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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이주일씨 WHO 금연공로상

    코미디언 고 이주일(본명 정주일)씨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주는 금연공로상을 받는다. WHO는 매년 금연과 관련한 주제를 정해 금연운동에 기여한 공로가 큰 인물을 추천받아 상을 주는데 올해는 ‘담배없는 영화,연극,그리고 드라마’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에서 이주일씨가 상을 받게 됐다고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29일 밝혔다.
  • 이런 책 어때요 / 조명암 시전집

    이동순 엮음 선 펴냄 ‘선창’‘꿈꾸는 백마강’‘알뜰한 당신’‘낙화유수’‘고향초’ 등 수많은 가요명곡을 작사한 월북시인 조명암(본명 조영출·1913∼1993)의 시전집.충남 아산 출신인 조명암은 일제 강점기에 우울한 분위기의 모더니즘 시를 창작했고,광복 전에 이미 500편이 넘는 노래가사를 지음으로써 우리 나라 현대시사와 가요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그러나 그는 월북시인이란 이유로 한국문학사에서 ‘잊혀진 인물’로 남아 있었다.이번 시전집엔 광복 전 발표한 작품과 분단 이후 북한에서 발간한 ‘조영출 시선집’에 수록된 시작품과 가요시들이 실렸다.3만 5000원.
  • 명세빈 일간스포츠 사장과 결혼 예정

    인기 탤런트 명세빈(사진·27)이 일간스포츠 장중호(30)사장과 올 가을께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장사장의 어머니이자 원로 배우인 문희(본명 이순임ㆍ56)씨는 22일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에서 진행된 ‘미워도 다시한번’ 촬영지 답사여행에서 관객과의 대화 도중 “큰아들(장중호 사장)이 몇년 동안 연예인과 교제하고 있으며 올 가을께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문희씨는 며느릿감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연예계와 언론계에서는 장사장의 결혼 상대가 명세빈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에 대해 장사장은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장사장의 아버지인 고 장강재 전 한국일보 회장도 71년 당시 은막의 트로이카 중 하나로 꼽혔던 문희씨와 결혼했다.
  • “한국인이란 사실, 숨길 필요 있나요”재일교포 3세 J - pop 가수 소닌

    |도쿄 황성기특파원|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갈색머리,흰 티셔츠,군데군데 찢어져 나간 청바지,TV와는 딴판이다.눈을 살짝 내리깔고,몸매를 살풋 드러낸 아슬아슬한 옷차림에 온몸을 휘젓는 열정적인 댄스로 성숙미를 풍기는 무대와는 달리 20살 같지 않은 풋풋한 미소로 나타났다. 재일교포 3세 팝가수 ‘소닌’.지난 14일 첫 앨범 ‘하나(華)’ 발매와 동시에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들어갔다.성선임(成膳任)이 본명인 그녀는 선임의 일본식 발음 그대로 예명을 쓴다.교포란 사실을 숨기거나 귀화해 활동하는 일본 연예계에서 소닌은 처음부터 당당히 재일 한국인 출신을 밝히고 연예계에 들어간 ‘이단아’이다.이미 3세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할아버지 고향땅 밟으려 한국으로 국적변경 “‘재일교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인지 연예계에 들어가 자기 이름,자기 국적을 밝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뭐랄까 일본에 살고 있지만 국적은 한국이라는….” 어딘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얼굴이지만,일본식 헤어스타일이나 화장,일본말을 쓰는 그녀에게서 한국인이라고 딱 짚어낼 만한 구석은 없다.선입견인가.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가 모두 한국 사람이에요.”‘순종 한국인’인 그녀는 할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일본에 건너왔는지 물은 적도,들은 적도 없다. 조총련계의 ‘민족학교’를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마쓰야마와 고베에서 다녔다.교복인 치마저고리도 입었지만 차별이나 놀림받은 기억은 없다.“치마저고리가 귀엽다.”는 얘기를 들은 것 외에는. 한국과는 지난해 6월 인연을 맺었다.한 일본 TV 프로그램이 그녀의 일본 고향인 고치(高知)에서 한국까지 570㎞의 마라톤을 시켰다.‘자기를 찾는 여행’이었다.“처음 한국 땅을 밟았어요.부산항에 내려,돌아가신 할아버지 고향인 경남 거창까지 뛰고 또 뛰었어요.” 한국과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재일교포가 한국에 가면 좋지 않은 취급을 당한다고 들은 터라 긴장했었는데,차별을 못느꼈어요.부산 땅을 밟았을 때 한글을 보고 ‘한국이구나.’,‘외국같지 않다.’고 느끼고,거리의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보는 친척이나 지인들을 보는 느낌이었어요.”‘재일 조선인’(북한 국적)이었던 그녀는 할아버지 고향을 가기 위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었다.지금은 재일 한국인이다. ●2003년 ‘골든 애로상’ 신인가수상 수상 보아(BOA)를 맹추격 중인 그녀는 한국의 ‘J-pop(일본 팝음악)’ 팬들에게 꽤 알려져 있다.2년 전 혼성듀엣 ‘이 점프’로 데뷔해 10장의 싱글을 냈다.지난 2월 활약이 두드러진 연예인에게 주어지는 ‘골든 애로’ 가수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일본에 진출해 성공한 한국 팝가수 보아,일본 출생의 재일 한국인 팝 가수로 정상을 꿈꾸는 소닌.데뷔나 나이,노래 스타일이 엇비슷한 보아를 라이벌로 생각할 법하다. “굉장히 의식해요.그렇지만 나이가 3살이나 어린데도 프로의식이나 노래를 향한 열정은 훨씬 강한 것 같아요.그런 그녀를 존경합니다.목표를 향한 굳은 의지나 그런 마음이 보이니까요,보아에게는.” TV의 노래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거나,콘서트를 보러가 보아와 만났다.요새는 전화도 하는 친구 사이다. 노래와는 생판 다른 질문.고이즈미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평양 북·일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인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편한 대로 그 문제를 차단했어요.‘난 관계없는 일’이라고.민족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것은 ‘그럼 무엇이었느냐?’는 생각에 당황했어요.그렇지만 자기 속에서 어떻게든 그 문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오던 그녀는 이 대목에서 말이 많아지고 엉키고 웅변이 됐다.그만큼 복잡했던 심경이었던 것 같다. ●“정체성 고민 많았지만 가수로 당당히 설터” 1시간30분간의 인터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한국 기자는 처음”이라면서 거꾸로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한국인들은 민족학교의 존재를 알고 있나?”,“재일 조선인과 재일 한국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른가?”,“한국 사람들에게 재일 조선인의 이미지는 무섭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한국인들은 재일교포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는가?”,“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재일 교포 사회를 잘 모르는가?” 등등….정체성(아이덴티티)의 고민이 느껴진다.“일본인이든,재일교포이든,한국인이든,그저 가수로서 봐주었으면 하는 게 본심이지만 ‘재일교포 3세 소닌’이라는 점을 살리고 싶어요.그렇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저는 한국도,북한,일본도 아닌 ‘재일 한국인’이라는 국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럴 법하다. 한국말 인사를 부탁하자 “한국에서 활동할 날이 멀지만(먼 날의 일이겠지만) 일본에서 지금 열심히 활동하니까 응원 부탁합니다.”라고 제법 발음이 또렷하다.지난해 나온 그녀의 싱글 ‘카레라이스의 여자’에서 그녀의 한국말이 삽입된 유일한 곡을 들을 수 있다.이제 막 날개를 편 소닌,그녀는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가. marry01@
  • “공초 자유정신 내 문학과 상통”/ 대한매일 제정 제11회 공초문학상 수상 김지하 시인

