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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오르記]횡성 발교산

    [산 오르記]횡성 발교산

    발교산(髮校山·998m)은 강원도 횡성군의 오지인 청일면 봉명리에 있는 산이다.수리봉,대학산과 함께 산군을 이루고 홍천군과 횡성군 사이를 남북으로 길게 가르는 산줄기에 솟아있다. 발교산의 들머리가 되는 봉명리 안구접이 마을은 횡성에서 홍천군 서석으로 이어진 19번 도로가 포장되기 전엔 접근하기가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섬강의 최상류가 흐르는 봉명리로 들어가는 농로 같은 길이 있다.19번 도로에서 볼 때는 마을이나 계곡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더덕 밭과 농협 창고를 지나면 봉명교 부근에서 절경을 만난다.이후로 봉명리 끝 마을인 안구접이까지 5km 구간이 청정 하천을 이룬다.마을회관이 있는 골말 까지만 포장이 되었을 뿐 안구접이 마을은 아직 비포장 상태다. 둘러봐야 온통 산만 보이는 이 골짜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간직한 6·25때도 전쟁을 몰랐다고 할 정도의 오지다.‘구접이’라는 이름도 이 마을을 산이 아홉 겹이나 둘러싸고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안구접이’는 안쪽에 있다고 뜻일 테고.발교산 산행들머리가 되는 절골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20여분 오르니 찻길이 오솔길로 바뀐다.전나무가 빼곡한 사이로 하늘은 빼꼼하다.한 때는 화전민이 살았던 듯,곳곳에 돌무덤이 있다. 갈림길에서 능선 길을 버리고 계곡 길로 10여분 오르자 봉명폭포(鳳鳴暴布)가 나온다.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 폭포는 ‘물소리가 봉황의 울음소리와 같다.’는 아름다운 봉명폭포다.상,하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하단의 폭포는 높이 50m의 수직 벽을 이루어 엄청난 수량을 물보라와 함께 내리쏟는다.하단폭을 지나 100m 정도 비탈길을 돌아 오르면 상단의 폭포다.상단폭포 높이도 50m 정도.남성미를 뽐내는 하폭과 달리 와폭을 이룬 상단폭포는 여성미를 자랑한다. 폭포 주변에선 선득한 한기가 느껴진다.싱그러운 낙엽송 숲을 지나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이곳에도 화전민이 산 흔적이 있다. “70년 대 초까지만 해도 여기에 사람들이 살았어요.울진·삼척 공비 사건 후에 화전민들을 모두 이주시키고 조림을 했지요.” 동행한 김길래씨의 말이다. 물기 있는 계곡이 끝나는 곳에 삼거리가 나온다.왼쪽으로 접어들어 조금 오르면 능선을 타게 된다.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룬 것을 보니 봄철 산행지로도 아주 좋을 듯 하다.산길의 경사가 더욱 급해진다.숨을 헐떡거리며 50여 분 정도 올라가자 두어 평되는 공터에 닿는다.횡성 한우 마스코트가 있고 ‘발교산 998m’ 안내판이 있는 정상이다.정상에서의 조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그래도 나무 몇 그루를 베어놓아 북으로 수리봉,동으로 운무산·봉복산 정도가 보이고 남쪽과 서쪽은 참나무 사이로 허공만 보일 뿐이다. 정상에서 올라온 길로 100m 내려가면 ‘수리봉 하산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다.능선을 따라 30분 정도 비탈길을 내려가면 안부에 닿는다.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10분 정도 더 가면 올라올 때 만났던 삼거리다. 절골 입구에서 봉명폭포를 거쳐 정상을 오른 후 다시 절골로 하산하는 코스는 네 시간 정도 걸린다. ●볼거리·먹을거리 국사랑(033-344-1234)은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는 곳으로 5500평의 유리 온실에서 수정벌을 이용한 양액 재배로 고품질의 위생적인 토마토를 일년 내내 생산한다.속실리 19번 도로변에 있다. 횡성 우(牛)시장의 명성은 높다.정식 명칭은 횡성 가축 경매시장으로 횡성 축산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규모가 크며 거래도 활발하다.특별히 소를 팔고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우시장만의 독특한 손짓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풍경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광경이 될 것이다.횡성 장날은 1일과 6일,우시장도 함께 열린다. 속실리 청일관광농원(033-342-5230)의 식당에서 유기농 채소를 쓰는 쌈밥과 더덕구이를 먹을 수 있다.야영장도 갖추고 있고 농사체험을 할 수 있다.청일면사무소 소재지의 솔이네 숯불갈비(033-342-5007)의 횡성 한우갈비와 막국수가 맛있다. ●가는 길 횡성에서 19번 도로로 갑천,청일을 차례로 지나 춘당리 춘당초등학교를 오른쪽으로 끼고 농로 같은 길로 들어서면 봉명교가 나온다.여기부터 구접이 마을로 불리는 봉명리다.골말 마을회관까지 포장길이고 이후는 비포장이다.횡성에서 28km 거리.횡성읍내에서 안구접이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네 번,오전 9시56분,11시14분,오후4시40분,7시15분 운행된다. 산학문학인 안재홍
  • 폭염 스트레스 기억력 가물 ?

    폭염 스트레스 기억력 가물 ?

    한낮의 폭염과 열대야가 연일 반복되면서 소지품을 잃어버렸다거나 천식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공통점이 없을 듯한 무더위와 건망증,천식은 실제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찌는 듯한 날씨 속에 최근 경찰과 지하철의 유실물센터 직원들은 분실물을 정리하기에 바쁘다.서울지방경찰청 유실물센터에 따르면 지난 2월 106건에 불과하던 신고건수가 6월 168건,7월 19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폭염이 절정에 이르고 있는 8월 들어서는 6일 현재까지 60건의 유실물 신고가 들어왔다.직원들이 물건과 서류 정리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광동한방병원 원영호 박사는 “날씨가 더워 불쾌지수가 높아지면 신체적으로 무리가 따라 뇌세포에 일시적인 장애가 오는 건망증이 생기기 쉽다.”면서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데 따른 피로와 집중력 감퇴도 또다른 원인”이라고 말했다.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운동과 독서,충분한 수면,과일과 야채의 섭취,술·담배의 절제 등이 건망증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천식환자들은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이나 꽃가루와 황사가 날리는 봄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현실은 오히려 여름이 더욱 괴롭다.무더위로 인해 대기 속에 오존(O)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장재연 교수는 “오존은 대기권 밖에 있을 때는 지구환경에 도움을 주지만 대기에 섞여 있을 때는 무서운 오염물질”이라면서 “특히 무더위로 인한 오존의 증가는 천식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1990년부터 1995년 사이 서울시의 오존농도를 조사한 결과 25도 이하에서 평균오존 농도는 30.0ppb로 나타났지만 35도 이상에서는 평균 57.1ppb를 기록해 거의 두 배의 증가세를 보였다.장 교수는 “무더위가 계속되면 천식환자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면서 “기관지가 민감한 천식환자들은 에어컨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은 만큼 적당한 실내 온도를 맞추고 필터도 교체해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토막소식]내년 봄철 묘목 신청 접수

    서울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구민 나무심기 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20일(금)까지 2005년 봄철 묘목 신청접수를 받는다.연립주택·아파트·어린이집·노인정 등 단체만 접수 가능하며, 거주지 동사무소나 구 공원녹지과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지원대상마을로 지정되면 2005년 봄에 묘목 등 녹화재료를 무상으로 지원받게 된다.(02)901-2388.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5) ‘동해의 강구’ 왕피천의 은어

