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본질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술집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사기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237
  • ‘한반도’로 블록버스터 첫 주연 맡은 차인표

    ‘한반도’로 블록버스터 첫 주연 맡은 차인표

    인터뷰를 한 기자들이 열이면 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는 배우가 차인표(39)이다. 늘 주변을 먼저 챙기는 젠틀맨. 촬영현장 스태프들의 귀띔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와의 인터뷰는 유쾌할 수밖에. 그러나 배우로서는 얼마간 손해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카메라 앵글 밖의 사생활을 철저히 가려놓는 배우라면 세상은 그들의 연기에만 집중하겠지만, 그의 이미지엔 일상의 정보들이 덧칠돼 있기 때문이다. 입양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달궈놓기도 하는 스타.“본의아니게 붙어다니는” 수식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연기 현장에선 거추장스러운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강우석 감독의 새 블록버스터 ‘한반도’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사실 자체가 한참동안 화제였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초대형 상업영화의 주인공 차인표. 이미지 조합에 시간이 걸렸다는 말에 그는 “강 감독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처음엔 나도 궁금했다.”며 여유있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해 감독의 출연제의를 받고서 이래저래 망설였어요. 먼저 계약한 TV드라마와 촬영일정이 겹쳐 곤란하다고 했더니 감독이 당황하더라고요.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당장 촬영일정을 당겨주겠다는 제안까지 해왔고. 그 순간 이 영화가 꼭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생각했던 거죠.” “작품의 주제가 강렬했고 솔직히 감독의 흥행저력에도 크게 이끌렸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번 영화는 의미가 무척 각별하다.“인생 절반의 장을 넘긴 중년의 배우”에게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 주어진 건 대단한 행운이라고 했다. 극중 역할은 일본 전문가로 국무총리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국가정보원 서기관 상현. 잃어버린 조선의 국새를 찾아 일본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자는 재야 사학자(조재현)와 의견이 맞서는 캐릭터이다. 과거에로의 집착은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냉철한 인물로 한순간도 긴장의 눈빛을 풀지 않는다. 그러나 시사회가 끝나고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강 감독의 흥행신화가 이어질 수 있을지, 얕은 산술적 호기심들에 영화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시대착오적 소재 운운하는 삐딱한 리뷰기사들에는 할 말도 많다.“옳은 말 하는 영화이고, 우리 좌표를 똑바로 돌아보게 하는 슬픈 영화이며, 강 감독이라서 만들 수 있었던 영화”라고 방점을 찍었다. 물론 개인적 아쉬움도 있다. 극중 상현이 갑작스레 심경변화를 일으키는 막판 설정이 느닷없다는 지적들에는 신경이 쓰인다.“상현이 국무총리의 음모를 엿듣는 장면이 편집과정에서 빠졌어요. 하지만 결론은 이거예요, 영화는 결국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 주변 분위기를 단숨에 띄워올리는 유머감각이 남다르다. 해보고 싶은 역할을 물었더니 “시나리오가 안 들어와서 직접 써버렸다.”한다.“실직자가 주인공인 블랙코미디인데, 강 감독한테 보여준 지 석달째 아직도 무반응”이라며 폭소를 터뜨렸다. 한류스타로 해외팬 서비스도 해야 하니 조만간 TV 멜로드라마를 찍을 계획이다. 공중도덕을 가장 잘 지킬 것같은 배우라는 농담에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차인표스럽다’.“나를 고용한 건 대중이에요. 알고 보면 공중도덕을 무지 잘 어기지만, 대중이 내게 그런 아우라를 줬다면 실망시켜선 안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죠.”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오늘의 눈] 한나라당에 묻는다/박찬구 정치부 차장급

    노무현 대통령의 화두는 도전적이다.“한 시대의 막내가 되고 싶다.”며 3김정치로 상징되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바람을 표현한 것도 한 사례가 될듯 싶다. 열린우리당도 5·31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를 고민했다. 비세(非勢)를 뒤집기 위해 호남을 안고 가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는 구상은 유혹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동영 당의장 측근의 표현처럼 “지더라도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원칙은 노 대통령의 화두와 맥이 닿아 있다. 정치고비마다 재연되는 지역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개혁의 ‘초심’으로 읽힐 만하다. 표심을 얻진 못했지만 “어떻게 만든 우리당인데…”라는 격정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려는 여권의 진정성을 굳이 폄하할 이유를 찾긴 어렵다. 정치권이 지방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이율배반적인 팍스아메리카나의 질서를 강요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풍은 비정부기구로부터 거세게 불붙고 있다. 여야의 뒤늦은 호들갑이나 도심 시위로 인한 퇴근길 시민의 불편한 표정이 FTA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과 정규노동, 재화와 공공서비스로부터 ‘배제’된 장기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빈곤층은 그나마 시위에 나설 여력도 없는 소외된 그늘이다.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탈출구 없는 쳇바퀴를 맴돌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한·미 FTA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의 7·11전당대회에서는 동시대의 화두인 탈(脫)지역주의나 FTA의 고민을 읽을 수 없었다.‘박심’(朴心)은 있었지만, 민심은 실종됐다.‘미사일’과 ‘영남’은 위력을 발휘했지만, 민생 대안과 통합의 메시지는 찾기 어려웠다. 정치학자들은 박근혜의 서진(西進)과 고건의 동진(東進)을 차기 대선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로 여긴다.FTA의 후폭풍이 97년 쇼크 못지않게 심각할 것이라는 각계의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묻고 싶다. 민심의 순풍을 타고 있다는 한나라당은 과연 시대와 역사를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가. 박찬구 정치부 차장급 ckpark@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8)세상사를 보는 법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8)세상사를 보는 법