    공초문학상 수상작 ‘절,그 언저리’가 표제시로 수록된 수묵시화집은 시인으로 되돌아온 김지하(62)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작품이다. 지난해 시인이 사상의 숲에 젖어있다가 8년 만에 시집 ‘화개’를 들고 나오자 문단은 대산·만해문학상 등으로 반겼다.홀로 복잡한 사유의 강을 훌쩍 건너가 ‘시인’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세인의 우려를 말끔히 가시게 했다.‘공초 문학상’에는 그에게 시인으로서 세상을 위해 더 노래해 달라는 당부의 뜻이 담겼다. “공초 선생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훨훨 날아다니며 정신의 자유를 추구한 비범한 분이었습니다.그의 시는 허무에서 역설적인 힘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노래한 것이어서 제 생각이랑 맥이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김 시인은 고교시절 고궁에서 열렸던 어느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신 빡빡머리의 공초 선생을 본 기억담을 전해주며 “평생 자기를 바치듯 살다 간 공초의 삶은 제가 최근 소망하는 ‘모시는 태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그런 분의 시정신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됐으니 고맙고 좀더 ‘모심’의 마음으로 시를 쓰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수묵시화집 ‘절,그 언저리’는 2001년부터 2년동안 절을 순례하면서 쓴 34편의 시에 수묵화를 덧붙인 것.개인적으로도 사상의 무게에 눌렸던 그에게 다시 ‘시의 소리’를 냈다는 확신을 준 작품집이다. “‘중심의 괴로움’이후 8년 동안 시를 못 쓰다 지난해 ‘화개’로 입을 열었지요.사실은 그동안 시를 안 쓴 게 아니라 매일 썼습니다.그런데 매일 2∼3줄만 쓰면 여백이 허옇게 텅 비었습니다.그렇게 빛만 남아서는 시가 안 됩니다.어두움도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절을 다니며 순간순간의 느낌을 휙휙 갈긴 것이 이번에 낸 ‘절,그 언저리’입니다.마음에 차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삶의 소리’가 돌아와 개인적으로 무척 기쁜 시집입니다.” 수식어를 붙이는 게 번잡할 정도로 김지하 시인은 늘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70년 ‘사상계’에 시 ‘오적’을 발표하여 반독재 투쟁의 선봉이 된 뒤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다.유신시대를 “죽음”이라 노래하고(시 ‘1974년 1월’),“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면서(‘타는 목마름으로’) 70년대와 80년대를 투쟁과 감옥생활로 보냈다.세계 각국 지성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출옥한 뒤에는 사상가로서 개벽·동학·율려·생명운동 등을 천착하고 유불선의 통합을 모색하는 시기를 거쳐,민족주의와 세계 보편적 사상의 통합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박수를 받건,손가락질을 받건,늘 ‘중심’에 있었다. 늘 앞서간 길이어서 평탄하지 않았다.남보다 세상을 먼저 보고 맞이하려 했기에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그 모습은 길고 긴 겨울을 참은 뒤 막바지 추위가 절정에 이르는 2월에 첫 꽃을 피우며 봄을 알리는 ‘꽃의 예언자’ 매화를 닮았다.정서적으로 친화력을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최근 매화를 배우는 데 푹 빠져있다.(인터뷰를 한 18일 아침에도 매화 그림이 잘 되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수상작 ‘절,그 언저리’에는 시인의 사상 탐험이 고스란히 들어있다.“절,/그 언저리 무언가/내 삶이/있다”고 운을 뗀 시인은 자신의 삶을 “쓸쓸한 익살/달마 안에”(불교)서 찾거나,“외로운 예언을 하는 한매(寒梅)”나 “서너 촉 풍란(風蘭)”(유교)에서 그리기도 한다.이윽고 시인은 “세 거룩한 빛과 일곱별”과 “살풋 숨어있는 풍류”(선도)를 발견한다.그러나 그의 자화상은 ‘절 언저리’에 있다.창대한 숲을 떠올리는 사유의 체계를 산책했지만 늘 그의 마음은 세상을 걱정하고 있기에 절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는지 모른다. “절에 가면 내가 숨쉬고 살 곳이 있습니다.그곳엔 불교(대웅전)라는 세계적 종교가 가진 보편성과 환인신화(환웅전·칠성각)라는 민족적 요소가 습합되어 있습니다.이 기가 막힌 결합에서 ‘뭔가’가 나오지요.” 그는 기독교·유교·주역의 숲을 보여준 뒤 들뢰즈와 가타리 등 현대 철학자의 이론으로 돌아오는 등 동서고금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면서 불교와 선도의 통합에 대해 역설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빽빽한 숲을 연상케 하는 복잡한 사유체계를 듣다가,동서고금의 철학 미학 종교 문학을 아우르려는 그 창대한 숲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정신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마디로 ‘모심’(侍)이라고 할 수 있어요.사람과 사람,사람과 뭇 생명,사람과 자기 안에 있는 신령한 마음,심지어 컴퓨터 같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도 모시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한때 합리적 사유 이른바 운동권의 논리를 중요시한 적이 있는데 이는 세상에 좋은 영향만이 아니라 나쁜 흔적도 남겼지요.윤리적 태도의 모자람이나 폭력성 같은 것인데 그동안 싸우느라 잊었던 내면적인 평화,모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모심’의 사상을 강조하면서 마지막 꿈도 그것을 주제로 한 시적인 산문 ‘모심’(그가 미리 정해놓은 제목)을 내는 것이라고 전했다.“얌전하고 알기 쉬운 글로만 채운 뒤 마지막 가는 길에 세상에 드리고 싶다.”며 “그 뒤 시골로 훌훌 내려가겠다”고 말했다.누가 뭐래도 문사철에 능한 전통적 의미의 ‘시인’일 수밖에 없는 그는 세상에 대해 갈수록 자신을 낮추고 있다.‘절,그 언저리’에서. 이종수 기자 vielee@ ■심사평 ‘황톳길’(1969)로 등단한 이후 김지하의 시력(詩歷) 34년은그 어느 영혼의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사상사의 나침반에 시혼을 내맡긴 채 표류하는 미학적 항해사였다. 출항 때의 저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투지로 다져진 저항시들이 받았던 지지와 갈채와 성원은 세계문학사상 희귀한 혁명시의 성공사례였다.그는 언어의 마술사로 군부독재에 단독자로 맞서,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으로 견인해냈다.유신통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김지하 시인은 ‘저항시인’에서 ‘사상시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했으며,이후 오늘까지도 그의 지적 편력의 허기증은 지속되고 있다.그는 변혁의 사상사적 원동력을 토착적인 민중신앙에서 탐구하면서 밥,생명사상,율려(律呂)사상 등등을 창출,전개해 왔다.그는 저항시를 뒤로 자리바꿈시키고도 끊임없이 변혁(개벽)에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세계사와 민족사를 응시하면서 간헐적인 발언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유도해 냈다.그의 행동과 작품은 당대의 민중이 원하든 않든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파장을 일으키게 되어있다.설사 반역사적인 발언일지라도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야기되어 역사적인 진보에 도움을 주는 역기능까지 가진 이 미묘한 시인의 역할은 다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는 바로 김지하 시인의 몫이다. ‘절,그 언저리’는 시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슬픔의 정치학”인 ‘화개’에 이은 “새로운 문화정치학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인 방향전환의 시도이다.절에 가서도 절의 모습을 못 찾는 이 시인의 처절한 궁극적인 시대정신의 갈구 자세가 바로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어쩌면 김지하의 긴 항해 앞에 곧 새 미학적 항구가 보일 듯한 예감이 든다.아마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시경(詩經)’의 세계로의 귀환일지 모른다. ●심사위원 임헌영(문학평론가) ‘절,그 언저리’ 절, 그 언저리 무언가 내 삶이 있다 쓸쓸한 익살 달마(達摩) 안에 한매(寒梅)의 외로운 예언 앞에 바람의 항구 서너 촉 풍란(風蘭) 곁에도 있다 맨끝엔 반드시 세 거룩한 빛과 일곱별 풍류가 살풋 숨어 있다 깊숙이 빛 우러러 절하며. ■김지하(본명 金英一)연보 ▲41년 전남 목포 출생 ▲59년 서울대 미학과 입학 ▲63년 필명 지하(芝河)로 시 ‘저녁이야기’ 발표 ▲64년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으로 4개월간 투옥 ▲69년 ‘시인’지에 ‘황톳길’‘녹두꽃’등으로 등단 ▲70년 ‘사상계’에 담시 ‘오적’ 발표,첫 시집 ‘황토’ 간행 ▲73년 소설가 박경리의 외동딸 김영주와 결혼 ▲74년 ‘민청학련사건’ 배후조종 혐의로 사형선고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 ▲75년 3월 출옥 한달뒤 재구속,옥중에서 ‘로터스 특별상’수상 ▲80년 12월 석방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82년),이야기모음집 ‘밥’(84년),‘남녘땅 뱃노래’(85년),시집 ‘애린’(86년),‘검은 산 하얀 방’(86년),‘화개’(2002년) ‘김지하전집’(2002년)‘김지하의 화두’(2002년) 수묵시화집 ‘절,그 언저리’(2003년) 등 출간
  • 흔들리는 손정의/ 야후 고속인터넷 서비스 올해도 적자 999억엔

