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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재해공화국 오명 벗으려면

    가을을 재촉이나 하듯이 주말을 끼고 한 이틀 비가 내렸다.얼마 전 온 나라가 진저리를 쳤던 비 피해가 떠올라 빗방울이 조금만 굵어져도 불안했다. 추수를 앞둔 시기라 더욱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도 별 문제는 없었다.내린 비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안도는 하였지만 여전히 재해로부터의 안전망이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압축적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성장의 과실을 다급하게 얻으려는 조바심이 앞서,기본에 충실하기를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다. 재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대충적당주의는 정부정책과 일상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려 좀처럼 치유하기 어려운 도덕적 해이의 주범이 되고 있다. 지난번 기록적인 수재 피해를 당하고도 그 대책은 여전히 국면 회피적이고 국민정서에 호소하는 것이 전부였다.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특별재해지역을 선포하고,피해가구당 몇백만원의 보조금을 주고,망가진 도로와 다리를 복구하는 일이 전부였다.당장 급한 불을 끄는 대책들이라 이것을 나무랄 까닭은 없다.그러나 재해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이 남발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비슷한 재해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그 어디에도 재발 방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에 관한 정책적 움직임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엄청난 인명과 천문학적인 재산 재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된 정책 공청회나 세미나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월드컵 이후 한국사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여기저기서 너나 할 것 없이 호들갑을 떨며 개최하던 세미나를 생각해 보면 매우 대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재해가 날 때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만 안전사회를 향한 청사진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재해가 터지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문제해결적인 접근보다 국면회피를 위해 애국심을 볼모로 국민 정서에 호소해 왔다.국민의 동참정도를 재해 대책의 성패 기준으로 삼으면서 말이다.언제까지 이런 방식이 통용될지 의문스럽다. 물론 수재의연금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문제는 국민의 성금이 문제해결의 관건인 양 위기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는 데 있다.프로골프 선수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누구는 얼마 냈고,누구는 얼마 냈고 하는 기사화는 수재의연금의 액수가 마치 애국심의 표시인 양 몰아가는 천박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정서에만 의존하는 대책으로는 재해공화국의 오명을 벗기는 어려우며 반복되는 재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더더욱 어렵다.정부의 임시 방편적인 재해정책이나 수재의연금에 의한 국민정서적 접근 모두 일회성,이벤트성,전시행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언제 닥쳐올지 모를 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까지 자연을 원망하며,몇십년에 한번 온 폭우니 태풍이니 하며 운수타령식의 얘기만 계속할 것인가 말이다.몇십년만의 한번이라는 무책임한 확률이 피해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을 빼앗는 일이다. 재해로부터의 안전이 삶의 질의 중요 항목임을 명심하여야 한다.이제부터라도 졸속적인 근대화의 멘털리티와 관행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다.경기장마다 대한민국의 함성이 우렁차다.‘새로운 비전,새로운 아시아’가 월드컵의 자부심과 어우러져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닌가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세계적인 축제를 주최하면서 안전사회를 향한 우리의 준비는 어느 정도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진사회와 후진사회의 차이가 무엇인가.언제 올지 모를 어려운 때를 위해 무언가 조금씩 준비하고 모아두는 사회와 그러하지 않는 사회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추수가 한창인 풍요의 계절이다.혹독했던 지난 계절을 기억하며 안전사회를 위한 시스템 차원에서의 디자인이 절실히 요구된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 사회학
  • [열린세상] 北美 평양회담 이후

    2001년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가공할 테러는 국제 문제에 무관심한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며,부시 행정부의 대 탈레반 전에 힘을 실었다.부시의 지지도도 급상승했다.그런데 전쟁의 성공적 수행에도 불구하고,최종 목표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생포 내지 사살은 확인되지 않았다.그러자 2002년 미국은 대 테러전의 확산을 선언하며,이라크와 북한 및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 위정자들의 연설에서,오사마 빈 라덴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슬그머니 사라졌다.그리고 그 자리를 사담 후세인이 메웠다.이라크의 무장해제와 후세인 정권의 타도가 미국의 새 목표로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강경책의 배후에는 국내정치와 미 정책결정자들의 이념 성향이 작동하는데,미국의 정책 결정 구도와 과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합리성과 법적 타당성을 지향하는 배후에,인간 본성에 기초한 권력 정치와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결국 부처간,각료들간 이해와 노선의 대립 속에서 대통령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가 정책결정의 관건이 된다.대통령은 지지도와 선거를 염두에 두고,의회와 언론의 반응을 주시하면서,가장 호소력있는 정책을 마케팅하는 일에 전력 질주한다. 현재 미국의 대외 정책은 우파 보수주의에 의해 주도되며,실용적 현실주의의 공간은 제한되어 있다.테러 때문이었다.이들 우파는 21세기 국제 체제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며,미국이 선(善)을 대표한다고 믿는다.워싱턴의 한 안보 전문가는 부시 행정부 내에 ‘포용’이라는 용어는 이미 사라졌다고 개탄한다.오직 파월 국무장관만이 포용을 역설하는 유일한 인사라는 것이다. 현 정부의 보수주의가 기존 보수주의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지적된다.보수주의의 본질은 ‘현상 유지(status quo)’에 있으나,부시 행정부는 ‘급진 보수주의’,즉 보수 노선을 통해 ‘변화’를 꾀하는 기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이것이 미국 대외정책의 본질이다.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본토가 테러 집단이나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불량국가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보며,미국과 우방의 안보를 위해 일방주의나 선제공격도 대안이 됨을 역설한다.그들은 악의 축에 북한도 포함시켰다. 사실 미국이 이라크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 북한에 관심을 보일 여력은 없다.단,우파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불신하며,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방치 내지는 힘의 우위에 의한 강압 외교를 선호한다.비정상적 정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특히 탈북자를 포함한 북의 인권상황은 이들의 대북 거부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주 요소이다. 켈리 미대통령 특사가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북·미간 극적인 외교돌파구가 열리길 기대했지만,문자 그대로 실무회담으로서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한 채 끝난 것 같다.켈리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표현했다.이견이 있다는 방증이다.향후 재회동의 약속도 잡혀 있지 않다.핵,미사일,재래식 병력,나아가 인권문제 등 어느 하나도 만만한 의제는 없다.북한의 입장에서 적대 관계 해소의 보장과 경제적 급부 없이,가지고 있는 카드를 ‘포괄적으로’ 내놓기는 어려운 일이다.군부의 입장 및 정권의 안위도 걱정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켈리가워싱턴에 돌아가 당당히 내놓을 ‘카드’를 우선 제기했어야 했다.미국 내의 실용주의자들,즉 동북아의 안보 현실과 대북 포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행정부 내 소수 인사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면서,그들이 강경론자 즉 우파 보수주의자들을 제압하도록 유도했어야 했다.북·미 회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특사 방북 이후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불가시적이다.대량살상무기에 관한 한,주변국의 역할도 한정되어 있다. 결국 해법은 북한이 미국 내의 현실을 간파하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거시적 태도를 보이는 데 있다.흐르는 시간이 실기(失機)로 이어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정옥임(국제안보평론가)
  • 책/ 살육과 문명-서구는 전쟁에 이길 수밖에 없었다?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9가지 전투를 문화사적으로 그린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지은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부터 든다.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란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한 것에서 보듯 서구는 군사적으로 비서구지역을 제패했다는,비(非)서구인들에겐 매우 오만해 보일 수 있는 전제 하에서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저술의도에 대해 ‘서구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문명을 이용하여 다른 문명권 사람들을 죽이는 데 그토록 능숙했을까?’‘어떻게 자기들은 죽지 않으면서 그토록 난폭한 전쟁을 벌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여기에 덧붙여 ‘과거와 현재,미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군사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용맹스러운 서구의 무력에 대한 탐구나 마찬가지다.’라는 서구의 ‘절대 우월주의’로 비칠 수 있는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서구적 전쟁방식’‘전투의 본질’등을 쓴 전쟁사가.지금까지 그리스·로마시대의 전쟁을 주제로 책을 많이 썼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보듯 그는 세계사의 승리자는 서구이며,그것은 필연적 귀결에 의한 것이란 서구 우월적 시각을 지닌 대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9가지 전투를 통해 서구 군대 승리의 필연성을 주장한다.먼저 서기전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맞붙은 살라미스해전서 그리스가 승리한 요인에 대해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의 승리로 든다.즉 그리스인들은 전쟁의 향방이 주로 절대적 가치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믿었으며,개개인의 자유에 가치를 둔 그리스 군대가 병력·경제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군대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서기전 216년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이 로마군을 대파했으나 1년 뒤엔 로마군이 같은 장소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를 댄다. 즉 법치체제를 갖춘 로마군은 1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군단을 만들어 나선 반면 전제군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르타고는 1차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충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니발은 수만명의 강인한 군사를 거느렸지만 로마의 공화주의와 시민군국주의라는 얼굴 없는 제도와 마주하게 됐으며,시민이야말로 가장 치명적 학살자였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분석은 1942년 벌어진 일본과 미국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이어진다.당시 미군은 개인주의자,일본군은 사고력 없는 자동기계였다며 미국의 승리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제도 전체에 뿌리를 두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원인에 대해선 다소 모순된 논리를 들이댄다.즉 자기비판에 충실한 전통에 편승해 미국 언론은 전쟁의 부도덕성을 부추기고 베트남을 동정하는 보도를 집중 내보내면서도 북베트남의 만행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미국 전력을 붕괴시켰다는 점,베트남 전투는 민간인과 구분이 안되는 적,정글,게릴라작전 등으로 전통적 타격전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체제,가치의 문제로 전투의 향방이 갈렸다는 앞서의 주장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3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
  • [시론] ‘총리청문회’가 남긴 것

