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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의회 김창원의원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모금 활동

    서울시의회 김창원의원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모금 활동

    서울시의회 김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 도봉3)이 5월 26일 도봉구민회관 광장에서 열린 도봉깨비 다문화 야시장을 찾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모금활동을 펼쳤다. 오는 8월 15일 도봉구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아픔을 간직한 위안부 여성을 기억하고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대한민국 역사 정신을 기리고자 추진되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시내 10개소를 비롯 국내 68개소, 해외 15개소가 건립되어 인권과 평화 염원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 중 도봉구 소녀상은 시민사회단체나 기관이 아닌 청소년이 주도해 세운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건립을 위해 3월 1일에는 ‘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을 가졌다. 지난해 2월부터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온 청소년 동아리 ‘노곡중학교 반키’, ‘청소년참여위원회’, ‘덕성여대 봄밤’의 상임대표 3인 전영수, 박효주, 강민정 학생을 중심으로 주민과 단체 등이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꾸준히 모금 활동을 펼쳐왔다. 발족 시부터 이를 응원하고 함께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창원 의원은 이날 현장을 찾아 준비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구민들에게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 참여를 독려했다. 김창원 의원은 “어린 소녀와 여성에게 가해진 일본군의 잔혹한 범죄를 다시금 새기고 알림으로써 다시는 이런 범죄 행위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녀상을 도봉구에 건립하고자 한다”며 “미래 세대의 주축이 될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활동에 여러분의 열렬한 성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한편 사업위원회 청소년들은 창동역 등지에서 모금 활동을 이어간다. 모금 활동 참여는 온라인(goo.gl/Q0W7Ro)으로도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구로 떠난 봄여행… 버스 옆자리에 김광석이 앉았다

    대구로 떠난 봄여행… 버스 옆자리에 김광석이 앉았다

    대구는 1996년 세상을 등진 가수 김광석의 고향입니다. 32세 꽃 같은 나이에 멈춰 선 청춘. 하지만 그의 우울한 미학은 당대의 수많은 청춘에게 위로가 됐지요. 그의 노랫말 한 자락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은 이를 꼽자면 아마 수백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겁니다. 올봄 여행주간에 그의 음악을 싣고 달리는 시티투어 버스가 대구에서 선을 보입니다. 그가 나고 자란 방천시장 앞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과 시티투어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여행 프로그램입니다. 시험 운행에 나선 ‘김광석 음악버스’를 타 봤습니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귓가를 적시는 노래들을 듣자니 차창 밖 풍경이 그야말로 꿈결처럼 흐르더군요.‘김광석 음악버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메마른 영혼들을 울렸던 김광석의 노래를 투어 버스에 결합시킨 새로운 개념의 시티투어 버스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기획, 개발됐다. 전국에 시티투어는 많지만 이 같은 형태의 시티투어 버스는 처음 시도되는 사례다. 공식 명칭은 ‘더 플레이 버스(The Play Bus): 김광석’이다. ‘대구 문화마을협동조합’이란 단체가 운영을 맡고 있다.김광석 음악버스는 대략 60분 동안 운행된다. 일반적인 시티투어 버스와 달리 중간에 관광객들이 특정 장소를 오르내리거나 관광해설사가 탑승하지 않는다. 버스 내부는 디제이가 진행하는 음악감상실 형태로 꾸며진다. 김광석의 음악과 영상이 흐르고, 전문 디제이와 공연자가 김광석의 음악 세계와 인물사, 대구와 얽힌 이야기 등을 소재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 간다. ‘움직이는 음악감상실’이라 보면 틀림없겠다. 김광석의 육성을 비롯한 음악과 사진들은 저작권자 등의 허락을 얻어 사용된다. 종착지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앞이다. 야외무대의 거리공연과 어우러지면서 운행을 마친다. 차량 외부에는 ‘안녕하실테죠? 제가 김광석입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김광석의 얼굴 등이 래핑돼 있다. 내부엔 승객이 앉는 16석의 좌석과 조명장치, 모니터 등이 빼곡하다. 디제이 박스는 버스 맨 뒤에 마련됐다.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면 디제이가 진행하는 음악방송이 흐르고 시내 투어도 시작된다. 첫 곡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의 청아한 노래와 함께 대구 시가지 풍경이 차창 밖으로 흐른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의 명곡과 디제이의 잔잔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버스가 시내 한 지점에 멈춰 선다. 이어 대구 지역 뮤지션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려주는 이벤트를 벌인다.버스가 종점에 이르면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가 여행객들을 맞는다. 일종의 김광석 기념관으로, 오는 5월 초 개관 예정이다. 생전 김광석이 아끼던 기타 등의 유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스토리 하우스를 나서면 곧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다. 실물 크기의 동상, 그의 모습이 담긴 벽화 등을 찬찬히 훑다 보면 봄밤이 시나브로 깊어 간다. 팁 하나. 차량에 오르면 가급적 오른쪽, 그러니까 사선으로 놓인 의자에 앉길 권한다. 반대쪽은 조명이 쉬지 않고 번쩍이는 탓에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소싯적에 ‘놀아 본’ 사람이라도 어지러울 정도다.대구에서 봄밤의 정취를 즐기기에 맞춤한 곳이 또 있다. 청라언덕이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위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으로 시작하는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최근엔 대구 근대골목 투어가 세간의 인기를 얻으면서 일약 ‘전국구’ 명소 반열에 올랐다. 이 일대를 밤에 오가는 것도 재밌다. 아는 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맛이 각별하다. 5월부터 ‘대구 야행(夜行) 근대로(路)의 밤’ 축제가 펼쳐지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아직 축제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그렇다 한들 또 어떠랴. 무르익은 봄밤의 정취를 즐기기엔 외려 사람이 적을 때가 더 낫다.청라언덕에선 매일 밤 ‘미디어 스카이 청라’가 펼쳐진다. 일종의 영상 설치작품으로, 근대 골목의 역사적 의미를 표현한 그림과 지역 독립유공자의 사진 등을 번갈아 영상으로 표출한다. 15m 높이에 떠 있어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진한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설치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3·1만세운동길 90계단’과 ‘챔니스주택’ 벽면에 투영되는 ‘미디어 파사드’도 운치 있다. 개화기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 등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영상으로 연출된다.끝으로 대구에서 꼭 찾아봐야 할 두 그루의 나무 이야기를 덧붙이자. 하나는 가톨릭 대구대교구청의 왕벚나무, 또 하나는 청라언덕 사과나무다. 대구대교구청 왕벚나무는 구한말 프랑스인 선교사였던 에밀 타케(1873~1952) 신부가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다. 타케 신부는 1908년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한 이다. 제주도에 밀감 산업의 씨를 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주도 등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 활동하던 그는 1922년 대구 남산동의 성유스티노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 유스티노캠퍼스)에 터를 잡았고, 이후 1952년 이국땅에서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30년간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개 나무의 원산지를 결정하는 열쇠가 자생지 확인인 것에 비춰 볼 때 당시 타케 신부의 발견은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입증시켜 준 일대 사건이었다. 타케 신부의 발견으로 일본의 나무처럼 인식됐던 ‘사쿠라’가 사실 제주도에서 건너간 것이란 게 밝혀졌고, 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양국은 지금까지도 왕벚나무의 원산지를 두고 해묵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일본이 선물했다고 알려진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가 어느 나라 원산이냐를 두고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대구대교구청의 왕벚나무는 안익사 옆에 있다. 타케 신부와의 연관성이 회자되면서 나이테 검사를 해 봤더니 수령이 90년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타케 신부가 1920년대 신학대학에 근무할 당시 심었을 것이 확실시되는 대목이다. 타케 신부의 묘 또한 왕벚나무 옆에 있다.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대구대교구청은 도심에 있는 공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아름답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돌아보길 권한다. 지금은 다소 흐릿해졌지만 대구는 한때 사과의 대표적인 산지였다. 청라언덕 사과나무는 그 ‘대구 사과’의 효시가 됐던 사과나무의 3세 나무다.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들여온 나무의 손자뻘쯤 된다. 현재 선교 박물관으로 쓰이는 스윗즈주택 옆에 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김광석 음악버스, 6월 17일까지 무료 ‘김광석 음악버스’는 봄 여행주간(29일~5월 14일) 바로 전날인 28일부터 매주 금, 토요일 오후 7시에 각 1회씩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터넷과 모바일 누리집(theplaybus.modoo.at)에서 신청할 수 있다. 오는 6월 17일까지 무료로 운영된 뒤 이후 유료화될 예정이다. 탑승 장소는 대구 중구의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앞 전용 정류소다. 호텔 앞을 출발해 대구역→신천역→동대구(KTX)역→범어네거리 등을 거쳐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서 하차한다. 코레일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여행주간 기간 중 ‘레일시티투어’ 패키지 상품을 출시한다. 대구행 KTX 승차권과 대구시내 전세버스 투어, ‘김광석 음악버스’ 탑승이 포함된 상품으로, 29일~5월 14일 매주 금, 토요일 총 6회 운영된다. ●‘미디어 스카이’ 오후 8시·9시·10시 미디어 스카이 청라는 하절기(4월~10월) 동안 오후 8시, 9시, 10시에 각각 30분씩 표출된다. 동절기엔 한 시간씩 앞당겨진다. ●‘얼라이브 아쿠아리움’도 볼거리 대구에는 아쿠아리움이 한 곳 있다. ‘대구 얼라이브 아쿠아리움’이다. 상어, 가오리 등 제 몸값(1000만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어류들을 날름 집어삼켰다는 그루퍼, 눈이 얇은 풍선 모양으로 터질 듯이 부풀어 있는 수포안(水泡眼) 등 다양한 어류와 미어캣 등의 육상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동백꽃이 붉은 이유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동백꽃이 붉은 이유