    불교사상은 세상의 사실 즉 세상사를 다 환영(幻影)으로 보게 한다. 이런 불교사상이 그 동안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오해되어 왔으나, 불교사상은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보게 하는 사실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사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것을 객관화시켜야 옳다고 연상한다. 그만큼 우리는 그 동안 객관과 사실을 하나의 동의어처럼 여기는 사고관습에 길들여져 왔다. 객관은 인간의 의식에 의하여 대상화된 사실을 가리킨다. 객관적 사실만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무시되어도 좋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 글은 정반대로 세상의 근원적 사실은 객관적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환영이라는 것을 말하려한다. 사람들이 객관적 사고를 신뢰하는 까닭은 자의적인 개인의식과 달리 보편의식으로 상징되는 ‘누구든지’(whoever)가 꼭 같은 생각을 펼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주관적 사고는 나중심(자아)이고, 객관적 사고는 ‘누구든지’(보편적 자아)의 생각이라고 여기면서 사람들이 서로 이질적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먼저 누구나 주관적 사고를 한다. 이것은 나 중심으로 세상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도구적 생각이다. 객관적 사고는 주관적인 도구적 생각에 문제가 생겨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문제를 대상화할 때에 생긴다. 하이데거가 전기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에서 논한 바를 말한다. 내가 망치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이것이 너무 나의 팔에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망치를 다시 바꾸거나 고치기 위하여 내 팔 힘과 망치의 무게와의 사이에 적합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수학적 정밀성에 의존하여 사고한다. 돌출한 문제를 풀기 위하여 나는 제삼자가 되어서 내 팔 힘과 망치무게를 수학적으로 검토한다. 내가 그 문제를 적절히 해결했다면, 그 해결의 과정에 생긴 수학적 정밀성의 데이터는 나와 같은 조건을 가진 ‘누구든지’에게 다 적용된다. 객관적 과학적 사고는 결국 세상사를 주관적 도구적 사고로 보는 것의 우회적 표현이다. 세상사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려는 나의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세상을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나의 소유욕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 경우에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대상화한다. 이 대상화는 객관적 문제해결로서 수학적(이론적) 정밀화의 수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과학적 객관적 사고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나의 소유론적 욕망이 숨어 있다. 객관적 사실은 ‘누구든지’ 꼭 같이 보는 사실인 것 같으나, 세상을 도구적으로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나의 소유욕이 ‘누구든지’의 이름 아래에 깊숙이 은닉되어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본 객관적 사고의 본질이다. 수학적 문제해결일수록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누구든지’ 다 소유가능한 해결책이 된다. 정밀성은 과학의 핵심이고, 과학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전문성은 범위가 좁을수록 더 정밀해진다. 객관성은 실용성의 이론화(수학화) 작업이다. 하이데거는 ‘강연과 논문집’에서 ‘과학은 현실적인 것(the real)의 이론’이라고 표명했다.‘현실적인 것’은 사회적인 실용성의 다른 이름이다. 실용적인 것을 더 고급화하기 위하여 과학은 정확성과 정밀성을 추구한다.‘현실적인 것의 이론’은 다 지적 소유욕의 소산이겠다. 과학 전문가는 세분된 문제를 푼 전공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나, 자기 전공분야를 벗어나면 그는 거의 까막눈이다. 무엇이 객관적 사실인가? 그것은 소박한 실용적 소유욕을 우회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하여 세분화되고 계량적으로 측정가능하며, 증명가능한 방향으로 작위된 데이터를 말한다. 이런 객관적 사실을 극단화시키면, 심장 전문의사는 위장 전문의사와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미세한 정밀과 전공의 극치를 달릴 수 있겠다. 이미 철학분야에서도 이런 현상이 부분적이나마 대두되어 이 분야 전공자와 저 분야 전공자가 서로 대화가 안 되는 단절이 도래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철학은 끝난 것이다. 철학이 과학을 어쭙잖게 닮아 전문가행세를 하는 꼴이다. 객관화된 대상적 사실과 그 지식은 세상사를 미세하게 쪼개서 서로 회통되지 않는 고도(孤島)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만다. 전문가는 아주 유식하나 동시에 세상사를 그 전체에서 유기적으로 보지 못하는 장님이기도 하다. 철학적 사유는 세상사를 그 전체에서 존재론적으로 보려 한다. 그토록 세분화된 지식들을 통일하는 과학을 어떻게 수립하나? 과학의 본질에서 그것은 불가능하겠다. 하이데거가 그의 후기 저작인 ‘무엇이 사유라고 불려지는가?’에서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라고 언명했다. 이 말은 과학이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사유는 오직 존재론적 사유를 의미한다. 과학은 비록 소박한 소유욕을 떠났으나, 지성적 소유욕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존재론적 사유는 소유론적 사고와 구별된다. 존재론적 사유는 자연의 자연성(physis)과 상통한다. 자연성에는 인간의 사회생활이 펼치는 진/위와 정/사의 판단선택 없이 자동사적으로 생멸의 순환이 반복된다. 생멸의 순환 속에 자연성은 신진대사의 존재방식을 저절로 엮어간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론적 사유는 생멸하는 자연의 순환을 보면서 우주를 그 전체에서 유기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불변적 존재방식의 깨달음을 뜻한다. 실용을 위한 객관적 사고에 얽매인 과학은 소유를 초탈한 철학의 존재론적 사유를 모른다. 하이데거는 상기의 책에서 다시 과학을 ‘일방통행적’(one way-passing)이라고 진단했다. 즉 과학은 자연처럼 쌍방이 서로 왕래교역하는 관계를 표현하지 않고, 오직 의식이 대상에게 일방적 방향으로 가는 통로만을 띤다는 것이다. 의식이 생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길이 곧 소유와 실용의 길이다. 세상사가 오직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여겨온 문명의 습관은 인간의 소유론적 사고방식의 인습에 기인한다. 과학은 소유론적이고, 소유론은 객관적인 것만이 사실이라고 집착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전문적으로 세분화된 소유론적 사실 이외에 유기적인 세상사를 그 전체에서 보는 존재론적 사유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원효의 이중부정과 이중긍정의 사고방식(27회 글)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론적 사유와 이웃하고 있다. 그것은 객관적 사고가 근거해 있는 판단적(택일적) 사고방식에 대한 거부와 같다. 이중부정의 사유는 세상사에 대한 의식의 소유론적 생각을 소멸시키는 역할을 한다. 객관적 과학적 사고는 개인의 소유론적 사고와 무관해 보이나, 그것은 문제를 느낀 개인적 소유의식을 추상적으로 상정된 의식일반(누구든지)의 소유의식으로 일반화한 것이다. 추상적 소유의식은 지성의 판단을 통해 ‘진/위’와 ‘정/사’의 택일을 구성한다. 앞 항에 대하여 옳다는 소유적 집착은 동시에 뒷 항에 대하여 그르다는 배척적 집착을 낳는다. 소유와 배척은 같은 집착의 두 모습이다. 양자택일은 집착의 산물이다. 이중부정은 세상에 대한 소유와 배척의 이중적 집착을 초탈하는 길이다. 이중부정의 초탈을 비현실적인 도피의 길이라고 읽어서는 안된다. 소유와 배척의 집착은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는 ‘일방통행적’ 사고와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사고는 객관적 대상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사고와 유사하여 객관에서 의식에로 역행하는 사고가 불가능하다. 이런 사고는 결국 서구의 지성이 줄곧 주장해 온 지배적 권력의지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권력의지는 진리의지와 동격으로서 판단적(객관적) 지성이 진리라고 표상한 것은 최고의 존재자가 되어서 난공불락의 권위를 향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하이데거가 갈파한 바처럼, 서구의 자연과학이 끊임없는 진리의 투쟁사로서 앞 이론을 늘 부정하는 새 이론의 개발 극복사에 다름 아니고, 사회과학은 자가성(自家性)의 진리를 옹호하고 다른 진리를 허위로 배척하는 투쟁적 택일의 논리를 강화시켜 온 것과 다르지 않다. 원효가 갈파한 이중부정은 결국 세상에 인간이 일방적으로 설립하고자 하는 지성적 사유로서의 진리의 소유와 허위의 배척과 같은 그런 택일적 판단을 초탈하고자 하는 의미를 상징한다. 그런 이중부정은 세상을 보는 인간의 생각을 한없이 자유스럽게 한다. 어느 한 곳에 걸리지 않는 마음의 자유가 세상사를 도구적 실용으로 보게 하는 것을 중단한다. 그런 이중부정의 자유는 세상사를 인간에 의하여 대상에 일방적으로 매겨진 가치가격인 ‘진/위’의 택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자연성처럼 세상사를 만물의 기적(氣的) 상호거래의 존재방식처럼 읽도록 한다. 이것이 이중긍정이다. 만물은 서로 다르므로 각각 상호 의존한다. 나무의 존재는 비목(非木=흙/물/공기/햇볕/바람)의 존재와의 차이와 동시에 상호교섭에서 존재하므로 나무의 존재는 고유성(=自家性)이 없고, 나무는 비목과의 잡종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나무는 이미 비목과의 이중적 사실로서 인식된다. 나무는 개념이지만 그 개념은 인간이 지성적으로 매겨놓은 명사고, 실제로 나무는 비목들과 서로 얽히고 설키어 자동사적으로 일어난 생기적 사건(Ereignis=event)이나 또는 사라지는 사건(Enteignis=dis-event)에 불과하다. 하이데거는 나무와 같은 존재를 명사적으로 보지 않고 자동사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모든 존재의 여실한 사실이 명사적으로 인간이 판단하기 위하여 의식 앞에 세워놓은 고착적 대상이 아니라, 서로 돌고도는 회전문을 가능케 하는 ‘돌쩌귀’(樞)와 같다고 장자가 설파한 사상과 상통한다 하겠다. 돌쩌귀는 문을 돌거나 여닫게 하는 이중적 장치다. 모든 소유는 진/위와 정/사의 선택적 구조를 갖고 있으나, 모든 존재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오로지 생멸처럼 여닫는 이중성으로 엮어져 있을 뿐이다. 이것이 세상사를 환영으로 보려는 원효의 이중긍정이다. 세상사를 환영으로 보는 법은 자연성의 존재방식에 집착이 없고 일체가 흔적으로 오고 가고, 가고 오듯이, 사회생활을 그렇게 읽기를 종용하는 사상이다. 원효의 사유는 소유론적으로는 영구히 풀리지 않는 인간사회의 고통과 불행을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게 하는 자연성을 관조하는 마음의 법이겠다. 그러면 세상에 진리와 비진리가 없는가? 다음주에 보기로 하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금강권 개발사업 전면 재검토”

    충남도가 전임 도지사가 추진한 대규모 사업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간다. 이완구 도지사는 최근 “금강권 및 내포문화권 개발사업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고 말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도측은 12일 밝혔다. 이들은 심대평 전 지사가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충남의 핵심적인 대형 사업이다. 이 지사는 “금강권 개발사업과 연계된 백제문화권 개발사업의 경우 예산의 절반이 집행됐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효과가 없다.”며 “이를 극복하는 대책이 없으면 금강권 개발사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 지역에 외자와 기업유치가 부진하다.”면서 “진행중인 사업은 계속하되 금강변 경전철 건설 등은 재원과 개발방법을 재검토, 본질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또 “내포문화권 개발사업과 관련, 각 시·군에서 내놓은 계획에 내용이 없다.”면서 “재원조달 등에 대해서 확신이 설 때까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들 사업의 개발방법과 완공시기 등에 많은 변화와 차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기업 호감도’ 여전히 부정적

    ‘기업 호감도’ 여전히 부정적

    우리 국민의 기업 호감도는 여전히 부정적이다.100점 만점에 48.7점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성인남녀 2043명을 대상으로 ‘2006년 상반기 기업호감도 조사’를 실시해 1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호감지수(CFI)는 48.7점(100점 만점)으로 보통 수준인 50점을 밑돌았다. 그러나 기업호감지수는 첫 조사 시점인 2003년 12월 38.2점에서 지난해 11월 48.5점으로 높아진 데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소폭 상승해 기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한상의는 기업호감지수가 그나마 상승 추세를 나타낸 것은 사회공헌 활동과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데다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분야별 지수는 국제경쟁력(73.8점), 생산성 향상(63.4점), 전반적 호감도(49.4점)는 평균을 웃돈 반면 국가경제 기여(45.7점), 사회공헌 활동(37.3점), 윤리경영 실천(20.0점) 등은 평균을 밑돌았다. 기업에 호감이 가는 이유로는 국가 경제에 기여(55.8%)와 일자리 제공(22.3%), 국위 선양(12.4%) 등의 순으로 꼽혔다. 호감이 가지 않는 이유로는 ▲분식회계 등 비윤리경영(31.8%) ▲경영권 세습 등 족벌 경영(24.2%) ▲근로자 희생 강요(13.9%) 등을 들었다. CFI는 남자(49.5점)가 여자(47.9점)보다 높았으며,50대 이상의 고령층(51.9점)과 40대(50.3점)가 30대(45.4점)와 20대(47.4점)보다 높았다. 지역별로는 대구(51.6점)와 경기(50.7점), 제주(50.3점) 등이 높은 반면 광주(43.0점)와 울산(44.5점), 대전(44.6점)은 평균보다 낮았다. 한편 국민 10명 중 4명(38.4%) 정도는 기업 활동의 본질을 ‘이윤 창출’이 아닌 ‘부의 사회 환원’으로 보고 있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평등주의적 성향을 반영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사진작가 구본창 전시 30일까지

    사진작가 구본창이 조선 백자의 본질을 사진작업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전시를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열고 있다.30일까지. 작가는 “백자는 무늬없이 뽐내지 않는 규방여인과 선비의 이미지가 제격인데, 박물관 유리상자에에 갇혀 차가운 이미지로만 보여지고 있다.”며 “사진작업을 통해 백자 자체의 존재감과 떨림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02)735-8449.
  • 石頭 김일(金一), 박치기 1만번 돌파!

    石頭 김일(金一), 박치기 1만번 돌파!