    세 번째 총리 후보에 대한 청문회를 마치고 인준여부 표결을 앞두고 있다.두 번의 인준 부결에 이은 세 번째 청문회에 대한 여야의 태도와 국민들의 관심은 그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여당은 물론 야당의 경우 새 총리의 임기가 얼마 되지도 않고 이미 두 번의 부결을 통해 정치적 목적은 달성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통과시키자는 분위기이고,국민들의 경우 세 차례의 청문회와 인준 과정을 지켜보며 국정수행 능력에 앞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성에 있어서조차 흠결이 있는 후보들을 바라보면서 “다 똑같다.”는 무력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몇 달간 국민들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살아온 과정을 검증해 보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대학총장,언론사 사주,대법관 출신 총리 후보들의 도덕성을 검증해 보며 서민들은 위화감과 함께 적지 않은 배신감도 느껴보았다.장상·장대환·김석수 총리 후보의 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대다수 사람들이 도덕적 흠결에 관한 한 세사람 모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커다란 차이는 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도덕성에 대한 후보자 자신의 인식에 있는 것이다.장상 후보의 불감증이 김석수 후보의 사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청문회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해 보았다. 김석수·장대환·장상 순서였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또한 청문회 과정에서 도덕성을 검증하는 기준이 설정됐다고 할 수 있다.부동산 투기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하지는 않았는가,본인은 물론 자식들의 병역의무는 정당하게 이행되었는가,이중국적 문제는 없는가,위장전입 혹은 증여탈세 등 자식들 관련 비리는 없는가 등이 주요한 점검 사항인 것이다. 장차 이 나라의 지도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즉 고위 공직자로 봉사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아울러 청문회는 후보자들로 하여금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정수행과 관련한 기본 지식 등을 습득하게 하고,나아가 청문회 답변과정에서 발언한 정책적 입장에 대해 책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청문회가 보여준 부정적인 면들,즉 당리당략적 접근에 따른 국정수행 능력을 비롯한 본질적인 후보자 검증의 실패,중복질문과 소신없는 답변 및 준비소홀에 따른 진행과정의 한계 그리고 지명된 후보자마다 반복되는 도덕적 흠결에 따른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 조장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 차례의 청문회를 부실청문회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과 자질 등을 검증해야 하는 인사청문회가 결국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제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그나마 제기된 문제들마저도 위원들의 사전준비 소홀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적절히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각종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를 각부 장관을 포함한 다양한 고위공직에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것은 그 긍정적인 면,즉 철저한사전 검증과정을 통해 공직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과 도덕성을 평가한다는점을 무시할 수 없는 연유에서다. 다만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정치적 고려로부터 자유롭고 사전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는 시민대표를 청문회 원외 특위위원으로 참여하게 한다든가,혹은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준 기준을 제도적으로 설정한다든가 하는 것이다.끝으로 다 똑같아 보이는 후보자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제도적 장치로서 청문회의 가치를 음미하며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되뇌어 본다.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 정치학
  • 이런책 어때요/ 데칼로그-십계명은 ‘존재의 자유’ 강조한 神의 권고

    데칼로그란 십계명을 뜻하는 그리스어.십계명은 지금부터 3300여년 전 모세라는 히브리 노인이 시내산에서 40일간의 기도 끝에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열가지 계명을 말한다.이 계명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교·이슬람교에서도 모두 정경(正經)으로 사용한다.저자는 십계명의 본질을 ‘…하라’는 명령문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어원으로 보더라도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신과 인간의 쌍방계약이라는 설명이다.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존재의 자유를 느끼라는 신의 권고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1만 8000원.
  • 이대 국제학술회의서 주제발표한 佛석학 장 보드리야르

    지난 25일 내한한 프랑스의 석학 장 보드리야르(73)는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미디어­시티 서울 2002’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미지의 폭력’이란 발제문을 통해 현대의 문화현상을 진단했다.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와 문화에 대한 독창적이고 극단적인 분석을 시도해 온 사상가.이미지의 폭력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의 논지는 여러 갈래로 뒤얽혀 난삽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다음은 주제발표 내용 요지다. 오늘날 모든 것은 이미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현실은 과다한 이미지 아래 실종됐다.그런데 우리는 이미지 자체도 현실의 영향으로 사라진다는 점을 잊고 있다.이미지는 대부분 그 독창성,이미지로서의 고유한 존재를 빼앗긴 채 수치스럽게도 현실과 결탁한다. 비잔티움의 우상파괴론자들은 그 의미를 지우기 위해 이미지를 파괴하려 했다.오늘날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우리가 우상파괴론자가 됐다.의미를 퍼부으면서 이미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의미로 이미지를 죽인다.보르헤스의 우화 ‘거울의 군중’에서는 각각의 닮음과 재현 이면에 정복된 적,쓰러진 기발함,죽은 대상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우상파괴론자들은 우상이 신을 실종시킨다는 것을 예감했다.오늘날에는 신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지 뒤로 사라진다.누가 우리 이미지를 훔칠 위험,비밀을 강요할 위험은 더 이상 없다.여기에 바로 우리의 궁극적인 도덕성이자 외설성의 사인(死因)이 있다. 요즘 대부분의 미디어나 사진 이미지는 인간조건,즉 인간이 놓인 상황의 재난이나 폭력만을 반영한다.이 재난이나 폭력은 그 이미지에 의미가 부가되면 될수록 감동이 줄어든다.이미지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이미지 고유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재난과 폭력은 이미지를 통해 상업적으로 되풀이되는 주제다.패션과 사교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의 스펙터클’이다. 이미지에 가해지는 폭력 즉 이미지 왜곡은 바로 합성 이미지의 폭력과,영상이 드러내는 모든 최신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폭력으로 귀결된다.이미지의 상상력은 여기서 끝났다.이미지가 갖는 근본적인 ‘환상’이 끝난 것이다.합성과정에서 지시대상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보와 가상성의 폭력인 이미지의 폭력은 실재를 사라지게 만든다.모든 것은 가시적이어야 한다.이미지는 특히 이 가시성의 장(場)이어야 한다.그러나 대부분 실재가 사라지는 대가를 치른다.뭔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미지의 매력이지만,이것은 또한 이미지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심지어 상상하기도 끔찍한 폭력적인 현실을 드러내면서 실재적인 본질은 사라지게 만든다.그것은 마치 오르페가 유리디케를 보려고 돌아섰을 때,그녀는 사라져 지옥으로 다시 떨어지는 ‘유리디케의 신화’와도 같다.그렇게 이미지가 오고감으로써 현실 세계에는 거대한 무관심이 형성된다. 이미지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사람들은 그 자신이 가혹하게 이미지로 변신한다.순간마다 읽히는 존재가 된다.정보의 조명에 과다하게 노출된 탓이다.미셸 푸코가 말한 대로 궁극적인 자아의 표현인 고백을 강요받는다.이미지를 만드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일상생활,불행과 욕망,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말하고 또 말하는 것,지치지않고 알리는 것이야말로 이미지의 가장 강한 폭력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책/ 승자학 - 우향우 보수파의 ‘나쁜 교과서’

