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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절시인 진이정씨/병사인가/자살인가

    ◎유고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자살 반증 분위기 달아 지난해 11월 34세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 진이정(본명 박수남). 그의 죽음은 자살인가 아닌가. 비록 순천향병원에서 폐병과 영양실조로 죽음을 맞긴 했지만 그의 죽음을 놓고 문단에선 자살의 의구심을 가져왔던게 사실이다. 진씨의 직접적 사인인 폐병과 영양실조 자체가 현대의학 수준으론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데다가 진씨가 동년배 시인들과 결성한 「21세기 전망 동인」활동빼고는 거의 대외활동이 없었고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연작시등 시집원고를 죽기전 완전히 정리해 놓았다는 점들이 그같은 추측을 가능케한다. 최근 세계사가 펴낸 그의 유고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는 이같은 「자살」추측을 반증하는 분위기의 시들을 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 미발표 시들로 엮은 이 시집은 기지촌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과 타락한 세상에 부대끼는 시인의 삶을 적어낸 내용이 큰 흐름이지만 죽음에 대한 경도가 쉽게 눈에 띈다. 『죽음의 골짜기로스미는 착한 물의 잠처럼 그대는 찾아왔네 그렇게 맞아들일 새 없었네…중략…이제 죽지않는 자,그대만이 사랑 마다하리 오 사랑없는 자여,당신 홀로 영겁토록 죽지 않으리라』(제목 없는 유행가중에서) 『그대가 흘러갑니다 꽃이 흘러갑니다 흘러흘러 별이 떠내려갑니다 모두가 그대의 향기 질질 흘리며 흘러갑니다 그대는 날 어디론가 막다른 곳까지 몰고 가는 듯합니다』(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죽음을 거역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듯한 시인의 심경표현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들이다.
  • 「신라의 달밤」 가수 현인씨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조약돌)

    ○…서울 송파경찰서는 7일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원로가수 현인씨(76·본명 현동주·서울 송파구 방이동 169의12)를 음주운전혐의로 불구속 입건. 현인씨는 7일 하오11시40분쯤 동료 원로가수들과 함께 술을 마신뒤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 송파구 석촌동 남서울병원 앞에서 단속경찰관에 혈중알코올농도 0.06%로 적발돼 면허정지 1백일의 처분을 받았다고.
  • 영·아일랜드 25년분쟁 종지부/양국 총리 평화협정 발표

    ◎폭력사용 포기땐 IRA정치협상 참여 보장/이해당사자들 “모순투성이 성명이다” 비난 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총리가 15일 공동발표한 평화성명은 25년 이상 계속돼온 북아일랜드 분쟁이 폭력이 아닌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해결될수 있다는 기본명제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 성명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와 통합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주민들의 자결권에 맡긴다고 못박고 있다.양국총리는 또 아일랜드공화군(IRA)이 폭력사용 포기를 선언한다면 IRA의 정치적 창구인 신 페인당을 대화상대로 인정,3개월내에 정치협상에 참여시킨다는데도 의견을 모았다. 이 성명은 아일랜드정부가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거부권을 인정하고 영국정부가 북아일랜드 독립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양국정상들의 입을 통해 공식 천명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진전이라고 볼수 있다.그러나 선언적인 의미일뿐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작 이해당사자들의 반응도 그리 호의적이 아니다.북아일랜드의 신교계 양대정당인 북아일랜드연방주의당 지도자 이안 페이슬리는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등뒤에서 이뤄진 반역행위』라고 비난했고 북아일랜드 민주연방주의당 지도자 제임스 몰리노도 『모순 투성이의 성명』이라고 혹평했다. IRA측은 금주말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군평의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아직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그러나 신 페인당의 한 관리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고 북아일랜드내 다수파인 신교도들의 입장만 더욱 공고히 해줬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북아일랜드내 구교계 최대정당인 사회민주노동당 당수 존 흄이 이 성명을 지지한 점이 긍정적이기는 하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역사는 인구 1백60만명중 다수인 65%를 차지하며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신교도에 대해 소수인 구교도들이 저항에 나서 유혈극으로 비화된 지난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후 지난주말에도 경찰관 1명이 사살되는등 25년 사이에 북아일랜드에서만 3천1백명을 희생시켰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2백1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년여의 독립전쟁끝에 1922년 자치국이 됐고 49년 공화국으로 전환,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아일랜드정부는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을 몰아내려는 IRA의 무장투쟁에 대해 70년대까지만 해도 호의적이었으나 80년대 들어 희생이 늘어나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IRA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휴전을 제의해왔다.이휴전이 영구적으로 지속되기를 많은 사람들은 고대한다.그러나 소망이 현실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그러나 이번에마저 평화노력이 좌절될 경우 폭력세력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가수 현진영·이탁 KBS,출연 정지/히로뽕투약 관련

