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본질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서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청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제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지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251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이종호 지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문인으로 태어나 문인으로 살다 문인으로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예는 조선 사대부들의 삶 그 자체이자 필생의 화두였다.유교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 그들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문장을 닦았다. 퇴계 이황 같은 이는 완물상지(玩物喪志),즉 하나의 사물에 몰두하는 것은 학문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길이라 해 문장에 지나치게 매혹되거나 몰두하는 것을 경계했지만 대부분의 사대부들에게 문예는 학문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문예를 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였던 것이다. 안동대 한문학과 이종호(49) 교수가 펴낸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도서출판 한길사)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조선조 사대부들을 탐구하고 해석한 책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문장’을 키웠고 어떤 문장에 빠져들었으며 또 비판의 시선을 보냈을까.저자는 조선조 문인들의 작업을 낱낱이 추적하며 그들의 문장을 독해하고 그 안에 담긴 문예인식과 비평의식을 읽어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분석 대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정약용이나 김시습,박지원 같은 조선 한문학의 ‘간판스타’들로 구색을 맞추기보다는 일반에겐 좀 낯선 인물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남긴 개성의 자취를 훑어간다.영남 사림의 거두인 점필재 김종직을 비롯해 조선중기 한문 4대가 가운데 한 명인 상촌 신흠,홍길동전의 작가 허균,18세기 안동지역의 처사 권구,신유한,최성대,조구명,송백옥 등이 그들이다. 저자는 조선의 문예는 고려 중기 문예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여말 익재 이제현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이제현은 최씨 무신정권기의 문예를 칼날 앞에 붓이 줏대를 잃고 형식과 기예의 노예로 전락한 ‘껍데기’ 문예로 보았다.그 대안으로 제창한 것이 성리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실용적인 고문 창작이다.조선의 문예는 숭유억불의 화신인 삼봉 정도전이나 양촌 권근 같은 이제현의 정신적 계승자들에 의해 시작됐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책은 15세기 조선 한문학의 거목 김종직을 조선조 문예 흐름의 원류에 속하는 인물로 규정한다.경상도 산골 출신의 선비인 김종직은 온건한 품성과 남다른 문장으로 훈구세력이 주도하는 ‘본류적 흐름’에 뛰어들어 그들을 압도했다.저자에 따르면 김종직이 씨앗을 뿌린 ‘도문(道文)합일론’은 주자학적 세계관을 구현하고자 했던 퇴계와 율곡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유교적 문학관은 이내 한계와 문제를 드러낸다.여기에 신흠이 등장해 양명학과 노장사상에 심취하게 된다.신흠이 문을 연 개방적인 사고는 허균에 와선 열정과 광기로 폭발하고,이어 18세기엔 다양한 인간상을 펼치는 작가군이 크게 늘어난다.권구는 민중의 삶을 담고자 했으며,조구명은 ‘나만의 글’을 쓰고자 했고,신유한은 일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문학적 재능으로 극복하고자 몸부림쳤다. 저자는 이처럼 구체적인 인간 형상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문예를 논한다.7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미시적인 접근으로 통사에 버금가는 성찰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3만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민노당 ‘감격의 메이데이’

    민주노동당이 제도권 진입 이후 첫 노동절을 맞았다. 지난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진보정당을 꾸린 뒤 노동절대회 때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및 원내 진출을 목표로 삼았기에 올해 114주년 세계노동절 기념행사는 민주노동당의 노동자·농민 출신 의원,당직자 가릴 것 없는 모두에게 감격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천영세 부대표 등 민주노동당 당선자 7명은 30일 중앙대 대운동장에서 열린 노동절 전야제에 참석했다.또한 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리는 114주년 세계노동절대회에 권영길 대표를 비롯한 당선자 전원이 참석한다.특히 대회사 낭독을 권 대표가 직접 함으로써 노동자 원내 진출의 의미가 안팎으로 공유될 전망이다.민주노동당은 본대회에 앞서 ‘노동절 기념 당결의대회’를 통해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최저임금 실천 등 노동과제를 비롯,원내 의정활동의 결의를 발표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단병호(민주노총 전 위원장) 당선자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의 향상 등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노동절 행사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면서 “특히 올해 노동절 의미는 지난 87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작은 성과를 올렸고 앞으로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전진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노동절의 감격은 여성농민운동 출신인 현애자 당선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현 당선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농민,서민 등의 힘을 모은 정당인 만큼 농민들에게도 이번 노동절의 감회는 특별하다.”면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 민주노동당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 [시론] 여성들만의 잔치를 벗어나라/윤진표 성신여대 정치학 교수

