 관리 역량을 겸비한 관리자 육성을 위해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대한항공의 주요한 핵심 인재 양성 교육 중 하나이다. 또한, 대한항공은 서울대 경영대와 함께 개발한 맞춤형 MBA 프로그램인 ‘임원 경영능력 향상 과정(KEDP, Korean air Executive Development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신규 임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경영 사례 분석과 실제 업무에 활용 가능한 프로젝트를 시행해, 항공사 임원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이 외에도 대한항공은 사내 공모를 통해 선발된 직원들에게 USC, MIT, 인하대 등 국내외 유수대학 MBA 뿐만 아니라, 물류전문대학원, 로스쿨 등에 입학하여 학업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재 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지원과 노력은 대한항공 미래 전략의 핵심이자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대한항공은 체계적이고 다양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세계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항공 인재를 육성해나갈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목원은 현대인에 치유죠···시간이 갈수록 가치 빛나”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목원은 현대인에 치유죠···시간이 갈수록 가치 빛나”

    ‘월급쟁이 출신’ 성만기 원장이 말하는 수목원 40년“오늘 우리 한국 사람은 너무 바쁘게 급하게 삽니다. 오늘 일을 하면 내일 결과가 바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3년이나 5년 계획을 ‘장기 계획’이라고 우깁니다. 조급증 환자같이 살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키우니, 수목원을 하다 보니 시간의 의미를 체험합니다. 수목원은 최소 100년, 어쩌면 한 300년쯤 지나야 제대로 된 멋과 품격을 풍깁니다.” 수목원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 재벌도 기업가도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 출신이 수목원을 멋있게 가꾸고 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3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소담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 향했지만 길가에 촘촘하게 선 전봇대와 얼기설기 걸린 전선이 눈에 거슬렸다. 수목원에 들어서 엔진을 끄자마자 성만기(73) 수목원장이 나왔다. 조성한 지 올해로 40년째인 이 수목원 앞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옥빛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이름 그대로 작고 아담했다.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숲을 걸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나뭇잎은 여름 그대로였다. “저기 저 나무가 스트로보 잣나무입니다. 미국 코네티컷에서 이 나무를 보고 반했지. 나무 대신 씨앗을 가져와 심었는데 저렇게 자랐습니다. 한 40년 자랐을까, 대한민국에서 아마 유일할 겁니다. ‘이스턴 화이트’라고도 해” 설명을 듣고보니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보던 잣나무보다는 흰색이 강했고, 가지들이 피라미드처럼 층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스트로보 잣나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 생물자원이 풍부하다는 겁니다. 저건, 로보참나무야. 독일에선 ‘할아버지가 로보참나무를 심으면 손자가 벤츠를 탄다’는 말이 있지. 그만큼 목재 가치가 높거든.”국내 유일한 잣나무, 국내 최대 참나무 보유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한 나무 앞에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 “이건 핀오크 참나무야. 국내에선 제일 클 겁니다. 손기정(1912~2002)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하면서 받은 월계관이 사실은 이 핀오크 참나무 가지로 만든 거야. 손기정 선생을 기념해 서울 양정고등학교에도 저런 핀오크 참나무가 자라고 있지.” 이 나무 높이가 25m쯤 돼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뭇잎이 다른 참나무와는 달리 단풍나무처럼 들쭉날쭉 길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핀오크를 대왕참나무로 부른다며 그 유래를 설명했다. “1990년 중반 핀오크 참나무를 조달청에 우리말로 등재하기 위해 고민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국립수목원 조무연 박사와 의논했지요. 참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생각에 대왕 참나무로 명명했습니다. 목재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을 단풍도 정말 아름답지요.” “대왕 참나무 이름도 지어···생물자원 풍요”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3년 대한항공에 공채로 입사했다. 승무직으로 4년가량 일하다 그만두고 나와 건축업과 자동차 딜러 등 개인 사업을 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으로 1년여 만에 모두 ‘까먹고’ 1979년 대한항공에 재입사했다. 대한항공 재입사 1호다. 수석 사무장 15년과 객실이사(현재의 상무)를 지낸 그의 비행시간은 약 3만 시간에 이른다. 지구를 300바퀴쯤 돌았다. 