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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비단 펼친 물길에 달빛마저 쉬어 가누나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비단 펼친 물길에 달빛마저 쉬어 가누나

    겹쳐난 봉우리마다 품은 편백숲·솔숲… 바람길따라 물빛 흐르는 화폭 한 자락충북엔 고개가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개라는 계립령이 충주에 있고, 속세와 이별하는 속리산 말티재와 ‘울고 넘는’ 박달재, 새재, 죽령 등 무수히 많은 고개가 이곳저곳을 가르고 있지요. 충북의 남쪽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영동이 특히 그렇습니다. 저 유명한 추풍령과 괘방령, 우두령, 도마령 등이 경북, 전북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이 깊으니 당연히 골도 깊겠지요. 흐르는 물도 맑을 것이고요. 이처럼 산과 물이 빚어낸 모습들을 풍경이라 정의한다면 영동은 그야말로 절경이 담긴 산수화 같은 곳이 아닐는지요. 수많은 고개가 도시의 때를 막고 물길이 이를 정화한 덕에 여태 오지적 풍경들을 잃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추풍령이 상당히 험한 고개인 줄 알았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으로 시작되는 옛노래 ‘추풍령’(1978·남상규)의 영향 때문일 터다. 그런데 나이 들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초등학교 교정에서 선 올드보이들이 느끼는 옛 기억과의 괴리감이랄까. 추풍령이 그랬다. 겨우 220m 남짓한 야트막한 언덕. 차마 고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높이다. 하지만 물리적 규모와 다르게 추풍령은 고갯길의 변천사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때 수많은 사람과 물산이 오가던 고개였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한순간에 그 지위를 잃었다. 그나마 근근이 이어 오던 국도로서의 명맥 역시 바로 옆에 고속화도로가 놓이면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여전히 고속도로와 고속철로, 국도 등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정작 추풍령 고개는 세인의 발걸음에서 벗어나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추풍령엔 사실 뚜렷한 볼거리가 없다. 한때 나라의 주요한 길목이었다는 역사와 중장년의 가슴을 적셨던 옛 노래의 무대였다는 향수 정도가 남았다. 등록문화재(47호)로 지정된 추풍령역 급수탑, 시골 느낌 폴폴 나는 면소재지 풍경 등이 그나마 볼거리 축에 속할 정도다. 그런데도 굳이 추풍령을 찾은 건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가 남아 있어서다. 이를 기억의 소환이라 불러도 좋겠다. 추풍령에서 퍼뜩 느껴지는 단어는 추풍낙엽이다. 그래서 예전 과거 보러 한양 가던 선비들은 극구 이 길을 피해 갔다고 한다. 한데 이웃한 괘방령은 전혀 달랐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벽에 써 붙이는 걸 ‘괘방’(掛榜)이라 부른다. 괘방령은 이를 차용한 이름이다. 그러니 한양 가던 선비들이 어느 길을 선택했을지는 더 물을 것도 없다. 요즘도 입시철엔 자녀의 합격을 바라는 이들의 발걸음이 은근히 많아진다고 한다.풍경으로만 보자면 상촌면의 도마령이 단연 윗길이다. 영동과 전북 무주를 잇는 고개다. 도마령 정상에서 굽어보는 풍경이 장쾌하다. 민주지산, 천만산 등 고산준령들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도마령의 구절양장 길을 돌아 내려서면 편백나무 숲과 만난다. 영동의 한 독림가가 평생 동안 애면글면 가꾼 숲이다. 규모는 40만평 정도. 이정표에는 ‘감고을 영동 편백숲’, 소유주가 낸 설명서에는 ‘영동 편백 치유숲’이라 표기돼 있다. 그간 비밀의 숲처럼 감춰져 있다가 최근 2대 산주가 개방을 결정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숲을 보고 있자면 보석의 원석을 대하는 느낌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숲은 여전히 거칠다. 반면 그만큼 싱싱하고 짙푸르다. 산주는 앞으로 숲이 개발되더라도 시멘트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시멘트로 대표되는 도시화의 유입을 막겠다는 뜻이기도 할 터다. 산과 물이 빚어낸 풍경 가운데 월류봉을 빼놓을 수 없다. ‘달이 머무는 봉우리’ 월류봉은 영동의 명산인 민주지산에서 내달린 산자락이 황간면 원촌리에서 한천과 만나 불끈 솟아 오른 봉우리다.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멋들어진 봉우리 네댓 개가 서로 어깨를 겯고 있는 모양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여행차 다녀간 곳으로도 알려졌다. 500년 된 배롱나무가 인상적인 반야사와 반야사 계곡도 돌아볼 만하다. 노근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통한의 현장이다. 철길 아래 터널 등에 총탄과 포탄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다. 주변에 평화공원도 조성돼 있다.영동의 서쪽으로 간다. 양산팔경을 품은 송호리가 명소다. 송호리는 ‘비단강’이 돌아나가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금강(錦江)이지만 영동 사람들은 굳이 비단강이라 풀어 부른다. 마을과 마을을 돌아 나가는 모양새며, 그 와중에 만들어 낸 풍경들이 비단결처럼 곱다는 뜻일 터다. 비단강은 영동 일대를 휘감아 돌다 곳곳에 빼어난 명소들을 빚어냈는데 그중 하나가 송호리 국민관광지다. 송호리 국민관광지의 핵심은 솔숲이다. 강변을 옆구리에 끼고 솔숲 사이를 산책하는 맛이 각별하다. 면적은 약 30만㎡(약 8만 6000평). 양산팔경의 하나인 여의정(6경), 용암(8경) 등이 이 안에 있다. 영동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의 한 명인 난계 박연(1378~1458)이 태어난 곳이다. 심천면 일대에 국악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편종 등 국악기들을 전시한 난계국악박물관, 국악체험촌, 난계사 등이 몰려 있다. 사실 지방자치단체가 국악의 본향 노릇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외면하는 국악을 관광에 접목시키는 게 소도시의 역량으로는 버거웠을 수 있다. 50년 넘도록 이런 역할을 꿋꿋이 이어 오는 공로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싶다. 옥계폭포는 박연이 자신의 호를 따왔다는 폭포다. 중부권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달이 뜨는 산’ 월이산 암벽에 그림처럼 걸려 있다. 마지막으로 장선마을 이야기를 덧붙이자. 영동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도착할 때까지는 도착한 게 아니라고 할 만큼 깊숙한 산골에 터를 잡았다. 마을은 십여 가구 정도로 제법 커 보이지만 실제 주민은 서너 가구에 불과하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도랑이 충북과 충남을 가르는 경계다. 도랑 왼쪽은 충남 금산, 오른쪽은 영동이다. 마을 주민들은 하루 수차례 충남, 북을 가로지르며 너나없이 살아간다. 충남 쪽 도랑가에 작은 정자가 있다. 장선마을의 옥구슬 정자 ‘장선경루’(長仙?樓)다. 정자에 앉아 도랑물 졸졸대는 소리를 듣자니 시나브로 해가 진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맛집:가선리 일대에 어죽집이 몇 곳 있다. 가선식당(746-8665)은 그중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다. 금강의 별미로 꼽히는 어죽과 도리뱅뱅이를 맛볼 수 있다. 이웃한 선희식당(745-9450)의 명성도 못지않다. 도리뱅뱅이는 충북 영동, 옥천 등의 토속 음식이다. 피라미나 빙어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돌려 기름에 튀긴 뒤 고추장 양념에 조려 낸다. 영동 읍내의 사랑채(745-6004), 황간면의 인터식당(742-4525) 등은 ‘올갱이’(다슬기의 사투리)국으로 이름난 집들이다. 특히 사랑채는 밑반찬이 정갈하고 맛있다. 부추나 아욱을 주로 쓰는 여느 집과 달리 근대를 주재료로 삼는 것도 이채롭다. →가는 길:영국사, 송호리 등 영동 서쪽의 관광지를 먼저 보겠다면 대전통영고속도로 금산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낫다. 이어 68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양산면 방향으로 곧장 가면 된다. 월류봉, 추풍령 등 황간 일대의 명소들을 먼저 찾겠다면 경북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빠르다. 영동 읍내와 와이너리 등은 경부고속도로 영동 나들목과 가깝다. 장선마을은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내비게이션에도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선리 방향으로 가다 장선교에서 우회전한다. 이어 펜션 등이 들어찬 마을을 지나고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지난 뒤에 한참을 더 가야 나온다. 영동편백 치유숲(745-3740)도 찾기가 쉽지 않다. 먼저 자계예술촌을 찾아간 뒤 ‘영동 감고을 편백숲’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주소는 용화면 자계리 산 1-3이다. 이제 막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곳이어서 주차시설 등은 갖춰져 있지 않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황간 나들목에서 영동 방면으로 2㎞ 거리에 있다. →잘 곳:송호국민관광지(740-3228) 야영장에서 캠핑을 하는 것도 좋겠다. 오토캠핑장은 없고 전기도 사용할 수 없는 ‘아날로그’ 캠핑장이지만 찾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송호리 바로 옆의 비단강숲체험마을(745-5432)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고요한 섬…오롯한 봄 오롯한 쉼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고요한 섬…오롯한 봄 오롯한 쉼

    중국 관광객이 나라 안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 탓에 여기저기서 걱정과 한숨이 늘어갑니다. 금전 손실만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가장 극적인 곳은 제주입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팔할 이상이 중국인이었으니 그 상실감과 위기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다소 달라집니다. 수조원과 고요를 맞바꾼 듯한 느낌이랄까요. 제주 어디를 가도 북적대는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머지않아 중국인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제주 같은 매력을 가진 곳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말 그대로 시간문제겠지요. 뒤집어 보면 이는 지금이 제주 여행의 적기란 뜻도 될 겁니다.놀라웠다. 성산일출봉에서 중국말이 사라지다니. 성산일출봉은 제주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늘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한국말보다 중국어가 더 잘 들릴 정도였다. 다소 거슬리기까지 하는 중국말이 사라지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사실 놀라운 일은 제주에 올 때부터 있었다. 제주행 비행기가 정시에 출발해 정시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고도 못 믿을 지경이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게다가 항공기에 오르내리는 총 4번의 과정 내내 브리지(탑승교)를 이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 탑승해야 하는 불편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성산일출봉과 이웃한 광치기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중국인이 사라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되찾은 건 적요다. 몇몇 관광객은 방석을 깔고 조용히 앉아 참선하며 고요를 즐겼다. 사실 이것이 제주의 본질일 터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풍경을 잃고 있었던 거다.귀동냥 삼아 제주관광공사에 물었다. 3월에 가볼만한 곳이 어디냐고. 공사 측이 추천한 곳들을 중심으로 제주를 돌아봤다. ‘놓치면 후회할 꽃삼월의 제주’가 주제다. 가슴 가득 봄을 담기에 꽃밭만한 곳이 있을까. 제주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역시 유채꽃이다. 함덕해변을 낀 서우봉 언덕은 해마다 봄이면 유채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비췻빛 바다와 노란 유채꽃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올해는 유채꽃 개화가 늦어 아직 만개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리도록 파란 바다와 더불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우봉을 에둘러 도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바다를 발아래 두고 자박자박 걸을 수 있다. 서우봉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동쪽 오름들이 한눈에 담긴다. 서귀포 ‘화순서동로’에는 약 5㎞에 걸쳐 유채꽃이 가득하다. 이 일대 유채꽃 역시 이번 주말부터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라 정차하기보다는 천천히 드라이브하면서 꽃길을 감상하는 게 훨씬 인상적이다. 화순서동로 유채꽃길은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B코스)의 일부다. 화순곶자왈 지대를 가로지르며 숲과 유채꽃을 즐길 수 있다. 중산간 쪽에서는 표선면 가시리의 녹산로 일대가 손꼽히는 유채꽃 명소다. 가시리 마을 진입로부터 10㎞ 구간이 핵심이다. 한때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던 가시리 녹산로는 조선시대 최고의 목마장이던 녹산장과 갑마장을 관통하는 길이다. 봄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면 발아래는 유채꽃이, 머리 위엔 벚꽃이 피는 그림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18~19일엔 서귀포 유채꽃 국제 걷기대회가 열린다. 운동 삼아 꽃 구경에 나서자는 게 대회의 취지다. 첫날은 중문관광단지에서 안덕까지, 둘째 날은 중문에서 강정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걷는다.온평리 포구는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최근 제2 제주공항 부지로 선정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반발하는 등 풍파가 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온평리의 옛 이름은 열온이다. 연을 맺은 곳이라는 뜻이다. 탐라의 시조로 꼽히는 고, 양, 부 삼신인이 벽랑국에서 떠내려온 세 공주를 맞으러 나간 곳도 이 온평리 바다라고 전해진다. ‘황로알’은 세 공주가 배에서 내릴 때 노을에 비친 바닷가 돌이 황금색으로 빛났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황로알 주변엔 검은 돌이 장벽을 이루고 있다. 환해장성이다. 오래전 왜구 등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새마을운동으로 훼손됐다가 30년 전 복원됐다. 이 밖에 생선 기름을 이용해 불을 밝히던 도대(전통 등대), 주민들의 생명수였던 용천수, 말발자국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이웃한 혼인지는 온평리의 ‘연관검색어’ 정도 되는 곳이다. 삼신인들이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연못으로, 제주도 기념물(17호)이다. 중산간 일주도로를 따라 가면 나온다. 이맘때 제주 갯가 마을을 돌다 보면 굿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영등굿이라 부른다. 제주 사람들은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 부른다. 영등신(영등할망)이 변덕스러운 날씨와 꽃샘추위를 몰고 온다는 달이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날씨 변화가 심해 항해를 꺼리는 등 금기시하는 일도 많은 시기다. 사실 영등신은 우리나라 갯마을 전체에 분포하는 민간신앙이다. 영등할망을 잘 대접해야 한 해 농사도 잘된다는 생각은 어디나 공통적이다. 다만 뭍의 영등신앙이 다소 희석된 반면, 늘 바다에서 ‘바람신’과 함께 살아야 하는 제주에선 여전히 마을공동체의 신앙으로 전승되고 있다. 바닷가 특유의 풍습을 엿보려면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서둘러 지나치지 말고 해녀당이나 본향당 등을 꼼꼼히 살피며 돌아보길 권한다.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하도, 세화 일대 해변이다. 이제 개발의 ‘삽질’이 멈춰주길 바라는 곳 중 하나로, 얼마 남지 않은 제주 특유의 풍경이 그나마 이 일대에 남아 있다. 하도는 구좌읍에 속한 해안마을이다. 별방진성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오래전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별방(別防)은 하도리의 옛 지명이다. 성 둘레는 1㎞ 남짓. 높이는 3.5m에 이른다. 검은 돌을 쌓아 올린 성벽도 멋들어지지만 더 인상적인 건 주변 풍경이다. 성벽을 딛고 서면 마을 안쪽의 밭담들이 검은 물결처럼 넘실댄다. 검은 돌담과 노란 유채꽃이 소박하게 어울렸다. 세화해변에선 벨롱장이 열린다. 벨롱장은 제주말로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이다. 제주 문화가 집약된 벼룩시장이라 보면 틀림없겠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주민과 도시에서 옮겨온 이주민들이 저마다 독특한 토산품들을 내놓는다. 그 덕에 지역 주민과 여행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 같은 시장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전통 5일장도 볼만하다. 끝자리가 0과 5인 날에 열린다. 바닷가 풍경도 곱다. 사파이어 빛 바다와 고운 모래, 불퉁하고 검은 갯바위가 보기 좋게 어우러졌다. 협재, 함덕 등 물빛 곱기로 이름난 해변들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은 풍경이다. 모래톱엔 ‘단물탕’이 두 개 남아 있다. 용천수를 활용한 마을 공동목욕탕이다. 바닷가 쪽이 남탕, 마을 쪽이 여탕이다. 단물은 민물을 뜻한다. 논짓물이라고도 불린다. 단물탕은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래 위로 단물이 졸졸 흐른다. 지금은 사람이 없지만, 여름엔 관광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다. angler@seoul.co.kr
  • 고요 속 풍요… 네 섬에 가고 싶다

