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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재탄생에 부쳐(사설)

    ◎개혁과 민족통합의 초석으로 대한매일이 오늘 다시 태어났다.이 찬란한 가을 아침에 우리는 거듭나는 생명의 환희와 기쁨 대신 자기반성의 아픔과 다시는 부끄럽지 않은 신문이 되려는 분연한 다짐으로 더없이 엄숙한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다시는 부끄럼 없이 우리는 지난 한달여에 걸친 각종특집을 통해 서울신문이 왜 대한매일로 거듭나려 하는가를 누누이 설명해왔다.서울신문이 걸어온 영욕의 53년 역사가 우리 사회에 어떤 누(累)를 끼쳤는지도 있는대로 적시하고 진심으로 참회했다.한국언론 사상 이토록 진솔한 자기반성을 한 신문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 신문 대한매일이 어떤 원칙과 어떤 각오로 신문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도 이미 국민앞에 천명했다.그러나 새출발에 맞춰 여기 다시 공익정론지 대한매일이 추구하는 목표와 우리의 길을 재다짐해 두려 한다. 지금 세계는 세기말(世紀末)의 긴장과 거대한 변화의 물결속에 휘말려 있다.그 변화의 에너지는 가위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지금까지의 사고 방식이 무너지고 과거의 시스템이 통째로흔들리고 있다.실로 격랑의 세기말이다. 개인의 일상 생활에서부터 사회공동체의 존재 양식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틀은 깨어지고 새로운 세계가 태동하고 있다.우리는 지금 그 변화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미래를 그려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변혁의 시대에 언론이 과연 무슨 일을 해내야 하는지 때로는 당혹하기까지 하다.그러나 대한매일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주시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을 제시하며,현상의 의미를 분석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미래의 신문은 단순한 보도기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기말적 격변속에 이나라에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개혁은 잘못된 과거의 광정(匡正)을 의미한다.파행적 과거의 청산과 극복을 위한 개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과제다.오늘의 개혁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의 현대사를 뒤틀어 놓았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극복하려는 일종의 혁명이다.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은 언론의 초보적 사명에 속한다.우리는 개혁을 지지하고 적극 후원할 것이다. ○갈등·불신 해소 위해 격변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정치세력간의 대립,뿌리깊은 지역주의의 골,사회변동에서 오는 계층간의 갈등,이런 모든 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에서처럼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안고있는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 있다.이러한 갈등과 사회적 불신을 줄이는 작업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절대적 명제(命題)가 아닐 수 없다.대한매일은 이러한 망국적 사회병리를 치유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바로 국민통합 작업이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것이다.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미 성취한 것으로 믿고있다.물론이다.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매우 결정적인 민주제도를 우리는 성취해 냈다.그러나 그것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볼수는 없다.우리의 의식구조,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비민주적 요소들이 산적(山積)해 있다. 대한매일은 통일을 준비하는 신문이 되려 한다.분단 극복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수 없다.통일은 남북화해와민족화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의 석학 에드가 모랭은 지구국가를 제창하고 있다.모랭의 제창이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21세기에는 기존 국민국가의 잔해는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국가화할 것이다.대한매일은 이러한 세기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대한매일은 이나라를 이끌어 가는 상층부의 생각과 움직임을 소상히 전할 것이나 소외된 곳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우리는 사시인 ‘대한매일의 다짐’에서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이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서구복지국가에 과잉 복지의 폐해가 있다고 해서 복지를 외면하려 한다면 잘못이다.이나라의 복지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대한매일은 상업지가 아님을 강조해 둔다.한국의 상당수 신문들은 지난 수년간에 걸친 과당경쟁의 결과로 천문학적인 부채더미 위에 올라 있다.살아남기 위한 자사(自社)이기주의가 언론의 본분을 뛰어넘고 있다.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신문이 이제 경영상의 압박속에 스스로 손발을 묶고있는 것이다.한국언론의 위기가 아닐수 없다. ○비상업적 공익 언론 국내 유일의 비(非)상업신문인 대한매일은 이런 척박한 언론환경 속에서 공익언론의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갈 것이다.아울러 비상업 신문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공영의 기반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대한매일은 선정주의(煽情主義)를 배격한다.선정주의는 황색신문만을 의미 하는게 아니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 미국신문들의 선정주의에서 비롯됐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한국언론의 선정주의 성향도 위험한 수위에 이르러 있다. 제호나 사명을 바꾼다고 오늘 우리의 다짐이 바로 실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서울신문의 통렬한 자기반성 위에 환골탈태(換骨奪胎)하려는 대한매일의 각성과 의지를 국민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아 주기 바란다.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편달을 거듭 거듭 당부한다.
  • “대화·협력으로 새 정치문화 이루자”/청와대 총재회담 대화록

    ◎김 대통령­“총격요청 이 총재 정치·도의적 책임져야”/이 총재­“야 의원 영입·보복·편파 사정 있어선 안돼”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10일 청와대에서 2시간20분동안 오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가졌다.다음은 총재회담 대화록. ▷여야 관계◁ ●李 총재 (현재의 국정상황에 대해 金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뒤)우리 경제가 잘되기를 바라고 앞으로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무엇보다도 정치안정을 위해 여야 협력이 중요하고 서로 협력해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여야관계 정상화는 정국안정을 찾고 국정과 민생안정을 위해 절대 필요합니다. 그동안 극도의 대치상황으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야당의원 빼내기에 의한 당적변경이 정국불안의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인위적 정계개편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金대통령 나는 신정부 출범 이후 1년간 도와줄 것을 야당에 간곡히 부탁했지만 불행히도 잘 안돼 오늘날 이런 사태가 됐습니다. 정부 여당은 강제적·인위적으로 야당의원을 빼내갈 생각이없고 하지도 않겠습니다.동시에 야당도 그럴 필요가 없도록 적극 협력해 주십시오. ▷정치개혁과 사정◁ ●李총재 정치개혁은 필요하지만 사정(司正)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보복적·편파적 사정으로 비춰지는 것은 개혁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판문점 사태에 대해서도 강압수사나 불법 도청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개혁과 화합은 상반되는 것이 아닌 만큼 국민적 화합,대화합의 정신 위에서 과거가 아닌 미래 지향적인 큰 정치를 해주기 바랍니다. ●金대통령 그동안 극도의 대치상황으로 여야 관계가 이어진 것은 유감입니다.앞으로 인위적·강제적 빼가기는 하지 않을 것이며 보복·편파적 사정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당해 본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보복적 사정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이 약속은 믿어도 됩니다.다만 앞으로 국정에 잘 협력해 주십시오. ▷총풍·불법감청·고문문제◁ ●金대통령 고문·도청 등 이런 문제는 내 자신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철저히 밝혀야 하고 또한 불법 감청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가 협의해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연루된 세 사람은 李총재의 선거운동을 도운 주변사람으로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李총재가 직접 관련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李총재 대통령께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에 대해 말하셨지만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판문점 사건이나 불법·감청 문제는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하며 강압수사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경제청문회·경제문제◁ ●李총재 경제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하루빨리 경제회생이 돼야 합니다.야당은 이 점에 관해 필요한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경제협의체 구성에 오늘 합의했습니다. 우리 당은 구조조정 특별법 제정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실업대책에도 여야없이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여야 협력이 필요합니다.피부에 와닿고 실효를 거두는 대책이 시행돼야 할 것입니다. 경제청문회의 경우 정쟁적·소모적 청문회가 아니고 정책개선을 위한 생산적 청문회가 돼야 합니다. ●金대통령 앞으로 나라를 위해 힘을 합쳐 여야가 각자 할 일을 하면서 협력해야 합니다. ▷회담을 마치며◁ ●金대통령 1년만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이제 야당이 정부·여당을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오순도순 협조를 해서 李총재 말씀대로 오늘 회담이 여야간 새로운 정치문화를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李총재 여야 영수회담은 총재끼리의 단순한 만남이 아니고 정국안정을 이뤄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을 이뤄내자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오늘 만남은 유익했습니다. 아무쪼록 11일 출발하시는 중국방문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합니다.
  • 민주열사 열전:15/前 서울대생 朴鍾哲(정직한 역사 되찾기)