    KBS는 3일 방송출연 규제위원회를 열고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투약해 최근 구속된 가수 현진영(본명 허헌)과 「탁이와 준이」의 멤버 이탁(본명 이광민)에 대해 KBS 라디오와 TV에 무기한 출연을 정지시키기로 했다. 이로써 대마초나 히로뽕 투약으로 KBS로부터 출연정지를 당한 가수는 지난 3월이후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 가수 혜은이 석방

    서울형사지법 항소1부 송기홍판사는 30일 사기혐의로 구속된 가수 혜은이씨(본명 김승주·37)가 신청한 구속적부심에 대해 『이유있다』며 받아들여 이날 하오 혜은이씨를 석방했다.
  • 가수 혜은이씨 구속수감/8천만원 빌린뒤 안갚아(조약돌)

    ○…서울 강남경찰서는 29일 음반을 제작한다면서 8천만원을 빌린뒤 이를 갚지 않은 혐의로 지난 22일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던 가수 혜은이씨(본명 김승주·37)가 이날 상오 자진출두함에 따라 구속수감했다. 혜은이씨는 『아예 갚지 않을 목적으로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음반제작 사정이 좋지않아 갚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이날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 곗돈 8천만원 안갚아 가수 혜은이 사전영장(조약돌)

    ○…서울 강남경찰서는 22일 인기가수 혜은이씨(37·본명 김승주·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사진)에 대해 사기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혜은이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음반제작회사에 필요한 돈을 마련키 위해 지난 6월과 7월 계모임을 통해 알게된 문모씨(50·강남구 압구정동)에게 『열흘뒤에 돈을 돌려주겠다』며 세차례에 걸쳐 모두 8천만원을 빌려 갚지 않은 혐의. 지난달 22일 같은 혐의로 피소된 혜은이씨는 『9월초 교통사고를 당해 문씨와 연락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으나 경찰은 『3차례에 걸친 소환에도 불응하고 소재가 파악되지 않으며 당장 이돈을 갚을 능력도 없는 것같아 사기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설명.
  • “가수 현진영 히로뽕 상습투약”

    ◎동료연예인 이탁·공급책 등 4명 적발 서울 송파경찰서는 13일 상습적으로 히로뽕을 투약해온 가수 현진영씨(22·본명 허현석·인천시 서구 가정2동 한국아파트 102동 203호)등 연예인 2명과 히로뽕 중간공급책 이병헌씨(23·경기도 구리시 동평동 282의2호)를 향정신성 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적발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또 고대홍씨(22·서초구 반포동 미도하이츠빌라 1동 102호)를 같은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가수 현씨등은 지난 4일 상오 2시쯤 가수 이탁씨(20·본명·이광민)의 강남구 청담동 명성빌딩 3층 스튜디오에서 공급책이자 중학교 동창인 이병헌씨가 공급한 히로뽕 0.03g을 증류수에 타 주사기로 맞는등 지난 6월부터 15차례에 걸쳐 히로뽕을 맞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고씨는 12일 하오 7시쯤 자기 집에서 부산등지에서 구입한 히로뽕 0.03g을 맞는등 그동안 10차례에 걸쳐 히로뽕을 투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씨등은 경찰에서 『히로뽕을 맞으면 목소리가 좋아지는데다 작곡할 때 영감을 얻게되고 마음이 편안해져 계속 맞게 됐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중간공급책 이씨가 교도소 복역중에 알게된 부산의 히로뽕 공급책 방모씨로부터 7차례에 걸쳐 1천여만원어치의 히로뽕 8.42g을 구입,서울시내 호텔과 이들의 스튜디오등에서 맞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가수 현진영씨는 「흐린기억속에 그대」「현진영고 진영고」등에 이어 최근 「두근 두근 쿵쿵」아라는 곡으로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가수 이탁씨는 인기 댄스그룹 「탁이와 준이」의 작곡가겸 가수로서 「예감했던 이별」을 불러 인기를 누려왔다.
  • 전국회전문위원 김학초씨 「흑석동 구멍가게…」 출간