    고요 속 풍요… 네 섬에 가고 싶다

    고흥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록도가 목적지다. 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 우주센터가 있는 나로도 일대가 추가되는 정도다. 그러니 주변의 수많은 경관들은 일별할 틈도 없이 지나치게 된다. 특히 작은 섬들이 그렇다. 고흥 주변 ‘섬 속의 섬’을 추렸다.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랄 만큼, 궁극의 적요 속에 머물 수 있는 곳들이다.●폐허도 예술로 만들다… 미술 섬 꿈꾸는 연홍도 연홍도는 거금도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섬의 모양새가 바다에 뜬 연(鳶)과 같다 해서 연홍도다. 50여 가구 80여명이 사는 작디 작은 섬이다. 연홍도는 미술섬을 꿈 꾼다. 주민들이 나서 집 담장을 벽화로 장식했고, 섬 곳곳에 작은 조형물도 세웠다. 선창가 집은 사진박물관으로 변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추억의 사진들이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흉물처럼 남아 있던 김 가공 공장 역시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섬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잇는 둘레길도 만들어졌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섬마을 미술관이다. 선착장을 지나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동백나무 무성한 해수욕장이 나온다. 그 오른쪽으로 ‘연홍미술관’이 서 있다. 화가 선호남씨(55)가 폐교된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장을 2006년 미술관으로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이 섬을 휩쓸면서 미술관도 폐허가 됐다. 연홍미술관은 지금 예술의 옷을 다시 입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오는 4월 7일 ‘섬 여는 날’에 맞춰 재개관할 예정이다. 연홍도는 거금도 서쪽 끝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이면 닿는다. 완도 쪽의 금당도 등 아름다운 섬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엄마같은 득량만… 드넓은 갯벌 품은 우도 고흥 사람들에게 어머니 품 같은 바다가 득량만이다. 온갖 갯것들을 아낌없이 내준다. 우도는 그 득량만의 안쪽 깊숙한 곳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고흥군에서 벌인 ‘관광테마의 섬’ 개발사업 이후 ‘가족의 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도는 남양면 중산리의 길이 1.2㎞ 노둣길을 통해 뭍과 연결돼 있다. 노둣길은 하루 두 번, 썰물 때 열린다. 소형 차량은 오갈 수 있지만, 큰 차는 다소 버겁다. 물때표(www.badatime.com/s-235-0.html)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필수다. 노둣길 양옆으로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서정적인 갯벌이다. 한 주민에 따르면 “예전에 이곳에서 캔 굴이 말도 모더게(못하게) 좋았”단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갯것들을 캐며 살아가고 있다. 3㎞ 정도의 해안선을 따라 일주도로가 조성돼 있다. 남도 바다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산책로다. 반짝이는 갯벌과 그 너머의 회색빛 바다가 눈부시다. 섬 주변으로는 구렁섬과 각도 등 무인도들이 별처럼 떠 있다. 섬 가운데엔 전망대도 세웠다. 여기서 맞는 저물녘 풍경이 아름답다. 고흥 10경 가운데 하나인 ‘중산 일몰’이 바로 이 바다에서 펼쳐진다.●비밀의 정원에 오세요… 꽃향·쑥향 향긋한 애도 ‘쑥섬’이라 불리는 애도(艾島)는 전남도 제1호 민간정원이다. 덜 알려진 민간 부문의 정원을 발굴해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프로그램의 첫 번째 대상인 셈이다. 애도는 나도로항 바로 맞은편에 있다. 딱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별칭에서 보듯 섬엔 쑥이 많이 자란다. 해안선 길이는 3.2㎞ 정도. 스무명 남짓한 주민이 깃들어 산다. 규모는 작아도 볼거리는 제법 풍성하다. 동백, 후박나무 등 난대림이 울창한 당숲, 사연 많은 바위들, 등대길 등이 섬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핵심 볼거리는 ‘쑥섬정원’이다. 한 부부와 마을 공동체가 16년 동안 애면글면 가꾼 비밀의 정원이다. 거제 외도의 식물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단아한 꽃들과 만날 수 있다. 봄이 되면 ‘사랑의 돌담길 걷기’ ‘내 화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문화공연 등도 열릴 터다. 애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은 올 연말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애도의 들머리인 나로도항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삼치 파시’로 유명한 항구였다. 지금은 예전만 못해도, 삼치의 본향답게 숙성된 삼치를 맛볼 수 있는 업소들이 선창 주변에 늘어서 있다.●팔영대교 휙 넘어가면… 검은 돌 반짝이는 적금도 영남면 우천리 갯가에 서면 바다 위로 긴 다리 하나가 걸개그림처럼 떠 있다. 지난해 말 개통된 팔영대교다. 고흥에서도 빼어난 해안 풍경으로 이름난 영남면이니 다리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이야 더 말할 게 없다. 팔영대교를 날 듯이 넘어가면 적금도다. ‘쌓을 적’(積) 자에 ‘쇠 금‘()자를 쓴다니 마을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예부터 퍽 요족했던 모양이다. 엄밀히 따지면 적금도는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이다. 하지만 생활여건은 고흥에 가깝다. 여기에 팔영대교까지 개통됐으니 사실상 고흥에 딸린 섬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뭍으로 가는 다리가 놓였지만 적금도 주민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섬을 오가는 외지인들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흥과 여수 사이 섬들에선 지금 교량공사가 한창이다. 모두 11개의 다리가 놓이고 나면 고흥과 여수는 하나로 연결된다. 팔영대교는 그중 첫 번째 다리다. 관광객이라야 한 해 몇 명에 불과했던 적금도지만 머잖아 뭍의 습속이 밀려들면 섬 문화도 많이 달라질 터다. 적금도 길이는 남북 2.5㎞ 정도다. 해안가에는 검은 자갈이 햇살에 반짝인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가방 ●쁘띠프랑스 11일부터 피노키오 1500회 축제 쁘띠프랑스가 11일~4월 16일 마리오네트 ‘피노키오’ 인형극 1500회 공연 기념 축제를 연다. 2013년 10월 시작된 ‘피노키오’ 인형극은 국내 최초의 마리오네트 인형극이다. 짧은 인형극을 직접 만들어보는 ‘기뇰 체험’, 마리오네트 인형을 직접 조정하는 ‘마리오네트 조종 체험’ ‘유럽 동화 의상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오르골 시연, 마리오네트 댄스 퍼포먼스 등 무료 공연들도 펼쳐진다. ●새달 1일 청양 고운식물원서 새우란 전시회 ‘새우란·광릉요강꽃 전시회’가 4월 1일~5월 16일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에서 열린다. 금새우란, 신안새우란, 한라새우란 등 국내 자생 새우란과 중국, 일본 등에서 수집된 희귀 새우란 150여종이 전시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 식물인 광릉요강꽃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고운식물원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식물보전기관으로 37㏊에 이르는 숲 전체가 다양한 테마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용 시간은 오전 8시~오후 6시다. (041)943-6245. ●16일부터 에버랜드 튤립축제에버랜드 튤립 축제가 16일~4월 23일 열린다. 튤립, 수선화 등 100여 종, 120만 송이의 봄꽃이 에버랜드를 수놓는다. 하나의 꽃잎에서 두 가지 색상을 보이는 30여 종의 튤립 신품종과 ‘도베르만’ 등 희귀 튤립 품종을 만날 수 있다. 브라질 리우 등 세계적인 카니발의 열정을 담은 ‘카니발 판타지 퍼레이드 시즌2’와 멀티미디어 불꽃쇼 ‘주크박스 <더 뮤지컬>’ 등 대표 공연들도 31일부터 다시 시작된다.
  • 10년 만에… 대륙의 설원 위 흩뿌린 시편들

    10년 만에… 대륙의 설원 위 흩뿌린 시편들

    “대륙의 밀실에 갇혀 보낸 서너 해 동안 설원 위에 써야 할 것들이 있어 북국의 겨울밤은 두렵지 않았다.”러시아의 설원을 넘어 압록강, 두만강 건너 조국의 국경까지 내닫는 시편들엔 북방의 비장미가 서려 있다. 올해 등단 25년을 맞는 송종찬(51) 시인이 10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첫눈은 혁명처럼’(문예중앙)에서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시인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기업 철강 회사 법인장으로 러시아에 체류했다. 문학의 본향에서 생업을 이어가며 속인으로 살았지만 시인으로서의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대륙에 살다 보니 시가 짧아졌다. 어차피 모두 채울 수 없는 공간이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압축적인 시 속에는 대륙적 상상력과 순수한 세계에 대한 열망이 일렁인다.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잔해가 없다/그곳이 하늘 끝이라도/사막의 한가운데라도/끝끝내 돌아와/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중략)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혀를 내밀어 보면/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눈의 묵시록) 시집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1부와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을 다룬 2부, 다양한 소재와 공간을 직조한 3부로 엮였다. 이홍섭 시인은 “시인이 러시아에서 발견한 성스러움은 혁명의 순수함, 사랑의 지순함과 결합돼 그의 시에서 고전적인 품격을 느끼게 만든다”고 평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新전원일기] 초지 달리고, 한우 먹고, 펜션서 자고 ‘테마공원 같은 농장’ 제주서 영근다

