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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소 탐방/인천 남구] 치매노인 재활 온 정성

    [보건소 탐방/인천 남구] 치매노인 재활 온 정성

    인천시 남구에서 치매노인을 모시고 있는 가족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심신이 한결 편한 편이다. 치매노인을 돌보느라 외부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타 지역의 가족들과는 사정이 자못 다르다. 남구 보건소가 운영하는 치매센터 ‘돌봄의 집’이 가족 이상의 역할을 단단히 해내기 때문이다. ●종이접기 등 반복, 인지기능 향상시켜 지난 2000년 1월 인천 최초로 문을 연 돌봄의 집은 특이한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노인의 재활을 돕고 있다. 인지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림그리기·종이접기·공고르기 등 단순하지만 두뇌를 회전시켜야 하는 일을 반복토록 한다. 쉽사리 포기하지 않도록 하려면 재미도 있어야 한다. 지난 설에는 만두빚기를 했는데, 노인들이 너무 좋아했다. 어눌하지만 만두를 빚으며 옛 얘기를 할 때는 정상인과 다름없었다. 치매노인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30여명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는다. 구청 차가 이들의 ‘발’이다. 이로 인해 경로당을 연상시키지만 두뇌기능 향상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노인대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사와 간병인, 간호사 등 9명의 전문인력 외에 40여명의 자원봉사자도 빼놓을 수 없는 노인들의 ‘친구’다. 주로 대학생인 이들은 수시로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고 원예·붓글씨 등을 함께 함으로써 노인들의 두뇌활동을 돕고 있다. 거동이 힘든 치매노인을 위해서는 가정방문팀이 적극 나선다. 간병인과 간호사로 구성된 이들은 환자당 1주일에 2번씩 방문한다. 건성건성 몸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을 꼬박 할애해 가족들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준다. 치매환자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봄의 집에 모여 치료정보를 교환하는 등 ‘동병상련’을 나눈다. 이같은 치매관리사업이 호응을 얻자 인천시는 예산 지원을 통해 남구를 제외한 7개 구에도 이를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정신질환자를 위해서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보건소 3층에 정신보건실을 설치, 정신장애인을 찾아내 등록시킨 뒤 집단 상담과 교육 등을 통해 치료를 한다. 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병력자들이다. 대부분 퇴원 후에 정신병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 받는 현실을 감안한 사업이다. 따라서 경제적 여건 등으로 정신질환자를 장기간 입원시킬 수 없었던 가족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청소년 금연은 보건소가 새로운 테제로 설정한 사업이다. 보건소의 모든 직원들은 지난해 수차례 피켓 등을 들고 거리에서 금연홍보를 벌였을 정도로 청소년 금연에 열성이다. ●청소년 금연운동에도 열성 관내 운봉공고에서 ‘청소년 금연교실’을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53회나 초·중·고교를 돌며 흡연 예방교육을 펼쳤다. 잠재적 청소년 흡연 가능군(群)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유치원생도 교육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보건소측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다음달 중 ‘금연 클리닉’을 설치하면 본격적인 청소년 금연사업이 전개된다는 것. 금연클리닉에서는 전문강사를 동원한 1대 1 상담, 영상교육, 폐활량 자가체험 등을 펼치게 된다. 이를 위해 현재 5명의 상담사 등 전문인력을 공채 중이다. 또 패치, 니코틴껌 등 금연보조제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지역보건팀 장해순씨는 “금연클리닉을 위해 올해 상당한 예산이 배정됐으므로 흡연자를 최장 6개월까지 관리하는 등 금연프로그램을 철저하게 진행시키겠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이달 무대에 오르는 ‘3色 뮤지컬’

    이달 무대에 오르는 ‘3色 뮤지컬’

    봄의 기운이 꿈틀대는 2월. 한국·미국·프랑스 뮤지컬이 비슷한 시기에 기지개를 펴고 관객들을 유혹한다. 같은 장소에서 잇따라 공연되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노트르담 드 파리’는 원작 무대. 이에 맞서 국산 뮤지컬 ‘명성황후’가 4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라 외국산 뮤지컬과 자존심 대결을 벌인다. ●명성황후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초연된 순수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는 올해 공연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130여명의 스태프와 240여명의 배우들이 거쳐 갔으며,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국내외 580여회 공연을 통해 약 77만명의 관객을 동원,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공연은 10년간 숙성된 노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8년째 ‘명성황후’ 역을 해오고 있는 이태원을 비롯해 2대·4대 ‘명성황후’인 김원정·이상은 등 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무대에 올라 3색 국모 연기를 펼친다.22일까지.3만∼11만원.(02)575-6606. ●사운드 오브 뮤직 2월12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영화로도 익숙한 뮤지컬 고전.195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1443회나 공연됐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주인공 ‘마리아’를 맡은 제니퍼 셈릭을 비롯해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 58명이 출연한다. 무대 세트도 9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던 것을 서울로 그대로 옮겨 온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본 트랩 대령 가족과 마리아가 벌이는 사랑 이야기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에델바이스’‘도레미송’‘외로운 양치기’‘내가 좋아하는 것들’ 등 뮤지컬 넘버로도 더 유명하다.23∼27일 부산문화회관에서도 공연한다.3만∼14만원.(02)586-1242. ●노트르담 드 파리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 그대로 살려 주목받는 작품. 프랑스에서 200만 관객을 동원,‘국민 뮤지컬’로 불릴 만큼 대성공을 거뒀다. 오리지널 공연은 한국이 처음. 대사 없이 모두 54곡의 노래만으로 진행되는데 각각의 곡이 단번에 귀를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다. 아크로바틱을 결합한 현대적인 안무에 디즈니 뮤지컬과 달리 비극미를 살려 성인층을 타깃으로 했다.25일∼3월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4만∼15만원.(02)501-137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방학사거리에 ‘바이오톱’ 조성

    의정부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방학사거리에 물을 주제로 한 소규모 생물서식공간(바이오톱·조감도)이 조성된다. 서울 도봉구(구청장 최선길)는 26일 방학동 678 일대 1만5780㎡(4773평)의 방학사거리 녹지대를 연말까지 분수, 연못, 잔디광장, 상징조형물 등을 갖춘 테마형 수경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1982년 나무와 잔디밭으로 꾸며져 교통광장의 역할을 하는 현재의 녹지대는 주변 주택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노숙자나 탈선 청소년 등이 모이는 우범지역으로 바뀌어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구는 사거리 교차로마다 하나씩 사계절을 주제로 한 친수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도봉구 지역이 북한산, 초안산 등 녹지는 많지만 생활공간에서 청량감을 주는 친수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봄의 마당’에는 서울의 관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생기고 ‘여름 마당’에는 서울광장 분수대와 같은 바닥분수가 설치된다. ‘가을마당’에는 중랑천·방학천과 연계된 소규모 생태연못과 소나무 동산을 만들고,‘겨울마당’에는 잔디광장을 조성해 주민들의 문화·체육활동 등이 열리도록 한다. 공사에는 시비등 모두 26억원이 투입된다. 최 구청장은 “계절에 맞는 수종의 나무와 꽃을 각 마당에 심어 자연의 정취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웰빙 최적구’라는 구의 목표에 맞는 바이오톱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파리 웨딩페어’서 선보인 올봄 웨딩드레스

    ‘파리 웨딩페어’서 선보인 올봄 웨딩드레스

    |파리 함혜리특파원| 올해는 어떤 스타일의 웨딩드레스가 유행할까?어떻게 하면 더욱 아름다워 보일까?나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예비 신부들의 이같은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 수 있는 행사 ‘살롱 뒤 마리아주’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파리의 카루젤 뒤 루브르 전시장에서 열렸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웨딩페어인 ‘살롱 뒤 마리아주’는 결혼식장, 예물, 연회, 예복, 신혼여행 등 결혼에 관한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어 결혼식 날짜를 잡고 초조해 하는 예비 커플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올해로 아홉번째를 맞는 이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하루 3차례씩 진행된 웨딩드레스 패션쇼. 이번 웨딩페어에 참가한 디자이너 부티크들과 유명 웨딩드레스 메이커들이 선보인 100여점의 드레스들을 통해 올봄의 웨딩드레스 유행경향을 살펴본다. ●모던 터치의 클래식한 디자인이 강세 다른 의상과 마찬가지로 웨딩드레스도 복고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에 몸의 라인을 살려주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드레스가 유행이다. 단순한 라인이지만 등을 과감하게 파거나 어깨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기 때문에 우아함과 관능미가 동시에 우러난다. 특히 아랫단이나 허리에 주름, 겹 망사, 웨이브 장식 등을 가미하거나 깃털로 부분 장식을 하는 방식으로 모던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한 의상인 만큼 실크, 공단, 실크 시폰, 레이스 등 고급스러운 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남불의 정서를 가득담은 작품들을 내놓은 디자이너 솔랑주 마예는 “웨딩드레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그러면서도 약간은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포인트”라며 “올해 유행 스타일은 고전적인 라인에 깃털장식이나 스커트 길이의 불규칙함 등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엠마뉴엘 웅가로 디자인의 프로노비아스(Pronovias) 제품들도 스커트 부분의 볼륨이 많이 줄어들고 몸의 라인을 부드럽게 살려주는 자연스러운 드레스가 대부분. 그러면서 망사, 레이스, 주름, 깃털 장식 등으로 디테일을 처리함으로써 현대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개성파를 위한 튀는 디자인들 웨딩드레스의 색상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이나 아이보리색이 80% 이상으로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개성파들이나 재혼하는 신부들은 색깔있는 드레스를 선호한다. 이번 패션쇼에서는 ‘카르멘’의 여주인공이 입었던 것 같은 붉은 색의 웨딩드레스를 비롯해 흑색과 백색의 조화를 이룬 드레스, 연두색 드레스, 짙은 핑크색 깃털 장식의 드레스 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드레스들이 선보였다. 그런가하면 올해 유행하는 데님 소재를 활용한 웨딩드레스도 소개됐다. 또 레이스 소재를 활용해 속살이 비쳐 보이는 관능적인 드레스, 배꼽이 드러나는 벨리댄스 스타일의 드레스, 바지로 된 웨딩웨어 등도 관심을 모았다. ●더욱 화려해진 남성 예복 결혼식날 신부만 아름다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메트로섹슈얼 붐을 타고 요즘 신랑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남성예복 전문 디자이너 파트리스 폰타나(크레아시옹 모르간)는 “평범한 옷차림을 즐기는 남성들도 결혼식날 만은 용기를 내어 한껏 멋을 부리고 싶어한다.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장식적인 측면이 줄어드는 것과 반대로 신랑들의 예복은 화려해지면서 여성화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설명했다. 상의의 길이는 길어지고 조끼는 밝고 화려한 꽃무늬 혹은 진한 핑크색 등 튀는 색깔이 인기다. lotus@seoul.co.kr 사진 제이 레일리(Jay Reilly)
  • ‘송구영신 이벤트’ 음악회 어때요

