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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과다 교육조례 ‘손톱 밑 가시’ 뽑듯 솎아내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온갖 데서 이러니 저러니 간섭을 하다 보면 될 일도 그르치기 십상이다. 교육계의 고질이 되다시피 한 교육조례 남발 현상이 꼭 그 짝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정작 일선 교육현장에서 조례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교육의 본질에 철저한 조례라기보다는 모종의 교육 외 목적이 내장된 ‘정치조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현재 발효 중인 교육조례만 세종시를 제외하고도 800개가 훨씬 넘는다. 그중 과연 얼마나 절실한 교육적 필요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교육감이나 시·도의회 의원들의 실적쌓기용 ‘묻지마’ 교육조례도 한둘이 아니라고 하니 이보다 더 반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인 일이 따로 없다. 지방자치단체에는 물론 자치입법권이 있다. 우리 헌법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례에 위임한다는 명시적 조항이 없음에도 조례 제정을 강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교권조례에 대해 대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위법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조례 제정을 강행하는 것은 의회권력의 횡포다. 조례만능주의로 피해를 입는 것은 일선 교육현장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로 교육현장이 얼마나 큰 혼란과 갈등을 겪었나. 일선 학교들은 서울시교육청의 지시대로 관련 학칙을 개정해야 할지 상위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따라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한번 제정된 조례를 바꾸거나 폐기하려면 시·도의회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녹록한 일이 아니다. 잘못 만들어진 조례의 폐해는 그만큼 심각하다.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일 못지않게 교육현장에 막중한 부담을 안기는 불요불급한 조례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이 더 이상 포퓰리즘 조례로 멍들어 가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그 형식과 내용을 좌우하는 교육조례의 제·개정이야말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마땅하다.
  • [책꽂이]

    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이경주·우경임 지음, 글담 펴냄) 기자로 바쁜 삶을 꾸리다 훌쩍 해외 연수를 떠난 부부가 있다. 마흔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성찰의 결과물은 의외로 단순하다. 마흔 즈음의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고전 스물네 편을 엄선했다. 삶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한 마음의 중심찾기라고 고백한다. 고전을 통해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었고, 고전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문구들은 삶의 훌륭한 길잡이가 됐다고 말한다. 1만 3800원. 모든 순간의 인문학(한귀은 지음, 한빛비즈 펴냄)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가 ‘여인의 향기’ ‘홍당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등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인문학적 감성을 길어올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인 사랑, 이별, 관계, 상처 등 소소하고 사적이지만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1만 4000원. 빌딩블로그(제프 마노 지음, 김아연·이혜인·허대영 옮김, 나무도시 펴냄) 미국 인기 온라인 사이트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건물’ 자체보다 ‘짓기’에 주목한다. 사람은 늘 무언가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축적 상상, 지하 세계, 날씨와 기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다든다. 그래서 건물뿐 아니라 심지어 가상의 온라인 세계에 지어지는 모든 곳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만 2000원.
  • 계약서에 ‘갑을’ 문구 없앤다고 불공정 사라지나?

    계약서에 ‘갑을’ 문구 없앤다고 불공정 사라지나?

    백화점 계약서에서 ‘갑·을’ 문구가 사라진다. 현대백화점은 10일부터 전 협력사와의 모든 거래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9일 밝혔다. 갑과 을은 통상 거래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갑을 관계라는 말이 점차 지위가 우월한 측이 갑, 열등한 쪽을 을로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돼 이같이 결정했다고 현대백화점 측은 설명했다. 이는 최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를 하는 이른바 ‘갑의 횡포’ 논란이 확대된 것을 조금이나마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백화점은 앞으로 온·오프라인 계약서 작성 시 갑 대신 ‘백화점’으로, 을 대신 ‘협력사’로 바꿔 표기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신세계백화점도 2001년 7월부터 갑과 을 대신 구매자와 공급자 또는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본질을 벗어난 해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서 문구만 바꾼다고 개선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도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트위터 이용자 krr****는 “갑을 문구만 없애면 뭐하나? 횡포는 같을 텐데”라고 꼬집었고, suyur****도 “이런 꼼수가 더 얄밉다”라고 비판했다. 그 밖에도 “나쁜 관행은 그대로 두고 글자 몇 자 고친다고 뭐가 달라지나”, “갑·을을 을·갑으로 반대로 써도 안 없어진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온라인뉴스팀 iseoul@seoul.co.kr
  • [지방시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위하여/나간채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지방시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위하여/나간채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2일 광주를 방문한 국가보훈처장은 33주기 5·18기념행사와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언명했다. 그 하나는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 넣기는 하되 참석자 제창이 아니라 합창단이 부르도록 하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번 5월 행사 이후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닌 다른 노래를 공모해 공식적 기념노래로 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정부가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는 것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실과 관련해 볼 때, 이전의 정부 기념식에서는 이 노래가 대통령 기념사에 이어 행사를 마무리하는 핵심이었다. 참가자 제창으로 이뤄짐으로써 기념식의 전체적 성격을 정서적으로 고양시켜 왔다. 5.18항쟁이 담은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강한 의지를 진한 서정성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주시민에게 깊은 감명을 줬던 역사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단상의 합창단에 한정해 부르게 하려는 현 정부의 관점은 단상과 단하의 참여자가 하나로 일치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국가기구의 공식적·관료제적·권위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식 위주의 행사는 이미 구시대의 정형화된 군사문화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현대의 유연하고 자유로운 형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역사적 정당성도 의미 깊은 자산인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5월 행사 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닌 다른 노래를 공모해 공식적 기념노래로 제정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는 앞의 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5·18항쟁과 5월 운동의 30여년 역사에서 수많은 민주시민으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아왔던 노래를 5월 행사 기념식에서 축출해 버린다는 것은 이 노래가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발휘했던 값진 역할을 방기하거나 경시하는 결과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노래는 1980년대 초에 서울대 총학생회가 조사한 대학인의 노래 순위에서 ‘아침이슬’을 누르고 정상을 차지했으며, 1983년 전국민주화운동청년연합은 이 노래를 그해 가장 많이 불린 저항가요로 선정할 만큼 애창된 예술작품이었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노래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물이 돼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론적으로 볼 때, 국가권력의 집행권자인 정부는 5·18항쟁에 대해 우호적이기 어렵다. 항쟁 자체가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성을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항쟁은 이미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는 항쟁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실에서 입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 기념식에서 지워버리거나 주변화하려는 것은 5·18항쟁의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역사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하하는 결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이번에 보훈처장이 제시한 계획은 좀 더 진지하고 차분한 검토와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자는 5·18항쟁을 적대시할 수 없다.
  • 연예기획사 횡포 방지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 윤곽