    [新전원일기] 초지 달리고, 한우 먹고, 펜션서 자고 ‘테마공원 같은 농장’ 제주서 영근다

    제주는 ‘신화의 땅’이다. 1만 8000개 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창조신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를 만들었다면 그의 아들 ‘오백장군’은 바위로 굳어 제주도를 지킨다. 서울에 살던 여신 ‘금백주’가 제주 송당의 ‘소천국’이라는 남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고, 그 자손들이 흩어져 마을마다 수호신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제주의 마을마다 지금까지 1~2개씩 남아 있는 당(堂)은 그런 신화들의 흔적이다.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당 중에서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본향당은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에 있다. 당 안에 오래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의미로 ‘송당’이라고 부른다.신화의 마을 송당에서 ‘한울타리 농장’을 키우는 안석찬(47)·강인자(44)씨 부부를 만났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혀질 정도로 사나운 날씨였다. 도착하자마자 250마리의 황우 한우를 키우는 축사를 둘러봤다. 거기서 좀 떨어져 있는 다른 축사에는 200마리의 소들이 있다고 한다. 천장이 높은 조립식 축사 안은 눅눅한 볏짚 냄새와 소들의 분뇨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사료가 쏟아져 내려오자 소들이 일제히 머리를 내밀고 사료를 핥기 시작했다. 몸집이 큰 소 사이에 있는 송아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송아지는 등에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제 태어난 송아지라고 했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됐다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걸음도 불안해 보였다. 송아지는 당연히 아직 귀표도 부착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소들은 축산물 이력제에 의해 귀표를 부착해야 한다. 귀표는 개체별 식별번호로 구제역과 같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방역이나 추적 관리, 품질 향상을 위해 축산물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 제주, 1995년부터 축산물 수출 전지기지로 육성 축사 안쪽 끝까지 들어갔을 때, 몇 마리의 소가 축사를 벗어나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흙을 딛고 비탈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축사로 돌아오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놈들의 행동이 이상해 이유를 물었더니 경사진 길을 올라서면 9만평의 초지와 연결돼 있는데 습관적으로 거기로 향하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를 맞으며 비탈길에 서 있는 녀석들은 넓은 초지가 그리워 비를 맞으면서도 그 너머로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제주도에 본격적으로 축산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특히 제주 동부 지역 중산간에 분포된 방대한 초지는 조사료(건초)를 만들 수 있는 유리한 자연 조건이다. 1995년에는 한우 축산뿐 아니라 낙농, 양돈 등을 장려하고 축산물 수출 전진 기지화의 중심으로 육성됐다. 안 대표의 한우 사육은 선대로부터 시작됐다. 안 대표의 부친은 축사 60평에서 20마리의 소를 키웠다. 이런 환경 때문에 안 대표는 자연스럽게 소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에게 물을 먹이는 일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고 한다. 초지는 넓지만 습지가 부족한 제주에서는 풀을 먹이기 위해 초지를 찾아갈 필요는 없었지만 물을 먹이기 위해서는 물웅덩이로 소들을 데리고 가야만 했다. 이때 하나의 물웅덩이에서 사람과 소가 함께 물을 마셨는데, 가운데에 돌담을 쌓아서 그 경계를 나누었다고 한다. 경계만을 나눴을 뿐 결국 같은 물이었지만 이쪽과 저쪽, 사람과 소가 그 물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그때 꼭 챙겨 갔던 것이 수건이란다. 그래도 소와 같은 물을 마실 수는 없다고 생각해 물 위에 수건을 놓고 필터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제주대 축산학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축산인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에 이어 축산을 업으로 삼으려는 계획이 구체화된 시기였다.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축산 이론을 공부했고 축사 관리나 전산 관리같이 농장 경영에 실제로 필요한 것을 익혔다. 그는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서 ‘흥사단’ 동아리 활동도 했다. 그때 부인 강씨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조립식 건축 현장에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다. 트랙터나 포클레인 같은 농기계 조작 방법도 배웠다. 축산은 소나 돼지를 잘 사육하는 것 못지않게 경영이나 기계 조작 능력과 같은 외적 요소도 중요하다. 초기 투자에서 출하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각각의 과정마다 전혀 다른 영역의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소사육은 초기 투자 비용도 많이 들고 출하까지 대략 3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조사료 비용과 인건비를 얼마나 절감하느냐가 중요하다. 안 대표는 일찍 그것을 깨달았다. 조립식 건축 현장에서 배운 기술로 그는 지금의 축사 2개 동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트랙터나 포클레인뿐 아니라 노우어 컨디셔너, 테더와 같은 건초 생산 장비로 초지에서 직접 조사료를 만듦으로써 원가를 절감했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소고기의 단가가 떨어져 마리당 50만원 정도의 이익밖에 남지 않을 때에도 무사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관광자원 결합한 체험프로그램 개발 필요 그가 한우 농장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처음 25마리로 시작한 농장은 이제는 450마리를 키우는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이 됐다. 한울타리 농장은 여기서 태어난 송아지를 한 마리도 내보내지 않으며, 또한 외부의 송아지를 받아들여 키우지도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의 농장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키워서 출하하고 있다. 한 달 평균 10마리의 소를 출하해 연간 12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농장을 더 확대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했다. “지금이 딱 기로인 것 같아요.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더 확장할 것인가. 만약 농장을 확대한다면 2000마리까지 늘려야 해요. 초지가 9만평 있으니까 조사료를 만들어 먹이고 부족할 경우 수입 건초를 먹이면 사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문제는 전문가예요. 송아지 관리, 농기계 사용, 전산 관리 등을 할 줄 아는 전문가가 더 있어야 해요. 그래서 쉬운 얘기가 아니죠.” 안 대표는 농장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좀더 다른 방향을 잡은 듯 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농가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귤을 재배하는 1차 산업만으로 농촌은 힘들죠. 농촌의 미래는 1차 산업과 결합할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바다가 보이는 넓은 초지를 이용한 관광객들의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초지를 달리고, 식당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송당 펜션에서 자는 이른바 ‘즐길거리’와 ‘먹거리’와 ‘자는 곳’이 어우러진 큰 그림이었다. 송당이 속해 있는 구좌읍은 농축산업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산업과 결합시킬 좋은 향토 자원을 갖고 있다. 구좌읍에서 시작해 지미봉에 이르는 제주 올레 21코스 ‘하도 종달올레’는 올레 코스 중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손에 꼽힌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당근밭과 감자밭 사이를 지나면 다랑쉬오름을 비롯해 성불오름, 아부오름, 용눈이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들로 이어진다. 수령이 1000년 된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림도 있다. 초지 위의 풍력발전소도 이색적인 풍광을 더한다. 또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산마을곳’이라는 활엽수림 지대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 마을이 있었던 산마을곳은 제주 4·3 때 소개(疏開)돼 지금은 무성한 활엽수 숲이 돼 있다고 한다. 기본적인 정비는 이미 끝났고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절차만 남아 있다니 기대되는 곳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땅에 뿌리를 내린 송당 토박이인 안 대표가 고향을 중심으로 농축산업을 연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발전을 위해 그는 전국한우협회 제주도지부 부회장을 비롯해 제주대 동문회, 동아리연합회, 초등학교 동창회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최소 ㎏당 2만 2000원 보장돼야 한우산업 유지 미국을 비롯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도 소고기가 수입되는 현실에서 한우 농장에 대한 전망과 축산 농가가 살아남기 위한 조건 등이 궁금했다. “한우는 ‘만숙종’(晩熟種)입니다. 그래서 사육하는 데 경비가 많이 듭니다. 그 대신 육질의 조직이 촘촘해 식감이 뛰어나고 풍미가 좋습니다. 교잡우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격 경쟁력도 중요합니다. 최소 ㎏당 2만 2000원은 보장돼야 한우산업은 할 만합니다. 한 마리를 400㎏으로 잡았을 때 800만원은 돼야겠지요.” “안 대표는 선친의 일을 물려받아서 이렇게 잘 이어 가고 계시는데 혹시 아들이 소사육을 하겠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이 소사육사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니까 하겠다면 물려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대에서는 가족 노동력으로 소를 사육했고 그래서 다른 일도 같이 해야 했지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전문화되고 기계화됐죠. 아마 앞으로는 더 전문적인 기술이나 시스템이 필요하겠죠. 아들은 아직 어리니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래요. 기본적인 것을 익힌 다음 판단하고 선택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빗소리도 더 거세게 들렸고 바람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한울타리 농장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행기 시간을 계산한다면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공항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어두운 산길이었다. 송당 사거리를 지나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1112번 도로를 따라갔다. 공항은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돼 혼잡스러웠다.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는 제주공항 장면이 떠올랐다. 폭설로 며칠 동안 비행기가 결항되면서 공항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던 뉴스가 연일 보도된 때였다. 겨우 대합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침부터 종종거리며 돌아다닌 피곤함이 밀려왔다. 비행기가 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심정이 뒤섞여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나중에 송당 본향당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하면서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것은 본향당 신의 가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우리가 지나왔던 1112번 도로에 제주 수호신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신을 모신 본향당이 있었다.■글쓴이 소설가 강진 2007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건조주의보’로 등단. 소설집 ‘너는, 나의 꽃’, ‘피크’(공저), ‘캣캣캣’(공저) 등.
  • [新국토기행] 지리산 비경 섬진강 풍경 … 구례의 절경