    소프라노 조수미가 2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송년 콘서트 ‘아름다운 도전 2005’를 연다. 서울신문사가 후원하는 이번 공연은 특히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기업인들을 위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레퍼토리는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대의 음성’ 등의 유명 아리아를 비롯해 ‘시네마 천국’‘타이타닉’ 등 영화 주제곡을 두루 들려준다. 수익금 일부는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02)582-1621. 또 예술의전당 기획으로 해마다 매진사례를 기록해온 제야·신년 음악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 ●제야음악회 31일 오후 10시 콘서트홀에서 막올리는 제야음악회의 주제는 ‘사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차이코프스키 발레모음곡 ‘호두까기 인형’중 ‘꽃의 왈츠’,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이 연주된다. 카운터테너 이동규, 클라리네티스트 김동진, 피아니스트 강충모,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장윤성)가 협연한다. 번잡한 시내가 아닌 운치있는 공연장 앞마당에서 화려한 불꽃놀이로 한해 마지막 순간을 접을 수 있어 더 좋다. 자정 직전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앞마당으로 나가 ‘올드랭사인’을 합창하며 새해를 맞을 수 있다. ●신년음악회 새해 첫날 오후 5시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에도 지난 2002년부터 지휘봉을 잡아온 정명훈이 격조 높은 무대를 책임진다. 피아니스트 이경숙,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교향곡 4번’ 등을 연주한다. 정명훈과 이경숙의 피아노가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02)580-130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안 오르면 후회” 제주 오름 트레킹

    “안 오르면 후회” 제주 오름 트레킹

    육지에는 겨울이 오고있지만, 제주는 가을에 점령됐다. 도로가의 억새가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돌담 안, 밀감밭에는 노랗게 익은 귤들이 이국적이다. 제주도에선, 그것도 가을의 제주도에선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그 유명한 성산일출봉도 아니고 우도, 섭지코지도 아니다. 바로 ‘오름’이다. 여기저기 야트막하게 솟아있는 제주도 오름에서 늦게 만난 가을은 아쉽게 떠나보낸 서울의 가을보다 더 감미로웠다. 가을 제주도의 오름에 올라보지 않고 제주도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그건 오만이다, 무지(無知)다. ●오름에서 맞이하는 아침 제주도에 있는 기생화산구인 오름은 제주사람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이다. 이름없는 민둥산처럼 보일지라도 예로부터 부르던 이름이 있고 나름의 전설과 사연이 깃들여져 있다. 또한 오름은 사람들이 마을제사인 포제를 지내는 곳이며 땔감을 구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말과 소를 방목해서 기르는 천연목장이며 아이들이 여름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를 꺾고 노는 자연학습장이자, 겨울철에는 썰매를 타고 노는 놀이터다. 오름은 아직 관광지로 개발이 된 곳이 별로 없다.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다. 그래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제주오름사랑’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일출이 아름다운 밧돌오름으로 가기로 했다. 새벽 5시, 약속 장소인 대천동 사거리로 향했다. 숙소였던 중문에서 1시간 거리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건만 회원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오명필(42)회장은 “오늘은 송당에 있는 안돌, 밧돌이란 2개의 오름을 올라 일출을 본다.”고 회원들에 이야기한 후 먼저 밧돌오름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비포장 나무숲을 따라 20분을 가자 오른 편으로 오름이 나왔다. 그러나 마땅히 등산로가 없었다. 산과 달리 오름은 내 발길이 가는 곳이 바로 길인 것이다. 삼삼오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풀들을 밟으며 걷는다. 자유롭다, 편안했다. 마치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부드러운 선을 닮은 길을 지나갔다. 발밑에 와닿는 풀의 폭신함과 새벽이슬의 신선함이 잠들어있던 나의 세포를 깨우기 시작한다. 평지를 지나는가 했더니 오르막이 시작됐다. 어느새 숨이 거칠어진다. 어슴푸레 보이는 봉긋한 봉우리는 내 손에 잡힐 듯 보였지만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침 안개가 깔려있는 마을과 여기저기 솟아있는 오름이 만들어내는 제주의 새벽 풍경은 무채색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아름다웠다. 제주를 벌써 세번씩이나 다녀갔건만 이런 황홀함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그동안 제주의 겉모습만 보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탁 트였다. 오름 아래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는 마치 바닷물결이 일렁이듯 넘실댔고, 이름모를 섬처럼 안개 위에 솟아있는 수많은 오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조물주가 붓을 휘저어 그린 걸작이었다.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제주의 매력에 그만 넋을 잃었다.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해가 뜬다.” 새벽 여명이 붉은 빛을 가득 뿜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구름에 덮여 완벽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시시각각 변해가는 구름의 빛깔이 더해진 제주오름에서 맞는 일출은 감동, 감동 그 자체였다.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몇차례나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로 앞에 있는 안돌오름으로 향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들. 하얀색 노란색 보라색 수줍은 듯 이슬을 가득 머금고 피어있었다. 꽃향유, 쑥부쟁이, 물매화…, 아니 계절을 잊은 진달래까지. 정말 오름은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안돌오름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쇠똥, 말똥들. 오름이 천연목장임을 실감케 한다. 오름의 풀들이 길게 자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말과 소들이 풀을 뜯어먹기 때문이란다. 내려와 안돌을 오르니 어느새 7시30분이다. 회원들은 커피와 빵을 먹으며 앉아 오름의 아침을 맞이했다. 오름을 사랑하는 그들은 이야기한다.“여기는 산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유가 있어요”,“오름에서 느끼는 부드러움은 꼭 어머니 품 같아요.”,“비교적 짧은 시간에 올라 제주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랬다. 그들에게 오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동네 뒷산과 같은 존재였다. 8시가 가까워지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오름을 내려왔다. 가는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철조망을 넘었다. 정말 입구도 출구도 올라가는 길도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되는 곳이 오름이다. 2시간에 걸친 오름기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오름 트레킹의 멋과 맛, 제주도의 일출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서. □오름이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기생 화산구(寄生火山丘)를 말하며 그 어원은 ‘오르다’의 명사형이다.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는데 지질학적으로 보면 오름은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 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제주도의 오름은 주로 100만년 전후의 화산 활동결과로 이루어진 화산도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의 화산 활동은 크게 5회의 분출 윤회로 구분되며 적어도 79회 이상에 달하는 용암 분출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오름은 단단한 암석이 아니고 스코리아라는 흙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식생이 정착하여 있으므로 빗물을 머금어 물이 흐르거나 지하로 스며드는 것을 막아준다. 즉 하천이 메마르고 지하수를 얻기가 어려운 제주도에선 수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가세요 오름트레킹은 제주 에코 여행(064-763-6606)이 전문이다. 해안가 트레킹, 오름트레킹 모두 할 수 있는데 차량과 가이드비를 포함해 하루에 일인당 주말 6만원, 주중 5만 5000원이다. 고객이 원하는 코스를 만들어주는 맞춤서비스가 자랑이다. 제주도의 할인 항공권이나 숙박과 렌터카는 대장정여행사(1577-4241)를 추천한다. 일반 항공권요금에 1만∼2만원을 더하면 렌터카와 펜션을 2박 3일동안 빌릴 수 있는 다양한 패키지를 마련하고 있다. ■강추!!! 제주 오름 5곳 제주도는 386개의 오름이 있다.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산굼부리 한곳이며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대부분이 목장으로 사용돼 오름주변에는 소나 말이 도망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져있다. 그래서 오름트레킹을 잘하려면 철조망을 잘 넘어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도로에서 멀지 않고 가족이나 연인들이 가 볼만한 오름을 소개한다. ●아부오름 일명 앞오름. 도로변 가까이에 있어 15분이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입이 딱 벌어진다. 깊이 20m, 둘레 50m나 되는 굼부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민란을 소재로 한 영화 ‘이재수란’의 주요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안쪽 등성이는 바깥에 비해 가파른 편이고 넓은 바닥에는 삼나무가 심어져있다. 영화 촬영 당시에는 이 곳에 촬영 세트가 세워졌지만 촬영이 끝나자 모두 철거돼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대천사거리에서 1112번 도로를 타고 구좌읍쪽으로 5분 정도 가다보면 삼거리를 만난다. 거기서 수산리쪽으로 우회전을 해서 3분 정도를 가면 삼거리. 거기서 좌회전을 해서 3분정도 가면 좌측편에 앞오름이라는 돌푯말이 나온다. 차는 길에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면 된다. ●백약이오름 백가지 약초가 자생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백약이’이다.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보아도 푸근함이 풍기는 오름이다. 밑에는 소황금이라는 야생화의 자생지로도 잘 알려져있다. 백약이는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하며 분화구는 둘레가 1500m 깊이 49m로 제법 큰 화산체이다. 오름의 한쪽으로는 삼나무 숲, 반대편은 풀밭을 이루고 있는데 이쪽으로는 완만하여 오르기 쉽다. 이곳에 오르다 보면 말이 뛰어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정겹다. 백약이에 오르면 널찍한 분화구가 먼저 보이는데 내부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어 마치 원형 돔 축구장을 보는 듯하다. 내려가서 둘러봐도 좋다. 분화구의 트랙이 올록볼록하게 높고 낮은 물결처럼 길을 이루고 있어 오르락내리락 걸어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백약이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솟아난 오름들을 볼 수 있는데 ‘송당’지역이 오름의 천국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아부오름을 가는것 처럼 1112번도로 대천동 사거리에서 구좌읍쪽으로 가다가 수산2리로 우회전을 해서 10여분을 달리면 오른쪽으로 시멘트 포장된 조그만 길이 나온다. 이기로 3분 정도를 들어가면 ‘소황금자생지’라는 푯말이 나온다. 여기가 백약이다. ●용눈이오름 능선의 곡선이 아름다운 오름을 꼽으라면 당연히 용눈이오름이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이 오름은 부챗살 모양으로 여러 가닥의 등성이가 흘러내려 기이한 경관을 빚어내며 오름 대부분이 연초록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성이마다 왕릉 같은 새끼봉우리가 봉긋봉긋하고 오름의 형세가 용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라는 데서 용논이(龍遊), 또는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태라는 데서 용눈이(龍臥)라고 불린다. 오름 기슭에는 용암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언덕이 산재해 있다. 송당 사거리에서 16번도로로 15분을 달리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화도’라는 이정표를 보고 죄회전하면 된다.10분 정도 달리면 돌로 테두리를 한 무덤들이 나온다. 바로 거기가 용눈이오름의 시작이다. 무덤들 앞을 잘 살펴보면 용눈이오름표지석이 보인다. ●수월봉 아름다운 제주바다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오름이 수월봉. 한라산과 차귀도, 당오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수월봉에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러 왔다가 동생 수월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자 오빠인 노꼬가 17일 동안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이 절벽 곳곳에 솟아나 샘물이 되었다는 애틋한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이 오름은 남쪽면에 기상대가 있어 차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12번도로로 대정을 지나 한경으로 접어들어 고산사거리에서 죄측으로 수월봉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산굼부리 천연기념물 제263호,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마르(Marr)형 화구 관광지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오름이다.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한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주차장에서 40분이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입장료는 3000원. 조천읍 교래리 사거리(1112번 도로와 1118번 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1112번도로 구좌읍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오른쪽에 산굼부리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도 가보세요 제주도의 11월은 노란색이다. 봄의 유채꽃보다 약간 짙은 색깔로 어딜 가도 노랗게 익은 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제주도 귤밭에서 가족들과 귤을 따는 것도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제주도에는 많은 체험농장이 있지만 최남단 감귤농장(064-764-7759)은 사계절 내내 수확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확한 귤은 자신이 직접 살 수 있는데 무농약 감귤이 5㎏기준으로 1만 5000원이다.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가을에는 바다속 시야가 좋아 잠수함체험이 인기다. 특히 마라해양군립공원내 송악산부근 바다를 구경하는 남제주 안덕면에 있는 제주잠수함(064-794-0200)을 추천한다.30분간의 바다속 여행에 다이버들이 수백마리의 줄돔, 볼락 등 물고기를 몰고 다니는 아름다운 산호섬도 놓치면 섭섭하다. 어른 4만 9500원, 아이 2만 9700원. 잠수함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해저탐험증을 선물로 준다. 글 · 사진 제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세계적 안무가 굿판서 놀다