    “오늘날 세계라는 것은 ‘현대’도 아니며 나아가 ‘탈현대’도 아니다.오직 고대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테러집단이 첨단무기를 손쉽게 장악할 수 있는 지금,기독교식 성선설적 외교정책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탈냉전 제국들의 붕괴와 그것이 초래한 무질서는 우방의 해체를 촉발했고 새로운 피의 동맹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그 결과 새로운 전사계급을 탄생시켰는데,그들은 어느때보다 잔인할 뿐만 아니라한층 더 잘 무장하고 있다.전사들을 무찌르는 데 필요한 것은 대응속도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법률이 아니다.그것이 바로 미국이 추진하는 세계질서 구도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베스트셀러 ‘발칸의 유령들’의 저자이자 토론사회자인 카플란의 ‘승자학’(원제 Warrior Politics)은 한마디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지배의 정당함을 역설하는 책이다.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지가 “카플란의 저서는 미 우파의 필독서”라 평했듯이 그의 시각은 이미 화석이 돼 오른쪽으로 굳어 있다.때문에 이 책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견고한 보수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참고용’으로 읽힐 뿐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럼즈펠드 웨이’라는 이름의 리더십 학습바람이 불고 있다.여기서 럼즈펠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이 지목한 테러국가들을 선제공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미 국방장관을 일컫는다.뉴욕타임스 지가 적절히 지적한 대로 그는 ‘근육질의 매니저’다.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고 동서냉전이 끝난 뒤에는 미국인들의 안보불감증을 끊임없이 지적해온 매파다.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상대를 무자비하게 짓밟아 놓기도 하는 ‘카우보이 잭슨주의자’부시를 비롯한 미국의 강경그룹에게는 더없이 구미에 맞는 책이다. 저자는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필요한 지금,미국이 세계의 ‘리바이어던’노릇을 하고 다른 나라들은 느슨한 연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그 전례를 서기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도시국가들,서기전 321년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인도 동북부에 건설한 제국,로마제국의 통치방식,그리고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초·연·제·한·위·조 사이의 합종연횡에서 찾는다. 세계질서에 관한 저자의 인식은 매우 현실적이고 비관적이다.그는 자기희생을 내건 기독교 윤리는 위선인 만큼 군주는 자기보존 본성을 추구하는 이교도의 윤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마키아벨리,인간의 본성을 비관적으로 본 홉스,인구 증가가 비극을 초래한다고 여긴 맬서스를 오늘날의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열쇠로 본다.나아가 민주적 가치를 적용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비록 비민주적일지라도 질서유지에 가치 있는 이념,즉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를 용인해 평화를 지키려 한 카터보다는 공산주의에 대해 강경책을 취한 레이건이 더 현실적이며,테러를 묵인한 클린턴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부시가 훨씬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살기등등한 ‘전사정치학’이다.힘이 곧잘 정의로 둔갑해버리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읽게 하는 ‘나쁜’교과서다.무엇이 과연 도덕이고 미덕인가.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 시간의 발견 - 인간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이라는 말은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이지만 동시에 깊이 파고들면 한없이 추상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다.일상성과 추상성을 아울러 지닌 만큼 그것은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시간’은 단순히 일상생활에서의 한 단위를 뜻하지만 예컨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같은 작품에서는 인간의 내면적인 진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의 발견’은 역사적·과학적·심리적·철학적 시간 등으로 나눠 시간의 본질에 접근한다.인류가 시간 측정의 단위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분류하고 비교하고 생각할 줄 알게 된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또한 인류가 시간을 지배함으로써,다시 말해 동시적인 삶을 실현함으로써 거꾸로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 아이러니도 보여준다. 인간의 몸은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데서 생기는 빛과 어둠의 주기에 리듬을 맞추는 복잡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이 ‘하루시계(circadian clock)’는 초기의 인류,즉 선사시대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해 시간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선사시대 사람의 시간관념은 어땠을까.선사시대 문화에는 당시 사람들의 시간관을 말해줄 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대 이집트에서처럼 해가 뜨는 것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았을까,아니면 오늘날 유대력이나 이슬람력처럼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잡았을까. 자연세계의 주기는 날과 달과 해라고 하는 시간단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그러나 그밖에 다른 시간단위는 전적으로 인간의 발명물이다.예를 들어 밤을 12시간으로 나누고 같은 방식으로 낮도 그렇게 구분한 이집트의 관습은 문화적 환경에 따른 것으로,매일 밤 뜨는 별들을 순서대로 12개나 36개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한시간을 60분으로 나눈 것은 전혀 다른 제도,즉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한 60진법의 유산이다. 한편 14세기 기계식 시계가 출현하면서 하루를 측정하는 방식은 24시간으로 고정됐다.이처럼 시간을 균등화한 것은 기계식 시계가 해시계보다 정밀하기 때문이 아니다.그 진정한 원인은 상업 발달에 있었다.1330년대부터 산업계는 노동자들을 시간(60분)단위로 고용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루도 세웠다.휴대용 시계가 보급됐고 일상생활은 점점 더 동시성의 세계로 접어들었다.한 예로 영국 우편마차의 호위병들은 1780년대 각각 시계를 지급받아 마차를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순환적 혹은 주기적 시간개념이 선형(線形)시간 개념에 밀려난 것은 역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적 시간개념은 선형이다.천지창조에서 시작해 그리스도를 거쳐 재림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화살’로 볼 수 있다.17세기 이론가들과 뉴턴도 이같은 선형 구도를 따랐다.천체와 사물의 운동을 설명한 뉴턴의 운동법칙은 돌이킬 수 없는 일방향성(一方向性)시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니치 평균시(GMT)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미국과 캐나다의 철도회사들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곧 시간대를 식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이를 계기로 전세계 산업국가들은 1884년 워싱턴에서 본초자오선 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그 결과 GMT는 세계 표준시로 확정됐고 지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여러 시간대로 나뉘었다. 이 책은 오랜 시간의 궤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꼽는다.실제로 그랜드캐니언 만큼 시간의 심연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협곡의 가장자리에 서서 1500m 아래 콜로라도강을 내려다 보면 마치 시간의 통행로에서 스냅사진을 찍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바닥에 있는 선캄브리아기의 바위들은 20억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왔다.그랜드캐니언이야말로 먼시간(deep time),즉 지질학적 시간의 보물창고다.1만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 CEO의 12가지 비전 - 손자병법서 얻는 성공경영 비결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면 적어도 5∼10년은 내다보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워야 한다.급변하는 현재 상황에 대처하기도 힘든데 언제 미래를 내다보고 어떤 비전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2만5000달러로 시작한 타이완의 에이서 그룹을 20년 만에 세계 3대 컴퓨터제조회사로 끌어올린 스전룽(施振榮)회장.그의 경영경험과 철학이 담긴 이책은 기업의 CEO를 위한 유용한 경영지침을 제공한다.비전을 확립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방법을 에이서 그룹의 경영경험과 손자병법을 접목시켜 설명한다. ‘손자병법’은 21세기 하이테크 시대의 전쟁과 스포츠 분야는 물론,빌 게이츠·손정의 등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자와 리더들이 기업전략의 지침서으로 애독하는 책.스전룽 또한 ‘손자병법’에서 경영의 지혜를 얻는다. ‘손자병법’은 “군주는 노여움으로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되고,장수는 분노를 품고 싸워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전쟁을 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야 하듯이,기업의 CEO 역시 시장에 뛰어들 때는 순간적이고 일차적인 감정을 피해야 한다.분노 때문에 무분별한 살가전(殺價戰)을 펼치거나 광고전을 벌이는 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라는 것이다.저자는 손자의 지침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발짝 떨어져 사물을 바라보라고 권고한다.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터넷 경제다.그에 따르면 인터넷 사업은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본질은 어디까지나 ‘non-tech’산업이다.하지만 첨단 과학기술의 뒷받침 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하이 터치’,즉 고감성의 길로 나아가는 게 필수다. 인터넷 조직의 정신을 내면화하는 것도 최고경영자가 갗춰야 할 덕목이다.인터넷 조직은 민주와 법치를 반영한다.구성원을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며,프로토콜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법치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인터넷조직의 발전이야말로 오늘날 지식경제 시대의 특징인 고도의 분업과 통합을 이끄는 주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통계에 의하면 수년전 타이완 기업의 평균수명은 7년에 불과했다.왜 그렇게 단명했을까.그것은 기업 지도자가 기업문화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 연유로 타이완에는‘생명력 없는 식물기업’이 널려 있었다. 기업문화는 기업의 핵심적인 소프트 인프라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구조다.민주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CEO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저자는 ‘역방향 사고’야말로 창의적인 전방위 사고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전4권,각권 1만2900원. 김종면기자
  • 이런책 어때요/ 명인명창 外