    [新국토기행] 지리산 비경 섬진강 풍경 … 구례의 절경

    전남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구례군은 전북 남원시와 경남 하동군, 전남 곡성군, 순천시·광양시와 연결된다. 백두대간의 남쪽에서 가장 덩치가 큰 지리산의 아늑한 품에 안겨 있는 구례는 언덕을 넘는 구름이 쉬어 가듯 일상을 잊고 잠시 머물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곳들이 많다. 북동쪽의 지리산과 남쪽의 백운산이 감싸 전형적인 산간 분지를 이루고 있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고장으로 지리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다.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와 천은사, 연곡사 등 천년 고찰이 자리하고 있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게르마늄 온천수로 유명한 지리산 온천은 관광특구로 개발돼 있으며, 최근 지리산 자락에 야생화 생태공원과 산림휴양타운이 개장돼 휴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구례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지리산 자락과 구례 분지의 평야를 돌아 나가는 섬진강이 있어 구례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생태계 보전을 위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고, 곡성군과 하동군을 연결하는 섬진강 자전거길도 유명하다. 구례는 동편제 판소리의 본향으로 향제줄풍류와 잔수농악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되고 있다. 산수유꽃축제, 섬진강벚꽃축제, 피아골단풍축제 등 지역 축제도 풍성하다. 순천~완주 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대구~광주 고속도로, 전라선 철도 등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 남도 최고의 관광·휴양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매년 봄 산동면 지리산 자락을 노랗게 물들이는 산수유꽃으로 유명하다.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종주 시작점 노고단 지리산(智山)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916.77m)과 서쪽 끝의 노고단, 서쪽 중앙의 반야봉 등 3봉을 중심으로 동서로 100리에 걸쳐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노고단(1507m) 아래 펼쳐지는 운해의 절경은 지리산 제1경으로 꼽힌다. 노고단은 도교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다. 성삼로까지 도로가 나 있어 이곳 주차장에서 내려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의 백미는 종주 산행이다. 그 종주의 출발점인 노고단이 단연 으뜸이다. 반야봉, 천왕봉과 함께 지리산 3대 주봉으로 꼽히며, 지리산 산신을 모시는 신앙지로 고려시대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1100~1200m 높이에 있는 광활한 고원처럼 펼쳐진 원추리꽃 전경은 노고단의 비경으로 빼놓을 수 없다. 구름바다와 샛노란 꽃망울이 어우러진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화는 노고단의 사계절 아름다움이다. 좀더 여유로운 산행이 가능하다면 지리산 최대 사찰인 화엄사 출발을 추천한다. 구례군에서는 화엄사부터 출발한 지리산 종주 산행을 인증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구례를 한눈에 조망하는 오산 사성암 2014년 명승 제111호로 지정된 사성암은 해발 531m의 오산 정상에 있다. 544년 연기조사가 건립해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4명의 높으신 승려인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가 수도했다 해서 사성암이라 불린다. 사성암에 이르면 높이 20m의 암벽에 독특한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약사전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애여래입상이 약사전 건물 내 암벽에 새겨졌으며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오산 사성암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구례 전경으로도 유명하다.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넓은 평야, 그 너머 웅장하게 솟은 지리산의 연봉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야생화 100여종 테마랜드 가족·연인에 인기 최근 구례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산림생태공원은 광의면 온당 마을 일원에 조성된 야생화테마랜드·자생식물원·생태숲·숲속수목가옥과 산동면 탑정리 일원에 있는 산수유 자연휴양림·수목원으로 연결돼 있다. 야생화테마랜드는 24㏊ 면적에 지리산 권역 100여 종류의 야생화가 심어져 있다. 생태숲에는 240여종의 식물 자원이 식재돼 있어 계절별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숲속수목가옥은 야생화테마랜드와 연계된 ‘자연 속의 힐링 하우스’로 숙박이 가능해 가족·연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산수유 마을 인근에 위치한 산수유 자연휴양림에서도 숙박이 가능하고 물놀이장과 다목적 운동장이 있어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지리산을 많은 사찰을 거느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가 가장 큰 사찰이다. 지리산 산세와 불교문화가 어우러져 천년의 고요함이 배어 있다. 동양 최대 목조건물 각황전과 석등 4사자 3층 석탑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수홍루의 그윽한 정취가 일품인 천은사와 사찰보다 승탑이 더 아름답기로 유명한 연곡사도 구례에 있다. ●‘영원한 사랑’ 꽃말 산수유 축제는 3월 산수유 꽃의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이다. 구례에서는 매년 대한민국에 봄을 알리는 구례산수유꽃축제가 열린다. 꽃피는 3월이면 봄기운을 느끼려는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구례 산수유는 전국 생산량의 약 69%를 차지하고 있다. 산수유 농업의 우수성과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구례 산수유는 당초 농가에서 생계 보전 차원에서 심었는데 군락을 이루고 피는 꽃이 아름다워 이제는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됐다. 전국 최대 규모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생협과 구례군이 협력해 조성한 친환경 식품 가공 클러스터가 구례자연드림파크다. 14만㎡의 부지에 827억원이 투자돼 2014년 6월부터 운영 중이다. 현재 아이쿱생협 14개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지난해 기준 생산액은 584억원이다. 511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연간 109억원의 근로소득을 창출해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공방(공장)을 개방해 각종 견학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관과 식당, 휴센터 등 각종 문화시설을 갖춘 6차 산업 모델로, 연간 11만명이 유료 방문하며, 전국 자치단체 등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동편제 판소리 본향 느끼고 온천으로 힐링 구례는 동편제 판소리의 본향으로 국창 송만갑, 유성준, 박봉래, 박봉술 등 판소리 명창을 배출한 고장이다.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이 있어 판소리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송만갑 생가와 명창 추모비 등이 있다. 매년 10월 동편제판소리축제가 개최된다. 송만갑 판소리·고수 대회가 함께 치러져 명창을 꿈꾸는 많은 국악인들이 참가해 실력을 겨루고 있다. 대상에는 대통령상을 준다. 지리산 온천 관광지는 산동면 산수유 마을과 인접해 있다. 게르마늄 온천수로 유명하며 구례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온천관광이 다소 침체됐지만 여전히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또는 지리산 산행을 마친 관광객이 피로를 풀기 위해 들르는 필수 코스다. 인근에 산수유 사랑공원, 산수유 문화관, 수락폭포 등 볼거리도 풍부해 1박 2일의 여행 일정에서 숙박지로 인기를 모은다. ■ 이 ‘맛’에 구례에 갑니다 다슬기 수제비 속까지 ‘뜨끈’ 흙염소 구이로 지친 몸 ‘불끈’ ●‘쫀득하군’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 청정하천 섬진강에서 물이끼 등을 먹고 자란 다슬기를 넣고 끓인 수제비다. 하천과 호수 등 물이 깊고 물살이 센 곳의 바위틈에 무리 지어 사는 다슬기는 쫀득쫀득하고 뜨끈한 국물맛이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할 정도로 일품이다. 다슬기는 체력 회복, 숙취 해소, 간 기능 회복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침, 장, 전 등 다양한 요리가 있다. ●‘청정하네’ 지리산 산채 비빔밥·정식 심산유곡 지리산 일대에서 채취한 송이와 표고, 고사리, 더덕 등은 그야말로 무공해 식품이다. 이처럼 지리산에서 나는 깨끗하고 신선한 각종 나물과 버섯류로 만든 요리다. 지리산 자락의 오염되지 않은 산과 들에서 나는 갖가지 나물에는 특유의 향과 맛, 효능이 살아 있어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산채정식 한 상에 나오는 20여 가지 반찬 가짓수에 놀라게 된다. ●‘얼큰하다’ 섬진강 매운탕 다슬기와 마찬가지로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참게, 쏘가리, 메기, 붕어 등 각종 물고기 매운탕이다. 시래기, 양파 등 신선한 야채와 함께 끓여 내 얼큰하고 개운한 맛을 준다. ●‘경건하게’ 조미료 뺀 사찰음식 천년 고찰이 많은 구례는 사찰음식이 발달했다. 사찰음식은 기본적으로 고기와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홍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산채, 들채, 나무뿌리, 나무열매, 나무껍질, 해초류, 곡류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되 음식 조리 방법이 간단해 주재료의 맛과 향을 살리도록 양념을 제한하고 인위적 조미료를 넣지 않은 음식이다. ●‘담백해요’ 야생 산닭구이 야생에서 키운 산닭은 육질이 쫄깃쫄깃하며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다른 육고기에 비해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고, 비타민 B2가 특히 많다. 섬유질이 가늘고 연해 소화 흡수가 잘되는 등 남녀노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영양식이다. ●‘영양 듬뿍’ 방목 흑염소 구이 지리산에서 방목해 키운 흑염소는 예부터 현대까지 신비의 약용동물로 알려졌다. 임산부, 허약 체질인 사람에게는 보양식으로 애용돼 왔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고 근육 섬유가 연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건강식이다. 맑고 깨끗한 풀과 공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 다른 지역에서 키운 흑염소보다 더 맛난다.
  •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전북 남원시는 예로부터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라고 했다. 천부지지는 하늘이 고을을 정해준 땅이라는 뜻이고 옥야백리는 넓고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의미다.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북 5소경의 하나로, 고려시대는 남원부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중요한 위치였다. 전북의 동남권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는 경남 하동, 남으로는 전남 구례, 북동부는 경남 함양과 인접해 있다. 춘향전의 무대로 역사의 숨결이 담긴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먹거리도 풍성하다.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신명 나는 우리 가락 동편제의 본향이기도 하다. 현재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1읍 15면 7동)으로 구성돼 있고 인구는 8만 5000명이다. 볼거리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지리산 지리산은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산이다.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됐다. 해발 1915.4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총면적이 440.4㎢이다. 능선의 길이가 동서로 40㎞에 이르는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높이 1500m 이상 봉우리가 18개, 1000m 이상 봉우리는 40개나 된다. 큰 산줄기는 15개, 아름다운 골짜기가 20여개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뱀사골, 칠선, 한신 등 4대 계곡은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대사찰과 수많은 암자가 지리산 자락에 안겨 있다.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실상사 등 대사찰을 비롯해 많은 암자가 남아 있다. 문화재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을 비롯한 국보 8점, 보물 56점이 있다. 8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4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은 반달가슴곰(329호), 수달(330호), 하늘다람쥐(328호) 등이다. 지리산의 절경은 필설로 다하기 힘들다. 무수히 많은 비경이 사시사철 펼쳐진다. 지리산 둘레길은 3개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함양·산청·하동군, 전남 구례군)에 걸쳐 있는 274㎞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정겨운 숲길, 논두렁길, 마을길을 환형으로 연결한다. 남원시에는 둘레길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4개 구간이 있다. ●춘향전 배경·한국 대표 누각 광한루원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춘향전의 발상지다.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다. 명승 제33호.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어갈 만큼 만듦새가 뛰어나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 낸 정원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했다.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했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돌다리다.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했다. 전체적인 구성이 천체우주를 상징한다. 인간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려고 지었다는 완월정을 비롯해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네 등 전통놀이 체험장도 다양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남원 상징물·위락시설 모인 관광단지 한국관광공사가 남원의 모든 상징물과 위락시설을 모아 놓은 종합관광단지다. 남원시 어현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테마파크, 춘향문화예술회관, 국립민속국악원, 남원향토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의 스토리를 따라 5개의 장으로 꾸몄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곳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 세트장도 이곳에 있다. 단심정에서는 남원시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숙박업소와 음식점도 잘 갖춰져 있다. ●천년 고찰 실상사와 중요 역사 유적들 남원은 역사를 품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민족정신이 응집된 역사의 고장이다. 천년 고찰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종 사찰이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한 국가지정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명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비와 피바위, 유구한 세월을 버티며 그 옛날 영화를 말해주려 하는 만복사지는 빼놓지 말아야 할 유적이다. 이 밖에도 용담사 석불입상, 대복사 동종, 선원사 칠조여래좌상 등 많은 유적이 보존돼 있다. ●정겨운 우리 가락 울리는 동편제 본향 우리 가락과 관련된 볼거리도 풍부하다. ‘남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남원은 국악을 낳고 소리를 키운 고장이기 때문이다.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 동편제 본향으로 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즐길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악성 옥보고는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완성했다. 조선시대 가왕 칭호를 받은 송흥록의 생가도 보존돼 있다. 송흥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응용해 극적이면서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했다. 지방무형문화재 류명철씨의 전라좌도 남원농악관과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어 어딜 가나 정겨운 우리 가락과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최명희의 장편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남원시 사매면 ‘혼불문학관’도 문학기행 코스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가을 보양식 으뜸’ 얼큰 구수한 추어탕 남원 먹거리의 으뜸은 추어탕이다. 광한루원 주변에 추어탕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유명한 토속 음식이다. 남원 추어탕이 유명한 것은 섬진강 지류인 요천 등 청정 하천 곳곳에서 미꾸라지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추수가 끝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시래기와 토란대를 넣고 끓여 먹은 전통음식이다. 추어탕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새집’ 등이 각기 다른 조리법과 맛을 보여준다. 추어탕은 가을 미꾸라지를 최고로 친다.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이면 몸속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에 지친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버틸 힘을 주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시래기 등으로만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된장, 들깨 불린 물, 다진 양념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다. 미꾸라지는 길이가 짧고 몸통이 동글동글한 ‘동글이’를 고집한다. 맛이 좋고 비린내가 적다. 지리산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추어탕 전용 무청도 남원 추어탕의 맛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입맛에 따라 향신료인 제피가루(초피가루)를 뿌려 먹는 것도 특징이다. 추어튀김, 추어숙회도 유명하다. ●‘탱글탱글 감칠맛’ 흑돼지 버크셔K 남원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는 ‘버크셔K’라는 특별한 품종이다. 미국계 버크셔 품종을 들여와 한국 기후에 맞게 육종했다. 2004년 미국에서 유전자원을 도입·개량해 국제식량기구(FAO)에 새로운 품종으로 등재했다. 해발 500m 고랭지에서 기르기 때문에 일반 돼지보다 육질이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이 고소하다. 탱글탱글한 육질에 부드럽게 녹는 듯 씹히는 비계의 식감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백색 돼지와 달리 근섬유의 단면적이 작으면서 수가 많아 촉촉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을 주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비계도 다른 돼지에 비해 수분이 20% 정도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부드럽고 잡내가 없다. 운봉읍 등 4개 읍·면 흑돼지 사육농가들이 생산하고 있다. 농가들은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법인을 설립하고 공동출하, 공동판매를 하고 있다.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리산 나물 풍성’ 한정식·산채정식 남원은 예로부터 음식이 발달한 맛의 고장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어 다양한 산채가 연중 생산되고 남해안에서 건져 올린 생선류도 전라선을 타고 곧바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정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30여 가지의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 나물류가 다양하다. 무·배추·파·고들빼기, 물김치 등 여러 종류의 김치와 꼬막, 새조개, 굴 등 다양한 어패류가 상에 오른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석쇠에 구운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산채정식은 지리산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산나물이 주재료다. 고사리, 취, 미나리, 도라지, 뽕잎, 시래기, 명이, 쑥부쟁이, 곰취, 곤드레, 비비추, 원추리, 땅두릅, 엄나물, 두릅 등을 데치고 말려 고소하게 볶아낸다. 남원시 근교는 물론 지리산 자락인 주천면 고기리 일대에 산채정식 집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건배 전통주 ‘황진이’ ‘황진이’는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휩쓴 전통주다. 지리산 자락 농가에서 빚어 오던 오미자 약주를 발굴 계승한 순수 발효주다. 2006년 남북정상회담 건배주, 2007년 전통주품평회 대상, 2007년 제1회 대한민국주류품평회 금상, 2013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청정지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오미자와 산수유를 쌀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빚는다. 깊고 풍부한 맛, 환상의 붉은색이 조화를 이뤄 남녀 모두가 즐겨 찾는 남원의 대표 전통주로 통한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新국토기행] 익산의 노을은 백제와 더불어 살아간다

