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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통령 “사초 증발, 國基 흔들고 역사 지우는 일”

    朴대통령 “사초 증발, 國基 흔들고 역사 지우는 일”

    박근혜 대통령은 6일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어야 할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사라진 이른바 ‘사초(史草) 증발’ 사태와 관련,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변화는 과거 잘못된 관행을 정리하고 기본을 바로 세워 새 문화를 형성하고 바른 가치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증발 사태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새누리당의 검찰 수사 의뢰를 계기로 여야 공방이 잦아드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지적해 파장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또다시 ‘사초 증발’을 정쟁화해서 국정원 국정조사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 요구를 물타기하려는 시도는 아닌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도 이날 오후 늦게 트위터를 통해 “NLL 논란의 본질은 안보를 대선공작과 정치공작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고, 그래서 국기문란이라는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나서서 풀어야 할 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함께 바로 그 문제”라고 꼬집었다.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인사들도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초 실종에 대한 검찰수사 압박”이라며 격앙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열린세상] ‘친구 사이’도 있어야 할 정치/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친구 사이’도 있어야 할 정치/김정현 소설가

    이제는 세상을 버렸지만 고향을 지키던 아주 소중한 친구가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면 아무 때고 친구의 집을 찾았고, 만나면 그저 소주잔을 나누며 허튼소리나 하다가 헤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문득 친구가 생각나 고향을 찾는 때도 있었고, 몹시 마음 상한 날에는 불쑥 전화를 해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친구가 떠나고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며 알았다. 우리가 나누었던 소주잔과 허튼소리가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의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만날 때마다 진지하게 인생과 세상 이야기만 했더라면 아마 그처럼 편안하게 마음을 열지 못했을 것이고 소중한 친구의 연으로 남지도 않았으리라. 오히려 인생에도, 세상에도 초연한 듯 그저 마주보고 허허롭게 웃는 가운데 마음이 통해 흘리듯 내 뱉은 한 마디로 그 속을 알아 다독여주고 답을 주던 친구 사이…. 민주당은 서울광장으로 나섰고, 새누리당은 민생현장을 찾는단다. 참으로 꼴불견이고 복장 터지는 노릇이다.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그처럼 밴댕이 속이 되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입만 벙긋하면 앞세우는 국민을 분열로 내몰다니. 뭐 그렇더라도 저마다 속이 빤히 보이기는 하지만 명분을 내세우고, 살아보려는 발버둥이니 두 눈 질끈 감고 말아야지 어쩌랴. 그런데 오늘 해질녘, 새누리당 의원 누군가가 서울광장으로 찾아가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애썼는데 시원한 막걸리나 한 잔 하자며 먼저 손 내밀면 어떨까? 물론 그때 민주당 의원 누군가는 못 이기는 척 내민 손 잡아 대폿집으로 가주는 거고. 막걸리잔 앞에 놓고는 굳이 이런저런 속보이고 되잖은 소리를 나눌 일은 아니다. 그저 날씨 이야기, 막걸리 맛 평가나 하다가 얼큰하게 취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렇게 한 사나흘 매일 저녁 마시다 보면 밴댕이 속들이 좀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다음에는 뭔가 풀리지 않겠는가. 말로써 말을 공격하다 보니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서 그렇지, 그래도 명색 총명한 국민들이 뽑은 선량들이니 본질은 반듯할 테고, 본심만 찾으면 될 것 같아서 드리는 꽤 신선한(?) 건의다. 남북관계도 어찌 그리 꼬여 있는지. 분명히 갖춰야 할 격(格)이기는 한데 상대는 도무지 억지옹고집의 불통이고. 세상 누가 들어도 당연한 재발 방지 약속에는 딴청이나 피우다가 판 엎기를 밥 먹듯 하니. 게다가 또 장관이 직접 나서 회담 요청의 최후통첩을 했지만 저쪽은 아예 들은 척도 안 하니 이젠 모양새마저 빠져버린다.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 갑갑한 심정에 공감이 간다는 이야기다. 전쟁 중에도 대화라인은 유지되어야 하는 게 정치이고 외교인데, 시정의 잡배가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쩐지 사방팔방 꽉 막혀 있는 듯 보인다. 밀사니 특사니 요란한 이름 집어치우고, 아무런 의제나 목적 없이 그저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건 어떨까. 다퉈야 할 현안에 대한 신경전이 없으면 밥도 술도 잘 넘어갈 테고, 허튼소리로 흉금을 내비치다가 보면 친구가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서로가 서로를 아는 것이 우선인데, 언제나 서로의 입장 관철이 우선이었으니 애초부터 친구가 되기는 그른 만남만 있어 왔다. 하긴, 남과 북이 어디 그리 한가한 관계였던가. 그렇지만 막히면 둘러가는 것도 방법이라는데, 바쁠수록 천천히 가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 친구라고 언제나 좋았던 건 아니었다. 때로는 까닭 없이 서운한 날도 있었고, 별일도 아닌데 삐쳐서 소원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친구 사이는 사소한 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큰일에서는 잠시 목청을 높여도 금세 해결책을 찾고는 했다, 친구 사이니까. 아무리 싫어도 함께 의정 단상에서 법을 만들고 민생을 꾸려가야 할 사람들이다. 당장 한 주먹 날려서 정신 번쩍 들게 만들거나 내 손으로 바로잡았으면 싶지만 쉽지 않은 노릇임을 뻔히 아는 남북관계다.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서 다시는 장외로 나서지도, 다투지도 않고 오순도순 머리 맞대는 건 더 요원한 정치이고, 사이이다. 어차피 그처럼 이어질 다툼이라면 에라, 일단 친구 먹기부터 먼저 해보자 하면 어떨까. 물론 모두 친구가 될 리는 없을 테고 그저 숨통 터줄 몇몇이라도 말이다.
  • 째깍째깍…시계가 돌자 유럽은 근대로 갔다

    미국의 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가 근대산업의 핵심 기계”라고 단언했다. 13세기 후반 유럽에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등장했다. 그 이전에도 해시계나 물시계와 같이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가 있었지만 동력 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유럽이 처음이었다. 그러면 왜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까닭을 흑사병이라는 거대 재앙으로 인한 노동력 급감으로 유럽 문명이 더욱 기계지향적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간의 힘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경제적인 토양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포와 범선, 제국’의 탄생을 통해 세계를 지배한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와 연관된 인간의 현실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1338년 여름 갤리선 한 척이 베네치아를 떠나 동방으로 향했으며, 이 배에 실린 여러 물건들 중 기계식 시계가 하나 실려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유럽이 기계를 아시아로 수출하기 시작했다는 내용 등 그동안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던 운명적인 사건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또한 기술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경제와 사회의 역사에 대한 탐구이며 사람들과 그들의 성향, 사회적 가치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계 시계의 탄생이 과학 혁명과 산업혁명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면서 언뜻 무관해 보이는 시계와 대포가 역사적으로는 커다란 연관이 있었으며, 놀랍게도 유럽 최초로 시계를 제작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대포 장인이었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실들을 펼쳐 보인다. 기계식 시계의 발전사도 언급하고 있다. 초창기 거대한 공공 시계였던 기계식 시계는 15세기 태엽이 동력으로 등장해 크기가 작아지면서 가내용 시계와 회중 시계로 발전했고, 16세기에 들어서면 유럽 신흥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 등이다. 이때부터 시계 장인은 대포 장인보다 보석 세공인에 가깝게 개념이 바뀌었으며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계 제조업 중심지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박인비는 이미 전설이다/최병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박인비는 이미 전설이다/최병규 체육부 차장