    봉화에서 불영계곡을 거쳐 울진으로 길을 잡는다.험한 길,붉은 소나무가 울울창창한 곳이다.백두대간 줄기에서 동해로 내리꽂히는 왕피천이 불어난 장맛비로 급살을 탄다.우르르 쾅꽝,전쟁이라도 났는가 싶다.가파른 계곡을 내려가노라니 불현듯 동해다.깊은 숲이 연속되다가 너무도 급작스럽게 바다가 나타나 당황스러울 정도다.‘바다, 하늘, 계곡, 강이 만나는 곳’ 이란 울진군의 홍보 문구가 너무도 정확히 이를 설명해준다. 버젓한 강은 없어도 백두대간의 골짝,골짝에서 내린 물을 동해로 쏟아붓는다.왕피천도 그 중의 하나.물의 급수를 따질 겨를이 없다.너무도 깨끗하여 아직도 이런 물이 남아있음에 감사,또 감사드릴 뿐이다.동해가 청정해역임은 이런 왕피천류의 청정지수에 힘입는다.국내 최초의 민물고기 전시관인 ‘경북 민물고기연구센터’가 경상도의 수많은 지역을 제치고 왕피천 하류에 자리잡았음은 당연한 일 아닌가. ●기수는 인간삶 엮어낸 가장 중요한 곳 필자가 쏜살같이 내려간 방향과 반대로 봄철의 은어떼는 힘겹게 거슬러 올라왔으리라.백두대간에 쌓인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면 은어는 백두대간 줄기로 향한다.한여름 왕피천 중류 쯤에서 성장한 은어는 거의 고등어만큼 몸피를 불려 가을 무렵에 하류로 내려간다.알을 낳은 은어는 1년생으로 생을 마치기에 일년어(一年魚)란 별칭이 붙었다.치어들은 동해로 내려가서 겨울을 난 뒤 다시 봄이 오면 모천회귀(母川回歸)를 거듭한다.삼척의 오십천,양양의 남대천,강구의 왕피천,그리고 남해안의 섬진강에서도 은어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그렇듯 돌고 도는 윤회의 법을 온몸으로 실천하여 끝내 우리를 감동시키고 만다. 소금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汽水)야말로 바다의 또 다른 비밀을 간직한 곳이며,인간의 삶을 엮어낸 가장 중요한 곳이다.은어뿐 아니라 연어와 숭어,황어,칠성장어 등도 동해에서 기수를 거쳐 민물을 찾아 오르내린다.크고 작은 동해의 읍성과 마을이 기수 근역에 자리잡았으며,울진도 예외가 아니다.그런 까닭에 바다생활사에서는 기수가 반드시 앞자리를 차지함이 마땅하다. 은어떼처럼 필자도 강구(江口)의 기수를 거쳐서 산으로 오른다.계곡물에서 철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영역싸움을 벌이는 은어를 보니 ‘물고기 야전사령부’가 왕피천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다.이들의 영역 투쟁은 전투적이다.그러나 다가오는 가을이면 그 힘겨운 투쟁도 막을 내릴 것이다.하구의 산란장으로 줄달음칠 시간이기 때문이다. 은어의 최후를 보자.산란 후,기진맥진하여 마치 소매끝에 메추리 붙듯 너덜거리는 껍질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강물에 떠내려간다.떠내려가는 은어는 물새도 잡아먹지 않는다.누군가 이를 ‘고요한 은어의 수장식(水葬式)’이라고 압축하여 말했다.그 은어에게서 우리 인간을 본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환경에서 적당한 생화학적 밸런스를 보존해야만 이듬해 은어가 돌아올 수 있다.바다에서 곧바로 모천으로 오기 전에 강구(江口)에서 잠시 머물고,반대로 모천에서 바다로 갈 때도 강구에 머무르면서 생체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바닷물과 민물의 변증법적 지평은 바로 기수에서 열린다.바다와 강이 만나는 경계는 성스럽기까지 하다.밀물,썰물이 만나는 조간대의 갯벌이 보여주는 ‘경계의 미학’처럼 강구의 기수도 그 자체가 장엄(莊嚴)이다. 장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시나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한 법.왕피천 하구의 끝자락을 지키는 망양정(望洋亭)에 오른다.망양정은 ‘바다를 관망한다.’는 뜻이니 필자의 관해기처럼 수많은 시인묵객들도 일찍이 자신들의 관해기를 이곳에서 쏟아내지 않았겠는가. 두 개의 모래톱이 마주한 틈새를 비집고 왕피천이 동해로 흘러들고,동해는 힘껏 바닷물을 민물로 밀어붙인다.출신이 다른 물들의 싸움은 생각보다 격렬하지만 모래톱의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망양정의 위치는 너무도 절묘하여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의 누(樓)’라는 친필 편액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오죽하면 겸재 정선이 망양정도(望洋亭圖)에서 다소 ‘과격한’ 필치로,‘바다로 솟구치듯 돌출한 누정’이라고 묘사했을까. ●江口 들판은 소금 굽던 이들의 삶터 누정에서 감상에 젖을 수도 있겠지만,좀더 현실적으로 강구를 바라보노라면,온갖 역사와 문화가 누적된 치열한 곳으로 다가오기도 한다.왜구들이 떼지어 몰려들던 침략의 현장.아니면,강구에서 뗏목을 엮거나 배에 실어 멀리 부산까지 가던 포구.그도 아니면,염전터였던 강구의 들판은 소금 굽던 이들이 진저리치며 고난의 삶을 살던 곳이기도 하다.아주 오래 전의 일들인지라 조만간 ‘전설’로 변해갈 것이다. 과거에 민중들의 먹거리에서 민물고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게 컸다.더군다나 은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는 고기는 대단한 인기 어종이었다.은어튀김의 우아한 맛을 경험한 이들은 그 인기도의 비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은어는 말 그대로 은빛이다.은어에서는 수박 향기가 난다.비린내 대신에 향긋한 수박 향기가 나는 것만으로도 은어의 품격을 알 수 있다.오죽하면 향어(香魚)라 불렸을까.중국의 ‘박물지’에 이르길,‘물고기 회를 먹고 남은 것을 강물에 버리니 그것이 고기로 되살아났다.’고 한 바로 그 물고기다. 왕피천 사람들은 수경을 쓰고 급류 바위틈을 뒤져 작살로 은어를 잡아 올린다.파리 모양의 낚시를 매달아 은어새끼를 낚아내는 ‘파리낚시’,살아있는 은어의 몸통에 바늘을 끼워 다른 은어를 유인하는 ‘놀림낚시’,그 무엇보다 돌멩이로 살을 막고 통발을 놓은 ‘살막기’가 중요했다.왕피천 태생의 주상준 문화원장의 증언에 따르면,현재의 투망질이나 낚시질보다 앞의 어로방식이 보다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은어는 튀겨 먹고,회 쳐 먹고,끓여 먹고,훈제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산에서 잡은 큰 은어를 ‘산치’라 불렀는데,주둥이에 대나무 꼬챙이를 끼워 가지런히 꽂아놓은 뒤 그 위에 두꺼운 종이를 덮어 훈증(熏蒸)으로 구워 말리는 예스러움을 이제는 보기 어렵다. 살아있는 모양 그대로 금빛이 도는 훈증 은어는 왕골 속갱이로 열마리씩 엮어 귀한 선물로 주고받기도 하였다.문득 지난해 여름,바이칼호로 가는 길목인 슬류디양카에서 먹었던 황금빛 훈증청어 오물(Omul)이 떠오른다.흡사 황금투구와 갑옷을 입은 양 품격있게 줄지어 서 있던 오물의 위엄을 동해의 훈증 은어에서 다시 보는 맛이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은어만이 아니다.동해안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건 백두대간을 넘어야만 서쪽 사람들과 문물을 교류할 수 있었다.서쪽 사람들 또한 산을 넘지 않으면 소금을 구할 수 없었으며,하다못해 산모 미역거리조차 구할 수 없었다.동해에서 올라온 은어가 계곡물에서 진저리치며 전투를 벌이는 동안,사람들은 험준한 고개를 넘고 넘어 봉화나 영주를 오고갔다. 울진군 북면에 가면 도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일명 ‘울진내성행상불망비’란 철비(鐵碑)가 서 있다.내성은 봉화의 옛 이름.울진에서 봉화로 가자면 열두 고개를 넘어야했으나 험준한 산악의 사나운 짐승과 산적은 한사코 이들의 발목을 묶었다.자연히 고개목에는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본디 원(院)이 있던 곳이니 울진의 벼슬아치들이 부임할 때도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소금,미역,문어나 북어 따위를 지게에 진 장사치들은 일사불란한 접(接)을 갖추고 산을 탔다.죽변이나 울진읍내에서는 불과 30여리에 지나지 않으나 봉화 내성장까지는 무려 150리길.오로지 찻길로만 다니는 오늘날은 감둥골고개,돌재,나그네재,바릿재,샛재,술막재,넙재,매재,고치부재 따위의 고개 이름들이 산골사람들 기억 속에 서서히 ‘전설’로 바뀌어가고 있다. ●관동·관서사람들 백두대간 오가 베어진 소나무가 산을 내려와서 바다로 갔다면,사람들은 미역 따위를 짊어지고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갔다.산 너머 동네의 풍문이 전해졌으며,부족한 해산물의 단백질이 이 ‘실크로드’를 통해 공급되었다.은어나 연어 따위 역시 목숨 걸고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갔으며,다시금 목숨걸고 종족 보존이란 장엄을 연출하곤 하였다. 올해 여름 휴가에도 서쪽 사람들은 기를 쓰고 산을 넘어 바다로 향할 것이다.관광이란 이름을 쓴 인간들의 고난의 행군 역시 바다를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모천회귀가 아닐까.그러한 즉,망양정에서 바라보는 강구의 유장한 풍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대투쟁을 생각해 보고,우리가 돌아갈 시간을 생각해 봄은 관념 이상의 존재고가 아닐 수 없다.동해의 파도가 저렇듯 성나게 강구의 모래톱을 으깨는 것도 저마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 산양부부의 사투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 산양부부의 사투