    연예기획사 횡포 방지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 윤곽

    “‘그녀’가 죽었습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상식이 깨진 연예계, 더 나아가 부조리한 사회에 모두가 분노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영화 ‘노리개’ 중) 연예기획사의 횡포를 막자는 이른바 ‘장자연 법’ 제정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연예계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법을 제정하자는 쪽은 2009년 3월 여배우 장자연의 죽음으로 자정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음성화된 성상납 문제 등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풍토를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 일정 요건 이상을 갖춘 연예기획사의 활동만을 허용하는 ‘등록제’를 추진 중이다. 현행 신고제에서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반면 법 제정을 우려하는 쪽은 진입장벽을 높이게 되면 기존 연예기획사들의 기득권만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장자연 법’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이 지난 2일 공동으로 연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 지원법’ 공청회에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핵심은 대중문화 제작업과 기획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예기획사 등록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필터링을 거쳐 등록된 연예기획사는 행정기관의 지속적인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장자연이 소속됐던 연예기획사나 그간 문제를 일으킨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대부분이 일정 규모 이상을 갖췄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을 높이는 등록제가 어느 정도 유효하겠느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행정지도가 실효성을 띨 수 있느냐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연예기획사는 1000여개에 이른다. 현행법상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별도의 설립요건이 없다. 제정 법안은 일정 자본이나 전문성을 가진 사업자만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법안은 또 열등한 위치에 놓인 여성 대중문화예술인(연예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형법상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와 별도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도 마련했다. 제17조 ‘금지행위’는 대중문화예술사업자나 제작진이 연‘예인에게 ‘이익의 제공’이나 ‘약속’ 또는 ‘불이익의 위협’을 통해 성매매 알선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기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선 연예인이 (캐스팅 등) 특정 이익과 관련된 성행위를 할 경우 성을 파는 행위로 치부됐고, 연예인이 먼저 은밀한 성행위 알선을 입증해야 알선자 처벌이 가능했다”면서 “새 법에선 처벌 특례조항을 둬 피해 연예인이 면책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안은 만 15세 미만 청소년이 대중문화예술에 종사하면 일주일에 35시간 넘게 일하지 못하게 해 학습권, 휴식권, 수면권 등을 보장했다. 표준계약서 보급, 정기적 산업 실태 조사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2년 공정거래위가 일정 기준을 제시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졌다”면서 “등록제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여성 연예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경제적 착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예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이돌그룹 SS501 출신의 가수 겸 배우 김형준은 “가수로서 꿈을 키울 무렵 기획사를 발로 찾아다니며 오디션도 보고 길거리 캐스팅도 됐다. 당시에 사람들이 했던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등록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공진 연예매니지먼트협회 부회장도 “‘장자연 사건’ 이후 관련 협회 간 논의가 이뤄졌으나 이견이 많았다”면서 “현실과 법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등록제가 필요하고, 연예 매니저와 사업자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연기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기자 노조의 한 관계자는 “사회의 온갖 모순이 함축된 연예계의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선 연예기획사를 비롯한 방송사 등 사회 구성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뤄진다는 연예인의 성상납과 관련해선 사회 고위층 등 수요자를 직접 처벌하는 특례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원로 연기자도 “문제의 본질은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법의 구제를 받기 전에 사회적 강자들로부터 보복당한다는 데 있다. 제보자의 신원을 지켜주는 등 보다 현실적인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무성 “공천개혁·계파청산…개헌 필요” 이완구 “안철수현상 반성…경각심 가져야”

    지난 4·24 재·보선으로 여의도에 복귀한 새누리당 ‘빅2’ 의원이 정치 현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중진 의원들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못했던 당에서 ‘큰 형님’ 역할을 자처한 이들의 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최근 잇따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천개혁, 권력구조와 같은 큰 틀의 정치쇄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 의원은 2일 “공천 때 서 푼어치 권력을 잡았다고 미운 놈을 쳐내는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여론조사 경선을 통한 상향식 공천을 하면 주민이 원하는 사람을 공천할 수 있고 후유증도 작다”고 밝혔다. 2008년 18대 총선과 지난해 19대 총선에 연달아 공천을 받지 못했던 경험을 토대로 권력을 잡는 쪽에 따라 공천 결과가 좌우되는 관행을 고치는 데 앞장서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당내 계파문화도 청산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친박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따라서 계파도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완구 의원은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여당 중진으로서의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안 의원의 상임위 배정과 관련해 “안 의원이 새 정치에 걸맞은 원칙을 지키는 처신을 할 거냐, 아니면 자기 이익에 근접한 결정을 할 거냐라는 갈림길에 섰다”면서 “정치인들이 흔히 수를 부리는데 그런 걸 하지 말라는 게 새 정치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안철수 현상’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혁신과 민생경제 방안 등을 내놓지 못하면 언제든지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정부가 고령층·저소득 금융자문 지원해야”

    정부가 고령층과 은퇴자, 저소득층 등 금융취약계층에게 특성과 수요에 맞춘 금융 자문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앞장서게 할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기본 방침도 나왔다. 노형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9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추진과제 공개토론회’에서 “예산을 들여서라도 취약계층에 대한 자문을 활성화하는 것이 사회 후생차원에서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금융 자문이란 투자·저축이나 부채관리 등 금융생활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뜻한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사회취약계층 대상 부채·자산 관리 서비스인 ‘금융멘토’ 사업과도 궤를 같이한다.<서울신문 2012년 11월 14일자 19면> 노 연구위원은 “취약계층은 소득이 부족해 금융피해 발생 시 회복 가능성이 낮고 결국 복지대상으로 편입돼 재정부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제는 금융사들이 상품의 사후관리뿐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소비자보호 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노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취약계층이 경험한 사례 유형별로 표준 매뉴얼을 만들고 전국적인 금융상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자 금융사 CEO를 겨냥한 구상을 밝혔다. 정영석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총괄부국장은 “CEO가 소비자보호를 핵심 경영전략으로 삼도록 이끄는 것이 (새) 모범규준이 지향할 방향”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윤영은 금융위 금융소비자과장도 “모범규준엔 전 금융업권에 대한 최소한의 요건만을 담고 세부 규제는 각 업권 협회 등 자율규제기구를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부국장은 “일반 소비자에 대한 금융서비스 상담은 금융사가 본질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며 “모범규준에도 상품 개발·판매·사후관리 등 관련 내용을 세부적으로 담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역사교과서 강제 수정은 저작인격권 침해 아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금성출판사가 발행하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저자 5명이 금성출판사와 사단법인 한국검정교과서를 상대로 낸 저작인격권 침해 정지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교육과학부의 수정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교과서 검정합격이 취소되거나 발행이 무산될 수 있었다”며 “이를 고려하면 김씨 등은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 교과부의 수정지시를 따르는 범위 내에서 교과서 변경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과부의 수정지시가 무효라고 할 만한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이 지시를 따르기 위해 교과서를 수정한 출판사의 행위는 저작권자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동일성유지권이란 출판업자 등이 저작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본질적인 변경을 할 수 없도록 한 권리를 의미한다. 교과부는 2008년 11월 ‘분단 책임을 미국이나 남한 정부 수립으로 돌리는 등 내용이 편향됐다’는 등의 보수단체 의견을 바탕으로 금성출판사에 교과서 일부 내용을 고치라고 권고했고, 출판사는 저자들의 동의 없이 내용을 수정해 배포했다. 그러자 김 교수 등은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지만, 2심 재판부는 “교과부의 지시를 받고 수정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김 교수 등이 교과부 장관을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은 “교과부가 적법한 심의절차 없이 수정 명령을 했다면 위법한 처분으로 볼 수 있다”며 “절차상 하자가 있었는지 여부를 다시 심리하라”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2월과 전혀 상반된 판결을 내려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사교사모임 관계자는 “교육부는 올 초 장관의 교과서 수정 권한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스스로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위기의 인문학, 그 실상을 파헤치다