    동백꽃이 끝물이다. 남해 동백은 엄동설한에 피어난다. 그러나 제주 동백의 배경은 엄동풍한(嚴冬風寒)이다. 바닷바람이 매서운 추운 겨울에 핀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제주 겨울의 바닷바람은 맵차다. 삼다의 섬이라고 해서 풍다(風多)를 들지만, 겨울바람이 특히 그렇다. 이규보는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此木有好花 亦能開雪裏)라고 동백꽃을 노래했다. 그러나 그가 제주도 동백을 보았다면 “바닷바람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라고 바꿨을 것이다. 그만큼 제주 동백은 거친 바닷바람을 견디며 피어난다. 그래선지 꽃 생김이 단단하다. 그런데 유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꽃이 동백이었다고도 한다. 그 단단하던 동백꽃이 통째로 지는 풍경이 어쩐지 모가지가 잘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여 유배지 근처의 동백나무를 아예 모두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동백꽃에 얽힌 사연이 많다. 1840년부터 제주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에게 아내는 정성스레 입을거리, 먹을거리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한양에서 제주까지 물건이 도달하기까지 서너 달은 걸렸다. 언젠가 봄에 보낸 물건이 겨울에 도착했던 모양이다. “오늘 집에서 보낸 서신과 선물을 받았소. 당신이 봄밤 내내 바느질했을 시원한 여름옷은 겨울에야 도착했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걸치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 머리맡에 병풍처럼 둘러놓았소”라고 했다.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사연이다. 입을 거야 그렇다지만 먹을거리는 온전할 리 없다. “당신이 먹지 않고 어렵게 구했을 귀한 반찬들은 곰팡이가 슬고 슬어 당신의 고운 이마를 떠올리게 하였소”라며 추사는 섭섭해한다. 얼마나 그리웠기에 반찬에 곰팡이가 하얗게 핀 모양이 아내의 이마처럼 보였겠는가. 그래도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내 마음은 썩지 않는 당신 정성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 집 앞 붉은 동백 아래 거름 되라고 묻어 주었소”라며 반찬들을 동백나무 아래 묻는다. 마침 동백이 피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를 본 추사는 “동백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라고 했다. 추사도 그 동백꽃을 보며 분명 울었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 붉은 동백꽃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틈새로 문득 동박새를 만나게 된다. 겨울 식량인 동백꽃의 꿀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동백꽃은 제 몸을 열어 동박새들에게 먹을거리를 준다. 날이 거칠수록 동백꽃이 붉어지는 이유도 식량을 놓치지 말라는 표시일지 모른다. 덕분에 동박새는 수정을 도와 동백꽃을 피게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공생 관계다. 공생에도 종류가 많다. 한쪽만 이익을 얻는 편리공생도 있지만, 동박새와 동백꽃은 쌍방이 이익을 얻는 상리공생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상리공생의 삶을 잊은 지 오래다. 온통 편리공생의 갑을관계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수평적 거래 관계인 갑을관계가 갑의 독점적 힘을 바탕으로 수직적 신분 관계인 종속관계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모두가 갑이 되고자 용쓰는 사회가 돼 버렸다. 삶의 존재 이유가 갑이 되고자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 여겨질 정도다. 조금만 애정을 갖고 동박새와 동백꽃의 상생을 배울 수 있었다면 그 유배인도 통꽃으로 지는 동백꽃이 아무리 자기 처지와 닮았다 하더라도 동백나무들을 모두 잘라 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을 것이다. 추사도 붉은 동백꽃을 보며 아내의 울음을 떠올렸다. 이것이 바로 배려이고 공감이고 동정심이다. 배려와 공감, 동정심이 없는 사회야말로 농단(斷) 사회인 것이다.
  • 세운다, 소녀상… 청소년 주도로 도봉구에도

    사진 전시·건립 장소 투표 열려 ‘전쟁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 도봉구에도 설치된다. 도봉구는 지역 청소년이 주도해 평화소녀상 건립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도봉구 평화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1일 발족식을 하고 본격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 8월 15일 광복절까지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소녀상은 국내외에 80여개가 설치됐는데 이 중 서울에는 종로 등 10곳에 있다. 시민사회단체나 기관이 아니라 청소년동아리 ‘노곡중학교 반키’와 ‘청소년참여위원회’, ‘덕성여대 봄밤’ 상임대표들인 전영수·박효주·강민정 학생을 중심으로 주민과 단체들이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구 관계자는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에 참석해 소녀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소녀상 건립을 주도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창동 문화의 거리에서 발족식을 하고 주민 참여 홍보를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진 전시와 청소년 풍물 공연, 나비 모양 응원 메시지 작성, 소녀상 건립 장소 주민투표 등도 함께 열린다. 이동진 구청장은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도봉구 소녀상 건립을 위한 행사로 주민들도 의미 깊은 3·1절을 보내길 바란다”면서 “소녀상 건립 장소를 결정하는 주민투표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현장 행정] 역사와 걷는 봄밤의 축제

    [현장 행정] 역사와 걷는 봄밤의 축제

    “서구 문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서울 정동에 자리잡았습니다. 최초의 서양공사관, 최초의 민간교육시설, 최초의 개신교회 등 정동에는 다양한 ‘최초의 문화’가 있죠. 서너 곳만 들러도 아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갈 겁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16일 서울시청에서 ‘정동야행 축제’(정동야행)의 의미를 이렇게 담았다. 정동야행은 근대 역사문화유산이 즐비한 정동을 밤늦은 시간에도 볼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5월 첫선을 보인 뒤 10월에 두 번째로 진행된 축제는 사흘 동안 10만명이 다녀가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전국 9개 지역에 확산할 계획도 세웠다. 올해 첫 정동야행은 오는 27~28일 열린다. 올해는 관람부터 체험, 먹거리까지 밀도 있게 준비했다. 이틀 동안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중명전, 정동극장, 옛 러시아공사관 등 29곳이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옛 미국공사관, 영국대사관, 캐나다대사관 등도 일부 개방한다. 웅장한 모습과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성공회성가수녀원의 아름다운 정원, 경운궁 양이재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대사관과 성공회성가수녀원은 18일까지 정동야행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 신청을 받는다. 공연도 풍성하다. 덕수궁 중화전에서는 27~28일 오후 7시 30분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와 금난새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 각각 열린다. 정동제일교회와 성공회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펼쳐지고, 서울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그림자 인형극도 열린다. 구한말 신문물을 엿보는 ‘덜덜불 골목 체험’도 곳곳에 마련했다. 덜덜불은 1901년 덕수궁에 설치된 발전기다. 백열전구를 밝히려고 전기를 만들 때 덜덜거리며 요란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체험 시간에는 덜덜(꼬마등)을 만들고, 자가발전기의 원리도 배운다. 고종이 즐겼던 커피를 만드는 ‘가비의 향’, 당시 은행인 전환국에서 찍은 주화 제작 등 다양하게 준비했다. 정동야행 설명 책자에는 스탬프북을 넣었다. 야간개방 시설 도장을 7개 이상 찍으면 아트캘리그라피 기념품을 증정한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 코스에 참여하거나, 중구가 내세우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구 스토리여행’으로 설명을 들으면서 둘러볼 수도 있다. 최 구청장은 “봄의 정동은 매우 아름답다. 근대문화유산이 몰려 있는 정동에서 밤늦도록 멋과 추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고종이 총애한 ‘덜덜불’ 들어봤나? 늦은 봄밤 역사를 체험하는 ‘정동야행

    “서구 문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서울 정동에 자리잡았습니다. 최초의 서양공사관, 최초의 민간교육시설, 최초의 개신교회 등 정동에는 다양한 ‘최초의 문화’가 있죠. 서너 곳만 들러도 아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갈 겁니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16일 서울시청에서 ‘정동야행 축제’(정동야행)의 의미를 이렇게 담았다. 정동야행은 근대 역사문화유산이 즐비한 정동을 밤 늦은 시간에도 볼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5월 첫선을 보인 뒤 10월에 두 번째로 진행된 축제에서는 사흘동안 10만 명이 다녀가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전국 9개 지역에 확산할 계획도 세웠다. 올해 첫 정동야행은 오는 27~28일 열린다. 올해는 관람부터 체험, 먹거리까지 밀도 있게 준비했다. 이틀 동안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중명전, 정동극장, 구 러시아공사관 등 29곳이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옛 미국공사관, 영국대사관, 캐나다대사관 등도 일부 개방한다. 웅장한 모습과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성공회성가수녀원의 아름다운 정원, 경운궁 양이재도 눈여겨 볼만 하다. 영국대사관과 성공회성가수녀원은 18일까지 정동야행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 신청을 받는다. 공연도 풍성하다. 덕수궁 중화전에서는 27~28일 오후 7시 30분 ‘봄여름가을겨울’ 콘서트와 금난새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이 각각 열린다. 정동제일교회와 성공회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펼쳐지고, 서울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그림자 인형극도 열린다. 구한말 신문물을 엿보는 ‘덜덜불 골목 체험’도 곳곳에 마련했다. 덜덜불은 1901년 덕수궁에 설치된 발전기다. 백열전구를 밝히려고 전기를 만들때 덜덜거리며 요란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체험 시간에는 덜덜(꼬마등)을 만들고, 자가발전기의 원리도 배운다. 고종이 즐겼던 커피를 만드는 ‘가비의 향’, 당시 은행인 전환국에서 찍은 주화 제작 등 다양하게 준비했다. 정동야행 설명 책자에는 스탬프북을 넣었다. 야간개방 시설 도장을 7개 이상 찍으면 아트캘리그라피 기념품을 증정한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코스에 참여하거나, 중구가 내세우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구 스토리여행’으로 설명을 들으면서 둘러볼 수도 있다. 최 구청장은 “봄의 정동은 매우 아름답다. 근대문화유산이 몰려있는 정동에서 밤 늦도록 멋과 추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길섶에서] 봄밤/황수정 논설위원

    이맘때 시골집에 가면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아파트촌의 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뻣뻣했던 오감이 밤 깊어 제자리를 찾는다. 멀리 무논에서 몰려오는 개구리 떼창. 목이 째져라 합창했다 뚝 그쳤다, 정해진 리듬을 탄다. 가만 듣고 앉았으면 멍석을 깔아도 되겠다 싶게 신통해지는 내 감각. 풀숲에 엎드려 선창(先唱)을 맡은 놈, 무논에 좌정하고 화음의 절정을 뽑는 녀석. 당장 쫓아가 잡아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개구리 떼창 끊어지면 잽싸게 끼어드는 산비둘기. 앞산을 옆방으로 옮겼을까 또렷해지는 울음소리. 감각의 굳은살을 벗기면 절로 되찾아지는 신통력이다. 비비추 덜 자란 잎에 달팽이 기는 소리까지 알아챌 봄밤이다. 귀만 밝아지는 게 아니다. 시골에서는 밤 깊어 더 잘 보인다. 보름달 없고 가로등도 먼데 안마당 접시꽃 꽃대에 투망을 짠 거미줄이 다 보인다. 빛투성이 도시에서라면 내 시력으로 도무지 건질 수 없는 디테일! 침묵 속에 더 많은 소리. 어둠 속에 더 완연한 몸짓. 글 한 줄을 안 읽어도, 멍청히 귀만 열고 누웠어도 시골 봄밤은 선생이다. 봄도 깊고, 밤도 깊고, 오랜만에 마음도 깊고.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봄밤 수놓은 전통 등