    ‘골프’(Golf)란 단어는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말로 ‘치다’는 뜻의 ‘고프’(Gouft)가 어원이다. 옛날,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 북쪽 해안에는 링크스라 불리는 높낮이가 불규칙한 초원이 널려 있었는데, 멋진 잔디와 잡목이 우거진 작은 구릉이 이어진 모양새가 골프 코스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당시 링크스에 서식하고 있던 수천 마리의 들토끼들이 잔디를 갉아 먹은 뒤 짧고 평평해져 녹색의 풀빛이 뚜렷해진 부분을 ‘그린’이라 불렀고, 이 그린과 그린 사이에 양떼들이 밟고 지나가 평탄해진 넓은 길을 ‘페어웨이’라고 칭했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는 사실 전설의 땅이다. 특히 이곳에 품은 7개 골프장 중에서도 1552년 만들어진 올드코스는 신비로 가득한 곳이다. 전·후반 각 11개홀의 왕복플레이가 2홀이 줄어 전체 18홀 1라운드의 표준이 된 것은 1764년. 첫 골프대회인 ‘디 오픈’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철종 11년인 1860년에 시작돼 고종 13년인 1873년 올드코스로 옮겨졌다. 잔디 뿌리의 나이만 헤아려도 450년을 넘긴 올드코스에서 지금 또 다른 전설이 쓰여질 참이다. 박인비. 그가 올해 벌써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6승을 올리고 이제 7승째로 메이저 4연승, 지금까지 누구도 일궈내지 못한 ‘그랜드슬램’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사실 연승 행진에 불을 지핀 첫 승은 ‘전설’처럼 다가왔다. 지난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대회. 아리야 주따누깐이 17번홀까지 선두를 달리며 태국인 첫 LPGA 챔피언이 되는 듯했지만 18번홀 벙커에서 3타를 잃어 눈물이 가득한 우승컵을 박인비에게 넘겨줬다. 골프의 절반은 ‘멘털’이다. 칭찬은 골프채도 춤추게 만든다. 올해 박인비가 그랬다. 그러나 그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투어 첫 우승 뒤 “이후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며 슬럼프를 기억하고 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릴 정도였고, 대회에 나가는 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느낌이었다니 고통스러운 나날이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그 선대의 남자 선수들조차 일구지 못한 대기록을 정조준하고 있다. 몇 안 되는 골프 영화 ‘지상 최대의 게임’에서 실존 인물이자 1913년 US오픈 첫 아마추어 챔피언이었던 당시 20살 청년 프란시스 위멧이 던진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는다. “골프는 교훈을 준다. 그 가운데 첫째는 어떠한 불운도 감수하고 헤쳐나가는 미덕이다.” 올드코스와 박인비의 만남은 두 번째지만 고통의 세월이 있었기에 6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전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백 년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고 해서 모두 전설이 되는 건 아니다. 거센 비와 바람, 어쩌지 못할 정도의 찌르는 아픔을 견뎌낸 뒤 비로소 전설은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올드코스와 박인비, 이 둘이 가진 전설의 본질은 같다. 8월의 첫날 오후 3시 3분, 박인비가 브리티시여자오픈 1라운드 티박스에 올라섰다. 골프팬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그랜드슬램 달성 여부에 목을 빼고 있다. 그러나 전설은 이미 이루어졌다. 박인비로 하나가 된 대한민국, 이게 바로 올드코스의 잔디 뿌리보다 더 깊고 진한 전설이다. cbk91065@seoul.co.kr
  • 경영부실大 신입생 국가장학금 못 받는다