    ◎토큰 구멍으로 본 서민애환 “생생”/14대 대선후 정치에 염증,구멍가게 시작/토큰·신문 등 팔며 이웃들과 즐거운 나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국회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던 엘리트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입구 버스정거장옆 구멍가게에서 토큰장수를 하고 있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소설속에서나 등장함직한 이 이야기는 실화다. 「하늘보기가 민망해서」푸른색 벙거지를 눌러쓴 전직 국회 민주당 원내총무실 전문위원 김학초(48·본명 김남국)씨가 최근 펴낸 「흑석동 구멍가게 토큰장수이야기」(새봄문화사간)에는 이 소설같은 이야기가 생생하게 공개된다. 김씨는 국회의원보좌관을 거쳐 지난 14대 대선당시 이철민주당 원내총무의 전문위원으로 근무했다.그러나 「대통령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김대중씨가 낙선하자 미련없이 여의도를 떠났다.버스토큰과 낱담배 그리고 가판신문과 과자,음료수를 판매하는 구멍가게 「진양식품」을 대출받은 3천만원으로 차린것.정치판에서 촉망받던 정치지망생이 나이 50줄에 하루아침에 구멍가게사장으로 변신한 셈이다.의심많은 사람들은 『괜히 한번 해보는 쇼』이거니 했고,또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견딜까』하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김씨는 정치판변두리를 맴돌며 잘보지 못했던 세상을 2백50원짜리 토큰구멍을 통해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진양식품이라는 구멍가게의 구멍과 2㎜에 불과한 토큰구멍을 통해 내다본 서민들의 애환에 비하면 여의도 일번지 국회의사당의 큰구멍은 「렌즈의 배율이 너무 커서 세세하고 작은 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마도 구멍이 너무 커서 그럴 것』이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요즘 김씨의 행복과 불행은 하루 매상에 좌우된다.하루평균 4만5천원정도씩의 가게매상과 토큰 2∼3천개를 팔아 올리는 1만원내외(2백50원짜리 한개당 5원)의 이익을 합쳐 5∼6만원선을 오가는 이익이 고생길에 합석한 부인과 여고1학년,여중3학년,국민학교5학년된 세공주등 5가족의 생명줄이다.그는 지금 시흥4동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전력이 심상찮은」김씨에게는 이웃이 많다.진양식품 길건너편 언덕배기에 위치한 「효사정」관리인인 「명수대산신령님」을 비롯,「아침거리의 분장사」인 청소원 박씨,주류도매상 배달원 「장비」,진양식품이 세들어 있는 건물관리인 민씨,가스집의 「동방불패」와 「주윤발」,광원부동산 장선배 등이 매일 부딪히는 그의 정다운 이웃들이다. 김씨는 『나이 쉰들어 겨우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제야 겨우 세상 참맛보기를 시작한 것 같다』고 자신의 인생유전을 반추했다.
  • 황석영씨 8년 선고/“불법 입북·친북활동… 보안법 위반”

    ◎서울형사지법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양삼승부장판사)는 25일 북한을 방문,김일성을 만나는 등 친북활동을 해온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소설가 황석영피고인(49·본명 황수영)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8년에 자격정지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통일을 위한 작가적 양심을 내세우고 있으나 사상·양심의 자유도 외부로 나타내는 행동에 있어서는 법절차에 따라야 한다』면서 『남북관계의 상당한 진전에도 불구,북한은 여전히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엄연한 실체인만큼 피고인이 일으킨 혼란은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을사조약은 무효” 고종친서 발견

    ◎“내각에 체결 위임 안해… 강압에 의해 맺어”/“국제재판소 제소” 미 등 9국에 협조 요청/서울대 김기석교수,컬럼비아대 도서관서 찾아 【뉴욕 연합】 지난 1905년 대한제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선언한 고종황제의 친서가 90여년만에 발굴됐다. 고종은 미·영·불·독등 9개 열강국 원수들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천명하기 위해 조약체결 다음해인 1906년 6월22일 친서를 작성,미국인 호머 헐버트를 친서전달 특사로 임명했으나 고종의 강제퇴위로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고종의 친서는 헐버트 특사가 소장하고 있다가 재미통일운동가 김용중씨에게 이관했으며 그의 사망후 뉴욕 컬럼비아대학 희귀본 도서관에 보관되어 오던중 하버드대학에 파견된 서울대 김기석 교수에 의해 지난 6월 우연히 발견됐다. 상반부는 한문으로,하반부는 영문으로 작성된 친서에서 고종은 비준권자인 국왕으로서 조정대신들에게 조약체결을 위임한바 없을뿐 아니라 당시 일본이 대신들을 감금한채 강제로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는 조약이 아니라 늑약이며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가질수 없다고 밝혔다. 고종은 또 이 친서에서 조약의 무효를 밝히기 위해 국제재판소에 일본을 제소하겠으니 미국대통령과 러시아황제등은 재판과정에서 대한제국을 잘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고종은 친서임을 입증하기 위해 국내문서와는 달리 외교문서에만 쓰는 이희라는 본명을 사용하고 옥새를 압인했다. 이번에 발굴된 친서는 당시 대한제국의 주권자인 고종황제 자신이 직접 을사조약이 국제법적 무효임을 선언한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문서보다 가장 확실하게 을사조약이 불법,무효임을 밝혀주는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친서를 발견한 김교수는 『을사조약이 무효이면 그후에 성립된 정미조약(1907),합방조약(1010)등은 모두 무효이며 을사조약으로 강탈당한 대한제국의 정치·경제·외교적 권리가 복원돼야한다』고 말하고 『정부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일본측의 인정과 사과및 배상과 같은 구체적 조치를 요청해야하며 예컨대 일본과 청국간에 체결된 간도협정으로빼앗긴 국토를 회복할 조치도 뒤따라야한다』고 주장했다.
  • 황석영씨 무기구형