    봄밤 수놓은 전통 등

    부처님오신날을 여드레 앞둔 6일 시민들이 서울 청계천에서 승무와 왕실의 사찰순례 행렬 등을 형상화한 전통 등을 관람하며 봄밤을 즐기고 있다. 청계천 전통 등 전시회는 올해로 9번째다. 작품 60여점이 오는 15일까지 전시된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조선 궁궐의 생생한 삶과 맛 만나세요

    조선 궁궐의 생생한 삶과 맛 만나세요

    30여종 체험·탐방 행사 열려‘대장금’ 배경 소주방 음식 체험대국민 참여 ‘시간여행’ 공연도 궁궐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소통의 문화 공간으로 재조명하는 ‘제2회 궁중문화축전’이 오는 29일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개막한다. ‘오늘, 궁을 만나다’를 주제로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행사는 4대 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가 지닌 특성에 맞게 주제별로 기획된 30여종의 다채로운 공연·전시·체험·탐방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김대현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장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지난해 첫 축전이 전통 콘텐츠와 현대의 첨단기술을 결합해 궁궐의 유·무형 문화유산을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면 올해는 구축된 콘텐츠들을 중심으로 ‘오늘’이라는 핵심어와 함께 생명력을 지닌 생생한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신을 기념하는 궁중잔치를 재현한 ‘1892, 왕의 잔치’, 한류 열풍을 이끈 드라마 ‘대장금’의 역사적 배경인 경복궁 내 소주방에서 전통 궁중 음식을 직접 맛보고 체험하는 ‘수라간 시식공감’, 후원의 봄밤을 거닐며 역사와 문화를 듣는 이동형 이야기극 ‘창덕궁 별빛야행’ 등이 관객을 맞는다. 창경궁 문정전 야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궁궐 최초 정통 사극으로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생애를 다룬 ‘인조, 길 끝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돼 온 왕실 제례 의식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등 우리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친근하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1750년(영조 26) 3월 26일, 당시 왕과 궁궐 사람들의 하루 일상을 재현하는 ‘1750 시간여행, 그날!’은 대국민 참여 프로젝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 공모에서 뽑힌 시민 200명이 직접 문무백관, 상궁, 나인, 호위군사 등의 역할을 맡아 전문 배우들과 함께 그 시대를 되살린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을 때 텔레비전 사극에서만 봤던 역사 속으로 직접 여행을 떠나는 흥미로운 시간을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자세한 행사 내용은 궁중문화축전 홈페이지(www.royalculturefestival.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4대 궁에서 30여종의 공연- 체험을 만나다

    4대 궁에서 30여종의 공연- 체험을 만나다

     궁궐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소통의 문화 공간으로 재조명하는 ‘제2회 궁중문화축전’이 오는 29일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개막한다.  ‘오늘, 궁을 만나다’를 주제로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행사는 4대 궁(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가 지닌 특성에 맞게 주제별로 기획된 30여종의 다채로운 공연·전시·체험·탐방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김대현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장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지난해 첫 축전이 전통 콘텐츠와 현대의 첨단기술을 결합해 궁궐의 유·무형 문화유산을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면 올해는 구축된 콘텐츠들을 중심으로 ‘오늘’이라는 핵심어와 함께 생명력을 지닌 생생한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신을 기념하는 궁중잔치를 재현한 ‘1892, 왕의 잔치’, 한류 열풍을 이끈 드라마 ‘대장금’의 역사적 배경인 경복궁 내 소주방에서 전통 궁중 음식을 직접 맛보고 체험하는 ‘수라간 시식공감’, 후원의 봄밤을 거닐며 역사와 문화를 듣는 이동형 이야기극 ‘창덕궁 별빛야행’ 등이 관객을 맞는다. 창경궁 문정전 야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궁궐 최초 정통 사극으로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생애를 다룬 ‘인조, 길 끝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돼 온 왕실 제례 의식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등 우리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친근하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1750년(영조 26) 3월 26일, 당시 왕과 궁궐 사람들의 하루 일상을 재현하는 ‘1750 시간여행, 그날!’은 대국민 참여 프로젝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 공모에서 뽑힌 시민 200명이 직접 문무백관, 상궁, 나인, 호위군사 등의 역할을 맡아 전문 배우들과 함께 그 시대를 되살린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을 때 텔레비전 사극에서만 봤던 역사 속으로 직접 여행을 떠나는 흥미로운 시간을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자세한 행사 내용은 궁중문화축전 홈페이지(www.royalculturefestival.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강허리 꽃치장, 산머리 꽃단장… 어여쁜 대구

    강허리 꽃치장, 산머리 꽃단장… 어여쁜 대구

    대구시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여행주간 프로그램 지자체 공모’에서 2회 연속 1위에 선정됐다. 대구시에서 봄 여행주간 특별 프로그램으로 내놓은 건 ‘대구는 예쁘다’이다. 이맘때라면 어디를 찾아야 가장 예쁜 대구와 마주할 수 있을까. 문체부가 올해도 봄 여행주간 이벤트를 연다. 옛 ‘관광주간’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여행주간 실시를 앞두고 각 지자체마다 운용 프로그램을 내놓는데, 문체부가 이를 모아 우열을 가린다. 이 과정을 거쳐 ‘대구는 예쁘다’가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여행주간 대표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면 정부 지원금을 받게 돼 행사가 한결 ‘풍성’해 진다. 이는 프로그램 자체가 알차다는 뜻도 된다. 이맘때 대구를 찾으면 ‘예쁜 것’과 ‘예뻐지는 것’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금호강으로 먼저 간다. ‘예쁜 것’부터 만나자는 뜻에서다. 금호강 노곡섬(하중도)은 대구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수변 공간이다. 봄에는 유채와 보리, 가을엔 코스모스와 물억새 등이 색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올해도 유채꽃(5만3000㎡) 등 대규모 봄꽃 단지와 청보리(5만 3000㎡) 등이 조성됐다. 싱그러운 강바람 맞으며 꽃밭 사이를 거니는 맛이 각별하다. 이즈음 ‘예쁜 대구’를 만드는 일등 공신은 비슬산 참꽃(진달래꽃)이다. 비슬산(琵瑟山·1083m)은 빼어난 산세로 사철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명산이다. 특히 암괴류(岩塊流·천연기념물 제435호)가 일품이다. 암괴류는 둥글거나 각진 바위 덩어리들이 산비탈이나 골짜기를 따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일컫는다.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른다 해서 ‘돌강’ 또는 ‘바위강’이라고도 부른다. 비슬산 암괴류는 해발 약 1000m의 산정에 터를 잡은 대견사 인근부터 시작돼 약 2㎞ 가까이 이어진다. 최대 폭은 80여m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다.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르다 보면 확연히 굽어볼 수 있다. 참꽃 군락지는 비슬산 정상 아래, 그러니까 1000m에 달하는 고위평탄면에 99만㎡(약 30만평) 규모로 펼쳐져 있다. 참꽃들이 절정을 이룰 때면 산 전체가 붉은 빛을 띨 만큼 거대한 규모다. 참꽃은 이번 주말부터 절정에 이르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참꽃 개화에 맞춰 23일~5월 1일 참꽃문화제도 열린다. 참꽃 군락지 아래는 대견사다. 개창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찰이다. 일연 스님이 주지로 22년간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때 폐사됐었다. 경내 일곱 건축물의 가람 배치가 일본의 대마도를 향하고 있는데, 산정에 높이 앉은 대견사가 째려보는 탓에 일본인의 기가 꺾인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100여년 동안 방치됐다가 2014년 복원 중창됐다. 화원읍 낙동강 변의 사문진은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곳이다. 1900년 3월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 부부가 미국에서 배편으로 피아노를 사문진 나루터까지 싣고 온 뒤 대구 시내 사택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귀신통 납시오’란 조형물과 피아노 장승 등을 세웠다. 사문진 나루터는 1932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명화’로 꼽히는 ‘임자 없는 나룻배’ 촬영지이기도 하다. 나운규 주연의 영화는 민족정신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우리 영화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나루터 초입에 세워져 있다. 나루터 뒤는 화원동산이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을 오갈 때 행궁을 두었던 곳이다. 대구 시민들에게는 ‘추억의 유원지’ 정도로 인식되는 곳. 관리 주체가 대구시에서 달성군으로 옮겨지면서 다양한 놀거리와 볼거리를 조성하는 등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화원동산 전망대에 서면 달성습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형성된 습지다. 낙동강 12경의 하나로 수달, 맹꽁이 등 좀처럼 보긴 힘든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대구에선 제법 알려진 해넘이 포인트이기도 하다. 시뻘겋게 달궈진 해가 가야산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인근의 도동서원(사적 488호)도 잊지 말고 찾길 권한다. 한훤당 김굉필을 향사하는 서원으로,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로 꼽힌다. 1604~1605년쯤 세워진 이후 여태 원형이 잘 살아 있다. 팔공산 쪽에선 순환도로를 돌아보는 맛이 각별하다. 벚꽃을 밀어내고 올라온 연분홍 새순이 주변의 연둣빛 신록과 어우러져 싱그러운 풍경을 선보이고 있다. 복사꽃도 꽃술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쯤이면 절정에 이른 복사꽃들의 ‘진분홍 아우성’이 팔공산 곳곳에 메아리칠 전망이다. 이제 ‘예뻐지는 것’을 찾을 차례다. 대구시는 봄 여행주간 동안 한방화장품 만들기, 천연한방 맑은피부 관리 받기 등 다양한 뷰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웃한 패션주얼리타운에서는 커플 반지 만들기 등 이벤트가, 섬유박물관에선 에코백 만들기 등의 이벤트가 각각 진행된다. 대구시는 이 기간 내내 각종 뷰티 체험 프로그램을 50% 할인하는 등 대구를 찾은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예정이다. 5월에 열리는 몇몇 공연 프로그램도 눈여겨보는 게 좋겠다. 5, 13일은 아양기찻길에서 오후 7시부터 대구그랜드심포니의 공연이 열린다. 세미클래식 등을 연주한다. 아양기찻길은 대구에서도 경관 조명이 예쁜 곳으로 손꼽힌다. 아름다운 야경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봄밤이 펼쳐질 전망이다. 같은 날 오후 4시 대구수목원에선 신예 밴드 ‘소울 브리지’ 공연이 열린다. 대구의 아이콘 중 하나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서도 7일(오후 1시)과 14일(오후 3시) 신예 밴드 ‘EK뮤직’ 공연이 열린다. 주옥같은 김광석의 노래들을 들을 기회다. 한편 올봄 여행주간은 5월 1∼14일 진행된다. 이 기간 관광시설, 숙박, 음식점 등 전국 1만 2000개 여행 관련 업체가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무주 태권도원 등은 무료 개방하며 4대궁과 종묘는 50%, 농촌체험마을은 20% 입장료와 체험료를 할인한다. 숙박 부문에서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와 대명리조트 등을 비롯해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굿스테이’ 업소 등이 최대 70% 할인된다. 지역별 여행 콘텐츠도 마련됐다.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대구는 예쁘다’(대구), ‘기차 타고 떠나는 드림스토리 낭만 여행’(강원), ‘딱 내 스타일 버스여행’(충북) 등 전국 17개 시·도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지역번호 053) → 가는 길:각 여행지가 대구 사방에 흩어져 있어서 일정을 정교하게 짜야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 비슬산과 사문진 나루터, 화원, 도동서원 등은 서남부 코스, 팔공산과 하중도 등은 동북부 코스로 각각 나눠 돌아보는 게 낫다. 비슬산 대견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으로 나가 비슬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된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대견사까지는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른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입구까지 5.8㎞를 운행한다.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이상 편도)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614-5481. → 맛집:뭉티기’로 통하는 소고기 육회는 송학구이(424-3889)와 왕거미식당(427-6380)이 이름났다. 안지랑 곱창골목엔 푸짐한 돼지곱창구이를 내는 집들이 길 양쪽으로 40여곳이나 늘어서 있다. 북성로 철물 공구 골목은 밤이면 포장마차촌으로 변한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연탄에 구워 먹는 불고기집들이 많다. 달성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곰탕이다. 현풍면 성하리 인근에 원조 현풍할매집곰탕(614-2031) 등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대구 근대문화거리를 찾았다면 반드시 서문시장을 함께 돌아봐야 한다. 납작만두, 누른국수(칼국수), 찜갈비 등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라일락에 최루탄에 눈물겹던 그 봄날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라일락에 최루탄에 눈물겹던 그 봄날