    이달 말 지정되는 경영부실 대학의 2014학년도 신입생들은 국가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또 올해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부터 인문·예체능 계열은 취업률 지표 산정에서 제외되며 정원 감축을 적극 추진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교육부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정부 들어 첫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14학년도 재정지원 제한대학 및 경영부실 대학 평가계획을 확정했다. 지난해까지 경영부실 대학에 학자금 대출을 제한했던 것보다 강력한 제재다. 교육부의 부실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까지 경영부실 대학들은 학자금 대출 한도를 제한받았다. 2010년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30개 대학을 선정, 등록금의 70%까지만 학자금 대출이 가능토록 했다. 여기에 국가장학금까지 지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선 교육부는 이달 중 기존 경영부실 대학을 평가해 재지정 여부를 가리고 신규 경영부실 대학을 지정한다. 국가장학금 미지급 대학은 이달 말 발표될 계획이다. 이로써 당장 올 입시부터 해당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교육부는 또 올해 정부 재정 지원 제한대학 평가부터는 취업률 지표 산정시 인문·예체능 계열은 제외하기로 했다. 다만 올해에 한해 기존 방식으로 취업률 산정시 하위 15%에 포함되지 않는 대학이 인문·예체능 계열을 제외했을 때 하위 15%에 들어가면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평가 지표에서도 각 항목의 비중 변화가 생긴다. 취업률 비중은 기존 20%에서 15%로, 재학생 충원율은 30%에서 25%로 5% 포인트씩 축소했다. 취업률 부풀리기 등 소모적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 충원에 한계가 있는 지방대의 여건을 고려한 방안이다. 전문대는 취업률 비중을 유지하되 재학생 충원율만 5% 포인트 낮췄다. 이외에도 교내 취업자는 해당 대학 취업자의 3%까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는 이날 새로 임명된 대학구조개혁위원 16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위원장에는 송용호(61) 전 충남대 총장을 위촉했다. 서남수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양적인 지표로 구조조정에 대비해 왔지만 좀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전체적인 시스템이나 기준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여러 위원의 조언을 받아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열린세상] 정부가 공정해지려면/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가 공정해지려면/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나라 살림을 하는 행정과 개인과 기업의 살림을 하는 경영은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조직, 인사, 예산 등 이론은 같다. 다른 게 있다면 행정은 주어진 세금으로 살림을 꾸리고, 개인과 기업은 돈을 벌어 살림을 한다는 점이다. 행정의 재원은 개인과 기업의 세금에서 조달되고, 개인과 기업의 재원은 그들의 경제활동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타인의 주머니에 의존하는 행정은 공정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개인과 기업은 이윤 창출, 즉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공정성을 저버려도 행정은 망하지 않고, 사회갈등만 심화될 뿐이다. 행정의 주체인 정부는 대기업이 가진 대마불사보다도 더 질긴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 창출을 못 하는 기업은 망하고, 개인은 파산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행정을 하는 사람과 기업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행정을 하는 사람은 잘못해도 망하지 않기 때문에 나태해지기 쉽고, 기업하는 사람은 잘못은 곧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한다. 나태해도 생존이 가능한 집단과 나태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집단의 관계는 매우 역설적이다. 나태해도 되는 집단이 우위에 있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 익숙해 있는 집단이 하위에 있다. 우리 사회는 전자를 갑이라 하고 후자를 을이라 한다. 나태할 수 있으면서도 엄청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 정부이기에,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태생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정부가 공정해지려면 업무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고압적 권한행사에서 고객 중심의 봉사행정으로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부가 공정해지려면 세금 징수도 공평해야 한다. 공평조세의 기준 중 하나가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이다.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의 비중이 높으면 소득의 역진효과가 나타나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간접세는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똑같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직접세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고, 부자는 많이 내는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간접세의 비중이 높으면 서민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국세에서 차지하는 간접세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간접세 비중이 2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50%가 넘는다. 간접세 비중은 2005년 52.4%에서 2007년 47.3%로 낮아졌으나 2008년 48.3%로 반등한 이후 2011년 현재 52.1%로 다시 늘었다. 최근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정부가 공평해지려면 간접세 비중을 줄여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가가치세를 늘림으로써 간접세 증세를 추진하는 행위는 공평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 공청회에서 소득세의 비중을 늘리는 방안이 제시되기는 했다. 그러나 소득세의 경우 과세구간 조정 없이는 공정 세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역진효과가 발생될 수 있다. 2012년 귀속 소득세 과세구간은 5등급이었다. 최하구간은 연소득 1200만원 이하로 세율은 6%, 다음은 4600만원 이하로 세율은 15%, 3등급은 8800만원 이하로 세율은 24%, 8800만원 초과는 35%, 3억원 초과는 38%로 설정해 놓고 있다.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0분위별 연평균소득을 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2013년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10분위의 평균소득은 1억 2000만원, 소득 9분위 평균소득은 7900만원 수준이다. 현행 과세구간을 보면 9분위 수준의 소득자에게는 최고 소득세율 35%를 적용하고 있다. 연소득이 9000만원인 사람과 2억 9000만원인 사람의 소득세율이 35%로 동일하다면 공정하지 않다. 2013년 현재 평균소득이 5030만원 수준인데 부과하는 세율이 24%라면 공정한 세율인지도 의문스럽다. 정부가 공정해지려면 사회복지와 같은 분배정책도 공정해야 하지만 조세정책도 공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공정해지는 첫걸음이다.
  • [김종면 칼럼] ‘史草 트라우마’를 어쩔 건가

    [김종면 칼럼] ‘史草 트라우마’를 어쩔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언젠가 남의 손에 들어가 공격의 수단으로 역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수중에 있을 때보다 남에게 넘어갔을 때 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까, 그래도 끝까지 갖고 있는 게 현명한 일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재스퍼가 말하는 이른바 ‘초토화의 딜레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없어졌다고 난리인 마당에 이런 상황을 떠올리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이 같은 일이 결코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초토 전술은 모름지기 적(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적지가 아니다. 대통령은 적군이 아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의연히 ‘노무현 전 대통령 파기설’을 제기한다. 민주당 유력인사는 회의록 원본 폐기 가능성을 시사하며 다짜고짜 이명박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의혹 단계부터 일단 피아(彼我)로 나눠 상대를 의심하고 물어뜯고 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개인이나 정파의 이해보다 나라의 모양, 곧 국격과 국익을 우선해야 함에도 그 반대로만 내닫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여야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정쟁 중단을 선언했지만 회의록 실종 문제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회의록 정국을 이끌다시피 한 민주당 문재인 의원의 책임이 크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도 굳이 사초(史草)라 불리는 회의록 ‘원본 열람’을 주도하며 정쟁을 키웠다. 이로 인해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의혹 국정조사는 동력을 잃었다. 국정원 개혁마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2가 찬성해 회의록을 열람했는데 특정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물론 없다. 이때가 기회다 하고 정계은퇴 운운하며 총질을 해대는 것 또한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기록물 이관을 총괄한 당사자로서 회의록 감수까지 했다면 사초 실종이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처해 누구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있다고 거듭 말한 경위에 대한 설명도, 유감 표명도 없이 덮어놓고 NLL 논란을 끝내자고 해 스스로 ‘오독’(誤讀)의 여지를 남겨 놓은 이가 누구인가. 귀책사유를 따지며 말을 보탤 계제가 아니다. 정치 불신과 냉소만 더할 뿐이다. 정치의 난장에서 벗어나 피정(避靜)의 세월이라도 보내며 국민이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치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NLL 논란이 ‘사초 게이트’로 이어진 것은 국가적 수치다. 사초가 사라진 것도 모자라 정쟁의 도구까지 됐으니 유구한 기록문화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만신창이가 됐다. ‘역사 무뇌아’ 신세다. 사초의 재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생산적인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NLL 논쟁은 진작 끝냈어야 했다. 이제 와서 ‘보여주기식’ NLL 사수 합창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만큼이나 싱거운 일이다. 그럴 여력이 있으면 사초 실종의 전말을 밝히는 데 보태야 한다. 회의록 작성과 보관에 관계한 인물들이 건재하다. 무슨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게 아니라면 본 대로 들은 대로 증언하면 된다. 문재인 의원은 며칠 전에도 “대화록 왜 없나. 수사로 엄정 규명해야죠”라는 트위터 글을 남겼다. 여전히 회의록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검찰 수사에 기대를 걸지만, 그것만으로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리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사초의 진실을 알 만한 이들의 양심선언이 필요하다. 끝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여야 공히 NLL 공방을 접는다고 했으니 이제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근절과 개혁이 본질이다. 전혀 새로운 모습의 국정원을 볼 수 있다면 ‘사초 트라우마’에 빠진 국민도 적잖이 위안을 얻을 것이다. 국정원 개혁, 그리고 사초의 진실 규명은 그야말로 국민통합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국가 중대사다. 수석논설위원 jmkim@seoul.co.kr
  • [기고] 코넥스 성공, 제1의 조건은 ‘인내심’/서태종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기고] 코넥스 성공, 제1의 조건은 ‘인내심’/서태종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지난 7월 1일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인 코넥스(KONEX) 시장이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사업에 필요한 돈을 대부분 높은 이자비용이 따르는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자비용이 들지 않는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의 허리가 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중소기업의 애로를 덜어주기 위해 만든 자본시장이 코넥스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초창기 중소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 주식발행을 통해 싼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코스피나 코스닥 시장이 있지만 초창기 중소기업이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다. 코넥스는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예를 들면, 재무요건으로 매출액 10억원 이상, 자기자본 5억원 이상, 당기순이익 3억원 이상 중에서 한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된다. 물론 코넥스 시장에 상장하는 기업들은 초창기 기업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성이 높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 개인투자자가 코넥스 상장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제한했다. 전문성을 갖춘 기관투자자가 주요 투자자가 되고, 개인투자자는 3억원 이상을 예탁한 사람에 한해 직접 주식을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 개인투자자도 코넥스 상장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는 간접투자 방식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한쪽에서는 중소기업들이 더 쉽게 상장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진입 문턱과 상장 유지 부담을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진입 규제와 공시의무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요구를 절충하여 어렵게 탄생시킨 것이 코넥스 시장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에서 갓난아이에 불과한 코넥스 시장을 향해 거래량과 거래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실패한 시장이라고 단정 짓는 등 험담을 퍼붓고 있다. 코넥스 시장은 앞서 언급했듯 개인투자자의 투자가 제한되어 있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장기 투자하는 시장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거래량과 거래금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한 달여밖에 안 된 자본시장을 실패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코넥스 시장이 잘되어야 중소기업이 잘되고 중소기업이 잘되어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제에 활력이 돌 것 아닌가? 코넥스 시장이 성공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인내심이다. 투자자는 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여 투자하고 성과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코넥스에 상장한 기업과 기업가는 단기 성과나 주가에 매달리지 말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성공스토리를 창출해 내려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정부 또한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중소기업 자금 조달의 장으로서 코넥스 시장이 안착할 수 있도록 보완해 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언론을 비롯한 중소기업 업계, 정치권 등도 단기간의 거래실적이나 주가 등을 보고 성패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지켜보면서 지원과 격려를 보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내심이 모아진다면 수년 내에 코넥스 상장기업 가운데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반드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 [공연리뷰] 락앤롤 맥베스

