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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시대] ‘쌀버거’ 히트 정인순 대표

    [성공시대] ‘쌀버거’ 히트 정인순 대표

    히트 상품의 가장 큰 비결은 ‘탈(脫)고정관념’이라고 했던가.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문곡리 ㈜라이스랜드 대표 정인순(45·여)씨. 밀가루 대신 쌀로 햄버거 빵을 만들어 히트를 친 그녀는 기업을 일으키기 전에는 농촌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벼 농사만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었고, 청소년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10여년 노력 끝에 국내 처음으로 쌀로 햄버거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쌀 버거’를 생산하게 됐다. ●쌀로 햄버거 빵 만들어 연 매출 10억원 상회 이 회사는 요즘 경기 남부지역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쌀버거’로 연간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회사 설립 첫 해인 2001년에는 외형이 4000여만원에 그쳤으나 이듬해에는 5억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으며, 지난해에는 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13억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20억원을 목표로 잡는 등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녀가 만든 쌀버거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라이스버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라이스버거는 쌀밥으로 햄버거 빵 모양을 만들어 그 속에 고기와 야채를 넣은 패스트푸드. 그러나 쌀버거는 쌀을 발효시켜 만든 빵이어서 밥을 먹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기존 햄버거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도 거부감이 없다. 뿐만 아니라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데다 야채를 많이 넣어 일반 햄버거보다 칼로리가 낮고,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머니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요즘 패스트 푸드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서 비만 등 성인병 증상이 늘고 있어 걱정스러운데 쌀버거는 우리 농산물로 만든 웰빙식품이라 마음이 놓인다더군요.” 그래서 학부모회나 자모회 등에서 대량 구입해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거나,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때 많이 찾는다. 현재 이들 제품은 주로 차량을 이용한 이동식 체인망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식사 대용 혹은 간식거리로 등산객과 회사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쌀 발효기술 개발에 꼬박 10여년 그녀가 10년 넘게 연구한 비법은 쌀을 발효시키는 기술. 반죽을 부풀리려면 베이킹 파우더나 이스트가 들어가야 하는데 쌀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빵처럼 부풀어 오르기는커녕 삭아버리기 일쑤였다. 갖가지 재료로 이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해법은 우연히 만든 콩물이었다. 콩물을 섞으면서 반죽을 부풀리는 이스트성분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일정량의 막걸리를 첨가함으로써 일반 빵에 가장 가까운 쌀 빵을 만들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이 같은 기술을 이용한 쌀버거 특허를 등록했다. 앞서 2001년에도 쌀 피자를 특허 등록,TV에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녀가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0년대 초. 평택에서 태어나 농부의 딸로 자라온 그녀는 4H클럽 등 봉사 활동을 통해 농촌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앞으로 우리 농업의 설 땅이 좁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쌀 소비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쌀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데도 농민들은 농사만 지으려고 해 안쓰러웠요. 때문에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특성에 맞는 음식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정씨는 처음에는 피자가게로 출발했다. 물론 쌀로 만든 피자였다. 예부터 즐겨 먹던 빈대떡을 만드는 원리에서 착안했다. 수입 밀가루 반죽 대신 찹쌀과 멥쌀을 적당히 섞고, 김치·버섯 등 각종 우리 농산물을 넣었다. 맛도 맛이지만 농업인이 혼자의 힘으로 가공식품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쌀 피자가 인기를 끌었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6년전 39살때 만학… 식품영양학과 진학 39살에 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식품 분야에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쌀버거, 쌀 스파게티, 쌀 그라당. 쌀보리버거, 장아찌주먹밥 등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개발했다. 현재 그녀의 회사에서 소비하는 쌀을 연간 700여가마(80㎏ 기준). 전량 평택에서 생산되는 쌀이다. 남편이 3만여평에서 짓고 있는 쌀도 모두 소화하고 있다. 농사만 지었다면 1년에 수익을 몇천만원밖에 낼 수 없었겠지만 쌀버거 덕분에 수십배의 부가가치를 얻고 있다는 정씨는 “무엇보다 우리 농산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게 돼 힘이 절로 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대도시 특례인정 어떻게] 광역단체 “재정특례땐 道재정 악화”

    대도시의 특례 인정에 대해 행정자치부는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행자부 이재충 지방자치국장은 12일 “경기도 등 해당 광역자치단체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담당자는 “특례를 인정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부처 조율을 해야 하는 만큼 어느 정도 특례를 인정할지에 대해서는 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 달 26일 신중대 안양시장 등 대도시시장협의회 대표단과 허성관 행자부 장관 등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때 양측은 기본적인 방향에서 의견접근을 보았다. 신 시장 등은 이 자리에서 “의원입법으로 대도시특례에 관한 일괄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허 장관이 “정부입법으로 개별법 개정을 하겠다.”고 해 정부입장이 수용됐다. 행자부와 관련된 사안은 내년 2월부터 법개정을 할 예정이다. 다른 부처의 업무는 내년 9월쯤 법개정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정문제는 행자부가 별도로 검토를 하고, 인력문제는 2007년부터 전면시행되는 총액인건비제를 2006년 대도시에 먼저 시행하기로 했다. 대도시가 7곳이나 포함된 경기도는 도의 기능과 권한이 침해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유정인 경기도 정책기획관은 “행정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어느 정도 특례를 주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지만 국가정책과 광역차원의 조정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례를 줄 경우, 광역·기초자치단체간의 갈등을 우려한다. 도를 배제한 채 중앙정부와 직거래하면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조정과 관리·감독 등 본질적인 기능이 훼손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재정특례는 도의 급격한 재정 악화뿐 아니라 자치단체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본다. 인구 61만명인 전주시로부터 대도시특례 인정을 요구받는 전북도도 최근 도지사승인권 37개, 국가사무 28개, 조직과 인사사무 13개, 재정사무 10개 등에 대해 특례를 검토했으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전북도 실무진들은 대부분 미수용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전주 임송학 수원 김병철 서울 조덕현기자 shlim@seoul.co.kr
  • [책꽂이]

    ●예언자(칼릴 지브란 지음, 박철홍 옮김, 김영사 펴냄) 사랑과 결혼, 기쁨과 슬픔, 우정, 이별, 죽음 등 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하는 고전. 삶의 진실과 지혜의 본질을 다룬다.8900원. ●아틀라스 세계사(지오프리 파커 엮음, 김성환 옮김, 사계절 펴냄) 세계사 텍스트와 아틀라스가 함께 어우러져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2만 3800원. ●중국의 제4물결(중하이런 지음, 정지영·김찬원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뉴차이나 리더 4인방 후진타오, 우방궈, 원자바오, 뤄간의 국가경영 대분석.1만 2000원.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안철수 지음, 김영사 펴냄) 원칙과 기본으로 삶과 비즈니스의 성공을 일구어낸 지은이의 소중한 경험 이야기. 어려운 시기 우리가 해야할 일을 조목조목 짚었다.1만 900원. ●자연과학을 모르는 역사가는 왜 근대를 말할 수 없는가(존 루카스 지음, 이영석 옮김, 문화디자인 펴냄) 근대가 과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라면 결국 근대의 본질과 소멸을 언급하기 위해 현대과학이 직면한 한계를 통찰해야 한다고 주장한 책.1만 3000원. ●투 더블유WW 중심권 신세계질서(하인호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21세기는 투 더블유(WW)권, 즉 한반도에서 시작해 인도로 연결되는 아시아권 중심으로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될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이야기.5000원. ●남녀열전(김진애 지음, 샘터 펴냄) 산본신도시와 인사동길을 기획한 건축가 김진애의 인물 기행. 시대를 초월해 파트너 혹은 라이벌로 여겨질 만한 남녀 인물들을 쌍으로 묶어 비교한다.9000원. ●내 남편 역도산(다나카 게이코 지음, 한성례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일본인으로 살고자 했으나 결코 일본인일 수 없었던 역도산의 삶을 가장 지척에서 지켜보았던 미망인의 남편 이야기.9700원. ●전 세계 환경 경영의 첫번째 이름 인터페이스(레이 C 앤더스 지음, 김민주·전세경 옮김, 애코리브르 펴냄) 덜 쓰고 쓰레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된 지금까지 환경운동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한편 ‘쓰레기는 곧 식량’이란 마인드를 토대로 한 순환형 방식의 환경경영이 환경문제의 해답임을 제시한 책.1만 2000원.
  • [사설] 간첩발언 법적·정치적 책임 물어라