    라일락 향기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서울 종로 고려당 제과 2층에서 만난 그녀가 내민 한 권의 책이 불씨가 된다. 프란츠 파농(1925~1961)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었다. 벌써 서너 번을 만난 그녀는 얼마 전 하숙집 선배가 주선한 미팅에서 처음 봤다. 목포에서 올라온 그녀의 낯설고도 고운 남도 사투리는 모차르트처럼 들렸다. 파농을 같이 읽고 토론해 보자는 것이었다. 으음, 여자친구와 독서토론이라…. 한마디로 황홀한 제안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주고받았다. 그러나 달콤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숙집에 돌아와 펴 본 책은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10대 성장기, 클래식으로 분류되던 책들을 몽땅 탐독했다고 자만했던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난해한 개념들이 가득했다. 파농은 당시 운동권에 벤치마킹 대상이던 인물. 서인도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난 치열한 흑인 혁명가를 내가 알 리 만무했다. 총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만날 날은 다가오고, 요즘 말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몇날 밤을 손가락으로 볼펜만 360도 빙그르르 돌리다가 잠이 들었다. 따스했지만 결기에 찬 눈빛으로 ‘파농’을 건네주던 그녀의 기대치에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결국 그녀와의 만남은 삼월에 시작해 장미향이 스멀스멀 퍼지던 오월에 끝나게 된다. 그녀는 언니, 오빠까지 소개해 주며 나에게 열심이었지만 그만 만나자는 말은 막상 내가 먼저 했다. 내려다보는 듯한 그녀의 태도가 점차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스스로 차인 것이다. 충격적인 그날 이후 나는 내 또래의 누구라도 그랬듯이 이념서적을 손에 쥐게 된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8억 인구와의 대화’, ‘민중과 지식인’, ‘민족지성의 탐구’ 등은 단골화제가 되었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난쏘공’이다. 가상의 공간인 은강시를 배경으로 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 시절 우리들의 필독서였다. 문제는 이 같은 이념서적들과 내가 궁합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술자리에 가면 늘 ‘말빨’이 달렸다. 강촌, 대성리나 송추, 일영 유원지에서 보낸 MT의 밤은 힘들었다. 담배연기 가득한 좁은 방에서 독한 소주에 고추장 멸치, 꽁치 통조림을 갖다 놓고 밤새 벌이는 격론에 나는 늘 꿀 먹은 벙어리였다. 뒤풀이 시간에 잠시 빛을 발했지만 결국 이 같은 모임과는 멀어지게 된다. MT의 목적보다는 MT 분위기를 즐거워하고 데모를 하기보다는 데모하는 상황에 가슴이 흥분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기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즐거워하던 나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예를 든 책들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공간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는 이념서적을 옆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내 지식 지도에 불모지대였던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보게 되는 기제가 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시절은 일정 부분 ‘이념 과잉’의 시대였다. 비판이론 책은 사방에 널렸고 사계절, 돌베개 등등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상표였다. 책들은 필독서가 되었고 80년대를 강타한 학생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봄은 최루가스와 함께 왔다. 눈물과 함께 왔다. 도서관 주변은 늘 긴장감이 흘렀다. 누군가가 유인물을 한 움큼 뿌린다. 유인물은 작은 새처럼 춘삼월 봄바람에 팔랑거렸다. ‘짭새’들이 득달같이 달려오고 모여든 학생들이 구호를 외친다. 하나 둘, 마침내 한 무리 대열이 꾸려진다. 대열은 교문을 향해 움직인다. 구호는 노래가 되고 함성이 되고 마침내 절규가 되었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 고향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가 / 투사가 되어 조국의 내일 / 이 몸과 이 혼으로 다져나가리” 그러나 정문과 담장은 넘사벽, 페퍼포그 차량에서 불을 뿜는다.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을 쏟아내면서 대열은 순식간에 흩어진다. 유인물을 뿌린 학생은 사복 경찰에게 질질 끌려간다. 속칭 백골단으로 불리던 서울시경(현 서울경찰청) 1081, 1082 중대 무술경찰들이 마지막 남은 시위 학생들을 낚아채기 시작한다. 유도와 태권도를 합치면 10단이 넘는다는 무술경관들 앞에서 학생들은 가랑잎처럼 가볍다. 지켜보는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승리하리라’는 노래는 서서히 그리고 짧은 시간 잔불처럼 사위어 간다. 험악했던 시절. 시커먼 무전기를 움켜쥔 짭새들이 캠퍼스를 제 집처럼 활보했고 신촌, 종로통의 골목골목에는 중무장한 전경들이 넘쳐 났다. 모두가 주변을 힐끗거리며 술을 마셨다.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학교 앞 주점에는 시국토론의 핏빛 목소리가 가득했다. 행사가 끝나면 자체 반성의 합평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대 상황은 자연스레 ‘낭만 결핍’의 시대를 의미한다. 당연히 축제 문화도 영향을 받았다. 세탁소에서 옷을 빌려 입고 때 빼고 광내고 참가했다던 선배들의 쌍쌍파티의 추억은 대동제 앞에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파쇼 타도”란 구호와 깨어진 보도블록, 최루탄이 오월에 흩어졌다. 봄은 개나리, 진달래에 앞서 전경들의 군홧발 소리와 함께 왔다 멀어져 갔다. 그러나 꽃다운 20대, 시국과는 무관하게 혼자 보내는 대학생활은 감미로웠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혼자 있음으로 해서 느끼는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자유만만세! 술도, 담배도, 외박도, 연애도 맘대로였다. 밤새워 포커를 즐기고 춤을 추고, 한마디로 맘대로 인생이었다. 가벼운 신열에 들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시대 상황과 무관하게 미팅은 활기를 띠었다. 이성교제가 엄격하게 규제되는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기대욕구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팅은 해방구로 나가는 통과의례였다. 가끔은 낮은 목소리로 고팅이 들려왔다. ‘개빙고’(개강을 빙자한 고팅) 등의 말들이 눈치 보듯 들렸다. 질색하던 비판적 골수 운동권 친구들도 가끔은 얼굴을 보였다. 대학가만이 아니다. 공장이 몰려 있는 구로동과 영등포 일대에도 고고장은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지탱되던 미팅 문화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던 시구절처럼 질풍노도 같던 80년대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어느 봄날이 생각난다. 80년대 초 명동 고고클럽 마이하우스쯤으로 기억된다. 본격적으로 밴드 연주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20여명의 잘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교수 몇 분을 모시고 때늦은 사은회를 하고 있었다. 그땐 사은회란 게 있었다. 어느 순간 누가 일어나 댄스 타임에 앞서 한곡을 뽑기 시작했다.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미오” 영화 ‘형사’ 주제곡이다. ‘죽도록 사랑해’라는 뜻의 ‘시노메 모로’란 제목보다 ‘아모레 아모레’라는 가사가 더 유명하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홀 안으로 몰려드는 여자들을 매의 눈으로 살피던 중에 들리던 노래였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노랫소리는 너무 슬프고 애잔해서 먹먹했다. 나는 작업하던 눈길을 접고 잠깐 동안 그 여학생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필이 꽂힌 것이다. 한마디 말도 건네 보진 못했지만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추억은 아쉬움으로 인해 더욱 또렷해져 온다.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마알간 목소리에 아찔했던 오늘 같은 봄밤이었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 [2016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의 질주: -김지윤