    아직도 결정권을 쥐고 있는 남성들의 머리 속을 여성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적극 동조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사회적 소수를 식별하는 많은 기준이 있지만 다수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소수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대표적 범주가 여성이었다.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에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여성이 정치참여의 핵심인 국회에 17대 총선을 통해 다수 진출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지역구에서 10명,비례대표 29명으로 39명의 여성후보가 당선되어 국회의석의 13%를 차지하였다.15대의 3%,16대의 6%에 비해 두 자릿수로 약진하였고,지역구 출신도 두 배가 늘었다. 비례대표는 제도적 변화를 수용한 정당의 여성 후보 우대 공천에 힘입은 바 크다.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성의원 비율은 평균 15%를 크게 넘지 못한다.아직도 멀었다고 하겠지만 이제 한국정치가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의식 변화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하다. 2002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여성 정치인이 늘어나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73%,여성의 정치참여가 늘어나면 정치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56%로 대다수 사람들이 여성의 정치활동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여성의원들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사항에 유념하기 바란다.첫째,여성들만의 잔치는 끝내야 한다.그동안 여성들은 제도적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명분과 정당성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게 되었다.그런데 여성문제를 토론하고,여성운동을 전개하는 장소에는 여전히 여성들만 가득 차 있다. 여성의원의 활동이 동창회 같은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아직도 결정권을 쥐고 있는 남성들의 머릿속을 여성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적극 동조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여성 의원이 남성 의원을 한사람이라도 더 참석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정당을 넘어서는 협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둘째,여성의원들은 생활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여성운동을 강조하기보다 환경,복지,교육,어린이,장애인 등 여성이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속의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아래로부터 위로,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가는 활동방향을 설정하여야 한다.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모성애적 접근은 정치가 따뜻할 수 있다는 감동을 줄 것이다.여성의원이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를 찾는 노력이 차별화된 의정활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셋째,국내외 시민단체와 언론매체 등 지지 세력과의 연대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여성의원들은 아직 원내 소수파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정치는 본질적으로 집단적 행동의 반영이기 때문에 원내의 부족한 힘을 원외의 시민단체와 언론매체 등 지지 세력의 조직화로 극복해야 한다.전문적인 지식을 보조받고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지지 세력의 지원은 필수적이다.대중매체와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여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신을 극복하고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이미지를 키워나가야 한다.국제연대의 강화는 여성의원의 활동 폭을 넓혀주고 다양한 의제의 해결 방안을 배울 수 있다.핀란드와 스웨덴 등 여성정치가 발전된 북유럽 의회와의 교류에 앞장서는 진취적인 자세도 가져야 한다.이제는 시민사회의 감시와 언론의 확대로 의원 활동이 낱낱이 밝혀지는 세상이 되었다.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는 여성의원의 생활밀착형 의정활동이 국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여성의원의 의회 진출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고 한국의 정치는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윤진표 성신여대 정치학 교수˝
  • 도발적인 ‘육체’ 獨 여성안무가 샤샤발츠 공연

    일찍이 이처럼 인간의 몸에 대한 집요하고 처절한 탐색으로 채워진 무대가 있었던가.독일 여성 안무가 샤샤 발츠의 화제작 ‘육체(Bodies)’가 29일∼5월2일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1999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독일 실험극의 산실인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의 안무가로 취임한 그는 피나 바우슈 이후 독일이 낳은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로 꼽히고 있다.1997년 무용극 ‘코스모나우텐 거리’로 서울국제연극제에 참가한 바 있는 그가 이번에 선보일 무대는 움직임의 본질을 파헤치는 ‘육체 3부작’중 첫번째 작품.2000년 초연 이후 베를린 연극제,베오그라드 국제연극제,뉴욕 BAM의 넥스트웨이브페스티벌 등 세계 각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유럽,남미,중국 등지에서 온 13명의 다국적 무용수들이 펼치는 ‘육체’는 말그대로 인간의 몸에 관한 도발적인 실험 보고서이다.무용수들은 서로의 살갗을 집어 몸을 들어올리거나 짐짝을 던지듯 서로를 내던진다.벌거벗은 몸들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포개져 하나의 구조물을 이뤘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광경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갖고있는 육체의 개념을 여지없이 허물어뜨린다. 수족관처럼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이리저리 떠다니는 신체 조각들,천장에서 스키 차림으로 수직낙하하는 무용수,두개의 몸이 기묘하게 합쳐졌다 떨어지는 장면 등 ‘육체’에는 안무가의 끝없는 상상력으로 빚어낸 파격적인 이미지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온다.지난해 여름 샤우뷔네에서 이 작품을 본 연극평론가 장은수씨는 “발츠의 무대는 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입증해 보였다.”고 평했다.(02)2005-0114. 이순녀기자˝
  • 대법 “어깨 주물러도 성추행”

    여성에 대한 추행은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어깨를 주무르는 것도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대법원 1부(주심 이용우 대법관)는 26일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고모(33)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어깨를 주무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성에 대한 추행은 신체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피해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해 어깨를 주물렀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혐오감을 느낀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행위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 추행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성희롱은 손해배상 청구대상이 되는 민사사건의 개념인 반면 성추행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신체 부위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주는 어떠한 신체적 접촉도 성추행의 대상으로 본 것이어서 주목된다.반면 성희롱은 신체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성적인 농담이나 음란물을 보여주는 행위 등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모든 언행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모건스탠리, 민노당 전격방문

    민주노동당이 국내 자본은 물론,해외 자본의 우려를 씻고 안정감을 주기 위한 대외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사 박천웅 상무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을 방문,이재영 정책실장과 송태경 정책국장을 두 시간여동안 만나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정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았고,부분적이지만 만족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부 의견이 엇갈리는 속에서도 양측의 문제의식이 맞닿은 곳이 있었다.바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높은 부동산가격탓’이란 인식이었다.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방안이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실장이 “광역단위 R&D(연구개발)센터 건립과 함께 부동산가격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대답하자 박 상무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하지만 이어 총상품가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설명과 중국 톈진과 한국 안산공단의 임금은 별 차이가 없고 다만 부동산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 보태지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이날 만남은 첫 질문으로 “민주노동당은 기업의 국유화 계획이 있느냐.”는 것이 나오는 등 진지하면서도 본질적인 내용의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 이 실장의 전언이다.특히 “해외 투자가들에게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선명성 경쟁으로 파업이 늘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많다.”는 박 상무의 우려에 이 실장은 “그동안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권에 전달할 통로가 없어 발생한 파업이 많았지만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파업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를 불식시켰다. 비록 실무자끼리의 비공식 만남이었지만 외국계 투자은행의 정당 방문은 이례적인 일로써 17대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차지할 영향력과 위상을 실감케 했다. 실제 투자사들은 노동 관련 제도의 입법,노사관계 위상의 재정립 등 경제정책의 변화도 예상되는 만큼 민주노동당을 구체적으로 파악,투자환경의 변수 여부를 따질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모건스탠리측은 이날 만남을 기초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에 따른 정치환경 변화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고서로 작성할 계획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삶 꿰뚫는 리얼리티’ 화폭에 담아