    [新국토기행] 익산의 노을은 백제와 더불어 살아간다

    전북 익산시는 백제 왕도를 품은 역사·문화·관광도시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분기하는 교통·물류·유통 중심 도시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북의 서북부 지역으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남과 마주 본다. 29개 읍·면·동으로 이뤄졌다. 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전주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31만명)가 많다. 국내 유일의 국가식품클러스터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식품도시로 발돋움한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볼거리] ●미륵사지·왕궁리… 백제 왕도와 만날 시간 익산시에는 백제와 마한의 역사유적이 산재해 있다. 어딜 가나 흔하게 과거가 현재에 오버랩된다. 국보 3개, 보물 8개, 다수의 사적이 분포한다. 이 가운데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가장 유명하다.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 가람으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다.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로 발휘됐다. 신라의 황룡사가 1탑 3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 배치다.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뤘다. 사적 제150호인 미륵사지에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왕궁리 유적은 1998년 9월 사적 제408호로 지정됐다. 면적은 21만 6862㎡에 이른다.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 최대 규모 유적으로 꼽힌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과 백제 후기 익산 천도설 등 역사적 가설이 뒷받침되는 유적이다. 이곳에는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국보 제153호인 사리장엄구 등을 전시하는 유적전시관이 2008년 개관했다. ●국내 유일 보석박물관… 눈 호강할 시간 왕궁면 호반로에 자리잡은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이다. 부지 14만 1990㎡,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 2403㎡ 규모다. 진귀한 보석 11만 8000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보석 꽃, 탄생석, 오봉산일월도 등 진귀한 보석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10년 9월 개관한 주얼팰리스에는 65개 매장이 들어서 시중보다 싼 값에 보석을 판매한다. 일본, 중국 등 해외 업체도 입점해 다양한 보석을 선보인다. 2011년 이후 매년 보석대축제를 개최한다. 보석박물관 옆에는 화석전시관과 공룡테마공원이 조성돼 가족단위 휴식공간으로도 인기를 끈다. ●이병기 생가… 고풍스러운 선비의 삶 엿볼 시간 여산면 가람1길 64-8에 자리잡은 전북 기념물 제6호다. 생가의 탱자나무는 전북 기념물 제112호다. 이병기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문학의 선구자다. 현대시조 중흥을 이룩한 시조시인이다. 별, 난초, 냉이꽃 등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다수 남겼다. 우리말과 얼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전북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진을 양성해다. 생가는 조선 후기 양반집 배치를 따랐다.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모정 등이 남아 있다. 모정 앞쪽에는 작은 연못 2개를 파 놓았다. 초가지붕이고 건물 자체는 큰 특징이 없지만 사랑채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모정과 연못이 선비 집안의 조촐한 느낌을 준다. ●4대 종교 성지… 신과 대화할 시간 익산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를 상징하는 4대 종교 성지를 간직하고 있다. 숭림사(웅포면 백제로 495-57)는 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보광전은 보물 825호다. 청동은입문향로는 도 유형문화재 67호, 목조석가모니불좌상은 도 유형문화재 188호다. 나바위성당(①·망성면 나바위1길 146)은 국가사적 제318호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금강하구인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1897년 본당을 설립한 베르모렐 신부가 1906년 신축공사를 시작해 1907년 완공했다. 프랑스의 프아넬 신부가 설계하고 중국 노동자가 건축했다. 붉은 벽돌의 서구식 건축양식에 한국식 기와지붕을 얹은 독특한 양식이다. 두동교회 구본당(성당면 두동길 17-1)은 전북 문화재 제179호다. 1923년 한옥 형태로 지은 교회다. 오른편에 예배를 알리는 데 쓰는 종탑이 있다. 기독교와 한국의 전통을 잘 살린 건축물이란 평가다. 건물 내부 한쪽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고 중앙에 휘장이 처져 남녀가 서로 볼 수 없게 했다. 원불교 중앙총부(익산대로 501)는 1924년 9월 최초로 총부가 건립된 이후 개축과 개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등록문화재 제179호다. 소태산 박중빈이 원불교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곳이다. 원불교의 역대 지도자들 유해를 봉안한 곳으로 원불교의 상징적 공간이다. 본원실, 공회당, 대각전 등 목조 건축물 8동과 소태산 대종사 탑, 비석 석조물 등이 있다. ●웅포관광지… 강 위 일몰에 반할 시간 웅포(②)는 바다가 아닌 강 위로 일몰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서해 낙조 5선 중 하나인 웅포 곰개나루에는 캠핑장이 있다. 금빛으로 물들이는 금강을 곁에 끼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은 일반캠핑장 58면, 오토캠핑장 6면을 갖췄다. 시원한 풍광을 좋아하는 캠퍼들이 즐겨 찾는다. 캠핑장 옆 수상레저클럽에서는 수상스키 등을 즐길 수 있다. 그 옆으로 난 자전거길을 달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좋다. 입점리 고분전시관, 숭림사, 함라산 둘레길 등 인근에 볼거리가 풍성하다. 캠핑장 옆 덕양정에서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곰개나루는 포구의 지형이 마치 곰이 금강물을 마시는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왜구를 물리쳤던 진포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매년 12월 31일에는 해넘이 축제가 열린다. 익산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고구마… 날씬이로 만들어줘요 고구마는 익산을 대표하는 농특산물이다. 익산의 고구마 재배는 1834년 전라관찰사였던 서유구가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대 ‘황등고구마’로 명성을 날렸다. 색깔이 붉고 목이 막힐 정도로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로 유명하다. 2000년대 다이어트 붐을 타고 ‘날씬이고구마’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2010년 익산의 농산물 대표 브랜드 ‘탑마루고구마’로 이름 붙여졌다. 삼기면, 황등면, 왕궁면, 팔봉동 등이 주생산지다. 2600여 농가가 750㏊에서 1만 965t의 고구마를 생산해 160억원의 소득을 올린다. 익산 고구마는 오염되지 않고 비옥한 황토밭에서 재배된다. 구릉지대로 토질, 기후, 강수량 등이 고구마 재배에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는 당도가 높고 칼륨과 인, 비타민C가 풍부하다. 익산시가 기후와 토질에 맞는 우수 품종을 개발하고 무병묘, 유기질 비료, 땅 뒤집기 지원을 한다. 재배 단계별로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하품은 출하를 금지한다. 최근에는 밤고구마와 물고구마의 장점만 가진 신품종을 재배해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마약밥… 마의 모든 맛을 보여드려요 신동 마요리 전문점 ‘본향’은 ‘마’를 이용해 각종 음식(③)을 선보이는 한정식집이다. 200여가지의 창작요리를 선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전국 100대 음식점’에 선정된 전국구 맛집이다. ‘2006 대한민국 우리 농산물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7년 국제음식박람회 향토요리경연대회’에서는 농림부장관상 금상을 받았다. 마 전문 음식점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모든 음식에 마가 들어간다. 익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마를 주재료로 한다. 마는 한방에서 위장장애, 소화불량, 당뇨예방에 좋은 약재로 쓰인다. 마즙, 마죽, 마샐러드, 마녹차전, 마튀김, 마조림, 마떡갈비 등은 기본이다. 잘게 채를 썬 마를 고명으로 얹은 오징어 먹물 잡채, 유부 안에 마와 두부를 다져 넣어 만든 마누라가 유명하다. 마와 연어, 다시마를 곁들여 먹는 마삼함, 마식혜, 각종 약재와 마를 담아 쪄낸 약밥이 절로 구미를 당기게 한다.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오방색 삼계탕이 인기다. ●고려당… 50년 전통의 만두 맛이 끝내줘요 중앙동 익산역 앞 골목길에 있는 50년 역사의 분식집이다. 대표 메뉴는 만두와 찐빵, 메밀국수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온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만두는 어른 주먹 크기의 옛날식 만두다. 피가 거칠고 두껍지만 자연 발효시켜 식감이 쫄깃하면서 부드럽다. 만두소는 말린 무가 주재료로 소화가 잘된다. 당면과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다. 꼬들꼬들한 식감과 담백한 뒷맛이 일품이다. 8개 1인분에 6000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찐빵은 인공발효제나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팥 앙금이 가득한 옛날 찐빵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한다. 메밀국수는 무즙 대신 땅콩가루를 뿌려 먹는다. 시원하면서 정갈한 맛을 자랑한다. ●황등비빔밥… 토렴할까요, 그냥 낼까요 황등면에는 유명한 비빔밥 식당 3곳이 있다. 2곳은 밥 위에 더운 선짓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는 토렴을 거치는 육회비빔밥집이고 1곳은 토렴을 하지 않는 식당이다. 토렴을 하면 밥이 질척해지면서 찰기가 생기고 양념이 스며들어 구수하면서 깊은맛을 낸다. 진미식당은 토렴을 거친 비빔밥 위에 황포묵과 파채, 김, 시금치 등 고명을 얹어 낸다. 간이 세지 않아 심심한 맛이나 질리지 않고 은근한 풍미를 자랑한다. 풍물시장 안에 있는 시장국밥은 밥과 콩나물을 함께 토렴한 뒤 시금치를 넣고 참기름 양념장과 비벼 먹는다. 특별한 고명은 없지만 파채와 함께 무쳐진 특유의 육회 맛과 돼지비계에서 나오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한일식당은 토렴을 하지 않은 비빔밥 위에 메밀묵과 당근, 호박, 콩나물 등 각종 계절 나물 고명을 얹는다. 알싸한 고추장 소스가 식감이 풍부한 나물과 어우러져 깔끔한 맛을 낸다. ●탑마루쌀… 전국 최고의 쌀로 밥 지어보세요 익산시 공동브랜드 탑마루쌀(골드라이스)은 전국 최고의 쌀로 유명하다. 2013년 전국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에서 금상을 받는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쌀의 품위, 품종 순도, 식미 등 25개 항목 평가에서 모두 상위 평가를 받는다. 태릉선수촌에 납품돼 국가대표 쌀로 통한다. 농가들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생산, 수집, 가공, 포장 등 각종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 고품질을 유지한다. 익산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제주 옵서~ 칠머리당 영등굿 배워 봅서

    제주 옵서~ 칠머리당 영등굿 배워 봅서

    악기·도구·신화 등 10회 강의… 외국인 대상으로 특강도 마련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19일부터 오는 8월 27일까지 ‘2016글로벌영등굿아카데미’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제주 영등굿 콘텐츠인 신화, 음악(연물 및 소리), 종이공예(기메)를 활용, 제주 영등굿이 주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강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윤수 큰심방(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이 강연하는 ‘영등굿과 나의 인생’을 시작으로 총 10차례의 강의가 준비돼 있다. 강좌 내용은 영등굿 개요와 소리로 배우는 영등굿 악기(연물), 마음과 손으로 느끼는 영등굿 도구(기매), 놀이로 만나는 신화의 세계 등이 마련됐다. 또 제주에 거주하며 영등굿에 관심을 둬 온 토미 트랜, 조이 로시타노가 강사진으로 참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교육 장소는 지난 6월 제주시 사라봉 체육공원에 문을 연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2층 공연장이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봄맞이 굿인 동시에 풍어를 기원하는 소망굿으로 제주의 전통과 원형이 잘 보존된 굿이다. 칠머리당은 제주도의 해상 관문인 제주항이 있는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으로 제주 사람뿐만 아니라 제주를 드나드는 모든 이의 무사 안녕을 비는 당이며, 영등굿은 계절풍을 몰고 온 영등신을 잘 대접해 보내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큰 굿을 뜻한다. 칠머리당영등굿은 5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 영등굿 배워 봅서

    제주 영등굿 배워 봅서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는 19일부터 8월 27일까지 ‘2016글로벌영등굿아카데미’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제주 영등굿 콘텐츠인 신화, 음악(연물 및 소리), 종이공예(기메)를 활용, 제주 영등굿이 주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강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윤수 큰심방(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예능보유자)이 강연하는 ‘영등굿과 나의 인생’을 시작으로 총 10차례의 강의가 준비돼 있다. 강좌 내용은 영등굿 개요와 소리로 배우는 영등굿 악기(연물), 마음과 손으로 느끼는 영등굿 도구(기매), 놀이로 만나는 신화의 세계 등이 마련됐다. 또 제주에 거주하며 영등굿에 관심을 둬온 토미 트란(Tommy Tran), 조이 로시타노(Joey Rositano)이 강사진으로 참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다. 교육장소는 지난 6월 제주시 사라봉 체육공원에 문을 연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2층 공연장이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봄맞이 굿인 동시에 풍어를 기원하는 소망굿으로 제주의 전통과 원형이 잘 보존된 굿이다. 칠머리당은 제주도의 해상 관문인 제주항이 있는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으로 제주 사람뿐만 아니라 제주를 드나드는 모든 이의 무사안녕을 비는 당이며, 영등굿은 계절풍을 몰고 온 영등신을 잘 대접해 보내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큰 굿을 뜻한다. 칠머리당영등굿은 5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생명의 窓] 고요에 대하여/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고요에 대하여/이재무 시인

    도시의 소란 속에 시달리다 보면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오래전의 일상 풍경이 불쑥 망각의 수면 위로 떠올라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그 풍경들은 절기마다 각기 다른 형상으로 다가와서 애틋한 향수에 젖게 하는 것이다. 요 며칠은 두서없이 떠오르는, 유년의 풍경들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실감을 내게 안겨다 주었다. 항시적으로 배고픔에 시달리던 아이가 감나무 아래 서 있다. 지난밤 비바람에 시달리다 가지를 버린 풋감들이 패잔병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정적만이 무섭게 고여 가득 출렁거리고 있을 뿐 집 안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먼 산에서 출산 후 부쩍 여윈, 소쩍새 울음소리가 우련하게 들려온다. 둥근 고요가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마당 구석에 머문다. 여기저기서 예의 까만 고요 새끼들이 몰려와 막 끓기 시작한 냄새를 물어 나르고 있다. 일 년 중 고요의 힘이 가장 세지는 때를, 나는 어릴 적 보냈던 시골에서의 여름 정오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빨랫줄 바지랑대 그림자의 키가 가장 작아지는 소서나 대서 때의 정오에는 한동안 각축하듯 울어 대던 매미들이 폭염에 지치는지 울음을 뚝 그치고 동네 고샅을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돌아온 누렁이도 마루 밑 그늘 속으로 기어들어가 오수를 즐긴다. 애호박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흙 담장을 기어오르던 호박 줄기도 축 늘어져 있고, 담 둘레에 핀 맨드라미는 병든 닭 볏처럼 색이 바래져 있다. 숫돌 다녀온 왜낫처럼 날 선 햇살이 따갑게 내려 축축한 생각의 습기를 말려 버린다. 심해처럼 깊은 정적 속에 세상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다 익은 살구 씨처럼 단단했던, 그 시절 성하의, 쥐 죽은 듯 고요한 세계가 문득 간절하게 그립다. 얼마 전의 시골에서 한 사나흘 묵을 때의 일이다. 바깥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와 보니 빈집 가득 달빛이 가득 들어차 출렁이고 있었다. 마당에, 뜰 방에, 마루에, 헛간에, 빈방에 달빛은 고여 푸르게 출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 달빛! 텃밭에는 때마침 장다리꽃들이 피었거나 피기 시작했는데 그 송이, 송이마다에도 달빛은 스미어 온 천지가 달빛 치마폭에 감싸인 은빛 세상이었다. 그 밤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다. 행여 달빛이 놀라 달아날까 봐 달빛 모시느라 숨도 크게 쉬지 못했던 것이다. 달빛으로 가득 찬 고요의 세계가 내 영혼을 세상 바깥 먼 나라로 데려다주었다. 그즈음 나는 또 한밤중 시골길을 걷다가 자전거 바퀴만 한 커다란 달빛이 앞산 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것을 보았다. 숨은 신이 밟아 대는 페달로 칠 부 능선을 느리게 굴러가는 달빛 은륜, 그 환한 달의 숨소리가 가루약처럼 마을의 지붕 위에 하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순간, 달의 살찐 궁둥이가 어찌나 탐스럽게 보이는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더듬어 대고 있었다. 사방팔방에서 갑자기 수확철 도리깨질에 쏟아져 내리는 깨알 웃음소리가 까르르 까르르 들려왔다. 놀라서 둘러보고 올려다보니 창공에 총총총 떠 있는 별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누가 볼세라 슬쩍 손모가지를 거두어들였다. 고요가 멀쩡한 나를 추행범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고요는 힘이 세다. 제 주장을 하지 않아서 늘 소음에 시달리고 주눅이 들고 내몰리는 것 같지만 고요가 패배한 적은 없다. 제풀에 지쳐 소음이 나뒹굴 때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고요다. 혼자 있어도 내면이 시끄러운 사람아, 고요가 그립지 않은가? 우리의 본향, 생의 맨 나중에 닿아야 할 고요의 나라.
  • [新 국토기행] 한옥의 멋… 한식의 맛… 한번에 通