    서울에서 「프로·레슬링」의 「아시아·타이틀」 방어전을 가질 김일(金一)이 1천5백경기 돌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안고 돌아왔다고 「프로·레슬링」계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그의 특기인 박치기를 한 경기에 7회씩 했다면 1만회를 돌파한 셈. 「프로」나 「아마추어」를 가릴 것 없이 또 단체경기나 개인경기를 따질 것 없이 1천5백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얼마전 「프로·복싱」의 김현(金炫)이 1백경기를 치렀다고 「프로·복싱」계의 화제를 휩쓸었던 일을 생각하면 김일(金一)의 1천5백경기 돌파는 15배나 비중이 무거운 화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프로·복싱」과 「쇼」적 색채가 짙은 「프로·레슬링」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김일(金一)이 역도산(力道山)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1959년. 따라서 김일(金一)의 「프로·레슬러」경력은 올해로 만 10년을 넘는다. 만 10년 동안에 1천5백경기라면 평균 1년에 1백50경기를 치른 꼴이며 한달에 12번 내지 13번을 「매트」위에 올라간 셈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싸우는 진지한 결기라면 어떻게 일주일에 서너 차례나 경기를 가질 수 있는가?』 라고 잦은 경기 회수를 들어 「프로·레슬링」이 「쇼」적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려는 주장도 있다. 또 「프로·레슬링」에 공식기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복서」만해도 그가 활약하는 실적에 따라 은퇴할 때까지는 O승 O패 O무승부라는 기록이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4천명을 넘는 「레슬러」들이 그 넓은 지역을 돌면서 일주일에도 몇차례 경기를 치르는데다 통할 단체만해도 여러개가 존재하고있는 실정이라 공식기록이란 있을 수도 없고 또 설사 그런 기록이 있다해도 「쇼」적 요소를 지닌 「프로·레슬링」의 본질을 이해하고 즐기는 미국의 「팬」들은 그런 기록보다는 하나 하나의 「게임」내용에 보다 흥미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를 구태여 쳐든다면 그래도 실력 위주의 정통파(正統派) 「레슬러」의 마지막 기수(旗手)로 꼽혔던 철인(鐵人) 「루·테즈」가 49년 11월부터 55년 5월까지 NWA(미국 「레슬링」협회) 「챔피언」으로 군림하면서 세운 9백 36전 연속무패의 기록이 의심받지 않고 받아들여질 정도다. 이 기록도 「루·테즈」가 하도 뛰어난 「레슬러」였던 데다가 「챔피언」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한번도 지지않은 놀라운 기록이 뻗어났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공식기록이 없고 잦은 경기 회수를 치러 「쇼」적 요소를 지녔다해도 거의 한시간동안 무거운 「레슬러」를 상대로 「다이내믹」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피땀나는 「트레이닝」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움직임을 일주일에 서너차례, 많을 경우에는네댓차례씩 되풀이 한다는 것은 역시 그 「레슬러」의 체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金一)의 1천5백 경기 돌파가 사실이라면 그 기록자체보다도 오히려 10년동안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만큼 체력이 뛰어난 국제적인 「레슬러」였다는 점에서 그 뜻을 찾아야 될 것이다. 11월 9일 장충체육관에서 김일(金一)이 일곱 번째로 방어한다는 「아시아·타이틀」은 14년 전 역도산(力道山)이 제정한 것으로 63년 역도산(力道山)이 사망한 뒤 비어 있었으나 김일(金一)의 간청으로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도 부활에 동의, 작년 11월 서울에서 「타이틀」 부활전을 치러 김일(金一)이 미국의 「오스틴」을 물리치고 「타이틀」을 차지한 뒤 오늘에 이른 것. 이번 김일(金一)의 「타이틀」에 도전하는 「레슬러」는 미국의 「미스터·아토믹」이라는 복면 「레슬러」로 10년 전 역도산(力道山)과는 마주친 일이 있는 「베테랑」. 「멕시코」가 원산지라는 복면「레슬러」는 제각기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복면을 쓰고있다. 그 이유란 대략 크게 나누어 4가지. 첫째 나이든 「레슬러」가 자기 나이를 감추기 위해서 쓴다. 육체의 노쇠는 적당한 운동으로 어느정도 감출 수있으나 벗겨지는 이마, 얼굴의 깊은 주름살 등은 어쩔 도리가 없어 복면을 쓰게되는 것이다. 둘째 과거에 신통치 않았던 「레슬러」가 새출발을 할 경우 지난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도 쓴다. 그대로 「매트」위에 올라갔다가는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생명이라고도 할 인기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복면을 쓴다는 것. 셋째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기위해서도 쓴다. 몸은 좋으나 얼굴자체가 우습게 생겼거나 너무 순해보일 때 이를 감추기 위해서 쓴다. 네째 정체가 탄로나면 곤란할 경우에도 쓴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의 대학생 「아마추어·레슬러」가 돈을 벌기위해 복면을 쓰고 「프로·레슬러」로 활약했다가 정체가 탄로되어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당한 사건이 있다. 다른 사람 아닌 복면 「레슬러」의 우상적 존재였던 「제브라·키드」의 젊었을 시절 이야기다. 따라서 복면 「레슬러」들은 복면이 벗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몇해 전 우리나라에 찾아왔던 「타잔·조로」라는 복면「레슬러」의 「마스크」를 김일(金一)이 벗겨버린 일이 있다. 막상 「마스크」를 벗기고 보니 나타난 얼굴은 이마가 많이벗겨진 독일계 「레슬러」인 「한스·모티어」였다. 이 「한스·모티어」는 「프랑스」영화배우 「브리지도·바르도」의 경호원 노릇도 했으며 그 여자의 구애를 물리쳤다고 선전하면서 다니는 사나이다. 그러나 이번 김일(金一)과 마주칠 「한스·모티어」의 정체는 이미 미국에서는 밝혀져 있다. 본명은 「프라이드·스티븐스」로 금속회사의 기사로 있으면서 부업삼아 「프로·레슬러」로 활약하기로 결심했단다. 장영철(張永哲)과의 불화가 해소되지 않아 국내흥행을 가질 「무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이 김일(金一)이 이번 「타이틀」방어전을 서울에서 갖는 까닭은 적어도 1년에 한 두 차례의 국제경기를 치르면서 또다시 지난날의 황금시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두현(高斗炫)기자 [선데이서울 69년 11/9 제2권 45호 통권 제 59호]
  • 30대 ‘토종박사’ 홍성철씨 서울대 교수로 특채

    30대 물리학자가 이례적으로 서울대 교수에 특별채용됐다. 생물물리학을 전공한 올해 36세의 홍성철 박사로 서울대는 지난 6일 홍 박사를 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조교수로 특채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가 공모절차 없이 교수를 특채한 것은 2003년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59·음대)씨에 이어 두번째다. 홍 박사는 1994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석·박사 학위도 모교에서 받은 ‘토종박사’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후 과정부터 새로운 영역인 생물물리학 분야를 개척, 일리노이대와 하워드휴즈 메디컬인스티튜트에서 생체분자 쪽을 연구해 왔다. 생물물리학은 물리학을 생물학에 확대 적용해 생명현상의 본질을 물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영역으로 최근 바이오 산업의 급부상과 함께 각광받고 있다. 그는 “모교에 와서 좋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간단히 소감을 밝혔다. 오세정 자연과학대 학장은 “신생 분야의 우수 인재들은 해외 명문대의 채용 제의를 많이 받기 때문에 공채만을 고집하다간 눈앞에서 놓칠 수 있다.”고 특채 배경을 설명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지하 시인 ‘2년만의 외출’

    김지하(65) 시인이 ‘새벽강’ ‘비단길’(시학) 등 두 권의 시집을 동시에 내놨다.‘유목과 은둔’ 이후 2년 만이다.“볼펜과 수첩을 늘 갖고 다니며 쉼없이 쓴” 결과다. 시집에는 시인이 추구하는 생명존중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새벽강’은 생명의 근원적 본질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담았고,‘비단길’은 중앙아시아와 바이칼·캄차카 등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생명과 평화의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달라졌다.“내게는/분명/내 길이 따로 있다.//그것을/잊었구나.//마지막까지//이 길.//이 외줄기 흰 길로//혼자 가리라//바로.”(‘바로’전문)처럼 시어는 간결하고, 내용은 단순해졌다.“예술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이 시대에 이미지와 비유의 범람은 낭비”라는 시인은 “불필요한 시어를 줄이고, 행갈이와 줄임, 틈의 여백을 늘리는 것도 참된 생명의 체현”이라고 말했다.시작(詩作)에서 꼭 필요한 시어만 취하는 행위도 환경운동의 연장이라는 설명이다. 활발한 생명운동 활동으로 최근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시인은 ‘세계생명문화포럼’을 통해 동서양 화합을 모색하는 일을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다. 생명과 평화를 콘텐츠로 한 한류가 그 열쇠라고 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신문 제정 제14회 공초문학상 수상 성찬경 시인