    요즘 많은 이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거론한다. ‘인문학은 죽었다’는 말은 도처에 무성하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갈수록 주변의 학문으로, 심지어는 고사의 영역으로 퇴색되어가고 있는 인문학은 정말 죽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인문학은 어떻게 되살려내야 하는가. ‘침묵의 공장’(강명관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은 바로 그 위기의 인문학 실상을 해부한 책이다. 현직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신분인 저자가 대학과 우리 인문학계를 향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쓴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책을 읽다 보면 ‘침묵의 공장’은 우리 인문학 현주소의 실감 나는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복종하는 공부에 지친 이들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 “대학은 연구자들이 연구비라는 방진복을 입고 조용히 그들이 원하는 성과를 찍어내는 침묵의 공장이 되고 말았다.” 그 ‘침묵의 공장’을 생겨나게 한 원인은 다름 아닌 자본-국가-테크놀러지의 트라이앵글이다. 이 트라이앵글을 ‘괴물’로 표현하는 저자는, 그 괴물들이 침묵의 공장을 가동하는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치밀하게 국어는 제멋대로 편집됐고 국사는 왜곡 당했으며 인문학은 굴종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 실상은 이런 것이다. 이를테면 국어는 고대-중세-근대라는 발전적 도식에 의해 한문학 영역을 삭제당하고 서구식 발전의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만 주요하게 다뤄졌다. 국사는 ‘민족’이라는 주어 아래 영웅 서사시로서 위대한 역사로 인정되는 것만이 살아남았다. 또 인문학은 자본과 국가의 지원 아래 철저히 검열되고, 그들의 이익에 들어맞는 것만 힘을 갖게 됐다…. 그래서 공부, 곧 학문을 하는 대학은 이제 한 개인의 사회적 서열을 매기는 곳이고, 차등화된 노동자를 배출하는 곳으로 변질된 지 오래라고 개탄한다. ‘무관심한 침묵은 피 튀기는 싸움보다 더 무섭다’고 했던가. 어떤 이는 ‘위기의 인문학’을 낳은 자본-국가-테크놀러지의 트라이앵글에 재발로 들어갔고 또 어떤 이는 억지로 끌려갔지만 지금이라도 인문학 본질을 똑바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그 본질은 ‘인문학적 사유는 기계처럼 찍어낼 수 없고, 구조에 의해 짜 맞춰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학문은 수공업이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는 언제나 인간의 삶을 옥죄는 자본과 국가의 권력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평등, 평화, 자유, 그리고 환경의 회복을 지향해야 한단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는, 사람을 살리는 공부를 되찾는 방법은 인문학 본래의 저항성과 불온성을 되찾는 것” 그 지론대로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자본이 요구하는 인문학의 콘텐츠는 영혼을 상실한 인간이다. 영혼 없는 콘텐츠를 개발해 자본의 요구에 응함으로써 자본과 불행할 수 있는 동거를 언제까지 계속 할 것인가.” 1만 1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국정원 사건의 본질은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는 것 별도기구 등 제도 개선 시급”

    “국가정보원 사건의 본질은 국내 정치 개입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입을 모았다. 국외와 국내 정보를 구분해 별도의 기구를 만드는 등 대대적인 제도 개선 방안과 함께 국정원에 대한 지시와 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국내 정치 불개입이라는 명확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은 경찰에서도 국내 정치 개입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은 지난 18일 국정원 직원 김모(28·여)씨 등이 사실상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며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국가정보원법 3조 1항은 국정원의 직무를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및 배포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 정보는 보안과 관련된 사항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중앙정보부에서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정보기관이 정치 핵심부와 연결돼 공작 정치나 독재 정치를 한 아픈 기억이 있다”면서 “국정원법에서 국내 정치 관여 금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민주화 과정에서 이 같은 폐단을 막고 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았다. 문민정부 김덕 초대 안기부장은 지방선거 연기 공작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나 부총리에서 낙마했고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총풍·북풍 등 공안 사건과 공기업을 통한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돼 네 차례나 기소됐다.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꾼 국민의 정부에서도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정치인·공직자·언론인 등 1800여명의 통화를 도청한 혐의로 2005년 11월 구속 기소됐고 유죄가 선고됐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민기 민주통합당 의원은 “과거부터 행해 오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인적 구성에 문제가 있고 ‘권력을 휘둘렀던 과거, 찬란한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시대를 추억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국내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우려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역할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장 간사는 “경찰이나 검찰에도 이미 대공전담 부서 등이 있고 국정원이 국내 정보 수집 권한을 가지고 정치적 역할을 하려는 게 문제”라며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국내 정보 수집 권한을 폐기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고 말했다. 반면 국정원은 오히려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정보와 테러 국제범죄조직, 산업기술보안에 대한 정보는 필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어 국내 정보 수집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국외 정보와 국내 정보를 별도의 기구로 만들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정보를 총괄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국정원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결국은 대통령의 의지와 연결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위 소속 김현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법 제2조에 보면 대통령 소속으로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고 돼 있어 국정원은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보고 따라 움직이는 조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상근변호사도 “가장 중요한 건 인사 문제로 이는 결국 대통령의 의지”라면서 “이번 국정원 사건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책임자들의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수사와 처벌 등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보위 소속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은 “검찰 수사 단계인 만큼 여당 의원들이 개인적인 판단을 말하기보다 법적인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고 같은 당 조명철 의원은 “현안인 만큼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KBS 9월 방영 ‘어린이 독서왕’ 잡음

    KBS 9월 방영 ‘어린이 독서왕’ 잡음

    올 9월 방영 예정인 KBS의 독서 프로그램 ‘어린이 독서왕’을 놓고 시민단체와 출판계가 반발하고 있다. 책 읽기를 권장한다는 명목으로 어린이들이 추천 도서를 읽었는지를 시험으로 가려 평가할 것이란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독서 관련 시민단체들은 “독서의 경쟁화는 반교육적”이라며 프로그램의 방영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KBS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어린이 독서왕’은 고등학생 상식 대결 프로그램인 ‘골든벨’의 어린이판이다. KBS한국어진흥원이 주관하고 KBS가 방송한다. 대상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로 학년별로 모두 40여권의 도서가 정해진다.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선 대상 도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출제된 KBS ‘어린이 독서왕’의 학교별 평가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평가시험 이후에도 학교 내 ‘독서 골든벨’, 교육청 단위의 ‘독서 골든벨’을 차례로 통과해야 이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독서 능력을 가리기 위해 시험에 의존한다는 점이 지적받고 있다. ‘바람직한 독서 문화를 위한 시민연대’는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 독서왕’은 독서의 가치를 왜곡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답 맞히기식 시험과 경쟁은 독서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독서시민연대’는 어린이도서연구회, 대한출판문화협회,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30여개 시민단체가 연합해 구성한 단체다. 반면 KBS한국어진흥원은 이날 오후 의견을 내면서 진화에 나섰다. KBS한국어진흥원은 “‘어린이 독서왕’은 독서를 기반으로 초등학생들의 언어 사고력, 국어 능력, 창의적 인성을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고 강조했다. KBS 측은 케이블 채널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예 오디션 프로그램이 폭주하는 가운데 초등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9)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하)

    [명사가 걸어온 길] (9)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하)