    ◆ “귀(耳)명창 중에는 뭐니뭐니해도 흥선대원군을 빼놓을 수 없다.당시 운현궁 사랑채 노안당을 드나들며 소리를 한 명창들이 하나 둘인가.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박유전 정정렬 장판개 등이 대원군의 총애로 어전에서 소리해 국창 칭호를 받은 이들이다.” 40년 넘게 사진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사진통멘 광대’로 통한다.전국의 소리꾼과 무격,놀음바치 판에 빠져들어 우리 전통예술을 증언하고 보존해왔기 때문이다.이 책엔 그가 가려 뽑은 한국의 명인명창 120인 이야기가 담겼다.여성명창의 유래,영호남의 삼현육각 등에 관한 해설문도 실었다.2만9000원. ◆ 선불교의 역사는,깨달음이라는 원형을 재생하거나 모방해 온 역사다.선불교와 불교간의 이 ‘원형논쟁’은 사활을 건 것이었다.선불교는 왜 불교를 모방했으며,선불교에서 마음을 원형으로 내세운 까닭은 무엇인가.선불교의 역사에 숨은 해석의 역사,이미지의 역사,인간의 역사를 살폈다.한국 불교계 쟁점 가운데 하나가 돈점(頓漸)이다.저자는 돈과 점을 번쇄한 철학적 이론이아니라 모종의 의지 혹은 욕망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노동하지 않는(?)선불교의 노동관,붓다의 수제자 가섭 등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눈길을 끈다.1만2000원. ◆ 소요유(消遙遊)와 호접몽(蝴蝶夢)의 사상가 장자.그의 사상엔 시대의 흔적이 각인돼 있다.그가 산 시대는 전국시대 중기로 정치·경제적 변혁기이며,전쟁이 흔하고 제자백가가 난립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며 은거한 탓에 ‘비관적 염세주의자’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장자는 세상을 탐색하는 소요파인 동시에 제 이상에 충실한 사람이었다.이 책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과학적 상상력과 계몽사상가적 실천에 주목한다.아울러 산문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위대한 문학가로서 장자를 부각한다는 데 특색이 있다.1만5000원. ◆ 인류가 자신의 본질과 근원을 찾으려고 기울여온 노력의 여정을 다각도로 살폈다.티베트의 생명의 바퀴에서 유태의 일곱 갈래 촛대,이집트 사자의 서,자이나교의 우주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구현해낸 다채로운 영혼의 이미지를 통해 그 실체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저자에 따르면 인도철학의 윤회사상과 불교의 업,그리고 기독교의 성찬식은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유사한 믿음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것이다.책에 실린 200여점의 아름다운 도상은 인간이 영혼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 왔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2만2000원. ◆ 프랑스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 버스로 한시간 남짓 가면 다다르는 파리의 중심가,이른바 ‘오페라구역’이라 불리는 이곳의 번화한 거리 가운데 ‘오페라거리’가 있다.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앞에서 르와얄 궁전과 루브르박물관 일대로 이어지는 거리다.지금은 관광지로 바뀌었지만,1860∼70년대 오스만 남작의 주도로 이뤄진 파리 재개발 사업의 얼굴이기도 한 곳이다.카페문화’로 대변되는 이 시기의 예술가들에게 이 ‘모더니티’의 상징적 공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이런 시공간을 배경으로 19세기 프랑스회화의 흐름을 다룬다.2만원. ◆ ‘0의 신비’를 찾아 떠나는 유쾌한 지적 오디세이.‘없음’의 수학적 표현인 0의 역사를 추적,상대성이론·양자역학·초끈이론 등 인간이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고자 만들어낸 이론 세계를 열어 보인다.미국 과학저술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저자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언어감각으로 난해한 이론을 쉽게 풀이한다.0이라는 개념이 없던 고대에는 사람들이 ‘비어 있음’또는 ‘없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기했을까 등의 문제에서 고대의 황량한 ‘빔’개념,현대 물리학이 제기한 공(空)개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룬다.1만5000원.
  • 北 신의주특구 기본법/ 의미와 전문가 분석

    ■‘1국가 2체제' 통큰 모험 자본주의 도입을 통한 ‘하나의 국가,두 개의 체제’의 신호탄인가. 북한이 변화의 숨가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지난 ‘7·1 경제관리개선방안’시행으로 본격화된 경제 개혁·개방 행보는 급기야 신의주 특별행정구역지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의미와 과제-북한은 특구에 독립적 입법·행정·사법권을 부여하는 등 파격적 내용을 담은 ‘신의주 특별행정구역 기본법’까지 제정하며 신의주 일대를 자본주의 실험장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뚜렷이 했다.‘홍콩식 행정’형태로 특구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최대한 도입, 화교자본을 우선 유치하려는 조치로 이해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자적 여권 발급 등 더 나아간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중앙집권형인 북한의 복잡하고 느슨한 행정 및 각종 규제 조치를 간소화해 기업 활동의 자율성·편의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하지만 모든 것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남한,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북·미관계의 개선이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걸림돌이다.또한 ▲특구의 행정·금융제도 등을 국제 규범에 맞추는 것 ▲계약 자유,소유권 보장 ▲SOC 확충 ▲환전·송금 안전성 보장 등의 조치가 적기에 이뤄지는 것이 특구 성패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대한매일 명예논설위원 분석-동용승(董龍昇)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은 “북쪽은 신의주 특구를 외부로부터 자본유치 및 금융,과학기술,무역,외국기업 합작,서비스 업종 등 다양한 분야의 실험장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외국 기업 역시 투자환경을 따지면서 실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북한은 경제운영 자체를 이원화시키게 될 것”이라면서 “내부적으로는 ‘7·1경제개혁 체제’로 끊임없는 변화를 추진하는 한편 신의주를 통해 자본주의의 연착륙에 대한 검토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중국내 특구를 비롯,홍콩,마카오등과 비슷한 중국식 개혁·개방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그는 신의주특구의 성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으로 동북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는 것을 꼽았다.개혁·개방과 관련한 제도를 개선,외국 기업에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는 “신의주특구 기본법에 입법회의와 장관직을 두도록 한 것은 중국과 홍콩의 관계와 같다.”면서 “북한 내부에서 자본주의 실험을 본격 시도하겠다는 모험적이고 독특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기본법 주요내용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최근 채택한 신의주특별행정구(신의주특구) 기본법은 정치,경제,문화,기구 구성 등 총 6장 101개조로 구성됐다. 기본법은 특구의 토지 등은 공화국(북한)의 소유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국제적인 금융·무역·상업·공업·첨단과학·오락·관광지구로 꾸릴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다음은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이 법의 분야별 내용을 원문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제1장 정치 신의주특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후 공화국) 주권이 행사되는 특수행정단위이며 특구를 중앙에 직할시킨다.공화국은 특구에 입법·행정·사법권을 부여하며 특구의 법률 제도를 50년간 변화시키지 않는다. 공화국의 내각,위원회,성,중앙기관은 특구 사업에 관여하지 않으며 특구와 관련한 외교사업은 국가가 한다.특구는 국가가 위임한 범위에서 자기의 명의로 대외사업을 하며 여권을 따로 발급할 수 있다. ◇제2장 경제 신의주특구의 토지와 자연부원은 공화국의 소유이며 국가는 행정구를 국제적인 금융·무역·상업·공업·첨단과학·오락·관광지구로 꾸리도록 한다.국가는 특구에 토지의 개발·이용·관리 권한을 부여하고 특구에 창설된 기업이 공화국의 노동력을 채용하도록 한다.특구의 토지 임대기간은 2052년 12월31일까지로 국가는 특구에서 투자가들의 투자를 장려하며 기업에 유리한 투자환경과 경제활동조건을 보장하도록 한다. ◇제3장 문화 공화국은 특구에서 문화 분야의 시책을 바로 실시해 주민들의 창조적 능력을 높이고 문화정서적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하며 첨단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를 적극 개척하도록 한다. ◇제4장 주민의 기본권리와 의무 성·국적·민족·인종·재산·지식·정견·신앙에 따라 주민은 차별당하지 않으며 주민권을 가지지 못한 다른 나라 사람은 주민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공화국의 다른 지역,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여행하는 질서는 특구가 정한다. ◇제5장 기구 입법회의는 신의주특구의 입법기관이며 입법권은 입법회의가 행사한다.입법회의 의원으로는 특구의 공화국 공민이 될 수 있으며 특구의 주민권을 가진 다른 나라 사람도 입법회의 의원이 될 수 있다.입법회의는 의장·부의장을 두고 입법회의에서 선거한다. 장관은 신의주특구를 대표하며 장관으로는 특구 주민으로서 사업능력이 있고 주민들의 신망이 높은 자가 될 수 있다.장관은 입법회의 결정,행정부 지시를 공포하고 명령을 내며 행정부 성원을 임명·해임하고 구검찰소 소장을 임명·해임한다. 행정부는 특구의 행정적 집행기관이고 전반적 관리기관이다.행정부의 책임자는 장관이며,행정부의 부서책임자와 경찰국 국장은 특구의 구민이 된다. 신의주특구의 검찰사업은 구검찰소와 지구 검찰소가 하며 구검찰소는 자기사업에 대해 장관앞에 책임진다.특구에서 재판은 구재판소와 지구재판소가 한다.구재판소는 최종 재판기관이다. ◇제6장 구장·구기 신의주특구는 공화국 국장·국기를 사용하는 밖에 자기의 구장·구기를 사용하며 사용질서는 행정구가 정한다.특구에는 공화국 국적,국장,국기,국가,수도,영해,영공,국가안전에 관한 법규 밖의 다른 법규를 적용하지 않는다. 박록삼기자 ■궁금증 문답풀이 - 초대장관에 장성택 물망 북한의 신의주특구 지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특구 지정에 따른 궁금증을 질의·응답(Q&A) 방식으로 풀어본다. ◇나진·선봉 지역과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신의주특구와 나진·선봉 지역은 각각 서해와 동해 및 중국·러시아와 맞닿은 국경지역이라는 점에서 물류와 대외 교역에 유리한 조건이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점은 더욱 본질적이다. 북한은중앙정부의 직접적 통제를 받았던 나진·선봉과 달리 이번에는 신의주특구에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권을 보장했다.또한 신의주특구 지정 배경에는 최근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가 뒷받침하고 있어 개혁·개방의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점은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다.나진·선봉 무역지대 지정 직후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지며 투자 유치가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남한,중국,러시아는 물론이고 일본과도 적극적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이들이 경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는 상황인 만큼 나진·선봉과 같은 시행착오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경제특구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지난 80년 지정된 선전·시아먼 등 4개 특구와 닮은 꼴이다.특구에 입법권을 줘 외국 투자기업들에 신뢰감을 준 점,토지 임대기간을 장기간으로 한 점,자국 노동력 사용을 명시한 점 등이 흡사하다. 하지만 신의주특구는 중국 내부 특구에 비해 진전된 것으로 오히려 홍콩·마카오에 가깝다는 지적이다.홍콩은 별도의 깃발,별도의 의회를 두고 중국과 별개로 영사업무를 한다.경찰권과 국방권만 중국의 본국 정부가 가지고 있다.신의주특구 역시 마찬가지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신의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교자본을 감안한 북의 조치”라면서 “중국 초기 개방 과정에 비해 훨씬 급진적인 조치”라고 말했다.다만 중국은 개방초기 시장지향적 개혁이 빠르게 펼쳐져 외국자본이 흘러들 여지가 많았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폐쇄적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중국과 같은 성과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특구는 ‘국가속의 국가(?)’ 특구 기본법은 신의주특구를 영토와 국민,독립적인 주권을 갖추게 해 ‘북한속의 또 다른 국가,신의주’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신의주특구에 입법회의를 설치해 독자적인 법 제정을 가능하게 한 점이 두드러진다.또한 특구는 국가가 위임한 범위에서 특구 명의로 대외사업을 하고,여권을 따로 발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앙정부가 행사해온 외교권의 일부까지 넘겨받았다. 특히 구장·구기를 정해 국가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중앙정부와의 연계는 장관 임명 정도며 행정부의 부서책임자,경찰국 국장은 특구 주민이 맡게 했다. ◇초대 장관은 누구. 장관은 북한의 중앙정부와는 별도로 독자적 입법·행정·사법권과 함께 토지개발 및 이용권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따라서 이곳의 책임자로는 경제적 식견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매우 비중이 큰 인물의 기용이 예상된다. 이같은 조건을 전제로 볼 때 신의주특구의 초대 장관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우선 물망에 오른다.그는 지난 8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수행했고 다음달 남한을 방문할 북한 경제시찰단을 이끌 예정이다. 장성택 다음으로는 연형묵 국방위원회 위원 겸 자강도당 책임비서 또는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광근 무역상 및 홍석형 함북도당 책임비서도 신의주특구의 장관 후보로 거명된다.모두 손꼽히는 경제통들로 평가된다. 박록삼기자
  • 지방자치 특집/ ‘풀뿌리 정치’ 변화의 몸부림