    |도쿄 황성기특파원|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 손정의(사진·일본명 손마사요시) 사장이 경영하는 소프트뱅크가 2년 연속 거액 적자로 휘청거리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9일 발표한 2003년 3월기 결산에 따르면 최종적자는 999억엔.ADSL 고속대용량 인터넷 서비스 ‘야후 BB’의 계약자가 4배이상으로 급증,매상고가 전년보다 0.4% 늘어난 4068억엔을 기록했다.그러나 사운을 걸고 있는 ‘야후 BB’에 1360억엔의 영업비용을 들였으나 매출은 400억엔을 올리는데 그쳐 적자원인이 됐다. 대규모 적자에도 손 사장은 “고속통신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확립돼 언제라도 흑자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민간 조사회사 멀티미디어 종합연구소는 야후 BB의 ADSL 회선 시장점유율이 올 여름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야후는 지난 3월말 현재 236만명인 유료계약자를 2004년 3월까지 400만명으로 늘려 흑자 전환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전략. marry01@
  • [수평사회를 만들자]제2부 학벌타파 (4)함께하는 학벌타파 학벌을 극복한 사람들

    학벌 넘은 5인의 경험담 학벌의 벽은 높고 두껍다.겹겹이 쳐놓은 철옹성 같다.그래서 많은 사람은 학벌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다.배움이 짧은 탓이 아니라 소위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하지만 인고(忍苦)하며 끊임없이 노력,학벌의 벽을 깬 사람들도 적지 않다.그들은 말한다.“그 잘난 학벌의 패배자로 전락할 수는 없었다.”라고.사회 각 분야에서 학벌을 극복,나름대로 전문인으로 우뚝 선 5명이 한자리에 모여 학벌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권이성 대기업 S사에 입사한 뒤 유난히 명문대 출신들에게 피해를 입었다.공고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은 물론 사소한 것까지 제약을 받았다.일본에서 조차 해내지 못한 기술을 개발했지만 내게 직접 온 관련 세미나 초청장까지 알려주지 않을 정도였다.노하우가 유출된다는 이유였다.외국 손님이 올때면 내 호칭은 무조건 ‘권군’이었다. 이세정 학벌은 공직사회에서 더 뿌리깊다.이른바 엘리트 공무원들의 학벌은 굉장히 무섭다.바닥부터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벽이다.어떤 공무원들은 능력은 없지만 학벌 하나로 출세하기도 한다.심지어 명문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출세한 사람도 있다.공직자들의 학력은 은퇴할 때까지 따라간다.인간성이나 능력보다 어디 대학 출신이냐가 중요하다.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학력자들의 단점은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겉으로는 아니지만 폐쇄적이다. 소병량 교육계도 심각하다.서울대 출신이나 지방 국립대 출신이 반 이상이다.개방대(지금의 산업대)를 나와 어렵게 실기교사 자격을 받고 교육대학원까지 나와 2급 정교사 자격증까지 받았지만 명문대 출신에 대한 피해의식은 너무도 컸다.기능올림픽에서 많은 기여를 했지만 명문대 출신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더라.내가 자격증에 매달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박준 중학교 문턱 조차 밟지 않았지만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글씨체가 이상하면 학력을 문제삼을까봐 글씨 연습을 따로 하기도 했고,미용 관련 해외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경험도 쌓았다.체험 자체가 큰 공부였다.우리나라는 한창 미래를 꿈꿀 나이에 대학 들어가는데만 몰두한다.결국 능력은 사장되고 성공할 수 있는 길도 스스로 외면하게 된다. 김은영 20대에는 못느끼던 학벌을 요즘 느끼고 있다.전문대 출신인데다 여자라는 차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창업을 했다.사장이 되면 학벌로부터 자유로울 줄 알았다.그러나 투자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사업계획서에 경영자의 학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MBA 출신이 아니면 살펴보지도 않았다.나름대로 회사 경영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았다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한때 ‘유력 학력을 가진 간판 경영인을 내세워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대부분의 기업체에서 사원모집할 때 일반 4년제 대학이 기준이 된다.방송통신대는 아예 배제한다.똑같은 학위를 주는데 정규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같은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다. 박 학벌이 없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학벌 때문에 사회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았다.하지만 이를 장점으로 살려나갈 수 있었다.처음에는 나도 외국에공부하러 갈때 이력서에 쓸 말이 없어 동생들의 학교를 적어 낸 적도 있다.그때는 정말 고통이었다.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를 장점으로 활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김 회사 직원을 채용하면서 은연중에 학벌을 보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반성한 적도 있다.학벌의 관습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그러나 점점 사람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사회에서 경험해보니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능력은 있지만 그만큼 자기계발에 소홀하더라.동료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학력이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소 내가 자격증을 많이 딴 것은 뭔가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학교에서 국·영·수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모든 학생들이 다 대학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인문계는 대학을 목표로 하지만 공고나 직업학교는 다르다.그런데도 공고나 직업학교를 가는 이유가 대학에 편입하기 위해 징검다리로 활용한다는 게 문제다.공고나 실업계가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학부모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적인 모임이 너무 많다.대부분이 지연이고 학연이다.이런 부분에 설움을 느낀 적이 많다.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그 분야의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배척당한 것도 안타깝다.평소 영어를 좋아해 관련 경험을 많이 쌓았다.전공은 아니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도자기엑스포,월드컵 등 각종 국제행사에 자원해 의전 실무경험을 쌓았다.영문학 전공이 아니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방송대 영문학과를 다니기도 하고 미국에서 학위도 받았다.지금은 나름대로 경력을 쌓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권 내가 다닌 S사에서는 석·박사들은 연한만 차면 진급을 한다.이런 분들에게서 내가 받은 요청은 논문을 써달라는 것이었다.학교 과제는 전부 내게 돌아왔다.관련 분야에서 회사 통틀어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회사에서 등록한 특허 25건 가운데 5건은 내 작품이었다.나는 고졸 출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노력했다.그런데 그 사람들은 연한만차면 곧바로 승진하더라.반면 연봉고과를 실시하면서 고졸자들은 아무런 기준조차 없이 전부 C급을 받았다. 김 구직자들에게 서류상의 학력만이 아닌 한번쯤 만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열린 기회가 다양해져야 한다.실패만 경험하다 보니 학력이 낮은 사람들은 입사 시험을 치를때 스스로 위축돼 자신감을 잃는다.지방대생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직자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 학력은 대학 들어갈때 한 번 결정된다.자격증은 평생 살아가면서 인정받는 것이다.자격증은 학력의 대안이어야 한다.국가가 자격 제도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자격증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한다면 꼭 학력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그런데 이 자격증에 모순이 있다.학력을 기준으로 하는 탓이다.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자격 제도가 오히려 학력 인플레를 부추기고 있다.자격 제도가 정상화되면 학벌타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공무원들은 학력이 없어도 전문성을 살리면 얼마든지 보람을 찾을 수 있다.외부 자원봉사가 대표적이다.공직사회나 일반 기업에서도 외부 자원봉사를 유급 휴가로 인정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나는 전문 분야를 살려 교회에서 외국인 예배와 한국문화 소개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이 없으면 월급 수준이 낮다.능력과는 상관없이 학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경제력을 잃게 방치해서는 안된다.전문대 및 대학에 미용학과만 70곳 이상이지만 이곳 졸업자들은 스스로 목에 힘이 들어가 있다.대학을 나왔으니 뭔가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런 사람들은 적응을 못하고 낙오한다.미용 기술에 학력이 무슨 소용인가. 권 학력은 물론 인정해야 한다.그러나 차별은 없어야 한다.기업체에서도 학력을 인정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투자했으면 좋겠다.고졸 실무자의 경우 영어가 무슨 필요 있나.승진 시험에 영어 대신 업무와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그런데도 똑같이 영어 시험을 보고 승진에서 탈락시킨다.업종과 직무에 따라 창의력과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 박홍기 김재천 기자 hkpark@ ●권이성(權彛成·56) 지방 공업고 화공과 졸업.항균방취 위생가공 기술 및 섬유제조 계면활성제 분야 전문가로 28개 특허 등록.H사에서 부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대한산자공업㈜에 스카웃돼 현재 R&D담당 부사장으로 활동. ●이세정(李世政·44) 경기도 제2청사 행정관리담당관실 사무관.고졸 검정고시 합격 후 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영문학 학사와 미 유타주립대 정치학 석사 취득.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2001도자기엑스포,2002한일월드컵 등 국제행사에서 의전을 담당한 국제행사 의전 전문가. ●박준(본명 朴南植·51) 국내 최정상급 헤어디자이너.박준 뷰티랩 원장.초등학교 졸업 후 21세에 미용계 입문,미용가위 하나로 전문인,기업가,모델,교수 등으로 맹활약.모스크바,북경,런던,벤쿠버 등지에서 헤어쇼 개최. ●김은영(金銀英·31) 종합콘텐츠 에이전시인 ㈜디컨 대표이사.전문대에서 영화연출 전공.인터넷방송 분야에서 일하다 학력과 성 차별을극복하기 위해 창업에 뛰어든 여장부.창업 2년만에 SK텔레콤과 교육방송,한국언론재단 등으로부터 위탁교육 수행. ●소병량(蘇秉·46) 자격증 최다 보유(46개) 한국 기네스북 등록.현 서울 독산고 교사.개방대 졸업 후 주경야독으로 2급 정교사 자격 취득.명문대 간판이 아닌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자격증에 도전,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한국의 맥가이버’.
  • 이런 책 어때요 / 남부군