    백기완(80)의 마음은 찰랑거린다. 가득 차서 찰찰찰 흘러넘친다. 부조리에 대한 울분만은 아니다. 그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라고 했다. 시와 이야기, 영화를 빼놓고 백기완의 삶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집만 네 권을 썼다. 그는 “샘물이 콸콸 넘쳐서 메마른 땅을 적시듯, 엄마가 우물에서 뜬 물동이 찰찰 넘치듯 찰랑찰랑 넘치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라고 했다. 첫 시는 어린 시절 냉이의 싹을 보고 썼다. 나물 캐던 어머니는 “비바람을 이기고 살아남는 목숨들, 너무나 수북해 보듬어 주고 싶은 싹에는 손을 대는 게 아니다”라며 싹은 뽑지 않았다. 시심(詩心)이 싹텄다. 그는 “그런 걸 보고 어떻게 시가 안 나오겠느냐”고 했다. 예술을 향한 그의 사랑은 민초(民草)에 대한 사랑만큼 깊다. 찰랑거림의 시작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의 민중 미학을 이루는 알맹이다. 그도 자신이 이야기꾼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좌중은 그의 이야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지러지거나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그 화산 같은 입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쌀이 떨어졌어요. 아무리 밥 달라, 떡 달라 해봐야 어떡해요, 쌀이 없는데. 할아버지는 왜놈들한테 매를 맞고 돌아가셨지요. 쫄딱 깨진 아픔과 배고픔에 내가 만날 우니까 엄마랑 할머니가 달래느라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배고픈 민중을 닮아 있다. 학교에서 배운 글보다는 거리에서 체득한 말에 가깝다. 이야기의 주체도 ‘머리’가 아닌 ‘몸’이다. 몸으로 사는 민중을 이해하지 않고 그의 민중 미학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가진 거라고는 알통밖에 없는 무지렁이 민중들이 뭘 흘려요. 땀밖에 흘릴 게 더 있겠어요. 흘린 땀은 땅으로, 자연으로 갑니다. 흘러서 넘치는데 네 것 내 것이 없지요. 자본주의 문명이 몸으로 일한 사람들의 열매까지 뺏어 먹는 것과는 달라요. 땀 흘리는 사람들은 병들고 배고파서 죽고 약 올라서 죽고 대들다가 반역자로 몰려서 죽어요. 이런 민중들이 꾸는 꿈을 ‘바랄’이라고 합니다. 이 바랄의 세계가 이야기입니다. 온몸으로 일구지 않으면 바라던 사람이 죽는 게 바랄이에요.” 그가 땅과 대륙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땅은 민중들의 한 자락 꿈인 동시에 몸으로 일구는 대상이다. 민중은 땅을 일구듯 이야기를 일군다. 장준하 선생과 문익환 목사는 백기완을 두고 “대륙적 정서를 가졌다”고 평했다. 그는 ‘저치 가는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아무리 일을 해도 살 수 없는 무지렁이들이 거역의 등불을 치켜들었습니다. 조정에선 그 들불을 끄려고 오랑캐를 끌어들였지요. 뿔대 돋힌 젊은이 6만명이 오랑캐를 물리치고 같이 압록강을 건너가요. 이 땅별(지구)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아니에요. 그 자리에 사랑과 나눔과 영원을 상징하는 진달래와 밤나무,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가요. 남이 뚝 자른 손바닥만 한 땅에서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그 안에서도 ‘나는 몇 평이다’, ‘나는 몇 뙈기다’ 하면서 ‘짜나리’(좀팽이)처럼 배배 꼬지 않아요. 그 넓은 대륙의 마음이 ‘저치’예요.” 민중은 몸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이야기의 고유한 성질로 ‘말림’을 꼽았다. 말림은 소리꾼이 몸짓으로 상황을 연출하는 ‘발림’과 가깝다. “소설은 머리로만 쓰지만 이야기는 온몸으로 한다.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소설과 이야기를 비교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가 격해진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눈빛도 이상하고 손가락도 막 움직이고 발가락도 쑤시고. 어떻게 보면 깡패 같기도 하고 우악스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춤추는 것 같기도 하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말림이에요. 말림은 듣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뼈대는 그대로지만 정서는 달라지는 거예요. 뒷골목에서 이야기하느냐 시장 바닥에서 이야기하느냐, 듣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게 민중들의 이야기예요.” 백기완은 “재워주고 밥 준다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 명동의 뒷골목에서 이야기판을 벌이며 술을 얻어 마시기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심이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이기주의와 정신적 허무주의가 판을 쳤다. 그 막판에 ‘용이냐, 이심이냐’를 들이대고 싶었다”고 했다. “이심이는 착하고 힘없는 바닷물고기예요. 힘센 물고기들에게 부대끼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아요. 용왕을 찾아갑니다. 용왕은 ‘힘센 놈이 힘없는 놈을 먹는 게 용궁의 법도’라며 ‘저놈 잡으라’고 내쫓아요. 오갈 데 없어진 이심이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하지요. 싸우다 보니 온몸에 쇠비늘이 하나둘 생겨나요. 다시 용왕에게로 쳐들어가니 어이쿠 놀란 용왕이 팍삭 상어로 변해 버려요. 그 대단한 줄 알았던 용왕이 고작 상어라니…. 용왕을 물리친 이심이는 힘없는 물고기들을 위한 ‘벗나래’(세상)를 만들고 함께 살아갑니다.” 그는 “썩은 수챗구멍에서 구슬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며 용꿈만 꾸는 것은 출세주의의 환상”이라면서 “그 환상을 깨부수고 부정과 싸우는 이심이에게서 배우자는 이야기”라고 덧붙인다. 모질게 고통받다 벼랑 끝에서 삶을 이겨 낸 장산곶매의 또 다른 변주 같다. 민중은 그의 영화에서도 중요한 소재다. 그가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영화야말로 오늘의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단돈 만원’, ‘대륙’, ‘쾌지나 칭칭나네’ 등 영화 대본도 3편 썼다. 그가 영화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계기도 민중의 활력 때문이었다. “1954년 경기도 여주에 농민 운동을 하러 갔어요. 농부들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웬 아낙네가 딸이랑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아낙은 서른 서넛, 딸은 열일곱이나 되었을까. 둘 다 젖가리개가 없어요. 어머니는 서른서넛밖에 안 돼도 그때는 애 키운 뒤니까 젖이 출렁출렁, 딸은 탱탱하고 포동포동해요. 둘이 번갈아가면서 쿵, 쿵, 쿵, 쿵 맞절구질을 하는데, 그 역동성에 깜짝 놀랐어요. 쿵, 쿵 절구를 찧을 때마다 출렁이는 음악적인 그림. 내가 그 모습을 잡아야 한다고 그랬어요. 이 땅의 농기구가 움직이는 모습을 다 영상으로 꾸려보자 했는데 그때 뭐 카메라가 있어 필름이 있어 돈이 있어. 그래서 대신 ‘농민’이라는 시를 썼어요.” 1965년 한·일 협정 때도 백기완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 독립군을 도와 일제에 맞서 싸우다 숨진 어린 엿장수 이야기였다. 그때만 해도 드물었던 16㎜ 카메라를 동성영화사에서 빌렸다. 백기완은 “어떤 놈이 술 먹겠다고 카메라를 몰래 가져가 술집에 잡혀먹는 바람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영화의 꿈은 깨졌지만 지금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젊었을 때는 배는 고프고 할 게 있나, 나 혼자 영화 이론 책을 뒤적거리고 그랬어요.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들쑥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들쑥이는 열일곱 먹은 어여쁜 춤꾼인데 깡패들이 잡아다 양놈한테 팔아버리려고 하거든. 순결을 지키려고 끝까지 싸우다가 두 다리가 부러져요. 그래도 ‘짓밟혀도 일어나 이 세상을 휘젓는 춤을 다시 빚으리라’ 하며 온몸으로 춤을 춰요.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실화예요. 사람의 몸짓, 말림이 뭔지 보여주려고 해요. 지금은 몸이 아니라 다 돈으로 움직이잖아. 들쑥이의 일생을 영상 언어로 꾸리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버릴 수가 없어요.” 길을 돌아 영화에서 시로 다시 온다. 백기완은 “참된 예술은 찰(시)밖에 없다. 영화는 찰을 오늘의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백기완의 예술 세계에서 시와 이야기와 영화는 환상(環狀)을 이룬다. 그는 “시는 걸레 짜듯 쥐어짜는 게 아니다. 사람의 역사적 삶에서 나온다”고 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라는 말을 압니까. 시라는 말도 모르고 써본 적도 없어요. 민중들은 사는 게 괴로워요. 혼자만 울어요. 샘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샘이 곧 자기 땀샘이라. 자기가 보여요. 뭔가 퍼뜩 끓어 넘쳐요. 그게 시예요.”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감옥에서였다. “배알이 튕겨져 나올 만큼 모질게 맞았다”는 차디찬 옥에서 무슨 뜨거운 것이 그리 넘쳤을까. 그는 “굳이 가장 아끼는 시를 말하라면 감옥에서 군사 양아치들한테 매를 맞고 죽음의 숨결을 먹으로 삼아 썼던 ‘묏비나리’와 별 볼품은 없지만 ‘아, 나에게도’를 꼽겠다”고 했다. 백기완은 온몸을 들썩이며 감옥에서 처음으로 쓴 시를 읊었다. 모이면/ 논의하고 뽑아대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가 좋았다 (중략) // 추렴거리도 없이 낚지볶음 안주 많이 집는다고/ 쥐어박던 그 친구가 좋았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전전하지 않았다 (중략)// 그렇다 내 이십대 초반/ 민족상잔 직후의/ 강원도 어느 화전민 지대였지/ 열 여섯쯤 된 계집애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구데기를 파내주고/ 우리는 얼마나 울었던가 (중략)// 백번을 세월에 깎여도/ 나는 늙을 수가 없구나/ 찬바람이 여지없이 태질을 한듯/ 다시 끝이 없는 젊음을 살리라/ 구르는 마룻바닥에/ 새벽이 벌겋게 물들어 온다 (‘젊은 날’ 중) 그는 오랜 시간의 인터뷰 중 몇 번이나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 나에게도 회초리를 들고 네 이놈 내려칠 어른이 한 분 계셨으면”(‘아, 나에게도’) 하고 외기도 했다. “사람은 늘 그리움으로 산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 이상의 사람이 되느냐 하는 그리움이 예술이고 문화”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야기를 마치는 그의 마음은 가만히 찰랑인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이 지금은 다 뭘하는지…. 내가 죽는다 산다 해도 전화 한 번 없네. 그런 면에서 보면 내 이야기꾼의 삶은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는다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가슴에 심어주는 게 중요하지 반드시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거두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의 역사는 아닙니다. 심어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 사상이고 이야기예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주요 작품 <시집> 1982년 젊은 날 1985년 이제 때는 왔다,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공저) 1989년 백두산 천지 1996년 아, 나에게도 <극본> 1994년 단돈 만원 1995년 대륙 1996년 쾌지나 칭칭나네 <이야기·소설> 1991년 이심이 이야기 2004년 장산곶매 이야기 2009년 따끔한 한 모금 2012년 하얀 종이배 (시나리오 작업 중)
  • [권혁 변호사의 행정법 판례 강의] 공유재산 관리 지방의회 의결 의무화 적법 권익 보호 위한 기관협의 흠결은 무효원인