    서울신문 제정 제14회 공초문학상 수상 성찬경 시인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성찬경(76·예술원 회원) 시인의 집에는 수많은 ‘고아들’이 산다. 생김새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낡은 헬멧, 녹슨 타자기, 고장난 라디오, 세탁기, 깨진 유리조각들…. 몽땅 길에서 주워 온 것들이다. 남들 눈에는 쓸모없는 고물이지만 시인에게는 마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처럼 측은한 ‘고아들’이다. 마당 입구에 걸린 ‘응암동 물질 고아원’이라는 간판이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40평 마당 가득 채운 ‘물질 고아들´ “사람에게 인권(人權)이 있듯 물질에도 물권(物權)이 있습니다.‘물질 고아원’은 물질 학대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표시이지요.” 40평 남짓한 마당을 가득 채운 ‘물질 고아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빛났다.“꼭 보여줄 게 있다.”며 인터뷰 장소를 집으로 정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구상 시인을 문학 스승으로 여긴다.”는 성 시인에게 이번 공초문학상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구상 시인이 가장 흠모하는 분이 공초 선생이셨는데 그 분의 뜻을 기리는 상을 받다니 과분한 영광”이라며 기뻐했다.1956년 조지훈 시인의 추천으로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한 성 시인은 “당시 명동 청동다방에서 하루종일 담배를 물고 선후배 동료 시인들에게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는 공초 선생을 먼발치서 바라보곤 했다.”고 회상했다. “흔히 ‘마음을 비운다’고 표현하는 데 공초 선생만큼 완벽하게 무욕,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다 간 시인은 없습니다. 그때는 젊어서 잘 몰랐는데 요즘에 와서야 그 분의 크기와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시인은 공초의 시 가운데 ‘방랑의 마음’ 첫 구절인 “흐름위에/보금자리 친/오, 흐름위에/보금자리 친/나의 혼”을 “우리 시문학 100년사에 가장 빛나는 절창”으로 꼽았다. ●과학자 꿈꾸다 문학에 눈떠 진로 수정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았다.‘마음과 얼굴’이 수록된 시집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한국문연)는 시력 반세기를 기념해 지난 3월에 출간한 신작 시집이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를 꿈꿨던 시인은 고교 시절 외사촌인 서기원(소설가), 박희진(시인)과 어울리며 문학에 눈을 떠 문과로 진로를 바꿨다. 그리고 서울대 영문과 재학중이던 스물일곱살 때 시단에 이름을 올렸다. 등단 초기부터 시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밀핵시(密核詩)’라는 실험적인 시 이론에 몰입했다.“밀핵시는 시가 담을 수 있는 의미의 밀도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금, 다이아몬드, 라듐 등 부피는 작지만 중량은 큰 광물처럼 최소한의 단어에 최대한의 의미를 담으려는 것입니다.” 말의 낭비를 줄이고,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시도는 의미의 핵심 부분만을 간명하게 남기는 ‘요소시’로 이어졌고, 마침내 오직 한 글자로만 이뤄진 ‘일자시’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출간한 일곱번째 시집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문학세계사)에 수록된 ‘똥’이나 ‘흙’은 단어 자체가 그대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다. 이같은 독특한 시적 경향은 그를 시단의 주류에서 한 발짝 멀어지게 했다. 시인은 이에 대해 “우리 시단의 시가 주로 여성적이고, 식물성인 데 비해 내 시는 남성적이고 광물성”이라며 “시단에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소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시를 써왔지만 그에게 시란 여전히 ‘목숨의 피와 땀을, 그리고 심로(心勞)의 제물을 먹으며 자라는 그런 것’이다.“고뇌를 밥으로 바꾸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평생 이 직업에 매달려 왔는데도/나는 아직도 이 직업이 돌아가는 얼개를 잘 모른다.”는 시인은 “고뇌의 뿌리에/해학을 꽃피게 하는 것이 이 직업 최고의 기술이지만/그 유현한 핵심적 골자를 터득하려면 멀었다.”(‘고뇌와 밥’중)고 고백한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시를 쓰는 일 역시 공짜가 없고, 속임수도 통하지 않습니다. 좋은 시는 무게와 깊이가 있으면서도 읽을 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현상에 혹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물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요즘 젊은 시인들에겐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낭독회 313회… 독자와 소통 넓혀 창작뿐만 아니라 독자와의 소통을 넓히는 일에도 열심이다.1979년 구상(2004년 작고), 박희진과 함께 창설한 시 낭독행사 ‘공간시낭독회’가 이번 달로 313회를 맞는다. 시낭독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취지의 문학 퍼포먼스 ‘말예술’ 공연도 1996년부터 꾸준히 열고 있다. 시인 일가는 예술가족으로도 유명하다.4남1녀 중 장남 기완씨는 시인, 차남 기선씨는 지휘자, 셋째인 딸 기영씨는 시나리오 작가다. 아내 이명환(68)씨도 얼마 전 수필집 ‘지상의 나그네’를 냈다. 아들의 시에 대해 묻자 아버지는 “우리 세대와는 다른 디지털 감성에 깜짝 놀란다. 나는 쓸 수도 없고, 쓰지도 않을 시”라며 웃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심사평 올해로 시력(詩歷) 반세기를 맞는 성찬경 시인은 전통적인 서정시나 역사적 현장성의 사회의식의 시가 주류를 이뤄온 한국 시단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학의 이단아인데, 따지고 보면 공초 선생 또한 근현대 시단의 한 이단아였다. 이단이어서 좋다는 뜻이 아니라 두 시인이 추구해온 역정은 다른데도 도달점에 가까워지면서 이렇게 닮을 수가 없다는 점이 새삼 소중하게 평가받은 것이다. 가히 한국 현대시단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이한 ‘시학적 개성’이 돋보인다는 뜻이다. 공초 선생이 불교를 중심한 동양사상의 주관적 인식론에서 출발했다면, 성 시인은 가톨릭적 가치관으로 자연과학적인 존재론에서 시적 형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전자가 인과응보에 의한 존재의 총체적인 인식론에 자리했다면, 후자는 약간은 난삽한 과학과 문학이 혼음한 듯한 존재의 분석론에 치중해 왔다. 공초의 시가 서정적 감성만으로는 근접하기 어려운 불교와 동양사상의 합성 위에 펼쳐지는 오묘한 사유의 언어라면, 성 시인의 시세계는 모더니즘 이론만으로는 근접이 어려운 요인을 간직한 ‘광물성’적인 미의식의 결정체로 구축돼 있었다. 그런데 성 시인은 최근 시집에서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탁류 속의 은둔자였던 공초의 시세계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는 가톨릭과 불교는 물론이고 과학과 문학, 식물학과 광물학까지도 핵 융합시켜 모든 존재의 진실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터득한 것 같다. 시 ‘마음과 얼굴’은 바로 이런 성찬경 문학의 한 꼭짓점을 이루고 있다.“보아서 좋은 것은 본질도 곱다./ 착한 모습은 착한 마음의 거울”이라고 외모만 보고도 속내의 가치를 판단하는 비의를 전수하는 이 시는 가히 화엄의 세계에 이른 시인의 원숙함이 스며 있다. 설사 “판독을 잘못하여 더러 속긴 하지만/풀밭에 둥실 뜨는 달빛처럼/모습을 칠하는 본질”이라는 구절에서 존재와 본질이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는 선시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런 단계에 이르기까지 이 시인은 우주율(宇宙律), 밀핵시(密核詩), 요소시(要素詩), 반투명 이론이라는 숱한 관문을 거쳤다. 그 미학적 고행이 시인으로 하여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다는(시집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를 연상하시라) 터득을 가져온 셈이다. 실로 반세기 만의 득도로 이룩된 이 시집은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세대에게 두루 읽힐 수 있는 명상시의 오롯함을 간직하고 있다. 즐거운 상상 여행길 같다. 문단 선배에게 드리는 공초문학상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심사위원 이근배·임헌영·천양희 ■ 성찬경 시인은 ▲1930년 충남 예산 출생 ▲1956년 ‘문학예술’에 조지훈 추천 시 ‘미열’‘궁’‘프리즘’으로 등단 ▲1964년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79년 구상·박희진 등과 함께 ‘공간시낭독회’ 창설 ▲1995년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정년퇴임, 월탄문학상 수상 ▲199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0년 보관문화훈장 수상 ▲200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작품집 시집 ‘화형둔주곡’(1966) ‘그리움의 끝을 찾아서’(1989) ‘묵극’(1995)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2005)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2006)등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7)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7)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사회생활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되는 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회생활에서 인간은 온갖 괴로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철학사상은 이 사회생활을 큰 화두로서 취급했다. 예컨대 순자 사상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군서생활을 하듯이 생존을 위한 사회적 규칙준수의 법을 지능적으로 잘 본받으면, 사회생활의 악인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순자는 사회성원에게 생물학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것이 최우선적 정치의 목적이라 여겼다. 그러나 맹자 사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사회생활에서 이기심이 모든 악의 진원지이므로 저 이기심을 도덕심으로 바꾸면, 인간은 양질의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순자의 철학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의 현실주의 사상과 유사하고, 맹자의 철학은 18세기 프랑스의 루소의 이상주의 사상과 이웃하고 있다. 이기심을 다소 인정하는 현실주의든 이기심을 부정하는 이상주의든 다 행복한 사회생활의 창조방식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좋은 사회생활의 창조를 위한 철학사상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다. 로마사에 정통한 20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인 폴 벤은 그의 저술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서 현실주의적 사회철학의 경향을 ‘백성을 양떼로서’(people as flock) 생각하는 사고와 연계시키고, 이상주의적 사회철학의 경향을 ‘백성을 어린이로서’(people as child) 생각하는 사고와 유관하다고 분류했다.‘백성을 양떼로서’ 생각하는 현실주의적 정치의 유형은 백성을 배불리 먹이며 포식자로부터 양떼를 잘 지켜주는 것을 으뜸의 사명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하여 ‘백성을 어린이로서’ 생각하는 이상주의의 정치는 아버지의 심정처럼 자식이 부도덕한 일에 탐닉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키우는 것에 일차적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로마정치가 원로원 중심일 때에 전자가, 황제 중심일 때에 후자가 각각 유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 두 정치이념의 성향은 강조점의 상대적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이지, 흑백 논리처럼 단순한 유무의 문제가 아니겠다. 나는 로마사에 근거한 저 두 유형의 정치 스타일이 모든 역사에 거의 다 적용될 수 있는 이념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저 두 유형의 어느 쪽이 실질적 사회생활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다. 이 글은 저 두 유형이 공통적으로 하나의 큰 한계에 직면해 있음을 말하고, 제삼의 길이 무엇인가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공통의 한계가 택일적 사고방식을 사회철학의 기본논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주의는 늘 이/해(利/害)의 대립에서 전자를, 이상주의는 늘 선/악(善/惡)의 대결에서 역시 전자를 선택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현실주의는 경제주의고, 이상주의는 도덕주의다. 이기적인 경제와 반이기적 도덕은 서로 궁합이 잘 맞지 않아 상충적이지만, 다 지성(지능의 철학적 표현)의 분별력 위에 공통적으로 서 있다. 경제적 이익은 나에게 좋은 것이고, 도덕적 선은 내가 속한 사회에 좋은 것이다. 칸트가 밝힌 사회생활의 본질로서의 ‘비사교적 사교성’(26회 글)에서 비사교성은 경제적 이익과 연관되고, 사교성은 도덕적 선과 직결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경제와 도덕의 양자간 우선택일의 문제의식으로 일관되어 왔었다. 순자의 철학은 경제우선의 사상이고 벤이 본 ‘양떼로서의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이념과 상통하고, 맹자의 철학은 도덕우선의 사상이고 벤이 본 ‘어린이로서의 백성’의 이념을 연상시킨다. 전자는 나에게 좋은 것이고, 후자는 사회에 좋은 것이다. 다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맹자의 사상은 좀 애매한 데가 있다. 그는 이기적 이(利)와 도덕적 선(善)을 각각 다른 것처럼 분리시키기도 하였고, 그 둘을 다 좋은 것(好)으로 수렴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맹자의 모호한 입장은 이유가 있다. 분리의 이유는 이기심과 사회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뜻이고, 둘 다 좋은 것으로 수렴되는 것은 이익이든 선이든 다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상통하기 때문이다.‘좋다’(好=good)라는 말은 경제적 실용이나 도덕적 선에 다 적용된다. 경제적이든 도덕적이든 좋은 것은 분별심의 작용에 기인한다. 나의 지성이 분별하고 판단하여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을 배제하는 택일의 논리를 다 공통으로 지닌다. 지성은 분별과 택일의 논리다. 그런데 인류역사가 그동안 몸바쳐 왔던 이 분별과 택일의 논리가 세상을 다 평안하게 하고 구원해 주는 희망의 사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적 이익의 분별이 사회생활에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얼음장수와 우산장수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익세계의 본질이다. 도덕적 선은 이와 달리 사회적 일치의 화음을 낳는 것으로 그동안 인류는 착각해 왔다. 늘 이상주의가 그 공상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에 비하여 명분적 우위를 뽐내면서 잘난 체해 왔다. 그러나 도덕적 인(仁)의 가치는 보통 좋으나,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어리석음으로 바뀌어 작전의 패배를 낳고, 의(義)의 가치는 원칙으로 좋으나, 깡패집단의 의리로 변하고, 직(直)의 가치도 정직하다는 점에서 옳으나, 너무 예리한 칼날처럼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주위를 숨막히게 하며, 용기의 가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을 집행하는 가치나, 그 이면에 늘 거칠고 난폭한 폭력을 안고 있다. 이차대전시 중죄인의 집단으로 구성된 미 육군특공대의 혁혁한 전공의 실화는 용기의 이중성을 잘 그려준다. 사회를 떠나서 인간의 존재방식은 불가능하고, 사회생활 안에서 늘 무수한 이해관계와 도덕가치관의 갈등으로 인간은 괴롭다. 또 인간은 경제가 망가지고 도덕이 타락하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다. 어떻게 경제와 도덕이 다 건강하면서 인간이 사회적으로 괴로움을 덜 받고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여기서 원효가 사유한 길을 다시 음미한다. 그의 사유는 철학적으로 이중부정과 이중긍정의 길을 현시한다. 이것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택일의 사유가 지니는 분별적 지성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택일적 경제주의는 이기적 아집을 낳고, 택일적 도덕주의는 위선적 법집을 낳는다. 위선적 법집은 순수선이 사회적으로 불가능한데, 도덕주의가 순수선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그 주장이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절대적 진리라고 우기는 고집이 결국 법집을 낳고, 그 법집은 아집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와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기심과 다른 대의명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집과 법집을 탈출하는 길로서 이중긍정의 사유를 원효가 제시한다. 얼음장수와 우산장수의 손익을 아주 다른 별개의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익과 손해는 좋고 흐린 날씨처럼 교대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이익과 손해는 없으므로 이중긍정의 차원에서 내가 웃을 때에 늘 우는 사람이 동시에 이웃에 있다는 것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원효는 설파한다. 이익의 이면에 손해가 엎드리고 있고, 손해가 이익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이중긍정의 사고가 세상의 사실임을 자각케 한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노자가 언명한 바와 같이 ‘선은 불선의 스승이고, 불선도 선의 자산’이라는 말을 원효는 동의한다. 선이 불선의 스승이라는 말은 쉽게 알 수 있는데, 불선이 어떻게 선의 자산이 되나? 그것은 불선이 선을 증장(增長)시킨다는 의미겠다. 불선이 선의 바깥에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고, 선의 이면에 은닉되어 있기에 불선은 선의 배설물과 같은 셈이다. 모든 선이 불선을 머금고 있으므로 선은 오만 방자해지거나 독선의 아만을 띠지 않게 된다. 자기의 선행이 절대적이 아니라 불선의 역기능을 이미 세상에 뿌렸는데, 절대선을 사회에 심어놓은 것처럼 위선자들이 설친다. 그래서 노자는 불선이 선의 자산이라고 언급했겠다. 원효는 노자처럼 선/악으로 명칭을 대립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불선, 악/불악의 이중성처럼 상관적으로 세상보기를 종용한다. 그 양면성이 곧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로서 차연(差延=differance)(26회 글)이다. 차연은 차이(差異)와 연기(延期)의 인조적 합성어인데, 차이가 변증법적 모순의 관계가 아니고 상보적으로 상대방의 것이 자기에게 연기되어서 서로 이중적 잡종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현대 해체철학의 용어다. 이런 이중긍정이 사실상 성립되기 위하여 원효는 먼저 이중부정의 사고방식이 선결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중긍정은 세상의 사실을 보는 방식이고, 이중부정은 그 이중긍정이 이원성(duality)으로 빠지지 않고 이중성(duplicity)으로 인식되게 한다. 선/불선, 악/불악의 이중성은 각 변이 자기 동일성을 지니는 고정적 실체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이 있기에 자기도 성립하므로 각각은 다 상대방의 흔적에 불과한 셈이다. 도장의 양각과 음각의 양면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리라.(26회 글) 그러므로 양각과 음각은 다 그 자체 자기 것이 없는 공(空)이다. 모든 색(色=물질)의 이중긍정적 구조(善/不善)는 자기 것이 없는 이중부정(非善/非不善)의 공과 같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생활이 괴로움의 연속이므로 그 괴로움의 연속에서 탈피하면서 경제와 도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은 세상사를 이중긍정적인 포괄법으로 읽는 길이라고 원효가 갈파했다. 포괄법은 세상사를 호/오와 선/악의 택일법으로 보지 말기를 종용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시건방지게 세상을 보면서 자기 것은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절대적으로 악마적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런 이중성의 긍정이 가능하기 위하여 원효는 이중부정의 초탈법을 또한 익힐 것을 종용한다. 초탈법은 세상사의 일체가 다 인연법에서 생긴 환영(幻影)이므로 이익과 선 앞에서 좋아 흥분하지 말고, 손해와 불선 앞에서 좌절하지 말 것을 제의한다. 초탈법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의 사상이 아니다. 사회생활의 기준이 지성이면, 인간은 호/오의 선택에 갇힌다. 철학의 종말은 지성의 종말과 같다. 과학에 지성을 맡기고, 철학은 세상사가 다 환영임을 깨닫게 하면서 영성의 길을 떠나려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문화마당] 사랑 상실의 시대/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며칠 전 지하철을 탔는데, 푹푹 찌는 더위에 에어컨도 힘을 잃었는지 등줄기로 줄곧 땀이 흐를 정도로 무더웠다. 주위 사람은 안중에 없는 듯, 휴대전화로 시끄럽게 통화하는 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등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앞에 앉은 아주머니 한 분이 신경질적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출입문 쪽을 째려보고 심하게 혀를 차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보니, 젊은 남녀가 마주 보고 거의 껴안은 상태에서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아마도 더운 날씨에 서로 꼭 껴안고 노골적인 애정 표현을 하는 젊은 그들이 매우 못마땅한 모양이었다.“덥다 더워”를 되풀이하면서 부채질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시원한 냉수 한 잔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 자주 접하면서 그들의 사랑 표현법에 다소간 익숙해져서 그런지 젊은 남녀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게는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커플 반지, 커플 티는 기본이고, 만난 지 100일 기념 혹은 1주년 기념 선물도 하고, 심지어 차량에 자신의 이름과 연인 이름의 이니셜을 새겨두고 그 가운데 하트 표시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세대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고 싶었다. 철학자 우나무노는 사랑을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과 연결시키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독한 존재이고, 그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서 근원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진 본질적 고독 때문에 한평생 사랑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사랑이 그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사랑이 그토록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사랑이 부재하는 삭막한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일까? 상품물신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를 두고 사랑 상실의 시대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유독 그 말이 요즘에 와서 절실히 와닿는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상처 입히는 일이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서로를 껴안고 사랑하기보다는, 증오의 화신처럼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듯 으르렁거리면서 치고받는 험악한 장면을 사회 도처에서 적지 않게 목도한다. 지하철의 젊은 남녀의 사랑 표현법이 다소간 지나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삿대질하고 욕설하면서 싸우는 것보다는 아름답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사랑 상실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익만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헐뜯고 모함하는 기성세대의 작태에 있을 것이다. 남을 지배해야 내가 산다는 약육강식의 논리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 젊은 세대의 진솔하면서도 적극적인 사랑과 그 표현방법이야말로 기성세대가 배워야 할 측면일 것이다. 청마 유치환은 ‘행복’이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중략)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했다. 청마의 시구처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사랑하자. 옷깃을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그 인연으로 맺어진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따스하게 감싸안아 보자. 사람이 사람을 만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사랑이 충만할 때, 우리들 모두 숙명적인 고독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사랑 가득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 ‘중국이라는 거짓말’ 한국어판 낸 佛 석학 기 소르망 내한