    이태 지음 두레 펴냄 세계 유격전사상 그 가혹함과 가열성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리산 빨치산의 수기.북한정권에마저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사라져간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냉혹한 자가숙청 같은 빨치산 내부의 적나라한 모습,한계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 등이 에누리 없이 담겼다.5년여에 걸친 소백·지리지구 빨치산 토벌전에선 피아 2만명의 생명이 희생됐다.이 책은 88년 출간된 초판에 남부군단 대원으로 활동한 저자(본명 이우태)의 연보를 곁들인 증보판.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개인사를 접할 수 있다.1만 2800원.
  • 이런 책 어때요 /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관변 사학자,국정 국사교과서 등을 통해 개화기 선각자로 숭앙돼 온 김옥균,안창호,서재필 등은 여전히 성역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박노자(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 저자는 이 개화기 선각자들의 자취를 신랄히 비판한다.그들은 동학운동을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소란으로 매도했고,계몽 엘리트에 의한 권위적인 정국운영을 구상했으며,지역감정의 소유자였다는 것.상대적인 진보성과 함께 그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근대화의 왜곡된 성격이 어떻게 광복 이후 박정희 ‘근대화담론’으로 이어졌는가를 밝힌다.1만원.
  • 책꽂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이청 엮음,아침나라 펴냄)지난 95년 발간했다 절판된 조계종 서암 큰스님(8대 종정)의 회고록 ‘도가 본시 없는데 내가 무엇을 깨쳤겠나’를 증보해 다시 펴냈다.엮은이가 경북 봉화군 물야면의 조립식 암자에 칩거하던 스님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이 추가됐다.‘(스님들은)돈이 필요없는 생활을 해야’‘중 아닌 사람이 중노릇을 하기는 어렵다’등 충격적이랄 수 있는 내용들이 실렸다.8500원. ●마릴린 몬로,My Story(마릴린 먼로 지음,이현정 옮김,해냄 펴냄) 192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마릴린 먼로의 본명은 노마 진 베이커.예명인 마릴린 먼로 중 ‘마릴린’은 영화사에서,‘먼로’는 어머니의 이전 성을 따서 지은 것이다.어린 시절의 성폭행과 가난은 평생토록 그녀를 외로움의 감옥에 가둬뒀다.9개월만에 끝난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그후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1962년 36세로 느닷없이 끝난 삶.이 책은 먼로가 직접 쓴 미완의 자서전이다.1만원.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이연 지음,학문사펴냄) 한국과 미국,일본의 위기관리체제와 재난보도 시스템을 비교한 연구서.로스앤젤레스시가 1994년 노스릿지 지진 때 재해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데는 주지사 직속의 긴급업무부(OES)라는 캘리포니아주의 독특한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2만5000원.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다이앤 애커먼 지음,손희승 옮김,황금가지 펴냄) 조화와 포용의 철학을 담은 생태에세이.미국의 시인인 저자는 정원을 가꾸면서 지켜본 생물의 성장과 소멸에 관해 적었다.‘남의 정원에 훈수를 두지 마라’‘다른 이의 정원에서 시든 꽃을 꺾지 마라’‘꽃들에게는 사슴이 테러리스트’등 독특한 비유의 금언들이 담겼다.1만5000원. ●고사리야 어디 있냐?(도토리 기획,장순일 그림,보리 펴냄)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산나물 이야기.산나물 24가지의 세밀화 등 소박하고 정다운 수채화.6세 이상.보리 1만1000원. ●너는 내 친구야(벤 쿠이퍼스 글,잉그리드 고돈 그림,나누리 옮김) ‘천적’인줄로만 알았던 양과 늑대가 단짝친구가 되기까지의 감동과 웃음.2003년 오스트리아 아동문학상 수상작.7세 이상.달리 7000원. ●특별한 손님(에릭 바튀 글·그림,이진경 옮김) 소박한 왕궁과 옷차림의 ‘왕중의 왕’을 통해 겉치레는 무의미한 것임을 귀띔.5세 이상.행복한아이들 8000원. ●닷새장 가는 길(유경환 글,김민정 그림) 시집처럼 서정짙은 단편동화집.표제작은 겨울날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장에 가는 길의 에피소드.초등 저학년.예림당 7000원.
  • 해설가로 돌아온 ‘셔틀 퀸’

    “방송도 경기할 때처럼 긴장감이 느껴져요.긴장감을 즐겨야 좋은 방송을 할 수 있죠.” ‘셔틀 퀸’으로 불리는 96애틀랜타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챔피언 방수현(31)이 아들(3)과 함께 고국을 찾았다.지난 8일 개막된 코리아오픈 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의 TV해설(MBC)을 맡았기 때문이다. ●코리아오픈 해설 맡아 일시 귀국 지난해 10월 부산아시안게임 때도 방송해설을 위해 잠시 귀국했지만 이번에는 보름동안 머물며 가족과 고국의 정을 듬뿍 맛볼 참이다.사실상 1년만의 귀향인 셈이다. 지난 2001년 국내대회 때 ‘깜짝 해설’을 맡은 것을 인연으로 마이크를 잡은 지 벌써 3년째지만 방송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여전히 긴장된단다. 처음에 “딱딱하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는 그는 “자료를 충실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적절한 방송 용어를 피해가면서 시청자들에게 경기 내용을 상세히 전달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말한다. 방수현이 미국에서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국내 방송해설가로 나선 것은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배드민턴과의인연을 놓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그는 국내 대학강단에 설 수도 있었지만 남편 곁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 미국에 눌러 앉았다. 최근에는 남편 신헌균(34)씨가 전공을 바꾸는 바람에 뉴욕에서 루이지애나주의 시리브포트로 이사했다.신씨는 뉴욕의 한 병원에서 내과를 전공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루이지애나주립대학(LSU)으로 옮겨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다.게다가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정신없이 살고 있단다. 방수현은 현지 배드민턴 클럽에서 지도도 한다.지역 신문에 방수현이 소개되면서 회원들이 그를 지도자로 초빙한 것.매주 월·목요일은 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종교생활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 그의 생활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종교 생활. 선수시절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 ‘코트의 천사’로 불린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아들 이름도 ‘하랑(하나님 사랑)’으로 지었다. 집 인근의 성당에 다니는 그는 영어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고 있다. 방수현은 남편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스포츠 체력과 운동처방’에 관한 강의를 수강할 계획이다. 자격증을 따 적극 활용해 볼 요량이다. “몸이 재산인 운동 선수에게는 반드시 부상이 찾아옵니다.때로는 운동을 당장 그만두라는 선고도 받지만 심리 치료를 병행해 처방을 잘 하면 빠른 완치는 물론 불행도 막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이번 방문을 통해 ‘제2의 방수현’으로 꼽히는 하정은(부산 성일여고 1년)과 장수영(서울 원천중 3년)을 만나 기술적·정신적 지도도 할 예정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라켓을 처음 쥔 방수현. 아버지인 코미디언 방일수(본명 청평)씨와 어머니 김정희씨의 반대속에 도망다니다시피 운동을 계속해 92바르셀로나올림픽,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여자단식 은메달과 금메달을 차례로 목에 걸며 ‘셔틀 퀸’의 자리에 올랐다. ●“성적 오를 때의 희열 영원히 간직하길” 90년 허리 부상으로 7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선수생활을 포기해야할 갈림길에 선 때도 있다. 방수현은 “마지못해 운동을 할 때가 많다.하지만 어느 순간 운동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느낄 때 열심히 해야한다.그러면 기술이 늘고 성적이 나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이 희열을 영원히 간직하라.”고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글 김민수기자 kimms@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
  • 가슴 적시는 섬세한 목소리 / 재즈가수 말로 새앨범 ‘벚꽃지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33·본명 정수월)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악기를 연상케 한다.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잔물결이 일렁이다 파도로 솟구치고,다시 잔잔히 가라앉는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게 된다. 98년 1집 ‘Shade of blue’와 2집 ‘Time for truth’에 이어 최근 오랜만에 발표한 새 앨범 ‘벚꽃 지다’에서 그녀는 재즈에 가요를 접목시킨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인다. 말로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를 공부하고 96년 귀국해 지금까지 클럽과 각종 무대,대학 강단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대표적인 국내 여성 재즈뮤지션이다. 이번 음반에서 그녀는 블루스,보사노바,펑키,발라드 등 기존 대중음악에서 접하기 어려운 장르들을 다채롭게 엮어냈다.그녀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리메이크한 ‘봄날은 간다’와 ‘엄마야 누나야’는 색다른 음악적 감흥을 선사한다. 12곡 중 리메이크한 2곡을 제외한 모든 노래를 직접 작곡한 데 이어 편곡,프로듀싱까지 1인4역을 혼자서 해냈다.작사는 전직 기자출신인 음반제작자 이주엽씨가 도맡았다. 녹음에 참여한 세션맨들은 모두 정상급 재즈연주자들이다.시각장애자 전제덕이 독학으로 터득한 하모니카 소리는 백미로 꼽힌다. 이순녀기자
  • 조계종 총무원 부장에 첫 비구니 스님,문화부장에 탁연스님 임명