    [新 국토기행] 한옥의 멋… 한식의 맛… 한번에 通

    <볼거리> 한국관광 으뜸명소·국제슬로시티·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통문화체험도시… 전국 어디서나 접근 용이한 사통팔달 전북도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만날 수 있는 도시다. 한옥, 한식, 한지 등 ‘한스타일 콘텐츠’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관광도시다. 2010년 ‘한국관광의 별’과 ‘국제슬로시티’, 2011년 ‘한국관광 으뜸명소’,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교통망도 갖췄다. 호남·서해안고속도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전주~순천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사통팔달이 됐다. 전라선 KTX도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다. 전주는 맛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전주비빔밥과 한정식은 한국을 대표하는 맛이다. 인구 65만명, 2개 구청과 33개 동으로 이뤄진 전주시는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미래 첨단산업 발전에도 주력하고 있다. 탄소산업은 전주가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분야다. ●랜드마크 전국 유일 한옥마을… 사람온기 품은 700여채 한옥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볼 수 있는 전주의 랜드마크다. 700여채의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선 한옥마을은 전국 유일의 도시 한옥군이다. 주민들이 실제 사는 한옥으로 사람의 냄새와 숨결, 온기를 찾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한옥마을 관광객은 900만명, 올해는 1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전주성 안으로 진출하자 이에 반발한 전주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됐다. 고래등 같은 기와 능선과 키 작은 담장을 끼고 도는 골목길이 살아 있어 고향집 풍경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한옥마을 안에는 고려시대 창건된 전주향교, 최명희 문학관, 전통문화관, 한옥생활체험관, 한방문화센터, 강암서예관, 교동아트센터 등 곳곳에 볼거리가 풍성하다. 호남 최초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은 박신양·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젊은이들 사이에 ‘한옥마을에서 만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배경이다.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전주천 상류의 남천교,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 한벽당도 한옥마을과 연계된 볼거리다.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정벌하고 개경으로 돌아갈 때 야연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옥마을 남동쪽 치명자산은 신유년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유항검의 가족 7명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 꽃길이 이어진다. 정상 암벽에는 모자이크 벽화로 설계된 성당이 건립돼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의 유산 품은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은 건물이다.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됐으나 광해군 6년(1614년)에 중건됐다. 입구에는 말에서 내리는 곳을 표시한 ‘하마비’가 눈길을 끈다.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도록 하고 외인들의 출입을 금한 표시다.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돼 있다.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을 모신 어진박물관도 있다. 현재 어진은 고종 9년(1872년)에 기존의 낡은 어진을 불태워 묻고 서울 영희전에 있던 태조 어진을 본떠서 그린 것이다. 어진은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차려입은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모습이다. 경기전은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가 설치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세종 21년(1439년)이다. 경기전 내 수령이 40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 그늘이 좋은 느티나무, 배롱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등도 볼거리다. ●밤에 더 아름다운 풍남문과 남부시장 전주읍성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보물 제308호다. 풍남문이란 이름은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에 빗대어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른 것에 기인한다.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다. 문류의 1층에 앞뒤로 4개씩 세워진 높은 기둥이 위로 이어져 2층의 변두리 기둥이 되도록 했다. 이런 기둥 배치는 예가 많지 않아 건축학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월부터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 9시에 미디어 파사드 공연이 펼쳐져 야간관광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풍남문을 휘감고 형성된 남부시장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조선 3대 시장이었던 남부시장은 800여개 점포가 들어선 전통시장이다. 한복, 가구, 먹거리 등 다양한 상품이 판매된다. 젊은이들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뛰어든 청년몰과 예쁜 공방이 들어선 하늘정원은 배낭여행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명소다. ●7월이면 10만㎡ 연못 펼쳐지는 연꽃의 향연… 덕진공원 덕진동 전북대 옆에 조성된 전주의 대표 관광지다. 10만㎡의 연못 중 절반이 연꽃 군락지다. 7월이면 매년 연꽃의 향연이 장관을 이룬다. 덕진연못은 고려 때 풍수지리 때문에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동국여지승람은 전주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북쪽만 열려 있는 탓에 땅의 기운이 낮아 제방으로 이를 막아 지맥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다고 적고 있다. 대부분 저수지가 농사용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유래가 독특하다. 호수 주변 산책로와 잘 가꿔진 조경수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다. 주변에 생태공원 오송제, 건지산 편백숲,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동물원, 체련공원 등이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4월 마지막주 전주국제영화제 열려 관광객들은 한옥마을 일대를 많이 찾지만 전주의 젊은이들은 ‘걷고 싶은 거리’와 ‘영화의 거리’에 몰린다. 루미나리에를 따라 연결된 보행자 길로 전주의 중심 타운이다. 쇼핑, 영화, 먹거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비빔밥의 본향… 반찬만 50가지… 황홀한 막걸리 ●30가지 천연재료 듬뿍… 전주 대표음식 비빔밥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콩나물, 고추장, 참기름 등 30여 가지 천연재료가 한 그릇에 들어가지만 어느 것 하나도 고유한 색깔이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룬다. 사골육수로 밥을 짓고 식지 않도록 데운 유기나 돌솥에 담아낸다. 구수하면서 알싸하고 쩍쩍 달라붙는 맛에 눈이 절로 감기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각종 나물류와 하얀 쌀밥, 육회, 황포묵, 고추장, 참기름 등이 어우러져 풍미와 식감이 미각을 자극한다. 전주명인 1호로 지정받은 김년임씨가 운영하는 ‘가족회관’은 푸짐하면서 깔끔한 밑반찬이 특징이다. ‘성미당’은 고추장을 넣고 미리 비벼 유기그릇에 담아낸다. ‘고궁’과 ‘한벽루’는 깔끔하면서 소담스럽다.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푸짐… 육해공 산해진미 퍼레이드 전주 한정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반찬이 특징이다. 백반 큰 상은 반찬이 50가지를 넘는다. 산, 바다, 강, 들에서 나오는 산해진미가 모두 모여 있다. 서해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 기름진 평야에서 생산된 풍성한 곡식과 채소, 산간지대에서 나오는 향긋한 나물류에 손맛이 더해져 상을 채운다. 신선로, 탕과 찌개, 나물류와 젓갈 등은 모두 전통의 맛을 자랑한다. 양념을 아끼지 않은 반찬류는 상큼하고 맛깔스럽다. 전주한정식은 풍성함에 훈훈한 인심까지 더해져 식도락가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상차림에 놀라고 맛에 놀라고 발길을 돌리며 아쉬워 눈물짓는다는 말이 전해온다. ●호남평야 쌀로 빚은 막걸리… 골목마다 막걸릿집 성업 전주막걸리는 푸짐한 안주가 특징이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의 속살로 빚은 막걸리 한 주전자만 시켜도 타지방 백반만큼 기본 안주가 제공된다. 주전자를 추가할 때마다 특별 안주가 코스별로 따라와 식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전주 막걸리는 마셔도 취하고 마시지 않아도 취한다’는 말은 보기만 해도 황홀한 안주 세례 때문이다. 서신동, 삼천동, 경원동, 효자동 등에 막걸리 골목이 유명하다. 골목마다 50~70곳의 막걸릿집이 성업 중이다. ‘가맥’(가게 맥주)은 전주에만 있는 슈퍼형 카페다. 맥주와 안주를 슈퍼마켓에서 사 가게 한쪽에 마련된 탁자와 의자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다.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가게에서 삼삼오오 모여 마시기 시작한 게 전주만의 술 풍속으로 자리를 굳혔다. 갑오징어, 황태, 계란말이 등 안주를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서목태로 키운 전주콩나물 아삭아삭한 ‘콩나물국밥’ 해장국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콩나물을 주원료로 갖은 양념을 곁들여 끓여낸다. 얼큰하면서 개운하고 자꾸만 숟가락이 가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쥐눈이콩으로 불리는 ‘서목태’로 기른 전주콩나물은 아삭아삭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질기지 않고 연하며 숙취해소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뚝배기에 뜨겁게 끓인 전통 콩나물국밥과 밥을 뜨거운 육수에 말아서 내는 남부시장식 국밥이 있다. 계란은 뜨거운 콩나물국에 풀어서 함께 먹거나 수란을 선택할 수 있다. 수란은 스테인리스 공기에 참기름을 두르고 반숙 형태로 제공된다. 수란에 뜨거운 콩나물국밥 국물을 끼얹고 휘휘 저어 훌훌 마시면 영양에도 좋고 속풀이도 그만이다.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끓인 ‘모주’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뚝배기에 민물고기 넣어 끓인 전주식 매운탕 ‘오모가리’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다. 민물고기를 뚝배기에 넣어 끓인 매운탕을 오모가리탕이라 부른다. 메기, 피라미, 동자개, 모래무지 등을 시래기와 함께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다. 싱싱한 민물고기와 각종 채소, 다진 양념을 적당히 섞어 보글보글 끓인 오모가리탕은 비리지 않으면서 알싸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식욕을 자극한다. 양념이 배어 있는 물고기 맛도 담백하고 고소하다. 한옥마을 외곽 전주천변에 오모가리탕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新국토기행] 충북 진천군

    [新국토기행] 충북 진천군

    충북의 중심에 있는 진천은 예부터 비옥한 토지에 풍수해가 없고 인심까지 후덕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생거진천’(生居鎭川·살아서는 진천)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 명성이 이어져 지금은 농업과 공업이 함께 발전하는 내륙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곡창지대에서 생산하는 쌀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1100여곳의 기업이 입주해 충북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2013년에는 진천읍 읍내리 일대 55만 8000여㎡를 국제 교육문화특구로 지정받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인구는 7만 3000여명. 충북 혁신도시가 있어 지속적인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기상관측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국가기상위성센터, 국가대표 종합훈련원 등도 자리잡고 있다. 진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볼거리 ●고려부터 지금껏 선조의 지혜 빛난 농다리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금천에 축조한 농다리(충북도 유형문화재 28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다. 전체 길이 93.6m, 폭 3.6m, 교각 1.2m다. 교각과 교각 사이는 0.8m 정도다. 다듬지 않은 크기가 다른 돌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맞물리게 했다. 석회 등으로 속을 채우지 않고 자연석만을 그대로 쌓았지만 천년을 버틸 만큼 견고하다. 선조들은 거센 물살의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교각을 일직선으로 배치하고 않고 지네처럼 약간 구부러지게 세웠다. 교각이 받는 물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이 타원형이라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장마에는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 흐르게 했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농다리는 1900년대 초 발간한 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에 등장한다. 이 책에는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을 이용해 고려 때 축조했다고 적혀 있다, ‘농다리’라는 이름은 다리의 특수성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갑(60) 농다리전시관장은 “농다리의 ‘농’(籠) 자가 대바구니를 의미하는 ‘농’자”라며 “다리를 구성하는 돌들이 대바구니처럼 얽히고설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연간 4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용이 한반도 끼고 승천하는 모습 닮은 초평호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 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총저수량 1387만t, 유역 면적은 133㎢다.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초평호 안에는 수초와 작은 섬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잉어, 가물치, 붕어, 뱀장어 등이 많이 서식한다. 이 때문에 낚시터로 유명하다. 초평호는 볼거리도 풍성하다. 두타산 형제봉에서 내려다본 초평호 인근 형상은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 한반도와 유사한 지형이 전국에 여러 곳 있지만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용이 한반도를 끼고 승천하는 모습으로 보여 성공의 기운을 얻는 땅으로도 불린다. 초평호를 따라 조성한 둘레길인 ‘초롱길’은 진천군을 대표하는 산책길이다. 농다리로부터 초평호를 따라 1㎞의 친환경 나무데크길과 1.7㎞의 트레킹길로 꾸몄다. 금빛 물결 출렁이는 초평호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올레길이 부럽지 않다. 초평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늘다리도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는 묘미는 한번 즐겨 볼 만하다. ●천주교 순교자들의 본향 배티성지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배티성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 터가 있는 곳으로, 천주교 박해기의 교우촌이자 순교자들의 본향이다. 2011년 3월 충북도 기념물 150호로 지정했다. 배티는 배나무고개라는 뜻이다. 동네 어귀에 배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명소화 사업을 추진해 한국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기념관과 순교박해박물관이 들어섰다.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와 그가 스승에게 쓴 서한문,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했던 도구 등을 보며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냈던 천주교 신자들의 처절했던 삶을 느낄 수 있다.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도 지었다.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숨어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로 알려졌다. 신자들이 배티를 택한 것은 예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오지인 데다 충청도와 경기도 접경에 있어 숨어 살기에 적당해서다. 이후 박해가 계속되면서 신자 수가 점점 늘어나 1830년대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하는 교우촌이 형성됐다. 1850년에는 성 다블뤼 신부가 조선대목구 신학교를 설립한 뒤 배티교우촌에 있는 초가집을 매입해 학교 건물로 사용했다. 1853년에는 최양업 신부가 이 초가집에 살면서 전국 5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순방하며 신학생들을 지도했다. 병인박해(1866년) 이후 배티 일대 신자촌은 순교자를 내고 와해됐지만 1870년부터 다시 신앙이 싹텄다. 1890년에는 이곳에 교리학교가 세워졌다. ●김유신 장군 탯줄 보관한 태실까지 오롯이 진천은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고향이다. 김유신 장군은 595년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태어나 15세에 화랑이 됐다. 삼국이 통일하는 데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명장으로 673년 숨을 거뒀다. 그의 고향답게 진천은 김유신 관련 유적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6곳에 달한다. 진천읍 문진로에 있는 길상사(충북도 기념물 제1호)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통일신라 때 사당을 건립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사당은 유실과 철폐 등을 거쳐 1926년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고 1976년 정화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4계절 전경이 일품이다, 특히 봄이면 벚꽃이 장관이다. 인근에는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이자 그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이 있다. 태실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했다. 태령산 꼭대기를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았다. 현존하는 태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구조형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축조한 만노산성도 만날 수 있다. 만노는 진천의 옛 이름이다. 진천에서 가장 높은 만뢰산 정상에 있는 만노산성에서 김서현 장군이 백제군을 방어했고, 김유신 장군은 만뢰산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워 승리했다. 산성 형태는 정상부를 둘러싼 태뫼식이며 계곡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성했다. ●한국의 범종 한자리에서 보는 종박물관 진천은 국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된 석장리 고대 철 생산 유적지와 고대 제철로가 발견된 곳이다. 철과 깊은 인연이 있는 진천에 국내 유일의 종박물관이 건립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5년 9월 개관했다. 전시공간은 3곳으로 나뉜다. 상설 전시실은 한국 범종의 역사, 종 제작 방법, 종의 과학적 기술 등을 보여 준다. 종소리를 직접 들을 수도 있다. 세계의 종 전시실에서는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실제 생활에 쓰이는 종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공예, 현대미술 등을 전시한다. 전시실 밖에는 타종 체험장이 있다. 축소 제작한 성덕대왕 신종과 생거진천 군민의 종을 타종해 볼 수 있다. 개관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연간 4만여명이 다녀간다. 원보현(45) 종박물관 학예사는 “한국의 다양한 범종을 한자리에서 보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종박물관 설립에 가장 많이 기여한 인물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원광식(74) 주철장이다. 그는 자신이 수집하고 제작한 범종 150여점을 기증했다. 원 주철장은 그동안 국내 최대 범종인 세계평화의 종을 비롯해 총 7000여개에 달하는 국내외 주요 사찰 및 지자체 범종을 제작했다. >> 먹거리 ●붕어요리와 시래기 ‘환상의 짝꿍’ 중부권 최대의 낚시터로 알려진 초평호는 붕어, 잉어, 가물치, 뱀장어 등이 많이 서식해 전국의 낚시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주변에는 민물고기 요리를 취급하는 음식점들이 많다. 그 가운데 ‘붕어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붕어마을’ 음식촌이 조성돼 인기 향토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11개 업소가 붕어요리 전문업소로 성업 중이다. 가장 사랑받는 요리는 붕어찜과 붕어조림이다. 커다란 참붕어에 칼집을 내고 갖은 양념을 넣어 찌는 붕어찜과 양념을 끼얹어 가며 윤기가 나도록 졸여 내는 붕어조림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붕어살을 다 발라 먹은 후 양념에 볶아 먹는 밥도 일품이다. 시래기는 진천 붕어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붕어 음식은 비린내를 잡는 게 관건인데, 초평 붕어마을은 시래기로 비린 맛을 극복했다. 시래기 붕어찜은 2005년부터 진천군 향토 음식으로 주목받아 충북도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연속 대상을 차지했다. 붕어요리는 몸에도 좋다. 붕어가 불포화지방산을 풍부하게 함유해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초평 붕어마을에서 붕어찜을 먹으며 두타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자연과 잘 조화된 호반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붕어찜은 1인분에 1만 3000원이다. 초평면 붕어마을 광장에서는 해마다 10월에 붕어찜 축제가 열린다. 하루만 진행하는 축제이지만 3000여명이 몰려든다. 붕어찜 요리 시연, 무료 시식회, 맨손으로 민물고기 잡기 대회, 노래자랑 등이 펼쳐진다. 김민기 군 위생팀장은 “진천 붕어마을은 대물림업소들이 많고 시래기와 무가 충분히 들어가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며 “붕어찜 축제 기간에는 평소의 절반 가격에 붕어찜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황근지 붕어마을 번영회장은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과 경기, 대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붕어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전국에서 초평이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내일은 나도 한식 ★ 셰프