    민선 2기 중반 이후부터 불기 시작한 지방자치제도의 변화 바람이 민선 3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자치단체장들은 소속 정당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자율권을 확대해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들을 이번 임기 내에 마무리짓겠다는 태세로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전국 16개 시·도 지사들도 24일 청주에서 협의회를 갖고 지방선거법 개정 등을 요구할 예정이고,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10월 말쯤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초청,간담회를 열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현 자치제도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짚어본다. ◆지방자치제 소프트웨어의 변화는 가능한가.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대표회장 황대현 대구 달서구청장) 공동회장단은 지난 11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전격 회동,9개 정책건의안을 채택했다. 협의회가 내건 최대 화두는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배제다.이 문제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직결돼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긍정적인 입장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대한매일 명예논설위원인 김동훈 충남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학계 및 시민단체 등은 “정치권이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폐지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공천권을 무기로 기초단체장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계속 묶어 두려는 것에 불과하다.”며 제도 개선을 주문하는 상황이다. 지방재정 확충방안도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협의회는 열악한 지방재정을 확충,보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에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특히 지난 95년 민선단체장 취임 이후 지자체들이 재정난 타개를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경영수익사업을 벌였다가 대부분 실패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전 유성구청장을 지낸 송석찬(민주당)의원은 “기초단체의 자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제 개혁이 시급하다.”면서 “지방세 성격의 국세와 과거 지방세로 있다가 국세로 바뀐 세목은 지방세로 과감히 전환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번 건의안 가운데 일부 사안은공적인 측면보다는 기초단체장의 이해관계에 직결된 사안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자치단체장도 국회의원처럼 후원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구청장은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은 없다.”면서 “이럴 경우 자치단체장들이 업자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그들이 후원회를 개최할 경우 각종 관급공사 및 개발사업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는 업자들의 보험성 후원금이 줄을 잇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협의회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자치단체장의 연임 제한제도(2선까지만 허용,초대에 한해 3선) 역시 위헌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통해 철폐하자는 분위기다. 협의회는 이밖에도 자치단체장에 대한 공직 사퇴 시한 단축,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청구 징계제도 반대,주민소환제의 조건부 도입 찬성,선거직 공무원에 대한 연금 적용 등을 요구했다. ◆칼자루를 쥔 정치권 입장 정치권의 반응은 냉랭하다.핵심 사안인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후원회 제도도입등에 대해 자치단체장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지방자치위원장인 허태열 의원은 “현행대로 기초단체장은 정당공천하고 기초의원은 공천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의 기본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기초자치단체장의 후원회제 도입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정치권은 정책결정권과 집행권을 가진 단체장이 후원회를 열 경우 지역상공인들의 줄서기가 예상돼 부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입장은 민주당 김성순 지방자치위원장도 마찬가지다.“기초의원도 사실상 내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정당공천을 안 해도 정당을 기댄 선거는 불문가지”라고 진단했다. ◆선진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는 지방선거에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있다.하지만 기초단체장들의 95% 이상이 무소속일 만큼 정당공천제는 유명무실하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용학 정책전문위원은 “이는 중앙정치의 여파가 생활행정가를 뽑는 지방자치에 파급되는 것을 주민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지역(Non-partisan)이 98년 현재 80%를 상회한다. 반대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지방선거에 정당공천을 채택하고 있고 특히 스웨덴,스위스,프랑스 등은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고 정당에 투표,정당별로 지지표를 얻은 수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한다.정당공천제가 확립된 독일의 지방자치는 전 국민의 정치학교이자 실습장이다. 자치단체장의 연임 제한과 관련,일본은 제한하지 않으며 3회 이상이 47%이고,11선(選)만 3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용규기자 ykchoi@ ■“세목조정으로 지방재정 확충” 단체장 3기 출범에 즈음하여 지방자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다음 몇가지 사항을 제안한다. 우선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우리나라는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하고 공천에 따른 부작용이 많다. 지역사회의 분열,공천헌금,인사청탁,정책간섭 등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도 정당공천제는 당분간 폐지되어야 한다.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도 정당공천이 거의없다. 둘째,단체장 선거시 후원회가 꼭 필요하다.깨끗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단체장이 선거에 필요한 경비를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조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단체장들이 불법적 정치자금의 굴레에 걸려들거나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깨끗한 선거와 건전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선거공영제와 후원회제도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셋째,주민청구징계제도는 반자치적인 제도이다.주민이 뽑은 단체장을 중앙정부가 파면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차라리 민주적 주민소환제를 신중히 도입하여 주민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국세와 지방세의 세목조정을 통하여 지방재정을 확충해야 한다.자치단체 파산제와 같은 극단적 제도는 시간을 두고 검토해도 늦지 않다. 다섯째,단체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고자 할 때 선거일 6개월 전에 사퇴하도록 한 것은 일반공직자들을 60일 전에 사퇴하도록 한 것에 비해 형평이 맞지 않는다.이것은 행정의 공백을 늘리고 자치단체장의 권리를 과도하게제약할 뿐 아니라 헌법의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단체장의 임기를 3선에 한정한 것도 주민의 선택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다.선진국처럼 주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단체장은 다른 공무원과 똑같은 법적 의무와 제약을 받으면서도 은퇴 후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연금제도에 있어 자치단체장을 배제할 필요가 있는가. 단체장도 지역 주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로서 은퇴 후 최소한의 생계대책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김충환/서울구청장협의회장 강동구청장 ■“특정당 독식 공천제 폐지 마땅” 전국 232개 기초자치단체들로 구성된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최근 지방자치제도 개선과 관련,모두 9개 항의 대정부 건의안을 제출했다. 건의안 가운데 일부는 지나치게 자치단체장들의 입장과 이해만을 고려한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동안 학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지를 표명한 내용들이다. 우선 정당공천제의 폐해·부작용에 대해서는 여러번 지적한 바 있고 6·13지방선거에서도 이같은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무엇보다 지역별로 특정정당이 단체장은 물론 지방의회까지 독식함으로써 지방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지방의회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물론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다음 지방선거 전에 최소한 기초자치단체만이라도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이 자치단체장에 입후보하는 경우 후보자 등록신청 전에 사퇴해야 하지만,자치단체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경우 선거일 180일 전에 사퇴하도록 되어 있어 형평성이 결여될 뿐 아니라,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이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견제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다고 보며,행정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자치단체장의 공백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민 청구 단체장 징계제도는 지방자치의 본질에 배치되는 것이며,주민소환제의 도입이 타당하다.하지만 모든 선거직 공무원에게 적용해야만 동의하겠다고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이 약하다.자치단체장도 일종의 선출직공무원인 바 연금제도를 적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자치단체장도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임에는 틀림없다.하지만 현실 풍토상 자치단체장에 대한 후원회가 반대급부 없이 올바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김익식/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경기대 교수
  • 책/ 중세문화이야기 - 중세는 암흑시대? 천만의 말씀