    ◎5공 정권연장 야욕 꺾은 ‘民主불씨’/‘체육관선거’ 잡음 없애려 시국사범 검거령/‘남영동’으로 연행당해 물고문 도중 질식사/6·10항쟁 도화선… 4개월후 전모 밝혀져 1987년 1월14일 만 21세의 대학생 朴鍾哲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5공 독재정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문살인이었다. 철권통치로 국민을 억압해온 5공은 여느 때처럼 국민을 속이려 했으나 1987년 역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정권의 안위와 관련된 시국사건에서 반체제 인사에 대한 가혹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런 군사정권에게도 박종철의 죽음은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층 더 예기치 않았던 것은 박종철의 죽음이 일으킨 역사적 파장이었다. 내각제 및 직선제 개헌론이 심각하게 대두되는 가운데 5공은 87년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체육관’ 선거로 치뤄 정권을 연장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86년 말 경찰 수뇌들은 운동권 수배자들을 전원 검거하라고 강력 지시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과 2계는 87년 1월초 서울대 언어학과 3년생인 박종철이 서울대 민민투위원으로서 서울대 민추위 사건의 중요 수배자인 朴鍾雲을 은닉하고 연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 박종철을 연행 수사하여 박종운 등 민민투 지하 중앙조직원들을 검거할 계획을 세운다. 1월14일 아침 7시20분경 조한경 강진규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등 대공 소속 경찰들은 신림동 하숙집을 급습해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로 연행,신문했다. 10시40분경 신문장소를 옮겨 박종운의 소재를 대라고 박종철을 닥달하였으나 모른다고 하자 조한경 등은 박종철의 가슴과 다리를 때리고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물이 가득 채워진 조사실 안의 욕조 앞으로 데리고 갔다. 이들은 조사실 안의 수건으로 박종철의 양손과 발목을 결박하고 나서 반금곤 황정웅이 각각 겨드랑이를 잡고 등을 누른 상태에서 강진규가 욕조안에 들어가 양손으로 박종철의 머리를 잡아 물 속으로 집어넣고 한참 후에 끌어내는 물고문을 반복했다. 이때도 박종철이 박종운의 소재를 모른다고 하자 더 혼내주라는 조한경의 지시에 이정호가 가세,결박된 박종철의 다리를 들어 올린 채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고문을 가했다. 이때 박종철은 목부분이 욕조의 턱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게 되어 11시20분경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 30,40분 만에 저질러진 이 물고문 살인으로 결국 5공의 정권연장 야욕은 물건너가게 된다. 박종철의 물고문 질식사는 4개월 후에야 그 잔혹한 진상 전반이 파악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로선 극히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일반에 알려졌다. 그간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시국사건으로 죽어갔으나 의문사란 말만 남기고 그대로 묻혀 버렸다. 그러나 박종철의 죽음은 경찰과 정권이 몇겹으로 세운 두꺼운 벽을 뚫고나와 ‘양지’로 향하는 묘한 힘을 발휘했다. 이 힘은 정통성없는 5공 정권의 취약한 근저를 흔들었다. 2월7일의 박종철 열사 국민추도회와 3월3일의 고문추방 대행진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5공은 각각 3만명,6만명의 전경들을 동원해야 했다. 결국 박종철의 죽음은 6·10 민주항쟁을 끌어내는 도화선이 되었고 궁지에 몰린 군사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할 수 밖에없었다. ‘제2의 김주열’로 불리기도 하는 박종철은 앳된 얼굴의 젊은이였지만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남달리 강했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 때문에 재수없게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다가 고문사함으로써 우연히 역사의 무대에 떠오른 인물이 아니다. 대공 3부의 고문경찰들이 연행 직전 작성한 수사계획서는 박종철을 민민투의 중요 지도자로 지목하고 각종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검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에서 말단 공무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박종철은 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들어온 직후부터 동아리 가입과 농촌활동참여 등을 통해 현실 인식을 깊게 했다. 2학년 때 미국 문화원농성 지원 가두시위로 구류 5일을 살았으며 여름방학에는 안양공단 근처의 ‘닭장집’에 살면서 노동자로 취직하기도 했다. 86년 3학년때 언어학과 과회장에 뽑힌 박종철은 4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가두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과거 전과 때문에 구속됐다. 그는 재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7월15일 출소했다. 86년11월23일 81학번 사회학과의 동아리 선배로 민추위 사건에 지명수배된 박종운이 박종철의 하숙방에 찾아와 하룻밤을 묵은 뒤 떠난다. 87년 1월8일 박종운이 다른 동료와의 연락을 부탁하기 위해 다시 박종철 하숙방을 찾았다. 6일 뒤 박종철은 발가벗기고 손발이 묶인 채 박종운의 거처를 추궁하는 경찰들에게 물고문당하다 죽었다. □朴鍾哲 연보 1965년 4월:부산 출생 83년 2월:혜광고 졸업 84년 3월:서울대 언어학과 입학 86년 4월: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참가,구속 86년 7월: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87년 1월: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사 ◎구속 경찰관·유족들 지금은/5명 실형선고… 형기 마치고 출소/경찰청 산하단체 근무하다 해임도/유족들 배상금 2억여원 수령 고문 경찰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박종철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된 경찰관 5명은 징역 3∼10년형을 선고받고 3년 만기에서 최고 7년3개월의 수형 후 가석방 등으로 현재 모두 출소했다. 올 6월 이들 중 3명이 규정을 어기고 경찰청 산하 단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곧 해임됐다. 이정호씨와 강진규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경찰공제회에 들어가 일반직 4급으로,조한경씨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 과장으로 근무했다. 이들과는 달리 범인도피 및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박처원 전 치안감 등 4명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한편 박종철의 유족은 89년 9명의 경찰관과 국가를 상대로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95년 11월 “국가와 조씨 등 고문 경찰관 5명은 연대해 1억4,700만원을 배상하고 강씨 등 경찰수뇌 4명은 직무유기 및 범인도피의 책임을 지고 2,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유족은 국가로부터 이자를 포함한 손해배상금 2억4,000만원을 수령했다. 국가가 배상금 전액을 지급한 만큼 검찰은 직접적 책임이 있는 조씨 등에게 구상금청구 소송을 통해 배상금 일부를 받아내야 하나 최근 이들에 대한 재산 자력조사 결과 배상금 지급 능력이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부인이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꾸리거나 노점상으로 생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문 밝혀지기까지/모든 수단 동원해 은폐 시도/3차 수사후 고문치사 확인/치안총수 등 경차 9명 구속/‘탁치니 억 쓰러져’ 유행어로 경찰과 5공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했지만 결국 3차의 수사 끝에 치안총수를 포함 9명의 경찰이 구속됐다. 1월14일 물고문하던 경찰들은 박종철의 상태가 이상하자 즉시 인근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오연상씨를 불러 응급처치를 간청했으나 이미 박종철은 숨진 뒤였다. 다급해진 경찰은 이날 오후 보호자와 이미 합의를 했다며 서울지검에 시신의 화장을 요청한다. 증거인멸을 위한 경찰의 이 요청은 거부됐다. 15일 석간신문에 조사받던 학생이 쇼크사했다는 기사가 나간다. 오후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변사사실을 공식 시인했으나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으며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부연설명했다. 이날 밤 9시 안상수 검사 입회하에 행해진 부검에서 황적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1과장은 물고문 도중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것 같다는 부검소견을 피력한다. 강 치안본부장 등은 황 과장에게 심장마비사로 부검감정서를 써줄 것을 협박 회유하기 시작한다. 16일 가족들이 벽제에서 화장한 유골을 임진강에 뿌렸다. 이때 아버지 박정기씨는 “잘 가그레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고 해 국민들을 울렸다. 17일 사체를 첫 검안한 의사 오씨의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는 등 고문 시사 증언이 신문이 보도됐다. 결국 치안본부 특수대는 17일 수사에 착수 19일 고문사를 공식인정하면서 조한경 강진규 2인을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5월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5월20일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등이 즉시 구속된다. 5월29일에는 범인 축소조작에 나선 박처원 치안감,유정방 경정,박원택 경정 등 3명이 범인도피죄로 구속됐다. 88년 1월15일 황적준 국과수 과장의 경찰 회유 메모가 보도되면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다.
  • 자가당착의 정치(金在晟의 정가산책)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이 계속 정치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로 입장을 정리한 듯 하던 야당이 고문,감청 등 정치공세성 문제를 총재회담 의제로 넣을 것을 고집해 회담 자체가 기우뚱거리고 있다. 10월1일 세칭 총풍사건이 보도된 뒤 한달여 동안 여야는 사건의 본질보다는 지엽적인 설전으로 영일이 없었다.국정감사도 발목이 잡혔다.야당이 제기한 고문조작,감청,편파보도 시비로 제기능을 못했다. 가관인 것은 정치공세를 편 야당의 주공격수들이 사실은 고문과 도청이 예사로 자행되던 시절 주역들이었다는 점이다.한편의 코미디 같은 우리 정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법사위에서 야당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이 조작이라고 몰아붙였다.그리고 줄기차게 짜맞추기 수사라고 주장했다.정보통신위에서는 감청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됐다.고문도 마찬가지다. 문화관광위에서도 야당 의원들은 “총풍사건은 결과적으로 과장보도라고 생각지 않느냐”는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특히 언론인 출신 야당 의원들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들면서 “외부전화가 올 텐데 그 중에는 정치권 전화도 있을 것 아니냐”며 유도신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집요한 정치공세를 펼치면서도 야당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 인색했다.자신의 과오는 묻어둔 채 장관으로부터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과장보도)도 든다”는 대답을 유도해내고는 기고만장했다.그러다가 朴權相 KBS 사장으로부터는 “이른바 ‘땡전,땡김뉴스’ 같은 것은 결단코 하지 않고 있다”는 언중유골의 대답을 듣기도 했다. 이같은 자가당착에 대해 문화관광위 李協 위원장은 서울신문 비공개 현황보고를 마친 뒤 ‘역사의 한단계 발전론’을 피력했다.국회가 언론기관을 대상으로 생산적인 국정감사를 진행했다는 자체가 달라진 정부의 모습이라는 뜻이다.수긍이 가는 말이다.총풍사건 피의자를 민간의사와 보도진이 입회한 가운데 신체감정을 실시한 것 자체가 2∼3년 전과는 격세지감이 든다.문제는 한쪽만 달라져서는 정치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 유럽 68세대 “새 정치 실험”