    법령에는 행정청이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다른 행정청의 협력을 받도록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청의 임의적인 권한 행사를 견제하고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해 그러한 절차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법령에서 정한 범위를 넘어서 지방의회의 의결을 받도록 조례를 정했다면 그 조례의 효력은 어떻게 되는가? 그에 관해 판단한 대판 2000추29 판결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충북 단양군 의회는 단양군의 공유재산과 관련해 ‘원형을 변형하는 광업용 임대 등 관리의 경우’ 지방의회의 의결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조례안을 의결했고, 이에 대해 단양군은 공유재산 관리 행위에 대해서까지 지방의회의 의결을 받아야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먼저, 지방자치법 제35조 제1항 제6호 및 그 시행령 제15조의3과 지방재정법 제77조 및 그 시행령 제84조는 일정한 중요 재산의 취득과 처분에 관해서는 관리 계획으로 정해 지방의회의 의결을 받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공유재산의 대부와 같은 관리 행위가 지방의회의 의결 사항인지에 관해서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관련 규정들을 해석하면 공유재산의 취득과 처분에 있어 지방의회의 의결을 받도록 규정하면서 그 관리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하지 아니하더라도 공유재산 관리 행위를 지방의회 의결 사항으로 하는 것은 일률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처분, 취득과 관리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지방의회가 그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조례의 제정 범위에 관한 지방자치법 규정과 판례의 취지를 보면 지자체 고유 사무인 자치사무와 법령에 의해 위임된 단체 위임 사무에 관하여 지방의회는 자치조례를 정할 수 있고, 그 범위에서 정하는 자치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이라는 사항적 한계가 적용될 뿐이며 이는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면 그 조례는 적법하다고 해석된다(대판 96추244등). 따라서 위 판결에서는 지자체 재산 관리 행위에 대해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더라도 지방자치법 등에서 지방의회 의결을 배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점, 고유 사무나 단체 위임 사무가 조례제정권의 범위 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위 조례는 적법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편, 다른 기관의 의결이나 동의와 같이 의사에 기속되는 경우와 달리 단순한 협력이나 자문을 얻도록 규정돼 있는 경우에 협력이나 자문을 얻지 아니한 행정 행위의 효력은 어떠한가? 건설교통부 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처분을 한 경우(대판 99두653판결),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서의 금지 행위 및 시설의 해제 여부에 관한 행정 처분을 하면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누락한 경우(대판 2006두15806판결) 등에 대해 단순한 절차의 하자로 보아 취소 사유가 있는 행정 행위로 보았다. 실정법령에서 협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더라도 동의로 보아 협의가 흠결된 경우 무효인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본 사례도 있다. 건설공사 시 문화재 보존의 영향 검토에 관해 문화재청장과 협의를 거치도록 한 경우 그 협의는 동의에 해당하며 협의를 흠결한 경우는 무효이다(대판 2004추 119). 또 다른 기관의 협의 또는 자문이 법률에 의해 관계인의 권리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인정되는 때에 그 협력의 결여는 무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북한이 핵폭탄을 쏘네, 미사일을 날리네 하면서 협박 수위를 높이는 바람에 정신이 온통 사납다. 국영 조선중앙TV를 통해 품격이라곤 전혀 없는 저열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걸 보면서 ‘저러다가 정말 무슨 일 저지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저들의 모습이다. 외신을 보면 평양에서는 최근 전쟁 분위기와는 달리 봄맞이 치장에 한창이다. 그제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도 의외로 조용히 끝났다. 외국 대사관의 무관 가족들이 한가롭게 시내관광을 즐기는가 하면, 여군들이 전투복에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사진도 찍혔다. 외신의 평양 르포엔 한 주민이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긴장이 높아져도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터뷰도 담았다. 핵폭탄 한 발 쏘면 그걸로 끝장인데 여러 사람이 요란 떨 일 있느냐는 투다. 핵무기 덕분에 주민들도 배짱이 두둑해진 모양이다. 하기야 20년 동안 북한은 핵으로 재미를 꽤 봤다. 핵으로 적당히 겁을 주면 미국이 “말로 하자”며 쪼르르 달려오지, 한국은 쩔쩔매다가 돈 보따리를 풀어놓지…. 북한 정권에 핵무기는 흔들면 돈이 떨어지는 ‘요전핵’(搖錢核)이 된 지 오래다. 그곳 주민들이 평온한 걸 보면 그들도 핵무기가 전쟁용이 아니라 부(富)를 창출하는 도깨비방망이란 사실을 이젠 눈치챈 것 같다. 핵무기를 전략적으로 요긴하게 써먹은 나라는 북한이나 이란에 앞서 프랑스가 원조 격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유르겐 브라우어는 저서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에서 이를 소개했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에서 60kt의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3배, 당시 소련이 보유 중이던 수소폭탄의 1900분의1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한방’으로 세계 핵 대치의 본질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미국과 소련의 핵 독점을 깼을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의 치욕과 베트남전 패배로 위축됐던 국가의 자존심과 장엄성을 회복했다. 재래식 군대와 무기를 대체하고도 남을 전쟁 억지력도 갖추는 등 이문이 많이 남은 장사였다는 게 브라우어의 분석이다. 그는 “핵이야말로 약소국이 강대국에 대드는 과격한 수단이자 보유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헌법에 명시까지 해서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떼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장난이 이제는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여당의 중진 정치인들까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목청을 높이겠는가.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이에 동조했다. 성질대로라면 핵무기를 빨리 만들어 북한의 못된 버릇을 당장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냉정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핵에는 핵’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이 그럴듯해 보이나 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미국의 핵우산 체제가 이끄는 국제질서에 순응하면 본전은 찾는다. 물론 급할 때 우리 마음대로 핵무기를 운용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 억지력으론 손색이 없었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수백~수천 기의 핵전력을 갖춘 미국·러시아·중국이 가만히 있겠는가. 핵무기 선택권(Nuclear Option)을 가진 일본도 덩달아 무장할 것이다. 핵무기는 이미 강대국의 기득권이 돼 버렸다.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모른다. 1960~70년대처럼 핵무기에 대한 국제 감시망이 어수룩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전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해 전쟁 억지력과 자위권을 확보한다 해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립된 북한 짝 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핵무기가 정치·군사·외교적으로 강력하고 유용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핵무기를 가진 어떤 나라도 감히 실전에 써먹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굳이 핵무기를 가져 이웃 나라와 불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ycs@seoul.co.kr
  • 與 일각 ‘속도 조절론’ 반박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속도 조절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당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아 미묘한 온도 차를 드러내고 있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16일 확대 원내대책회의에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듯한 논의가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간사인 김 의원은 “대기업 행태의 여러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입법 시도들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면서 “대기업 행태의 문제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식이든 구조 문제에 손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만들었던 인사들 사이에서도 속도 조절론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선 공약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재벌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넘는 계열사에 대해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만드는 데 관여했던 한 인사는 재계 반발에 대해 “법상 계열사로 분류되는 기준이 상장사는 지분 3%이고, 비상장사는 10%”라면서 “총수 지분 30%를 기준으로 하겠다는 것은 아주 느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재계의 반발이 거센 기존 순환출자 공시의무,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도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인사는 “최근 쟁점이 된 법안들은 대선 공약이나 국정 과제에 비해 전혀 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열린세상] 이런 FTA는 어떨까요?/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