    서울지검 공안1부 함귀용검사는 11일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7차례 만나는 등 친북활동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소설가 황석영피고인(49·본명 황수영)에게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구성·가입,지령탈출,금품수수 등)죄를 적용,무기징역에 추징금 2억여원(미화 25만달러)을 구형했다. 황피고인은 지난 89년 2월부터 92년까지 5차례 방북,7차례 김일성을 만나고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남측대변인으로 활동한 혐의 등으로 지난 5월 귀국과 함께 구속·기소됐다.
  • 레닌 묘(외언내언)

    니콜라이 레닌.블라디미르 일리치 율리아노프가 본명이다.지금은 몰락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의 창건자 레닌은 1924년 1월21일 밤에 세번째 발작으로 숨을 거둔다.그러나 그의 사실상 마지막 공적활동은 22년 3월의 제11차 당대회를 앞둔 중앙위원회에서의 보고였다.결과적으로 유언이나 다름없는 이보고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소련의 사활과 관련된 세가지 중대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농민문제였다.『우리 공산주의자는 농민에 대해서 그들을 구원해 낼 사람들임을 증명해야 한다.우리가 그것을 증명하든가 아니면 농민이 우리를 떨쳐내든가 두가지중 하나이다』 두번째 문제는 국가기업과 자본기업의 경합을 재검토하는 일이다.『당신들 공산주의자는 경제적효율면에서 자본가의 성적과 공산주의자의 그것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세번째 문제는 방만하고 비능률투성이의 관료주의였다.과연 레닌은 소련방 향후 70년의 문제점을 일찍이 1922년에 벌써 족집게로 집어냈던 것이다.그는 정치적인 천재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그 레닌은 지금 모스크바 크렘린광장 사열대 바로 밑의 그다지 깊지않은 축축한 지하동굴묘에 검은 양복차림의 유체로 누워있다.지하묘에는 유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감호실과 경비병들의 운동시설등 약 20개의 방이 있다.명실공히 「위대한 지도자」의 권위를 지켜내는 비밀기지인 것이다. 과거 「소련」시대 레닌유체의 정기적인 점검은 매주 월·김요일.관에서 끄집어내 체중과 신장이 측정된다.또 매달 한번씩 유체 일부가 표본채취되고 4년마다 정부조사위원회의 완전한 조사가 행해져 보고서로 작성비치된다. 위대한 사회주의자 레닌의 붉은 광장 묘소경비병이 최근 사라졌다.새 러시아의 개혁옐친이 구소련체제와의 단절을 결단하며 내린 조치라는 평가다.한시대 역사의 뒤안이며 사라져가는 「위대한 이념」의 종장이다.
  • “김대중씨 납치 명령자는 이철희 당시 중정차장보”

    ◎일측 조사위대표 관련자 11명 공개 민주당의 「김대중선생 살해미수 납치사건 진상조사위」(위원장 김영배의원)와 일본의 「김대중납치사건 진상조사위」는 15일 김대중씨 납치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공동조사위를 구성하고 공동조사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민주당 진상조사위와 일본진상조사위 대표인 덴 히데오(전영부)사민연참의원은 이날 상오 마포 가든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동발표문을 통해 『지난 73년 8월 8일 김대중선생 납치사건은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저질러진 극악한 정치테러』라고 규정하고 이같은 활동계획을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 덴의원은 『지난 75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납치사건에 가담한 한국인 명단을 편지로 받았다』면서 ▲책임자 이철희당시중앙정보부차장보 ▲총책지령 김재권공사(본명 김기환) ▲현장지휘 윤진원대령 ▲하수인 윤영노참사관,김동운,홍성채1등서기관,유충국,유영복 ▲호텔예약 한춘1등서기관 ▲국내관리 하태준국장,김진수중령(주일참사관)등 11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 “군기인줄 몰랐다”/박성원 사회부기자(현장)