    [공연리뷰] 락앤롤 맥베스

    권력에 대한 그릇된 욕망이 불러일으킨 피비린내 나는 살육도, 고통과 후회로 울부짖는 맥베스의 죽음도 한낱 광대들의 조롱거리일 뿐이다. 지난 23일부터 서울 세실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락앤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한바탕 광대극으로 각색하는 비틀기를 시도하면서 오히려 원작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내용이 다소 난해하고 세태풍자나 음악 활용 등 세부적인 세련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극의 기본 틀은 광대들이 연기하는 맥베스다. 종이로 만든 단검과 왕관을 가지고 놀던 광대들이 서로 맥베스와 그의 아내, 덩컨 왕과 뱅코 등을 맡는다. 마녀들로부터 자신이 영주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둘씩 죽인다. 그러나 광대들은 “맥베스가 400년이나 공연돼 왔는데, 아직도 사람을 찔러 죽이느냐”라고 비꼰다. 광대들은 맥베스의 권력욕을 부추기다가도 권력에 취한 맥베스를 비웃으면서 동시에 부와 명예, 권력을 위해 횡포를 일삼는 한국사회의 ‘갑’들을 함께 비웃는다. 광대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쾌하지만 그 메시지에 다가가기까지의 전개 방식은 다분히 난해하다. 두서도 논리도 없는 대사와 행동들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광대극의 본질이지만, 극의 흐름이 이어지다가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논리 없는 대사와 행동들 탓에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또 극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세태 풍자가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광대들은 자본주의, 부동산 광풍을 비롯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국정원의 선거 개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 각종 시사 이슈들을 한번에 쏟아내며 한국 사회의 권력자들이 맥베스와 다르지 않음을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나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면 더 날카로웠을 세태비판은 너무 직접적인 대사로 풀어내면서 풍자의 맛이 반감됐다. ‘락앤롤’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락 음악 못지않게 귀에 익은 1990년대 댄스가요와 팝도 주된 배경음악으로 활용된다. 강렬하고 시원한 광대들의 락앤롤 파티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8월 24일까지. 전석 2만 5000원.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성공이 몰고 온 사물놀이의 위기

    [서동철의 시시콜콜] 성공이 몰고 온 사물놀이의 위기

    사물놀이를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서울 원서동의 ‘공간사랑’이었다. 그 전 해, 같은 곳에서 출범한 사물놀이는 이미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날 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소리뿐만 아니라 울림까지, 귀는 물론 온몸으로 전해지는 공연이란 뜻밖의 경험이었다. 서양음악에서도 관악기가 4개씩 동원되는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 연주회에서는 금관악기군(群)에서 내뿜는 진동이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15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꽹과리, 북, 장고, 징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전투적 울림은 차원이 달랐다.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분명한데도, 네 사람이 끊임없이 두드려대는 퍼포먼스의 시각적 효과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정교하게 짜여진 가락이 더해지며 절정으로 몰고 갔으니 음악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이후 사물놀이가 전례 없는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비슷한 엑스터시를 공유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사물놀이는 1983년 드디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진출했다. 4000석 남짓한 초대형 극장이었던 만큼 공간사랑에서와 같은 물리적 울림은 없었다. 대신 소극장에서는 불가능했던 상모돌리기 같은 판굿이 등장한 것은 새로운 볼거리였다. 객석 한복판에서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은 색동저고리 금발 소녀가 끝없이 기립박수를 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물놀이가 세계적 보편성마저 갖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고, 실제 그렇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남사당 출신의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가 만든 타악 앙상블 사물놀이는 어느 사이 보통명사가 됐다. 그렇다고 사물놀이가 찬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속학계는 무대와 관객을 분리시킨 사물놀이가 두레패와 구경꾼이 한데 어울리는 풍물굿의 생명력을 쇠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동체의 신명을 풀어내던 풍물굿의 전통은 사라지고 무대에서 관객을 내려다보는 사물놀이만 남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공간사랑의 사물놀이는 풍물과 무속의 음악적 요소를 타악사중주단의 무대 공연 레퍼토리로 정밀 가공한 것이었다. 본질을 더욱 가다듬고 변두리 활동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 풍물굿과는 분명히 다른 독자적 영역을 유지했다면 비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이 모호해지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물놀이 단체가 생겨났음에도 본질에 충실한 공연은 이제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렵다. 무지한 사물놀이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민속학계의 걱정처럼 전통문화에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물놀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위기다. 실상을 점검하고 궤도를 수정하는 데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dcsuh@seoul.co.kr
  • 민주 “회의록 안 보냈어도 통치행위” 與 “명백한 범죄행위에 민망한 궤변”