    한나라당의 주성영 의원이 엊그제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우리당의 이철우 의원을 ‘간첩’이라고 지목하더니 어제는 시사주간지 기사를 보고 말한 것이라고 물러섰다. 주 의원은 이 의원에 대해 1992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해 지금까지 암약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정치권에서 정략적 색깔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긴 했지만 국회의원이 동료 의원을 두고 간첩이라고 ‘폭로’한 사례는 없었기에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은 그만큼 컸다. 그런데 새 증거없이 이같은 주장을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정당 공천을 거쳐 선거구민에게 선택 받은 국회의원이 간첩이라면 이는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드는 사건이다. 게다가 이 의원의 북한 노동당 가입 건은 사법적 판단이 수년 전에 끝난 사건이다. 따라서 주 의원이 이 의원에 대해 현재도 (간첩으로서) 암약한다고 주장하려면 그에 걸맞은 새롭고도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과거의 판결문만을 근거로 그같은 주장을 계속한다면 이는 국민과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모독 행위이다. 주 의원의 발언이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여야간 다툼에서 나왔지만 우리는 이 문제가 ‘국보법 개·폐’와는 별개로 처리돼야 한다고 믿는다. 국보법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 국회의원의 책임감·윤리의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성영 의원은 이 의원이 간첩임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하루빨리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만약 그 발언이 단순히 ‘아니면 말고’식 한탕주의에서 나온 것이라면 즉시 고백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국민은 현 17대 국회를 역대 가장 수준 낮은 국회로 평가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주 의원 발언의 진위를 따져 법적·정치적 책임을 준엄하게 묻는 것이 그나마 국민의 실망을 덜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 [열린세상] 자기책임과 사회적 책임/김정남 성균관대 경영학 교수

    기업의 사회적 존재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기업은 단순한 이익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조직을 초월하여 기업과 관련한 고객, 종업원 그리고 투자자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위하여 인권, 복지, 환경, 산업평화 그리고 고용 등과 관련하여 선도적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지식사회에 접어들면서 기업의 가치와 자산에서 차지하는 지적자본의 비중을 증대시키기에 이르렀고 시장과 사회에서도 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신뢰성을 대변해 주는 지식자본을 중심으로 기업과 사회를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존재가치와 시장에서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데 매출액, 영업이익, 성장률과 같은 지수도 중요하나 괴란과 요한 루스가 개발한 지적 자본보고분류에서와 같이 시장가치, 이익/직원수, 부가가치/직원수(고객수), 신규사업에서 얻은 수입(이익) 등과 같은 재무 초점 지수 이외에 관리비용/총수입, 정보기술비용(성과)/직원수, 기업품질목표 등과 같은 재무 초점지수와 역량개발 비용과 같은 혁신 및 개발 초점, 지도력지수, 동기부여지수, 직원이직률과 같은 인간 초점지수와 반복고객 비율, 접근 용이도와 같은 고객 초점 지수 등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객관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존속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지적 자본의 일환으로 기업의 도덕성과 투명성이 강조되고 투자결정의 주요 지표로 활용되면서 ISO의 주도하에 시장지향적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계량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과도기적이기는 하나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일부 종교단체가 주도하던 사회적 책임 투자(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 개념을 받아들여 SRI 뮤추얼 펀드 시장을 구축하였으며 매년 30%이상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CRS 지수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되면 기업의 신용 등급과 같은 수준의 중요한 평가요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시장가치로서의 자산으로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본질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제반 법규를 준수하는 법적책임, 기업과 계층단위로 명문화되어 있는 계약, 규정 등과 같은 준법적 책임 그리고 상생의 관점에서 사회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사회적 공헌 책임을 포함함으로써 창의적 미래사회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이 이상적으로 실현되려면 자기책임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적으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사회에서 자기책임이 없거나 그 가치가 결여되어 있는 사회적 책임은 일회성이거나 모방적 현상으로 평가되어 진정한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자기책임은 좁은 의미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스스로에 의하여 유발되는 생각, 행동에 따라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책임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환경에 대한 책임으로 예의범절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의 규범을 수용하고 준수하는 도덕적 책임과 개인과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의 이행책임, 그리고 사회가 기대하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전문적인 자기계발 책임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올바른 사회적 책임문화가 형성될 수 있으며 사회적 책임이 결국 자신의 책임임을 인식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신이 준 생명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 책임을 다하는데 있어 스스로의 노력과 역할을 게을리 한다면 이는 사회 이전에 자신에 대한 부채를 지는 것이다. 하나의 지구사회에서 자신의 자유를 위한 책임차원에서 타인의 행복없이 자신만의 행복도 없음을 생각과 행동의 본질적 가치기준으로 삼을 때 자기책임과 사회적 책임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진정한 사회적 책임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가 책임이며 책임없는 자유는 사회혼란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김정남 성균관대 경영학 교수
  • 소설가 윤대녕·시인 이성복 ‘살가운 산문집’ 출간