    “중국의 경제력을 과대평가해선 안됩니다. 중국 전체의 경제규모는 이탈리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이탈리아가 지금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위협은 중국의 경제력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본질입니다. 중국은 영원할 수 있지만 공산당은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62)이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과 빈곤문제 경시 등을 비판한 최근작 ‘중국이라는 거짓말’(문학세계 펴냄)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서울에 왔다. 지난해 10월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개관에 맞춰 방한한 이후 8개월여만이다. 기 소르망은 4일 오후 서울 봉래동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경제발전은 저임금으로 국민을 착취해 얻은 결과일 뿐”이라며 “중국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부들은 일종의 ‘정신적 빈곤상태’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펴낸 책은 경제개혁 과정에서 소외된 중국의 한 마을에서 1년간 체류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기 소르망은 “중국 정부는 현재 1960∼70년대 마오쩌둥 시대와는 또 다른 성격의 독재를 하고 있다.”며 “중국이 저임금으로 국민을 착취해 수출상품을 만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발전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소개했다. 기 소르망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민주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민주주의를 갖추고 시작한 인도 같은 나라도 있어요. 한국과 타이완의 경우 민주주의 욕구가 분출된 것은 본격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지기 이전이지요.” 기 소르망은 중국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에 대해서도 “공산당이 적대감을 보이고 있으며, 아마도 제어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한류가 불법복제 DVD와 TV,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데다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문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 소르망은 북한의 인권문제와 관련,“현재 북한의 인권상황은 1960년대 중국의 인권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며 “북한 인권상황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근태의장 “성장·복지 아우르는 ‘제3의길’ 걸어야 난관 극복”