    세계적 안무가 굿판서 놀다

    지난 4일 경남 통영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굿판이 펼쳐졌다. 해란마을에서 낚시터를 하는 주인이 장사가 잘 안 되자 액을 털어내고, 재수가 붙게 해달라고 마련한 자리였다. 남해안 별신굿의 일종인 수륙새남굿을 제대로 격식을 갖춰 하기는 30년만의 일이어서 굿을 주재하는 무당들도, 구경하러 나온 마을 주민들도 들뜬 표정이었다. 해질 무렵, 길놀이로 막을 연 굿은 대나무 가지로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부정굿부터 용왕에게 음식을 바치는 용왕굿, 제석굿을 거쳐 종이로 만든 용선(龍船)을 쓰고 춤을 추는 용선춤까지 3시간 넘게 진행됐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 동네 아낙네들은 부침개를 만들어 돌렸고, 흥이 오른 구경꾼들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 굿판 한가운데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슈(사진 왼쪽·64)와 그의 무용단 일행이 있었다. 처음엔 머뭇머뭇 구경만 하던 이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굿에 동참했다. 무녀가 대뜸 명태로 엉덩이를 때리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많이 맞을수록 복이 들어온다.’는 설명에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기꺼이 몸을 엎드리기도 했다. 춤을 청하는 무녀의 손길에 당황해하던 피나 바우슈도 어느새 ‘관광버스춤’을 추는 할머니들 틈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용왕에게 바치는 고기를 직접 낚기도 한 그는 “잊지 못한 경험을 하게 돼 정말 감사한다. 마음 속에 많은 기쁨을 담아간다.”고 말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슈와 단원들이 지금 한국 곳곳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내한해 오는 12일까지 서울과 지방을 돌며 한국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이날 통영 별신굿 구경도 그런 답사 코스의 하나. 이들이 보름간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은 하나로 모아져 내년 6월 서울에서 세계 초연된다.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탄츠테아터’(무용극)의 선구자인 피나 바우슈는 1979년 ‘봄의 제전’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2000년과 2003년 ‘카네이션’과 ‘마주르카 포고’로 2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LG아트센터의 의뢰로 제작되는 한국 소재의 신작은 86년 이탈리아 로마의 이미지를 담은 ‘빅토르’를 시작으로 피나 바우슈가 진행 중인 ‘세계 국가·도시 시리즈’의 열세번째 작품.97년 ‘윈도 워셔’(홍콩),98년 ‘마주르카 포고’(포르투갈)에 이어 지난 7월에는 일본을 소재로 한 ‘천지’를 공연했다. 피나 바우슈는 이번 신작 구상 여행에 대해 “보름이란 기간이 한국을 알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은 경험을 얻어 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피나 바우슈와 14명의 단원, 그리고 의상·조명·음악 디자이너 등은 경복궁과 청계산, 압구정동과 인사동, 부산 자갈치시장과 전남 곡성의 김장독굿 등을 돌아봤다. 봉은사 예불과 충현교회의 주일 예배에도 참석했고, 비닐하우스촌과 타워팰리스, 미아리고개 점집과 코엑스몰 등 전통과 현대를 두루 둘러봤다. 답사 뒤에는 매일 4∼5시간의 리허설을 통해 작품의 단초들을 하나씩 걸러내는 중이다. 그는 “지금은 다양한 경험들이 우리 안에 들어오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아주 사소한 경험이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 우리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제게 만남을 의미합니다. 공연을 통해서 관객에게 나를 보여주고, 또 관객으로부터 느낌을 받지요. 매 공연마다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눈과 마음으로 한국을 꼼꼼이 담는 중인 피나 바우슈와 단원들이 7개월 뒤 한국 관객들에게 어떤 ‘대화’를 청할지 기다려진다. 통영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패션1번지 청담동