    새누리당이 25일 ‘사초(史草) 증발’ 사태에 대해 ‘단독 검찰 고발’ 카드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 민주당이 내세웠던 특검 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검찰 고발에 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로 (국가기록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해도 범죄행위가 아닌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지도부와 친노무현, 비노무현계 사이에 회의록 사태 관련 해법을 놓고 불협화음이 불거졌다. 친문재인계로 분류되는 배재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의 검찰 고발에 대해 “참여정부 인사, 최종적으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을 욕보이기 위해 정치검찰을 동원하고 싶은 것 같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로 보내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범죄행위가 아닌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 체계를 직접 세운 노 전 대통령이 임의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대통령기록물에서 누락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이런 행위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논평이어서 당내에서도 즉각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터져나왔다. 배 대변인이 브리핑 말미에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 삭제를 지시했을 리 만무하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소용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명백한 범죄행위를 두고 통치행위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늘이 놀라고 땅이 혀를 찰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에서 “들어주기 민망할 정도로 억지스럽고 낯부끄러운 궤변”이라면서 “관련 기록물을 분명히 넘겨줬다고 했던 민주당이 ‘사초 실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 앞에서 또다시 말바꾸기 시동을 걸었다”고 반격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대화록 실종 경위를 새누리당이 예단하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출구전략을 놓고서도 지도부는 좌충우돌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문제의 본질인 (NLL 포기발언 여부) 진실 규명을 위해 국회 의결대로 정상회담 사전·사후 문서 등 부속문서 열람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노무현계 조경태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새누리당은 이날 예상보다 빨리 단독 검찰 고발 결정을 내렸다. 민주당 역시 검찰수사 원칙에 공감한 만큼 두 달 가까이 끌어온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회의록 증발 사태를 하루빨리 털고 가자는 계산으로 보인다. 단독 고발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보다 출구전략을 통해 민생정치로 돌아가자는 요구가 훨씬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문서를 폐기했는지 절도했는지 팩트(사실)에 관한 수사인데 도둑질한 것도 여야 합의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재발방지책 남북 현격한 입장 차… 나머지는 상당부분 접근

    재발방지책 남북 현격한 입장 차… 나머지는 상당부분 접근

    북한이 25일 개성공단 6차 실무회담에서 제시한 합의문안은 핵심 문제인 개성공단 재발방지책에서 우리 측과 현격한 입장 차를 보였다. 북한은 이날 새로 제시한 문안에서 “남측이 공업지구를 겨냥한 불순한 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하면, 북측은 이상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출입차단, 종업원 철수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먼저 개성공단을 향한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접어야 자신들도 재발방지를 보장하겠다는 ‘조건부’ 합의문이다. 북한은 여섯 차례에 걸친 회담에서 시종일관 남측이 개성공단 폐쇄 수순을 밟으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번 5차 회담에서 북측 박철수 수석대표가 “북악산(청와대 뒷산)정점이 대성산(북측의 혁명열사릉이 있는 곳)만큼 청아하고 맑은가”라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측 김기웅 수석대표는 “이 문구는 누가 봐도,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는(재발 방지를)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누가 봐도 이제는 출입 차단이나 근로자 철수 같은 문제는 없겠구나하고 인식할 수 있는 문구가 돼야 한다는 게 우리 측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측은 이날 남측 기자실에 자신들이 제시한 합의문을 배포하며 이 문구를 삭제했다. 합의문에는 ‘북과 남은 개성공업지구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업지구의 정상운영을 보장하며 그에 저해되는 일을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는 문구만 담겼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이 남측을 상대로 여론전을 펴기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문구를 일부러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며 “불순한 언동을 하지 말라는 내용은 북측이 우리 측 수석대표에게 직접 밝힌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재발방지책을 제외한 나머지 합의항은 우리 측 입장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개성공단 체류 인원의 안전 보장 ▲투자자산 보장 및 분쟁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통행·통관·통신 문제 협의 ▲외국기업 유치 적극 장려 ▲개성공단 제품 제3국 수출 시 특혜관세 인정 등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과 국제화를 위한 방안을 모두 합의문에 담았다. 다만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 우리 측의 태도 변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김 수석대표는 “재발방지책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상당 부분 접근해 있었다”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재발방지 부분이 해결돼야 다른 부분도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논의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국정원 국정조사] 김한길의 ‘文 구하기’… “내게 가장 큰 책임”

    [국정원 국정조사] 김한길의 ‘文 구하기’… “내게 가장 큰 책임”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24일 ‘문재인 성명2’를 내놓았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국면에서 침묵을 지켜오다가 이날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종식’이란 큰 틀에서 전날 문재인 의원이 냈던 성명과 다르지 않았다. 집권 시절의 사초가 실종된 데 따른 위기 국면에서 나선 것이어서, 특별한 국면 타개책을 기대했던 당 일각에서는 ‘문재인 구하기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 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책임이 있다면 국회에서의 회의록 열람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당 대표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연일 우리 당의 특정 의원과 계파를 지목하며 공격해서 당내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식의 공격은 여야 간의 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화록 공개를 주도했던 문 의원이 연일 새누리당의 공격을 받고 있자 문 의원을 구하기 위해 총대를 멘 것으로, 무엇보다 문 의원에 대한 책임론이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간의 계파 갈등으로 비화되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선 후보였던 문 의원이 더 이상 상처를 입는다면 당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 내부에서 “친노 진영에 휘둘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만큼 지도부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김 대표는 회의록 실종에 대해서는 “여야가 합의해서 엄정한 수사가 있으면 될 것”이라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검찰 수사보다는 특검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는 “NLL 문제는 국익이나 국가 미래에 아무 득이 될 것 없는 일이었고, 오직 대선에 활용하기 위한 정치 공작의 차원이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었다”면서 “국회가 철저한 국정조사로 총체적 국기문란에 대한 전모를 밝히고,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사태를 봉합하려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지도부 안에서도 잡음이 일고 있다. 문 의원과 친노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조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김 대표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내일(25일) 별도 기자회견을 통해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해 혼란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의원직 사퇴 요구설’까지 나돌고 있다. 대화록 실종 사태로 당내에서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추락하고, 당내 계파 갈등까지 재점화되면서 민주당이 험한 상황을 맞고 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盧, 靑문서 보관본만 파기 지시”

    “盧, 靑문서 보관본만 파기 지시”