    이상원(69) 화백은 한국 화단에서 누구보다 특이한 길을 걸어온 작가다.독학으로 그림을 익히고 나이 40에 순수미술을 시작,각종 공모전에서 인정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그의 작품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강한 리얼리티가 특징이다.인생의 연륜,인간사에 대한 통찰이 오롯이 담겨 있다.극사실주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이상원 화백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다. 2년 만에 열린 이번 개인전엔 근작 ‘동해인’과 ‘연(連)’시리즈 등 25점이 나와 있다.100호에서 500호에 이르는 대작들이다.‘동해인’은 이상원 인물 그림의 대표 레퍼토리.백발에 주름이 깊게 파인 늙은 어부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았다.‘연(連)’은 촘촘한 그물과 낡아빠진 어구들을 소재로 한 작품.복잡한 그물코는 난마처럼 얽힌 인간사와 인연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이 화백의 그림은 수묵의 은은한 맛에 유화물감으로 이뤄진 진한 발색이 어우러져 담백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우연히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미술과 인연을 맺었다.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극장 간판 그림으로 일가를 이뤘다.60∼70년대 웬만한 대형 극장 간판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벤허’등.고(故)박정희 대통령 내외,닉슨 전 대통령,맥아더 장군 등의 초상화를 그렸고 안중근 의사의 영정도 제작했다. 이상원 화백은 해외에서 오히려 더 인정받는 편이다.그의 해외 미술관 초대전은 1998년 연해주 주립미술관에서 시작해 베이징 중국미술관으로 이어졌으며,199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립 러시안 뮤지엄 초대전은 생존 동양작가론 최초로 열린 것이어서 화제를 모았다.강원도 춘천 산골 작업실에서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 화백은 그동안 그린 1000여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02)730-0030.전시는 5월16일까지. 김종면기자 jmkim@˝
  • 정형근·노회찬 보수·진보 논쟁

    ‘보수와 진보,공존은 가능한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25일 MBC TV의 생방송 프로그램인 ‘이슈 앤 이슈’에 나와 이를 실험해보았다.‘보수의 대변자’와 ‘진보 논객’간의 토론 결과는 적어도 국회 내에서는 프로그램 ‘주제’처럼 되기란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정 의원은 이날 “민노당의 강령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범위를 넘은 것으로 북한의 노동당 규약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이에 노 총장은 “마치 백인과 흑인이 다른데도 코끼리가 보면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민노당 강령은 사유재산제를 부정하지 않으며 헌법과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 의원은 거듭 “자본주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강령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고,북한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서 민노당의 강령을 문제삼았다.노 총장은 “시장을 부정한 적은 없고 잘 활용해야 된다는 입장”이라며 “그동안 우리가 북한을 비판하지 않은 것은 우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해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맞받았다. 국가보안법과 관련,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6·15 정상회담 때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김정일도 이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 총장은 “국보법상 내란죄가 성립된다면 쿠데타를 한 전두환도 국보법으로 잡아넣어야 하지 않겠느냐. 정 의원은 그 밑에서 충성하면서 공직생활하지 않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노 총장은 “기회만 되면 북한을 타도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발상으로 어떻게 정치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하시는지….”라고 공격했다. 또한 노 총장은 “20년 전만 해도 정 의원을 안기부 지하 취조실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비꼬면서 “민노당의 원내 진출은 목욕탕에 찬물 한바가지가 온 것이며 탕 전체가 36.5도로 미지근해지려면 여러 바가지가 더 들어와야 한다.정 의원은 생각을 많이 바꿨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이에 정 의원은 “진보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내에서의 진보이지 민노당 같은 것은 진보가 아니다.왜 북한을 따라가면서 하향 평준화를 하려는가.”라며 시종 보수를 옹호했다. 이지운기자 jj@˝
  • [北용천참사] 北 개혁·개방 기폭제 될까

    북한이 평안북도 용천역 참사를 이례적으로 발생 이틀 만에 국제 사회에 공개하고 지원을 호소했다. 한국의 진보·보수 단체는 물론 미국 등 국제사회도 대북 지원에 발빠르게 나서면서,북한과 국제사회와의 소통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북한의 개혁·개방 정책 기폭제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기대의 근거들 북한의 대형 참사와 관련,국제사회에서 이처럼 발빠르게 여러 나라가 참여한 광범위한 지원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북측이 도움의 손길을 적극 요청한 일도 드물다. 따라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대북 온정주의가 확산되고,북한 지도부 역시 외부 세계와의 개방과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핵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란 게 긍정적 차원의 분석이다.미국 역시 부시 행정부가 표방한 ‘온정적 보수주의’를 실현할 계기가 됨으로써,북·미간 경색국면을 타개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것이란 것이다.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용천 참사는 북한 지도부에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줬을 것”이라며 “앞으로 북한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느끼도록 해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본질적인 한계 그러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25일 “기대는 해보지만,현실적으로 미국과 핵문제 고리가 풀리지 않는 이상,북한의 리더십이 체제 유지에 우위를 두고 있는 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그는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으려 하겠지만,개혁·개방을 강화하는 조치로 이어가진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북한이 사고 현장을 주 평양 외교단과 외신 기자들에게 이례적으로 보여준 것도,의미를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사고 원인을 북한이 나서서 밝힘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암살·테러였다는 분석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대형 참사가 북한 사회 전체에 동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책꽂이]