    1860년 스위스의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가 그의 대표작 ‘이탈리아 르네상스문화’에서 선보인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이란 개념은 당대 지식인들의 상상력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5세기 서양 고대문명이 붕괴한 뒤 유럽은 기독교회의 지배 아래 암흑과 야만의 1000년을 보냈고,14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싹터 찬란하게 꽃핀 ‘르네상스’가 고대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며 근대를 열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던 이‘정설’도 20세기 들어 중세사 연구가 심화하면서 크게 흔들렸다.‘암흑’의 중세와 계몽된 ‘근대적’르네상스 사이에 그어진 명확한 선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중세사 연구자들은 세밀한 연구를 통해 근대의 전형으로 꼽히던 핵심적인 특징들을 중세 속에서 찾아냈고,르네상스 후에도 중세가 지속됐음을 증명해주는 많은 전통적 요소를 끄집어냈다.또한 고전 부활의 시기인 르네상스를 카로링 왕조의 프랑스,앵글로 색슨족의 영국,오토제국의 독일에서도 발견했다. 미국의 중세사가 해스킨스는 과감하게 ‘12세기 르네상스’설을 내세웠으며,12세기 유럽문화의 흐름을 퇴보에서 ‘진보’로 바꿔 놓은 주역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프랑스라는 주장도 제기됐다.1940∼50년대에는 아예 르네상스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우리는 한 마디로 뭉뚱그려 중세문화 혹은 중세문명이라 부르지만,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처럼 매우 복합적임을 알 수 있다.미국의 대표적인 유럽중세사학자 존 볼드윈(73·존스 홉킨스대 명예교수)이 쓴 ‘중세문화 이야기’(박은구·이영재 옮김,혜안 펴냄)는 서양 중세문명을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체로 파악한다. 이 책은 1000년부터 1300년까지,스콜라 문화라는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다.시기상으로 볼 때 르네상스 이전이고,스콜라 문화는 르네상스의 휴머니즘과 대립되는 개념이니 전형적인 중세 이야기라 할 수 있다.그러나 기존에 우리가 알던 중세와는 확연히 구분된다.중세문화라고 하면 일단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둡고 침침하고 야만적이고 퇴보적인 것이다.그러나 저자는 중세를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며 밝고 희망적인 이미지로그린다.르네상스 이전의 ‘르네상스’를 다룬 셈이다. 책에 소개된 아미엥 성당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상’이나 랭스 성당의 ‘미소 짓는 천사’같은 조각상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심판관으로서 그리스도의 모습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으며,‘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평온함에는 그 시대가 자각한 힘에 대한 자신감과 안정에 대한 신뢰가 반영돼 있다.또 랭스의 조각품에서 절정에 이른 이러한 자신감은 잔잔한 미소로 표현돼 있다.저자는 “13세기는 미소가 인간의 예술적 표현에 의해 공감과 정당성을 가질 수 있던 매우 드문 시기였다.”면서 “이 점은 다음 세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일그러진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특징은 중세의 다른 분야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12세기 대표적 건축양식인 고딕건축이 그 한 예다.어두움으로 덮이는 것을 선호한 로마네스크 건축가와는 대조적으로 고딕 건축가들은 전문 기술을 총동원해 빛으로 가득한 교회를 세웠다.로마네스크 벽이 육중하고 밀폐되고 격리된 효과를 냈다면,고딕의 외벽은 섬세하고 투과적이며 빛을 발하도록 만들었다.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외투로 교회를 감싼 듯한”모습이다.시대의 특징을 함축해 보여주는 이같은 고딕건축은 유럽에선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로선 접하기 쉽지 않다.그런 점을 감안해 한국어 번역본에는 원저에없는 고딕건축 관련 사진들을 꽤 많이 실었다. 이 책의 핵심주제는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스콜라주의’다.스콜라라는 말은 르네상스부터 19세기 초까지는 다분히 경멸적인 뜻이 담긴 용어로 쓰였다.저자는 스콜라주의를 “중세 학교에서 독특하게 창안된 사유하고,가르치고,저술하는 방법”이라고 규정한다.그에 따르면 스콜라주의적 요소야말로 당대의 복합적인 문화운동에 중세적 전형을 새겨준 관건이다.중세의 본질을 ‘스콜라학적 방법’으로 규명한 이 책은,제한된 주제에도 불구하고 서양 중세문화의 토양을 이해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준다.1만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밀레니엄] ‘경제, 거대한 사탄인가’ 弗 경제학자 지로와의 대담/노동생산 줄여야 공황 막는다