    노무현재단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다음 정부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국가정보원에 회의록 문서를 남기고 이지원(e-知園·참여정부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 보고자료 외에 청와대 문서 보관본을 파기하도록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회의록은 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0월 국정원이 청와대로부터 음원을 넘겨받아 녹취록을 만들어 국정원과 청와대에 각각 1부씩 남긴 이후 파기와 추가 생성 등을 놓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와 관련, 노무현재단이 사실 관계의 일부를 밝힘에 따라 추후 진실 규명이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이제 NLL 논란은 끝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긴급성명을 내고 “대화록 유무 논란으로 인해 문제의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 되며 대화록이 없다고 하는 상황의 규명은 여야가 별도로 논의하면 될 일”이라면서 “NLL 논란을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끝내자”고 말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뻔뻔함과 무책임의 극치”라면서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역사적 기록인 사초 폐기에 대한 입장표명과 사과가 우선”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NLL과 관련한 여러 회의자료도 국가기록원에 없다”며 연관 자료들의 파기 가능성도 제기하면서 “국정원이 보관 중인 회의록 음원파일을 들은 뒤에 국회에 제출된 회담 사전·사후문서를 열람하자”고 역제안했다. 민주당은 이날 실종된 회의록 원본 열람 대신 사전·사후문서 단독열람을 시도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열어보지 못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한글과 그림으로 ‘새김아트’ 개척한 현대 전각예술가 고암 정병례

    [김문이 만난사람] 한글과 그림으로 ‘새김아트’ 개척한 현대 전각예술가 고암 정병례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우리말 ‘새기다’는 참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가슴에 새기다’ ‘마음에 새기다’ ‘아로새기다’ 등의 뜻도 있지만 어떤 무늬나 글자, 형상을 정교하게 새긴다는 등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하여 물 위에, 달빛에, 시공을 뛰어넘어 삼라만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에 새로운 생명을 얼마든 새겨 넣을 수 있다. 어떻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담아서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허상과 실상을 아름답게 조화시킨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정(靜)에서 동(動)으로 변화시킨다. 이른바 ‘새김아트’이다. 고암 정병례(66)는 전통 전각의 틀을 깨고 ‘새김아트’라는 새로운 예술분야를 개척한 주인공이다. 전통 전각예술을 문자와 디자인을 조합해 재해석한 현대 전각예술가, ‘새김아티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특징은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들을 포함해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 문자와 회화 등의 기법이라는 새로운 전각예술의 장르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은 1999년 지하철 역사 게시판의 ‘풍경소리’를 비롯해 KBS 드라마 ‘왕과 비’와 ‘광개토태왕’ 등의 타이틀, MBC 방송연예대상 오프닝, 서울드라마어워즈 무대세트, 2008 베이징올림픽 타이틀 애니메이션(MBC) 등 각종 이벤트와 제품의 로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그는 35차례의 개인전과 110여 차례의 단체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꾸준히 선보여 왔으며 특히 전각과 설치미술, 애니메이션, LED 등과 결합한 독특한 기법으로 끊임없이 예술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전각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한 ‘아날로 디지털’로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중국과 타이완, 일본 등 우리나라보다 전각이 훨씬 발전한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대 법대, 그리고 여러 지자체에 소장돼 있으며 국내의 주요 인사는 물론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등 여러 외국의 인사들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아울러 ‘천년의 멘토 고전을 만나다’, ‘마음새김’, ‘풍경소리’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내는 등 글과 그림 외에도 ‘생각’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이자 전시실인 ‘새김아트’에서 정씨를 만났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 세종대왕과 한글을 형상화한 작품 ‘하늘땅사람물불바람’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 36㎝, 세로 80㎝, 두께 11㎝의 돌에다 깨알같은 한글을 새겨 넣었다. 상형문자나 알파벳과는 달리 한글의 글씨 획을 축약하거나 중첩시켜 미니멀하고도 모던한 이미지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바로 옆에 진열된 비슷한 크기의 작품 ‘한글 금강경’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글과 그림을 조화한 예술적 승화 작업에 얼마나 천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잠시 후 전시실 앞마당에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탁자 위에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었다. 궁금해하자 그는 탁자 위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리 한글의 자모 가운데 ‘ㅅ’을 중앙에 놓고 그 사이로 물고기 두 마리를 새겨 넣었다”면서 설명을 이어나간다.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을 나타낸 것입니다. 둘(ㅅ, 물고기)다 물질과 정신세계이며 현재와 미래, 음과 양, 허와 실을 뜻합니다. 허에서 실이 나오고 공에서 색이 나옵니다. 또 무에서 유, 음에서 양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걸 한꺼번에 새겨 넣은 셈이지요. 이것이 바로 개념미술입니다.” 비단 ‘ㅅ’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잠시 일어서더니 주변에 흩어진 비슷한 크기의 여러 탁자들을 가리킨다. ‘ㄷ’ ‘ㅈ’ ‘ㅊ’ 등 한글 자모를 통해 그의 개념미술은 연작시리즈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까닭을 물었더니 “세종대왕처럼 세계에서 위대한 인물이 없다. 인문학적 소양이 너무 뛰어나다”고 대답한다. 또한 “오로지 한글만을 생각한 세종대왕을 떠올리면서 한글로 온몸을 토체화한 ‘하늘땅사람물불바람’을 완성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한글, 그림, 조각(인물)이 합쳐진 ‘한글 새김아트’ 작품으로 세계 무대에 내보이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작업에는 한류스타를 앞세우겠다며 웃는다. 때문에 요즘 적당한 한류스타들의 캐릭터를 끄집어 내느라 바쁘단다. 한글과 한류스타를 어떻게 접목시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정고암의 새김아트’란 어떤 것일까. “암각화, 초형인, 민화 등 각각의 스토리텔링에다 단순미와 색채의 미학을 확대 재해석한 한국적 정서의 현대 종합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암각화는 원시사회의 친자연적 삶을 반영하고 있으며 순수한 자연인의 시선과 감성으로 수많은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단다. 또 초형인은 동물이나 사물을 관념적 또는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형식이라고 설명한다. 물상뿐만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 또한 ‘정고암 스타일’이다. 오늘은 시 한 자락, 내일은 농담, 모레는 세상에 대한 일갈을 돌 위에 올려놓는 ‘마음새김’인 것이다. “소문을 듣고 제가 하는 새김아트를 보기 위해 중국과 일본, 타이완 등의 전각 예술가들도 전시장에 왔다갔습니다. 전각을 이렇게 다양하게 확장시킬 수 있구나 하는 부분에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전남 나주 출신인 그는 어릴 적에 연이나 팽이를 만들고 부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미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다. 미술 전시 구경을 가는 날이면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때마다 나중에 꼭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노래솜씨가 좋아 한때 주위에서 가수를 권유받을 만큼 다재다능했다. 의류공장에 다니던 27살 때 우연히 마주친 한 인장(印章)에서 어떤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인장은 왜 아랫면에만 새길까’라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위아래, 옆면을 다 새기는 ‘3D입체’의 전각을 생각해 냈다. 이때부터 전각을 찾아나섰다. 전각에 관련된 자료를 뒤져가며 독학으로 각법을 익혀 나갔다. 원래 타고난 솜씨가 있던 터라 글씨와 그림, 조각이 어우러지는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83년 한국전각가회장을 역임했던 정문경 선생을 만나면서 정식으로 전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아울러 먹물이나 인주로만 찍어 흑백과 빨간색 위주로 표현하던 전각에 아름다운 오방색을 입혔다. 글자뿐만 아니라 그림도 새겼고 한글의 아름다움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마침내 42살 때 첫 전각전시회를 하면서 본격적인 전각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45살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서예대전에서 각각 우수상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전각예술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시도하는 그의 예술적 행보에 대해 ‘정통이 아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대중을 전통예술 세계로 끌고 가려면 전통예술가도 대중성과 현대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서 “수백년 전 예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현대의 새 패러다임을 새겨 넣는 게 진정한 전통계승이 아니냐”고 말한다. 2011년 한양대박물관에서 열린 ‘전각예술의 현대적 변용과 활용’이라는 전시를 통해 이 같은 비판을 잠재우며 ‘새김아티스트’로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 조선왕조 오백년 작가 신봉승씨는 “정병례 선생은 글자뿐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그림까지 포함하는 회화성 미학으로 승화되는 정병례 특유의 세계를 확립했다”고 정씨의 저서 ‘마음새김’ 추천사를 통해 평가했다, 그는 전각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3류도 아닌 5류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데다가 학연이나 지연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시작했으며 본질적으로 자존감을 찾고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처음에는 외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과거에는 혼자 무대를 만들고, 혼자 무대 위에서 배우가 됐으며, 혼자 관객이 됐다. 이제는 무대도 있고 관객도 있다. 앞으로는 연주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한류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선임 기자 km@seoul.co.kr ■고암 정병례는 독학으로 전각 공부·42살 첫 전시회… ‘새김 아트’ 창시자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서예와 그림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공장에 취직했다. 20대 중반 인장작업을 우연히 접하고 독학으로 전각 공부를 했다. 42살에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35회 개인전과 110여회 단체전에 참여했다. 최근 전시로는 광화문 세종이야기(2009년), 전각의 현대적 변용과 활용 새김아트(2011년, 한양대박물관), 한글 디자인 4인전(2011년, 토포하우스) 등이다. 주요 경력으로는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작가 겸 선정위원(1993년), 한국미술협회 초대작가(1996년~현재), 인천 가톨릭대 겸임교수(1998~200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각부분 심사위원장(2001년), 초중고 국정교과서 작품수록(2002년~현재), 새김아트 창시(2006년), 서울예술대학 시각디자인과 외래교수 역임(2008년), 한국미술저작권협회 이사(2009년~현재), 극동대학교 환경디자인과 교수(2011년~현재) 등이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미술대전·대한민국서예대전 전각부문 우수상(1992년), 동아미술제특선(1993년), 전연대상전 대상(1993년), 대한민국 4대 국새공모전 인면부 우수상(2006년) 등이다.
  • 초저가 제품도 고급화… LGD, 中 새 시장 개척