    ●세계 최고 기업들의 미션(패트리셔 존스 등 지음,이진우 옮김,거름 펴냄) 보잉·비니 앤드 스미스·가네트 등 미국 50대 기업의 미션 헌장을 소개.미션 헌장은 원래 군대의 징집용 공고문으로 사용됐지만,지금은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가치선언서로도 불리는 미션 헌장은 정도경영을 위한 로드맵이다.기업의 목표와 이상,행동지침 등이 담겨 있다.2만 8000원. ●천명을 받들어 사는 사람들(김지정 지음,솝리 펴냄) 원불교 제3대 종법사인 대산 종사의 법문.생전에 녹음한 테이프를 풀어서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발췌해 엮었다.물질문명 사회에서 황폐해진 정신과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도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마음 닦기를 권하는 ‘마음 나간 것 찾아 봤는가’도 함께 출간됐다.6000원. ●한국무용의 미학(정병호 지음,집문당 펴냄) 한국무용 이론의 개척자이며,최승희 연구가로 이름 높은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가 우리 전통춤의 원형을 찾고자 30년간 현장을 답사하면서 얻은 결과물을 집대성했다.한국무용의 본질과 정의,원류와 원형,정신과 성격,동작구조,미학등에 관한 글과 함께 생생한 사진자료가 컬러로 실려 있다.2만 8000원. ●다윗왕(은부밀 지음,마가렛 펴냄) 성서 속 인물중 다윗보다 더 극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산 인물도 드물다.다윗은 출중한 용모와 비상한 용맹,성실한 인간성을 지닌 관대한 통치자이며 무엇보다 신앙으로 승리한 인물이다.이 책은 한글과 영어가 함께 실린 본격적인 성서만화다.영어 번역은 캐나다 현지에서 이민정착 카운슬러로 활동하는 앤킴과, 종교학을 전공한 김혜숙 등이 맡았다.전4권 각권 9900원. ●감성경영 감성리더십(신정길 등 엮음,넥스비즈 펴냄) 여성 기업인의 파워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진다.휼렛패커드의 칼리 피오리나,이베이의 마거릿 위트먼 등 정보통신기업은 여성을 사장으로 뽑고 지식정보산업에 여성의 감성경영을 접목하고 있다.이 책은 차가운 이성에 점령당했던 기업과 개인이 따스한 가슴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감성코드’를 통해 제시한다.1만 5000원. ●법화경(정승석 지음,사계절 펴냄) 신라의 원효와 고려의 의천 등이 천태종을 도입하고 발전시킨 이래 법화경은 한국 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특히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의 와중에서도 법화신앙은 민중의 입을 통해 그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불교의 염불과 기적들은 그 연원을 법화경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법화경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불교의 기본 관념을 거부하고 부처를 영원불멸의 인격체로 신앙화하는 것이 특징이다.저자(동국대 교수)는 동아시아 문명교류의 큰 틀 속에서 ‘고전’ 법화경의 세계를 살핀다.1만 2000원.˝
  • 전쟁의 역사/버나드 로 몽고메리 지음

    ●전쟁으로 점철되어 온 인간의 역사 인류가 한자리에 모여 살면서부터 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전쟁과 화해의 되풀이는 지금까지 이어진다.그런 면에서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2차대전 때 독일의 로멜군대를 패퇴시키고 영국의 육군원수를 지낸 버나드 로 몽고메리(1877∼1976)의 ‘전쟁의 역사’(책세상 펴냄)도 “인간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79쪽)는 관점에서 서술한 전쟁사다. 사실 전쟁사를 쓰기란 쉽지 않다.전쟁을 알면 역사를 모르기 십상이고 역사가는 전쟁이 낯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그런 면에서 풍부한 실전 경험과 전쟁의 이론과 역사에 대한 책을 여러 차례 집필한 몽고메리가 전쟁사를 기술한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더욱이 단순한 전쟁사 서술에 그치지 않고 “전장에서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남녀 인간들이 발휘한 각고의 노력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연구한 것이 돋보인다. ●전쟁은 경쟁집단간의 장기 무장충돌 저자는 먼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그는 전쟁을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 집단 간의 장기 무장 충돌”(47쪽)이라고 정의한 뒤 항상 그 판결 형태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라고 규정한다.이어 전쟁의 역사에서 해군력의 중요성과 제너널십 즉,‘지휘의 과학’의 비중을 강조한다. 이후 고대-중세전쟁-유럽전쟁-동양전쟁-1·2차 세계대전 등 9000년 동안 이어진 세계 전쟁의 역사를 개괄한다.그 과정에서 풍부한 사례를 동원하여 고대 부족사회에서부터 현대,서양에서 동양의 전쟁까지 시공간을 넘나든다. 저자의 풍부한 실전 경험은 책의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나토(NATO)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는가 하면 2차대전 당시 동유럽 전선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히틀러의 치명적 실수가 러시아 공격에 있음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또 로멜과의 전투는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다. ●英 육군원수 경험 바탕 생생하게 분석 책의 전반에 걸쳐 저자는 전략과 전술,무기의 발달과 전쟁 방법,전쟁의 정치·사회적 요인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투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특히 지도를 곁들인 출정·침입경로,전투 배치도,무기 그림,전투장면 사진과 컬러도판 등 350여장의 시각자료를 곁들여 박제된 여러 전쟁의 모습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저자가 서양인이라 그런지 서양 전쟁사 중심으로 서술한 게 아쉽다.그래서 5부 동양전쟁에서 두 장만 배당해 몽골-중국-일본과 인도 등의 전쟁을 간략히 정리한다.물론 저자는 “아시아 민족에 대한 이 짧은 연구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서구인들은 아시아의 힘을 결코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순신·도요토미 비교 눈길 비록 지면은 적지만 그 속에는 이순신 장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교하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일본은 뭍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바다에서는 일대 타격을 받았다.(…)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이순신 장군은 전략가,전술가,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기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며 거북선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있다(661∼662쪽). 마지막 7부에서는 핵 시대의 전쟁에 대해 살펴보면서 평화의 메시지를 던진다.특히 저자는 ‘에필로그-평화라는 이상’에서 문명은 진보했지만 인류는 20세기에 가장 잔혹하고 혼란스러움을 경험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투는 안전과 평화를 안겨주지 못했다 “언제나 전투는 우리가 싸워 얻고자 한 안전이나 영구적인 평화를 안겨주지 않고 끝났다.”는 저자의 말을 입증하듯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그런 현실에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문학평론가 승용조씨가 번역,95년에 출간한 것을 개정증보해 새로 내놓았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김원일의 피카소/김원일 지음