전 세계 곳곳의 좋다는 곳은 다 가봤다. 2000년 퇴직하고 수목원을 가꾸고 있다. 왜 수목원을 할까. “두 발을 땅에 딛지 않고 하늘에서 승무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그만큼 깎아먹는 시간입니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 일하는 나의 시간, 나의 ‘우주’를 갖자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국의 유명 식물원과 정원을 찾았습니다. 캐나다의 부차드가든, 영국의 큐식물원, 호주의 닐슨파크 등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요. 그러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거리(소피스트 로드)’에서 영감을 얻고 수목원을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철학자의 거리를 자양분 삼은 문인과 철학자가 많이 나면서 독일의 지적 수준을 높였지만, 하이델베르크보다 더 풍광이 좋은 제 고향 이곳은 궁색한 시골이었습니다. 이를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거리’서 영감···고향 바꾸고 싶어서“수목원을 하는 데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자란 그의 개인적 특성도 작용했다. “씨앗을 지배해야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 세계 곳곳에서 씨앗을 사 들였다. 소담수목원도 어린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씨앗을 발아시켜 성장시킨다. 수목원을 가꾸는데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린다. “요즘 길가 화단을 보면 꽃이 잘 핀 화초를 심는데 이건 1회용이예요. 1회용. 꽃이 시들면 파내 버리고 다른 화초로 갈아 끼우고···, 화초엔 인간의 이기심이랄까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도시의 욕망이 빚어낸 참사입니다.” 그의 비판이 신랄하다. “한번은 뉴욕 외곽의 종묘상에 갔는데 파산으로 ‘땡처리’를 하는 거예요. 평소 400달러 하던 씨앗을 40달러에 팔기에 무작정 종류대로 사들였지요. 한 1330여종이 됩니다. 국내엔 없는 희귀 종자들이 많이 있었지요. 종자를 사기는 했는데, 어떻게 발아시키는지 몰랐고, 당시엔 발아시킬 곳도 없어서 1976년 경기도 광릉임업시험장(현재 광릉수목원)에 그대로 기증했습니다. 당시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죠.” 지금도 국립수목원 종자표본실에는 ‘기증자 성만기’의 이름이 내걸려 있다. 외국 수종실을 만든 이로 기록돼 있다. 희귀종자 등 외국 씨앗 1330여종 국가기증 성 원장은 오솔길의 호젓함을 달래주는 새소리를 따라 걸으며 계속 설명해줬다.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평양 백화원초대소 앞에 심은 모감주나무”, “이건, 열매를 깨서 하천에 던지면 미꾸라지와 가재가 배를 뒤집고 뜬다는 때죽나무”, “이건, 밤에 잎이 오므라드는 자귀나무”, “이건, 6·25때 숲으로 피신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 돌배나무” 등등 숲 해설사처럼 들려줬다. “저기 보이는 저 참나무, 줄기에 검은빛이 도는 나무가 루브라참나무고, 그 옆에 저 잣나무는 변종이야. 학계에서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있어요.”그의 수목원 프로젝트는 아들이 태어나던 1978년 시작됐다. “처음엔 고향 아버지의 밭뙈기 한쪽에 나무 씨앗을 뿌렸지요. ‘쓰잘데 없는 일한다’고 핀잔도 많이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대부터 살던 이곳 3만 5000평을 샀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외딴 오지여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땅값이 말 그대로 ‘껌 값’이었다. “여기에 수목원 한다고 땅을 사니 가까운 사람들이 저보고 ‘돌았다’고 했습니다. 땅을 더 살 작정이었는데 그만 1995년쯤 마산 진전면에서 여기까지 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 덜컥 나오더라고요. 땅값이 너무 뛰어서 수목원을 더 확장할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때 다리(동진대교)만 놓지 않았더라도 이곳이 확 변했을 겁니다.” 고향 땅 사서 일궈···주말마다 나무 심어 주중에는 승무원으로 세계를 누비고 주말에는 스튜어디스였던 부인과 함께 내려와 종자를 뿌리고, 어린나무를 옮겨심고, 잡초도 맸다. 부부가 항공사 승무원이었으니 사천공항이나 김해공항을 통해 내려오기가 한결 수월했으리라 짐작된다. “가능하면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만 살리고 모두 베어낼 수는 없잖아요. 원래 이곳에 터를 잡았던 소나무, 밤나무, 물푸레나무, 칡덩굴 등등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4계절 다 아름다우면서도 주위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는 그런 수목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봄에 벚꽃 하나만 피면 좀 유치해 보이잖아요. 현재도 수목원을 한창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한 50~60년쯤 뒤에는 수목원다운 풍모를 보일 겁니다.” 현재 이 수목원에서 자라는 나무만 300여종이란다. 식물은 1000종 이상 심었다. “여기 수목원의 고성의 기후와 토양에 따라 어떤 식물이 가장 계절을 잘 나타내주느냐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명이고 정체성입니다.” 성 원장은 산책길을 따라 심은 어린 핀오크 참나무를 만지며 “아까 그 핀오크의 씨앗이 발아한 2세예요. 이네들은 고성이 ‘네이티브’인 핀오크입니다. 돈이 급할 때 내다 팔려고 길가에 심었습니다만···. 어릴 때는 볼품 없지만 크면 클수록 똑바로 서서 자랍니다. 나무에 기품이 있지요.” 이 수목원에 성 원장 부부의 전 재산이 다 들어갔다. 