    패션1번지 청담동

    ■요즘 청담동은…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청담동 사거리까지 800여m,압구정 로데오거리를 지나 학동사거리까지 500여m에 이르는 삼각지대.‘청담동패션거리’는 수입 브랜드,디자이너 브랜드 할 것 없이 대부분이 본사를 두고 있고,가장 먼저 신제품을 받아들이고,가장 먼저 세일을 하고,가장 많은 라인을 전시하고 있는 이곳은 가히 ‘패션 특별구’다. 혹자는 고가의 제품만이 범람하고 있는,‘가진 자,그들만의 패션 리그’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이곳이 트렌드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패션 1번지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요즘 이 거리에 변화가 한창이다.1980년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속속 들어오고,1990년대 중반 수입브랜드가 터를 잡은 이후 세번째 변화의 물결이다.50여개의 수입브랜드와 일명 ‘럭셔리 스트리트’라고 불리는 명품관에서 청담사거리까지는 수입브랜드의 밀집지역으로 바뀌고,국내 유명 디자이너 부띠크는 터줏대감 몇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인기몰이가 한창인 디자이너들은 임대료가 비싼 청담동 대신 젊음이 가득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속으로 스며든다. 최근 급속히 불어난 편집매장(멀티숍)이 이곳에 파고들어 수입브랜드,디자이너숍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글싣는 순서 (1)패션거리를 일군 디자이너브랜드 (2)이곳에 집결하라,수입브랜드 (3)시대의 유행이 한자리에,멀티숍 ■디자이너 브랜드숍 올 가을,청담동은 더욱 과감해졌다.흔히 봄의 색상이라고 여겨지는 핫핑크나 여름에 풍미하는 아쿠아블루,그린이 가을까지 연결되고 있다.검정,회색,갈색에 포인트 컬러로 활용되거나,아예 메인색상으로 사용해 멋쟁이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여전히 청담동은 눈 높고 여유있는 중년 여성을 위한 디자이너 브랜드 숍이 주류다.다만 날씬한 중년여성들이 늘면서 날로 디자인이 젊어진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또하나 청담동의 변화는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가 강세라는 점이다.드라마 ‘불새’의 이서진,‘파리의 연인’ 이동건 등 젊고 능력있는(또는 돈많은) 남성 스타일의 대표적인 디자인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다.작고 통통한 한국인 체형을 길고 가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청담동,그 길에 멋이 있다.이번 주,국내 디자이너숍에는 어떤 물건이 있을까. ●스위트 리벤지 by 홍승완 여성마저 탐나게 하는 캐주얼하면서 고풍스러운 남성복이 특징.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의상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홍승완의 옷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하류인생’을 볼 것.올 가을을 겨냥한 대표상품은 그린·블루·브라운·퍼플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울코트(62만원)와 70년대 상류층 여인 분위기의 아이보리 망토(75만원).단을 거칠게 처리한 분홍 줄무늬 재킷(22만원)은 짙은 파란하늘을 가진 가을 분위기에 포인트로 충분하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뉴서티(New Thirty)에게 추천하고 싶은 옷.재킷 20만원선,원피스 50만∼60만원선,트렌치코트 60만원선.현재 여름상품을 40%에 할인 판매중.요즘같은 환절기에 좋은 원피스,카디건 안에 입기편한 셔츠 등을 만날 수 있는 기회.544-0301. ●카루소 by 장광효 오뜨 꾸뛰르를 지향하는 디자이너 장광효의 매장.정통 정장과 여성스러움이 묻어나는 메트로섹슈얼풍 남성복이 특징.섬세한 바느질땀을 겉으로 드러내 무덤덤한 남성 재킷에 활력을 넣었다.정장 스타일 몸판에 트레이닝복 소매를 붙인 재킷은 ‘파리의 연인’ 이동건이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검정을 기본바탕으로,튀는 색상을 연결한 패치워크나 과장된 단추 등의 장식으로 남성복의 또다른 멋을 보여준다.‘올인’의 이병헌,‘풀하우스’의 비 등 드라마 속의 매력남들은 꼭 그의 의상과 함께다.정장은 80만∼150만원선,셔츠 30만∼38만원선,가죽재킷 70만원선,코트 80만∼150만원선.542-2314. ●송지오 옴므 장광효,홍승완과 함께 남성 디자이너 브랜드를 이끌어가고 있다.이정재,정우성 등 국내 내로라하는 트렌드가이들에게 큰 지지를 얻고 있다.평범한 듯 고급스럽고,무난한 듯 과감한 스타일.목 부분을 투버튼으로 처리해 넥타이를 매기에도,단추를 열어 입기에도 좋은 셔츠는 목이 길고 가늘어 자칫 허약해보일 수 있는 남성에게 좋다.(15만∼21만원선).정장은 몸매를 길고 가늘게 표현하고 싶은 남성에게 딱이다.정장은 99만원부터.셔츠는 15만∼21만원선,진재킷은 43만 5000원. ●루비나 충실한 레트로(복고),로맨틱한 빈티지가 컨셉트.젊은 여성에게는 고급스러움을,중년의 여성에게는 세련된 유행 감각을 주는 디자인이 특징.올 가을·겨울 상품으로 내놓은 니트카디건 세트(84만 9000원)는 청량한 아쿠아블루와 회색을 매치하고,밑단을 레이스로 처리해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올봄 SFAA에서 선보인 캐시미어 스커트(75만 9000원)와 함께 벌써 재주문에 들어갔을 정도로 인기다. 정장 70만∼75만원선,원피스 80만원선,재킷 70만∼80만원선.514-0747. ●임선옥 올 가을에는 자유롭고 편안하면서도 독특한 옷을 만나고 싶다면 꼭 들러야할 매장.“옷은 걸쳐서 멋있어야 한다는 게 철학”이라는 중견 디자이너 임선옥씨가 내뿜는 젊은 감각은 전위적이다. 앞판에 양말을 덧댄 카디건(17만원)은 유머러스하다.화려한 스커트의 정장(상의 38만 6000원·하의 22만 8000원),끝단을 초록으로 패치워크한 울실크 트렌치코트(86만 3000원)는 올 시즌 대표상품.매장 한쪽에 여름상품을 세일중이다.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한 시폰 스커트는 4만∼6만원,편하게 걸칠 수 있는 재킷은 10만원 안팎.3443-3937. ●강희숙부띠크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생활 자체인 옷’을 패션철학으로 가진 디자이너 강희숙씨의 숍.그래서 섹시하고 풍만한 여성보다는 좀더 정숙하고 얌전한 숙녀다운 우아함을 표현하는 디자인이 특징.오드리 햅번 스타일의 1950년대 여성미를 바탕으로 70∼80년대 과장된 여성미를 녹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인기를 끈 거친 조직의 트위드를 중심으로 모피,벨벳,레이스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재킷 72만∼85만원선,원피스 85만∼90만원선,스커트 39만∼45만원선 등.514-6711.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건강칼럼] 자외선의 심술 기미·잡티 제거

    매년 이맘 때면 제철인 ‘아오리’를 즐기는데, 이 과일을 고를 때면 나도 모르게 까탈스러워진다.맛이 어떻든 겉이 매끄럽지 않고 오돌토돌 잡티가 돋은 것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미워보여서다.과일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의 얼굴이랴? 올해는 일조량이 풍부해 아오리가 무르익기엔 제격이지만,덩달아 기미와 잡티가 늘어 울상을 하고 병원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여성 호르몬과 관계가 있는 기미는 30대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며 특히 임신 중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임신 중에는 평소의 수 백배 이상 되는 여성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물론 10대나 20대도 오랫동안 자외선에 노출된 경우라면 기미를 피해가지 못한다.햇빛 속의 자외선이 피부 속 멜라닌 색소를 자극해 기미를 만들기 때문이다.임신으로 인한 기미는 분만 후 몇 개월 안에 자연스럽게 없어지거나 크게 줄지만 자외선에 의한 기미는 저절로 치료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생기지 않게 하는 게 상책이다. 기미가 싫다면 날씨에 관계없이 외출 때마다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자외선을 막아야 한다.비오는 날에도 자외선은 존재하기 때문이다.자외선 차단제는 SPF 15 이상이면 무리가 없다.기미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법도 다양하다.하이드로퀴논 등의 미백제와 레티노익산 등의 연고를 바르면서 이온화시킨 미백 제제와 비타민을 이용해 이온자임 치료를 병행하면 의외로 효과를 볼 수 있다.산소압을 이용해 미백제를 피부 속으로 침투시키는 방법도 많이 이용되는데,이 방법은 멜라닌색소를 형성하게 하는 효소의 작용을 막고 과도한 색소를 탈락시켜 효과가 빠르다.미백제와 비타민을 진피층에 투입해 피부 색소를 회복시키는 메조테라피도 기미 치료에 이용되는 치료법이다.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자외선도 피부에 영향을 미친다.자외선은 안전지대가 거의 없는 셈이다.딸을 아끼는 부모는 봄볕보다 가을볕에 내보낸다지만 가을 자외선이 봄의 그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그런 점에서 기미는 움직임을 따라 붙는 그림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 피부·성형외과 원장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5) 바다에 열린 ‘고속도로’ 격렬비열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5) 바다에 열린 ‘고속도로’ 격렬비열도