    1. 속도에의 욕망과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속도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내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던 근대적 속도가 낯설고 경이로웠던 시절에, 속도는 삶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여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듯했고, 그 가능성의 마력에 매혹된 도시의 길들은 질주하는 기계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인간사의 모든 매혹이 그렇듯, 익숙해진 후에는 무뎌짐과 권태가 찾아든다. 이제 빠른 것들은 도처에 흔하게 넘쳐나고 현대가 ‘속도의 시대’라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더 빠른 것’을 계속 갈구해 왔다. 급기야 ‘클릭 한 번으로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빛보다 빠른 통신망을 이루어내는 데에 이르렀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빨라진 것일까? 사실 ‘속도’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간과해 온 진실이 숨겨져 있다. 속도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현대인들은 줄곧 커다란 대가를 치러왔다. ‘움직임’을 상실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는 대신, 인간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안에 부동자세로 앉은 채, 혹은 컴퓨터 모니터나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옮겨질’ 뿐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귀청이 먹먹하게 울부짖는 바람의 저항에 맞서 속력을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아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속도를 내는 이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속도가 주는 고통과 환희의 감각을 날카롭게 느끼고 견디며, 거센 바람 소리로 현재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이동하는 ‘탈것’ 안에 안전하게 앉아서 닫힌 창문 밖으로 내다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그 일그러짐이 심하면 심할수록, 지나쳐가는 대상들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질수록,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 풍경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속도의 체험으로부터 사실상 단절된다. 결국 감각할 수 없는 풍경들은 개별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속도에 안전하게 ‘탑승’한 이들에게는 오로지 ‘빠르게 도착해야 하는 지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수많은 길목들은 소거된다. 이원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 지성사, 2007)는 바로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에서 시인은 속도와 질주에 대한 끈질기고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이 시집에서는 가장 큰 모티프로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얼핏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속도 제조기’로 느껴지는 오토바이에는 과연 다른 교통수단들과 무언가 차이를 만드는 점이 있는 것일까. 오토바이를 타는 행위 자체가 위험에 직접 노출되어 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사실 매우 모순적인 존재다. 기계의 속도를 빌려 질주하면서도 강렬한 신체적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속도를 올리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기울어져야 하는데 그때마다 탑승자는 온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또한 오토바이는 다른 ‘탈것’들과 달리 길이 아닌 데서도 달릴 수 있다. 자유롭게 길을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기도 하고 수많은 길을 넘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 시 속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1968년생인 이원 시인은 청년기에 사이버 문화를 접한 소위 ‘모니터킨트’ 1세대에 속한다. 80년대 도입되어 90년대를 풍미했던 PC통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보소통의 길을 열어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적 유년기와 디지털 청년기의 간극을 몸소 느낀 최초의 세대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은 어떤 내면적 딜레마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형성해 준 유년기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청년기 사이의 간극과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시적 언어에 어떤 정신적 흔적을 남겼을까. 오토바이의 모순성은 바로 그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겹침’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겹침의 힘으로 인해 모든 장소를 사실상 ‘무장소’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의 무감각성과 획일화에 대항하여 느낌과 의미, 그리고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이 시대의 문학이, 그중에서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르라 할 수 있을 ‘시’가 어떤 응전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광속도의 디지털문명 속에 살면서 느리게 곱씹어 읽어야 하는 빈 여백투성이인 시를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지. 이 글은 바로 그런 기대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2.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 ‘길 없음’과 찾을 수 없는 ‘나’ 일단 이 시집 제목의 ‘오토바이’ 앞에 붙어 있는 ‘가벼운’이라는 형용사에 눈길이 간다. 그냥 가벼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오토바이가 ‘가볍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튼튼하고 무겁고 길에 잘 붙어 있을수록 안전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볍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이 시집의 오토바이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바람결에 떠다니는 가랑잎만큼이나 위태롭다. 오토바이는 금방이라도 길을 벗어날 듯 불안한 주행을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길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도무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길이라면 그 위기감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이원의 시세계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 바로 전 시집인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문학과 지성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에서 ‘길’에 대한 인식이 이미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길’에 사막의 이미지가 덧입혀져 있다는 점이다. 사막이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모래의 특성상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길이 만들어질 수 없다. 사막에서 끝없이 부는 바람은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결에 움직이는 모래로 인해 사막은 끊임없이 다른 지형으로 변모한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속의 시적 화자는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하는 행위로 많은 것들을 클릭하고, ‘세계를 연속 클릭’하기까지 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그리고 수많은 클릭의 맨 끝에, 화자는 결국 ‘나를 클릭한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 검색 엔진 안에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사이트 어디에도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꼭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만 ‘클릭’을 한다.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 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부분 검색하는 과정이 무한한 하이퍼링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는 텍스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하이퍼텍스트를 참조해야만 한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는 착각처럼 나를 찾으려는 욕망은 곧 실현될 것만 같지만, 점점 더 퍼져나가 무수한 파편이 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검색어와 연관어를 따라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때로는 처음의 검색어와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한다.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사막처럼, 길이 계속 생명체처럼 모습을 바꾸며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없다는 것, 또한 원하는 목적지에 가 닿을 아무런 방법도, 지도도 없고 어떤 검색 엔진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요지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처럼 클릭함으로써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클릭할수록 나는 ‘편재’한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실체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를 결코 확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원 시인의 코기토가 디지털문명의 사유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시로 변주되고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결론이 결국 ‘부재’에서 끝났다면 이 시는 부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패러독스를 보여 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다. 모든 부재는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 사람의 존재감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므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백이 필요해진다. 주체의 자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비워져야 한다.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생기는 순간마다 제 몸을 삼키는 것이 시간이며 그러므로 매 순간 다시 삼켜야 할 제 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시간이며 그 시간의 몸이 바로 나이며”라는 시 구절은 이런 과정의 고통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존재가 ‘없음’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내적 불안을 동반하는 것처럼 이원 시에서의 ‘길’은 대부분 갑자기 끊기거나 모습을 바꾸는 등 ‘길 없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으로 그려진다.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이 존재를 찾으려는 욕망을 생성시키는 것처럼, 계속해서 변형되고 사라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임시적이고 위태로운 길은 건너가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런 길을 건너가려면 길에 매달리고 집중해야만 한다. “내 앞까지 온 길은 거울 앞에서 접촉 불량 회로처럼 끊어졌다.” “내가 일어서자 거울 밖으로 나갈 노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녹슬고 구겨진 길들” 방금 나열한 구절들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의 수록시 ‘모니터, 캔산소, 거울’에 언급된 ‘길’에 대한 부분들이다. 이원 시에서 길들은 대개 이렇게 위태위태하고 불길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길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더욱 심화된다. 이 시집 속에 나오는 길들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 지뢰밭과 같고,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사막과 같은 길에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3. 휘발되는 불빛들 사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이 시집의 많은 주인공들은 오토바이를 탄다. 그들은 폭주족, 오토바이 배달부, 퀵서비스맨이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사이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달릴 수 있다. 길이 없는 데서도 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오토바이는 다른 모든 탈것들과 차별화된다. 폭주족들이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뒤따라 달려오던 한 무리의 폭주족들은 끊어진 길 속으로 빠진다/ 끈적끈적한 괴성과 경적이 함께 묻힌다/ 봄밤이 눈물처럼 반짝이다 마른다 매몰의 시간을 잘 아는/ 길은 금방 아문다/ 시간의 만다라로 타오르며 폭주족들은/ 길을 꿀꺽꿀꺽 삼키며 달린다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이 히드라처럼 꿈틀거린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 ‘폭주족들’ 부분 그 다음 시의 제목이 ‘영웅’이고 역시 폭주족을 다루고 있듯, 폭주하는 이 오토바이족들은 ‘영웅’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지고 끊어질 듯 위태로운 길에서 불안을 딛고 달린다. 여기서 오토바이라는 소재는 빛을 발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대부분의 교통수단들에게는 도로, 철로나 항로와 같이 정해지고 계산된 길 안에서 안전하게 달릴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주어진 길을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오프로드를 달림으로써 규정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길은 자꾸만 단절되고 사라지지만, 수동적으로 길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길을 새로 만들어가며 필사적으로 계속 전진하려는 것이 폭주족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이 도약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전력을 다해 내질렀던 ‘괴성’ 같은 그의 시도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린다. ‘매몰의 시간’이다. 하지만 ‘길은 금방 아문다’. 폭주족들은 길 안에 매몰되어서 그 길을 삼켜버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길을 만들어 낳는다. 하지만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시도가 절망스럽다는 것을 표현한다. 끝없이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길은 계속 갈라지고 갈림길들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미로가 된다.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미로화되면서 결국 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텅 빈 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이 지점에서 폭주족은 ‘왜 질주하는가?’란 질문에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이 시집의 다른 시 ‘주유소의 밤’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차들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라는 이 시의 의미심장한 구절은 휘발되는 것이 ‘불빛’임을 보여 준다. 불빛은 길을 길답게 만드는 존재다. 길이 길일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따라가면 어디엔가 ‘도착’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전진하려면 길이 그쪽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막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의 물질성이 사라진 곳에서 물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빛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막에서 길을 찾는 이들은 별빛에 의지했다. 길이 사라진 데서도 별빛은 오롯이 빛나며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별빛이 만드는 방향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길이 된 것이다. 소위 ‘전자사막’인 도시의 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도 ‘불빛’이다. 신호등과 네온사인, 자동차 라이트 등이 만드는 불빛은 도시의 밤길을 길답게 만드는 필수 요소다. 그런데 시인은 이 불빛이 항구한 것이 아니라 ‘잠깐만 빛나는’, 즉 ‘휘발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 역시 휘발되는 것이다. 언젠가 깨고 마는 꿈처럼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질주의 이유가 있다. 휘발되어버릴 꿈, 비전을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하므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길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는 모든 ‘탈것’들은 그 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상당수의 폭주족들은 질주하다 ‘벽’을 만나고 결국은 ‘질주하던 몸은 날계란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폭주족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고. 시체가 불타는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이 몸을 씻으며 기도하는 성스러운 강이다. 숭고한 구도의 마음으로 이 성스럽고 절망스러운, 찰나의 불빛을 따라 길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인간은 ‘영웅’이 된다. 시 ‘영웅’에서 낡은 오토바이 위의 시적화자는 ‘무서운 속도로’ ‘철가방을 싣고’ 달린다. 이 철가방은 그의 순수한 염원과 욕망을 표상한다. 그의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이 은색’이고,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으로 상징되는 거짓되지 않은 절실한 욕망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불에 오그라든 자국’을 숨김없이 노출한다. ‘배달’은 곧 자신의 욕망이 어딘가에 도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시간 안에 달려가려고 애쓴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라는 구절은 이 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짜장면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말하자면 ‘현실원칙’인 셈이지만 중력을 이탈해버리면 아예 자유로워진다.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쪽이 중심이 된다면 짜장면이 어느 쪽으로 쏠리든 상관없다. 그래서 ‘영웅’은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라고 내뱉는다. 오토바이의 특징 중 하나는 강렬한 현장성이다. 달리는 행위 그 자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오토바이는 반드시 맨몸으로 타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즉, 그의 온몸, 전 생을 지금 이 순간에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게 되는 것이다. 지제크의 책 제목과 같이 ‘삐딱하게 보기’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지제크는 이 책에서 ‘비스듬한 왜상적 응시’로만 실제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체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상적인 응시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삐딱하게 보기를 결정하는 순간 그는 세상이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나와야 한다.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라고 시적화자는 말한다. 비정상의 영역, 삐딱한 시선의 세상은 진지한 현실원칙들을 위배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 ‘삐딱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허용하는 가치들에서 비껴나 ‘간절’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삐딱하게 보아야 볼 수 있는 저 ‘불빛’은 견고한 어둠에 가끔 생기는 균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현실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실재계’에서 오는 것이다. ‘영웅’ 폭주족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반짝이는 찰나의 불빛이 가리키는 희미한 저곳을 향해 폭주하여 달려가며, 자신을 땅에 붙들어 놓았던 현실원칙인 ‘중력’을 이탈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는 더욱 비장해진다.