    ◎시노하라,혐의시인 불구 무죄 강변 15일 하오 서울형사지법 311호 법정. 국방정보본부 고영철소령(40·구속중)으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내 주한 일본무관에게 넘겨주는등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씨(39)의 첫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주한 외신기자의 첫 구속사건이라는 점외에도 한·일 국민들간에 아직도 지워지지않은 미묘한 감정이 있다는 점등이 재판분위기를 더욱 묘하게 만들었다. ▲재판장=본명은? ▲피고인=시노하라 마사토,필명은 야사하라 마스사다이다. 한국말이 유창한 시노하라피고인은 또렷한 일본말로 인정신문에 응했다. 방청석 둘째줄에서는 시노하라피고인의 한국인 부인 안정덕씨가 재판시작부터 훌쩍거렸으나 시노하라피고인은 의자등받이에 척추를 곧추세운 자세로 정면을 응시했다. 『피고인은 90년 5월 고영철소령으로부터 군사2급비밀인 「방공부대 편제표」를 군사비밀임을 알고서 건네받아…』 검찰은 공소요지 낭독에서 시노하라피고인이 치밀한 작업아래 군사기밀을 빼돌린 점을 이례적으로 30여분동안이나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통역을 맡은 전주한 일본대사관 직원 박희준씨가 『독도방위를 위한 해군배치현황등』이라는 대목을 「다케시마(죽도)」라는 일본식 표기로 번역하자 재판장이 나서 『우리말엔 그런 말이 없다』며 정정을 요구,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어 검찰 직접신문. ▲검사=피고인은 90년 6월 고소령으로부터 한국군 전투기 보유및 배치현황이 담긴 「공군항공기 전력현황」을 군사기밀이라는 말을 듣고도 건네받아… ▲피고인=군사기밀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시노하라피고인은 50여건의 군사관련 자료들을 빼낸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검찰에서 처음 군사기밀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강변했다. 전방사단 배치현황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이르러서 시노하라피고인은 통역인을 제치고 직접 한국말로 설명을 첨가하기도 했다. 2시간 남짓 계속된 첫공판에서 시노하라피고인은 구멍뚫린 한국장교의 보안의식을 비웃듯 거리낌없이 「취재」경위를 밝힌뒤 총총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 무령왕릉:상(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13)

    ◎국보 등 2906점 출토… 백제문화 보고/지석에 왕의 본명·사망연대 등 52자 기록/중식아닌 「계묘년」「붕」등 자주적 표기사용 1971년7월 충남 공주군 공주읍 금성동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은 한국 역사학계를 크게 흥분시켰다. 발굴될 때까지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았던 그「처녀분」은 6세기초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신라·고구려에 비해 사료가 절대 부족했던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보탬이 됐다.이와함께 고분 자신의 주인을 한국사에 명멸한 숱한 임금의 무리에서 빼어내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켰다. 무덤에서는 국보를 비롯,모두 1백8종 2천9백6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가운데서도 왕의 지석은 가장 관심을 모았다.모두 52자의 지석은 묻힌 사람이 「백제 사마왕」이며 62세로 「계묘년」에「붕」했다(숨졌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들 「사마」「계묘년」「붕」등의 자구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지석이 전하는「진실」을 따져보기에 앞서 우선 무덤의 주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령왕은백제의 25대왕으로 462년에 태어나 523년 생을 마쳤다.임금자리에 있었던 기간은 510∼523년.이름은 사마(삼국사기에는 사마)또는 융이며 무령은 사후에 부쳐진 이름인 시호이다. 큰 키에 용모가 준수하고 인품이 고매했으며 백성을 사랑한 것으로 전해진다.또 고구려·말갈과의 전투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으며 중국의 양나라와 친선을 강화하고 왜에는 오경박사를 파견하는등 국내외로 치세에 뛰어난 임금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사마」「무령왕」등의 표현으로 그가 일본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일본과의 인연이 간단치않은 임금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지석에 그의 죽음을 「붕」으로 쓴 것은 당시 백제가 당당한 자주국가였음을 보여준다.공자가 예기에「천자의 죽음은 붕,제후는 훙,대부(고급관리)는 졸로 표기한다」고 밝힌 이래 한자문화권 사회에서는 이를 역사표기의 원칙으로 지켜왔다. 따라서 백제왕은 중국측으로부터 명목상의 관작을 받았을지라도 실제로는「황제」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이는 후에 고려·조선의 사가들이 임금의 죽음을 「훙」으로 표기한 것과 비교된다. 이와함께 그의 이름을 중국식인 「융」이 아니라 「사마」(섬의 옛말「사마」의 한자식 표기,그는 섬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음)로 쓴 점,사망연대에 중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계묘년」으로만 기록해 독자적인 연대표기를 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한국 사학계를 흥분시켰다.그러나 정작 경악한것은 바다건너 일본의 학계였다.그들이 「황국사관」으로 똘똘 뭉쳐 숨기려고 했던 진실,일왕이 백제왕의 제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다음회에 다룬다.
  • 「주윤발」·「황비홍」 등 연예인명 많아/금융계 가명계좌 천태만상