    [명인·명물을 찾아서] 내일은 나도 한식 ★ 셰프

    전북 전주시는 ‘맛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비빔밥, 한정식, 콩나물국밥, 막걸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의 본향이다. 전주 한옥마을이 유명세를 떨치는 것도 이 같은 먹거리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맛의 고장에 한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스타 셰프 양성기관이 설립됐다. 한식의 세계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2011년 농림축산식품부, 전북도, 전주시, 전주대 등이 120억원을 공동 투자해 국제한식조리학교를 출범시켰다. 이 학교는 세계적인 한식 조리사를 양성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식 전문 교육기관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대 본관 4·5층에 자리잡았다. 국제한식조리학교는 최고 시설과 쟁쟁한 교수진을 확보했다. 40여명의 교수진은 국내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이재옥 교수는 워커힐호텔 한식조리장과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의 부인 오찬 총괄 등 40년 경력의 대가로 궁중음식과 국빈 만찬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삼성 에버랜드 한식 주임 출신 신미경 조리 기능장, 켄싱턴호텔 제주 한식 총괄을 지낸 김병현 교수 등은 한식 업계의 베테랑으로 통한다. 자문교수, 명예교수, 외부 강사도 현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최우수 경력자들을 엄선해 초빙한다.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수준 높은 교육으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소수 정예의 조리사를 배출한다. 교육시설은 국제 수준이다. 극장식 이론 강의실, 소강당, 한식·중식·일식을 조리할 수 있는 최신식 실습실, 제과·제빵 실습실 등을 갖추고 있다. 실제 음식점과 같은 주방을 꾸며놓은 현장 실습실도 있다. 실습 레스토랑에서 교수진과 학생들이 만든 요리를 매일 제공하며 고객들의 반응을 연구하고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을 한다. 메뉴 개발, 조리, 고객서비스 등을 직접 기획하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현장 적응력을 기른다. 이 학교는 정규 과정과 단기 과정으로 나뉜다. 정규 과정은 서민 한식에서 국빈 만찬까지 최고 수준의 조리사 양성 과정이다. 매년 3, 9월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학생을 선발한다. 2년 정규 과정은 이 학교가 자랑하는 해외 파견 한식조리사 양성 코스다. 정원이 20명으로 좁은 문을 통과해야 교육생이 될 수 있다. 1년 과정은 한식 스타 조리사와 푸드디렉터 코스다. 스타 조리사 과정은 조리 경력 3년 이상 또는 동일 전공 전문학사 이상 취득자만 지원 가능하다. 단기 과정은 외국인 대상 한식 체험 프로그램, 한식 원데이 클래스 등 체험 기회 확대에 주력한다. 이 밖에 해외 한식 강좌도 한다. 해외 한식당 종사자 교육 등 한식의 세계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 몽골, 2013년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한식 조리사 1000여명을 교육했다. 입학생들은 1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현재 외식업에 종사하는 주방장, 외식업 경영주, 직업 전환과 창업 희망자, 해외 한식당 경영주 등 경력도 매우 다양하다. 이종표씨의 경우 미국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했지만 한식당 창업을 위해 입학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세환씨도 예술이 전공이지만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의 가업을 잇기 위해 정통 한식교육기관을 선택했다. 학비는 2년 과정이 한 학기에 370만원이고 1년 과정은 270만원이다. 별도의 식재료비가 없다. 기숙사는 전주대를 이용할 수 있다. 오전에는 이론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실습을 주로 한다. 국제한식조리학교는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자긍심이 충만한 스타 조리사 양성에 치중하고 있다. 입학식 때 ‘조리사는 죽어도 주방에서 죽는다!’는 정신이 담긴 국제한식조리학교만의 조리사번줄을 수여한다. 군번줄과 비슷한 조리사번줄에는 이름과 학번이 새겨져 있어 재학 중에는 계속 착용해야 한다. 교육은 철저하게 개인 실습 위주로 진행된다. 다른 기관들은 1인분의 식재료로 2~4명이 조별 실습을 하지만 이 학교는 학생 1명이 1인분의 식재료로 실습한다. 조리대도 1인당 1개씩 배정된다. 이 때문에 실습시간이 일반 대학 조리학과보다 1.5~2배 길다. 또 조리 항목별 역량 평가제를 도입해 학생 개인별 수준을 세세하게 진단하고 직업의식 강화에 주력한다. 이와 함께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소양을 바탕으로 음식에 우리 문화를 풀어낼 수 있도록 문화 관련 교육도 병행한다. 학생들이 식재료 본연의 특징을 체험하도록 캠퍼스 내 텃밭에서 배추, 무 등 식재료를 재배하는 훈련도 한다. 발효실과 장독대도 설치해 고추장, 된장, 간장을 직접 담그는 교육도 한다. 방학 중에는 롯데호텔을 비롯한 특급호텔과 샘표식품, 유명 레스토랑, 해외 한식당 등을 방문해 산학실습을 한다. 재외공관 주관 한식행사 참가, 해외 조리학교 방문 등 해외 연수 기회도 준다. 특히, 이 학교는 국내 교육기관 최초로 미국에 한식조리학과를 개설했다. 미국 스탠턴대와 한식조리학과 개설 협약을 맺고 커리큘럼 및 교육 노하우를 제공하고 있다. 한식조리학교에서 한식 조리를 교육받고 스탠턴대에서 미국 식문화 적응교육, 현장실습, 외식경영 등을 배워 미국 진출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해외 파견 한식조리사 교육도 이 학교의 몫이다. 2013년에는 재외공관 조리사 31명을 교육했고 덴마크, 인도 등 재외공관 한식행사도 주관했다. 이를 통해 학교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실습생과 교육생도 찾아오고 있다. 한식강좌 담당 교수 양성과정 교육과 지구촌 한국의 맛 콘테스트를 실시해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도 한다. 국제한식조리학교가 매년 봄에 진행하는 ‘갈라 위크’(Gala Week)는 스타 조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배움의 장이다. 학생들은 이 기간에 직접 조리 현장에 투입돼 거장 조리사들의 조리 철학을 배우고 국내 정상급 레스토랑의 수준 높은 메뉴와 서비스를 경험한다. 이같이 다양하고 활발한 역할을 하면서 국제한식조리학교는 각종 인증을 획득해 공신력을 확보했다. 정부가 주는 외식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 식품 영양성분 전문 분석기관, 외국인 한식조리 연수지원기관, 식생활 교육기관, 김치 교육훈련기관 인증을 받았다. 졸업생들도 스타 조리사로 활동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한식세계화 발전에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제1회 졸업생인 심재호씨는 전주에서 고급 한정식집을 창업했다. 40여 가지 반찬을 한상차림으로 내는 전통 한정식집으로 전주에서도 알아주는 맛집으로 통한다. 2년 정규 과정을 졸업한 김영란씨와 장상은씨는 각각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과 주한 콜롬비아 대사관 조리사로 활약하고 있다. 정혜정 학교장은 “우리 학교는 진정으로 한식에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한식 스타 조리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국제 수준의 전문 교육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씨줄날줄] 언어의 생로병사/구본영 논설고문

    몇 년 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최종병기 활’을 재미있게 봤다. 당시 몹시 귀에 선 대사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어를 조금 배웠던 필자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만주어였다. 만주족은 지금 중국 13억 인구 중 1000만명 정도를 점하는 소수 민족이다. 한때 중원을 장악해 대제국 청(淸)을 건설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중화(中華)라는 용광로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구가 이제 100명도 채 안 된다니…. 청이 멸망한 지 100년도 안 돼 만주어가 임종 직전의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꼴이다. 만주어는 머잖아 만주족의 본향인 동북 3성에서도 지명으로만 명맥을 이어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오지’ 탄광, ‘주을’ 온천, ‘투먼’(두만) 강 등 북한 함경도 지방에서 만주어(여진어)가 지명으로만 남아 있듯이. 하긴 사라질 위기의 언어가 만주어뿐이랴. 전 세계 7000여개 언어 중 2주에 하나꼴로 사멸하고 있다는 전문가 보고서가 나온 지 오래다. 문제는 언어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표현되는 종족의 문화와 전통이 더불어 사장된다는 것이다. 2012년 유네스코가 제주도 방언을 심각한 사멸 위기 언어로 규정했던 배경이다.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에는 하나의 언어만 남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유가 왜 나오겠나. 소수 민족의 언어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춤으로써 문화인류학적 다양성이 실종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언어가 생물과 같을 리는 없다. 그러나 진화하지 못하면 생로병사라는 소멸의 과정을 밟게 된다는 점에서는 유기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언어도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면? 훈민정음 반포 569돌 한글날을 맞아 한국어와 한글의 운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세계화와 정보화가 소수 언어의 사멸을 촉진하고 있다는 이론까지 제기된 터다. 영어의 패권주의가 갈수록 드세지는 인터넷 시대에 과연 한국어는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 현재로선 청신호와 적신호가 엇갈리고 있는 듯하다. 최근 서울대 연구단이 문자가 없는 남아메리카의 ‘아이마라 부족’을 위한 한글 표기법을 완성했단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 한글 표기법을 전수한 데 이어 한글의 세계화 차원에서 두 번째 낭보다. 물론 문명사 차원에서도 물질적 원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문자가 없는 언어일수록 사멸 속도가 빠르다는데 이를 막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반면에 우리 내부에서는 모국어를 학대하는 데 여념이 없다면 필자만의 기우일까. 방송 매체들이 부추기고(?) 있는 온갖 신조어들을 보라.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핵노잼’(핵폭탄급으로 재미 없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이런 국적 불명의 비속어들이야말로 모국어의 진화와 이를 통한 세계화를 가로막는 증거들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中 연구자의 시선으로 본 주자의 삶·사상