그러나 수목원이 미완성이니 아직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국내 유일이거나 국내 최고의 나무가 있는 수목원이 한편으론 경남의 얼굴이고 고성의 작품이지만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자연적 문화공간에 정부 돈은 1원도 들어가지 않았다. 부인 이상숙씨가 카페를 운영하며,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거든다. 수목원을 산책하다 카폐에서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여유가 묻어났다.고향의 얼굴인데도 지원 없어···카페도 운영 “캐나다 부차드가든은 한 개인이 만들었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전세계에서 관람객들이 옵니다. 반면 우리나라 천리포수목원은 전세계 목련을 모았고 세계적인 작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돈달라는 것도 아닌데 국가에서 이런 자원을 이용해 국익을 위해 활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도 내가 죽고 나서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 관심을 두고, 관리에 참여하면 지역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가 이 말을 하면서 목에 힘이 들어갔다. “형편상 사람을 데리고 쓸 수가 없어 제가 다 합니다. 요즘도 하루 평균 4~5시간 잡초를 속고, 씨앗을 거두고, 나무를 심고 합니다. 운동도 되고 좋습니다. 카페가 문 여는 오전 10시30분 이전에 다 마칩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열정 이외는 식물과는 인연이 없다. “식물 공부, 책으로 혼자 했지요. 조경회사 만수원의 고 김명원씨,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미스터 밀러’(고 민병갈 원장), 충북 진천에 있는 영주농장 이영주 대표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한 창고에는 식물과 관련된 책으로 가득했다. 초창기엔 씨앗만 보고 어떤 특징을 지닌 나무인지 모르니 움이 트더라도 숱하게 죽었으리라. “멘토로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삼았습니다. 그 눈빛만 봐도 힘이 났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멘토를 이야기할 때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느꼈을 벽, 고독과 고난 등이 묻어났다. 킹 목사가 멘토···“그 눈빛만 봐도 힘 솟아”성 원장은 산책 도중 중간에 칡덩굴 숲 옆에 서며 “아침이면 굴뚝새 수백 마리가 날아오릅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정글을 이룬 칡덩굴이 나무를 휘휘 감고 넘실거리고 있다. “이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로 작은 우주입니다.” 몇 걸음 더 가다 “이게 백화등이라고, 담쟁이처럼 나무를 감고 올라가 5월이면 아주 향기로운 하얀 꽃을 피웁니다. 어떤 향수보다 더 달콤하고 향긋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선생님, 이게 나무를 휘감아 죽이는 것 같아 베어냈습니다’고 말해요. 몇 년 동안 정성 들여 팔뚝 굵기로 키웠는데, 너무나 안타깝지만, 기왕 베어낸 것, 제가 말을 못합니다. 들어와서 보는 것은 좋은데 제발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목원의 가치요? ‘종자 전쟁’이나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지구에 재앙이 닥쳤을 때 씨앗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씨앗저장소가 대표적이다.)는 아니지만 수목원은 훼손된 자연의 복원과 치유입니다. 오늘 일하고 내일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조급한 세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수목원에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될 것입니다. 수목원은 시간이 갈수록 진가가 발휘되죠. 그게 느리게 산다는 것, 여유롭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만족합니다.” 산책하던 성 원장이 엎드려 작은 루브라참나무 옆에 우거진 잡초를 손으로 뽑아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이지만 한 자리에 우뚝 서서 수백년을 지키는 거목같은 수목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고성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기생 시인의 겨울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기생 시인의 겨울사랑

    - 기생 시인 매창(梅窓)의 '겨울 사랑' 우리 옛시조 중 가장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조 중 하나가 매창의 다음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화는 배꽃이다. 배꽃은 갈래꽃이다. 변덕스런 봄바람이 한바탕 불어제끼면 낱낱이 떨어진 흰 꽃잎들이 마치 빗낟처럼 난분분 허공을 비산한다. 그래서 이화우라 한다. 이처럼 이화우, 추풍낙엽 같은 동적인 소재, 그리고 봄에서 가을로 건너뛰는 장면 바뀜 등으로 위의 시조는 마치 한 편의 동영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는 듯한 절창이다. 그래서 예전엔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매창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직업은 기생이었다. 그 아비가 부안현의 아전이었는데, 매창은 그마나도 첩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갈데없는 천출이다. 하지만 자질이 영특했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웠고, 거문고 타기를 즐겨 상당한 기량의 연주 솜씨를 지니기에 이르렀다. 