    소설가 윤대녕·시인 이성복 ‘살가운 산문집’ 출간

    문학의 위무가 더욱 절실해진 궁핍의 시대, 두 작가가 나란히 산문으로 위무의 발언을 했다. 이성복(52)시인의 사진에세이 ‘오름 오르다’(현대문학 펴냄)와 소설가 윤대녕(42)의 연작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사람’(이룸 펴냄). 녹록한 한담을 가장했으나, 곤고한 생을 달래 주는 화법들이 두 작가 모두 독특하고도 살갑다. ■ 윤대녕 “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란 무릇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간다.” 들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신통하고도 빛바랜 그 언표를 작가 윤대녕도 문득 꺼냈다. 청춘을 장식했던 열두 번의 만남을 작가는 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속으로 일제히 소환했다. 여성성마저 환기시키는 작가의 섬세한 시적 글쓰기가 또 한번 힘을 발휘하는 글모음이다. 책은 모두 열두 편의 짧은 산문으로 묶였다. 제목 속의 ‘옆 사람’은 화자인 ‘나’인 셈이다. 지나간 시간 속에 ‘나’는 머물러 있고 그 곁으로 열두 명의 여자들이 서로 다른 빛깔의 열정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까 ‘나’와 기억에서 불려나온 연인이 매번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연작인 셈이다. 한 줄의 서문도 걸치지 않고 곧바로 소개되는 첫번째 글 ‘푸른 비단에 싸인 밤’에서부터 독자들은 몽환적 감성에 잠길 만하다. 인터넷 오디오 파일 동호회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스물여섯살의 여자와 ‘나’는 우여곡절 끝에 만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쳤던 사랑의 기억들을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산문들에는 작가의 자전적 글쓰기 흔적이 여실하다.10년 전 다니던 치과의 간호사로 늘 허름한 밥집에서 오동나무 밥상을 마주했던 그녀(‘스물세개의 계단으로 오는 가을’), 가난했던 대학시절 곧잘 술을 사주던 동창생 그녀(‘나의 하이네켄 스토리’), 독자로 만났으나 자신의 사연을 소설로 써주길 바랐던 그녀(‘쥐와 장미’)…. 줄이어 등장하는 사랑이야기 가운데 몇편은 모르긴 해도 작가가 한때 며칠밤을 신열로 보냈을 내밀한 사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불 같은 격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짧은 콩트 형식의 산문들을 통해 “사랑만이, 관계만이 희망이며 유효기간이 없는 삶의 동력”이라 외치는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사연들을 오버랩시켜 감상을 마무리짓게 이끈다. 작가의 연애관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덤이다.“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윤희하원’) 9700원. ■ 이성복 “가난은 조금 나았다가는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이성복 시인의 새 산문집 ‘오름 오르다’는 매우 독특한 질감이다. 소재부터 낯설어 더 흥미롭다.‘오름’은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제주의 산(山). 고집스럽게 오름을 찍어온 작가 고남수씨의 흑백 오름사진들을 통해 시인은 시적 영감을 이끌어냈다. 흑백사진 속에 둥근 선의 추상으로 들어앉은 오름들. 그들에게서 생의 이치를 은유로 뽑아내는 시인의 감식안은 서늘하도록 날카롭다. 예컨대 솟아오른 잿빛 봉분 앞에서 시인은 ‘시간의 부활’을 읽어낸다.“언제나 현재의 뒤안에서, 딱딱한 사물의 주검을 덮고 있다가, 재생의 빛깔인 잿빛을 띠고, 어떤 한숨보다 나즉히 잊혀진 사물의 목소리로 되살아나는 과거가 되기 위해, 현재는 다시 소멸하는 것일까.”(‘은유의 잿빛 봉분’)빈곤으로 점철되는 삶을 “다, 그런 것”이라며 토닥이기도 한다.“가난은 아주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조금 나았다가는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그러는 사이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꿈, 깨고 나면 씁쓸하기만 한 꿈을 꾸는 그런 날들을 생각나게 한다.”(‘한심하고 어설픈 가난의 곡선’)범상한 눈으로는 그저 선일 뿐일 오름에서 시인은 번번이 미학의 이미지를 걸러낸다. 그것은 “봉긋한 배와 처진 가슴을 드러내놓고 잠자는 중년 여인”이 됐다가 때로는 “부드럽고 느린 지느러미를 해묵은 슬픔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생명의 본질을 고요히 묵상케 하는 대목들은 글쓴이가 시인이었음을 어쩔 수 없이 환기시킨다. 오름을 흰 선으로 가르는 외줄기 길의 사진에서 시인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보고, 인간이성의 한계를 넌지시 짚는다.“애초에 인간이 구획과 분리의 수단으로 강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피안도 차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등을 펴냈다.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술이 술술] 키워드/국가보안법

    올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 중의 하나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였다. 여론도 갈라지고 정치권에서도 첨예하게 맞서 오다 일단 논의를 뒤로 미뤘다. 그러나 더 급한 민생법안들이 해결되면 국가보안법 논의는 재점화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적어도 개정해야 한다는 데는 국민들의 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폐지를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당은 폐지하는 쪽으로 당론을 확정했지만 야당은 당의 운명을 걸고서라도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국민 여론조사는 조금씩 다른데 어떤 조사에서는 폐지 의견이 많았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폐지하지 말자는 의견이 50%를 넘기도 했다. 국보법 개폐 논란은 보혁 진영의 논리 대결과 뗄 수 없는 문제다. 대체로 과거 6·25를 겪어본 장·노년 보수층은 국보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젊은 진보층은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과거의 낡은 잣대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논쟁의 시발점 국가보안법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모방해 만들어진 법률인데 간첩과 좌익분자를 처벌하기 위한 이 법이 독재권력하에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됐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처벌 조항들은 매우 애매하고 예비 음모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엔 인권위원회 등으로부터 폐지 권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는 것. 남북이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엔에 동시가입했고 교역량도 증대되는 등 시대 상황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국보법은 시대착오적인 법률이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유지론자들은 아직도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은 변하지 않았고 실제로 서해교전 등 도발을 일삼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법률적으로 볼 때 북한은 여전히 반국가단체일 뿐이기 때문에 경제적 교류를 하더라도 국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권안보에 악용돼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권의 문제이지 법의 문제가 아니고 운용을 철저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러 문제들 국가보안법 조항 중에서도 폐지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느냐, 찬양고무죄를 인정하느냐 등의 문제다. 여당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정부 참칭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헌법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형법상 적국의 개념에 포함시켜 형법의 외환·내란죄로 다스릴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북한은 헌법의 영토 규정에 따라 국가로 인정해선 안 되기 때문에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해야 한다고 한다. 비수교국이나 교전국에 해당하는 준적국, 또는 적국의 개념을 준용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제7조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한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찬양·고무죄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여당은 국가보안법 중에서 가장 악용된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찬양 고무의 개념이 모호해 소위 ‘불온 서적’만 갖고 있어도 국보법으로 처벌해온 과거를 예로 든다.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서커스를 보고 잘 한다고 해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국가보안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폐지 반대론자들은 이 조항을 없앤다면 광화문에서 김일성 추모집회를 열어도 처벌할 근거가 없으므로 단서 규정을 좀 더 엄격히 바꾸어 존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이 불고지죄다. 국가보안법의 조항을 어긴 사실을 알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조항에 대해 폐지론자들은 인륜도덕을 파괴하는, 전 국민을 국보법 위반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조항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신고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이 옳으냐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 자매는 형을 면제한다는 선에서 조항을 고치되 조항 자체는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비 포인트와 예상 논제 국가보안법은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는 정치적 사상적 신념과 연결된 문제다. 이 문제가 논술 면접시험에 나올 것으로 예상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보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더라도 국가보안법 자체의 문제점은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예상되는 논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면 그 대안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하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면 왜 그런가 ▲국가보안법이 악용된 사례와 폐단을 예로 들고 국보법 폐지 또는 개정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말하라 ▲국가보안법은 과연 악법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보법의 찬양 고무 조항은 폐지돼야 하는가, 유지하되 개정하는 것으로 족한가? 등을 들 수 있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커지는 자신감…북핵해법 공감대 굳혔나

    |바르샤바 박정현특파원|“6자 회담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상황전체의 구조와 본질을 보면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5일 폴란드 동포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대해 노 대통령의 자신감은 갈수록 커지는 듯하다.6자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남북정상회담도 추진하지 않겠다는 ‘런던 발언’도 이런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같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노 대통령의 북핵문제 해결의 자신감을 부인하지 않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크바니시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공감대를 넓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크바니시예프스키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6자회담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노 대통령이 동포간담회에서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북핵해결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논리는 크게 두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6자회담 당사국 모두가 분쟁을 원치 않고 부추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중국과 한국은 북한의 체제붕괴를 원치 않을 뿐더러,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적극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이 중국과 베트남을 열심히 다니면서 개혁·개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고 소개했다. 개혁과 개방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개성공단을 꼽았다. 북한이 남침을 하려는 병력집결지인 개성에 한국의 공장이 들어섰고, 북한은 개성에 있던 군사시설이 해체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핵무기를 협상용이라고 진단했다. 둘째로 노 대통령은 무력행사나 봉쇄정책이 동북아에 너무 큰 위협을 가져오기 때문에 현실적 방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북한의 발언이나 대응, 미국에서 나오는 일부 발언 등에 미시적으로 집착하면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미시적으로 보면 북핵문제가 불안하고 불투명한 것처럼 생각된다.”고 거시적 접근을 당부했다. 인내심을 갖고 북핵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구상이다.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은 “노 대통령의 북핵관련 발언은 최근 블레어 총리 등 정상들과 회담에서 설명한 내용을 거의 집약한 결정판”이라고 설명했다. jhpark@seoul.co.kr
  • [열린세상] 1심 강화의 전제조건/유중원 변호사