    유럽에 새 물결이 일고 있다. 60∼70년대 반 체제운동을 주도했던 ‘68세대’가 성숙한 정치인으로 변신,유럽 정치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젊은시절 유럽의 정신 세계를 압박하고 있던 권위주의에 도전했던 이들은 이제 금리인하,고용창출,공공지출 확대를 통한 성장추구 등을 내세우며 기존 정책들을 뒤엎고 있다. 젊은 혈기 탓에 ‘실패한 혁명’을 맛보아야 했던 이들의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68세대’의 주체와 성격,미래를 진단해본다. ◎혁명은 지금도 진행중/30년전 佛서 깃발 올린 개혁성향 좌파/佛·獨·英·伊서 집권… 변신에 관심 집중 유럽의 ‘68혁명’ 세대들이 정치무대에 전면 포진,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기성 질서의 저항세력으로 대별됐던 좌파적 색채의 68세대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성숙한 정치인으로 변신,유럽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실패로 끝난 혁명’의 뒤늦은 완성을 추구하고 있다. 68혁명의 진원지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우선 꼽을수 있다. 68시위가 발발하자 외무부 관리였던 그는 이에 동조하여 대학 강단으로 되돌아갔으며 이후 사회당에 입당,정치인으로 나섰다. 죠스팽 내각의 장클로드 게소 교통주택장관 등 공산당 소속 4명의 관료는 시위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다. 68세대의 강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국가는 독일·대다수 각료들이 68세대다.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으로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은 전적으로 ‘68세대’가 만든 정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사민당 총재인 오스카 라퐁텐 재무,요슈카 피셔 외무,오토 실리 내무,위르겐 트리틴 환경장관 등이 선두주자. 특히 슈뢰더와 실리는 역시 68세대들이었던 독일 적군파들의 변호사를 자임했다. 프랑스로 넘어가 68시위를 주도했던 다니엘 콘 밴디트는 현재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중이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로빈 쿡 외무,잭 스트로 내무,피터 멘델슨 무역장관 등도 68세대의 기수들. 브라운은 68년 당시 글래스고대학 급진학생노조 회장이었고 스트로는 전국학생연맹 의장이었다. 제3의 길을 주창한 토니 블레어 총리도 같은 범주에 든다. 좌익 민주당 소속의 마시모 달레마 이탈리아 총리도 60년대 말 좌익 청년시위를 주도했던 골수 사회주의자로 올리비에로 딜리베르토 법무장관과 함께 이탈리아 68세대를 대표한다. ◎좌파정권 정책과 전망/고용확대·성장추구·복지강화 초점/금리인하·정부지출 확대 불가피… 이전 정책과 상충/각국사정 복잡·다양… 정책 협조·성공에 부정적 시각 유럽연합(EU) 좌파정권들은 고용창출과 공공지출 확대를 통한 성장추구,복지정책 강화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전의 우파정권들이 내년 1월1일 출범 예정인 유로화(유럽단일통화) 도입을 위해 펴온 공공부채 및 재정적자 감축정책 등 기존 정책들과는 상충되는 점이 많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경기부양과 실업자를 축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공공지출을 늘려 나가겠다고 종전 정책를 뒤집었다. 마시모 달레마 이탈리아 총리도 경기회복을 위해 재정적자 확대를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각국 지도자들이 주장한 금리인하는 종전 정책을 기본부터흔들었다. 과거 우파정권들은 강한 유로화를 위해 현금리 고수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들의 새로운 정책이 착근에 성공할 지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지도자들의 입지강화를 위해 자국민용 정치적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뒤젠베르크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EU 지도자들의 발언은 금융정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그동안 활성화된 유럽의 자유시장경제제도와 각국의 다양한 국내 사정도 이들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던지게 한다. 우선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각국 입장의 교통정리가 급선무다. 그러나 모두 고만고만해 서로가 어느누구도 교통경찰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68세대는 ‘또다른 실패’를 맛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8세대의 정의와 변천/68년 佛 학생·반체제운동 주도/기성세대 거부 유럽·美 젊은층 지난 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과 6월의 반체제운동을 주도한 대학생과 젊은층,이들에 동조해 시위를 벌이거나 청년문화를 이끌어갔던 당시 유럽과 미국 등지의 20∼30대를 68세대라 일컫는다. 전후 경제적 풍요 속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체제에 도전,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의 청년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프랑스는 2차대전의 폐허에서 완전히 재기,경제적으로는 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완고한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했지만 교회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보수화된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 집단이었던 셈이다. 운동권 학생은 물론 노동자,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학생조직으로는 ‘프랑스학생연합(UNEF)’‘3·22운동’ 등이,노동자단체에서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프랑스민주노조연맹’‘프랑스 교원노조(FEN)’가 그리고 정치단체로는 베트남위원회 등이 참여했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를 비롯해 트로츠키주의자,마오저뚱주의자,체게바라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세력이 뛰어들었으나 내부적 통일성은 없었다. 이후 변질 과정을 겪게 되지만 오늘날의 생태주의,여성 권리와 남녀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하는 페미니즘,반전·반핵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면서 범사회적 저항운동과 문화운동의 기수가 됐다. ◎68세대 탄생 당시 주요 사건 ▲62년 2월8일=프랑스 우익 폭탄테러 발생.시위대 8명 사망 ▲63년 11월22일=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64년 8월7일=미군 통킹만 보복공습 ▲65년 4월17일=미 대학생 1만5,000명 백악관 앞에서 반전시위 ▲66년 4월=마오저뚱(毛澤東)문화혁명 시작 ▲66년 11월=미니스커트 돌풍 ▲67년 7월27일=미 주요 도시 최악의 인종폭동 ▲68년 4월4일=마틴 루터 킹 피격 사망 ▲68년 5월30일=프랑스 총파업 ▲68년 8월22일=소련,체코 프라하 침공 ▲69년 4월28일=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임 ▲69년 11월15일=워싱턴서 25만명 반전시위 ◎70년대 신좌파와의 차이/70년대,공산주의와는 다른 진보적 반체제 운동/90년대,노동자 권익보호 등 정치정책노선 치중 68세대가 주도한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의 ‘신좌파’(New left)운동은 반체제운동이었다. ‘진보’를 뜻하는 좌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당시 모든 인습과 제도에 저항했다. 그러나 권력 장악이 목표였던 정치적 좌파(구 좌파),즉 공산주의 노선과는 다른 다분히 이념적·이상적인 것이었다. 신좌파운동의 대표격인 68년 프랑스 5월운동은 드골 정부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배격해 일어났고 미국의 학생민권평화운동은 베트남전으로 드러난 추악한 자본주의체제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는 체코 반체제운동은 소련 동유럽의 전통적 좌파가 대상이었다. 반면 90년대 말부터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새 조류는 30년이 흐른 지금 주역은 그대로지만 ‘새로운 신좌파(New New left)’로 불릴 만큼 노선엔 차이가 있다. ‘좌파 정당’들의 새로운 ‘정치정책노선’으로 70년대 이후 환경·여성·반핵·지역자치운동의 신사회운동으로 계승된 기존의 신 좌파운동과는 대별된다. ‘개량적 좌파정책’,‘중도좌파’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자본주의 장점을 취하면서 직업교육 의료혜택,연금제도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보호하겠다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제3의 길’이 대표적 예다.
  • 재벌체제는 사회에 해악/李性燮 숭실대 교수(기고)