    ◎「이순신」·「지리산」등 인­지명 사용/본명중 한두자 약간 고쳐 위장/「고돌이」·「신기록」식의 장난투도 「주윤발」「황비홍」「서편제」등등.또 「조영필」「나운아」「설운도」­. 동네 비디오가게나 유흥업소 주변에서나 볼 수 있는 이름들이 버젓하게 금융기관에 가명계좌로 올라 있다. 금융기관 창구직원들에 따르면 막도장과 가짜 이름·가짜 주소만 있으면 되기때문에 「홍길동」「임꺽정」「이순신」등 역사적 인물이 「가명계좌」의 예금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백두산」「한라산」「지리산」등 지명을 그대로 본딴 이름도 가끔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이기자」「주기자」등 즉흥적으로 지은 장난투의 이름이 있는가하면 행운이 찾아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돌이」「백만석」「신기록」등의 예금주도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주윤발」「황비홍」등 외국 인기연예인이나 국내에서 히트를 친 영화제목 「서편제」란 예금주까지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두드러진 이름은 누가봐도 가명임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실명처럼 보이는 「가명」을 쓴 경우가 많다. 특히 거액을 은닉하려는 재력가나 지분을 위장분산하려는 대주주들의 경우,이자소득에 대한 과세액이 「실명계좌」(21.5%)보다 3배나 많은 「가명계좌」(64.5%)를 개설하면서 자신의 이름가운데 한두글자를 고치든가 가운데 자를 빼버리고 외자이름을 써 실명인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자기 직장이나 출신학교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한 사람도 있다.
  • 분장미술가 전예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3)