    얼마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항소심(2심)의 구조를 현행 속심제에서 사후심제로 변경하는 방향으로 하급심 강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즉 하급심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사후심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1심 단독 재판부의 비율과 관할을 확대하고,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법관보다 많은 법조경력을 가진 동등한 자격의 법관으로 구성하며, 주요 쟁점의 경우 판결문에 소수의견을 기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의 구조가 사후심제로 전환되면 당연히 2심에서는 새로운 소송자료의 제출은 제한되고 원칙적으로 1심에서 제출된 자료만을 기초로 하여 1심판결 내용의 당부만 사후적으로 재심사하게 된다. 그러면 재판의 대전제가 되는 사실관계의 확정이 1심에서 조기에 끝나 3심까지 무리하게 재판이 이어지는 사례가 줄면서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은 1심 재판에서 전력투구하게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법조계에서는 속심제의 폐해가 지적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속심제는 항소심이 필요한 한도에서 독자적인 사실인정을 하고 여기에 법을 적용하여 사건을 재심리한다. 항소심은 그 결과를 가지고 1심 판결과 일치하는가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스스로 사실인정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후심제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그런데 우리의 항소심은 그 동안 1심의 재판과정과 재판결과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전반적으로 새로 재판을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아무런 제재없이 1심에서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가 항소심에서 뒤늦게 제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장·입증도 무제한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사건에서도 항소심은 종전의 변론을 재개·속행하므로 역시 무제한으로 새로운 주장·입증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당사자나 대리인은 1심을 경시하여 거기에서는 충분한 변론을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심리가 항소심에 편중되어 소송이 지연되는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후심제에서는 실질적으로 1심이 사실관계 확정의 중심이 되고 2심은 법률심 유사한 심급으로 전환될 것이 예상되므로 1심의 중요성이 그만큼 배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1심의 강화와 관련한 비판적인 견해도 만만찮다. 두 번에 걸친 사실관계의 확인절차가 한 번으로 줄어들게 되므로 오판의 가능성이 그 만큼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원래 심급제란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직시하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 올바른 법적용을 보장하려는 것이므로, 이러한 심급제의 취지가 무시되는 방향으로 사법개혁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당히 타당한 지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우리의 현행 1심은 비전문화된, 경력이 일천한 법관들이 무거운 업무 부담에 극도로 시달린 나머지 졸속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문제이다. 따라서 현행 체제 하에서는 그 도입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사후심제가 조기에 도입·정착되기 위해서는 법원의 인적·물적 기반을 개혁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특히 법조일원화가 조기에 전면 시행되어야 한다. 법조일원화란 다년간 변호사나 검사를 한 사람 중에서 능력과 인품이 검증된 사람을 뽑아 판사를 시키는 제도라고 보면 틀림 없을 것이다. 법관이란 법률지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세상 물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제대로 재판을 할 수 있다. 또한 1심 법관의 전문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므로 법관인사제도의 대단한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법관은 사법관료제와 지역순환근무제의 틀 속에 갇혀 있었으므로 전문화가 제도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 이런 고루한 제도가 타파되어야만 법관 전문화도 가능하고 1심 강화에 따른 사후심제도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이 제도를 조기에 도입하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고, 오히려 재판에 대한 국민이 불신만 증폭되게 될 것이다. 유중원 변호사
  • [시론] 북한핵 불확실성을 관리하라/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명예논설위원

    [시론] 북한핵 불확실성을 관리하라/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명예논설위원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 북한핵 문제를 외교적·평화적으로 해결해 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북한핵 해결을 위한 다자간 접근으로 6자회담이 다시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핵 회담은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가 싶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해 왔다.TV에서 특사들과 장관급 각료들의 웃음 띤 악수는 많이 보이지만, 정작 북한핵 위기가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는 정말 어렵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진정으로 북한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아심이 들 정도다. 북한핵 위기의 본질은 북·미관계이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남한이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격의 위치에 놓여 있기에 긴급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핵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북한핵 불확실성을 통해 각기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김정일정부와 부시정부 사이의 이율배반적인 정치적 이해타산에 있다. 왜냐하면 북한핵 불확실성이야말로 김정일정부의 생존 기반이며 부시정부의 대동아시아 개입전략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그 누구도 모른 채 당분간 지속되는 게 북한에는 유용할 수가 있다. 만약 북한이 핵개발 능력이 없고 그래서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선군정치’의 오기로 버티는 김정일 정부는 그야말로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에서 보듯이 정권 안보상의 취약성을 면하기 어렵다. 아무리 중국의 뒷받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미국 지배의 일극패권적 국제사회에서 지금처럼 내놓고 미국에 뻗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실하게 검증되는 것도 북한에 결코 이롭지 않다. 일본과 남한 사회에서 반북·반핵 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남북한 경제협력과 북·일간 국교정상화는 물 건너 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미국은 확실하게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게 되어 북한핵은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변하게 된다. 남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6개국이 북한핵을 의제로 삼아 자주 만나지만, 모두의 이해관계는 북한핵을 통해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가늠하고 자국의 국제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북한핵을 앞에 내세우고 그 이면에서 자국의 이익을 찾아 서로 탐색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벌이는 게 6자회담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북한핵 6자회담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고 북한핵 불확실성에 덩달아 불안해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오히려 북한핵 불확실성이 실재적이고 현재적인 위기로 비화되어 나가지 않도록 지혜롭게 관리하면서 기존의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미 및 북·일관계 개선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한 틈새를 노리는 것이 우리의 외교 과제가 된다. 북한이 언제든 핵무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게 해 둠으로써 언술로는 북한핵 위기를 운위하면서도 실제로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안정을 도모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남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경제원조의 실리와 체제안정을 보장받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태의 진전이 그렇게만 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핵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핵 해결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토대 위에서 북한체제의 안정과 그 결과로서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사실상의 안정’을 어떻게 도모해 나갈 것인가도 우리의 대북정책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명예논설위원
  • 겨울연가 감독 “반짝 韓流 안되게 내실 다져야”

    겨울연가 감독 “반짝 韓流 안되게 내실 다져야”