시재(詩才)는 일찍 드러났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다. 시 잘 짓고 거문고 잘 타는 천출 처녀가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었으니 갈 길은 대강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이 되었다. 나이 16살 때였다. 거문고 연주가 빼어날뿐더러 시재까지 출중한 이런 조합이 그리 흔치는 않다. 명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런 소문을 듣고 멀리서 시인묵객, 한량들이 찾아왔다. 때로는 손님 중 술이 거나해지면 집적대는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매창은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는 여인은 아니었다. 다음 '증취객(贈醉客)' 제목의 오언절구를 보면 그녀의 시재와 마음자리까지 오롯이 드러난다. 醉客執羅衫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羅衫隨手裂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았지 不惜一羅衫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니야 但恐恩情絶 맺힌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러지 (신석정 역) 하지만, 험한 세파에 일찍 몸을 실었으니, 인생의 쓴 맛도 일찍 찾아왔다. 현감에게 수청을 들었으나 버림받고 말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렇게 빼어난 미색은 아니었다 한다. 이런 매창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다.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선조 24년(1591) 18살 때였다. 그런데 그 상대는 28살이나 연상인 유부남으로, 한양에서 이미 문명을 날리는 시인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이었다. 부안에 놀러왔다가 매창을 찾아온 것이다. 매창과 마찬가지로 유희경 역시 천민 출신으로, 같은 천출 시인인 백대붕과 함께 유 · 백으로 일컬어지며 문단을 주름잡고 있었다. 매창이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한양에서 온 시객(詩客)이란 말을 듣자, '유희경과 백대붕 가운데 뉘신지요?' 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촌은의 문명이 멀리 부안에까지 알려져 있었던 터이다. 두 사람은 28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같은 천민이라 더욱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희경은 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상례에 아주 밝아 국상이나 사대부가의 상(喪)에 집례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또한 화담 서경덕계의 문인으로 기녀를 멀리하고 반듯한 선비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지만, 이때 매창을 만나 지족선사가 되고 말았다. 평생 처음으로 ‘파계’를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유희경이 한양으로 돌아가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통에 이들의 재회는 기약 없게 되었다.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화우' 시조는 이 무렵 첫사랑 유희경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 지은 것이다. 봄바람에 날리는 하얀 꽃잎처럼 그들의 사랑도 덧없고 아름다웠으리라. 이 무렵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전한다. 이 고장 출신의 '촛불'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 하였다.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를 일컫는 송도삼절을 본딴 모양이다. 어쨌든 유희경과의 첫사랑은 매창의 영혼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그녀는 천리 밖 정인을 모질도록 그리워했고, 그것은 나중에 서러움과 한으로 응어리지기까지 했다. 한양의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은 좀 다르지만, 다음의 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娘家在浪州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腸斷梧桐雨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懷癸娘, 허경진 역) 이처럼 독한 사랑이었지만, 시절은 그네들의 편이 아니었다. 7년 전쟁의 불길이 조선땅을 온통 휩쓸고 갔으며, 전후에도 세상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구러 10년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줄곧 유희경만을 그리며 살던 매창에게 두 번째 남자가 나타났다. 이웃 고을 김제에 군수로 내려온 이귀(李貴)였다. 그는 율곡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절의가 곧아 나중에 인조반정에 앞장서 공신이 된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 매창이 마음이 끌려 그의 정인이 되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첫사랑 유희경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매창에게 두 번째 정인으로 이귀를 만났으나, 그 만남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환해(宦海)를 떠도는 이귀의 입장에서 매창을 수습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남자마저 떠나보낸 매창은 사랑의 덧없음, 인생사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깊이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 뒤 매창의 행로를 더터보면 그런 짐작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매창에게 깊은 흔적을 남긴 유희경과의 두 번째 만남은 15년 만에 이루어졌다. 