    ◎불공정 내부거래 통해 ‘가공의 자금’ 조성/무분별한 외형확장 기업 경쟁력 저해 재벌계열 기업간 내부거래는 수백가지의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다. 계열 기업에서 발행하는 회사채를 매입해줄 수도 있고,계열 기업사 제품을 우선적으로 사줄 수도 있다. 내부거래는 시장경제의 공정거래 원칙에 어긋난다. 그룹 계열사들이 내부거래를 통해서 서로 지원하고,따라서 그룹 계열사가 진출한 산업은 그들의 위세에 눌려 공정한 경쟁질서가 유지되기 어렵다면 시장경제의 주춧돌인 공정경쟁질서는 확보될 수 없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출자해 설립한 회사이고,이 때문에 주주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내부거래는 주주이익에 반하여 재벌총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그것도 다른 주주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불법행위이다. 같은 논리가 재벌 계열기업간에 이뤄지는 상호지급보증 행위에도 적용된다. 상호지급보증 행위는 주주의 동의없이 재벌총수의 전횡으로,총수의 영리를 위해 이뤄지는 행위이다. 내부거래,상호지급보증 행위에 계열기업간에 행해지는 상호출자까지 포함해 재벌 계열기업간에 이뤄지는 상호행위들은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가공자본의 동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가공자본이란 재벌총수가 출자한 자본은 재벌 전체 투자자본의 10%도 채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재정적 허구성’으로 위장된 재벌이 동원할 수 있었던 다른 주주의 투자자본을 지칭한다. 이러한 가공자본의 개념은 재벌 계열기업에 제공되는 금융권의 여신에 따라 더욱 보강된다. 상호지급보증 제도는 재벌이 금융권 자금을 더욱 쉽게 동원할 수 있게 해준다. 재벌은 이렇게 조성된 자금을 투명하지 않게 운영되는 총수의 초계열적 경영을 통해 제멋대로 인출해서 사용한다. 그것이 무분별한 외형확장에 이용되고 정치자금으로 쓰이기도 하고 총수 개인적 용도로 유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은 재벌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만들어서 남의 돈을 동원하는 도깨비 놀음의 도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도깨비 놀음의 상당한 부분이 불법적 행위라는 데 있다. 내부거래는 명백한 불공정거래 행위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상당한 탈세가 가능하다. 주주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계열사간 내부거래,상호지급보증 행위도 불법행위이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이러한 재벌형성이 산업화를 위한 자본동원에 기여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재벌의 무능한 경영능력,경영세습,무분별한 외형확장이 IMF위기의 본질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이러한 재벌체제가 사회에 해악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투명경영,불법적 내부거래,상호지급 보증을 금지하고 상호출자의 경우 주주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가공자본 형성의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 재벌체제는 해체돼야 한다. ‘자기 돈’으로 자기 책임아래 투자하는 대기업을 누가 지탄할 것인가.
  • 여야 총재회담 ‘시기의 문제’

    ◎물밑대화 통해 정지작업… 분위기 성숙/李 총재 銃風발언 따른 걸림돌 제거 남아 여야 총재회담에 대한 분위기가 성숙되고 있다. 아직 정리되어야 할 단계가 남아있지만,시기가 거론되는 등 여야 모두 필요성을 느끼는 분위기다. 金大中 대통령도 서울신문과 특별인터뷰에서 “시간이 없으면 외국에 갔다와서라도 영수회담을 할 생각이 있다”며 “여야 총재끼리 자주 만나는 게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고 강조했다. 사실 물밑대화를 통해 이미 영수회담을 위한 여야간 합의가 이뤄졌었다. 세풍(稅風)에 대해 한나라당에서 사과를 하고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銃風)은 수사를 지켜보며,경제 및 방송 청문회를 실시한다는 것과 영수회담 개최 등 4개항이다. 그렇다고 정지작업이 다 매듭된 것은 아니다. 金대통령의 전국검사장 오찬지시에 이어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발언으로 일이 묘하게 꼬였기 때문이다. 또 여야합의 사항중 충풍과 청문회 두가지는 이뤄지지 않은 형국이다. 金대통령도 세풍(稅風)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하고있다. 다만 총풍에 대한 李총재의 ‘고문 역공(逆攻)’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그 일을 한 만큼 도덕적으로 미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데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李총재가 吳靜恩씨 등 구속피의자들과 대선후보 당시 18차례나 만나고,수시 보고를 받았으며,외부인사 접촉때 동행했다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면키 힘들다는 것이 청와대 시각이다. 金대통령도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게 정치의 본질”이라며 여야간 물밑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조율되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볼 때 총재회담은 서서히 전제가 충족되면서 ‘시기의 문제’로 남게됐다고 할 수 있다.
  • “訪中후 영수회담 용의”/金 대통령 본지 특별회견

    ◎“당초 9일 열기로 합의했었다”/李會昌 총재 銃風고문 발언으로 무산 金大中 대통령은 5일 서울신문과 서울방송과의 특별인터뷰에서 “세풍(稅風)은 끝났으니 더이상 필요가 없으나 총풍(銃風)에 대해서는 정치가 법률은 아니지만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고 강조한 뒤 “야당총재가 (총풍에 대해) 얘기를 안했으면 오늘쯤 영수회담 발표가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날 서울신문 車一錫 사장과 金三雄 주필,黃炳宣 편집국장,安秉峻 정치팀장과의 인터뷰에서 “당초 여야간에 합의된 내용이 있었다”고 전하고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총풍를 ‘고문’이라고 해 일이 묘하게 됐는데,여하튼 그런 것을 풀어가면서 중국과 APEC에 다녀와서라도 영수회담을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당초 9일쯤 영수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또 “영수회담은 수사결과와 관계가 없다”면서 “그러나 총풍은 배후니까 사과를 하라는 게 아니고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그 일을 한 만큼 수사결과와 관계없이 도의적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책임론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 “검찰에 배후가 있으면 추궁하고,고문도 했다면 추궁하라고 두가지를 지시했으나 절대 야당이 (배후라는) 얘기는 안했다”면서 “한나라당 입장에서 그런 일에 접근했으므로 도덕적으로 미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영수회담은 할 용의가 있으며,여야간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여야간 총재끼리 자주 만나고 대화를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좋다”고 역설했다.
  • 稅風·銃風 재수사/金 대통령의 속뜻