    ‘비무장지대(DMZ)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이런 물음을 던졌다.휴전선 155마일을 경계로 남북을 각각 2㎞씩 뒤로 물린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에 따라 포성이 멈추고 DMZ가 생겨났다.그로부터 51년.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DMZ일대에 자연의 생명력은 힘차게 꽃피어 올랐다.남과 북이 세운 철책선은 곧 DMZ 생태계의 삶의 울타리였다.그러나 민족의 환경유산,생태계의 보고(寶庫)란 수식어가 미래의 DMZ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서울신문 탐사대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인 남방한계선 일대를 각계 전문가와 함께 보름여동안 샅샅이 훑었다.총 20회의 연재를 통해 펄떡이며 살아숨쉬는 DMZ 생태계의 풍경과 보전대책,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본다. (편집자 주) ‘목이 탄다.철책 아래 흘러내리는 물을 들이켜도 갈증은 더해만 간다.자유의 목마름….아내도 지친듯 힘없이 몸을 기대온다.물로 허기를 달랜지 오늘로 나흘째.깊은 밤,네온 불빛에 홀려 이중철책 안으로 뛰어든 것이 실수였다.철망은 물어뜯어도,몸을 부딪쳐도 도무지 끄떡없다.그래,이제는 알겠다.남과 북을 가르는 저 철책의 단단함을,넘지못할 그 높이를….’ ●살아있는 화석,산양을 찾아서 6월 14일 강원도 고성 고진동 계곡.12일간의 탐사활동이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면서 탐사대의 조바심도 점점 고조됐다.‘끝내 산양을 촬영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200만년을 내리 살아오면서 여전히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녀석.‘살아있는 고대동물’ ‘화석(化石)동물’이란 별칭이 붙은 건 그런 연유에서다.서울신문 100주년 탐사의 중요 ‘표적’이 아니될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사흘 전 양구군 백암산 자락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어린 산양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4륜구동 취재차로 덜컹대며 전방부대 비포장길 커브를 돌자 화들짝 놀라면서 쏜살같이 내빼던 산양….80도는 족히 됨직한 경사진 바위 비탈을 너무도 가뿐하게 뛰어올랐다.놀라기론 탐사대도 못지않았다.취재차에서 내려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토실토실 살찐 녀석의 모습을 담진 못했다.비명을 지르는 새소리 같은 험악한 울음으로 탐사대를 을러댄 뒤 서둘러 숲속으로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아쉬운 기억을 떠올리며 육군 ○○사단 ‘율곡부대’에 절박한 취재협조 요청을 냈다.하지만 정훈공보참모 박영희 중령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이 시기는 힘듭니다.(눈에 쉽게 띄는)겨울철이면 몰라도….” 맞는 말이다.그동안 여러 기관의 수많은 탐사·조사에도 불구하고 ‘여름 산양’의 자태가 제대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지난 5월 고진동 골짜기에서 산양 10여 마리를 봤다.”는 인근 주민들의 목격담도 힘이 됐다.6월 14일,그런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고진동 남방한계선을 찾았다. ●철책 안의 산양,운명같은 조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철책선 수문보강공사 중인 고진동 ‘라맨교’ 옆 GOP 초소.전방을 주시하던 초병에게 “요새 산양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데 웬일인지 눈길을 피한다.갑자기 바로 옆 이중철책 안에서 ‘두두두’ 땅이 울린다. ●철책 너머엔 어린 산양 한마리가 무언가가 획∼하니 번개처럼 지나간다.산양이었다.이중철책 사이 폭 2m 정도의 좁은 통로를 산양 2마리가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전혀 뜻밖이었다.어떻게 철책 안에 갇혔을까.의문부호와 함께 녀석을 살폈다.잿빛 단단한 몸에 80㎝ 정도의 키다.검은 갈기가 등을 달리고 꼬리와 발굽 털은 새하얗다.‘뿔 나이테’로 추정되는 나이는 4살.암수 한쌍이다. “오늘로 사흘째입니다.어디를 어떻게 통해선지 철책 안으로 들어왔지만 나가는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양의 불운은 탐사대엔 행운이었다.초병의 설명을 귓전으로 들으며 카메라 렌즈는 연신 녀석의 얼굴과 꽁무니를 좇았다.이중철책 안은 경계를 위해 제초작업을 해 둔 곳이다.그러니 녀석은 꼬박 사흘동안 굶으며 자기 모습을 노출시킨 셈이다.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산양의 큼직한 두 눈엔 좌절과 당혹감이 묻어났다. 철책 북쪽 너머론 막 돌을 넘겼음직한 어린 산양 1마리가 서 있었다.탐사대와 동행한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가 옆에서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아무래도 어린 새끼인 듯합니다.산양은 가족끼리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거든요.” 초병들도 그제야 “새끼 산양이 사흘째 철책 안의 산양들과 보조를 맞추며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그렇다면 녀석들은 또 하나의 이산가족인 셈이다.사람의 간섭을 막는 생명의 울타리였을 철책선이 이제는 분단의 빗장이 되어버렸다. ●나흘간의 사투 그리고 탈출 6월 15일 탐사대는 다시 고진동 현장을 찾았다.철책 안의 산양은 이제 달리기를 멈췄다.며칠동안 통로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수백번 오르내리며 탈출구를 찾았단다.철책을 사이에 두고 2m 앞까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던져주는 풀을 받아먹지도 않는다.때때로 멍한 눈길로 철책 너머 새끼를 바라보곤 한다. 십여년 남짓 설악산 속에서 살다시피 하며 산양보호운동을 펼쳐 온 박 대표가 한숨을 섞어가며 뒷말을 이었다. “이 산양들의 처지가 DMZ 생태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지금처럼 DMZ 안의 야생동물들이 남과 북의 철책을 넘지 못하고 계속 근친교배를 반복하면 열성 유전이 심화돼 멸종의 위험도 점점 높아집니다.특히 산양처럼 개체수가 적은 동물일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죠.남과 북 사이의 야생동물 이동통로 마련 등 실질적인 해결책 고민이 시급합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산양가족의 애처로움이 수문공사 인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산양 부부는 감금 나흘째인 15일 오전 ‘우연히’ 생겨난 수중철책 사이의 틈새를 발견하곤,그 사이로 큼직한 몸채를 밀어넣었다.철책 너머 기다리던 새끼와 합류한 이들은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곧장 가까운 산림 속으로 훌훌 사라져 버렸다.나흘동안 가둔 철책을 온전히 남북한 사람들의 숙제로 남기고…. 고성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특별탐사대 명단 ●전문가 김귀곤 서울대 농생대 교수(탐사대장),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심재환 광주서강정보대 교수,최승호 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 연구교수,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박희정 환경부 자연정책과장 ●기자 염주영 편집부국장,한만교 수도권부 차장,이종원 사진부 차장,손원천 사진부 기자,조한종·채수범 사회교육부 기자,박은호 공공정책부 기자 ■전문가 칼럼 지난해 늦가을 고진동 계곡 철책 앞에 서서 산양 암수 한 쌍이 짝짓기 놀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쫓기면서도 싫은 기색이 별로 없던 암컷과,죽어라 쫓아가던 수컷의 모습이 떠오른다.올 봄에 태어난 새끼는 지금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그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산양속(屬)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부터 미얀마,태국,중국을 거쳐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이 곳의 종(種)의 학명은 Naemorhedus caudatus로 4아종을 포함하는데,우리나라와 중국 두만강유역,연해주에 살고 있는 아종은 Naemorhedus caudatus raddeanus다.영명은 Amur goral.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올라있는 멸종 위기종이다.나라 안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17호로,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1968년부터 보호하고 있다.강원도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면서 향로봉·매봉,설악산·오대산,삼척 가곡지역,경북 울진 지역에 걸쳐 600∼700마리쯤 살아가는 것으로 보고된 매우 드문 짐승이다. 산양이 살아가는 곳은 삶터의 바탕이랄 수 있는 바위절벽과 풀밭이 함께 있는 곳이며 여름철에는 그늘진 숲속이나 바위 아래에서 지내고,겨울철엔 쉽게 눈이 녹아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위 비탈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살아간다.계절에 따라 옮겨다니며 봄철에서 가을철까지는 주로 초본류를 먹이로 삼고 겨울철에는 목본류를 주로 먹는다.산양은 야생에서 평균수명이 15살쯤이며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10∼11월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5∼6월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태어난 새끼는 1년 반에서 2년쯤 어미를 따라 다니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2살쯤 되면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가장 많은 수가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간섭이 덜한 민통선 지역이다.그러나 백두대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산양의 무리들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천적으로는 호랑이,표범,반달곰,늑대,담비,삵이지만 이 종들은 멸종되었거나 매우 드문 종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천적이다.어린 산양의 눈에 비친 세상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를 꿈꾼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 [서울신문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 전문가 칼럼