    [열린세상] 이런 FTA는 어떨까요?/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

    얼마 전 필자는 모처럼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무려 40년 넘게 함께한 ‘죽마고우’들이다 보니 마치 관포지교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처럼 눈빛만 봐도 척척 통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사이보다도 돈독하다. 밥값을 계산할 때면 한바탕 유쾌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그립고 무엇이든 함께 하고픈 죽마고우들이다. 개중에는 더욱 각별하게 여겨지는 친구들이 있는데, 오히려 어릴 적부터 유난히 티격태격했던 친구들이 그러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와 오랜 기간 동안 옥신각신해 온 중국과 일본도 우리의 ‘죽마고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0여년 전부터 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협상이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중·일 FTA가 성사되면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세계 3위의 거대시장이 창출되고, 그 규모는 세계 GDP의 19.6%, 14조 30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FTA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같은 최종재 시장에 대해 관세 등 장애 요인을 줄여 나가거나 없애는 무역협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최종재 시장은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 그리고 대량 생산 등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데, 이러한 단계가 진행될수록 경쟁 강도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FTA가 경쟁이 가장 첨예한 마지막 단계에서 추진되다 보니, 국가 간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협상이 중단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경쟁 전 단계부터 긴밀한 협력 관계가 형성된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신제품을 함께 개발하고 함께 만들어 낸다면, 아마도 그 뒷단계에 진행되는 FTA 협상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을 뜻하는 ‘FTA’(Free Trade Agreement) 대신에 ‘멋들어진 기술 의형제’라는 개념의 FTA(Fabulous Technology Alliance)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글로벌 협력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과학기술혁신 성과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과학기술의 국제화를 지목하는 한편, 여전히 외국 과학기술자에 대한 폐쇄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아직도 혈연, 지연, 학연으로 끈끈히 묶여 있는 나라도 드물다. 하지만 혈연과 지연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반면, 학연은 사정이 다르다. 의도적으로 학연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한·중·일 공학도가 서울, 베이징과 도쿄에서 몇 달간 순차적으로 머무르면서 3국의 최고 전문가로부터 공동교육을 받고 함께 졸업하는 ‘한·중·일 공동 학위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한·중·일 동기동창이라는 학연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3국의 동창생들이 공동으로 기술창업한 벤처기업에 3국 정부가 공동 펀딩하는 ‘한·중·일 공동창업 사관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이러한 학연은 글로벌시장에 정착하고 확산될 것이다. 실제로 EU는 1990년에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공동 박사학위 프로그램인 ‘유네틱’(EUNETIC)을 개설했으며, 이후 다양한 분야로 확대돼 진행되고 있다. 최근 창조경제의 핵심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가 활발하다. 그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창의력과 기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유럽공동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는 유럽공동체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사람 없이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도 없이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한 바 있다. OECD도 국가 혁신 주체들을 글로벌 지식네트워크에 편입시키고, 연구자들의 이동성과 국제공동연구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100년’이 아닌 ‘미래 100년’을 위해 한·중·일 3국의 젊은이들이 ‘죽마고우’가 될 수 있도록 ‘멋들어진 기술 의형제’를 맺어주는 ‘FTA’를 우선적으로 추진해 보면 어떨까.
  • “공교육 정상화, 학생부 신뢰도에 달려… 대학 구조조정 계속 추진”

    “공교육 정상화, 학생부 신뢰도에 달려… 대학 구조조정 계속 추진”