    “‘욘사마’ 같은 스타 한 명이 한류(韓流)의 원동력이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특히 한류라는 결과에만 천착한, 외형만 그럴싸한 드라마 제작 붐은 오히려 한류의 불씨를 소진시킬 위험이 있죠.” 올 한해 일본열도를 ‘한류 열풍’의 소용돌이로 몰고간 문화 콘텐츠는 단연 ‘욘사마’ 배용준과 드라마 ‘겨울연가’였다. 하지만 그 성공 뒤에는 한류 드라마 ‘대표’ 연출자 윤석호(47) 감독의 숨은 힘이 있었다. 윤 감독은 한·일 우호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상인 일본의 영화잡지 ‘기네마순보사’가 주는 기네마 순보상 특별상 ‘한·일 우호 공로상’의 수상자로 선정돼 30일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상을 받는다. “지금 아시아권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심하게 말하면 ‘그들이 우리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죠. 한류가 ‘한류(寒流)’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좀더 내실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는 ‘겨울 연가’와 ‘욘사마’는 그들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갖는 ‘환상’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내 현실에서는 그같은 인간 냄새 나는, 순수한 정서를 느끼기 힘들다는 것. 그는 특히 한류를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제작하는 시스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드라마 속에 순수한 마음과 첫사랑 등 인간 정신의 ‘진정성’을 담는 본질적인 노력이 담겨 있어야 ‘한류’에 걸맞은 기획이 된다고 생각해요.‘열매’를 먼저 보고 스타 배우와 이국적 화면 구성에 신경쓰는 등 내용보다는 드라마의 외형적 측면을 앞세운 기획은 오히려 한류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어요.” 그는 드라마 한류 열풍은 ‘경쟁의 힘’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보다 양질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한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치열한 경쟁이 실제 ‘고품질’의 드라마를 양산했다는 것이다. 한류 열풍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본 그는 국내 드라마 제작에 대해 조언해 달라는 질문에 “드라마는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성이 커졌다.”면서 “단기간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드라마는 한류는 물론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일본속 ‘한류 열풍’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욘사마’ 혼자만의 힘으로 ‘겨울연가’가,‘한류 열풍’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조연들의 눈부신 연기와 제작진들의 눈물겨운 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2)순천만 갈대숲의 교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2)순천만 갈대숲의 교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아는가.“무진(霧津)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고 없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같다.” ●사람과 동식물 공존하는 평화의 낙원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안개를 그렇게 묘사했다. 소설 무대를 순천만에서 빌려온 이유를 알 만 하다. 만추(晩秋)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간 순천만의 아침도 온통 물안개에 젖어 있었다. 안개는 노천온천의 김처럼 연신 올라와서 카메라의 렌즈를 적셨다. 아침 6시50분. 해가 뜨려면 족히 30여분은 더 있어야 한다. 대대포구 선착장에서 배에 오른다. 모터의 굉음이 퍼지면서 물살을 가르자 오리떼가 갈대밭에서 물을 박차고 난다.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사람을 경계하며 저만치 물러서 있다. 망원경이 아니라 육안으로도 얼마든지 새떼들이 잡힌다. 새떼들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으며 오로지 갯골로만 다닐 수 있음을. 갈대밭으로 배를 들이밀지 않는 한 한가롭게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래서 순천만의 일상은 사람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평화’ 그 자체다. 순천만이 이토록 ‘낙토’가 되기까지는 굴곡도 많았다. 시청부터 사태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보호습지 지정으로 재산권 불이익을 염려한 주민 반발도 뒤따랐다. 역시 세월이 필요했다. 수많은 이들이 순천만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렸다. 드디어 순천시의 결단이 내려졌다. 최덕림 주민과장은 ‘시민들도 서서히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만금이나 시화호 같은 실패작만 봐오다가 모처럼 순천만 같은 성공작을 만나는 것은 ‘기쁨’ 그 자체다.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하구습지로 알려졌기에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외국에서까지 찾아온다. 생태관도 만들었다. 대대포구 바로 옆에 갓 개관한 ‘순천만비지터센터’가 그것이다. 잠깐, 한마디 하고 넘어간다면, 그냥 순천만 ‘생태문화관’ 정도로 이름 지으면 될 것을 하필이면 비지터(visiter)란 말인가! 하여간 순천만은 뜨는 중이다. 충분히 뜰 만한 자격도 갖추고 있다. 생태보존의 본질적 측면에서 본다면야 이른바 생태관광조차도 허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만한 정도의 평화를 확보해낸 것만 해도 대견할 뿐이다. ●갯벌 200만평 중 20여만평 정도가 갈대밭 순천만 갯벌은 줄잡아 200만평. 개략적으로 20여만평 정도가 갈대밭이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자 갈대밭은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짝지어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새들, 새꼬막 맛 낙지 짱뚱어 갯지렁이 숭어 뱀장어 같은 주인공들이 번성한다. 갈대는 과다한 유기물질을 뽑아올려 나날이 건강한 펄지대로 정화, 갱신해 내고 있다. 1인당 5000원을 내면 대대포구에서 작은 유람선을 탈 수 있다. 왕복 30여분 뱃길, 선장은 이따금 배를 세우고 새소리를 듣게 한다. 바닷바람이 갈대에 부딪치면서 전투라도 벌이듯 사각거리는 소리는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그 묘미를 이해할 길이 없다. 유람선은 일단 성공적인 것 같다. 양동의 문화관광과장의 말로는 “주말에는 순번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철새들도 유람선이 갯골로만 다닐 수 있음을 잘 아는지라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새와 인간의 영역이 적절하게 균형잡혀 있다. 만의 생태계가 차츰 안정화되는 증거이리라. 허남채 비지터센터장을 길라잡이로 내세워 해룡면의 용머리산에 올랐다. 농로로 이어진 데다 간판도 없어 외부인이 홀로 찾기란 불가능하다. 얕은 산이기는해도 일단 정상에 오르면 일망무제다.“혼자 보기는 정말 아깝다.”고 했더니 “조만간 갈대밭에서 바로 넘어오는 환경친화적인 조망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귀띔한다. 순천만 관해의 으뜸 절경이니 시가 절로 나온다. 옛 시인들이 이런 풍경을 보면서 절경(絶境)보다 차라리 절창(絶唱)으로 표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치자 칠면초가 한결 붉은빛으로 타든다. 일곱 색깔로 변한다고 하여 이름조차 칠면초라는데, 진홍빛 낙조 앞에서는 아예 단풍잎처럼 갯벌을 물들인다. 봄에는 갈대의 초록빛 새순이 햇솜같은 꽃과 대비를 이루며, 여름에는 초록의 섬처럼 무리지어 회갈색의 갯벌 위에서 피어난다. 가을 노란빛이 짙어져 가면서 눈발이라도 날리면 순천만의 사계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다가서 있다. 바다에 물감을 풀어놓은 수채화라고나 할까. 통상적으로는 갈대밭 우거진 기수대를 순천만, 열려진 바다쪽은 여자만이라고 부른다. 지도에는 여자만으로 올라있으나 특별히 순천만을 떼내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 고흥반도가 펼쳐져서 여자만은 흡사 호수 같은 인상이다. 옛 사람들은 여자만 내의 여자도 주변에서 잡은 고기를 싣고서 순천만을 거쳐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대대포구는 물산이 넘쳐 흘렀다. 그들은 짚줄로 엮은 전통어법 ‘방’으로 고기를 잡아들였다. 근자에까지 남아 있는 전통어법으로는 ‘덤장’과 ‘발’을 꼽을 수 있거니와 지금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 깊은 곳에는 길게 덤장을 설치하여 봄·여름에는 칠게, 가을에는 민물장어를 잡는다. 비교적 얕은 내만 쪽으로는 V자형의 발을 설치하여 숭어 새우 문절어 등을 잡아낸다. 물이 썰면 낚시로 짱뚱어를 잡는다. 짱뚱어는 말뚝망둥어와 유사하다. 작은 갑각류나 규조류를 먹으면서 기수대에서 서식하는 짱둥어는 눈딱부리 머리꼴이 재미있게도 생겼다. 남도의 별미 짱뚱어탕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짱뚱어야말로 갯벌의 주인공이다. 어느덧 겨울 냄새를 맡았는지 놈들은 모두 갯벌로 숨어들었다. ●강·바다 오가는 왕복성 어류의 천국 강과 바다를 오고 가는 왕복성 어류의 천국이기도 하다. 숭어나 뱀장어들이 그곳의 주인이다. 한때는 장어들이 갈대밭마다 그득 차서 시쳇말로 ‘물반 고기반’이었다. 수중보 따위를 막지 않아 어로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전주천과 더불어 관리를 잘하여 천의 오염도도 낮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의 황선도 박사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이댔다.“갯벌은 자동차로 치면 범퍼지요. 범퍼가 사라진다면 조금만 스쳐도 큰 상처가 나겠지요.” 육지와 바다의 점이적 완충지대로서 갯벌의 중요성은 온갖 생물종들의 보육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는 “만이 유치원이라면, 유치원이 잘 되어야지만 바깥 바다인 초등학교도 잘되겠지요.”란 비유법도 썼다.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탐조객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경관 가치를 새삼스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척하면 오로지 땅의 부가가치, 아니면 고작해야 어획물의 경제적 이득부터 계산하기 마련이고 여기에서 경관가치 계산법은 누락되기 십상이다. 만약에 지금의 순천만이 매립되어 아파트나 공단이 들어섰다면? 아름다움 자체가 사회적 재산이란 생각을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돈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니면 아름다움을 모르거나, 그도 아니면 둘 다 모르는 것 아닐까. 순천만의 교훈은 ‘불이(不二)’이다. 연기법에서 말하는 인간(正業)과 자연(依報)은 둘이 아니라 큰 생명체라고 하는 의정불이설(依正不二說)이 아니더라도, 어찌 바다와 강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랴. 갯벌에 의지해서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짱뚱어라거나 갈대밭, 온갖 새들은 갯벌 그 자체와 떼어놓을 수가 없다. 하구 갯벌은 바다도 강도 아니고, 육지도 바다도 아니며, 모든 것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인간이 발을 딛고 서 있을 만한 공간이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불이이며, 아름다움 조차도 ‘경계의 미학’ 그 자체다. 경계는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경계는 그 긴장감으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지켜낸다. 온갖 물고기와 패류, 조류, 심지어 순천만의 사람들까지도 생명으로 엮여 하나가 되고 있다. 갯고랑으로 노를 저어가는 유장한 물살만큼이나 순천만 사람들의 삶도 유장하다. 그래서일까. 순천만이 빚어내는 먹을거리들은 쩍쩍 입에 붙는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 높이 2m를 넘는 순천만 갈대숲은 더운 지방의 망그로브숲에 비견된다. 망그로브숲도 경계에 서 있다. 갯벌이 드러나고 숲의 뿌리도 드러난다. 물이 차고 빠지기를 거듭해 오면서 조간대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망그로브숲이 사라지자, 전 세계적으로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졌다. 숲 보존 비용보다 조성 비용이 훨씬 많이 먹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갈대밭이나 칠면초 등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인공으로 만든다면, 계산해볼 것도 없다.‘있을 때 잘하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독일 북해의 홀슈타인주에 있는 갯벌국립공원에서는 늘상 ‘문화적 경관’을 내세운다. 홀슈타인 갯벌의 새와 어민, 잡초류가 모두 동참하는 경관을 내세워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들에게 갯벌은 당연히 국립공원이다. 우리는 국립공원은커녕 ‘막느냐, 마느냐.’를 두고 멱살잡이가 한창이다. 갯벌에 입장료 내고 들어가라면, 한국의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순천만도 조금은 위태로워 보인다. 생태보존정책 속에서도 조금씩 인공적으로 가꾸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한사코 누르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순천만의 미래를 담보하는 최선의 원칙이자 해답이 아닐까.