매창을 잊지 못한 유희경이 다시 부안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재회는 잠깐의 만남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뒤로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짐작컨대, 15년의 세월이 이미 두 사람의 얼굴을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오랜 옛사랑은 다시 찾을 것이 못된다. 그냥 마음속 깊이 간직함만 못하다는 걸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 재회 후 매창은 3년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37살의 한창 나이였다. 이승의 삶에서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음에 깊이 절망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창은 죽어서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유언에 따라, 평생을 끌어안고 살며 고락을 같이했던 자기 거문고를 안은 채 묻혔다고 한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았던 매창의 옆에 거문고가 끝까지 함께했던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소유였던 모양이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매창이 죽은 지 45년 만에 매창을 잊지 못하는 부안 사람들이 그녀의 무덤 앞에 빗돌 하나를 세웠다. 그로부터 다시 13년 뒤에 부안의 아전들이 중심이 되어 그녀가 남긴 시 중에서 구전되는 58편의 작품을 목판에 새겨 인근 사찰 개암사에서 <매창집>을 펴냈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찍어달라 하여 개암사의 절 살림이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말도 전한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과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매창의 시는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여성적인 정서로 섬세하게 읊으며,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에 있다"는 평을 받는다. 세월이 한참 지나 매창 빗돌의 글씨들이 이지러진 1917년, 부안 시인들의 모임인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높이 4척의 비석을 다시 세우고 '명원이매창지묘(名媛李梅窓之墓)'라고 새겼다. 그전까지는 마을 나뭇꾼들이 벌초하며 무덤을 돌보았다고 한다. 가극단이나 유랑극단이 부안 읍내에 들어와 공연할 때도 먼저 매창 무덤을 찾아 한바탕 굿을 벌이며 시인을 기렸다. 바로 곁에는 명창 이중선의 묘가 있다. 지금도 음력 4월이면 부안 사람들은 매창의 제사를 모신다. 매창이 간 지 360여 년이 지난 1974년 어느 날, 매창뜸을 찾아온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가 그녀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올렸다. 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없이 비와 바람 오고가고 하지마는 한 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를 않는다 이화우 부르다가 거문고 비껴두고 등 아래 홀로 앉아 누구를 생각는지 두 뺨에 젖은 눈물이 흐르는 듯하구나 나빈상(羅衫裳) 손에 잡혀 몇 번이나 찢었으리 그리던 운우(雲雨)도 스러진 꿈이 되고 그 고운 글발 그대로 정은 살아 남았다 ('매창뜸' 전문) 한편, 매창의 첫사랑 유희경은 대시인으로 문명을 날리며 91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의 집은 경복궁 뒷담 너머 개울 가에 있었다. 가끔 궁궐 사람들이 담 너머로 그의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하얗게 늙은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다고 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그 책속 이미지] 파도인 듯 폭포인 듯 몰아치는 그 마음

    [그 책속 이미지] 파도인 듯 폭포인 듯 몰아치는 그 마음

    상무주 가는 길/김홍희 지음/불광출판사/352쪽/1만 9800원산에 바위가 가득하다. 바위는 파도 같기도, 폭포 같기도 하다. 파도 치고 물 흘러가는 바위의 폭포 사이에 암자 하나가 마치 배처럼 떠 있다. 정지하듯, 흘러가듯, 바위 속 고창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풍경이 위태하면서도 참으로 고요하다. ‘글 쓰는 사진가’로 유명한 김홍희가 2년 동안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26곳의 암자를 찾았다. 어느 순간 더 위로 머무를 곳 없는 무상의 땅 ‘상무주’(上無住)에 올라섰음을 깨닫고 독자에게 화두를 던진다.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 있는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플레이어’ 이시언, 천재 해킹 마스터의 만렙 활약 ‘기대’

    ‘플레이어’ 이시언, 천재 해킹 마스터의 만렙 활약 ‘기대’