    ◎“國基 문란” 정치적 물타기에 쐐기/稅政혼란­안보 선거이용 ‘명맥한 범법’ 인식/野책임론 거론… 도덕 재무장 구태탈피 촉구 金大中 대통령이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모금비리’(稅風)와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銃風)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야당의 정치·도의적 책임을 강조한 것은 사건의 본질이 더이상 왜곡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국세청을 통한 대선자금 비리는 명백한 ‘세정 혼란’이고 총풍은 ‘안보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한 국기문란 행위’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이 전국 검사장 오찬에서 세풍을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정한 사건”으로,총풍을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인식의 바탕에서 나온 언급인 셈이다. 金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다소 불만스런 시각을 드러낸 것도 이러한 판단의 연장으로 분석된다. “어떻게 4,5급 세사람이 할 수 있겠는가”“세사람이 조석으로 출입을 하고 여기저기 함께 방문도 했다”고 배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즉 명백한 범법행위임이 분명한데,“검찰에서 부인했다는 이유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며 검찰의 철저하고 전면적인 수사를 촉구한 것이다. 金대통령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거론,야당 수뇌부를 직접 겨냥했다. 고문과 불법감청이라는 정치적 맞불작전으로 적당히 얼버무릴 사안이 아니라는 일종의 정치적 경고다. 그러면서도 金대통령은 검찰의 독립적인 수사권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검찰의 수사가 멈칫거리고,중간수사결과 또한 미흡한 만큼 증거보강 등 철저하고 전면적인 수사를 하라는 선에서 그쳤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검찰의 범법행위에 대한 수사관행의 잘못을 고치라는 통상적인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야당이 관계되어 있다고 해서 국정현안을 대통령이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번 지시로 金대통령의 정국인식의 단초를 읽을 수 있다. ‘도덕적 재무장’이 정치파트너로서 선결과제라는 주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야당의 도덕성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감으로써 새로운 정치구도와 관행을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 조선 화가들의 이상과 좌절/하창수 장편 ‘그들의 나라’

    9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인 하창수씨(38)가 장편소설 ‘그들의 나라’(전4권,책세상)를 내놓았다. 조선조 말엽,새로운 그림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권력의 음모에 희생되는 열명의 화가들의 이상과 좌절을 그렸다. 주인공은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들은 화가의 개성과 삶의 흔적이 배제된채 고루하기만한 기존 문인화의 전통에 반기를 든다. 대신 화가의 시선이 살아 움직이는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을 그림으로써 시대의 벽을 넘고자 한다. 그러나 역사의 아웃사이더인 그들의 행동은 당시 기득권층에게는 용납되기 힘든 이단인 셈. 그들은 결국 ‘서학그림패’란 누명과 함께 살해되고 만다. 하씨는 87년 중편 ‘청산유감’으로 등단한 이래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와 ‘수선화를 꺾다’,장편 ‘젊은 날은 없다’‘알’ 등의 작품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갈등,인간의 본질적 고독 등의 주제의식을 드러내왔다.
  • 李會晟씨 연루 확실한 물증 확보/안기부 입장

    ◎사건 실체규명에 자신감 총풍(銃風)사건을 둘러싼 안기부의 시각은 단호하다. 국가안보 기강을 뒤흔들었던 사건의 본질이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사실상의 재조사 지시도 이런 맥락에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안기부는 吳靜恩 張錫重 韓成基 3인방의 검찰송치 이후에도 별도로 수사팀을 가동,물증확보 작업을 계속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李會晟씨의 연루사실 등을 뒷받침하는 각종 자료들이 청와대에 보고된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도 확실한 물증을 확인하고 재조사 지시를 내린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특히 안기부는 그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고문 시비’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드시 ‘진상규명’을 이뤄 안기부의 명예회복에 나선다는 각오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張錫重씨 등 3인방이 자작극을 연출했다는 확실한 물증을 이미 검찰과 청와대에 보고했다”며 “재판과정에서 자작극의 전모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부는 이와 별도로 지난 4·11 총선직전에 터진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도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구여권의 광범위한 용공조작 의혹을 이번 기회에 파헤친다는 각오를 굳게 다지고 있다.
  • 교육·산업 진흥(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6)

    ◎新民會와 함께 민족미래 설계/오산·대성·삼흥학교 등 개교소식 날마다 상보/민족기업 창립 대서특필/‘동양척식’ 흉계 통박 대한매일신보가 배일구국(排日救國)의 선두에서 민족언론을 이끌면서 일제공격에만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 대한의 백성에게는 ‘스스로 힘을 길러 나라를 지켜야 함’을 줄기차게 호소했다. 국채보상운동에서 유난히 빛난 이런 논조는 평상시에도 ‘교육장려’와 ‘산업진흥’으로 표출됐다. 대한매일은 일찌감치 국민교육 관련 기사를 중요하게 보도해 독자들을 일깨웠다. 1906년 11월 평남 용천에 광화학교가 문을 열자 다음달 이를 예찬하는 송축가 ‘광화교황(光華校況)’을 실었다. ‘어화 우리 학도들은//대한 의무 생각하세//지금 세상 하(何)시대뇨//경쟁열강 대치로다//우승열패 확연하니//개인진취 안할손가//자포자기 하지 말고//자국정신 수습하여//교육 식산 공업으로//개명 발달 목적일세…’ 당시 민중에게 널리 읽힌 가사체로 된 이 축사에는 ‘열강의 다툼 속에 국권이 위태로우니 각자 학업에 힘쓰고 공업을일으켜 국가발전을 이루자’는 강한 호소가 들어 있다. 1907년에 들어 대한매일은 논설·잡보·기서(독자 기고)·광고 등 전 지면을 동원해 학교·회사 설립 소식을 알리기에 더욱 힘썼다. 이는 당시 최대 규모의 비밀결사체인 신민회(新民會) 발족과 직접 관련된다. 이해 4월쯤 창설된 신민회는 그 본부를 대한매일에 두었으며,양기탁이 대표를 맡은 것을 비롯해 대한매일 사원들이 조직의 핵심을 이루었다. 대한매일은 ▲李昇薰이 평북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 ▲安昌浩 중심의 평양 대성학교 ▲李東輝의 강화 보창학교 ▲安重根 의사 3형제가 설립한 진남포 삼흥학교 ▲呂運亨의 광동학교 등 잇따른 학교 설립 소식을 전하며 그때마다 찬사와 기대를 보냈다. 그 무렵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여성교육에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논설·기고를 자주 실었다. 1909년 10월28일자 金致淳의 기고 ‘여자교육에 대하여’는 그 대표적 글이다. 김치순은 가정교육이 기초됨을 강조하고 ‘가정 교육은 여자교육에 있거늘 우리 대한인사는 여자교육이라면 웃음거리로 안다’고 개탄했다. 대한매일이 교육진흥 못잖게 중요하게 여긴 일이 민족산업을 장려하는 것이다. 1908년 이승훈을 중심으로 평양에 자기제조 주식회사를 발기했을 때 논설로 민족사업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깨우쳤고,이 회사가 주식을 공모하자 적극 권유해 발족을 도운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대한매일의 자국산업 부흥 의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반대투쟁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제가 한국 경제를 독점적으로 착취하고자 1908년 설립한 이 회사는 1942년 말에는 한반도 내 임야 16만정보를 독차지할 만큼 국토 침탈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일본 의회가 1908년 3월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통과시키자 대한매일은 곧바로 반격했다. 논설 ‘동양척식회사 설립문제’(1908년 4월24일)에서 대한매일은 ‘겉모습을 보면 개명사업인듯 하나 내용을 심리하면 한국인의 생사를 제어하는 문제’라고 그 본질을 꿰뚫었다. 이어 독소 조항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1,000만원 자본으로 대한 삼천리 토지와 이천만 인민을 차례로 사들여 소유권을 장악하려 함’이라고 그 흉계를 폭로했다. 대한매일이 내세운 교육·산업 입국의 기치는 1910년의 합병으로 그 맥이 끊기지만 그 정신은 시대를 건너뛰어 요즘도 언론계의 각종 문화사업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만평 ‘통상신약’/“매국노는 괴물” 비아냥/죄상 낱낱이 고발 “염라국에 수출” 통탄 동양척식회사 설립이 한일 양국에서 정식으로 공포돼 그 출범이 한달여밖에 남지 않은 1908년 10월29일,대한매일은 ‘통상신약(通商新約)’이란 만평을 실었다. 경제권이 일제에게 넘어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태에서 朴齊純·權重顯 같은 매국노들을 처단하지 못하는 분노가 구절구절 담겨 있다. 그 첫 대목은 ‘만국통상 이 시대에 상업않고 어찌 사나//빈약할 사 대한국은 수출품이 전무하다’고 한탄한다. 이어 유유일대(惟有壹隊),곧 ‘오직 한 무더기 있는 것이라곤’ 괴물밖에 없다면서 그렇지만 ‘동서양을 물론이고 수출처가 바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 무더기’ 괴물은 어떻게 처리할까. 동서양 어느 곳에도 수출할 수 없으니 그 괴물을 ‘염라국과 교섭하여 통상조약 성립하고//그곳으로 수출할까’고 이어간다. 그 괴물들이란 ‘내실 간휼(奸譎),즉 간사하고 속임수를 쓰는 데 둘도 없는(無雙)자들,박제순과 권중현이다.가사는 ‘박제순과 권중현을 한바리로 실어내자’고 비아냥댄다. 둘만이 수출대상은 아니다. ‘통상하세 통상하세 염라국과 통상하세’로 시작해 ‘한바리로 실어내고’로 끝나는 각 절마다 간신배 2명씩을 거명해 그 죄상을 낱낱이 밝혔다. 李完用과 李根澤의 죄상은 다음과 같다. ‘불학무식하고 어리석은 주제에 소란을 피워,나라가 기울고 민생이 도탄에 빠진 것을 알지 못하며 간적(奸賊)의 괴수가 되었다’는 것. 이밖에도 △‘노예 자격이 극진한’ 李載崑과 趙重應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일진회의 李容九·宋秉畯 등이 ‘한바리로 실어내어 염라국에 수출되어야 할 한무더기의 괴물로 꼽혔다.
  • 다시 조명해본 원인들(IMF체제 1년:1­2)