  • [열린세상] 북한체제 변화, 어떻게 관찰할까/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체제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명백한 증거를 들어 검증하기도 어렵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도 북한만의 ‘특수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북한체제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경제적으로는 변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 변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놓는다. 전문적이지 못한 결론이다. 그런데 북한체제의 변화 여부는 우리의 꾸준한 관심사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적 논쟁에서나 한·미의 대북정책 조율 과정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과정에서 기본적인 논의사안이다. 우리의 국가목표인 평화통일과 연관시키면 북한체제의 변화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통일을 상정한다면, 현 북한체제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체제가 스스로 변하기를 바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동유럽도 베트남도 중국도 변했으니, 북한도 변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사실 북한도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의 개혁·개방조치를 도입·시행하고 있으니 그만큼은 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2000년대 북한의 변화를 ‘의미 있는 변화’(최근 북한의 변화동향, 통일부,2003)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면 전반적인 북한체제의 변화는 어떻게 관찰할 수 있을까? 탈북자 250여명을 대상으로 1990년 이후의 북한체제 변화추세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한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통일예측모형연구, 통일연구원,2003). 북한체제의 변화를 관찰하는 데 준거가 될 8가지의 요인들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정치적 요인들이다. 첫째, 북한체제의 응집력이다. 북한주민들이 현 체제에 강한 응집력을 가질수록 전반적인 체제변화는 어렵다. 체제에 대한 자부심, 노동당에 대한 신뢰도, 주체사상에 대한 신봉도 등이 구성변수다. 둘째, 다른 체제(남한 또는 중국 등)에 대한 동경의 수준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지각 수준, 비공식 거래의 증가 등이 구성변수로서, 중국이나 남한의 발전상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셋째, 김정일 위원장의 체제장악력과 통제력이다. 주민통제의 수준, 상부지시의 하부 전달 정도, 군부 통제력 등이 주요 변수로서, 그중 북한 주민들에 대한 통제의 효율성 여부가 체제변화를 가늠하는 데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요인들로는 첫째, 북한경제의 정상화 여부로서 일한 만큼 충분한 보수를 받는가와 기업소의 생산 활동에 대한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주요 변수이다. 북한 사회주의경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수록 현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높을 것이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둘째, 북한 경제의 자율화 정도이다. 농민들의 생산과 처분의 자유, 개인소유 재산의 증가, 개인경제활동에 대한 국가통제의 약화 등이 변수로서, 경제의 자율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이행하게 된다. 나머지 세 요인은 사회적 요인들이다. 첫째, 사회갈등의 정도로서, 기관간의 갈등, 집단간의 이해갈등, 간부와 주민 간의 적대감 등이 주요 변수다. 아직 높은 물리적 억압 때문에 갈등이 쉽게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으나, 사회적 갈등은 체제변화의 주요 동력이 된다. 둘째, 북한 지도자와 주민의 변화의지의 정도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개방의지가 높으면 중국에서와 같이 위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북한주민들의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자유에 대한 기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셋째, 주민 이동의 자유이다. 북한에서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인구 이동이 늘어났으나, 이동의 자유가 확대될수록 현 체제의 변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같은 8가지 요인들 이외에도 대외적 요인이 북한체제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또한 상기 요인들의 적실성(適實性)을 직접 검증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변화를 관찰하거나 토론할 때, 어떤 준거 위에서 한다면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의미있는 정책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 정책협력과정에서도 우리의 논리를 설득시킬 수 있는 합리적 준거 개발이 필요하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열린세상] 사립학교 이사회 개방해야/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4대 개혁 입법안을 놓고 여야 대치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경우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현격한 진단의 차이로 인해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사립학교 운영과 관련해 사학재단이 오랜 세월동안 누려온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기득권이 사라질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이 사학재단으로 하여금 거리로 나서게 한 것 같다. 교육은 국민이 받아야 할 기본권이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적 가치를 깨우치게 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국가가 맡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식민지화에 이어 전쟁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국민 교육을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외국에 비해 많은 사립학교들이 설립되었다. 대학교육의 80% 이상을 사학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초창기의 사립학교는 주로 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교육을 실시한 공적이 크며, 선각자적 정신으로 사재를 학교설립에 보탠 경우도 많다. 이들의 건학정신은 학교를 사적 재산으로 생각하기보다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으로 발전하기를 바랐던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설립된 사립학교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로 인해 무섭게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허술한 교육시설을 가지고도 학생모집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등록금은 교육환경이 우수한 학교와 같거나 더 비싸도 학생들은 몰려왔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수지맞는 시장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수많은 사립학교가 생겨났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설립하면 대외적으로는 그럴듯한 육영사업가로 비치고, 내부적으로는 축재의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사학재단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사립학교법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방어망이 되었다. 교육은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학교의 교주는 종교적 교주가 신앙을 전파하듯이 교육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건학이념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공공성과 배치된다면 그러한 건학이념은 잘못된 것이다. 사학관계자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학교법인 이사회에 개방형 이사를 도입하는 것은 건학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법인이사회의 개방성이야말로 학교운영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는 첫걸음이다.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이사회 구성은 그 운영 역시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와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단체가 목적 달성을 위해 법인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우려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보다 학교발전에 더 관심이 많은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포함시키는 것이 건학정신을 구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교사나 교수를 채용하는 절차에서도 교사나 교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이사회가 전권을 행사하는 것보다 분명히 낫다. 절차가 투명해질 것이고 이를 통해 인사비리가 사라지며 보다 우수한 사람이 임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사학재단 이사회의 결의는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하는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을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사학의 한낱 부속물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의 본질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순수한 육영가의 정신으로 설립된 학교도 적지 않으며 건전한 사학도 많다. 그러나 학교 운영구조가 잘못되거나, 능력은 없으면서 사욕으로 가득한 운영자에 의해 학교가 피폐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은 필요하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 국가인권위 1기 마감한 김창국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김창국(64) 위원장은 인권위 활동 1기를 마감한 24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권위 3년의 최대 성과는 인권과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의 변화”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인권위 하면 사람들은 국보법 폐지 권고를 떠올릴 것”이라면서 “그러나 수형문화 개선이나 수사관행의 개선 등 사회 저변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더 의미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국회의원이 ‘인권위는 제 4부냐.’며 따져물을 정도로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국가인권기구의 필수 요건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성”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기관인 만큼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을 때는 국론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의견을 낼 때는 사표 쓸 준비도 했다.”면서 “‘국가기관이 시민단체처럼 군다.’거나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양쪽의 따가운 시선이 편치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인권위의 업무는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면서 “현재 수사 범위나 대상에 제한이 많은 인권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군 의문사 문제 등에 대한 직권조사나, 조사 권한 확대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2기 인권위의 역할에는 “여성부와 노동부 등에 나누어져 있던 차별 개선 문제가 인권위로 통합되고, 부산과 광주에 지방 사무소가 개소되는 등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3년의 초기 단계를 거친 만큼 국가 인권 틀을 보다 확고히 해야 할 것”이라고 책임을 지웠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사설] 연기금 의결권 독립성 전제돼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인터넷 글로 촉발된 연기금 논란이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재계와 한나라당은 민간기업 경영에 대한 간섭 가능성을 이유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하고 연기금의 주식 투자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의결권 행사는 반드시 허용돼야 한다며 남용만 방지하면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연기금의 운용주체를 둘러싼 당정 파열음이 여야 및 재계 등의 힘 겨루기로 변질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연기금을 통한 정부의 입김을 경계하는 재계와 야당의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복지부장관의 지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기업으로선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의결권 행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꼴이 된다. 더구나 연기금 중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생활을 위해 정부가 강제로 부과한 저축이다. 따라서 미국처럼 연기금의 의결권을 허용하되 기업의 투명성과 주주권 보호쪽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기금의 의결권 허용 여부는 연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 투명성 확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계해 해법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본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의결권 행사 여부가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은 연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에서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의결권이라는 곁가지에 매달릴 게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 장관의 문제 제기에 여론이 호응한 뜻도 바로 거기에 있다.
  • [중병 걸린 국가시험] (上) 책임 떠넘기는 정부