    불교 조계종단 사상 처음으로 총무원 부장 소임에 비구니 스님이 임명됐다.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은 4일 총무원 인사를 단행,문화부장에 탁연(본명 서덕선·사진·54) 스님을 임명했다.탁연 스님은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으며,봉녕사 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를 졸업하고 지장암 주지와 봉녕사 승가대학 강사를 지냈다.이밖에 총무원 소임은 다음과 같다. △총무부장 성관△기획실장 현고△재무부장 태연△사회부장 현광△호법부장 현진△총무국장 주경△기획국장 세정△감사국장 태진△재정국장 도성(유임)△문화국장 심원△사회국장 정견△호법국장 자공(유임)△조사국장 각원△상임감찰 성묵(통도사)△상임감찰 성묵(고운사)△상임감찰 덕문△사서차장 경우(유임)△사서 진광(이상 스님)
  • 주간시청률/ ‘이경실 폭행사건’ 시선집중

    개그우먼 이경실씨 폭행사건의 여파인지,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급상승했다.KBS2 ‘연예가중계’,SBS ‘한밤의 TV연예’ 등이 각각 5위와 11위를 차지했다. KBS2 ‘저푸른 초원위에’와 MBC 주말연속극 ‘맹가네 전성시대’는 중위권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각각 14위와 15위.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두 드라마는 ‘저푸른초원위에’의 여주인공 채림(본명 박채림)의 친동생 박윤재가 ‘맹가네 전성시대’의 주인공 이재룡의 동생 역을 맡아 남매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MBC ‘인어아가씨’는 7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고,SBS ‘올인’은 ‘야인시대’를 누르고 2주연속 2위를 차지했다.MBC 아침드라마 ‘황금마차’는 계속된 상승세로 8위에 올랐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찍다 국회월담 예지원