    신설되는 ‘밀레니엄’면에서는 국내외 정치·경제·과학기술 등의 큰 흐름과 그것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소개합니다.숨가쁘게 돌아가는 나날의 사건에서 벗어나 세계 사조(思潮)의 큰 줄기를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미래지향적인 기획물을 싣습니다.새로운 현상을 분석하면서 변혁의 흐름을 제시하는 국내외 강연,외국의 기사·저서를 소개합니다.아울러 국내외 전문가들을 초빙,기획좌담 등을 통해 깊이있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헤지펀드(환투기세력)의 공략,외환시장 붕괴,모라토리엄(지불유예),세계적금융위기,IMF(국제통화기금),뼈를 깎는 구조조정…. 21세기 문턱을 넘는 터널에서 인류는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렀다.이제는 수요부족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경고까지 나온다.이런 가운데 밀레니엄 대변혁기를 조망해보는 책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경제,거대한 사탄인가?’(피에르 노엘 지로와의 대담,김교신 옮김,동문선). 작은 분량이지만 이 책은 지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학과 사이버세계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철학박사이자 프랑스 언론인인 필리프 프티가 주요 이슈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피에르 노엘 지로가 대답한다.필리프 프티는 프랑스의 지성들과 10여차례의 릴레이 대담을 하고 있다.책의 대담을 요약한다. 口오늘날 경제는 인간 행동의 ‘견본’이 됐다.만사가 경제로 설명된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적 시각 또는 경제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제 사탄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제란 지나친 경의도,모욕도 받아 마땅치 않다.예컨대 노동시장이 시장원리대로 작동하면 각자는 전체 생산물 가운데 자신이 기여한 부분만큼을 요소소득으로 받는다는 경제학 개념이 있다.이는 ‘공정’과 관련된다.반면 ‘평등’은 정치적 개념이다.사람들은 평등을 공정으로 대체하면서 경제학과 정치학간의 불가피한 긴장을 피하려 한다. 口정부의 정책능력이 시장의 글로벌화로 인해 무력해졌다는 ‘금융시장의 독재’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토간 자본이동을 통제할 수 있었던 60년대에 국가는 자유롭게 성장론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하지만 펀드매니저,기업 자금담당,은행들이 국경을 넘나들어 투자하게 되면서 환율은 시장에 따라 결정되고 국가가 정책을 펼 운신의 폭은 상당부분 상실됐다.인플레정책을 펴려면 자본이탈을 각오해야 한다.반대로 돈을 맡기는 이들의 입장은 강화됐다.높은 이율을 따라 옮겨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口‘저축자들의 독재’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과거엔 저축자들이 정부의 독재 아래 있었다고 반박하고 싶다.그것도 소액저축자들이 최대의 피해자였다.큰 손들은 언제든 스위스로 달아날 방법이 있었지만 중산층 저축자들은 약탈당해 왔다. 口투자자들의 최대수익 추구도 이젠 더이상 ‘시장경제 법칙’이 아닌 ‘카지노 법칙’에 따라 이뤄지는 것 같다.= 인정한다.투기는 집단적 현상이 됐다.자본시장이 완전 자유화로 가면서 환율과 이자율 등 모든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다보니 불확실성이 커졌고,위험을 헤지(회피)하기 위한 옵션들,2차 파생상품들이 봇물을 이뤘다.2차상품의 본질은 위험 헤지다.그러나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위험을 부담하려는 이들이 있어야만 거래가 이뤄진다.이른바 투기꾼들이다. 환율,이자율,주가,원자재 가격 등 무엇이든 투기적 거래가 가능하다.투기꾼들은 초고수익을 위해 거품을 부풀리는 위험한 도박을 마다하지 않는다.그들이 한탕 챙겨 떠나 버리면 거품이 꺼지고 시장이 출렁인다.글로벌화는 이런 메커니즘을 전세계로 확산시켰다. 口분데스방크(독일연방은행)의 총재는 2차상품들이 금융시장을 실물경제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고 비난했는데.= 실물경제가 굴러가려면 어떤 형태로든 금융이 반드시 필요하다.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싫다고 그걸 없앨 수는 없다.2차상품시장 참여자는 투기꾼만이 아니다.정부도 ‘복권사업’으로 참여한다.투기를 더 높은 투자수익을 노린 금융수단간 ‘옮겨타기’로 정의한다면 SICAV(프랑스 투자신탁회사)에 돈을 넣은 소액투자자들도 다 투기꾼이다.투자자금이 투기적 자산인 주식에 일부 투자되고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투기냐 아니냐가 아니라,어느 정도이냐에 있다. 口자본이 설비투자 등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고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위험한 금융수단 사이를 옮겨다니는 것은 문제 아닌가?= 투기가 심해지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지난 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화폐와 주식시장을 공략한 투기꾼들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그 전에 증시와 부동산에는 이미 투기거품이 있었다.첫째,정부가 은행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은행은 돈을 부동산,주식 등에 투자하는 기업에 빌려줬다.둘째,이런 나라들의 특징은 내부 분배가 매우 불공평했다는 점이다.투자처를 찾던 극소수의 부자들은 실물부문 투자수익률이 금융부문 수익률보다 훨씬 낮다는 걸 간파한다.소득불균등으로 인해 생산해봤자 수요가 낮기 때문이다.그러나 실물 뒷받침없이 늘어난 잉여자본은 거품붕괴와 함께 결국 터지고 마는 법이다.정부는 은행의 투기적 대출을 엄격히 감시하고 국내소비를 진작시켜 실물부문의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口글로벌화에 관한 많은 비판 가운데 글로벌 기업이 국가간 불평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불평등이 더 심화될 위험은없는가?= 경험에 따르면 선진국내에선 빈부격차가 심해져도 나라간 빈부격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한국,타이완 등 신흥공업국이나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등은 빠르게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 한다.선진국내 빈부격차가 가속화된 것은 ‘경쟁률 높은 일자리’가 국제사회에 개방되면서,여기서 해고된 사람들이거센 국제경쟁의 외곽지대에 놓인 허드렛 일자리로 떨어지기 때문이다.한국등 ‘아시아의 용들’외에도 앞으로는 중국,러시아,인도 등 인구나 기반산업,저력 면에서 훨씬 위협적인 국가들이 선진국 따라잡기에 나설 것이다.선진국에서 경쟁률 높은 일자리의 파괴는 훨씬 가속화될 수 밖에 없고 이는 ‘중간계급의 축소’를 불러올 것이다.그렇게 되면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전세계적 소비저하-자본과잉-공황의 연쇄고리가 또 한번 작동될 지도 모를 일이다. 口이런 재앙의 시나리오에서 중간계급을 구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소비부족과 과잉생산은 동전의 앞뒷면이다.노동자에게 더 소비할 수단을 주거나 덜 일하게 해야 한다.나는 후자가 바람직스럽다고생각한다.‘돈대신 시간’이다.문화와 정치에 짬을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口그렇다면 글로벌 경제에서 국가는 무력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최근의 결론이다.특히 분배의 형평에는 국가개입이 필요하다.다만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인플레 정책,세수(稅收)의 사용처를 정하는 예산상의 힘,공적 일자리의 창출,최저임금을 준조세로 보전하는 정책 등 정부는 많은 카드를 갖고 있다.다만 정책이란 갑에게서 빼앗아 을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늘 뒤따른다.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뿐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피에르 노엘 지로/ “미국주도의 세계화 반대 투명경영 신뢰회복 시급” 피에르 노엘 지로(Pierre Noel Giraud·53)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경제학자이다.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명문 그랑제콜의 하나인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고,현재는 그랑제콜인 파리 광산학교(Ecole des Mines)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이다.파리 9대학에서도 강의한다. 지로는 세계화와 금융문제를 주로 연구하는 세르나(Cerna·산업경제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그는 “불평등의 책임은 기술진보에 있지 않고 세계화에 있다.”며 세계화의 폐해를 지적한다. 세계화되면서 국민의식의 경제적인 토대가 사라졌다고 통탄한다. 지로는 9월초 프랑스 유력신문인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비난하기보다 빨리 찬양했다.”고 토로하면서도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근본적으로 1930년대와 다르다고 진단했다.미국 엔론사의 분식회계에서 드러났듯 투자자들은 이제 기업의 분식회계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 경제위기의 원인이 신뢰상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구사해온 금융 ‘마법’도 더이상 통하지 않아 기업 신뢰 상실에 따른 제2의 엔론사태가 계속된다는 얘기다.하지만 이런 위기는 금융시장에 내재돼 있던 것이며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뢰가 무너졌다는 충격 때문에 우리는 자본주의가 훨씬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지만,불안정성은 자율적인 조정기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째 방안은 회사 경영진들의 속임수와 분식회계에 소액 주주들이 맞설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벗어나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마지막으로 스톡옵션을 규제해야 한다. 문제는 국제금융시장이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왔지만 규제는 항상 이런 제도개혁보다 늦다는 것이라고 지로는 지적했다. 박정현기자 jhpark@
  • “現代重주식 신탁”정몽준 대선출마 선언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17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석달 앞으로 다가온 12월 16대 대선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정몽준 의원 등 ‘빅3’의 3자 대결에 민노당 권영길(權永吉) 후보와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 등이 가세하는 다자대결 구도로 전개되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 내 통합신당 논의 결과에 따라 일부 세력이 이탈,정 의원 등 다른 대선주자 및 정파와 연대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대선구도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정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가진 대선출마 선언식에서 “정치개혁에 몸을 던지겠다는 소명의식에서 대선출마를 결심했다.”면서 “국민과 함께 국민을 위한 정치로 개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추구하는 새 정치의 본질은 상식에 의한 정치로,뜻을 같이하는 많은 정치인들과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10월 중순쯤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밝혔다.정 의원은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여부에 대해 “신문을 보니 노 후보가 후보단일화는 없다고 했는데 그 분 생각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자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11%)에 대해서는 “대선에 출마한 상황에서 특정기업의 대주주 신분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전량 신뢰할 만한 신탁기관에 맡기겠다.”고 밝히고 “대통령에 당선돼도 임기중 이들주식에 대해 일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날짜로 현대중공업 고문직을 사퇴했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
  • [대한포럼] 어디까지 ‘新北風’인가

    ‘정말 임기말인가.’의아할 정도다.남북관계가 마치 순풍에 돛단배처럼 흘러간다.19일부터는 이 정부의 숙원이던 비무장지대(DMZ)내 경의선과 동해선 공사구간에 설치된 지뢰와 폭발물이 제거되고 남북간 연결공사가 시작된다.머지않아 길이 열리게 되면 이 곳에 세워진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민족분단의 상징이 철거될 ‘딱한’처지에 놓이게 된다.무려 50년만에 DMZ가‘비무장’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는 셈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다음달 말까지는 쉼없는 일정들로 채워진다.현재 금강산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있고,이어 금강산댐 공동 조사,부산 아시안게임,8차 장관급 회담,북 경제시찰단 방한….또 남한 방송들의 남북 동시 생방송에 이어 KBS 교향악단이 21일 평양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동연주회를 통해 이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을 예정이다.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무척 좋아한다는 가수 이미자씨는 윤도현 밴드와 이달 27일 평양을 방문,‘동백아가씨’등 수많은 히트곡을 부르게 된다.마치 봇물이 터진 듯 거침없다. 북한이 왜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일까.‘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성공’과 같이 그 이유가 복합적이다.오늘 북·일정상회담 등이 이를 방증한다.그러나 유독 우리 정치권에는 ‘신북풍(新北風)’공방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어느 나라 대외정책이나 단선(單線)은 없으나 애써 다른 분석은 무시해버리는 태도를 보인다.대선에서의 유·불리만을 따진다.그것도 한심스럽게 정확한 통계와 분석에 근거하지 않고 추측으로 산정한 이해득실 계산표를 가지고 말이다. 우리 정치에서 북풍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북풍이라는 조어(造語)만 없었을 뿐,1945년 남북분단 이후 정치적 파장은 계속되어 왔다고 봐야 한다.그뒤 6·25를 거치면서 파괴력이 생기기 시작했고,1980년대 들어서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특히 13대 대선을 앞둔 1987년 11월29일 터진 KAL기 폭파사건은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고,14대인 92년 대선을 3개월 앞두고서는 ‘이선실 간첩사건’이 발표되면서 ‘색깔론’이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당시 그 중심에 섰던 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들었고 그 후 한때나마 정계를 떠나야 했다. 이처럼 북풍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김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어찌보면 북풍은 김 대통령을 겨냥한 말일지도 모른다.‘대선 4수(修)’과정에서 예외 없이 북풍이 불거져 나왔고,색깔론으로 늘 피해를 입어온 장본인인 까닭이다.그러한 국민의 정부도 총선을 사흘 앞둔 2000년 4월1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발표,오해 살 일을 시도했다.신북풍이라는 조어가 이때부터 생겨났다.그러나 이제껏 북풍과는 반대로 결과는 여당인 민주당에 썩 좋지 않았다.원내 1당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다.북풍의 원조는 구 여권이라면,신북풍의 원죄는 이 정권에 있다고 할 수 있다.더 이상 어쩔 힘도 없으면서 신북풍의 진원지로 시달리는 것은 이 업보 탓이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가 북풍인가.’하는 점이다.북한 대외정책의 변화를 전부 싸잡아 북풍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 기준은 의도성 여부일 것이다.“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이 정부가 먼저 또다시 의심받을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하기야 남북문제로 옛 여당을 도우려 들었다간 되려 역풍을 맞는다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정부관계자들이 모를 리는 없을 터이다.우려되는 것은 만에 하나 신북풍공세를 ‘반 DJ 정서’를 한데 모으려는 전략으로만 활용하려는 의도다.그렇다면 그것 역시 북풍의 일종인 ‘역북풍(逆北風)’일 뿐이다.민족의 장래와 미래 비전이 걸린 문제를 오직 선거에만 이용하려는 것이 북풍의 본질이다.이번 선거에서도 역사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그것은 국민을 얕잡아보는 태도다.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 [씨줄날줄] 흡연과 대학