    [중병 걸린 국가시험] (上) 책임 떠넘기는 정부

    국가시험이 중병(重病)을 앓고 있다. 사법시험과 행정고시·외무고시 등 엘리트 공무원을 선발하는 국가고시뿐 아니라 회계사·변리사·중개사 등 각종 자격시험을 치를 때마다 크고 작은 시비로 논란을 빚고 있다. 복수정답 시비와 문제유출 의혹, 난이도 조절 실패 같은 문제가 해마다 되풀이돼 왔지만 정부는 그 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해 왔다. 최근 치러진 제15회 공인중개사 시험 파문은 이같은 국가시험제도의 난맥상이 일부 터져 나온데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시험의 실상과 정부의 대응실태, 국가시험의 정비방안 등을 2회에 걸쳐 점검한다. 엄정해야 할 국가시험의 공신력이 휘청거리고 있으나 정부 당국은 책임전가에 급급해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출제오류의 책임은 출제위원 등에게 있을 뿐”이라는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한다. 국가시험의 공신력 상실이 아니라 미봉책에 급급한 정부 당국의 문제인식이 위기의 본질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관리도 않고 책임도 안진다? 행정자치부·건설교통부·재정경제부 등 국가시험을 주관하는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출제오류가 발생하면 자신들은 출제방향만 정할 뿐이라고 강변한다. 지난 14일 치러진 공인중개사 시험이 대표적 사례다. 난이도 조절 실패와 복수정답 등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시험을 주관한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24일 “출제위원들이 낸 문제에 오류가 있는지, 난이도가 지난해보다 크게 높은지 등을 우리가 따질 방법이 없다.”고 발뺌했다. 심지어 “시험문제에 공단이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시험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출제위원, 선정위원, 검정위원을 거치는 등 외부 전문가들이 시험 출제 오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인문학은 다수설, 소수설 등 학설에 따라 판단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제오류의 일상화 지난 1998년 이후 실시된 행정·외무·기술고시 등 고등고시와 사법시험·공인회계사·감정평가사·변리사·공인중개사·법무사 등 대표적인 자격증 시험에서만 100여 문제의 출제오류가 발견됐다.2000년 사법시험의 경우 10문제,2001년 행정·외무·지방고시의 13문제 등 출제오류가 두 자리 숫자에 이를 정도다. 이밖에 의사·한의사·약사시험과 위험물관리기능사 등 다른 자격증 시험까지 따지면 출제오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2년부터 최종 합격자 발표 전에 시험문제에 대한 이의신청 기간을 둬 복수정답을 발표하는 것 외에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험오류로 이중고 겪는 수험생 잘못된 문제로 불합격 처분된 수험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행정소송과 행정심판 등이 전부다. 그러나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은 1년 이상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기간 동안 수험생은 소송준비뿐 아니라 다음 시험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설사 소송에서 이겨 1∼2년이 지난 뒤 합격하더라도 금전적인 손해배상은 받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최근 잘못된 출제로 불합격됐더라도 국가에 배상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수험생은 “정부 당국이 문제를 잘못 내 억울하게 불합격 처리되고, 이 때문에 동기생보다 늦게 공무원이 되거나 자격증을 얻게 됐는데도 국가는 아무런 보상을 해줄 것이 없다니, 그럼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과 고통은 누구에게 보상받느냐.”고 항변했다. 강충식 강혜승기자 chungsik@seoul.co.kr ■ 출제오류 주요 사례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의 오류는 행정·외무고시 등 고등고시뿐만 아니라 사법시험·공인회계사·법무사 등 각종 자격증 시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해당 시험을 주관했던 관계기관이 스스로 오류를 인정해 탈락자의 일부를 구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탈락자들은 몇년 동안 행정소송 등 정부를 상대로 힘든 법적 싸움을 거친 뒤에야 뒤늦게 합격하는 실정이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 1차의 경우 무려 7문항에서 출제오류가 법원을 통해 확인됐다. 당시 사법시험 출제를 주관했던 행정자치부는 2년 뒤인 2000년 말에 가서야 불합격 처리됐던 수험생 800여명을 뒤늦게 합격처리했다. 행자부는 2000년 사법시험 1차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 최종적으로 10개 문항에서 복수정답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김모씨 등 수험생 15명은 행자부가 발표한 10개 문항 외에도 추가 1개 문항이 잘못 출제됐다면서 소송을 냈다. 결국 대법원은 2002년 12월 김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80여명이 2년 여 만에 추가합격됐다. 1998년 치러진 제33회 공인회계사 1차시험도 법원의 판결로 출제오류가 확인된 사례다. 문제가 된 경영학시험 6번에 대해 한국경영정보학회 소속 교수들이 심사를 벌이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끝에 이모씨 등 90여명이 뒤늦게 합격처리됐다. 공인중개사 시험도 출제오류가 되풀이돼 온 대표적인 자격증 시험이다. 해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자 시험 주관기관을 건설교통부에서 자격시험의 노하우가 있는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옮겼지만 출제오류는 여전했다.2002년 제13회 공인중개사 시험의 출제오류는 모두 6문제다. 이중 1개 문항은 수험생들이 국무총리실에 행정심판을 제기,1년 뒤인 지난해 6월에서야 출제오류가 확인됐다. 결국 국무총리실의 결정으로 1571명이 추가 합격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시험만 치르면 ‘불복소송’ 이번 공인중개사 시험 파문은 사실 예견됐던 사태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공인중개사 시험뿐 아니라 사법시험, 법무사시험 등 각종 국가자격시험에서 툭하면 터져 나오는 것이 출제오류 시비다. 그 가운데 복수정답 시비가 가장 잦고, 문제 사전유출 의혹, 난이도 조정 실패, 시험지 부족 등 문제점도 각양각색이다. ●꼬리무는 사전유출 의혹 올해 사법시험은 문제유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월 실시한 1차 시험에서 한 사설학원 모의고사 기출문제가 그대로 출제돼 수험생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주관부처인 법무부는 “시험관리를 철저히 해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해당 출제위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선에서 파문을 덮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난 6월 실시된 2차시험이 또다시 유출시비에 휘말리면서 무색해져 버렸다. 서울의 한 법과대학 고시반 모의고사 문제와 2차 시험의 형사소송법 문제가 같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된 것이다. 올해 공인중개사 시험도 유출 의혹을 받고 있다. 모 방송사 공개강의 교재에 실렸던 문제가 똑같이 출제되는 등 5문제가 시중 문제집 기출문제와 유사해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난이도 조절 안돼 무더기 과락사태 일관성이 확보돼야 할 국가시험이지만 해마다 난이도 조정에도 애를 먹고 있다. 난이도 조정 실패는 곧 무더기 과락사태로 이어져 수험생들의 혼란을 초래한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사시 2차시험이다. 당시 응시생의 82%가 과락(40점 기준)으로 불합격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무더기 과락으로 합격자 수가 당초 선발예정인원보다 100여명이나 모자라 수험생들의 반발이 대단했다. 합격자 발표를 보름여 앞둔 올해 법무사 시험 역시 무더기 과락사태가 예상된다. 지난해 변리사 1차시험에서도 과락률이 72%에 육박했었다. 이 때문에 ‘과락만 면하면 합격’이란 말이 수험생 사이에 ‘금언’이 되고 있다. ●복수정답 시비는 통과의례 복수정답시비는 이제 국가시험의 ‘통과의례’나 다름없다. 시험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단순한 실무착오도 있지만 대부분은 법리해석을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된다. 사시의 경우, 지난 2000년 11문제,2001년 5문제,2002년 3문제,2003년 4문제 정답을 복수로 인정했다. 또 2002년에는 사시 1차 헌법과목에서 ‘한국방송공사법 36조1항’을 ‘35조1항’으로 표기, 오타논란을 빚었다. 행정고시도 마찬가지. 지난 2001년 행정·외무·지방고시에서 11문제가 복수정답 처리됐고,2문제의 정답이 바뀌었다. 또 기술고시에서도 6문제가 복수정답,2문제가 정답없음으로 처리됐다. 