    中 연구자의 시선으로 본 주자의 삶·사상

    주자(주희·1130~1200)는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집대성해 새로운 사상, 주자학으로 탄생시킨 송대의 학자다. 조선으로 건너 와서는 성리학의 이름이 붙여졌고, 공맹의 실천적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에 다다른 주자학은 중국에서보다 더 화려하게 꽃피고, 주자는 중국에서보다 훨씬 더 숭상받는 사상가로 자리매김됐다. 지금까지도 그가 한국사회에 드리운 그늘은 짙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을 받거나 고리타분함의 상징처럼 됐음에도 여전히 우리네 일상 구석구석에 그 흔적이 흩뿌려져 있다. 주자의 삶, 사상과 관련된 서적 2종이 최근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둘 다 한국이 아닌 주자의 본향, 중국 연구자의 시선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주자평전’(김태완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은 총 2400쪽의 방대한 분량을 상·하권으로 담은 책이다. 숱한 주자학 연구 저서들이 철학과 사상으로 박제화시켜 학문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나 개인 삶의 이력을 따라간 인물 평전류와는 달리 주희의 문화심리 상태에 주목했다. 인성의 도야라는 점에서 현재적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10년에 걸쳐 노작을 완성시킨 수징난(束景南) 저장대 교수는 “주자학의 전파와 교류는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끌고 영향이 매우 심원한, 성공적인 사례”라면서 “주희의 사상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자를 공부해야 하는 의의를 설명했다. 특히 “주희가 직접 행한 인성 구속(救贖·인류의 죄를 대신 갚음으로 구원함)과 인성 완성의 사상 체계는 현대 사회의 인성 소외, 정신적 위기, 도덕 상실을 반성할 수 있는 촉매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주희의 역사세계’(이원석 옮김, 글항아리 펴냄)는 저자의 이력으로 더욱 눈길을 끈다. 위잉스(余英時)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중국공산당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현대 신유학자다. 송대 정치문화 구조 형태를 사대부의 정치 활동 중심으로 파악하고, 당대에 이학파 사대부들과 관료 집단 사이의 복잡한 정치공학 관계를 서술해냈다. 송대 사대부의 전형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상징과도 같은 주희의 학술과 사상을 중심축으로 삼되 정치, 문화, 사회 각 분야에 유학이 미친 영향과 관계성에 더욱 집중했다. 위잉스는 “주희는 내성외왕(內聖外王·개인적으로는 성인이 되고, 바깥으로는 어진 지도자가 되는 것)을 강조했지만 자나 깨나 생각한 것은 ‘외왕’의 실현이었다”고 강조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 후] 율곡·신사임당 동상 사직단서 파주로 이전

    서울 종로 사직단에 세워진 율곡 이이 선생과 신사임당의 동상이 경기 파주시로 이전됐다. 사직단이 발굴 작업에 들어가 동상들을 이전해야 하지만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14일 문화재청과 파주시에 따르면 1969~1970년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가 서울신문 지원을 받아 사직단에 세운 두 선현의 동상이 지난 12일 해체돼 파주시로 이송됐다. 파주시는 다음달 10일 제28회 율곡문화제 개막일에 맞춰 법원읍 율곡선생유적지에서 동상 이전 제막식을 갖는다. 이재홍 파주시장은 “파주가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의 본향임과 더불어 우계 성혼, 휴암 백인걸 선생 등이 활동하셨던 기호학파 성리학의 본거지이자 ‘문향의 고장’이란 사실을 이번 기회에 널리 알리고 율곡 사상과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생명의 窓] 시골의 어둠과 길이 그립다/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시골의 어둠과 길이 그립다/이재무 시인

    “도회지에 오래 살다 보니 진한 어둠이 그리울 때가 있다/왜 있지 않은가 광 속처럼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캄캄한, 그 원색의 어둠이 뜬금없이 울컥 사무칠 때가 있는 것이다/도시의 어둠은 지쳐 있다 오래 입은 난닝구처럼 너덜너덜하고 빵꾸가 난 곳도 있다/밤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쫓긴 어둠들은 어디에서 유숙하는 것일까” -졸시, ‘어둠이 그립다’ 전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걷는다/두근두근 길도 내가 그리웠나 보다/이제사 알겠다/내가 시골길에서 자주 넘어지는 이유” -졸시, ‘시골길’ 전문. 서울에 살림을 부리고 산 지 어느새 서른 해가 넘어가고 있다. 도시 문명의 일원으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뜬금없이, 도시로 편입되기 전의 느슨하고 태만했던, 농경적 삶이 간절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내 몸은 이미 도시의 소음에 이미 정이 든 데다 길들여져 어쩌다 산사같이 적막한 곳에서 하룻밤 유숙이라도 할라치면 외려 쉽게 잠들지 못해 전전반측하기 일쑤다. 그러니 내가 예전의 조용한 삶을 새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관념의 유희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을 익히 잘 알면서도 불쑥불쑥 도지는 탈주에의 욕망 혹은 본향에의 그리움은 어인 일인가. 현대인들이 일부러 짬을 내 오지를 여행하거나 탐험하는 것은 지금과는 다른 시간대를 누려 보기 위함일는지 모른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흔히 ‘광속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이 과장된 말은 무한경쟁 속에서 촌음을 다투며 살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렇게 어지러운 생활의 궤도를 벗어나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낭만을 맛보기 위해 그렇게 비싼 비용과 힘을 들여 오지를 찾는 것이 아닐까. 도회지 어둠은 지쳐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래 입은 러닝셔츠같이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고 노숙자들처럼 피로와 권태에 쩌들어 있다. 이처럼 도회지 어둠이 혈우병 앓는 여인처럼 파리하게 병색이 완연한 것은 밤 내내 폭력을 방불케 하는 소음과 불빛으로 인해 불면의 고통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더러 가다가 밤늦게 귀가할 때 나는 이처럼 널브러져 있는 도회의 어둠을 일부러 눈여겨보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참으로 안쓰러운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회지 길들 또한 도회지 어둠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지쳐 있기 일쑤다. 수면 부족으로 탄력을 잃은 길들의 부숭부숭 부어 있는 몰골이라니! 이에 반해 시골길은 언제 보아도 싱싱하고 풋풋하다. 이두박근을 자랑하는 길들. 이들이 이렇듯 늙지 않고 젊게 살 수 있는 것은 숙면 덕택이다. 시골길은 밤이 오면 낮 동안 마을과 마을, 읍내까지 다녀오느라 먼지로 두꺼워진 몸을 서늘하게 달빛에 맡기고 온갖 짐승, 새소리 끌어들여 굳어진 근육을 푼다. 그러고는 밤이 이슥해지면 별이, 깨알 같은 별들이 소복이 내려 쌓이고 산골짝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빗자루 되어 일과의 고역을 쓸어내린다. 그 샛길은 잠꼬대 한 번 없이 긴 잠을 곤하게 잔다. 그리하여 이튿날 새벽이슬이 톡, 톡, 톡 이마를 치면 투덜대며 일어나 저를 밟으며 또 하루를 살아낼 이들을 위해 길은 기꺼이 길이 되는 것이다. 칠흑같이 어둠이 빼곡하게 들어차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길을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리 지어 피어오른 별꽃들이 현란하여 어지러울 지경인 시골의 밤길을 걷고 싶다. 그런 날은 은륜을 굴리며, 산의 팔부 능선쯤을 기어오르는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환하게 들려올 것이다.
  • FT 산 닛케이, 편집권 독립·문화장벽 넘고 해피엔딩 할까

    FT 산 닛케이, 편집권 독립·문화장벽 넘고 해피엔딩 할까

    1989년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가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센터를 통째로 사들이자 미국 언론은 ‘일본의 경제침략’이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록펠러센터와 인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자본주의의 본향인 뉴욕의 상징물이다. 이 건물이 40여년 전 총구를 맞댔던 ‘적성국’에 넘어가자 국민 정서가 들끓었다. 같은 해 소니가 미국 컬럼비아영화사(현 소니 픽처스엔터테인먼트)와 CBS레코드 부문(현 소니 뮤직엔터테인먼트)을 인수하자 미국 여론은 “미국 혼(魂)이 일본에 팔렸다”며 또다시 악화됐다. 지난 24일 일본 닛케이그룹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그룹을 인수하자 비슷한 현상인, 일본을 경계하는 여론이 되풀이됐다. 인수 금액만 8억 440만 파운드(약 1조 5000억원)로, 지난해 닛케이의 순이익 103억엔(약 970억원)을 16년가량 모아야 가능한 금액이다. “일본어 벽에 갇힌 미디어 시장을 넘어서겠다”는 닛케이의 의지는 뒷전으로 밀린 채 우려가 팽배해졌다. 영국의 한 방송사 앵커는 닛케이의 FT 인수 소식을 전하며 “일본 기업이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를 삼켰을 때가 연상된다”고 비유했다. ●1980년대 美 영화사, 2010년대 英 FT 공략 270만 독자를 지닌 아시아 최대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보유한 닛케이의 FT 인수는 향후 세계 미디어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127년 역사의 FT가 지닌 독자와 데이터베이스는 물론 온라인 플랫폼까지 송두리째 가져오는 합병이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FT의 기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사의 뉴스를 유럽과 미국의 독자에게 전송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전했다. 이렇게 전송된 닛케이의 영어 디지털 서비스는 서구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닛케이의 FT 인수를 “언어 장벽에 갇힌 일본 미디어가 한계를 뛰어넘은 쾌거”라며 반기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많은 신문 독자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 장년층 이상으로 지난해에는 2010년에 비해 무려 15.5%가량 구독자가 감소했다. FT 인수를 올 들어 두드러진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과 짝짓는 분위기도 강하다. 경기가 호전되면서 올 상반기 일본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규모는 6조엔(약 57조원)까지 치솟았다. 전년 동기 대비 70%가량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일본 언론사가 세계 최고 경제매체를 인수했다는 역사적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귀결될지는 미지수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핵심인재 유치 등의 과제 외에도 편집권 독립과 조직 간 문화적 이질감 해소라는 중요한 변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日의 해외 미디어·통신기업 인수는 거의 실패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동안 일본 기업의 해외 미디어기업 M&A는 대부분 실패했다. 1990년 대기업 마쓰시타가 미국 MCA스튜디오를 약 61억 달러(약 7조 1200억원)에 인수했으나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패했다. 이후 일본의 해외 기업 인수는 본사 중심에서 벗어나 철저히 현지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부적절한 운영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해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2013년 미국 휴대통신회사 스프린트를 230억 달러(약 26조 8500억원)에 인수했지만, 현재 시가총액은 120억 달러로 떨어졌다. 또 일본 이동통신업체 NTT도코모는 2009년부터 총 2667억엔(약 2조 5200억원)을 들여 사들인 인도 타타텔레서비스 주식을 최근 헐값에 팔았다. 반면 1989년 오가 노리오 전 소니 회장이 주도한 컬럼비아영화사·CBS레코드 인수는 미디어 업계에선 이례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는 소니를 음악·영화에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통합시킨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컬럼비아 인수 금액은 34억 달러(약 3조 9700억원). 당시까지 일본이 해외기업 인수에 들인 최고액이었다. 오가 전 회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두 바퀴”라며 ‘소니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피어슨의 경영방식 탈피…“시너지 강화될 것” 닛케이의 FT 인수 성패도 문화적 괴리감 해소로 압축된다. 이는 편집권 독립과 일맥상통한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영국식 언론 문화와 반대 성향을 보이는 일본 언론 문화의 충돌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부 외신은 FT 내에선 더 나은 운영 여건이 마련됐다며 조심스럽게 기대감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60년간 FT를 소유했던 피어슨 교육미디어그룹은 2013년 최고경영자(CEO)가 존 팰런으로 바뀌면서 사사건건 FT그룹과 갈등을 빚어 왔다. 팰런의 통제적 경영 방식이 문제였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일본 기업에 인수됐지만 이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희망을 건다는 것이다.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SFU) 미디어학과 교수는 “2000년 같은 미국 기업인 아메리카온라인(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뉴미디어와 구 미디어의 결합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지만 기업 간 문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실패했다”면서 “이에 비해 닛케이의 FT 합병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있지만 디지털미디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는 닛케이의 이번 전략 목표가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상호 연동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미국, 유럽, 아시아를 잇는 통합경제정보망을 형성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시장 대부분을 포함하는 고급 경제정보망이 형성된 점도 시너지 효과로 인정받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재산 빼돌리고 여신도 희롱…소림사 방장은 부패호랑이”

    “재산 빼돌리고 여신도 희롱…소림사 방장은 부패호랑이”

    “불교라는 외투를 걸친 채 미친 듯이 여성들을 농락하고 멋대로 소림사 재산을 강탈한 ‘부패 호랑이’ 스융신을 처벌하라. 아미타불!”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소림사를 글로벌 사업체로 변신시킨 스융신(釋永信) 방장이 추문에 휩싸였다. 중국 관영 온라인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스정이(釋正義)라는 필명의 누리꾼이 최근 스융신의 비리를 폭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는 ‘소림사의 부패 호랑이 스융신을 누가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스융신이 여성 신도들을 희롱하고 소림사 재산을 빼돌렸으며 소림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소림문화를 지키기 위해 소림사 제자들이 떨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 누리꾼은 자신의 전화번호까지 남기며 사정기관은 즉각 스융신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문이 커지자 소림사 측은 26일 밤 홈페이지에 해당 글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소림사는 “비방글은 스융신 방장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일 뿐만 아니라 선종의 본향인 소림사의 명예에도 큰 타격을 줬다”면서 “수사기관이 빨리 허위 사실 유포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스융신 방장이 추진하고 있는 소림사 상업화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불거졌다. 스융신은 무술과 참선 등 다양한 소림문화를 상품화해 세계 곳곳에 수출했고 많은 사찰을 인수·합병(M&A)해 계열화했으며 최근에는 호주의 대규모 리조트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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