    격렬비열도에 가면 왠지 ‘격렬’해질 것만 같다.신진도 외항에서 ‘충남202호’에 몸을 싣고 격렬비열도를 향해 2시간쯤 난바다로 나서자 조용하던 바다가 ‘격렬’하게 용틀임한다.멀고 험난한 바닷길이다.다도해에는 못 미치지만,태안반도 서쪽으로도 자그마한 섬들이 열병식을 치르는 병사들처럼 줄지어 자리를 잡고 있다.안흥항에서 신진대교를 건너면 연육교로 이제는 뭍이 된 신진도에 다다른다.신진도와 마도도 연륙되었다.신진도 외항에서 출발하면 가의도 정족도 옹도 궁시도 하사도 난도 우배도 석도를 거쳐 동격렬비열도와 서격렬비열도로 나뉘어 선 군도(群島)에 닿는다.여기서 좀더 서진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정기 연락선이 없어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섬들.‘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한 유행가가 읊조려지는 그런 섬들이다.가의도를 제외하면 살림집도 없다.옹도에 등대지기 몇 사람이 살고 있을 뿐이다.궁시도도 원래는 민가와 초등학교 분교까지 설치된 제법 번다한 섬이었으나 권위주의 시절,대간첩작전에 필요하다며 주민들을 다른 섬으로 소개시켜 빈 섬이 되었다.조선시대 왜구침략 때문에 빚어진 공도(空島)정책을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대하는 감회가 새삼 씁쓸하다. ●권위주의 시절 空島정책으로 주민 소개 온통 바위로 이뤄진 이들 ‘불모의 섬들’이지만 국제 해양교류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하다.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바다는 ‘국제 하이웨이’였으며,섬들은 휴게소나 나들목 구실을 했다.예나 지금이나 바닷길이 문명교류의 고속도로였던 셈.태안 마애삼존불이나 서산 마애삼존불이 근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으로부터 바닷길을 통한 불교문화의 전래를 생각하지 않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중국 산둥반도와 이곳 태안반도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그보다 짧은 해양 항로는 없다.국제 통신망인 해저광케이블도 안흥 위의 천리포쯤에서 시작하여 격려비열도 북단을 거쳐 산둥반도 밑으로 간다.남양만의 당항성도 중요했지만 안흥성에도 국제교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중국에서 뱃길을 열어 한참을 달려오자면 드디어 갈매기떼가 날기 시작한다.새가 날기 시작하면 어딘가 섬이 가까워졌다는 뜻.먼 수평선 위에 소금 몇 알을 뿌려놓은 듯 격렬비열도가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험한 뱃길에 지친 사람들에게 불현듯 나타나는 이 섬이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다.격렬비열도에서 직진하면 안흥항에 닿으며,그 사이에 흩어진 섬들이 ‘뭍으로 가는 길’의 길라잡이들이다.이걸 알고도 누가 무인도를 ‘쓸모없는 섬’이라고 폄하할 수 있으랴. 옹도에 배를 들이밀었다.선착장 공사가 한창인데,아직까지는 모선에서 보트를 내려야만 상륙할 수 있다.거센 파도가 일렁거려 보트쯤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함빡 물벼락을 뒤집어 쓰고서야 땅을 디딜 수 있었다.걱정이 태산 같아 말도 안 나오는데 경력이 20년이라는 항해사는 ‘이건 파도도 아니다.’라며 태연자약하다.집채만한 파도들이 줄지어 달려들며 보트를 삼킬 듯 물어뜯는다.필자 같은 문약한 책상물림은 가히 혼비백산이다.옷가지는 물론 카메라백과 기록노트가 온통 바닷물에 젖어 엉망이다.그러면서도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 반갑고 경이로웠다. 들여다보면 등대지기의 삶은 ‘낭만’과 한참 떨어져 있다.많은 문인들이 등대를 소재로 낭만의 꽃을 피우고 있지만 정작 등대는 거센 파도와 싸우는 처절한 싸움의 현장이기도 하다.옹도등대,정확한 명칭은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옹도항로표지관리소.1907년에 설치됐으니,근대 문화유산으로도 손색없을 이 등대가 100년이 가깝게 거친 바닷길에 불을 밝혀온 셈이다. 이곳 박선우 소장과 두 명의 직원은 보름 간격으로 섬과 육지를 오가며 교대로 근무한다.어찌 생각하면 ‘팔자 좋게’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그만한 고역이 없다.노도와 풍랑으로 기약없이 섬에 갇히기 예사다.생지옥이란 이를 두고 말함이렷다.그러한즉 등대의 낭만 운운은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옹도등대지기는 세 가지 신호를 보낸다.통상적으로 불을 밝히는 광파표지,안개가 낄 때의 음파경고인 무(霧)신호,그리고 레이더를 발사하는 전파표시가 그것.바다가 해무에 젖어들면 10m 거리도 보이지 않는다.근대 이전의 국제 선박들이 어떻게 암초 많은 이곳을 통과했을지 되짚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불이나 밝힐 뿐’이라는 식의 등대에 관한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다.인공위성의 전파정보를 받아 하늘과 바다를 하나로 잇는 이른바 DGPS 시스템을 활용하는 전천후 첨단 시스템을 활용한다.옹도등대는 대전 위성항법중앙사무소와 연계하며,여기에다 서산기상대의 위탁기상까지 떠맡고 있으니,뉴스에서 듣는 ‘서해안에는 풍랑이 몇 미터고,안개는 어떻고‘하는 정보도 알고 보면 옹도등대지기 같은 바다지킴이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등대의 임무를 강조했지만,그래도 등대의 멋스러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흰 배롱나무의 꽃무리가 은은한 향기를 뿜는 바다 저편으로 외항선 한 척이 지나간다.인천항이나 대산항,평택항으로 가는 배이리라.또 있다.그 등대에 다다르는 오르막 가파른 길을 빼곡하게 뒤덮은 동백나무 군락은 이곳이 남방계 식물의 영향권임을 말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육지에서는 얼어 죽고 마는 동백나무가 경기도의 울도에서 군락을 이룬 것을 본 적이 있다.북녘 자료를 보니,평안도 철산앞바다 대화도에도 군락이 무성하단다.구로시오 난류의 영향으로 해양성 기후가 형성돼 한반도의 바다는 육지와 전혀 다른 식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족도에는 가마우지떼가 모여 산다.자그마한 난도는 온통 괭이갈매기 천지다.섬 곳곳이 하얀 갈매기똥으로 덮여 있다.난도 정상에도 동백나무 군락이 우거져서 겨울부터 봄까지 붉은 동백꽃의 자태로 섬 생활의 고독함을 물들이고 있다. ●새들이 만든 유채꽃밭 봄바다의 압권 역시나 격렬비열도와 궁시도의 압권은 봄의 유채꽃.제주도의 유채꽃이 푸른 바다와 겹쳐 환상적 풍경을 자아내 뭇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면,이곳 유채꽃은 은자처럼 숨어 있어 간혹 발걸음을 하는 어부나 낚시꾼들만이 즐길 뿐이다.자연적으로 피었을 리는 만무하고,그렇다고 누가 철없이 절해절벽에 유채씨를 뿌렸을 리도 없으니,모르긴 하되 아마 새들의 작품이리라.배설된 유채꽃 씨앗에서 움튼 새싹이 해마다 번창하며 해중화(海中花)의 향연을 마련하였으리라.건너편 꽃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꽃박람회에 덧붙여 격렬비열도의 유채꽃밭은 그 자체로 가히 봄바다의 압권이다. 그러나 바다는 이런 따위의 아름다움이나 낭만과 무관하게 역시나 외롭고 험난하다.잠시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인근에서 가장 해류를 거세게 받는 곳이 안면 외해(外海) 안흥량이다.일명 관장목이라고도 부르는데,강화도 손돌목과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물살이 드센 곳으로 손꼽힌다. 예전,격렬비열도를 거쳐서 안흥으로 들어오던 중국 배들이 이곳에서 숱하게 수장됐다.지금도 안흥의 어부들 그물에는 심심찮게 청자 따위가 걸려 올라오곤 한다.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난파된 배들의 흔적이리라.이런 탓일까.가의도에 가면 아예 ‘중국에서 가의라는 사람이 귀양와 그 때부터 가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실제로 태안군 남면의 가씨들이 얼마 전까지 가의도에 들어와 시향(時享)을 지냈다고 하니,가의도가 가씨의 본향인 셈이다.가의도의 오백년 묵은 은행나무가 중국인들이 베어낸 둥치에서 새롭게 자라난 새끼라는 전설 등은 중국과 안흥의 연계설을 증언하고 있다.안흥이나 가의도 사람들은 일제시대에도 중국 다롄까지 가서 밀무역에 종사했다고 전한다.바다를 길삼아 교류하고 교역한 역사가 상상보다 활발했다는 증거다. ●명나라 사신 왕래때 표지로 삼던 후망봉 신진도 외항으로 들어서자면 왼쪽에 마도 후망봉이 홀로 솟아 있는데,고려시대에 명나라 사신이 왕래할 때 표지로 삼던 곳이다.산 뒤에는 능허대(凌虛臺)가 있어 바다를 관해(觀海)하기에 그만이다.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인 국방과학연구소 내에 안파사(安波寺) 절터가 있으니,풀자면 ‘파도를 잠재우는 절’이라는 뜻이다.예전 뱃사람들은 먼 항해에 앞서 이곳에서 공양을 올린 뒤 뱃길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들리는 얘기로는 이성계가 안흥성을 자주 드나드는 명나라 사신들에게 ‘잘 보이려고’ 성을 쌓았다는 설도 있다.설마 ‘잘 보이려고’ 성을 쌓았으랴만 높이 3∼4m,길이 1㎞가 넘는 석성을 쌓느라 10여년씩 부역에 시달렸을 민중의 고초가 손에 잡힌다.동서남북으로 돌문을 달고,그 안에 300채쯤 되는 ‘호화주택’을 지었던 안흥성은 명나라에 널리 알려져 ‘조선에 가거든 안흥성을 보고 오라.’는 말까지 생겼다.한때 영화로웠던 안흥성의 국제적 명성을 가늠해 봄직하다. 20여년 전,나룻배를 타고 신진도로 건너갔던 기억이 새롭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다,마도는 물안개에 젖어 잠들어 있었다.그런 섬에 다리가 놓이고 1종 항구가 조성돼 지금은 횟집이 즐비하다.태안반도 해양관광 1번지로 손색이 없다. 차를 몰아 안흥성에 올랐다.수백 채의 집들은 동학혁명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성벽만 남아 있다.안흥성문 코앞까지 배가 들어와 곧바로 사신과 무역상들이 성내로 들어왔다고 하는데,지금은 물길과 멀어져 있다.새우 양식장으로 쓰던 앞바다는 조만간 골프장으로 바뀐단다.국제교류가 활발하던 바다에 골프공이 난비하는 풍경을 생각하니 왠지 낯설고 거북하다. 여승들이 주석하는 안흥성 태국사에서 바라보는 안흥량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격렬비열도의 그 모진 파도가 어디 갔을까 싶게 숨죽인 바다가 졸고 있다.빗방울 긋는 소리,물안개에 에워싸인 섬이 열 가지,백 가지로 변신하는 바다의 얼굴을 웅변해 준다.바다는 한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곳이다.어찌 인간의 힘으로 바다가 가진 천의 얼굴을 이해할 수 있으랴. 관해의 으뜸 절창이 연출되는 안흥성에 오르니 그 옛날 국제 선단이 바닷길을 내달려 안흥성에 닻을 내리는 환상에 빠져들고 만다.무심결에 지나치는 무인도들조차도 이같이 역사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니,섬이야말로 예전부터 국제 고속도로의 네트워크 아니겠는가.
  • 말말말˙˙˙