    배우 이시언과 드라마 ‘플레이어’의 케미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OCN 토일오리지널 ‘플레이어’(연출 고재현, 극본 신재형)는 사기꾼, 드라이버, 해커, 파이터까지 각 분야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뭉쳐 가진 놈들이 불법으로 모은 더러운 돈을 찾아 터는 유쾌·통쾌 머니 스틸 액션 드라마다. 이시언은 극 중 천부적인 해킹 능력으로 어떤 정보든 빼낼 수 있는 천재 해커 ‘임병민’으로 활약한다. 적재적소의 지능적인 플레이를 담당,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상당히 든든한 존재가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보다 자신감이 만렙으로 상승하는 이시언과 이번 드라마 ‘플레이어’의 찰떡 케미를 이름 석 자 풀이로 정리해봤다. 이(2)_년 전부터 이미 준비 시작 얼마 전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그는 2년 전 ‘플레이어’의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찾아가 출연하고 싶은 의사를 먼저 밝혔다고 알린 바 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도 해커 병민(이시언 분) 역할에 푹 빠져 애정을 보이고 있다고. 그만큼 인상적인 캐릭터와 스토리에 이시언의 적극적인 열의가 더해져 더욱 매력적인 연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시_청자도 주목하는, 멤버들과의 화기애애 호흡도 굿 이시언은 송승헌(강하리 역), 정수정(차아령 역), 태원석(도진웅 역) 등 다른 플레이어 멤버들과의 호흡으로 시청자의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그의 출연 방송에서 공개된 촬영장 풍경과 평소 SNS를 통해 보여준 현장 사진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드라마 속에 함께 녹아들어 시너지를 낼 전망이다. 언_제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완벽 동화! 이시언은 지난 봄 종영한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 지구대 경찰의 애환, 가장의 책임감을 그려내며 진정성 있는 연기로 호평받았다. 반면 고정 출연 중인 예능프로그램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자연스럽고 리얼한 일상으로 시청자들에게 한층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다. 이밖에도 드라마 ‘투깝스’ 속 건들건들한 건달과 ‘W(더블유)’의 어리바리한 문하생까지 그는 어떤 캐릭터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옷을 입은 양 맞춤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다. 이렇듯 이시언과 이번 작품의 만남에 기대가 상승하는 가운데 무한한 변신을 보여줄 그의 활약은 오는 29일 밤 10시 20분, OCN 토일 오리지널 ‘플레이어’에서 함께할 수 있다. 사진=OC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제3의 매력’ 표민수 PD “보통사람들의 보통연애 감정선 따라가고 싶었죠”

    ‘제3의 매력’ 표민수 PD “보통사람들의 보통연애 감정선 따라가고 싶었죠”

    “대본을 보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어요. 코미디, 멜로, 휴먼 등이 다 같이 있다는 점에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표민수 PD가 3년 만에 JTBC 새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으로 돌아왔다. ‘프로듀사’(KBS2) 이후 3년 만이다. 2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제3의 매력’ 제작발표회에서 표민수 PD는 3년 만에 드라마 연출을 결심한 이유와 이번 드라마만의 매력 등을 얘기했다. “어떤 순간에는 평범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고 나서 그 선택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할 때도 있고요. ‘제3의 매력’은 그런 감정결을 다루고 있어요. 보통사람들이 보통연애를 할 때의 감정을 따라가보고 싶었습니다.” ‘제3의 매력’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두 남녀가 스물의 봄, 스물일곱의 여름, 서른둘의 가을과 겨울을 함께 통과하며 그리는 12년의 연애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서강준은 현실적 모범생 온준영을, 이솜은 제법 사연 많고 솔직함이 매력인 이영재를 연기한다. 표민수 PD는 ‘제3의 매력’의 특징에 대해 “저희 작품은 이미지라든가 상징이 좀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며 “보통사람들뿐 아니라 보통으로 볼 수 있는 물건, 보통의 이벤트들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캐스팅과 관련해서는 “대본을 서강준씨께 보냈을 때 서강준씨 역시 ‘준영이라고 하는 캐릭터가 화려해 보이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며 “이 역할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솜씨의 경우는 영재 캐릭터가 직설적인데 제가 만났을 때 영재의 성격과 흡사하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표민수 PD는 ‘아이리스2’(2013), ‘그들이 사는 세상’(2008), ‘풀하우스’(2004), ‘푸른안개’(2001), ‘거짓말’(1998) 등 히트작을 다수 탄생시켰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서강준은 “대본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중에 표민수 감독님이라는 얘기를 듣고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윤지도 “표민수 감독님 이름 석자를 듣고 마음이 굉장히 많이 흔들렸다”며 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표민수 PD가 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제3의 매력’은 28일 오후 11시 첫 방송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포토] 안 입은듯…‘파격 시스루 패션’