    김근태의장 “성장·복지 아우르는 ‘제3의길’ 걸어야 난관 극복”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소상하게 밝혔다. 특히 당·청 관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결정해도 가지 않을 수 있고, 당이 결정해도 대통령은 따로 갈 수 있다.”고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따로 놀면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5·31 지방선거 참패 원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도 그 충격으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고 지지율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상처에 소금이 뿌려진 것 같다. 기대에 한참 못미친다는 실망이 컸고 그것을 커버하고자 하는 말과 태도가 거슬렸다. 반감이 쌓이는 계기가 됐다. 서민경제가 안 좋은 것이 겹쳐져 최악이었다. ▶참패 원인이 개혁 프로그램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점과 국민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쪽에 너무 신경쓴 측면, 그리고 이른바 ‘싸가지 없는 말’ 때문에 감점됐다는 지적이 있다. -‘싸가지 없다.’는 말은 더 안 썼으면 좋겠다. 여론조사 결과, 혼선과 혼돈, 당·정·청 불화로 정책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이 50%,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 30%, 개혁 피로가 17%쯤 됐다. 그게 맞다고 본다. ▶취임 일성으로 성장과 복지, 모두 다 신경쓰겠다고 했다. 김근태식 패러다임이 뭔가. -‘제3의 길’이다. 지금보다 (GDP)1% 정도는 추가 성장해야 난관과 과제를 극복할 수 있다. 정경유착적이고 발전주의적 국가모델을 사용해서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왔다.IMF 10년 해보니,‘(미국이 내세우는 시장경제원칙인)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슈퍼파워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치명적인 것은 시장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저성장이다. 추가적 성장을 통해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 쏟아붓는 복지를 할 수는 없다. ●“한·미FTA 외교안보 논리로 접근해선 안돼” ▶한·미FTA와 관련, 추진 속도에서 청와대와 시각을 달리하는데, 계급장 떼고서라도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계급장 떼고 하자.’는 것은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었다.‘계급장 떼고’라는 말, 이제 잊어달라. 한·미FTA가 그에 버금가는 것임은 틀림없다. 다자라운드의 합의·발전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문제는 미국은 전세계 슈퍼파워라는 것이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미국이 왜 한·미FTA를 우리와 먼저 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국민에 보고해야 하고 공감대를 얻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정권으로 넘기자는 것인가. -미국이 정한 신속협상 기한이 내년 6월까지다. 기간을 정해서 하면 밀리는 것이다.‘의회로 가면 보호주의자의 발언권이 세진다는 것’은 참고 수준으로 둬야 한다. 둘째, 경제 논리로 접근해야지 외교안보 논리로 접근해선 안된다. 끝으로 일본과는 추진하다 중단되지 않았나. 유념해야 한다. ▶얼마전 ‘한나라당 계열은 두번의 대선에서 심판받았고 민주화 세력은 집권으로 보상받았다.’고 했다. -국민은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한다.‘민주화운동 했으니까 다시 선택해달라.’고 하면 선택도 안 해주고 경쟁력을 높일 수도 없다. 자부심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훈장처럼 내놓고 하는 것은 안 된다.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서 지지받고 선택받아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지금 이 당으로 대선 치를 수 있나. 신장개업해야 하나. -국민이 명령하는 대로 가겠다. 출발로서 두가지를 하겠다. 하나는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 함께 하겠다. 두번째는 당과 대통령, 정부가 따로 놀면 안된다. 그런데 개발독재시대, 그후 한나라당(계열) 집권 때는 ‘대통령이 결정하면 나머지는 간다.’였다. 지금은 수평적 관계다. 또 대통령이 단임제여서 선거에 아무래도 관심을 덜 쓸 수밖에 없다. 헌정적인 결함도 문제가 있다. ▶차기 대선 전에 개헌할 생각은. -대통령 임기 4년으로 줄이고 중임으로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현재 구도에서 다음 대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다음 대선에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걸고 하자.’고 한다. 우리는 내년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데. -국민이 북한에 대해 다소 거리감을 느끼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호소한다. 부탁한다. 경의선 연결시 보수 언론들이 ‘북한 탱크 내려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저는 못사는 북한주민 수백·수천명 내려오면 어찌하나 걱정했다. 우리가 먹여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걱정한다. 지금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초기 선행투자다. 선행투자가 있어야 발전과 도약도 가능하지 않나. ▶내년 대선에서 제시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적 경제다. 추가 성장을 통한 복지의 선순환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지 비전을 내는 것이다. ●“개각, 청문회에서 의견 제시할 수 있다” ▶당청 관계와 관련,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교육부총리 내정으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개각과 관련돼 의원들 분위기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소속 의원들이 의견 개진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인사가)행정부를 움직이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정하기 전까지는 의사를 전달하지만 그 이후에는 따라야 한다. 다만 청문회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켜주길 바란다. ▶대선 레이스 완주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대선은 먼 훗날 얘기다. 지방선거에서 무서운 심판을 받았고 그에 응답해야 한다.7·8월에 당 조직을 정비하고 의원들을 뒷받침해서 9월 정기국회 준비해야 한다. 지금 (대선 얘기하고)그러면 당도 망하고 저도 망한다. 사람이라는게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심판받는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호남표만으로 미래 없다” ▶지방선거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호남표 분산이었다. 민주당과 통합이든 연대든 필요한 것이 아닌지. -지역주의 극복하려다가 영남지역에서는 10% 내외 지지율이 나왔지만 호남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지역표 계산만으론 미래가 없다고 본다. 하나의 고려사항은 될 수 있겠지만 주된 고려사항으로 하면 창당 취지를 버리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연합이 돼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골치가 아파 정기국회 뒤로 미루는 것이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 정리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계급장 떼자는 말 이젠 잊어달라” 서울 영등포 당사 2층에 있는 김근태 의장의 집무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취임한 지 몇 개월만에 짐 싸기 바빴던 근래의 집권여당 의장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김 의장은 건강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인터뷰에 앞서 측근들에게 주말 동네축구단(파랑새 축구단) 게임에서 두 골을 넣었다며 자랑했다고 한다. 김 의장은 인터뷰 내내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감있게 임했다.‘김진지’라는 별명이 말하듯 논리적인 화법도 여전했다.6·10항쟁 19주년 기념식에서 언급했던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떼겠다.”는 말은 “가슴속의 자부심까지 버리자는 건 아니다.”고 부연설명했다. 특히 경제관련 질문에는 전문가급의 식견을 과시했다. 지론인 ‘따뜻한 시장경제’를 설명하는 부분이나 “제3의 길이 김근태식의 경제 패러다임”이라며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부정했다. 그러나 ‘호남표 공략’ 등 민감한 질문을 던지자 “매우 어려운 지적”이라며 얼마간 곤혹스러워했다. 이따금 전례없이 단호한 어투를 구사했다. 지방선거 참패 원인을 묻는 질문 도중 ‘싸가지 없는’(여당 의원들의 태도)이라는 대목에서는 “이제 싸가지 없다는 말은 안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근태의 상징이 된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어록이 거론될 때는 “계급장 떼자는 말은 이제 잊어달라. 부동산 정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식으로, 본질이 뒤바뀐 채 파문이 인 점을 우려하는 듯했다. 여당의장으로서 투쟁성보다 안정감을 중시하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으로 들렸다. 김 의장은 힘들 때 가끔씩 집 근처에 있는 포스트모던한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라이브 음악과 함께 맥주 한두 병을 마시며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6·10항쟁 주역이었던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 지선 스님을 멘토(조언자)로 찾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김 의장 측은 유약하다는 평가와 함께 운동권 출신의 강성 이미지가 이중적으로 덧씌워져 있음을 의식하는 듯했다. 한 측근은 “힘있는 부드러움 아닐까. 절망과 좌절보다 희망과 용기가 더 넓고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김 의장을 ‘변호’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문 밖까지 따라나오는 그의 얼굴 위로 ‘희망의 근거’,‘희망은 힘이 세다.’ 등 유독 ‘희망’을 강조했던 그의 책 표지가 겹쳐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책꽂이]