    새 정부의 첫 교육 수장으로서 취임 한 달을 맞은 서남수(61) 교육부 장관은 지난 12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정부 출범 100일 이내에 우리 교육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하고, 1년 뒤에는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고 5년이 지난 후에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이 정착되도록 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다음은 서 장관과의 일문일답.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100일 안에 가시적인 변화를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100일 동안에는 교육 현장에 ‘우리 교육도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 정부의 교육 비전인 행복교육에 대한 참여와 협력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단계다. 학생, 학부모, 교원 등 교육 수요자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 새 정부의 교육부가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평가가 현장에서 조금씩 싹트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장관 취임 전 강연 등에서 전임 이명박 정부식 교육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교육 기조도 큰 틀에서는 지난 정부의 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실현을 위해 교육 본질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율과 경쟁이라는 기조 아래 정책을 추진했던 이전 정부들과 차별화된다. 특히 학생의 소질과 잠재력을 이끌어내 꿈의 실현을 돕는 새 정부의 교육 기조는 평소 갖고 있었던 소신과 다르지 않다. 교육관료로서 다듬어 온 철학과 전문성을 충분히 녹여내겠다. →일선 고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조작했다는 감사원의 발표가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겼다. 물론 과거 조사 결과에 비해서는 크게 낮아진 수치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학생부 수정이나 조작은 단 한 건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단순히 교육부의 지침을 어긴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앞으로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방향과 관련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학생부의 신뢰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가 학교교육 정상화다. 이 목표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대학들이 입시전형에서 학생부 외에 논술, 대학별고사 등 다른 요소의 비중을 너무 크게 두는 것이다. 학교 시험성적뿐만 아니라 특별활동, 진로교육, 봉사활동, 특기적성 등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담아놓은 학생부 반영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학교교육 정상화의 큰 과제다. 학생부가 대학에 쉽게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원칙을 어기고 수정되는 일이 생기면 학생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결국 대학이 학생부를 믿지 않게 되고, 그 결과 학생을 선발하는 데 반영하지 않게 되면 학교교육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 된다. →학생부에 담임교사가 기록하는 발달상황이나 의견을 보면 코멘트가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다. -실제 교사들이 짧은 시간에 아이들을 서술식으로 평가하려다 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앞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부 기록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소통하겠다. 이 부분이 제대로 잡혀야 학교교육도 바로 서고, 입시와 관련해서도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의 큰 틀이 수시모집은 학생부 중심으로 뽑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가. -대학이 지원자를 평가할 때 학생부만으로도 학생의 과거와 현재, 미래 잠재력까지 모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시험 점수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에 걸친 학습 과정, 활동 내역, 진로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충실히 기록으로 남도록 하겠다. 3000여개에 이르는 대입 전형을 유형별로 분석해 보면 실질적으로는 학생부를 중심으로 하는 것, 수능을 중심으로 하는 것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학들이 학생부를 신뢰하게 되면 다른 요소들의 반영 비율을 줄여 나갈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도 결국 학생부를 기초자료로 해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다. 최근 존폐 논란이 일고 있는데. -입학사정관제는 양면성이 있다. 기존에 시험성적으로만 학생들을 뽑다 보니 성적에 의한 줄 세우기가 심했다. 입학사정관제를 잘 운영하면 점수 위주 선발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잠재력이나 창의력, 개개인의 특성, 더 나아가 학생들의 인성까지 반영해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사정관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공정성이나 투명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소지도 있다. 굉장히 주의해 가면서 발전시켰어야 했는데 지난 몇 년간 양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그러지 못했다.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향에서 깊이 있게 고민해 오는 8월 발표하겠다. →그때 발표할 새 대입 정책의 큰 틀은 어떤 방향인가. -이전에는 입학제도의 어느 한 부분을 두고 제도를 신설하거나 고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해당 제도만 놓고 보면 괜찮아도 전체적으로는 다른 제도 이거나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가치에 배치되거나 불합리한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는 이런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전체적인 교육체계를 바꾸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새 정부의 창의교육, 행복교육 정책이 쉽게 자리 잡힐 수 있을까.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워 주는 창의교육, 행복교육으로 가겠다는 것이 목표지만 사실 우리나라 같은 대입 학벌 중심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 창의교육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입제도를 어떤 식으로 끌고 가야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 명문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기존 인식을 타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방향성은 명확하다. 현재의 이런 학벌 중심 사회는 재조율돼야 한다. →지난 정부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인해 일반고의 경쟁력이 더 약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고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방안은. -일반고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학교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시험으로 모든 과정을 평가하는 시험 위주의 교육으로 지난 몇십년을 달려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궁극적으로 한두 가지 대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겪은 것처럼 학벌, 스펙 등이 별로 힘쓰기 어려운 시대가 분명히 도래할 것이다.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교육이 되려면 시험에 매달리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의적인 교육,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데 모든 교육 정책을 집중하겠다. →교권 침해, 업무 부담 등으로 교사들도 힘들다. 창의·행복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부터 달라져야 할 텐데. -아이들의 꿈과 끼를 살려 주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꿈과 끼도 같이 살려 줘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처우보다는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분위기와 여건이다. 예전에는 사회 전체가 교사를 예우해야 우리 아이가 잘 클 수 있다는 등 교권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요새는 학급당 학생 수가 줄었는데도 학생·학부모의 폭언, 수업태도 불량 등 문제로 교사들이 실망감과 좌절을 많이 느낀다. 교사들을 더 존경하고 교권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가면 단순히 수당 몇푼 더 받는 것보다 훨씬 신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작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새 정부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대학발전기획단을 새로 구성해 그 틀 안에서 대학구조개혁 및 평가체제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올해에도 학사관리와 경영실태가 취약한 대학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동시에 기존 대학 구조개혁의 틀과 성과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해 새로운 모델을 마련하고,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 지방대 인사를 포함시키는 등 인적 구성에도 변화를 줄 계획이다. →국가직무능력표준이 도입되면 학교 현장은 어떻게 달라지나. -학교교육은 교원 등 공급자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돼 현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때문에 기업은 학교교육을 불신해 학생 개인의 직무능력보다 학벌이나 스펙에 의존해 채용했다.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기반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면 기업이 요구하는 내용을 대폭 수용해 학교에서의 교육이 곧바로 산업체의 직무로 활용될 수 있다. 대담 박현갑 사회부장 정리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불의를 봐도 왜 못 본 척할까 뇌 때문에? 간 때문에?

    사랑에 눈먼다는 표현을 흔히 듣는다. 얼핏 시적인 표현처럼 들리지만, 뇌과학은 이를 과학적인 현상이라 규명했다. 쉽게 말해 사랑에 빠졌을 때 일어나는 뇌의 화학작용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유형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한 현상이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예컨대 불의를 봐도 ‘상대방 숫자’에 따라 애써 못 본 체하는 경우다. 뇌가 불의를 분명하게 인지했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무시하는 이율배반이 버젓이 성립하는 거다. 뇌가 비겁한 걸까, 간이 콩알만 한 걸까. ‘의도적 눈감기’(마거릿 헤퍼넌 지음, 김학영 옮김, 푸른숲 펴냄)는 이처럼 알면서도 실수를 되풀이하는 뇌의 특성과 인간 본성 간의 관계를 조명한 책이다. ‘의도적 눈감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도 뇌의 본능과 어긋난다면 고의로 무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못 본 척하는 것을 넘어, 아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끗이 잊어버리려 할 만큼 뇌가 비겁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거다. 저자는 사랑 외에 우리 뇌를 눈감게 하는 요소들로 동질성과 이데올로기, 복종, 순응, 보상 등을 꼽았다. 대단히 정밀하고 똑똑한 듯 보여도, 뜻밖에 뇌는 허점이 많다. 특히 익숙한 것에 쉽게 속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보자. 여인을 얻기 위한 노력과 정성을 강조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이를 뇌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익숙한 것에 뇌가 길들여진다는 의미가 있다. 익숙함은 쉽게 동질감, 또는 호감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부지런히 자신의 얼굴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면, 상대방의 뇌가 익숙한 사람으로 인식해 ‘비호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미국 미시간대에서 64명의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벌인 호감도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가벼운 예를 들었지만, 책에 담긴 ‘의도적 눈감기’의 실제 내용은 무겁다. 건강검진 미루기 등 개인의 일상적인 문제부터 성직자들의 아동 성 학대 등의 사회 현상까지, 의도적 눈감기의 구체적인 사례와 그로 인한 파장을 짚고 있다. 물론 비겁한 뇌의 한계를 딛고 선 용기 있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는 이처럼 정신의 작동 방식을 바꾼 이들을 ‘카산드라’라고 명명했다. 빠지기 쉬운 의도적 눈감기의 유혹에서 벗어나 진실을 직시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카산드라’를 통해 의도적 눈감기를 부추기는 요소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1만 5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이번엔 아이·어른 따로 즐기세요