    [포토] 안 입은듯…‘파격 시스루 패션’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패션브랜드 ‘쿠레주(Courreges)’의 2019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 [세종로의 아침] 샤라포바가 또 온다면/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샤라포바가 또 온다면/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14년 전인 2004년 추석 한가위는 적어도 국내 테니스인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테니스 경기를 치렀던 송파구 방이동의 서울올림픽코트. 좌석에 먼지만 쌓여 있던 그곳은 밀려드는 관중을 맞을 준비를 했다. 당시 17세의 나이로 그해 윔블던 챔피언에 오른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를 보기 위해서였다.샤라포바는 ‘깜짝 스타’였다. 2004년 1월 호주오픈이 열렸던 호주 멜버른에서 실력과 스타성을 한눈에 알아본 이진수 당시 한솔테니스팀 감독이 그해 추석 즈음 처음으로 열리는 코리아오픈 테니스대회 출전을 설득했다. 1986년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로부터 개최권을 박탈당한 KAL컵 대회 이후 국내에서 처음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코리아오픈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대한테니스협회장으로 있던 조동길 한솔제지 회장의 추진력, 이진수 감독의 치밀한 기획력에다 진흙 속에서 캐낸 진주처럼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하던 샤라포바를 낚아챈 행운(?)까지 따랐다. 코리아오픈은 유치 당시 WTA 투어 가운데 레벨이 가장 낮은 3급 대회였다. 3급 대회는 세계랭킹 상위권의 선수들을 초청할 수 없다. 그런데 샤라포바는 2004년 호주오픈에 출전해 32강이 치르는 3회전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코리아오픈에 출전할 수 있는 적당한(?) 랭킹을 가지고 있었다. 샤라포바의 아버지가 한솔코리아오픈 출전 계약서에 두말없이 도장을 찍은 뒤 상황이 급변했다. 샤라포바는 호주오픈이 끝난 4개월 뒤 프랑스오픈 8강까지 점령하더니 한 달 뒤 윔블던에서는 세리나 윌리엄스(미국)를 2-0으로 격파하고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실력에 따른 랭킹, 미모와 스타성에 인기는 한꺼번에 치솟았다. 한솔코리아오픈 대회조직위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었다. 추석 연휴 동안 치른 첫 대회는 샤라포바라는 ‘블루칩’을 확인하면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숱한 곡절을 겪었지만 코리아오픈은 지난 23일 끝난 올해 대회까지 ‘한가위 클래식’을 무려 14차례나 치렀다. 샤라포바는 다시는 출전할 수 없었지만 한국 테니스의 ‘봄’을 갈구하던 수많은 테니스팬들의 염원이 대회와 함께했다. 그동안 대회를 다녀간 선수 가운데 세계랭킹 1위를 경험한 이는 샤라포바를 비롯해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 캐럴라인 보즈니아키(덴마크), 옐레나 얀코비치(세르비아), 카롤리나 플리스코바(체코) 등 6명이나 된다. 한국 여자테니스도 첫 대회 전미라-조윤정에 이어 올해 최지희-한나래의 두 번째 복식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도 씁쓸함은 남는다. 이 대회가 매년 근근이 숨줄을 이어 가고 있어서다. 코리아오픈은 한솔그룹이 대회 개최권을 홍콩의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에 매각한 뒤 이를 다시 임대받아 열리고 있다. 언제 대회가 끊길지 장담할 수 없다. 완전한 개최권을 다시 찾아오는 게 급선무다. 코리아오픈은 한국 테니스의 마지막 보루다. 기업들의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후원도 물론 필요하다. 테니스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과 인식도 다시 추스를 필요가 있다. 샤라포바가 또 온다면 달라질까. cbk91065@seoul.co.kr
  • [길섶에서] 목화꽃/문소영 논설실장

    화분에 목화를 심은 건 지난해 봄이었다. 터키 사는 지인이 항공우편으로 부쳐 온 씨앗이었다. 그 봄에는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았다. 조선의 농서에는 솜에 싸인 새끼손톱만 한 검은 씨앗을 오줌통에 하루이틀 넣어 두었다가 심으라고 되어 있는데, 그 과정을 못 거쳐 그런가 하면서 아쉬워했다. 파종을 잊어버릴 만한 시점인 그해 늦여름 목화는 싹을 내더니, 이파리를 몇 개 달지도 않은 채 기운을 짜내듯 꽃을 4개나 피워 냈다. 그중 3개는 열매가 됐는데 그 속이 솜으로 바뀌면서 껍질을 확 깨고 흰 별꽃처럼 변해 볼만했다. 내년에 씨를 뿌릴 생각으로 목화솜을 수확하고, 목화 하나당 6~9개 씨를 발라냈다. 많다. 문씨 가문의 중시조인 문익점 할아버지는 목화씨 3개를 밀수했다는데, 아마도 목화 한 덩어리도 확보하지 못했나 싶다. 목화는 다년생이라 아파트 거실에서 겨울을 나고 올봄 다시 이파리를 올렸다. 섭씨 40도에 가까운 혹독한 올여름을 견디고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되는 듯한 꽃받침 위로 미색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은 하루만 지나면 분홍색이 되고 질 때는 짙은 와인색 꽃이 된다. 도시 촌놈에게는 꽃의 변신이 마술처럼 놀랍기만 하다. 올해도 목화씨를 얻으면 농부와 서로 나눠 심기로 한다. symun@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포도의 그림 기록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포도의 그림 기록