    대체 무슨 마음에서였을까.미니 스커트까지 입고 국회 철문을 훌쩍 넘어서다니.스캔들을 내지 않는 이상 한국의 여배우가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감독 송경식·제작 한맥영화)의 여주인공 예지원(30)을 만난 건 ‘그 사건’이 있은 다음날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한 미용실에서였다. 화보촬영을 위해 두시간을 공들여 머리를 다듬고 마주한 그에게선 여배우의 ‘사치’가 느껴지지 않는다.화려하게 발산되는 얼굴 이미지도 아니고,팔등신의 각선미를 자랑하느냐면 그것도 아니고.기자의 짧은 혼돈을 눈치챈 모양이다. “큰 키도 아니고… 화려한 외모가 아니라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게 아마 제 매력포인트일 거예요.(웃음)” 그렇다면 시나리오에도 없는 돌발행동은 무슨 배짱에서 나온 걸까.곱상해서 ‘천상 여자’ 같은 이미지는 거의 허상이다.강단있는 말솜씨.“원래 시나리오에는 국회의사당을 당당히 걸어들어가는 모습으로 마감하게 돼 있었어요.그런데 몇번이나 국회가 장소협조 요청을 거절했어요,이유도 없이.문까지 걸어잠글 줄이야 꿈에도 몰랐죠.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어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중에 저도 모르게 담을 넘어버린 거예요.3컷 찍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니까요.” 열이 오르는지 금세 볼이 발그레해진다.홧김에 돌발연기를 했는데,그 ‘실제상황’이 그대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새달 14일 개봉할 영화는 억울한 사고로 죽은 친구를 돕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한 윤락녀가 금배지를 달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린 코미디.자존심 건드리는 아줌마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휘어잡고 나중엔 15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여봐란듯 출마연설을 하는,‘온탕 냉탕’ 들락거리는 윤락녀 고은비가 그의 역할이다. “한 작품 안에서도 최대한 변신 폭이 큰 캐릭터를 하자는 게 제 연기관이에요.최고급을 지향하진 않아요.‘니마이'(2류)에서 ‘쌈마이'(3류)까지.그걸 다 아우르는 연기를 앞으로도 하고 싶고.이번 영화에서도 그걸 할 수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영화에 데뷔한지 올해로 7년째.국악예고를 거쳐 서울예전 방송연예과를 졸업했으니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세상으로 제대로 발을 들인 셈이다.‘아나키스트’의 나이트클럽 가수,‘생활의 발견’의 웃기게 당돌한 무용가.이쯤에서 그의 배짱이 또한번 빛난다.“‘뽕 96’이 데뷔작이에요.숨길 이유가 없죠.” 이유정이란 본명으로 1996년 맨처음 찍은 영화가 ‘뽕’이었다. “TV드라마에 당장 얼굴을 보일 계획은 없어요.하지만 영화에 재미를 붙였다고 TV로 돌아가지 않는 일은 없을 거예요.제 이름을 세상속에 똑똑히 심어준 게 안방극장이었는데요.” 2000년 SBS ‘줄리엣의 남자’로 처음 인기란 걸 느꼈고,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는 불량 여학생을 연기한 ‘여고시절’로 반짝 떴다며 웃는다. 올해는 많이 바쁘다.영화 ‘귀여워’도 다음달이면 촬영이 끝나니 상반기에만도 개봉작이 2편이나 된다.“공중그네를 타는 서커스 단원 같은,비애가 서린 그런 캐릭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황수정기자 sjh@
  • [Look! 아시아]1부 新 장보고 루트르포 (6)日개헌과 우경화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의 선택 가운데 눈여겨 볼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의 총리 진출,장기적으로는 헌법 개정 여부이다. ●이시하라 대망설 “고이즈미가 물러나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포스트 고이즈미는 누구?”라고 물으면 일본 정계에 자천은 있어도 타천은 별로 없다.그래서 고이즈미는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으나 단 한가지 ‘저항세력’의 쿠데타에는 안심 못한다.고이즈미가 끝끝내 ‘참다운 개혁’을 실행하려고 한다면 기득권을 쥐고 개혁에 반대하는 자민당 ‘저항세력’은 오는 9월 당 총재선거에서 힘의 우위를 앞세워 그를 끌어낼 심산이다. 그들의 책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이즈미에게는 ‘해산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국회를 해산해 저항세력을 친다는 복안.정기국회가 끝나는 시점에서의 ‘6월 해산설’은 바로 이런 점을 근거로 한다. 이시하라는 이 시점에서 등장한다.총리에의 대망을 품은 이시하라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신당을 창당하고 돌풍을일으켜 연정을 수립한다는 시나리오이다.이 시나리오를 이시하라가 입 밖에 낸 적은 한 번도 없다.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리 없듯 가능성은 없지 않다.정치인 인기조사에서 이시하라는 언제나 고이즈미 다음이다. 일본 정계에 영향력이 큰 보수 원류 나카소네 전 총리도 그를 전폭 지지한다.창당하면 40∼50명은 모일 것이라는 그럴 듯한 숫자마저 나온다.극우 성향의 이시하라가 중앙정계에 나서고 그런 그를 일본인이 선택할지 주목된다. ●개헌 당장은 아니지만 몇년 안으로 가능성이 있다.중의원·참의원 양원에서 4년째 헌법조사회를 두고 착실히 논의하고 있다.지금은 개헌 지지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개헌에 반대하는 사민,공산당은 별개로 치더라도 미야자와 전 총리,노나카 전 간사장 등 자민당 내 전쟁 경험 세대들이 사라지고 개헌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의 정계진출이 늘어나면 일거에 개헌 분위기로 갈 수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지난해 8월 50세 이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당신이 재직할 동안 구체적인 개헌일정이 잡힐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민당 소속의 9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개헌 얘기만 나오면 주변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본의 개헌론자들이 안달을 내는 것은 9조이다.군대의 보유를 금지한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개헌론자 주장의 골자이다. 헌법을 고쳐 자위대가 자유롭게 해외에 나가고 헌법 해석상 금지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그들은 개헌을 우려하는 주변국에 대해 “침략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강변한다. 그러나 군대를 두지 못하도록 한 헌법의 해석을 통해 사실상 동북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인 ‘자위대’를 두고 있듯,일단 개헌에 착수하면 다시 개정된 헌법을 토대로 막강한 힘을 키워갈 것이라는 것이 주변국의 시각이자 우려이다.국회의 헌법 연구와 보고가 끝나는 2005년을 전후로 호헌 대 개헌 논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marry01@kdaily.com ◆사사키 도쿄대총장 인터뷰 유례없는 고도성장 뒤 붕괴의 10년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지금 0% 저성장사회에 대한 새로운 적응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그것은 모두가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주식회사 일본식 사회’에서 낙오자가 당연시되는 ‘미국식 경쟁사회’로의 새로운 적응훈련과도 같은 것이다.