    소설가 김원일(62)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간한 ‘김원일의 피카소’(이룸 펴냄)는 소설과 그림이 어우러진 평전이다.현대미술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화가의 세계를 한국의 큰 작가가 술술 풀어간다.‘발견자’의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에 힘입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피카소의 예술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은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연대기적으로 따라간다.초기 청색시대를 그린 ‘푸른 색으로 본 슬픔과 가난’에서 출발한 피카소 여행은 자신감 넘치는 ‘분홍색시대’‘입체주의’‘초현실주의’ 등의 간이역을 거쳐 ‘영광의 말년-92세에 붓을 놓다’라는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피카소의 예술과 사랑과 삶을 9개의 정밀화로 그려간다.시기별 화풍을 증거할 대표 작품을 손수 골라 각 장의 앞에 싣고 글을 풀어간다.그 사이에 피카소의 그림 232점을 비롯,동시대 작가 35명의 작품 67점의 도판을 가이드로 세운다. 책의 장점은 생생한 묘사.질료는 다르지만 ‘새것’을 잉태하는 고통은 같아서인지 작가는 단순하게 서술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양념처럼 섞거나 피카소의 감정에 철저히 몰입한다.피카소가 새로운 화풍으로 돌아설 때마다 활력과 영감을 준 새로운 여인과의 사랑,친구들과의 우정 등을 묘사하는 대목은 소설속 주인공처럼 살아 움직인다.또 그림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해석을 덧붙여 피카소뿐 아니라 현대미술로 가는 길을 잘 닦아준다.“피카소는 자신의 그림과 예술을 위해 자녀,여자,친구 등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습니다.위대한 성취 뒤에는 희생과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 필연적인 것 같아요.”라는 해석도 덧붙인다. 작가가 피카소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10대 후반에 만난 ‘어릿광대로 분장한 화가 살바도’.“조잡한 인쇄의 이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년은 “모딜리아니 연인의 긴 얼굴과 배우 제임스 딘의 옆모습 사진을 연필화로 베끼던 것처럼 이 그림도 열심히 모사(模寫) ”(289쪽)한 추억을 들려준다.“비록 돈이 덜 든다는 이유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으면 화가가 됐을 것”이라는 고백은 피카소 평전이 그의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1년 6개월 동안 집필해 2600장을 탈고하기는 글쟁이 40년 만에 처음”이라며 “내가 쓴 게 아니라 쉴 짬 없이 정력적으로 그려댄 피카소의 영혼이 부단히 이끈 결과”라고 고백하게 만든 본질은 피카소의 실험정신.‘노을’‘겨울 골짜기’‘마당 깊은 집’ 등의 수작으로 한국 전쟁과 그것이 남긴 생채기를 소설의 화두로 삼아온 작가가 피카소의 메마르지 않는 창작정신에 관심이 간 것은 자연스럽다.“(…)92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쉴 틈 없이 자신의 세계를 새로 세우고 거푸 깨부수었던 부단한 변모와 실험정신,변화무쌍한 착상의 원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피카소의 내면은 제가 풀고 싶었던 숙제였습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독자의 소리] 한자교육 강화 필요하다/우향화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요즘 청소년들의 한자실력이 너무 저급하다.가장 기초적인 용어까지 제대로 읽지도,쓰지도 못하는 실정이어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고 귀찮은 일이기는 하다.하지만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배워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우선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이며,전문용어의 80% 이상이 한자어란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자를 잘 알게 되면 우리말과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다음으로 우리 문화와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또한 동북아 국가간의 경제교류 활성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최근 들어 전경련 등 경제 5단체가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한자를 포함시키고,일반 기업체에도 한자 구사능력을 검증토록 권장하고 있는 것도 한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우리 문화·민족의 본질,정서를 감안해서라도 한자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우향화 ˝
  • [마당] 이미지와 감성정치/유성호 한국교원대 문학평론가 교수