    ●들리지 않던 총성 종이폭탄!(이윤규 지음, 지식더미 펴냄) 히틀러는 1939년 9월1일 새벽 폴란드를 기습공격하기 전 수년 동안 유럽정복계획을 위장하기 위해 각종 평화공세를 폈다. 북한도 1950년 6월25일 기습공격을 감행하기에 앞서 평화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조만식 선생과 간첩 김삼룡·이주하의 교환을 제의하는 등 심리전을 구사했다. 현역 육군 대령인 저자는 6·25전쟁과 관련된 심리전의 유형을 사례 중심으로 살핀다.‘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듯, 평화의 시기에도 들리지 않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2만 5000원.●한국인의 정치사상(김한식 지음, 백산서당 펴냄) 상고시대 홍익인간 이념부터 현대 민주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조명. 저자(국방대 교수)는 한국정치사상 연구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상고사에 있다고 주장한다.‘규원사화’‘한단고기’ 등 상고사 문헌에 따르면 상고시대 선인들의 활동무대는 한반도와 만주 남부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대륙 하북성까지 포함된다. 회대지방과 요동, 산동지역 전부를 망라하는 것이다. 저자는 ‘한단고기’에 문제점이 많다면 적어도 ‘규원사화’ 같은 상고사 문헌은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한국정치사상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3만원.●아리랑 시원설 연구(김연갑 지음, 명상 펴냄) 낙랑 남쪽 자비령의 이름인 ‘아리’에서 비롯됐다(이병도),‘아리’는 ‘밝(光)’의 고어로 ‘아리랑 고개’는 ‘광명의 고개’다(양주동), 고향을 뜻하는 여진어 ‘아린’에서 유래했다(이규태)…. 아리랑의 시원에 관해서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저자(아리랑세계화위원회 사무총장)는 아리랑은 목은 이색의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정선 7현과 인연이 깊은 이색의 시에는 ‘(정선)아라리’의 뿌리라 할 만한 수지(誰知) 즉,(이 마음을) 누가 알리오라는 글귀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2만 5000원.●귀신론(고야스 노부쿠니 지음, 이승연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계로(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법을 묻자 공자가 답했다.“아직 사람을 섬기는 일도 잘하지 못하거늘,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일본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인 저자는 논어 ‘선진’편에서 공자가 제자인 자로(계로)와 나눈 문답을 귀신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책은 고문사학파를 이끈 오규 소라이의 귀신론을 시작으로 귀신과 제사의 의미를 둘러싼 일본 유학자들의 담론투쟁을 생생히 보여준다.1만 2000원.●다 빈치의 두뇌 사용법(우젠광 지음, 류방승 옮김, 아라크네 펴냄) 1452년 피렌체공화국 빈치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이며 상상력이 뛰어나고 두뇌를 잘 사용한 인물로 꼽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뇌와 우뇌 중 한쪽만 치우쳐 사용하는 데 반해 다 빈치는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사용할 줄 알았다.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의 업적을 정리한 바사리는 다 빈치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때때로 하늘은 인간이 아닌 신을 우리에게 내려 보낸다. 우리 모두는 그의 생각과 뛰어난 지식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뇌력(腦力)의 비밀이 담겼다.1만 5000원.●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김규원 지음, 시공아트 펴냄)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황금색. 그것은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한 색이다. 이 축제는 한 해의 말미를 장식하는 중유럽의 중요한 행사다. 크리스마스 정령 같은 황금빛 소품들이 진열된 장터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며 독일의 음울한 겨울 날씨를 음미해보자. 원초적 본능이 꿈틀대는 바르셀로나 메르세 축제의 빨간색은 희망의 상징. 이탈리아의 전통 경마대회인 팔리오 축제에는 17가지 색 무지개가 수를 놓는다. 색으로 보는 유럽축제 이야기.1만 5000원.
  • [사설] 아쉬움 큰 신문법 위헌 결정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의 핵심 조항들이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1개 신문사가 전국 발행부수의 30%이상, 또는 3개이하 신문사가 60%이상 차지할 때를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한 조항을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한 신문사가 다른 신문·통신의 지분을 50%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한 조항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반면 전체 발행부수와 유가 판매부수를 신문발전위원회에 신고하게 하고 이를 거부할 때 과태료 2000만원을 부과토록 한 조항은 합헌으로 인정했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이같은 결정이 신문법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헌법재판소는 신문사의 경영정보 공개 의무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신문기업은 일반기업에 비해 공적 기능과 사회적 책임이 크기 때문에 경영 활동 자료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신문시장의 경쟁질서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신문의 사회적 기능과 시장경쟁의 정상화를 강조한 이 논리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같은 논리가 신문사의 ‘경영정보 공개’에는 해당하면서 신문시장의 기본질서를 왜곡·파괴하는 ‘독과점 폐해’에는 왜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지금 신문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자의 선택이 신문의 방향성과 지면의 질(質)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거대 자본을 앞세운 판매구조에 좌우되는 데 있다. 즉 독자를 유혹하는 현금봉투·상품권·자전거 등 금품 제공이 시장지배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언론재단이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기자 311명을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신문법 찬반’ 내용을 보면 신문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하는 데 57.6%가 찬성했으며 반대는 38.6%에 그쳤다. 언론의 일선에서 뛰는 기자들의 바람과도 배치되는 헌재의 이번 결정이 신문시장의 정상적인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6)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6)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가 대학 철학과 학생시절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바)라는 구절을 강의시간에 들었다. 일체가 다 마음이 지은 바라면, 내가 지금 교실의 창 너머로 보고 있는 교정의 나무도 내 마음이 만든 것이란 말인가? 하교 후에 내 마음이 나무를 보고 있지 않으면, 그 교정의 나무는 없단 말인가? 이런 의문들이 줄곧 생기면서 나는 불교의 화엄사상이 말하고 있는 ‘일체유심조’의 뜻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은 후에 나는 점차로 불교가 말하는 ‘일체유심조’의 법을 나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화엄학에서 마음의 본질을 알아차림(識)으로 읽고 있고, 우주의 일체가 다 마음이라고 말한다. 우주를 통일적으로 이해하여 한마음(一心)으로 읽는다. 무엇이 마음일까? 마음은 우선 알아차리는 능력(識)을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는 마음론을 유식론(唯識論)이라 부른다. 마음에 바깥 경계가 비치면, 즉각 마음은 그 경계를 알아차린다. 그 알아차림의 능력은 마음이 줄곧 바깥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탈자(脫自)운동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알아차림과 탈자운동은 같은 의미를 약간 다르게 언명한 것과 같다. 마음의 알아차림과 탈자운동을 다시 다른 말로 종합적으로 표명하면, 마음은 곧 욕망에 다름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마음은 욕망이다. 욕망은 자기와 다른 것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부단한 관심에서 타자와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운동을 말한다. 화엄학의 ‘일체유심조’가 유식학에서 만법유식(萬法唯識·모든 것은 다 알아차림으로 이루어져 있음)으로 이행된다. 보통 사람들은 인간만 마음이라고 여기는데, 화엄학과 유식학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고 한다. 나도 오랫동안 인간만이 마음이라고 착각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면, 굼벵이나 사자도 마음이며, 심지어 난초와 대나무도 마음인가? 동식물의 생명은 다 스스로 살려고 하는 본능의 욕망을 지니고 있기에 그 본능의 욕망만큼 그들도 알아차린다. 굼벵이와 사자도, 난초와 대나무도 다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다. 인간의 마음도 알아차리는 방식의 탈자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이 우주의 일체가 다 마음의 알아차리는 제 각기의 방식을 띠고 있다. 심지어 무생물인 광물도 마음이 있을까? 어떤 이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생물도 자연계에서 타자와의 인연으로 그 자리에 놓여 있고, 타자와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무생물도 깨어 있지 않고 잠자는 마음의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17세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단자론(單子論·monadology)이 이런 생각을 펼쳤다. 자연계의 동식물과 인간이 다 마음이라면, 모두가 다 같을까?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 같은데, 그러나 다 제각기 마음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알아차림과 탈자운동의 차원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유식학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불교의 유식학적 마음론은 서양철학이 분류한 유물론과 대립적인 유심론 사상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유심론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강조하는 사상으로서 정신은 물질보다 더 진리의 차원에서 상위에 속한다는 그런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유식적 마음론은 물질과 대립적인 의미의 정신이 아니다. 굼벵이의 마음은 이미 굼벵이의 몸을 통하여, 사자의 마음은 사자의 몸을 통하여 이미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초의 마음도 대나무의 곧고 굳센 몸통과 다르게 유연하나 쉽게 꺾이지 않는 그런 몸을 이미 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고승인 2세기(?)의 아슈바고샤(한자명 馬鳴)는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에서 색심불이(色心不二·물질과 마음은 둘이 아님)의 사상을 개진하였다. 삼라만상의 동식물의 물질적 몸은 이미 그 마음의 질을 현상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일체유심조’의 사상을 나는 대학생 시절에 서양철학의 유심론의 뜻으로 오해했고, 더구나 그 마음을 나는 인간중심적 사유로 오인했었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으면, 교정의 나무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그런 질문을 내가 품었던 것이다. 교정의 나무들과 새들도 다 그들 마음의 욕망의 표현으로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를 현시한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주자연을 지독한 인간중심주의적 법집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자연적 마음은 존재론적 욕망을 펼치고 있다. 자연은 상생과 상극의 이중주를 모든 생명간에 주고받는다. 상생은 서로의 삶을 증장(增長)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상극은 서로의 삶을 손감(損減)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손감의 극치가 곧 죽음이다. 자연은 서로서로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타자의 생명을 취해야만 살 수 밖에 없는 자연의 생명현상은 곧 살생의 폭력이 자연의 연결고리에 필연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려준다. 자연계에서 상생과 상극은 형식적으로 보면 이율배반적이나, 실질적으로 그 둘은 자연의 존재방식의 상보적인 이중성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즉 죽음의 상극이 있기에 삶의 욕망이 강렬해진다는 것이다. 천적이 있으므로 생명의 욕망은 그만큼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생과 상극의 이중적 존재방식은 자연계의 신진대사(新陳代謝)의 존재방식을 가능케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왜냐하면 생명은 무한히 생존하려는 욕망인데, 죽음이 그 무한대의 욕망을 차단시켜 새 생명의 존재를 가능케 해주는 여백을 마련해주는 셈이다. 자연적 마음의 욕망이 서로서로 주고받으면서 의타기적(依他起的·다른 것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존재방식으로서 삼라만상이 상호 왕래의 오감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신진대사의 법은 불교적 의미에서 만물이 돌고 도는 길상의 상징인 만(卍)자와 같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자연적 삼라만상의 마음의 욕망은 존재론적 욕망이다. 존재론적 욕망이란 어떤 중심과 주변도 없고 서로서로 존재하도록 도와주는 상호의존의 돌고 도는 관계만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삼라만상의 마음과 다른 차원의 특이성을 지닌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언어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동물들도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그 의사소통은 신호의 교환이지 언어활동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의 알아차림(識)은 언어활동을 통하여 나타난다. 인간 마음의 알아차림과 언어활동은 같은 개념이고, 이 언어활동이 탈자운동의 현상화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상태를 유지하게끔 했다.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상태를 유지하게 한 것과 자연상태의 본능이 인간에게 지능으로 자리이동을 했다는 것은 같은 뜻이다.(1회 글) 본능은 자연상태에서 동식물들의 자기생존의 알아차림인데, 이제 지능은 사회상태에서 인간의 자기생존을 위한 알아차림으로 변한 것을 상징한다. 인간의 사회생태는 인간 마음의 이중성을 잘 반영한다. 그 이중성은 인간의 마음이 사회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기심을 꼭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이며 동시에 이기적이다. 이것을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는 그의 논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에서 ‘비사교적 사교성’(unsociable sociability)이라는 절묘한 말로서 표현했다. 인간의 사회상태는 비사교적 이기심인데, 그 이기심은 인간에게 사교성이라는 사회성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말은 인간의 지능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칸트가 잘 밝혔듯이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이 지능의 ‘비사교적 사교성(이기적 사회성)’에 의거해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 이기적 사회성은 자연상태의 욕망처럼 존재론적 방식이 아니고, 소유론적 방식의 욕망을 뜻한다. 서로 비교해서 열등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모든 인간의 마음은 시샘, 질투, 원망, 투지, 결심 등과 같은 모든 종류의 심리현상을 빚는다. 이 심리현상을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가 그의 저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부글부글 끓는 발효’(fervent fermentation)라고 표상했다. 소유론적 욕망의 언어활동은 양자택일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소유론은 배타적이고 배척적인 사고방식을 기본적 문법으로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론의 언어활동은 호/오(好/惡), 이/해(利/害), 진/위(眞僞), 선/악(善/惡)에서 늘 전자를 취하면서, 후자를 버리는 태도를 옳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기 위하여 소유론의 철학은 판단론을 중시했다. 판단을 통하여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의 존재론적 욕망은 인간의 사회적 소유의 욕망과 달라서 의타기적이므로 최소한도 잡종적 이중성의 성격을 띤다. 예컨대 상생과 상극도 배타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신진대사를 가능케 하기 위한 이중적 사실로서 읽혀진다. 상생과 상극이 서로 다르면서 각각 상대방에게 상보성이 성립하도록 자신의 흔적을 던져 준다. 천적이 자기를 죽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생기를 북돋아 준다. 마치 도장에서 양각과 음각이 서로 다르지만, 양각은 음각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고 음각도 양각이 없으면 존립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자연의 삼라만상이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의 차이(difference)가 적대적 배타성을 띠지 않으므로 현대 해체철학에서 그런 차이를 차연(差延·differance)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의 철학은 차이를 적대관계로 배척하는 언어활동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철학사상은 차이를 적대적 모순처럼 여기지 않고, 불교의 연기사상처럼 차이를 차연(차이를 띠면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자기의 흔적을 연기시킴)의 뜻으로 읽으려는 사유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알아차림으로서의 말을 지능의 소유론으로 해석해온 지나간 역사를 해체시켜 인간의 알아차림과 그 말을 다시 자연의 존재론처럼 복원시키려 하는 철학사상의 대전기를 맞고 있음을 반영한다. 세상은 변해 가는데, 한국은 아직도 소유론적 대결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소유론과 순수론은 늘 이웃한다. 소유적 이기심을 순수성으로 위장한다. 한국에는 위선자가 많이 설친다. 존재론은 잡종론이다. 잡종은 순종보다 통합을 더 잘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유전무죄, 법관으로서 죄송”