    지난해 늦가을 고진동 계곡 철책 앞에 서서 산양 암수 한 쌍이 짝짓기 놀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쫓기면서도 싫은 기색이 별로 없던 암컷과,죽어라 쫓아가던 수컷의 모습이 떠오른다.올 봄에 태어난 새끼는 지금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그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산양속(屬)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부터 미얀마,태국,중국을 거쳐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이 곳의 종(種)의 학명은 Naemorhedus caudatus로 4아종을 포함하는데,우리나라와 중국 두만강유역,연해주에 살고 있는 아종은 Naemorhedus caudatus raddeanus다.영명은 Amur goral.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올라있는 멸종 위기종이다.나라 안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17호로,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1968년부터 보호하고 있다.강원도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면서 향로봉·매봉,설악산·오대산,삼척 가곡지역,경북 울진 지역에 걸쳐 600∼700마리쯤 살아가는 것으로 보고된 매우 드문 짐승이다. 산양이 살아가는 곳은 삶터의 바탕이랄 수 있는 바위절벽과 풀밭이 함께 있는 곳이며 여름철에는 그늘진 숲속이나 바위 아래에서 지내고,겨울철엔 쉽게 눈이 녹아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위 비탈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살아간다.계절에 따라 옮겨다니며 봄철에서 가을철까지는 주로 초본류를 먹이로 삼고 겨울철에는 목본류를 주로 먹는다.산양은 야생에서 평균수명이 15살쯤이며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10∼11월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5∼6월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태어난 새끼는 1년 반에서 2년쯤 어미를 따라 다니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2살쯤 되면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가장 많은 수가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간섭이 덜한 민통선 지역이다.그러나 백두대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산양의 무리들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천적으로는 호랑이,표범,반달곰,늑대,담비,삵이지만 이 종들은 멸종되었거나 매우 드문 종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천적이다.어린 산양의 눈에 비친 세상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를 꿈꾼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서울공기 맑아졌다

    서울시내 공기가 맑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5월 시내 대기질을 측정한 결과,미세먼지가 평균 72㎍/㎥로 지난해 같은 기간 82㎍/㎥,2002년 100㎍/㎥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고 9일 밝혔다. 대기오염의 제1요인인 미세먼지가 줄어든 이유는 시내 자동차 통행량이 2002년 1억 74만 8000대에서 지난해 1억 70만 2000대로 감소했고,공사장 면적도 지난해 같은 기간 692만 5000㎡에서 489만 6000㎡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 생활주변 녹지 확대로 나대지 면적이 지난해 말 660만 3000㎡로 2002년 717만 6000㎡에 비해 감소했다.봄철 황사 발생일이 2002년 16일간 7차례에서 올해 나흘간 3차례로 크게 줄어든 것도 미세먼지 감소 원인으로 분석됐다.저공해 차량의 보급과 매연단속,도로청소 등으로 이산화질소(0.040),일산화탄소(0.6)의 수치가 각각 지난해에 비해 0.03∼0.1가량 줄어,0.002 증가한 오존(0.016)과 그대로인 이산화황(0.006)을 제외하면 대기오염과 관련된 모든 항목이 이전보다 개선됐다고 시 환경국은 밝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上)

    경주 남산(南山)은 불교설화 탄생의 무대다.화려하고 장엄한 남산의 위용은 산의 높이나 크기 때문이 아니다.높이로 볼 때는 해발 500m가 못되는 산이며,크기도 한국의 이름난 산들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그리하여 신라시대 제향하던 32명산 중에도 들지 못했던 것 같다.그런데도 남산은 신라 귀족의 발생지이자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성역(聖域)으로서 7세기 중엽 무렵부터 산간불교(山間佛敎)가 크게 번창했을 때 신라를 상징하는 불교미술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던 곳이다. 남산에는 지금 106군데의 사지(寺址),61기의 석탑,78체의 석불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용장사지(茸長寺址)에는 3층석탑 한 점과 삼륜대여래좌상 한 점이 전해지고 있다.이 곳 용장사지는 경주 남산에서 발생한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그러나 이 사건의 내용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 까맣게 잊혀 왔다.오늘 필자는 문제의 그 사건 속으로 여행하기 위하여 경주 남산을 오른다. ●3층석탑 주변 솔숲 산불도 비켜가 사건의 주인공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김시습은 1460년에서 1470년에 이르는 10여년 동안을 용장사에서 살았었다.그가 이곳에 살면서 남긴 유명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였다.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한 시기였다. 경주 남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하여 처음 이 산을 올랐던 1986년 겨울과 1987년 봄철에 보았던 금오산(金鰲山) 정상,동서남북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 울창하던 솔 숲은 몇 년 전 산불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을씨년스러운 상수리나무 몇 가지와 막 꽃이 지고 있는 철쭉 서너 포기가 너무나 늦게 찾아온 나그네 앞에서 울음을 참는 듯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 나들목으로 들어설 때 오른쪽 한시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남산은 거북등 같은 바위에 덮여 있다.남산의 주봉을 금오산이라 부르는데,鰲자는 큰 거북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 모양이 거북이나 자라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글자를 넣어 산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용장계곡 물소리는 옛 신라 승려들이 합창하는 범패(梵唄) 소리와 용장사 종루에서 푸른 새벽빛을 깨치던 종소리,계곡 물 속에서 눈을 뜬 채 잠들었던 산천의 잠을 깨우는 목탁소리,대지가 깨어나는 기척을 바람보다 먼저 알아채는 산새소리들이 소리로 화석이 되어 있다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듯 은은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용장사지 3층석탑에 이르는 산길에는 기적처럼 솔숲이 남아있다.남산을 집어삼켰다던 불길이 용장계곡 능선 조금 못 미친 기슭에서 뚝 멎었단다.소나무들은 모두 철갑을 두르고 있다.용장사지 역사와 남산의 신비를 수호하기 위해 철갑으로 무장한 신장들이다. 3층석탑 안내판은 여기가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임을 알리고 있다.필자는 3층석탑 그늘에 기대 앉아 가방 속에 든 자료 묶음을 꺼내어 펼쳤다.일본 공립여자대학(共立女子大學)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 교수가 보내준 기록이다. 일본에서 편집 정리한 조선왕조실록 중 ‘계미 조선 세조9년(7월)’이라고 인쇄된 부분이다.기타지마 만지 교수는 일본에서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는 원로학자이자 임진왜란 연구자로 유명하다. 김시습이 용장사를 크게 수리하여 지낼 때 그를 찾아왔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글은 ‘매월당집’에 들어 있는 그의 시집 제12권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수록되어 있다.‘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與日東僧俊長老話)’,‘섬 오랑캐의 거처(島夷居)’라는 제목의 시 두 편이다.필자는 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비밀을 풀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차문화,즉 다도(茶道)가 지니고 있는 미학의 세계는 조선의 농촌 초가 구조,청빈한 수행승들의 토굴문화,조선의 자연환경을 많이 닮은 데가 있다고 느껴오던 나머지였다. ●조선의 자연 닮은 日다도의 세계 일본의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에서는 먼저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 일본 관련 글자나 이름,사건 등이 나오는 부분을 일본역사와 비교하면서 다시 읽고 나서 정리를 한다고 한다.그런 뒤 일본 역사 기록에서 확인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관련 부분에 매우 정밀하게 적어 넣어서 읽는다. 필자는 매월당 시집에서 나오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준(俊)’이란 사람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타지마 만지 교수에게 연락을 했었다.기타지마 교수는 필자가 원하는 시기인 1460년에서 1470년 사이에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했던 사람 중에서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를 알려달라는 부탁에 대한 답신으로 이 기록을 보내주었다.필자는 일본 기록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무섭게 한국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승려가 일본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한 것은 1463년 7월14일이었다고 했다.이 기록에 나타난 준이라는 자와 김시습의 시 제목에 등장하고 있는 준이라는 자가 동일인인지 아닌지가 새로운 문제였다.필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김시습이 살았던 남산 용장사지를 찾아온 것이다.어떤 영감 같은 것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였다.다행인 것은 평일이어서 등산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고요한 시간 속에서 명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뻐꾸기 우는 소리 사이로 꾀꼬리 우는 소리가 고요의 속살을 간질인다.먼저 김시습의 시를 소리내어 읽는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 만하여라 ●日외교사절단 일행으로 조선 찾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준’이라는 승려가 그의 고향을 멀리 떠나온 사람이라는 것,준을 위하여 질화로에다 물을 끓여 차를 내놓고 있는 점,손님이 찾아 온 시기가 늦은 봄이라는 사실,나그네와 밤새워 이야기했다는 점이다.일본 기록에서 준이라는 자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7월14일이고,김시습을 찾아온 손님이 일본인이었다면 어떻게 두 사람이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인데,김시습이 일본어를 할줄 알았다든지 일본인이 조선말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든지,아니면 통역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세조실록’(세조 10년 2월17일 경자조)의 기록이다. “왜국 사자(使者) 중 준초(俊超) 등이 지난해에 하직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는데,이들이 영등포에 이르러 바람에 막히어 머물러 있었다.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예빈관 소윤 정침을 보내어 이들을 선위하게 하고 이르기를,‘듣건대 너희들이 여러 달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지대(指待)하는 모든 일이 소우했을 것이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니 나의 뜻을 알도록 하라.’하셨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루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만 하여라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上)