    ◎前 정권 ‘환상속 외환관리’가 주범/물적·정치적 요구 충족에 골몰 시스템 붕괴/기술개발 없는 量팽창위주 재벌정책 탓도 우리 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IMF체제 1년을 맞아 위기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에서의 탈출 방안을 모색한다. ■국민의 물질적·정치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급급했다=洪尙和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는 지난 6월 펴낸 ‘IMF의 경제식민지를 경계한다’라는 저서에서 “盧泰愚 정권은 ‘한번 믿어주세요’를 앞세운 유화정책으로 물질적 욕구를,金泳三 정권은 ‘중단없는 사정’을 외치며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해 경제기반의 붕괴와 사회 위계질서의 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중독’에 빠졌다=尹源培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은 최근 발간한 ‘우리 경제의 내일을 위해’라는 책에서 “문민정부 초기의 잘못된 수요확대 정책으로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중독’에 빠져 기술개발 대신 자산가치의 확대에만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고(高)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에 실패했고 금융기관 돈으로 부동산 투기 등을 일삼아 결국 국내·외 경제 여건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金泳三 전 대통령이 부잣집 아들이었기 때문이다=한 언론인은 모 월간지에서 “金전대통령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26세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됨으로써 밑바닥 삶을 일찍 졸업했다”며 “대통령이 된 뒤에도 돈의 소중함을 몰라 IMF를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튼튼한 남산 외인아파트를 1,500억원을 들여 폭파한 것이나 2조원을 더 투입해 경부고속철도 대전·대구역을 지하로 내린 점,쌀시장 개방을 막지 못하고 5년간 50조원을 농어촌 개선에 허비한 것은 경제를 망친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해외차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裵善永 청와대 경제수석실 서기관은 자신이 펴낸 경제전문서 ‘화폐·이자·주가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해외차입이 급격히 늘고 경상수지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외환 당국은 환율 인상을 억제,수출신장과 외채를 줄일 기회를 원천 봉쇄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해외차입액이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허락하는 차입한도액을 넘었고 외국 금융기관들이 신규 자금 지원을 일거에 중단,위기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종합금융사는 금융시장의 ‘블랙 홀’이었다=李鎬澈 재정경제부 지역경제과장은 ‘IMF 시대에도 한국은 있다’라는 저서에서 “종금사가 돈을 흡수하지만 배출하지는 못하는 ‘블랙 홀’이 된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종금사들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빌려 중·장기로 운용하다 대외신인도 급락으로 해외 채권금융기관이 상환을 재촉했다. 은행에서 빌린 급전으로 달러화를 사자 외환시장은 마비됐고 당국은 외환보유고로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보유고만 탕진한 채 환율은 치솟았다. ■금융감독 당국은 ‘눈 뜬 장님’이었다=姜玎鎬 재경부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은 지난 2월 펴낸 ‘캉드쉬 총재의 웃음’에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종금사 투신사 리스사 등이 해외에서 ‘만기에 관계없이 상환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국은 이 조건으로 말미암아 1개 국내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이 국가 전체의 신용도 하락으로 확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음에도 팔짱만 끼고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재벌 지원이 화근이었다=스티브 마빈 자딘플레민증권 이사는 지난 5월 발간한 ‘죽음의 고통’에서 “정부는 재벌 죽이기와 은행 죽이기의 귀로에서 재벌의 손을 들어줬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은 기업제국의 확대를 위해 은행돈을 마구 썼고 지난해 동남아지역에서의 통화 혼란으로 수출 증가에 급브레이크가 걸리자 한꺼번에 무너졌다. ◎또다른 원인 ‘국제금융 음모설’/‘달러 패권주의’ 美國 속셈 없었나 “우리 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전락한 배후에 국제 금융시장의 ‘음모(陰謀)’가 있었다” 李贊根 인천시립대 교수는 지난 3월 펴낸 ‘IMF시대의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이라는 저서에서 “경제위기의 이면(裏面)에는 국제금융의 본질인 국제적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李교수는 투기자본은 실물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며 국제금융의 글로벌한 통합(자본시장 개방)에 따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자본은 ‘기러기떼’가 선두만 좇는 ‘군집(群集)심리’를 갖고 있어 불확실한 속성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투기자본의 이동속도는 광속화(光速化),한국은 부수이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희생물’이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은 냉전체제가 종식되자 새로운 ‘힘의 행사’를 바랐고 달러화와 자본자유화에서 그 길을 찾았다. 달러화는 더 이상 안정적 통화가 아님에도 미국은 지난 50년간 국제관계를 움직이는 ‘정치적 화폐’로 활용했다. 미국은 IMF 등을 앞세워 자본자유화를 무차별적으로 확산시켰고 투기자본은 이를 틈타 순식간에 개도국을 휩쓸었다. 미국의 ‘전략’은 외환위기 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달러화가 국제 상거래를 지배하는 한 개도국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미국은 그 대가로 시장개방 등 자국 산업에 이익이 되는 ‘전리품’을 챙긴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李교수는 “미국은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 국제금융시장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며 “IMF 위기의 단초가 투기자본에 있는 만큼 국제금융도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관광위/國監 하이라이트