    초저가 제품도 고급화… LGD, 中 새 시장 개척

    중국에선 가격경쟁이 무의미하다는 판단 아래 초고가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하던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에 전략 수정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의 프리미엄급 시장을 노린 시장공략법으로는 놓치는 고기가 너무 많다는 판단에서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22일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가격과 제품군으로 중국 시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 사장은 “중국은 스마트폰 시장 등이 급성장하면서 초고가와 초저가 시장이 공존하고 있다”면서 “LG디스플레이는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두 시장을 모두 잡는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국 출장을 다녀오고서 충격을 받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한 사장은 “중국은 터무니없는 가격의 초저가 스마트폰 비슷한 제품이 나오는 시장”이라면서 “그런 제품에 우리가 염가로 부품을 공급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돈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초저가와 초고가가 공존하는 무궁무진한 시장이란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의 고가 시장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초저가 시장에서 역시 그 가격대에 맞는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 내 2위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초고가 시장만 노리던 전략을 바꿔 기술력을 담은 중저가 제품으로 새 시장을 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근 LG디스플레이는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다. 2분기 매출 6조 5721억원, 영업이익 3659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 사장은 하반기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 상황이 생각한 것만큼 장밋빛은 아닌 것 같다. 3분기와 4분기는 우리 생각보다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울트라고화질(UHD) TV시장에서 대만 업체들의 염가 공세에 대해서는 “시장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이나 타이완 업체들이 초고화질(UHD) TV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의 물건으로 염가공세를 벌여 시장 전체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는 의미다. 타이완보다 진출이 늦었다는 말이 나오는 UHD TV 시장과 관련해 “잠시 안일하게 생각한 면은 있지만 기술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면서 “제대로 된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으며 시장 선도를 위해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문재인 “NLL 논란 끝내자… ‘열람가능 기록물’들로 진실규명 가능”