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 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이 지점에 이르면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의미가 없다. 도착할 수 없음이 너무 명확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질주이며 도약 그 자체이고, “무한한 진행”이다. ‘한 남자가 간다’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만 텅 빈다”라는 구절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짐을 욕망하므로 끝없는 현재로서 질주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텅 비어야 한다. 4.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원 시에서 없음, 허공의 이미지는 매우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없음’이 절실해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은 그 욕망에 자신을 전부 맡김으로써 폭주가 가능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높이다 보면, 공중의 허공으로 몸을 날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벼워진다. 속도가 줄 수 있는 쾌감은 마치 탈중력의 상태와 같은 지극한 가벼움이다. 노자는 유와 무의 관계를 통해 생명성을 강조했다. 특히 ‘무’와 ‘허’(虛)는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되곤 한다. 노자는 바퀴의 가운데를 가리켜 ‘무의 쓰임’이라고 하고 바퀴는 바퀴살이 꽂혀 있는 ‘가운데의 없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한쪽 눈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내 몸속의 신이 깔고 누워 있던/ 죽음을 엿본 죄다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은 내게서 파내졌으므로 나는 죽음을 모르므로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낯선 얼굴을 매달고 라면을 먹는다/ 낯선 얼굴도 입을 오물거린다 그 입에서도 고소한 스프 냄새가 난다/ 햇빛들이 창 속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부딪쳐 멈출 곳이 없는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얼굴이 달라붙는다’ 부분 욕망은 실현되는 순간 ‘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어야 끊임없는 추구가 가능하고, 영원히 지연되는 미완의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채워짐’은 욕망의 끝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죽음을 엿본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는 자연스럽게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오이디푸스의 눈이 파내진 것은, 삶을 계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끝나버렸음에도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는다. 도려낸 눈구멍의 빈자리를 드러낸 채 그는 광야에서 계속 걸어간다. 이 시에서도 시적화자는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다시 결핍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는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빈 곳’은 삶을 지속시키는 필수 요인이다. 그는 계속 살아가려고 라면을 먹는다. 삶이란 무한한 진행이므로, 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장소인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또한 상징적 의미에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줄지 않아야만 한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허공을 난다 울음 속에서 살을/ 쏙쏙 빼먹으며 난다 활짝 열어놓은 안이 불룩하다/ 보여주지 않는 안이 팽팽하다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위태로워 반짝인다 공기들이 비닐봉지의 천수관음으로 붙어간다/ 비닐봉지가 잉잉거린다 바람의 안쪽이 맥박처럼 터진다 천수관음이 된 비닐봉지에/ 시간의 모서리가 닳는다 사라지는 자리가 쌉싸름하다/ 그렁그렁하다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 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 둥근 것은 뜨겁다 비닐봉지가 허공을/ 오므린다 허공이 주렁주렁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비닐봉지가 난다’ 전문 비닐봉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가벼울 수 있고, ‘살을 쏙쏙 빼먹으며’ ‘맥박처럼 터진’ 등의 표현에서 보듯 생명력을 충전하며, 터질 듯 생동감 있게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는 시 ‘비닐봉지가 난다’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두 편 모두에서 비닐봉지가 등장한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에 나오는 것은 ‘검은’ 비닐봉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색이라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그런데 이 시는 바로 이어서 ‘위태로워 반짝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는 분명 위태롭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다. 그럼에도 이 비닐봉지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활짝 열어’ 놓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열림, 이 균열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불빛이 있기 때문에 이 비닐봉지에는 빛남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완전히 어둡지 않은 것이다. 이원 시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어둠의 이미지는 두 가지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눈앞을 가리는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 시 ‘길’에서 ‘어둠이 길들을 천천히 멍석처럼 말아갑니다’라고 노래했듯 길을 없애고 ‘세계를 닫는’ 어둠,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는 ‘밤’으로 묘사된 그런 어둠-이기도 하고, 어떤 근원적인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회귀하기를 꿈꾸는 자궁의 어둠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궁에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던져진 순간, 필연적으로 분열을 겪어야 한다. 일체의 분열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나, 자궁 속의 어둠을 그리워하지만 그것은 회귀 불가능한 공간이다. 이원의 다른 시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 ‘어둠’에 관한 어떤 처연한 광경을 보여 준다. 아기는 ‘제가 두고 온 어둠을 미끌미끌한 길을 빨아댄다.’ 아기는 ‘알몸으로 빠져나온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매장의 시간에 익숙한 여자의 손 안에서 아기의 머리통이 녹는다 순식간에 상한다 검어진다.’ 여기에서 ‘검어지는’ 것은 자궁의 어둠과는 다르다. 절망적이고 견고한 어둠 속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검은색’이다. 이에 반해 자궁의 어둠은 어둠이되 ‘적막하고 환한 물속의 집’으로서 어둡지만 환한 곳이다. 그런데 어둠이 환하다면 과연 완전한 어둠이라 할 수 있을까? ‘어두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때로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것이다’(‘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라는 시 구절처럼 환함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에 자궁의 어둠은 불완전해진다. 어둠이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어둠인 것이다. 자궁에는 항상 산도(産道)라는 입구가 있고 ‘열림’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언젠가 열릴 것이거나 언젠가 열렸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회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시간에 머물러 있기에 절망적이다. 자궁은 여전히 열린 틈새로 ‘환한 집’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돌아가거나 닿을 수는 없다. 다시 시 ‘비닐봉지가 난다’로 돌아가 보자. 이 검은 비닐봉지의 어둠은 어떤 어둠인가. 이 비닐봉지는, 어쩌면 아기를 밀어낸 후 텅 비어 있는 자궁과 같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보여 주지 않는 비닐봉지의 안은 ‘저 너머의’ 세상이기에 그 안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시인은 비닐봉지가 ‘천수관음’이 된다고 말한다. 천수관음의 천수천안은 모든 이의 괴로움을 천개의 눈으로 보고, 천개의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천수관음의 세상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유토피아 그 자체이며 현상적 규정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저 너머’이므로 ‘시간의 모서리가 닳’아서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수관음의 ‘천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는 표현은 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을 연상시킨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이 ‘一圓’은 가운데가 빈 허공이기도 하다. 허공을 나는 비닐봉지는 그 자체가 공(空)인 것이다. 반면에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의 비닐봉지는 비어 있지 않고 오렌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겁다. 그런데 비닐봉지를 들고 가던 여자가 순간 봉지를 놓치고 만다. 아마도 꼭꼭 묶여져 있었을 비닐봉지는 여자가 손에서 놓지 않는 현실원칙이며 생명체를 살게 하는 음식은 그 현실과 직결되는 ‘무거운 것’이다. ‘젖이 불은 유방 같은 오렌지 하나가 매트리스 앞으로 굴러간다.’ 오렌지 하나가 비닐봉지를 탈출한 것이다. 묶여져 있는 비닐봉지에서 오렌지가 나오려면, 비닐봉지는 분명 터져 버렸을 것이다. 터진 틈새로 ‘몸을 놓칠세라 그림자가 앞서간다’. 집요하게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오렌지의 그림자는 나를 현실에 붙들어놓는 ‘중력’과 같은 것이다. 오렌지는 필사적으로 굴러가지만, 그림자는 오렌지를 붙들고 여자는 터진 비닐봉지의 틈새를 알아차린다. 이 균열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봉합할 것인가. 균열을 감수한다면, ‘위태로운 반짝’임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 반짝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 그녀를 현실로부터 일탈하게 하여, 어쩌면 미치게 할 수 있을 어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도 위태로움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헤진 그림자로 온몸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멈추어 있기를 선택한다.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 시인이 직접 주석을 달아 놓은 바와 같이 매트릭스는 고어로 자궁이라는 뜻이다. 결국 매트리스로 회귀하려는 오렌지의 시도는 실패한다.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오렌지는 땅바닥을 굴러 매트리스까지 가지 못하고 ‘매트리스와 여자 사이에서 멈춰 있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의 시의 결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날아가는, 중심을 이탈한, 가벼워진 것들에는 그림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철망 같은 제 그림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광화문에서’) 있으면 결코 가벼움을 획득할 수 없다. 그림자를 떼어내어 버리고, 온전한 ‘텅 빔’이 되어서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이 되어 질주하는 것이 주체의 소망이다. 이 시집에서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시적 화자들의 질주는 영웅적이라고 간주되며, 한계를 넘어가는 위반의 극치를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는 것은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없음’은 에너지의 새로운 분출로 다시 시작하려는 근본적인 의지를 내부에 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부정함으로써 탄생한 ‘공백’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5. 흔들리면서 ‘저 너머를 향해’ 가기 자아의 안락과 현실에의 순응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이 맹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그 너머의 금지된 희열을 향한 충동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된다. 충동은 현실적인 삶이 부과한 경계 너머의 실재를 향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캉은 모든 충동을 ‘죽음충동’이라 보기도 했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죽음, ‘무’의 상태로 되돌려 공백의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창조의 의지인 것이다. 진정한 새로움은 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공백은 창조의 시작이다. 탈(脫)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았던 90년대 우리 문학은 어떤 세기말적 징후로 가득해 있었다. 방향성을 잃었다는 느낌, 어떤 ‘파국’이 도래하였다는 감각은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고지향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나타났다. 거대담론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침잠했고 일종의 자폐성을 띤 2000년대 시는 1인칭의 내면 고백으로 가득 찼다. 2007년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혼잣말 같은 메모장과 일기장 밖 현실 세상으로 나온 존재가 새로운 시작을 꾀하려 하는 모색의 지점을 보여준다. 방향이 없는 곳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저 너머로 넘어가려는 이 시집의 역동성은, 끊긴 길 앞에서 멈추어 정체되어 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게 만드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가속되는 디지털화, 인문학의 위기와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문학의 종언’이 이야기되는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더 처절하게 고민하려는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원의 2000년대 시집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원의 시편들의 이런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했던 시인의 ‘모니터킨트 1세대’라는 특징과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위 한국형 ‘X세대’의 맏형 격인 세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의 시점에서 성인으로의 전환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출생한 문학인들이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던 것은 탈냉전에 접어들며 가치의 혼란과 부재, 문학의 위기를 논하던 90년대 한국문단에 새 흐름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장정일, 유하의 경우와 같이 60년대 이후 출생 시인들은 소비사회, 매스컴과 테크놀로지 등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새롭고 첨예한 감각을 보여 주었다. 1968년생이며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하고 96년에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출간한 이원 시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유년기를 보내며 정체성을 형성해 갔던 시기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이원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과 소비사회에 대한 매우 예민한 반응 역시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난 최근의 젊은 세대처럼 태생적인 디지털문화에서 자라나지 않은 까닭 때문일지 모른다. ‘초기 X세대’들은 디지털을 ‘학습한’ 세대이면서도, 처음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기본을 만들었던 세대라는 약간 이중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세대적 특성은 이원 시에도 일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원이 전자제품과 사이버문화를 광범위하게 시의 직접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찰하는 방식은 비교적 고전적이라는 점이다. 기술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술의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자기 자신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자아의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디지털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후천적으로 익힌 것이기에, 디지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신의 몸처럼 편안히 여기는 최근 세대들에 비해 때때로 불편하고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는 디지털 문명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인식은 전망 부재의 시대에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시를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 역시 ‘길 없음’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이원의 비유를 빌리자면 ‘가벼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일이다. 의미에 도달한다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서 간신히 앞으로, 점점 전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2010년대에 도달하여 출간한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2012) 표지 뒷면에 적혀있는 시인의 말은 뼈저리다. “넘어가지 못한다 해도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너머에는, 닿아야 했다.” 시인은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시를 마치는 결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 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이원 시집에 등장하는 무수한 ‘오토바이를 탄 이들’은 바로 이 결핍 때문에 달린다. 그들의 목표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어차피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목적은 달리는 것, 그 자체이고 현재를 사는 지금 이 순간, 질주와 속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인 것이다. 불가능성 때문에 추구는 더 집요해지고, 시 ‘영웅’의 화자처럼 ‘온몸이 데는’ 것도 불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서커스에서 불타오르는 원형의 가운데를 뛰어넘는 오토바이 묘기와 같다. 이 불타는 허공으로 뛰어드는 묘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단지 통과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삶은 지속되어야만 하는 무엇이다. 그렇기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질주한다. 온몸을 걸고, 온 생이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정해진 길로 달리며 획일화된 ‘무장소’에서 체험을 상실하는 현대인들의 ‘속도’와 달리,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확실히 구분되며, 그 속성들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결핍 속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 속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해지는 삶, 그 강도 높은 삶의 기록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 도착하리라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보이지 않는 너머’에 닿고자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또 오토바이 위에서 속력을 높이는 이원 시 속 화자들처럼, 끝없이 의미에 ‘미끄러지는’ 언어들로 계속 행간에 발을 헛디디면서도 이 미끄럽고 위태위태한 길을 속도로 넘어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맴돌기만 할 뿐 영원히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달려간다면 길은 끊어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질 터이다. 어차피 삶은 여정 위에 있다.
  • [와우! 과학] 소쩍새는 두견이가 아니다