    담배를 피우면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특별 전형이나 동점자 처리에서 담배 피우지 않는 학생을 우선 선발하거나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징계받은 수험생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식이다.얼마전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등 수도권의 9개 대학 총장·부총장이 국립암센터 박재갑(朴在甲) 원장의 초청으로 한자리에 모여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흡연 여부는 머리카락을 검사해서 어렵지 않게 알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입시에서 흡연 학생 차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그런데도 한편에선 벌써부터 흡연을 입시와 연계시키는 것은 억지라며 문제를 제기한다.중·고교에서 흡연 학생을 이미 처벌하고 있고,학생부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입시에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든다.하나의 사안에 두 번씩이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또 흡연이 거리낌 없이 허용되는 대학에서 흡연을 이유로 구성원이 되는 관문을 봉쇄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는 지적도 한다.또 지금의 모발 검사로는 간접 흡연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약점도 동원된다. 그러나 발상을 바꿔볼 일이다.사회 공동체의 메커니즘에서 대학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 매겨야 한다.세상은 변했다.대학은 더 이상 현실의 실천 문제를 외면한 채,이론적 연구에 몰두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외부의 간섭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보호하려던 구시대적 상아탑 외투를 벗어 던져야 한다.대학은 학문 발전과 함께 대학이 속한 사회의 건강 지수를 높일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이것을 자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대학 입시에서 이른바 지역 할당제가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까닭이기도 하다. 확실히 흡연과 학문은 무관하다.대학 입시를 금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과연 떳떳하냐는 이의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청소년 흡연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남자 고교생의 22.7%,여고생도 10.7%나 담배를 피운다.끽연은 건강상 해악은 물론 청소년의 ‘정신’도 멍들게 하는 속성이 있다.과거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 청소년 흡연을 유포시켰던 선례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대입시 흡연의 본질은청소년 흡연으로 사회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아무쪼록 이번 논의가 청소년 흡연의 심각성을 되새기는 계기로 발전되었으면 한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이주일의 아동도서/ 개똥벌레 과학그림책 시리즈-꿈틀대는 궁금증 시원하게 풀이

    ‘꽃잎이 4장인 꽃은 뭐가 있을까? 밤하늘은 끝없이 이어져 있나? 여름 바닷가에서 꿈틀꿈틀하는 건 뭐지? 눈물은 울 때만 나온다고?’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아이들의 호기심,거기에 착한 누나처럼 곰살궂게 대답해주는 아동 과학서가 나왔다.대교M&B에서 펴낸 ‘개똥벌레 과학그림책’시리즈.각권마다 다른 테마로 어린 독자들에게 과학적 사고의 싹을 틔워주는 기획물로,이번에 5권(제6∼10권)이 새로 보태졌다. 책의 내용은 제목이 일러주는 그대로다.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보며 우주의 기본질서를 귀띔해주고(제6권 ‘하늘에 끝이 있을까?’),운율감 넘치는 짧은 글로 식물세계를 들여다보는가 하면(제7권 ‘꽃잎은 몇장? 열매는 몇개?’),일상에서의 자잘한 궁금증들을 쉽고 재미난 과학이야기로 풀어주기도 한다.몸이 커지면 더 큰 조개껍데기를 찾아 옮겨다니는 집게의 세계를 보여주는 제8권 ‘집게의 집찾기’,눈의 구조와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제9권 ‘나의 눈 너의 눈’,바람개비 모형을 만들며 그 원리를 가르쳐주는 제10권 ‘바람개비 나라’가 그들.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짝 몸을 낮춘 그림책의 지은이는 일본의 천체학자,곤충학자,식물원장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다.각권 7500원. 황수정기자
  • 돋보기/ ‘히딩크 망령’ 빨리 떨쳐야

    박항서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의 ‘항명 파동’이 ‘엄중경고’선에서 마무리됐다.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두고 박 감독과 대한축구협회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극한대립 양상을 보이던 추세로 보면 그나마 다행스럽다. 박 감독은 최근 협회 상층부의 심기를 자극하는 발언을 잇따라 터뜨렸고 협회는 이를 ‘항명’으로 간주해 징계 조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갈등의 주요 원인은 연봉에 대한 이견과 기타 예우를 둘러싼 마찰 등 두 가지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봉 문제는 박 감독이 이전 한국인 국가대표 감독 수준의 보수(연봉 1억5000만원)를 요구했으나 협회가 이를 거부한 데서 불거졌다.박 감독이 국가대표가 아닌 23세 이하팀 감독이라는 점이 거부의 변이었다.그러나 양측은 각각 “상대가 납득하기 어려운 액수를 제시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두번째 갈등 요인은 감독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었다.지난 7일 남북통일축구경기 때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벤치에 앉힌 것이 결정적 빌미가 됐다.이와관련,박 감독은자신의 양해 없이 이같은 일이 강행됐다며 협회를 향해 직격탄을 퍼부었다.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양자의 주장이 달라 진실의 소재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이의 진실을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협회가 첫 단추부터 잘못꿴 탓에 애초부터 갈등요인이 잉태됐고 그 저변에 히딩크의 망령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하는 일일 것이다.월드컵 이후 볼썽사나울 만큼 싫다는 히딩크에게 매달린 것도 그렇거니와 기약 없는 그의 복귀에 대비,새 감독을 선임하면서 역할을 23세 이하팀 지휘로 한정한 것이 문제였다.23세 이하가 출전하는 2004아테네올림픽 때까지 감독직을 맡긴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의 장기간 공백 상태를 자초한 셈이다. 결국 박 감독은 히딩크의 망령에 시달리며 시한조차 정해지지 않은 과도기의 어정쩡한 감독 역할을 맡게 됐고 그로 인해 향후 국가대표팀간 경기(A매치)가 열릴 경우 누가 지휘봉을 잡을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 초래됐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히딩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초래한 불협화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협회는 이제라도 “우린 히딩크 올 때까지 축구 안하나.”라는 국내 축구인들의 자조 섞인 푸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박해옥기자 hop@
  • [이경형 칼럼] ‘23일간’만 참자

    선거기간 중 향우회,종친회,동창회 모임을 개최할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제103조를 싸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이 규정에 따라 대통령선거운동기간인 오는 11월27일부터 12월19일까지 23일간은 동창회 등을 열 수 없게 된다. 사실 이 조항은 2000년 2월16일에 개정된 것으로,16대 국회의원선거(2000년 4월13일)와 지난번 6·13지방선거에서도 이미 적용되었다.다만 당시에는 계절적으로 향우회,동창회 등이 많지 않아 별다른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조항은 해석하기에 따라 위헌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선거와 무관한 동창들의 친목모임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동창회 등을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11월26일 이전이나 12월20일 이후에 개최한다고 해서 행복 추구가 봉쇄되고,집회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박탈된다고 할 수는 없다.또 선관위도 동창,고향 사람들 몇명이 모여 간단하게 송년 모임을 하는 것까지 법률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유권해석도 이미 내린 바 있다. 이 법의 구 조항은 선거운동 목적의 동창회 등을 금지했다.하지만 실제는 지켜지지도 않았고,수많은 유사 모임을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고육책으로 선거운동기간에 한해 아예 금지토록 한 것이다.정치꾼은 동창회 등을 빌미로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했고,선거브로커들은 유사 모임을 급조해 후보 진영에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던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 차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연,학연,혈연 등 전근대적인 연고주의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는 일대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말로만 투명한 사회,선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 말고 이번 대선 기간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면 어떨까.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선거운동기간에는 자발적으로 향우회나 종친회,동창회를 일절 갖지 말자. 한국 정치,특히 선거문화의 최대 고질은 이러한 연고주의다.대통령선거에 있어 영·호남간 지역감정 부추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시·군·구를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읍·면·동별 대결의 소지역주의가 판쳐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선거 때만 되면 출신 고등학교 중심으로 뭉치는 학연과 성씨(姓氏)·문중으로 단결하는 혈연이 기승을 부리고,이런 것들은 후보들의 정책이나 노선에 우선하는 맹목적인 지지 요소로 작용해왔다. 연고주의는 대의정치를 왜곡시킬 뿐 아니라 권력형 부패의 온상 구실까지 해왔다.대통령 아들들의 구속으로 이어진 각종 게이트의 저변도 따지고 보면 동향과 동창의 연고주의,‘끼리끼리 문화’와 맞닿아 있다. 동창회 등의 개최 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선관위는 이미 두 차례의 선거에서 모두 76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이중 2건만 검찰에 고발했다.선관위의 고발 건수가 적발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을 보면,법 운용이 잘못된 관행의 탈법선거운동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능률만능주의의 비인간적인 현대 산업사회에서 애향심 등 공동체적인 요소는 때때로 도시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는 주술에 홀린 것처럼 합리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오죽하면 외국 상사원들이 국내 세일즈에 앞서 필독할 자료가 동창회 명부라고 했겠는가. 이제 대통령선거는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완전공영제 도입을 위한 선거관계법 개정 작업도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후보간 경쟁구도도 불분명하다.이럴수록 비합리적 연고주의가 선거판을 좌우할 수 있다.선거운동기간인 23일 동안만이라도 동창회 등 연고주의 모임을 참아보자. 이경형/ 논설위원실장 k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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