    ◎천의얼굴 재현하는 분장의 마술사/작품 철저히 검토,배역에 꼭맞는 “인물 창출”/재료 직접제조… “생명력 깃든 화장기법” 정평/50년대부터 불모지 개척… 골상학 등 관련분야에도 조예 「배우란 한시대의 축소판이자 간결한 연대기지.죽어서 묘비명이야 어떻게 씌어지던 살아 있을 때 구설은 듣지 않는 게 상책이오」 어둠침침한 푸른 조명속에서의 햄릿의 절규는 세상의 끝은 바라보는 듯한 흐느끼는 눈빛으로 인해 더욱이나 관객을 전율케 한다.우수에 찬 눈동자엔 형용할 수 없는 번뇌와 오뇌가 꿈틀거리고 허공에 메아리지는 그의 독백은 메마른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검붉은 피와도 같다.머리카락 한올,클로디어스왕을 저주하는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주인공의 참담한 절망과 갈등이 흩날린다.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운 검푸른 눈동자,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듯한 메마른 입술,증오심과 원망어린 칙칙한 잿빛 금발,허공중에 허우적거리는 야윈 손가락 등등 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전예출씨의 예술영역이다. ○눈썹 한올에도 신경 그는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귀여운 여인 올렝카가 사샤를 희생적인 모성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늙고 병들어 쭈그러들 때까지,또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의 스칼렛 오하라가 오만방자한 얼굴을 퇴색시키고 한사람의 여성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대위에 재현시키는 바로 천의 얼굴,수만의 표정을 그려내는 분장의 마술사다.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이 대사를 외고 동작연습에 임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성격분석,작품에서의 비중과 조화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몇차례씩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 소리내어 대사를 외어보면서 그 인물이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연극속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부모와 학교친구,취미와 일상적인 일거일동을 철저히 연구하여 디자인에 들어간다.연극에 등장하지 않는 부모까지 연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대학교수」일 경우 학자집안에서 나온 교수와 장사꾼의 집안에서 나온 교수는 그 인상과 표정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분장실에서 배우를 분장시킬 때의 그의 열정은 조각가나 화가 못지않게 엄숙하고 진지하다.주름살 하나에도 배우의 피부조직을 살펴 50대의 주름살,60대의 주름살을 어느때는 곱게,어느때는 짙은 골을 파면서 역할이 살아온 성장배경,인생역정,앞으로의 변화를 선명하게 구별해나간다. 또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그려진 선이 아니라 분노와 울화,기쁨과 성취,절망과 좌절의 강도에 의한 눈썹 한올에도 생동미와 처절미를 연출해낸다. 조각가가 인체해부학적 측면을 고려하듯이 그는 해부학과 골상학,세포조직과 근육분포,미술에서의 색채학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내가 구상한 비극적·희극적 인물,냉소적이며 초연한 것,모반을 꾀하거나 사색적 인물들이 붉은 조명아래서 당초 시도했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카메라 앵글에 의해 효과적인 신을 이루고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염두에 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나 그 일에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한낱 「분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분장의 불모지이던 50년대부터 홀로 외롭게 몸부림쳐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유별난 편이다. ○일에 강한 긍지지녀 공연작품이나 영상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분석 없이는 손댈 수 없다는 시각에서는 「분장」은 연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테크닉이 미술을 동반한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특수한 미술분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물론 분장이 해야 하는 의상·소도구·조명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그리고 어떤 대상을 만나도 흑을 백으로,세모를 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으며 분장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극중인물로 등장할 수 없음을 투철히 믿고 있다.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30대이상의 연기자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분장에 관한 한 그는 도무지 남의 간섭을 용납치 않는다.「분장을 어둡게 하라」 「밝게 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다.이미 작가·연출가와 모든 의논을 끝낸 뒤 분장기법을 정리한 다음엔 배우가 만일 『여긴 강조하고 볼은 좀 죽이고 싶다』고 말하면 그는 두말없이 『네가 하라』고 붓을 던져버린다.상대방이 극구 사과해도 묵묵부답,두번다시 상대하지 않는다.주문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즉흥적인 기분과 감상을 말하지만 그로서는 한달이상 신중한 검토와 구상을 끝낸 마당이다.여러 변명이 필요없었다.전체적인 구도와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아집과 고집,자기주장이 강하다.그런 그의 고집불통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간혹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다.그런 상충된 의견으로 인해 격돌이 오갈 때도 있다.그러나 그의 오랜 경륜과 노련미는 짧은 안목을 묵살시킨다.결국 그가 옳았고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완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는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편이다. 황해도 황주 중농의 아들 3형제중 막내.황주남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그는 연극반을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했다.직접 극본을 각색하여 연출을 맡았고 목재상을 경영하는 형님(전창신씨)가게에서 나무를 얻어다가 세트를 만드는 등 연극에 열을 올렸다. ○다방면에 다재다능 일상적인 평범한 얼굴이 전혀 다른 여러개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점때문에 분장에매료됐는지도 모른다.「베니스의 상인」이 될 수도 있고 「벚꽃동산」의 트로피모프,또는 라스콜리니코프,레트 버틀러나 애슐리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에 대한 복수와 원한,「사느냐 죽느냐」를 외치는 햄릿의 광기에 번뜩이는 눈빛을 그리며 그도 언젠가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려 왔다. 6·25가 나기 1년전 그는 형의 친구가 부소장(윤묵)으로 있는 북조선촬영소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부소장은 그에게 교통성산하의 교통성극단에 소개해주었다.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후에 월남해서 영화배우로 활약한 김칠성씨. 「춘향전」으로 데뷔후 50년6월 소련 번역극을 가지고 원산공연,외금강공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함흥공연길에 올랐다가 6·25를 만나 1·4후퇴때 월남했다. 부산 피란지에서 그가 할 것이라곤 연극밖에 없었다.어렵게 극단 「아랑」을 조직하여 분장에 출연까지 겸하면서 경상도일대를 유랑했다.분장을 하다보니 자연 일어로 된 화장품제조에 관한 서적 등을 구해 읽어야 했고 문득 화장품을 만들어 팔면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들었다.립스틱공장을 차렸으나 제품보다 케이스가 조잡스러워 망해버리고 말았다.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분장에 손댈 때도 그는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곤 했다.분장에 필요한 화장품이 전무상태인데다가 외국제품들이 우리피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더구나 유럽이나 중국은 창백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우리는 깊고 그윽한 유백화장술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웠다.지나치게 붉은 터치인 미국 화장품은 무대에서 튀고 조명아래서 겉돌았다. 여러가지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화장품을 피부에 발라 테스트를 해본 다음 다음날 분장에 사용했다.그래서 그만의 독특한,남에게 공개되지 않는 수십여종류의 비법을 비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특수분장중 대표적인 것은 TV문학관 「등신불」 「에바다」에서의 문둥병환자의 이그러진 얼굴이다.출연자의 열굴형을 여러 각도로 본뜬 다음 이를 다시 모자이크해서 흉터를 만들고 여기에 면도거품을 발라 분장,열을 가해 거품이 녹는 것과 동시에 피부가 정상회복하는 화면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연극·오페라에 집착 거의 매일이다시피 방영되는 TV드라마외에 그가 집착하는 것은 연극·오페라 등 무대분장이다.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의 분장한 모습은 또렷한 명암과 윤곽을 드러내면서 서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그리고 광기어린 배우의 눈빛,외로운 그들의 몸부림은 그가 그려내고 싶던 무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멜방달린 바지에 베레모,아침9시면 동숭동 그의 작업실에 나와 청년같은 정열로 강의와 작업에 임한다.그에게 배우려는 제자·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가지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서다.그는 겉모습의 분장보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생명력 깃든 분장을 지도한다.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동서고금,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인간상들이 「분장을 통해서만 극중인물로 재현」되고 「탄생」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다.그가 존재하는 한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주자이며 독보적 위치지만 든든한 뒤를 잇는 후배들로 인해 이제 그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황해도 황주 출생(본명 전윤신) ▲1942년 황주농업중학교졸업 ▲1945년 경성법정대 졸업 ▲1945∼48년 황주남중 교사 ▲1949∼50년 교통성극단 단원 연극 「춘향전」 데 뷔 ▲1951년 부산에서 극단 「아랑」 창단 ▲1953년 극단 「신청년」 단원 ▲1954년 극예술협의회 회원 ▲1955년 영화 「안중근」으로 분장 및 연기 ▲1956년 국립극단 단원(국립극단·드라마센터분장담당) ▲1961년 KBSTV로 입사 ▲1961∼88년 서라벌예대·한양대·동국대 출강 ▲1963년 TBC 입사 ▲1981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복귀 분장실장역임 ▲1988년이후 프리랜서 독립기념관 임정요인 33인 분장 ▲1989년 개인작업실 아트파워 개업 ▲1993년 개인작업실 동숭동이전 전예출 프로메이크업 설립 ▲현재 영화·연극·TV·CF 및 오페라공연 분장및 한양대음대 특강. 장준옥여사와 1남3녀 국립극단·드라마센터·민중극장 공연작품중 연극­「햄릿」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빌헬름텔」 「죄와 벌」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결혼중매」 「대수양」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태양을 향하여」 「산불」 「욕망」 「국물있아옵니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 「파우스트」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세인트 존」등 1백50여편. 오페라­김자경오페라·국립오페라·서울오페라·글로리아오페라 공연작품중 「토스카」 「라보엠」 「카르멘」 「춘희」 「나비부인」 「마적」 「돈 조반니」 「돈 카를로」 「아이다」 「사랑의 모약」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트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심청」 「삼손과 데릴라」 「코지 판투테」 「라 조콘다」 「리골렛토」 「천지창조」 「운명의 힘」 「세빌리아의 이발사」 「펄리아치」등 2백여편. 영화­「황성옛터」 「대지」 「황혼열차」 「고려장」등 40여편,TV드라마(문학관등) 1천여편.
  • 정부 공직자윤리위 위원 9명 선정발표/위원장 이영덕씨