    이번엔 아이·어른 따로 즐기세요

    의정부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가 새달 4~19일 의정부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수준 높은 국내외 공연을 선보이면서 경기북부·서울 시민들이 찾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주빈국인 캐나다 퀘백과 독일, 호주, 프랑스 등 5개 국가가 참여한 초청작 7개와 자체 제작 3개 작품으로 구성했다. 홍승찬 예술감독은 “이전까지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선정했다면 올해는 연령층을 구분하고 명확한 콘셉트를 가진 작품을 선정했다”고 소개했다. 올해 주제는 뒤섞고(Remix) 바꾸고(Reverse) 재생(Refresh & Reborn)시킨다는 의미로, ‘알’(R)로 정했다. 홍 예술감독은 개막작 ‘칼리굴라_리믹스’(왼쪽·4~5일, 캐나다)를 “축제의 본질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라며 자신 있게 추천했다. 로마제국의 폭군으로 불리는 칼리굴라가 가진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칼리굴라는 화자이자 연출자, 지휘자 등 1인 3역을 한다. 칼리굴라의 손짓에 따라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형식은 음악극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는 설명이다. 폭력적이고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을 그리고 있어 대사와 묘사가 덩달아 다소 과격하다. 19세 이상 관람 등급을 받은 이유다. 폐막작인 ‘인코디드’(오른쪽·17~18일, 호주)에서는 미디어와 무용이 만났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배우들의 몸짓이 감탄을 자아낸다. 36개월~9세 아이들을 위한 ‘바이올린 할머니’(4~5일, 캐나다)는 바이올린이 가진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점점 바흐, 드보르작 등 완성된 클래식 음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내용이다. 음악보다는 소리, 연기보다는 몸짓에 가까운 것들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중력의 법칙을 깬 ‘레오’(11~12일, 독일·캐나다)는 매우 흥미롭다. 비디오 영상 프로젝션을 이용해 배우는 마치 위아래가 뒤바뀐 듯한 무대에서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외로운 남자 레오의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을 터. 실로폰 오케스트라를 도구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노래와 춤으로 바꾸는 야외공연 ‘콩플레 만딩그’(11~12일, 프랑스), 라이브 콘서트를 표방한 ‘뮤지컬 오디션’(17~19일, 한국), 미디어 상상놀이극 ‘거인의 책상’(17~18일, 한국) 등도 볼 만하다. 주최 측은 제작공연으로 ‘이자람의 억척가’(10~11일)를 비롯해 지난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8~9일), 오디션으로 선발한 시민배우 37명이 만드는 합창뮤지컬 ‘11마리 고양이’(12일)를 선보인다. 올해 명예위원장을 맡은 가수 패티김이 사전축하공연(4~5일)을 펼친다. 19일에는 소리꾼 장사익의 ‘소리판’과 홍보대사 팝핀현준·박애리의 콘서트가 나란히 열린다. 이 밖에 자유참가작, 심포지엄과 전시, 찾아가는 공연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준비했다. (031)828-5894~5.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열린세상] 대통령이 국가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열린세상] 대통령이 국가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초급 수준의 핵무기를 가지고 강경파와 손잡은 29세 김정은은 ‘말’로 할 수 있는 도발은 다 했다. 3차 핵실험 성공의 자신감으로 정전협정 백지화, 최후 결전의 시각, 개성공단 폐쇄 등 극언과 만행을 아끼지 않는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명령만 내리면 멸적의 불줄기를 날릴 수 있게 경상적인(상시적인)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적진을 벌초해 버리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국제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2016년까지 48기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북한의 도발은 본질적으로 핵 위협이다. 애써 북한의 핵을 부인하려는 미국 정보당국과 달리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자주적으로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할 방안이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도 이 핵의 위기 상황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북한 스타일’이라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이게 박근혜 정부가 마주친 국가안보 현실이다. 그동안 국가정보가 고장이 나서이지 북한의 핵 무장은 예고된 시나리오였다.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한 30년 세월 동안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해 왔을 뿐이다. 북핵에 대한 장기 전략적 국가정보가 부재했고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국방장관 등 안보 관련 정책 책임자, 국가정보 수장들이 단기 전술적인 정치정보와 군사정보만을 국가정보로 착각했던 것이다. 국가안보의 핵심인 국가정보원의 근본적인 역할은 수집한 첩보를 치밀하게 분석해 끊임없이 최고 수준의 국가정보를 생산하는 것에 있다. 생산되는 국가정보에는 현안에 대한 전술적인 정보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웅장한 전략정보가 필수적이다. 15년 후의 미래예측 정보를 생산하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작년에 생산한 ‘Global Trends 2030’이 대표적인 미래전략정보이다. 이에 더하여 남북분단 상황인 우리의 경우에는 비밀공작(covert operation)과 방첩공작이 정보기구의 중요한 역할이다. 스스로가 전사(戰士)가 되겠다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기구는 전투부대가 아니다. 9·11 테러공격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투 지향을 비판, CIA 국장으로서가 아니라 CIA 전투사령관으로 본분을 갖추지 못한다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것이 정보세계의 평가이다. 정보기구는 정부가 현명한 정책결정을 하도록 최상의 단기·중기·장기 국가정보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최고의 국책연구소(Think Tank)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전쟁 선포 없이 북한 핵시설 기지의 파괴 또는 오작동을 유발하는 빼어난 비밀공작 역량을 가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기관 차원에서 깨끗하게 해치우기도 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먼저 국가정보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정치 관여 배제를 위해 정보 수장과 독대하지 않겠다는 발상으로는 정보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대통령은 국가정보 수장을 매일 만나야 한다. 다만 만나서 국내정치 보고는 받지 말고 북한군 간부들의 일일 동향, 핵무기 진전도, 노동당 정권의 향후 전망, 북한 경제동향은 물론이고 세계 기후변화와 신종 질병, 북방항로의 전망, 전 세계 최첨단 기술 보유회사 등 국가정보기구가 제대로 된 정보기구로 일할 수 있는지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것이 섹스 추문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CIA와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활용해 모든 나라를 압도하는 국가 경제정보로 경제번영을 이룬 초석이었다. 대통령이나 정보 수장이 단기 전술적인 전투형 정보에만 익숙해서는, 현안 문제에는 대처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참된 국가안보를 달성할 수 없다. 비상상황으로 이해는 되지만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방장관이 모두 육사 출신들로 전투 모드인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장기 전략적 국가정보를 바탕으로 한 국민 총화력으로 북한을 압도하면, 국가안보위기는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국가정보의 진정한 역할에 대한 대통령의 올바른 이해가 절실한 시점이다. 참된 국가정보가 국가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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