활력의 시대를 마감하고 저성장속에 내부로 침잠해 가는 일본의 오늘과 미래를 사사키 다케시 도쿄대 총장(사진)의 입을 통해 들어 보았다. ●붕괴의 10년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나. 어떤 의미에서 계속 붕괴해갈 것이다.7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은,모두가 하나의 방향으로 하나를 했던 시대였다.그것이 모두 실패해 버렸다.지금은 새로운 단계로 가는 중이다.이전처럼 모두가 똑같은 월급 받고 모두가 똑같이 행복한 그런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그것이 미국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적인 격차가 생겨나고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 시스템 전체를 금방 바꾸지는 못해 낡은 것은 남고 새로운 것도 나오는 그런 것이 될 것이다.붕괴해 갈 것이다.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 일본 정부가 아닐까 걱정이지만(웃음).엄청난 재정적자(670억엔)를 짊어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일본에 맞는 새 시스템은 어떤 것인가. 미국을 제치고 논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나 미국과 일본은 인구구성 같은 조건에서 상당히 틀리다.경영 시스템은 바꿀 곳은 바꾸어야 하겠지만 사회 전체 시스템은 보다 새로운 시도를 해도 좋다고 본다. 일본의 가장 큰 테마인 소자화(少子化·아이를 적게 낳은 경향),고령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중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금까지 하나의 기업에 에너지를 쏟아넣고 기업이 그 에너지를 받는 시스템은 끝났다.종신고용도 마찬가지여서 회사의 수명이 개인보다 짧아지니까 의미가 없어진다.도쿄대 학생들만 해도 그런데 흥미가 없다. 인생관도 변하고 있다.자신들이 이런 생활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자기 몸을 움직여서 만들어가는 스타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그런 면에서 지방정부의 중요성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여서 하나의 상품으로 세계를 석권하는 시대는 지났다.큰 수요는 아니더라도 착실히그 수요에 대응하는 것이 소중하다.도쿄대와 제휴해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꽤 많다.건강문제 한 가지만 보더라도 여러 수요가 있으며 그것은 지금껏 도시바나 히타치가 해온 것과는 또 다른 것들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에 진전이 없는데. 심각한 것은 개혁 프로그램들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여러 가지 논의를 하지만 결국은 비개혁적 결론만 나온다.정부가 자신이 없어서이다.비판은 있어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없다.예를 들면 산업재생기구를 만들었는데 그 재생기구를 재생시킬 기구가 또 필요할 정도이다.(웃음) 메이지(明治)유신 이후부터 제기되어온 국가기구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국가기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검토위원회 안에 또 무슨무슨 검토위원회 등 이런 식이다.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 그 자체이다. ●10년후 일본의 미래상은. 일본은 저성장 사회로 이미 들어섰다.그런 의미에서 0% 성장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다.지금의 디플레이션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본은 거기에 거품붕괴까지 겹쳐 역사상 가장 심각한 상황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느긋이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가 안정되고 노인이 늘어도 나름대로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거기서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갈 것이다.일본인에게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개인들은 오히려 활기에 넘칠 것이다.사회시스템이 대단히 효과적으로 작동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0% 성장으로도 국가를 잘 운영하는 선진국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치는. 일본의 전후 국제정책에는 깊이가 없었다.깊이 없는 외교를 경제력이 커버해 왔을 뿐이다.10년 뒤 일본은 지금보다 꾀많고 교묘하고 지혜있는 정부이길 바란다.조금 전 말한 그런 사회가 되면 고도성장을 전제로 한 지금의 정부는 쓸모없이 되거나 기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20세기초 일본은 군사력,그 다음에는 경제력으로 해 왔다.이제 머리를 쓸 때가 됐다.현명한 국가가 되는 것이 기본명제이다. ●헌법개정 논의가 많은데. 좀 바꿔도 좋다고 생각한다.하나의 연습이니까.헌법이 바뀌지 않는다든가,헌법을 바꿀 수 없는 정치가 좋은지 여부의 문제가 있다.물론 어느 조항을 어떻게 바꿀지 하는 문제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모두들 9조 문제를 얘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참의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일본은 통치기구에 문제가 있다. ●9조 개정문제는. 헌법해석에 의한 자위대 파병 등은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다.이런 기정사실이 쌓인 가운데 헌법을 지키는 것과 개정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그렇지만 전쟁을 하자고 헌법 개정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개헌 논의를 들어와서 좀 질렸다.9조의 경우는 기정사실이 있으니까 좀 바꾸어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우경화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분명히 예전에 비해 그렇다.그렇지만 이해해 줘야 할 것은 일본은 좌절감이 있다.좌절감은 때때로 내셔널리즘 같은 데로 이어지기 쉽다.게다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얘기가 오면 더 그렇게 된다.그런 의미에서일본 비판을 하는 한국,중국 사람과 일본의 우파는 공동작전을 펴는 것이다.그들은 한통속이고 친구이니까.단지 좌절감이 있으니까 옛 독일의 바이마르처럼은 되지 않겠지만 좀 그런 눈(일본인의 좌절감을 이해해 주는)으로 봐주면 일본인들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내셔널리즘이 걱정할 수준인가. 모르겠다.어쨌든 일본의 정치가 공동화(空洞化)되어 가고 있으니까.무엇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아무 것도 없으면 무엇이든 일어나니까.이시하라 도쿄도 지사의 신당 가능성도 현재로서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있을 수 있는 얘기이다. ●사사키 다케시 총장 62세.2000년 4월 임기 4년의 직선제 총장직에 올랐다.전공은 정치사상사.일본 정치학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왕성한 정치평론도 전개하고 있다.고이즈미 총리의 ‘총리선거제를 생각하는 간담회’ 좌장을 지내기도 한 현실 참여론자.‘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 LG홈쇼핑 ‘르메이유’ 디자인 수잔나 리 파리 란제리쇼 출품