    경주 남산(南山)은 불교설화 탄생의 무대다.화려하고 장엄한 남산의 위용은 산의 높이나 크기 때문이 아니다.높이로 볼 때는 해발 500m가 못되는 산이며,크기도 한국의 이름난 산들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그리하여 신라시대 제향하던 32명산 중에도 들지 못했던 것 같다.그런데도 남산은 신라 귀족의 발생지이자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성역(聖域)으로서 7세기 중엽 무렵부터 산간불교(山間佛敎)가 크게 번창했을 때 신라를 상징하는 불교미술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던 곳이다. 남산에는 지금 106군데의 사지(寺址),61기의 석탑,78체의 석불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용장사지(茸長寺址)에는 3층석탑 한 점과 삼륜대여래좌상 한 점이 전해지고 있다.이 곳 용장사지는 경주 남산에서 발생한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그러나 이 사건의 내용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 까맣게 잊혀 왔다.오늘 필자는 문제의 그 사건 속으로 여행하기 위하여 경주 남산을 오른다. ●3층석탑 주변 솔숲 산불도 비켜가 사건의 주인공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김시습은 1460년에서 1470년에 이르는 10여년 동안을 용장사에서 살았었다.그가 이곳에 살면서 남긴 유명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였다.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한 시기였다. 경주 남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하여 처음 이 산을 올랐던 1986년 겨울과 1987년 봄철에 보았던 금오산(金鰲山) 정상,동서남북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 울창하던 솔 숲은 몇 년 전 산불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을씨년스러운 상수리나무 몇 가지와 막 꽃이 지고 있는 철쭉 서너 포기가 너무나 늦게 찾아온 나그네 앞에서 울음을 참는 듯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 나들목으로 들어설 때 오른쪽 한시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남산은 거북등 같은 바위에 덮여 있다.남산의 주봉을 금오산이라 부르는데,鰲자는 큰 거북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 모양이 거북이나 자라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글자를 넣어 산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용장계곡 물소리는 옛 신라 승려들이 합창하는 범패(梵唄) 소리와 용장사 종루에서 푸른 새벽빛을 깨치던 종소리,계곡 물 속에서 눈을 뜬 채 잠들었던 산천의 잠을 깨우는 목탁소리,대지가 깨어나는 기척을 바람보다 먼저 알아채는 산새소리들이 소리로 화석이 되어 있다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듯 은은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용장사지 3층석탑에 이르는 산길에는 기적처럼 솔숲이 남아있다.남산을 집어삼켰다던 불길이 용장계곡 능선 조금 못 미친 기슭에서 뚝 멎었단다.소나무들은 모두 철갑을 두르고 있다.용장사지 역사와 남산의 신비를 수호하기 위해 철갑으로 무장한 신장들이다. 3층석탑 안내판은 여기가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임을 알리고 있다.필자는 3층석탑 그늘에 기대 앉아 가방 속에 든 자료 묶음을 꺼내어 펼쳤다.일본 공립여자대학(共立女子大學)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 교수가 보내준 기록이다. 일본에서 편집 정리한 조선왕조실록 중 ‘계미 조선 세조9년(7월)’이라고 인쇄된 부분이다.기타지마 만지 교수는 일본에서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는 원로학자이자 임진왜란 연구자로 유명하다. 김시습이 용장사를 크게 수리하여 지낼 때 그를 찾아왔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글은 ‘매월당집’에 들어 있는 그의 시집 제12권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수록되어 있다.‘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與日東僧俊長老話)’,‘섬 오랑캐의 거처(島夷居)’라는 제목의 시 두 편이다.필자는 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비밀을 풀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차문화,즉 다도(茶道)가 지니고 있는 미학의 세계는 조선의 농촌 초가 구조,청빈한 수행승들의 토굴문화,조선의 자연환경을 많이 닮은 데가 있다고 느껴오던 나머지였다. ●조선의 자연 닮은 日다도의 세계 일본의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에서는 먼저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 일본 관련 글자나 이름,사건 등이 나오는 부분을 일본역사와 비교하면서 다시 읽고 나서 정리를 한다고 한다.그런 뒤 일본 역사 기록에서 확인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관련 부분에 매우 정밀하게 적어 넣어서 읽는다. 필자는 매월당 시집에서 나오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준(俊)’이란 사람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타지마 만지 교수에게 연락을 했었다.기타지마 교수는 필자가 원하는 시기인 1460년에서 1470년 사이에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했던 사람 중에서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를 알려달라는 부탁에 대한 답신으로 이 기록을 보내주었다.필자는 일본 기록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무섭게 한국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승려가 일본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한 것은 1463년 7월14일이었다고 했다.이 기록에 나타난 준이라는 자와 김시습의 시 제목에 등장하고 있는 준이라는 자가 동일인인지 아닌지가 새로운 문제였다.필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김시습이 살았던 남산 용장사지를 찾아온 것이다.어떤 영감 같은 것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였다.다행인 것은 평일이어서 등산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고요한 시간 속에서 명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뻐꾸기 우는 소리 사이로 꾀꼬리 우는 소리가 고요의 속살을 간질인다.먼저 김시습의 시를 소리내어 읽는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 만하여라 ●日외교사절단 일행으로 조선 찾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준’이라는 승려가 그의 고향을 멀리 떠나온 사람이라는 것,준을 위하여 질화로에다 물을 끓여 차를 내놓고 있는 점,손님이 찾아 온 시기가 늦은 봄이라는 사실,나그네와 밤새워 이야기했다는 점이다.일본 기록에서 준이라는 자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7월14일이고,김시습을 찾아온 손님이 일본인이었다면 어떻게 두 사람이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인데,김시습이 일본어를 할줄 알았다든지 일본인이 조선말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든지,아니면 통역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세조실록’(세조 10년 2월17일 경자조)의 기록이다. “왜국 사자(使者) 중 준초(俊超) 등이 지난해에 하직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는데,이들이 영등포에 이르러 바람에 막히어 머물러 있었다.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예빈관 소윤 정침을 보내어 이들을 선위하게 하고 이르기를,‘듣건대 너희들이 여러 달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지대(指待)하는 모든 일이 소우했을 것이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니 나의 뜻을 알도록 하라.’하셨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루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만 하여라˝
  • [28일 TV 하이라이트]

    ●귀여운 여인(오후 8시20분) 재하와의 결혼 축하 파티장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금례.향숙까지 축복의 말을 건네며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자 진심으로 행복해한다.한편 소연이 대웅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유진은 대웅이 정시에 재하의 파티장에 나타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라이프n조이(오전 8시25분) 스키장 가운데 봄철을 맞아 용도전환을 시도하여 ‘레포츠 파크’로 새롭게 태어난 곳들을 찾아본다.공중을 나는 쾌감을 선사하는 플라잉 폭스,상쾌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ATV(4륜 오토바이),야외 온천 등 자연 속에서 싱그러운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스키장의 이색 변신들을 들여다본다. ●일과 사람들(오후 8시20분) ‘생생 직업속으로’코너에서는 도서관 사서직에 대해 알아본다.국립중앙도서관의 정보봉사실,사회과학실,납본과 등의 업무를 들여다보고 어린이 도서관에서 하는 일도 함께 알아본다.인천항만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현재 인천 남항에서 크레인을 운전하고 있는 한월성씨의 업무 모습도 엿본다. ●TV 요리천국(오전 9시20분) 현대인의 무서운 성인병 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가 점점 늘어 한국의 성인 30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라고 한다.최근 들어서는 소아 발병이 늘고 있어 심각하다.한의사 편주리씨로부터 당뇨병에 좋은 식이요법과 예방·치료법을 듣고 당뇨환자에게 좋은 요리와 한방차 만드는 법을 배운다. ●여자플러스(오전 11시10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교육비를 줄이고 자녀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들의 똑똑한 자녀교육법이 눈길을 끌고 있다.유아교육 품앗이를 실천하고 있는 엄마들의 특별 교육법과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는 노하우,아이 특성에 맞는 공부법 등에 대해 알아본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밤 12시10분) 상큼 발랄한 모던 록,깊은 밤에 어울리는 R&B와 색소폰의 만남.실력있는 신인의 무대와,요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그룹을 함께 만나본다.신예 트리오 SG워너비,밴드 BUZZ,색소폰 연주자 대니정,R&B디바 ANN,신인가수 Mr.JUN과 함께한다. ●찔레꽃(오전 8시5분) 술에 취한 채 잠들었던 민규는 새벽녘에 깨어나 준서에게 유경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밝힌다.수옥이 이를 듣고 놀란다.유경은 명욱뿐 아니라 성희의 말조차도 믿을 수가 없다며 명욱에게 결혼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말해달라고 한다.한편 샤리의 노래교실로 테이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
  • 저잣거리로 내려온 사찰음식