    ◎與 “崔 교수 사상논쟁 토론회 갖자”/월간조선 이념논쟁 도마에 “사회적 선정주의 본질 흐려”/야 “언론중재위가 나서야” 3일 언론중재위원회와 한국방송광고공사,한국언론회관 등을 감사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서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고려대 교수를 향한 월간조선의 이념논쟁 공세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국민회의 吉昇欽 의원은 언론중재위 국감에서 “崔교수를 지지하는 전문가들과 월간조선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을 동수로 구성해 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고 “토론회에서 합의점이 나올 수 있다면,우리나라의 이념 대립이나 사상 대립에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吉의원은 또 “崔교수와 관련된 이념논쟁이 빚어진 것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므로,언론기관이 검증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제,“그러나 그가 월간조선에 그려진 것처럼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吉의원은 “崔교수가 사귀는 사람들도 보수진영이 대부분이고 6·25 등에 대해 우파,좌파의시각을 넘어 객관적으로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의 辛基南 의원도 “이번 사건은 강한 세력과 약한 개인이 맞섰고, 사회적 선정주의가 사안의 본질을 흐리기 쉽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연상케 한다”면서 “역사적 결단이라는 표현만 갖고 崔교수가 6·25를 미화했다거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리한 주장으로서 어떤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자민련의 鄭相九 의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崔교수의 언론중재 신청이 있으면 신중히 심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 朴成範 의원도 “법원에 맡길 것이 아니라 언론중재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言改連,‘崔章集 교수’ 건국사관 관련 토론회 요지

    ◎“남북대결·보수세력 비판 ‘친북 좌익’ 운운은 어불성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저술을 둘러싼 월간조선의 보도와 관련,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이사장 金重培)는 2일 한국프레스센터 12층 한국언론연구원 회의실에서 열렸다. 계명대 사회학과 李鍾旿 교수의 ‘학문·사상의 자유와 崔章集 교수 현대사연구 왜곡보도사건­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제발표문을 간추린다.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부제가 붙은 월간조선 11월호 기획기사로 한국사회는 다시한번 ‘사상논쟁’을 겪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식인에 대한 공안사건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인의 지적 작업에 대한 공안적 접근의 주체가 국가기관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 정부는 대북,통일 정책에서 과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이다. 이는 남북의 내부에 다같이 존재하는 냉전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 政周永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몰이’와 금강산관광 역시 이런 변화를 예감케 한다. 남북의 수구세력은 이런 변화를 비판하며 분단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햇볕론에 대응하는 남북의 보수대연합이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崔교수의 논저가 이른바 ‘친북 좌익’ 기조에 서 있지 않음은 일일이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의 논저는 남북의 냉전세력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본질은 남한의 보수세력이 한국 정부의 개혁정책과 탈냉전 평화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도전을 개시한 것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로 자신의 입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세력의 얼토당토않은 사상논쟁이며 기존의 냉전체제,남북대결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의 반영이다. 실제 崔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전쟁의 해석보다 훨씬 더 많은 면을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해 할애했다. 문제가 된 저서명이 ‘한국민주주의의 이론’,‘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과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의 민주주의관이나 노동운동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고 몇가지 어구와 문장을 차출해 보수 진영을 감정적으로 자극,선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논쟁이 그랬듯이 혀재의 사상논쟁도 토론이 아니라 선동으로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 의거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다원성이 허용된다. 진보와 보수가 다같이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 진보나 보수만의 배타적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를 다시한번 이념적 독재 혹은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崔교수 사건은 한국 사회가 문명으로 갈 것이냐 혹은 야만으로 남을 것이냐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한국의 집권세력,지식인,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상정,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위해를 가져오는 극단세력에 단호하게 대응 다수의 대중이 극우의 선동에 포로가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 부패한 지도층 퇴진 필수적/李成株 언론인(기고)

    ◎철저한 분석과 검증통해 부정적 비판인사 골라내야/지역·친소 등 정서 초월/진정한 새 시대 동지 찾을때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金大中정권의 탄생은 사실 金대통령의 원숙한 인간성으로 그 역사적 성격이 겸손하게 자리매김되고 있다.사선을 넘나든 그의 개인적 역정이나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폭력적 근대화 작업이 이제 민주방식으로 시장경제를 정상화시킨다는 데까지 이른 것을 생각하면 역사의 단계론으로 엄청난 수식이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역사 발전의 의미를 갖고 탄생한 金대통령의 새정부는 IMF 빚덩이를 떠안고 파산국가를 면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칫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간과하거나 몇가지 현상적인 위기의 극복에만 매달려 역사적 사명에 대한 통절한 인식이 결핍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행히 내년부터는 조금씩이나마 경제가 호전되리라는 전망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따라서 집권 전에 작성한 100대 과제 등을 다시 점검하면서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개편·개혁작업을 이제 본격적으로 착수해나갈때라고 본다.현정부의 개혁 청사진은 개선해야 할 현상들을 다수 선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극소수의 책임자들만이 개혁을 위해 발을 구르고 있는 것 같다.나머지는 적당히 눈치나 보면서 시일을 보내고 있으며 아마도 내년에 경제가 좀 나아지면 지금보다도 긴장이 더욱 느슨해질지 모른다.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면 모든 것이 유야무야된다.이 시대의 결정적인 중요성은 만약 현정부에서 총체적 개혁이 마무리되지 못하면 미래에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金대통령 이후에 적당주의에 젖은 수완있는 지도자야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1,000년 이상 계속된 전제정치에서 누적된,그리고 최근의 천민자본주의·관료자본주의에서 번진 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핵심에서 인식하고 사회의 질적 전환을 도모할 원칙이 확고한 지도자를 기대할 수 있을까.하긴 영명(英明)한 지도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시민계급의 머리와 손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지도자는 국가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조직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수많은 구성인원의 자세가 달라진다.이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질적 전환을 가져오려면 현재의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긍정적 또는 부정적)이 있어야 하고 부정적 비판이 우세한 인사의 퇴진이 필수적이다. 아첨꾼 기회주의자,영악한 출세주의자,부패한 배금주의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승승장구했고 그 결과 조직의 일선부서가 얼마나 심각히 오염됐는지 의식있는 사람들은 안다.우리사회가 부패의 광맥임을 실감하는 국민은 소수이고 그것이 사회발전에 얼마나 파멸적인 영향을 주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경력·지역·친소등 일차집단의 정서를 초월한 진정한 새 시대의 동지(同志)를 찾아야 한다.정부가 앞장서야 민간조직도 영향을 받아 전반적인 새 기풍이 조성될 것이다. 2차대전후 프랑스의 드골은 대독(對獨) 부역자들을 숙청할 때 “독초는 뿌리째 뽑아야 다시 돋지 않는다”고 했다.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포진하고 있는 독초들,그리고 그 독초들을 무성하게 만든 정신구조.이것은 혁명적 결단없이 척결되지 않는다.이 결단은 저차원의 보복이 아니다.진정한 문명사회를 위한 토양가꾸기이며 그 토양에 새로운 씨앗을 심는 일이다.
  • ‘총격’ 수사 중간발표를 보고(사설)