    정부는 29일 중앙부처 공무원 2만2천명의 재산등록및 공개에 대한 심사를 전담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9명을 선정,발표했다. 총무처가 이날 선정한 행정부 외부위원은 이영덕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을 비롯,박영식 전연세대총장·박홍 서강대총장·김후란(본명 김형덕)공익자금관리위원회위원장·임대화 서울고등법원부장판사등 5명이다.행정부 인사로는 최인기내무·김기석법무·백원구재무·심우영총무처차관등 4명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위원장으로는 이영덕교총회장,부위원장에는 심우영총무처차관이 각각 위촉됐다.
  • 여장부 박귀희(외언내언)

    『치마를 둘렀으니 여자지만…』.그의 여장부기질을 두고 주변에서 곧잘 이렇게 말하기도 했던 향사 박귀희(본명은 오계화)여사가 영면했다.40년넘게 살아오는 서울 운니동 79의2 자택에서.이집이 지은지 1백년이 훨씬 넘는 전통한옥이다.조선조때 권세있던 내시가 지었다는 것인데 대청마루 천장을 가로지르는 춘양목 대들보는 잘 손질해온 주인의 정성을 말하는듯 반들반들 세월을 모르는 양하다. 판소리에서도 일가를 이룬다는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무형문화재23호.그는 가야금병창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한평생을 몸바쳐온 국악인이다.『어단성장이라 했어요.붙임새는 짧게 목성음은 길게 뽑으라는 말이지요.동편소리는 너무 꼿꼿하고 서편소리는 좀 느끼한 맛이 있어요.이래서 소리제는 섞어 배워야 제맛을 알게 됩니다』.그는 88년,한국바둑사의 중심무대가 되기도 하는 운당여관을 판돈 20억원을 국악예술고등학교재단에 기꺼이 내놓음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다.국내 첫여성국극단을 창립했을때 싹틔운 꿈을 이룩하는 쾌거였다고 할 것이다. 『옛날엔 꽤괜찮은 얼굴이었어요.한때 영화배우로도 활약한 때가 있었으니까요』.서른 다섯에 우리나라 최초의 총천연색영화 「선화공주」에서 주연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랬던 이「여장부」도 예순을 넘기면서부터 사진찍히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얼굴의 주름살 드러나는게 보기안좋다는 데서였다.여장부도 역시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할까. 훌륭한 스승아래 훌륭한 제자는 배출된다.안숙선·강정숙·김성녀·오갑순…등등 수백명이 그의 문하를 거쳐갔다.호남이 주류를 이루는 국악계에서 경북칠곡출신인 그는 영남의 맥을 이어내린다고도 하겠으나 그의 말투만 놓고보면 영락없는 호남사람이다.『아따,멋땀시 그란다요』 『안그라요 잉』.스승과 동료들이 그쪽인데다 소리또한 그쪽 사투리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국악사에 큰발자국을 남기고 간 그를 기린다.평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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