    지리산 동쪽 끝자락인 경남 산청군 금서면 수월리 금서암.솔바람 대바람에 감싸인 오월 중순의 금서암은 고적하기 그지없었다.초입 가로수에 매달린 오색 연등과 맑고 고운 풍경소리만이 산사를 알려 줄 뿐이다. 차나무와 쑥 덤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마당 한쪽에 된장·간장 항아리 수십개가 햇빛에 반짝거렸다.불전의 향 보다 정겨운 된장 냄새에 여염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한 비구니가 나왔다.금서암 주지이자 사찰음식연구가인 대안(大安·45)스님이다.무테 안경을 쓴 스님은 해맑고 피부도 고왔다.무엇을 드시기에 저토록 고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대청 마루에 앉기를 권하곤 햇차를 내왔다.입안 가득한 차향에 머리까지 맑아졌다. 지난해 ‘사찰음식 다이어트’란 책을 낸 스님은 1985년 3월 출가하면서 음식과 연을 맺었다.“해인사로 출가했는데,그때 채공(반찬 만드는 일) 소임을 맡았지요.국일암에서 성원(86)노장을 모시면서 사찰 음식 조리법을 물흐르듯 익혔지요.”물론 어머니의 손맛 내림도 있을 듯하다.스님의 속가 형제들 가운데 4명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98년 6월 금서암 불사를 일으키면서 본격적인 ‘공양’을 시작했다.“천일기도 중이었는데,인부들의 식사 세끼에 새참 세끼를 1년 넘게 했지요.”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고,마을 방앗간까지 걸어가서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콩나물 기르고….이때 음식 실력이 쑥쑥 자랐고,인부들은 모두 ‘맛있다!’는 인사로 대안스님에게 답했다.“나중에 인부들이 고맙다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루치의 일당을 시주했지요.” 그리고 대안스님은 자신을 증거로 ‘사찰 음식은 약이다.’라고 강조했다.승가대학 재학 중이던 90년,스님은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란 진단을 받았다.“몸이 붓기 시작하더니 6개월만에 12㎏이나 늘었죠.”디스크에 좌골신경통,합병증까지 생겼다.“무엇보다도 피둥피둥 살찐 수행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했고요,저 자신도 위축되고 소심해졌지요.” 그래서 생사의 결단을 내려야겠다며 지리산으로 향했다.94년에 지금의 금서암 자리에 스러져가는 헌집을 마련하고,걸망을 풀었다.“나물과 약초를 뜯었고,밤을 줍고,송이를 따고…,선방 생활을 하다가 천일기도를 시작했지요.” 갑상선이 나았다는 진단은 98년도에 받았고,사찰음식으로 섭생한 결과 지난해에는 갑상선을 앓았던 흔적조차 없어졌다는 검진 결과를 받아냈다.“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깨달았지요.몸무게도 시나브로 정상으로 돌아와 가뿐합니다.”지금은 58㎏,산나물 위주로 된 사찰 음식이 약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안스님의 산나물 설법이 이어졌다.“나물의 백미는 들미순인데,경남 하동 사람들은 ‘두릅 팔아 들미 나물 사먹는다.’고 하지요.들미 나물은 1000m이상,고지대에 살아 따기 힘들지요.”또 봄나물이 좋지만 더욱 좋은 것은 월동 준비를 하는 가을철 어린 산나물이란다.영양분을 잔뜩 끌어모아 저장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곤 스님은 공양간(부엌)으로 들어갔다.손놀림은 분주한 듯 보였지만 딸그락거리거나 그릇 부딪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부엌일도 수행정진인 듯 조심스러웠다.산야초 초밥·함지쌈·엄나무순밥 등을 만들어 들고 나왔다.맛이 담백했다.달지도 짜지도 시지도 맵지도 않았다. 대안스님이 말하는 사찰 음식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수행정진에 열중하는 스님들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부드럽고,담박한 것이 특징이다.“사찰음식에는 청정(淸靜)·유연(柔軟)·여법(如法) 3덕이 있지요.”청정은 마늘·파·달래·부추·무릇 같은 오신채와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아 맛을 자연에 가깝게 내는 것이다.짜거나 맵거나 한 자극성이 없이 부드럽게 조리하는 유연이고,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반찬 가짓수는 적어도 골고루 내는 것이 여법이란 설명이다.“이 세가지 원칙만 지키면 성인병 걱정 없어요.요즘 사찰 음식이라고 하면서 기름에 튀기거나 구워내는 음식이 많은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한마디 주의를 줬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산사의 음식이 저잣거리로 내려왔다.“자연주의를 실천하는 사찰음식이 내려간 것은 바람직한데 손 닿는대로,속이 차도록 먹는 것이 아니라 절제가 가장 중요한 사찰음식의 의미입니다.” 금서암(산청) 글 이기철기자 chuli@ 금서암(산청) 사진 정연호기자 tpgod@ ■ 알寺한 맛집 사찰 음식을 저잣거리에서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식당은 서울 인사동 4거리 세종화랑 골목의 산촌(735-0312)이다.한때 스님이었다가 환속한 김연식(58)씨가 운영한다.점심 1만 8700원,저녁 3만 1900원으로 가격이 비교적 센 편이다.메뉴는 들깨죽·생두부·튀김요리 등 16가지가 나온다.그러나 저녁에 한국전통무용과 승무 공연이 있어 점심보다 더 비싸다.일반인들을 위해 파·마늘·부추 등 오신채를 넣는데,진짜 사찰음식 맛을 원하면 하루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또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쌈장 등과 같은 장류와 장아찌·한과·공예품 등도 함께 팔아 외국인들로부터 인기가 높다.최근엔 경기도 고양시 벽제역에서 보광사 가는 길목에 고양점(031-969-9865)을 냈다.고양점의 ‘스님 공양상’은 인사동과 마찬가지로 16가지가 나오는데 1만 5000원이다. 서울 삼청동 정독도서관 골목의 감로당(3210-3397)은 사찰 음식을 32년째 연구하고 있는 이여영(53)씨가 운영한다.오신채를 먹지 않는 남편의 식성에 맞추다가 불교음식에 빠져 아예 음식점을 차렸다.점심은 25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2만 3000원,저녁에 3만 8000원이다.계란은 물론이고 젓갈이나 멸치도 사용하지 않는 순수 채식식당이다.일품요리로는 표고버섯유자탕수·연근오미자탕수·별미 잡채 등이 1만 5000∼1만 8000원이다.이씨는 내달 2일 사찰음식 강의를 앞두고 25일까지 수강신청도 받고 있다. 서울 안국동로터리에서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소심(734-4388)도 채식인들 사이에 유명한 식당이다.투박한 듯 보이는 나무 탁자와 의자가 오히려 정겹다.주인 김인혜(55)씨는 “스님들의 음식이 건강식이라 관심이 많았는데,집에서 먹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젓갈은 물론이고 오신채도 쓰지 않는다.정식은 1만 5000원,비빔밥 7000원,버섯전골(저녁)은 1인분에 1만원이다. ■대안스님의 사찰 요리조리 대안스님은 조계사 수선회와 연을 맺어 불가에 입문했다.전북 전주 출생.오랜 정신적 방랑을 끝내고 85년 3월 해인사로 출가했다.국일암의 노스님을 시봉한 것을 계기로 사찰 음식을 본격 익혔다.대중들의 마음의 살까지 빼기 위해 ‘사찰음식 다이어트’란 책을 냈다. 대안스님은 대구 불교방송에서 사찰음식에 대해 강연하고,시연회를 하는 등 ‘절밥’ 대중 공양을 위해 애쓰고 있다.지금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의 금서암(055-973-6601) 주지를 맡고있다. ●스님과 만드는 산야초 초밥 재료 두릅·더덕·새송이·곤달비·우엉·생고사리·개발딱주·표고버섯·제핏잎 적당량,간장·참기름·깨 적당량 만드는 법 (1)각종 산채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끓는 물에 데쳐낸다.(2)더덕은 돌려깍기를 해서 고추장 양념을 해서 팬에 구워낸다.(3)우엉도 돌려깍기를 해서 촛물에 조려낸다.(4)생고사리는 삶아 간장과 참기름에 볶아내고,버섯은 모양대로 썰어 간장과 참기름에 덖는다.(5)산채나물은 간장·참기름·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낸다.(6)초밥에 (5)의 산채나물을 얹거나 돌려감아 접시에 담아낸다. 촛물 만들기 재료 진간장·감식초·조청 ½큰술,설탕 1큰술,집간장 약간. 만드는 법 (1)양조 간장을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설탕과 나머지 재료를 넣고 끓인다.(2)약한 불에 오래도록 끓여 걸죽하게 만든다.(3)식힌 다음 밥에 섞어 모양대로 밥을 만든다. 팁 (1)불린 쌀로 물을 약간 적게 넣어 고슬고슬 밥을 지어 식힌다. ●함지쌈 재료 감자 1개,당근¼개,표고버섯 2장,새송이버섯½개,오이 ⅓개,청·홍 피망⅓개씩,쌀종이(라이스 페이퍼) 2장,곤달비 2장,(볶은)소금·겨자 약간씩 만드는 법 (1)감자를 쪄서 뜨거울 때 소금과 겨자를 넣고 으깨놓는다.(2)당근과 표고·새송이버섯은 잘게 썰어 볶는다.(3)오이는 잘게 썰어 소금과 식초로 간한다.(4)청·홍 피망은 잘게 썰어 소금과 식초로 간한다.(5)으깬 감자에 (2)∼(4) 재료를 넣고 섞는다.(6)쌀종이를 뜨거운 물에 넣어 적셔내면 부드럽게 된다.(5)를 모양있게 싸서 적당히 썬다. ●방아전 재료 방아 100g,제핏잎 20g,된장 1작은술,고추장 1작은술,밀가루 3큰술,들기름(또는 식용유) 적당량 만드는 법 (1)방아와 제핏잎에 된장과 고추장·밀가루를 골고루 섞어 반죽한다.(2)반죽은 약간 걸쭉하게 한다.밀가루가 많이 들어가면 딱딱해 맛이 없어진다.(3)팬을 달궈 (2)를 한 숟가락씩 떠 올려 굽는다.식용유보다 들기름에 구우면 감칠맛이 더한다. ●생고사리 들깨찜 재료 생고사리 100g,쌀가루 1작은술,들깨가루 1큰술,집간장·들기름 1큰술씩 만드는 법 (1)생고사리는 싱싱한 것으로 골라 바로 데친다.(2) 데친 고사리는 물에 담그지 말고 들기름을 두른후 볶는다.(3) (2)에 집간장으로 간하고 물을 자박하게 부어 끓으면 들깨가루와 쌀가루를 넣어 익힌다. 팁 여름에는 생들깨를 갈아 깨국이 진하지 않게 먹으면 원기를 돋운다. ●엄나무순밥 재료 엄나무순 50g,불린 쌀 1국자,표고버섯 1개,양념장 만드는 법 (1)엄나무순을 잘게 썰어 밥을 앉힌다.(2)표고버섯은 곱게 채를 썬다.(3) (1)과 (2) 함께 넣고 밥을 지은 후 양념장을 곁들인다. 양념장(집간장 1큰술,양조(진)간장 2큰술,청·홍 고추 각 2개,표고버섯(다져 볶은 것) 1개 팁 엄나무순은 봄철 입맛을 돋우는 약용식물이다. ●가죽부각 재료 가죽나무순 200g,찹쌀풀 100g,집간장 3큰술,통깨 조금,식용유(튀김용) 적당량 만드는 법 (1)가죽나무순은 그늘에 말려 조금 시들게 한다.(2)시든 가죽나무순에 찹쌀풀,집간장과 통깨를 넣고 묻혀 줄에 매달에 그늘에 말린다.(3)튀김솥에 식용유를 조금만 두르고 (2)를 튀겨낸다. ˝
  • [15일 TV 하이라이트]