    내년 봄을 볼 때 문제가 심상치 않다.시장을 믿지 못하게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겠지만,시장 예측자는 모두 현재의 경제를 바탕으로 예측한 것이고,금융통화위원회는 내년 봄의 성장 환경과 물가 문제를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렸다.-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의 콜금리 인하가 갑작스레 이뤄진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 ‘세계 발레스타 대공연’ & ‘살사콩그레스’ 6일부터

    우아한 고전발레의 매력에 취할까,화끈한 라틴댄스의 열기에 빠질까.잠 못이루는 열대야를 시원하게 식혀줄 두편의 화려한 무용 축제가 펼쳐진다. 7·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2004 세계 발레스타 초청 대공연’과 6∼8일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선보이는 제2회 코리아 살사콩그레스(Korea Salsa Congress). ●한 무대에서 만나는 유명 발레스타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호세 카레뇨,영국 로열발레단의 알리나 코조카루-조한 코보그 커플,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이고르 젤렌스키….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는 세계적인 발레 스타 14명이 꾸미는 환상적인 무대다.세계무용센터가 지난 2000년부터 2년마다 여는 행사로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쿠바 출생으로 영국 국립발레단,로열발레단을 거쳐 95년부터 ABT 수석 무용수로 활동중인 호세 카레뇨는 같은 발레단의 쇼마라 레예스와 함께 ‘해적’가운데 침실 장면과 ‘에스메랄다’중 ‘디아나와 악테온’을 선보인다.평론가들이 꼽는 로열발레단의 대표적 커플 코조카루-코보그는 ‘돈키호테’3막의 2인무와 프레드리 애쉬튼의 ‘봄의 소리’등 두 작품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맞춘다.이와 함께 지난해 쿠바 문화부에서 국가문화자산으로 선정된 쿠바 국립발레단의 주역 요엘 카레뇨와 부자지간인 드리트리 심킨-다닐 심킨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02)581-2963. ●정열의 춤 살사,이열치열의 무대 세계 각국 살사팀의 공연과 워크숍,아마추어 살사경연대회,프리댄스 파티 등이 망라된 대규모 살사축제.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푸에르토리코,로스앤젤레스,도쿄 등지에서 매년 열리는 살사 콩그레스의 한국판 행사로 탤런트 명로진 등이 주도하는 코리아살사닷컴에서 주최한다. 행사에는 프랭키와 로리,에디와 알 에스피노사,이스마엘 오테로의 커리비언 솔댄스 컴퍼니 등 정상급 살사팀이 내한한다.국내에선 라 푸에르타,살사 아바나,살사 인 엔터테인먼트 등이 참여한다.6일 오후 8시 웰컴파티를 시작으로,7·8일 이틀간 20여명의 강사가 참여하는 살사 워크숍과 메인 공연,밴드 콘서트가 함께 열린다.매일밤 자정 너머까지 흥겨운 살사파티가 이어진다.www.koreasalsa.com(02)338-642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하마우즈 데쓰오 지음,김성동 옮김,심산문화 펴냄) 인도는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획득하고 지배하는데 전진기지이자 관리센터의 역할을 했다.스리랑카,미얀마,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은 모두 인도의 군사력이나 인도정부의 외교력으로 영국이 획득한 아시아 식민지다.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 통치의 첨병이었다.그러나 1858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에 대한 직접 지배를 선언함으로써 허울뿐인 회사로 전락했다.이 책은 기업통치,즉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동인도회사 통사다.1만 6000원. ●탈무드 솔로몬(이희영 지음,동서문화사 펴냄) 바빌로니아판 탈무드를 깊이 있게 다룬 탈무드 자료집.5000여년의 유대인 역사와 처세,성공전략이 응축돼 있다.유대인의 금전철학부터 부자철학,유대식 협상법,행복한 부자되는 법,토라의 진리까지 폭넓게 다뤘다.유대학을 연구해온 저자는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역사상 어느 민족보다 많은 인재를 배출한 데는 그들의 피 속에 탈무드의 유대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미국은 유럽인이 건설했지만 유대인이 점령해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는 근거없는 빈말이 아님을 알게 한다.2만 5000원. ●무용의 현대(미우라 마사시 지음,남정호·이세진 옮김,늘봄 펴냄) 발레를 중심으로 현대무용을 조망.일본의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20세기 후반부터 무대예술의 중심은 연극에서 무용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20세기 전반 무대예술이 카뮈와 베케트로 대표되는 부조리극에 의해 지배됐다면,1960년대 모리스 베자르의 ‘봄의 제전’과 70년대 후반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를 기점으로 그러한 흐름이 무용으로 이동했다는 것.미시마 유키오와 윌리엄 포사이드를 비교하고,피나 바우쉬의 안무에서 그의 고통을 절감하는 저자 특유의 시각과 문학적 문체를 접할 수 있다.1만 2000원. ●에이미 카마이클(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윤종석 옮김,복있는사람 펴냄) 아일랜드 태생의 여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의 전기.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년 동안 인도에서 머문 카마이클은 힌두교 사원에 팔려가는 아이를 구출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도나부르 공동체를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1만 5000원. ●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서영은 지음,해냄 펴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의 자전적 산문집.강릉 바닷가의 성장기를 거쳐,사랑과 문학에 대한 단상을 묶었다.93년 출간된 책을 작가가 좋아하는 샤갈의 그림을 함께 수록해 재편집했다.9000원.
  • 길 위에서 쓴 편지/허만하 글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시인을 ‘견자(見者)’에 비유했다.모든 감각을 열어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캐는 통찰력을 시인의 주요 덕목으로 강조한 것.허만하 시인의 ‘길 위에서 쓴 편지’(솔 펴냄)는 이런 통찰력이 잘 스며들어 있는 산문집이다. 허 시인은 지난 1999년 30년 만에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죽는다’를 낸 뒤 문명과 역사에 대한 혜안이 담긴 시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이산문학상·청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그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 ‘깊이 생각하는 시인’‘부박한 문학적 속도전에 대한 저항’ 등의 찬사는 그가 지닌 사유의 깊이를 반영하는데,이 경지는 시 뿐만 아니라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등 산문집에도 잘 녹아 있다.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뿜어내는 다상량(多商量)으로 유명한 그의 산문은 한층 여유있고 그윽하다. 시인은 “끊임없이 미지(未知)의 길 위에 서고 시시각각 새로운 감수성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바람을 담아 길을 나선다.계절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강원도,남해,제주도 등지를 걷는다.유명 사찰에서부터 이름없는 산골·바닷가 마을 등 구석구석을 구도자처럼 순례하며 길어 올린 사색의 편린을 39편의 글로 묶었다. ‘시의 길’이기도 한 그 길 위에서 시인은 길과 묻고 대답한다.때로는 한시에서 읽은 지명을 찾아가 얼굴도 모르는 그 시인의 모습을 얹어 공상에 잠긴다.또 추사 김정희의 귀양길을 더듬으며 고결한 예술정신을 추념하기도 하고 이름없는 촌로들의 지혜에서 시심(詩心)을 배운다.굴을 까는 아주머니에게서 갯내가 물씬거리는 ‘현장의 동사(動詞)’를 배우기도 한다.경북 김천 부항재 어귀를 지나다 한 늙은이에게 그 고장 단풍에 대해 물었다가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가을이 저 혼자 찾아 왔다 떠나는 것이지.”라는 대답을 듣고 그 말의 무게에 놀라 “그가 진짜 시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잠시 멍했던 경험도 들려준다. 산문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시인의 통찰력은 그의 ‘시원(詩源)’을 잘 보여준다.남들이 매화를 보고 봄의 생명력을 찬양할 때 시인은 홀로 ‘황갈색 겨울’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또 오지(奧地)라는 말에서 “아름다움이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향기”를 맡고 하동 땅 대숲 바람소리에서는 “변경에서 시를 쓰는 외로움을 맑은 긍지로 삼으라는 귀띔”을 듣는다.사진가인 관조 스님과 시인이 찍은 사진이 글의 향기를 더해준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나를 사로잡은 그녀,그녀들’/함정임 지음