    ‘악어의 눈물’이란 말이 있다.나일 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후 눈물을 흘린다는 이집트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 이 말은 위선자의 거짓 모습을 비유할 때 흔히 사용된다. 특히 선거에 이긴 정치인이 패배한 정적(政敵) 앞에서 가슴 아픈 표정을 지을 때 많이 쓰인다.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이는 눈물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악어의 눈물’은 감동이나 참회의 순간에 솟구치는 진실한 눈물이 아니라,전략적이고 계산적인 속내에서 나오는 건조한 물질일 뿐이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제17대 총선에서 각 정당의 지도자들은 ‘눈물’과 ‘읍소(泣訴)’를 통해 감성과 이미지 중심의 선거운동을 했다.이를 두고 상대방에서는 ‘악어의 눈물’이니까 속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일급 경계령을 내렸다.이러한 감성과 이미지의 정치는 당사를 천막이나 공판장으로 옮겨 부패와의 절연을 상징적으로 보인다든가,삼보일배 장면이나 회초리 맞는 방송 광고를 통해 그동안 민의를 등진 것에 대해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다든가,단식이나 전격 사퇴 등을 통해 실언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든가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따지고 보면 모두 선거의 핵심 장치인 정책과 비전 제시보다는 유권자의 감성과 이미지에 호소하는 것들이었다. 이같은 감성과 이미지 중심의 정치 혹은 선거 문화를 향해 이 나라 주류 언론들은 한결같이 강력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정책과 인물을 통한 승부가 아니라,감성과 이미지 정치로 선거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논지였다. 대중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고 집단적 최면을 부추기는 ‘눈물’과 ‘읍소’의 포즈에 대한 이러한 경계와 비판은 그 자체로 매우 정당한 것이다.특히 미디어 선거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이번 선거에서 이 같은 이미지 메이킹의 범람은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의 정착에 일정한 역기능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이같은 감성과 이미지 중심의 선거문화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확산시킨 것 또한 언론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론의 확연한 이중성을 발견한다.우리 주류 언론은 ‘탄풍’ ‘박풍’ ‘노풍’ ‘추풍’ 등 온갖 조어(造語)를 만들어가면서 선거 유세 현장의 감성적 이미지 확산과 상징 조작에 공을 들였고,한편으로 각 정당더러는 이미지 정치를 삼가라고 권고하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감성이나 이미지가 합리성과 반드시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감성과 이성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간의 판단 행위를 상보적으로 규율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미지를 완전히 거세한 순수 객관의 실체는 정치문화에 존재하지 않는다.정책정당임을 자임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조차도 지난 대선에서 “여러분 행복하십니까.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감성적 언어로 진보정치를 친숙하게 체험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감성 속에 담긴 내용일 것이다.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진정한 참회가 없는,정치적 계산만 있는,지역주의의 부활을 호소하는,때늦은 ‘악어의 눈물’만은 철저하게 외면했다.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얻은 또 하나의 성과이다. 유성호 한국교원대 문학평론가 교수 ˝
  • 선출직 공무원도 선거중립 의무

    대법원이 선거중립 의무를 어긴 선출직 공무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이번 판결은 ‘공무원의 선거중립 위반’ 여부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의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별정직 공무원과 선거운동을 기획 공모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김선기(52) 전 평택시장과 선거기획자 이모(46)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각각 벌금 150만원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회의원은 전국민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으로서 본질적으로 전문 정치인인 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집행기관으로서 그 지위와 성격 및 기능에서 국회의원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면서 “따라서 국회의원과 그 보좌관,비서관,비서에 대해서는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 대상에서 제외한 반면 지방자치단체장과 그가 임명한 별정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이러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해도 이를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 소추위원측은 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제9조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 제86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 대통령 대리인단은 제9조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으며 제86조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길상사서 대중법회 연 법정 스님

    “온천지에 꽃이 피고 새 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눈부신 신록 앞에서 인간도 꽃처럼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을까요.대지가 그렇듯 인간의 미덕중 가장 으뜸은 용서와 관용입니다.” 18일 오전 11시,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 마당에 모처럼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있었다.잠시 하산한 법정(法頂·72) 스님의 법회가 열렸다.스님은 700여명의 불자 앞에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용서’와 ‘관용’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한 신도한테 들은 얘기입니다.신도가 우연히 수행자들이 모인 곳에 갔더니 역겨운 냄새가 확 풍기더랍니다.그래서 신도는 수행자들에게 ‘여보시오,도 닦기 전에 몸부터 닦으시오.’라고 일침을 가했다는 것입니다.이 얘기를 듣고 많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이어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 ‘평생을 두고 행할 수 있는 가르침을 한마디로 내려주십시오.’라고 하자 스승은 ‘그것은 바로 용서이니라.’라고 답한 일화를 소개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허물이 많습니다.그것을 낱낱이 꾸짖는다면 결코 고쳐지지 않습니다.지적받으면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선의의 충고와 꾸짖음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상대방의 허물을 감싸면 한순간에 정화를 시켜줍니다.우리 사회는 용서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스님은 또한 “이 봄날 꽃과 나무가 눈부시게 피어나는 것은 훈훈한 봄기운 덕택이며 가을날 꽃이 지고 만물이 시드는 것은 차디찬 서리바람 때문”이라면서 “남의 결점이 눈에 띌 때는 내 스스로는 허물이 없는지,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고 자기성찰론을 펼쳤다. 다음은 스님이 전하는 중국 초나라 당시의 일화 한토막. 초나라의 장왕이 어느날 밤 촛불을 켜고 질탕 놀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촛불이 꺼지자 암흑세계로 변했다.이때 한 신하가 평소 흠모하던 왕의 애첩에게 다가가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다.깜짝 놀란 애첩은 신하의 갓끈을 얼른 잡아 떼어냈다.그런 다음 왕에게 “불이 켜지거든 갓끈 없는 신하를 부디 벌하십시오.”라고 고했다.왕은 이때 예상과 달리 “갓끈 있는 신하는 모두 벌을 내리겠다.”고 거꾸로 소리쳤다.순식간에 다른 신하들도 갓끈을 모두 떼어냈다.불이 다시 켜지자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었다.2년후 초나라가 진나라와의 싸움에 풍전등화의 위기가 닥쳤다.이때 왕의 애첩에 입을 맞추고 용서받은 신하가 분연히 일어나 목숨으로 나라를 구했다. “용서는 위기에 처한 국가도 살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오늘날 대통령도 이런 그릇이어야 합니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온세상이 반대해도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정의롭지 못한 업을 지었습니다.언젠가는 그 업의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법회 끝부분에 스님은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지나간 것도 들춰내지 말라.과거를 자꾸 물으면 아물려는 상처만 덧나게 한다.”면서 “이웃의 잘못을 덮어두면 신이든 부처든 늘 곁에 있게 마련이다.”고 거듭 강조했다.아울러 스님은 “맺힌 꼬투리를 풀지 않으면 안팎으로 꼬인다.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다.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법회시간은 40여분.아쉬워하는 불자들에게 스님은 “남은 이야기는 나무한테 들으십시오.”하면서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녹색공간] 경제公約 환경空約?/이지누 시인·사진작가