    LG홈쇼핑의 란제리 브랜드인 ‘르메이유(LeMeilleur)’의 디자이너인 수잔나 리(본명 이수경)씨가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권위의 ‘파리 국제 란제리컬렉션’에 작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LG홈쇼핑은 지난 25일부터 3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3 파리 국제 란제리컬렉션’에 수잔나 리가 디자인한 자사 브랜드 ‘르메이유’를 출품,참석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평을 얻었다고 27일 밝혔다. 파리 국제 란제리컬렉션은 전세계 속옷 디자이너들이 ‘꿈의 무대’로 일컫는 패션쇼로 동양인 디자이너의 작품이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컬렉션에서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을 선보여 그동안 소박하고 수줍은 이미지로만 고착된 동양 란제리에 대한 서구인의 인식을 뒤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잔나 리씨는 세계는 물론이고 국내에서조차 무명에 가까운 디자이너지만 남대문·동대문 등 도매시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최고의 속옷 디자이너로 손꼽혀온 인물이다. 1986년부터 속옷 디자인에 전념하며 탄탄한 실력을 쌓았고,LG홈쇼핑의 속옷 브랜드인 ‘르메이유’를 맡으면서 숨은 실력을 발휘해 왔다. 전광삼기자 hisam@
  • 2003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상식/당선자 6명에 상금·상장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상식이 20일 오전 11시 한국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시상식에서 유승삼(劉承三) 대한매일신보사 사장은 김경주(본명 김병곤·시)·임정연(소설)·이성혁(평론)·변혜령(희곡)·이안빈(시조)·이채울(본명 이혜영·동화)씨 등 부문별 당선자 6명에게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축하했다. 유 사장은 인사말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출중한 문학적 기량을 선보인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말하고 “수상자들이 겸허하게 문학을 대해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캐내는 지혜로운 문학인의 삶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총평을 한 이근배씨는 “어느 해보다도 출중한 작품들이 뽑혀 심사위원으로서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으며,임정연씨는 당선자를 대표해 “갈 길이 멀지만 각고의 노력을 쏟아 성공한 문인이 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시상식에는 한국문인협회 신세훈(申世薰) 이사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현기영(玄基榮) 이사장,한국시인협회 이근배(李根培) 회장,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자 모임인 ‘서울문우회’ 장윤우(張潤宇) 회장과 회원 및 당선자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심사를 맡았던 황동규·최동호(시)씨를 비롯,현길언·윤후명(소설)씨,오태석(희곡)씨,정명교·김인환(평론)씨,조대현(동화)씨,이근배·윤금초(시조)씨 등도 참석해 이들의 수상을 축하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씨줄날줄] 010 시대

    세상이 바뀐다고 한다.010시대가 된다고 한다.내년부터는 휴대 전화를 신청하면 다짜고짜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준다고 한다.이동 통신 사업자를 바꾸더라도 그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다고 한다.언제 어디를 가나 본인이 바꾸려 하지 않으면 평생 쓰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름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동명이인(同名異人)도 있을 수 없는 나만의 이름이다.아마 진짜 이름이 될 것이다.하루에 한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은 우리네가 하루에 세 번 이상은 휴대 전화를 건다고 하지 않던가. 010시대는 세상 사람들의 인연 패러다임도 바꿀 것 같다.인연 맺기도 쉬워지면서 끊기는 어려워질 것이다.사람들 만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된다는 게 결국 연락처 주고 받기 아닌가.이사하고 집들이하면서 바뀐 전화번호를 주고 받는다.인연이 식으면 근무 부서 바뀔 때 연락처만 알려 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이제 그게 안된다.휴대 전화 번호를 건네는 순간 인연은 맺어지고 그 인연의 굴레를 떨치기가 사실상 어렵게 됐다.휴대 번호가 평생 번호인 까닭이다. 옛 사람들은 이름을 자신의 인격으로 여겼다.이름에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담으려 했다.대개 세 개쯤 있었다.태어나며 부모가 붙여주는 이름이 본명이다.성인이 되면 자(字)라는 이름이 생겼다. 학문이나 연배로 보아 ‘윗분’이 그 사람의 심성이나 취향 등을 칭송하며 내리는 이름쯤 된다.세월이 흘러 세상에서 어느 정도 입신을 하면 스스로 호(號)라는 이름을 만들었다.평소 지향하는 표상을 구체화하기도,추구하는 심성을 은유하기도 했다. 세상에 이름 많기로 하면 김정희 선생일 것이다.추사(秋史),완당(阮堂),시암(詩庵),방외도인(方外道人) 등 호가 500개가 넘었다고 한다.스스로를 깨우치는 표상들이 어지간했나 보다.그렇게 많아도 숫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름보다 정감이 느껴진다.정취도 있고 격도 달라 보인다.그러나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점만은 같을 것이다. 010시대엔 한번 갖게 된 번호는 평생 번호가 된다니 세상살이가 더 어려울 것이다.번호가 숙명처럼 붙을 테니 늘 마음 가짐을 성찰하고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그나 저나 아호 하나 만들어 간직하는 정취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인학 chung@
  • 린다 김 “무기 컨설팅사 준비”

    무기도입 사업에 간여한 재미교포 여성 로비스트 린다 김(사진·50·본명 김귀옥)씨가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다 최근 잠시 귀국한 김씨는 19일 기자들을 만나 “한국의 무기도입 의사 결정과 운용시스템에는 개선할 점이 많다.”면서 “국제적인 무기 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국산무기 수출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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