    “암사슴들에 둘러싸인 소녀,그녀에게 뚜렷한 것은 오직 눈뿐이다.그것은 흡사 새로 돋아난 별과 같고 초승달과 같다.” 소설가 함정임(40)은 최근 펴낸 미술에세이집 ‘나를 사로잡은 그녀,그녀들’(도서출판 이마고)에서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의 그림 ‘암사슴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시인 장 콕토가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 낀 로랑생의 옹색한 입지를 두고 파리 화단의 ‘불쌍한 암사슴’이라 불렀듯,함정임은 지금 그녀를 불러내 ”미안하다.”는 말로 안쓰러운 마음을 전한다. 함정임은 오랑주리 미술관의 로랑생 그림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갔지만,노트르담의 쌍탑이 눈에 들어오는 생 미셸의 다락방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로랑생’을 찾아 나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 몰래 화실을 드나들던 화가지망생 함정임과,야간 소묘 교실에 다닌 것을 제외하곤 오로지 독학으로 미술가가 된 마리 로랑생.이 둘의 운명엔 어떤 공분모라도 있는 것일까.문학평론가 김윤식이 1992년 함정임의 첫 창작집 ‘이야기,떨어지는 가면’에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모종의 암시를 얻을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보름달을 그 자체로 머금고 있기에,마리 로랑생의 당나귀와 새와 여우와 함께 있어도 또는 청색 홍색 한가운데 놓여 있어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저자를 사로잡은 그림속의 ‘그녀들’에겐 저마다의 삶이 있고 사연이 있다.벌거벗은 그녀,목욕하는 그녀,춤추는 그녀,레이스 뜨는 그녀,책 읽는 그녀,짝짓는 그녀,복수하는 그녀….삶의 밑바닥을 온전히 견뎌낸 이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우라를 발한다.저자는 미(美),감(感),정(情),인(人)이라는 네 개의 감각적인 주제로 나눠 그림 속 주인공에 접근한다. 저자는 보들레르적인 미의식을 드러내는 “기이하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책이 그림속 여성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심미적 탐험의 기록임을 밝힌다.그런 만큼 그림이나 화가의 역사적 배경과 미술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기존의 미술관련서와는 구분된다.작가 고유의 감성과 상상력으로 그림 속 인물과 공감을 이뤄내는 독자적인 글쓰기 방식을 택했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 ‘압생트’의 그녀를 통해 서른 아홉 살에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부양해야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가 하면,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을 보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한순간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서른 세 살 봄의 자신을 회상한다.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프리다 칼로,나혜석의 작품에 접해서는 그들의 상처투성이 삶을 떠올린다.이처럼 그림 속 ‘그녀들’과 한 몸이 되기까지 저자는 15년의 긴세월 동안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성당,유적지들을 돌아다녔다.소설가이면서도 정작 소설책보다는 미술관련 책들을 서가에 더 많이 꽂아두고 있는 작가.이 책은 함정임의 그림에 대한 오랜 짝사랑의 결실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봄의 끄트머리,여름의 시작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리고 나서 지금은 붓꽃과 창포의 계절이다.모란은 참 점잖은 꽃이다.피어 있을 때도 기품이 있더니 질 때도 경박하지 않게 뚝뚝 소리가 날 것처럼 장중하게 떨어진다. 모란이 봄의 끄트머리라면 붓꽃은 여름의 시작이다.창포하고 붓꽃은 내가 심은 바 없는데 언제부터인지 마당 예서 제서 나기 시작했다.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씨앗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저절로 난 게 신기했다.그것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무얼 타고 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들이 우리 동네 장자 못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그 연못은 창포와 붓꽃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둘 다 물을 좋아하나 보다.창포는 연못가 습지에,붓꽃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무리 지어 군생한다.둘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기 때문에 노란색과 보라색이 어울려 만개했을 때는 그 연못이 이 세상 연못 같지 않아진다.나는 우리 동네의 그 연못 때문에 그 꽃들의 이름을 알았고,물가를 좋아하나 보다는 짐작도 하게 되었다. 자생했다고는 하나 습지를 좋아할 것 같은 데다가 혼자 피어 있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식물이 산골짜기 건조한 땅에 온 게 안쓰러워 물을 받아 놓고 수련을 키우는 동그란 돌확 가에다 옮겨 심었다.한데 모아놓고 보니 제법 여러 촉이 되어,어울려야 폼이 나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집에서도 즐길 만하게 되었다.마당에서 할 일도 많아진 데다가 이런저런 잡무까지 겹쳐 연못가로 산책을 못나간 지 열흘도 넘는 사이에 돌확을 둘러싼 서늘한 이파리 사이에서 그야말로 붓끝같이 생긴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그걸 보니까 갑자기 연못에서 나를 부르는 것처럼 좀이 쑤셔서 달려가 보니 거기서도 꼭 우리 집 마당의 것만큼 봉오리가 올라와 있지 않은가. 친한 척하느라 우리 동네라고 했지만 장자 못은 집에서 가깝지 않다.고지대와 저지대는 기온차도 꽤 나고 우선 부는 바람의 기운이 다르다.기온도 바람도 아닌 그 어떤 기운이 연못가와 산골에 각각 떨어져 있는 같은 종의 식물을 내통케 했을까.별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게 신비하게 느껴지고,그 신비에서 하루를 사는 힘을 얻는다.될 수 있으면 나의 하루하루도 그것들과 은밀하게 교감하는 나날이 되고 싶다. 붓꽃 다음으로도 피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순서를 기다리는 식물들이 마당에는 부지기수다.흙을 만지고 있으면 그것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손끝으로 느껴진다.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이 제 마음대로 땅을 차지하고 번식하도록 내버려두지를 못한다.각각으로 있던 창포와 붓꽃을 내 손으로 한곳으로 모은 것처럼 내 눈에 보기 좋도록 솎아내고 옮겨 심고,보기 싫은 건 아주 제거하느라 매일같이 흙을 만진다.손에 흙 묻힐 생각 없이 마당에 나갔다가도 간밤에 잔디 사이에서 거짓말처럼 세를 넓힌 토끼풀을 보아 넘기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면 한두 시간은 후딱 가버린다.작년에 있던 자리에 몇 십 몇 백배로 세를 불려 돋아나는 분꽃 봉숭아 백일홍 따위 일년초들의 그 왕성한 번식력과의 싸움도 손에 흙 묻히지 않고는 안 된다.산야에서 자생하는 야생초도 누가 선물이라고 캐다 주면 우리 마당에선 귀빈 대접을 받는다.잘 안되면 햇볕이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도 같고,토질이 안 맞는다 싶기도 해 이리저리 옮겨 심어 보게 된다.솎아주는 것도 옮겨 심는 것도 다 내 눈이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도 내 집에 오는 사람이 그걸 보고 칭찬해 주면 마치 업고 다니는 내 아기를 누가 쳐다보고 예쁘다고 얼러줄 때처럼 으쓱하고,본척만척 무관심한 사람은 정 없는 사람처럼 여겨져 속으로 슬쩍 삐치기까지 한다. 들꽃이 예쁘게 보이면 그건 늙었다는 징조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맞는 말이다.산 날은 길고 긴데 살 날은 아주 조금밖에 안 남았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나도 가서,아름다웠노라고 말하고 싶다.그러나 내가 속한 지구촌에는 지금 너무도 추악한 역병이 만연해 있다.칼끝처럼 섬뜩한 증오와 살의가 살의를 부르는 복수심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다.내가 하찮은 것들을 예뻐하려는 것은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기 위함인지 당면한 공포를 슬쩍 외면하고 망각하기 위함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봄의 끄트머리,여름의 시작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리고 나서 지금은 붓꽃과 창포의 계절이다.모란은 참 점잖은 꽃이다.피어 있을 때도 기품이 있더니 질 때도 경박하지 않게 뚝뚝 소리가 날 것처럼 장중하게 떨어진다. 모란이 봄의 끄트머리라면 붓꽃은 여름의 시작이다.창포하고 붓꽃은 내가 심은 바 없는데 언제부터인지 마당 예서 제서 나기 시작했다.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씨앗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저절로 난 게 신기했다.그것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무얼 타고 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들이 우리 동네 장자 못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그 연못은 창포와 붓꽃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둘 다 물을 좋아하나 보다.창포는 연못가 습지에,붓꽃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무리 지어 군생한다.둘은 거의 같은 시기에 피기 때문에 노란색과 보라색이 어울려 만개했을 때는 그 연못이 이 세상 연못 같지 않아진다.나는 우리 동네의 그 연못 때문에 그 꽃들의 이름을 알았고,물가를 좋아하나 보다는 짐작도 하게 되었다. 자생했다고는 하나 습지를 좋아할 것 같은 데다가 혼자 피어 있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식물이 산골짜기 건조한 땅에 온 게 안쓰러워 물을 받아 놓고 수련을 키우는 동그란 돌확 가에다 옮겨 심었다.한데 모아놓고 보니 제법 여러 촉이 되어,어울려야 폼이 나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집에서도 즐길 만하게 되었다.마당에서 할 일도 많아진 데다가 이런저런 잡무까지 겹쳐 연못가로 산책을 못나간 지 열흘도 넘는 사이에 돌확을 둘러싼 서늘한 이파리 사이에서 그야말로 붓끝같이 생긴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그걸 보니까 갑자기 연못에서 나를 부르는 것처럼 좀이 쑤셔서 달려가 보니 거기서도 꼭 우리 집 마당의 것만큼 봉오리가 올라와 있지 않은가. 친한 척하느라 우리 동네라고 했지만 장자 못은 집에서 가깝지 않다.고지대와 저지대는 기온차도 꽤 나고 우선 부는 바람의 기운이 다르다.기온도 바람도 아닌 그 어떤 기운이 연못가와 산골에 각각 떨어져 있는 같은 종의 식물을 내통케 했을까.별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게 신비하게 느껴지고,그 신비에서 하루를 사는 힘을 얻는다.될 수 있으면 나의 하루하루도 그것들과 은밀하게 교감하는 나날이 되고 싶다. 붓꽃 다음으로도 피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순서를 기다리는 식물들이 마당에는 부지기수다.흙을 만지고 있으면 그것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손끝으로 느껴진다.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이 제 마음대로 땅을 차지하고 번식하도록 내버려두지를 못한다.각각으로 있던 창포와 붓꽃을 내 손으로 한곳으로 모은 것처럼 내 눈에 보기 좋도록 솎아내고 옮겨 심고,보기 싫은 건 아주 제거하느라 매일같이 흙을 만진다.손에 흙 묻힐 생각 없이 마당에 나갔다가도 간밤에 잔디 사이에서 거짓말처럼 세를 넓힌 토끼풀을 보아 넘기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면 한두 시간은 후딱 가버린다.작년에 있던 자리에 몇 십 몇 백배로 세를 불려 돋아나는 분꽃 봉숭아 백일홍 따위 일년초들의 그 왕성한 번식력과의 싸움도 손에 흙 묻히지 않고는 안 된다.산야에서 자생하는 야생초도 누가 선물이라고 캐다 주면 우리 마당에선 귀빈 대접을 받는다.잘 안되면 햇볕이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도 같고,토질이 안 맞는다 싶기도 해 이리저리 옮겨 심어 보게 된다.솎아주는 것도 옮겨 심는 것도 다 내 눈이 즐겁자고 하는 일인데도 내 집에 오는 사람이 그걸 보고 칭찬해 주면 마치 업고 다니는 내 아기를 누가 쳐다보고 예쁘다고 얼러줄 때처럼 으쓱하고,본척만척 무관심한 사람은 정 없는 사람처럼 여겨져 속으로 슬쩍 삐치기까지 한다. 들꽃이 예쁘게 보이면 그건 늙었다는 징조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맞는 말이다.산 날은 길고 긴데 살 날은 아주 조금밖에 안 남았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나도 가서,아름다웠노라고 말하고 싶다.그러나 내가 속한 지구촌에는 지금 너무도 추악한 역병이 만연해 있다.칼끝처럼 섬뜩한 증오와 살의가 살의를 부르는 복수심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다.내가 하찮은 것들을 예뻐하려는 것은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기 위함인지 당면한 공포를 슬쩍 외면하고 망각하기 위함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 떳다! 빠줌마