    오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구태여 무슨 날을 만들어 그것을 생각하고 섬기는 것이 뭣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처럼 날이라도 정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언제 생각을 모아 볼까 싶기도 하다.봄이 무르익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절에 꽃과 나무뿐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지구를 생각 해 보는 것 또한 보람된 일이지 싶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간차원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망가지거나 사라져가는 지구의 모습을 지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어쩌면 그 일은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민간 차원에서는 환경의 소중함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일깨우는 일은 할 수 있을지언정 법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적어도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환경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급격한 인식 전환이다.우리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경제를 위한 개발을 앞세워 모든 것을 깡그리 없애버리고 마는 우를 범할 기회는 없다.개발이란 이미 그 곳에 있는 환경조건과 더불어 가는 것이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탄핵 정국에 이은 총선이 끝나고 구태의연한 면면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 간 것 같다.그들이 내세우는 공약은 한결같이 지역구를 개발하여 살기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경제논리가 최우선인 것이다.내가 사는 곳을 살기 좋도록 편하게 만든다는 데 마다할 까닭은 없다.그러나 한 박자 쉬면서 생각해 보면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있는 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새로운 것을 우뚝 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진정한 개발이란 이미 그곳에 있는 자연조건들과의 적절한 조화를 꾀하는 것 아니던가. 17대 국회에 입성하는 의원들에게 보다 강력하게 바라는 것은 자연환경에 대한 개발과 보전의 함수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그에 맞게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살기 좋은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모든 정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환경과 관련된 정책들은 먼저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여 먼 미래를 보아야 할 것이다.이미 망가져버린 자연은 되돌릴 수 없을 뿐더러 그들 앞에서 또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지 않겠는가.자연환경이라는 것은 우리 당대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물림으로 물려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그처럼 익숙하기에 오히려 소홀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정책을 입안하며 입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1972년 유엔의 ‘인간 환경 선언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들은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이제 우리는 세계 속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층 더 사려 깊은 주의를 거듭하면서 행동해야만 한다.무지,무관심이면 우리들은 우리의 생명과 복지가 의존하는 지구상의 환경에 대해 중대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해독을 끼치게 된다.반대로 충분한 지식과 현명한 행동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들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인류의 필요와 희망에 알맞은 환경 속에서 보다 나은 생활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경제생활을 보장 받기 위해 공장 열 곳을 세우는 것은 몹시 중요한 일이다.그러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그 공장을 어디에 어떻게 세우느냐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17대 국회가 환경에 대한 보다 큰 관심과 현명한 선택을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지누 시인작가˝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1)한국의 찻그릇 문화-박성욱의 분청찻사발