    ●찾아라!맛있는TV(오전 11시5분) 봄철 산란기를 맞아 맛의 전성기를 맞은 주꾸미 요리를 소개한다.‘맛 7’에서는 싱싱한 쌈요리 열전이 펼쳐진다.봄에 꼭 필요한 비타민과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줄 다양한 쌈요리.경주 숙쌈,여수 생선조림쌈,월남쌈,새우초쌈까지 다양한 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씨네24(낮 12시25분) 임권택 신중현 정일성 등 거장들이 뭉쳐 만든 영화 ‘하류인생’.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황폐한 인생을 살아가야 했던 그 시절 한 젊은이의 삶을 통해 역사 속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의 꿈과 삶을 돌아본다.또한 역사상 가장 많은 진출작을 낸 제57회 칸 영화제도 살펴본다. ●청소년 원탁토론(오후 6시50분)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맞는 스승의 날.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스승의 의미와 위치를 살펴본다.또 진정한 선생님은 어떤 모습이며,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는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는지 등을 함께 생각해 본다. ●뮤직 ($) 조이(오후 6시) 30여년동안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세계 음악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적 스승이자,우상으로 군림한 뮤지션 카를루스 산타나.밴드 ‘산타나’시절 음악부터 최근 그를 존경하는 많은 동료·후배들이 함께한 ‘산타나’표 불후의 명곡들까지 라틴록의 선구자 산타나의 무대로 찾아간다. ●그것이 알고싶다(오후 10시55분) 베리아트릭 위절제수술.고도비만의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 ‘베리아트릭 수술’의 효과와 위험성 등에 대해 국내 전문가와 미국 현지를 심층 취재하고,쏟아져 나오는 비만 관련 산업들 속에서 비만 극복을 위해 사회와 개인이 선택해야 할 바람직한 접근법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MC서바이벌(오후 10시) 첫번째 테스트는 최고의 예능 MC 이혁재,코요태와 함께 좌우,앞뒤로 흔들리는 놀이기구를 타고 현장에서 주어진 돌발 주제로 자연스럽게 리포팅을 해야한다.두번째 테스트는 MC서바이벌이라는 제시어로 펼쳐진 쿵쿵따.노련한 선배들과 패기의 후배들이 펼치는 불꽃튀는 대결이 펼쳐진다. ●한국사회를 말한다(오후 8시) 어디서,어떻게 없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5·18 실종자들.그래서 끊임없이 암매장 의혹 등이 제기돼온 70명의 실종자에 대한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조명해본다.또한 추적 과정에서 부딪히는 한계들을 통해 그동안 왜 광주학살의 진상이 밝혀질 수 없었는지도 꼼꼼하게 살핀다. ˝
  • [하프타임] 최윤희, 14일만에 또 한국新

    한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희망 최윤희(19·김제여고)가 14일 만에 또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최윤희는 12일 강원도 횡성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3m66을 뛰어 지난달 28일 봄철중·고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종전기록(3m65)을 1㎝ 끌어올렸다.8번째 한국기록을 갈아치운 최윤희는 연내 4m벽을 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 서울 도심서 만나는 ‘황해도 굿판’

    우리 전래의 무속이면서도 여간해선 접하기 힘든 굿판을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국립국악원이 ‘한국문화의 원형찾기’ 첫 무대로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국악원 야외무대 별맞이터에서 펼치는 ‘황해도 꽃맞이굿 33거리’가 그 무대.인천지역 황해도굿보존회인 ‘한뜻계’에 속한 8명의 만신들이 황해도 지방의 정통 꽃맞이굿을 3일간 이어서 펼치는 보기 드문 무대다.‘꽃맞이굿’은 봄철에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신을 대접하기 위해 벌이던 굿으로 가을에는 ‘햇곡맞이’‘신곡맞이’,또는 ‘단풍맞이’라고 부른다. 이번 굿판은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일반적인 정통 꽃맞이 굿거리를 기본틀로 하되 박선옥 김매물 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황해도 만신들의 고유한 굿거리를 한데 모아 총 33거리로 구성했다.이중에는 학계나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타지방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 굿거리들이 여럿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특히 셋째날 ‘호살량굿’은 박선옥 만신이 유일하게 전승하고 있는 황해도 굿거리.호랑이에게 먹혀 죽은 원귀들을 풀어 먹이는 굿거리이다.강신무 계열 굿의 가장 큰 특징인 ‘작두타기’를 두번 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첫째날에는 돼지를 잡기 전에 타는 ‘소작두’,둘째날에는 돼지를 잡은 뒤 타는 ‘육작두’를 선보인다. 공연 형식으로 재구성하지 않고,보통 굿당이나 무당집에서 펼쳐지는 굿판 그대로 재현하는 것 역시 드문 시도.동이 트기 전 굿을 시작하는 관습대로 첫째날인 15일 오전 7시부터 ‘신청울림’으로 굿판을 시작한 뒤 끝나는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3일간 무박으로 이어진다. 민족음악학 박사인 서마리아(미국 워싱턴주립대)교수가 일반인과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 해설 및 통역을 맡는다.서 교수는 “한국 무속신앙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무척 크다.”면서 “우리 관객들도 굿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행사기획에 참여한 박흥주 굿연구소장은 “일반인에게 굿을 원형 그대로,또 각 만신들의 굿거리를 합동으로 보여주는 무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설명했다.3일간의 굿판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02)580-3300. 이순녀기자 coral@˝
  • [이집이 맛있대]이번 주말에 뭘 먹을까