    비로소 가을이 되어 여름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복숭아 대신 포도의 달콤한 냄새가 공기를 메우는 계절이 되었다.얼마 전 나는 마트에서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다. 무리를 지은 젊은이들이 청과물 매대 앞에서 ‘샤인머스캣’을 찾는 광경이었다. ‘포도’도 ‘거봉’도 아닌 ‘샤인머스캣’을 찾는다니. 직원에게 신품종 과일명을 정확히 대며 분주히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는 낯설면서도 인상 깊게 느껴졌다.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마켓과 오프라인 시장 등에서 ‘샤인머스캣’이라는 청포도 품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씨가 거의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데다 ‘포도 사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높은 당도와 아삭한 식감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 포도는 다른 포도들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비싼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선 꼭 한 번쯤 먹어 봐야 하는 과일로 여겨진다.이것이 한시적인 유행일지라도, 샤인머스캣 포도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육성한 품종일지라도, 과일이란 식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슈거리가 된다는 것, 그리고 소비자들이 품종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선택해 소비한다는 건 우리나라 식물 문화의 커다란 발전으로 보인다. 와인 문화의 발달로 역사적으로 포도가 가장 널리 재배되고 이용되어 온 프랑스에선 이미 이런 문화가 널리 자리잡혀 있다. 동네 작은 과일 가게만 들러도 늘 색과 형태가 다른 두세 종의 포도가 벽에 걸린 모습으로 판매되고, 원예 상점 중심엔 다섯 품종 이상의 포도나무 묘목이 서 있다. 묘목 이름표에는 식물세밀화와 함께 이 나무가 커서 어떤 형태의 포도 열매를 생산하는지, 당도와 산도는 몇인지, 어떤 용도로 이용하면 좋은지 등의 정보가 꼼꼼히 적혀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품종 각각의 특성을 인지하고 소비한다는 증거다. 파리식물원 정원의 한 벽면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는 화훼식물이 아닌 과수작물인 유럽산 야생 포도가 덩굴로 덮여 관상식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꽃이 피는 봄과 열매가 맺는 여름이 아닌 가을과 겨울이 되어서도 이 나무가 포도나무임을 알 수 있는 건, 포도 덩굴 앞에 서 있는 이름표 때문이다. 이름표에는 이들의 꽃과 열매, 종자가 그려진 식물세밀화가 있고, 이를 통해서 언제든 이 식물의 일 년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에선 그 문화 역사만큼 포도 식물세밀화도 많이 기록되어 왔다. 피에르 조제프 르두테의 포도 그림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르두테는 산과 들의 자생식물이 아닌 인류가 이용하는 원예식물을 그림으로 그려 현대 원예식물 연구와 대중화에 큰 공로를 세운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물화가다. 언젠가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인들에게 내 소개를 할 일이 있어 “나는 식물세밀화를 그린다”고 했더니 “아, 조제프 르두테와 같은 일을 하는군요? 그는 훌륭한 식물화가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프랑스의 국화인 장미 컬렉션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장미뿐만 아니라 그가 살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당시 프랑스에서 재배되던 포도 품종 수십 종을 그림으로 그려 냈다. 그가 그린 포도 중에는 현존하지 않아 우리가 볼 수 없는 종도,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품종의 부모와 같은 원종도 있다. 이 그림들은 연구 기록물로서, 또 복사되어 현대 세계인의 주방에 걸리는 인테리어용 그림으로도 애용된다. 식물세밀화가 인테리어용 그림으로 걸리는 것은 과학 일러스트레이션으로서 본래의 기록 목적에는 어긋나지만 식물의 보존을 위해 널리 이용하고자 유도할 수 있다면, 더구나 프랑스에서 육성한 포도가 세대를 넘어 세계의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것을 생각하자면 그리 반감을 살 일은 아닐 것이다.나도 언젠가 포도를 그려야 할 텐데 하던 차에 얼마 전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신품종 포도를 그리게 되었다. ‘홍주시들리스’. 씨가 없고, 붉은빛이 도는 포도다. 아직 널리 보급이 되지 않아 시장과 마트에서 사 먹을 수는 없지만, 몇 년 내에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 육종가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는데 포도의 꽃도 함께 그려 달라는 조언이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늘 먹는 과일이 식물의 열매이다 보니 꽃 생각은 놓치고 만다. 개화해 수술과 암술이 보이는 꽃의 모습을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 홍주시들리스 외에도 흑보석, 흑구슬, 청수 등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신품종 포도는 스무 종이 넘는다. 나는 이들을 하나하나 그려 갈 생각이다. 르두테의 그것처럼, 이 기록도 2010년대 후반 한국에서 육성하고 재배된 포도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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