    투박하면서도 수더분한 멋을 지닌 분청(粉靑)은 공들여 모양낸 것만이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청자,백자 세계의 통념에 대한 도전이자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귀의하려는 한국 도자기의 한 특징이다. ●관노비 신분서 해방된 기술자들 고려 말 조선 초에 걸쳐 나타난 정치의 불안,국가 기강의 문란,신분구조의 와해,새로운 지배세력의 성장,왜적의 침입 등으로 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던 관요(官窯) 기능이 마비되었다.관요에서 관노비로 일하던 도자기 기술자들은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서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이들은 국가의 규제없이 자유로이 그릇을 만들 수 있었으므로 활달하고 구김살 없는 자유분방한 멋을 풍기는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이 때 만들어진 그릇들을 뭐라 불렀는지를 알려주는 문헌은 없다.이들 그릇을 분청사기(粉靑沙器)-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라는 용어를 처음 쓰게 된 것은 고유섭(高裕燮) 선생의 ‘고려도자와 이조도자’(1963년)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분청의 가장 큰 특징은 물레질로 만든 그릇 몸에다 정선된 백토(白土)를 입히는 분장(粉粧)기법과 그 뒤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분청사기는 우연한 시대적 산물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그릇이 그 시대의 표정이라는 말과도 일치하고 있다.순박하고 민중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분청그릇은 15세기 초 조선 왕조의 기반이 튼튼히 닦여진 시기와 맞물려서 나타났다. ●세종때 절정의 기법 완성 세종 연간에 걸쳐서 절정의 기법이 완성되었는데 이는 세종 연간 문화의 특징이 민본(民本)을 전제로 한 독창적 민족 문화를 만들어 생활화한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우리에게 맞는 농사법은 ‘농사직설’,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은 우리나라 약초로써 고치고자 한 ‘향약집성방’,중국 음악과 다른 우리의 가락을 찾기 위한 노력들,우리의 고유 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제 등이 좋은 예다.민족적 자각과 민중문화를 포용한 문화의식은 민족에 기초를 두고 민본을 존중하는 조선문화의 새벽이 되었고,이같은 문화의식을 배경으로 하여 태어난 것이 다름아닌 분청사기였다. ●분청사기의 본질은 자유분방함 이렇듯 오랜 역사만큼이나 자유분방함을 근본 정신으로 삼아서 만들어지는 분청 그릇은 대부분의 사기장들이 즐겨 다루어 왔고 현재에도 그러한 분야다.그러나 사기장들이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자유분방함의 본질을 어떻게 터득하여 표현하는가에 있다.많은 작가들이 집요하게 도전해오고 있지만 전통적 분청기법을 제대로 터득하여 현대적인 단순미로 재창조했다거나 듬직한 양감과 아첨없는 장식성,한국인다운 소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은 사기장은 매우 적다.이런 만만찮은 길에 들어선 박성욱은 이제 서른 세 살의 젊은 사기장이다.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무왕1리 526번지 산골에다 가마를 박고 아내 이금영(32세),유빈(6세),순빈(4세) 네 식구가 산비둘기처럼 살면서 분청그릇을 빚고 있다.깊은 산골이다 보니 닷새마다 서는 지제장터까지도 십리길이 훨씬 더 되고 초등학교며 과자를 파는 가게도 면소재지에 가야만 한다. 문 : 이 산중에다 작업장을 짓고 생활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朴 : 지리적 여건이 장작가마 하기에 적합하다고 봤기 때문이죠.장작가마를 앉히려면 우선 넓은 땅이 필요한데,도시 근교가 교통이나 아이들 키우기,문화적 접근성 등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땅값이 너무 비싸서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지요.강원도와 인접해 있어서 장작 조달이 쉽고,여주·광주 등 도자기의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훌륭한 현장이 가깝다는 점도 고려되었지요.무엇보다 은사이신 노경조 교수님 작업장이 인근에 있어서 항상 가르침을 얻을 수 있고 토론과 정보의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크게 참작했지요. 문 : 도자기를 시작한 시기는 언제쯤이었습니까? 朴 : 1990년 국민대 도자공예학과에 들어가서부터였으니까 이제 겨우 15년째 접어든 셈입니다.쭉 미술공부를 해왔는데 도자기가 매력적이다 싶어 이쪽으로 전공을 했고,지금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 : 도자기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았습니까? 朴 : 장작불이었어요.전국의 유명한 도요지인 강진·문경 등을 여행하면서 장작가마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장작불을 보고 있으면 살아 있는 자유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자유라는 말이 너무나 흔해서 시쳇말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그 말을 쓴다는 것이 조금은 혐오스럽고 구역감도 느껴졌거든요.죽은 자유의 쓰레기 무덤 같다는 생각도 있었지요.장작불을 보는 순간 그런 잘못 인식된 것들이 불길에 타버리고 아주 맑고 고요한 힘이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 : 장작불의 어떤 면이 그같은 신선함을 주던가요? 朴 : 다소 감정적인 면입니다만,자연스러움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해주었습니다.인위적으로 꾸며지고 목적을 노린 계산이 얼마나 위험하고 자유분방함을 저해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 것이지요.학교 때 주로 이용한 가스가마로도 표현상 제약을 받지는 않았지만 장작불은 가스가마에서 한 걸음 더 자연,자유에 다가서게 해주었습니다. ●흉내내기·베끼기에 본질 훼손 문 : 불에서 어떤 깨달음을 터득한 것으로 생각되는군요.그런데 하필이면 왜 분청 쪽으로 들어섰습니까? 입문하기는 쉽지만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운 분야인데.서로 비슷하기는 쉽지만 바로 그 점에서 몰개성적이고 흉내내기,베끼기로 이어져서 실패하게 되는 함정이라고들 하거든요.작가로서 작품으로 인정받아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연구하고 헌신해야 하겠지요.분청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군요. 朴 : 아직 저는 견해라고 할 만한 것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다만 가마를 서울에서 비교적 먼 이곳에다 박아 놓고 작업하는 이유 중에는 저만의 작업에 집중하고 몰입하여 독창성을 획득하고 싶다는 뜻도 들어 있지요.실제로 오늘날 많은 도예작가들이 분청에 관한 한 모방과 뒤섞임의 혼돈 속에서 분청 고유의 자유분방함이라는 고귀한 정신을 훼손시키거나 놓치고 있다고 봅니다.자유분방함을 제멋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여긴 데서 나타나는 큰 과오인 줄 압니다.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은 이 그릇의 유장한 역사와 심오한 미적 세계에서 응축되고 표현된 아름다움이라고 여깁니다.분청사기를 창안해 낸 옛 선조들은 이미 고려청자라는 거대한 도자 세계를 수백년 넘게 항해해온 오랜 경험과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분들입니다.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정신의 바탕 위에서 절정의 기술로 빚어낸 것이 분청사기거든요.뭐랄까요,깨달음의 빛깔이나 향기 같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문 : 생활은 어떠세요? 경제적 문제,아이들을 산중에서 키워야 하는 문제,학문의 세계,작업의 성과 등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군요. 朴 : 모두 벅차지요.하지만 분청사기의 멋이 자유분방함이고,그것은 창조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고독과 버거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견딜 만합니다.아내가 큰 힘이자 이웃입니다. 문 : 자유분방함은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는 가운데서 생겨나는 자유의 힘이라는 말로 들리는군요.분청그릇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를 뭐라고 보십니까? 불을 제외하고. 朴 : 흙이지요.흙공장의 흙과 가게에서 파는 유약이 아니라,작가 스스로가 자연에서 얻어 낸 흙과 유약이라고 봅니다.지적하신 흉내내기의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작가 특유의 흙과 유약 개발은 곧 작가의 생명이며,진정한 작가 정신이 있어야만 자유분방함의 세계를 엿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국민대,강릉대,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도자기를 강의하고 있는 그는 젊은 작가다운 실험 정신과 만만찮은 예술론으로 무장한 우리나라 도자 미래의 한 기대주로 보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