    문재인 “NLL 논란 끝내자… ‘열람가능 기록물’들로 진실규명 가능”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과 관련해 23일 입장을 내놨다. 문 의원은 이날 오후 트위터를 통해 “이제 북방한계선(NLL) 논란은 끝내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을 향해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논란을) 끝내자. 대화록이 없다고 하는 상황의 규명은 여야가 별도로 논의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 데 대해서 “여야가 합의해 사실관계를 차분히 규명해 나가면 될 것”이라면서 “아직도 여러모로 부실한 국가기록관리 시스템과 법적 불비를 더 튼실하게 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화록 유무 논란으로 인해 문제의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회가 국가기록원의 기록을 열람하려한 목적은 NLL 논란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NLL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문 의원은 “NLL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북한이 그렇게 주장해 오더라도 우리가 단호하게 막아야 할 일”이라면서 “그러나 새누리당이 대선과 최근 선거개입을 덮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엄청난 주장을 했고 대화록을 불법 공개하는 무모한 짓을 했다”고 꼬집었다. 문 의원은 “그 때문에 국익을 위해 국가기록원 기록을 열람해서라도 NLL 포기 주장의 진실을 밝히고 논란을 조기에 종식하자는 것이 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에 촉구한다”면서 NLL 논란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이어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에 의하더라도 NLL 포기가 아니라는 것이 다수 국민의 의견이었고 열람가능한 기록물까지 살펴보면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서 “새누리당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이 진본이었다는 입장이었으니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사실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국가기록원의 대화록으로 NLL 포기가 아님이 더 분명해질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로선 아쉬움이 있지만, 대화록이 없더라도 정상회담 전후의 기록들 만으로 진실을 규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당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노 전 대통령이 귀국 환영행사, 국무회의, 군 수뇌부 회동, 간담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자신이 제안한 공동어로구역 및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취지를 설명했다는 점과 당시 남북국방장관회담 대책보고회의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NLL을 중심으로 남북간 등면적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우리 측 제안을 보고받으면서 김 장관이 사용한 해상지도 등을 ‘열람가능한 기록물’로 예를 들었다. 이 해상지도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교부한 것과 같은 것이다. 문 의원은 “이 기록들은 여야 열람위원들의 검색에 의해 즉각 열람할 수 있도록 확보돼 있다”면서 “이 정도면 NLL에 관한 논란을 끝내기에 충분하지 않느냐. 우리 정치가 그 정도도 합의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문 의원은 또 “새누리당이 NLL 논란을 계속해 나간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라면서 “이제 국정원 국정조사에 속력을 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대선개입, 대화록 불법유출을 제대로 규명하고 국정원을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행복주의 교육의 성공조건/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열린세상] 행복주의 교육의 성공조건/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을 이끌어 가는 키워드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이다. 행복교육의 핵심은 스트레스로 가득 찬 교육현장을 활기로 가득 찬 교육현장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추진되어 좋은 성과를 내야 하리라. 교육현장을 개혁하려는 정부차원의 노력은 그동안 수없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교육현장은 아직도 교실 붕괴, 학교 붕괴 및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행복교육의 성공을 위해서는 가정과 사회의 노력도 함께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교육개혁들이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학벌주의 때문이리라. 학벌주의는 입시교육열을 부추긴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출세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소를 팔아 대학에 보내는 우골탑을 쌓았고, 최근에는 엄마를 딸려 유학 보내놓고 홀로 돈 벌어 보내는 기러기 아빠들이 부지기수로 생겼다. 산업화 시기에 우리 사회는 학벌주의로 발전동력을 얻었다. 학벌주의로 대량 양성된 산업인력이 적재적소에 제때 공급되었다. 그러나 학벌주의의 시효는 이제 끝나 가고 있다. 당시에는 대학을 나오면 누구나 좋은 직장을 얻었지만, 지금은 그러기가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대학을 나와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대학 학력으로 할 만한 일은 전체 일의 25%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대학 보내기에 여념이 없어, 2008년에는 대학진학률이 83.8%나 되었다. 최근 일자리와 학력 사이에 불일치 현상이 심각하고, 학력을 감추고 위장취업까지 하는 사태가 일어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학벌주의가 설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작정 대학을 가면 대학을 나온 뒤가 더 큰 문제가 된다. 거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지식을 많이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패를 딛고 일어설 투지와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지식을 익히려면 일정기간 집중하면 한다. 그러나 좋은 품성을 갖추려면 장기간 선의와 덕성을 닦아야 한다. 학벌주의 입시교육은 지식을 익히는 데 집중하도록 만든다. 집중하려면 다른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입시교육의 요체는 금욕주의이다. 금욕주의 입시교육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삶의 내면을 메마르게 해서 삶의 품위를 앗아간다. 입시금욕주의는 본질적인 금욕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대학 가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대학 가면 모든 쾌락이 허용되는, 연기된 쾌락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가장 소중한 솜씨인 자제력을 키워주지 않는다. 대통령의 방미 중에 일어난 고위공직자의 참담한 행동과 반복되는 유명 정치가들의 막말 행태는 모두 입시금욕주의의 잔해들이 아닌가 싶다. 이제 점차 학벌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품위를 추구하는 행복주의로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쾌락처럼 연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지금 누리지 못하면 다시는 똑같이 누릴 수 없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지금 여기에서 누릴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능력은 삶의 솜씨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다. 행복주의 교육은 행복능력을 키워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정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적 때문에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공부한다고 자녀의 버릇없는 신경질을 받아주어서도 안 된다. 자녀는 관리 대상도 아니고 상전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가정행복의 동반자이다. 이제 대리만족이 아니라 가정행복을 찾아야 한다. 행복주의 교육에는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기업에서 지식보다는 인품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사실상 수많은 스펙보다는 넘치는 생명력이 중요하고, 뛰어난 학벌보다는 성실한 품성이 더욱 중요하리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점차 인품을 중시하려는 사회의 노력이 늘어난다면 행복주의 교육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 [어린이·청소년 책꽂이]

    마주 보면 무섭지 않아(질 티보 지음, 자니스 나도 그림, 정문주 그림, 어린이 작가정신 펴냄) 2년간 병마와 싸운 소년은 모두가 무서워하는 죽음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물 한 모금을 건네고, 오렌지를 나눠 먹으며 소년과 죽음은 서로를 아끼게 된다. 죽은 척 장난치는 소년을 보고 놀라 부들부들 떠는 죽음. 죽음은 소년에게 낮은 밤이, 더위는 추위가, 생명은 죽음이 필요하다는 세상의 이치를 일러준다. 어려운 주제를 섬세한 감성의 필치로 부드럽게 풀어냈다. 2008년 캐나다 총독상 수상작. 9000원. 윤선비와 함께 한 발 한 발 돌아보는 한양 도성(나각순 지음, 강윤정 그림, 황은주 정리, 그린분 펴냄) 정조 임금이 조선을 다스리던 200년 전, 과거를 보러 수도 한양에 올라온 윤 선비를 따라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창의문 천장의 그림에 닭이 그려진 까닭과 지금은 사라진 숭례문 남쪽의 연못 얘기까지. 우리를 품고 있는 도시의 옛 모습을 어린이들이 쉽고도 깊숙이 알 기회다. 1만 4000원. 열다섯이 묻고 여든이 답하다(졸리 쿠엔틴 칸실 지음, 지여울 옮김, 서해문집 펴냄) “교회에서 배우는 내용과 과학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왜 이렇게 다른 거죠?” “진실과 행복은 무슨 관계인 거예요?” 호기심 많은 10대 소녀 퀸타나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주에서 시작해 지구 생명의 기원, 종교의 본질, 과학과의 갈등, 죽음의 의미 등으로 이어지는 물음에 답하는 80대 할아버지 ‘오파’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이 깃든 답을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9800원.
  • 양극화 현상이 만연한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정신을 되새겨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1조다. 애국가에 견줄 만큼 귀에 익숙한 조문이다. 한데 이 한 문장이 가진 의미와 가치까지 꿰고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책은 이 조문이 우리 헌법의 첫머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쳤는지, 이 조문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군주국이었다. 대한제국은 스스로 전제군주국을 표방하기도 했다. 한데 대한제국이 무너진 지 불과 9년 만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이어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역시 민주공화국을 앞세웠다.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헌법 첫 장에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답을 찾던 게 집필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헌법 전문의 토대가 된 제헌헌법 제1조다. 이 문장이 명문화되는 과정이 곧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성립 과정과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은 구한말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입헌정치와 민주주의가 망국과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쳐 어떻게 제헌헌법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되는지 낱낱이 살피고 있다. 아울러 책은 제헌헌법을 거울 삼아 근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헌법 제정의 정신을 되돌아보자는 뜻도 전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엔 민주공화국이란 용어가 매우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용어였다”며 “제헌헌법이 지향한 민주공화국 또한 개인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국가였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제헌헌법이 고전적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균형 있게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사익 극대화가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되새겨 봐야 할 ‘민주공화국의 가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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