    [와우! 과학] 소쩍새는 두견이가 아니다

    -소쩍새는 야행성, 두견이는 주행성 종일 뻐꾸기 울고 꾀꼬리 지저귀다가, 날이 설핏 저물기 시작하자 뒷산에서 소쩍새가 운다. 수천 년 저 산에서 소쩍새 울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으리라. '솥적다 솥적다' 하고 소쩍새가 울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전설도 그래서 생겨났을 테고. ​ 소쩍새는 소쩍 소쩍 하는 단조로운 두 음절로 쉼없이 울어대어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세상이 모두 잠든 듯한 때에 혼자 우는 소쩍새 소리 들리는 봄밤은 쉬 잠들기가 어렵다.​ 그런데 소쩍새와 두견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어떤 사전에서는 자규를 두견이라 풀이하고는, 두견이를 또 소쩍새라고 해놓고 있다. 하긴 사전 탓만은 아니다.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노랫말에서도 둘은 혼동하여 쓰이고 있다. '달 밝은 이 한밤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라는 가사도 사실은 틀린 것이다. ​ 지규, 접동새, 귀촉도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두견이는 주행성 새로, 야행성인 소쩍새와는 전혀 다른 새이다. 그 관계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소쩍새는 생긴 꼴이 올빼미와 흡사하다. 몇 해 전엔가 서산 개심사로 올라가는 산길 옆 관목 숲에 소쩍새가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두 귀가 쫑긋하고 눈이 퀭한 것이 영낙없는 올빼미 모습이었다. 덩치는 물론 아주 작지만. 그 소쩍새는 어디 다쳤는지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아직 날이 완전히 어둡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소쩍새가 올빼미과에 속하는 야행성이기 때문이다. ​ 소쩍새는 몸길이가 20cm의 가장 작은 맹금으로, 주로 곤충을 잡아먹지만 가끔 거미류도 잡아먹는다. 잿빛이 도는 갈색 또는 붉은 갈색 몸에 가로줄이 섞인 세로줄 무늬가 있으며, 긴 귀깃이 특징이다. 텃새이지만 한국의 중부 이북에서는 여름새이며 일부 무리는 나그네새이다. 4월 중순이 되면 소쩍새들은 약 500m 간격을 두고 앉아서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울어댄다. 이 때 우는 것은 수컷인데, 이들은 짝을 찾기 위해서, 또 어린 새끼와 먹이,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 울어대는 것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소쩍 소쩍’ 하며 밤새 쉼없이 애처롭게 울어대어 듣는 이의 심금을 자극하는 소쩍새. 이 점이 두견이와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두견이는 두견과에 속하는 새로, 덩치도 소쩍새보다 조금 큰 여름철새다. 겉모습은 뻐꾸기와 비슷하나 훨씬 작다. 서양에서는 ‘리틀 쿠쿠(little cuckoo)’라고 한다. 등은 회청색, 배는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많이 나 있다. 암컷은 멱과 가슴이 붉은 갈색을 띤다. 우리 나라에는 5월경 동남아시아에서 날아와서 9월경에 남하하는 여름철새로, 단독으로 생활하며, 잘 노출되지 않는 우거진 숲속 나뭇가지에 앉아 있어 모습을 보기 힘들다.​ 두견이는 소쩍새와는 달리 주행성이며, 4월 하순쯤부터 9월까지 머무는데, 우는 소리는 뻐꾸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휘파람새나 굴뚝새, 산솔새 같은 남의 둥지에 제 알을 낳아 기르게 하는 탁란 습성까지 뻐꾸기를 닮았다. 그런데도 한국 문학작품을 번역하면서 '두견새 우는 밤에' 라고 했다가, 한국에는 밤에도 두견새가 우느냐는 외국인의 문의를 받았다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두견이는 우리 나라, 중국 동북지방, 일본 등지에서 번식하고, 겨울은 동남 아시아에서 난다. 다른 이름이 많아, 자규, 두우(杜宇), 접동새, 귀촉도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숱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새가 바로 이 두견이다. 두견이는 또 촉혼(蜀魂), 망제혼(望帝魂)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옛 중국 촉나라의 왕 망제가 간신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난 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제 신세를 한탄하며 울다가 죽어, 그 혼이 두견새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울부짖으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이 피가 떨어진 곳에 피어난 꽃을 두견화라 하는데, 바로 진달레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이 이른바 ‘두견새 설화(사마천의 〈촉지(蜀志)〉 권3)’라고 하는데, 이러한 정조가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소월의 ‘접동새’, 서정주의 ‘귀촉도’ 같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옛 문인이나 요즘 문인이나 두견이와 소쩍새를 자주 혼동하여 쓰곤 했는데, 밤에 슬피 우는 새라면 소쩍새로 봄이 대체로 옳다. 따라서 고려조 이조년(1269~1343)의 옛시조 ‘다정가(多情歌)’에 나오는 '자규'는 사실 자규가 아니라 소쩍새인 것으로 보인다. 명작 속의 티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만한 티로 이 명작의 향기가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배꽃은 하마 졌지만, 우리 시조 중 최고 걸작에 속한다는 다정가나 한번 감상하고 지나가도록 하자.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은한(銀漢)은 은하수이고, 삼경은 자정 무렵이다. 배꽃 피는 사월이면 은하수가 자정쯤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시인은 천문에도 밝았나 보다. 달빛 하얗게 부서지는 배꽃과 은하수, 그리고 소쩍새 울음에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바깥을 서성이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길섶에서] 봄밤 산책/황수정 논설위원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찾는 방편은 ‘지금, 여기’를 낯설게 보는 것. 어제도 오늘도 거기 머문 세상을 낯선 눈으로 돌아보는 것. 그 순간 삶은 풍요를 향해 깨알만큼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고, 선험자들은 지치지도 않고 웅변했다. 오늘, 내일 이틀간 서울 한복판 정동에서 한밤의 거리축제가 열린다. 낮의 윤곽에 익숙한 정동을 밤 늦게까지 구석구석 만끽하는 프로그램, ‘정동 야행(夜行)’이다. 덕수궁, 성공회 서울대성당, 시립미술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등 20개 기관들이 심야에 문을 활짝 연다. 담쟁이 돌 담장이 유쾌하지 않게 높기만 했던 미국 대사관저의 철문도 어렵사리 열린다. 행사를 주관한 서울 중구가 프로그램을 내놓기 앞서 관내의 역사문화공간들을 일일이 답사해 보라고 공무원들을 움직였다고 한다. 그 수고가 모처럼 기껍다. 느닷없이 폭염에 점령된 봄은 짧다.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김수영 ‘봄밤’)던 그 봄밤은 더 짧다. 당연의 세계와 물론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이틀은 감질난다. 밤 10시까지가 아니라 다음번에는 밤의 꼬리까지 완상하게 해 준다면 금상첨화겠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엽렵(獵獵)/황수정 논설위원

    어렸을 적 멋모르고 좋았던 말이 있다. “참 엽렵하구나.” 뭉기적거리는 나를 재빠르게 움직이게 만들 때 할머니는 늘 그 말씀을 앞세웠다. 무슨 뜻인지 선명하진 않았다. 그저 기분 좋은 언어의 조합이다 넘겨짚었을 뿐. ‘슬기롭고 민첩하다’란 사전적 의미를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나의 게으름을 신통하게 무력화시키는 고단위 ‘당근’ 처방이었던 셈이다. 잠 안 오는 봄밤, 한시 몇 수 뒤적이다 무릎을 쳤다. ‘풍포엽렵롱경유(風蒲獵獵弄輕柔) 사월화개맥이추(四月花開麥已秋)’ 부들잎 하늘하늘 가볍게 흔들리고, 사월이라 화개현에는 보리 벌써 익었네…. 바람에 팔랑팔랑 나부끼는 모양새. 그 또한 ‘엽렵’이라니! 사방에서 유록빛 여린 잎들이 사념 없이 바람을 타는 이즈막. 온 천지가 엽렵의 아우성이다. 오뉴월 지나 청록물 짙어 무거워지면 저 잎들이 저렇게 엽렵할 수 있을까. 가을이 닥쳐 수액이 마르면 또 무슨 수로 저렇듯 상쾌하게 엽렵할까. 만사에 때가 있다. 누구보다 엽렵해야 할 사람이 제발 엽렵했으면 좋겠다. 오지랖이 넓다. 비워 둔 총리의 자리가 왜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지. 눈부시게 엽렵했던 사월도 진작에 갔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생명의 窓] 내 생에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내 생에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재무 시인