이같은 출제오류는 수험생들의 혼란을 부추길 뿐 아니라 당초 계획보다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합격자가 예년의 2배 수준인 2만 8000여명이나 됐던 것도 복수정답 때문이다. ●시험지 부족 등 관리부실 시험지가 모자라는 소동도 일어났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공인중개사시험 대행을 맡던 지난 2002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시험지 부족으로 현장에서 문제지를 복사해 배부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건설교통부도 이달 주택관리사보 시험을 시행하면서 문제지와 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답안지를 배포해 물의를 일으켰다. 시험지는 건교부에서, 답안지는 시·도에서 따로 제작해 착오가 빚어진 것이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한국의 대안학교 60여곳…선후배 위계질서 문제점도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우리사회에서도 90년대 말부터 대안교육을 표방한 학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략 자유학교형, 생태학교형, 재적응학교형, 고유이념 추구형으로 구분되는 대안 초·중·고교들이 곳곳에 생겼는데, 그 숫자가 60여개에 이른다. 특성화 중고등학교로 불리는 인가형 대안학교와 정원 10명 남짓의 비인가학교까지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꿈을 안고 시작한 현재의 대안학교에도 문제는 많다. 왕따도 있고, 폭력사건도 일어나며, 교사와 교장, 재단 사이에 갈등도 있다. 이 때문에 벌써 폐교 신청을 한 곳도 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의 발행인인 현병호씨는 “재정의 어려움은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겪는 어려움이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학교문화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눈에 보이는 학교 건물이나 커리큘럼 같은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학교문화, 이를테면 선후배간의 권위적 위계질서 같은 것이 올바른 대안교육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수십억을 들여서 만든 특성화학교도 상당수는 입시교육의 들러리가 된 학생들이, 마지못해 다니는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오늘이 역사다(정옥자 지음, 현암사 펴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규장각 관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역사에세이. 오늘의 문제를 역사의 창을 통해 비춰보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씨줄삼아 43개의 이야기를 따뜻한 문체로 펼쳐나간다.8000원. ●존경받는 부자들(이미숙 지음, 김영사 펴냄) 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인 지은이가 한국적·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미국의 기부문화와 미국인들의 자선정신을 살핀 책. 짧은 역사, 인종간 대립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21세기 최강국이 된 저력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일반인들의 기부의식과 부유층들의 자선정신에 있다고 강조한다.1만 3900원.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찰스 프레드 앨퍼드 지음, 이만우 옮김, 황금가지 펴냄) 일찍이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정신분석적 방법을 적용해 사회현상을 연구해온 지은이가 악에 대해 분석한 책. 인종청소, 테러, 연쇄살인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폭력까지 68명의 다양한 사람들과 면담하면서 인간이 악에 굴복하는 이유를 밝힌다.1만 5000원. ●일본만화의 사회학(정현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세계 만화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일본 만화의 막강한 경쟁력의 원인을 만화사적 접근을 통해 분석했다. 만화출판의 오랜 역사속에서 독특한 출판방식, 출판사와 만화가의 유기적 관계, 젊은이들의 독특한 소비문화 등의 토대위에서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해 왔음을 밝힌다.2만원. ●중국의 하늘을 연다(하성봉 지음, 일송북 펴냄)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한겨레신문 중국특파원을 지낸 지은이의 생생한 중국 현장보고서. 취재활동을 통해 알게 된 거대한 중국의 실체와 그 뒷얘기, 광활한 땅덩어리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그린 여행기 등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1만 3800원. ●환상을 만드는 언론(노엄 촘스키 지음, 황의방 옮김)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지은이가 미국의 주류 언론의 본질과 그 이면을 들여다본 책. 촘스키는 미국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정확하고도 공정하게 언론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어떻게’,‘왜’ 아닌지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있다.1만 2800원.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소운 지음, 도솔 펴냄) 도쿄대, 하버드대에서 13년간 공부하며 수행했던 비구니스님이 들려주는 배움과 만남의 이야기. 특히 하버드에서 만난 진정한 부처의 이야기를 따뜻하면서 재미 있게 소개한다. 미국, 일본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 당차게 지냈던 소운은 항상 수처작주, 즉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처한 곳에서 주인이 되라고 강조한다.9000원.
  • [상임위 초점] 국방위

    “삭제돼야 한다.”(열린우리당) “시기상조다.”(한나라당) 여야는 18일 국회 국방위에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국방백서에 ‘주적’표현을 삭제할 뜻을 시사한 발언과 관련, 설전을 벌였다. 열린우리당은 윤 장관의 발언을 두둔하면서 “급변한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을 주적으로 한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남북간에 변함 없는 대치상황을 강조하면서 “특수상황에 변화가 없는데 왜 이런 논란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섰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일본이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헌법을 바꾸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등 주변은 변화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정하고, 한 곳에만 매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종인 의원도 “과거 정권은 서로 불가침을 인정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주적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거들었다. 반면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본질적으로 남북대치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분명히 북한은 주된 적이고 현존하는 위협에 엄중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윤 장관이 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 공세를 받자 “장관님 참 잘하셨고, 훌륭하신 장관님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힘을 북돋아주기도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마누라론’을 들고 나와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송 의원은 “마누라와 동거녀는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같지만 의무와 책임에는 큰 차이가 난다.”면서 “주적은 그러한 의미에서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광웅 장관은 “국방백서는 주변국에 평화와 안보, 화해를 위해 국방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운을 뗀 뒤 “세계에서 국방백서에 주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의 거센 반격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는 장병들에게 분명하게 적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는 데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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