    요즘엔 10대보다 30~50대 아줌마 팬들이 스타에게 더 열광한다는데…. 속칭 ‘빠줌마’의 세계를 살짝 엿보았다. 스타의 인기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이다.그런데 그 권력을 부여하는 주체인 팬층이 최근 소리없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오빠부대’로 대변되던 10대 여학생 중심의 팬덤(fandom)문화가 30∼50대 중년여성팬들을 포섭하며 빠르게 영역확장 중이다. ‘팬덤’이란,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의 팬 의식과 현상을 아우르는 용어.팬문화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한눈에 읽어낼 수 있는 곳은 다름아닌 영화촬영 현장이다.극비에 부쳐진 스타의 촬영일정을 귀신같이 알아내 찾아오는 소녀팬들의 열성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림’.이젠 아줌마팬들(일명 ‘빠줌마’)이 한술 더 뜬다. #누나,엄마처럼…빠줌마들이 작업(?)한다 뭘 해도 열심인 아줌마들의 ‘빠줌마 문화’는 그러나 편견을 깬다.좋아하는 스타에게 극성 제스처를 취할 것 같으나 오히려 반대다.10∼20대 팬들과는 달리 빠줌마들은 묵묵히 실질적인 후원을 해주는 것.영화사 봄의 박혜경 마케팅 팀장은 “아줌마 팬들은 스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편안히 배려해 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10대 팬덤문화와 다르다.”면서 “때로는 누나 같고 때로는 엄마처럼 건강을 챙겨주는 쪽으로 팬활동의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스타를 연호하거나 선물·편지 공세로 촬영을 방해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아줌마팬층이 두꺼운 스타의 촬영장에는 덕분에 김밥도시락,제철 과일들이 넘쳐난다.지난해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촬영때.주인공 배용준의 대구 아줌마팬들이 양수리 세트장에까지 찾아와 추어탕 100인분을 끓여 스태프들까지 다 챙겨먹이고 내려갔다. 스캔들성 기사로 스타가 언론에 노출될라치면 즉각 홈페이지에 우려의 글을 띄우는 것도 아줌마팬이다.“지난해말 배용준이 애인이 생겼다는 고백글을 홈페이지에 올리자 아줌마팬들이 ‘사생활이 언론에 이용당하지 않게 부디 잘 처신하라.’는 등의 충고글이 잇따랐다.”고 그의 측근은 귀띔했다. #빠줌마들을 몰고다니는 스타들 아줌마팬을 움직이는 배우들은 따로 있다.‘배사아모’(배용준을 사랑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시티 오브 용준’ 등 별도의 아줌마팬클럽 사이트를 둔 배용준이 동급 최강의 빠줌마 스타.이병헌도 빠줌마들의 ‘우산’을 쓰고 있기로 소문나 있다.차인표,차승원,권상우,조재현 등도 빠질 수 없다.차승원이 거제도에서 촬영중인 영화 ‘귀신이 산다’를 홍보하는 이노기획의 김희정 차장은 “지방촬영 일정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지역 아줌마팬들이 간식거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모녀(母女)팬’도 뜬다! 빠줌마에 이어 팬덤문화에 새로 명함을 내민 주인공은 ‘모녀팬’.40∼50대 엄마와 10∼20대 딸이 함께 한 스타의 열혈팬이 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영화제작사 기획시대의 오숙현 대리는 “TV드라마에서 인기를 모은 남자배우들을 중심으로 모녀팬층이 빠르게 형성되는 추세”라고 풀이했다.권상우가 단적인 사례.TV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안방극장을 평정하자,요즘 한창 찍고 있는 로맨틱코미디 ‘신부수업’의 경북 왜관 촬영장으로 30∼50대 아줌마팬들이 딸과 함께 응원을 다녀간다는 것. #마케팅에 입김 불어넣는 아줌마팬들 팬층이 다양해지면 마케팅도 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경제적·시간적 여유를 고루 갖춘 중년여성팬들은 마케팅 업체 쪽에서 보면 특히 매력적인 소비자층이다.한 마케팅 관계자는 “아줌마팬들은 혼자 움직이지 않고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특징”이라면서 “그들이 움직이면 예상밖의 흥행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라고 말했다.실제로 ‘목포는 항구다’‘맹부삼천지교’ 등으로 조재현이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지난달 말,그가 주연한 연극 ‘에쿠우스’는 아줌마팬들로 번번이 만원사례였다.대중문화의 소비욕구를 부추기는 것도,그 욕구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도 팬들이다.그러나 다양하게 세력화하는 팬덤문화가 긍정적인 기능만 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팬덤이 건강한 문화운동체로 기능하려면 스타 비평자의 역할도 균형있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황수정기자 sjh@˝
  • 도봉여성합창단 27일 첫 무대

    완연해진 봄의 밤을 수놓을 서울 도봉구립여성합창단 창단기념공연이 27일 도봉구민회관에서 열린다. 유흥창의 지휘와 최호정의 반주로 90분간 진행될 이번 공연에서는 호프만의 뱃노래·꿈,영화 타이타닉과 모정의 주제곡 등 나이에 상관없이 대중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들을 선사한다.여성특유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음색으로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특히 합창단의 창단을 축하하기 위해 소프라노 이현정,테너 박인수가 찬조 출연해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무대를 빛낼 예정이다. 최용규기자˝
  • 청작화랑 ‘모정이 있는 그림·조각’

    예술이란 대중이 함께 공유할 수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20일부터 5월16일까지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열리는 ‘모정이 있는 그림·조각’전은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전시’라 할 만하다.전시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그것은 참여작가 31명의 면면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구자승·이숙자·오용길·이두식·김병종·김재학·이석주·장순업·장지원(이상 회화),윤영자·전뢰진·박수용·한진섭·김창희·정대현·홍승남(이상 조각)….하나같이 자신만의 예술의 성을 쌓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명’ 화가들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미술의 기본을 중시한다는 것이다.적잖은 작가들이 뭔가 기발한 것으로 눈길을 끌려는 ‘자폐적’ 미의식의 세계에 빠져 있지만 이들은 ‘공감의 예술’을 추구한다.미술애호가라면 누구가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심미적 이성에 충실한 것이다.누군가 표현했듯이 이들은 ‘아직도 그림을 그린다.’ 전시작은 구자승(상명대 교수)의 ‘망고가 있는 정물’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에서 오용길(이화여대 교수)의 ‘봄의 기운’ 같은 서정적인 풍경화,이두식(홍대 교수)의 ‘오후’ 같은 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하지만 모두 현대적인 감각이 뚜렷하고 한국적인 감성이 풍부한 작품들이다.조각의 경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윤영자의 ‘기다림’과 전뢰진의 ‘모정(母情)’ 등 원로들의 작품이 따스한 서정을 전해준다.(02)549-3112.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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