    “유전무죄, 법관으로서 죄송”

    국회는 28일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대법관에 제청된 전수안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도덕성과 자질 등을 검증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전 후보자가 지난해 10월 참여연대가 펴내는 ‘사법감시’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을 촉구’한 점 등에 대해 질의가 집중됐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 등은 후보자가 기고문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 등을 비판한 데 대해 ‘그것이 존재한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전 후보자는 “그것이 완전 허구라고 말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선 법관으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로비 공화국’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전 후보자는 “명백히 국가 기본질서에 위험이 현존하는 경우에 한정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위헌이 아니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그 정도라면 (국회)의원들이 본래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본다.”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후보자는 ‘전체 법관의 17%인 여성 법관의 양형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다.’는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의 질의에 대해선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절반은 남성이니 법관 절반은 여성인 상태에서 나온 판결이 공정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전 후보자는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과 관련,“병역의무를 대체하는 방법이 제도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안후보 ‘대선자금수사’ 소신 발언

    안후보 ‘대선자금수사’ 소신 발언

    국회 대법관 인사청문특위는 27일 이틀째 청문회를 열어 안대희·이홍훈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했다. 두 후보는 전날 청문회에 섰던 김능환·박일환 후보가 원론을 되풀이한 것과는 달리 소신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국민 검사’로 인기를 얻었던 안 후보자는 대검 중수부장 때 대선 불법자금을 수사했던 ‘악연’ 때문에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나라당 진영 의원은 “진술 위주로 수사가 진행됐는데 돈을 건넸던 재벌들이 과연 여야에 공평하게 진술했다고 보느냐.”고 물었고, 민주당 이상열 의원은 “구속 기소했던 박지원·이인제·박주선씨가 나중에 다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를 의식한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었냐.”고 지적했다. 검찰권 남용이 아니냐는 주장이 이어지자 안 후보자는 “당시 증거판단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역사적으로 그 일을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라는 ‘이색 기록’을 보유한 박주선 전 의원을 가리켜 “인간적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구속한 검찰에 비판 여론이 있다고 소개하자, 안 후보자는 “어떤 한 사람이 구속되고 처벌된다고 해서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면서 “그 분의 위치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에는 구조적으로 법인이 있고 집단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삼성 등 대기업에 취직한 검찰 출신 법조인에 대해서는 “(인맥으로)로비한다고 (수사 방향을 바꾸는)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오해받을 일은 안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사건을 보는 입장에야 차이가 있겠지만 판사나 검사나 법과 양심에 따르는 기본은 같다.”는 말로 검찰 출신의 대법관 기용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시각도 일축했다. 이홍훈 후보자는 ‘천정배 리스트’라고도 불리는 ‘코드 인사’ 논란이 일자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했고, 그로 인해 감히 대법관에 추천됐다고 본다.”고 비켜갔다. 사형제와 간통제, 반인권범죄의 공소시효는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고,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국가 기본질서를 유지하고 국가존립을 지킨다는 취지는 지키되 남용으로 인권침해 피해가 많았던 만큼 적절한 수정과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학교용지부담금 위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의제기 기간을 놓쳐 전국적으로 37만 가구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며 법률이 새로 구성돼야 한다.”고 답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시론] 어머니 도시락이 대안이다/전기철 시인·숭의여대 교수

    [시론] 어머니 도시락이 대안이다/전기철 시인·숭의여대 교수

    왜매년 급식이 문제인가.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급식의 위생 사고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그러나 그 어떤 대책을 세운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급식은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급식은 겉으로는 따뜻한 밥이지만 그 과정이나 내용은 차갑다. 과정이나 내용이 차가운 밥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위생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환경문제나 학생들의 인성 문제 등 당장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잠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안은 없는가. 있다. 도시락이다. 도시락은 어머니의 정성이 보태진, 다시 말하면 과정이 따듯한 밥이다. 과정이 따듯하므로 그 밥은 절대 사고가 나지 않으며 환경문제나 학생들의 인성 문제, 가족 공동체의 사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도시락을 통해서 한 가정의 형편이나 생활이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그 밥을 함께 먹는 아이들은 서로의 가정을 친구들과 함께 나눈다. 처음에는 어머니나 아이들은 그렇게 열린 공간을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곧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은 또 다른 가족을 나의 이웃으로 곧 받아들이게 된다. 과거 도시락 시대를 살아본 이들은 알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는다. 선생님도 도시락을 내놓는다. 어떤 아이는 간장에 밥만 싸오기도 하고, 또 다른 아이는 김치에 밤 혹은 계란 프라이를 덮어 오는 아이도 있고, 소고기 장조림을 싸오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한 아이가 꽁보리밥이면, 다른 아이는 이밥이거나 무밥, 혹은 고구마밥이거나 빈 도시락이다. 김치 국물이 흘러 가방이나 책을 온통 적신 아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가 양은 도시락이면, 다른 아이는 스테인리스 도시락, 밥그릇, 냄비이거나 젓가락만이다. 한 가족의 사정이 다 나와 친구들과 나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지만 이내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기 일쑤이다. 그날그날 친구의 사정을 알 수 있고, 친구의 가정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소고기 장조림과 된장 사이, 혹은 도시락과 젓가락 사이에는 갈등이 있을 수 없다. 그 세대는 그렇다. 소고기 장조림이 된장보다 반드시 공부를 잘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며, 인간성이 더 좋다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까먹는 시간은 모든 아이들이 서로를 나누는 시간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우정이 돈독할 수밖에 없고, 서로에 대한 공동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동체의식의 형성을 통해서 요즘 세대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해결 방식이 ‘퇴행적’이라고 한다면 모든 환경문제의 해결 방식이 부분적으로 퇴행적이라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도시락, 한 가족의 표정이 묻어 있는 밥을 나누는 아이들의 정서를 생각해 보자. 한 끼의 밥으로 영양이 보충되거나 도시락 싸기로 어머니의 생활 여가가 부족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정서와 사회의 공동체를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도시락이 그 대안이다. 무공해 식품만을 찾는 세상에서 도시락을 싸기 힘들다거나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무공해 점심을 퇴행적이라고 부정한다면 급식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찾기 힘들 것이다. 어머니여!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자. 아이들의 먼 미래를 위해서 점심을 차리자. 전기철 시인·숭의여대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