    초록과 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 동안의 파업을 끝낸 나무와 풀들이 녹색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땅의 지붕을 열고 연초록들이 앳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곧 햇살의 부리가 ‘봄의 줄탁’처럼, 이 나무 저 나무의 수피를 쪼아댈 때마다 부화하는 새끼들같이 꽃들이 가지 밖으로 환하게 얼굴 내밀어 허공을 향해 아장아장 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리하여 봄밤은 새로이 태어난 생명들의 지저귀는 소리로 붐빌 것이다. 냇가에 돌이 놓이게 될 때 흐르는 물이 물러났다 잽싸게 몰려들듯이 한 가지에서 이파리와 꽃이 필 때 공중의 산재한 공기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몰려들 것이다. 봄철의 공중에는 자주 주름이 생겼다 펴지곤 할 것이다. 나는 갓 탄생한 초록과 꽃을 불로 바라볼 것이다. 들판에 번지는 초록 불, 이 산 저 산에 피어오르는 꽃불. 봄은 무르익어서 초록 하양 빨강 노랑 등 색색의 불들이 연기도 냄새도 없이 타올라 온 산야를 색의 제국으로 물들일 것이다. 여기에 봄비라도 다녀가면 기름을 부은 듯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리라. 초록 융단이 펼쳐지고 꽃불이 장엄하게 타오르니 상춘객들 가슴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까닭 없이 들뜨는 마음을 달래려 사립을 나서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산 저 산 그 누가 있어/저토록 눈부시도록 환한 불꽃 피어놓았나/온 산 불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한 오라기 연기도 없이/매캐한 내음도 없이/순연한 빛깔로 타오르는/봄의 산이여 장엄하구나/순수여, 정염이여, 마침내 무념무상이여,- 졸시, ‘방화범’, 부분. 화창한 봄날 풋풋하고 싱싱한, 공장에서 출하한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탄력의 햇살이 눈이 부신 날은 까닭 없이 탈주 욕망으로 몸이 뜨거워진다. 확실히 봄은 위험한, 스프링의 계절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몸속에 스프링을 지니고 있다. 만발하는 꽃들도 줄기와 가지 속의 샘물이 피운 것이다. 갓 태어난 스프링이 뿜어내는 탄력은 얼마나 눈이 부신가. 내게도 누르는 힘이 크면 클수록 되받아 솟구쳐 오르는 쾌감으로 무거운 세상을 경쾌하게 들어 올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영원한 반동을 사는 스프링은 없다. 언젠가는 탄력의 숨을 놓아야 한다. 이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 이르니 반동과 탄력을 잃어가는 스프링에 대해 스스로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에 반비례하여 탈주 욕망이 커지는 것은 고사 직전의 소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본능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은 나를 꼬드긴다. 어깨에 둘러멘 가방을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고 한다.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이 나를 충동질한다. 하지만 아무리 봄이 나를 충동질하고 부채질해도 이러한 내적 자아의 일탈 욕망이 찍어 누르는, 일상적 자아의 힘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곧 진압되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고 만다. 나는 평생 탈주를 꿈꾸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올봄에는 신이 자연의 타자기를 두들겨 지어낸 시문이나 실컷 탐독하여야겠다. 신의 신작들. 산과 들의 지면을 가득 채운, 갓 태어난 순록의 문장들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뜻으로 다가오리라. ‘존재자들(자연 사물들)을 통해 존재(신)를 구현하는 것이 시’라고 말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그것들(자연 사물들)은 신의 문자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사월에는 시골 오일장에나 한번 들러야겠다. 노점 좌판 수북하게 쏟아져 나온 연초록 장정의 신간들이나 실컷 읽어보고 싶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광주 대인시장 ‘야시장 프로젝트’

    [명인·명물을 찾아서] 광주 대인시장 ‘야시장 프로젝트’

    지난달 28일 오후 7시쯤 광주 동구 대인동 대인시장. 사방으로 통로가 이어진 재래시장 입구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쌀쌀한 날씨 속에 옷깃을 여민 외지 탐방객과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시장 골목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부터 이틀간 오후 7~11시 열린 대인시장 야시장(별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파였다. 시장의 주통로 200여m 구간엔 이번 대인 예술시장 별장 프로젝트의 주제인 ‘봄 마중’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인디밴드의 음악에 맞춰 젊은이들이 몸을 흔들어 댔다. 시장 북측 끝자락에 자리한 ‘한평 갤러리’ 주변은 벌써 봄을 알리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작가 ‘다음’이 연출한 ‘윤회매’가 봄기운을 전했다. 매화나무에 밀랍으로 꽃을 연출한 작품이었다. 바로 이웃한 골목엔 봄나물이 가득하다. 박문종 작가가 펼친 ‘봄나물전’에는 냉이, 보리순, 시금치 등 각종 푸성귀 좌판이 즐비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이 직접 만든 머그잔 등 공예품과 도예, 목공, 그림, 액세서리 등 다양한 아트상품이 판매 좌판이 깔려 있었다. 대인시장 상주 예술가와 시민셀러 120팀과 상인 60여팀이 참여했다. 굴림의 ‘길놀이’, 루버스틱의 ‘어쿠스틱 레게’, 바닥 프로젝트의 ‘거리의 악사’, 블랙아이즈 티어 멤버인 송호인의 ‘버스킹’ 등도 이어졌다. 정삼조(54) 별장 프로젝트 총감독은 “이번 행사는 봄을 테마로 한 공간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다”며 “야시장을 대인시장과 인근 ‘예술의 거리’를 아우르는 ‘킬러 콘텐츠’로 육성해 도심 내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시장 골목 한쪽에서는 ‘별장 모자’를 직접 만들어 써보는 체험행사가 열리고, 참여자들이 올봄 소원을 적어 건물 벽면에 붙이는 이벤트도 눈길을 끌었다.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면서 평상시엔 썰렁하던 대인시장 야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대학원생 이가영(25·여)씨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야시장 개장 사실을 알고 친구들과 시장에 나왔다.”며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맘껏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하면 노장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대인시장은 다르다. 대부분 젊은 층이 모여 아트상품 쇼핑을 즐기거나 거리공연에 참여한다. 2007년부터 시장 안에 예술인촌이 생기면서 폐점포를 활용한 전시와 볼거리 이벤트가 이어지고 있다. 40여명의 예술인들은 시장 안 허름한 낡은 건물을 각종 벽화로 단장했다. 이어 공방, 갤러리, 카페, 오픈 스튜디오 등이 줄지어 들어섰다. 이런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방문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외국인과 타지역 사람들도 광주를 방문하면 한번쯤 찾는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재래시장이 새로운 ‘문화관광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말쯤 박근혜 대통령도 광주 방문에 맞춰 이곳을 찾아 유명해지기도 했다. 2011년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한 야시장은 겨울철을 제외하고 매달 1번씩 개장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횟수를 대폭 늘린다. 지난해엔 세월호 참사 여파에도 7차례 열린 야시장 방문객은 8만 1000여명으로 집계됐다. 그 이전 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대형마트의 진출로 쇠락의 길에 접어든 재래시장이 이 같은 별장 프로젝트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저녁이면 철시하던 국밥집, 돼지머리 고기집, 막걸리집 등도 심야까지 이어지는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다. 국밥집을 운영하는 박모(56·여)씨는 “예술인촌이 시장에 둥지를 튼 이후 각종 행사가 이어지면서 손님들도 젊은 층으로 바뀌고 있다”며 “매출도 덩달아 늘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1976년 개장한 대인시장은 점포가 330여곳에 이르는 호남권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그러나 한때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정도로 침체를 거듭하다가 야시장 개장과 예술인촌 조성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은 빈 점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제2의 번영기를 맞고 있다. 음악과 예술, 판매, 공연, 전시가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광주시도 야시장을 광주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육성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시장활성화를 넘어 이곳을 관광명소로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오는 4월 KTX 개통을 시작으로 7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10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 대규모 관광객 유입이 예상되는 굵직한 일정과 국제행사들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월 한 차례씩 열던 야시장을 3~5월은 두 차례씩으로 확대한다. 상인·예술가들의 만족도와 방문객의 호응도를 분석해 문제점 등을 보완할 방침이다. 그동안 사업단에서 진행했던 셀러(수공예품 제작·판매자) 선정을 청년상단 네트워크를 구성해 심사·선정하기로 했다. 예술야시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예술인 레지던스 지원, 한평갤러리 외에 세시봉(재래시장 속 세시풍속전), 대인살롱(예술가를 통한 문화예술교육·체험 프로그램) 등 예술인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대인시장을 오는 9월 개관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한 도심 관광벨트의 중심축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등축제에서 봄밤을 누려~

    등축제에서 봄밤을 누려~

    도봉구 방학천에서 봄맞이 등(燈)축제가 열린다. 도봉구는 오는 21일부터 열흘 동안 정병원 사거리에서 옛 제일종합시장 앞까지 방학천 산책로를 따라 등축제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등축제는 지난해 봄, 가을 두 차례 개최되며 연인원 20만명 이상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우리은행 지원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엔 서울시가 후원한다. 시가 해마다 청계천에서 열고 있는 등축제를 통해 선보였다가 보관 중인 등을 활용해 개최한다. 그래서 개최 비용이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전통혼례, 청마, 연꽃, 민속동화, 풍물놀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추억의 놀이를 묘사한 한지 등 46점이 전시된다. 내년 개관을 앞둔 쌍문동 둘리뮤지엄의 상징인 아기공룡 둘리와 구민이 직접 제작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등은 일몰시간대인 오후 6시 30분부터 11시까지 켜진다. 각자 소망을 엽서에 적어 소망 나무에 부착하는 행사도 마련된다. 이동진 구청장은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2년 연속 등축제를 개최하게 됐다”며 “아름다운 전통 등과 함께 행복한 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유순하 작가의 ‘바보아재’ EBS 라디오 문학상 대상

    유순하 작가의 ‘바보아재’가 제2회 EBS 라디오 문학상 대상에 선정됐다. ‘바보아재’는 ‘소설문학’ 2013년 여름호에 실린 작품으로 집성촌 66칸 종부의 삶을 그렸다. 우수상으로는 구효서의 ‘여름은 지나간다’, 권여선의 ‘봄밤’, 김연수의 ‘벚꽃 새해’, 서진연의 ‘괴산’, 최민우의 ‘이베리아의 전갈’이 선정됐으며 신인상에는 전재민의 ‘미염공’이 당선됐다. 시상식은 17일 EBS 본사에서 열리며 대상 2000만원, 우수상 500만원, 신인상 500만원 등의 상금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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