    검찰은 지난 대선때 판문점에서 남쪽을 향해 총격전을 벌여달라고 북쪽에 요청한 吳靜恩·韓成基·張錫重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죄)혐의등으로 구속 기소하고,총격요청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이를 수사하지 않은 權寧海 전 안기부장을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관심을 끌었던 李會晟씨에 대해서는 500만원 지원부분을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吳·韓·張씨는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배후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라를 온통 뒤흔들었던 엄청난 사건의 수사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첫째,특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적에게 총격전을 벌여주도록 요청한 사실은 국가 안위에 관한 엄청난 사건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의혹과 자작극 논란이 불거져나와 여야간의 정쟁거리로 변질됨으로써 본질이 희석되고 말았다.그러나 이 사건은 보충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밝혀내어 관련자를 엄단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이는 굴절된 우리 정치사를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그동안에 보여준 안기부와 검찰의 처신이다.사건이 사건인지라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할지 모르나,이 사건이 지니고 있는 폭발력을 감안해서라도 안기부와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좀더 보안을 유지했어야 했다.사건의 성격상 3인방의 단독범행으로 보기 어렵고,문제의 3인방이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 李會昌후보쪽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한 사실이 드러난만큼 ‘배후세력’에 대해 빈틈없는 완벽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이 불거져 나오는 바람에 사실여부와 관계 없이 사건이 정쟁거리로 변질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에 있는데도 여권 일각에서 사건의 ‘배후’를 한나라당 李총재로 앞질러 지목하고 ‘李총재 배제론’까지 거론함으로써 야당의 사활을 건 정쟁으로 악화시킨 것은 유감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때문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여권은 국정운영에 있어 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야당도 아직수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을 더이상 정쟁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3인방이 대선때 李후보 진영과 접촉을 유지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야당은 정치적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앞으로의 배후인물 수사에서도 어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두고 볼 일이다. 사건의 실체가 명백히 규명된 다음 관련자의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
  • 고문 여부 수사 본격화/검찰,안기부 관계자 등 금명 소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이 일단락됨에 따라 안기부의 고문여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법원이 의뢰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서울대병원의 韓成基·張錫重씨에 대한 신체감정결과 등이 ‘외부의 힘이 작용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수준에 그쳤으나 검찰은 어떻든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서울지검 형사3부(鄭東基 부장검사)는 이번 주에 고발된 안기부직원 등 12명에 대해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미 韓씨 등이 서울구치소에 들어갈 때 검진을 담당했던 의사와 교도관 등으로부터 당시 韓씨 등이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韓씨 등이 한때 수감됐던 경찰서 구치감 관계자도 소환,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검찰은 안기부가 韓씨 등을 고문했다는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는 “고문주장은 사건의 본질을 흐르기 위한 자작극 또는 거짓말”이라면서 “재판과정에서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국민회의 보안의식 허와 실/柳敏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국민회의 정책위원회가 이사중이다.여의도 중앙당사 이웃 극동VIP빌딩 4층에 입주한다.국민신당이 쓰던 곳이다.이사 이유는 ‘보안유지’.그동안 언론에‘원치 않는’ 문서유출이 적지 않았다고 국민회의측은 지적한다. 270평 남짓한 4층을 동·서로 구분,동쪽은 정책위의장 등 정책위 간부가, 서쪽은 전문위원들이 쓴다.단 전문위원실쪽은 철제문에다 ‘통제구역’으로 설정,전자식 식별장치인 보안카드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게 돼있다. 국민회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미처 익지도 않은 여당의 정책이 무차별로 새나오는 것이 작은 문제는 아니다.여론수렴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기사화돼 당 이미지가 국내외적으로 실추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위의 ‘철통보안’에 앞서 몇가지 지적해둘 게 있다.우선 정부 정책과는 달리 당 정책은 폐쇄성보다는 공개적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가급적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1차 여과를 거치는 것이 당의 정책이다.이번 ‘철통보안’조치가 행여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막아 ‘밀실정책’을 양산할 수도 있다.‘서류보안’을 철저히 하더라도 여론수렴자에게는 폐쇄적이지 않아야 할 의무가 당에 있다고 본다.언론유출 여부는 정책의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국민회의측이 서구식의 ‘사안별 브리핑제’를 활성화할 거라는 얘기도 있다.여기에는 몇가지 함정이 있다.몇가지 전제도 요구된다. 브리핑을 한다면 일방적 정부 주장이나 입장만을 서둘러 발표하고 끝내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이런 상황에서 기자출입을 봉쇄하고 브리핑만 한다는 것은 당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골라 알리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더욱이 누가 뭘 브리핑할 것인가도 불투명하다.국민회의에는 부대변인만 7명에 이른다.그러나 정책 전문성을 갖고 브리핑에 나설 정책담당 부대변인은 없다. 브리핑을 하더라도 비교적 솔직하고 정확한 브리핑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동안 몇몇 언론과 마찰이 생기고 나면 당측은 뒤늦게 변명에 나서 말을 조금씩 바꾸는 일이 많았다.국민회의가 ‘철통보안’에 신경쓰는 만큼 정책의 품질에도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한다.
  • 매카시 망령 무엇을 노리나/金三雄 상무·주필(時論)

    우리 시대의 대표적 정치학자로 꼽히는 崔章集 교수의 사상이 의심스럽단다.지금까지는 멀쩡하다가 金大中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사상이 도마위에 올랐다. ○일부 언론 ‘사상 칼춤’ 그것도 검찰이나 정보기관이 아닌 월간조선이 칼질을 시작했다. 5년전 金泳三정권 초기 총리 겸 통일원장관에 취임한 韓完相 교수를 사상 문제를 제기하여 결국 퇴진시킨 바 있는 일부 언론이 다시 ‘사상 칼춤’을 추고 나섰다. 金泳三 정권은 韓부총리의 퇴진을 계기로 개혁이 좌초되면서 수구세력에 둘러싸여 참담한 국정실패를 가져왔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국민들은 崔교수에 대한 ‘사상 칼춤’이 무엇을 노리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미국사회에 용공선풍을 일으켰던 매카시는 교묘한 과장법으로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정보관련기록의 ‘반역’을 ‘반역자’로 묘사하고, ‘피의자’는 ‘중요한 피조사자’,‘러시아 이름을 가진 세명’은 ‘러시아인 3명’, ‘고위관리’는 ‘고위 관리들’,‘첩보원’은 ‘첩보원들’로 조작하였다. 그리고 ‘소련의 포섭대상’은 ‘소련의 첩보원’,‘친공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바꿔서 활용했다. 또 ‘자유주의적’이란 문구는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이란 표현으로,‘공산주의 동조자’는 ‘활동중인 공산주의자’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단어를 조작하여 억지 공산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결과 로젠버그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반역죄로 기소되어 처형되고, 원자탄제조를 지휘했던 오펜하이어 박사마저 반역죄로 몰려 처벌받게 되었다. ○반공 내용 철저 외면 그러나 허위나 조작이 오래 가기는 힘들다. 웰치 변호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덜미가 잡힌 매카시는 병역사실의 조작등 개인 비리까지 드러나 탄핵되면서 미국사회의 매카시선풍은 사라졌다. 한국사회의 매카시즘은 아직도 기승을 부린다. 월간조선의 崔교수에 대한 모해는 언론 매카시즘의 전형이다.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하여 문제삼고 崔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한국정치학회 성명)는 바로 그대로이다. 학자의 연구성과, 특히 대통령자문위원장의 논문이 조명되고 바판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논문의 전체를 비판해야지 단어 몇개 문장 몇 구절을 토막쳐서 문제를 삼는것은 정당한 비판의 자세가 아니다. 월간조선은 崔교수의 글에서 “6·25 최대희생자는 북한민중” 등 몇 구절을 뽑아서 사상에 붉은색을 칠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반공적 내용은 철저히 외면한다. 예컨대 “주체사상은 불가오류의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는 대중동원의 이념적 기제로서 작용하여 왔다. 이제 주체사상은 민중이 오직 하나의 정점에 의해 지도되고 동원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민중소외, 민중대상화의 기능을 탈피하여 문자 그대로 민중주체의 민중자율성의 원칙과 이념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한국전쟁의 한 해석’) 이 구절은 북한의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 내용만 떼어내 읽으면 崔교수는 극우적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권 상처내기 외도 월간조선의목표는 崔교수가 아니라 金大中 정권이다. “崔교수가 관계한 ‘제2건국운동’은 어디로 가나”란 광고문에서 나타나듯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2건국운동, 나아가 金大中 정권에 용공의 너울을 씌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정부를 비판하고 학자를 비판하는 행위는 언론의 본질이다. 하지만 비판이 비판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공정성과 사실성에 입각해야 한다. “학자의 학술 연구를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한국정치학회)이며, “언론이 표피적으로 왜곡된 사실로써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崔교수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김학준 인천대총장) 매카시즘이다. 한국언론과 정계일각에 똬리를 튼 매카시 망령을 박멸하는 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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