    ‘테이블 뷔페’가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의 일식당 (531-6477)에 도입됐다.이는 음식을 손님의 테이블로 갖다 주는 것으로,고객이 뷔페식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없앤 것이 특징.메뉴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샐러드·초밥·생선회·새우와 야채 튀김·생선구이·볶음밥 등 9가지다.2인 이상 주문 가능.1인당 3만원. 가정의 달인 5월에 맞춰 가족초밥 특선잔치가 63빌딩 뷔페 63분수프라자(789-5731)에서 20일까지 열린다.기존의 생선초밥 외에도 항구에 정박된 군함 모양을 본뜬 군함초밥·자연송이초밥·장어말이초밥·토마토초밥 등 15종의 퓨전식 초밥이 나온다.점심 4만원,저녁 4만 5000원. 일본식 생선회와 초밥 특선이 밀레니엄 서울힐튼 일식당 겐지(317-3240)에서 이달 말까지 선보인다.계절 생선회 일품 요리로 일륜초(15만원)·삼륜초(10만원) 등이 있고,초밥으론 창포(6만원),목련(4만 5000원)등이 있다. 또 주말과 공휴일의 일식 뷔페에는 40여가지의 일식 요리가 나온다.4만원. 봄에만 맛볼 수 있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다음달 말까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이탈리아식당 피렌체(559-7516)에서 소개한다.순을 먹는 채소로서 동양의 죽순에 대비되는 흰색 아스파라거스는 땅속에 있을 때 수확한 것으로,봄철에만 생산된다. 수프와 메인 등 5가지가 나온다.요리 1개에 9000∼2만 7000원.˝
  • MBC 새달 ‘아가씨와‘·‘두근두근‘ 선봬

    MBC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주부와 10대 자녀 등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요 시트콤 두편을 잇따라 선보인다. 새달 9일(오전 10시) 첫 전파를 타는 명랑 가족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와 15일(오후 1시10분) 첫 방영되는 ‘두근 두근 체인지’. ‘아가씨‘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네명의 여자가 좌충우돌하며 ‘여자’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진솔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린다.‘화려한 더블’조미령,‘화려한 싱글’한성주,‘초라한 더블’추소영,‘초라한 싱글’황보 등 4명의 개성강한 여자 주인공들이 등장,일·사랑·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딪히는 갈등을 통해 ‘행복의 기준은 아가씨와 아줌마의 구분이 아닌 여성의 가치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조형기가 늦은 나이에 봉선화 연정을 튀우려 몸부림 치는 가장으로 나와 극중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할 예정. ‘…체인지’는 10대를 타깃으로 최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얼짱 문화’를 정면으로 다룬 국내 유일의 청소년 트렌드 시트콤.기존 시트콤들에서 보여준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들에서 탈피,톡톡튀는 개성을 지닌 못생긴 여고생 3총사인 일명 ‘시루떡 시스터스(홍지영·박슬기·조정린)’의 눈과 마음을 통해 현재 청소년들이 가진 고민과 관심을 조명한다. 특히 세명의 여고생이 머리를 감으면 잠시동안 미인으로 변하는 ‘마술 샴푸’를 얻어 변신을 꾀한다는 만화적인 발상을 통해 ‘얼짱 문화’의 현주소와 문제점도 짚는다. 지난달 22ㆍ23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바 있는 ‘…체인지’는 만화적 CG와 자막을 사용하는 등의 실험을 감행,눈길을 끌었다.최근 만화 풍의 드라마가 유행하는 것과 맞물려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낸 바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녹색공간] 숲은 물 머금은 ‘그린댐’ /오정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프랑스의 토털 디자이너 장 미셸 빌모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특성을 소나무·화강암·물로 귀결시킨 바 있다.그는 이 한국적 이미지를 인천국제공항 실내 조경,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인사동 인사아트센터 등 10여개가 넘는 건축 작품에 적용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웬만한 곳의 물이면 별탈 없이 마실 수 있는 천혜의 땅에 살고 있다.대나무 관을 따라 흐르는 산사의 물,마을 뒷동산 한 쪽에 자리잡은 약수터의 물,깊은 산 속 개울물 등 여러 곳의 물을 마셔본 경험이 있다.우리가 이렇게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빌모트의 지적처럼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우리나라 모암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산림학자들은 우리 물이 좋은 이유를 산원수(山源水)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산원수란 국토의 65%가 산림지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떨어지는 빗물의 3분의2가 산림에서 기원된다는 의미를 가진다.우리나라 수자원 총량은 1267억t이므로 823억t의 물이 숲을 통해 공급되는 것이다.우리나라 산림은 약 180억t의 물을 저장한다고 한다.춘천에 위치한 소양호가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보다 10배나 많은 물을 숲이 머금고 있다. 요즈음 숲을 보는 도시민의 시각은 목재를 생산하는 경제적 기능보다는 경관과 생활환경을 보전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낙동강이 구미공단을 지나면서 오염되었다느니 한탄강이 염색 공장으로 인해 오염되고 있다느니 하는 수질오염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자연 물에 대한 관심이 숲으로 이어지고 숲은 항상 깨끗한 자연이라는 이미지를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다. 산림은 여러 가지 형태로 물을 담고 있다.겨울에는 새하얀 눈이 산봉우리를 덮고 있으며 꽁꽁 얼어붙은 얼음이 개울을 덮고 있다.봄에는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투명한 물이 흘러내리며 여름에는 흙과 뒤범벅이 된 흙탕물이 산을 빠져 나간다. 그러나 산원수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깨끗하고 신선한 천연성이며 항상 흘러내리는 지속성이다.청량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숲이 물을 정화하는 수질 보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빗물은 우거진 수관을 통과하여 줄기를 흘러내리며 갖가지 풀이 어울려 있는 초본층을 통과한 후 다시 낙엽층과 토양층을 지나면서 여과되어 지하수가 되기 때문에 옹달샘으로 용출한 물은 항상 천연음료로서의 청량함을 지니고 있다. 산원수가 지속성을 지니는 이유는 숲이 녹색댐이기 때문이다.토양층으로 연결되는 두꺼운 녹의(綠衣)는 스펀지와 같이 많은 양의 물을 머금을 수 있다.산림토양은 토양구조가 매우 발달하여 공극(孔隙)이 많다.숲속을 걸어갈 때 푹신거리는 느낌이 바로 이 때문이며 공극이 많을수록 물을 더 많이 머금을 수 있고 머금은 물을 천천히 흘려 보낸다.따라서 산림유역에 형성된 하천은 사시사철 풍부한 물이 흐르는 것이다. 나무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싹이 트는 봄철에는 물을 많이 소비한다.광합성을 하면서 뿌리로부터 잎을 통해 대기로 물을 뿜어내는 증산활동을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혹자는 산에 나무가 있으면 물이 줄어든다고 우려한다.이러한 현상은 모든 숲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숲에 나무가 너무 밀생할 때 나타난다.우리 숲은 70% 정도가 청년기에 속해 있다.나무들끼리 서로 빨리 자라려고 경쟁하는 시기이다.따라서 숲이 물을 많이 머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밀도로 솎아베기를 해주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숲을 잘 가꾸어주면 40년 뒤에는 지금보다 40%의 물을 더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물이 휘발유보다 더 비싼 요즈음 더 풍부하고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 숲가꾸기에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오정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
  • 강릉 32.7도… 어제 ‘4월의 여름’

    18일 강릉지역 낮기온이 한여름 날씨인 32.7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춘천 29.2도,원주 29.5도,서울 27.3도,충주 28.6도 등 대부분 지방이 30도 가까이 올랐다. 한편 이날 남부지역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19일 오전까지 전국적으로 내리다 오후부터 서서히 갤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남서쪽에서 습기를 포함한 따뜻한 바람이 유입돼 남부지역에는 비가 내리고 경기·강원 일부지역의 기온이 급상승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19일 오후까지 예상되는 강수량은 서울·경기 등 중부지역 5∼30㎜,전남·경남·강원 영동 20∼40㎜,제주 30∼80㎜이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 16도,전주 14도 등 11∼16도,낮기온은 서울 21도,대구 23도 등 18∼24도의 분포를 보이겠다. 기상청 최치영 예보관은 “봄철 내리는 비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겠지만 전국에 걸쳐 내려진 건조주의보가 해제될지는 미지수”라면서 “비가 온 뒤에도 기온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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